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6회 (2012-09-15)
- 1부. 영동고속도로에서 있었던일
- 2부. 허경영은 인간들의 심판자로 지구에 왔다.
- 3부. 허경영은 창조주로서, 화이트 헤븐의 백궁에서 왔다.
- 4부. 어릴때 소를 먹였던 사연
- 5부. 지구의 핵인 한반도에 핵전쟁을 막으러, 몸속의 핵인 DNA, 세포의 텔로미어를 고정시켜 생명을 연장
- 6부. 천년 남겨놓고 지구에 온 허경영. 하늘은 모든 걸 인간에게 이미 다 주었는데.
- 7부. 자유의지를 방종으로 남용하고, 더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엄청난 죄다.
- 1부. 영동고속도로에서 있었던
인류를 구원하러 온 메시아는 결코 특정 종교나 집단에 속하지 않습니다. 석가나 예수와 같은 성자들이 그러했듯, 진정한 지도자는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고 주유천하하며 세상의 고통을 몸소 겪고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허경영이 지금 정치적 권력을 쥐지 않은 채 민초들과 함께하는 것은, 공자가 천하를 돌며 도를 설파했던 것과 같은 깊은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세상을 유람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영적 성적표를 기록하고 하늘의 생명책에 올릴 소중한 인연들을 맺어가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제가 영동고속도로에서 폭력배들에게 고초를 겪던 청년을 구했던 사건은 단순한 정의구현이 아닙니다. 법과 절차를 따지는 판사와 검사, 경찰의 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어 하늘의 권능으로 즉각적인 평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판사 위에는 대통령이 있고, 대통령 위에는 하늘의 섭리를 집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인간의 육법전서가 규정하는 형법과 소송법의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찰나의 순간에 악을 굴복시킨 것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영적 통치력의 현현이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시한폭탄과 같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유명한 예술가나 의학 박사라 할지라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는 무력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진리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기적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만남과 기억은 뇌 속의 해마에 농축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고유번호로 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주민등록증이자 생명책에 기록되는 여러분의 영적 유산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실시간으로 스캔하며, 여러분이 겪는 모든 고통과 기쁨을 하늘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허경영의 이름을 부를 때 몸이 치유되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은, 여러분의 간절한 믿음과 하늘의 에너지가 직접 교신하기 때문입니다. 껍데기뿐인 지식과 종교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자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하늘의 지시를 명심할 때, 비로소 죽음의 공포를 넘어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2부. 허경영은 인간들의 심판자로 지구에 왔다.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는 대중의 인기보다 어린 생명의 소중함을 먼저 살피는 법입니다. 제가 평소 어린아이들이 많은 식당을 즐겨 찾고, 그들에게 아낌없이 용돈을 건네는 것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에 복을 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아이들의 복을 거절하지 말라는 저의 말 한마디는 그 부모의 가슴에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남고, 이는 곧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아름다운 스캔(Scan)이 됩니다. 이러한 진심이 있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대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허경영을 연호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판사는 지금 당장 드러난 죄만을 재판하지만, 하늘에서 온 심판자는 그 사람의 삶 전체와 그로 인해 변해가는 호르몬, 그리고 후손에게 이어지는 유전자(DNA)까지 통찰합니다. 남들은 굶주리는데 나 홀로 고기를 탐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늘은 고지혈증과 같은 질병을 내려 그 죄과가 대대로 이어지게 합니다. 술에 빠져 사는 자의 업보가 자손의 주정으로 나타나듯, 심판자의 눈은 이처럼 준엄한 인과응보의 법칙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집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마치 영동고속도로에서 벌어지는 싸움 구경과 같습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지금은, 제가 전면에 나서서 중재할 때가 아닙니다. 진정한 구원자는 세상이 평화로울 때가 아니라,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온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묻지 마 살인과 폭동, 비정규직의 눈물로 온 국토가 불길에 휩싸여 인간의 법과 정치가 해결할 수 없는 극한의 혼란이 올 때, 비로소 심판자이자 구원자인 저의 진가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아직은 국민이 더 실망하고 깨달아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판사와 검사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혼돈의 끝에서, 저는 준비된 전략과 하늘의 권능으로 대한민국과 인류를 단숨에 평정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시기가 오기까지 진리와 교신하며 스스로를 맑게 닦아, 하늘이 내리는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3부. 허경영은 창조주로서, 화이트 헤븐의 백궁에서 왔다.
우주의 창조 섭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왜 지금 이 시대를 인내하며 참된 지도자를 기다려야 하는지 그 명확한 순서가 보입니다. 창조주는 가장 먼저 빛과 어둠을 지으셨고, 이어 물과 궁창, 식물과 자연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순서에 이르러서야 낮과 밤을 설정하셨으며, 새와 물고기를 지나 마지막 여섯 번째에 이르러 짐승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이 창조의 맨 마지막 정점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반복됩니다. 지금 대선 국면에서 먼저 머리를 내밀고 소란을 피우는 자들은 창조의 중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짐승의 성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진정한 사람, 즉 인류를 구원할 참된 인격체는 모든 혼돈이 지나간 맨 마지막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나타나 세상을 가질 것처럼 포효하는 자들은 결국 마지막에 올 진정한 주인공을 위한 배경에 불과합니다.
또한, 첫날의 빛과 넷째 날의 낮이 왜 분리되어 있는지 그 신비로운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첫날의 빛은 우리가 보는 태양 빛이 아니라, 창조주가 거처하시는 근원의 하늘인 ‘화이트 헤븐(White Heaven)’을 의미합니다.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 하나님이 계실 신성한 영역을 먼저 설정하신 것입니다. 반면 넷째 날의 낮은 태양을 통해 지구에 비치는 물리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근원의 빛이 먼저 존재했기에 비로소 지상의 낮과 밤도 질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조주는 지구를 만드시며 인간이 함부로 날아가 버리지 못하도록 ‘구백팔십 다인(980 dyne)’이라는 정교한 중력을 설정하셨습니다. 이는 나무 이파리 하나 꺾이지 않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인간이 땅을 딛고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하늘의 통제 장치입니다. 이처럼 우주의 미세한 중력 수치 하나까지도 창조주의 치밀한 계산 아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의 혼란 또한 마지막에 나타날 참된 사람을 위한 거대한 공정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의 중력 980다인(dyne)은 창조주가 설정한 절묘한 통제 장치입니다. 가벼운 나뭇잎 하나 꺾지 않을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무거운 인간은 감히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게 짓누르는 이 힘은 우리를 시공우주(時空宇宙)라는 제한된 틀 안에 머물게 합니다. 인간은 결코 이 중력의 압박을 벗어나 스스로 하늘에 닿을 수 없으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밤하늘 너머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우주의 질서가 존재합니다. 12억 개의 별이 모인 우리은하계가 있고, 그러한 은하계가 다시 12억 개 모인 은하단이 있으며, 그 은하단이 다시 12억 개가 운집한 우리은하운(銀河雲)이 있습니다. 허블 망원경으로 보았을 때 부연 구름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별들의 집합체는 우주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 어마어마한 은하의 바다를 빛의 속도로 12억 광년을 달려야만 비로소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 은하운의 경계를 벗어난 광활한 스페이스, 그곳이 바로 화이트 헤븐(White Heaven)입니다. 창조주가 최초에 ‘빛’을 만들었다고 할 때의 그 빛은 바로 이곳, 신이 거처하시는 근원의 처소를 의미합니다. 시공우주라는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무한한 우주의 끝에 자리한 이 신성한 영역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절대자의 공간입니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의 구조를 알고 나면, 우리가 이 작은 지구에서 아웅다웅하며 다투는 모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늘은 이 거대한 은하의 질서를 다스리는 권능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와, 시공에 갇힌 인간들에게 화이트 헤븐의 비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우주의 좌표를 읽어내고 신과 교신하는 자만이, 중력에 짓눌린 삶을 넘어 영원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열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가 지으신 우주의 신비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정교함을 품고 있습니다. 첫날에 빛과 함께 어둠을 만드셨다는 것은, 단순히 낮과 밤의 교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어둠은 바로 광활한 ‘다크 스페이스(Dark Space)’, 즉 진공우주를 의미합니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는 순간 인간은 시공의 무게를 잃고 붕붕 떠다니게 되는데, 이 칠흑 같은 진공의 세계가 무려 12억 광년이나 펼쳐져 있습니다.
그 너머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영역인 화이트 헤븐(White Heaven)이 존재하며, 그 중심에는 제가 온 곳인 ‘백궁’이라는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태양은 지구보다 300만 배나 크지만, 백궁은 그 거대한 태양보다도 다시 400만 배가 더 큽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며, 그곳의 질서는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1년이 걸린다면, 태양이 우리 은하계를 한 바퀴 도는 데는 무려 2억 5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다시 그 은하가 더 큰 은하단을 도는 데는 370억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우주는 마치 거대한 시계의 초침과 분침, 시침처럼 각자의 궤도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그 모든 시간의 정점에는 영원불멸의 별 백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짧은 생애는 이 우주의 시계로 보면 찰나의 눈깜빡임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 장엄한 우주의 메커니즘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자가 지금 여러분 앞에 와서 하늘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공우주에 갇혀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광대한 진공우주를 지나 백궁에 이르는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할 때, 비로소 여러분은 창조주의 품 안에서 참된 평화를 얻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이 모든 현상 뒤에는 과학의 정교함을 넘어선 창조주의 치밀한 설계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의 짧은 생애는 광활한 우주의 시계로 보면 찰나의 눈 깜빡임조차 되지 않습니다. 시공우주에 갇혀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진공우주를 지나 백궁에 이르는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평화와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나름의 법칙을 찾아내어 우주를 설명하려 하지만, 그 근본 원리는 오직 하늘만이 온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달을 향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어야만 달나라까지 가는 그 먼 여정에서 단 1.5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GPS가 오차 없이 작동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상대성 이론 앞에서 그 정밀함이 뒤처지는 이유는, 우주가 단순히 서로 끌어당기는 힘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이 지구를 돌 때는 스스로 나아가려는 강력한 원동력인 원력이 존재하며,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는 속도 또한 한 치의 흐름도 놓치지 않는 거대한 우주 기어의 맞물림과 같습니다. 인간의 과학은 그 겉모습을 수식으로 흉내 낼 뿐, 그 힘을 부여하고 시간을 다스리는 자는 따로 있습니다.
장엄한 우주의 메커니즘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자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이토록 명확한 하늘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발견한 과학의 법칙들은 결국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우주 질서의 파편을 찾아내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낡은 상식의 틀을 깨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주를 돌리는 절대적인 권능과 교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여러분의 삶을 진화시키고 다가올 미래의 주인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주를 가로질러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는 현대의 기술 뒤에는, 인간의 지각으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거대한 역학이 숨어 있습니다. 지구가 스스로 도는 자전과 태양을 도는 공전, 그리고 태양이 북극성을 정점으로 은하 전체를 선회하는 그 어마어마한 속도와 저항을 모두 계산해내야만 비로소 지상의 GPS는 단 1.5미터의 오차로 여러분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우주적 움직임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영도다리를 찾던 발걸음은 엉뚱하게도 해운대 백사장에 닿게 될 것입니다.
인간 과학의 정점이라 일컫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조차 제 눈에는 유치원생의 습작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수식은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시공을 초월하여 우주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비행접시의 원리를 결코 풀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우주의 설계자인 저만이 그 정밀한 계산법을 쥐고 있으며, 기존의 과학과 종교가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주러 온 것입니다.
세상의 도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경전의 문구 몇 줄을 더 읽었을 뿐, 우주의 물리 법칙과 인간의 생사화복이 어떻게 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진정한 치유의 권능도, 세상을 다스리는 육법전서의 깊이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스스로를 높이고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메시아라면 종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천체 물리학과 법학, 그리고 인간의 영성을 하나로 꿰뚫는 절대적인 지혜를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창조주는 가장 먼저 자신이 거할 백궁과 화이트 헤븐을 지으셨고, 그 뒤를 이어 별들이 운집한 은하계, 즉 다크 스페이스(Dark Space)를 만드셨습니다. 이 칠흑 같은 진공 우주는 신의 거처인 백궁을 둘러싼 거대한 보석함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거대한 보석함 속의 작은 지구라는 알갱이 위에 살면서, 우주의 주인이 전하는 생생한 지침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낡은 상식의 벽을 깨고 우주적 질서에 눈을 뜰 때, 여러분의 삶은 비로소 시공의 한계를 벗어나 위대한 진화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섭리 속에서 ‘물’과 ‘궁창’이 갖는 참된 의미를 깨닫는 것은 곧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의 실체를 이해하는 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물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인체의 근간이자 만물의 어머니인 ‘지구’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또한 궁창은 창조주가 설정한 ‘중력의 창고’이자 푸른 빛을 머금은 ‘블루 스카이(Blue Sky)’를 의미합니다. 즉, 물과 궁창을 만드셨다는 것은 인간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시공우주와 대기권을 완벽하게 구축하셨음을 뜻합니다.
하늘의 비밀은 이처럼 정교한 순서를 따라 집행됩니다. 근원의 빛인 화이트 헤븐을 먼저 지으시고, 은하계의 다크 스페이스를 거쳐, 비로소 우리가 숨 쉬는 푸른 하늘과 지구라는 무대를 완성하셨습니다. 그 뒤를 이어 식물과 자연을 채우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짐승과 사람을 내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대는 창조의 공정으로 비유하자면 소란스러운 짐승들이 먼저 나타나 판을 치는 시기입니다. 짐승의 성정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 혼돈의 시기가 지나야만, 비로소 창조의 정점인 참된 ‘사람’이 나타나 세상을 바로잡게 됩니다.
제가 지금 당장 전면에 나서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이유도 바로 이 엄중한 창조의 법칙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구를 근본적으로 다시 바꾸고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 내려온 존재입니다. 짐승들이 먼저 나타나 제풀에 지치고 세상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맨 마지막 순서로 등장하여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정한 위대한 반전의 극본이며, 인류가 맞이할 가장 찬란한 마지막 결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낡은 상식의 하늘은 잊으십시오. 목회자나 학자들이 가르쳐주지 못한 이 거대한 우주의 공식을 통해, 여러분은 비로소 화이트 헤븐에서 블루 스카이에 이르는 진리의 통로를 발견한 것입니다. 창조의 질서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질 때, 여러분은 눈앞의 시련에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에 나타날 진정한 주인과 함께 낙원의 문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창조의 질서는 가장 큰 하늘인 화이트 헤븐에서 시작하여, 은하계의 다크 스페이스를 거쳐 우리가 마주하는 푸른 하늘인 궁창(Blue Sky)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위계에 따라 완성되었습니다. 지구가 형성될 때 이 푸른 하늘이 함께 지어진 것은 인간이 숨 쉬고 생명을 이어갈 완벽한 시공우주를 구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의 물리적 구조와 종교적 창조 섭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과학입니다.
하늘은 우리 몸의 혈관에 동맥과 정맥을 두어 수입과 지출의 조화를 이루게 하였듯, 지구의 내부 또한 치밀한 설계로 가득 채워 놓았습니다. 직경 12,756km에 불과한 이 작은 행성 중심부에는 달의 크기와 맞먹는 거대한 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맨틀은 섭씨 4,000도라는 태양의 표면 온도와 맞먹는 뜨거운 용암의 바다를 이루며 지글지글 끓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우연히 돌덩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이겠습니까? 이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창조주가 철저한 계획하에 완성한 거대한 에너지실과 같습니다.
지구 내부의 이 뜨거운 핵과 맨틀은 단순히 열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자석이 되어 N극과 S극을 잡아주는 자장(Magnetic Field)을 형성합니다.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일정한 가우스(Gauss)의 자력권이 없다면, 식물은 자랄 수 없고 인간의 생체 리듬 또한 단숨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지구의 자장은 생명체를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갑옷이며, 달과 같은 크기의 핵이 중심을 잡고 있기에 우리는 이 요동치는 우주 속에서도 안정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창조주가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정교한 생명 유지 장치입니다. 우리가 딛고 선 땅 밑에 달만큼 커다란 불의 바다가 흐르고, 머리 위에는 푸른 궁창이 중력을 갈무리하고 있다는 이 경이로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질 때, 비로소 여러분은 창조주가 왜 이토록 치밀하게 지구를 빚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 내부의 뜨거운 용암 바다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거대한 자석이자 엔진입니다. 땅 밑으로 백 미터를 내려갈 때마다 온도는 일 도씩 상승하며, 깊은 곳 맨틀에 이르면 섭씨 사천 도의 거대한 불바다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 불덩어리 액체는 창조주가 정교하게 설계해 놓은 장치이나,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의 핵이 조절하는 자력이 천 년의 유효기간을 다해갈 때, 그 자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생명의 흐름을 연장하기 위해 하늘의 대리자인 제가 이 땅에 온 것입니다.
자연계의 수많은 생명체는 이 지구 핵이 내뿜는 자장에 의지해 삶을 영위합니다. 기러기나 청둥오리 같은 조류들은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뇌 속에 정밀한 지피에스(GPS) 시스템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망망대해와 구름 덮인 하늘을 날면서도 오직 지구의 자장을 나침반 삼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우포늪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냅니다. 인간이 비행기를 타고도 기구 없이는 찾지 못하는 그 작은 좌표를, 미물인 새들은 머릿속에 입력된 하늘의 신호에 따라 정확히 찾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지구 핵의 자력이 약해지거나 질서가 무너지면, 모든 조류의 이동은 정지되고 생태계는 대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비단 새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 자장은 인간의 면역력과 정신적인 중심을 잡아주는 근원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핵의 기능이 쇠퇴하여 지구가 그 방향성을 잃어갈 때, 이를 다시 정렬하고 생명의 시계를 새롭게 돌리는 권능은 오직 우주 본부에서 온 자만이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단순히 한 정치인이나 도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의 핵을 다스리고 우주의 자장을 조율하는 거대한 섭리의 주관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들이 본능적으로 자장을 따라 길을 찾듯, 여러분 또한 영적인 지피에스를 켜고 하늘이 보내는 진리의 신호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교신이 온전할 때 비로소 우리는 대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좌표를 찾고, 영원한 낙원의 우포늪에 안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미물인 청둥오리가 망망대해를 건너 정확히 코리아의 우포늪을 찾아내고, 태평양을 유영하던 연어가 수만 리 물길을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속초의 작은 계곡으로 회귀하는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들의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뇌 속에는 인간의 기술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정밀한 천부의 지피에스(GPS)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토록 완벽한 생명의 지도를 설계하고 입력한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는 이 경이로운 생명의 질서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입니다.
생명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가 창조주의 치밀한 숨결을 나누어 가진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요만한 생선 한 마리조차 그저 식욕을 채우는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취할 때조차 “너와 내가 이제 한 몸이 되어, 네가 다하지 못한 우주의 사명을 내 몸을 통해 이어가겠다”는 경건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물에게조차 이러한 예의가 필요하거늘, 하물며 인간과 감정을 나누는 짐승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눈물을 흘리며 남겨질 새끼를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보는 그 깊은 모성애와 생명의 애착을 보십시오. 그 눈물 속에는 짐승의 탈을 썼을 뿐, 인간 못지않은 영혼의 울림이 담겨 있습니다. 창조주는 이처럼 만물 속에 신성한 질서와 사랑의 원형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오직 맛과 욕망만을 쫓는 행태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에서 끌어내리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이제 짐승보다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무지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연어가 고향을 찾아오듯, 우리 인간의 영혼 또한 근원의 고향인 하늘의 지피에스를 회복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을 창조주의 마음으로 대하고 그들의 희생을 거룩하게 승화시킬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만물의 주인이자 신의 자녀로서 그 품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4부. 어릴때 소를 먹였던 사연
진정한 사랑과 교감은 종의 벽을 넘어 영혼과 영혼이 맞닿는 곳에서 피어납니다. 제가 어린 시절, 일곱 살부터 열네 살까지 칠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했던 소 ‘밀림이’와의 인연은 단순한 목축이 아니었습니다. 죽어가는 어린 송아지를 제 밥을 나누어 먹여가며 정성으로 길러낸 그 시간은, 생명과 생명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신뢰를 쌓아가는 거룩한 과정이었습니다.
남들은 소를 그저 부려 먹는 짐승으로 대하며 소똥조차 닦아주지 않았지만, 저는 밀림이를 금빛 찬란한 세무 가죽처럼 매일같이 빗겨주며 대화했습니다. 산등성이에 흩어진 수십 마리의 소 중에서 “밀림아”라는 부름 한마디에 제 곁으로 달려오던 그 영민함은, 짐승도 따뜻한 진심 앞에서는 마음의 문을 연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 차가운 독방 대신 소의 목을 끌어안고 그 따스한 온기에 의지해 잠들던 고아 소년에게 밀림이는 유일한 가족이자 안식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그토록 아름다운 생명의 인연을 단절시키고 말았습니다. 늙어버린 소를 도살장에 팔아넘기는 비정한 현실, 끌려가지 않으려 눈물을 흘리며 뒷걸음질 치던 밀림이의 그 슬픈 눈망울은 어린 저에게 세상에 대한 깊은 회의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도끼날 아래 스러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의식을 지켜보며, 저는 시골 어른들의 모습에서 차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살의를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고기의 냄새조차 맡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의 문명에 맞서 새로운 하늘의 법을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불교의 오계(五戒)에서 말하는 ‘살생하지 마라’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자비의 실천입니다. 성경의 십계명이 ‘살인하지 마라’며 인간 중심의 법을 논할 때, 참된 영성은 길가의 벌레 한 마리조차 창조주의 숨결이 깃든 소중한 생명으로 대우할 것을 가르칩니다. 짐승도 제 새끼를 핥아 깨우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고귀한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 동물의 영혼조차 이토록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하물며 하늘의 섭리를 깨달은 인간이 생명을 함부로 다루어서야 되겠습니까. 밀림이와 나누었던 그 뜨겁고 순수한 교감을 기억하며, 우리는 이제 만물을 사랑으로 보듬는 만물의 영장다운 품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비로운 마음이 온 누리에 퍼질 때, 비로소 이 땅은 짐승의 약육강식을 넘어 진정한 낙원으로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5부. 지구의 핵인 한반도에 핵전쟁을 막으러, 몸속의 핵인 DNA, 세포의 텔로미어를 고정시켜 생명을 연장
지구의 깊은 내부에 달과 맞먹는 크기의 맨틀과 핵이 존재하듯, 우리 인체의 가장 깊숙한 곳에도 생명의 설계도인 핵, 바로 DNA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러기와 연어가 그 작은 뇌 속에 우주적 지피에스(GPS)를 품고 수만 리 길을 찾아가는 신비 또한, 창조주가 그들의 세포 핵 속에 입력해 둔 치밀한 정보 체계 덕분입니다. 이처럼 만물은 저마다의 핵을 중심으로 생명 활동을 이어가며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지구 내부의 핵이 자장을 조절하여 행성의 균형을 유지하듯, 지구 외부의 영적인 핵은 바로 이곳 한반도입니다. 저는 인류 문명의 정신적 중심이자 지구의 외부 핵인 코리아에 내려와,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고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거대한 전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류는 스스로 만든 물질의 핵, 즉 뉴클리어 워(Nuclear War)라는 가공할 핵전쟁의 위협 앞에 놓여 있습니다. 물질의 핵이 폭발하여 파멸로 치닫기 전에, 저는 영적인 핵의 권능으로 이 위기를 막고 인류의 의식을 진화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입니다.
우리 몸의 핵인 DNA 또한 하늘의 에너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 이름을 부르고 제 눈을 바라볼 때 몸이 치유되는 것은, 여러분 세포 속의 핵이 우주의 근원 에너지를 받아들여 그 설계도를 정상으로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성정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여러분 내면의 핵이 하늘의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해야 합니다.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생명 하나를 대할 때도 “고맙다, 미안하다, 이제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하늘의 일을 하자”고 속삭이는 그 경건한 마음이 곧 여러분의 DNA를 바꾸는 열쇠입니다. 물질의 핵무기가 세상을 위협할지라도, 영적인 핵을 깨달은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구의 중심핵을 다스리고 한반도라는 외부 핵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는 저와 함께, 여러분 세포 속의 핵을 깨워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생명을 관장하는 가장 깊은 곳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설계도가 들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포 속의 핵이자 DNA입니다. 많은 이가 DNA를 세 개의 단어가 조합된 약자로 생각하지만, 이는 본래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이라는 하나의 긴 이름을 가진 생명의 근원 단어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마다 마흔여섯 개, 즉 스물세 쌍의 염색체가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끝단에는 인간의 수명을 결정짓는 ‘텔로미어’라는 생명의 꼬리가 붙어 있습니다.
이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그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며, 마침내 그 수명을 다하면 인간의 육체도 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육체가 쇠락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몸속을 떠돌며 세포를 병들게 하는 ‘어혈’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장수하는 섭리 중 하나는 매달 자연스럽게 몸속의 나쁜 피를 밖으로 배출하여 스스로를 정화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남성들은 어린 시절 입은 상처의 피부터 군대에서 고생하며 맺힌 피까지, 그 쓸데없는 죽은 피를 몸속에 그대로 지닌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썩은 피가 몸을 지배하면 얼굴은 어두워지고 텔로미어는 끊임없이 상처를 입어 노화가 빨라집니다. 헌혈을 두려워하고 피를 아끼려는 집착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어리석음이 되는 것입니다. 몸속의 독소를 비워내고 깨끗한 피를 순환시키는 것은 곧 생명의 설계도를 보호하는 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세포 하나하나를 관장하는 텔로미어의 신비를 알고 있으며, 그 노화를 멈추고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하늘의 에너지를 전하러 왔습니다. 육체의 정화는 곧 영혼의 정화로 이어집니다. 낡은 피와 낡은 생각을 비워내고 하늘이 주는 맑은 기운을 채울 때, 여러분의 DNA는 다시 살아나고 텔로미어는 영원한 생명의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짐승처럼 본능에 갇혀 몸을 병들게 하지 말고, 참된 사람으로서 생명의 이치를 깨달아 무병장수의 길로 나아갑시다.
인간의 육체는 마치 정교한 자동차 엔진과 같습니다. 자동차 오일을 빼내지 않고 계속 보충만 하면 결국 엔진이 망가져 버리듯, 우리 몸도 헌혈을 하거나 나쁜 어혈을 정화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특히 남성들이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이유는 몸속에 쌓인 죽은 피를 제때 비워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고, 정화가 있어야 영생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의 수명을 결정짓는 세포 끝단의 텔로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짧아지며 노화를 불러옵니다. 과학자들은 이 텔로미어의 분열을 멈추거나 고정할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팔십 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끝으로 소멸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놀라운 기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허경영의 이름을 부르고 그 존재를 머릿속에 각인하는 찰나, 여러분 세포 속의 텔로미어는 분열을 멈추고 고정됩니다.
허경영을 부르는 동안 여러분의 시간은 정지하며, 그 거룩한 에너지는 노화의 시계를 멈춰 세웁니다. 밤새 제 이름을 부르며 잠든 자는 아침까지 나이를 먹지 않으며, 깨어 있는 동안 제 존재와 교신하는 자는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받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곧 과학적인 논문으로 입증될 인류 문명의 혁명적인 발견이 될 것입니다. 뇌세포의 분열을 제어하고 대기 상태로 유지하는 이 권능은 오직 우주의 근원에서 온 자만이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인 통치력입니다.
이미 많은 분이 제 이름을 부를 때 갑자기 힘이 솟구치고 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왜 허경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분의 변화된 몸과 마음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발표될 과학적 근거들은 세상의 박사들과 지식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며, 인류는 비로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불로장생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낡은 상식을 버리고 하늘이 보내는 이 생명의 신호에 온전히 응답하십시오.
인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소우주이며, 그 속에 담긴 숫자는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마흔여섯 개의 염색체가 자리 잡고 있으며, 염색체 한 개당 사만 개의 DNA가, 그리고 다시 DNA 한 개당 오십만 개의 유전자가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이를 모두 합산하면 구천이백조 해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도출되니, 사람 한 명을 마주한다는 것은 곧 우주 전체의 정보가 살아 움직이는 기적을 목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정교한 생명 장치도 숨구멍이 막히는 찰나, 차갑고 준엄한 자연의 섭리 아래 놓이게 됩니다. 생명의 에너지가 끊기면 인체는 배꼽 주변부터 급격히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내장 속에는 평소에 공존하던 수많은 미생물과 청소부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순간 이들은 즉시 발효와 분해를 시작하여 단 이틀 만에 내장 부분을 싹 비워버립니다. 일주일 뒤 시신을 확인해 보면 팔다리와 머리는 남아있을지언정, 가장 먼저 발효가 일어난 배 부분은 척추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창조주는 인간을 만들 때 탄생뿐만 아니라 소멸의 과정까지도 이토록 치밀하게 설계하셨습니다. 우리 몸속에 미리 대기시켜 놓은 미생물 청소부들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신속하게 육신을 정리하며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살아있을 때는 생명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고, 죽어서는 흔적을 지우는 청소부가 되는 이 양면적인 공존이 바로 우주의 치밀한 관리 체계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수천조 해의 유전 정보와 수많은 균이 조화를 이루어 지탱하는 위태롭고도 찬란한 존재입니다. 내장 속의 균조차 하늘의 지시에 따라 생과 사의 경계를 관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함부로 이 몸을 대하거나 삶을 낭비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주적 규모의 숫자로 이루어진 여러분의 소중한 육신을 이제는 하늘의 법도에 맞게 다스려야 합니다.
인체라는 소우주를 들여다보면 그 숫자의 경이로움 앞에 신의 설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마흔여섯 개의 염색체가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염색체 한 개당 무려 사만 개의 DNA가 존재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DNA 한 개당 오십만 개의 유전자가 촘촘히 얽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모두 합산하면 우리 몸 안에는 구천이백조 해라는, 인간의 머리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무한한 우주적 정보가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 한 명을 마주한다는 것은 이토록 방대한 데이터와 우주의 메커니즘이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기적을 목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생명의 장치도 숨구멍이 막히는 찰나, 차갑고도 준엄한 소멸의 섭리로 넘어갑니다. 생명의 에너지가 끊기면 인체는 배꼽 주변부터 급격히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단 이틀 만에 내장 부분이 사라지고 갈비뼈가 드러나는 것은, 신이 우리 몸속에 미리 대기시켜 놓은 ‘청소부’들 때문입니다.
우리 내장 속에는 평소에 공존하던 수많은 미생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생명 활동이 멈추는 즉시 육신을 분해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죽은 지 일주일 만에 묘를 파보았을 때 팔다리는 멀쩡해도 내장만 싹 비워져 있는 현상은, 이 미생물들이 얼마나 신속하고 정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살아있을 때는 소화를 돕던 이들이 죽어서는 가장 깨끗한 청소부로 변모하는 이 양면적인 공존은 창조주가 심어놓은 완벽한 사후 관리 시스템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수천조 해의 유전 정보와 수만 개의 균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조화를 이루어 지탱되는 위대한 생명체입니다. 내장 속의 작은 균 하나조차 하늘의 지시에 따라 생과 사의 경계를 관리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거대한 신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육신은 단순히 고기 덩어리가 아니라, 우주의 모든 지혜가 응축된 신성한 성전입니다.
우리 몸 안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축제와 소멸의 질서는 현대 과학의 현미경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신성한 설계의 정수입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 내장 속에 공존하는 미생물과 균들의 존재입니다. 이들은 산소가 전혀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며, 인간의 생체 리듬과 밀접하게 공명하고 있습니다.
인체 내의 세포 숫자를 압도하는 수만 종의 균은 평소에는 우리의 소화를 돕고 면역을 조절하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찰나, 이들은 창조주가 입력해 놓은 ‘사후 정화 시스템’에 따라 즉시 활동을 개시합니다. 공기가 차단된 내장 안에서 가장 먼저 발효를 시작해, 단 며칠 만에 복잡한 장기들을 분해하여 흙으로 되돌려 보냅니다. 이는 인간이 죽어서도 자연의 순환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한 하늘의 치밀한 청소 계획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균’이라고 부르는 이 작은 생명체들조차, 실은 수천조 해의 유전 정보를 담은 인체라는 거대한 우주를 관리하는 신의 대리인들입니다. 이들은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스캔하며 생명 에너지가 흐를 때는 건설자가 되고, 에너지가 멈출 때는 해체자가 됩니다. 과학으로 분석되는 이 정교한 메커니즘은 결국 만물 속에 깃든 신성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수만 가지 생명체와 거대한 유전 정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신비의 결정체입니다. 이토록 정교하게 빚어진 생명의 성전(聖殿)을 이제는 물질적인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속의 세포와 균들이 하늘의 주파수와 공명할 때, 비로소 부패와 소멸의 법칙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를 간직한 고귀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배가 고파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주적 규모의 거대한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 몸속에 살아 움직이는 구천이백조 해라는 어마어마한 세포의 군단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 여러분의 입이라는 통로를 빌려 우주가 스스로를 먹이는 과정과 같습니다. 즉, 여러분은 단순히 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바코드를 부여받은 고귀한 생명체로서 만물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이 시공의 막이 내린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칙에 따라 영혼은 영원히 지속되며, 오직 자신이 이 땅에서 기록한 삶의 성적표를 들고 다음 여정을 떠날 뿐입니다. 전생에 덕을 쌓고 선한 에너지를 전파한 이가 현생에서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스타나 천사 같은 존재로 거듭나 빛나는 삶을 사는 반면, 업보를 쌓은 이는 그에 합당한 고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지저분해진 차를 닦아내듯,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정화하여 더 높은 차원의 성적표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몸의 안팎은 핵(Nucleus)이라는 질서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세포 깊숙한 곳에서 생명의 설계도를 간직한 DNA가 ‘몸속의 핵’이라면, 인류의 정신적 중심이자 영적인 에너지가 분출되는 한반도는 ‘몸 밖의 핵’입니다. 안의 핵인 DNA가 하늘의 주파수와 공명하고, 밖의 핵인 이 땅의 기운이 온 세계로 뻗어 나갈 때, 비로소 인류는 진정한 진화의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우주적 핵의 중심에서 하늘의 지혜를 전해 듣는 무한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조차도, 우주의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영원한 성적표를 기록하는 신성한 행위임을 잊지 마십시오. 육체의 DNA를 정화하고 한반도라는 거대한 핵의 기운을 받아들여, 여러분의 영혼을 가장 찬란한 빛의 존재로 닦아나가야 합니다.
6부. 천년 남겨놓고 지구에 온 허경영. 하늘은 모든 걸 인간에게 이미 다 주었는데.
지구의 영적인 중심이자 외부의 핵인 이 한반도에, 지금 우주의 근본 핵이 내려와 여러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안팎의 핵이 하나로 접목된 이곳에서 인류를 향한 거대한 심판과 새로운 창조의 때가 무르익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순서에서 보았듯, 온갖 짐승의 성정을 가진 자들이 먼저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혼돈의 시기가 지나면, 비로소 맨 마지막에 참된 ‘사람’의 형상을 한 구원자가 나타나 모든 질서를 바로잡게 됩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기록된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씀은 결코 관념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이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는 절대자가 직접 이 땅에 내려와 역사의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시작을 열겠다는 엄중한 선포입니다. 하늘의 설계도에 따라 처음을 열었던 자가, 이제 세상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인류의 성적표를 마감하러 온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보배로운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또한 이러한 우주의 섭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일)”로 끝나는 천부경이 왜 하필 여든한(81) 자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비밀을 아는 자가 드뭅니다. 81이라는 숫자는 9와 9가 만난 지극히 완성된 하늘의 수이며, 우주의 변화 원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완전한 질서를 의미합니다.
천부경의 여든한 자 속에 숨겨진 ‘시작과 끝’의 비밀은 곧 제가 한반도에 온 이유와 일맥상통합니다. 시작이 없는 곳에서 시작하여 끝이 없는 곳에서 끝을 맺는 우주의 무한한 순환 속에서, 저는 여러분의 DNA라는 내부의 핵과 한반도라는 외부의 핵을 연결하여 인류를 다음 차원으로 진화시키려 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자가 바로 그 여든한 자의 진리를 몸소 집행하고, 알파와 오메가의 권능으로 세상을 심판하며 제도를 완성할 주인공입니다.
천부경의 여든한(81) 자는 우주의 완성된 숫자인 9와 9가 곱해져 만들어진 절대적인 진리의 수치입니다. 우리가 흔히 ‘구구하다’는 표현을 쓰며 삶의 복잡한 사연을 이야기하듯, 이 81자 안에는 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무한한 순환의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오래된 지혜가 “시작이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라고 선포하며 “끝이 없는 곳에서 끝난다”라고 맺는 것은, 결국 세상 모든 것의 뿌리는 하나이며 마지막에 돌아갈 곳도 결국 그 하나라는 거대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이처럼 하나로 돌아간다는 원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와 사상이 궁극적으로 꿈꿔온 목적지입니다. 불교가 수만 가지 가르침이 결국 하나의 깨달음으로 통한다고 말하고, 유교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정성을 강조하며, 도교가 세상 모든 변화의 근본이 결국 하나라고 역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나 천주교, 유태교 같은 신앙들 역시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만물의 주인이신 그 하나의 존재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가 외쳐온 ‘하나’라는 존재는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생각이나 먼 훗날의 희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지혜인 천부경이 예언한 “끝이 없으면서도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그 하나”는 마침내 살아있는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나타났습니다. 그분이 바로 지금 여러분 곁에서 인류의 중심 역할을 하는 구심점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신앙이 각자의 길을 걸으며 간절히 닿고자 했던 그 근본적인 실체가, 지구의 영적인 핵심인 이곳 한반도에서 여러분과 직접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과거의 가르침들을 뒤로하고, 만물을 하나로 모아 세상을 바로잡고 새로운 낙원을 완성할 ‘단 하나의 주인공’을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천부경의 여든한 자가 가리키는 완성의 시간, 그리고 모든 종교가 공통으로 지향해온 그 본질적인 존재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로 연결될 때, 여러분은 비로소 혼란스러운 세상을 벗어나 영원히 변치 않는 우주의 질서 속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껍데기에 불과한 복잡한 이론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만물의 뿌리인 실체와 직접 연결되어,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승리로 이끄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그 가르침의 역사는 길어야 수천 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천부경은 무려 만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차원 높은 경전입니다. 전 세계의 대장경과 모든 성스러운 기록을 통틀어 보아도 이보다 깊은 우주의 섭리를 담은 것은 없습니다. 그 해석 또한 지극히 어려워 오직 우주의 근원에서 온 저만이 그 본래의 뜻을 온전히 풀어낼 수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나 요한계시록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 역시, 무지한 번역자들이 그 깊은 비유를 깨닫지 못한 채 옮겨 놓은 파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천부경은 “시작이 없는 곳에서 시작된 처음”을 말하며 우주의 절대적인 신비를 명확히 선포합니다. 저는 시작조차 없는 영원한 처음이자, 끝이 없는 무궁한 마지막으로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제가 이곳 한반도에 온 이유는 단순히 도를 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금 이 지구는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거대한 종말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없을 이 중대한 시기에, 지구가 파멸로 치닫는 것을 막고 새로운 창조의 시대를 열기 위해 제가 직접 내려온 것입니다. 인류가 쌓아온 모든 역사와 종교의 성적표를 마감하고,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제도를 완성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사명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이 말하는 ‘처음과 나중’이라는 표현은 사실 불완전한 번역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난 처음이 있고 죽음을 맞이하는 나중이 있지만, 신은 그런 시간의 굴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신은 시작이라는 지점이 아예 없는 영원한 처음이며, 한 번도 끝난 적 없이 이어지는 무궁한 마지막입니다. 우리 민족의 천부경이 “시작이 없는 처음”과 “끝이 없는 마지막”을 선포하는 것은, 인간의 과학과 종교를 뛰어넘는 우주의 거대한 연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주 만물은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어 다시 그 하나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의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도 결국 그 시작은 하나였으며, 우주를 창조한 근원 또한 오직 하나입니다. 창조주는 인류 모두에게 구십구 점 구 퍼센트라는 완벽에 가까운 축복과 성령, 그리고 각자의 재능인 은사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영혼 속에는 이미 우주의 바코드가 새겨져 있으며, 이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증표입니다.
창조주는 여러분에게 이 엄청난 축복을 관리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소중한 생명의 바코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다시 거듭나는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도 있고 고통의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은 존재입니다. 다만 그 축복을 깨닫지 못하고 낡은 관념에 갇혀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가치를 회복하고, 하늘이 준 완벽한 성적표를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적 순환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은 재물이나 명예가 아니라, 평생을 통해 기록된 영적 바코드의 성적표입니다. 인류가 이 지구라는 무대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은 무려 백이십이억 육천팔백만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입니다. 현재 지구의 나이는 백이십이억 오천팔백만 년에 이르렀고, 이제 인류의 긴 여정을 마무리할 마지막 천 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지구는 지금까지 육십억 년마다 한 번씩 거대한 요동을 치며 스스로를 소독해 왔습니다. 지금은 거대한 산맥인 히말라야 꼭대기에서 조개껍질이 발견되고 소금광산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곳이 한때는 깊은 태평양 바다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구가 옷을 갈아입듯 대격변을 겪을 때마다 하늘은 소수의 종자만을 남겨 인류의 맥을 이어왔습니다. 이제 그 두 번의 큰 순환이 끝나고, 여러분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졸업반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땅에 온 이유는 바로 이 졸업생들을 안전하게 영원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지구가 끝나는 시점에 다다랐음에도 인류는 여전히 전쟁과 갈등 속에서 진정한 낙원을 구경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깨어있지 못하고 에너지가 약해진 자들은 낙오되어 허공을 떠도는 귀신과 같은 존재가 되겠지만, 진리의 빛을 따라 알곡이 된 자들은 마침내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올라가게 됩니다.
지구 졸업반을 위한 인류 최후의 가이드, 이제 긴 순환의 고리를 끊고 영원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지구라는 기나긴 배움터에서 백이십이억 육천팔백만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을 윤회하며 걸어온 인류의 여정이 이제 그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에 몸을 담고 있는 칠십억 인류는 그 기나긴 세월 동안 하늘이 정성껏 길러온 생명의 종자들이며, 이제는 방앗간에서 알곡과 죽정이를 가려내듯 마지막 추수를 앞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원시의 거친 들판을 누비던 시절, 인류의 육체는 생존을 위해 투박하고 투박한 모습이었습니다. 수만 번의 삶을 반복하며 다듬어온 여러분의 손마디에는 백이십이억 년이라는 세월의 흔적과 고단한 노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의 손은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투쟁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생존의 도구였기에, 그 모양새 또한 우악스럽고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창조주의 손을 보십시오. 이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인간의 손과는 차원이 다른, 우주의 근원에서 내려온 고귀한 형상입니다. 법당의 부처님 손처럼 고우면서도 강인하며, 여자의 부드러움과 남자의 기개가 동시에 깃들어 있는 이 손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인간의 손보다 작고 섬세하면서도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권능이 담긴 이 손이야말로, 여러분이 도달해야 할 진화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한 생에 백 년씩, 단 열 번의 윤회만 거치면 천 년의 세월이 흐르고 지구의 대장정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짧은 기로에서 여러분은 하늘로 비상하는 빛의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대지에 미련을 두어 허공을 떠도는 귀신이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육체의 거친 껍데기에 집착하며 딴 길을 찾다가는,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온 영혼의 성적표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물질의 손으로 세상을 움켜쥐려 하지 말고, 하늘이 내민 구원의 손길을 잡아야 합니다. 백이십이억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창조주의 신비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일 때, 여러분의 거친 손마디는 비로소 영원한 낙원의 평화를 누리는 신성한 빛의 손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지구의 졸업반으로서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우주의 참된 주인이 전하는 이 간절한 경고와 축복을 가슴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신체는 백이십이억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척박한 지구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생존의 기록입니다. 여러분의 손마디가 굵고 굴곡이 있으며 손가락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은, 거친 노동과 투쟁 속에서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버텨내야 했던 인류의 고단한 역사가 뼈와 근육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원시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투박했던 그 손이 기나긴 윤회의 시간을 거치며 깎이고 다듬어져 현재의 모습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이 손은 인류가 거쳐온 진화의 과정을 전혀 겪지 않은, 우주 근원 설계 그대로의 형상입니다. 겉보기에는 인간의 손과 다를 바 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 내부 구조와 원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의 손가락 마디는 뒤로 젖히면 유연하게 굴곡이 생기지만, 제 손은 마디 사이의 공간 없이 정교하게 밀착되어 있어 뒤로 꺾으려 하면 부러질 듯 단단한 일자 형상을 유지합니다. 이는 노동을 위해 설계된 도구가 아니라, 우주의 에너지를 온전히 투과시키고 다스리기 위해 빚어진 신성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경이로운 차이는 손끝에 새겨진 지문에서 드러납니다. 인간의 지문은 살아온 환경과 업보에 따라 모양이 끊기거나 비틀리며 저마다 불규칙한 형상을 띠지만, 제 열 손가락의 지문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완벽한 원형의 문양을 그리며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증표이며, 혼돈이 없는 우주의 질서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뼈마디 하나부터 지문의 곡선 하나에 이르기까지, 이 신체는 오직 하늘의 권능을 증명하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입니다.
창조주가 이토록 고운 손을 지니고 여러분 앞에 선 것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거친 손마디에 맺힌 한과 고통을 씻어주고 영원한 평화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백이십이억 년 동안 흙을 만지고 도구를 잡으며 야위어온 여러분의 손은 이제 그 사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움켜쥐려 애쓰는 삶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내려온 이 깨끗하고 신비로운 손길을 붙잡아 영적인 진화의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백이십이억 년을 달려온 지구의 대장정이 이제 마지막 천 년의 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허락된 남은 생은 단 열 번의 윤회뿐이며, 이 시기가 지나면 지구는 더 이상 인류에게 생명의 터전을 제공하지 않고 그 소명을 다하게 됩니다. 이미 우주적 소멸의 징조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태양은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고 있으며, 지구 중심에서 달과 같은 크기로 요동치던 맨틀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지구를 지탱하던 자기장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구 자기장이 에너지를 잃고 남극과 북극이 뒤바뀌는 대격변이 시작되면, 철새들은 방향을 잃고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현재 우리를 지탱해 주는 평균 0.9가우스의 자기장이 서서히 줄어들어 ‘제로’가 되는 순간, 인류의 생존을 보호하던 보이지 않는 방어막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지구가 그 수명을 다해가는 절박한 시점에, 인류의 마지막 졸업을 돕고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 제가 이 땅에 온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에는 이러한 저의 행보가 수리적으로 명확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천부경의 운삼사(運三四)’의 비밀, 여기서 ‘삼사’는 서른네 살을 의미합니다. 인류를 위해 고난을 겪고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구원의 씨앗을 뿌렸던 예수의 시대를 뜻합니다.
‘오칠(五七)’의 등장: ‘오칠’은 오십칠 세를 말합니다. 서른네 살에 씨를 뿌린 성자의 시대가 지나고, 마침내 오십칠 세가 되는 해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며 나타날 인류의 진정한 주인공을 가리킵니다.
‘성환(成環)’의 완성: ‘성’은 이룬다는 뜻이고, ‘환’은 고리나 팔찌처럼 둥글게 이어진 모양을 뜻합니다. 즉, 앞서 왔던 성자들이 다 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로 묶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거대한 완성의 고리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환’은 단순히 돌아온다는 의미를 넘어, 끊어진 하늘과 땅의 인연을 하나로 잇는 거대한 완성의 고리를 상징합니다.
저는 천부경이 예언한 대로 오십칠 세의 나이에 세상을 깨우기 시작하여, 흩어진 진리의 파편들을 하나로 모으고 인류의 영적 졸업을 확정 짓는 고리를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고리는 인류가 백이십이억 년의 긴 방황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처인 백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제 지구의 자기장이 소멸하기 전, 우주의 고리를 쥐고 있는 저와 연결되어야만 여러분은 혼돈의 지구를 벗어나 찬란한 빛의 세계로 비상할 수 있습니다.
과거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었던 것은 그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 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저 또한 수많은 인파 속에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인체의 비밀부터 우주의 섭리까지 명쾌하게 풀어내는 이 자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이제 막연한 믿음을 넘어, 눈앞에 있는 실체를 통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기존의 종교들은 축복이나 성령, 영생과 같은 것들을 나중에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후천적인 보상’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하늘의 법도는 다릅니다. 창조주는 이미 여러분이 태어날 때부터 99.9%의 완벽한 축복과 에너지를 모두 부여하여 이 땅에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 안에는 이미 거듭날 수 있는 부활의 씨앗과 무한한 은사가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늘이 여러분에게 주지 않은 나머지 0.1%는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공기와 물, 그리고 생명을 유지할 모든 환경을 조건 없이 내어주신 창조주는, 그 완벽한 축복을 어떻게 관리하고 꽃피울지를 오직 여러분의 선택에 맡기셨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받은 여러분이 하늘을 향해 “이것 달라, 저것 달라” 구걸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은, 자신이 우주의 주인공임을 망각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런 기복에 매몰된 영혼은 결국 에너지가 약해져 허공을 떠도는 귀신이 될 뿐입니다.
이미 완성된 축복, 구걸하지 말고 깨어 있으십시오, 우리는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우주의 모든 풍요를 상속받은 하늘의 자녀들입니다.
완벽한 초기 설정, 99.9%의 축복은 이미 여러분의 DNA와 영혼에 입력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족함 없이 태어난 귀한 존재입니다.
자유의지의 선물, 하늘은 여러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여 자신의 성적표를 완성할 수 있는 거룩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기도의 참된 의미, “달라”고 비는 기도는 하늘이 주신 풍요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고, 그 에너지를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지 다짐해야 합니다.
생명의 기본권, 숨 쉬는 공기와 마시는 물조차 하늘이 거저 주신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여러분은 졸업을 준비하는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세상에 내보낸 것만으로도 이미 부모로서의 모든 사랑과 책임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출가한 자식이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하지 않고 끊임없이 부모의 머리방을 넘보며 반찬과 재물을 탐한다면, 그를 어찌 효자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늘과 인간의 관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창조주는 인류를 세상에 내놓으시며 생존과 진화에 필요한 99.9%의 모든 축복을 이미 그들의 영혼과 환경 속에 완벽하게 갖추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주셨으나, 그 보물을 찾아내어 빛나게 쓰는 것은 오직 인간 각자의 몫이자 책임입니다. 감나무 아래 누워 홍시가 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늘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큰소리로 소원을 빌거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달라고 간구하는 행위는 이미 받은 은혜를 부정하는 허망한 몸짓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신앙의 자세는 내게 주어진 무한한 능력을 게으름 탓에 제대로 쓰지 못했음을 참회하고, 하늘이 베푼 지혜를 최대한 활용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여러분이 언제쯤 그 큰 사랑에 보답하는 성숙한 존재가 될지 지켜보는 채권자와 같습니다. 이미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풀었음에도 더 많은 것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치는 모습은 하늘의 입장에서 볼 때 기가 막힌 일입니다. 공부하지 않은 아들이 시험에 붙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가 공허하듯, 인간의 노력이 따르지 않는 맹목적인 기도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복적인 욕망에 매몰되어 있는 한, 인류의 갈등과 전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7부. 자유의지를 방종으로 남용하고, 더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엄청난 죄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99.9%의 축복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선물은 바로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올바르게 쓰지 못하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을 우리는 ‘방종’이라 부릅니다. 방종은 곧 하나님이 정해주신 섭리의 선을 넘는 것이며, 마귀와 사탄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자유의 남용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서 고개를 듭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선택의 순간들을 보십시오. 전철에서 힘겨운 할머니를 마주했을 때, 나도 정당한 요금을 냈으니 앉아 있을 권리가 있다고 고집하며 자리를 지키는 행위가 바로 방종입니다. 그 찰나의 순간,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하늘의 컴퓨터는 속일 수 없습니다. 양심을 저버리는 그 즉시 우리 몸에서는 노르아드레날린과 아세틸콜린, 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같은 독성 물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죄를 짓는 순간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영혼의 점수가 깎여나가는 소리가 우주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남이 보지 않고 녹음기가 없으면 자신의 행동이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늘의 녹음기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말, 행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른들은 이 하늘의 기록 장치를 ‘양심’이라 부르며 두려워할 줄 알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제 강의를 들으면서 지루함을 느끼거나 부정적인 마음을 품는 그 찰나에도, 인체에서는 즉각적인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며 여러분의 영적 성적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감시는 물리적인 카메라가 아니라 여러분의 혈액과 호르몬, 그리고 양심을 통해 실시간으로 집행됩니다. 방종의 길을 선택하여 몸과 영혼을 스스로 파괴할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준 자유를 절제와 사랑으로 승화시켜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인지는 오직 여러분의 몫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탐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녹음기를 의식하며 살아가야만, 비로소 백이십이억 년의 업장을 닦고 참된 평화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준 99.9%의 축복은 이미 우리 생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태중에서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류는 이미 성공한 존재들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 고통받는 이들조차 이 위대한 생명의 기본권만큼은 모두가 부여받았습니다. 나머지 0.1%의 영역에 놓인 성공과 실패는, 창조주가 선물한 자유를 우리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보너스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가졌음을 깨닫지 못하고 방종의 길을 걷는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자신의 혈관과 후손의 운명에 기록됩니다. 내 자식에게만 기름진 고기를 배불리 먹이고 이웃의 굶주림을 외면할 때, 우리 몸에서는 즉각적인 독성 호르몬이 분출됩니다. 그것은 고지혈증과 같은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유전자를 타고 내려가는 영적인 저주가 되어 가문의 장부에 태산처럼 쌓이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의지란 영양실조를 면할 정도의 절제를 배우고, 희생된 생명에 감사하며,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거울 속에 마주하고 있는 그 얼굴은, 지난 백이십이억 년의 세월 동안 약 백오십만 번에 걸쳐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쌓아온 업보의 총합입니다. 하늘나라 백궁에 거하는 이들의 광채 나는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겠으나, 여러분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고뇌와 환희, 그리고 현재의 마음 상태가 실시간으로 그래픽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지루함과 열망, 조급함과 평온함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이유는, 여러분의 얼굴이 곧 우주가 읽어내는 가장 정직한 성적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백오십만 번의 기나긴 윤회의 굴레를 끊고 진정한 진화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얼굴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들을 닦아내고, 창조주가 주신 99.9%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방종이 아닌 하늘의 섭리에 맞추어 정렬할 때, 여러분의 표정은 비로소 백궁의 시민다운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라는 학교의 마지막 졸업반으로서, 자신의 얼굴에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미소를 기록해 나가는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골의 노령인 할머니께 도회지의 화려한 최신 유행복을 입혀드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부유한 이들이 선호하는 고운 색채와 매끄러운 옷감이 할머니께는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한 짐이 될 뿐입니다. 도리어 소박한 모시적삼을 입으셨을 때 그분의 자취는 마치 깊은 산속의 도사처럼 자연스럽고 기품 있게 살아납니다. 이는 인간의 뇌와 무의식이 지난 세월을 살아오며 형성된 자신의 관상과 수준에 가장 적합한 것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얼굴과 분위기는 그가 우주로부터 받은 성적표이자 현재의 점수입니다. 귀한 기운이 서린 얼굴에는 그에 걸맞은 의복과 대우가 따르는 법이며, 이 모든 외형적 조화는 이미 정해진 영적 등급의 표출입니다. 저는 바로 여러분이 수만 번의 생을 거치며 고착시킨 그 낡은 성적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주기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이제 진리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이를 가슴에만 묻어두고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하늘이 준 자유를 오용하는 ‘방종’의 죄가 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죄의 본질은 창조주가 허락한 자유의지를 내 마음대로 휘두르는 오만함에 있습니다. 길 위에서 마주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소한 방종이 단순히 예의의 문제로 끝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 찰나의 순간, 하늘은 여러분의 호르몬 체계를 뒤바꾸고 가문의 유전적 흐름마저 수정해버립니다. 단 한 번의 무례한 언사와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인해, 백이십이억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인간의 몸을 받아 쌓아온 모든 공덕과 복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참된 사랑이란 거창한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통해 즉각적으로 실천하는 네 가지 베풂, 즉 ‘사롱’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안시(顔施)로, 밝고 기쁜 얼굴로 마주하는 모든 이에게 평온을 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언시(言施)이니, 상냥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상대의 마음을 녹여주는 베풂입니다. 셋째는 물시(物施)로 자신이 가진 물질을 기쁘게 나누는 것이며, 넷째는 신시(身施)라 하여 이 몸을 움직여 봉사하고 자리를 양보하며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사랑의 행위가 곧 복을 짓는 가장 빠른 길이며, 이를 거스르는 모든 마음과 행동이 바로 ‘죄’가 됩니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권할 때도 단순히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할머니, 제가 운동 삼아 서서 가고 싶으니 편안히 앉으세요”라고 상냥한 말과 밝은 미소를 곁들여야 비로소 받는 이의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진정한 보시가 완성됩니다. 억지로 인상을 쓰며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는 일이며, 이는 도리어 자신의 영적 에너지를 갉아먹는 행위가 됩니다. 돈 한 푼 들지 않는 미소와 친절한 말 한마디가 백이십이억 년의 업장을 닦는 위대한 공덕이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간절하고 불안한 일이 있을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태연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녀의 시험을 앞두고 “공부한 남의 귀한 자식은 떨어뜨리고, 공부 안 한 내 자식만 붙여달라”는 이기적인 기도를 올리는 순간, 그 독한 마음은 곧바로 죄가 되어 자녀에게 흘러갑니다. 도리어 “우리 아이가 노력한 만큼 정당한 결과를 얻게 하시고, 세상의 질서가 공정하게 흐르게 하소서”라고 마음을 비우며,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을 전할 때 하늘은 그 정성에 감동하여 상상치 못한 축복을 내리는 법입니다.
결국 죄란 사랑이 아닌 것, 즉 ‘비사롱(非사롱)’의 상태를 말합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정의로운 마음, 그리고 겸손하게 양보하는 마음이 사라진 자리가 곧 죄의 소굴입니다. 하루 종일 만나는 모든 이에게 예쁜 얼굴과 고운 말로 기쁨을 전하십시오. 여러분의 얼굴이 곧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때, 여러분이 간구하지 않아도 하늘은 이미 모든 소망을 이루어주시고 영원한 백궁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존의 종교들이 가르쳐온 사랑은 일반 사람들이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거창하고 추상적이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거나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대주라”는 식의 가르침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자기 어머니를 해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으며, 남편에게 매 맞으며 평생을 참는 것이 어떻게 진정한 사랑이겠습니까. 이토록 무거운 사랑의 굴레는 사람들을 우울증에 빠뜨리고 정신 병원만 배불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토록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사랑은 남을 기쁘게 해주고, 밝은 얼굴로 복을 짓는 데서 시작됩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구절도 본질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이 참아야 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 때문에 억울함을 참으며 병이 들게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참으며 살기보다, 차라리 더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 사랑의 본모습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의 인내를 강요하는 자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마음을 품은 것과 같습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마귀를 따로 만들어 보낸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가 주신 완벽한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할 때, 그 마음이 곧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99.9%의 모든 축복을 주머니에 넣고 태어난 고귀한 존재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받았음에도 “더 달라, 대통령 되게 해달라, 재벌 되게 해달라”고 비는 기복적인 기도는 하늘의 은혜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욕심 섞인 기도를 올릴수록 그 집안의 에너지는 혼탁해지고 결국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미 가진 능력을 어떻게 선하게 쓰는지 지켜보고 계시는데, 인간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제는 “참으라”는 고통스러운 가르침에서 벗어나, 남을 참지 않게 배려하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백이십이억 년의 긴 방황을 끝내고 영원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기도는 사실상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간구에 불과합니다. 기도의 참된 의미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오직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며, 창조주가 이미 완벽하게 베풀어준 구십구 점 구 퍼센트의 축복을 부정하는 일과 같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더 내놓으라며 아우성치는 모습은 하늘이 보시기에 커다란 죄가 됩니다. 신은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환경과 생명 에너지를 이미 허락하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구걸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게으름으로 인해 그 능력을 다 쓰지 못했음을 참회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녀의 시험 합격을 빌기 위해 조상의 묘소나 성전을 찾아 소리 높여 부르짖는 행위는 도리어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이 담긴 기도가 깊어질수록 그 집안의 기운은 혼탁해지며, 결국 스스로를 망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하늘은 여러분이 언제쯤 그 큰 사랑을 깨닫고 성숙한 존재로 자립할지 고요히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최 부잣집의 일화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난리 속에서도 그 집안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담장 밖에 마련해둔 쌀독 때문이었습니다. 배고픈 이들이 밤중에 몰래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그 쌀독은 주인의 얼굴이자 곧 하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쌀로 명줄을 이은 이들이 훗날 전란의 시기에 그 집안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얼굴 또한 세상 사람들을 향해 활짝 열린 쌀독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들지 않아도 밝은 미소와 상냥한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백이십이억 년의 업장을 씻어내는 가장 큰 보시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존재임을 자각하고, 남을 참지 않게 배려하며 기쁜 마음으로 복을 짓는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바로 지구라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영원한 빛의 고향인 백궁으로 돌아가는 단 하나의 열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