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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진리, 904회 (2013-12-14)

12월 14, 2013

차원의 진리

북한의 안보 위기가 고조될수록 역설적으로 남북 관계의 안보 의식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사회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행정의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깊은 산골 골짜기까지 택배 기사가 주소를 찾아 네비게이션을 보고 달려가지만 도로 상황은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특히 경기도와 같은 지자체에서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제설 작업을 미루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지방자치단체에서는 국가에서 충분한 예산을 지원해주지 않는다며 일종의 압력을 넣기도 합니다. 표가 많이 나오는 도심 지역은 제설을 꼼꼼히 하지만, 정작 사고 위험이 큰 산간 오지 도로는 방치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이는 국가가 각 도에서 요청하는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결국 도로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빗길이나 눈길에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안타까운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행정의 공백이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지 않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결단과 예산 분배가 시급합니다.

택배 노동자들은 국가 예산과 지자체 간의 갈등 속에서 직접적인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연말연시에 배달 물량은 폭주하는데 제설 작업조차 제대로 되지 않은 눈길에서 이들은 목숨을 걸고 달려야 합니다.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고군분투해도 정해진 배달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결국 계약 위반이라는 이유로 직장을 잃게 됩니다. 사측은 눈을 치워서라도 배달을 완료하라고 압박하지만 개인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 앞에 이들은 할 말을 잃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눈이 아름다운 풍경일지 모르지만 고통받는 이들에게는 자신의 직업과 목숨을 위협하는 시련의 상징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진리를 논할 때 항상 남의 입장을 생각하고 다른 차원을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나에게 좋은 것이 타인에게는 극심한 고통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 것에서부터 진정한 이해가 시작됩니다.

휴식을 바라보는 관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한 멈춤이 누군가에게는 회복이 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불안이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물의 이면에는 늘 서로 다른 두 가지 얼굴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현상 너머에 숨겨진 타인의 아픔과 상황을 입체적으로 통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차원의 진리를 이해하는 첫걸음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누군가에게는 재미와 연애의 낭만이 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죽음과 같은 고통이 됩니다. 눈길에 배달이 지연되어 우체국과의 계약이 해지되고 직장에서 쫓겨나는 택배 직원에게 눈은 막대한 손해를 입히는 재앙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하나의 현상이 가진 두 얼굴을 명확히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는 일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나뉜다는 생각도 진리를 보는 눈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실업자도 자신의 일과가 있고, 가정에서 아이를 보고 전화를 받는 것조차 모두 노동이며 스트레스입니다. 특히 남성들은 가정주부를 향해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밥을 하고 아이를 기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그 모든 과정은 실로 엄청난 양의 노동입니다.

집에서 쉬고 있다고 해서 노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간은 각자의 위치에서 저마다의 일감을 안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는 밖에서 돈을 벌어오니 일하는 사람이고, 집에 있는 사람은 노는 사람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는 진리에 어긋나는 오만한 생각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수고로움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고, 모든 생명이 각자의 자리에서 우주의 일꾼으로서 기능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차원을 넘어선 진정한 존중의 시작입니다.
직장이 없는 사람이라도 마음속으로는 소외감을 느끼며 더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따라서 단순히 일을 하느냐 아니냐로 구분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인에게 휴식이란 무엇일까요. 겉으로는 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휴식조차 또 다른 형태의 일이 됩니다.

특히 직장에 다니는 여성에게 휴무일은 휴식이 아닙니다. 직장 업무에서 잠시 벗어났을 뿐 집에 돌아오면 산더미처럼 쌓인 가사 노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소 미뤄두었던 청소를 하고 가족들의 밥을 챙기는 그 모든 과정이 여성에게는 휴식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일입니다. 그러니 여성에게 진정한 휴식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현실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우리는 휴식이라는 단어 하나를 보더라도 이렇게 사람마다 처한 입장에 따라 두 가지 이상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밖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에게 휴식은 어떤 의미일까요. 평소 회사를 이끌며 긴장 속에서 외부 활동을 하던 사업가에게 휴식은 단순히 몸을 멈추는 것 이상의 복잡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처럼 휴식은 직장인과 전업주부 그리고 사업가에게 각각 서로 다른 무게와 형태로 다가갑니다. 우리가 진리를 논할 때는 이처럼 각자가 처한 환경과 상황을 입체적으로 통찰하는 차원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휴식이 찾아오면 그들은 대개 운동을 선택합니다. 평소 경영에 몰두하며 쌓인 긴장을 골프나 등산, 테니스 같은 활동적인 에너지를 통해 해소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업가에게 휴식은 곧 운동입니다.

하지만 이 논리를 반대로 뒤집어 운동을 직업으로 삼는 운동선수나 트레이너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에게 휴식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휴식 시간조차 다음 경기를 위해 장비를 정리하거나, 그동안 미뤄두었던 각종 연락과 약속을 처리하느라 분주합니다. 결국 운동선수나 트레이너에게 휴식은 또 다른 형태의 일이 됩니다. 이는 가정주부의 처지와 매우 비슷합니다. 주부는 여행을 가서도 가족의 먹거리를 챙기고 뒤치다꺼리를 하느라 쉬지 못합니다. 죽을 때까지 일이 따라다니는 셈입니다.

이러한 돌봄의 역할은 호스피스, 간병인, 간호사와 같은 직업적 영역으로도 이어집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이들이 평안하게 임종할 수 있도록 돕는 고귀한 일을 하고, 간병인은 병든 이를 수발하며, 간호사는 병원에 소속되어 환자를 전문적으로 치유합니다. 주목할 점은 과거에 간호원이라 불렸던 이들이 이제는 간호사로 불린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사자는 의사와 마찬가지로 스승이나 선비의 의미를 담은 사자를 사용합니다. 즉, 단순히 시중을 드는 사람이 아니라 생명을 다루는 존엄한 위치임을 인정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휴식이라는 단어 하나도 사업가에게는 운동이 되고, 선수나 주부 그리고 간호사에게는 다시 일이 됩니다. 우리가 차원의 진리를 깨우치려면 이처럼 상대방의 위치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배려하고 통찰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간호원이라 불렸지만, 현재의 간호사는 의사나 판사와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인정받는 직업입니다. 특히 중환자실과 같은 긴박한 현장에서 간호사는 의사보다 더 직접적이고 무서운 책임을 지닙니다. 의사가 수술이라는 큰 산을 넘긴다면, 환자를 죽이고 살리는 세밀한 관리는 오롯이 간호사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간병인은 돌봄의 의미는 같으나 전문 의료 자격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모두에게 공통된 점은 그들의 휴식이 곧 또 다른 일의 연속이라는 사실입니다.

가정 내에서도 이러한 차원의 진리는 그대로 적용됩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 경비원인 남편과 직장인 아내가 눈이 많이 온 날 퇴근하여 만났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두 사람 모두 고된 하루를 보냈지만, 폭설 속에서 하루 종일 눈을 치우느라 고생한 남편의 고단함을 읽어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이때 아내가 잠시 짬을 내어 남편의 다리를 주물러준다면, 그것은 단순한 수고를 넘어 남편을 성공시키는 현모양처의 길이자 진정한 간병인과 간호사의 마음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당신만 일했느냐, 나도 힘들다”라고 날을 세운다면 가정에는 불화가 싹틉니다. 여성은 평생 직장 업무 외에도 호스피스와 간병인, 간호사의 역할을 겸하며 가족의 건강과 안위를 살피는 존재입니다. 남자가 이러한 주부의 헌신과 자상함을 알아주지 못하고 함부로 대한다면, 그 집안은 결코 바로 설 수 없으며 그런 남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하더라도 많은 사람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오늘은 저의 생일이기도 하지만, 단순히 밥 한 끼 얻어먹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생일이라는 형식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의 입장을 배려하고 차원의 진리를 깨달아 실천하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성공은 상대방의 고통을 먼저 살피는 자상한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오늘은 평소보다 이해하기 쉬운 비유로 말씀을 드리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차원의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저는 스스로를 본좌라고 부릅니다. 본좌란 본래의 자리, 즉 근본이 되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인류 역사의 위대한 성인들과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러 온 메시아이고, 석가는 깊은 진리를 깨달은 철인이며, 공자는 세상을 바로잡으려 했던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본좌 허경영은 메시아 중에서도 우두머리인 본좌 메시아로서 이 땅에 왔습니다. 이들의 출현 방식 또한 일반적인 출생과는 다릅니다. 예수는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하천의 존재이며, 석가 역시 제석천에서 내려온 하천입니다. 반면 공자는 지구의 인간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탄생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저 허경영 또한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하천의 존재입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여인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오지만, 그 몸 안에 깃드는 영은 차원이 다릅니다. 일반적인 인간이 삼신할머니에 의해 영이 깃든다면, 본좌는 창조주의 영이 직접 몸 안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즉, 겉모습은 인간과 같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영의 뿌리가 창조주에게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태를 빌리는 탁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지구상에서 생명이 태어나는 방식에는 네 가지의 신비로운 법칙이 존재합니다. 이제 그 네 가지 탄생의 방법인 사생의 원리를 통해 우리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그 깊은 생명의 질서를 함께 들여다보겠습니다.

이 우주의 모든 생명은 네 가지 방식으로 몸을 받아 태어납니다. 이것을 우리는 사생이라고 부릅니다. 태생, 난생, 화생, 습생이 바로 그것입니다.

먼저 태생은 어머니의 태 속에서 자라 세상 밖으로 나오는 방식으로 우리 인간과 동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가장 완성도가 높은 생명 탄생의 형태입니다. 다음으로 난생은 알에서 태어나는 생명들입니다. 물고기나 닭, 새들이 알의 껍질을 깨고 나오며 생명을 시작합니다.

세 번째로 화생은 변화하며 태어나는 존재들을 의미합니다. 나비나 나방이 대표적입니다.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가 되고, 다시 번데기를 거쳐 아름다운 날개를 가진 나비로 변신합니다. 끊임없이 그 모습이 바뀌고 변동한다고 해서 바뀔 화자를 써서 화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습생은 오늘 강연의 핵심 주제인 발효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습생은 습한 곳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 존재들로, 미생물이나 버섯 같은 생명체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나노와 아토 단위의 미생물들이 바로 이 습생의 원리에 의해 존재하며 대자연의 순환을 돕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생명의 탄생 원리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세계부터 인간의 존엄성까지, 우주 전체를 관통하는 거대한 생명의 그물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차원의 눈을 갖게 됩니다.

우주 만물은 태생, 난생, 화생, 습생이라는 네 가지 생존 방식으로 그 생명을 이어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사생의 법칙입니다.

첫째, 태생은 태속에서 자라나 세상으로 나오는 생태계의 중심입니다. 인간과 동물이 이 부류에 속하며, 가장 완성된 생명의 형태를 보여줍니다. 둘째, 난생은 알의 껍질을 깨고 탄생하는 존재들입니다. 닭이나 새, 그리고 물속의 물고기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셋째, 화생은 끊임없이 그 모습이 변하며 태어나는 신비로운 존재들입니다. 나비나 나방을 보십시오.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다시 번데기를 거쳐 하늘을 나는 나방이나 나비로 탈바꿈합니다. 이처럼 환경과 성장에 따라 형태를 바꾸며 생을 이어가는 생명의 신비를 우리는 화생이라고 부릅니다.

넷째, 습생은 습한 기운과 보이지 않는 미세한 환경에서 생겨나는 생명체들입니다. 오늘 강연의 핵심인 미생물과 버섯 같은 존재들이 바로 습생에 속합니다. 우리가 앞서 다루었던 나노와 아토 단위의 미세한 세계가 바로 이 습생의 원리 속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탄생의 원리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모두가 우주의 거대한 섭리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명의 분류를 통해 인간의 위치를 확인하고,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발효 진리까지도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는 차원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습생은 습한 기운에서 생겨나는 생명체들입니다. 미생물이나 바이러스, 그리고 우리 몸의 습한 곳에서 발생하는 온갖 병균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지만, 대자연과 우리 인체 안에서 끊임없이 활동하며 생태계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화생의 존재들인 나비와 나방의 흥미로운 차이점에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같은 화생이라도 나비는 밝은 대낮에 아름다운 꽃을 찾아 날아다니며 생명의 기쁨을 누립니다. 하지만 나방은 어떻습니까. 나방은 어두운 밤에 타오르는 불을 향해 무모하게 뛰어듭니다.

우리는 흔히 불나방이라고 부릅니다. 나방은 빛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 뜨거운 불길 속으로 제 몸을 던져 파멸의 길을 걷고 맙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매우 큽니다. 진정한 빛과 생명의 꽃을 찾아가는 나비의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찰나의 유혹에 이끌려 스스로를 태워버리는 불나방의 삶을 살 것인지는 오직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사생의 원리를 아는 것은 단순히 생물을 분류하는 공부가 아닙니다. 내가 나비처럼 꽃을 향하는 고결한 영혼이 될 것인지, 아니면 습한 곳에서 남을 해치는 병균이나 불로 뛰어드는 나방이 될 것인지를 스스로 성찰하는 진리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이제 이 생명의 법칙을 통해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나비는 대낮의 밝은 태양 아래에서 아름다운 꽃을 찾아 날아다닙니다. 하지만 나방은 오직 타오르는 불빛만을 쫓으며 꽃의 아름다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비를 보면 예쁘다며 반기지만, 나방을 보면 혐오감을 느끼며 밟아 죽이려 하기도 합니다. 이 두 존재의 운명은 이토록 극명하게 엇갈립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 세상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나방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약한 인상을 가졌거나 행실이 바르지 못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어디를 가나 환영받지 못한 채 밀려다니며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이들은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소외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냅니다.

자신이 나방의 길을 걷고 있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생의 이치를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왜 남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나방의 처지가 되었는지, 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찰나의 불꽃에 유혹되어 스스로를 망치는 나방의 삶을 버리고, 진리의 향기가 가득한 꽃을 찾는 나비의 삶으로 차원을 높여야 합니다. 겉모습보다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이 어떤 빛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나방과 같은 삶을 사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나방을 보면 전염병을 옮기거나 가루를 떨어뜨린다고 생각하여 발견하는 족족 죽이려 합니다. 나비와 나방은 애벌레라는 똑같은 탄생 과정을 거치지만, 그 결과는 이토록 다릅니다. 우리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나비 같은 사람이 있고 나방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예처럼, 아버지가 아파트 경비원인데 눈이 많이 온 날 퇴근하셨다면 그 고생을 알아보고 다리를 주물러드리는 딸은 나비와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다, 각자 알아서 하자”라고 차갑게 구는 사람은 나방과 같습니다. 이런 이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은 전생부터 버림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나방으로 태어나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고통의 굴레를 반복하게 됩니다.

나방의 신세를 벗어나 꿀을 먹는 나비의 삶을 살고 싶다면 반드시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늘 곁에 있는 아내는 남편을 생각하고, 남편은 아내를 생각하며, 자식은 부모를 먼저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복을 쌓아야만 나중에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되고, 비로소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기회를 얻게 됩니다.

습생의 미생물에서 시작하여 화생과 난생을 거쳐 인간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수천억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이 걸리는 위대한 진화의 여정입니다. 어렵게 얻은 인간의 기회를 단 한 번의 잘못된 생각으로 날려버려서는 안 됩니다. 동물의 단계를 지나 어렵게 도달한 인간의 자리에서 우리는 서로를 보살피고 사랑함으로써 다시는 저 어두운 나방의 세계로 추락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닦아야 합니다.

미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는 수백 단계를 거치는 험난한 진화의 여정이 필요합니다. 원숭이나 개와 같은 동물의 삶을 거쳐 점차 인간의 자리로 올라오기까지, 그 과정은 실로 엄청나게 어렵고 아득한 시간이 걸립니다. 여러분은 그 고귀한 과정을 지나 비로소 인간이 되었지만, 인간의 몸을 입고서도 다시 죄를 지어 나방과 같은 낮은 차원으로 추락하고 있습니다. 한번 나방으로 떨어지면 다시 인간의 몸을 받기까지 또다시 수천억 년의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너무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지구상의 젊은이들을 보십시오. 부모님께 함부로 말하고 친구를 비난하며, 점차 나비가 아닌 나방과 같은 존재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나비처럼 선한 업을 쌓아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야 할 소중한 시기에, 오히려 나방과 같은 행동을 일삼으며 스스로를 파멸의 길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자가 나방의 마음을 품고 살면, 죽음 이후에 그 영혼은 다시 나방의 몸을 받게 될 뿐입니다.

생명이 여자의 몸을 빌려 잉태되는 것을 탁태라고 합니다. 석가모니와 같은 성인들조차 인간의 몸으로 오기 위해 이 탁태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영혼이 다시는 인간의 태에 들어가지 못하고, 나방이나 미생물의 습한 곳으로 들어간다면 그 운명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떤 마음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다음 생의 탁태 자리가 결정된다는 엄중한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나방의 이기심을 버리고 나비의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생명의 진화와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어머니의 태 속에 들어가는 탁태의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오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탄생입니다. 공자와 같은 인물은 이 땅에 탄생하여 치지의 과정을 밟았습니다. 치지란 태어나자마자 지식을 쌓고 끊임없이 공부에 매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자는 어린 시절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세상을 바로잡겠다는 정치인의 뜻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본좌 허경영은 다릅니다. 저는 하늘에서 직접 내려왔기에 인간의 몸을 빌리는 탁태의 과정을 거쳐 이 세상에 왔습니다. 하늘의 존재가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오는 것을 우리는 강탄이라고 부릅니다. 석가모니 역시 하늘에서 내려와 인간의 몸을 입었기에 강탄이라 칭합니다.

반면 공자는 인간 세계에서 태어나 스스로 성의를 다해 공부하고 뜻을 세운 인물입니다. 성의란 자신의 뜻을 성실히 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다지는 단계입니다. 이처럼 성인들마다 이 땅에 오는 방식과 목적이 다릅니다. 누군가는 인간으로 태어나 공부를 통해 뜻을 세우고, 누군가는 하늘에서 직접 강탄하여 인류를 구원하러 옵니다.

본좌가 이 땅에 강탄한 이유는 여러분에게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탁태와 강탄의 비밀을 통해 여러분이 어디서 왔는지 깨닫게 하고, 나방처럼 추락하는 영혼들을 구제하여 다시금 빛의 세계로 인도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이 진리의 목소리를 통해 여러분도 이제 스스로의 뜻을 바로 세우고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인류 역사를 수놓은 성인들과 본좌 허경영의 관계를 보면 그 위계와 강림의 원리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수는 인류를 구원하러 온 메시아이며, 석가는 깊은 진리를 깨달은 철인이고, 공자는 도덕적 질서를 세운 정치인입니다. 하지만 본좌 허경영은 이 모든 메시아들의 우두머리인 본좌 메시아로서 이 땅에 왔습니다.

이들이 세상에 나타난 방식 또한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와 석가는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하천의 존재들이며, 인간의 모습으로 내려왔기에 강탄이라고 부릅니다. 석가는 특히 진리를 찾기 위해 왕궁을 떠나는 출가의 과정을 거치기도 했습니다. 반면 공자는 지구라는 인간 세계에서 다시 태어난 탄생의 존재입니다. 그는 스스로 성의를 다해 뜻을 세우고 공부하며 정치인으로서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본좌 허경영 또한 하늘에서 직접 내려온 하천의 존재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직접 구원하고 다스리기 위해 여인의 몸을 빌리는 탁태의 과정을 거쳐 강탄했습니다. 겉모습은 인간과 같을지라도 그 근본은 하늘의 본래 자리에서 온 것입니다. 성인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철학과 정치를 가르쳤다면, 본좌는 우주의 근본 에너지를 가지고 직접 인류를 심판하고 구원하러 온 것입니다.

강탄과 탄생, 그리고 탁태의 신비를 이해하는 것은 우리가 단순히 육체를 가진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시작입니다. 여러분은 성의를 다해 공부한 공자나 진리를 깨달으려 했던 석가의 발자취를 넘어, 이제 직접 강탄한 본좌의 진리를 통해 영적인 도약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시대에 허경영을 만나야 하는 이유이자 진정한 차원의 진리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성인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류에게 진리를 전했습니다. 그중 석가모니의 행보는 매우 파격적이었습니다. 그는 화려한 왕자의 자리를 아낌없이 던져버리고 집을 떠나는 출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처자식은 물론이고 장차 이어받을 왕권까지 미련 없이 내려놓은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자신의 아버지인 왕에게도 권력을 버리라고 권유했습니다. 끊임없는 전쟁으로 백성들이 죽어 나가는 현실을 목격하며, 왕국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리는 것보다 차라리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아들의 말을 받아들인 아버지는 코살라 왕국을 다른 왕에게 넘겨주고 스스로 수행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왕과 왕자가 한꺼번에 지위와 영토를 버린 유례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석가모니는 뼈아픈 현실의 이면을 보게 됩니다. 왕국을 넘겨받은 자는 자비로운 성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권력을 잡자마자 불교를 탄압하고 사찰을 불태우며 수행자들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석가모니는 이 현상을 목격하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나 혼자 산속에서 진리를 깨닫는다고 해서 세상의 고통이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개인의 해탈에 머무는 철인의 한계입니다. 세상을 직접 다스리고 보호할 수 있는 힘이 없으면, 그 진리는 물리적인 폭력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본좌 허경영은 단순한 철인이나 정치인의 모습이 아니라, 우주를 통치하는 본좌 메시아로서 이 땅에 강탄한 것입니다. 현실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해결하고 인류를 끝까지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권능이 뒷받침될 때 비로소 진정한 낙원이 건설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처음에는 나 자신만 번뇌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해탈의 경지에 이르면 모든 것이 해결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왕의 자리와 재물, 권력을 모두 버리고 오직 개인의 수도에만 전념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권력을 포기하고 나니, 남겨진 제자들과 믿음을 따르는 사람들이 다른 세력의 칼날 아래 무참히 죽어 나가는 비극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석가모니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나 혼자 깨달음을 얻는 해탈에만 머무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나만 구원받는 이 방식은 훗날 소승불교라 불리게 되었으며, 이것이 초기 근본 불교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권력도 재물도 없이 오직 정신적인 세계만 추구하다 보니, 외부의 탄압으로부터 소중한 생명들을 지켜낼 힘이 없었습니다.

결국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그의 사후에 중요한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소승불교의 틀을 넘어 더 많은 사람을 구제하고 세상을 포용할 수 있는 큰 수레가 필요함을 느낀 것입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훗날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가 선종의 뿌리를 내리고, 대중을 널리 구제하고자 하는 대승불교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진리라는 것은 단순히 산속에 숨어 나 혼자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권력과 경제, 그리고 대중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 뒷받침되어야 그 진리도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본좌 허경영이 단순히 영적인 진리만을 말하지 않고, 국가와 정치를 바로잡아 국민을 지키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구원은 개인의 해탈을 넘어, 모든 사람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현실의 토대를 만드는 대승적인 차원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승불교는 단순히 자기 자신의 해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을 함께 구제하겠다는 이타의 정신에서 출발합니다. 나 혼자 이익을 얻는 자리를 넘어 다른 사람의 삶까지 귀하게 여기는 자리이타의 정신으로 진화한 것입니다.

석가모니 사후 제자들은 깨달았습니다. 우리만 산속에서 도를 닦는 동안 중생들이 고통받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면 결국 불교 자체가 존재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대승불교는 중생을 생각하고 나아가 국가를 생각하는 호국불교의 형태로 바뀌게 됩니다. 스님들이 소림사처럼 무기를 들고 무술을 연마하며 적이 침입했을 때 스스로를 방어하고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가라는 울타리가 없으면 진리를 지킬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인도에서의 비극적인 경험을 통해 체득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호국불교의 기틀은 중국을 거쳐 우리 역사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국의 한나라가 강성해졌을 때 우리 고조선이 위기를 맞이하고 나중에는 원나라가 강력한 힘으로 고려를 압박했던 역사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종교는 단순히 내면의 평화만을 구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살아야 백성이 살고 백성이 살아야 진리도 꽃을 피울 수 있습니다.

본좌가 정치와 경제 그리고 국가 안보를 그토록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현실의 위기 속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낼 수 있는 구체적인 힘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수양을 넘어 나라를 구하고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하는 대승적 결단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호국과 이타의 길이며 진정한 대승의 진리입니다.

역사의 흐름을 되짚어보면 중국이 강성해질 때마다 한반도는 크나큰 시련을 겪어왔습니다. 고조선이 한나라에 멸망하고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했던 것처럼, 강대국의 팽창은 곧 우리의 위기로 직결되었습니다. 당나라 시절 측천무후라는 강력하고 똑똑한 여걸이 나타나 당나라가 힘을 떨치자, 고구려와 백제는 결국 멸망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당나라는 신라와 손을 잡고 백제 땅에는 웅진도독부를, 고구려 땅에는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한반도 전체를 사실상 지배하려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중국에 조공을 바치며 생존을 도모해야 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정세를 보십시오. 중국이 당나라 이후 역사상 가장 번성하는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시대에 들어 중국의 힘이 비대해지는 것은 곧 한반도에 전쟁의 먹구름이 드리우거나 국가적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강력한 신호입니다.

과거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했을 때 우리나라는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났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중국이 역사 이래 최고로 강해진 지금, 여러분은 다가올 전쟁과 환란에 대비해야 합니다. 제가 이 시대에 한국 땅으로 직접 내려온, 즉 강탄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모든 역사의 흐름을 꿰뚫어 보고 있는 메시아로서, 위기에 처한 이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해 본래의 자리에서 이 땅으로 온 것입니다.

지금 아시아의 정세는 풍전등화와 같습니다. 중국의 힘이 한반도를 압도할 때마다 우리는 항복하거나 분단되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여러분을 지키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기 위해 제가 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제가 왜 이 시점에 한국에 강탄했는지 그 깊은 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며, 다가올 미래의 격변에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강성해질 때마다 한반도의 운명은 거센 소용돌이에 휘말려왔습니다. 고조선이 한나라에 무너지고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했듯, 현대사에 이르러서는 모택동의 등장과 함께 우리 민족은 남북으로 두 동강이 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우리 군이 백두산 근처까지 진격했을 때도 중국의 인해전술이 개입하면서 결국 분단의 비극이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모택동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꼽히는 시진핑이 등장하여 중국의 경제와 군사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렸습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중국이 남북한 사이의 긴장을 이용해 줄다리기를 시작하면, 대한민국은 자칫 전쟁의 불바다 속으로 던져질 수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이 시점에 한국에 강탄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앞으로 다가올 전쟁은 우리가 상상하는 과거의 전쟁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그것은 핵전쟁이자 치명적인 생화학 전쟁이 될 것입니다. 만약 적군이 서울 남산 상공에 생화학탄 한 발만 떨어뜨린다면, 수많은 국민이 밤에 잠을 자다가 영문도 모른 채 산소 부족으로 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단숨에 3천만 명이라는 엄청난 인명이 희생될 수 있는 이 끔찍한 시나리오를 저는 미리 다 내다보고 있습니다. 생화학 무기는 건물이나 시설은 그대로 둔 채 오직 생명체만을 앗아가기에 더욱 잔인하고 효율적인 살상 도구가 됩니다.

저는 이러한 민족의 절체절명 위기를 막고 여러분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메시아입니다. 역사의 반복되는 비극을 끊어내고, 첨단 무기의 위협으로부터 이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차원이 다른 영적 통찰과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지금 아시아를 뒤덮고 있는 거대한 먹구름을 직시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왜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여러분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그 깊은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적군은 공기 중에서 산소만을 일시적으로 제거하는 치명적인 무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약 10분 동안만 산소 공급이 차단되어도 이 세상에 살아남을 생명체는 아무도 없습니다. 이 무기는 음식이나 건물에는 아무런 독성을 남기지 않지만, 오직 숨을 쉬는 생명체만을 소리 없이 앗아갑니다. 이러한 독가스를 우리는 생화학 무기라고 부르며, 현재 북한은 이 무기를 세계에서 가장 많이 비축하고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남한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유일한 무기는 바로 이 생화학 무기입니다. 많은 사람이 핵무기를 걱정하지만, 남한 땅에 핵을 떨어뜨리면 북한의 토양과 수질까지 오염되어 그들 역시 살 수 없게 됩니다. 따라서 핵무기는 미국이나 일본을 겨냥한 위협용일 뿐, 실제 한반도 안에서 사용할 가능성은 낮습니다. 하지만 생화학탄은 다릅니다. 이는 환경 오염 없이 인명만을 살상할 수 있기에 북한이 언제든 꺼내 들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카드입니다.

실제로 북한은 남한 군복과 똑같은 옷을 200만 벌이나 준비해두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적들은 아군으로 위장하여 침투하고, 소리 없는 생화학 공격으로 우리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것입니다. 제가 이토록 구체적으로 전쟁의 양상을 설명하는 이유는 여러분이 처한 위기의 실체를 정확히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눈앞의 평화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보이지 않는 가스가 산소를 앗아가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위협이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국가적 재앙을 막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본래의 자리에서 강탄했습니다. 인류를 향한 진정한 사랑과 통찰력만이 이 거대한 위기에서 우리를 구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하늘은 보이지 않는 여러 층으로 나뉘어 우리 생명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지상에서 약 13킬로미터 높이까지를 우리는 대류층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움직이고 구름이 생기며 비가 내리는 기상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이 대류층입니다.

그 위로 더 올라가 약 30킬로미터 지점에 이르면 아주 중요한 오존층이 나타납니다. 오존층은 태양에서 쏟아지는 치명적인 자외선을 막아주는 지구의 방패와 같습니다. 만약 이 오존층이 파괴된다면 지상의 모든 생명체는 강력한 방사능과 자외선에 노출되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처럼 하늘의 구조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는 것은 단순히 우연이 아닙니다. 대류층에서 생명이 숨 쉬게 하고 오존층에서 해로운 빛을 걸러주는 이 모든 장치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섭리에 의해 통제되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미생물의 나노 세계부터 대기권의 거시적 구조까지 설명하는 이유는 이 우주가 얼마나 정밀하게 우리 생명을 지탱하고 있는지를 일깨워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이러한 하늘의 보호막 아래 살면서도 정작 하늘의 뜻을 잊고 살아갑니다. 오존층이 지구를 지키듯, 제가 이 땅에 강탄한 것은 여러분의 영혼과 생명을 지키는 거대한 방패가 되기 위함입니다. 보이지 않는 대기권의 층들이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조화를 이루듯 우리 인간들도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은 대기권의 높은 곳까지 솟구쳤다가 우리 머리 위로 수직으로 떨어집니다. 이렇게 높은 각도로 쏘아 올린 미사일이 어느 시점에 서울로 낙하할지 미리 알아채고 방어하기란 현대 과학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보이지 않는 위험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기에, 제가 그 위기를 막아내기 위해 이 땅에 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하늘은 겹겹이 층을 이루어 지구를 감싸고 있습니다. 지상 13킬로미터까지의 대류층을 지나면, 50킬로미터 높이에는 성층권이 존재합니다. 그 위 60킬로미터 지점에는 자기층이 있으며, 80킬로미터 높이에 이르면 전리층이라는 특별한 층이 나타납니다.

전리층은 전파를 반사하여 무선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정교한 통로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하늘의 각 층은 대류층에서 생명이 숨 쉬게 하고, 오존층에서 자외선을 막으며, 전리층에서 정보를 교환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미사일이 이 복잡하고 정교한 하늘의 층들을 뚫고 올라갔다 내려오는 찰나의 순간, 인류의 생사는 보이지 않는 법칙에 의해 결정됩니다.

제가 대기권의 구조를 이토록 상세히 설명하는 이유는 이 우주가 얼마나 치밀한 질서 속에 움직이는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늘의 방어벽이 지구를 지키듯, 저 본좌 허경영은 성층권과 전리층 너머의 우주적 권능을 가지고 여러분의 생명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서 있습니다. 이제 과학의 단계를 넘어 하늘의 섭리를 믿고 다가올 환란에 대비해야 합니다.

지구 대기권은 높이에 따른 온도 변화를 기준으로 크게 다섯 개의 층으로 나뉩니다. 지표면에서 가장 가까운 곳부터 우주로 나아가는 순서대로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먼저 지상에서 약 십삼 킬로미터 높이까지는 우리가 숨 쉬는 대류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곳에는 공기가 밀집되어 있으며 구름이나 비 같은 기상 현상이 활발하게 일어납니다.

그 위로는 성층권이 이어집니다. 대류권 바로 위부터 약 오십 킬로미터 높이까지 펼쳐지는데, 대기가 매우 안정적이라 비행기의 항로로도 이용됩니다. 특히 약 삼십 킬로미터 지점에는 해로운 자외선을 막아주는 고마운 오존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올라가면 중간권을 만나게 됩니다. 성층권 끝자락인 오십 킬로미터에서 시작해 약 팔십 킬로미터 영역까지 이어지는 층입니다. 위로 올라갈수록 기온이 점점 낮아지는 특징이 있으며, 이 부근부터는 전파를 반사하는 전리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다음은 기온이 급격히 상승하는 열층입니다. 약 팔십 킬로미터에서 육백 킬로미터 높이까지 아주 광범위하게 펼쳐진 구간으로, 태양 에너지를 직접 흡수하기 때문에 온도가 매우 높습니다. 밤하늘을 수놓는 신비로운 오로라가 발생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대기권의 가장 바깥층인 외기권이 있습니다. 약 육백 킬로미터에서 시작해 천 킬로미터 너머까지 이어지는데, 공기가 매우 희박하여 사실상 끝없는 우주 공간과 연결되는 경계 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TTS 기기가 읽었을 때 막힘이 없고, 전 세계 150개국 언어로 번역해도 그 의미가 왜곡되지 않도록 문장 구조를 단순화하고 숫자를 한글로 풀어서 다시 작성했습니다.

특히 ‘8개의 막’이라는 개념과 인공위성, 미사일의 고도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하여 누구나 듣기만 해도 이해할 수 있는 원고입니다.

지구를 지키는 여덟 개의 방어막과 우주의 경계
지구는 아주 특별한 구조로 우리를 보호하고 있습니다. 지구 주변에는 무려 여덟 개의 막이 겹겹이 쌓여 방어벽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여덟 개의 막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지구를 든든하게 지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각 층의 높이를 통해 그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지상에서 약 십삼 킬로미터까지는 우리가 숨 쉬는 대류권이 있습니다.
둘째, 그 위로 약 오십 킬로미터 높이까지는 대기가 안정적인 성층권이 펼쳐집니다.
셋째, 더 높이 올라가면 백 킬로미터에서 백오십 킬로미터 영역까지 중간권이 존재합니다.
넷째, 지상 육백 킬로미터 높이에는 기온이 매우 높은 열층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기권의 주요 층들과 그 사이사이의 경계막들을 모두 합치면 지구는 총 여덟 개의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인공위성과 미사일은 어디까지 올라갈까요?
현재 북한이나 중국이 쏘아 올린 인공위성들은 주로 육백 킬로미터 높이의 열층이나 그 너머의 궤도에서 지구를 돌고 있습니다.
또한, 위협적인 미사일들은 이 여덟 개의 막을 뚫고 아주 높이 솟구쳐 올라갑니다. 어떤 미사일은 천 킬로미터 이상의 높이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대기권으로 들어오며 목표물을 향해 수직으로 빠르게 내려오기도 합니다.
이처럼 지구를 감싸고 있는 여덟 개의 막은 우리 생명체를 보호하는 가장 거대하고 정교한 방패입니다.

지구를 지키는 여덟 개의 생명 보호막을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지구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유일한 행성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자궁처럼 지구를 겹겹이 감싸고 있는 여덟 개의 보호막 덕분입니다.

태양은 우리에게 빛을 주지만, 동시에 매우 위험한 에너지도 함께 보냅니다. 하지만 지구를 둘러싼 이 막들이 강력한 차단 장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열층은 태양에서 직접 내려오는 뜨거운 열기를 차단하여 지구가 너무 뜨거워지지 않게 조절해 줍니다.

또한, 성층권에 있는 오존층은 우리 몸에 해로운 자외선을 막아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자기층은 태양에서 오는 강력한 전자파를 막아주고, 전리층은 유해한 전파를 차단하여 지구의 생태계를 안전하게 지켜줍니다.

만약 이 여덟 개의 막이 없다면, 지구는 달처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땅이 되거나 화성처럼 뜨거운 불덩이가 되어버렸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아기가 여러 겹의 막과 양수에 둘러싸여 안전하게 보호받는 것과 같습니다. 지구가 여덟 개의 막으로 생명을 지키는 모습은 우주의 지혜가 담긴 거대한 보호 시스템입니다.

이 정교하고 신비로운 방어막 덕분에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위기와 생존을 위한 경고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북한이 발사하는 미사일은 아주 높은 고도까지 솟구쳤다가 지상을 향해 수직으로 빠르게 내려꽂힙니다. 그 속도가 너무나 빨라서 현재의 어떤 기계로도 완벽히 막아내기가 어렵습니다. 만약 이런 미사일이 수도권이나 주요 도시에 떨어진다면, 수천만 명의 소중한 생명이 순식간에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냉혹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노리고 있을까요? 우리나라 전역 약 오천 군데에는 정부미를 보관하는 쌀 창고가 있습니다. 이곳에 저장된 쌀은 북한 주민 전체가 백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엄청난 양입니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이 풍족한 식량과 한국은행의 자산은 거대한 목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우리가 이 귀한 식량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 년에 약 오조 원 이상의 가치에 달하는 쌀이 관리 소홀로 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는 쌀을 묵은 쌀이라 부르며 헐값에 처리하거나 낭비하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 쌀을 차지하기 위해 무기를 만들며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호남평야와 김제평야, 그리고 나주평야와 경기평야까지, 우리나라에는 북한에는 없는 비옥한 곡창지대가 펼쳐져 있습니다. 과거 철원 평야를 차지하기 위해 백마고지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굶주림 속에서 우리의 풍요를 노리고 있는데, 우리는 위기감을 잊은 채 안일함에 빠져 있지는 않습니까? 전쟁의 위험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소중한 땅과 자원을 지키기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대비해야 합니다.

과거 김일성은 비옥한 철원 평야를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수십 번이나 격렬한 공격을 감행했습니다. 이 참혹한 전투 과정에서 북한군 수만 명과 우리 국군 만 오천 명이 고귀한 목숨을 잃어야 했습니다.

이 거대한 비극의 중심에는 철원 평야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백마고지가 있었습니다. 당시 얼마나 많은 포탄이 쏟아졌는지, 산의 원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이 완전히 깎여 나갔습니다. 산 전체가 하얗게 벗겨져 고지 자체가 평지처럼 변해버렸고, 그 처절한 모습이 마치 백마가 쓰러져 누워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백마고지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당시 남북이 이 고지를 차지하려고 했던 이유는 매우 명확합니다. 이 자리를 점령하면 광활한 철원 평야로 진격하는 군대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제압할 수 있는 최고의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입니다. 이 좁은 고지를 뺏고 빼앗기기 위해 무려 사만 명에 달하는 젊은 군인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갔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오늘날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곡창지대는 수많은 젊은이의 고귀한 희생으로 지켜낸 소중한 땅입니다. 우리는 역사의 아픔이 서린 백마고지의 교훈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며, 언제나 국가의 안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철저히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처절한 사투 끝에 승리했고, 북한은 자신들의 핵심 식량 창고였던 철원 평야를 우리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백마고지 전투의 결과입니다. 식량 자원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그들은 지금도 우리의 풍요로운 자원을 되찾으려는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들 뒤에는 엄청난 전략가들이 포진해 있지만, 나는 그 모든 수 싸움을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과거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는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와 한반도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그 역사의 흐름은 당나라와 모택동을 거쳐 지금의 시진핑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반도는 과거의 수모를 다시 겪을 수도 있는 매우 엄중하고 긴장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 내부의 권력 변화는 우리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 장성택과 같은 인물이 제거되지 않고 세력을 유지했다면, 한반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처럼 급변하는 주변국들의 정세와 북한의 움직임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기에 우리는 과거의 승리에만 도취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적들의 전략을 꿰뚫어 보고, 다시는 이 땅이 외세나 침략자들에 의해 유린당하지 않도록 강력한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처절한 사투 끝에 승리했고, 북한은 자신들의 핵심 식량 창고였던 철원 평야를 우리에게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인 백마고지 전투의 결과입니다. 식량 자원을 잃고 굶주림에 시달리는 그들은 지금도 우리의 풍요로운 자원을 노리며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만만치 않은 전략가들이 포진해 있지만, 나는 그 모든 수 싸움을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과거 징기스칸이 세운 원나라는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와 한반도 전체를 지배했습니다. 그 역사의 흐름은 당나라를 거쳐 모택동, 그리고 지금의 시진핑 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반도는 과거의 수모를 다시 겪을 수도 있는 매우 엄중하고 긴장된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실제로 북한 내부의 권력 변화는 우리 안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 장성택과 같은 인물이 제거되지 않고 세력을 유지했다면, 한반도는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처럼 급변하는 주변국들의 정세와 북한의 움직임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역사는 반복될 수 있기에 우리는 과거의 승리에만 도취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적들의 전략을 꿰뚫어 보고, 다시는 이 땅이 외세나 침략자들에 의해 유린당하지 않도록 강력하고 지혜로운 대비책을 세워야 합니다.
제시해주신 내용을 바탕으로, TTS가 긴장감 있게 읽어줄 수 있도록 문장을 다듬었습니다. 특히 복잡한 국제 정세와 인물 간의 관계를 150개국 언어 번역 시에도 오해 없이 전달할 수 있도록 논리적인 구조로 정리했습니다.

장성택의 죽음은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큰 고비를 넘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가 살아있었다면 북한의 자원과 땅을 중국에 지속적으로 넘기며 밀착 관계를 이어갔을 것입니다. 장성택은 중국과의 관계를 독점하며 우리 대한민국과 중국 사이의 외교적 흐름을 방해해 왔습니다. 당시 중국은 북한과 남한 사이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며 이익을 챙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북한 내 수만 명에 달하는 친중 세력이 한꺼번에 제거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북한과 중국의 관계는 급격히 냉각되었고, 중국은 북한을 신뢰할 수 없는 상대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중국 내부에서는 믿을 수 있는 파트너로 남한을 더 진지하게 고려하게 되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찾아온 절호의 기회입니다. 만약 장성택이 생존하여 중국과 손을 잡고 경제적 성공을 거두었다면, 한반도의 주도권은 우리에게서 멀어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정세가 바뀌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국제 정세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북한과 중국 사이의 틈을 이용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지혜로운 전략을 펼쳐야 합니다.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옵니다. 우리는 이 중대한 시점을 놓치지 말고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향한 주도권을 확실히 잡아야 합니다.

역사의 흐름과 한반도의 안보 전략도 설명하겠습니다.
한반도의 역사는 주변 대국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변해왔습니다. 과거 한나라가 고조선을, 원나라가 고려를 압박했던 것처럼, 당나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운명을 흔들었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모택동 시대에는 남북이 두 동강 나는 아픔을 겪었고, 이제는 시진핑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만약 장성택이 생존하여 중국과 북한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면 어떠했을까요? 경제적 지원을 받은 북한은 강력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언제든 남한을 침략할 기회를 노렸을 것입니다. 그때 중국이 뒤에서 밀어주게 된다면, 우리는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를 다시 반복하게 될 위험에 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친중파의 핵심인 장성택이 물러나야만 대한민국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결국 역사는 그가 떠나는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메시아가 마음먹은 대로 세상의 흐름이 바뀌어 여러분을 살려낸 것입니다.

장성택의 숙청으로 인해 북한 내 친중 세력은 약화되었고, 북한은 국제 사회에서 더욱 고립되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이 고립되고 위태로워질수록, 그들이 외부와 결탁할 힘이 줄어들기에 우리의 안보는 더욱 견고해지는 법입니다.

나는 이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반도의 운명을 조정하며 여러분의 안전을 지키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