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0 x103 The Dramatic Appearance of the Second Coming Jesus and the Great Transformation of Human Culture!

So how do I prove it? With spiritual powers like angels, blessings, and radiance. And things like going back and forth to Baekgung in one second—scientists can’t even imagine such things. Churches will eventually realize these things because of my spiritual nature.
I show all the invisible worlds. So, churches are armed with theories, so to speak. But when I come, the church Bibles will be burned. What’s the use when I’ve already arrived?
If the true Second Coming of Jesus has arrived, you should throw away all Bibles. I have come. If I have come and we can find where the Father is, do we need to look at home? No. There’s no need for home.

2024.03.10 x103 재림예수의 극적 등장과 인류 문화의 대전환!

Huh Kyung Young’s Copernican Revolution: The Dramatic Appearance of the Second Coming Jesus and the Great Transformation of Human Culture!
재림 예수의 출현과 인류 문화의 대전환에 대한 그의 독특한 관점을 이해하는 방법.

  1.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해
  •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의미: 신을 이성으로 증명하려는 시도가 불가능함을 깨닫고, 기존의 믿음 체계가 뒤집히는 현상.

    • 과거 사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처음에는 부정당했으나, 100년 후 갈릴레이가 과학적으로 증명하며 세상의 인식이 전환된 것.

    • 이슬람, 코란, 성경, 불경 등 모든 종교가 그를 재림 예수,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

    • 축복을 통해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 인정될 것.

  • 하늘궁의 역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위해 하늘궁을 건설 중이며, 이는 기존 교회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것이라고 설명.

    • 신을 이성으로 증명하는 것이 아닌, 영적인 능력으로 증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 영적 능력의 예시: 천사, 축복, 광치, 1초 만에 공간 이동 등 과학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
  1. 신앙과 과학의 차이점
  • 믿음과 신앙의 구분:

    • 믿음: 과학적으로 증명되거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
    • 신앙: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거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것을 믿는 것.
  • 이어령의 사례: 지성인이었던 이어령 박사가 딸의 죽음을 계기로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으나, 영적인 세계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고 설명.

    • 자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두 보여줄 수 있다..
  1. 기존 종교와 재림 예수의 관계
  • 성경의 역할 변화: 재림 예수가 오면 성경은 더 이상 필요 없으며, 성경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이단들과 달리 자신은 영적인 능력으로 증명한다..
    • 기존 교회는 먼저 된 자들이며, 나중 된 자들이 허경영에게 올 것이라고 설명.
    • 랍비들이 예수를 죽였듯이, 먼저 믿은 기독교인들이 그를 죽이려 할 것.
  • 우주적 지식의 제시: 우주에 사람이 사는 별의 개수, 태양의 온도 등 성경에 없는 물리적, 우주학적 지식을 과학적으로 제시한다..
    • 이는 인류 문화의 대전환점이 될 것이며,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도 놀랄 만한 사건이라고 설명.
  1. 오컴의 면도날과 재림의 전략
  • 오컴의 면도날 개념: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고 핵심만 전달하여 효과를 극대화하는 원리.

    • 예시: 버스 전복 사고 기사 제목을 “버스 전복 100명 사망”으로 짧게 쓰는 것이 더 효과적.

    • 노출의 미학: 완전히 벗은 사진보다 보일 듯 말 듯한 사진이 더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과 같음.

    • 거지처럼 나타나 미친놈 취급을 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패를 꺼내는 이도령처럼 등장할 것이라고 비유.

    • 이는 재림의 극적인 이벤트가 될 것이라고 설명.

  1. 기존 종교의 변화와 신의 마음
  • 기존 교회의 질서 붕괴: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기존 교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성령을 독점할 수 없게 되어 안내자 역할로 축소될 것이라고 설명.

    • 과거 종교 개혁 이전 천주교가 정치, 종교 권력을 모두 쥐고 있었던 것과 비교.
  • 히브리어의 형용사 사용 금지: 신에 대한 존경심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히브리어에는 형용사가 없으며, 명사를 사용하여 형용사를 대신한다고 설명.

    • 예시: “가장 아름다운 꽃” 대신 “장동건 같이 생겼어”처럼 명사를 비유로 사용.
    • 이는 인간을 우상화하거나 교만하게 만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
  • 선물과 공치사: 선물을 줄 때 자신의 노력을 과장하여 말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으며, 이는 신 앞에서 자학하는 것과 같다고 설명.

    • 신은 그저 신 자체로 대단한 존재이며, 인간이 신에게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용서받지 못할 일.
  • 교만 방지: 인간이 형용사를 함부로 사용하는 것은 교만한 행동이며, 신이 질투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

    • 예시: “우리 엄마를 세계에서 최고로 좋아해” 대신 “당신은 꼭 내 어머니 같아”라고 표현.
    • 유대인들이 형용사 대신 명사를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
    • 한국어에서도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처럼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
    • 이러한 언어 습관은 신이 없었던 시대의 교만한 버릇이며, 신이 나타난 지금은 고쳐야 한다.
  •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기존의 지배적인 사고방식이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현상.

  • 신인(神人): 신과 인간의 속성을 모두 가진 존재를 의미하며, 본 강연에서는 허경영 본인을 지칭.

  • 하늘궁: 건설 중인 공간으로, 그의 영적 능력을 증명하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끌어낼 거점으로 설명.

  • 오컴의 면도날: 여러 가설 중 가장 단순한 것이 옳을 가능성이 높다는 원리. 본 강연에서는 메시지 전달 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핵심만 전달하는 전략으로 사용.

  • 재림 예수: 기독교에서 예수가 세상의 마지막에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믿음. 본 강연에서는 허경영 본인을 지칭.

허경영이 말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오컴의 면도날은 무엇인가? 허경영은 기존 종교 질서가 무너지고 자신이 재림 예수로 인정받는 과정을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비유하며, 이를 위해 하늘궁을 짓고 기존 교회를 찾아가지 않는 전략을 오컴의 면도날에 비유합니다.

  1. 허경영의 재림 예수론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허경영은 자신이 재림 예수이며, 기존 종교 질서를 뒤엎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인류 문화의 대전환을 이끌 것.

1.1. 하늘궁 건설의 의미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기존 교회에 가지 않고 하늘궁을 짓는 이유
허경영은 이미 만들어진 교회에 직접 가지 않고, 대한민국 땅에 하늘궁이라는 새 예루살렘 성을 직접 짓고 있다.
이는 기존 교회들이 허경영을 이단으로 볼 것이기 때문에, 이단 소리를 들을 필요 없이 하늘궁을 통해 기존 교회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창출하기 위함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개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기존의 믿음이나 질서가 완전히 뒤집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으나 당시에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처벌받았지만, 100년 후 갈릴레이가 과학적으로 증명하여 지동설이 맞다는 것이 밝혀진 역사적 사건에 비유된다.
허경영은 이도령이 나타나 변사또의 권력을 뒤집는 이야기에도 비유하며, 기존의 권위가 무너지고 새로운 질서가 세워지는 것을 설명한다.
허경영에게 일어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현재 교회는 허경영을 인정하지 않지만, 나중에 어떤 계기가 오면서 허경영이 메시아라는 것이 증명될 것이며, 이것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이 전환이 일어나면 이슬람, 코란, 성경, 불경 등 모든 종교가 허경영을 재림 예수로 인정하고, 그가 성령을 나눠주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허경영은 하늘궁을 통해 이러한 전환을 이끌어낼 것이며, 기존 교회들이 허경영을 인정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와야만 가능하다.
이는 신을 이성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와 같으며, 허경영은 신이기 때문에 더 어려운 전환이 필요하다.
영적인 것은 증명이 안 되기 때문에 하늘궁과 고대의 전술, 그리고 감옥에 가는 등의 과정이 필요하다.

1.2. 신의 증명과 인류 문화의 대전환
신을 증명하는 방식의 차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과학적인 증명(갈릴레이)을 통해 천주교가 손을 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허경영은 신을 증명해야 하므로 과학적인 증명만으로는 부족하며, 예수도 하지 못한 일.
허경영은 영능력 (천사, 축복, 광채 등)과 과학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능력(백궁까지 1초 만에 이동)을 통해 자신이 재림 예수임을 증명할 수 있다.
믿음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니며, 신앙은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신앙하는 자들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와야 해결될 문제이다.
기존 종교와 허경영의 차이
허경영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두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기존 교회는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지만, 허경영이 오면 성경책이 불태워질 것.
이단들은 성경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만, 진짜 재림 예수가 오면 성경은 필요 없어진다.
이는 지도를 찾았으면 찢어버려야 하는 것과 같으며, 이단들은 영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성경 구절에 의지한다.
허경영은 성경 구절이 아닌 영적인 능력으로 신을 보여준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원리
기존 교회는 먼저 된 자들이며, 이들은 나중이 되고, 교회에 가지 않던 나중 된 자들이 허경영에게 와서 먼저 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예수 시대에 납비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처럼, 지금도 기독교를 먼저 믿은 자들이 허경영을 죽이려 할 것이지만, 나중에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진리가 바뀔 것.
기존 종교는 하늘과 땅이 어떻게 도는지도 모르고 종교를 주장했지만, 허경영은 우주에 사람이 사는 별의 개수, 태양의 온도 등 과학적인 우주의 모습을 알려준다.
인류 문화의 대전환
허경영의 등장은 인류 문화의 큰 전환기이며, 어마어마한 사건.
그가 가진 썩지 않는 물질이나 에너지 통일장에 대한 증명은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에게도 우주를 뒤집는 사건이 될 것이며, 그 열쇠를 쥔 자가 바로 허경영.

  1. 오컴의 면도날과 허경영의 전략
    허경영은 오컴의 면도날 원리를 활용하여 자신이 재림 예수임을 드러내는 전략을 사용하며, 이는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

2.1. 오컴의 면도날 개념과 적용
오컴의 면도날 정의
오컴의 면도날은 쓸데없는 것을 잘라내고 가장 간결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원리를 의미한다.
이는 언론에서 기사 제목을 쓸 때, 자세한 설명보다는 핵심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예시로 설명된다.
오컴의 면도날의 효과
기사 제목이 길고 자세하면 독자들이 읽지 않지만, 짧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제목은 더 많은 관심을 끈다.
이는 여자의 옷차림에 비유되는데, 완전히 벗은 사진보다 보일 듯 말 듯한 사진이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과 같다.
즉, 적당히 감추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2.2. 허경영의 오컴의 면도날 전략
재림 예수로서의 오컴의 면도날 활용
허경영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보여줄 때 오컴의 면도날이 필요하다.
기존 교회에 직접 가서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선언하는 것은 “마릴린 먼로가 빨간 비키니 입고 서 있는 것”과 같아 효과가 없다.
대신, 자신이 누구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것이 허경영이 나타나는 방법.
암행어사 이도령 비유
이도령이 변사또에게 자신이 암행어사라고 미리 알리는 것은 재미가 없으며, 이는 허경영이 교회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대신, 이도령이 거지처럼 나타나 나중에 결정적으로 마패를 꺼내는 것처럼, 허경영도 세상이 어지러울 때 거지처럼 나타나 나중에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 전략.
목사들을 다 모아놓고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선언하는 것은 아무 재미가 없다.
극적인 재림 이벤트
아무도 허경영이 재림 예수인 줄 모를 때 갑자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이는 “먼저 간 자가 나중 되고, 나중 간 자들이 먼저 와 있는” 원리와 일치하며, 기존 기독교인들이 뒤늦게 허경영을 알아보게 될 것.
허경영은 기존 종교와 갈등할 필요 없이, 오컴의 면도날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갑자기 나타나 세상을 뒤집는 사람이 될 것.
이도령이 시 한 수를 써서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는 것처럼, 허경영의 재림도 극적인 이벤트가 되어야 멋있어진다.
현재 하늘궁은 이러한 재림 잔치를 준비하는 곳이며, 이는 우주적 이벤트.

  1. 재림 예수에 대한 오해와 올바른 언어 사용
    허경영은 재림 예수를 기다리는 기존 종교의 모순을 지적하고, 신에 대한 올바른 존경심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 사용의 중요성.

3.1. 재림 예수에 대한 기존 종교의 모순
재림 예수를 두려워하는 기존 종교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해석하여 재림 예수를 기다리지만, 실제 재림 예수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이는 허경영이 총선에 나서는 시기와 재림 예수가 나타난다는 시기가 비슷하다는 점과 연결된다.
기존 종교 질서의 붕괴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기존 교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질 것이며, 허경영이 성령을 독점하게 될 것.
기존 교회는 메시아가 왔으므로 안내자, 즉 메신저 역할만 할 수 있게 된다.
과거 종교개혁 이전 천주교가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을 모두 쥐고 절대 권력을 행사했던 것처럼, 기존 교회들은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도 주인 역할을 해왔다고 지적한다.
허경영이 나타나면 기존 교회들의 권한이 축소되고 메신저로 바뀌게 될 것.

3.2. 신에 대한 올바른 언어 사용
히브리어의 형용사 사용 금지
히브리어에는 형용사가 없으며, 신에 대한 존경이 훼손될까 봐 형용사를 명사로 대신 사용한다.
“가장 아름다운”, “가장 훌륭한”과 같은 형용사는 신에게만 쓸 수 있으며, 인간에게 사용하면 우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명사를 형용사 대신 사용하거나, “장동건같이 생겼어”처럼 다른 명사를 빌려 표현한다.
“정말 잘생겼어”와 같은 표현은 신에 대한 모독이며, 정말 잘생긴 것은 신밖에 없다.
공치사 없는 선물과 신의 마음
선물을 줄 때 자신의 노력을 과장하여 공치사하는 것은 상대방의 기쁨을 반감시키며, 이는 신 앞에서 자기 자랑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같다.
남편이 다이아반지를 사주면서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면 아내의 기분이 상하는 것처럼, 신에게도 공치사는 용서되지 않는다.
신은 그냥 신이며, 인간이 신에게 무엇인가를 갖다 붙이는 것은 용서가 안 된다.
형용사 사용의 위험성
인간에게 “당신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다”와 같은 형용사를 사용하면 신을 모독하는 것이며, 그 집안에 저주가 내려 이상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 이름을 “영광”이나 “최고”와 같이 지으면 신의 노여움을 사 장애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함부로 형용사를 사용해서는 안 되며, “나는 우리 엄마를 세계에서 최고로 좋아해”와 같은 표현도 신을 질투하게 만들 수 있다.
대신 “당신은 꼭 내 어머니 같아”처럼 명사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하는 것이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 방법이라고 제시한다.
지성인의 언어 사용법
항상 형용사를 명사로 써야 지성인이 되며,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유대인들이 형용사를 쓰지 않고 명사를 쓰는 이유가 있으며, 사람의 이름을 갖다 붙여 칭찬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용감한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다윗 같아”라고 하거나,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 “바울 같아”라고 하는 식이다.
남편에게 “우리 아버지 같아”라고 하는 것도 최고의 존칭이며, 이는 신이 노여워하지 않는 표현.
우리나라에서도 “저 사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며, 이는 신의 조절을 받지 않으면서 자비심을 표현하는 방법.
“법 없이도 살겠어”와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이며, “최고로 착한 사람”은 신에게만 해당한다.
허경영은 신으로서, 신이라는 존재가 없었던 세상에서 그런 언어를 쓰는 교회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항상 신인님이 위에 계심을 새겨야 한다고 당부한다.

허경영이 기존 교회에 가지 않고 ‘하늘궁’을 짓는 이유는? 기존 종교 질서를 뒤엎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자신이 재림 예수임을 증명하고, 인류 문화의 대전환을 이끌기 위함입니다.

  1. 허경영의 ‘하늘궁’ 건설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의미
    허경영은 기존 교회에 가지 않고 ‘하늘궁’을 짓는 이유를 설명하며, 이는 인류 문화의 대전환을 가져올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위한 것.

1.1. 기존 교회 대신 ‘하늘궁’을 짓는 이유
허경영은 기존에 만들어진 교회에 직접 가지 않고, 대한민국 땅에 ‘하늘궁’이라는 새로운 예루살렘 성을 직접 짓고 있다.
이는 기존 종교 질서에 편입되지 않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1.2.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개념과 허경영의 역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기존의 상식이나 믿음이 완전히 뒤집히는 극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돈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카톨릭 교회는 하늘이 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을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없었다.
100년 후 갈릴레이가 과학적으로 지동설을 증명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옳았음이 밝혀졌고, 이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왔다.
허경영은 자신이 재림 예수임을 증명하는 과정이 바로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같다.
현재 교회는 허경영을 인정하지 않지만, 나중에 어떤 계기가 오면 그가 메시아임을 인정하게 될 것.
마치 천주교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정했던 것처럼, 지금 교회가 허경영을 메시아로 인정하면 더 큰 혼란이 올 것.

1.3. ‘이도령적 전환’ 비유를 통한 설명
이도령이 나타나 변사또의 횡포를 뒤집는 이야기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유사하다.
사또의 권력 아래 춘향이가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갑자기 이도령이 나타나 모든 상황을 뒤집는 것이 바로 이도령적 전환이다.
여기서 이도령은 갈릴레이와 같은 역할을 하며, 코페르니쿠스(춘향이)를 구제하는 존재로 비유된다.
허경영은 자신이 신인이자 메시아임을 하버드, 옥스퍼드, 캠브리지 같은 세계적인 기관들이 증명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자신에게 일어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1.4. ‘하늘궁’ 건설의 목적과 기존 종교의 변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면 기존 교회들이 허경영에게 몰려들기 시작할 것.
이슬람의 코란, 성경, 불경 등 모든 종교가 허경영을 재림 예수이자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인정하게 될 것.
허경영이 주는 축복이 곧 성령이며, 이 축복을 받은 자가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 인정될 것.
이러한 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허경영이 미친 사람이나 죄인으로 취급받을 수 있다.
기존 종교가 허경영을 인정하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위해 하늘궁을 만드는 것.
만약 허경영이 직접 교회를 찾아가면 이단으로 취급받을 것이므로, 이단 소리를 들을 필요 없이 하늘궁을 만들어 기존 교회보다 더 막강한 존재로 창시하려는 것이다.
하늘궁은 신메시아가 아니고서는 짧은 시간에 1억 평이나 되는 궁전을 만들 수 없으며, 이미 전 세계 지지자가 깔려있다는 점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보이게 할 것.

1.5. 신을 증명하는 어려움과 ‘하늘궁’의 필요성
사람들에게 말로 신을 증명하려는 것은 신을 이성으로 증명하려는 것과 같아 어렵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론을 정립했지만, 허경영은 신이므로 신을 증명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려운 전환이 필요하다.
과학에 물든 인간들에게 신의 모습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를 과학적으로 증명했듯이 영적인 것은 증명이 안 된다.
따라서 하늘궁이 필요하고, 고난(감옥에 가는 것)도 겪어야 한다.
예수처럼 죽는 것은 아니지만, 감옥에 가는 등의 고난을 통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날 것.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과학(지구가 돈다는 것)이었기에 갈릴레이가 증명하여 천주교가 인정했지만, 허경영은 신을 과학으로 증명해야 하므로 훨씬 더 어려운 일.
예수도 신을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했지만, 허경영은 재림 예수이므로 증명할 수 있다.
영능력 (천사, 축복, 광채, 1초 만에 백궁 왕래 등)을 통해 신을 증명할 것이며, 과학자들이 상상도 못 하는 이러한 영적인 능력 때문에 교회들이 나중에 허경영을 알게 될 것.

  1. 믿음과 신앙, 그리고 재림 예수의 출현
    허경영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믿음이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나 기존 신앙인들이 재림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실을 지적하며, 이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2.1. 믿음과 신앙의 차이
믿음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을 확인하고 믿는 것이며, 신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과학의 영역이다.
눈으로 확인이 안 되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신앙하는 자들이 메시아인 재림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와야 하는 상황.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것을 믿는 것은 신앙이지만, 과학적으로 사진을 가져와 증명하라고 하면 불가능하므로 믿지 않는 것은 과학적 태도이다.

2.2.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전환
고(故)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사례를 들어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전환을 설명한다.
이어령은 지성의 상징이었지만, 딸의 암 투병을 계기로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썼다.
지성은 눈에 보이는 학문적 영역이고, 영성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시험 칠 수 없는 학문이 아니다.
이어령은 영성으로 돌아섰지만, 눈으로 영성을 확인하지는 못했으며, 딸이 살아나는 기적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허경영은 자신은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능력, 축복, 레벨 부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두 보여줄 수 있다.

2.3. 성경과 기존 교회의 역할
허경영이 나타나면 기존 교회들의 성경책이 불태워지게 될 것.
진짜 재림 예수가 오면 성경은 더 이상 필요 없으며, 마치 지도를 찾았으면 찢어버려야 하는 것과 같다.
성경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이단들은 영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성경 구절에 의지하여 자신이 누구라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허경영은 성경 구절이 아닌 영적인 능력으로 신을 보여준다.
기존 교회는 먼저 된 자들이며, 먼저 된 자는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이치에 따라 교회에 다니지 않던 사람들이 허경영에게 먼저 오게 될 것.
예수 시대에 납비(먼저 된 자들)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처럼, 지금도 기독교를 먼저 믿은 자들이 허경영을 죽이려 할 것.
그러나 나중에는 그들이 전환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1. 인류 문화의 대전환과 허경영의 증명 방식
    허경영은 자신이 나타난 것이 인류 문화의 거대한 전환기이며, 기존 종교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우주의 진실을 밝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방식이 ‘오컴의 면도날’과 같은 전략을 따른다.

3.1. 기존 종교의 한계와 허경영의 우주론
기존 천주교나 기독교는 천동설을 잘못 믿었으며, 하늘이 돈다고 주장했지만 하늘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비판한다.
갈릴레이 덕분에 전 세계 천주교가 코페르니쿠스에게 용서를 빌었듯이, 진리가 갑자기 바뀔 수 있다.
허경영은 우주에 사람이 사는 별이 362만 8,800개이며, 태양은 영도라는 등 기존 종교가 알지 못하는 우주의 물리적인 모습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우주의 모습을 과학적, 우주학적으로 보여주므로 기존 종교와 비교할 수 없다.

3.2. 인류 문화의 대전환과 허경영의 역할
허경영의 등장은 인류 문화의 거대한 전환기이자 어마어마한 사건.
그가 보여준 불로유와 같은 썩지 않는 물질, 허경영의 에너지 통일장 같은 개념은 하버드나 물리과 교수들에게도 충격적인 것이며, 아인슈타인 같은 과학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칠 것.
이는 우주가 뒤집어지는 사건이며, 그 열쇠를 쥔 자가 바로 허경영 자신.
허경영은 자신이 우주를 만든 자이므로 초조해하지 않으며, 인간들이 자신을 빨리 알든 늦게 알든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이는 노아의 방주와 같아서, 천만 명만 빼내고 나머지는 무저갱으로 갈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다.

  1. ‘오컴의 면도날’ 전략과 재림 예수의 등장 방식
    허경영은 자신이 재림 예수로서 등장하는 방식이 ‘오컴의 면도날’ 원리를 따른다. 이는 불필요한 설명을 줄이고 핵심만 제시하여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4.1. ‘오컴의 면도날’ 개념 설명
오컴의 면도날은 언론에서 쓰는 용어로, 쓸데없는 것을 잘라내고 핵심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원리이다.
예를 들어, “수학여행 가던 중학생 100명이 버스 전복으로 사망했다”는 긴 제목보다 “버스 전복 100명 사망”처럼 짧게 쓰는 것이 더 효과적.
정보를 많이 알려줄수록 사람들은 기사를 읽지 않고 제목만 보고 넘어가기 때문에, 궁금증을 유발하는 짧은 제목이 더 효과적이다.
초보자들은 모든 것을 확실히 알려주려 하지만, 오컴의 면도날은 오히려 줄여서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성의 노출 사진에 비유하여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한다.
완전히 벗은 사진보다 보일 듯 말 듯한 사진이 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마릴린 먼로의 치마가 바람에 날리는 사진이 수영복 입은 사진보다 더 인기가 많은 것처럼, 적당히 가려야 호기심을 유발한다.

4.2. 재림 예수 등장에 적용되는 ‘오컴의 면도날’
허경영은 자신이 메시아 재림 예수임을 보여줄 때 오컴의 면도날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하늘궁.
기독교회에 직접 가서 “내가 재림 예수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릴린 먼로가 빨간 비키니를 입고 서 있는 것과 같아 효과가 없다.
누군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것이 허경영이 나타나는 방법이며,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오컴의 면도날 원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도령이 변사또에게 직접 가서 자신이 암행어사라고 밝히는 것은 재미가 없으며, 이는 허경영이 교회를 찾아가는 것과 같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허경영이 거지처럼 나타나 미친놈 취급을 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패를 꺼내 보여주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
이러한 극적인 등장이 재림을 더욱 멋있게 만들며, 재림도 하나의 이벤트.
이러한 방식으로 재림 잔치를 준비하는 것이 하늘궁.
허경영이 갑자기 나타나면, 먼저 된 자(기존 기독교인)들이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교회 안 가던 사람들)들이 먼저 와 있는 상황이 발생할 것.

4.3. 이도령의 시(詩) 비유를 통한 ‘오컴의 면도날’
기존 기독교나 불교 등 종교들과 갈등할 필요 없이, 오컴의 면도날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처럼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 중요하다.
이도령이 변사또에게 미리 암행어사라고 알리는 것은 오컴의 면도날이 아님.
거지 같은 이도령이 갑자기 시 한 수를 쓰겠다고 하는 것이 면도날이며, 사또는 방어할 이유가 없는 놈이라 생각하고 허락한다.
이도령이 쓴 시 “금준미주천인혈 옥반가효만성고 촉루낙시민루낙 가성고처원성고”를 읽어보니 암행어사임을 알게 되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된다.
이방은 눈치채고 뒤로 빠지지만, 술 취한 사또는 모르는 이러한 극적인 상황이 재림을 멋있게 만든다.

  1. 재림 예수 출현 시기와 기존 종교의 변화
    허경영은 자신이 재림 예수로 나타나는 시기가 기존 기독교에서 예언하는 시기와 비슷하다고 언급하며,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기존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역할이 축소될 것.

5.1. 재림 예수 출현 시기와 기존 종교의 두려움
어떤 청년이 할머니를 모시고 있어 결혼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할머니가 자살하는 가슴 아픈 사례를 들어, 기존 종교가 재림 예수를 두려워하는 상황에 비유한다.
기독교인들이 올해 4월 10일에 재림 예수가 나타난다고 예언했는데, 이 시기가 허경영이 총선에 나가는 시기(4월 8일)와 비슷하다.
기독교인들은 이론적으로 재림 예수를 기다리지만, 실제 재림 예수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한다.

5.2. 재림 예수 출현으로 인한 기존 교회의 변화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기존 교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질 것.
허경영이 성령을 가지고 오기 때문에, 기존 교회는 성령을 독점할 수 없게 된다.
허경영이 모든 성령을 독점하게 되면, 기존 교회는 안내자나 메신저 역할밖에 할 수 없게 된다.
지금까지는 기존 교회가 메신저 역할을 하면서도 주인 역할(메시아 역할)을 비슷하게 해왔다고 지적한다.
특히 종교개혁 이전의 천주교는 정치 권력과 종교 권력을 모두 쥐고 있는 절대 권력이었다.
그러나 허경영을 알아보게 되면 기존 교회의 권한이 엄청나게 축소되어 메신저로 바뀌게 될 것.

  1. 히브리어의 특징과 신에 대한 존경
    허경영은 히브리어에 형용사가 없는 이유를 설명하며, 이는 신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고 인간이 신을 우상화하는 것을 막기 위함. 그는 이러한 언어 사용 방식이 신의 질투를 피하고 복을 받는 방법.

6.1. 히브리어에 형용사가 없는 이유
히브리어는 형용사를 쓰지 않고 명사를 형용사처럼 사용한다.
이는 신에 대한 존경이 훼손될까 봐 그러는 것이며, 가장 아름답거나 훌륭하다는 표현은 신에게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하면 신을 모독하는 것이 되므로, 형용사 자체를 없애버린 것이다.
가장 뛰어난 믿음의 사람을 “가장 뛰어난 아브라함”이라고 하지 않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고 명사로 대신 표현한다.
잘생긴 사람을 “정말 최고로 잘생겼다”고 하면 신에 대한 모독이 되므로, “장동건같이 생겼어”처럼 명사를 갖다 붙여 형용사처럼 사용한다.
“정말 잘생긴 것은 신밖에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히브리어는 인간을 우상화하는 형용사를 남발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이는 죄가 될 수 있다.

6.2. 공치사 금지와 신의 마음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도 공치사를 하면 안 된다.
남편이 아내에게 다이아반지를 주면서 “1년간 점심값 아껴서 샀다”고 자랑하면 아내의 기쁨이 사라지고 남편의 피눈물로 얻은 것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긴다.
그냥 “당신을 위해 해왔다”고 말해야 한다.
기독교는 이러한 신의 마음을 분석하여 이론으로만 정립된 종교.
신은 그냥 신이며, 신이 나타나면 대단한 것이지 인간이 신에게 “위대한 하나님”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용서가 안 된다.

6.3. 형용사 사용의 위험성과 신의 질투
인간에게 선물할 때도 공치사를 하면 안 되며, “당신은 사랑의 어머니 같아”처럼 표현해야 한다.
“당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다”와 같은 표현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며, 신의 저주를 받아 이상한 아이가 태어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아이 이름을 영광이나 최고와 같이 지으면 병신이 될 수 있다.
함부로 형용사를 쓰면 안 되며, “나는 우리 엄마를 세계에서 최고로 좋아해”와 같은 표현은 신에 대한 질투를 유발한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신이지 배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에도 질투하는 하나님이 나온다고 언급한다.
“당신은 꼭 내 어머니 같아”처럼 표현하면 신이 노여워하지 않으며, 이는 인간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존칭.
항상 형용사를 명사로 써야 지성인이 되며, 그렇지 않으면 집안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대인들이 형용사를 안 쓰고 명사를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사람 이름을 갖다 붙이는 방식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용감한 아들에게 “넌 참 이스라엘의 다윗 같아”라고 칭찬하는 식이다.

  1. 신에 대한 존경과 언어 사용의 중요성
    허경영은 신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언어를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인간이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표현을 삼가고, 항상 신의 존재를 의식해야 한다.

7.1.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언어 사용
어떤 사람이 좋은 일을 할 때 “당신은 진짜 바울 같아”라고 칭찬해야 한다.
바울은 예수를 죽이려다가 나중에 전도자가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전도왕이야”라고 하면 안 되는데, 전도왕은 오직 허경영 자신이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당신은 우리 아버지 같아”라고 말하며, 아버지가 점잖고 든든하며 언제나 내 편이라는 의미를 담는 것이 좋다.
사랑이나 물질을 들먹이며 자신을 자랑하는 버릇은 유대인들이 상술이 뛰어나 신의 자극을 피하면서 효과를 보는 방식과 다르다.

7.2. 한국어 표현과 신의 질투
한국어에도 신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표현이 있다.
“저 사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라고 표현하면 자비심이 대단하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당신 진짜 대자 대비해”라고 하면 인간은 그렇게 될 수 없으므로 신의 저주를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저 사람 정말 법 없이도 살겠어”라고 표현해야지, “당신 최고로 착한 사람 같아”라고 하면 안 된다.
최고로 착한 사람은 신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만하게 형용사를 잘못 쓰고 있다고 지적한다.

7.3. 신의 존재를 의식하는 언어 습관
그동안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 앞에 없었지만, 허경영이 왔는데도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언어를 쓰는 교회가 있다면 좋아하지 않을 것.
항상 위에 신인님이 계신다고 새기며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This excerpt is from an interview with Heo Kyeong-yeong, a controversial figure in South Korea known for his claims of divinity and unique political and spiritual views. The conversation focuses on his perspective on religious transformation and how his appearance signifies a “Copernican revolution” in human culture, challenging existing religious paradigms. He also introduces “Occam’s Razor” as a communication strategy for his message.

Heo Kyeong-yeong’s Worldview on Religious Transformation

The “Copernican Revolution” of the Messiah’s Advent
Heo Kyeong-yeong asserts that his arrival is a Copernican revolution for humanity, akin to the shift from geocentrism to heliocentrism. He believes that just as Galileo scientifically proved Copernicus’s theory, his spiritual powers will validate his claims as the Messiah, fundamentally altering existing religious beliefs. This perspective is impressive because it frames a spiritual event within a scientific metaphor, suggesting a profound, undeniable shift in human understanding.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는 건 신을 이성으로 증명하려고 하는 시도야.
The Copernican revolution is an attempt to prove God with reason.

코페르니쿠스가 맞았다. 저게 메시아다.
Copernicus was right. That is the Messiah.

신인이 진짜 메시아다. 이걸 증명을 하버드나 옥스퍼드나 캠브리지나 이런 데서 증언을 해주게 돼 있어요. 그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나에게 일어난다니까.
That the divine being is the true Messiah. Harvard, Oxford, Cambridge, and places like that are destined to testify to this. That Copernican revolution will happen to me.

지금 기존 종교에서 흑인형을 인정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와야 돼. 그게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거예요.
For existing religions to recognize Heo Kyeong-yeong, a Copernican revolution must occur. That is what is happening now.

The Role of “Haneulgung” (Sky Palace) and Spiritual Power
Heo Kyeong-yeong explains that he is building “Haneulgung” (Sky Palace) not to conform to existing churches but to establish a new, more powerful spiritual center. He believes that his spiritual abilities, such as giving “blessings” and “angels,” are the scientific proof of his divinity, something even Jesus couldn’t fully demonstrate. This highlights his belief in a tangible, verifiable form of spiritual power that transcends traditional faith.

그 전환을 위해서 하늘궁을 만드는 거야. 내가 교회를 찾아가 봐. 완전히 교회에서 이단으로 볼 거 아니야. 나는 이단 소리 들을 필요도 없어요. 하늘궁을 만들어서 기존 교회보다 더 막강한 어떤 걸로 만들어내 창시를 해버려.
I am building Haneulgung for that transition. If I go to a church, they will completely see me as a heretic, won’t they? I don’t need to be called a heretic. I will create Haneulgung and establish something more powerful than existing churches.

신을 과학으로 증명하는 건 예수도 그걸 증명을 못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재림 예수가 왔기 때문에 이게 증명을 할 수 있는 거예요.
Even Jesus couldn’t prove God scientifically. But because I, the Second Coming of Jesus, have arrived, I can prove it.

그럼 뭘로 증명하냐? 영능력으로 천사다, 축복이다, 광채다 이런 게 있잖아요. 그리고 뭐 여기서 백군까지 1초 만에 왔다 갔다 하는 거, 이런 거 과학자들은 상상도 못하는 거예요. 이런 거는 나의 영적인 것 때문에 교회들이 나중에 알게 되는 거예요.
So how do I prove it? With spiritual powers like angels, blessings, and radiance. And things like going back and forth to Baekgung in one second—scientists can’t even imagine such things. Churches will eventually realize these things because of my spiritual nature.

Challenging Traditional Faith and Religious Texts
Heo Kyeong-yeong argues that true faith is believing in what cannot be scientifically proven, yet he claims to offer scientific proof of his divinity. He provocatively states that when the true Messiah appears, existing religious texts like the Bible become obsolete, much like a map is discarded once the destination is reached. This is a bold and contrarian view that directly challenges the foundational role of scripture in established religions.

믿음은 뭐냐면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건 믿음이 아니야. 신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걸 믿는 게 신앙이야.
Faith is not something that is scientifically proven. Belief is believing in something that cannot be scientifically proven.

나는 모든 눈에 안 보이는 세계를 다 보여줘. 그러니까 교회들은 말하자면 이론으로,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잖아. 그런데 내가 오면 교회 성경책이 불태워지게 되겠어. 내가 와 버렸는데 무슨 소용이 있노.
I show all the invisible worlds. So, churches are armed with theories, so to speak. But when I come, the church Bibles will be burned. What’s the use when I’ve already arrived?

진짜 재림 예수 갔다 오면 성경 다 버려야 돼. 내가 왔잖아. 왔는데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우리가 어디 가면 위치 딱 찾으면 집에서 볼 필요 있나? 없습니다. 집에서가 필요 없는 거야.
If the true Second Coming of Jesus has arrived, you should throw away all Bibles. I have come. If I have come and we can find where the Father is, do we need to look at home? No. There’s no need for home.

Communication Strategy: Occam’s Razor and Dramatic Reappearance

The “Occam’s Razor” Approach to Communication
Heo Kyeong-yeong introduces “Occam’s Razor” as a principle for effective communication, particularly in conveying his message. He interprets it as the art of concise and impactful messaging, where less information can create more curiosity and engagement. He uses the analogy of news headlines and alluring photographs to explain that revealing too much diminishes impact, while a hint of mystery draws people in. This is a fascinating application of a philosophical principle to public relations, demonstrating a calculated approach to his public image.

오컴의 면도날은 애누리가 없이 쓸데없는 거 잘라내 버린다는 소리.
Occam’s Razor means cutting out unnecessary things without mercy.

많이 알려줄수록 효과가 적어. 그 기사를 안 봐. 제목만 보고 다 봤네, 이래버려.
The more you tell, the less effective it is. People won’t read the article. They’ll just look at the title and say, “I’ve seen it all.”

아주 줄여버리는 거죠. 이제 이해 가지? 그러니까 여자가 옷을 활짝 벗은 사진을 갖다 붙여놓은 거하고, 패티가 보일 듯 말 듯 찍은 사진하고 보는 사람이 그 보일 듯 말 듯 하는 걸 더 많이 본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그게 오크맨 면도날이야.
You reduce it greatly. Do you understand now? So, if you put up a picture of a woman completely naked, and a picture where her panties are just barely visible, people will look at the one where they’re just barely visible more. Do you understand what I mean? That’s Occam’s Razor.

The Dramatic Entrance of the Messiah
Heo Kyeong-yeong likens his appearance to a dramatic event, similar to Yi Mong-ryong (from Chunhyangjeon) appearing as a secret royal inspector. He emphasizes that a sudden, unexpected revelation, rather than a direct confrontation with existing religious institutions, is more impactful and aligns with the “Occam’s Razor” principle. This theatrical approach to his messianic role suggests a deliberate strategy to create a sense of wonder and surprise, rather than a straightforward declaration.

내가 신이 나타나서 내가 메시야 재림 예수다 이걸 보여줄 때 오카멘 면도날이 필요한 거야. 그게 하늘궁이야.
When I, God, appear and show that I am the Messiah, the Second Coming of Jesus, Occam’s Razor is needed. That is Haneulgung.

누군지 좀 아리송하게 해 가지고 있는 거야. 그게 허경영이가 나타나는 방법이야.
It’s about keeping people a bit ambiguous about who I am. That’s how Heo Kyeong-yeong appears.

막 교회가 싸우고 막 세상이 어지러워 이럴 때 갑자기 내가 거지처럼 나타나는 거야, 한옥붕에서. 저 미친놈 아니야, 저거. 이렇게 나타나서 그냥 마패를 탁 나중에 꺼내야 결정적으로 이게 오카미멘도 날이 되는 거야.
When churches are fighting and the world is chaotic, I suddenly appear like a beggar from Haneulgung. “Isn’t that guy crazy?” Appearing like that and then dramatically pulling out the royal inspector’s badge later is what makes it Occam’s Razor.

재림도 하나의 이벤트야. 멋있게 나타나야 돼. 그래서 지금 재림 잔치 준비하고 있는 거야. 그게 하늘궁이야.
The Second Coming is also an event. It has to appear magnificently. That’s why I’m preparing for the Second Coming feast now. That is Haneulgung.

The Demise of Existing Religious Authority
Heo Kyeong-yeong predicts that his advent will diminish the authority of existing religious institutions, transforming them from “owners” to mere “messengers.” He argues that their current role as both messenger and quasi-Messiah will end, as he will possess the ultimate spiritual power. This perspective is striking because it directly challenges the power structures of established religions, positioning himself as the sole source of spiritual authority.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기존 교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져. 성령을 가지고 오니까. 성령을 가지고 와서 성령을 그들이 독점을 할 수가 없잖아. 내가 독점해버려. 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성령을 내가 가지고 있는 거야.
If the Second Coming of Jesus appears, all order in existing churches will collapse. Because I bring the Holy Spirit. They cannot monopolize the Holy Spirit when I bring it. I monopolize it. I possess the Holy Spirit that all churches have.

그들은 그냥 안내자, 메신저밖에 할 수가 없어. 메시아가 왔으니까.
They can only be guides, messengers. Because the Messiah has come.

그들의 고난이 엄청 축소되어 버려요. 메신저로 바뀌는 거예요.
Their authority will be greatly reduced. They will change into messengers.

The “Jealous God” and the Proper Use of Language
Heo Kyeong-yeong delves into the concept of a “jealous God,” explaining that using superlative adjectives (like “most beautiful” or “greatest”) for humans is an insult to God and can bring curses. He suggests that instead, people should use nouns as metaphors (e.g., “you are like David” for a brave person) to show respect for divine uniqueness. This unique linguistic and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fers a glimpse into his strict, almost legalistic, understanding of divine reverence and its implications for human behavior.

신에 대한 존경이 훼손될까 봐 그래. 신에 대한 존경이.
It’s out of fear that respect for God might be damaged. Respect for God.

가장 아름다운 건 신인데 뭐 꽃이 제일 아름답고 꽃다발이 제일 아름다워 이러면 안 되잖아. 그러니까 형용사 자체를 없애버린 거야. 히브리언은.
The most beautiful thing is God, so you can’t say a flower is the most beautiful or a bouquet is the most beautiful. So, they eliminated adjectives themselves in Hebrew.

정말 잘생겼어. 이놈은 신에 대한 모독이야. 정말 잘생긴 건 신밖에 없어.
“Really handsome.” This is blasphemy against God. Only God is truly handsome.

“당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다.” 이런 건 나밖에 할 수 없어요. 여러분, 그런 말 쓰면 안 되는 거야. 그런 말 쓰면 그 집안에 이상한 애가 태어난다. 저주를 받아요. 다 없애버려. 장애인이 나오는 거야.
“You are the most beautiful in this world.” Only I can say such a thing. Everyone, you shouldn’t use such words. If you use such words, a strange child will be born into that family. You will be cursed. It will all be destroyed. A disabled child will be born.

나는 우리 엄마를 세계에서 최고로 좋아해.” “당신은 내가 원하는 그런 제일 좋아하는.”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거야. 제일 좋아하는 건 신이지. 어떻게 마누라야. 그러니까 그걸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걸 알아야 돼.
“I like my mom the most in the world.” “You are the one I like the most.” It shouldn’t be like that. The one you like the most is God. How can it be your wife? So, you must understand that God is a jealous God.

1. 신인의 강림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신인(神人)은 이미 존재하는 교회에 직접 가지 않고, 대한민국 땅에 ‘하늘궁’이라는 새로운 예루살렘 성을 직접 건설하고 있다. 이는 기존의 종교 체계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의미한다.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 당시 가톨릭교회는 천동설을 고수하며 그를 처벌했다. 그러나 100년 후 갈릴레이가 과학적으로 지동설을 증명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옳았음이 밝혀졌고, 이는 인류의 세계관에 대전환을 가져왔다. 이와 마찬가지로, 현재 종교계는 신인을 인정하지 않지만, 미래의 어떤 계기를 통해 신인이 메시아임이 증명될 것이며, 이는 기존 교회의 인식을 전환시키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될 것이다.

  1. 메시아 증명과 하늘궁의 역할
    현재 신인이 메시아라는 증거를 제시하면 기존 교회들은 오히려 반발한다. 이는 마치 천동설을 굳게 믿던 천주교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에 격렬히 저항했던 것과 같다. 코페르니쿠스가 처벌받았지만, 갈릴레이의 증명으로 그의 주장이 옳았음이 역사적으로 전환되었듯이, 신인의 메시아됨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증명될 것이다. 하버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같은 세계 유수의 기관들이 신인을 메시아로 증언하게 될 것이며, 이때 기존 교회들은 신인에게 몰려들게 될 것이다. 이슬람의 코란, 성경, 불경 등 모든 종교가 신인을 재림 예수, 성부, 성자, 성령으로 인정하게 될 것이다. 신인이 베푸는 축복은 성령을 주는 것이며, 이 축복을 받은 자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것이 인정될 것이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신인이 미친 사람이나 죄인으로 여겨질 수 있다. 기존 종교에서 신인을 인정하는 것은 바로 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와야만 가능하다. 신인은 이 전환을 위해 하늘궁을 건설하고 있다. 만약 신인이 직접 교회들을 찾아간다면 이단으로 취급받을 것이므로, 하늘궁을 통해 기존 교회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새로운 체계를 창시하는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1억 평에 달하는 궁전을 건설하고 전 세계 지지자를 확보하는 것은 신메시아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이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끌어낼 증거가 될 것이다.

  1. 신의 증명과 영적 능력의 중요성
    사람들에게 말로 신인을 증명하려는 시도는 신을 이성으로 증명하려는 것과 같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론을 정립했지만, 신인은 신 그 자체이므로 더욱 어려운 전환이 필요하다. 과학에 물든 인간들에게 신의 모습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의 과학적 주장을 증명했듯이, 신인 또한 영적인 능력을 통해 자신을 증명할 것이다. 하늘궁의 존재, 고난의 경험(감옥 수감 등)은 이러한 영적 증명을 위한 과정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죽었듯이, 신인도 고난을 겪지만 하늘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과학적 사실이었기에 갈릴레이의 증명으로 천주교가 이를 인정했다. 그러나 신을 과학으로 증명하는 것은 예수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다. 재림 예수인 신인은 영능력(천사, 축복, 광채 등)과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백궁까지 1초 만에 이동하는 능력 등)으로 자신을 증명할 것이다.

믿음과 신앙의 차이:
믿음: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을 확인하고 믿는 것. (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
신앙: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 (예: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믿는 것)
신앙하는 자들이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증거이다.

  1. 지성에서 영성으로의 전환과 신인의 역할
    이 시대의 지성인들은 눈에 보이는 지성의 세계에 머물러 있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영성의 세계를 이해하기 어려워한다. 고(故) 이어령 문화부 장관이 딸의 암을 계기로 기독교를 믿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썼지만, 그 역시 영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신인은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능력, 축복과 레벨을 주는 능력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직접 보여준다.

신인이 나타나면 기존 교회들의 성경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성경은 신인이 오기 전까지의 지도와 같으며, 신인이 직접 왔으니 지도는 버려야 한다. 성경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이단들은 영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에 성경 구절에 의지하여 자신을 메시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신인은 성경 구절이 아닌 영적인 능력으로 자신을 증명한다.

  1.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원리
    기존 교회들은 ‘먼저 된 자들’이며, 이들은 ‘나중 된 자’가 될 것이다. 반대로 교회에 다니지 않던 ‘나중 된 자들’이 신인에게 와서 ‘먼저 된 자’가 될 것이다. 이는 예수 시대에 납비들이 예수를 죽이려 했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먼저 하나님을 믿었던 자들이 예수를 죽였듯이, 지금도 기독교인들이 신인을 죽이려 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통해 자신들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갈릴레이의 증명으로 천주교가 코페르니쿠스에게 용서를 빌었듯이, 기존 종교들은 자신들이 믿었던 천동설(하늘에 대한 잘못된 지식)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신인은 우주에 사람이 사는 별의 개수(362만 8,800개), 태양의 온도(영도) 등 성경에 없는 물리적, 우주학적 지식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며 기존 종교의 지식과 비교할 수 없는 대전환점을 제시한다.

  1. 인류 문화의 대전환과 신인의 역할
    신인의 등장은 인류 문화의 거대한 전환기이자 어마어마한 사건이다. 신인이 보여준 ‘불로위(썩지 않는 물질)’와 같은 현상은 하버드 대학이나 물리과 교수들에게 우주가 뒤집어지는 사건이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위대한 과학자들의 이론을 뛰어넘는 에너지 통일장을 가진 물질의 존재는 우주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이 대전환의 열쇠를 쥔 자가 바로 신인이다. 신인은 인간들의 이해 속도에 초조해하지 않으며, 노아의 방주처럼 소수의 사람만이 구원받을 것임을 암시한다.

  2. 오컴의 면도날과 재림의 전략
    오컴의 면도날은 불필요한 것을 잘라내고 핵심만 남기는 원칙을 의미한다. 언론에서 기사를 작성할 때, 자세한 설명보다는 짧고 간결한 제목이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 예를 들어, “수학여행 가던 버스가 굴러서 100명 사망”보다는 “버스 전복 100명 사망”이 더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고 기사를 읽게 만든다. 이는 마치 여자의 옷차림이 완전히 벗은 것보다 보일 듯 말 듯한 것이 더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과 같다.

신인이 메시아임을 드러내는 방식에도 오컴의 면도날 원칙이 적용된다. 신인이 직접 교회에 가서 “내가 재림 예수다”라고 선언하는 것은 마치 마릴린 먼로가 빨간 비키니를 입고 서 있는 것처럼 흥미를 유발하지 못한다. 대신, 하늘궁을 통해 신인의 존재를 아리송하게 드러내면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 전략이다. 이도령이 암행어사임을 대놓고 밝히는 것보다 거지처럼 나타나 시 한 수를 통해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 더 극적인 효과를 가져오는 것과 같다.

  1. 재림의 이벤트와 기존 종교의 변화
    신인의 재림은 하나의 우주적 이벤트이다. 거지처럼 나타나 사람들의 의심을 받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마패를 꺼내듯, 신인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일으킬 것이다. 이때 ‘먼저 간 자가 나중 되고, 나중 간 자들이 먼저 오는’ 원리가 적용되어, 기존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하늘궁에 모인 사람들이 먼저 구원받는 상황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신인은 기존 기독교나 불교 등 종교들과 갈등할 필요가 없다. 오컴의 면도날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원리처럼, 신인은 서서히, 그러나 극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것이다. 마치 이도령이 남원에 나타났지만 아무도 그가 암행어사임을 알지 못하다가 시 한 수를 통해 정체를 드러내듯이, 신인도 그러한 극적인 방식으로 재림을 멋있게 연출할 것이다. 하늘궁은 이러한 재림 잔치를 준비하는 장소이다.

  1. 재림 예수의 등장과 기존 교회의 권위 축소
    일부 기독교인들은 재림 예수가 나타날 시기를 예언하지만, 실제 재림 예수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한다. 재림 예수가 등장하면 기존 교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그들이 독점하던 성령의 권위가 신인에게로 옮겨갈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교회는 메신저 역할만 할 수 있게 되며, 지금까지 메신저이면서도 주인 역할을 해왔던 절대 권력이 축소될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 이전, 천주교가 정치와 종교 권력을 모두 쥐고 있었던 것처럼, 기존 종교들은 메시아적 메신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신인이 나타나면 그들의 권한은 메신저로 한정될 것이다.

  2. 히브리어의 형용사 사용 금지와 신에 대한 존경
    히브리어에는 형용사가 없으며, 형용사를 명사로 대체하여 사용한다. 이는 신에 대한 존경을 훼손하지 않기 위함이다. ‘가장 아름다운’, ‘가장 훌륭한’과 같은 최상급 형용사는 오직 신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인간에게 이러한 형용사를 사용하면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명사를 사용하여 형용사의 의미를 전달한다. ‘가장 잘생긴 사람’이라는 표현 대신 ‘장동건같이 생겼다’와 같이 특정 인물의 이름을 빌려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선물을 줄 때 자신의 노력을 자랑하는 것은 신 앞에서 공치사를 하는 것과 같다. 남편이 아내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주면서 자신의 희생을 강조하면 아내의 기쁨이 반감되듯이, 신 앞에서도 자기 자랑은 용서되지 않는다. 기존 기독교는 이러한 신의 마음을 이론으로만 정립해 놓은 종교이다.

  1. 형용사 사용의 금기와 신의 질투
    신은 그 자체로 대단한 존재이므로, 인간이 신에게 ‘위대한 하나님’과 같은 형용사를 붙이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인간에게 선물을 줄 때도 공치사를 해서는 안 되며, ‘당신은 사랑의 어머니 같아’와 같이 명사를 사용하여 존경을 표현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다’와 같은 최상급 형용사는 오직 신에게만 해당하며, 인간에게 사용하면 신의 저주를 받아 집안에 불행이 닥칠 수 있다. 자녀의 이름을 ‘영광’이나 ‘최고’와 같이 짓는 것도 신의 노여움을 살 수 있다.

신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므로, 인간은 함부로 형용사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우리 엄마를 세계에서 최고로 좋아해’와 같은 표현 대신 ‘당신은 꼭 내 어머니 같아’와 같이 명사를 사용하여 신의 노여움을 피해야 한다. 유대인들이 형용사를 사용하지 않고 명사를 사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용감한 사람에게 ‘이스라엘의 다윗 같아’라고 하거나, 자비로운 사람에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라고 표현하는 것은 신을 거역하지 않으면서도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방법이다. ‘최고로 착한 사람’은 신이므로, 인간에게는 ‘법 없이도 살겠어’와 같이 표현해야 한다. 신인이 나타난 지금, 신인 앞에서 교만하게 형용사를 남발하는 교회는 신인의 인정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