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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경영-본좌설명 (2012-09-01)

9월 1, 2012

인류의 구심점과 영적 완성의 길
타인을 향해 겨누었던 비판의 칼날을 거두고, 이제는 자기 내면을 비추는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 이치인 양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음의 이치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분법적인 논리로 세상을 성급히 판단하면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특히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함부로 구분 짓는 행위는 매우 위험합니다. 타인을 향해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영향은 상대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난하는 마음은 결국 본인의 건강을 해치고 정신을 흐리게 만듭니다.

하늘의 섭리는 스스로 선하다 자만하며 형제를 비난하는 자를 멀리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는 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진정한 어른이자 지도자라면 공동체의 구성원이 방황할 때 그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통찰하는 깊은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 법과 처벌로만 해결하려는 세상은 삭막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존재는 타인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먼저 살피며, 스스로에게는 서릿발처럼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끝없는 자애로움을 베푸는 법입니다.

이러한 성찰의 길은 과거 성자들의 삶에서도 드러납니다. 석가모니라 불리는 본존의 노정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남깁니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여인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왔으며, 진리를 찾기 위해 설산에서 육 년이라는 세월 동안 처절한 고행과 항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육체를 학대하며 진리를 갈구하던 그는 어느 날 부모가 주신 고귀한 몸을 파괴하는 것이 결코 도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산을 내려와 여인이 공양한 우유죽 한 그릇을 통해 기운을 차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소 득도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복잡한 고행이나 지식의 습득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너무나 급박하기에 지식으로 스스로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오직 허경영을 부르고 그 존재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막힌 것이 뚫리고 치유되는 명료한 구원의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시련은 영적인 연단을 위해 하늘이 예비한 과정일 뿐입니다. 인체의 신비와 생명의 이치 또한 복잡한 이론보다는 근원적인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진리와 정의의 본질은 대중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으며, 그 가치가 무시되기도 합니다. 정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사람들이 당장의 이익이나 편한 길을 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형체가 없어 속기 쉽고 정의는 고독할지라도,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과거의 성자들이 고독한 길을 걸었듯, 인간의 의식 위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존재는 세상의 흔들림 속에서도 묵묵히 정의를 지켜나갑니다.

본좌라는 자리는 단순히 인간이 만든 호칭이 아니라, 선과 악이라는 양극단을 넘어선 절대적인 중심의 자리입니다. 인류가 마음을 기댈 구심점이 사라져 방황하는 이 시대에, 우주의 본체가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내려온 것은 인류를 향한 최후의 구원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계를 넘어 본체가 직접 나투었기에, 그 사진과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인류에게 천상의 에너지가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모든 혼란을 종식시키고 세계 통일과 낙원 건설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몸을 실어야 합니다. 본좌는 머지않아 전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고, 시대의 아픔을 외면했던 위정자들을 준엄하게 심판하여 진정한 정화의 과정을 단행할 것입니다. 이는 눈물과 배고픔이 없는 지상 천국을 실제로 구현하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이 거룩한 노정을 지켜보며 하늘이 부여한 사명을 다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닿게 될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통찰과 무한한 영적 존재의 실체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깊은 명상 끝에 도달한 첫 번째 진리는 바로 생로병사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육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고뇌하였습니다. 그가 마침내 도달한 답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명확했습니다. 태어남이 있기에 늙음과 죽음이 뒤따른다는 인과의 법칙이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와서 늙고 병들며 죽어가는 이 굴레의 책임은, 결국 지상에 몸을 받아 태어난 것 그 자체에 있음을 통찰한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진리를 전하며 인류의 영적인 등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수명이 유한하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영의 세계에서 우리의 수명은 본래 무한합니다. 인간은 우주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존재해 왔으며,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태어남을 반복해 온 영원한 존재들입니다. 전 세계를 돌며 수없이 반복되는 이 기나긴 여정은 우리의 본질이 결코 단 한 번의 생으로 끝나는 하찮은 것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인간의 육신은 지상에 머무는 동안 무한한 생명력을 품고 있으나, 태어남이라는 원인에 묶여 어쩔 수 없이 늙고 병드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과거 석가모니가 깨달은 이치는 우리가 왜 고통의 수레바퀴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이제 본좌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는 그 고통의 굴레를 넘어서는 차원 높은 낙원을 지향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우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존엄한 존재이며, 자신의 본질이 무한한 시간 속에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과거의 성자들이 생로병사의 원인을 깨닫고 전법과 열반의 길을 보여주었다면, 본좌는 이 땅에 직접 내려와 통일을 이루고 실제적인 심판과 낙원 건설을 통해 인류의 고통을 뿌리부터 종식하려 합니다.

이제는 태어남이 고통의 시작이 되는 낡은 순환을 끝내야 합니다. 태어남 그 자체가 축복이 되고 지상이 그대로 하늘의 나라가 되는 위대한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무한한 생명을 자각하고, 본좌가 열어가는 낙원의 길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생을 반복하며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났으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삶과 죽음의 굴레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통찰한 것은 만물의 순환이었습니다. 겨울에 떨어진 나뭇잎이 봄에 다시 싹을 틔우듯, 인간의 생 또한 끊임없이 돌고 도는 법입니다. 잎사귀가 돋아났기에 벌레에게 뜯기는 고통이 생기듯,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늙고 병드는 괴로움이 뒤따릅니다. 결국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지상에 몸을 받아 태어난 사실 그 자체에 있습니다.

전도의 참뜻과 지식을 초월한 에너지의 시대
우리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죽음을 연습하고, 아침에 눈을 뜨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기에 고단한 현실과 마주하듯,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인연과 과보의 시작점이 됩니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생의 원인을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진리의 법을 전했습니다. 불교에서의 전법이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면, 예수의 전도는 마치 선한 행실이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스며들게 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이는 말로만 진리를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이에게 직접 빵을 건네며 몸소 사랑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선한 사람의 품행과 향기가 주변에 자연스럽게 옮아가는 것처럼, 과거의 성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류를 깨우치려 노력해 왔습니다. 불교가 말로 전하는 깊은 이치였다면 기독교는 실천을 통해 마음을 전하는 길이었으나, 그 모든 것의 뿌리는 결국 하나로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식이나 말로 나를 바꾸고 세상을 구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복잡한 이론이나 오랜 수행보다는 우주의 본체가 직접 보여주는 에너지의 증거와 본좌의 이름을 부르는 간단명료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태어남이 고통의 원인이 되는 낡은 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합니다.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축복이자 낙원이 되는 기적을 직접 체험하십시오. 맑은 정신으로 본좌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내 안의 신성을 일깨울 때, 여러분을 괴롭히던 생로병사의 사슬은 비로소 풀리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오랜 방황을 끝내기 위해 본좌가 이 땅에 구심점으로 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거의 성인들이 보여준 가르침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 이제는 실제적인 세계 통일과 낙원 건설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흩어지는 나뭇잎처럼 허무한 생에 머물지 말고, 영원한 생명의 빛인 본좌와 연결되어 진정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내 안의 진리의 저울을 오직 나 자신에게만 비추어 보며,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본좌가 이끄는 새 시대의 주역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류의 영적 진화를 이끄는 성자들의 길은 저마다의 노정이 있으나, 본좌가 걷는 길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지상 낙원을 실제로 구현하는 유일무이한 여정입니다.

성자들의 노정과 본좌의 사명
우리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죽음을 연습하고, 아침에 눈을 뜨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기에 고단한 현실과 마주하듯,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인연과 과보의 시작점이 됩니다. 과거의 성자들은 이러한 생의 원인을 깨닫고 중생을 이끌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진리를 전했습니다. 불교의 전법이 진리의 이치를 말로써 설파하는 것이라면, 기독교의 전도는 선한 행실과 사랑이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배고픈 이에게 빵을 건네는 실천을 통해 살아있는 진리를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선한 사람의 향기가 주변에 자연스럽게 옮아가듯 과거의 성자들은 인류를 깨우치려 노력해 왔으나, 이제는 지식이나 말로 세상을 구하는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복잡한 이론이나 고통스러운 수행보다는 우주의 본체가 직접 보여주는 에너지의 증거와 본좌의 이름을 부르는 명료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태어남이 고통의 시작이 되었던 낡은 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합니다.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축복이자 낙원이 되는 기적을 직접 체험하십시오. 맑은 정신으로 본좌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내 안의 신성을 일깨울 때, 인류를 괴롭히던 생로병사의 사슬은 비로소 풀리게 될 것입니다.

우주의 거대한 시간 속에서 여러분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전생부터 창조주의 섭리와 연결되어 생을 이어왔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머무는 시간은 그 긴 여정 중의 한 조각일 뿐이며,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소멸이 아닙니다. 육신의 숨이 멎는 영적 일 초 만에 여러분은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눈을 뜨게 되니, 이것은 우주를 여행하는 끝없는 여정의 과정입니다. 이 위대한 순환의 고리 속에서 오늘 본좌를 만났다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우주의 본체와 마주한 놀라운 축복이자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며, 그중에서도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더욱 숭고한 도정입니다. 인간은 때로 짐승과 사람의 경계에 놓인 위태로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네 가지 이치를 깨닫고 밝은 눈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복입니다. 남자로 태어나 진리를 만나고, 그 법을 구하는 성직자의 길을 지나 마침내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인류가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영적 목표입니다. 이제는 본좌 허경영을 부르며 무한한 생명의 환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전 세계 부호들과 허경영의 관계, 그리고 백궁으로의 인도
성자들의 노정은 저마다의 차이가 있으나, 본좌가 걷는 길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지상 낙원을 실제로 구현하는 유일무이한 여정입니다. 과거 석가모니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설산에서의 고행이라는 항마의 시간을 거쳐 스스로 득도하였고, 진리의 법을 전하다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와 마귀와의 싸움을 거친 후, 곧바로 하늘의 법을 전하는 전법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죽음과 부활, 혹은 열반을 통해 인류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들 중 누구도 이 땅에 직접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구체적인 설계도를 가지고 오지는 못했습니다.

본좌가 걷는 십 단계의 노정은 세계 통일과 심판, 그리고 실제적인 낙원 건설이라는 거대한 사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좌는 어린 시절부터 입만 열면 그것이 곧 하늘의 소리이자 진리였기에 인간적인 득도의 과정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본좌가 행하는 심판은 기득권 세력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세상을 정화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인류를 가르치고 제도시켜 마침내 이 땅을 눈물과 고통이 없는 낙원으로 탈바꿈시킬 것입니다.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로 돌아가기 전까지 본좌는 인류의 유일한 구심점이 되어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지금 인류가 겪는 비극은 진정한 구심점이 없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오 년마다 교체되는 권력은 국민에게 진정한 안정을 주지 못하며, 임기 초반부터 갈등과 혼란에 휩싸여 지도자조차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상징적인 존재가 중심을 잡아주는 나라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줄 절대적인 기준이 부재합니다. 세계 무대 또한 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고, 지성인들조차 야만적인 보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격동의 시대에 본좌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단 하나의 공심점이자 절대적인 지표로 이 땅에 서 있습니다.

본좌의 이름은 곧 에너지이며, 본좌의 형상은 곧 치유의 증거입니다. 복잡한 지식과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과거의 시도는 모두 한계에 부딪혔으나, 이제는 본좌를 구심점 삼아 모든 인류가 하나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본좌가 제시하는 통일과 낙원의 설계도는 머나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본좌와 연결되는 모든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우주의 명령입니다. 혼돈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인류는 이제 방황을 멈추고 본좌라는 거대한 함선에 올라타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자나 지식인도 줄 수 없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 오직 본좌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에 놓여 있습니다.

가혹한 심판과 인체의 신비, 그리고 면역의 이치
지구라는 행성에 본좌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우뚝 서는 순간, 인류의 무질서한 전쟁은 그 즉시 종식될 것입니다. 본좌가 행하는 심판은 가차 없고 준엄하며, 세상의 모든 지도자는 본좌 앞에 소환되어 그 권능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남을 해치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과오를 먼저 돌아보라는 서슬 퍼런 꾸짖음으로 질서를 잡는 시대, 그것이 바로 본좌가 이끄는 심판의 시간입니다. 그 준엄한 정화 뒤에 비로소 진정한 지혜를 일깨워, 모든 인류를 고통 없는 낙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지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령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은 내 몸이 스스로 전쟁을 치르며 기운을 순환시키는 거룩한 면역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약물에 의존해 그 흐름을 강제로 막아버림으로써 몸의 방어 체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패혈증 같은 증상들 또한 제대로 된 기운의 원리만 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인데, 무지한 의학이 사람들을 무방비한 상태로 내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이치는 교육과 훈육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자식을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귀하게만 키우는 것은 때로 자식의 영적, 육적 면역을 약하게 만드는 길이 됩니다. 진정으로 강한 생명력을 심어주려면 때로는 거친 들판에서 단련시키며 엄한 꾸짖음으로 스스로 시련을 이겨낼 독기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나약한 감상과 잘못된 지식을 버리고 본좌라는 절대적인 구심점을 향해 영적인 면역력을 길러야 할 때입니다.

본좌가 전하는 에너지와 진리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강철처럼 단련시켜 그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게 할 것입니다. 지식의 유희를 멈추고 본좌의 강렬한 눈빛과 마주하십시오. 그 속에 모든 질병을 치유하고 운명을 바꾸는 근원적인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본좌가 이끄는 낙원의 시대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하늘의 법도에 순응하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약속의 땅이 될 것입니다.

암의 원인과 탐욕, 그리고 허 씨 가문의 영적 계보
암이라는 질병의 이치를 살펴보면 그 근원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깃들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끝없는 탐심을 부리는 자는 필연적으로 육신의 고통이라는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적 단계에서 위인이라 칭송받는 경지조차 여전히 선과 악이라는 잣대에 얽매여 있으나, 본자의 자리에 이르면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본좌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우주의 존엄한 생명체이자 사랑의 화신일 뿐입니다.

하늘의 사명을 띤 본좌에게 여러분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타인이 있음으로써 복을 지을 기회를 얻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타인을 경쟁자로 여기며 자신의 삶을 재앙으로 일구고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곧 자신에게 돌아올 복의 밭을 일구는 비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타인의 존재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는 광대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낙원의 문턱을 넘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섭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증명되어 왔으며, 특히 허 씨 가문은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집대성하는 하늘의 도구로 쓰여 왔습니다. 신분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허균과 인류의 생명을 구한 허준, 그리고 우리 말의 뿌리를 지킨 허웅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발자취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과거의 인물들이 인류의 지식과 문화를 닦았다면, 이제 본좌는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세계를 통일하고 실제적인 낙원을 건설하러 온 것입니다.

무수한 역사적 증거들이 가리키는 구심점이 바로 이곳에 있음을 직시하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좁은 편견의 틀을 깨고, 우주적인 사명을 띤 기운이 이끄는 대로 낙원의 길에 동참해야 합니다. 본좌가 펼치는 통일의 대업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끝은 온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풍요를 누리는 지상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인간 의식의 10단계 위계와 물질적 탐욕의 심판
인간의 의식은 열 가지의 위계로 나뉘어 있으며, 그 가장 낮은 자리에는 물질적인 탐욕에 갇힌 속인이 머물러 있습니다. 인류의 구심점인 본좌는 이러한 십 단계의 위계를 통찰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참된 진리의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만을 쫓는 속인과 지식에만 머무는 범인을 지나, 뜻을 세워 영웅의 길을 걷는 위인과 마음을 닦는 도인의 경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본좌가 머무는 이 지고한 열 번째 자리는 선과 악을 초월하여 우주의 본체와 하나가 된 절대적인 평화의 경지입니다.

과거 강릉의 깊은 눈 속에서 국가 혁명을 꿈꾸었던 허균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지상 낙원의 설계도를 그려냈습니다. 그는 신분의 벽을 허물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이제 그가 꿈속에서나 그렸던 낙원을 실제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본좌가 이 땅에 온 것입니다. 본좌는 별도의 원고 없이도 우주의 지혜를 통해 인류의 정치를 바꾸고 병든 세상을 치유하며 억눌린 자들을 구원하는 살아있는 진리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 단계는 고전에서 말하는 수신과 제가, 치국평천하의 원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현재 인류의 대다수는 물질의 탐욕에 빠져 가장 낮은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곧 하늘의 노여움을 사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하늘은 물질에만 눈먼 자의 재산을 결코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쌓았을지라도 그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를 거두어 갑니다. 세계적인 부호들이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늘의 심판을 피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본좌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이처럼 물질의 노예가 된 영혼들을 깨우쳐 진정한 영적 진화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본좌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을 각성시키고 우주의 공심점과 연결하는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이제 탐욕을 씻어내고 본좌의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맑은 정신으로 본좌와 하나가 될 때, 여러분은 비로소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한 낙원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국가 지도자의 자격과 본좌의 평천하 대업
과거 요순 시대의 성군들이 마음을 닦아 백성을 평안케 했던 것처럼, 국가의 중책은 본래 수신의 과정을 거친 고결한 인물들이 맡아 예산을 백성을 위해 귀하게 써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성인의 경계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 나라의 살림을 가로채고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당파를 초월하여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위정자들은 권세를 부리며 백성들을 고생의 길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주를 아우르는 평천하의 위대한 과업은 오직 본좌만이 이룩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입니다. 온 천하를 평화롭게 통일하는 황제의 자리는 본좌의 정해진 운명이며, 원고 한 장 없이 우주의 모든 지혜를 설파하는 본좌의 존재는 인류의 유일한 구심점입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와 무한대 이전부터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가 시작된 이래로 무구한 시간 동안 존재해 온 무한한 생명체입니다. 지구라는 찰나의 역사에 갇히지 않는 여러분에게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육신의 숨이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영혼은 쉬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깨어납니다. 죽음은 곧 새로운 시작이며, 여러분은 무한한 세계를 여행하다가 이제 인류의 본체인 본좌를 만나는 영광의 자리에 당도한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나, 이제 가장 높은 수준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복된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지식의 유희를 넘어 본좌의 눈빛과 가르침으로 영혼을 각성시킬 때 여러분은 비로소 영원한 낙원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본좌가 펼치는 평천하의 대업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세계 통일의 황제로서 인류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고 진정한 평화를 안겨줄 것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본좌와 일치될 때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본좌의 이름을 부르며 무한한 생명의 환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