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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18 토 971 아(我)와 비(匕) 우리(宇理)의 설(舌) 진리(眞理).아(我)와 수저(匕).우리(宇理)와 혀(舌)의 참된 진리.

나 아 ‘나’라는 아집. 글자 안에 수저(匕) 모양이 있어 ‘맛 모르는 수저’에 비유돼요.
수저 비 ‘수저’. 진리(국) 속에 있으면서도 그 맛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상태를 뜻해요.
宇理 우리 집 우(宇), 이치 리(理). ‘우주의 이치’라는 뜻으로, 나를 넘어선 공동체 의식을 상징해요.
혀 설 ‘혀’. 진리를 직접 맛보고 즉각적으로 깨닫는 ‘지혜’를 상징해요.
眞理 참 진, 이치 리 변하지 않는 우주의 참된 이치.

‘나(我)’를 버리고 ‘우리(舌)’를 지향하는 삶의 태도를 배우고, 이를 통해 지혜로운 삶과 진정한 행복을 얻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1. ‘나(我)’와 ‘우리(舌)’의 이해

‘나(我)’의 의미:
‘나’는 숟가락과 같아 아무리 지식을 줘도 맛을 모르는 존재.
‘나’를 내세우면 세상이 독이 되고, 남과 원수가 되며, 스트레스를 받게 됨.
‘나’를 언급(言及)하는 사람은 결국 세상을 오염시키고 망하게 함.
‘나’를 내세우는 사람은 술을 좋아하며, 술은 인화성과 소멸성을 가져 결국 건강을 해치고 인생을 망침.
‘우리(舌)’의 의미:
‘우리’는 혓바닥과 같아 말이 필요 없이 직접 맛을 보고 터득하는 존재.
‘우리’라는 개념은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환경을 아끼며, 미래 세대를 생각하게 함.
‘우리’는 실 한 가닥이 아닌 열 가닥이 모여 천하장사도 자르지 못하는 강력한 힘을 가짐.
‘우리’를 내세우는 사람은 물과 같아 유동성, 흡수성을 가지며, 지혜롭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음.

  1. 지식(知)과 지혜(智)의 차이

지식(知):
설악산 지도를 보는 것과 같아, 실제 경험 없이 말로만 아는 것.
하늘을 눈으로 가린 것과 같아, 피상적인 이해에 그침.
기독교는 지식을 내세워 학교를 많이 만들었지만, 양심적인 사람을 만들지 못해 실패함.
지혜(智):
설악산에 직접 올라가 보는 것과 같아, 실제 행동과 경험을 통해 얻는 것.
불교는 지혜를 내세워 수행과 체험을 가르치며, 학교는 적지만 깊이 있는 깨달음을 추구함.

종교의 자유와 ‘우리’의 정신
3. 종교의 본질 이해: 모든 종교가 본질적으로 같으며,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고 ‘우리’의 정신으로 함께 나아가야 한다

모든 세계 종교는 하나:
불교와 기독교의 공통점
불교의 무아와 기독교의 부활은 본질적으로 같다.
교회 안에 십자가를 세우거나 성모 마리아 상, 예수 상을 두는 것은 불교의 불상을 모시는 것과 같은 상징성이다.
-불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믿는 것이며, 불상은 마음의 안정을 위한 방편이다.
타 종교 비난은 문제다
다른 종교를 우상 숭배라고 비난하거나, 자기 종교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가장 큰 문제이다.
모든 세계의 종교는 다 구원이 있으며, 서로 발전해야 한다.

불교와 기독교는 서로 우상을 숭배한다고 비난해서는 안 되며, 모두 순수한 신앙으로 세상을 좋게 만들려는 좋은 뜻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무아(無我)와 기독교의 부활(復活) 신앙
불교의 ‘무아(無我)’와 기독교의 ‘부활(復活)’은 같은 의미로, ‘나’를 죽이고 매일 거듭나는 것을 의미.
어제 잘못을 저질렀다면 오늘 다시 태어나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매일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 죽이고 다시 태어나면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부활이다

‘ 우리’로 나아가기 위한 깨달음: 무자기아와 무성진리
‘나’를 버리고 ‘우리’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무자기아와 무성진리를 통해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무아(無我)와 무자기아(無自欺我)
무아는 ‘나’를 매일 죽이는 것
불교의 무아는 ‘나’를 매일 죽여 없애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무자기아(無自欺我)와 같은 뜻으로,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뒤로 빠지는 것이다.
‘부작위죄’처럼 고의성이 없는 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고집을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무자기아는 ‘우리’로 나아가는 길
무자기아는 다른 말로 우리를 의미하며, ‘나’가 ‘우리’로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가 되면 실 한 가닥이 열 가닥이 되어 천하장사도 자르지 못하는 것처럼 강력한 힘을 갖게 된다.
지구인들은 개인 플레이를 멈추고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무자기아(無自欺我)와 분수(分數)
무자기아는 스스로 자기의 아상(我相)을 잃어버리고 남을 위주로 사는 것이다.
‘분수(分數)’는 자기의 수를 아는 것으로, 무아와 무자기아와 같은 의미이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겸손하게 행동하는 것이 분수를 아는 것이며, 식당 주인이 손님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자신을 낮춰야 한다.
‘지피지기(知彼知己)’처럼 자신을 알아야 상대를 이길 수 있다.

유성진리(有聲眞理)와 무성진리(無聲眞理)

유성진리: 소리를 내어 가르치는 진리

강의를 통해 진리를 설파하는 것은 유성진리에 해당한다.
공부를 통해 배운 것을 실제 생활에서 응용하고 체험해야 자기 것이 되고 지혜가 생긴다.

무성진리: 소리 없는 진리, 만물에서 깨닫는 진리

무성진리는 소리 없이 만물에서 진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바위 하나를 보더라도 그 기원과 존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 바위를 만든 자의 모습까지 보이게 된다.
바위가 물에 가라앉는 것을 보며 만유인력을 깨닫고, 지구가 돌고 있어 우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도 무성진리이다.
아파트 소나무를 보고 고독함을 느끼고, 말라 죽은 소나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는 것이 무성진리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무성진리
예수는 “길거리의 거지와 배고픈 자, 집 없는 자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분신임.
예수는 “내가 배고플 때 먹여주고, 박해받을 때 구해줬으며, 잠 잘 곳이 없을 때 재워주고, 목마를 때 물을 주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제자들이 언제 그랬냐고 묻자, 예수는 “길거리의 거지, 배고픈 자, 집 없는 자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답했다.
이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분신이며, 그들에게 베푸는 것이 곧 하나님께 베푸는 것이라는 무성진리의 가르침이다.

선종(禪宗)의 관점
유성진리(有聲眞理), 무성진리(無聲眞理)는 특히 한국의 선불교 전통에서 자주 인용됩니다.
부처님이 꽃을 들어 보이자 가섭 존자가 미소 지었다는 염화미소(拈華微笑)나, 문자를 세우지 않는다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정신이 바로 ‘무성진리’를 추구하는 태도.
“경전(유성진리)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이니, 손가락을 잊고 달(무성진리)을 보라”는 가르침과 맥을 같이 합니다.
금강경 내의 관련 근거 (제26장 법신비상분)
이 용어들이 나온 배경은 금강경 제26장의 게송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소리로써 나를 찾는다면… 결코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이 구절을 풀이할 때, “진리는 소리(유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소리 너머의 자리(무성)에 있다”고 설명하면서 유성진리와 무성진리라는 대비적인 표현을 사용하게 됩니다.

선(禪)과 교(敎)의 차이
불교는 선(禪)에 가깝고, 기독교는 교(敎)에 가깝다.
기독교는 교육 기간(학교)을 많이 만들어 가르치는 것을 중시하지만, 지식에 치우쳐 양심적인 사람을 만들지 못했다.
불교는 수행과 체험을 통해 지혜를 내세우므로 학교는 적지만, 직접 경험을 중시한다.
서양 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명상을 하는 것은 서양이 동양의 지혜를 배우려는 움직임이다.

성경과 불교 경전의 내용이 한자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우리 민족이 만든 글자에서 비롯됨.
기독교의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신)는 우리 민족의 삼신 할머니 사상과 동일.
종교는 상징성을 가질 뿐, 불상이나 십자가를 맹목적으로 믿는 것이 아님.

종교의 자유: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는 모든 종교가 구원이 있음을 인정하고, 타 종교를 비난하지 않는 것을 의미.
자신의 종교만 옳다.하는 것은 타인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

삶의 태도

덕(德)과 복(福)의 순환:
전생에 베푼 덕이 현생의 복으로 돌아오고, 현생에 베푼 덕이 다음 생의 복으로 돌아옴. 현생에 받은 복을 남에게 베풀어 덕으로 바꾸면, 다음 생에 다시 복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복덕(福德)의 반복되는 우주 섭리이다.

복을 혼자 쓰면 화(禍)가 된다 : 복을 혼자 실컷 쓰고 남에게 인색하면 죽을 때 귀신이 보이고 불행한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귀신이 된다.
복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면 불행한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귀신이 됨.
지옥은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 즉 짐승으로 태어나 말이 통하지 않는 고통을 겪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스승이며, ‘우리’를 위한 삶
만물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스승이며, 마이크 하나도 진리를 가지고 있다.

옷의 가치와 ‘우리’의 마음가짐
입고 있는 옷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남에게 벗어주기 위해 입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 자세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다.
재앙을 피하는 덕의 중요성
자기 아버지 재산으로 흥청망청 사는 사람은 비행기 사고를 조심해야 하며, 재앙이 기다리고 있다.
덕을 쌓은 사람은 비행기 추락 염려가 없으며, 어떤 재앙도 피해 간다.
복과 덕이 반복되어야 하며, 망조 드는 자식이 나타나면 집안이 저주를 받아 유전병이 생긴다.
하늘을 기울이는 것은 요절을 의미하며, 하늘의 법도를 반듯하게 받들어야 한다.

만유 인력의 깨달음:
바위가 물에 가라앉는 것을 통해 만유 인력을 깨닫고, 지구가 돌기 때문에 우리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
모든 사물에서 소리 없는 진리를 깨달아야 함.

금강경의 가르침:
사상(四相)을 타파하라
나’를 버리고 ‘우리’를 보라 ,
‘나’라는 고정된 관념을 버리는 것이 수행의 시작.
아상(我相):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있다는 착각
인상(人相): 남과 나를 구별하여 차별하는 마음
중생상(衆生相):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라는 한계짓는 마음
수자상(壽者相): 생명이나 시간에 집착하는 마음

색(色)과 소리(聲)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 (범소유상 개시허망)
눈에 보이는 모습(색)이나 들리는 평판(소리)은 진실이 아닙니다.
상(相)을 떠남: 겉모습에 얽매이지 않을 때 비로소 ‘부처’의 성품을 볼 수 있습니다.
무주상보시: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다”는 생각조차 없이 베푸는 마음이 진정한 지혜.

육여유(六如喩): 세상의 덧없음을 비유함
금강경의 마지막 사구게(四句偈)로, 모든 현상계의 속성을 여섯 가지에 비유합니다.
세상의 모든 법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으니, 모든 것을 무상하게 바라봐야.
꿈(夢): 실체가 없음
환상(幻): 허망한 변화
물거품(泡): 금방 사라짐
그림자(影): 실체를 따라다닐 뿐인 가짜
이슬(露): 찰나(刹那)의 순간
번개(電): 매우 빠르고 일시적임

결론: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어떤 결과나 상에 집착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깨어있는 마음으로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라는 것이 금강경의 최종 목적지.

제3장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 (사상(四相)의 타파와 연결)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非菩薩)”
“만약 보살이 나라는 생각, 남이라는 생각, 중생이라는 생각, 오래 산다는 생각에 얽매여 있다면 그는 보살이 아니다.”
‘나’라는 아집(아상)을 버려야만 진정으로 타인과 내가 하나임을 깨닫는 대자비의 마음(‘우리’)이 생겨납니다.
‘나’라는 고정된 상(相)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무상하게 바라보는 지혜.

제5장 여리실견분(如理實見分)(진리대로 실상을 봄, 진리를 보는 눈)
부처님께서 제자 수보리에게 “신체의 특징(외형적인 모습)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라고 물으신 뒤, 수보리가 “그럴 수 없습니다”라고 답하자 이 가르침을 주십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무릇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
약견제상비상: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본질)으로 본다면,
즉견여래: 곧 여래(진리/부처)를 보게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모든 상(相)은 허망하다.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깨달으면, 곧 부처(천사)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가난의 고통이나 부자의 고통 모두 순식간에 지나가는 허망한 것이다.
모든 삼라만상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을 무아와 무자기아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우리는 보통 눈에 보이는 돈, 명예, 외모, 건강 등을 ‘영원한 실체’라고 믿고 집착한다.
하지만 금강경은 이 모든 ‘상(相)’이 인연에 따라 잠시 나타난 허구임을 깨달으.
그 허구성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변하지 않는 진실한 성품(여래)을 마주할 수 있다는 뜻.

제10장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 (마음을 쓰는 법)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전, 과거의 부처님(연등불)으로부터 법을 얻었을 때 아무런 ‘집착’이 없었음을 설명하며 하신 말씀.
응무소주(應無所住):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집착하는 마음 없이)
이생기심(而生其心): 그 마음을 내어라 (행동하고 실천하라)
-“마음이 머무는 곳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이다.
마음에 머무는 곳이 없어야 하지만, ‘나’라는 고집은 버리되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
무아는 ‘나’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에 대한 자존심을 버리고 남 앞에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내 분수를 들여다보면 결국 ‘우리’가 보이며, 사회 전체에 관심을 가져야 내 자식도 잘될 수 있다.

선불교의 육조 대사 혜능 스님이 나무꾼 시절, 시장에서 누군가 읽는 이 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머무는 마음’이란? 과거의 후회, 미래의 불안, ‘내가 옳다’는 고집, 보상을 바라는 마음 등에 매여 있는 상태.

‘마음을 내는 것’이란? 집착을 버린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맑은 정신으로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을 자비롭게 행하는 것.

제26장 법신비상분(法身非相分)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소리로써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사된 길을 걷는 것이라 결코 여래(진리)를 볼 수 없으리라.”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나 명성, 화려한 언변 등 감각적인 현상에만 집착해서는 사물의 본질과 진리를 깨달을 수 없다는 뜻.
‘나’를 색으로 바라보는 어리석음
금강경에서는 인간이 자신을 ‘색(色)’으로 바라보면 숟가락처럼 멍청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자기만 내세우고 ‘우리’를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외모와 소리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사도(邪道)
사람의 얼굴 생김새, 가난함, 부유함, 목소리 등으로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은 사도(邪道)를 쫓는 것이다.
이는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며, 결코 부처나 천사를 만날 수 없다.
예수도 “거지나 손님 중에 천사가 있으니 함부로 대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나’를 색(외모, 부유함 등)이나 소리(목소리)로 판단하면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며, 결코 천사를 만날 수 없음.

제32장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세상의 본질 )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은 꿈과 같다
세상의 모든 법은 허망하다
이 세상의 모든 법(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이슬이요, 번개와 같다.
“인연으로 만들어진 모든 현상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한다.”
세상 모든 것이 영원하지 않고 찰나(刹那)에 변하는 무상(無常)한 것임을 깨달아,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는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라는 가르침.
시간은 총알같이 흐르며, 10년 후 지금을 생각하면 꿈과 같을 것이다.
시간과 싸우는 삶 속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물속에 잠겨 죽는 것과 같다.
모든 사물을 무상하게 바라보라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은 모든 사물을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처럼 무상하게 바라보라는 뜻이다.
이는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환경을 아끼고 보존해야 한다는 응식관(應識觀)과 연결된다.
지금의 황사는 시작에 불과하며, 미래에는 가스만 마시고 살게 될 수도 있으므로 깨달아야 한다.

균형(Balance)의 중요성:
공부만 하거나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과 휴식을 통해 삶의 균형을 유지해야 함.
인간을 외모나 지위로 판단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존중해야 함.
부자를 무조건 나쁘게 보지 말고, 그들의 노고와 사회 기여를 인정해야 함.

행복과 걱정:
걱정은 저절로 생기며, 피를 썩게 하고 건강을 해침.
기쁨은 스스로 생기며, 행복의 조건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져 있음.
외부에서 행복을 찾으려 하지 말고, 내면에서 기쁨을 발견해야 함.

지(知): 지식, 설악산 지도를 보는 것과 같이 간접적으로 아는 것.
해(解): 지혜, 설악산에 직접 올라가 보는 것과 같이 경험을 통해 아는 것.
무아(無我): 불교 용어로, ‘나’라는 고정된 실체가 없음을 깨닫는 것.
부활: 기독교 용어로, ‘나’를 죽이고 매일 거듭나는 것.
무자기아(無自其我): ‘나’를 내세우지 않고 ‘우리’를 생각하는 것.
유성 진리(有聲眞理): 소리를 내어 가르치는 진리.
무성 진리(無聲眞理): 소리 없이 사물을 통해 깨닫는 진리.
복덕(福德): 복과 덕이 서로 순환하는 관계.
지옥(地獄):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마음에 머무는 곳이 없어야 하지만, ‘나’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님.
밸런스(Balance): 균형, 자신의 분수를 알고 삶의 조화를 이루는 것.

국민의 3대 권리: 생존권, 소유권, 평등권.
민주주의 3대 원칙: 행복 추구의 원칙, 인간 존엄의 원칙, 절대 공평의 원칙.
자본주의 3대 원칙: 소유권의 절대 원칙, 계약 자유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

단어

수저(匙箸)-(수(匙)-spoon, 저(箸)-chopsticks)
유정설법(有情說法)-(유정(有情)-sentient beings, 설법(說法)-dharma talk)
무정설법(無情說法)-(무정(無情)-insentient beings, 설법(說法)-dharma talk)
지식(知識)-(지(知)-knowledge, 식(識)-discernment)
지혜(智慧)-(지(智)-wisdom, 혜(慧)-insight)
무아(無我)-(무(無)-no, 아(我)-self)
부활(復活)-(부(復)-return, 활(活)-life)
무자기아(無自欺我)-(무(無)-no, 자기(自己)-self, 아(我)-self)
유성진리(有聲眞理)-(유성(有聲)-voiced, 진리(眞理)-truth)
무성진리(無聲眞理)-(무성(無聲)-voiceless, 진리(眞理)-truth)
호흡(呼吸)-(호(呼)-exhale, 흡(吸)-inhale)
색견아(色見我)-(색(色)-form, 견(見)-see, 아(我)-self)
이음성구아(以音聲求我)-(이(以)-by, 음성(音聲)-sound, 구(求)-seek, 아(我)-self)
시인행사도(是人行邪道)-(시(是)-this, 인(人)-person, 행(行)-practice, 사도(邪道)-heresy)
불능견여래(不能見如來)-(불능(不能)-cannot, 견(見)-see, 여래(如來)-Tathagata)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일체(一切)-all, 유위(有爲)-conditioned, 법(法)-phenomena)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여(如)-like, 몽환(夢幻)-dream, 포영(泡影)-bubble)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여(如)-like, 로(露)-dew, 역(亦)-also, 전(電)-lightning)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응작(應作)-should do, 여시(如是)-thus, 관(觀)-contemplate)
범소유상(凡所有相)-(범(凡)-all, 소유(所有)-possessed, 상(相)-form)
개시허망(皆是虛妄)-(개(皆)-all, 시(是)-is, 허망(虛妄)-illusory)
약견제상(若見諸相)-(약(若)-if, 견(見)-see, 제상(諸相)-all forms)
비상(非相)-(비(非)-not, 상(相)-form)
즉견여래(卽見如來)-(즉(卽)-then, 견(見)-see, 여래(如來)-Tathagata)
응무소주(應無所住)-(응(應)-should, 무소주(無所住)-not dwell)
이생기심(而生其心)-(이(而)-and, 생(生)-arise, 기심(其心)-its mind)
유동성(流動性)-(유동(流動)-flow, 성(性)-nature)
흡수성(吸收性)-(흡수(吸收)-absorb, 성(性)-nature)
배타성(排他性)-(배타(排他)-exclusive, 성(性)-nature)
육도윤회(六道輪廻)-(육도(六道)-six realms, 윤회(輪廻)-samsara)
과실치사(過失致死)-(과실(過失)-negligence, 치사(致死)-causing death)
과실치상(過失致傷)-(과실(過失)-negligence, 치상(致傷)-causing injury)
부작위죄(不作為罪)-(부작위(不作為)-omission, 죄(罪)-crime)
만유인력(萬有引力)-(만유(萬有)-all things, 인력(引力)-attraction)
삼위일체(三位一體)-(삼위(三位)-three persons, 일체(一體)-one body)
삼신할머니(三神할머니)-(삼신(三神)-three gods, 할머니-grandmother)
천산산맥(天山山脈)-(천산(天山)-Heavenly Mountains, 산맥(山脈)-mountain range)
도읍(都邑)-(도(都)-capital, 읍(邑)-city)
금촛대(金燭臺)-(금(金)-gold, 촛대(燭臺)-candlestick)
재앙(災殃)-(재(災)-disaster, 앙(殃)-calamity)
유전병(遺傳病)-(유전(遺傳)-hereditary, 병(病)-disease)
아상(我相)-(아(我)-self, 상(相)-form)
인상(人相)-(인(人)-person, 상(相)-form)
중생상(衆生相)-(중생(衆生)-sentient beings, 상(相)-form)
수자상(壽者相)-(수자(壽者)-longevity, 상(相)-form)
지피지기(知彼知己)-(지(知)-know, 피(彼)-other, 지(知)-know, 기(己)-self)
소유권(所有權)-(소유(所有)-ownership, 권(權)-right)
생존권(生存權)-(생존(生存)-survival, 권(權)-right)
평등권(平等權)-(평등(平等)-equality, 권(權)-right)
일조권(日照權)-(일조(日照)-sunlight, 권(權)-right)

정리

  1. 지식과 지혜의 본질적 차이
    우리가 공부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면 유정설법에 불과합니다. 유정설법은 소리를 내어 가르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설악산에 올라가는 지도를 설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지도를 설명한다고 해서 여러분을 설악산에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설악산에 직접 올라가 봐야 합니다. 현재 학생 교육은 대부분 지도 교육에 해당합니다. 지도를 보고 공부하는 사람을 ‘지(知)’라고 하며, 직접 가본 사람을 ‘혜(慧)’라고 합니다. 직접 가본 사람은 많은 날을 겪어야 하는 경험이 수반됩니다. 지식은 날짜가 없지만, 지혜는 날짜가 있습니다. 지식은 입만 살아 혓바닥으로 남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을 가리는 글자인 ‘하늘 천(天)’처럼, 지식은 하늘을 가리는 행위입니다.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지’에 가깝습니다. 지식은 하늘을 눈으로 가린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설법을 들으면 생활에 응용해야 지혜가 됩니다. 노트만 생각하고 생활은 엉망으로 하며 공부만 하고 집에 가서 실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2. ‘나’와 ‘우리’의 가치: 이타적 삶의 중요성
    남에게 화를 내지 않고, 남을 오해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을 이해하고, ‘나’라는 존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만을 내세우면 모든 세상이 독이 되어 남과 원수가 되고 싸우게 되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라는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는 여러분과 나를 포함합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만, ‘우리 땅’, ‘우리 서울’, ‘우리 가족의 들’이라고 생각하면 남의 가족일지라도 공장 폐수를 몰래 버리지 않습니다. ‘나’라는 생각이 강한 사람은 공장 폐수를 몰래 버리며, 다른 사람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나’를 주장하는 사람은 결국 세상을 오염시키고 망하게 만듭니다. 지식으로 얄팍하게 포장된 상태에서 벗어나 노력하여 지혜로 나아가야 합니다. ‘날 일(日)’ 자가 붙으면 노력한다는 뜻이며, 하늘을 가린 지식이지만 노력을 통해 지혜로 바꿀 수 있습니다.

  3. 한민족의 우주적 지혜와 세계 종교의 기원
    성경이 한문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한민족이 만든 글자 중 ‘하늘 천(天)’은 하늘님을 의미합니다. 기독교와 유대교는 이를 그대로 따릅니다. 하늘을 살짝 가리면 ‘화살 시(矢)’ 자가 됩니다. 인간이 큰 대(大) 자로 되어 있고 하늘이 있으면 그것은 하늘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 사상과 같습니다. 삼신할머니 사상과 동일하게, 아이가 태어나려면 육, 영, 혼이 합쳐져야 합니다. 인간은 하늘이 33%, 땅이 33%, 인간이 33%를 투자한 주식회사와 같습니다. 기독교의 성부, 성자, 성령도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사상이 유대로 전해져 기독교와 불교가 된 것입니다.

삼신할머니에게 ‘신(神)’이라는 글자가 붙는 것처럼, 기독교의 기원을 한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늘을 기울이면 ‘요절할 요(夭)’ 자가 되는데, 이는 하늘의 법도를 지키지 않으면 재앙을 맞는다는 성경의 메시지와 같습니다. 하늘을 가로막으면 ‘화살 시(矢)’ 자가 되어 남을 쏘는 행위가 됩니다. ‘옷 의(衣)’ 자와 ‘과일 과(果)’ 자는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과일을 먹고 옷을 입게 된 성경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금할 금(禁)’ 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보지도 따 먹지도 말라는 의미입니다. 노아의 방주 이야기도 ‘배 선(船)’ 자에 여덟 식구가 탄 모습으로 한문에 나타납니다. 4만 자의 한문은 만 년 전에 나왔고, 성경은 6천 년 전에 만들어졌습니다. 우리 민족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지역에서 왔으며, 그곳은 이스라엘이 있는 곳입니다. 수메르의 지역 이름인 ‘아덴’은 기독교에서 ‘에덴’이라고 불립니다. 아브라함,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아’ 자가 붙는 이름들은 아덴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민족 최초의 수도인 아사달에도 ‘아’ 자가 붙습니다. ‘아’ 자는 이슬람 회교 마크이자 유교 마크로도 사용됩니다. ‘아’ 자에서 가로획을 없애면 십자가 모양이 됩니다. 하늘과 땅을 그려놓은 것이 ‘아’ 자이며, 십자가는 우리의 것을 모방한 것입니다. 불교 마크의 중간에도 십자가가 있습니다. 천주교 마크는 ‘PX’이며, 유대교 마크는 다윗의 별이 아닌 일곱 금 촛대입니다. 유대교 마크는 우리가 제사 지낼 때 쓰던 촛대와 같습니다. 옛날에는 기독교를 ‘템플(사원)’이라고 불렀으며, 노트르담도 사원이었습니다. 이것이 ‘처치(교회)’로 바뀌었을 뿐, 유럽의 모든 성당은 원래 사원이었습니다. 목탁, 염주, 묵주, 촛대 등 예수 문화와 한민족의 혈통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1. 숟가락과 혓바닥: 지식과 체험의 비유
    ‘나’를 강조하는 것은 ‘수저 비(匕)’ 자와 같습니다. 수저는 아무리 음식 속에 넣어도 밥맛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마치 수저와 같아서 아무리 지식을 주어도 다음 날이면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혓바닥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김칫국 맛이나 된장 맛을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터득합니다. 소나무를 보면 소나무의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나를 고향으로 보내줘, 나는 산속이 그리워”라고 소나무가 말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겠다고 소나무를 옮겨오고 돌고래를 잡아다 놓는 것은 돌고래의 몸부림을 즐거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돌고래가 말을 안 해도 설법으로 들려야 합니다. 그것이 혓바닥 같은 사람입니다. 숟가락 같은 사람에게 소나무가 뭐라고 하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답할 것입니다. 부모님이 효도해 달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이 척 보면 혓바닥처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숟가락 같은 아들뿐입니다. 마음속으로 모든 것을 보면, 나무를 볼 때 공예원이 얼마나 고생했을까 생각하고, 가구를 보면 환경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나무도 생명인데 너무 많은 가구를 만드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며 ‘가구 없는 집 만들기 운동’을 해야 합니다. 가구와 대화하지 않고 낭비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고급 주택가에는 고급 가구들이 넘쳐나고, 이는 아프리카 밀림의 나무를 베어낸 결과입니다. 외국 나무 회사들은 어느 나라를 절단 낼까 연구하며 목재를 수입합니다. 여러분의 후손들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에서 황사를 마시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 하나를 보더라도 미래를 내다보며 ‘나’가 아닌 ‘우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 나무가 우리의 것이라고 생각해야 환경이 파괴되지 않습니다.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모든 글자에 하늘의 이치가 정해져 있습니다.

  2. 세계 종교의 통일성과 무아(無我) 신앙
    모든 세계 종교는 하나입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에는 ‘무아(無我)’가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부활’이 무아와 같은 의미입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똑같은 종교인데도 서로 우상을 숭배한다고 비난합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서로 똑같은 종교이며 순수한 신앙으로 세상을 좋게 만들려는 좋은 뜻에서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무아 신앙이고, 기독교는 부활 신앙입니다. 부활은 매일 ‘나’를 죽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매일 거듭나야 합니다. 어제 잘못했다면 오늘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우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잘 되자는 것이지 ‘나’가 잘 되자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 죽이고 거듭나면서 사람이 바뀌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세운 학교는 6천 개, 불교가 세운 학교는 60개입니다.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 대부분의 대학이 기독교에서 나왔습니다. 불교는 동국대학교 등 몇 개에 불과합니다. 무아 신앙과 부활 신앙은 같지만, 기독교는 교리에 치우쳐 교육기관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불교는 ‘선(禪)’을 내세워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체험을 강조합니다. 백운대 지도를 아무리 봐도 직접 올라가 봐야 아는 것과 같습니다. 불교는 체험 종교로서 수행과 고행을 통해 지혜를 내세웁니다. 반면 기독교는 ‘교(敎)’를 내세워 가르치는 것을 강조하고 지식을 내세웁니다. 그래서 학교를 많이 만들었지만, 양심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도둑놈들이 많아졌습니다. 학교는 많이 만들었지만 ‘교’는 실패했습니다. 불교는 학교는 적게 만들었지만 수행과 체험을 통해 지혜를 내세웁니다. 서양이 동양에 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서양 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명상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나’를 내세우면 아무것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불교의 무아와 같은 것은 기독교의 부활입니다. 나를 매일 죽이면 무아가 됩니다. 무아는 다른 말로 ‘무자기아(無自棄我)’입니다.

  3. 무자기아(無自棄我)와 ‘우리’의 확장
    무자기아는 자기를 내세우지만 자기라는 것을 빼고 내세우는 것입니다. 이름만 허경영이지 남을 무시하는 태도가 없는 것입니다. 무엇을 할 때 언제나 자기는 뒤로 빠지고 남을 내세웁니다. 무자기아는 ‘우리’와 같습니다. ‘나’가 ‘우리’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에 이롭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되면 대단한 힘이 생깁니다. 실 한 가닥은 힘이 없지만, 열 가닥이 되면 천하장사도 자르지 못합니다. 지구인들은 개인 플레이를 그만하고 ‘우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나는 여러분과 경쟁하러 온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여러분에게 ‘우리’를 만들어주려고 온 사람입니다. 공부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실제로 체험해야 합니다. 가족들에게 가서 실험해야 자기 것이 되어 지혜가 생깁니다.

  4. 유성진리와 무성진리: 만물로부터 배우는 지혜
    내가 소리를 내어 진리를 설파하는 것은 ‘유성진리’입니다. 반면 ‘무성진리’는 소리 없는 진리입니다. 바위를 하나 갖다 놓으면 그 바위에서 소리가 들려야 합니다. 바위가 몇백억 년 전에 만들어졌을까, 어디에 있었을까, 족보를 파고 들어가 보면 수천억 년도 모자랍니다. 이 바위를 만든 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바위 하나만 봐도 마음속에서 소리 없는 진리가 보입니다. 바위를 바다나 강에 던지면 가라앉습니다. 이를 통해 만유인력을 깨닫고, 우리가 지구에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중력이 누르고 있으니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절벽에 매달려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구가 돌기 때문에 우리는 바깥에 붙어 있습니다. 인력이 없으면 절벽으로 추락하여 죽을 것입니다. 무성진리는 바위 하나만 봐도 깨닫고, 아파트 소나무 하나만 봐도 깨닫습니다. 소나무가 고독하다는 소리를 듣고, 말라 죽어가는 소나무를 불쌍히 여겨 만져주는 사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모든 것과 대화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할머니를 봐도 바로 그분이 천사입니다. 천사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도 “내가 배고플 때 나를 먹여주고, 박해받을 때 나를 구해주고, 잠잘 곳이 없을 때 잠재워주고, 목마를 때 물을 주지 않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언제 그랬냐고 묻자, 예수님은 “길가에 있는 모든 거지와 배고픈 자와 집 없는 자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들이 나라는 것을 너희는 몰랐느냐?”라고 답하셨습니다. 지나가는 할머니나 사람들이 그냥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분신입니다.

  5. 복과 덕의 순환: 이타적 삶의 보상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어찌 꼭 나한테 해야 된다고 하냐? 내가 꼭 십자가에 매달려야 되겠냐? 너희도 십자가에 매달려라. 매일 죽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부활 신앙이며, 불교의 무아 신앙과 같습니다. 무아는 나를 없애는 것이고, 무자기아는 나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허경영을 부르면 대답하되, 남을 깔보는 ‘나’는 버리고 어떻게 하면 남에게 이익이 될까 생각하며 ‘우리 형제로서의 나’가 되어야 합니다. 불교 금강경에서도 ‘나’를 이야기합니다. 성경에서도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라, 모든 거지나 가난한 자, 박해받는 자들에게 해준 것이 예수에게 해준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을 덕으로 바꿔야 합니다. 내가 가진 복을 현생에 다 써버리면 다음 생에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전생에 남에게 베푼 덕이 현생에 복으로 돌아옵니다. 현생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났다면 남에게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생에 하늘에 가면 복으로 남아 있습니다. 복과 덕은 반복되는 우주 섭리입니다. 그러나 복을 가지고 실컷 쓰고 남에게 인색하며 남을 괄시하면 죽을 때 귀신이 보이고 불행한 인간으로 태어나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지옥은 말이 안 통하는 세상에 사는 것을 의미하며,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을 이롭게 해야 합니다.

  6. 무성진리의 깨달음과 호흡의 비밀
    유정설법과 무성진리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우리의 스승입니다. 마이크도 우리의 스승입니다. 모든 것은 진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와이셔츠를 입고 있을 때는 가치가 없지만, 옷 없는 사람에게 벗어주면 가치가 생깁니다. 남에게 벗어주기 위해 입고 있는 마음 자세가 세상에 필요한 사람입니다. ‘나’만 내세우고 부활하지 않으며 무아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아는 정상적인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준 재산을 가지고 먹고 놀며 카지노에 가는 사람은 비행기 사고를 조심해야 합니다. 재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덕을 쌓은 사람은 비행기가 추락할 염려가 없습니다. 덕을 베풀면 어리석어 보이지만, 마음 놓고 비행기를 타도 걱정이 없습니다. 배가 침몰해도 살려줍니다. 항상 덕과 복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망조 든 자식이 나타나면 집안은 저주를 받습니다. 유전병으로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복을 자기 혼자만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하늘을 기울인 것과 같아 요절합니다. 하늘을 반듯하게 받들어야 합니다.

금강경에서는 ‘나’를 내세우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약이색견아 이거나 이음성구아 하면 시인행사도 이니 진리가 아닌 사도란 말이야”라는 구절은, 만약 인간이 자기를 색으로 바라보거나 소리로 사람을 구분하면 진리를 모르는 사도를 쫓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런 사람은 결코 천사를 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여러 거지나 손님 중에 반드시 천사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명만 와도 그중에 천사가 있으며, 사실은 모두 천사입니다. ‘나’라는 것을 버리지 않고 부활하지 않으며 남을 바라보면 천사나 부처를 만날 수 없습니다.

금강경의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은 이 세상의 모든 법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이슬이요,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시간은 총알같이 가고 있으며, 10년 후 지금을 생각하면 꿈과 같습니다. 우리는 시간과 싸우고 있으며, 그 안에 깨닫지 못하면 탈출하는 비밀 열쇠를 모른 채 죽는 것입니다.

우리가 숨을 들이쉬는 것을 ‘호(呼)’, 내쉬는 것을 ‘흡(吸)’이라고 합니다. 호흡할 때 공기가 허파로 들어가면 물로 바뀝니다. 들이쉰 공기의 80%가 물입니다. 허파는 아가미 역할을 하여 물속에서 산소를 뽑아냅니다. 모세혈관이 허파에 거미줄처럼 나와 있어 물속에서 산소를 걸러냅니다. 공기 중 20%의 산소 중 4% 정도만 흡수하고 나머지는 내보냅니다. 담배를 피우거나 먼지, 황사를 마시면 그 독이 물속에 들어가 실핏줄을 통해 피로 흡수됩니다. 황사가 뇌로 들어가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를 유발합니다. 물고기와 호흡하는 방법이 똑같습니다.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우리의 허파도 모세혈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아가미는 몸 안에 있어 건조해지지 않도록 보호됩니다. 우리는 동물과 똑같은 호흡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 마시면 4800cc의 폐활량이 들어오고, 나올 때는 3600cc가 나옵니다. 최대한 들이마셔도 폐에는 항상 1200cc의 대기 호흡이 남아 있습니다.

  1.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의 의미와 균형의 중요성
    색으로 사람을 보거나 ‘나’를 내세워 사람을 판단하면 가짜 진리이며, 이런 자는 절대 천사의 덕을 볼 수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법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요, 이슬이요,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보아야 합니다. ‘응작여시관’은 모든 사물을 그림자처럼 무상하게 바라보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을 적당히 써서 증손자, 고손자가 편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입니다. 우리가 있는 동안 나무를 다 베어버리면 후손들은 숨을 못 쉬고 죽을 것입니다. 황사가 오는 것은 시작에 불과하며, 앞으로 더 심해질 것입니다. 마스크 쓰고 살면 불쌍하니 이를 깨달아야 합니다.

숟가락 같은 학생은 아무리 공부를 시켜도 공부를 못 하지만, 혓바닥 같은 학생은 하나를 가르치면 천 개를 깨닫습니다. 숟가락 같은 학생은 천 개를 가르쳐주면 한 개도 기억 못 하거나, 기억해도 남에게 전달하지 못하고 실천하지 못합니다. 이는 개나 소에게 경을 읽어주는 격입니다. 그러나 판사나 검사, 비행기 조종사 같은 사람들은 하나를 가르쳐주면 천 가지 행동이 바뀝니다. ‘균형(balance)’이라는 단어 하나를 가르쳐주면, 학생은 “내가 엄마 아빠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공부할 때 공부하고 운동도 해야 엄마 아빠에게 짐이 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며 천 가지 행동이 바뀝니다. 이들은 이 단어 하나로 수많은 단어를 공부하고 딴 사람이 되어 고시도 붙고 출세하여 가족을 일으켜 세웁니다. 그러나 천 개의 단어를 가르쳐도 졸고 있는 학생도 있습니다. 대한항공 여자 승무원 사건처럼, 사람을 색으로 판단하면 안 됩니다. 여자라고 무시하거나, 촌놈이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깍듯이 FM대로 대접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실수했다면 즉시 사과해야 합니다. 부자들은 그만큼 고생하므로 대우를 해줘야 합니다. 부자를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을 버려야 합니다. 부자들이 세금의 70%를 내주므로 무조건 나쁘게 보면 안 됩니다.

  1. 무아와 부활의 동일성, 그리고 종교의 자유
    무아와 부활은 같습니다. 불교와 기독교는 똑같은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 종교입니다. 교회 안에 십자가를 세워놓는 것이나 성모마리아상, 예수상이 있는 것을 우상이라고 비난하면 안 됩니다. 불교나 기독교나 상징성이 있는 것을 가져다 놓은 것이지, 불상이나 십자가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믿는 것입니다. 불상은 마음의 안정을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다른 종교를 보고 우상이라고 하거나, 자기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모든 세계 종교에는 다 구원이 있습니다. 그래야 기독교도 불교도 발전합니다. 강의를 들으면서도 몸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을 해야 합니다. 너무 도박이나 강의 듣는 데만 미치면 안 됩니다.

금강경의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 卽見如來)”는 모든 상은 허망하며, 눈에 보이는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깨달으면 바로 천사를 만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가난의 고통도 돈 있는 사람의 고통도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진리를 깨닫고 덕을 쌓으면 원하는 세상에 태어납니다. 모든 삼라만상을 상에 얽매이지 않고 바라보는 것을 무자기아라고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아상을 잃어버리고 남을 보면 그 손님 위주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나 시아버지가 오면 내가 없어져 버리고 그분들의 불편함이나 필요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며느리로서의 나는 있지만, 자존심은 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분수’를 아는 것입니다.

  1. 분수(分數)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분수’는 균형과 같습니다. 자기 분수를 안다는 것은 자기의 능력을 아는 것입니다. 무자기아는 자기 분수를 아는 것과 같습니다. ‘나’를 내세우면 분수를 모르는 자이고, ‘나’를 내세우지 않으면 분수를 아는 자입니다. 며느리가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고 하면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태권도 1단이 10단에게 대들면 지는 것과 같습니다. 분수를 알면 자기를 낮춥니다. 식당 주인이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손님에게 절해야 합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적을 알려면 자기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뜻이며, 이것이 분수입니다. 자신의 페이스를 알아야 상대를 이길 수 있습니다.

금강경의 마지막 구절인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은 마음이 머무르는 곳이 없어야 하며,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나와 남을 구분하지 말고, 내 마음이 유(有)가 되어서도 무(無)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시아버지 앞에서 며느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하지만, 자존심은 버려야 합니다. 무아는 나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남 앞에 너무 내세우지 말고 조용하게 가지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내 분수만 알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내 분수를 들여다보면 시아버지와 내가 남남이 아니며, 지나가는 강도와도 남이 아닙니다. 사회가 좋아져야 내 자식도 잘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입니다.

  1. 종교의 자유와 국민의 권리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환웅의 부인 이름인 ‘여와(女瓦)’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갓을 쓰는 것도 우리 민족과 같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갓(god)’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을 의미합니다. 종교를 가지고 서로 자기 종교만 좋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우리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습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 사상, 표현, 양심의 여덟 가지 자유가 국민에게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상대방의 종교에게 구원이 없다고 하면 불법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전도할 때 예수님같이 행동을 보여줘야지, 상대방 종교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내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나’를 없애고 거듭나야 합니다. 상대방 종교에게 “너희는 구원이 안 된다”거나 “우리는 백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데 너희는 누더기 같은 집에 산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헌법에서도 남의 종교의 자유권을 침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슬람은 ‘우리 아니면 다 죽여’라는 극단적인 태도를 보이며, 자기들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기독교나 불교도 마찬가지로 자기 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무아 신앙과 부활 신앙은 같은 것입니다. 옛날 노트르담 사원도 묵주와 염주를 가지고 있었고 종을 쳤습니다. 동양의 종교가 서양으로 건너간 것인데, 서양의 종교를 동양이 흉내 내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적반하장입니다.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습니다.

국민의 3대 권리는 소유권, 생존권, 평등권입니다. 아파트가 집 앞을 가려 햇볕이 안 비추면 생존권을 위협하는 것이고, 일조권이 여기서 나옵니다. 평등권은 햇볕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를 의미합니다. 빌딩이 집 앞을 가리면 시비 걸 수 있으며, 빌딩 짓는 사람이 돈을 줘야 합니다. 재산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허공에도 있으며, 이를 팔아먹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협의 없이는 소유권, 생존권, 평등권을 착취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 3대 원칙은 행복 추구의 원칙, 인간 존엄의 원칙, 절대 공평의 원칙입니다. 전지현 씨가 강남에 집을 샀는데 대문을 내려고 하자 이웃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반대하는 것은 행복 추구의 원칙에 걸리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3대 원칙은 소유권 절대 원칙, 계약 자유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입니다. 북한에는 이러한 원칙이 없습니다.

  1. ‘나’와 ‘우리’의 상징: 술과 물
    ‘나’를 주장하는 사람과 ‘우리’를 내세우는 사람의 차이는 큽니다. ‘나’를 주장하는 사람은 피가 썩고 얼굴빛이 안 좋습니다. 술을 많이 마시며 화딱지가 납니다. 술은 위로 올라가고 인화성을 가집니다. 반면 ‘우리’를 내세우는 사람은 물과 같습니다. 물은 유동성을 가지며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자기 주장을 하지 않지만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물은 지혜를 상징하고, 불은 무지를 상징합니다. 불은 씨를 남기지 않고 다 태워버리지만, 물은 지혜로워 없어지지 않습니다. 물은 뿌리가 없고 자유자재하지만, 불은 원료가 없으면 붙을 수 없습니다. 직장에 고용되어 갇혀 있는 사람은 불 기운, 즉 술을 좋아하게 됩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는 사람은 물처럼 유동성과 흡수성을 가집니다. 흡수성이 있는 사람은 시어머니, 시아버지, 시동생 등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습니다. 자기를 내세우면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물과 같은 사람은 흡수성이 있어 어떤 사람도 싫어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 같은 사람은 배타성이 있어 남을 밀어냅니다. ‘나’를 내세운 사람은 늙으면 피부가 썩지만, ‘우리’를 내세운 사람은 늙어 죽을 때에도 피부가 윤이 납니다. 남편이 젖 먹이는 아내를 꾸짖으면 아기의 젖이 상하고 독이 생겨 아기가 설사를 합니다. 부부가 싸우면 위장병 있는 아이가 태어납니다. 모든 것이 ‘나’라는 것이 원인입니다. 물과 같은 여자가 시집오면 집안이 좋습니다. 술과 물은 ‘나’와 ‘우리’를 이야기할 때 중요한 비유입니다.

  2. 걱정과 기쁨의 본질: 내면의 발견
    걱정은 탐욕 때문에 생기고, 기쁨은 주는 것 때문에 생긴다는 답은 정답이 아닙니다. 걱정은 저절로 생깁니다. 내 마음을 컨트롤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으면 걱정이 생겨 피가 썩습니다. 그 피로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 아이가 약해집니다. 기쁨도 스스로 생깁니다. 우리의 행복이나 기쁨은 우리 몸 안에 다 있지만, 우리는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계속 외부에서 찾습니다. 기쁨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생기고, 걱정도 저절로 생깁니다. 기쁨이 걱정을 이겨야 하는데, 걱정한테 져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합니다. 이건희 회장도 행복과 걱정을 플러스 마이너스 하면 평범한 지게꾼과 동격이 되거나 걱정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정치인에게 잘못 보이면 구속되기도 하고, 수많은 사람이 그를 노립니다. 그의 고통과 기쁨을 마이너스 플러스 하면 지게꾼만도 못합니다. 모든 사람은 기쁨을 다 가지고 있고,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장애인도 장애인만큼 편한 것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맨날 걱정으로 인생을 망치고 피를 썩게 합니다. 이를 명심해야 합니다.

정리

허경영 강연 기록물: ‘나’와 ‘우리’의 진실, 우주의 지혜를 밝히다
본 기록물은 허경영 선생의 강연 중 ‘나’와 ‘우리’의 본질, 그리고 우주의 지혜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담고 있다. 강연자는 지식과 지혜의 차이, 개인주의와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 그리고 모든 종교와 진리가 궁극적으로 하나임을 역설하며,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이 기록은 후대에 전해질 중요한 철학적 유산으로서, 인류의 정신적 성숙에 기여할 것이다.

제1장 지식과 지혜: 설악산 등반의 비유

1.1 유정설법과 무정설법
유정설법: 강연자가 소리를 내어 직접 가르치는 방식으로, 지도를 설명하는 것과 같다.

무정설법: 말이 필요 없는 설법으로, 혓바닥이 음식 맛을 즉시 아는 것처럼 직접 경험하여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1.2 지식과 지혜의 차이
지식(知): 설악산 지도를 보는 것과 같이 간접적으로 아는 것이다. 학교 교육은 대부분 지식 교육에 해당한다.

지혜(慧): 설악산을 직접 올라가 보는 것과 같이 몸소 경험하여 깨닫는 것이다. 이는 많은 날(日)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

지식은 하늘을 눈으로 가린 것과 같으며, 실제 행동과 경험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강연자는 설법을 듣는 것을 넘어 생활에 응용하고 직접 실험해야만 지혜가 된다고 강조한다.

제2장 ‘나’와 ‘우리’의 철학: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

2.1 ‘나’ 중심 사고의 폐해
‘나’만을 내세우는 사고는 모든 세상을 독으로 만들고, 남과 원수가 되며,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등 이기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결국 ‘나’를 주장하는 사람은 세상을 오염시키고 망하게 한다.

2.2 ‘우리’ 중심 사고의 가치
‘우리’라는 의식은 타인과 공동체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리 땅’, ‘우리 서울’, ‘우리 가족’처럼 생각하면 남의 가족일지라도 해를 끼치지 않으려 노력한다.

‘우리’가 없는 사람은 공장 폐수를 몰래 버리는 등 타인에게 무관심하다.

강연자는 미래를 내다보며 ‘내가 아닌 우리’라는 생각을 가져야 환경이 보존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2.3 지식에서 지혜로의 전환
얄팍한 지식으로 포장된 ‘나’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노력을 통해 지혜로 나아가야 한다.

‘일(日)’ 자가 붙은 지혜는 노력을 통해 하늘을 가린 지식을 지혜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제3장 모든 세계 종교는 하나다: 한민족의 우주 철학

3.1 한문의 기원과 종교적 상징
허경영 선생은 성경이 한문에서 나왔다고 주장하며, 한민족이 만든 글자에 우주적 지혜가 담겨 있다고 설명한다.

‘하늘 천(天)’ 자에서 하늘을 살짝 가리면 ‘화살 시(矢)’ 자가 되는데, 이는 남을 쏘는 행위를 상징한다.

‘큰 대(大)’ 자에 하늘이 더해진 글자는 인간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3.2 삼위일체와 삼신할머니 사상
기독교의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는 한민족의 삼신할머니 사상과 동일하다.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은 영(하늘), 육(땅), 혼(인간)의 세 요소가 합쳐지는 것으로, 하늘, 땅, 인간이 각각 33%씩 투자한 ‘주식회사’와 같다.

기독교와 불교는 한민족이 만들어낸 사상이 유대로 전파된 것이다.

3.3 한자 속 성경 이야기
옷 의(衣) + 과일 과(果): 하늘에서 먹지 말라는 과일을 먹고 옷을 입게 된 에덴동산 이야기를 상징한다.

금할 금(禁):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보지도, 따 먹지도 말라는 금기를 의미한다.

배 선(船): 노아의 방주에 8명의 식구가 탔던 이야기를 상징한다.

4만 자의 한문은 만 년 전에 나왔고, 성경은 6천 년 전에 만들어졌으므로, 한문이 성경의 근원임을 시사한다.

3.4 수메르 문명과 ‘아(我)’ 사상
한민족은 메소포타미아 수메르(현 이스라엘 지역)에서 왔으며, 그 지역 이름이 ‘아덴’이다.

‘아(我)’ 자는 아브라함,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여러 지명에 붙는 기원이 된다.

한민족 최초의 수도인 아사달에도 ‘아’ 자가 붙는다.

‘아(我)’ 자는 십자가를 특이하게 변형한 형태로, 하늘과 땅을 그려 넣은 것이다.

이슬람교의 마크도 ‘아’ 자와 관련이 있으며, 유교 마크도 ‘아’ 자를 사용한다.

3.5 세계 종교 마크의 공통점
불교: 불교 마크 중간에도 십자가 형태가 있다.

천주교: 알파벳 P와 X를 합친 PX 마크를 사용한다.

유대교: 다윗의 별이 아닌 일곱 금촛대가 마크이다. 이는 한민족이 제사 지낼 때 쓰던 초와 같다.

기독교: 과거에는 ‘템플(사원)’이라 불렸으며, 노트르담 대성당도 원래는 사원이었다.

유럽의 모든 성당은 옛날에 사원이었고, 목탁, 염주, 묵주, 촛대 등 불교적 요소가 존재했다.

이는 예수의 문화와 혈통이 한민족의 혈통에서 비롯되었음을 의미한다.

제4장 무아(無我)와 부활(復活): 진정한 깨달음의 길

4.1 무아 신앙과 부활 신앙의 동일성
불교의 ‘무아(無我)’ 신앙과 기독교의 ‘부활(復活)’ 신앙은 본질적으로 같다.

부활은 매일 ‘나’를 죽이고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나’라는 존재를 버리고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매일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다시 태어나면서 사람이 변화하는 것이 부활이다.

4.2 선(禪)과 교(教)의 역할
선(禪): 직접 행동으로 옮기고 체험하는 것을 중시하는 불교와 같다.

교(教): 가르치는 것을 중시하는 기독교와 같다.

기독교는 교육기관을 많이 만들었지만, 얄팍한 지식 전달에 그쳐 양심적인 사람을 만들지 못했다.

불교는 체험 위주로 지혜를 내세우므로 학교가 적다.

서양이 지식을 내세우다 동양의 지혜에 지는 형국이다.

4.3 무자기아(無自棄我)와 ‘우리’
‘무아’는 ‘무자기아(無自棄我)’와 같은 뜻이다.

무자기아는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며 뒤로 빠지는 태도를 의미한다.

무자기아는 곧 ‘우리’이며, ‘우리’는 우주에 이로운 것이다.

개인 플레이를 멈추고 ‘우리’로 하나가 될 때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강연자는 경쟁이 아닌 ‘우리’를 만들기 위해 왔다고 말한다.

제5장 진리의 두 가지 형태: 유성진리와 무성진리

5.1 유성진리(有聲眞理)
강연자가 소리를 내어 진리를 설파하는 것처럼,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진리이다.

5.2 무성진리(無聲眞理)
소리 없이 깨닫는 진리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스승이 될 수 있다.

바위 하나를 보더라도 그 기원과 우주적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바위가 물에 가라앉는 것을 통해 만유인력의 법칙과 지구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아파트의 소나무를 보고 고독함을 느끼는 것처럼, 모든 사물과의 대화를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제6장 금강경의 가르침: 무상(無常)과 무주(無住)

6.1 약이색견아 이음성구아 시인행사도 불능견여래
사람을 외모(색)나 목소리(음성)로 판단하는 것은 진리를 모르는 ‘사도(邪道)’를 쫓는 행위이다.

이러한 사람은 결코 천사나 부처(여래)를 만날 수 없다.

예수도 길가의 거지나 가난한 자, 박해받는 자들이 곧 자신이라고 말했다.

타인을 천사로 보지 않고 ‘나’만을 내세우는 사람은 천사를 만날 수 없다.

6.2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세상의 모든 법(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다.

시간은 총알같이 지나가며, 과거는 꿈처럼 사라진다.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모든 사물을 이처럼 무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현재를 적당히 사용하여 후손들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의미한다.

환경을 파괴하면 후손들은 숨조차 쉬기 어려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다.

제7장 숟가락과 혓바닥: 깨달음의 차이

7.1 숟가락 같은 학생
아무리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고 기억하지 못하며,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천 가지를 가르쳐도 100개를 기억 못 하고, 100개를 기억해도 10개를 전달 못 하며, 10개를 전달해도 1개를 실천 못 한다.

이는 개나 소에게 경을 읽어주는 격이다.

7.2 혓바닥 같은 학생
하나를 가르치면 천 개를 깨닫고, 천 가지 행동이 변화하는 사람을 비유한다.

‘균형(Balance)’이라는 단어 하나를 배우면, 자신의 삶과 가족, 미래를 위해 스스로 운동하고 공부하며 노력하는 사람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사람은 고시에 합격하고 출세하여 가족을 일으켜 세운다.

제8장 균형(Balance)과 분수(分數): 올바른 삶의 태도

8.1 색견아(色見我)의 경계
사람을 외모, 성별, 출신, 지식 수준 등으로 판단하는 ‘색견아’는 잘못된 태도이다.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은 일등석 승객을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한 ‘색견아’의 사례이다.

상대방의 직위나 배경에 상관없이 예의를 갖추고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8.2 자본주의와 부자에 대한 시각
부자들은 돈을 버는 만큼 고생과 불안을 감수한다.

대기업 사장이 빌딩 청소부를 부러워하는 실험 사례는 부자의 삶이 결코 행복하지만은 않음을 보여준다.

부자를 무조건 나쁘게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하며, 부자들은 세금의 70%를 부담하며 사회에 기여한다.

부자를 존중하는 태도는 ‘부활하는 자’의 모습이다.

8.3 분수(分數)와 무자기아(無自棄我)
‘분수’는 ‘균형(Balance)’과 같은 의미로,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아는 것이다.

자신의 분수를 모르면 문제가 발생하며, 이는 ‘무자기아’와 연결된다.

자신을 내세우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것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은 분수를 아는 것이다.

지피지기(知彼知己): 적을 알려면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말처럼, 자신을 아는 것이 곧 분수를 아는 것이다.

제9장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집착 없는 마음

9.1 무아(無我)의 진정한 의미
응무소주 이생기심: 마음에 머무르는 곳이 없어야 하며,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무아’는 자신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고집이 없어지는 것이다.

며느리가 시아버지 앞에서 자신의 자존심을 버리고 시아버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무아의 실천이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중요하다.

9.2 ‘우리’의 확장된 개념
자신의 분수를 들여다보면, 시아버지뿐만 아니라 강도, 교통사고를 내는 사람까지도 남이 아님을 깨닫는다.

사회가 좋아져야 내 자식도 잘 될 수 있으므로, 모든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라는 개념의 확장이다.

제10장 종교의 자유와 평등: 헌법적 가치

10.1 모든 종교는 하나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은 환웅의 부인 ‘여와(女瓦)’에서 유래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갓을 쓰는 등 한민족과 유사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갓(God)’이라는 단어도 우리 조상들이 사용하던 ‘갓’에서 유래했다.

종교를 가지고 서로 자기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10.2 헌법에 명시된 종교의 자유
대한민국 헌법에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 사상, 표현, 양심의 8가지 자유권이 보장되어 있다.

모든 종교는 상대방 종교에게 구원이 없다고 주장하면 불법이다.

종교를 전파할 때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보여주어야 하며, 상대방 종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는 남의 종교 자유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10.3 국민의 3대 권리와 민주주의 3대 원칙
국민의 3대 권리: 소유권, 생존권, 평등권이다.

일조권 침해는 생존권과 평등권에 해당한다.

재산권은 눈에 보이지 않는 허공에도 존재하며, 협의 없이는 침해할 수 없다.

민주주의 3대 원칙: 행복 추구의 원칙, 인간 존엄의 원칙, 절대 공평의 원칙이다.

전지현 씨의 대문 설치 사례는 행복 추구의 원칙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원칙들은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사회의 공정성을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

10.4 자본주의 3대 원칙
소유권 절대 원칙, 계약 자유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이다.

이 원칙들은 북한과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11장 물과 술: ‘우리’와 ‘나’의 상징

11.1 ‘나’를 내세우는 사람: 술의 속성
‘나’를 주장하는 사람은 피가 썩고 얼굴빛이 좋지 않으며, 술을 많이 마시는 경향이 있다.

술은 위로 올라가는 성질(인화성)을 가지며, 많이 마시면 건강이 나빠진다.

불은 무지를 상징하며, 씨를 남기지 않고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

불은 원료가 없으면 붙을 수 없듯이, ‘나’ 중심의 사람은 고용되거나 갇혀 있는 불 기운을 좋아한다.

불 같은 사람은 남을 밀어내는 배타성을 가진다.

‘나’를 내세우는 사람은 늙으면 피부가 썩는다.

부부가 싸우면 엄마의 액체가 썩어 아기에게 독이 되고, 아기가 병약해진다.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나’라는 이기심이다.

11.2 ‘우리’를 내세우는 사람: 물의 속성
‘우리’를 내세우는 사람은 물과 같이 유동적이며,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낮은 곳으로 흐른다.

물은 지혜를 상징하며, 먹을수록 건강에 좋다.

물은 뿌리가 없이 자유자재하며, 구름처럼 허공을 날아다닌다.

물 같은 사람은 흡수성이 있어 시어머니, 시동생 등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다.

이러한 사람은 늙어 죽을 때까지 피부에 윤기가 흐른다.

물과 같은 여자가 시집오면 그 집안은 화목해진다.

결론: 깨달음과 실천의 중요성
허경영 선생은 강연을 통해 우리가 ‘나’라는 이기심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고,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지혜를 추구하며, 모든 종교와 진리가 하나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걱정은 저절로 생기지만, 기쁨 또한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므로, 외부에서 행복을 찾지 말고 내면의 기쁨을 발견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행복의 조건을 평등하게 가지고 있으며, 이를 깨닫고 실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 이 가르침은 후손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이다.

스크립트

이게 수저 비 자 이잖아. 이것은 무슨 글자에요? 표 설 자. 이것은 유정 이에요.

유정. 이것은 무정. 이게 뭐냐 하면 실제는… 오늘은 우리가… 내가 공부를… 이제 쭉… 마이크 줘. 공부를 가르치면 공부를 여러분들이 어떻게 하는가?

그걸 보는 거예요. 여기에서 아무리 내가 여러분들한테 공부를 가르쳐주고, 이 인터넷으로 이 영상을 전 세계에서 보는데 그들이 허경영의 강의를 들어도, 공부하는 방법을 모르면 이 사람들은 유정설법이에요.유정설법은 내가 소리를 내서 여러분한테 가르치는 거예요.

여러분들이 알아 놔야 될 것은 아무리 가르쳐도 설악산에 올라가는 지도를 내가 설명하는 거예요. 지도를 설명하는 거지 여러분들을 설악산에 데리고 갈 수 있나
? 없어요. 여러분들은 설악산에 직접 올라가 봐야 돼요. 그런데 학생들을 모아놓고 지금 하고 있는 애들 교육이 전부 지도교육이야. 지도. 응. 지도를 GPS 갖다 놓고 우주 설명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설악산을 직접 가보는 사람과 설악산의 지도를 보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요. 그래서 이렇게 설악산의 지도를 보고 공부하는 사람을 뭐라고 하냐면 지라고 해.여기는 지 야.이 쪽 사람은. 직접 가본 사람은 뭐라고 해요? 혜 란말이에요.

혜. 무슨 말인지 알죠? 직접 가본 사람은 앞에있는 지 자 가 달라져. 날짜가 들어간 거야. 많은 날 이걸 겪어야 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것은 날짜가 있어요 없어요? 이것은 날짜가 없다. 이것은 날짜가 없는데 입만 살아가지고 혓바닥으로 남을 속인다. 즉 뭐냐 하면 잘 봐요. 이게 무슨 글자이죠? 하늘 천 이죠? 하늘 천인데 하늘을 가리는 거야. 이게 하늘이야. 이게 하늘에 가까운 거고, 이거는 뭡니까? 하늘하고 반대야. 땅에 가깝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이것은 하늘이 있는데, 하늘을 이렇게 살짝 가려. 걔네가 입으로 떠드는 거야. 그러니까 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여기에 가깝다. 지. 그래서 이걸 우리가 일반적으로 할 때 다른 말로 바꾸면 지 의 반대가 뭐예요? 지식할 때는 이거야. 내가 쓰는걸 잘못 썼네. 지식 할 때 식 자 에 소리 음자가 들어가요 안 들어가요? 말 만. 이것도 말씀이고 이것도 소리야. 말로만 공부해서 아는 거지. 실제 행동으로 이 날 일 자 경험을 한 게 아니다 이 말이에요. 그러면 이거는 지혜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지식은 뭐예요? 하늘을 눈으로 가린 거야.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 공부를, 내가 이렇게 설법을 해주면 생활에 가서 응용을 해야 돼. 그래야 이게 지혜가 되는 거예요. 지혜가. 그런데 맨날 노트만 생각하고 생활은 엉망으로 하고 공부만 하고 집에 가서 실험을 안 해보면 안돼. 내가 남한테 절대 화를 내지 마라, 남을 오해하지 마라, 모든 사람들을 이해 해라, 나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이건 나야. 나 아 자야. 나라는 것만 내세우면 모든 세상이 내 몸에 독이 돼버리는거야. 남과 원수가 되고 모든 사람과 싸우게 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나라는 건 없어 우리라는 거. 우리라고하는 것은 여러분과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려요. 그런데 이게 우리 땅이다, 이게 우리의 서울이다, 이게 우리 가족의 들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남의 가족일지라도 더러운 개천물을 먹지 않도록 공장폐수를 못 버려요. 근데 나라는 생각이 강한 사람, 우리가 없는 사람은 공장 폐수를 몰래 버려요. 다른 놈이야 죽든 말든 내가 아닌데 뭘, 나는 저 물 안 먹을 거야. 이러고 앉아 있어요. 나를 주장하는 사람은 결국 세상을 오염시키고 망하게 만드는 거야. 그리고 지식으로 얄팍하게 포장이 돼 있어. 여기에 여러분들이 계속 공부해가지고 이 단계를 가야 돼. 노력한다는 뜻이야 이 일 자가 붙으면. 하늘을 가린 지식이지만 그래도 노력을 해서 지혜로 바꿨다 이 소리야. 음. 그러니까 이 지식을 가지고 살아가면 하늘이… 내가 여러분한테 성경이 한문에서 나왔다는 말을 했잖아. 잘 봐. 이게 무슨 자 에요? 우리나라의 우리 한민족이 만든 글자

우리는 하늘을 하늘님이라고 해. 그런데 기독교, 유대교가 다 이걸 그대로 따라 해요. 그럼 여기에서 하늘을 살짝 가리면, 화살 시 자야. 화살 시. 근데 이것은 인간인데, 인간이 큰 대 자로 이렇게 돼 있는데, 여기에 하늘이 있어요. 그럼 이거는 하늘이야 그러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가지는 기독교 3위일체, 성부 성자 성령. 3위 일체가 우리의 삼신할머니 사상과 똑같아요. 응? 애가 하나 나오려면 애의 육과 영과 혼이 있는데, 삼신 할머니가 세 개의 세계, 하늘에 있는 영과 땅에 있는 육과 혼이 합쳐져 가지고 여자의 몸. 그게 합쳐서 어린애가 하나 나오는 거야.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것은 어디에 누가 투자를 제일 많이 했어요?

하늘이 33프로를 투자해. 그 다음 땅이 몇 프로를 투자해요? 33프로. 인간이 33프로. 그래서 이게 주식회사야. 그러니까 기독교도 성부 성자 성령 그러잖아. 왜? 같은 우리 민족이 만들어낸 것이 유대로 가 있는 거예요. 그게 기독교고 불교야. 불교와 기독교는 한민족이 만든 거야. 자, 그런데… 진동으로 해놔라. 그것도. 자 우리의 삼신 할머니한테 이 신이라는 글자가 붙어요 안 붙어요? 어때요? 이렇다니까. 원래 기독교가…예를 들어서 기독교에… 여기서 보면, 자 여기 보면,왜 우리 민족이 한문을 만들 때 기독교가 여기서 나왔냐고 하는지를 잘 봐요.

여기의 하늘을 살짝 기울여. 하늘을 기울이면 무슨 글자에요? 이게 요절할 요 자 야. 요절. 그러니까 이게 성경이 필요가 있나 없나? 하늘을 기울이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 이 말이야. 그럼 이게 성경이지 뭐야? 하늘, 이 위의 글자에 하늘이 살짝 기울어졌다, 하늘의 법도를 우리가 안 지키고 아버지를 아들이 두들겨 팼다? 그러면 집안은 망해. 요절 되는 거야. 요절. 뭐 이상한 사고로 집안이 다 없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절할 요 자도 보면 기독교가 말하고 있는 그것이에요. 하늘을 기울이면 죽는다. 하늘을 가로 막으면 화살이 된다. 남을 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종교가 뭐.. 이게 옷 의(衣) 자야. 옷 의 자. 이건 과일 과(果) 자. 하늘에서 먹지 말라는 과일을 먹으니까 옷을 입었어. 이게 벗을 라(나) 자야. 이것이 성경에 그대로 나오잖아. 에덴 동산에. 똑같다 이 말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모든 경전이 나오듯이… 금할 금 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보지 마라. 아예 보지도 말고 따 먹지도마라. 그러니까 금할 금 자야. 금하는 거. 그러니까 이렇게 모든 게…노아도 마찬가지야. 이렇게 8명의 식구가 탔다. 그러니까 배 선 자야. 이것이 말하자면 노아의 방주야. 모든 한문이 4만자인데, 이 4만자의 한문은 만 년 전에 나왔고 성경은 6000년 전에 만들어졌어요. 그 때에 우리 민족이 어디에서 왔어요?

우리 민족이 어디서, 우리 민족이 메소포타미아 어느 지역에서 왔어요? 수메르에서 왔단 말이에요. 수메르가 어디에요? 이스라엘이 있는 곳이야. 그러니 그것이 우리 민족이야. 거기서 우리가 천산 산맥(톈산산맥)을 거쳐서 중국의 태백산에 도읍을 정했다 이 말이야. 수메르에 있는 그 지역 이름이 아덴이야. 그 지역 이름이. 그래서 이것을 기독교에서는 에덴이라고 해. 이 아 자를 따서 아브라함이라든지, 아시아라든지, 아프리카라든지, 아메리카라든지, 전부 아 자가 붙어요. 왜 아 자가 붙느냐면 이 아덴 때문에 그런 거예요. 아덴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시아, 아 자가 많이 붙었죠? 그러면 이 지역 이름이 이렇게 붙고, 그 다음에 우리 민족의 최초의 수도가 어디야? 아사달.

아사달이야. 여기에 우리 도읍을 만들 때도 아 자가 붙는 거예요. 음. 그래서 이 아 자가 붙은 것은 이 자라는 글자가 어디 마크예요? 이 아 자가 어디 마크예요? 어디 마크예요? 어느의 종교 마크예요? 이슬람 회교마크죠? 그럼 이것은 무슨 마크예요. 유교 마크야. 그래서 이 아시아의 유교는 이 아 자를 유교 마크로 쓰잖아. 그러니까 이 아 자, 즉 아덴이라고 하는 이 아 자가 어디서 나오냐면 중국 본토를 말하는 거예요. 우리 한민족의… 우리가 이 중심… 이 아 자를 자세히 보세요. 이것만 싹 없애면 십자가 그거야. 십자가를 특이하게 살짝 이렇게 해 놓은거야.

하늘과 땅을 그려 놓은 게, 십자가에 하늘과 땅을 그려 놓은 게 아 자예요. 우리의 것을 다 그대로 모방해서 그 사람들이 십자가니 뭐니 만든거야. 여러분들, 지능이 높은 허경영은 여러분들이 모르는 그런 세계를 다 알고 있어요. 이거 줄 하나 그어놨다고 해서 이게 십자가가 아니야? 불교도 봐. 불교 마크 한 번 봐 봐요. 중간에는 십자가야. 이게 다 우리 아시아에서 나왔다는 소리야. 그러면 천주교는 어떻게 돼 있어요? 천주교는 알파벳 피에, 피엑스. 우리가 군대에 가면 피엑스 있잖아? 피엑스 마크야. 프로탄테스가 아니다 이 말이지. 개신교가 아니다 이거지. 피엑스. 이게 천주교 마크예요. 그 다음 유대교는, 유대교 마크는 뭐예요?

유대교 마크는 다윗의 별이 아니고 금촛대. 일곱 금촛대. 이게 유대교 마크야. 이 사람들은 유대교 자체를 유태교 라고 그래요. 유태교. 이 유태교 마크. 그러니까 이 유태교 마크는 우리가 제사 지낼 때 쓰던 우리 초야 초. 그리고 옛날에 외국에서는 기독교를 뭐라고 그래요? 영어로 템플이라고 한다는 말이에요. 기독교의 노트르담을 옛날에 뭐라고 그랬어요? 노트르담 사원이라고 그래요. 사원. 절 사(寺) 자. 그러면 이 사원, 절 사 자가 템플이야.노트르담 템플이었어. 근데 이것을 사람들이 처치(CHURCH)로 바꿔. CHURCH로 바꾼다. 이것을 교회로 바꾼 것이지 실제로는 유럽에 있는 모든 성당이 옛날에는 다 사원이야. 그리고 목탁, 염주, 묵주, 촛대, 다 있어요. 다 있기 때문에, 예수의 문화, 그리고 뭐 이런 모든 혈통이 우리 한민족의 혈통이다. 그래서 이게 둘로 쪼개졌다고 내가 옛날에 강의했죠? 그래서 이 아 라는 글자, 나를 강조하면 이게 뭐야? 수저 비 자이죠? 수저는 아무리 지식 속에 갖다 놓아도, 음식 속에 넣어도, 밥맛을 알아요 몰라요? 여러분들이 그래요. 여러분들은 마치 수저 같아. 아무리 지식을 갖다 줘도 그 다음 날 물어보면 몰라요.

잘. 허허허. 그런데 혓바닥은 말이야. 말이 필요해요 안 필요해요? 말이 필요 없죠. 그러니까 이거를 무정설법이라고 그래. 말이 필요 없는 설법이 있다 이 말이야. 혓바닥한테 이 김칫국 맛이 어떻다 된장은 맛이 어떳다 설명할 필요가 없어. 혓 바닥은 딱 들어가면 벌써 탁 터득 해버려. 저 나무를 탁 쳐다보면, 아파트 안에 있는 사람이 소나무를 아파트에다 심어놨잖아, 그 소나무를 탁 보면 소나무가… 박회장님, 뭐라고 그래? 박 회장님, 소나무가 쳐다보면 뭐라고 박 회장한테 이야기를 해? 설법을 할 거 아니에요. 무정설법을. 소나무가 이래요. 나를 고향으로 좀 보내줘. 나는 설악산에 있었는데, 달밤에 경치도 좋고 옆에 소나무 친구들도 많고 얼마나 좋은지 몰라. 나는 산 속이 그리워. 왜 나를 잡아다가 여기 아파트 단지에다 가져다 놓은거냐? 나 아주 숨 막혀서 죽겠다.

내 고향으로 날 보내줘라고 해. 이렇게 쳐다보면 소나무의 소리가 들려야 되는 거예요. 그 설법이. 우리가 우리 좋겠다고 저 산에 있는 소나무를 옮겨오고, 애들이 보고 좋으라고 돌고래를 잡아다가 어린이 대공원에 갖다놔. 돌고래는 고향으로 보내달라고 몸부림을 치는데 그걸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다. 그러면 돌고래가 말을 안 해도 설법으로 들려야 돼요. 그게 혓바닥 같은 사람이 되는 거야. 이 숟가락 같은 사람을 데려다가 아파트 소나무가 당신한테 뭐라고 해요?라고 물으면. 모르겠는데요 그러지.허허허. 아 어머니 아버지가 나한테 효도해 달라는 말을 하면 되겠어요? 못하는 거야. 자식이 척 보면 혓바닥이 돼야지. 지금은 숟가락 같은 아들뿐이야.

공부를 하면, 이 사람이 마음속으로 모든 걸 보면, 이 나무를 볼 때 이 것을 만든 공예원이 제대로 월급도 못 받고 사포질 하면서 먼지를 얼마나 마셨을까? 가구를 보면 우리가 이거 환경을 아껴야겠다. 이 나무도 생명인데 우리가 나무를 가지고 너무 많은 가구를 만드는 건 아닌가 하면서 가구 없는 집 만들기 운동을 한다든지. 그래서 집을 절 처럼 단조롭게 하자 집에 가구가 너무 많은 거는 문제가 있다 뭐 이러면 되는데, 그런 가구와 아예 대화를 안 하는 거야. 대화를 안 하고 낭비를 하는 거예요. 고급 주택가에 가 보면 고급 가구들, 장롱이 막 나와 있어. 우리 국민은 장농을 너무 좋아해서..허허허. 나무를 많이 베었어. 아프리카 밀림들, 보르네오와 같은 섬들의 나무를 다 베어 갔어요.

어디에 있는 나무를 벨까? 하고 연구하고 하는 외국의 나무 회사들이 있어. 이번에는 어느 나라를 절단 낼까? 이러고 앉아있어요.그들은 이 나라에 있는 목재를 다 베어내면 10년은 팔아먹겠네! 이러고 앉아 있어. 그럼 우리는 그걸 막 수입해. 그러니 여러분들이 정신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여러분들의 후손들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에 앉아서 황사를 들이 마시고 살 거야 아마. 그러니까 우리는 뭘 하나를 보더라도 미래를 내다보면서 내가 아니고 우리이다. 저 나무가 우리의 것이다라고 생각해야지 그저 나만 갖다가 쓰면 된다? 이러면 이 환경은 절단 나.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 인간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되느냐, 이것을 이야기해 주는 거야. 굉장히 중요하죠? 그래서 이런 글자에 하늘이 다 정해져 있어요. 모든 게. 그래서 모든 세계 종교는 하나다. 불교나 기독교나. 예를 들어 보자. 이게 불교에는 무아가 있잖아. 기독교에서는 무아와 같은 말이 뭐가 있어요? 기독교에서는 불교의 무아와 같은 말이… 불교도 기독교와 똑같아. 똑같은 종교인데 기독교는 불교를 우상이 있다, 불교인들은 기독교 사람들은 문제가 있다, 이래. 이러면 안 돼. 서로 똑같은 종교이고 순수한 신앙으로 인해서 자기들이 이 세상을 잘해 보겠다고 좋은 뜻에서 하는 거예요. 기독교에서는 뭐가 있어요? 불교의 무아와 같은 말이 기독교에서는 뭐가 있을까?

불교는 무아 신앙이야. 무아 신앙이란 말이야. 그러면 기독교는 무슨 신앙이야? 부활신앙이야. 기독교는 부활 신앙인데 그러면 부활이라는 뜻은 뭐냐 매일 나라는 것을, 나를 죽이는 거야. 나를 매일같이 죽여 없애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매일 거듭나야 돼. 어제 내가 우리 아버지한테 대들었다, 오늘 내가 우리 와이프한테 대들었다, 내가 다시 태어나야 되겠다. 나라는 존재를 버려야 되겠다. 가능하면 와이프하고 이야기할 때는 우리로 돌아가야 되겠다. 우리가 잘 되자는 거지 내가 잘 되자는 거냐? 왜 내가 나를 내세워서 마누라하고 싸웠을까? 우리를 내세워야 될 텐데. 여기서 자기가 나를 죽여야 되겠다. 그래서 매일 십자가에다 자기를 못 박아서 죽여야 돼요.

또 거듭나야 돼요. 계속 부활하면서 사람이 바뀌는 거야. 이 기독교가 우리나라에 와서 만든 학교가 몇 개에요? 6000개에요. 불교가 만든 학교가 몇 개예요? 60개예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기독교가…우리 나라의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등 등 모든 대학이 거의 다 기독교에서 나왔어요. 불교는 동국대학하고 몇 개 안 돼. 그러니까 이 무아신앙과 신앙은 같은데, 이쪽에서는 너무 여기에 치우친 거야. 교리에. 무슨말인지 알죠? 교리에. 내가 아까 쓸 때 여러분들이…선의 반대가 뭐예요?

선의 반대는 교(教)이고 여기는 선이야 그러면은 이거를 가르치는 거. 아무리 가르켜 봐야 직접, 선은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 소리지. 사람들이 백운대를 올라가 봐야 아는 거지 백운대 지도를 아무리 봐야 그것은 교육을 시키는 거지. 실제 우리 종교도 불교는 선이고 기독교는 교에 가까워. 그래서 교육기관을 많이 만들어. 근데 불교에서 중들은 뭘 주로 하냐면 체험을 해야 된다. 가르치는 것보다 실제 고행을 하면서 절에서 수도를 하는 체험 종교를 하겠다. 이렇게 선을 내세우다 보니까 학교가 적은 거야. 이 사람들은 교를 내세우니까 가르치는 거.

가르치는 것은 이렇게 얄팍한 지식을 인간들이 가져가는 거야. 그래서 학교를 많이 만들어야 돼. 많이 만들어서 가르치긴 했어. 근데 이 사람들이 다 양심적인 사람이 됐는가? 도둑놈들이 많이 되어 있다 이 말이야. 지금 당장 국가에서 조사를 하면 어떤 기업체나 지도자중에 깨끗한 사람이 있을까? 없습니다. 재수가 없어서 잡힌 거지 안 잡혀갈 사람이 있어요? 없죠. 잘못 보여서 그렇게 된 거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말이야. 그렇기 때문에 교, 이 교가 실패를 한 거야. 학교는 많이 만들었는데…이 사람들은 학교는 적게 만들었지만 뭐에요? 수행을 하고 자기들이 체험을 하겠다는 거야.

그래서 이 사람들은 체험 위주로 해서 지혜를 많이 내세워. 지혜. 기독교는 뭘 내세워요? 지식이야. 그래서 서양이 결국 동양한테 지는 거지. 그래서 서양 사람들이 인도에 가서 명상을 하고 있어. 무슨 말인지 알겠죠. 그래서 이 마 라는 것은 숟가락과 같다. 나라는 걸 내세우면 아무것도 성공할 수가 없어. 그래서 불교의 무아와 같은 거는 뭐라고요? 부활이야. 그러면 부활은 뭐야? 나를 매일 죽여야 돼. 나를 매일 죽이면 뭐가 나와요? 무아가 된단 말이에요. 무아. 그리고 이 무아를 다른 말로 뭐라고 한다구요?

무자기아야. 무자기아가 무슨 뜻이야? 조 교수님? 무자기아가 무슨 뜻이에요? 내가 비슷한 말을 했어. 헌법에, 우리 형법에 부작위 죄 있어요 없어요? 부작위 죄는 우리가 과실치사, 과실치상, 내가 고의적이 아니고 나도 모르게 죄를 지은 거예요. 그러면 이것은 죄가 적어. 내가 운전하는데 사람이 뛰어 들어와서 죽었다 그러면 부작위죄로서 사람을 죽인 거야. 그러면 죄명은 부작위죄야. 고의성이 없다 이거지. 무작위아는 뭐예요?

무작위아가 이것이야. 무아.무아가 무작위아야. 자기를 내세우긴 하는데 자기라는 걸 빼고 내세워. 이름만 허경영이지 나 허경영이야 하면서 남을 무시하는 이런 게 없는 거지. 뭘 할 때 언제나 자기는 뒤로 빠지는 거예요. 남을 내세워. 그래서 무작위아가 다른 말로 바꾸면 뭐야? 우리다 이 말이야. 우리. 자 우리는 뭐야? 내가 우리로 바뀌어 버려. 그 우리를 다른 말로 바꾸면 우주에 이롭다. 그래서 우리가 될 때, 우리가 하나가 되면 대단한 힘이 있는데, 이 실 한 가닥만 있으면 아무 힘이 없어요.

그런데 실이 열 가닥만 되면 천하장사도 못 잘라. 그것이 우리야. 그러면 우리는 이제 이 지구인들이 개인 플레이를 그만해야 돼. 우리로 돌아가줘야 되는 거라 이 말이야. 그래서 내가 여러분과 경쟁하러 와 있는 게 아니고 하늘에서 여러분들에게 우리를 만들어주려고 온 사람이야. 그래서 오늘 이야기는 여러분들이 그냥 공부만 해서 되는 게 아니라 배운것을 실제로 가서 체험해야 돼. 가족들한테 가서 절대적으로 실험을 해야 돼. 그러면 그게 자기것이 되서 지혜가 생깁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유성진리에요. 유성진리가 뭐예요? 지금 내가 여러분한테 가르치고 있는 그것이 유성진리에요. 소리를 내서 진리를 설포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건 무슨 진리지? 무성진리. 이것은 무성진리야. 무성진리는 뭐냐면, 진리도 이렇게 둘로 나눌 수가 있어요.

무성진리는 뭐냐? 내가 여기에 바위를 하나 갖다 놔. 내가 바위를 들고 있어. 그러면 여러분들이 이 바위를 보면 바위에 대해서 소리가 들려야 돼. 그럼 무슨 소리가 들려야 되지? 저 바위는 몇백 억 년 전에 만들어진 걸까, 저 것이 바위가 되기 전에는 어디에 있었을까, 허공에서 온 건 틀림없는데 어느 땅 덩어리에서 떨어져서 여기까지 왔을까, 등 족보를 파고 들어가 보면 수천 억 년도 모자라요. 무한대로 올라가다보면 이 바위를 만든 자가 있어요 없어요? 있어요. 그러면 그 자의 모습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바위 하나만 봐도 마음속에서 소리 없는 진리가 보여요 안 보여요? 그런데 바다나 강에 이 바위를 던지면 가라앉아요 안 가라앉아요?

가라앉죠? 그러면 무성진리에서 뭘 깨달아? 여러분들이 뭘 깨달아? 이게 바다에, 물에, 호수에 던지니까 가라앉아 안 가라앉아? 그러면 이걸 보고 뭘 깨달아요? 여러분들이 뭘 깨달아야 돼? 김 고문님, 아, 만유인력으로 내려가고 가라앉게 되는데 그거는 우리가 지금 지구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잖아. 사실 저기 허공이 아래거든. 이 땅이 위야. 그럼 우리는 거꾸로 매달려 있는 거야. 중력이 누르고 있으니까. 지금 사람들은 우리가 땅에 서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저기가 절벽이야. 모든 빌딩이 지금 거꾸로 박혀 있는 거야. 왜냐하면, 지구가 돌아요 안 돌아요? 도니까. 우리가 지금 어떻게 돼 있어? 바깥에 붙어 있어요 안 붙어 있어요? 인력이 아니면 우리는 전부 위로, 절벽으로 추락해서 죽는데 이 절벽으로 안 날아가고 있는 거예요. 눌러주니까 착각하고 있어. 우리가 지금 땅에 이렇게 있는 게 아니라 사실 이게 거꾸로야. 밤 되면 이게 기울잖아. 여기는 허공이야. 허공 쪽으로 사람들이 이렇게 서 있어. 이렇게. 이게 지구라면 안 올려주면 그냥 떨어지지. 그래 그렇게 지구가 지금 돌고 있다구. 이게 얼마나 대단해요. 무성진리는 이 바위 하나만 딱 봐도 깨달아, 아파트에 소나무 한 번만 딱 봐도 깨달아. 아 저 소나무가 고독하다는 소리구나. 그러다가 거기에 소나무가 하나 말라 죽어있어. 그러면 가서 소나무를 불쌍하다고 만져 줘야돼. 그러면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그러면 모두하고 대화하는 거야. 지나가는 할머니만 봐도 바로 그 분이 천사다.

천사가 따로 있는 줄 알아? 기독교의 성경에서도 이렇게 말해. 예수가 이런 말을 해요. 내가 배고플 때 나를 먹여주고 내가 박해받을 때 너희가 나를 구해주고, 사실은 박해를 해서 죽였는데, 나를 구해주고 내가 잠잘 곳이 없을 때 잠재워 주고 내가 목마를 때 물을 주지 않았느냐? 그러니까 제자들이 예수님 우리가 언제 그랬습니까? 우리가 언제 예수님께 그랬습니까? 라고 해. 그러니까 예수가 “야 이 사람아, 길가에 있는 모든 거지와 배고픈 자와 집 없는 자한테 해준 게 바로 나한테 해준 거야. 그 자들이 나라는 걸 너희는 몰랐냐?” 응? 그러니까 제자들이 “ 그러고 보니까 그렇네요.”

너희는 지나가는 할머니나 사람들이 그냥 사람으로 보이냐? 저게 바로 나야 나. 저게 바로 하나님의 분신들이야. 그런데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를 꼭 봐야 되겠어? 그 사람들이, 박해받는 자들이, 나야. 너희가 물을 주고 그랬잖아. 밥도 주고. 너희들이 도왔을 거 아니야? 그렇다. 너희는 어찌 꼭 나한테 해야 된다고 하냐? 내가 꼭 십자가에 매달려야 되겠냐? 너희도 십자가에 매달려라. 매일 매달려. 그러니까 매일 죽어라. 그것이 부활 신앙인데 불교는 무아신앙이야. 같아. 이게 쌤쌤.

무아는 나를 없애야 돼. 무작위아 해라. 나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모르게 가지고 있어라. 그러니까 허경영 부르면 대답을 하라 이거예요. 아무개 부르면 이름은 기억하되 남을 깔보는 이런 나는 버리고 어떻게 하면 남한테 이익이 될까, 하나의 우리의 형제로서의 나가 되라 이 말이야. 불교의 금강경에서는 그걸 뭐라고 해요? 불교에서는 나를 뭐라고 그래요? 불교 금강경에서는 나를 무슨 나 라고 그래?

김 고문님이 이야기해 봐. 불교에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나와 이 금강경, 금강경에서 말하는 나도 있단 말이야.응? 금강경.

뭐야? 불교는 이 화엄경에서 말하는 나가 있고 금강경에서 말하는 나가 있어요. 근데 이게 다 같아. 같은데, 성경에서도 나라는 것이,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가 아니고, 모든 돌아다니는 거지나 가난한 자와 박해받는 자들한테 해준 게 나한테 해준 거야. 그러니까 그게 뭐예요? 복을 덕으로 바꿔야 되는 것이지. 내가 가지고 있는 복을 내가 가지고 써 버렸으면 현생에 내가 복을 받았겠어요 안 받았겠어요? 안 받았겠죠? 그러니까 전생에 내가 현생의 인간으로 오기 이전에 남한테 베푼 것, 덕을 베푼 것, 이게 복으로 와요 안 와요?

그러면 다시 이 복을, 현생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내가 부잣집 아들이라면 남한테 덕으로 베풀어야 돼. 그리고 다음 생에 하늘에 가보면 이게 무엇으로 남아 있어요? 복으로. 그러니까 복 덕 이게 반복되는 거예요. 그게 우주 섭리야. 그런데 이 복을 가지고 내가 실컷 쓰고 남한테 인색하고 남 괄시하고 저게 무슨 예수야? 저게 무슨 부처야? 이따위 소리를 하면서 자기 맘대로 살다가 죽으면 귀신이 딱 보여. 죽을 때가 되어가면 그 때부터 보이고 막 복잡해져. 그러면 뭐가 돼요? 이 다음에 화가 되는 거야.

불행한 인간으로 태어나겠지. 아주 안 좋은 곳으로 가겠지. 응? 하늘에서 나는 저런 사람 본 적이 없어. 이렇게 되겠지. 그리고 나중에는 몸도 안 줘. 뭘로 돌아다녀? 귀신. 귀신이 제일 나쁜거야. 육도 윤회하는 불교에서는 그걸 육도 윤회로 지옥 아귀 축생 사람 천상. 육도윤회에서 제일 안 좋은 지옥. 어. 지옥이라는 건 무슨 뜻이라고 했어요? 땅 지 자. 여기가 지옥이야. 그럼 뭐였는데? 어떤 지옥이냐? 말씀 언이 이 가운데 있어요. 이게 무슨 글자야? 개야 개. 이건 뭐야? 이것도 개야. 말을 해봐야 사방에 개가 있지. 사람이 한 명도 없어. 뭐 지옥이 다른게 아니고 말이 안 통하는 세상에 살게 되는 것을 지옥이라고 해. 아무리 말을 해봐도 자기의 말을 알아주지 않아. 그러면 이게 뭘 뜻해요?

짐승으로 태어났다는 소리야. 짐승이 아무리 물어봐야 이 인간들이 말을 알아듣지 못해. 이 지옥이라는 건, 축생도 지옥에 들어가는 겁니다. 말이 안 통하니까. 사방을 보니까 개들밖에 없네. 거기서 무슨 말이 통해? 그러니깐 지옥이라는 것은 짐승으로, 버러지로, 미생물로 태어나는 것이 전부 지옥이야. 그래서 인간들을 이롭게 해줘야 돼. 알겠죠? 그래서.. 이.. 이걸 왜 내가 여기에 갖다 놨지? 아까 내가 돌멩이 이야기하느라고. 자 그러니까 유정설법, 무성 진리는 눈에 보이는 게 전부 우리의 스승이야. 이 마이크. 이것도 우리의 스승이야. 그러니까 모든 것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없다.

자 내가 이 와이셔츠를 입고 있어. 이 와이셔츠를 내가 입고 있을 때는 별 가치가 없어요. 그런데 내가 지나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옷을 발가벗고 있네? 그러면 내가 이 옷을 벗어서 그 사람한테 줬다. 그럴 때 가치가 있어요 없어요?. 가치가 있어요 없어요? 그럼 이 와이셔츠는 내 몸을 위해서만 입고 있는 게 아니야. 언젠가 남한테 벗어주기 위해서 입고 있는 거야. 그런 마음 자세가 돼 있는 인간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야. 그냥 나만 가지고 내세우고, 절대 부활 안 하겠다, 절대 무아는 없다, 이런 사람들이 천지야 지금. 젊은 애들이. 그러니까 이 강의를 내가 쉽게 하려고 하는 거지 어렵게 하면 엄청 어려워. 어려운데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아를 한번 보자. 이게 우리에게 정상적인 거예요. 이것이 나오면 그 사람의 집안이 망하는 거야. 이런 사람은… 잘 봐요.

이런 사람은 비행기를 탈 때, 신경 쓸 일이 없어. 그냥 비행기 타면 돼요. 그런데 자기 아버지가 준 재산을 가지고 실컷 먹고 놀고 카지노 하러 남태평양으로 가는 사람은 비행기 사고를 조심해야 돼. 재앙이 기다리고 있어요. 재앙이. 반드시 그런 사람이 탄 비행기만 추락을 하는 거야. 그런데 덕을 쌓아놓은 사람은 비행기가 추락할 염려가 없어. 아무리 타고 다녀도… 박근혜 대통령은 아무리 타고 다녀도 비행기가 추락을 안 할 수가 있지. 여러분들은 이런 사람이, 덕을 베풀면 이게 어리석은 것 같지만 그게 마음 놓고 비행기를 타도 걱정이 없어. 어느 비행기가 사고 날지 누가 알아요? 근데 그 사람은 지독하게 피해가는 거야. 그 사람은, 그 집 자식은 배가 침몰해도 살려줘. 이걸 여러분이 명심해야 돼.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그래서 항상 덕 과, 복 과, 덕 과, 복이 반복이 돼줘야지 한 번만 여기서 망조든 자식이 나타나면 그 집안은 저주를 받아요. 저주로 하늘에서 뭘 주냐하면 유전병 알죠? 유전병으로 저주를 준다. 그 다음에 아까 복을 실컷 자기 혼자만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뭐 하늘이 기울였다. 이거는 요절할 요 자다. 하늘을 반듯하게 받들어야지 이걸 잡아 땡겨서 기울여 놨거나 이러면 요절이야. 요절 요 자. 그러면 금강경에… 그 다음 뭐예요?

이게 아 자야.전부 아. 아. 나를 이렇게 내세우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약이색견아 이거나 이음성구아 하면 시인행사도 이니 진리가 아닌 사도란 말이야.

응. 시인행사도니 뭐에요 그 다음?그 다음에 뭐에요? 김 고문님 모르겠어요? 한 번 가르쳐 주면 잘 몰라. 자 봐. 이 기독교의 부활을 불교의 금강경에서는 뭐라고 그러냐면, 만약에 인간이 자기를 색으로 바라보면,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칼처럼 바라본다. 수저같이 수저. 멍청한 사람이지. 수저같이 자기를 바라보면 자기만 내세우는 거지. 우리는 필요 없는 거야.

햇바닥은. 이런 사람은 색견아, 색으로 자기를 바라보면 새로워. 저 사람의 얼굴이 잘생겼네, 저 사람은 못생겼네, 저 사람은 가난뱅이네, 저 사람은 부자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바라보면 그 사람은 이음성구아 이거나 약이색견아 이거나. 이음성구아, 소리로서, 소리나 음으로서 사람을 구분 지으면은. 내가 사람을 바라볼 때 그 사람 목소리가 정말 예쁘네,이 사람 목소리가 듣기 싫네, 좋은 소리 하면 아주 예쁘고, 나쁜 소리 하면 밉고, 이러면 그런 사람은 시인행사도 이니 진리를 모르는 사람이야. 사도를 쫒는 자야. 사도. 그러니까 허깨비를 쫓는 거지. 이런 사람이라서. 그러니 불능견여래 이라. 결코 천사를 볼 수가 없다.

여래는 부처나 천사야. 기독교에서는 천사야. 결코 천사를 만날 수 없어. 그러니까 기독교의 성경에서 예수님이…자 봐요. 저 사람들, 여러 거지가 찾아오거나 손님이 찾아오면 그 중에 천사가 반드시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깐 여러 사람이 자기 집에 오거나 깡통을 든 거지가 오면 그 중에 천사가 있으니 절대로 천사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 두 명만 오면 그 중에 천사가 있어요. 그러나 사실은 모두 천사야. 그래서 조심하라는 소리지. 이걸 왜 그렇게 했겠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들이 내 자식보다 못하다는 거예요.나라는 것만 붙은 것을 좋아하는 거. 우리로 바라볼 때는 남의 자식이니까 불쌍하잖아. 그렇게 봐야 되는 거에요.

그러니까 여기서는 나라는 것을 버리지 않고 부활하지 않고 남을 바라보면 그 사람은 절대로 천사나 부처를 만날 수가 없다. 불능견, 절대로 볼 수 없다. 이해 가시죠? 여래 이라. 그러면 이제 여기서 이어지는 게 뭐예요? 여기에 적어야겠다.

여기서 띄어 지는 게 일체. 응? 일체. 양고문님 이 글자 알겠지? 날려서 써도 옛날에 쓴 게 있으니까.응? 일체유이법이 꿈 몽 자 야. 환포영이며 여로역여전 이니 응작여시관 하라. 이게 붙은 거야 금강경에. 그러면 이 세상의 모든 법은, 법이 뭐지? 눈에 보이는 거, 눈에 보이는 모든 것, 이 세상의 모든 법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야. 분명히 우리가 지난 주에 여기서 강의를 했는데 생각해보면 그게 꿈이야. 그거 뭐 영상으로는 볼 수 있겠지? 그러나 없다 이 말이에요. 그리고 내 시간은 지금 총알같이 가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은 10년 후에 지금을 생각해보면 꿈이야. 근데 또 10년이 오기 전에 떠날 사람들도 있지.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기가 막혀요? 우리는 시간과 싸우고 있는 거야. 그 안에 못 깨달으면… 탈출하는 비밀 열쇠를 알아내야 되는데 그걸 모르고 어영부영하다가 그냥 물속에 잠겨서 다 죽는 거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지금 숨을 들이쉬면, 들이 쉬는 숨을 뭐라고 해요?

들이 쉬는 숨은 호 야.호.내쉬는 숨은 뭐라고 그랬어요? 흡이지. 그러면 이 호흡을 하는데 이 호가 허파로 들어가면 어떻게 된다고 그랬어요? 이게 허파에 들어가면, 이 공기가 허파라고 한다면 어떤 형태가 난다고 그랬어? 물로 바뀌어요. 물로. 우리가 들이 쉰 이 공기의 몇 프로가 물이지? 이게 80프로가 물이야. 그러니까 여기 습도가 70프로 이상이라는 말이에요. 여기에 70프로 이상이 물이에요. 그러면 그 물이 우리 허파에 들어가면 물로 바껴. 물로 바뀌어 가지고 우리의 허파가 아가미 역할을 해. 그 물 속에서 산소를 뽑아내고 다시 바깥으로 수분으로 만들면 코로 나와. 그래서 겨울에 보면 수증기가 팍팍 나오잖아.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러니까 우리 몸에는 뭐가 있어요? 아가미가 있어. 아가미. 아가미에 뭐가 나와 있어요?

혈관. 모세혈관이 허파에 착, 마치 거미줄처럼 나와 있는 거야. 그래서 물이 들어오면 아가미가 물 속에서, 그 거미줄 같은 허파 핏줄이 물속에서 산소를 걸러내. 그리고 20프로가 들어오면, 이 공기 중에 80프로가 질소야 그래 안 그래? 공기중의 20프로가 산소인데. 그 공기가 들어오는 중에 20프로밖에 없는 산소, 그걸 찾아내서 20프로를 물로 싹 바꾼다음 그 물 속에서 산소를 4% 정도 흡수하고 나머지 16%는 다시 밖으로 내보내. 산소를 다 못 먹어. 그 혈관에 물이 닿으면 혈관에서 산소가 피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거야. 그게 허파야. 그때 담배를 피우고 나쁜 먼지나 황사를 마시면 어떻게 되느냐? 그 물 속에 이미 황사와 담배 독이 들어가 있는 거예요.

호흡은 들어가서 물로 바뀌니까 그 액체 속에서 실핏줄이 나쁜 것을 접해서 빨아당겨 버려요. 피쪽으로 들어가 버려. 황사가 뇌로 들어가는 거야. 그래서 뇌졸중. 심장마비가 오는 거야. 이와 같이 우리가 물고기하고 호흡하는 방법이 똑 같아요 안 같요? 물고기 아가미를 딱 제끼면 이렇게 되어 있어요 안 되어 있어요? 여기가 빨개요 안 빨개요? 빨간데 그게 모세혈관이야. 거기로 물이 싹 지나가는 거야. 물고기가 지나가면서 물이 여기에 닿는 순간 모세혈관이 산소를 싹싹 뽑아내는 거예요. 이해 가시죠? 그래서 이 아가미가 여기에 들어있는 우리의 허파야. 우리의 아가미를 밖으로 내놓으면 아가미가 말라버려. 그러니까 밖에 내놓을 수가 없어. 물고기처럼 여기에 아가미를 달아야 되는데 여기다 달아놓으면 아가미가 건조해서 말라버리니까 물을 땡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코 안에 넣어 가지고 이 안에 아가미를 넣어놓은거야. 우리는 동물과 똑같은 호흡을 하고 있는것이지. 이런 이치가… 들어오는 것과.. 우리가 한 번 마시면 들어오는 폐활량이 얼마라고 했어요? 4800 cc. 이것을 리터로 하면 4.8리터야. 저 페트병 세 개야. 폐활량이 페트병 세 개를 들이마시는 거지. 그러면 나올 때에는 얼마가 나와요? 나올 때는 얼마가 나와요? 3600 cc씨가 나와. 자 우리가 최대한 들이 쉴 수 있는 호흡량은 3600 cc야. 그거를 3.6 cc라고 그래. 이것이 우리 인간의 최후의 폐활량이에요.

4800인데 왜 이러냐? 왜 그래? 왜 4800 cc인데 최후의 폐활량이 왜 3600 cc라고 해? 우리가 최대한 들이 마셔도 폐에는 항상 1200 cc 의 대기 호흡이 있어요. 알겠죠? 아무리 숨을 내 쉬어도 우리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서 안에는 공기가 남아 있어. 쥐어 짤 수가 없게 되어 있어. 폐 속에 들어 있어요. 그러니까 다 뱉을 수 없어. 나머지 1200 cc가 남아 있으니까 폐활량에서 이걸 빼줘야지. 이건 참고로 알아 놔요. 그래서 약이색견아 이거나 이음성구아 하면, 시인행사도 이니 불능견여래 이라. 색으로 사람을 보거나 나라는 것을 너무 이렇게, 이음성구아, 나를 이렇게 자꾸 내세워 가지고 사람을 보거나 소리로써 사람을 판단하면 이것은 전부 가짜 진리니 이런 자는 절대 천사의 덕을 볼 수가 없다.

그러니 일체유위법이니 세상의 모든 법은 꿈이요, 환상이요, 물거품이요, 그림자니, 그림자면 또 뭐야? 이슬이고, 이슬 노 자야. 이슬이고, 또 뭐야? 번개 같으니, 정말 이 시간이 번개 같아요. 번갯불 같으니 응작여시관 하라(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내가 어딜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을 탁 보니 그 사람이 날 보고 아는 척을 해. 내가 사람을 탁 보니까 10년 전에 본 사람이구나 탁 생각날 때 뇌에 번개가 치는 거예요. 번갯불 같아요. 생각이 분명히 안 났었는데, 아 맞아요 맞아요 맞아요, 이래요 안 이래요? 그게 머릿속에서 뭐가 탁 때리는 거야.

그 때 그것을 번개라고 해. 번개. 근데 사람을 조금 있으면 또 잊어버려. 내 말 이해가 가죠? 이렇게 번개가 쳤다가 사라져 버려. 아니 언제 오셨어? 예? 아이고 아이고. 나는 여자들하고 악수를 하면 기분이 좋아. 허허허. 자 그래서 이 응작여시관 하는거, 이 응작여시관이 무슨 말이에요? 응작여시관이 무슨 말이에요? 이 앞에 있는 말은 이것 때문에 있는 거야. 이것과 이것이 다 있는 이게 결론이야. 뭐죠?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이렇게 바라보아라. 다 이렇게 그림자 같이 무상 하게 보아라. 무상 하게 볼 때… 이것이 뭐냐 하면 이거야.

이것이 내가 이 세상을 좀 적당히 써서 우리 증손자 고손자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편하게 해 줘야 되겠다 하는 이것이 응작여시관이야. 알겠죠? 우리가 있는 동안에 나무 다 베어서 거창하게 해놓고, 우리가 잘 지내자? 이거 아니야. 그러면 우리 후손들은 숨을 못 쉬고 다 죽어. 들이 쉬는데 가스만 들어와요. 지금 황사가 오고 있죠? 이게 시작이야. 앞으로 더 해져. 그러면 이거 숨을 못 쉬고 전부 마스크 쓰고 살면 얼마나 불쌍해요? 그러니 우리가 이걸 깨달아야 돼. 그러면 이 다음에 있는 문장은 뭐냐? 이 다음에 문장이 있어요. 그 다음이 뭐예요? 이 다음에 있는 문장이? 김 고문님, 뭘 하라구요? 조 교수님? 다음에 있는 문장이 뭐예요? 아니요. 아상, 인상, 증생상, 수자상?

그게 아니지. 금강경의 이 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화음경에 나오는 문장과 같은 문장이야. 같은 문장. 그래서 이것을 여러분들이 나와 숟가락과 혓바닥. 숟가락 같은 학생은 아무리 공부를 시켜도 공부를 못 해요.

그런데 혓바닥 같은 애는 하나를 가르치면 천개를 깨달아. 숟가락 같은 애는 천개를 가르쳐주면 한 개를 기억을 못 해. 기가 막혀. 이것은 내가 좀 심하게 말 한 거고, 천개를 가르쳐 주면 그 중에 100개를 기억하지 못해. 100개를 기억하지 못하고, 100개를 기억 한다고 해도 그 중에 10개를 남한테 전달하지 못해. 남한테 10개를 전달 한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 한 개를 실천하지 못해. 그러니까 이런 케이스는 개나 소한테 경을 읽어주는 격이야. 자 1000개를 가르치면 100개를 기억 못 해. 설사 백 개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중에 10개를 남한테 설명을 못 해.예를 들어서 내가 강의한 걸 이대로 여러분들이 설명할 수가 있을까? 이것은 내가 초등학교 때 하던 거예요. 내가 초등학교 때 하던 실력이란 말이야. 이게.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걸 남한테 이야기할 수가 있느냐 이 말이야.

내가 나이 들어서 이런 공부 왜 해? 이게 초등학교 때 실력이지. 이것을 가져다가 천개를 가르쳐 주는데 100개를 기억 못 해요. 그럼 100개를 아니,,, 이것을 내가 여러분한테 1000번을 가르쳐 줬다해도 여러분들이 이걸 눈 감고 잘 쓸 수가 없단 말이야. 대장경은 어려워요. 그러면 1000개를 가르치면 100개를 기억 못 해. 100개를 그 중에서 기억한다 하더라도 10개를 남한테 전하지를 못해. 그럼 남한테 10개를 전할 수 있어도 자기가 한 개를 실천 안 하는 거야. 그러니까 1000개를 학교에서 가르쳐봐야 걔들은 졸업장만 노리는 거야.응?

선생님 말에은 관심도 없어.허허허. 자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하나 알아둬야 될 것은 판사나 검사나 비행기 조종사나 이런 사람들은 하나를 딱 가르쳐주면 그 다음이 뭡니까? 그 다음은 여러분들이 이야기를 해 줘야지. 천개를 한 거야. 하나를 딱 가르쳐 주잖아? 한개를? 그러면 이 중간은 생략이에요. 천 가지가 바뀌어 버려. 천 가지 행동이 바뀌어 버려. 벌써 영어, 뭐 영어 단어를 하나 탁 가르쳐 주잖아?

내가 지난주에 영어 강의 한 거 뭐에요? 이게 뭐라고 그랬어요. 이걸 내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지난주에 내가 강의 했어요 안 했어요? 이걸 균형이라고 그랬잖아. 지난 주에 내가 발란스. 이거 강의했잖아. 그러면 이 발란스라는 거 하나만 딱 가르쳐 주면 걔는 “내가 우리 엄마 아빠 사이에서 과연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그냥 이렇게 바뀌어 버려요. 선생님한테 이 단어를 하나 딱 배웠는데 애가 “아, 내가 우리 엄마와 아버지가 보시기에 과연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애인가? 공부할 때 공부하고, 하루에 세 시간 공부하면 30분씩 운동을 해야 하는데, 그래야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내 병원비 안 내도 돼. 나는 바란스가 있어야 돼. 공부만 파는게 아니라 몸도 아프면 우리 엄마한테 짐이 돼. 우리 아버지 돈도 없어. 그러면 나는 몸을 위해서 운동도 해야 돼. 공부도 열심히 해서 내가 검사나 판사가 돼어야겠어. 우리 집을 살려야 하니까.” 애가 이 발란스라는 영어 단어 하나만 딱 가르쳐 주면은 이렇게 되요. 천 가지 행동이 바뀌어. 그냥 천 가지 행동이. 그럼 이 애들은 이거 하나를 가지고 수많은 단어를 공부해. 그래서 애가 딴 사람이 돼요. 고시도 붙고 출세해서 가족을 일으켜 세우는 거예요. 그런데 이 단어 천개를 가르쳐 봐야 졸고 앉아 있어. 졸고 앉아 있는 애도 있어.

지금 이 강의하는데 한눈 파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야.허허허. 그러니까 이 균형이라는 말은 발란스라는 단어 하나지만, 이 균형이라는 것은,,, 이번에 대한항공 여자 승무원, 그래? 자 일 등석에 앉았지요? 비행기는 일 등석, 이 등석, 삼 등석 이 있죠. 일 등석 앉으면 여기서 미국까지 1000만 원이야. 다른 사람은 한 200만 원 정도 되잖아. 그러니까 일등석 손님에게는 땅콩을 가져올 때 접시에 껍질을 까서 갖다 줘요. 밥도 도자기 그릇에 줘야 돼. 일등석은 플라스틱으로 된 그릇에 주는 게 아니야. 모든 게 최고의 호텔 수준이야. 그런데 이 사람들이 여자라고 해서 무시한 거지. 여자라고 해서 무시한 거야. 그 사람이 큰 덩치에 이렇게 앉아 있으면 안 그래요. 땅봉 접시 가져가서 친절하게 했을 거야.

여자가 앉아 있으니 무슨 아주머니야? 회사 부사장인지 몰랐겠지. 알았으면 고의적으로 잘 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인간을 그렇게, 이거 색견아. 색으로 사람을 보면 안 돼. 저 사람은 여자구나, 남자구나, 촌놈이구나, 무식한 놈이구나. 이렇게 보면 안 된다 이 말이야. 그래서 깍듯이 FM대로 접시에 담아서 갖다 줬으면 이런 일이 하나도 없어. 그리고 갖다 줬는데 모르고 말 실수를 했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깍듯이 전부 사과를 해야 돼.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소리 지르기 전에 불쾌한 모습이 보이면 즉시 사죄해야해요. 응? 그 사람이 어떤 직위에 있든, 그 사람이 회사의 회장이든, 부장이든, 졸병이든, 누구든 무조건 사과해야 해요. 왜? 부자들이 그런 맛으로 돈을 벌어. 없는 사람은 또 그 맛으로 직장 가지고 사는 거야.

그런데 너희는 임마 돈 벌어서 왜 그렇게 누리고 다녀? 이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 자본주의 사회는 없어져야 돼. 부자들은 그 만큼, 대기업의 사장이 제일 부러워하는 게 빌딩 청소부야. 미국에 이거 실험한 사람이 있어. 아니 미국의 대기업 사장이 말이야, 자기가 사업을 일으킨 사람이야. 거래처 관리 하느라고 집에 제대로 못 들어가요. 전화도 무진장 받아야 돼. 그러다 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했느냐? 이렇게 돈 벌려다가 내가 죽겠다. 빌딩 청소부는 전화도 안 오고 청소나 열심히 하고 월급이나 조금 받으면서 사니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하면서 그걸 항상 부러워한거야. 그래서 이 사람이 실제로 실험을 해. 다른 사람을 사장에 앉히고 나와서 빌딩 청소부를 했대. 한 달 동안 했는데 세상에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전화 안 오지, 아무도 안 만나도 되지, 퇴근하고 집에 가면 가족들하고 같이 있지, 일체 걱정을 안 해. 그런데 이쪽은 언제 쯤 세무사찰을 받을까? 어느 정치인이 나를 모함할까? 누구를, 뭐 하는곳을 가야 될까? 이게 어마어마하게 불안한 거야. 이 자리는 가시방석. 그런 사람이 조금 편한 비행기에 앉아서 땅콩 좀 잘 갖다주는 대접을 받는다고 왜 나빠? 그게 자본주의란 말이야 그 만큼 고생을 하니까 대우를 해 줘야지. 부자를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을 버려야 돼. 고쳐야 돼. 우리가 부자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사람들은 우리한테 잘해줘. 그리고 우리가 유지하는 모든 세금은 부자들이 거의 70프로를 내줘. 알겠죠? 그래서 부자를 무조건 나쁘게 보면 안 돼요. 그러면 부활하는 자가 아니야. 자 무아와 부활이 같습니까? 안 갔습니까?

그래서 불교와 기독교는 똑같은 십자가를 가지고 있는, 유교나 불교나 다 그걸 가지고 있는 종교야. 그렇기 때문에 여기도 십자가를 교회 안에 이렇게 세워 놔요 안 세워 놔요? 교회안에 세워놨죠? 교회 안에 강의하는 목사님이 십자가 세워놨지? 이게 우상이라고 따지면 우상이야. 맞아 안 맞아? 그들에게 성모마리아상 예수상 있어요 없어요? 다 있어요.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불교는 우상이라는 거야. 부처님을 모셔 놓았다는 거야. 내가 이해가 안 가요. 불교나 기독교나 상징성이 있는 걸 가져다 놓은 것이지 불상을 믿는 게 아니야. 그 진리를 믿는 거지 불상을 믿는 게 아니야. 불상이라는 것은 사람이 방편상 마음의 안정을 짓기 위해서 잠시 있는 거야. 그 불상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보고 있는 거야.

그것이 나무로 된 거 다 알아. 도자기로 쇠로 된 거 다 알아요. 다 알아요. 알면서 십자가를 교회 안에다 해 놓은 것이나, 목에 달고 다니는 것이나, 불상을 해 놓은 것들을 우상 이라고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야. 다른 종교를 보고 너희는 우상이야. 우리는 우상이 아니야. 우리한테만 구원이 있고 너희에게는 구원이 없어 라고 하는 이것이 제일 문제야. 알겠어요? 모든 세계의 종교에는 다 구원이 있다. 알겠습니까? 그 점을 명심해. 그래야 기독교도 발전하고 불교도 발전하고 해.

고개를 뒤로 완전히 재껴. 그럴 때 입을 벌려야 돼요. 입을 안 벌리면 안 돼요. 좀 시원하죠? 이게 뭐라고 한다구요? 조금 전에 우리가 한 행동이 강의할 때 내가 뭐에 들어간다고 했죠? 참, 뭐 숟가락 같은 말. 참. 발란스라 이 말이야. 강의를 어느 정도 들으면 오랫동안 앉아 있으니 운동을 해야 돼. 발란스라 해서 균형이 있어야 된다고 했잖아. 너무 도박하는데 미치거나 강의 듣는 데만 미치면 안 된다 이 말이에요. 강의를 들으면서도 한쪽 다리를 들었다 놨다 한다든지 이렇게 폈다 굽혔다 하면서 몸을 운동을 시켜야 돼요. 알겠죠? 발란스. 안 그러면 나중에 여러분들이 결국 병원으로 간다 이 말이에요.

발란스. 자 그 다음에 응작여시관 하라. 응. 그러니까 이 다음 응작여시관하고 이 다음 하면 끝이잖아? 그걸 내가 이제 해줄 테니까. 물 좀 먹고. 에, 범소유상 개시허망… 양 고문님 모르면 물어요.

약견제상,이 부분이 중요한 부분이야. 자 잘 봐요.
범(凡)소(所)유(有)상(相) 개(皆)시(是)허(虛)망(妄) 약(若)견(見)제(諸)상(相) 비(非)상(相) 즉(卽)견(見)여(如)래(來).
자 여기에서 색이 뭐에요? 색이 상이야 상. 범소유상, 내가 상을 바라보는 건데.개시허망, 모든 것이 이렇게 허망하다 이 말이야. 허망. 다 지나가는 거야.

허망하다는 걸 깨닫고. 약견, 만약에 그걸 깨닫고 눈에 보이는 모든 상이 제상. 우리 조 교수님이 하시는 인상학. 여러분들의 모든 상이, 이 빌딩 모습이, 이 세상에서 내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 제상이야. 제상은 상이 아닌 걸 깨달아라 이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겠죠? (마이크를 잡으시며) 이것은 녹음에 들어가야 되니까. 눈에 보이는 모든 약견, 눈에 보이는 모든 재상이 비상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접견여래라. 바로 천사가 된다 이 말이죠. 이게 순식간에 지나가는 거야. 내가 가난해서 돈이 없는 고통도 순식간에 지나가는 거야. 그리고 돈이 있는 사람도 고통의 바다 속에서 헤매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피장 파장인 거지. 이것도 세월이 가면 순식간에 없어지는 거야.

내가 여기서 진리를 깨닫고 덕을 쌓으면 다음에는 내가 원하는 세상에 태어나는 거야. 그러니까 희망을 갖고, 모든 삼라만상을 이 상에 얽매이지 않고 사물을 바라보는 것을 무작위아 라고 해. 무작위아. 자기가 스스로 자기도 모르게 자기의 아상을, 자기를 잃어버려. 잃어버리고 남을 보면 그 손님 위주로 세상을 사는 거예요. 누가 찾아오면 저 분이 불편한 게 없을까? 시어머니가 오시면 우리 시어머니가 뭐 필요한 것이아 불편한 것이 없을까? 집에서 드릴만한 게 뭐가 있지? 하면서 찾아서 드리는 거예요. 그 때는 내가 없는 거예요. 시아버지가 오면 며느리가, 내가 없어져 버려. 우리 시아버지께서 진지를 잡수셨을까?

내가 밥을 먹었고 안 먹었고는 신경 쓸 게 없어. 시아버지가 오면 내가 있긴 있어. 시아버지의 밥을 갖다주는 나는 있지. 내가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야. 그런데 시아버지가 볼 때는 나라는 건 없어져 버리고 우리 쪽으로 가는 거예요. 아버님 세시 쯤 오셨는데 식사하셨어요? 이 말이 나와 일단. 응? 그러면 나라는 것이 있어 없어? 여기서는 내가 집에서 좀 쉬려고 했더니 이 놈의 시아버지가 또 찾아왔네? 이것은 이거야. 그래서 시아버지가 미운 거야. 그러면 시아버지가 피부로 느껴요. 얘가 내가 온 걸 싫어하는구나. 내가 앞으로 오지 말아야 되겠나? 이렇게 되는 거예요. 주파가 다 통해요. 그런데 이럴 때는 시아버지가 딱 오면, 나라는 것은 즉시 없어져 버려요. 무아가 되는 거예요. 무아는 되는데 나는 있어 없어? 있지. 왜? 밥을 갖다 주는 나. 시아버지 어디 불편한 거 없으세요? 아버님 요새 용돈도 없으시죠? 우리도 생활이 이렇게 해서 어려운데.. 다 이야기해도 돼요. 신랑이 얼마 벌어오는데 사실 이 생활비에 애 학원비 주고 뭐 아파트 이자 내고 뭐 이렇게 하다 보니 사실은 생활이 좀 어려워요. 용돈 적게 드린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면서 얼마를 드리는 거예요. 그러면 며느리가 이렇게 말해주는 게 고마워. 그런데 입 꼭 다물고 말이야, 되게 어려운데 뭘 와서 눈치 보고 그러냐고 말이야 아버지를 그냥…허허허. 그것은 나를 내세운 사람이다 이 말이야. 알겠죠? 그런 사람은 신랑이 천번을 이야기해봐야 수저와 같아. 신랑 말에 혓바닥을 갖다 대요 안 대요? 안 댄다 이 말이에요. 무슨 말인지를 모른다. 여기에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이라. 그럼 맨 마지막 말은 뭐냐? 맨 마지막 말은.

총재님, 제가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오늘 말씀 중에 제일 중요한 게 발란스잖아요. 이게 약간 연관이 있는 단어인데 분수 있잖아요. 한자로 분수.그것을 한자로 좀 풀어 주실 수 있으실까요?

분수? 그러니까 분수가 균형이야. 우리 일반적으로 말하는 분수라는 거는, 이 분 자는 이런 분 자도 있고 이런 분수도 있는데, 이 분수는 그냥 우리의 순수한 말이야. 자기 분수를 알아라 하는거, 응? 그런데 이것은 발란스와, 균형과 같은 거야. 자기한테 맞는 거지. 그러니까 이것은 사람을 좀 모욕하는 말이야. 그래서 이런 말은 잘 쓰지 않아. 그러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그냥 균형이지. 자기의 분수를 알아라 하는 것은 기분 나쁜 사람이 쓰는 용어지. 자기가 가진,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 수가 몇 수라는 것 즉 자기가 A급 인생이다 B급 인생이다 C급 인생이다, 이런 걸 자기가 알아야 된다 이거지. 그러면 이런 사람은 분수를 모르는 자야. 왜? 자기의 수를 먼저 읽어야 돼. 내 수가 태권도 칠 단인데 태권도 십 단한테 대들면 돼요 안 돼요? 그거는 분수를 모르는 거야. 자기 수가 몇이다 라는 걸 알아야 되는 거지. 그러니까 이 분수를 모르면 분수 자체가 문제가 생기는 거지. 그런데 이것은 진리에서는 쓰지를 않아. 진리에서는. 왜 분수를 궁금해히요?

아니, 제가 옛날에 책에서 봤는데요. 사람이 자기 수를 알아야 된다고 하더라구요.

어, 그러니까 자기의 수가, 이 분수라는 것은 자기의 능력을 말해요. 그래서 아까 말한 대로 여기서 무아가, 이 무자기아를 다른 말로 바꾸면 분수야. 자기 분수. 그러니까 나를 내세우면은 이거는 분수를 모르는 자. 이것은 분수를 아는 자. 질문이 굉장히 좋아요. 나는 분명히 이 집 며느리로 왔는데 내가 시아버지 시어머니한테 시어머니 노릇을 하려고 그래. 그럼 분수가 그 사람의 수는 집 안에서 낮은 수에 있어요. 그런데 자기의 수가 높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태권도 일 단이라는 분수를 가진 자가 태권도 이단 한테 달려들면 지는 거지 뭐. 그래서 분수를 알면 자기를 낮춰요. 식당 하는 사람이 자기가 아무리 돈이 많아도 손님이 오면 어서 오세요 그래야지 식당 주인이 고개 들고 어서 오세요 하면 그 사람은 분수를 아는 사람이야 모르는 사람이야? 모르는 사람이지. 식당에 들어오는 사람은 재산도 없고 형편없는 사람이야. 자기는 집도 있고 재산이 많을지라도 오는 손님한테는 절을 해야 돼. 그런데 내가 재산이 얼마나 많은데 저런 거지 같은 옷을 입고 밥 먹으러 오는 사람한테 인사를 하냐? 이러면 그 사람은 분수를 아는 사람이에요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은 장사하고는 안 맞는 사람이야. 그래서 지피지기라고, 적을 알려면 자기를 먼저 알아야 해요. 그게 지피지기잖아.

그게 분수야. 지피지기. 지금 우리가 강의하는 게 분수를 알아라는 거야. 발란스. 이것을 영어로 번역해보자면, 분수를 발란스라고 보면 되지. 자신의 페이스를 알아야 됩니다. 응? 자기의, 지피지기, 자기를 알아야 상대를 이기는 거예요. 자, 그 다음. 그 다음에 뭐가 있나? 내가 해석해 드릴께요. 마지막 여기 이제 한 줄 남았어. 한 줄 남았어. 이 응무소주가 무슨 말이에요?

응무소주(應無所住).응무소주가 뭐예요 김고문님? 자 이게 이 금강경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의 마지막이야. 이거 양고문님 적어요. 여기에서는 나와 남을 구분하지 말고. 나라는 것. 여기에 기심. 마음이 있어요 없어요? 내 마음이 유가 돼서도 안 되고 무가 돼서도 안 된다는 소리야. 나를 시아버지 앞에 너무 내세워도 안 되고 내가 완전히 없어져도 안돼. 나는 며느리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되지. 시아버지가 왔는데 당신도 없고 나도 없어 이러면 어떻게 돼? 안 된다 이 소리야. 내가 허경영 총재님께 배웠는데 나도 없고 당신도 없다고 했어 라고하면 안 된다 이 말이지. 이 말이 그 말이야. 응? 이렇게 꿈처럼 바라 보긴 바라봐야 되는데 그래도 나라는 것은 무아에. 무아를 사람들 착각하는게 무아 하니까 내가 없는 걸로 생각해요. 이게 뭐예요? 무슨 뜻이에요? 응무소주(應無所住) 이생기심(而生其心)이란 말이야. 내 마음은 도망가지 않아. 있어요. 내 마음은 있는데, 나라는 이 고집이 없어지는 거야. 금강경에 이런 말을 쫘악 해놓고, 마지막에 가서 응무소주 이생기심이야. 내 마음이 머무르는 곳이 없어야 된다. 집착하지 말아야 된다. 그러니까 시아버지 앞에서 나는 며느리라는 것을 인지를 하고 있어야 되는 거야.

그 대신 내 자존심은 버려라. 그게 아까 말한 분수야. 우리 저분이 말했던. 아까 나한테 가져 온 것, 그게 뭐죠? 그 선물. 아사이 뭐지? 아로니아 베리인가? 아사이베리. 아사이베리를 많이 가져왔어. 그렇게 큰 것을 광주에서 여기까지 들고 왔어. 눈에 좋대. 그게 굉장히 좋은 거지. 좋은 선물을 가져왔어요. 그런 거 좀, 뭐 그런 거 주는 사람 어디 없나? 허허허. 아니 왜 광주에서 오신 분이 가지고 와? 허허. 그래요. 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이 이 전체를 대변하고 있다. 이해 가시죠?

이거 한문으로 적어서 사람들이 잘 모를지 모르겠는데 이거는 응무소주이생기심. 이 글씨체는 나의 초등학교 때 글씨체야. 초등학교 때의 글씨체니까 그리 아시고. 뭐 글씨를 연구한 사람은 아니니까.허허허. 나를 버리라는 게 아니고, 무아는 나를 버리라는 게 아니야. 무아는 무작위아야. 나에 대해서 너무 남 앞에 내세우지 말고 나를 조용하게 가지고 있어라. 그러니까 저분 말대로 내 분수만 알고 있어라. 분수. 내 분수를 들여다보니까 뭐야? 우리 시아버지와 내가 남남이 아니야. 저기 잡혀서 지나 가는 강도와도 내가 남이 아니야.

저런 강도가 많이 나오면 내 자식도 강도가 될 수가 있어. 저렇게 교통사고 내는 사람이 많으면 내 자식도 치일 수가 있어. 그러니까 내가 교통사고에도 관심을 가져야 되고, 강도한테도 관심을 가져야 되고, 가능한 사회가 좋아져야 내 자식도 잘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게 우리야. 우리. 우리. 여기 우리가 쓰여 있잖아. 이해가 가요 안 가요? 내가 질문을 하나 해볼께. 이스라엘 민족이 왜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부를까?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부르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뭐라고 불러? 여호와라고 부르지? 왜 여호와라고 부른다고? 내가 이야기했죠? 환웅의 부인 이름이 뭐예요?

이름이 여와(女瓦). 무슨 말인지 알죠? 이스라엘 민족이 갓을 써 안써? 갓 써 안써? 우리하고 똑같은거. 우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이 똑 같아요. 너무 똑같아. 갓을 써. 그 갓을 우리 어른들이 god이라고 해. 신이라고 해. 영어로 지오디가 갓이야. 근데 우리 할아버지들이 그걸 갓 이라고 해. 종교를 가지고 서로 자기 종교만 좋다고 너무 이러면 이 시대에 그 사람은 바보야. 그래서 우리 헌법에 뭐가 있어요? 우리 헌법에 뭐가 있어요? 종교 자유가 있죠? 자유가 몇 개가 있어요?

우리 헌법에 제 자유가 몇 개 있어요?

이거 양고문님 다 썼지? 안 쓴 것 있어요?

우리 헌법에, 우리 헌법의 자유가 어디에 나오냐면 국민의 뭐예요?

국민의 3대 권리. 자, 국민의 5대 권리.

뭐가 있어요?

3대 권리에는 안 나와. 3대 권리는 뭐예요?

청구권, 평등권,참정권, 참정권이 투표권이에요, 사회권, 여기 마지막에 자유권이 나와. 헌법에. 자 그러면 헌법의 자유권은 몇 가지 자유가 있어?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사상 ,표현, 양심. 이 여덟가지의 자유가 우리의 국민에게 있는데 여기에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 종교가 여기에 있어. 그래서 모든 종교는 상대방의 종교에게 너희는 구원이 없다고 하면 불법이야. 그것을 알아라 이 말이에요. 기독교인들이 전도할 때 내가 예수님같이 행동을 해서 보여 줘야 되는 것이지 너희는 뭐가 아니다? 이런 말은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야. 내 말 이해가 갑니까? 종교를 전할 때에는 내 모습을 보여줘야 돼. 내가 예수다, 내가 오늘 부활했다. 나를 없애고, 기독교 자체에서 말을 없애고, 기독교가 거듭나야 되는데, 상대방 종교에게 너는 뭐가 아니다? 이런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리는 구원이 되는데 너희는 구원이 안 되는 걸 가지고 있어, 우리는 백 평짜리 아파트에 사는데 너희는 누더기 같은 집에 살아, 이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헌법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거야. 남의 종교의 자유권을 침해하는 거에요 안 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이 아파트에 산다고 조그마한 헌 집을 보고 헐어, 임마. 그러면 되겠어 안 되겠어? 안 되지. 우리 집은 난방이 도는데 너희집은 난방도 안 돌고, 그게 집이야? 우리는 구원이 되는데 너희는 구원이 안 돼. 하는 사람들은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그것을 법적으로 하지 말라는 거야. 내가 예수님이나, 하나님이나, 불교나, 기독교나, 모든 것을 다, 나는 그 분들에게 잘한다고 해. 다 잘 하는데, 다만 여러분들이 종교를 내세울 때 나를 너무 내세우지 말라 이 말이야. 우리를. 알겠습니까? 우리. 다른 종교들도 함께 가자 이 말이에요. 나를 너무 내세우는 종교의 최고가 이슬람이야. 맞습니다.

우리 아니면 가서 그냥 다 죽여. 보기에 좋던가요? 안 좋은 거야. 그 사람들한테 가서 들어보면 자기들 것에만 구원이 있는 거예요. 기독교나 불교는 구원이 없다는 거예요. 또 기독교에 가서 물으면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지 다른 종교는 구원 종교가 아니라는 거예요. 이렇게 무아와 부활이 같은 신앙인데, 무아신앙과 부활신앙이 같은 거예요. 옛날에 노트르담 사원이 묵주를 가지고 있었어요 없었어요? 염주가 있었어. 종 쳐요 안 쳐요? 다 똑같은, 동양의 종교가 서양으로 건너간 건데 마치 서양의 종교를 동양이 흉내 내는 걸로 착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말하자면 적반하장이지. 똑같은 종교야. 그래서 종교의 자유를 헌법에 보장해 놨다. 국민의 3대 권리는 뭐예요?

3대 권리에는 참정권이 없어요. 잘 들어 놔요. 생존권 소유권. 자기 부동산을 대통령이 뺏어갈 수 있었요 없어요? 자기 부동산을 대통령이 뺏어갈 수 있어요 없어요? 못 뺏어가. 소유권 생존권. 그 다음에 뭐가 있어요? 평등권. 이것을 꼭 알아 놔요. 이 세 가지는 국민의 3대 권리야. 집을 지었는데 아파트 20층짜리가 우리 집 앞을 가렸다? 그러면 생존권을 위협해 안해? 해가 안 비추니까. 그래서 일조권이 여기서 나와. 또 평등권. 여기 우리 집 앞에 30 층짜리 빌딩이 들어서버렸다고 하면 이거 시비 걸 수 있어요 없어요? 걸 수 있는 거야. 그러면 이것은 평등권. 우리도 햇볕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네? 근데 왜 당신이 우리 집을 가려? 뭐 할 말이 없는 거야.

그러면 그 빌딩 짓는 사람이 돈을 줘야 돼. 그 사람의 평등권을 사야 돼. 당신의 평등권을 얼마에 사면 되요? 한 2억 정도 내놔. 2억 주면 합의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건물을 올려도 돼요. 응? 자기의 재산권이 눈에 안 보이지만 허공에도 있는 거예요. 허공에도. 그럼 그걸 팔아먹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 사람과의 협의 없이는 소유권과 생존권과 평등권을 착취할 수가 없다. 헌법에는 이런 걸 다 정해놨어. 근데 아까 김고문님은 민주주의의 3대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야. 민주주의 3대 원칙이 뭐예요?

첫째, 행복 추구의 원칙이야. 행복 추구의 원칙이 있는데, 민주주의 3대 원칙에 행복 추구의 원칙이 있는데, 일조권을 가리네? 그러면 이것이 행복 추구의 원칙에 걸려. 여기도 법에 걸리는거야. 그러니까 남의 집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거지. 지금 그 누구야? 전지현이 강남에 집을 하나 샀는데 70억 주고, 75억 주고 샀지? 75억 주고 샀는데 대문을 내려고 하니까 옆에 있는 주민들이 못 내게 하는 거야. 왜 그러냐니까 그 쪽으로 차가 드나들면 시끄럽다는 거야. 헌 집을 75억 주고 샀으니까 대단히 좋은 집이지 그걸 확 헐어버렸어. 헐어서 집을 지으려고 설계도를 꾸미고 있는데, 이웃집에서 그 쪽으로 입구 내지 말라고 해. 그러면 그게 행복추구권이야. 행복추구의 원칙. 우리 집 대문은 이쪽에 있는데, 당신 집 대문을 그 쪽에 내면 어떡하냐? 이거 시비 걸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게 합의가 안 돼 가지고 지금 고생하고 있다고 신문에 나왔죠? 이게 무슨 말이냐면 행복 추구의 원칙. 그 다음에 뭐가 있어요? 인간 존엄의 원칙. 그것은 이 인간 존엄의 원칙에도 걸리는 거야. 인간 존엄의 원칙. 옛날에는 그 쪽으로는 대문이 없었는데 왜 내냐는거야. 응? 세 번째 뭐예요? 절대공평의 원칙이다. 절대로 그 집만 햇빛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게 아니다. 절대공평의 원칙. 우리도 해를 받아야 된다. 이건 다시 잊어버리지 말아요. 중요한 거예요.

헌법. 이것은 개인들이 자기 권리를 찾아먹을 때 쓰는 거지. 이런 거, 이런 거. 그 다음에 자본주의의 3대 원칙. 소유권 절대 원칙. 소유권 절대 원칙 뭐죠? 그 다음에 계약자유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 이 세 가지가 자본주의에 있어요. 이것은 북한에는 없는 거야. 북한은 소유권이 있어 없어? 계약자유의 원칙이 있어요 없어요? 계약 마음대로 못 해. 그 다음에 과실 책임이 있어요 없어요? 왜? 남의 건물을 들이받아 버려도 재산이 국가 거야. 그러니 개인이 배상 받아갈 게 있나 없나? 없어. 모든 부동산은 국가꺼니까 배상 책임이 있다 없다? 없습니다.

자 이것은 알아놔야 돼. 시간이 뭐 다 돼가요? 아니 이제 마무리해요. 자 오늘 여러분들이 한가지 잊어버리지 말 것은 수저와 혓바닥. 수저와 혓바닥. 그러면 여기에도 이렇게 보면 수저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혓바닥 같은 사람이 있단 말이에요.

공부를 할 때..내가 이렇게 강의를 하는 것은 우리의 이 마음이, 이 무아와 유아. 이쪽 유아. 이것은 유아 이지. 나를 주장하는 것과 이것은 무슨 차이가 있냐면 마음이 이것을 주장할 때에는 피가 썩어요. 피가 썩어. 피가 그러니까 얼굴빛이 안 좋은 사람은 주로 나를 많이 주장하는 사람들이야. 그래서 술을 많이 마셔. 화딱지가 나니까. 나라는 것은 뭘 잡아당겨요? 자 이제 마무리 해줄게. 나를 주로 많이 내세운 사람의 특징은 술 주 자야.

그런데 우리를 많이 내세운 사람의 특징은 뭐예요? 우리를 내세운 사람의 특징이 뭐냐고. 우리를 내세운 사람 특징은 물이에요. 물은 유동성이 있어요. 유동성이라는 건 말이지, 이게 흐를 유 자야, 유. 움직일 동 자. 성품이 항상 움직인다 이 소리야. 그러니까 물을 여기에다 부으면 물이 낮은 데로 가. 그 사람은 우리를 내세우니까 자기 주장을 안 해. 그렇다고 물이 없어지나? 없어지는 건 아니야. 낮은 데로 내려가. 물은 유동성을 가지는데 이 사람은 자꾸 위로 올라가려고 그래. 이런 술은. 먹으면 술기운이 머리로 올라가요. 술을 먹는 사람은 나중에 인생이 어떻게 돼요?

술을 많이 먹으면 건강이 나빠지고 다 나빠지죠? 그런데 물은 먹을수록 좋아 안 좋아? 좋은데 이 술은 무슨 성질을 가지고 있어요? 인화성을 가지고 가지고 있잖아. 응? 소멸성도 있지만. 그러면 이 술과 물은 서로 반대야. 그래서 물은 지혜를 상징하고 불은 뭐예요? 무지를 상징하는 거예요. 무지. 그래서 이 불은 씨를 안 남기고 다 태워버려. 그런데 물은 언제나 지혜로워가지고 안 없어져. 수증기로 날아가도 또. 단 물은, 뿌리가 없어요. 허공에 구름이 있는데, 구름이 어디에 매달려 있나?

물은 자유자재하다 이 말이에요. 근데 불은 매달려 있는 거야. 불은 원료가 없으면 붙을 수가 없는 거지. 그러면 구름은 허공을 자기 마음대로 날아다니는데 불은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없어요? 그러니까 직장에 고용된 사람, 어디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은 어떻게 되냐면 불 기운, 술을 좋아하게 되는 거야. 근데 마음을 편안하게 먹는 사람은 물처럼 유동성, 또 뭐가 있어? 물이? 흡수성. 그러니까 물 같은 사람은, 흡수성이 있으면 어때요? 시집간 여자가 흡수성이 있으면 그냥 시어머니도 며느리도 시아버지도 시동생들도 그 사람한테 싹 미쳐버려요. 흡수 되버려. 그러니까 그 며느리를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거야.

그런 사람은 우리를 내세우는 자이지. 자기를 내세우면 그렇게 되겠어 안 되겠어? 그러니까 이런 사람의 특징이 물과 같아. 흡수되는 거야. 흡수돼. 그러니까 이 흡수가, 이 흡수가, 이게 흡수야. 흡수. 응? 그러면 이 흡수되는 게, 흡수성을 가지면 어떤 사람도 이 사람을 안 싫어해요. 그런데 불 같은 사람은 배타성이 있는 거지. 남을 막 밀어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렇게 나를 내세운 사람은 나중에 늙으면 피부가 썩어. 근데 이런 사람은 피부가 늙어 죽을 때에도 아주 윤이 나요. 왜 그러냐? 젖을 먹이는 여자가, 이 마음을 잘 봐요,

젖을 먹이는 여자를 보고 남편이 막 꾸지람을 하면 젖을 먹던 애기가 설사를 해. 왜 그러냐면 그 엄마의 모든 몸에 있는 액체가 서른 두 가지야. 여자의 몸에 서른 두 가지 액체가 있어요. 이 액체가 순식간에 썩어들어. 그러니까 애가 먹는 우유가 금방 상해버려요. 그 안에 독이 생겨버려. 남편을 두들겨 패서 잡을 수도 없고 속으로 불을 잡아당기니까 모든 세포에서 독소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애 우유가 금방 변해버려요. 그러면 애가 퍼런 똥을 싸고 그냥 울어대. 그래서 애가 몸이 약해져 버리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부가 싸워대면 위장병 있는 애가 나와. 나중에 보면. 그러니까 이 놈의 것은, 모든 것이 나라는 것이 원인이야. 이렇게 물과 같은 여자가 시집을 왔다 그러면 그 집안은 좋은 거지. 응? 그런데 이 불은, 요새 여자들이 술도 많이 먹잖아, 이런 것은 조심을 해야 돼. 그래서 이것은 이 아와 우리를 이야기할 때 물과 술이다. 술과 물이다. 이걸 잊어버리지 말아야 돼. 알겠죠? 그 다음에 요 한자에는 또 뭐가 있어요?유동….
나는 지금도 뭘 먹으면 날 것을 많이 먹어.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무를 절반을 먹어. 무 큰 것을 갈지도 않고 그냥 씹어서 먹어. 나는 믹서기가 없어. 내 입이 믹서기야. 그걸 씹어서 먹는데, 그걸 먹으면 배가 금방 불러. 그럼 나는 자연적인 거지. 거기에 조미료를 치거나 뭐 김치 깍두기를 만들거나 이런 거는 매우 짜서 못 먹잖아. 이렇게 순수한 입맛이 나는안 바뀌었어.그런데 여러분들은 여기에 중독이 되어 있으니까 맨날 병원에 가는 거야. 우리나라가 의료보험 때문에 망하면 되겠어요?
질문할 것을 내가 적어 왔는데 뭐 어디에 들어가 버렸나? 요새 우리나라에 거짓말하는 사람이 나와 가지고 뭐 말이 많죠?

자 그럼 이거 질문 하나 하고 식사하러 갑시다. 내가 이 강의를 하버드 대학에 가서 해야 되는데 여기서 하니까 여러분들이 잘 못알아 들어요. 그 사람들은 이런 강의를 매우 좋아하지. 광주에서 여기까지 오신 이 분이 참 대단해.

우리는, 요새 지방에서 많이 올라와요.

지난번에는 전주에서 택시를 대절해서 왔어. 그래가지고 한 짐을 가지고 왔지.

택시비 40만 원 들여 가지고 올라온 거예요. 그리고 택시 타고 내려갔지. 자 이 질문 알아 맞혀봐요. 여러분들은 이제 내 마음 공부를 갖다가 제대로 해야 돼. 여기에 들어가는 걸 알아맞춰봐. 알아맞추면…

걱정은 왜 생긴다고?

탐욕 때문에 생기고 기쁨은? 주는 것 때문에 생긴다? 내가 낸 답하고 비슷하긴 한데 정답은 아니야. 알아 놓아요. 여러분. 이거 굉장히 수준 있는 이야기야. 걱정은 저절로 생겨요. 여러분들이 조심하라 이 말이죠. 걱정은 내 마음을 컨트롤 안 하고 이런 공부를 생각 안 하면 다 생기는 거야. 그러면 여러분의 피가 썩어. 여러분 피에, 그 피로 애한테 젖을 먹이면 애가 계속 약해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피가 얼마나 무섭다는 걸 몰라. 그래서 나는 이것을 어릴 때부터 여러분께 항상 부르짖는 거야. 하늘에서 이걸 가르쳐주러 와 있어. 자, 기쁨은 뭐예요? 잘 들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 말이 중요한 말이에요. 우리의 행복이나 기쁨은. 우리의 몸에 우리가 안 가지고 있는 게 있어요 없어요? 다 있어요. 다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발견을 안 하고 계속 딴 데 것만 생각하는 거예요. 딴 데 것만. 그래서 외부에서 찾는 거야. 이걸 명심해야 돼. 기쁨은 스스로 생겨요. 가만히 있어도. 걱정도 저절로 생겨. 그러면 기쁨이 이겨야 되는데 걱정한테 져버리는 거야. 둘 다 저절로 생겨요 안 생겨요? 저절로 생긴 거예요. 그래서 행복의 조건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해요. 그러니까 이건희 회장은, 행복과 걱정을 플러스 마이너스 하면 우리 평범한 지게꾼이 가지는 것과 동격이 되는 거야, 걱정이 더 많은 거야. 정치인한테 한번 잘못 보이면 지난 번에도 난리가 났었잖아.

SK 회장 지금 구속돼 있잖아. 이 사람은 불안하지 않겠어요? 이 사람을 노리는 정치인들 몇 천 명이 돌아다녀. 밑에 있는 운전수도 이 사람을 노리고 있어. 저 양반이 며칠 날 누굴 만나서, 무슨 정치인을 만나서,,, 그 리스트를 가지고 있는 운전서도 많을 거 아니야? 그래 안 그래? 그 밑에 임원도 있어. 자금 담당 임원. 그 수천 명이 자기한테 협박 공갈, 거기에 시달리면서 텔레비젼에 나와서 회장이다 이러고 돌아다녀요. 말도 마세요. 그 사람의 고통과 기쁨을 마이너스 플러스 하면 지게꾼만도 못해. 평등이다 이 말이야. 모든 사람은 기쁨을 다 가지고 있는 거야.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어요. 장애인도 마찬가지야. 장애인은 장애인만큼 편한 게 있다구. 그런 모든 걸 가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맨날 걱정으로 인생을 망친다. 내 피를 썩게 한다. 명심하세요.

요약

진정한 지혜를 얻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책이나 강의를 통해 얻는 ‘지식’은 숟가락과 같아 맛을 모르지만, 직접 경험하고 실천하는 ‘지혜’는 혓바닥과 같아 본질을 깨닫게 합니다.

  1. 지식과 지혜의 차이: 숟가락과 혓바닥 비유
    지식은 숟가락처럼 맛을 모르지만, 지혜는 혓바닥처럼 직접 경험하여 본질을 깨닫는 것이다.

1.1. 지식(知識)과 지혜(智慧)의 개념
지식(知識)은 숟가락과 같아, 아무리 많은 정보를 얻어도 본질을 알지 못한다.

학교 교육은 지도를 설명하는 것과 같아, 실제 경험 없이 지식만을 전달한다.

지식은 날짜(경험)가 없어 입으로만 떠들어 남을 속일 수 있다.

지혜(智慧)는 혓바닥과 같아, 직접 경험하고 실천하여 본질을 깨닫는다.

설악산 지도를 보는 것과 직접 올라가 보는 것의 차이처럼, 지혜는 직접 경험해야 얻을 수 있다.

지혜는 많은 날(경험)을 겪어야 얻을 수 있다.

1.2. 지식과 지혜의 한자적 의미
지식(知識)은 하늘을 가린 것과 같다.

‘지(知)’는 하늘을 가린 모습이며, ‘식(識)’은 말(소리)로만 아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실제 행동으로 경험한 것이 아님을 나타낸다.

지혜(智慧)는 하늘을 눈으로 가린 지식을 생활에 응용하여 얻는 것이다.

배운 것을 생활에 응용하고 실천해야 진정한 지혜가 된다.

노트만 보고 생활에 적용하지 않으면 지혜를 얻을 수 없다.

  1. ‘나(我)’와 ‘우리’의 중요성
    ‘나’만을 내세우면 세상이 독이 되지만, ‘우리’를 생각하면 세상을 이롭게 하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

2.1. ‘나’를 내세우는 것의 위험성
‘나(我)’만을 내세우면 세상이 독이 되어 스트레스를 받고 남과 원수가 된다.

‘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는 등 이기적인 행동을 한다.

‘나’를 주장하는 사람은 결국 세상을 오염시키고 망하게 만든다.

지식은 ‘나’를 내세우는 것과 연결되어 얄팍하게 포장될 수 있다.

‘지(知)’에 ‘날 일(日)’자가 붙으면 노력하여 지혜로 바꾼다는 의미가 된다.

2.2. 한민족과 세계 종교의 기원
한민족은 하늘을 ‘하늘님’이라 부르며, 이는 기독교와 유대교에 영향을 주었다.

‘하늘 천(天)’에서 하늘을 살짝 가리면 ‘화살 시(矢)’가 되는데, 이는 남을 쏘는 행위를 의미한다.

인간이 하늘을 가로막으면 화살이 되어 남을 쏘게 된다.

기독교의 하나님 개념은 한민족의 사상에서 유래했다.

기독교의 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는 한민족의 삼신할머니 사상과 동일하다.

인간은 하늘, 땅, 인간이 각각 33%씩 투자한 주식회사와 같다.

기독교와 불교는 한민족이 만든 종교가 유대로 전파된 것이다.

한자(漢字)는 성경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요절할 요(夭)’자는 하늘을 기울이면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의미로, 성경의 법도를 어기면 망한다는 내용과 같다.

‘옷 의(衣)’와 ‘과일 과(果)’는 에덴동산에서 금지된 과일을 먹고 옷을 입게 된 성경 내용을 나타낸다.

‘금할 금(禁)’자는 생명나무와 선악과를 보지도 따먹지도 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 선(船)’자는 노아의 방주에 8명의 식구가 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4만 자의 한문은 만 년 전에 나왔고, 성경은 6천 년 전에 만들어져 한문이 성경보다 앞선다.

  1. 한민족의 기원과 종교 상징
    한민족은 수메르에서 시작하여 아덴(에덴) 지역에서 문명을 발전시켰으며, 이는 세계 종교의 상징에 영향을 주었다.

3.1. 한민족의 이동 경로와 아덴(에덴)의 의미
한민족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이스라엘 지역)에서 시작하여 천산산맥을 거쳐 중국 태백산에 도읍을 정했다.

수메르 지역의 이름은 아덴(Aden)이며, 기독교에서는 이를 에덴(Eden)이라고 부른다.

‘아(A)’자가 붙은 지명(아브라함,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은 아덴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한민족 최초의 수도인 아사달에도 ‘아(A)’자가 붙는다.

3.2. 종교별 상징과 한민족의 영향
이슬람교의 마크는 ‘아(亞)’자와 유사하며, 유교도 이 ‘아(亞)’자를 마크로 사용한다.

‘아(亞)’자에서 가운데 줄을 없애면 십자가가 되는데, 이는 하늘과 땅을 그린 것으로, 서양 종교가 한민족의 것을 모방했음을 시사한다.

불교의 마크 중간에도 십자가가 있다.

천주교의 마크는 알파벳 ‘PX’와 유사하다.

유대교의 마크는 일곱 금촛대로, 이는 한민족이 제사 지낼 때 사용하던 초와 같다.

기독교의 성당은 원래 ‘사원(寺院)’ 또는 ‘템플(Temple)’이라 불렸으며, 이는 불교의 절과 같은 의미였다.

예수의 문화와 혈통은 한민족의 혈통에서 비롯되었다.

  1. 무정설법과 무아(無我) 신앙
    말이 필요 없는 무정설법처럼, ‘나’를 버리고 ‘우리’를 내세우는 무아 신앙은 지혜를 얻는 길이다.

4.1. 유정설법과 무정설법
유정설법은 소리를 내어 가르치는 것으로, 지식 전달에 가깝다.

숟가락 같은 사람은 아무리 지식을 줘도 다음 날 잊어버린다.

무정설법은 말이 필요 없는 설법으로, 직접 경험하고 깨닫는 지혜에 가깝다.

혓바닥은 김칫국 맛을 설명할 필요 없이 바로 터득한다.

소나무나 돌고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무정설법을 이해하는 사람이다.

숟가락 같은 사람은 소나무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척 보면 아는 것이 혓바닥 같은 사람이다.

4.2. ‘나’를 버리고 ‘우리’를 생각하는 삶
‘나’를 버리고 ‘우리’를 생각하면 모든 사물과 대화하고 환경을 아끼게 된다.

가구를 볼 때 나무의 생명을 생각하고, 가구 없는 집 만들기 운동을 하는 것과 같다.

‘나’만을 생각하면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한다.

고급 가구를 위해 아프리카 밀림의 나무를 베어가는 행위는 ‘나’만을 생각하는 것이다.

후손들은 나무 없는 사막에서 황사를 마시며 살게 될 것이다.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를 생각해야 환경을 보존하고 인류가 살아갈 수 있다.

4.3. 불교의 무아(無我)와 기독교의 부활(復活) 신앙
모든 세계 종교는 하나이며, 불교와 기독교는 같은 진리를 추구한다.

불교의 무아(無我) 신앙은 ‘나’를 없애는 것이고, 기독교의 부활(復活) 신앙은 매일 ‘나’를 죽이고 거듭나는 것이다.

‘나’를 버리고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매일 십자가에 자신을 못 박아 죽이고 거듭나야 사람이 바뀐다.

불교와 기독교의 교육 방식 차이

기독교는 ‘교(敎)’를 내세워 교육기관(학교)을 많이 만들었지만, 얄팍한 지식 전달에 그쳐 양심적인 사람을 만들지 못했다.

불교는 ‘선(禪)’을 내세워 체험과 수행을 강조하며 지혜를 추구한다.

서양(지식)이 동양(지혜)에 지는 이유이며, 서양 사람들이 인도에서 명상을 하는 이유이다.

무아(無我)는 무자기아(無自棄我)와 같다.

‘나’를 내세우지 않고 언제나 자기는 뒤로 빠져 남을 내세우는 것이 무자기아이다.

무자기아는 ‘우리’를 의미하며, 이는 우주에 이로운 것이다.

개인이 아닌 ‘우리’가 하나가 되면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지구인들은 개인 플레이를 멈추고 ‘우리’로 돌아가야 한다.

  1. 진리의 두 가지 형태: 유성진리와 무성진리
    진리는 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유성진리와 소리 없이 깨닫는 무성진리로 나뉘며, 모든 사물은 진리를 담고 있다.

5.1. 유성진리와 무성진리
유성진리는 소리를 내어 진리를 설파하는 것으로, 강의와 같이 가르치는 행위를 의미한다.

무성진리는 소리 없는 진리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스승이 되어 진리를 깨닫게 한다.

바위 하나를 보더라도 그 기원과 존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

5.2. 무성진리를 통한 깨달음의 예시
바위가 가라앉는 현상을 통해 만유인력과 지구의 중력을 깨달을 수 있다.

우리는 지구가 돌기 때문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과 같으며, 중력 덕분에 떨어지지 않는다.

소나무를 통해 고독함을 느끼고, 죽어가는 소나무를 만져주는 행위는 모든 것과 대화하는 것이다.

예수의 가르침처럼, 길가의 거지나 배고픈 자, 집 없는 자에게 베푸는 것이 곧 예수에게 베푸는 것이다.

지나가는 할머니나 모든 사람을 천사의 분신으로 보아야 한다.

매일 십자가에 매달려 ‘나’를 죽이고 거듭나는 것이 부활 신앙이다.

불교의 무아 신앙과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나’를 없애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나’라는 것이 있는 줄도 모르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남을 깔보는 ‘나’는 버리고, 남에게 이익이 되는 ‘우리 형제로서의 나’가 되어야 한다.

  1. 복(福)과 덕(德)의 순환 및 윤회
    복과 덕은 우주 섭리에 따라 순환하며, ‘나’만을 내세우면 불행한 윤회를 겪게 된다.

6.1. 복과 덕의 순환
복(福)과 덕(德)은 우주 섭리에 따라 반복적으로 순환한다.

전생에 남에게 베푼 덕이 현생의 복으로 돌아온다.

현생에서 받은 복을 남에게 덕으로 베풀면 다음 생에 복으로 돌아온다.

‘나’만을 위해 복을 사용하고 남에게 인색하면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다.

하늘의 법도를 지키지 않고 ‘나’를 내세우면 요절(夭折)하게 된다.

6.2. 윤회와 지옥의 의미
불행한 인간으로 태어나거나 몸을 받지 못하고 귀신이 되는 것은 ‘화(禍)’에 해당한다.

불교의 육도윤회에서 가장 안 좋은 곳은 지옥이다.

지옥(地獄)은 말이 통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것을 의미한다.

‘지(地)’와 ‘옥(獄)’의 한자 풀이에서 ‘말씀 언(言)’이 개(犬)들 사이에 있는 모습은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짐승이나 버러지, 미생물로 태어나는 것이 모두 지옥이다.

인간을 이롭게 해야 지옥에 가지 않는다.

  1. 모든 사물의 진리와 ‘우리’의 마음가짐
    모든 사물은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나’를 버리고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7.1. 모든 것은 진리를 가지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우리의 스승이며 진리를 가지고 있다.

마이크 하나도 진리를 가지고 있다.

와이셔츠 비유: 내가 입고 있는 와이셔츠도 언젠가 남에게 벗어주기 위해 입고 있는 것이다.

남에게 베풀려는 마음 자세를 가진 사람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다.

7.2. ‘나’를 내세우는 사람들의 문제점
‘나’만을 내세우고 부활하지 않으며 무아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사람들은 강의를 어렵게 받아들인다.

  1. 덕(德)을 쌓는 삶과 금강경의 가르침
    덕을 쌓는 삶은 재앙을 피하게 하며, 금강경은 세상의 모든 법이 꿈과 같음을 깨닫고 ‘우리’를 위해 살 것을 가르친다.

8.1. 덕을 쌓는 것의 중요성
덕을 쌓은 사람은 비행기 사고나 배 침몰과 같은 재앙을 피할 수 있다.

반면, 아버지 재산을 탕진하며 노는 사람은 재앙을 조심해야 한다.

복과 덕의 순환이 끊어지면 유전병과 같은 저주를 받게 된다.

하늘의 법도를 반듯하게 받들지 않고 기울이면 요절(夭折)하게 된다.

8.2. 금강경의 가르침: ‘나’를 버리고 진리를 보라
“약이색견아 이거나 이음성구아 하면 시인행사도 이니 불능견여래 이라”

사람을 외모(색)나 목소리(음성)로 판단하고 ‘나’를 내세우는 사람은 진리를 모르는 사도(邪道)를 쫓는 자이다.

이런 사람은 결코 천사나 부처(여래)를 만날 수 없다.

예수의 가르침처럼, 찾아오는 손님이나 거지 중에 천사가 있으니 모든 사람을 천사로 보아야 한다.

‘나’라는 것을 버리지 않고 남을 바라보면 천사나 부처를 만날 수 없다.

8.3. 금강경의 가르침: 세상의 모든 법은 꿈과 같다
“일체유위법 여몽환포영 여로역여전 응작여시관”

이 세상의 모든 법(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번개와 같다.

시간은 총알같이 지나가며, 10년 후를 생각하면 지금은 꿈과 같다.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생각처럼, 모든 것은 무상하다.

호흡의 이치: 들이쉬는 숨(호)은 허파에서 물로 바뀌어 산소를 뽑아내고, 내쉬는 숨(흡)은 수분으로 나온다.

우리 몸에는 물고기의 아가미와 같은 모세혈관이 허파에 있어 산소를 걸러낸다.

담배나 황사를 마시면 독소가 혈관으로 들어가 뇌졸중이나 심장마비를 유발한다.

폐활량은 4800cc이지만, 항상 1200cc의 공기가 폐에 남아있어 다 뱉을 수 없다.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 모든 사물을 그림자처럼 무상하게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우리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을 위해 지금 적당히 쓰고 아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다.

지금의 황사는 시작에 불과하며, 미래에는 숨쉬기 어려워질 수 있다.

  1. 숟가락 같은 학생과 혓바닥 같은 학생
    숟가락 같은 학생은 아무리 가르쳐도 깨닫지 못하지만, 혓바닥 같은 학생은 하나를 가르치면 천 가지를 깨닫는다.

9.1. 숟가락 같은 학생의 특징
천 개를 가르쳐도 100개를 기억하지 못하고, 100개를 기억해도 10개를 남에게 전달하지 못하며, 10개를 전달해도 1개를 실천하지 못한다.

이는 개나 소에게 경을 읽어주는 격이며, 졸업장만 노리고 선생님 말에 관심이 없다.

9.2. 혓바닥 같은 학생의 특징
하나를 가르치면 천 가지 행동이 바뀌고 수많은 것을 스스로 공부한다.

예를 들어, ‘밸런스(Balance)’라는 단어 하나를 배우면 자신의 삶의 균형을 생각하고 가족을 위해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학생은 고시에 붙고 출세하여 가족을 일으켜 세운다.

  1. 인간을 판단하는 시각과 자본주의의 이해
    인간을 외모나 지위로 판단하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의 역할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10.1. 인간을 외모(색)로 판단하는 문제점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건은 일등석 승객을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여 발생한 일이다.

사람을 외모(색)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직위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깍듯이 사과해야 한다.

부자들은 돈을 벌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하므로,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

10.2.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의 역할
대기업 사장은 빌딩 청소부를 부러워할 정도로 많은 불안과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실제로 대기업 사장이 빌딩 청소부를 한 달간 체험한 결과, 매우 행복했다고 한다.

부자들은 세금의 70%를 부담하여 사회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부자를 무조건 나쁘게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

이는 부활하는 자의 모습이 아니다.

  1. 종교의 본질과 헌법에 명시된 자유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같으며, 헌법에 보장된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

11.1.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같다
불교의 무아 신앙과 기독교의 부활 신앙은 ‘나’를 없애는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

기독교의 십자가, 성모마리아상, 예수상은 불교의 불상과 마찬가지로 상징성을 가진다.

불상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 진리를 믿는 것이며, 불상은 마음의 안정을 위한 방편이다.

다른 종교를 우상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모든 세계 종교에는 구원이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야 기독교와 불교 모두 발전할 수 있다.

동양 종교가 서양으로 건너간 것인데, 서양 종교를 동양이 흉내 내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적반하장이다.

11.2. 헌법에 명시된 자유와 권리
대한민국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를 포함한 여러 자유권이 명시되어 있다.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종교, 사상, 표현, 양심의 자유가 국민에게 있다.

다른 종교에게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불법이다.

종교를 전할 때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상대방 종교를 비난해서는 안 된다.

이슬람교처럼 ‘우리 아니면 다 죽여’식의 태도는 좋지 않다.

국민의 3대 권리: 소유권, 생존권, 평등권

소유권: 자기 부동산을 대통령도 뺏어갈 수 없다.

생존권: 아파트가 햇빛을 가리면 일조권 침해로 생존권을 위협한다.

평등권: 햇볕을 평등하게 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를 침해하면 보상해야 한다.

민주주의의 3대 원칙: 행복 추구의 원칙, 인간 존엄의 원칙, 절대 공평의 원칙

행복 추구의 원칙: 남의 집 대문을 막는 행위는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

인간 존엄의 원칙: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절대 공평의 원칙: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권리를 누려야 한다.

자본주의의 3대 원칙: 소유권 절대 원칙, 계약 자유의 원칙, 과실 책임의 원칙

북한에는 이러한 원칙이 없어 개인의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1. ‘나’와 ‘우리’의 상징: 술과 물
    ‘나’를 내세우는 사람은 술과 같아 피가 썩고 불행해지지만, ‘우리’를 내세우는 사람은 물과 같아 지혜롭고 이롭게 된다.

12.1. ‘나’를 내세우는 사람: 술
‘나’를 많이 내세우는 사람은 피가 썩고 얼굴빛이 안 좋으며, 술을 많이 마신다.

술은 머리로 올라가는 성질이 있어 인생을 나쁘게 만들고, 인화성과 소멸성을 가진다.

불은 무지를 상징하며, 씨를 남기지 않고 다 태워버린다.

직장에 고용되어 갇혀 사는 사람은 불 기운, 즉 술을 좋아하게 된다.

12.2. ‘우리’를 내세우는 사람: 물
‘우리’를 많이 내세우는 사람은 물과 같아 유동성(흐르는 성품)을 가진다.

자기 주장을 하지 않고 낮은 곳으로 내려가지만, 없어지지 않는다.

물은 지혜를 상징하며, 마실수록 건강에 좋고 자유자재하다.

물은 흡수성을 가져, 시집간 며느리가 물과 같으면 시댁 식구 모두에게 사랑받는다.

반면, 불 같은 사람은 배타성이 있어 남을 밀어낸다.

물과 같은 사람은 늙어 죽을 때에도 피부에 윤기가 나지만, ‘나’를 내세우는 사람은 피부가 썩는다.

남편의 꾸지람에 화를 내는 엄마의 젖을 먹은 아기는 설사를 하는 것처럼, ‘나’라는 것이 모든 불행의 원인이다.

  1. 걱정과 기쁨의 본질
    걱정과 기쁨은 모두 스스로 생겨나며, 행복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주어진다.

13.1. 걱정과 기쁨의 발생 원리
걱정은 저절로 생기며, 마음을 컨트롤하지 않으면 피를 썩게 한다.

썩은 피로 아기에게 젖을 먹이면 아기가 약해진다.

기쁨도 스스로 생겨나며, 우리는 몸 안에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

기쁨이 걱정을 이겨야 한다.

13.2. 행복의 평등성
행복의 조건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다.

이건희 회장과 같은 부자도 걱정이 많아 평범한 지게꾼보다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다.

정치인이나 주변 사람들의 협박과 공갈에 시달리며 불안하게 살아간다.

모든 사람은 기쁨과 행복의 조건을 다 가지고 있으며, 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걱정으로 인생을 망치고 피를 썩게 하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