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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2월 11, 2026

와 같이 붓을 들었습니다. 저는 불교신자는 아닙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주장하는 윤회설이나 여러 불경에 내포되어 있는 사상(思想)들을 저는 솔직한 심정으로 수긍하며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역시 기독교나 불교나 그 기본적인 뿌리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수천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시대의 변천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늘날의 기독교나 불교도 변질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자기 종파(宗派)의 권력과 이익만을 위해 스스로의 교리(敎理)와 율법(律法)의 담을 높이 쌓고, 역시 그것들을 인간에게 강요함으로써 오히려 영혼들을 잘못 교화(敎化)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다시, 저의 본론으로 돌아가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가 오늘날까지 풀지 못한 문제 가운데 첫째는 인간은 어떠한 목적에서 세상에 태어나는가? 둘째는 어째서 악(객관적으로 보았을 때)이 선(객관적 견지에서)보다 더 성공하며 세력을 얻게 되는가? 셋째로 어째서 인간의 고귀한 영혼 속에 악령이나 동물령, 기타의 영혼들이 침식해 들어오는가? 인간의 영혼(개개인이 지니고 있는)들은 이들 악령이나 동물령들을 스스로 퇴치하거나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능력을 왜 상실했으며, 그처럼 인간의 영혼은 무능한가? 네째로 영(靈)과 혼(魂)은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혼의 세계를 심령과학에서는 유계(幽界)라고 말하는 것인지요?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가르치심 가운데 천국(天國), 낙원(樂園), 음부(陰府), 지옥(地獄) 등으로 표현되어 있는 영의 세계가 있는데, 심령과학을 연구하시는 선생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끝으로 《기적과 예언》에 쓰신 선생님의 종말론(終末論)에는 적극 공감(共感)합니다. 또한 말세(末世)에 적응하고 살아남을 인간들은 어떤 인간들이어야만 한다는 뜻도 충분히 이해하며 그런 사상을 지니신 선생님께도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 그러나 저는 심령과학은 종교적인 형태로 발전시켜서는 안되리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심령현상(心靈現象)을 연구하고 능력을 개발하는 단체들이 많이 생기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 역시 심령과학에 대해서 올바른 지도와 정진을 원하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선생님의 바른 지도와 조언(助言)이 있으시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을 직접 뵙고 싶습니다. 아무 때라도 찾아가면 뵐 수 있는지요? 제가 알기로는 체질개선 시술로 몹시 바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아무 때라도 시간을 낼 수가 있는 몸입니다. 그럼 선생님의 가르침을 기다리며 이만 붓을 놓겠습니다. 12월 22일 박 신일 올림

필자가 박신일씨가 보낸 서신을 공개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 편지 속에 쓰여진 몇 가지 의문들이 그동안 필자에게 보내온 많은 독자들이 갖고 있는 의문을 대표하고 있

다는 것과 둘째는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박신일씨의 영사(靈査)결과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박신일씨가 필자에게 던진 질문[그것은 많은 다른 독자들이 한결같이 느끼고 있는 의문일 것이다]에 대하여 하나하나 해명해 볼까 한다. 박신일씨가 던진 첫번째 질문은, 인간은 어떤 목적을 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소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한 번은 반드시 갖게 되는 의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필자 자신도 어린 시절, 박신일씨가 느꼈던 것과 똑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때의 이 질문은 그 자체가 미궁(迷宮) 속을 헤매는 것과 같은 결과 밖에 가져 오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뒤 여러가지 인생의 고경(苦境)을 당하고 마흔이 훨씬 넘은 후, 필자가 영능력자(내지는 영각자)가 된 뒤 어느 날 갑자기 깨닫게 되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었던 것도 또한 사실이었다. 이제까지의 모든 사람들은 인간을 육체로 보고 생각해 왔기에 얼른 해답이 나오지 않았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인간의 본질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오, 그 육체 속에 들어 있으면서 육체를 움직이고 있는 생명체(生命體)[그것을 예전 사람들은 영혼이라고 불렀으나 필자는 ‘전자파 에너지 생명체’라고 한다]가 본질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가 볼 때, 70을 살다가 늙어서 죽는 인간은 노인이지만, 그 영혼도 반드시 저마다 그 외모와 같이 원숙한 경지(境

地)에 이른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인류 역사를 볼때, 개인으로는 성인(聖人)의 경지에까지 도달한 분도 많았던 것이지만, 인류라는 전체를 놓고 볼 때 아직도 어린 생명, 길거리에서 욕망대로 뛰어노는 다섯살 먹은 어린이에 지나지 않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1천만년이나 또는 그 이상의 몇 억년이라는 긴 수명을 가진 에너지 생명체인 영혼이, 우리가 육체라고 부르는 껍질 속에 싸여 1만 2천년을 윤회해 보았자, 그들 영원을 사는 영혼으로서는 겨우 유치원 정도를 졸업한 단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이란 그 본질에 있어서, 영원을 사는 영혼인 ‘에너지 생명체’인 것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푸른 지구는 완성된 어른인 영체인간(靈體人間)들이 관리하고 있는 유치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심령과학에서 말하는 유계(幽界)다, 영계(靈界)다 하고 말하는 세계도 영체인간들이 그들의 자식인 어린 생명을 교육시키는 세계에 지나지 않으며, 역사상에 나타난 부처나 예수는 그런 완성된 영체인간의 세계에서 파견된 유치원 보모와 같은 선생이 아니었던가 생각된다. 영원(永遠)을 사는 ‘에너지 생명체’인 영체인간의 입장에서 볼때, 인간이 지닌 1만년 내외의 역사는 아무 것도 아닌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영생(永生)하는 ‘에너지 생명체’는 그 어린 시절이 아주 길게 마련이어서, 이 우주의 법칙을 완전히 깨닫게 되기까지는 한없이 반복적으로 태어날 필요가 있고, 유계나 영계를 관장하는 그들 어른들의 관리 아래 놓여 있는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우주복을 입지 않고서는 우리가 달나라에서 잠시도 살 수

없듯이 ‘에너지 생명체’인 영혼도 육체의 도움없이는 물질세계에서 많은 경험을 쌓을 수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인간의 육체는 어느 때인지 모를 아득한 옛날, 누군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또한 분명한 사실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체질개선을 해 주는 과정에서 필자는, 인간의 육체가 정밀하기 이를데 없는 하나의 생화학적(生化學的)인 인조인간[여기서 인조인간을 만든 것은 완성된 영체인간들이 아니었던가 한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선각자(先覺者)들이 일생을 통해 인간이 무엇인가를 연구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인간의 비밀을 알아내지 못한 이유는 만들어진 자가 지닌 지능의 한계 때문이 아니었던가 한다. 필자 자신이 의학도 아니고, 또한 종교인(宗敎人)이나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아닌데 어느날 갑자기 인간의 정체가 무엇임을 깨닫게 된 이유는 다음 몇 가지의 이유 속에 포함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첫째, 필자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은 육체를 지녔었지만 그 영혼은 인간을 창조한 우주 생명체로부터 어떤 교육을 받아 특별한 사명을 띠고 태어난게 아닌가 하는 것이다. 둘째는 필자의 영혼은 지구인이 아니며, 어떤 다른 먼 천체(天體)에서 온 이른바 우주인으로서 그들 세계에서는 하나의 상식에 지나지 않는 지식을 심층심리에 심고 지구인으로서 재생(再生)하여 공해문명 때문에 멸망해 가는 인간들에게 어떤 경고와 탈출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이 아니냐 하는 것이다. 필자로부터 ‘체질개선’의 시술을 받고 난치병이 쾌유되며 노인이 젊어지고, 성격에 변화가 생기고 운명이 바뀐 예, 나이 50이 넘는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도 식별하기 쉬울 정도로 머리 모양이 바뀐 예들을 볼때, 필자는 필자 나름대로 그런 추리를 하게 된 것이다. 아니면 필자의 영혼은 이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영혼들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생리적(生理的)으로는 아직 50대(代)도 안되었건만 사람들의 영사(靈査)를 통해 그들의 과거를 때로는 몇천년 전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보는 일이 있는데 이런 능력을 행사할 때마다, 필자는 자기 자신이 굉장히 오랜 세월 윤회하며 살아온 인간임을 뼈저리게 느끼곤 한다. 필자는 이 목숨 다하는 날까지 하늘이 준 사명을 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각오가 되어 있다. 필자의 소망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다시 태어나지 않게 되었으면 하는 것, 아니 완전히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뿐이다. 아무 것도 인식할 수 없는 영원한 휴식, 그것만을 원하고 싶은 것이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영혼이 영생(永生)하는 존재이며 인간은 죽음을 넘어 몇 번이고 거듭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때, 안심과 기쁨을 느끼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모양이지만 필자의 경우는 그 반대였었다. 오히려 실망이 컸다고나 할까? 지난 날, 작가로서 쓴 작품들 가운데 《어느날의 아담》이나 《益春》 같은 것이 있는데, 여기에서 필자는 몇 번이고 되풀

이해서 죽음과 영원한 휴식을 갈구하는 인간의 마음을 묘사한 것도 같은 동기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하나님 자리를 다른 그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다는 어쩔 수 없는 숙명을 그 자체 안에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부자유한 처지에 놓여 있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왜 태어나는가? 한 마디로 물질우주의 법칙을[이 물질우주는 전체 우주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된다] 몸소 터득하여 좀더 진화된 영체인간(靈體人間)으로 자라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밟아야 하는 경로라고 생각된다. 다음은 선과 악에 대한 질문에 대해 대답할까 한다. 선(善)과 악(惡)을 놓고 볼때, 어째서 이 세상에서 악이 번성하고 선은 항상 패배자의 자리에 서느냐 하는 흔히 누구나 갖게 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선(善)이란 전체와의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자기 자신을 내세우려는 정신이고, 악(惡)이란 자기 욕망의 충족만을 위해서는 타인을 해쳐도 좋다는 정신에서 출발한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고 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의 법칙을 알게 되면[그것은 공존의 법칙이다] 사람은 절대로 악해질 수가 없는 법이다. 악인이란 상대적으로 어린 생명이다. 그는 우선 자기 욕망대로 사는 가운데 한 번은 뜻을 이루지만 결국은 어떤 형태로든 처벌을 받게 마련이다. 가령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인을 짓밟고 올라가서 잠시는 권세와 돈을 갖게 되지만, 당뇨병, 고혈압, 암과 같은 중병을 앓게 되거나 또는 그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이 여러 가지 형태의 불행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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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에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면, 다음 자손의 세대(世代)에 가서라도 틀림없이 좋지 않은 변화는 오게 마련이다. 짧은 안목으로 볼때, 악이 승리를 거둔 것 같지만 긴 안목으로 보면 여지껏 인류 역사에 악이 끝까지 번성한 예는 한번도 없는 것이다. 인류를 국가 단위로 볼 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지난 날에도 이웃을 침략하고 짓밟은 나라는, 결국에 자기가 준 고통을 스스로 물려 받아야 했던 것이므로, 이제는 전인류가 크게 깨닫고 하늘의 섭리인 조화의 정신을 터득하며 전체적으로 착하게 변하지 않으면 전인류는 반드시 멸망하게 되어 있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쉴새없이 멸망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누군가가 또는 어떤 큰 세력이 여기에 대해 제동을 걸지 않는다면 결국 오늘날의 인류는 반드시 멸망하게끔 되어 있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개인이나 국가나 또는 전인류의 단위에서도 이웃과의 조화, 주위환경과의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스스로 이 물질 세계에서 사라져야만 한다는 이 철칙을 이해한다면 박신일씨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절로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악(惡)은 잡초와 같이 그 자체의 생명력이 왕성하기에 다른 화초들을 짓밟고 온 마당을 메꾸지만, 결국 정원사의 손에 의하여 뿌리채 뽑히게 되는 것이다. 한 때는 번성할지라도 몰라도 빠르게 악이라고 생각된다. 세번째 질문, 어째서 인간에게 악령이 빙의되는가, 어째서 스스로의 힘으로 이것을 막을 수 없는가? 이에 대한 대답도 아주 간단하다. 이 세상은 파장(波長)의

세계이다. 같은 종류끼리 어울리게 되는게 세상의 법칙이다. 본인이 악한 생각을 항상 갖게 되면, 그 당사자와 마음의 파장이 같은 악령이 쉽게 빙의하기 마련이다. 악령이 빙의되면 빙의 당한 사람의 성격에 변화가 생긴다. 악한 짓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여러 가지 형태의 처벌(형벌과 난치병 등)을 받게 된다. 자신의 불행의 원인을 깨닫게 되면서 애써서 마음을 개선하고 올바르게 살려고 크게 노력하면 악령은 자기와 파장이 맞지 않기 때문에 자연히 떠나게 된다. 현대인은 대체로 ‘영혼’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 우리 눈과 오관으로 느낄 수 없는 세계가 더 크다는 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에 악령의 빙의에 대해 전혀 무방비한 상태에 놓여 있는게 사실이다. 항상 몸과 마음을 깨끗이 갖도록 노력하면 마음은 항상 조화된 상태를 이루게 되고 그렇게 되면 선령(善靈)들이 보호령이 되어 지켜주기 때문에 그 사람은 불행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 들어가는 일이 없다. 미움과 고움은 제 할 탓이라는 우리나라 속담이 진리임을 다시 한 번 밝혀 둔다. 악하게 살아서 큰 돈을 번 사람이 생애의 마지막에 위암 같은 병에 걸려서 물도 마실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고통을 받는 것을 볼때, 그는 가난하고 건강한 사람보다 얼마나 불행한 인간인가? 권력과 돈은 허무한 것, 생활의 한 수단으로서 어느 정도 필요한 것이지, 인생의 목적이 될 수는 없다고 본다. 황금을 탐낸 나머지 무엇이든 손만 닿으면 황금으로 변하게 된다는 미다스왕이 굶어 죽게 된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변함없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1. 독자(박신일)의 질문

박신일 씨는 기존 종교의 교리나 권력화에 회의를 느끼며, 심령과학적인 관점에서 네 가지 근본적인 의문을 던집니다.

  1. 인간의 탄생 목적: 인간은 어떤 목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는가?
  2. 악의 성공: 왜 현실에서는 선보다 악이 더 성공하고 세력을 얻는가?
  3. 빙의와 무능력: 왜 인간의 고귀한 영혼에 악령이나 동물령이 침입하며, 인간은 왜 이를 퇴치할 능력을 상실했는가?
  4. 영(靈)과 혼(魂)의 차이: 영과 혼은 어떻게 다르며, 사후 세계인 유계(幽界)는 무엇인가?

2. 저자의 답변 및 철학

인간의 본질: ‘에너지 생명체’

저자는 인간을 단순히 육체로 보지 않습니다.

  • 육체는 껍데기: 육체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정밀한 생화학적 인조인간(로봇)’에 불과합니다.
  • 영혼은 에너지: 인간의 본질은 **’에너지 생명체’**이며, 수억 년의 수명을 가지고 윤회합니다.
  • 지구는 유치원: 인류 역사는 영혼의 긴 수명에 비하면 아주 짧으며, 현재 인류는 영적으로 ‘유치원생’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탄생의 목적과 선악의 문제

  • 태어나는 이유: 물질 우주의 법칙을 스스로 터득하여 더 진화된 ‘영체인간’으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 과정입니다.
  • 선(善)과 악(惡): * 은 전체와의 조화를 이루려는 마음입니다.
    • 은 자기 욕망을 위해 타인을 해치는 마음이며, 이는 아직 영적으로 ‘어린 생명’임을 뜻합니다.
  • 악의 결말: 단기적으로는 악이 승리하는 것 같지만, 우주의 법칙(공존의 법칙)에 의해 결국 질병(당뇨, 암 등)이나 후손의 불행으로 반드시 처벌을 받게 됩니다.

빙의와 마음의 파장

  • 유유상종의 법칙: 세상은 ‘파장(Vibration)’의 세계입니다. 본인이 악한 생각을 하면 그와 같은 파장을 가진 악령이 쉽게 침입(빙의)하게 됩니다.
  • 해결책: 마음을 깨끗하고 조화롭게 유지하면 선령(善靈)이 보호령이 되어 악령이 침범하지 못합니다.

3. 저자의 특별한 주장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합니다.

  • 외계 영혼: 자신은 지구인이 아니라 다른 천체에서 온 ‘우주인’의 영혼을 가졌으며, 멸망해가는 인류에게 경고와 탈출 방법을 가르쳐주러 왔다고 주장합니다.
  • 윤회의 고통: 보통 사람들은 영생을 기뻐하지만, 저자는 오랜 윤회에 지쳐 이번 생이 끝나면 다시는 태어나지 않고 **’영원한 휴식’**에 들어가기를 갈구합니다.

요약표

구분내용
인간영원히 사는 ‘에너지 생명체’가 육체라는 로봇에 들어있는 상태
지구영혼들이 영적 성장을 위해 거쳐 가는 ‘유치원’
선과 악조화(선) vs 이기심(악). 악은 결국 파괴적인 결과(질병 등)를 초래함
빙의내 마음의 파장이 낮고 악할 때 비슷한 악령이 끌려오는 현상

박목사의 이야기를 듣는 필자도 이 순간에는 모골(毛骨)이 소연해짐을 느꼈다.

불과 몇 달 지나온 동안에 박목사는 그 용모가 주는 인상도 완전히 바뀐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뒤 필자는 박목사의 초대를 받아서 그가 말고 있는 낙도의 교회에 가서 ‘체질개선의 원리’에 대한 강연을 했고, 이 자리에는 이웃 낙도에 있는 여러 교회의 목사님들이 많이 참석해 주셔서 경청해 주었다.

“성경 말씀에, 너희가 진실로 겨자씨 만큼한 믿음이 있을진대 능히 이 산을 저 산으로 옮겨가게 할 수 있으리라 하고 하신 말씀을 글자 그대로 이해하면 전혀 뜻이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기구하는 생활,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행하면 머리의 중심부인 송체(松果體) 안에 겨자씨 만큼한 결정체가 형성되고, 이 결정체가 만들어진 사람은 능히 우주력(宇宙力)을 구사할 수 있는 촉점이 생겼기 때문에 여러가지 기적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옳은줄 압니다.”

필자가 말한 강연 가운데 한 이야기의 하나이다.

나날이 우주의식과 일체가 되어가고 있고, 작은 섬의 한 이름없는 목사로서 참그리스도의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는 박목사야말로 오늘날의 세대(世代)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진짜 그리스도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아무쪼록 하늘의 은총이 항상 박목사 곁에 함께 하시어 ‘체질개선의 원리’를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뜨리고, 구원의 역사를 할 수 있는 인물로서 어둠 속을 헤매는

  1. 지구인(地球人)이 된 우주인

오늘을 사는 눈으로 볼 때, 필자를 찾아오는 이들은 다같은 동포들이지만 전생을 놓고 보면 그들의 경력은 다양하기 이를데 없이 마련이다. 전생에서도 사람이었던 경우는 오히려 드물고, 동물령이 진화해서 인간이 된 경우, 자연령(自然靈)이 인간계에 나들이 온 경우 등이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 사회에서 지위가 높고 권력이나 재력(財力)을 갖고 있다고 해서 그가 반드시 고급령(高級靈)이 아님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오히려 고급령이 재생한 경우는 아무 이름 없는 서민중에 많은 것이 사실이다.

한편, 외계인(外界人) 즉 우주인(宇宙人)들도 상당한 수가 인간효가 인간으로 재생해서 살고 있는게 분명하다. 우주인이 지구인과 똑같은 모습으로 둔갑해서 살고 있는 예도 많으리라 생각되지만 그 보다는 우주인의 영혼이 지구인의 육체를 쓰고 태어난 경우가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필자가 알기에 이 우주에는 이런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별에서 태어나지 않은 자는 그 별의 운명에 대해서 관

제5장 시공(時空)을 초월한 마음 189

여할 수 없다.)

이것은 절대 내정 불간섭의 원칙이다.

가령, 선진 은하문명(先進銀河文明)이 존재하고 있다고 하자. 그들의 과견원이 볼때, 이대로 방치해 두면 지구형 생명(地球型生命)이 멸망해 버릴 것 같다고 느껴지더라도 그들은 공개적으로 간섭을 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고작해야 비행접시와 같은 우주선을 타고 와서 지구 사람들 눈에 띄게 함으로써 외계에는 지구인보다 더 발달된 문명이 있다는 암시를 줄 정도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까 만일 지구의 운명에 대해 꼭 간섭해야만 될 경우, 그들이 취하는 방법은 꼭 하나——궤도비행에 들어간 우주선 속에 일종의 가사상태로 들어간 뒤, 우주인의 육체에서 탈출한 그들의 에너지 생명체가 지구의 영계(靈界) 관리층의 정식 허가를 받고 지구인으로서 재생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에너지 생명체인 영혼은 육체 속에 갇히는 순간, 그들의 전생(前生)에서의 기억을 상실하게 되어 있으니까 지구인으로 재생하는 것이 아무런 뜻이 없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오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지구인으로 재생한 우주인은 그들의 뇌와 진동파장이 고유하기 때문에 궤도비행을 하고 있는 우주선에서 충분히 원격조종이 가능하다. 그들이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우주선으로 송신(送訊)되어 기록되고 조절되게 마련이다. 오늘날 이 땅 위에는 이런 종류의 지구인 모습을 가진 우주인들이 여러 분야에서 크게 활동하고 있는게 분명하다.

아니 어쩌면 아득한 옛날부터 우리 인류는 이런 우주인들

크거나 적거나 역사의 수레바퀴를 바꾸어 놓는 사람들, 뛰어난 사상가나 발명가들의 대부분은 이런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편, 이런 우주인들은 우리의 태양계(太陽系) 안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실리우스 태양계, 오리온 성좌(星座), 심지어는 안드로메다 성운(星雲)에서 온 우주인도 있을 것으로 짐작한다.

물론 오늘날의 지구의 과학지식으로 본다면 필자의 이런 이야기는 하나의 망상(妄想)에 지나지 않는다.

광속(光速)을 절대속도라고 믿고 있는 한, 항성간(恒星間)의 여행은 실질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별과 별 사이의 우주여행을 할 수 있는 문명(文明)은 우리보다 몇 천년 내지는 몇 만년 앞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백년 전만 해도 오늘날의 항공기는 불가능한 꿈이 아니었던가?

먼 별나라에서 미개발혹성의 문명을 연구하기 위해 지구인인이 된 우주인도 있을 게고, 하여튼 지금 이 지구 위에는 많은 우주인들이 남몰래 섞여 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느 날 필자를 찾아온 손님 한 분[그는 광주에서 온 젊은 대학생이었다]이 이런 질문을 해온 일이 있었다.

“선생님은 다른 사람들의 전생(前生)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데 선생님 자신의 전생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한 일이 없는 줄 압니다. 선생님의 전생은 어땠으며, 또 이번 생을 끝내면 어디로 가실 것입니까?”

이 대담한 질문 앞에 필자는 잠시 당황했다.

“글쎄올시다.”

다음 순간, 필자의 마음은 텅 빈 상태가 되었다.

필자의 마음의 스크린에 비친 장면은 우주공간에서 본 지구의 모습과, 그 궤도 위를 돌고 있는 하나의 우주선이 보였다.

그 우주선 안에는 살아 있는 생명은 하나도 없는 게 분명했다.

다만 유리관 속에 누워 있는 한 사나이, 그는 이상하게도 필자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른 보기에 굉장히 오래된 우주선인 게 분명했다. 몇 만년, 몇 십만년, 아니 어찌면 천 만년 이상 옛날에 지구를 찾아온 우주선이 아닌가 했다.

그러나 어디선지 소리 없는 소리가 들려 왔다.

“너는 이번 주기에 네가 맡은 사명을 완성해야 한다. 만일에 네가 또다시 실패하면 다시 윤회의 수레바퀴를 타고 돌아야 한다. 그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느냐.”

그러니까 사명을 완성하고 죽으면 이 우주선 안에서 잠에서 깨어나듯 깨어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순간 이 환상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물론, 이것이 사실인지 단순한 환상인지 구별할 길은 없다.

다만 체질개선의 원리를 앞으로 전세계적인 규모로 보급하는 게 필자가 맡은 사명인 것만은 분명하다. 필자의 전신(前身)이 우주인이든 지구인이든 그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의 필자는 엄연히 이 지구 위에 태어난 지구인(地球人)이오, 또 한국인인 게 분명하다. 필자가 살고 있는 조국이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나야 하고 내 나라 내 민족부터 구해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는 일이다.

아직 우리 지구인에게는 지구가 필요하다. 육체를 버릴 단계로까지 진화되지 않은 게 분명할진대 어떻게든 공해 문명을 이겨내고 살아남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일에 충실하면 된다. 필자는 체질 개선의 원리를 가능한 한 많은 동포들에게 보급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본다.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