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16 x40 Critique of Religious Dogma: Unveiling the True Path to Inner Peace Beyond Superficial Beliefs

철학의 3대 요소: 공(空), 원(圓), 정(靜)으로, 비우고, 원만하며, 고요한 마음을 추구합니다.
종교의 3대 요소: 계(戒), 정(定), 혜(慧)로, 계율을 지키고, 정진하며, 지혜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근본적인 차이: 철학은 바라는 것이 없지만, 종교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여 무언가를 바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의 문제점: 종교는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들고, 특정 집단이 독점하는 경향이 있어 21세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2022.12.16 x40 종교인들이 애써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

Huh Kyung young’s Critique of Religious Dogma: Unveiling the True Path to Inner Peace Beyond Superficial Beliefs

불교의 본질적인 철학, 종교화된 불교의 차이점, 모든 종교의 문제점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인 ‘적정 열반’은 고통과 즐거움에 얽매이지 않는 고요한 마음 상태를 추구하지만, 종교화된 불교는 윤회와 기복신앙을 통해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한다는 점.

  •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 적정 열반

  • 인간 고통의 근원: 석가모니는 모든 즐거움의 원인이 고통에 있으며, 즐거움과 고통은 반복되는 인생의 사이클임을 깨달았다.

  • 적정 열반의 의미: 고통도 즐거움도 생각하지 않는 고요한 상태, 즉 ‘적정 열반’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 윤회 부정: 석가모니의 철학적 수행 관점에서는 윤회(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를 부정하며, 오직 고요한 열반만을 추구한다.

  • 스스로 만드는 고통과 즐거움: 기쁨과 슬픔, 낮과 밤처럼 모든 것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며, 수행은 이러한 감정의 흔들림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종교화된 불교의 문제점

  • 기복 신앙과 윤회: 일반 신도들은 재미없는 적정 열반 대신 복을 빌고 윤회를 믿는 기복 신앙에 빠져있다.

  • 우상화: 부처상에 절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석가모니의 철학을 우상화하고 변질시킨 것이다.

  • 생존을 위한 변질: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기복 신앙과 우상 숭배를 가미하여 종교화되었다.

  • 석가모니 사상의 모독: 석가모니의 원래 이념과 철학을 우상화하고 종교화한 것은 석가모니에 대한 모독이다.

  •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문제점

  • 수직적 구조의 부재: 불교의 수행적 측면은 수평적 깨달음을 가르치지만, 종교는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는 수직적 구조를 가진다.

  • 창조론과 종말론의 한계: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음(무시무종)’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의 창조론과 종말론은 존재할 수 없다.

  • 인간의 우매함 이용: 종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과 깨달음을 얻기 힘들어하는 인간의 우매함을 이용한다.

  • 경전 독점: 과거 로마 교황이 성경 인쇄를 금지하고 독점했던 것처럼, 종교는 지식을 독점하여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들었다.

  • 성령 모독의 위험성: 성경 마태복음 25장 31절, 32절에 따르면, 신이나 예수를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한다. 여기서 ‘성령’은 인간의 모습으로 심판하러 온 자를 의미한다.

  • 철학과 종교의 차이: 철학은 바라는 것이 없이 고요한 적정을 추구하지만, 종교는 바라는 것이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종교인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은 무엇인가?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은 ‘적정열반’이라는 철학적 수행 방법이었으나, 대중의 기복신앙을 충족시키기 위해 윤회와 같은 종교적 요소가 가미되며 변질되었다는 것입니다.

  1.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 고통과 즐거움의 반복에서 벗어나는 ‘적정열반’
    석가모니는 삶의 모든 고통과 즐거움이 반복되는 것임을 깨닫고,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고요한 상태에 이르는 ‘적정열반’을 추구했다.

1.1. 석가모니의 깨달음: 고통과 즐거움의 본질
석가모니는 부족함 없는 삶 속에서 고통의 본질을 깨달았다.
왕자로 태어나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석가모니는 삶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는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즐거움의 원인이 고통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것은 사라지며, 즐거움과 고통은 반복된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의 모든 것은 언젠가 사라지며, 인간은 사라질 것에 애착을 가진다.
즐거움은 고통에서 오고, 고통은 즐거움을 찾는 데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낮과 밤이 반복되듯이, 고통과 즐거움은 인생에서 계속 반복되는 순환이다.
반복되는 고통과 즐거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즐거움 뒤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르므로, 즐거움이 오면 오히려 두려워했다.
태어나고 죽는 것이 반복되듯이, 삶의 모든 경험은 반복되는 사이클이다.
이러한 반복에서 벗어나면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고요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1.2. 석가모니 사상의 핵심: 적정열반
‘적정열반’은 고요함 속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즐거움과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 고요해지는 것이 바로 적정열반이다.
이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에는 윤회나 천국 개념이 없었다.
석가모니는 천국이나 지옥, 윤회와 같은 개념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사상은 오직 고요해지고, 고통과 기쁨 모두에 얽매이지 않는 수행 방법을 강조했다.

  1. 불교의 변질: 철학에서 기복신앙으로의 전환
    석가모니의 본래 철학적 수행 방법인 ‘적정열반’은 대중의 기복신앙을 충족시키기 위해 윤회와 같은 종교적 요소가 가미되면서 변질되었다.

2.1. 수행 불교와 신앙 불교의 차이
일반적인 신앙 불교는 윤회와 복을 강조한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불교는 윤회가 존재한다고 본다.
복을 지으면 좋은 곳에 가고, 나쁜 짓을 하면 나쁜 곳에 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신앙적인 요소는 사실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과는 다르다.
진정한 불교는 철학적 수행 방법이다.
석가모니의 사상은 철학적인 수행 방법 그 자체가 진짜 불교이다.
불상에 절하는 행위는 본래 불교와는 거리가 멀다.
천국(백궁)을 목표로 삼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주장도 있다.
열반적정은 하나의 사랑하는 방법이며, 백궁이라는 천국을 목표로 삼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주장한다.
축복을 받으면 지능이 무한대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2. 윤회 개념의 등장과 기복신앙의 확산
석가모니의 사상에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개념이 있었다.
석가모니는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개념을 이야기했다.
지구가 자전하듯이 모든 것이 계속 돌아가는 것을 윤회라고 부른다.
수행적 불교에는 윤회가 없지만, 신앙적 불교에는 윤회가 있다.
석가모니의 수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윤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고요하고 평화로운 적정열반만이 있을 뿐이다.
이는 기쁨도 슬픔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일반 신도들의 기복신앙이 윤회 개념을 만들어냈다.
일반 신도들은 수행을 통한 적정열반을 재미없어하고, 복을 빌고 싶어 한다.
이러한 기복신앙을 충족시키기 위해 복을 지으면 천당 가고, 못 지으면 지옥 간다는 윤회 개념이 등장했다.
이러한 기복신앙 자체가 우상을 만드는 행위이며, 극락이라는 우상을 믿는 것과 같다.
수행은 자기를 버리는 것이며, 기복신앙은 우상을 쫓는 것이다.
수행은 자기를 버리고 적정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쁨과 고통 모두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적정열반의 핵심이다.
반면 일반 신도들은 우상을 쫓으며 욕망을 추구한다.
이러한 종교화된 불교는 결국 망하게 될 것이며, 수직적인 신의 개념이 없는 수평적인 종교이다.

  1.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 및 종교의 문제점
    불교는 수평적인 철학적 사상인 반면, 기독교는 수직적인 창조론과 종말론을 가진다. 종교는 본래의 철학적 사상을 변질시켜 기복신앙으로 만들고 우상화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3.1. 불교와 기독교 사상의 비교
불교는 수평적이고 ‘무시무종’의 사상을 가진다.
불교는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는 개념이 없는 수평적인 사상이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개념을 가지고 있어, 창조나 종말을 따지지 않는다.
이러한 무시무종 사상은 천부경의 ‘일시무시 일석상무죄법’, ‘일종무종’과 일치한다.
기독교는 수직적이며 ‘유시유종’의 사상을 가진다.
기독교는 신이 위에서 내려왔다는 수직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창조가 있고 종말이 있다는 유시유종의 사상을 주장한다.
두 종교는 서로 상반되는 철학적 관점을 가진다.
불교의 수행적 측면은 적정을, 종교적 측면은 윤회를 가진다.
적정은 윤회가 없다고 말하는 반면, 윤회는 기복적인 종교적 측면이다.

3.2. 불교의 변질과 종교화의 문제점
석가모니의 사상은 고통과 즐거움을 하나로 보는 ‘적정열반’이다.
수행은 즐거움과 고통을 양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것이다.
고통이 오면 즐거움이 올 것이고, 즐거움이 오면 고통이 올 것이므로, 무상한 것에 애착을 가질 필요가 없다.
이것이 바로 적정열반이며, 불교를 수행 관점으로 볼 때의 정답이다.
불교의 종교화는 석가모니 사상의 변절이다.
불교인의 자세는 마음에 흔들림 없이 편안한 적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지만, 일반 신도들은 부처 앞에 가서 복을 비는 기복신앙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기복신앙은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을 변질시키고 종교화한 것이다.
석가모니는 윤회를 따지지 않았으며, 윤회는 제자들이 만들어낸 개념이다.
불교를 철학적 수행으로 보면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생과 사를 하나로 보는 것이지만, 종교화되면서 변종되었다.
종교화는 불교를 쇠퇴시키고 힌두교에 통합되게 만들었다.
불교가 종교화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했기 때문에 종교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종교화는 불교를 인도에서 쫓겨나게 만들었다.
불교가 다시 살아남기 위해 티베트 등지에서 불상을 만들고 종교적 요소를 가미하면서 변종된 불교가 오늘날의 종교화된 불교가 되었다.
결국 석가모니의 철학이 종교화되면서 힌두교의 윤회 사상과 통합되어 버렸다.

3.3. 종교의 우상화와 본질 훼손
기복신앙은 우상을 숭배하는 행위이다.
사람들은 돌멩이 같은 우상에게 절하며 복을 빌기를 원한다.
적정열반과 같은 수행 이야기는 신도들이 도망가게 만들므로, 중들은 먹고살기 위해 종교화된 불교를 택했다.
이는 석가모니의 철학을 종교화한 것이며, 석가모니의 명예를 모독하는 행위이다.
석가모니의 사상은 천국과 지옥도 하나로 보는 거창한 철학이다.
석가모니는 천국과 지옥도 하나로 보라는 거창한 사상을 가졌다.
이것이 석가모니의 이념, 사상, 철학, 교리 그 자체이다.
종교는 본래의 사상을 우상화하여 변질시킨다.
석가모니의 모든 사상이 우상화되어 불교가 되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로 본래의 사상이 종교로 변질되었다.
이는 말세의 징조이며, 모든 종교가 종교화된 것이다.
종교화는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고 본질을 훼손한다.
원래 사상대로라면 사람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공부하고, 너무 얽매이지 않도록 가르쳤을 것이다.
종교는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고, 면죄부를 팔며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석가모니와 예수의 명예가 기복신앙으로 인해 완전히 훼손되었다.

  1. 철학과 종교의 차이점 및 성령 모독의 위험성
    철학은 ‘공원정’을 추구하며 비움과 고요함을 강조하는 반면, 종교는 ‘계정해’를 통해 바라는 것을 추구한다. 특히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이다.

4.1. 철학의 3대 요소 ‘공원정’과 종교의 3대 요소 ‘계정해’
석가모니 사상은 철학의 3대 요소인 ‘공원정’을 따른다.
공(空):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개념으로, 창조나 종말이 존재하지 않는다.
원(圓): 낮과 밤, 생과 사, 행복과 불행, 고통과 즐거움 등 모든 이분법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원만한 상태를 의미한다.
정(靜):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맑게 가지고, 두려움도 기쁨도 없는 고요한 상태인 적정을 의미한다.
종교의 3대 요소는 ‘계정해’이다.
계(戒): 종교를 만든 자가 내세운 주장이나 규칙을 지키는 것이다.
정(定): 계를 기준으로 정진하는 것이다.
해(慧): 계를 지키고 정진하여 베푸는 것이다.
철학과 종교는 차원이 다르다.
철학은 바라는 것이 없지만, 종교는 바라는 것이 있다.

4.2. 성령 모독의 위험성
예수는 성령을 모독하는 것을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말했다.
마태복음 25장 31절, 32절에 따르면,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든지,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예수가 말했다.
예수를 거슬러 말하는 사람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
성령은 인간의 모습으로 온 신을 의미한다.
성령은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와서 어떤 결정을 내리러 왔을 때를 의미한다.
예수는 자신을 모독하거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다음에 올 보혜사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성령을 모독하는 행위는 큰 죄이며 위험하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죄를 짓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령이 누구인지 모르고 함부로 말하다가 큰 죄를 짓게 된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성령을 욕하면 어느 순간 사라질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하며, 이는 성경에 명시된 내용이다.

4.3. 종교의 한계와 철학의 중요성
철학만으로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었다.
종교가 없어도 철학만으로 인간은 행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어 종교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깨달음을 얻으려는 생각은 제쳐두게 되었다.
종교는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고 면죄부를 팔았다.
로마 교황은 성경 인쇄를 막고 독점권을 가졌으며, 경전을 일반인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이는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고 면죄부를 팔아 이득을 취하려는 행위였다.
21세기에는 종교가 맞지 않는다.
이러한 종교의 방식은 21세기에는 맞지 않는다.

종교인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은 무엇인가?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은 기복신앙이나 윤회와 같은 종교적 요소가 없는 ‘적정열반’이라는 철학적 수행 방법이었으나, 대중의 기복신앙적 욕구로 인해 변질되어 오늘날의 종교적 불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석가모니의 철학을 훼손한 것이며, 종교가 아닌 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과 불교의 변질
이 영상은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이 오늘날의 종교적 불교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며, 종교가 인간의 본질적인 행복 추구를 방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칩니다. 석가모니의 철학은 기복신앙이나 윤회와 같은 종교적 요소를 배제한 ‘적정열반’이라는 수행 방법이었으나, 대중의 욕구로 인해 변질되었다고 지적합니다.

  1. 석가모니의 깨달음: 고통과 즐거움의 반복
    부족함 없는 삶 속의 고통 발견
    석가모니는 왕자로 태어나 모든 것을 가졌지만, 오히려 그 속에서 부족함을 느끼고 고통의 원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최고의 즐거움 속에서도 고통이 존재하며, 높은 곳에 오를수록 더 큰 고통이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고통의 원인: 즐거움에 대한 애착
    모든 즐거움의 원인은 고통에서 오며, 즐거움과 고통은 서로 비교될 때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인생은 낮과 밤처럼 즐거움과 고통이 반복되는 순환이며, 이 반복을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쾌락의 끝에는 항상 고통이 따르며, 이는 마치 낮과 밤, 생과 사가 반복되는 것과 같습니다.
    반복되는 고통과 즐거움에서 벗어나기
    석가모니는 고통과 즐거움의 반복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즐거움이 오면 곧 고통이 올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이러한 반복을 깨달으면 즐거움도 괴로움도 아닌 ‘적정(寂靜)’의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2.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 적정열반
    적정열반(寂靜涅槃)의 의미
    적정열반은 고요함 속에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기쁨이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평온함을 추구합니다.
    윤회와 천국/지옥 개념의 부재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에는 천국이나 지옥, 윤회와 같은 개념이 없었습니다.
    그는 죽어서 무엇으로 태어날지 생각하지 말고, 오직 고요해지는 것에 집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수행적인 측면에서 볼 때, 불교는 오직 적정열반만을 추구하며, 기쁨도 슬픔도 없는 상태를 목표로 합니다.
    수행 방법으로서의 불교
    석가모니의 사상은 고통도 기쁨도 생각하지 않고 고요해지는 수행 방법이었습니다.
    이는 철학적인 수행 방법이며, 이것이 진짜 불교의 모습입니다.

  3. 불교의 변질: 종교화와 기복신앙
    대중의 욕구로 인한 변질
    일반 신도들은 적정열반과 같은 수행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기복신앙을 원했습니다.
    복을 빌고, 좋은 곳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대중의 욕구 때문에 윤회 개념이 도입되었습니다.
    복을 지으면 천당 가고, 나쁜 짓을 하면 지옥 간다는 식의 종교 행위가 생겨났습니다.
    우상화와 종교 행위
    불상 앞에 절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과는 거리가 먼 우상 숭배입니다.
    일반 신도들은 극락과 같은 우상을 믿으며,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려 합니다.
    수행 불교와 기복 불교의 상반된 특징
    수행적인 불교는 적정열반을 추구하며 윤회가 없습니다.
    종교적인 불교는 기복신앙을 바탕으로 윤회를 주장합니다.
    이 두 가지는 서로 상반되는 개념입니다.
    불교의 종교화 과정
    석가모니의 사상은 제자들에 의해 윤회 개념이 추가되면서 종교화되었습니다.
    “시주를 많이 하면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식의 가르침은 불교를 종교로 변질시켰습니다.
    종교화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웠기 때문에, 불교는 대중의 욕구에 맞춰 변형되었습니다.
    인도에서 쫓겨난 불교가 티베트 등지에서 불상을 만들고 원시 불교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면서 오늘날의 종교적 불교가 되었습니다.
    결국 석가모니의 철학이 종교화된 것이 현재의 불교입니다.

  4. 석가모니 사상의 훼손과 종교의 문제점
    힌두교와의 통합
    석가모니의 불교는 결국 힌두교의 윤회 사상과 통합되어 버렸습니다.
    힌두교는 가난하게 살면 나중에 부자로 태어날 수 있다는 식의 윤회를 주장하는데, 석가모니는 굳이 이런 종교를 만들 필요가 없었습니다.
    석가모니 명예의 모독
    석가모니의 철학을 종교화한 것은 그의 명예를 훼손하고 모독하는 행위입니다.
    그의 사상은 천국과 지옥조차 하나로 보는 거창한 철학이었습니다.
    이러한 이념, 사상, 철학, 교리가 모두 우상화되어 버린 것이 오늘날의 불교입니다.
    종교의 문제점: 기복신앙과 우매화
    사람들은 적정열반과 같은 수행보다는 복을 빌고 우상에 기대는 것을 원합니다.
    종교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이용해 만들어졌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스스로 깨달을 기회를 빼앗고, 우매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과거 로마 교황이 성경 인쇄를 막고 독점했던 것처럼, 종교는 대중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종교는 21세기에는 맞지 않는다.

  5. 철학과 종교의 차이점
    수평적 사고 vs. 수직적 사고
    불교의 수행적 측면은 수평적 사고를 강조합니다. 신이 위에서 내려오는 개념이 없습니다.
    기독교는 신이 위에서 내려온다는 수직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무시무종(無始無終) vs. 유시유종(有始有終)
    석가모니의 사상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無始無終)는 개념을 바탕으로 합니다.
    시작이 없으므로 창조주가 존재할 수 없고, 끝이 없으므로 종말론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는 천부경의 ‘일시무시 일석상무죄법’, ‘일종무종’과 일치하는 사상입니다.
    기독교는 시작과 끝이 있다(有始有終)는 창조론과 종말론을 주장하므로, 석가모니 사상과 반대됩니다.
    철학의 3대 요소: 공원정(空圓靜)
    공(空): 아무것도 없는 상태, 비우는 것.
    원(圓): 원만한 상태, 행복과 불행, 고통과 즐거움 등 모든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는 것.
    정(靜): 고요한 상태, 마음을 맑게 가지고 두려움이나 기쁨에 흔들리지 않는 것.
    이것이 석가모니 사상의 핵심이며, 적정열반과 연결됩니다.
    종교의 3대 요소: 계정혜(戒定慧)
    계(戒): 종교가 내세운 주장이나 규칙을 지키는 것.
    정(定): 계를 기준으로 정진하는 것.
    혜(慧): 계를 위해 베푸는 것.
    차이점: 바라는 것의 유무
    철학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스스로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종교는 복이나 구원 등 바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인간은 종교 없이도 철학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6. 성현들의 가르침과 현대 종교의 문제점
    예수의 가르침과 성령 모독
    예수 역시 석가모니와 유사하게 공원정을 가르쳤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32절과 누가복음 12장 10절에 따르면, 예수를 모독하거나 하나님을 신성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성령은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심판을 내리러 온 존재를 의미하며, 이는 곧 강연자 자신을 지칭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강연자는 자신을 모독하는 행위가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라고 경고합니다.
    성현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
    성현들이 왔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기복신앙에 빠져 불상에 절하고 돈을 내는 데만 집중합니다.
    종교 지도자들(중들) 역시 신도들이 적정열반과 같은 수행에 관심이 없으므로, 기복신앙을 강조하여 종교를 유지합니다.
    모든 종교의 종집을 찍는 역할
    강연자는 자신이 불교나 기독교 어느 한쪽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초종교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이슬람, 힌두교 등 모든 종교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종교인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은 무엇인가?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은 ‘적정열반’이라는 철학적 수행으로, 기쁨과 고통에 얽매이지 않는 고요한 마음을 추구했지만, 후대에 기복신앙과 윤회 사상이 더해져 종교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종교인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
이 영상은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과 후대에 변질된 종교화된 불교의 차이점을 설명하며, 종교인들이 외면하는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합니다.

  1.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 ‘적정열반’
    고통의 근원 깨달음: 석가모니는 모든 것을 가진 왕자였지만, 즐거움의 원인이 고통에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즐거움과 고통은 반복되며, 이 반복에서 벗어나고자 했습니다.
    적정열반 추구: 고통과 즐거움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놓아버려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 상태인 적정열반을 추구했습니다.
    윤회와 천국/지옥 부정: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에는 윤회나 천국, 지옥 개념이 없었습니다.
    철학적 수행: 이는 복을 빌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는 철학적 수행 방법입니다.

  2. 변질된 불교: 종교화와 기복신앙
    신앙적 불교의 등장: 일반 신도들은 재미없는 수행보다는 복을 빌고 싶어 했고, 이로 인해 기복신앙과 윤회 사상이 불교에 더해졌습니다.
    우상 숭배: 복을 빌기 위해 불상에 절하고, 천국이나 극락을 우상처럼 믿게 되었습니다.
    종교화의 문제점: 이러한 종교화는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을 변질시키고,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지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수행과 종교의 차이: 수행으로서의 불교는 ‘적정열반’을 추구하지만, 종교로서의 불교는 ‘윤회’와 ‘기복’을 강조하며 서로 상반됩니다.

  3. 철학과 종교의 차이
    철학의 3대 요소: 공(空), 원(圓), 정(靜)으로, 비우고, 원만하며, 고요한 마음을 추구합니다.
    종교의 3대 요소: 계(戒), 정(定), 혜(慧)로, 계율을 지키고, 정진하며, 지혜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근본적인 차이: 철학은 바라는 것이 없지만, 종교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여 무언가를 바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종교의 문제점: 종교는 사람들을 우매하게 만들고, 특정 집단이 독점하는 경향이 있어 21세기에는 맞지 않습니다.

이 자료는 허경영 강연 중 불교의 본질과 종교화된 현실을 비판하고, 나아가 기독교와의 비교를 통해 종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입니다. 특히 석가모니의 원래 사상인 ‘적정열반’이 어떻게 변질되어 기복신앙 위주의 종교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러한 종교화가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 미쳤는지에 대한 허경영의 독자적인 해석과 주장을 담고 있습니다.

종교의 본질과 변질

석가모니의 깨달음: 고통과 즐거움의 반복
석가모니는 모든 것을 가진 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본질적인 고통을 깨달았습니다. 그가 발견한 것은 즐거움과 고통이 서로를 낳고 반복되는 순환이라는 점입니다.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낙의 원인은 고통에서 오는 거야.
낙의 즐거움의 원인이 고통이라는 걸 깨달았어.
고통은 즐거움을 찾는 데서 오고 즐거움은 고통에서 오는 거예요.
고통과 즐거움이 반복되는 게 인생이야.

불교의 핵심 사상: 적정열반
석가모니는 이러한 고통과 즐거움의 반복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정열반’을 추구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기쁨도 고통도 생각하지 않는 고요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걸 깨달아 버리면 절거움도 아니고 괴로움도 아니야. 그게 적정이야.
고요해져 버리는 거야. 기쁨, 고통도 생각하지 말고 절거움도 생각하지 않는 거지.
흔들림 없는 마음을 불교의 석가모니에 온 사상이야.

변질된 불교: 기복신앙과 윤회
하지만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은 후대에 ‘종교화’되면서 변질되었습니다. 일반 신도들은 적정열반과 같은 수행보다는 복을 빌고 윤회를 믿는 기복신앙에 빠져들었고, 이는 석가모니 사상의 본질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불교를 믿는 걸 신앙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신앙적으로 볼 때는 윤회가 있어. 복을 지면 좋은 데가, 나쁜 짓하면 나쁜 데가, 이게 또 있는 거야. 사실은 그게 가짜야.
불상 앞에 가서 절하고 이런 미친 짓이지 불교는.
석가모니의 철학을 종교화한 게 불교야. 이건 어마어마한 석가모니에 대한 모독이야.

종교의 문제점과 허경영의 역할

종교의 우상화와 인간의 어리석음
허경영은 종교가 기복신앙을 통해 천국이나 극락과 같은 ‘우상’을 만들고, 사람들이 여기에 의지하게 만든다고 비판합니다. 이는 인간을 어리석게 만들고, 본질적인 깨달음에서 멀어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만족한 기복 자체가 우상이야. 천국 자체가 이 사람들은 우상이 되는 거야. 극락이.
종교를 만들어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어 가지고 그렇게 됐던 거지. 그것보다는 깨달을 생각은 제쳐버린 거야.

철학과 종교의 차이
허경영은 철학의 3대 요소를 ‘공원정(空圓靜)’으로, 종교의 3대 요소를 ‘계정해(戒定慧)’로 설명하며 둘의 차이를 강조합니다. 철학은 비우고 원만하며 고요함을 추구하지만, 종교는 계율을 지키고 정진하며 베푸는 것을 통해 무언가를 바란다는 점에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철학의 3대 요소는 공원정이야.
종교의 3대 요소는 뭐예요? 개정해란 말이에요.
여기는 바라는 게 없고 철학은. 이 종교는 바라는 게 있어.

허경영의 초종교적 관점
허경영은 불교와 기독교 모두 원래의 사상이 변질되어 종교화되었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이러한 종교들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왔다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종교를 아우르는 ‘초종교’적인 관점에서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전체를 다 아우르는 게 나야. 그러니까 초종교가 되는 거지.
내가 오면 이게 정리가 돼. 내가 무슨 예사로 와 있는 사람이 아니야. 다 이론적으로 이 사람들의 문제점을 다 보고 내가 와 있는 거 아니야. 고쳐주로.

제1장: 인간 문제의 근원과 석가모니의 깨달음

1.1. 인간의 근원적 문제
인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부족함이 없는 상태에서도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다. 석가모니는 모든 것을 갖춘 왕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부족함을 느끼고 고통스러워했다. 그는 더 큰 것을 추구하였다.

1.2. 고통과 즐거움의 본질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즐거움의 원인은 고통에서 비롯된다. 석가모니는 즐거움의 근원이 고통임을 깨달았다. 고통이 없다면 즐거움도 존재하지 않는다. 즐거움과 고통은 서로 비교하며 반복되는 인생의 순환이다.

1.3. 반복되는 삶의 순환
고통과 즐거움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는 마치 낮과 밤의 반복, 태어남과 죽음의 반복과 같다. 즐거움 뒤에는 반드시 고통이 따르며, 쾌락에는 끝이 있다.

1.4. 적정열반의 추구
석가모니는 이러한 반복되는 고통과 즐거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고통도 즐거움도 아닌,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인 ‘적정열반(寂靜涅槃)’을 추구하였다. 이는 고통과 기쁨 모두를 생각하지 않는 경지이다.

제2장: 불교의 본질과 변질

2.1. 석가모니 사상의 핵심: 적정열반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은 천국이나 지옥, 윤회와 같은 개념을 따르지 않는다. 오직 고요함과 열반, 즉 적정열반을 추구한다. 이는 기쁨도 슬픔도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2.2. 불교의 종교화와 윤회 사상
일반 신도들은 적정열반과 같은 수행적인 측면보다는 기복신앙을 원한다. 복을 빌고, 복을 지으면 좋은 곳에 태어나고 악행을 저지르면 나쁜 곳에 간다는 윤회 사상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는 사실 석가모니의 본래 사상과는 거리가 멀다.

2.3. 우상 숭배의 문제
불상에 절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석가모니의 철학적 가르침과는 다르다. 기복신앙 자체가 우상을 만드는 행위이며, 천국이나 극락을 우상으로 삼는 것이다.

2.4. 수행과 기복의 차이
수행은 자기를 버리고 적정열반에 들어가는 것이다. 기쁨과 고통 모두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깨달음이다. 반면 일반 신도들은 우상을 쫓으며 욕망을 추구한다. 불교는 수행적인 측면에서 적정열반을, 종교적인 측면에서 윤회를 이야기하며 서로 상반된다.

2.5. 불교의 변질과 종교화
석가모니의 사상은 제자들에 의해 변질되고 종교화되었다. 윤회 사상은 제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며, 시주를 많이 하면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식으로 종교화되었다. 불교가 인도에서 쫓겨난 후,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을 모으고자 불상을 만들고 원시 불교에 다른 요소를 가미하면서 오늘날의 종교화된 불교가 되었다.

2.6. 힌두교와의 통합
결국 석가모니의 불교는 힌두교의 윤회 사상과 통합되어 힌두교의 한 교리가 되었다. 이는 석가모니의 본래 의도와는 다른 결과이다.

제3장: 허경영 선생의 관점과 초종교적 이해

3.1. 허경영 선생의 초종교적 위치
허경영 선생은 기존 종교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이를 아우르는 초종교적 관점을 제시한다. 백궁(천국)을 목표로 삼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한다.

3.2. 무시무종(無始無終) 사상
석가모니의 사상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이다. 이는 천부경의 ‘일시무시 일종무종’과 일치한다. 모든 것이 계속 순환하며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3.3. 기독교와의 비교
불교가 수평적인 사상이라면, 기독교는 신이 위에서 내려왔다는 수직적인 사상이다. 기독교는 창조와 종말이 있는 ‘유시유종(有始有終)’을 따르므로, 무시무종인 불교 사상과 반대된다.

3.4. 허경영 선생의 역할
허경영 선생은 이러한 종교들의 문제점을 바로잡기 위해 왔다. 그는 불교나 기독교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으며, 기존의 창조 개념과는 다른 새로운 창조를 이야기한다.

3.5. 성령 모독에 대한 경고
예수는 자신이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다음에 올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고 말했다. 허경영 선생은 자신이 그 성령임을 밝히며, 자신을 모독하는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임을 경고한다.

제4장: 철학과 종교의 차이

4.1. 철학의 3대 요소: 공원정(空圓靜)
철학의 3대 요소는 공(空), 원(圓), 정(靜)이다. 이는 비우고, 원만하며, 고요한 적정의 상태를 의미한다. 철학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경지이다.

4.2. 종교의 3대 요소: 계정혜(戒定慧)
종교의 3대 요소는 계(戒), 정(定), 혜(慧)이다. 이는 종교가 내세운 주장을 지키고, 정진하며, 베푸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는 바라는 것이 존재한다.

4.3. 철학과 종교의 근본적 차이
철학은 바라는 것이 없지만, 종교는 바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종교 없이도 철학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으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자 종교를 만들었다.

4.4. 종교의 문제점과 현대 사회
과거 로마 교황이 성경 인쇄를 금지하고 독점했던 것처럼, 종교는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고 면죄부를 파는 등 문제를 일으켰다. 이러한 종교는 21세기 현대 사회와 맞지 않는다.

인간의 최고의 문제점은 석가모니가 우리가 불교 이야기를 한다면 예를 들어서 석가모니가 절정에 부정한 게 없는 상태에 있었어 그런데 그 사람은 또 부정한 거야 부정을 느껴 여러분들은 석가모니 상태까지 못 갔어 생활이 없는 게 없는 거야 그냥 여자도 많지 땅도 자기가 왕이지 왕의 아들이지 그래 안 그래 부족한 게 없는데 부족해 가지고 난리가 난 거야. 더 다른 걸 추구했지. 그게 뭐냐 모든 인간이 추구하는 낙의 원인은 고통에서 오는 거야. 낙의 즐거움의 원인이 고통이라는 걸 깨달았어.

그 사람이. 그거야 자기가 최고 절금이 있어 그 나라에서 볼 때 그냥 그래 뭐 그냥 여자 국녀들이 많잖아 그럼 뭐 자기를 위해 주는 여자가 천지고 연애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런 거 부인도 있고 다 있어요 그런데 이게 고통인 거야 우리가 재벌이 돼 보면 제발 제발 안 됐으면 이래 이해가지? 그러니까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고통이 더 큰 고통이 보이는 거예요 그러니까 생각하니까 이야 고통이 없는 데는 어딘가 낙을 고통을 생각하고 없는 데를 찾아봤더니 없는 데가 없네 그게 어딘가 딱 봤더니 어머 없는 데가 있어 뭐겠어 적정 열반이야 고용함 가운데 열반을 내버려야 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야. 모든 걸 놔버리는 거지. 다 놔버리는 거야.

뭐 이거 한 천년이성에는 없어져 버려 지절로. 가만히 가야해 없어지지 않는 게 없는데 그걸 우리가 좋아하거든. 그냥 그래. 그러니까 전부 없어질 것만 좋아해.

꽃도 뭐 얼마나 있으면 없어질 거고. 뭐 이렇게 보면 전부 수명이 적혀 있어. 우리 잠깐 그걸 좋아한단 말이야. 애착을 한단 말이야.

그러니까 고통은 즐거움을 찾는 데서 오고 즐거움은 고통에서 오는 거예요 그걸 이제 석가모니가 깨닫는 거예요 이야 이거 고통이 오면은 즐거움이 원인이 있고 비교할 게 없으면 고통이 없어요 맞아 맞아 그러니까 즐거움과 고통을 비교하니까 이게 한때는 고통이 오고 그래서 석가모니가 그런 거야 낮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달이 떠 그러면 해가 뜰 때는 좋다고 밤이 되면 또 고통이라고 그러고 이게 반복되는데 고통과 즐거움이 반복되는 게 인생이야. 알겠지. 그러니까 고통과 즐거움이 찾을 필요 없어. 가만히 있으면 그냥 와.

고통이 왔다가 즐거움이 왔다가 이게 반복되는 거야. 반복 좀 안 되는 거 좀 그걸 찾자. 그러니까 즐거움이 오면 무서운 거야. 또 고통이 와.

그래 안 그래? 쾌락의 끝이 있는 거야. 여자하고 관계를 해도 즐겁다가 안 즐겁다가 이래. 그래 사정을 하고 나면 또 별로 즐겁지가 않아. 이게 즐겁다가 안 즐겁다가 이게 사이클이 반복이 돼.

낮과 밤처럼 생리됐다가 출생했다가 좋다가 그만큼 울어야 돼. 또 사망했다는 거야. 초상을 치뤄야 돼. 이게 꼭 반복을 한단 말이야.

이걸 깨달아 버리면 절거움도 아니고 괴로움도 아니야. 그게 적정이야. 당연한 거라고 그렇지. 정멸.

고요해져 버리는 거야. 기쁨, 고통도 생각하지 말고 절거움도 생각하지 않는 거지. 적정열방이야. 열반을 해버리는 거지.

알겠지? 그게 불교가 추구하는 석가모니의 사고야. 천궁인지오니 이런 거 없어. 윤회도 없어. 뭐 내가 나중에 죽어서 뭐로 태어날까? 이것도 생각하지 말라는 거지.

석가모니 사상은. 그냥 고요해져 버리라. 고통도 생각하지 말고 기뻐도 생각하지 마라. 이게 이제 불교의 수행 방법이야.

그런데 일반적으로 불교를 믿는 걸 신앙적으로 볼 때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요. 신앙적으로 볼 때는 윤회가 있어. 복을 지면 좋은 데가, 나쁜 짓하면 나쁜 데가, 이게 또 있는 거야. 사실은 그게 가짜야.

불교 그거는 전부 그거 자체는 가짜야. 철학적으로만 수행방법 그게 진짜 불교야. 그러니까 불상 앞에 가서 절하고 이런 미친 짓이지. 불교는.

근데 내가 오니까 이제 그 내용이 또 다르죠. 내가 오니까 그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열반적정국은 하나의 사랑하는 방법이야. 백궁이라는 게 있어.

천국. 천국을 목표로 삼아버리면 다 해결돼. 축복받으면 다 해결돼. 이것이 지능이 무한대가 되게 할 수 있어.

맞잖아. 다. 그러니까 이 어마어마한 세계가 보이는 거야. 그러니까 석가모니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어.

그럼 뭐야 이거야. 그치? 시작이 어디야? 끝이 어디야? 계속 돌아간다. 지구가 자전 계속 해야하네. 개인도 죽었다 나 태어났다 반복해야하네.

모든 게 이거야. 무식무종. 이거 어디를 시작이라고 그래? 없습니다. 맞아 맞아.

매달 돌아오는 거야. 우리는 이걸 윤회라고 그래. 그러면 윤회를 석가모니는 윤회를 이야기하는데 철학적으로는 석가모니의 종교가 수행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뭐가 없다고? 수행적인 측면에서 볼 때는 윤회가 없어. 오직 뭐가 있다고? 적정.

적정. 고요한 거. 열반. 니르반 하지.

적정 열반만 있단 말이야. 그러면 기쁨도 슬픔도 없단 말이야. 수행만 해서 적정 열반을 가야 되는데 일반 신도들은 이거는 재미없어. 그럼 주민들이 하는 거지.

일반 신도들은 기복신앙을 원해. 맞아 맞아. 기복신앙은 복받기를 원한단 말이야 복을 빈단 말이야. 맞아 맞았습니다.

이걸 원하다 보니까 뭐가 나와? 윤회가 나와. 복을 지면 천당 가고 복을 못 지면 지옥 간다. 이렇게 날아지면서 종교 행위를 하는 거야. 이것도 어떻게 보면 우상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이것이 만족한 기복 자체가 우상이야.

천국 자체가 이 사람들은 우상이 되는 거야. 극락이. 그래 안 그래? 극락이라는 우상을 가지고 믿는 거야. 공부하는 수행은 그런 게 아니야.

자기 버리는 거지. 자기를 버리는 거. 맞아. 열반 적정에 적정 열반에 들어가는 거야.

자기를 버리는 거지. 기쁨도 낫도 고의 아버지고. 그냥 그래. 이것도 취할 필요도 없고 이것도 취할 필요가 없다는 거야.

그 중간이 적정 열반이. 이거는 수행자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고 일반 신도들은 욕을 쫓고 있는 거야 우상을. 이걸 불교로 보니까 종교들이 다 망하는 거야 나중에. 이것도 문제가 있어.

이거는 수직이 없는 거야.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잖아. 이런 게 없어. 얘들은 수평만 있다는 거야.

수평만. 그래 안 그래. 기독교는 위에서 내려왔다는 거야. 그치? 그러니까 수직과 수평이 만나잖아.

이때 내가 와서 이것도 문제가 있고 이것도 문제. 전체를 다 아우르는 게 나야. 그러니까 초종교가 되는 거지. 이건 종교고.

이 무시무정은 종교란 말이야. 종교인데 수행 쪽에 가까운 거야. 원래 시작도 없고 끝이 없으니까 시작이 있어야 누가 창조할 거 아니야. 시작이 없는데 누가 창조를 하노.

그래서 그러면 창조나 이런 걸 안 따져. 왜? 시작이 있어야 창조가 있지. 끝이 있어야 종말이 있지. 무종인데 무슨 종말론을 주장하냐 이거지.

그렇잖아요. 그러니까 기독교가 기독교를 보고 뭐라 하는 거야. 너는 무슨 창조했다니까 유시고. 맞아 맞아.

종말이 온다니까 유종이잖아. 그냥 그래. 불귀하고 반대잖아. 우리는 무시무종.

이건 어디서 나오냐면 천부경이 나와. 일시무시 일석상무죄법. 끝에는 일종무종. 맞단 말이야.

무시무종이 천부갱인데 이게 불교의 사상이란 말이에요. 일치하지. 그래서 우리는 이런 즐거움과 고통을 양분하지 마라 이거야. 이 수행이 하나로 보는 거야.

그러니까 무슨 고통이 오면 저건 절구음이야. 절구음이 오면 고통이야. 절구음을 보는데 또 고통이 올 텐데. 고통이 오면 또 절구음이 올 텐데.

무상한 거야 저거. 뭐 그렇게 애착 가질 필요가 없어. 그게 적정열반. 이걸 추구하는 게 불교를 수행 관점으로 바라볼 때는 적정열반이 정답이란 말이야.

여기에 들어가서 마음에 흔들림 없이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 거 적정한 마음을 유지하는 그게 불교인의 자세고 불교를 믿는 일반 신도들의 마음은 기복 신앙을 가지고 있어 복을 빌어 부처 앞에 가서 계속 복을 빌어 뭐 이런 거 필요 없어 그 사람들은 적정 열방 갈 수가 없는 그냥 여기는 그냥 와서 무조건 이거 비는 거야 그리고 여기 부처를 갖다 놓으면 자기들 여기다 갖다 놓는 거야 이걸 기대는 거예요. 수직을 원하는 거지. 이거는 수직, 수평을 다 없애버리고. 그래서 수행적인 측면의 불교.

이거는 뭐예요? 기복, 종교적인 측면의 불교예요. 그게 윤회를 가지고 있고 적정을 가지고 있다 이 말이야. 서로 상반되지. 적정은 수행적인 측면의 불교.

유뇌는 기복적인 측면에 종교적인 측면에 불교야. 알지? 그럼 유뇌를 여기는 유뇌가 없다고 하는 거야. 여기 태양이 있고 여기 지구가 있으면 태양이 도는 게 아니야. 지구가 자전공전하잖아.

낙가방은 지가 만들어. 즐거움과 기쁨은 지가 만들지 달이 만들어. 태양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야. 그래야 그래.

태양 가만히 있는 거야. 자기가 낮이 됐다 밤이 됐다 지랄하고 있는 거지. 태양이 낮을 만들어주고 밤을 만들고 이게 아는 게 아니란 말이야. 그러니까 자기가 기쁘다가 슬펐다가 난리를 하는 거지.

이 지구 우주 자체는 기쁨과 즐거움 이걸 만들어주질 않아. 자기가 만들어. 세계 경제는 가만히 있는데 자기가 불경기 만들었다가 경제가 성장했다고 그랬다가 지금 저대로 하고 앉아 있는 거야. 날까밤을 만들고 앉아 있는 거야.

그래서 이 수행이라는 건 뭐냐 내가 만드는 낙과 밤을 내가 안 만들겠다 이거지. 나는 그냥 고요하면서 그냥 뭐 기쁜 일 있으면 그런가 보다. 슬픈 일 있으면 그런가 보다. 다 넘어가 그냥.

그런 흔들림 없는 마음을 불교의 석가모니에 온 사상이야. 그런데 이건 변절된 사상이 온 거야. 그게 불교를 종교화 한 거야. 종교화.

그게 우리가 만든 거야. 윤회. 석가모니에는 윤회를 따지지 않아요. 괜히 제자들이 만들어낸 게 윤회야.

좋은 시주 마이하면 좋은데 태어납니다. 이런 식으로 이제 돌아가면서 종교화 된 거지. 불교를 철학으로 보면 이거요. 수행으로 보면 적정 선해도 기쁨에도 슬픔에도 행복과 불행에 끄달리지 않는 거.

생과 사의 생과사를 하나로 보는 거. 기쁨과 고통을 하나로 보는 거. 뭐 이것이 불교란 말이야. 알겠지? 그런데 이것이 변종된 게 불교를 종교화 했다는 거야.

종교화한 게 이게 불교의 문제점이야. 그러니까 종교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니까 이걸 한 거야. 이걸 접장기 하니까 불교가 인도에서 쫓겨나 버려. 없어졌단 말이야.

그러니까 불교가 다시 살아남기 위해서 욕을 하니까 사람이 모이네. 티베트 같은 데 가서 불교가 원시 불교로 바뀌어. 약간 거기에 뭘 가미를 해. 거기다 불상을 만들기 시작해.

석가모니 있을 때는 불상이 중요한 게 아닌데 그러면서 변종된 불교가 오늘날 종교화된 거야. 석가모니 철학이 종교화돼 버린 게 불교란 말이야. 그러면 이 불교는 힌두교와 통일해. 인도에 가면 인도교잖아.

결국 힌두교 석가모니가 그 종교를 만들 필요가 없는 거야. 힌두교가 윤회를 주장하는 종교거든. 맞지 안 맞지? 가난하게 살면 나중에 부자로 태어날 수 있고 뭐 그 절약하면 나중에 부자가 되고 뭐 이 힌두교를 석가모니가 굳이 할 이유가 뭐야? 그랬는데 결국은 석가모니의 불교는 힌두교로 바뀌어 버려 힌두교의 하나의 교리로 통합해 버린 거야 그게 이거야. 종 기독 기복사서 돌메이보고도 가서 절해야지 내 돌 갖다 놨잖아 우리는 거기에 절하는 기질이 있어 사람들이.

이걸 원하는 거야. 이걸 원하지는 않아요. 적정열반 수행 이런 이야기하면 신도들 다 도망가 봐요. 중들이 먹고 살아야 되니까 이걸 한 거야.

종교야. 척가모니의 철학을 종교화한 게 불교야. 이건 어마어마한 석가모니에 대한 모독이야. 무슨 이해가죠? 석가모니의 명예의 먹칠한 거지.

어마어마한 사상이지. 석가모니의 사상은 우리가 천국 가면 어떨고 지옥 가면 어떨까. 그런 거 천국과 지옥도 하나를 봐라. 이렇게 돼 버린 이런 거창한 사상이야.

이것이 석가모니의 이념이고 석가모니의 사상이고 석가모니의 철학이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이게 석가모니의 모든 거란 말이야. 인형과 사상과 철학이고 석가모니의 교리야. 이거를 다 뭘로 바꿔버려서 우상화 했단 말이야. 그것이 불교야.

이해가죠? 이와 같이 기독교도 마찬가지야. 이런 종교들이 전부 종교로 돌아가 버린 거지. 말세가 되는 거예요. 전부 종교화된 거예요.

원 사상에 들어가 버렸으면 사람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걸 공부한 거지. 너무 거달리지 마라 이 소리야.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내 것이 해 주는 사람은 터물어. 맞습니다.

종교가. 여러분들이 내가 왜 이야기를 하냐면 무시무종이 될 때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잖아. 그러면 창조가 있나? 창조가 존재할 수가 없지? 없잖아. 그럼 기독교에 창조론이 없다는 거야 석가모니는.

그 다음에 또 무종 끝이 없는데 종말이 없나? 기독교 종말론자들이 있잖아. 그러니까 이놈 기독교는 유종과 유실을 따지니까 또 불교하고 또 반대야. 무식 무종하고 석가모니 사상하는 반대로 말이야. 석가모니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지만 낮도 밤도 없는 거고 생거사고 없다는 거야.

괜히 우리가 위꼬달려 가지고 천국 간이 안 가니 죽어보면 알 텐데 뭐 그게 매달리냐. 이 석가모니 사상은 굉장히 철학적인 사상이라며 이 철학을 종교로 만들어버리니까 철학의 3대 요소는 공원정이야. 공 공 원. 그렇지 않아? 이게 석가모니 사상이야.

이게 적정이잖아. 적정, 원만, 공이야. 아무도 없는데 대행히 뭘 만들지 마라 이거야 그냥. 1이이다, 2이다, 음이다, 양이다, 생이다, 사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고통 즐거움 이런 걸 벗어나는 게 원이야 아 그 다음에 정 아무 생각 없이 마음을 맑게 가지고 두려움도 없고 기뻐 봐야 뭐 기뻐되는 고통이 숨어 있겠지 그래 안 그래 공원적인 철학의 삼대 요소 이걸 석가문이 했는데 이게 뭐야 복, 덕 이렇게 나오는 거야 그냥.

수명장수 막 나오는 거지 여기는. 여기는 만물이 다 나와. 그냥 이거를 종교를 만드는 거야. 그래서 석가문이의 명예가 훼손된 거지.

완전히 훼손돼버린 거야. 예수의 명예도 완전히 기복으로 바뀌어 버렸어. 훼손된 거야. 예수의 죽음을 다 장사해 먹고 앉아 있어.

내가 오면 이게 정리가 돼. 내가 무슨 예사로 와 있는 사람이 아니야. 다 이론적으로 이 사람들의 문제점을 다 보고 내가 와 있는 거 아니야. 고쳐주로.

성자들이 왔는데 이 사람들 거를 제대로 이 사람들 알아듣는 사과 없어요. 이쪽에 물려 가지고 무슨 기복신앙에 빨려 가지고 불상 보고 절반하고 앉아 있는 거지. 돈 내면 되지만 네가 불쌍해. 네가 선정을 하든 말든 열반적지정 하든 말든 그런 거 관심도 없어.

중들은. 무슨 잘 있지. 이걸 은근히 강조한단 말이야. 무슨 말이냐면 강의해 줘서 이러고.

무슨 잘 있지. 이게 종교화 됐다. 그래서 무시 무종인데 기독교는 유시 유종이야. 창조도 있고 종말도 있다.

이렇게 나가는 거 아니야. 그럼 내가 와서 어느 쪽에 편을 드냐. 불교 쪽에 편을 안 드려. 내가 기부가 아니야.

이 창조와 뜻이 달라. 내 창조를. 알겠지? 그러니까 어마어마한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거야. 알겠죠? 내 이 이론은 지금 현재 이슬람이나 무슨 해교나 힌두교 등 이런 것들이 하는 종교에 종집을 찍어 주는 거예요 예수도 이 석가의 사상과 동일해 알겠지? 예수 이야기를 하는 건 동일한 거예요 석가와 공언정하라 그러니까 마태봉 25장 31절 32절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든지 무슨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든지 자 신성모독이 뭐냐면 신에 대한 모독을 해도 용서해 저 하나님 저 왜 있다오야 왜 지진이 나게 해 이래도 하늘이 그를 용서해 그런데 하늘에서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신파라로 온 자를 모독할 때 그거는 용서받을 길이 없다 그거 나온다 이러봐 신성모독 해봐 신성모독적인 말을 하든지 그들은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자 그럼 성령이 나야. 내가 축복 주고 성령 주지. 열두 가지 다 들어가지.

성령이 나로 왔대. 성령이란 말은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러 왔을 때야. 그게 심판이야. 이때 그를 모독하는 자는 하지만 전 말 누가 했는지 알아? 예수가 했다.

예수가 한 말이야. 나는 여러분을 용서하지만 나를 모독하고 내 아버지 하나님을 모동하는 자도 신성모독도 용서받을 수 있어. 근데 보혜사 성령이 담에 올 것이야. 그를 모동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가 없다.

읽어봐. 또 누구든지 인자를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겠으나 예수를 나쁜 놈이라고 하는 놈은 용서를 받아. 읽어봐.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도 오는 세상에서도 용서를 받지 못할 것이다.

다 끝이야. 지금 이걸 왜 이 말을 이야기해 주냐면 내가 여기 와 있으니까 여러분들은 그냥 나를 예사로 안티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보통 일이 아니야. 이거는 어마어마한 죄를 짓는 거야.

이게 성경이 저렇게 이야기해 놨지. 예수가 지를 욕을 해도 용서받아. 지 하나님을 신성 모두 해도 용서받아. 다음에 오는 성령을 가지고 오는 자가 내 다음에 올 텐데 그 자를 훼손하는 자는 그냥 간다 이 소리야.

절대 용서 같지 못한다. 그거 나와 안 나와. 그치? 사람들은 내가 누군지를 모르고 함부로 말을 지껄이다가 그건 내 모르게 나를 욕한 자들. 가는 거예요.

조용히 가버려. 아무리 가까운 자도 나를 욕하면 어느 순간에 이렇게 가버려. 참 신기하지 않아? 조심해야 돼. 실수를 한 거야.

안 된다니까. 지금도 그런 사람이 나 가운데 소송을 거는 사람들이 있잖아. 그럼 그거 위험한 거야. 대단히 위험해요.

지금 내가 마태복음을 이야기하지? 그럼 이런 이론을 가지고 지구에 와서 여러분을 수정해 주러 온 자가 와 있는 거야. 신원 여론이 못 봤으니까 용을 해도 봐줘. 신성모독해도. 와서 이렇게 있어 눈으로 보고도 부정한 자 용서하네 알았지 굉장히 무서운 거야 그래서 지금 걱정할 거 없어 이미 질서를 내가 잡게 돼 알겠죠 무시무시한 일이야 지금 내 말은 철학의 3대 요소가 공원정이라고 그랬잖아 공원정으로 가지 않고 종교의 3대 요소는 뭐예요? 개정해란 말이에요 개정해 개를 지키고 정진하고 개풀고 개정해가 종교의 3대 요소야 그렇지? 근데 종교의 3대 요소는 철학의 3대 요소가 차이점이 뭐가 있냐면 개가 있어 그 종교를 만든 자가 내세운 주장이 있다고 그게 개야 그렇잖아 그 계가 있고 그걸 기준으로 정이 있는 거야.

그거를 위해서 베푸는 거야. 계정해가 되어버려. 철학은 공원정이야. 비어.

비는 거야. 처음에 비우는 거야. 그 다음에 원만한 거야. 그 다음에 고요한 적정.

정이 들어가는 거야. 그러니까 차원이 달라. 여기는 바라는 게 없고 철학은. 이 종교는 바라는 게 있어.

차이점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종교가 없어도 철학만 가지고도 인간들이 행복할 수가 있었어. 그런데 종교를 만든 거야. 종교를 만들어서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어 가지고 그렇게 됐던 거지.

그것보다는 깨달을 생각은 제쳐버린 거야. 그래서 대부분의 국민이 미련에 미련 둥이로 놔두고 그래서 로마 교황이 성경을 인쇄 못하게 하고 놀아주지 못하겠어. 자기들만 보는 거로 독점권을 가지고 있어. 만나면 개신교 루트 때문에 경전이 나오기 시작한 거야.

절대 안 보여지 뭐. 저기만 비밀하고 그래 안 그래. 저것들이 아니면 바코드를 적어 보고 있는 거니까 이건 대들 수가 있다 이래가지고 안 가르쳐주는 거야. 그래야 해.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철학과 차이점이야.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어 놓고 면접을 팔고 했잖아. 그게 종교야.

그래서 종교는 21세기 안 맞아. 다음 영상에서 만나요!.

기독교와 불교가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선 이유는? 석가모니의 원사상인 ‘적정 열반’은 기쁨과 고통에 끄달리지 않는 수행을 강조했지만, 후대 제자들이 기복신앙과 윤회 사상을 도입하며 종교화되었기 때문입니다.

  1. 석가모니의 원사상과 변질된 불교
    석가모니의 원래 가르침은 적정 열반을 통해 고통과 즐거움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으나, 후대에 기복신앙과 윤회 사상이 도입되며 종교로 변질되었다.

1.1. 석가모니의 깨달음: 고통과 즐거움의 반복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것을 추구하는 데 있다.
석가모니는 왕자로 태어나 모든 것을 누렸지만, 즐거움의 원인이 고통에서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고의 즐거움 속에서도 고통을 느끼며, 고통 없는 곳을 찾아 헤맸다.
고통과 즐거움의 반복이 인생의 본질이다.
즐거움은 고통에서 오며, 고통이 없으면 즐거움도 비교할 대상이 없어진다.
낮과 밤이 반복되듯, 즐거움과 고통은 계속해서 반복된다.
예를 들어, 이성과의 관계도 즐거움과 고통이 반복되며, 생명 탄생의 기쁨 뒤에는 사망의 슬픔이 따른다.
적정 열반: 고통과 즐거움에서 벗어나는 경지이다.
석가모니는 고통과 즐거움이 반복되지 않는 경지, 즉 적정 열반을 발견했다.
이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기쁨과 고통 모두를 생각하지 않는 고요한 상태를 의미한다.

1.2. 불교의 원사상과 변질된 종교
석가모니의 원사상은 적정 열반을 통한 수행에 중점을 둔다.
석가모니는 죽어서 무엇으로 태어날지 생각하지 말고, 고통과 기쁨 모두를 생각하지 않는 고요한 상태에 이르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불교의 진정한 수행 방법이다.
수행적인 측면에서 볼 때, 윤회는 없으며 오직 고요한 적정 열반만이 존재한다.
기쁨도 슬픔도 없는 이 수행은 일반 신도들에게는 재미없게 느껴질 수 있다.
일반 신도들의 불교는 기복신앙과 윤회 사상을 따른다.
신앙적인 관점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들은 윤회가 있다고 생각하며, 복을 지으면 좋은 곳에 태어나고, 복을 짓지 않으면 나쁜 곳에 태어난다고 믿는다.
이러한 기복신앙과 윤회 사상은 사실 가짜이며, 불교의 본질이 아니다.
부처 앞에 절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우상을 만드는 것과 같다.
적정 열반은 수행자의 마음가짐이며, 일반 신도들은 욕망을 쫓는다.
적정 열반은 자신을 버리고 기쁨과 고통 모두를 취하지 않는 중간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수행자가 추구하는 마음이지만, 일반 신도들은 복을 빌고 욕망을 쫓는 데 집중한다.

1.3.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점 및 변질 과정
불교는 수평적인 종교이며, 기독교는 수직적인 종교이다.
불교는 하늘에서 신이 내려왔다는 개념이 없는 수평적인 종교이다.
반면 기독교는 신이 위에서 내려왔다는 수직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원사상은 무시무종의 철학을 담고 있다.
불교의 수행은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개념에 가깝다.
시작이 없으니 창조주가 없고, 끝이 없으니 종말론도 주장할 수 없다.
이러한 사상은 천부경의 “일시 무시 일식, 상관 무지, 끝에는 일정 구경”과 일치한다.
즐거움과 고통을 양분하지 않고 하나로 보는 무상함을 깨닫고 애착을 가지지 않는 것이 적정 열반이다.
불교의 변질: 종교화와 기복신앙
적정 열반은 불교 수행자의 올바른 자세이지만, 일반 신도들은 기복신앙을 가지고 부처에게 복을 빈다.
적정 열반은 수행적인 불교의 측면이고, 윤회는 기복적인 종교적 측면의 불교이다.
석가모니의 원사상은 흔들림 없는 마음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나, 후대 제자들이 윤회를 만들어내며 불교를 종교화했다.
불교는 철학이자 수행이었지만, 종교화되면서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에 끄달리지 않는 원사상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살아남기 위해 기복신앙과 불상 등을 가미하여 변종된 종교가 되었다.
이는 석가모니의 철학이 종교가 되어버린 것이며, 힌두교의 윤회 사상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석가모니에 대한 모독: 원사상의 왜곡
사람들은 적정 열반과 같은 수행을 원하지 않고, 돌멩이에 절하고 복을 비는 것을 원한다.
석가모니의 철학을 종교로 만든 것은 석가모니에 대한 어마어마한 모독이다.
석가모니의 이념, 사상, 철학, 교리 모두가 우상화되어 버렸다.

  1. 종교의 문제점과 성령의 역할
    종교는 원사상에서 벗어나 우상화되고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었으며, 성령은 이러한 종교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새로운 질서를 잡기 위해 왔다.

2.1. 종교의 문제점과 성령의 중요성
종교의 문제점: 원사상에서 벗어나 우상화된다.
기독교 또한 불교와 마찬가지로 원사상에서 벗어나 종교로 변질되었다.
원사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고, 너무 욕망에 끄달리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종교로 변질되면서 행복, 불행, 고통, 즐거움에서 벗어나려는 원사상과 달리, 기복신앙으로 바뀌어 죽음을 이용한 장사를 한다.
기독교의 창조론과 종말론은 무시무종 사상과 대립한다.
무시무종은 시작도 끝도 없으므로 창조도 종말도 존재할 수 없다.
반면 기독교는 시작(창조)과 끝(종말)이 있다고 주장하므로, 불교의 무시무종 사상과 반대된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다.
마태복음 25장 31절, 32절에 따르면,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짓든지, 신을 모독하든지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늘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심판하러 온 자, 즉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길이 없다.
성령은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러 왔을 때를 의미하며, 이는 심판의 때이다.
예수를 욕하거나 하나님을 신성모독해도 용서받지만, 다음에 오는 성령을 훼손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죄이며, 함부로 말하는 자들은 조용히 사라지게 된다.
신은 보이지 않으므로 욕해도 용서받지만, 눈으로 보고도 부정한 자는 용서받지 못한다.

2.2. 종교와 철학의 차이점 및 종교의 한계
종교의 3대 요소는 개(戒), 정(定), 혜(慧)이다.
종교는 그 종교를 만든 자가 내세운 주장이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정해진 개(戒)가 있다.
개(戒)를 지키고 베풀어야 고요한 정(定)에 들어갈 수 있다.
종교와 철학의 차이점은 바라는 것의 유무이다.
철학은 바라는 것이 없지만, 종교는 바라는 것이 있다.
인간은 종교가 없어도 철학만으로 행복할 수 있었다.
종교의 한계: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고 시대에 뒤떨어진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고 싶어 종교를 만들었지만, 이는 깨달음을 얻으려는 노력을 포기한 것이다.
과거 로마 교황이 성경 인쇄를 금지하고 독점했던 것처럼, 종교는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었다.
종교는 21세기 시대에 맞지 않는다.

기독교와 불교가 이미 잘못된 길로 들어선 이유는? 석가모니의 철학이 종교화되면서 본래의 가르침이 변질되었고, 기복신앙과 우상숭배로 인해 수행의 본질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본질을 잃고 변질된 이유
석가모니의 원래 가르침: 석가모니는 고통과 즐거움이 반복되는 인생의 본질을 깨닫고,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인 적정 열반을 추구했다.
이는 기쁨이나 고통에 얽매이지 않고, 모든 것을 내려놓는 수행 방법이었다.
석가모니는 윤회나 사후 세계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

불교의 변질: 석가모니의 철학이 종교화되면서 본래의 가르침이 변질되었다.
기복신앙: 일반 신도들은 고통 없는 즐거움과 복을 원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윤회 사상이 생겨났다.
우상숭배: 부처 앞에 절하고 복을 비는 행위는 본래의 수행과는 거리가 멀다.
이러한 변질은 불교가 살아남기 위해 대중의 욕구를 반영한 결과이다.

기독교의 문제점: 기독교 역시 창조론과 종말론을 주장하며, 이는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
예수 또한 석가모니와 같이 모든 것을 버리고 공원정(하늘의 뜻을 따르는 삶)을 강조했다.
성경에서는 신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있지만, 인간의 모습으로 온 성령(심판자)을 모독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다.

종교와 철학의 차이:
철학: 바라는 것이 없고, 고요한 마음(적정)을 추구한다.
종교: 특정 교리를 만들고,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하며, 바라는 것이 있다.
종교는 인간을 우매하게 만들고, 21세기에는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