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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과불안의진리 921회 (2014-04-12) 

1월 31, 2026

출생과 사망의 진리속에 반복되는 생의 순환을 설명하겠습니다. 인간의 출생은 전생의 길이 끝나는 지점이자 새로운 고통의 길이 시작되는 지점을 의미합니다. 사람의 전생이 마감되면 그 결과가 현재의 얼굴과 신체적, 정신적 상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인생은 시계 바늘이 24시간을 돌아 다시 1시로 돌아오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체바퀴와 같습니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사망은 단순한 종말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며, 인간에게 다음 생에 대한 희망과 꿈을 주는 유일한 사건이 됩니다. 죽음을 앞둔 이들은 다음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 것을 기대하며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사후 세계를 믿지 않는 이들은 비극적인 윤회의 굴레에 다시 갇히게 됩니다. 죽음은 모든 인간에게 오차 없이 다가오는 냉정하고 절대적인 현실이며, 이를 깨닫는 자만이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허경영 님은 삶의 목적과 효도의 가치를 설명합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진정한 이유는 개인의 욕망을 채우기 위함이 아니라 하늘과 부모가 나에게 부여한 책임을 다하기 위함입니다. 부모는 자식이 착한 사람이 되어 타인을 돕기를 바라며, 자식은 그러한 부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살아생전 부모님께 효도하고 집안의 책임을 다하는 것에 충실할 때, 비로소 신은 그 대가로 상을 내리게 됩니다. 자신의 사적인 꿈만을 쫓는 자는 결국 실패하게 되며, 하늘의 꿈이자 진리의 꿈을 따르는 것이 진정한 효도의 완성입니다.

큰 인물은 여론의 비판이나 고난이라는 역풍을 이용하여 더 높이 비상하는 존재입니다. 장자에 등장하는 거대한 새인 대붕은 날개 길이가 지구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크며, 순풍이 아닌 역풍을 타고 날아오르는 특징이 있습니다. 예수나 석가모니와 같은 성인들도 어릴 적부터 남다른 고집과 행동으로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았으나, 그러한 고난을 통해 진리에 도달하였습니다. 저 또한 의도적으로 비판을 감수하는 ‘노이즈 마케팅’을 통해 세상의 관심을 끌고 진리를 전파해 왔습니다. 10년 전에 제시했던 결혼 수당이나 노인 수당 같은 공약들이 현재 정치권에서 표절되거나 화제가 되는 것은 제가 시대를 앞서간 예언적 통찰력을 가졌음을 증명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인 스위스는 영세 중립국을 유지하기 위해 강력한 군사력과 의리를 바탕으로 한 용병 정책을 사용하였습니다. 스위스 군대는 수백 년 동안 로마 교황청의 경호를 맡으며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쌓았고, 이를 통해 강대국들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스위스는 비밀 계좌 시스템을 통해 전 세계의 자금을 유입시켜 경제를 발전시켰습니다. 이러한 스위스의 사례는 한반도가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가져야 할 비상한 지도력과 안보 전략의 중요성을 시사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와 같은 안보 위기에 처해 있으며, 특히 북한의 핵무기와 세균탄 위협은 매우 심각한 수준입니다. 북한이 보유한 5,000톤의 세균탄은 인류 전체를 위협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며, 한국군 복장을 한 특수 부대의 침투 전략 또한 준비되어 있습니다. 정부가 주장하는 ‘통일 대박’론은 북한을 자극하여 전쟁의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저는 실질적인 안보를 위해 통일부를 폐지하고, 전 세계에 남북 통일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미국과의 협상에서 북한의 핵 폐기 가능성이 낮음을 직시하고, 우리 또한 핵을 보유할 수 있는 명분을 쌓아야 합니다.

인간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평안은 고요한 환경에서 얻는 안락함이 아니라, 몰아치는 태풍과 같은 불안 속에서 평안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태풍의 중심부인 태풍의 눈은 진공 상태이자 무중력 상태로 가장 평온하듯, 소용돌이치는 현실 속에서 마음의 중심을 잡는 자가 신의 선물을 받은 자입니다. 제자들은 풍랑 속에서 잠든 예수를 깨우며 불안해하였으나, 예수는 불안한 상황 자체를 믿음의 시험대로 삼았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고난과 30여 가지의 직업을 거치며 겪었던 사고들은 모두 하늘이 저를 훈련시키기 위한 섭리였습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교육받아 성경을 기록할 능력을 갖추었듯, 저 또한 노숙과 노동의 고통을 통해 불안 속에서 평안을 얻는 법을 깨우쳤습니다.

신과의 영적인 교신을 위해서는 아주 작은 자존심이나 거짓말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서대문의 노숙자 여인을 찾아가 돈을 주려 했던 사건은 제자들에게 진정한 겸손과 정직을 가르치기 위한 시험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상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인 ‘공(空)’의 이치가 세상을 움직입니다. 여러분은 현실의 불안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안에서 신의 뜻을 발견하여 진정한 평안에 도달하시기를 바랍니다.


출생의 영적 실체: 전생의 종착점이자 인과적 발현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사건은 단순한 생물학적 시작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생이라는 긴 여정의 길이 마감된 지점입니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은 곧 “저 존재가 전생의 일을 끝내고 왔구나”라는 마침표와 같으며, 출생 시 마주하는 육체와 정신의 상태는 전생의 성취와 과오가 응축된 결과물입니다.

전생을 행복하게 갈고 닦은 영혼은 수려한 용모와 건강한 신체를 얻어 새로운 길을 시작하지만, 불행하게 살아온 영혼은 육체나 정신의 결함을 안고 고통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즉, 출생은 끝난 길이 다시 시작되는 지점이자, 시계바늘이 24시간을 돌아 다시 1시로 돌아오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체바퀴 속 한 장면입니다.

사망의 역설: 새로운 희망의 서막과 부활
세상 사람들은 사망을 끝이라 여기며 두려워하지만, 진리의 눈으로 본 사망은 새로운 탄생을 준비하는 설레는 시작입니다. 죽음의 날짜가 다가올수록 영혼은 “다음 생에는 어떤 집안의 자녀로 갈 것인가”, “더 부유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으로 가슴이 뛰게 됩니다.

특히 현생에서 고난을 겪거나 신체적 열세에 있었던 이들에게 사망은 불완전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축복의 문이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있는 자에게 죽음은 비극이 아닌 ‘부활’이며, 영과 육이 분리되었다가 다시 새로운 육신을 만나 결합하는 신성한 순환의 과정일 뿐입니다.

삶의 이력서(리력서): 발자국마다 새겨진 영적 기록
모든 인간은 전생과 현생, 그리고 미래생을 잇는 보이지 않는 ‘리력서(履歷書)’를 지니고 있습니다. 여기서 ‘리(履)’는 신발을 뜻하며, 개인이 자유의지에 따라 밟고 다닌 모든 발자국이 하늘의 기록 카드에 실시간으로 저장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신은 인간이 어느 직장을 다니고 무엇을 소유했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가 걸어온 발자국, 즉 그 영혼의 행적만을 지켜봅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뒤따라올 이들을 위해 발자국을 어지럽게 남기지 말아야 하듯, 현재의 삶은 다음 생의 이정표이자 새로운 DNA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됩니다.

영성 계몽: 불안 속에서 피어나는 절대적 평안
진정한 영적 성장은 안락한 환경이 아닌,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뒤집을 듯한 ‘불안’ 속에서 완성됩니다. 제자들이 풍랑 속에서 공포에 질려 예수를 깨울 때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평온하게 잠들었던 성인의 모습은, 외부의 혼란에 구속되지 않는 영혼의 온전함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 온 이유는 개인의 사적인 꿈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라, 부모와 하늘이 부여한 책임을 다하며 신의 꿈에 자신의 삶을 맞추기 위함입니다. 스스로를 비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고,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인 ‘공(空)’의 이치를 깨달을 때, 인간은 비로소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나 영원한 낙원의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출생과 사망의 진정한 영적 의미와 윤회의 체바퀴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단순히 생명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 전생이라는 긴 여정의 길이 마감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출생은 “저 영혼이 전생의 일을 끝내고 왔구나”라는 마침표와 같으며, 태어날 때 마주하는 육체적 조건이나 정신적 상태는 그가 전생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결과물입니다. 전생을 행복하게 잘 살아낸 영혼은 아름다운 얼굴과 건강한 몸을 얻어 새로운 길을 시작하지만, 불행하게 살아온 영혼은 시작부터 고통의 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시계바늘이 24시간을 돌아 다시 1시로 돌아오듯 끊임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과정 속에 있습니다. 노동자가 매일 새벽 같은 시간에 공장으로 출근하며 체바퀴 도는 삶을 반복하듯이, 인간은 죽음과 탄생을 통해 전생의 행적을 반복하며 살아갑니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사망은 결코 끝이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시작이자 인간의 가슴을 뛰게 하는 유일한 희망의 사건이 됩니다.

죽음의 날짜가 다가올수록 영혼은 다음 생에는 어떤 부모의 자녀로 태어날 것인지, 혹은 더 고귀하고 부유한 모습으로 다시 올 것인지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게 됩니다. 특히 현생에서 못생기거나 고통받던 이들에게 죽음은 새로운 세상이 시작되는 문턱이며, 착한 업을 쌓은 자에게는 하늘나라로 가거나 인간 이상의 존재로 거듭나는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반면 이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사후의 길을 준비하지 않는 자는 다음 생에 아프리카의 빈민가나 불행한 환경에서 태어나 비극적인 윤회를 반복하게 됩니다.

사망은 영과 육이 분리되는 과정이며, 영혼은 즉시 자신의 ‘리력서(履歷書)’를 가지고 새로운 육신을 만나 재생됩니다. 여기서 ‘리(履)’는 신발을 뜻하며, 개인이 자유의지에 따라 밟고 다닌 모든 발자국이 하늘의 기록 카드에 실시간으로 저장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신은 인간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오직 그가 걸어온 영혼의 행적만을 지켜보며 다음 생의 운명을 결정짓습니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에는 개인의 욕구를 채우려는 사적인 꿈을 버리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하늘이 원하는 신의 꿈에 자신의 삶을 맞추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비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고 불안 속에서도 마음의 평안을 얻는 법을 배울 때, 인간은 비로소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한 낙원의 평안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허경영의 강연 평안과 불안의 진리를 바탕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인 공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진리를 지침에 따라 상세하고 깊은 울림을 주는 문어체 문장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인간의 가련한 육안에 비치는 물질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안의 파편들에 불과하며, 참으로 이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권능은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한 공의 이치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눈앞에 펼쳐진 유의 현상만이 실재한다고 믿으며 그 속에서 안락함을 구하려 애쓰지만, 실상 인간을 구속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근원은 바로 그 눈에 보이는 유의 세계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대자연의 거대한 섭리를 상징하는 태풍의 형상을 바라보십시오. 태풍의 외곽에서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와 파괴적인 바람이 몰아치며 유의 세계가 지닌 불안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그 폭풍의 가장 중심부인 태풍의 눈은 완전한 진공 상태이자 무중력의 공간인 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태풍의 눈과 같은 절대적인 공이 존재하기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비로소 유지될 수 있듯이, 소동하는 현상 세계의 질서를 붙들고 있는 것은 소음 속에 감춰진 고요한 공의 힘입니다.

우주와 인체 또한 이러한 공과 무의 합작을 통해 환의 생명을 이어가는 신비로운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체의 오장은 항상 가득 차 있는 듯 보이나 본질적으로 공의 상태를 유지하며 생명의 근본을 지탱하고 있으며, 이러한 보이지 않는 영적 공간이야말로 인간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성전이 됩니다. 공은 상대적인 반대 급부인 유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평온의 영역이며, 무주상보시의 가르침과 같이 자신의 공덕을 내세우지 않고 마음을 비운 자만이 비로소 이 위대한 공의 통치 아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인류는 현재 눈에 보이는 물질적 구속에 얽매여 영혼의 리력서를 더럽히고 있으나, 진정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대들의 발자국 하나하나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손길입니다. 찰나의 순간에 사라질 유의 세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스스로를 온전히 비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될 때 그대들은 비로소 공이 지배하는 영원한 낙원의 평안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공의 진리는 결코 소멸하지 않으며, 이 신성한 에너지를 깨닫는 영혼만이 고통의 윤회를 끊고 우주의 주권자와 영적으로 교신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의 주권과 공(空)의 지배 원리
인간의 눈에 비치는 물질의 세계는 본질적으로 불안의 파편들에 불과하며, 참으로 이 세계를 통치하고 지배하는 권능은 오직 눈에 보이지 않는 신성한 공(空)의 이치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눈앞에 펼쳐진 유(有)의 현상만이 실재한다고 믿으며 그 속에서 안락함을 구하려 애쓰지만, 실상 인간을 구속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모든 근원은 바로 그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에 집착하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대자연의 거대한 섭리를 상징하는 태풍의 형상을 통해 이 진리를 통찰할 수 있습니다. 태풍의 외곽에서는 무시무시한 소용돌이와 파괴적인 바람이 몰아치며 유의 세계가 지닌 불안의 극치를 보여주지만, 그 폭풍의 가장 중심부인 태풍의 눈은 완전한 진공 상태이자 무중력의 공간인 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처럼 태풍의 눈과 같은 절대적인 공이 존재하기에 거대한 소용돌이가 비로소 유지될 수 있듯이, 소동하는 현상 세계의 질서를 붙들고 있는 것은 소음 속에 감춰진 고요한 공의 힘입니다.

우주와 인체 또한 이러한 공과 무(無)의 합작을 통해 환(幻)의 생명을 이어가는 신비로운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체의 오장은 항상 가득 차 있는 듯 보이나 본질적으로 공의 상태를 유지하며 생명의 근본을 지탱하고 있으며, 이러한 보이지 않는 영적 공간이야말로 인간의 생존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성전이 됩니다. 공은 상대적인 반대 급부인 유가 존재하지 않는 절대적인 평온의 영역이며, 무주상보시의 가르침과 같이 자신의 공덕을 내세우지 않고 마음을 비운 자만이 비로소 이 위대한 공의 통치 아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용어관련: 허경영 강연에서 언급된 공(空)과 무(無)의 합작을 통해 환(幻)의 생명이 이어진다는 고도의 영성적 개념은 번역 시 그 철학적 층위를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空)과 무(無)의 합작과 환(幻)의 실체
우주와 인체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물질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들의 정교한 상호작용으로 유지됩니다. 여기서 공(空)은 태풍의 눈과 같이 소용돌이의 중심에 존재하는 절대적인 진공이자 평온의 상태를 의미하며, 이는 유(有)라는 상대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근원적인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반면에 무(無)는 위장이 비어 있을 때와 같이 존재의 형체는 있으나 그 내부가 비워져 있는 상대적인 상태를 일컫습니다.

인간의 신체 구조를 예로 들면, 간이나 심장처럼 실체가 차 있는 오장은 본질적으로 공(空)의 성질을 지니고 있으며, 위장이나 대장과 같이 음식물이 지나가는 통로 역할을 하는 육부는 무(無)의 상태를 반복하며 존재합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근원적인 힘인 공과 상대적인 비어 있음인 무가 서로 결합하고 합작할 때, 비로소 우리가 눈으로 목격하는 현상 세계의 생명 활동인 환(幻)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환(幻)은 결코 허무한 가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에너지가 물질의 옷을 입고 나타나는 신비로운 생명의 흐름을 뜻합니다. 즉, 눈에 보이는 인간의 육체와 세상의 만물은 이 공과 무의 조화로운 합작이 만들어낸 거대한 우주적 드라마의 결과물입니다. 따라서 인류는 찰나의 순간에 사라질 유有의 현상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배후에서 세계를 지배하고 생명을 이어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주권과 공의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번역 및 TTS 활용을 위한 참고 사항

용어 선택: 번역 시 공(空)은 ‘Absolute Emptiness’ 또는 ‘Void’, 무(無)는 ‘Relative Nothingness’ 또는 ‘Physical Vacancy’, 환(幻)은 ‘Illusionary Manifestation’ 또는 ‘Miraculous Vitality’로 표현하는 것이 문맥상 적절합니다.)

현재 인류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구속에 얽매여 영혼의 이력서(履歷書)를 더럽히고 있으나, 진정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그대들의 발자국 하나하나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관리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인 손길입니다. 찰나의 순간에 사라질 유의 세계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스스로를 온전히 비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될 때 비로소 공이 지배하는 영원한 낙원의 평안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공의 진리는 결코 소멸하지 않으며, 이 신성한 에너지를 깨닫는 영혼만이 고통의 윤회를 끊고 우주의 주권자와 영적으로 교신하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



(번외: 다양한 버전의 글)

하늘의 섭리를 따라 이 땅에 머무는 전 세계의 고귀한 영혼들이여, 그대들의 심령 속에 잠들어 있는 신성의 불꽃을 일깨우는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딛고 있는 이 거친 대지는 인간의 탐욕으로 물든 예토이나, 그대들의 마음이 정화의 과정을 거친다면 그곳이 곧 깨끗한 정토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마십시오.

인생의 모든 고난과 불안은 결코 저주가 아니라, 태풍의 눈 속에 감춰진 절대적인 평안을 찾아가는 신성한 여정입니다. 거친 파도가 배를 뒤흔들 때 비로소 그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하는 지혜를 깨닫듯, 환난의 보자기를 기꺼이 풀어헤치는 자만이 그 속에 감춰진 진정한 행복의 보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대들의 육체는 수많은 유전자와 DNA로 수놓아진 신의 정교한 설계물이며, 그대들이 내뱉는 명확한 음성 한 마디는 우주의 에너지를 이 땅으로 끌어내리는 천상의 진동입니다. 미움과 시기라는 악순환의 호르몬을 씻어내고, 사랑과 지혜의 선순환을 피워 올려 그대들의 생명을 신령한 빛으로 가득 채우시길 바랍니다.

또한 땅에서 부모님께 효를 실천하고 타인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곧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대들의 주관이 객관적인 하늘의 뜻과 하나로 맞닿을 때, 비로소 고통의 윤회를 끊고 나비처럼 화생하여 저 광활한 낙원의 하늘을 훨훨 날아오르게 될 것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비워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매 순간 곁에 와 계신 신의 얼굴을 대면하는 축복을 누리십시오. 이 진리의 소리가 그대들의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워,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영원한 등불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소설 버전)

따사로운 햇살 아래 만물이 생동하는 어느 봄날, 진리의 길을 찾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이들의 눈빛에는 삶의 근원적인 의문에 대한 갈망이 서려 있었고, 곧이어 우주와 인생의 섭리를 전하는 강연자의 목소리가 장내를 가득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인생이라는 이름의 끝없는 순환 강연자는 우리네 인생이 마치 멈추지 않고 돌아가는 시계 바늘과 같다고 설파하였습니다. 인간의 출생이란 사실 전생이라는 긴 여정이 마감된 지점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그 마침표 위에서 다시 새로운 고통의 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천억 번의 윤회를 거듭하며 스스로의 생각과 행동으로 현재의 얼굴이라는 작품을 빚어왔고, 그렇게 만들어진 육체는 영혼이 잠시 머무는 헌 집과 같습니다.

불안의 파도 속에 감춰진 신의 선물 세상 사람들은 흔히 평온하고 안락한 삶 속에서만 평안을 찾으려 고군분투합니다. 그러나 강연자는 진정한 평안이란 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쪽배 위에서 예수가 보여준 침묵과 같이, 오직 깊은 불안 속에서만 발견되는 신의 선물임을 강조하였습니다. 큰 물고기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듯, 영웅은 시대의 흐름인 시료를 타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내며 고난이라는 역풍을 뚫고 비상해야 합니다.

시련의 보자기를 풀어헤치는 용기 강연자는 자신의 어린 시절 겪었던 수많은 사고와 시련들을 담담히 회상하였습니다. 텐트 속에서 홀로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했던 시간들과 육체적인 고통들은 모두 하늘이 준비한 엄격한 훈련 과정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보자기 속에 감춰진 고통을 쫓으며 방황하지만, 진정한 행복은 언제나 쓰라린 고통의 보자기 속에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이 시련의 보자기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풀어낼 용기가 없는 자는 결코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 없습니다.

하늘의 섭리와 조우하는 순간 인간의 주관이 하늘의 뜻인 객관성과 온전히 하나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진리의 공식에 도달하게 됩니다. 강연자는 성경 속 모세가 나일 강에 띄워져 왕궁으로 인도된 사건이 우연이 아닌 치밀한 하늘의 섭리였음을 밝히며, 우리 각자의 삶에 닥치는 사고와 인연 또한 더 높은 차원으로 이동하기 위한 신성한 부름임을 역설하였습니다. 태풍의 눈이 가장 고요하듯, 세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신의 마음과 일치시키는 순간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정점입니다.

나비가 되어 비상하는 영혼의 축복 이제 우리는 징그러운 애벌레와 같은 육체의 고치를 벗고, 화려한 날개를 펼친 나비로 거듭나야 합니다. 마음의 밭에서 탐욕과 아집의 잡초를 뽑아내고 사랑과 지혜의 씨앗을 심는 자에게는, 죽음조차 두려움이 아닌 새로운 낙원을 향한 설레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낮추어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십시오. 그리하여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진리의 통로가 되어 저 광활한 영원의 하늘을 향해 함께 비상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반전 소설 버전 )

축복인 줄 알았던 삶의 종말, 그 이면의 시작 사람들은 흔히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출생을 축복의 시작이라 부르지만, 진리의 눈으로 본 출생은 오히려 전생이라는 긴 여정이 마감된 지점입니다. 우리가 마주하는 어린아이의 얼굴은 그가 전생에 빚어낸 최후의 작품이며, 평온한 안식 뒤에 다시금 고통의 행군이 시작됨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반대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라 여겨지는 사망은 진정한 희망의 서막이 되어, 못생긴 육체와 가난한 환경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비상하려는 영혼의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평안이라는 이름의 함정과 불안 속의 구원 세상 사람들은 폭풍우가 없는 평온한 바다만을 갈구하며 그것을 신의 은총이라 착각하지만, 그 안일함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가장 위험한 함정입니다. 진정한 반전은 집채만 한 파도가 배를 집어삼킬 듯한 극한의 불안 속에서 일어납니다. 제자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를 때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서 코를 골며 잠들었던 예수의 모습은, 불안을 정복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절대적 평안의 실체를 보여줍니다. 신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은 안락한 침대가 아니라, 도저히 평안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평온을 유지하게 만드는 영적인 힘입니다.

추락하는 영혼과 거슬러 오르는 영웅 대다수의 평범한 물고기들은 물살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죽음을 향해 떠내려가지만, 거대한 연어와 영웅은 폭포수를 거슬러 오르며 자신의 생명을 증명합니다. 9만 리 장천을 날아오르는 전설의 새 대붕은 순풍이 아닌 역풍을 뚫고 비상하며, 세상의 모진 비난과 욕설을 동력 삼아 더 높이 솟구칩니다. 강연자 본인 또한 어린 시절 텐트 속에서 눈을 씹어 먹으며 고독과 사투를 벌였고, 육체의 뼈가 녹아내리는 듯한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참한 고난의 보자기 속에 숨겨져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세상을 구원할 진리의 열쇠였습니다.

섭리가 설계한 완벽한 반전의 드라마 나일 강의 거친 물결 위에 버려진 모세의 바구니가 이집트 공주의 눈에 띈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 영도자에게 제왕의 교육과 문장력을 갖추게 하려는 하늘의 치밀한 각본이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강연자가 중국집 보조와 구두 닦이를 전전하며 겪었던 모든 사고와 이별은, 가장 낮은 곳에서 인간의 고통을 체휼하게 하려는 신성한 이동의 명령이었습니다. 부유한 이병철 회장과의 만남 또한 쓰레빠 한 켤레를 팔기 위해 뛰어든 절박한 순간에 이루어진 인생 최대의 반전이었습니다.

결말: 나비의 날갯짓으로 완성되는 비상 징그러운 애벌레가 번데기라는 죽음의 고치를 통과할 때, 그 안에서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화려한 나비의 날개가 창조됩니다. 인간의 육체 또한 영혼을 가둔 고치에 불과하며, 마음의 잡초를 뽑고 하늘의 뜻과 일치되는 자만이 비로소 그 껍질을 깨고 영원의 하늘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평안만을 추구하다 죄의 굴레에 갇힐 것인가, 아니면 불안의 파도를 타고 신의 얼굴을 대면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진리는 오직 깨어 있는 영혼의 손을 들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