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7 x133 지식으로 바라볼때와 지혜로 바라볼때의 엄청난 차이점!

지식은 눈으로 볼 때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변화합니다.
눈으로 보는 정보: 전쟁을 유발합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남과 경쟁하고 다투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정보: 평화를 가져옵니다. 정보를 평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2025.03.20 x133 지식으로 바라볼때와 지혜로 바라볼때의 엄청난 차이점!

The Enormous Difference Between Viewing Things with Knowledge and Viewing Them with Wisdom: A Perspective from Huh Kyung young

지식과 지혜를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는 무엇인가? 지식을 눈으로 보면 단순한 지식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지혜로 바뀝니다.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본질과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의미입니다.

  1. 지식과 지혜의 차이: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
    지식과 지혜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본질과 가치가 완전히 달라진다.

1.1. 지식과 지혜의 비유 및 AI 시대의 지혜의 중요성
지식과 지혜의 비유
인간의 지식은 식재료와 같고, 지혜는 요리 도구와 같다.
지식은 지혜로 잘 다루어졌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AI 시대의 지혜의 중요성
AI 발전으로 지식 수준은 급격히 올랐지만, 지혜는 부족하여 지식이 지혜를 집어삼키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시대에 신의 방편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1.2. 지식과 지혜를 구분하는 관점
지식과 지혜의 전환점
지식은 마음으로 볼 때 지혜로 바뀐다.
지식을 눈으로만 보면 지혜가 될 수 없다.
교실 지식의 한계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은 눈으로만 들으면 지혜가 될 수 없다.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두 지혜로 바뀐다.

  1. 사랑, 정보, 몸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사랑, 정보, 몸 등 다양한 대상을 눈으로 볼 때와 마음으로 볼 때의 차이를 통해 지혜의 중요성.

2.1.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눈으로 보는 사랑의 한계
사랑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생긴다.
부자지간에도 너무 사이가 좋으면 질투가 생길 수 있다.
마음으로 보는 사랑의 변화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비심으로 바뀐다.
어머니가 자식의 잘못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밉지 않게 느껴진다.
탕자의 비유
아버지가 돈을 다 탕진한 아들(탕자)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예쁘게 보인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탕자가 탕자로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바라보는 두 가지 방식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과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2.2. 지식과 정보의 관점 차이
지식의 관점 차이
지식을 눈으로 바라보면 단순한 지식일 뿐이다.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바뀐다.
정보의 관점 차이
정보를 눈으로 바라보면 전쟁이 된다.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남과 경쟁하기 위함이다.
눈으로 보는 정보는 전쟁과 같다.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된다.
정보가 평화를 위해 사용될 수 있다.
하늘궁의 정보는 지상의 평화를 이루는 데 사용된다.
하늘궁을 통해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고, 세계 평화가 실현될 수 있다.
종교들이 전쟁을 만드는 것과 대조된다.

  1. 방편 지혜와 사단칠정
    방편 지혜는 사물을 바라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이며, 인간의 마음을 사단과 칠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3.1. 방편 지혜의 의미
방편 지혜의 정의
방편 지혜는 사물을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이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안경을 가지고 있다.
마음과 영으로 보는 관점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며, 이는 지혜로 이어진다.
영으로 보면 더 강력한 변화가 일어나 돈이나 재물로 바뀔 수도 있다.

3.2. 사단과 칠정: 마음과 눈으로 보는 인간의 감정
사단(四端)의 의미
사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말한다.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사단이 나타난다.
측은지심은 남을 측은하게 바라보는 마음이다.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측은지심이 된다.
칠정(七情)의 의미
칠정은 희로애락애오욕으로, 눈으로 사물을 볼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칠정은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며, 마음으로 보면 사단이 된다.
재벌의 텔레비전 비유
한 재벌 회장이 낡은 텔레비전을 바꾸지 않는 이유는, 그 텔레비전이 아내와의 추억이 담긴 물건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낡은 고물로 보지만, 회장은 마음으로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절을 본다.
이는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의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사랑을 마음으로 볼 때의 변화
자기 아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희로애오욕정이 사라지고, 측은지심과 사양지심이 생긴다.
아내에게 좋은 옷을 양보하고, 원하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반면, 눈으로만 보면 옷차림에 대해 비난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마음
아버지가 딸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딸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측은지심이 생긴다.
딸이 고생할까 봐 돈을 더 주려 하고, 더 가르치려 한다.
첫 딸은 남자가 정신을 차리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는 딸의 미래를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1. 정의와 몸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정의와 몸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통해 지혜의 중요성.

4.1. 정의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눈으로 보는 정의
정의를 눈으로 보면 단순한 정의일 뿐이다.
남이 잘하고 잘못하는 것을 따지고, 남에게 정의를 들이대려 한다.
마음으로 보는 정의
정의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된다.
자신부터 바뀌고, 남의 평화를 짓밟지 않으려 노력하며, 좋은 사람이 된다.
정의의 적용 대상
정의는 남에게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들이대야 한다.
자신이 정의롭지 않으면서 남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4.2. 몸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마음으로 보는 몸
마음으로 몸을 바라보면 건강이 된다.
나쁜 습관을 고치고, 음식을 조절하며 건강해질 수 있다.
외모로 보는 몸
외모로 몸을 바라보면 늙어가는 모습만 보게 된다.
이는 염세주의자가 되게 하고, 늙지 않으려 몸부림치게 한다.
관점의 차이로 인한 결과
마음으로 몸을 바라보는 사람은 건강을 지키려 노력한다.
외모로 몸을 바라보는 사람은 외모를 가꾸는 데만 집중한다.

  1. 종교적 관점에서 본 지혜: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
    불교와 기독교의 근본적인 차이를 통해 지혜를 얻는 방식과 세계관을 설명.

5.1. 불교와 기독교의 지혜 추구 방식
불교: 자력(自力) 종교
불교는 남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자력으로 깨달음을 얻는 종교이다.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누구도 깨달음을 줄 수 없다.
불교의 신앙은 깨닫는 것이다.
기독교: 타력(他力) 종교
기독교는 외부의 힘, 즉 하나님, God-man, 예수와 같은 메시아를 통해 구원받는 타력 종교이다.
스스로 구원하려 한다면 기독교인이 아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믿는 것이다.

5.2. 불교의 세계관: 화엄경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
불교의 세계관은 화장장엄세계이다.
화장세계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지구, 자연)를 의미한다.
장엄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감춰진 세계)를 의미한다.
이 두 세계가 합쳐진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다.
화엄경(華嚴經)의 의미
화장장엄세계경을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른다.
이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석가모니가 설한 것이다.
지식과 지혜의 관점
보이는 세계인 화장세계는 지식으로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세계인 장엄세계는 지혜로 봐야 한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에 속지 말고,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봐야 한다.
불교의 목적
불교의 최고 목적은 깨닫는 것이다.
깨달으면 고통을 이해하게 되어 지옥이 없어진다.
기독교와 불교의 조화
기독교인도 불교의 코스(화장장엄세계)를 이해해야 한다.
화장세계만 보고 하나님을 믿으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God-man을 만나야 화장과 장엄을 모두 깨닫게 된다.

지식은 눈으로 볼 때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변화합니다.

이는 사랑을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되지만 마음으로 보면 자비심이 되는 것과 같으며, 사물을 마음으로 보는 관점이 세상을 이해하고 평화를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지식과 지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지식과 지혜는 세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 둘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의미와 가치가 크게 달라집니다.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이지만, 지혜는 그 정보를 마음으로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능력입니다.

  1. 지식과 지혜의 본질
    지식: 눈으로 보는 정보에 불과합니다.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처럼, 단순히 습득하는 정보는 그 자체로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지혜: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지혜로 변화합니다.

  2. 사랑을 통해 본 관점의 차이
    사랑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식과 지혜의 차이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눈으로 보는 사랑: 시기와 질투를 유발합니다. 부자지간에 너무 사이가 좋으면 질투가 생기는 것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만 집중하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사랑: 자비심으로 변화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미워하지 않는 것처럼, 마음으로 사랑을 바라보면 모든 것을 포용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탕자가 돌아와도 기뻐하는 부모의 마음처럼, 마음으로 사랑을 보면 상대방의 단점까지도 사랑스럽게 느껴집니다.

  1. 정보와 평화: 관점의 중요성
    정보 역시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눈으로 보는 정보: 전쟁을 유발합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행위 자체가 남과 경쟁하고 다투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보는 정보: 평화를 가져옵니다. 정보를 평화를 위해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하늘궁의 정보가 세계 평화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는 것처럼, 마음으로 정보를 바라보면 긍정적인 결과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종교가 세계 평화 대신 전쟁을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정보를 눈으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1. 방편 지혜: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
    방편 지혜는 사물을 바라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눈으로 보는 안경: 인간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안경으로, 지식에 머무르게 합니다.
마음으로 보는 안경: 지식을 지혜로 변화시킵니다.
영으로 보는 안경: 마음으로 보는 것보다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재물이나 더 큰 가치로 변화시킵니다.

  1. 사물에 대한 마음의 관점: 재벌의 텔레비전 이야기
    재벌 회장의 낡은 텔레비전 이야기는 사물을 마음으로 보는 것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눈으로 보는 텔레비전: 낡고 쓸모없는 고물에 불과합니다.
마음으로 보는 텔레비전: 회장에게는 돌아가신 아내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사랑의 상징입니다. 단칸방 시절 아내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했던 기억들이 텔레비전에 투영되어, 그 어떤 최신 텔레비전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를 지닙니다.
이처럼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단순한 물건도 깊은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1. 사단과 칠정: 인간 마음의 두 가지 관점
    인간의 마음을 바라보는 관점 또한 두 가지로 나뉩니다.

눈으로 보는 마음 (칠정): 희로애락애오욕과 같은 감정적인 반응입니다. 기쁘고 슬프고 즐거운 감정들은 눈으로 보는 얕은 관점에서 비롯됩니다.
마음으로 보는 마음 (사단):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마음입니다.
측은지심: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 남에게 양보하고 겸손해하는 마음.
시비지심: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
마음으로 사랑을 바라보면 시기 질투 대신 측은지심이 생겨나고, 서로 양보하게 됩니다.

  1.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마음: 미래를 보는 지혜
    아버지가 딸을 바라보는 마음은 지혜로운 관점을 보여줍니다.

눈으로 보는 딸: 단순히 예쁘고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딸: 미래에 겪을 고생과 어려움을 미리 헤아려 측은지심을 느낍니다.
아버지는 딸이 시집가서 고생할까 봐 돈을 더 주려 하고, 더 가르치려 합니다.
첫 딸이 태어나면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딸의 미래를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이러한 마음은 딸의 미래를 생각하는 사랑과 지혜에서 비롯됩니다.
타인의 딸을 보는 시선: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단순히 즐거움의 대상으로 여기거나 함부로 대할 수 있습니다.

  1. 들꽃을 대하는 태도: 존중의 마음
    들꽃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관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눈으로 보는 들꽃: 예쁘다고 꺾어버리는 행위는 하늘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들꽃: 들꽃이 최선을 다해 피어 있는 모습을 보고 자존심을 세워주며 존중해야 합니다.
들꽃은 많은 사람이 보라고 피어 있는 것이지, 특정 개인이 꺾으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1. 정의를 바라보는 관점: 평화와 자기 성찰
    정의를 바라보는 관점 또한 중요합니다.

눈으로 보는 정의: 남의 잘못을 따지고 비판하는 데 사용됩니다.
마음으로 보는 정의: 평화를 가져오며, 자기 자신을 성찰하고 변화시키는 계기가 됩니다.
자신이 정의롭지 않으면서 남에게 정의를 들이대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보면, 나 자신부터 정의롭게 행동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1. 몸을 바라보는 관점: 건강과 죽음
    자신의 몸을 바라보는 관점도 삶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외모로 몸을 보는 관점: 늙어감과 죽음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합니다. 매일 조금씩 늙어가는 모습에 집착하며 염세주의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외모에만 치중하여 치장하는 데 몰두하게 됩니다.
마음으로 몸을 보는 관점: 건강을 추구하게 합니다. 몸의 메커니즘과 리듬을 이해하고, 나쁜 습관을 고치며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합니다.

  1. 불교와 기독교: 자력과 타력의 차이
    종교 또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그 본질이 달라집니다.

불교: 자력을 의지하는 종교입니다. 스스로 깨달음을 통해 부처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불교는 믿음보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며, 석가모니는 깨달은 자일 뿐 신이 아닙니다.
불교의 최고 목적은 정각, 열반, 해탈, 보리, 반야의 무아, 성불과 같은 깨달음입니다.
기독교: 타력을 의지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 God-man, 예수와 같은 메시아를 통해 구원받는 것을 믿습니다.
기독교는 믿음이 중요하며, 성경 내용을 믿는 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1. 화엄경: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불교의 화엄경은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이해하는 지혜.

화장 세계: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 (지구, 자연 등)를 의미합니다. 이는 지식에 해당합니다.
장엄 세계: 눈에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 (우주의 원리, 사물의 변화 등)를 의미합니다. 이는 마음으로 보는 지혜에 해당합니다.
화엄경은 이 두 세계가 합쳐진 것을 의미하며, 보이는 세계에만 속지 말고 보이지 않는 세계의 진리도 깨달아야 함을 설파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이해 없이 기독교를 믿는 것은 초등학교, 고등학교를 거치지 않고 대학에 가는 것과 같다고 비유됩니다.
God-man을 만나야 화장 세계와 장엄 세계를 모두 깨달을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세상을 눈으로만 바라보면 피상적인 지식과 감정에 갇히게 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깊은 지혜와 평화, 그리고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This excerpt from Huh Kyung-young’s YouTube channel, “Hurting1.33,” explores the profound difference between knowledge and wisdom, and how one’s perspective—whether through the “eyes” or the “heart”—transforms understanding. Huh Kyung-young, often referred to as “Shin-nim” (God), shares his unique insights on how to perceive the world, relationships, and even one’s own body, emphasizing a shift from superficial observation to a deeper, more compassionate, and insightful view.

The Essence of Wisdom

The “Eyes” vs. “Heart” Perspective
true wisdom emerges when we view knowledge, love, or information not just with our physical eyes, but with our heart. This shift in perspective fundamentally changes how we experience and interact with the world, moving beyond superficial reactions to deeper understanding and compassion. This is impressive because it challenges the common notion that wisdom is merely accumulated knowledge; instead, it highlights the transformative power of internal perspective.

지식을 눈으로 보면은 지혜가 안 돼. 식으로 바라보면 전부 지혜로 바뀌는 거예요. 바라보는 방법이 사랑을 사람의 눈으로 보면은 예시기 질투가 붙어. 근데 사랑을 마음속으로 사랑이라는 걸 바라보면은 뭐로 바뀌냐 하면은 자비심으로 바뀌어.
If you look at knowledge with your eyes, it doesn’t become wisdom. If you look at it with your heart, it all turns into wisdom. The way you look at it: if you look at love with human eyes, envy and jealousy attach to it. But if you look at love with your heart, it changes into compassion.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거와 눈으로 바라보는 거, 네, 이게 완전히 달라. 지식을 눈으로 바라보면 그게 뭐냐, 지식일 뿐이야. 그런데 그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봐 버리면, 지혜로 바뀌어.
Looking at love with your heart and looking at it with your eyes, these are completely different. If you look at knowledge with your eyes, what is it? It’s just knowledge. But if you look at that knowledge with your heart, it changes into wisdom.

Information as War vs. Peace
Huh Kyung-young extends this concept to information, stating that viewing information with the eyes leads to conflict and war, while viewing it with the heart leads to peace. This is a powerful reframe, suggesting that the inherent nature of information isn’t neutral but is shaped by our internal lens. It’s impressive how he connects this to global issues like religious conflicts, implying that a change in perspective could resolve deep-seated hostilities.

정보를 눈으로 바라보면 정보야. 근데 마음으로 보면 뭐예? 정보를 눈으로 보면은 예, 정보니까 이게 전쟁이야. 정보는 전쟁이란 말이야.
If you look at information with your eyes, it’s just information. But if you look at it with your heart, what is it? If you look at information with your eyes, it’s information, so it’s war. information is war.

전쟁인데 정보를 마음으로 보면 평화야.
It’s war, but if you look at information with your heart, it’s peace.

그러니까 정 말하면 정보가 예, 대부분 전쟁용으로서 기업들도 예, 맞아, 안 맞아. 근데 이걸 마음으로 바라봐 버리면 평화야.
in other words, information is mostly for war, even for corporations. But if you look at this with your heart, it’s peace.

The “Expedient Wisdom” (방편지혜)
Huh Kyung-young introduces “Expedient Wisdom” (방편지혜) as the ability to change one’s glasses—to shift from seeing with the eyes to seeing with the heart, and even further, with the spirit. This concept is striking because it suggests a hierarchy of perception, where deeper levels of insight unlock greater potential, transforming even nuclear weapons information into rapid growth. It’s a call to transcend ordinary perception for extraordinary outcomes.

편지에는 보는 안경을 바꾸는 거야. 눈으로 보는 이 안경을 인간들이 가지고 있어. 그렇지. 그러면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랬지. 이거를 영으로 봐 버려. 그럼 더 무섭지.
Expedient wisdom is changing the glasses through which you see. humans have these glasses that see with their eyes. right. Then I said it’s important to see with your heart. If you see this with your spirit, it’s even more powerful.

근데 마음으로만 봐도 이게 지혜로 바뀌는데, 네, 영으로 보면 어떻게 되겠어? 돈으로 바뀌어, 재물로 바뀌어 버리고 다 바뀌어 버려.
But even if you just look with your heart, it changes into wisdom. If you look with your spirit, what happens? It changes into money, into wealth, everything changes.

The Depth of Compassion and Understanding

Seeing Beyond the Surface: The Rich Man’s TV
The story of the rich man and his old, black-and-white TV powerfully illustrates the difference between seeing with the eyes and seeing with the heart. While others see a worthless antique, the rich man sees a cherished memory of his deceased wife and their early struggles. This anecdote is incredibly moving because it highlights how emotional connection and memory can imbue an object with immeasurable value, far beyond its material worth. It’s a beautiful example of how the heart perceives depth where the eyes see only superficiality.

당신들은 눈으로 텔레비를 보지만 나는 마음으로 봅니다. 무슨 마음으로 보시는데요? 내 마누라하고 단칸방 살 때, 내 재벌되기 전에 우리 마누라가 저 텔레비를 사고 나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둘이 눈물이 날 정도로 즐거워하고, 그리고 마누라가 맨날을 놀러 가면서 다른 거 보고 드라마 보고 서로 웃고 울고, 이게 내 정이 든 거야. 이 마누라는 30년 전에 죽었지만, 나는 저 테레비가 없으면 마누라가 진짜 없어지는 거야.
You look at the TV with your eyes, but I look at it with my heart. What do you mean by looking with your heart? When my wife and I lived in a single room, before I became a rich man, how happy my wife was after buying that TV. We were so joyful we cried, and my wife would always watch dramas, laughing and crying together. This TV became dear to me. My wife died 30 years ago, but if I don’t have that TV, it feels like my wife truly disappears.

내 안방에는 우리 마누라가 좋아하던 테레비, 둘이서 새 방 살 때 가지고 있던 테레비, 그걸 보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그때 젊은 시절이 그립다는 거야. 그 마누라가 30년 전에 죽었는데 그 텔레비를 지금까지 가지고 앉아 있는 거죠, 죽을 때까지. 그래, 안방에 오면 텔레비를 보면 마누라를 보는 거 같아. 그게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거예요.
In my bedroom, there’s the TV my wife loved, the TV we had when we lived in a new room together. Looking at it, I feel joy and happiness, and I miss those young days. My wife died 30 years ago, but he still keeps that TV until he dies. Yes, when he comes into the bedroom and sees the TV, it’s like seeing his wife. That’s seeing things with your heart.

The Four Beginnings (사단) vs. The Seven Emotions (칠정)
Huh Kyung-young differentiates between the “Four Beginnings” (사단) and the “Seven Emotions” (칠정), explaining that the former arises from viewing with the heart (reason), while the latter comes from viewing with the eyes (emotion). This distinction is crucial because it provides a framework for understanding human emotional responses. It’s impressive how he connects these philosophical concepts to everyday interactions, like a husband’s understanding of his wife’s desire for new clothes, emphasizing empathy and self-sacrifice over superficial judgment.

이것도 눈으로 보면은 네 가지가 뭘로 보여? 처 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지심이, 이거는 눈으로 본 게 아니야, 마음으로 본 거야. 눈으로 본 거는 흰노 애락, 애오욕이야, 정이야. 그냥, 그냥 기쁘고 즐겁고 뭐 이런 걸로 보이, 노에 오욕으로 보이는 건 눈으로 보는 거야. 네, 그래, 그거를 정이라 그래, 일곱 가지 정. 이거는 눈으로 본 거야. 네, 근데 마음으로 보면은 사단이 돼 버려.
If you look at these four with your eyes, what do you see? Compassion, shame, deference, and right/wrong—these are not seen with the eyes, but with the heart. What is seen with the eyes is joy, anger, sorrow, pleasure, love, hate, and desire—emotions. it just looks like joy and pleasure, or anger and desire, that’s seeing with the eyes. Yes, that’s called emotions, the seven emotions. Yes, this is seen with the eyes. But if you look with your heart, it becomes the Four Beginnings.

똑같은 걸 말하면 본 거야. 네, 봤, 나타나는 거는 마음으로 본 거는 지심, 지심, 지심이 인간의 마음이야. 근데 이 마음이 다른 눈으로 바라봐 버리면 일곱 개 정으로 나타나, 그 기쁘고 슬프고 막 이렇게 나와.
It’s the same thing, but how you see it. What appears when seen with the heart are the Four Beginnings, which are the human heart. But if this heart looks with different eyes, it appears as the seven emotions, like joy and sorrow.

자기 애인을, 자기 아내를 사랑으로 바라보면은, 마음으로 바라보면은, 흰노 애오 욕정이 없어, 전부 처거 하고, 예, 이렇게 사냥해야 되고, 마누라 너가 먼저 먹어라. 좋은 옷이 있으면 당신 사 입어라, 나는 괜찮다. 이렇게 되는 거야. 전부 양보가 돼 버려.
If you look at your lover, your wife, with love, with your heart, there are no emotions of joy, anger, sorrow, pleasure, love, hate, or desire. It’s all about compassion. You should hunt like this, “Wife, you eat first.” ” if there are good clothes, you buy them, I’m fine.” It becomes like this. Everything becomes an act of concession.

그건 사랑이 없는 거야. 네. 사랑이 있으면 그걸 이해하게 돼. 그럼 그 틀어주는 거지. 그래서 사단이 있는 거야. 칠정은 얕은 눈으로 보는 거고, 깊은 마음으로 보면은 사단이 돼.
That’s a lack of love. If there’s love, you’ll understand it. Then you’ll allow it. Yes, that’s why the Four Beginnings exist. Yes, the seven emotions are seen with shallow eyes, but if you look with a deep heart, it becomes the Four Beginnings.

The Father’s Love for His Daughter
The example of a father’s love for his daughter further illustrates the depth of “heart-seeing.” A father doesn’t just see his daughter’s beauty; he sees her future struggles, her potential hardships, and feels a profound sense of responsibility and compassion. This is incredibly insightful because it reveals the protective and far-sighted nature of true love, contrasting it with the superficial attraction of others. It emphasizes that genuine care extends beyond immediate appearances to encompass a person’s entire well-being and future.

마음으로 그 사랑을 바라보면, 아, 저 사람들이 뭔 길을 가야 될 텐데, 지금은 좋다고 만났는데 얼마나 앞으로 싸우고 고생스러울 걸 내다보는 거야. 네, 그러니까 아버지가 어린애를 볼 때, 자기 딸을 볼 때, 저기 저렇게 이쁜데 시집 가서 앞으로 앞으로 살아가다가 애 낳고 제 얼마나 고생 할까, 이렇게 아버지는 애를 본다니까.
If you look at that love with your heart, you see that those people have a long road ahead. They met happily now, but you foresee how much they will fight and suffer in the future. when a father looks at a child, when he looks at his daughter, he thinks, ” she’s so pretty, but when she gets married and lives her life, has children, how much will she suffer?” That’s how a father sees his child.

남자들은 첫 달을 딱 나오면은 자기 딸이 살아가는 생활 기준을 설정해요, 남자들이. 그래서 내가 저 딸을 고생, 내가 혹시 사회 망하고 감옥을 가거나 잘못되면 저 딸이 술집에가 있을 텐데, 남 술 따라주고, 그 막 양주 독한 걸 막 먹어야 되고, 애 죽인다, 그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어, 그 애를 낳, 남자는 정신을 차려요.
When men have their first daughter, they set a standard of living for their daughter. if I cause that daughter to suffer, if I fail in society, go to jail, or make a mistake, that daughter might end up in a bar, pouring drinks for others, having to drink strong whiskey, it would kill her. What should I do? Men come to their senses when they have a child.

어, 마음으로 그 딸의 미래를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이거 사랑으로 보 당장 딸의 처원 지심이 생겨 닮아 보면, 아이고 우리 딸 이거 이쁘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얘가 나중에 내가 혹시 잘못되면 어떻게 되나, 이 생각을 자꾸 하는 거야, 아버지들은.
they think about their daughter’s future with their heart. Right, if you look at this with love, compassion for your daughter immediately arises. While saying, ” my daughter is so pretty,” inwardly, fathers keep thinking, “What if something goes wrong with me later?”

자기 딸을 진짜 바라보면 불쌍해요, 맞습니다. 혹시가 어떻게 또 애 낳아야 되지, 저것도 나중에 남편한테 또 어떻게 될지, 이게 언제나 서근 지심이 딸에게 있는 거야. 그러니까 자기 아빠가 있는 동안에 잘해 주려고 하는 거야.
If you truly look at your daughter, you feel pity for her. She might have to give birth to children, and what might happen to her with her husband later? This compassion is always there for a daughter. while her father is alive, he tries to treat her well.

The Nature of Justice and Self-Reflection

Justice: External Judgment vs. Internal Change
Huh Kyung-young defines justice differently based on whether it’s viewed with the eyes or the heart. Seeing justice with the eyes leads to judging others, while seeing it with the heart leads to self-reflection and personal change. This is a profound distinction because it shifts the focus from external blame to internal responsibility. It’s impressive how he connects this to his own behavior, stating that he doesn’t criticize politicians because he first applies justice to himself. This highlights the importance of embodying the principles one advocates.

정의를 눈으로 보는 거하고, 네, 마음으로 보는 게 달라. 정의를, 눈으로 발견하면, 예, 장 정의야, 네, 그래, 안 그래, 네. 마음으로 발견하면 뭘까, 정바람, 아까 정의를 마음으로 바라보면은, 예, 평화가 돼 버려.
Seeing justice with your eyes and seeing it with your heart are different. if you discover justice with your eyes, yes, it’s just justice. What if you discover it with your heart? If you look at justice with your heart, yes, it becomes peace.

정의하면 눈으로 보면 남이 어떻게 하는가만 살펴. 근데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보지, 그러면 내 자신부터 바꿔야 돼. 남한테 정의가 돼 줘야 되잖아. 그 남의 평화를 짓밟지 말아야지. 그러니까 나 좋은 사람이 되는 거야.
If you look at justice with your eyes, you only observe what others are doing. But if you look at justice with your heart, then you have to change yourself first. Right, right. You have to be just to others, don’t you? You shouldn’t trample on others’ peace. you become a good person.

그 마음으로 볼 때는 내가 바뀌어요. 네, 그렇잖아. 근데 정의를 객관적으로 이렇게 바라보면, 눈으로 정의를 우리가 바라보면 남들 잘하고 잘못하고 요런 거는 따져.
When I look with my heart, I change. But if you look at justice objectively, if we look at justice with our eyes, we judge what others are doing right or wrong.

어, 내 마음속에서 정의를 들이대야 되는 거야. 내가 정의롭지 않으면서 왜 남을 자꾸 나쁜 놈이라고 자꾸 떠들어.
I have to apply justice within my own heart. why do I keep calling others bad guys when I’m not just myself?

그 내한테 정의를 들이대해서 나를 바로 잡으면 되지.
I should apply justice to myself and correct myself.

The Path to Health and Well-being

Body: External Appearance vs. Internal Health
Huh Kyung-young applies the “eyes vs. heart” principle to how we view our own bodies. Looking at the body with the eyes leads to a focus on aging and negativity, while looking with the heart leads to a focus on health and well-being. This perspective is empowering because it shifts the narrative from inevitable decline to proactive self-care. It’s impressive how he suggests that by observing our body’s internal mechanisms and rhythms with our heart, we can maintain and improve our health, rather than just trying to mask external signs of aging.

마음으로 내 몸을 바라보면, 뭐가 되겠어?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 성찰이 될 것 아니야, 건강이 되는 거야.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 건강인데, 외모로 내 몸을 보면 건강이 아니야.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heart, what will it become?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heart, it will lead to self-reflection, it becomes health.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heart, it’s health, but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appearance, it’s not health.

외모로 내 몸을 보면 매일매일 조금씩 늙고 가는 거야, 죽음 앞으로 가고 있는 거야. 그런데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 뭐해야 돼? 건강, 건강, 건강이 되는 거야.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appearance, you’re getting a little older every day, moving towards death. But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heart, what should you do? It becomes health, health, health.

그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 건강해지는데, 외모로 나의 몸을 보면 포지티브가 돼, 저, 네거티브가 되는 거야. 염세주의자가 되는 예, 자꾸 자꾸 늙어 가네, 그지?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heart, you become healthy, but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appearance, it becomes positive, no, negative. You become a pessimist, yes, constantly getting older.

그런데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은 이미 나는 지킬 거만 지키면 건강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 몸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어.
But if I look at my body with my heart, I’m already a healthy person if I just protect what I need to protect. if you look at your body with your heart, you can’t help but become healthy.

그러나 마음으로 내 몸을 바라보는 자는 내 몸의 메커니즘을, 리듬을, , 유지시키고 살리고 건강해지는 거지, 다르지.
However, those who look at their body with their heart maintain, revive, and become healthy by understanding their body’s mechanisms and rhythms. It’s different.

Philosophical and Religious Perspectives

Buddhism vs. Christianity: Self-Reliance vs. Other-Reliance
Huh Kyung-young contrasts Buddhism and Christianity, highlighting their fundamental differences in achieving salvation or enlightenment. Buddhism emphasizes self-reliance and enlightenment through one’s own efforts, while Christianity relies on other-reliance and faith in a divine savior. This comparison is insightful because it clearly delineates two major spiritual paths, emphasizing their distinct approaches to human existence and spiritual goals. It’s impressive how he breaks down complex theological concepts into easily understandable terms, making the core tenets of each religion accessible.

불교는 남한테 눈을 돌리는 종교가 아니야, 네. 외부의 힘을, 타력을 의지하는 종교는 기독교, 네. 자력을 의지하는 종교는 불교, 그렇지. 내 스스로 자력을 의존하는 게 불교, 그래서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 돼, 네. 누가 깨달음을 줄 수가 없는 거야, 맞아, 말, 네.
Buddhism is not a religion that turns its eyes to others. The religion that relies on external power, on others’ strength, is Christianity. The religion that relies on self-power is Buddhism, right. Relying on one’s own self-power is Buddhism, yes. you have to enlighten yourself. No one can give you enlightenment.

그러니까 불교는 자력으로서 부처가 되는 거고, 네. 기독교는 타력, 네. 하나님, 네, God-man, 네, 예수, 이런 메시아를 통해서, 네, 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구해 줘야 돼, 예.
Buddhism becomes a Buddha through self-power. Christianity is other-power. Through God, the divine human, Jesus, such a Messiah, it happens. they need to be saved.

그 불교는 자력 교야, 불교는 자력, 기독교는 타력. 자기가 자기를 구하겠다면 그건 미친 놈이다, 그건 기독교인이 아니지,
Buddhism is a self-power religion, Buddhism is self-power, Christianity is other-power. If someone says they will save themselves, that’s crazy, that’s not a Christian, Amen.

그 기독교는 신앙이고, 불교는 뭐라고? 불교는 깨달음, 아, 기독교는 신앙이라는 것이 그 종교의 근본이고, 불교는, 기독교는 믿음이라는 게 그 종교의 근본이고, 불교는 뭐야? 깨닫는 거, 자각하는 거, 그게 믿음의 끝이야.
Christianity is faith, and Buddhism is what? Uh, Buddhism is enlightenment, yes. Christianity’s foundation is faith, and Buddhism’s, Christianity’s foundation is belief, and Buddhism’s is what? Enlightenment, self-awareness, that’s the end of belief.

The Hwaeomgyeong (화엄경): Visible and Invisible Worlds
Huh Kyung-young explains the Buddhist concept of the Hwaeomgyeong (화엄경), which describes the universe as a combination of the visible (화장세계) and invisible (장엄세계) worlds. The visible world is what we perceive with our eyes, while the invisible world is understood with the heart. This interpretation is fascinating because it provides a philosophical framework for his core message: that true understanding requires perceiving beyond superficial appearances. It’s impressive how he connects this ancient scripture to the idea of not being deceived by the visible world and instead seeking deeper, internal wisdom.

아, 화장 장엄 세계, 무슨지 알겠지? 그러면 나와 있는 거, 눈에 보이는 걸 화장 세계야. 중화민국 할 때 화, 아, 예, 화장세계, 이 화장 세계는 장엄, 멋있는 이 화장 세계가 펼쳐져 있지만, 내면에는 장엄 세계가 있어.
Ah, the Hwaeom Jang-eom World, yes. what is revealed, what is visible to the eye, is the Hwaeom World. Yes, the ‘Hwa’ from ‘Jung-hwa-min-guk,’ yes, uh, Hwaeom World, yes. This Hwaeom World is magnificent, this splendid Hwaeom World is unfolding, but within it, there is the Jang-eom World.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거, 마음으로 보는 세계야. 이 눈으로 보는 세계야. 그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화장 세계라고, 안 보이는 세계는 장엄 세계네.
Seeing the invisible world, that’s the world seen with the heart. This is the world seen with the eyes. The visible world is called the Hwaeom World, and the invisible world is the Jang-eom World.

그 화장과 장엄이 합쳐진 세계를 말한 걸 석이가 말하는 걸 화엄경,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그 사람들 화엄경 뭐냐, 이러지를, 동시 보는 눈을 가져야 되는 거지. 저 왜 속지 말아, 왜 속으면 기 돼 버려.
The world where Hwaeom and Jang-eom are combined, that’s what Seokga (Buddha) called the Hwaeomgyeong. People ask what the Hwaeomgyeong is, but you need to have eyes that see both simultaneously. Don’t be deceived by that, because if you are, you become that.

화장과 장음이 두 개의 만남으로 인해서 그 결과를 이야기해 준 거야. 이게 왜 이렇게 만났는지, 예, 그거는 내적인, 외적인 거, 이거는 내적인 거야. 이거는, 이거는 눈으로 보는 세계고, 이거는 마음으로 보는 세계야.
The Hwaeom and Jang-eom, through the meeting of these two, explain the result. Why they met like this, yes, that’s internal and external, this is internal. This is the world seen with the eyes, and this is the world seen with the heart.

어, 그러니까 석가모니의 사상은 철학적으로 굉장히 훌륭해요. 그 기독교 믿는 사람도 이걸 이 코스를 끝내야 돼. 이거 끝내고 기독교로 들어가야지, 이 불교 코스 없이 기독교에 들어간 사람은, 예, 무슨, 등학교, 초등학교, 고등학교는 안 다니고 대학에 간 사람과 비슷해.
so Sakyamuni’s philosophy is excellent in a philosophical sense. even Christians should complete this course. They should finish this and then enter Christianity. Someone who enters Christianity without this Buddhist course is like someone who went to university without attending elementary, middle, or high school.

The Profound Difference Between Knowledge and Wisdom

Lecture Information
Category: Huh Ting
Speaker: Huh Kyung young

Keywords
Wisdom, Knowledge, Perception, Mind, Spirit

Content

The Transformation of Knowledge into Wisdom
The fundamental distinction between knowledge and wisdom lies in the mode of perception. Knowledge, when viewed through the lens of the mind, transmutes into wisdom. Conversely, if knowledge is merely observed with the eyes, it remains mere information, devoid of deeper insight. For instance, academic knowledge acquired in a classroom setting, when perceived solely through the eyes, cannot evolve into wisdom. However, when this same knowledge is apprehended through the mind, it universally transforms into wisdom. This principle highlights that the method of observation dictates the qualitative nature of understanding.

The Nature of Love: Eye vs. Mind Perception
The perception of love serves as a poignant illustration of this principle. When love is viewed through the eyes of a human, it often engenders feelings of jealousy and envy. However, when love is contemplated within the heart, it transforms into compassion. An exemplary case is a mother’s unwavering love for her child; regardless of the child’s transgressions, a mother’s heart perceives the child with love, rendering any wrongdoing unresentful. Even a prodigal son, who squanders his father’s wealth, appears endearing when viewed through the eyes of love. This profound difference in perception—viewing love with the eyes versus viewing it with the heart—yields entirely disparate outcomes.

The Dichotomy of Knowledge: Information vs. Wisdom
Similarly, knowledge, when observed solely with the eyes, remains mere knowledge. Yet, when that same knowledge is perceived through the mind, it transforms into wisdom. Human beings often conflate their understanding of wisdom with mere intellectual accumulation. The current era, marked by the rapid advancement of AI, has seen an exponential increase in human knowledge, but wisdom has stagnated, leading to a state where knowledge threatens to engulf wisdom. This necessitates a deeper understanding of wisdom, particularly the “expedient wisdom” (방편 지혜) that Huh Kyung young advocates. True wisdom, in this context, often requires direct experience. However, when one perceives knowledge through the mind, it inherently becomes wisdom, transcending the need for direct experience to validate its truth.

The Evolution of Love: From Affection to Compassion
When parents perceive love through their hearts, it evolves from mere affection into profound compassion. This transformation is akin to the development of the “Four Beginnings” (사단): the feeling of commiseration (측은지심), the feeling of shame and dislike (수오지심), the feeling of deference and compliance (사양지심), and the feeling of right and wrong (시비지심). If love is viewed through the eyes, it inevitably leads to jealousy and conflict, causing relationships to deteriorate. However, when love is perceived with the heart, it fosters these benevolent qualities, transforming love into a source of profound wisdom and understanding.

The Information Age: War vs. Peace
In the contemporary era, characterized by an overwhelming flood of information, the mode of perception again dictates its outcome. When information is viewed through the eyes, it often leads to conflict and competition, akin to warfare. The very act of gathering information is frequently driven by a desire to gain an advantage over others. However, when information is perceived through the mind, it transforms into a source of peace. This stark contrast highlights the profound difference between a superficial, competitive engagement with information and a deeper, more harmonious understanding.

The Role of Heaven House (Heaven House) in Global Peace
Huh Kyung young’s establishment of Heaven House (Heaven House) exemplifies the transformation of information into peace. While others failed to establish similar ventures, Huh Kyung young possessed the “information” from the divine realm, guiding him to this auspicious location. This divine information, when applied through the mind, serves to bring peace to the world. The creation of Heaven House has already brought inner peace to many individuals, and its expansion globally is envisioned to realize world peace. This stands in stark contrast to many religions, which, despite their stated aims, often contribute to conflict rather than peace, as evidenced by ongoing geopolitical tensions.

Expedient Wisdom: Changing the Lens of Perception
Expedient wisdom (방편 지혜) is fundamentally about changing the “glasses” through which one perceives reality. Humans typically view the world through the “glasses” of their eyes. However, the crucial shift is to perceive through the mind. If one elevates this perception further, to view through the spirit, the transformation is even more profound, turning everything into wealth and prosperity. This expedient wisdom encompasses the Four Beginnings: commiseration, shame, deference, and right and wrong. When objects are viewed through the mind, these benevolent qualities naturally emerge.

The Parable of the Rich Man and the Old Television
A powerful anecdote illustrates the difference between eye-based and mind-based perception. A wealthy man, despite his immense fortune, kept an old, small, black-and-white television in his bedroom. When questioned by a reporter about replacing it, he explained that while others saw a mere television with their eyes, he saw it with his heart. This television was a cherished relic from his humble beginnings, a symbol of the joy and love he shared with his late wife. Every time he changed the channel, it evoked memories of their early life together. For him, the television was not an obsolete object but a living embodiment of his wife’s presence. This demonstrates that when an object is viewed with the heart, it transcends its material form and becomes imbued with profound meaning, whereas viewing it solely with the eyes would render it mere junk.

The Seven Emotions vs. The Four Beginnings
Human perception can be categorized into two primary modes: the seven emotions (칠정) and the four beginnings (사단). When viewed through the eyes, reality manifests as the seven emotions: joy, anger, sorrow, pleasure, love, hate, and desire. These are superficial, emotional responses. However, when viewed through the mind, reality transforms into the four beginnings: commiseration, shame, deference, and right and wrong. These represent a deeper, more rational, and ethical understanding of the world. The human mind, therefore, can be split into these two modes of perception.

The Mind’s Influence on Relationships and Empathy
Applying this principle to relationships, if one views their spouse with the heart, the seven emotions dissipate, replaced by the four beginnings. This leads to acts of deference and sacrifice, such as offering the best clothes or food to one’s partner. The heart-centered view fosters understanding and empathy, recognizing the other’s desires and needs. Conversely, an eye-centered view leads to superficial judgments and a lack of consideration, ultimately eroding love. True love, when present, enables one to understand and accommodate the other’s desires, leading to harmony. The seven emotions represent a shallow, eye-based perception, while the four beginnings signify a profound, mind-based understanding.

Parental Love and Foresight
The love of a parent, particularly a father for his daughter, exemplifies mind-based perception. While others might see a beautiful young woman, a father, viewing his daughter with his heart, foresees the challenges and hardships she might face in life—marriage, childbirth, and potential suffering. This foresight stems from a deep, empathetic understanding of her future. This concern drives him to provide for her, educate her, and protect her. The birth of a first daughter often instills a profound sense of responsibility in a man, motivating him to strive for success to ensure his daughter’s well-being and prevent her from enduring hardship. This profound love, rooted in the heart, shapes a father’s actions and outlook.

The Sacredness of Nature: The Wildflower
The principle of mind-based perception extends to nature. When observing a wildflower, one should not merely see it as an object to be plucked for personal pleasure. Instead, one should view it with commiseration (측은지심), recognizing its inherent dignity and its effort to bloom beautifully for all to see. To pluck a wildflower without permission is to commit a sin against heaven, as it exists not for individual possession but for collective appreciation and to fulfill its natural purpose of bearing fruit and spreading seeds. This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respecting the inherent value of all living things, viewing them with the heart rather than merely with the eyes for fleeting enjoyment.

The Essence of Wisdom: Mind-Centered Perception
Ultimately, wisdom is inextricably linked to how one perceives reality. When love is viewed with wisdom (i.e., through the mind), it manifests as the four beginnings: commiseration, shame, deference, and right and wrong. However, when love is viewed solely through the eyes, it devolves into the shallow realm of the seven emotions. To merely perceive one’s daughter as “pretty” is a superficial, eye-based judgment. A deeper, mind-based perception reveals her vulnerability and the potential hardships she may face, evoking compassion. This understanding motivates parents to protect and nurture their children. Conversely, those who perceive others solely through the eyes, driven by immediate pleasure and desire, fail to grasp the true essence of love and human connection.

Justice: External Judgment vs. Internal Transformation
The concept of justice also undergoes a profound transformation based on the mode of perception. When justice is viewed through the eyes, it often manifests as external judgment, focusing on the actions of others and seeking to impose standards. It becomes a tool for scrutinizing and criticizing others’ perceived wrongdoings. However, when justice is perceived through the mind, it transforms into peace. This internal perception compels one to first examine oneself, to embody justice, and to ensure one does not infringe upon the peace of others. This leads to personal transformation, where one strives to become a good person rather than merely judging others. An eye-based view of justice leads to external criticism, while a mind-based view leads to internal rectification and self-improvement.

Religious Perspectives on Salvation: Self-Reliance vs. Other-Reliance
Different religions offer distinct approaches to salvation, which can be understood through the lens of self-reliance versus other-reliance. Buddhism, for instance, is a religion of self-reliance (자력), emphasizing individual enlightenment through one’s own efforts. The ultimate goal in Buddhism is to attain enlightenment (깨달음), which is achieved through self-discovery and understanding, not through external intervention or belief in a savior. There is no concept of a future savior coming to rescue individuals; rather, each person must find their own path to enlightenment.

Conversely, Christianity is a religion of other-reliance (타력), where salvation is achieved through faith in an external divine power—God, the God-man, or Jesus as the Messiah. Christians believe that a savior will come to deliver them, and their faith lies in this belief. The core of Christian faith is believing in the teachings of the Bible and the coming of a divine figure who will passively save humanity.

The Buddhist Worldview: Hua-yan (Flower Garland) and the Hidden Realm
The Buddhist worldview, particularly as articulated in the Hua-yan (Flower Garland) Sutra, encompasses both the visible and invisible realms. The term “Hua-yan” (화엄경) is a contraction of “Hua-jang Jang-eom Se-gye Gyeong” (화장장엄세계경), meaning the “Flower Garland Adorned World Sutra.”
Hua-jang Se-gye (화장세계): This refers to the visible, external world, akin to a beautifully adorned flower garden. It is the world perceived by the eyes, representing the material and phenomenal aspects of existence. This can be likened to knowledge.
Jang-eom Se-gye (장엄세계): This refers to the hidden, internal, and majestic world. It is the realm of the unseen, the profound cosmic principles, and the inner workings of reality, perceived by the mind. This can be likened to wisdom.
The Hua-yan Sutra posits that these two worlds—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the external and the internal—are intertwined. The visible world, though seemingly beautiful, can be deceptive, and one should not be solely swayed by its appearances. The true understanding comes from perceiving both the manifest and the concealed aspects of reality.

The Philosophical Depth of Buddhism and the Path to Enlightenment
Buddhism, as presented by Huh Kyung young, is fundamentally a philosophical system rather than a faith-based religion. Its ultimate objective is enlightenment (깨달음), which encompasses concepts like perfect awakening (정각), nirvana (열반), liberation (해탈), bodhi (보리), prajna (반야), non-self (무아), and Buddhahood (성불). Once enlightenment is achieved, there is no higher state. This contrasts sharply with Christianity, where the primary goal is to meet Jesus and believe in the scriptures, entrusting one’s fate to God.

The Interconnectedness of the Visible and Invisible Worlds
The Hua-jang and Jang-eom worlds represent the interplay between the external and internal,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The visible world (Hua-jang) is what we perceive with our eyes, while the invisible world (Jang-eom) is what we perceive with our minds. The universe’s grand principles, such as the rotation of planets and the cycles of nature, are part of the majestic, hidden realm that our eyes cannot fully grasp. Even seemingly static matter is constantly undergoing transformation in this unseen realm. Humans, however, often remain fixated on the superficial “outer shell” (Hua-jang), neglecting the profound inner workings (Jang-eom). The Hua-yan Sutra, therefore, encourages a holistic perception that integrates both the visible and invisible aspects of existence.

The Necessity of a Holistic Understanding
The philosophical insights of Sakyamuni Buddha are profound. Huh Kyung young suggests that even those who embrace Christianity should first engage with the “Buddhist course” of understanding. To enter Christianity without comprehending the Hua-jang and Jang-eom worlds is akin to attending university without having completed elementary, middle, and high school. Believing in God solely based on the visible world (Hua-jang) can lead to an incomplete understanding. It is crucial to recognize the existence of the majestic, hidden world (Jang-eom) as well. Only by encountering a God-man like Huh Kyung young can one fully grasp and integrate both the Hua-jang and Jang-eom aspects of reality.

The Transformation of Knowledge into Wisdom: A Shift in Perspective

Knowledge, when viewed through the lens of the mind, transforms into wisdom. However, if knowledge is merely perceived with the eyes, it remains mere information. This principle applies universally: observing people with the eyes often leads to feelings of envy and jealousy. Yet, when one perceives love with the heart, it transmutes into compassion. For instance, a mother views her child, regardless of their misdeeds, with a heart full of love, making it impossible for her to harbor resentment. Even a prodigal son, who squanders his father’s wealth, appears endearing when seen through the eyes of love.

Conversely, if love is observed with the eyes, it often breeds envy and jealousy, even among close family members. However, when parents perceive their children with the heart, even a prodigal child is met with joy and welcome. This fundamental difference in perspective—viewing love with the heart versus with the eyes—is profound. Similarly, knowledge, when merely observed with the eyes, remains just knowledge. But when that same knowledge is perceived with the heart, it evolves into wisdom.

  1. The Essence of Expedient Wisdom: Changing the Lens of Perception
    Expedient wisdom involves changing the “glasses” through which we perceive the world. Humans typically possess “glasses” that allow them to see with their eyes. However, it is crucial to see with the heart, and even more profoundly, to see with the spirit. While viewing with the heart transforms knowledge into wisdom, perceiving with the spirit transmutes it into wealth and abundance. This is the essence of expedient wisdom.

This expedient wisdom encompasses four fundamental virtues: the mind of compassion, the mind of shame, the mind of deference, and the mind of right and wrong. These virtues manifest when one perceives things with the heart. If one does not view with the heart, these virtues remain dormant. For example, when love is perceived with the heart, it becomes compassion, whereas viewing it with the eyes leads to envy and jealousy, inevitably causing conflict in relationships.

Consider the story of a wealthy man who cherished an old, small television set. To others, it was a mere antique, but to him, it was a conduit to his past. He saw it not with his eyes, but with his heart, recalling the joy he shared with his late wife when they first acquired it in their humble abode. For him, that television was a tangible link to his beloved wife and their youthful happiness. This illustrates the immense difference between seeing with the eyes and seeing with the heart. What appears as a worthless relic to the eyes becomes a treasure trove of memories when viewed with the heart.

  1. The Dichotomy of Human Emotion: Seven Passions Versus Four Virtues
    When things are perceived with the eyes, they manifest as the seven passions: joy, anger, sorrow, pleasure, love, hate, and desire. These are superficial emotions. However, when viewed with the heart, they transform into the four virtues: compassion, shame, deference, and the discernment of right and wrong. These virtues represent a deeper, more rational understanding.

For instance, when a husband views his wife with his heart, there is no room for the seven passions. Instead, he experiences compassion, deference, and a willingness to sacrifice for her. He understands her desires and readily accommodates them. But if he views her merely with his eyes, he might criticize her choices or dismiss her needs. True love, when rooted in the heart, fosters understanding and selflessness.

The four virtues and the seven passions are two facets of the same human mind. Those who are learned and enlightened perceive with their hearts, manifesting the four virtues. Conversely, those who operate on a lower level of consciousness perceive with their eyes, experiencing the seven passions. When an enlightened person observes a loving couple, they see not just happiness, but also the potential for future struggles and heartache, much like a father looking at his daughter, anticipating the challenges she will face in life. This compassionate foresight stems from viewing with the heart, not just the eyes.

  1. The Profound Difference in Perception: Knowledge, Information, and Justice
    The way we perceive knowledge, information, and justice also undergoes a profound transformation based on whether we view them with our eyes or with our hearts.

4.1. Knowledge and Wisdom
As previously discussed, knowledge viewed with the eyes remains mere knowledge, often leading to superficial understanding. However, when knowledge is perceived with the heart, it blossoms into profound wisdom. For example, simply seeing one’s daughter as “pretty” is a superficial observation. A father who truly loves his daughter sees her with compassion, anticipating her future struggles and wishing to protect her. This deep, heartfelt perspective is wisdom.

4.2. Information and Peace
When information is viewed with the eyes, it often becomes a tool for competition and conflict, akin to a weapon in war. Businesses, for instance, often gather information for strategic advantage, leading to rivalry. However, when information is perceived with the heart, it transforms into a means for peace. The information gathered can be used to foster harmony and well-being. The establishment of Haneulgung, for example, was guided by information that led to a place where people find inner peace, ultimately contributing to global peace.

4.3. Justice and Inner Transformation
Justice, when viewed with the eyes, often leads to judging others and pointing out their flaws. It becomes an external standard applied to others. However, when justice is perceived with the heart, it prompts introspection and self-correction. One realizes the importance of embodying justice oneself before demanding it from others. This internal shift leads to personal growth and a more peaceful approach to the world.

  1. The Distinct Paths of Faith: Christianity and Buddhism
    The fundamental approaches of Christianity and Buddhism also highlight the difference between external reliance and internal realization.

5.1. Christianity: Faith and External Salvation
Christianity emphasizes faith and reliance on an external savior. Its core tenet is believing in God, Jesus, and the coming Messiah. Salvation is achieved through this belief and the grace of a higher power. It is a path of passive reception, where one trusts in a divine entity to provide guidance and redemption.

5.2. Buddhism: Enlightenment and Self-Realization
Buddhism, in contrast, is a path of self-reliance and enlightenment. Its ultimate goal is to achieve awakening through one’s own efforts. It does not rely on an external savior but on individual introspection and understanding. The Buddha himself was an enlightened being, not a divine entity. The highest state in Buddhism is enlightenment, which leads to the cessation of suffering and the realization of ultimate truth.

5.3. The Buddhist Worldview: The Interplay of Visible and Invisible
The Buddhist worldview, particularly as described in the Avatamsaka Sutra (Flower Garland Sutra), encompasses both the visible and invisible realms. The “Flower Adornment World” represents the external, visible world, full of beauty and phenomena. The “Adorned World” signifies the internal, hidden, and profound reality that underlies the visible. These two worlds, the external and the internal, the visible and the invisible, are intertwined.

The visible world, perceived by the eyes, is akin to knowledge, while the invisible world, perceived by the heart, is wisdom. The Avatamsaka Sutra teaches not to be deceived by the superficiality of the visible world but to understand the deeper, hidden truths. True understanding comes from perceiving both these aspects simultaneously. This philosophical depth is crucial, and a complete spiritual journey, even for those of other faiths, would benefit from understanding these profound Buddhist principles before delving into their own doctrines.

  1. The Body: External Appearance Versus Inner Health
    Finally, the perception of one’s own body also illustrates this principle. When one views their body with the eyes, they primarily see its external appearance, which constantly ages and moves towards death. This perspective can lead to negativity and a futile struggle against the inevitable.

However, when one views their body with the heart, they focus on its inner health and well-being. This perspective encourages self-care, healthy habits, and a proactive approach to maintaining vitality. It shifts the focus from superficial aging to the deeper mechanisms and rhythms of the body, fostering a positive and holistic approach to health. This is the difference between a negative, external view and a positive, internal view of oneself.

지식과 지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인간의 지식이 식재료라면 지혜는 요리 도구와 같습니다. 지식은 지혜로 잘 다루어졌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합니다. 현재는 AI 발전으로 인간의 지식 수준은 급격히 높아졌지만, 지혜는 정체되어 지식이 지혜를 집어삼킨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신의 방편 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볼 때 생겨납니다. 지식을 눈으로만 보면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도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바뀝니다. 사랑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시기와 질투가 붙지만, 사랑을 마음속으로 바라보면 자비심으로 바뀝니다. 어머니가 자식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밉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예쁘게 보입니다. 사랑을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식이 탕자가 되었어도 반갑고 기쁩니다. 지식을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지식일 뿐이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바뀝니다.

지혜의 본질: 체험과 마음의 작용
인간이 말하는 지혜는 체험을 해야만 지혜가 됩니다. 그러나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지혜가 됩니다. 부모가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사랑이 자비심이 되고, 측은지심,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됩니다. 사랑을 눈으로 바라보면 시기 질투가 되어 결국 싸우게 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가 됩니다.

정보의 홍수 속 평화와 전쟁
이 세상은 정보의 홍수입니다. 정보를 눈으로 바라보면 정보일 뿐이며, 이는 곧 전쟁입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남과 경쟁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됩니다. 하늘궁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처럼, 이 평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평화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종교들이 세계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만드는 현실과는 대조적입니다. 핵무기 정보도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에 쓰일 수 있습니다.

방편 지혜: 세상을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
방편 지혜는 세상을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눈으로 보는 안경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며, 더 나아가 영으로 보면 더욱 강력해집니다. 마음으로만 봐도 지혜로 바뀌는데, 영으로 보면 돈과 재물로 바뀌는 등 모든 것이 변화합니다. 방편 지혜는 측은지심,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마음의 작용을 통해 발현됩니다.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이러한 지심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만, 눈으로만 보면 희로애락애오욕과 같은 감정에 갇히게 됩니다.

재벌 회장의 낡은 TV와 마음의 눈
재벌 회장이 낡은 흑백 TV를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이야기는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기자는 낡은 TV를 바꾸라고 권하지만, 회장은 “당신들은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지만 나는 마음으로 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단칸방 시절 아내와 함께 TV를 보며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 TV가 아내의 존재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눈으로 보면 고물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아내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보물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방식입니다.

사단과 칠정: 마음과 눈의 차이
눈으로 사물을 보면 희로애락애오욕과 같은 칠정(七情)으로 보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측은지심,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사단(四端)으로 보입니다. 칠정은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사단은 깊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사단과 칠정으로 나뉘는데, 배운 자는 마음으로 보아 사단을 느끼고, 낮은 세계의 사람은 눈으로 보아 질투와 부러움을 느낍니다. 아버지가 딸을 볼 때 예쁘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고생을 내다보며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들꽃과 사랑: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
들꽃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으로 보면 그저 예쁜 꽃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최선을 다해 피어 있는 꽃의 자존심을 헤아리게 됩니다. 함부로 꺾으면 하늘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남의 딸을 볼 때도 마음으로 사랑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그저 즐거움의 대상으로만 보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과 미래를 헤아리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정의: 눈과 마음의 시선
정의를 눈으로 보면 그저 정의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 갇히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됩니다. 눈으로 정의를 보면 남이 어떻게 하는가만 살피고 남에게 정의를 들이대려 하지만,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보면 내 자신부터 바뀌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내가 정의롭지 않으면서 남을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의를 눈으로 보는 자는 남을 재단하는 데 사용하지만, 마음으로 보는 자는 자신에게 정의를 들이대어 스스로를 바로잡습니다.

불교와 기독교: 깨달음과 믿음의 길
불교는 정의를 깨달음에 들이대고, 기독교는 믿음에 들이댑니다. 불교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에 목표가 있습니다. 깨닫고 죽으면 끝나는 것이 불교의 길입니다. 불교는 자력(自力)으로 부처가 되는 종교이며, 누가 구원해 줄 것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반면 기독교는 타력(他力)으로 하나님, God-man, 예수를 통해 구원받는 것을 믿습니다.

불교의 세계관: 화장장엄세계
불교의 세계관은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입니다. 화장(華藏)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를 의미하고, 장엄(莊嚴)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 두 세계가 합쳐진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며, 이를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보이는 세계에 속지 말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보라고 설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지식이고, 마음으로 보는 세계는 지혜입니다. 이 화장 세계만 보고 하나님을 믿으면 문제가 생기며, 장엄 세계도 함께 깨달아야 합니다. God-man을 만나야 화장과 장엄을 모두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몸을 바라보는 시선: 외모와 건강
마음으로 내 몸을 바라보면 건강이 됩니다. 하나하나 나쁜 것을 고치고 음식도 조절하며 건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모로 내 몸을 바라보면 매일매일 늙어가는 죽음으로 향하는 모습만 보게 되어 염세주의자가 됩니다. 외모에만 치중하는 자는 치장에만 매달리지만, 마음으로 몸을 바라보는 자는 몸의 메커니즘과 리듬을 유지하고 살려 건강해지는 길을 택합니다.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마음으로 나를 보는 것이고,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로 외부를 보는 것입니다. 불교는 남에게 눈을 돌리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자력의 종교입니다.

안녕하십니까, the God-man. 오늘은 인간의 지혜와 the God-man의 방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인간들의 지식이 식재료라고 하면은 지혜는 요리 도구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지식은 지혜로 잘 다루었을 때 진가를 발휘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AI 발전으로 인간들의 지식 수준은 급격하게 올랐지만 지혜는 보하여 지식이 지혜를 집어삼킨 국이 됐기에 간의지를 님의 방편지 절실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질문은 지혜는 무엇인지, 인간의 지혜가 통하지 않는 현 시대에 대한 the God-man의 고견이 궁금하고 the God-man의 방편에 대한 이해가 궁금합니다. 그니까 지혜는 지식을 마음으로 볼 때 지혜로 바뀌어. 지식을 눈으로 보면은 지혜가 안 돼.

교실에서에 쓰는 지식을 이렇게 들으면 지혜가 될 수가 없어. 식으로 바라보면 전부 지혜로 바뀌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알겠지? 그러니까 바라보는 방법이 사랑을 사람의 눈으로 보면은 예시기 질투가 붙어. 근데 사랑을 마음속으로 사랑이라는 걸 바라보면은 뭐로 바뀌냐 하면은 자비심으로 바뀌어.

아, 그러니까 어머니가 자식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네, 사랑의 눈으로 자식을 바라보니까, 네, 마음속으로 이게 밉지가 않은 거야. 자식이 실수를 해도. 그러니까 아버지 돈 다 말아먹고 오는 그 탕자네. 탕자 이쁘게 보이는 거야.

아, 그래 그래. 사랑의 눈으로 보면 당자가 탕자로 안 보여. 그래 안 그래.

그래서 그거를. 마음속으로 사랑을 우리가 눈으로 보면은, 예, 시기 질투가 나요. 부자지간에 너무 사이가 좋거나 이러면, 예, 질투가 생기잖아, 네. 그런데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봐 버리면, 그 이제 부모는 자식을 마음으로 사랑, 바라봐 버려, 사랑을.

그러니까 이러면 자식이 탕자가 됐는데도 반갑고 기쁜 거야. 그니까 우리가 사랑을 사랑으로 바라보,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거와 눈으로 바라보는 거, 네, 이게 완전히 달라. 지식을 눈으로 바라보면 그게 뭐냐, 지식일 뿐이야.

그런데 그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봐 버리면, 지혜로 바뀌어. 무슨지 알지? 그 인간들은, 인간이 말하는 지금까지 지혜나 이런 거는, 방금 질문이 뭐예요? 인간의 그 지혜가 지금 한계가 온 거 같고, 그렇지. 그러니까 방편 지혜라고 그랬잖아. 그러니까 지혜를 마음으로 바라보면은,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냥 지혜, 저 지식이야.

예, 알겠지? 그리고 지혜는 꼭 체험을 해야 그게 지혜가 돼. 그렇잖아. 그런데 마음으로 을 바라봐 버리면 전부 지혜가 돼 버려. 네.

그러니까 사랑도 부모가 마음으로 이렇게 사랑을 바라보면은, 사랑이 자비심이 되는 거야. 처음에 지심이 되는 거야. 수오지심, 사양 지심, 시비 지심, 그게 되는 거지.

그러니까 그냥 그냥 사랑인데, 이 사랑을, 그러니까 굉장히 차원이 다른 이야기야, 이 사랑을 말이야. 이 기뻐한다는 뜻이야. 네, 그러면 사랑을, 눈으로 바라보면, 예, 시기 질투가 돼, 네, 그지, 네.

그런데 마음으로. 바라보면은 뭐가 된다고, 지혜가 되는 거야. 저, 저, 저, 처음에 지심이 되는 거야. 처음에 지심으로 바라볼 때는 처음에 지시면 되는데, 이 근지심이 사랑을 마음으로 볼 때는 근지심이 되네.

지식을 우리가 일반적인 지식 있잖아. 이 지식을 눈으로 보면은 그냥 지식이야. 근데 마음으로 보면은 이게 지혜, 지혜로 바뀌어. 지혜로, 예.

그러니까 이 원리를 지금 인간들은 잘 몰라요. 알겠지? 그러면, 음, 우리가 이 세상의 모든 이 정보의 홍수야.

네. 정보를 눈으로 바라보면 정보야. 근데 마음으로 보면 뭐예? 정보를 눈으로 보면은 예, 정보니까 이게 전쟁이야.

아, 정보는 전쟁이란 말이야. 그렇잖아,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뭔가, 뭔가 남과 뭘 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

전쟁인데 눈으로 보면은 예, 정보가 눈으로 볼 때는 전쟁인데 예, 마음으로 보면 뭐겠어? 평화야, 평화. 참 반대지. 그러면 전쟁이, 이 전쟁은 말이야, 뭘, 글자 그대로 뭐야, 전쟁이 아아.

네. 다투는 거잖아. 전쟁인데 정보를 마음으로 보면 평화야.

예. 그러니까 차원이 다르지. 그 정보가 정, 돈이야.

아, 평화를 위하는데 쓸 수가 있어. 그리고 내가 여기, 여기에 하늘을 왔을 때, 네, 내가 하늘궁을 찾은 이유가 있어. 내가 하늘궁 주인이야.

근데 다른 사람은 하늘궁 안 찾아. 다섯 만가 안 팔리고 다 망해.

근데 내가 뭘 가지고 있어? 정보를 가지고 있는 거, 궁에서. 이 십승지를. 찾아라네, 근데 어디쯤에 있을 거다, 오다가 내려와, 그 내가 찾으러 다녔다니.

아, 그래, 그래, 찾다가 여기를 찾아낸 거야. 예, 음, 그래가지고 그 하늘 공에서 준 정보가 이 지상의 평화를 이루는데 쓰게 돼. 맞아, 맞아, 맞습니다. 결국 하늘 공이 만들어지고 지금여, 완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많이 찾았어.

네, 그렇잖아. 이게 전 세계로 퍼져나가, 아, 세계 평화가 실현되는 거예. 근데 종교들이 세계 평화를 만드나, 전쟁을 만들고서, 전쟁, 맞습니다. 지금 이슬람과이 저저저 유대교 전쟁, 예, 중동하이마트.

제 3, 제사 제하는 공을 다 만들고 나중에 전 세계로 뻗어나가네, 전 세계 제 한공이 있어. 네, 우리가 작은만 줘봐, 다 미국에도 만들고 영국에도, 맞습니다. 장소를 만들 수 있지, 외국 땅값이 싸요. 막 보내가 막 하늘을 만들 수 있어, 전 세계 내통 권을 형상할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정 말하면 정보가 예, 대부분 전쟁용으로서 기업들도 예, 맞아, 안 맞아. 근데 이걸 마음으로 바라봐 버리면 평화야. 근데이 마음이라는 건 영성으로 바라보면 어떻게 되겠어? 핵무기, 핵무기 정보가 핵폭발 같이 일어나, 그냥 하늘 공이 금방 커져버려, 그렇게 되겠지. 네, 맞, 그러니까, 음, 우리가 말하는 아까 질문이 뭐예요? 그 지혜에 대해서 일단 여쭤 봤고요.

그리고 지, 지혜대, 지혜는 지혜인지, 인간의 지혜와 예, 또 뭐, 뭘 물었어? 님의 방편, 지혜대, 방편 지혜가 뭐냐 그랬잖아. 편지에는 보는. 안경을 바꾸는 거야. 눈으로 보는 이 안경을 인간들이 가지고 있어.

아, 그렇지. 그러면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랬지. 이거를 영으로 봐 버려. 그럼 더 무섭지.

. 근데 마음으로만 봐도 이게 지혜로 바뀌는데, 네. 영으로 보면 어떻게 되겠어? 돈으로 바뀌어, 재물로 바뀌어 버리고 다 바뀌어 버려.

네. 이게 방지혜. 그렇지.

어, 이 방편 지혜라는 게 처은 지심, 수오지심, 사양 지심, 시비 지심 있잖아. 그러면 이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 때는 이게 안 되는데,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은 그냥 처은 지심, 수오지심, 네. 수오지심.

수 지심은 뭔가? 수오지심. 처은 지심은 남을 처분하게 바라보는 거야.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은 처은 지심이 되는데, 네.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왜 사랑하다가 반드시 싸우게 돼 있어. 그래, 그래, 나중에. 마음으로 보지 않아.

예. 눈으로 보는 거. 그러니까 에벨리 되고 꼭 싸워요. 사랑하는 사람은 에벨 리고 반드시 고통 속에서 헤어진다.

이게 원칙이야. 그러면 이거는 인간들의 생각이야. 그걸 사람을 마음으로 바라보면은 내가 아까 얘기했지.

예. 재벌이 흑백 트립이 채널 돌리는 거. 그걸 가지고 있는 거야, 방에.

안방에 가면, 네. 그걸 지금도 보고 앉아 있어. 조그만 거.

10m 19인치 뭐 이런 거, 24인치 작은 거. 그걸 가지고 있어. 그래서 아, 회장님, 기자가 와서 이걸 바꾸시죠. 그러니까 아, 당신들은 눈으로.

텔레비를 보지만 나는 마음으로 봅니다. 무슨 마음으로 보시는데요? 내 마누라하고 단칸방 살 때, 내 재벌되기 전에 우리 마누라가 저 텔레비를 사고 나서 얼마나 기뻐했는지, 둘이 눈물이 날 정도로 즐거워하고, 그리고 마누라가 맨날을 놀러 가면서 다른 거 보고 드라마 보고 서로 웃고 울고, 이게 내 정이 든 거야. 이 마누라는 30년 전에 죽었지만, 나는 저 테레비가 없으면 마누라가 진짜 없어지는 거야. 저 채널을 돌릴 때마다 마누라 생각나.

단칸방에 있을 때, 지금 재벌이지만 단칸방에 있을 때 저 마누라하고 내하고 저 텔레비 채널 얼마나 돌리는지 알아? 저것만 보면 내가 돌릴 때마다 우리 마누라 생각나. 그러니까 그게 테레비로 보이나? 여러분은 마음으로 보면은 예, 테레비가 아니야. 그러니까 아무리 좋은 테레비 와도 안 바꿔.

내 안방에는 우리 마누라가 좋아하던 테레비, 둘이서 새 방 살 때 가지고 있던 테레비, 그걸 보면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그때 젊은 시절이 그립다는 거야. 아이 재벌 되고 나니까 뭐가 남는 게 있겠어? 그때가 최고로 행복한 거야. 그 마누라가 30년 전에 죽었는데 그 텔레비를 지금까지 가지고 앉아 있는 거죠, 죽을 때까지. 그래, 안방에 오면 텔레비를 보면 마누라를 보는 거 같아.

그게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거예요. 그렇지? 그 기계로 보면 그거 완전 고물 장이지, 쓸데없는 거지, 갖다 버려야지. 네, 맞습니다. 그렇지? 음, 그래서 눈과 마음은 이렇게 차이가.

어마어마한 거 알겠지, 그 수오지심, 그다음에 뭐가 있어? 사양지심. 그래, 사양지심. 사양, 예, 우리가 남한테 사양한다, 그지?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렇게 있지. 음, 이렇게 있는데, 이것도 눈으로 보면은 네 가지가 뭘로 보여? 처 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지심이, 이거는 눈으로 본 게 아니야, 마음으로 본 거야.

눈으로 본 거는 흰노 애락, 애오욕이야, 정이야. 그냥, 그냥 기쁘고 즐겁고 뭐 이런 걸로 보이, 노에 오욕으로 보이는 건 눈으로 보는 거야. 네, 그래, 그거를 정이라 그래, 일곱 가지 정. 이거는 눈으로 본 거야.

네, 근데 마음으로 보면은 사단이 돼 버려. 처분하고, 죄를 멀리하고, 남한테 양보하게 되고, 남, 옳고 그런 걸 따져서 살게 돼, 이거는 마음으로 본 거야, 알겠지? 그걸 우리는 이성이라고 그래. 이성적으로 본 거지.

어, 근데 감정적으로 보면 칠정이 돼 버려, 그지? 예, 음, 똑같은 걸 말하면 본 거야. 네, 봤, 나타나는 거는 마음으로 본 거는 지심, 지심, 지심이 인간의 마음이야. 근데 이 마음이 다른 눈으로 바라봐 버리면 일곱 개 정으로 나타나, 그 기쁘고 슬프고 막 이렇게 나와. 히노 애락, 기쁘고 슬프고, 그냥 기쁘고, 노하고, 슬프고, 즐겁고 막 이렇게, 네, 애오욕, 사랑하고 미워하고 막 이런 걸로 나와 버려.

자기 애인을, 자기 아내를 사랑으로 바라보면은, 마음으로 바라보면은, 흰노 애오 욕정이 없어, 전부 처거 하고, 예, 어. 이렇게 사냥해야 되고, 마누라 너가 먼저 먹어라. 좋은 옷이 있으면 당신 사 입어라, 나는 괜찮다. 이렇게 되는 거야.

전부 양보가 돼 버려. 그냥 마음으로 자기 아내를 생각하면 양보 되나, 안 되나? 다 되는 거야. 그러나 눈으로 봐 버리면 “그 옷 입은 게 어때서 그래?”이, 그게 나온다. “뭐, 옷이 살이 보이나? 그 입으면 되지, 뭐로 사 입어?” 이거는 눈으로 본 거야.

그렇잖아. 마음으로 볼 때는 “아, 여자는 옷을 사 입고 싶을 거야. 뭔가 바꿔 입고 싶을 거야.” 이 마음으로 이해를 하고 바라보는 거야. 그 여자가 좋은 옷을 사고 싶다.

“아, 그러냐? 내 돈 되면 사 줄게, 있으면 사주고.” 이래 버리면 끝나는 일을, “네, 응, 남으 밥도 먹는데 무슨 그런 옷을을 그러냐?” 이러면 이게 되나, 안 됩니다. 그건 사랑이 없는 거야. 네. 사랑이 있으면 그걸 이해하게 돼. 그럼 그 틀어주는 거지.

예, 그래서 사단이 있는 거야. 칠정은 얕은 눈으로 보는 거고, 깊은 마음으로 보면은 사단이 돼. 그 인간의 마음을 이 둘로 쪼갠 거야, 고기가. 사단과 칠정이 인간의 마음 하나를 둘로 쪼인 거야.

아, 양반은 뭔가 배운 자는 이렇게 보고, 예, 마음으로 보고, 네, 마음으로 보니까 처은수, 이게 나오잖아. 두 사람이 막 사랑하는 걸 아주 낮은 세계의 사람은 찾아볼 때 되게 부럽고 질투나요. 근데 양반 마음이 된 도인이 바라볼 때는 “아, 저 사랑도 처스 보여.” 그지? 예, 그게 사랑스러워 보이는 거야. 남녀가 저리 사랑하는데 참 저 사람들도 저게 이별이 또 있을 텐데 가슴 아파 보여, 그러니까 그게 무조건 좋아 보이지 않아.

예, 아, 마음으로 그 사랑을 바라보면, 아, 저 사람들이 뭔 길을 가야 될 텐데, 지금은 좋다고 만났는데 얼마나 앞으로 싸우고 고생스러울 걸 내다보는 거야. 그러니까 아버지가 어린애를 볼 때, 자기 딸을 볼 때, 저기 저렇게 이쁜데 시집 가서 앞으로 앞으로 살아가다가 애 낳고 제 얼마나 고생 할까, 이렇게 아버지는 애를 본다니까.

네. 그러니까 아버지가 애를 보는 마음이 그 마음으로 보는 거야. 그러니까 딸내미 내이 걱정되니까 돈도 껴서 한번 시집갈 때 더 주려고 그러고.

하나를 더 가르치려고 그러고. 그러니까 첫, 딸은 살림 미션이야. 딸이 딱 나오면 남자가 정신을 차려. 우리 딸을 내가, 저 딸이 내가 망하면 술집에 갈 텐데, 그렇게 되면 안 되지, 정신이 바짝 들어.

남자들은 첫 달을 딱 나오면은 자기 딸이 살아가는 생활 기준을 설정해요, 남자들이. 그래서 내가 저 딸을 고생, 내가 혹시 사회 망하고 감옥을 가거나 잘못되면 저 딸이 술집에가 있을 텐데, 남 술 따라주고, 그 막 양주 독한 걸 막 먹어야 되고, 애 죽인다, 그 내가 어떻게 해야 되겠어, 그 애를 낳, 남자는 정신을 차려요. 그 첫 딸이 살림 미치, 그렇지 않겠어? 맞습니다. 음, 그 뭐냐, 무슨 마음에서 발로된 거야? 마음속으로 사랑을 바라본 거야.

눈으로 보는 게 아니야. 마음으로 그 딸의 미래를 생각하는 거야.

그렇지, 이거 사랑으로 보 당장 딸의 처원 지심이 생겨 닮아 보면, 아이고 우리 딸 이거 이쁘다고 하면서도 속으로는 얘가 나중에 내가 혹시 잘못되면 어떻게 되나, 이 생각을 자꾸 하는 거야, 아버지들은. 그러니까 이 딸한테 그냥 완전히 꼼짝 못 하는 거지, 이제 이해가지? 이런 형상이 되는데, 우리가 남의 여자를 사랑할 때 안 그래요? 네, 형상만 보고 이쁘다고 하고 붙는 거야, 그러다 나중에 싸워요. 이런 마음속에 사랑이 있나 없나? 없어, 없어. 자기 취할 거, 이쁜 거 뭐 이런 것만 보지, 그 사람의 진정한 행복, 미래 안 보여, 맞지? 그러 우리는 사물을 볼 때 눈으로 보면 되나, 안 된다.

눈으로 보, 마음으로 봐, 그 마음으로을 본게 요고, 눈으로 본게 정이야, 아, 알겠지? 휘 에어요. 여기 이 사람이 이걸 기쁨을 볼 때는, 여기 여기에 희를 볼 때는, 이 사람들은 어머, 그 기쁨에는 반드시 슬픔이 따라온다, 대가가 따라온다, 이걸 느끼는 거야, 그러니까 함부로 기뻐하거나 함부로 슬퍼하지 않아, 양반들, 있는 사람, 그렇지? 예, 그래서 우리가 눈으로 보는 거와 마음으로 보는 게 이렇게 차이가 있어, 응, 예.

근데 남은 남의 딸을 볼 때는 그런 사랑으로 보나, 마음으로 보나, 안 봐. 어머 쟤, 야, 술 따로 이런 앉아 있어, 지 딸이면 그렇게 못 해요, 네, 맞아. 사랑이 없는 거야, 마음으로 가지는 사랑이 없는 꽃으로 보는 거야, 그래서 드레 핀 꽃도 하늘에 허락 없이 신을 꺾으면 안 돼, 지 꺾으라고 그게 피어 있냐. 아닙니다.

지나가는 나은 애들 보라고 피어 있는 거지, 네. 맞지? 최선을 다해서 피어 있는 거야. 그래, 또 다음에 또 열매를 맺고 씨가 퍼져나가게 하려고 피어 있는 거 아니냐? 그런데 가서 “아, 들에 있는 꽃이 이쁘네.” 다 꺾으면 하늘에 죄를 진 거야.

그게 많은 사람 보라고 있는지, 짓거 그라고 있냐? 아닙니다. 그러니까 바라보는 눈이 그 꽃을 볼 때 처음에 지심으로 봐야 돼. “아, 저게 들에 있는 거지만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저렇게 피어 있네.” 그러면 그 꽃에 자존심을 우리가 세워 줘야 돼.

아, 함부로 꺾으면 하늘에 저주를 받는 거야. 그러니. 근데 지가 안 키운 꽃은 남의 딸은 그냥 아, 괴롭히려고.

예, 그렇잖아? 눈에 우선에 즐거우니까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이 말이야. 네, 심의 마음으로 바라봐야 그 진정한, 이해가지, 네? 이해, 뭐, 이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이런 걸 이야기하면 잘 못 알아들어. 근데 여러분은 알아듣나 모르겠다. 알아듣습니다.

알겠지? 음. 그래서 아까 말한 그거는, 아까 질문이 뭐였지? 지혜와 the God-man의 방편, 지혜. 그래서 뭘 사무를 바라보는데 꼭 지혜가 필요한 거야. 지혜로 눈으로 바라본 거면 똑같은 사랑에도 지혜로 보면은 뭐가 된다고? 첫번 지심지, 4, 12, 지심이 되고, 예, 눈으로 바라보면은 희노애락에요.

예, 이거 아주 천박한 거네, 이게 돼 버려. 어떻게 자기 딸을 그냥, 그냥 단순히 이쁘다고 할 수 있는, 맞습니다. 불쌍하게 보이지, 예, 맞아, 안 맞아.

자기 딸을 진짜 바라보면 불쌍해요, 맞습니다. 혹시가 어떻게 또 애 낳아야 되지, 저것도 나중에 남편한테 또 어떻게 될지, 이게 언제나 서근 지심이 딸에게 있는 거야. 그러니까 자기 아빠가 있는 동안에 잘해 주려고 하는 거야. 그래야, 예, 앞으로 제가 시집 가서 얼마나 고생할지, 어떤 놈한테 버림을 받을지 모르잖아, 맞습니다.

그게 마음으로 딸을 보는 거야. 근데 지나는 남자는 그걸 붙들어 성수행 하요네, 그 마음으로 보나, 아닙니다. 히노 해라, 외워요, 당장 기쁨, 예, 즐거움, 뭐 이쪽으로 나가 버리면 이게 이런 인간이 되지 말아라이 말이야. 눈으로 보는 인간이 되면 안 된다네.

이제 이해가지네, 알겠습니다. 내가 뭐 이야기하다 보면 나는 질문이 뭔지도 잊어버려 버려. 이제 뭐 궁금한 거 있으면 이야기를, 예, 그래서, 음, 결국에는 이게 그 지혜를 말씀해 주신 거 같은데요, 예, 마음으로 보시라는 게, 예, 응, 그러니까 사랑이든 지혜든, 만약에 우리가, 음, 만약에, 음, 만약에 우리가, 음, 정의를, 네, 정의를 눈으로 보는 거하고, 네, 마음으로 보는 게 달라. 정의를, 눈으로 발견하면, 예, 장 정의야, 네, 그래, 안 그래, 네.

마음으로 발견하면 뭘까, 정바람, 아까 정의를 마음으로 바라보면은, 예, 평화가 돼 버려. 음, 눈으로 보면 정의야, , 맞아, 안 맞아, 정의라는 거 그냥 글자 그대로 정의지, . 근데 그걸 마음으로 바라봤다네, 그러면 정의를 마음으로 보면 평화가 와. 그러니까 봐.

정의하면 눈으로 보면 남이 어떻게 하는가만 살펴. 근데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보지, 그러면 내 자신부터 바꿔야 돼. 남한테 정의가 돼 줘야 되잖아.

그 남의 평화를 짓밟지 말아야지. 그러니까 나 좋은 사람이 되는 거야. 정의를 바라보는 것도 보느냐, 마음으로 보느냐, 차이가 어마어마해. 그 정의하면 눈으로 보면 뭐 뭐 안 준 거니, 뭐 아니 뭐 이렇게 생각하겠지.

먹고 건축 상담. 그래, 저 들어오. 그러니까 마음으로 보면 정의는 평화야.

맞나? 그렇다니까 굉장히 차원이 달라지지. 내가 무슨 정의로 가져야, 어쩌다 정의를 들이대. 내 자신이 정의를 안 지키면서.

네. 그 마음으로 볼 때는 내가 바뀌어요. 네, 그렇잖아. 근데 정의를 객관적으로 이렇게 바라보면, 눈으로 정의를 우리가 바라보면 남들 잘하고 잘못하고 요런 거는 따져.

그런데 써먹을려 그래. 그지? 그 정의는 어디다 쓰는 거야? 내만 쓰는 거야. 남한테 정의를 들이대면 안 돼.

네, 맞아, 맞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정의를 들이대야 되는 거야. 내가 정의롭지 않으면서 왜 남을 자꾸 나쁜 놈이라고 자꾸 떠들어.

그 내가 정신들 나쁘다 이야기 못 하지. 못하는 거야. 정책이 안 됐다는 거지. 좋은 정책이 없다는 거지.

그 사람들 내가 이렇게 안 해요. 여야 욕 안 하잖아. 그 내한테 정의를 들이대해서 나를 바로 잡으면 되지.

네, 맞습니다. 그지? 정의를 눈으로 보는 자는. 남한테 들이대, 남 재단하는데 써먹고, 근데 자기한테 들이대면 그지.

그러니까 불교는 정의를 다 갖다 들이대. 불교는 잘 모르겠습니다. 기독교는 정의를, 예,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여기다 들이대. 맞, 예, 맞습니다.

불교는 정의를 어디다 가둬 되냐, 깨달았느냐 못 깨달았느냐, 여기 막 들이대는 거예. 뭐 믿음 따위는 아예 물어보지도 않아, 불교는. 어. 불교는 믿음이 중요한 게 아니고, 네, 스스로 깨달았느냐, 알겠지?

깨닫는데 목표가 있어. 깨닫고 죽으면 끝난 거야, 불교는. 근데 거기 믿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

불교는 믿음이 없어. 말이 신앙이지만 아는 게 신앙이야. 불교의 신앙이 뭡니까 하면 답은 깨닫는 거. 기독교의 신앙은 뭡니까 하면 답은 믿는 거.

예. 그 자체 성경 내용을 그냥 믿는 거, 그게 기독교. 불교는 경전을 믿는 건가, 깨닫는 거. 이게 이런 것이구나, 이건 이런 거구나, 이건 지구나, 깨닫는 거, 그게 불교.

불교는 믿음이 없어요. 그래서 불교는 에너지가 없지.

전혀 없어. 그걸 알아야 돼. 불교는 믿음이 아니야. 불교는 깨달음.

그 석가모니가 각자 깨달은 자야. 신이 아니야.

그러니까 불교는 최고, 불교를 만든 교종이, 교시가 깨달은 자일 뿐이지, 네, 그게 뭐, 뭐, 뭐 어머니 배속에서 나 아버지 없이 태어난 사람이 아니야. 나 같은 자가 아니잖아. 그러면 그는 불교는, 그죠, 깨닫는 게 그게 최고의 경제야.

그렇지, 그걸 극락이라 그래. 깨달으니까 고통을 이해해 버리니까, 지옥이 없지. 깨, 예, 알겠지? 그러니까 우리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달라진다는 거네. 음, 그리고, 음, 마음으로 마음으로 내 몸을 바라보면, 뭐가 되겠어?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 성찰이 될 것 아니야, 건강이 되는 거야.

아,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 건강인데, 외모로 내 몸을 보면 건강이 아니야. 뭐가 될까? 경고가 될 것 같습니다. 경고가 될 것 같습니다. 외모로 내 몸을 보면 뭐가 돼? 늙고 가고 있는 거지.

아, 나이가 나이 이야기했잖아. 외모로 내 몸을 보면 매일매일 조금씩 늙고 가는 거야, 죽음 앞으로 가고 있는 거야. 그런데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 뭐해야 돼? 건강, 건강, 건강이 되는 거야. 하나하나 나쁜 걸 고치겠어? 예, 음식도 고치겠어.

그렇게 되는 거야. 그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 건강해지는데, 외모로 나의 몸을 보면 포지티브가 돼, 저, 네거티브가 되는 거야. 염세주의자가 되는 예, 자꾸 자꾸 늙어 가네, 그지? 그 몸부림치는 거야, 안 들으려고.

이게 인생이야, 그렇잖아? 뭐 병고 다가오고, 뭐 거기 방어 해야 되고, 그지? 그런데 마음으로 내 몸을 보면은 이미 나는 지킬 거만 지키면 건강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 몸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건강해질 수밖에 없어. 네, 그지? 외모로 바라보는 자는 우선에 시장을 해야 돼.

네, 시장을 잘하는데만 매인. 되는 거야, 그러나 마음으로 내 몸을 바라보는 자는 내 몸의 메커니즘을, 리듬을, , 유지시키고 살리고 건강해지는 거지, 다르지. 네, 다 뭐, 내가 이 길게 시간이 없어, 빨리 하고 또 움직이 되니까.

어, 궁금한 거. 결국에 다 스님께서 말씀해 주신 게 지혜랑 연관이 있는 거 같아서, 또 지혜라는 건 그 내가 사물을 볼 때 포지티브로 보느냐, 네거티브로 보느냐,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거, 예, 그게 내 마음을 나를 보는 거야, 마음으로 바라보는 거, 네거티브로 바라보는 거는 주로 외부로 보는 거야, 네, 바깥을, 네.

그래서 남한테 눈을 돌려, 네. 음,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그래서 불교는 남한테 눈을 돌리는 종교가 아니야, 네.

외부의 힘을, 타력을 의지하는 종교는 기독교, 네. 자력을 의지하는 종교는 불교, 그렇지. 내 스스로 자력을 의존하는 게 불교, 그래서 자기 스스로 깨달아야 돼, 네.

누가 깨달음을 줄 수가 없는 거야, 맞아, 말, 네. 예, 음. 그러니까 불교는 자력으로서 부처가 되는 거고, 네. 기독교는 타력, 네.

하나님, 네, God-man, 네, 예수, 이런 메시아를 통해서, 네, 이 되는 거야. 그러니까 구해 줘야 돼, 그 기독교는 자기가 자기를 구해야 돼, 불교. 그 불교는 자력 교야, 불교는 자력, 기독교는 타력.

자기가 자기를 구하겠다면 그건 미친 놈이다, 그건 기독교인이 아니지, 이 세상은 하늘이, 하나님이 있고, 그 하나님이 이 세상에 앞으로 오고, 예, 내가 와 있잖아, 그 자가 와서, 그 자에. 의해서 이게 수동적으로 구해지는 거, 그게 기독교의 책이에요.

그래서 거기는 그 자체가 올 거라는 걸 믿는 거, 그걸 신앙이라, 근데 불교는 이미 다 와 있어. 자기들을 구해줄 자가 오는 일이 없어. 미래에 온다, 이거는 전부 거짓말이야.

자기들을 만들어 놓은 거지. 석가가 한 말이야, 아니란 말이에요, 실제. 근데 불교는 자기가 자기를 구해야 되는 거지, 뭐 누가 와서 구해주고 이거 기다리면 안 돼요. 걔들은 이런 말은 해.

불교가 불교의 세계, 화경에 보면 불교의 세계관은, 이게 불교의 세계 관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네, 화장, 화장, 그 화장에 또 뭐가 있냐면 화장 장엄 세계, 장엄, 가장 장엄 세계가 불교의 세계가 아니야.

네, 이봐, 화장 장엄세계, 그러니까 화장이라는 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거야. 외, 부야, 외적인 거야.

네, 지구가 보이잖아? 네, 자연이 막 보이잖아? 이게 화장이야. 세계는 감출 장야, 엄격하게 감춰져 버렸다, 이 말이지. 요거는 안 보이는 세계야, 내적인 세계야.

예, 이 두 개가 합친 걸 불교 세계라 그래요. 화장 장엄 세계, 무슨지 알겠지? 그러면 나와 있는 거, 눈에 보이는 걸 화장 세계야. 중화민국 할 때 화, 아, 예, 화장세계, 예.

이 화장 세계는 장엄, 멋있는 이 화장 세계가 펼쳐져 있지만, 내면에는 장엄 세계가 있어. 네, 숨어 있다, 이 말이지. 그래서 화장과 장엄, 플러스와 마이너스 합친 세계를 불교의 세계 관이야, 이게.

아, 무슨 이제 이거 눈에 보이는 세계와 안 보이는 세계가 섞였다는 거야, 그러니까 화장, 장음, 그래서 이걸 주해서 화엄경 이러는 거야. 두 자식 뺐잖아, 화엄경, 뒤에 경자가 붙어.

화엄, 장엄 세계, 경, 이 자야. 그러니까 중간자를 뗐지, 화엄경. 그래서 화엄경이야. 그러니까 화장, 장엄 세계, 경, 이걸 주연한 거야.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석가모니가 설한 거예. 그러니까 이 보이는 세계에 속지 마라, 이거야, 이거. 이게, 이건 지식이라고 볼 수 있어. 이거는 지혜라고 봐야 돼.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거, 마음으로 보는 세계야. 이 눈으로 보는 세계야. 그 눈으로 보이는 세계를 화장 세계라고, 안 보이는 세계는 장엄 세계네. 그지? 저 깜깜한 우주는 장엄 세계야.

아, 그래. 지구에서 보이는 건 화장 세계지. 그 화장과 장엄이 합쳐진 세계를 말한 걸 석이가 말하는 걸 화엄경, 이렇게 얘기하는 거야. 그 사람들 화엄경 뭐냐, 이러지를, 동시 보는 눈을 가져야 되는 거지.

저 왜 속지 말아, 왜 속으면 기 돼 버려. 근데 내를 바라보면 뭐로 보여? 처지심,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렇게 보이는 거야. 네, 그렇습니다.

그거는, 그거는 지식이 아니고 지혜야. 그러니까 굉장히 내가 불교를 통틀어서 이야기해 주고 있는 거야. 이런 이야기를 해 주는 스님이 없어요. 그 사람들이 헤매고 다니는 거야.

불교는 이거 철학적인 거야, 이거. 신앙이 아니야. 그래서 불교의 최고 목적은 깨닫는 게.

목적이야, 깨달으면 그 이상이 없어. 정각, 그게 최고 목적이야. 정각, 열반, 해탈, 보리, 반야의 무아, 성불, 정각이 불교의 끝이야, 그렇지 않나? 그런데 기독교 가서 깨달아라, 그럼 말이 안 돼. 예, 그냥 예수를 만나러 오고, 성경을 택하고, 기독교를 택한 만 해도, 그건 끝이야.

그다음은 신에게 맡겨, 예, 그래서 신을 의지하러 온 거야. 그래, 기독교는 신앙이고, 불교는 뭐라고? 불교는 깨달음, 아, 기독교는 신앙이라는 것이 그 종교의 근본이고, 불교는, 기독교는 믿음이라는 게 그 종교의 근본이고, 불교는 뭐야? 깨닫는 거, 자각하는 거, 그게 믿음의 끝이야. 깨닫는 이유는 뭐가 있다, 일체 그런 말을 하지 말라.

화장과 장음이 두 개의 만남으로 인해서 그 결과를 이야기해 준 거야. 이게 왜 이렇게 만났는지, 예, 그거는 내적인, 외적인 거, 이거는 내적인 거야. 이거는, 이거는 눈으로 보는 세계고, 이거는 마음으로 보는 세계야. 눈으로 보이니까 이 세계가 화장하니, 마음으로 보니까 장엄한 게 감춰져 있네.

우주 원리가 뭐, 지구가 이렇게 돌아가고 태양이 돌고 막 자전공전이 장엄한 거를 우리는 볼 수가 없었어. 이거는 마음에 일어나는 세계, 이 지금 물질이 이래 있는 거 같아도 이 물질이 지금 변해가고 있지, 이게, 네, 한 달 가면 몇 달 가면 썩어, 그렇잖아. 이걸 장음이 우리는 이걸 마음대로 하는 게 아니야.

어, 그러면 이거는 그냥 놔둬 버려, 장엄한 세계야. 우리 안 보이는 속에서 이놈이 변화가 일어나. 그런데. 우리는 화장만은, 겉 껍데기만 보고 앉아 있어, 그렇지 않겠어? 예, 맞습니다.

그래서 내외가 같은 이 화장, 장엄 세계, 경을 화엄경, 이렇게 말하는 거야. 그러니까 석가모니의 사상은 철학적으로 굉장히 훌륭해요. 그 기독교 믿는 사람도 이걸 이 코스를 끝내야 돼. 이거 끝내고 기독교로 들어가야지, 이 불교 코스 없이 기독교에 들어간 사람은, 예, 무슨, 등학교, 초등학교, 고등학교는 안 다니고 대학에 간 사람과 비슷해.

아, 그렇지 않겠지? 그런 게 있지. 이 화장 세계만 보고 하나님을 믿으면 이 문제가 생기는 거야. 이 장엄 세계도 있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God-man을 만나야 화장과 장엄을 다 깨닫게 돼. 알겠지? 뭐 이것저것을 들어서 이야기하려면 끝이 없어, 시간이 없어..

지혜(智慧)(Wisdom, Sagacity, Discernment)

지식(知識)(Knowledge, Information, Learning)
방편(方便)(Expedient, Means, Device)
자비심(慈悲心)(Compassion, Mercy, Benevolence)
탕자(蕩子)(Prodigal son, Spendthrift, Wastrel)
부자지간(父子之間)(Father-son relationship, Paternal relationship)
처은지심(惻隱之心)(Heart of compassion, Sympathy, Pity)
수오지심(羞惡之心)(羞惡之心)(Heart of shame and dislike, Sense of shame, Repulsion)
사양지심(辭讓之心)(Heart of deference and yielding, Modesty, Humility)
시비지심(是非之心)(Heart of right and wrong, Moral judgment, Conscience)
희로애락(喜怒哀樂)(Joy, anger, sorrow, and pleasure; Human emotions)
애오욕(愛惡欲)(Love, hate, and desire; Human passions)
사단(四端)(Four beginnings of morality, Four virtues)
칠정(七情)(Seven emotions, Seven passions)
이성(理性)(Reason, Rationality, Intellect)
감정(感情)(Emotion, Feeling, Sentiment)
정의(正義)(Justice, Righteousness, Equity)
영성(靈性)(Spirituality, Divinity, Sacredness)
성찰(省察)(Introspection, Self-reflection, Contemplation)
염세주의자(厭世主義者)(Pessimist, Cynic, Misanthrope)

인간의 지식과 지혜의 관계를 식재료와 요리 도구에 비유했을 때, 지식이 진가를 발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지혜, 지식은 지혜로 잘 다루어졌을 때 진가를 발휘합니다. 지식은 재료이고 지혜는 그 재료를 활용하는 도구와 같습니다.)

다음 중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볼 때’ 얻을 수 있는 결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인가요?
① 시기심과 질투
② 단순한 정보의 나열
③ 지혜로의 변화
④ 감정적인 반응
(③ 지혜로의 변화, 지식을 눈으로만 보면 단순한 지식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변화합니다.)

사랑을 ‘눈으로 바라볼 때’와 ‘마음으로 바라볼 때’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으로 옳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①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생길 수 있다.
② 마음으로 보면 자비심으로 바뀐다.
③ 눈으로 보면 사랑하는 사람과 반드시 싸우게 된다.
④ 마음으로 보면 칠정(희로애락애오욕)이 생긴다.
(④ 마음으로 보면 칠정(희로애락애오욕)이 생긴다,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비심이나 측은지심과 같은 사단이 생기며, 칠정은 눈으로 볼 때 나타나는 감정입니다.)

정보를 ‘눈으로 바라볼 때’와 ‘마음으로 바라볼 때’의 결과가 바르게 짝지어진 것은 무엇인가요?
① 눈으로 볼 때: 평화, 마음으로 볼 때: 전쟁
② 눈으로 볼 때: 전쟁, 마음으로 볼 때: 평화
③ 눈으로 볼 때: 돈, 마음으로 볼 때: 정보
④ 눈으로 볼 때: 정보, 마음으로 볼 때: 돈
(② 눈으로 볼 때: 전쟁, 마음으로 볼 때: 평화, 정보를 눈으로 보면 경쟁과 전쟁으로 이어지지만, 마음으로 보면 평화를 이루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방편 지혜’는 사물을 바라보는 무엇을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되었나요?
(안경, 방편 지혜는 사물을 바라보는 안경, 즉 관점을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마음을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으로 나누었을 때, ‘마음으로 보는 것’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① 희로애락애오욕 (칠정)
②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사단)
③ 감정적인 반응
④ 외적인 즐거움
(②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사단),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사단이 나타납니다.)

중급
다음 빈칸에 들어갈 알맞은 단어는 무엇인가요?
불교는 스스로 깨닫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 ) 종교이며, 기독교는 신의 도움을 믿고 의지하는 ( ) 종교이다.
(자력, 타력, 불교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자력 종교이며, 기독교는 신의 힘을 빌리는 타력 종교입니다.)

불교의 세계관인 ‘화장장엄세계’에서 ‘화장 세계’와 ‘장엄 세계’가 각각 의미하는 바를 바르게 설명한 것은 무엇인가요?
① 화장 세계: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 장엄 세계: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
② 화장 세계: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 장엄 세계: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
③ 화장 세계: 지식의 세계, 장엄 세계: 감정의 세계
④ 화장 세계: 과거의 세계, 장엄 세계: 미래의 세계
(② 화장 세계: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 장엄 세계: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 화장 세계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를, 장엄 세계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몸을 ‘외모로 바라볼 때’와 ‘마음으로 바라볼 때’의 차이점에 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무엇인가요?
① 외모로 보면 건강해지고, 마음으로 보면 늙어간다.
② 외모로 보면 늙어감을 느끼고, 마음으로 보면 건강을 추구한다.
③ 외모로 보면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마음으로 보면 부정적인 변화를 걱정한다.
④ 외모로 보면 내면의 리듬을 유지하고, 마음으로 보면 외적인 치장에 집중한다.
(② 외모로 보면 늙어감을 느끼고, 마음으로 보면 건강을 추구한다, 외모로 몸을 보면 늙어가는 것을 느끼지만, 마음으로 몸을 보면 건강을 지키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정의를 ‘눈으로 바라볼 때’와 ‘마음으로 바라볼 때’의 차이점을 설명한 것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인가요?
① 눈으로 보면 남의 잘못을 따지고, 마음으로 보면 자신을 돌아본다.
② 눈으로 보면 평화가 오고, 마음으로 보면 정의가 실현된다.
③ 눈으로 보면 자신에게 정의를 들이대고, 마음으로 보면 남에게 정의를 요구한다.
④ 눈으로 보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마음으로 보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
(① 눈으로 보면 남의 잘못을 따지고, 마음으로 보면 자신을 돌아본다, 정의를 눈으로 보면 남의 잘못을 따지게 되지만, 마음으로 보면 자신부터 정의롭게 행동하려 노력하게 됩니다.)

심화
불교에서 ‘깨달음’이 갖는 의미와 기독교에서 ‘믿음’이 갖는 의미를 비교하여 설명하시오.
(불교에서 깨달음은 고통을 이해하고 해탈하는 최고의 경지이며, 기독교에서 믿음은 신의 존재와 가르침을 받아들이고 의지하는 근본적인 신앙입니다.)

재벌 회장이 낡은 텔레비전을 바꾸지 않는 이유를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의 차이점을 활용하여 설명하시오.
(재벌 회장은 낡은 텔레비전을 눈으로 보면 단순한 고물로 보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돌아가신 아내와의 소중한 추억과 젊은 시절의 행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로 여깁니다. 이는 사물을 물질적 가치(눈)가 아닌 정서적, 추억적 가치(마음)로 바라보는 지혜의 차이를 보여줍니다.)

지식과 지혜의 본질적 차이: 마음의 관점

인간의 지식은 식재료에 비유할 수 있으며, 지혜는 이를 다루는 요리 도구와 같다. 지식은 지혜로써 잘 활용될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오늘날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인간의 지식 수준은 급격히 향상되었으나, 지혜는 정체되어 지식이 지혜를 압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시대에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신적 방편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지혜는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볼 때 발현되며, 단순히 눈으로만 볼 때는 지식에 머무른다. 지식을 마음으로 관조하면 모든 것이 지혜로 변화한다.

  1. 사랑의 본질과 관점의 차이: 시기심과 자비심
    사랑을 인간의 눈으로 바라보면 시기와 질투가 발생한다. 그러나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비심으로 변화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때, 자식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마음속으로는 미워하지 않는다. 탕자(蕩子)가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와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여전히 예쁘게 보인다. 사랑을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생겨 부자지간에도 갈등이 발생할 수 있으나,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식이 탕자가 되어 돌아와도 반갑고 기쁜 마음이 든다. 이는 사랑을 마음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마음으로 사랑을 바라볼 때 비로소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이 발현된다. 반면 눈으로 사랑을 바라보면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欲)의 칠정(七情)에 갇히게 된다.

  2. 정보의 이중성과 평화의 실현: 전쟁과 평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눈으로 바라보면 그것은 곧 전쟁이 된다. 정보를 수집하는 목적은 대개 타인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된다. 하늘궁이 이 땅에 세워진 이유도 하늘로부터 받은 정보를 통해 지상의 평화를 이루기 위함이다. 하늘궁을 통해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며, 이는 전 세계로 확산되어 세계 평화를 실현할 것이다. 종교들이 오히려 전쟁을 유발하는 현실 속에서,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평화를 지향하는 근본적인 전환점이 된다. 기업들이 정보를 전쟁 용도로 활용하는 것과 달리, 마음으로 정보를 바라보면 평화의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3. 방편 지혜의 의미와 관점의 확장: 안경의 변화
    방편 지혜는 사물을 바라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안경을 가지고 있으나,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며, 나아가 영(靈)으로 보는 단계로 확장될 수 있다. 마음으로만 보아도 지혜로 변화하지만, 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재물로 변화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심오한 변화를 통해 현실을 재구성하는 방편 지혜의 본질이다.

  4. 사단과 칠정: 마음과 눈의 차이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은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인간의 본성이다. 반면 칠정(희로애락, 애오욕)은 눈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감정이다.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이성적으로 판단하게 되지만, 감정적으로 바라보면 칠정에 휩싸이게 된다. 사단과 칠정은 인간의 마음을 두 가지 방식으로 쪼개어 본 것으로, 마음으로 보는 것은 지혜로운 관점이며, 눈으로 보는 것은 천박한 관점이다.

  5. 재벌 회장의 텔레비전: 마음으로 보는 사물의 가치
    한 재벌 회장이 낡은 흑백 텔레비전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일화는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기자가 텔레비전을 바꾸라고 권유하자 회장은 “당신들은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지만 나는 마음으로 봅니다”라고 답한다. 그 텔레비전은 단칸방 시절 아내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며 정을 쌓았던 추억이 담긴 물건이었다. 아내가 죽은 후에도 텔레비전을 볼 때마다 아내를 떠올리며 젊은 시절의 행복을 그리워했다. 눈으로 보면 고물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아내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보물인 것이다. 이는 눈과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것의 엄청난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6. 들꽃의 자존심: 모든 존재에 대한 측은지심
    길가에 피어 있는 들꽃을 바라볼 때도 측은지심으로 보아야 한다. 들꽃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피어 있는 것이며, 함부로 꺾는 것은 하늘에 죄를 짓는 행위이다. 모든 존재는 그 자체로 자존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진정한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눈앞의 즐거움만을 좇아 함부로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7. 정의의 본질과 자기 성찰: 평화로의 전환
    정의를 눈으로 바라보면 타인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비판하는 데 집중하게 된다. 그러나 정의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기 자신부터 변화시키고 성찰하게 된다. 남에게 정의를 들이대기 전에 스스로 정의로운 사람이 되려 노력하며, 타인의 평화를 짓밟지 않으려 한다.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볼 때 정의는 평화로 전환되며, 이는 자기 성찰을 통해 진정한 정의를 실현하는 길이다.

  8. 종교적 관점의 차이: 믿음과 깨달음
    기독교는 믿음을 근본으로 하며, 메시아를 통해 구원받는 타력(他力) 종교이다. 성경의 내용을 믿는 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반면 불교는 깨달음을 근본으로 하며, 스스로 부처가 되는 자력(自力) 종교이다. 불교는 믿음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것에 목표를 둔다. 석가모니는 깨달은 자일 뿐 신이 아니며, 불교의 최고 경지는 깨달음을 통해 고통을 이해하고 지옥이 없는 극락에 이르는 것이다.

  9. 불교의 세계관: 화장장엄세계
    불교의 세계관은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로 설명된다. 이는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화장세계)와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장엄세계)가 합쳐진 것을 의미한다. 화장세계는 장엄하게 펼쳐진 물질 세계를, 장엄세계는 엄격하게 감춰진 내면의 세계를 상징한다. 석가모니는 보이는 세계에 속지 말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함께 보아야 한다고 설파했다. 화엄경은 이 두 세계의 만남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한다.

  10. 몸을 바라보는 관점: 늙음과 건강
    자신의 몸을 외모로 바라보면 매일 늙어가고 죽음에 가까워지는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다. 이는 염세주의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몸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건강을 지키고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음식 조절, 생활 습관 개선 등을 통해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 한다. 외모에만 치중하는 사람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 매달리지만, 마음으로 몸을 바라보는 사람은 몸의 메커니즘과 리듬을 이해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집중한다.

  11. 긍정적 관점과 자기 성찰: 외부와 내부
    사물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반면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로 외부를 향하며, 타인에게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는 자기 성찰보다는 외부 비판에 집중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The Enormous Difference Between Viewing Things with Knowledge and Viewing Them with Wisdom

  1. The Transformation of Knowledge into Wisdom
    Knowledge, when perceived through the mind, transforms into wisdom. However, if knowledge is merely observed with the eyes, it remains just knowledge. The information acquired in a classroom, for instance, does not inherently become wisdom. It is only when knowledge is viewed through the lens of the mind that it undergoes this profound transformation.

  2. The Perception of Love: From Jealousy to Compassion
    The way one perceives love drastically alters its nature. When love is viewed with the eyes, it often leads to jealousy and envy. For example, if one observes a loving relationship between a father and son, feelings of jealousy may arise. However, when love is perceived through the heart, it transmutes into compassion. A mother, for instance, views her child with love, even when the child errs, and thus feels no animosity. The prodigal son, despite squandering his father’s wealth, is still seen with affection through the father’s loving heart. This fundamental difference in perception—viewing love with the eyes versus viewing it with the heart—yields entirely different outcomes.

  3. The Dual Nature of Information: War vs. Peace
    In this era of information overload, the perception of information also holds a dual nature. When information is viewed with the eyes, it often leads to conflict and competition, akin to war. The very act of gathering information is often driven by a desire to gain an advantage over others. However, when information is perceived through the heart, it transforms into peace. This represents a significant shift in perspective, where the same information can either fuel contention or foster harmony.

  4. The Role of Information in Establishing Global Peace
    Huh Kyung-young’s establishment of “Haneulgung” (하늘궁, “Heaven House”) exemplifies the transformative power of information viewed through the heart. The information he possessed, regarding the auspicious “십승지” (十勝地, Ten Victories Land), led him to establish Haneulgung. This establishment, in turn, has brought inner peace to many individuals, and its influence is now spreading globally, aiming to achieve world peace. In contrast, many religions, when viewing information through the eyes, have historically instigated conflicts rather than fostering peace, as seen in various religious wars.

  5. The Concept of “Bangpyeon Jihye” (方便智慧, Expedient Wisdom)
    “Bangpyeon Jihye” (方便智慧, Expedient Wisdom) refers to a shift in one’s perspective, akin to changing the glasses through which one views the world. Humans typically perceive things with their physical eyes. However, the crucial aspect is to view things with the heart. Elevating this further, perceiving with the “yeong” (靈, spirit) can transform perceptions into material wealth. While viewing with the heart already transforms knowledge into wisdom, viewing with the spirit can convert it into tangible assets. This represents a profound shift in perception, moving beyond mere intellectual understanding to a spiritual apprehension that yields practical benefits.

  6. The Four Beginnings (四端) and Seven Emotions (七情)
    The concept of “Bangpyeon Jihye” (方便智慧, Expedient Wisdom) is closely related to the “사단” (四端, Four Beginnings) and “칠정” (七情, Seven Emotions). When one views things not with the heart, these principles remain dormant. However, when one perceives objects with the heart, the Four Beginnings—”측은지심” (惻隱之心, feeling of commiseration), “수오지심” (羞惡之心, feeling of shame and dislike), “사양지심” (辭讓之心, feeling of deference and compliance), and “시비지심” (是非之心, feeling of right and wrong)—emerge.

For instance, viewing love with the heart evokes “측은지심” (惻隱之心, feeling of commiseration). In contrast, viewing love with the eyes often leads to jealousy and conflict, inevitably resulting in separation and suffering. This is the human way of thinking. However, when one views a person with the heart, it transcends such superficiality.

A poignant example is a wealthy chairman who cherishes an old, small television set. While others might see it as junk, he views it with his heart. This television was a source of immense joy for him and his late wife when they lived in a small room before he became wealthy. Every time he changes the channel, it reminds him of his wife and their shared memories. For him, the television is not merely an object but a vessel of profound emotional connection. This illustrates the vast difference between viewing with the eyes, which sees only an old object, and viewing with the heart, which perceives deep sentimental value.

The Four Beginnings are born from viewing with the heart, representing reason and moral discernment. Conversely, the Seven Emotions—”희노애락애오욕” (喜怒哀樂愛惡欲, joy, anger, sorrow, pleasure, love, hate, desire)—arise from viewing with the eyes, representing shallow, emotional responses. These two perspectives divide the human mind. Those who are learned or enlightened view with the heart, experiencing the Four Beginnings. Those who are less enlightened view with the eyes, experiencing the Seven Emotions.

  1. The Father’s Heart: Foresight and Compassion
    A father’s perception of his daughter beautifully illustrates the concept of viewing with the heart. While others might see a beautiful young woman, a father, looking at his daughter, feels “측은지심” (惻隱之心, feeling of commiseration). He envisions her future struggles, the hardships of marriage, childbirth, and potential heartbreaks. This foresight stems from a deep, heartfelt love, prompting him to save money for her future and impart wisdom. The birth of a first daughter often instills a profound sense of responsibility in a man, making him strive harder to ensure her well-being, fearing she might face hardship if he fails. This profound concern for her future is a manifestation of viewing with the heart, not merely with the eyes.

  2. The Sacredness of Nature: Respect and Reverence
    Even a wild flower, when viewed with the heart, demands respect and reverence. It is not merely an object to be plucked for fleeting pleasure. A flower blooms to be admired by many, to fulfill its natural purpose of bearing fruit and spreading seeds. To pluck it without permission is to commit a sin against nature. When one views a flower with “측은지심” (惻隱之心, feeling of commiseration), one recognizes its inherent dignity and the effort it puts into blooming. This perspective fosters respect for its existence and discourages its arbitrary destruction.

  3. The Distinction Between “Jeong-ui” (正義, Justice) and Peace
    The perception of “정의” (正義, justice) also varies significantly depending on whether it is viewed with the eyes or the heart. When justice is observed with the eyes, it remains merely a concept of right and wrong, often leading to judgment of others. However, when justice is perceived through the heart, it transforms into peace. Viewing justice with the heart compels one to examine oneself first, to embody justice, and to avoid infringing upon the peace of others. This internal transformation leads to becoming a better person, rather than merely pointing out the flaws of others.

  4. The Philosophical Foundations of Buddhism and Christianity
    Buddhism and Christianity offer distinct approaches to spiritual understanding. Christianity emphasizes “믿음” (faith), where adherents believe in God, the Messiah, and the teachings of the Bible. Salvation is achieved passively through reliance on a higher power. In contrast, Buddhism centers on “깨달음” (enlightenment) or “자각” (self-realization). The goal is to achieve “정각” (正覺, perfect enlightenment), “열반” (涅槃, nirvana), “해탈” (解脫, liberation), “보리” (菩提, bodhi), “반야” (般若, prajna), and “성불” (成佛, becoming a Buddha). Buddhism does not rely on external saviors but on individual effort to attain enlightenment. The founder of Buddhism, Siddhartha Gautama, was an enlightened being, not a divine entity born without a father.

  5. The Buddhist Worldview: “Hwajang Jang-eom Segye” (華藏莊嚴世界)
    The Buddhist worldview, particularly as described in the “화엄경” (華嚴經, Avatamsaka Sutra), encompasses “화장장엄세계” (華藏莊嚴世界, the Adorned World of the Flower Treasury). This concept integrates two aspects: “화장세계” (華藏世界, the Flower Treasury World), which represents the visible, external world perceived by the eyes, and “장엄세계” (莊嚴世界, the Adorned World), which signifies the invisible, internal world perceived by the mind. The visible world, with its beauty and impermanence, is like a “지식” (知識, knowledge), while the invisible world, with its profound underlying principles, is like “지혜” (智慧, wisdom). The “화엄경” (華嚴經, Avatamsaka Sutra) teaches not to be deceived by the superficiality of the visible world but to understand the deeper, hidden realities.

  6. The Importance of Integrating Both Perspectives
    To truly comprehend the universe, one must integrate both the “화장세계” (華藏世界, Flower Treasury World) and the “장엄세계” (莊嚴世界, Adorned World). Relying solely on the visible world, like believing in God without understanding the deeper philosophical underpinnings, is akin to attending university without having gone through elementary and high school. Encountering a “신인” (神人, divine human) like Huh Kyung-young allows one to grasp both the visible and invisible aspects of reality, leading to a complete understanding.

The Enormous Difference: Knowledge vs. Wisdom in Huh Kyung-young’s Philosophy

Vocabulary
지혜 (智慧): [Wisdom] Sagacity, Discernment, Prudence
지식 (知識): [Knowledge] Information, Cognition, Understanding
방편지혜 (方便智慧): [Expedient Wisdom] Skillful Means, Pragmatic Insight, Strategic Acumen
처은지심 (惻隱之心): [Heart of Compassion] Empathy, Benevolence, Pity
수오지심(羞惡之心) (羞惡之心): [Heart of Shame and Dislike] Sense of Righteousness, Moral Repugnance, Conscience
사양지심 (辭讓之心): [Heart of Deference] Courtesy, Humility, Yielding
시비지심 (是非之心): [Heart of Right and Wrong] Moral Judgment, Ethical Discernment, Conscience
희로애락 (喜怒哀樂): [Joy, Anger, Sorrow, Pleasure] Emotional Spectrum, Human Passions, Affective States
애오욕 (愛惡欲): [Love, Hate, Desire] Fundamental Desires, Emotional Attachments, Passions
칠정 (七情): [Seven Emotions] Basic Human Emotions, Affective Responses, Emotional Framework
사단 (四端): [Four Beginnings of Virtue] Incipient Virtues, Moral Foundations, Ethical Impulses
화장세계 (華藏世界): [Adorned World] Phenomenal Realm, Manifested Universe, Empirical Reality
장엄세계 (莊嚴世界): [Solemn World] Noumenal Realm, Hidden Reality, Transcendent Dimension
화엄경 (華嚴經): [Flower Garland Sutra] Sutra of Interconnectedness, Holistic Cosmology, Unified Vision
자력 (自力): [Self-Power] Self-Reliance, Autonomy, Intrinsic Strength
타력 (他力): [Other-Power] External Assistance, Divine Grace, Heteronomous Support
정각 (正覺): [Perfect Enlightenment] Complete Awakening, Ultimate Realization, Supreme Buddhahood
열반 (涅槃): [Nirvana] Cessation of Suffering, Ultimate Liberation, Tranquil State
해탈 (解脫): [Liberation] Emancipation, Release from Samsara, Spiritual Freedom
보리 (菩提): [Bodhi] Awakening, Enlightenment, Wisdom
반야 (般若): [Prajna] Transcendent Wisdom, Intuitive Insight, Ultimate Knowledge
무아 (無我): [Anatta/Non-Self] Egolessness, Absence of Permanent Self, Impersonality
성불 (成佛): [Attaining Buddhahood] Becoming a Buddha, Achieving Enlightenment, Spiritual Perfection

허경영 강연: 지식과 지혜, 그리고 세상을 보는 관점

제1장 지식과 지혜의 본질

1.1 지식과 지혜의 차이
인간의 지식은 식재료와 같고, 지혜는 요리 도구와 같다. 지식은 지혜로 잘 다루어질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현대 사회는 인공지능(AI)의 발전으로 지식 수준이 급격히 상승하였으나, 지혜는 정체되어 지식이 지혜를 압도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따라서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방편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1.2 지식을 지혜로 전환하는 방법
지식은 마음으로 볼 때 지혜로 변한다. 눈으로만 지식을 보면 지혜가 되지 못한다. 교실에서 얻는 지식은 지혜가 되기 어렵다. 그러나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지혜로 바뀐다. 예를 들어, 사랑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시기와 질투가 따르지만,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비심으로 변한다.

1.3 부모의 사랑과 자비심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자식이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마음속으로는 미워하지 않는다. 탕자라도 사랑의 눈으로 보면 탕자로 보이지 않는다.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과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지식을 눈으로만 보면 단순한 지식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바뀐다.

1.4 지혜와 체험의 관계
인간이 말하는 지혜는 체험을 통해 완성된다. 그러나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지혜가 된다. 부모가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사랑은 자비심이 된다. 이는 측은지심,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이어진다.

제2장 세상을 보는 두 가지 관점: 눈과 마음

2.1 사랑을 보는 관점
사랑을 눈으로 바라보면 시기와 질투가 발생한다. 그러나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가 된다. 이는 측은지심으로 발전한다.

2.2 정보를 보는 관점
지식을 눈으로 보면 단순한 지식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지혜로 바뀐다. 이 원리를 인간은 잘 알지 못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눈으로 보면 그것은 전쟁이 된다.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정보를 마음으로 보면 평화가 된다.

2.3 하늘궁과 세계 평화
강연자는 하늘궁을 찾은 이유가 있다. 하늘궁에서 얻은 정보는 지상의 평화를 이루는 데 사용된다. 하늘궁이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평화를 실현할 것이다. 종교들이 전쟁을 만드는 것과 대조적이다.

2.4 정보와 평화
정보는 대부분 전쟁용으로 사용되지만, 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된다. 영성으로 바라보면 핵무기 정보가 핵폭발처럼 일어나 하늘궁이 급속도로 확장될 것이다.

제3장 방편 지혜와 사단칠정

3.1 방편 지혜의 의미
방편 지혜는 세상을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이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안경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으로 보는 것. 이를 영으로 보면 더욱 강력해져 모든 것이 재물로 바뀐다. 이것이 방편 지혜이다.

3.2 사단칠정(四端七情)
방편 지혜는 측은지심,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연결된다.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이러한 지심들이 발현된다. 그러나 눈으로 바라보면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의 칠정(七情)이 된다. 칠정은 감정적인 반응이며, 사단은 이성적인 마음이다.

3.3 사랑과 양보
자기 아내를 마음으로 사랑하면 양보하게 된다. 좋은 옷이 있으면 아내에게 먼저 사 입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눈으로만 보면 “그 옷 입은 게 어때서 그래?”와 같은 말이 나온다. 사랑이 있으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칠정은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사단은 깊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 사단과 칠정은 인간의 마음 하나를 둘로 나눈 것이다.

제4장 마음으로 보는 세상

4.1 사랑의 본질
두 사람이 사랑하는 모습을 낮은 세계의 사람은 부러워하고 질투한다. 그러나 도인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사랑 속에서도 이별의 아픔을 내다보며 측은하게 여긴다. 마음으로 사랑을 바라보면 현재의 기쁨뿐 아니라 미래의 고난까지 헤아리게 된다.

4.2 아버지의 딸 사랑
아버지가 딸을 볼 때, 그 아름다움 뒤에 시집가서 겪을 고생을 염려한다. 딸의 미래를 마음으로 생각하며 돈을 모으고 더 가르치려 한다. 첫딸이 태어나면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딸의 삶의 기준을 설정한다. 이는 딸의 미래를 마음으로 사랑하기 때문이다.

4.3 사물을 보는 태도
남의 여자를 사랑할 때 눈으로만 보면 외모에만 끌려 싸움으로 이어진다. 진정한 행복이나 미래는 보지 못한다. 사물을 볼 때 눈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마음으로 보아야 한다. 들에 핀 꽃도 마음으로 측은지심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 함부로 꺾으면 하늘에 죄를 짓는 것이다. 꽃은 많은 사람이 보라고 피어 있는 것이지, 꺾으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제5장 지혜와 방편 지혜의 중요성

5.1 지혜로운 관점과 천박한 관점
사물을 지혜로 바라보면 측은지심,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된다. 그러나 눈으로 바라보면 희로애락애오욕과 같은 천박한 감정이 된다. 자기 딸을 단순히 예쁘다고만 볼 수 없다.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 딸에게는 항상 측은지심으로 존재한다.

5.2 정의를 보는 관점
정의를 눈으로 보면 단순히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에 그친다. 그러나 정의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찾아온다.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보면 자신부터 변화시키고 남의 평화를 짓밟지 않게 된다. 정의를 눈으로 보는 자는 남에게 정의를 들이대지만, 마음으로 보는 자는 자신에게 정의를 들이대어 스스로를 바로잡는다.

제6장 종교적 관점: 불교와 기독교

6.1 불교와 기독교의 차이
불교는 정의를 깨달음에 들이대고, 기독교는 믿음에 들이댄다. 불교는 믿음보다 깨달음을 중요시한다. 불교의 신앙은 깨닫는 것이고, 기독교의 신앙은 믿는 것이다. 불교는 믿음이 없으므로 에너지가 없다.

6.2 석가모니와 깨달음
석가모니는 깨달은 자이지 신이 아니다. 불교의 최고 경지는 깨달음이며, 이를 극락이라 한다. 깨달으면 고통을 이해하게 되어 지옥이 없어진다.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는 크게 달라진다.

6.3 몸을 보는 관점
마음으로 몸을 바라보면 건강해진다. 나쁜 습관을 고치고 음식을 조절하게 된다. 그러나 외모로 몸을 바라보면 늙어가는 모습에 염세주의자가 되거나 몸부림치게 된다. 마음으로 몸을 보면 건강을 지킬 수 있지만, 외모로 몸을 보는 자는 치장에만 매달린다.

6.4 자력과 타력
불교는 남에게 눈을 돌리지 않고 자력을 의지하는 종교이다.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누가 깨달음을 줄 수 없다. 불교는 자력으로 부처가 되는 길을 제시한다. 반면 기독교는 타력을 의지하는 종교이다. 하나님, God-man, 예수를 통해 구원받는 것을 믿는다.

6.5 불교의 세계관: 화엄경
불교의 세계관은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이다. 화장(華藏)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를 의미하고, 장엄(莊嚴)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를 의미한다. 이 두 세계가 합쳐진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다. 석가모니는 보이는 세계에 속지 말라고 가르쳤다. 보이는 세계는 지식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지혜이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화장 세계이고, 마음으로 보는 세계는 장엄 세계이다. 이 둘이 합쳐진 것을 화엄경이라 한다. 석가모니의 사상은 철학적으로 매우 훌륭하다. 기독교인도 불교의 코스를 거쳐야 화장과 장엄을 모두 깨달을 수 있다. God-man을 만나야 이 두 세계를 온전히 깨닫게 된다.

Keyword Frequency

마음 (mind/heart): 48
사랑 (love): 20
지혜 (wisdom): 18
지식 (knowledge): 10
정보 (information): 9
딸 (daughter): 8
눈 (eyes): 7
불교 (Buddhism): 7
세계 (world): 7
정의 (justice): 7

  1. Today’s Central Metaphor
    The central metaphor is the distinction between viewing things with the “eyes” (superficially, leading to negative emotions and conflict) versus viewing them with the “mind/heart” (deeply, leading to wisdom, compassion, and peace).

  2. Lecture in Numbers
    10m 19-inch / 24-inch: The size of an old television set a rich man keeps in his room.
    30 years: The period since the rich man’s wife passed away, yet he still keeps the old television.
    Four beginnings (사단): The four moral sprouts (compassion, shame, deference, right/wrong) that arise when viewing things with the mind.
    Seven emotions (칠정): The seven human emotions (joy, anger, sorrow, delight, love, hate, desire) that arise when viewing things with the eyes.

  3. Signature Sentence
    “그니까 우리가 사랑을 사랑으로 바라보,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는 거와 눈으로 바라보는 거, 네, 이게 완전히 달라.”

  4. Concise Summary & Highlights
    Viewing things with the mind transforms knowledge into wisdom, fostering compassion and peace, unlike superficial observation.

Knowledge becomes wisdom when viewed with the mind, not just the eyes.
Viewing love with the mind leads to compassion, while viewing it with the eyes causes jealousy and conflict.
Information viewed with the mind brings peace, but with the eyes, it leads to conflict.
“Bangpyeon Jihye” (방편지혜) means changing one’s perspective from eyes to mind, or even to spirit, to transform perception.
The four beginnings (사단) are products of viewing with the mind, while the seven emotions (칠정) are from viewing with the eyes.
Viewing one’s body with the mind leads to health, but with the eyes, it leads to awareness of aging and negativity.
Buddhism is about self-enlightenment (자력), while Christianity relies on external power (타력) through a savior.

  1. Scriptural / Religious Citations
    Buddhism (불교):
    Hwaeomgyeong (화엄경): He explains that Hwaeomgyeong (Avatamsaka Sutra) represents the Buddhist worldview, combining “Hwajang” (화장, visible world) and “Jangeom” (장엄, hidden/inner world).
    Four Beginnings (사단): Cheoeun Jisim (측은지심 – compassion), Suho Jisim (수오지심(羞惡之心) – shame/disgust at evil), Sayang Jisim (사양지심 – deference/yielding), Sibi Jisim (시비지심 – right/wrong). These are presented as the result of viewing with the mind.
    Seven Emotions (칠정): Joy, anger, sorrow, delight, love, hate, desire. These are presented as the result of viewing with the eyes.

Christianity (기독교):
Referenced as a religion of “faith” (믿음) and reliance on “external power” (타력) through God, God-man, or Jesus.

  1. Historical & Epochal Context
    The lecture is situated in a modern era characterized by the rapid advancement of AI, which has dramatically increased human knowledge levels. This rise in knowledge, however, has not been matched by an increase in wisdom, leading to a situation where knowledge “swallows” wisdom. He suggests this creates a critical need for a new form of wisdom, referred to as “Bangpyeon Jihye.” The world is also described as being in an “information flood.”

  2. Key Figures & Events Referenced
    Prodigal Son (탕자): Used as an example of a child who squanders his father’s money but is still seen with love by his parents when viewed with the heart.
    Israel-Palestine Conflict (이슬람과 유대교 전쟁, 중동): Mentioned as an example of religious conflict that creates war instead of peace.
    Sakyamuni (석가모니): The founder of Buddhism, described as an “enlightened one” (깨달은 자) rather than a god, who taught about the visible and invisible worlds.
    Jesus (예수): Mentioned as a Messiah figure in Christianity, through whom salvation is achieved.

  3. Core Concept Definitions
    Wisdom (지혜): Knowledge viewed with the mind/heart. It leads to compassion, peace, and understanding.
    Bangpyeon Jihye (방편지혜 – Expedient Wisdom): The wisdom of changing one’s perspective from viewing with the eyes to viewing with the mind, or even with the spirit, to transform perception and outcomes.
    Four Beginnings (사단 – Sa-dan): Four moral sprouts: compassion (측은지심), shame/disgust at evil (수오지심(羞惡之心)), deference/yielding (사양지심), and discerning right/wrong (시비지심). These are the result of viewing with the mind.
    Seven Emotions (칠정 – Chil-jeong): Joy, anger, sorrow, delight, love, hate, and desire. These are the result of viewing with the eyes.
    Hwajang (화장) & Jangeom (장엄): Concepts from the Hwaeomgyeong (Avatamsaka Sutra). Hwajang refers to the visible, external world, while Jangeom refers to the hidden, internal, and majestic world. Buddhism’s worldview encompasses both.
    Self-power (자력 – Jaryeok): The Buddhist concept of achieving enlightenment through one’s own efforts.
    Other-power (타력 – Taryeok): The Christian concept of relying on a higher power (God, God-man, Jesus) for salvation.

  4. Central Questions & Answers
    Central Questions:
    What is wisdom?
    What is Huh kyung young’s opinion on the current era where human wisdom is failing?
    What is “Bangpyeon Jihye” (expedient wisdom)?

Speaker’s Main Answers:
Wisdom is knowledge viewed with the mind/heart, transforming it from mere information into a deeper understanding that fosters compassion and peace.
In the current era, human wisdom is limited because people view things with their eyes, leading to conflict and superficiality. The solution is to adopt “Bangpyeon Jihye” by shifting perspective from the eyes to the mind, or even to the spirit.
Bangpyeon Jihye is the ability to change one’s “glasses” or perspective. It means moving beyond superficial observation (eyes) to a deeper, more compassionate understanding (mind), which can even transform into material wealth when viewed with the spirit.

  1. Conclusion & Strategic / Philosophical Implications
    The lecture concludes by reiterating that the way one perceives the world—whether with the eyes (superficially) or the mind (deeply)—fundamentally alters the outcome, transforming potential conflict into peace, and mere knowledge into profound wisdom. The final message is a call to adopt a “mind-centric” perspective in all aspects of life, from personal relationships to global issues, to achieve true peace, health, and understanding.

Philosophically, this implies that reality is not solely objective but is heavily shaped by subjective perception. Ethical implications suggest that true justice and love arise from internal reflection and empathy rather than external judgment. Strategically, it advocates for a shift in focus from external control and competition (viewing with eyes) to internal transformation and harmonious coexistence (viewing with mind). He also suggests that understanding both the visible (Hwajang) and invisible (Jangeom) worlds, as in Buddhism, is crucial, and that a “God-man” (divine human) is needed to fully grasp both.

  1. Cross-Referencing
    Huh kyung young’s “Haneulgung” (하늘궁): He references his own “Haneulgung” as a place he found based on “information” to bring peace to the world, suggesting it will spread globally to achieve world peace. This implies a broader mission or movement associated with the speaker.
    God-man: He refers to himself as a “God-man” (divine human) who has come to earth, implying a unique role in bringing about this new wisdom and world peace. This is a recurring theme in Huh kyung young’s teachings.

  2. Multilingual Translation Strategy
    To produce reliable multilingual versions, especially given potential inaccuracies in automatic translation and the philosophical depth of the content, a multi-stage workflow is recommended:

Initial Machine Translation (MT) with Custom Glossary: Use a robust MT engine (e.g., DeepL, Google Translate) but feed it a custom glossary of key terms (e.g., “Bangpyeon Jihye,” “Hwajang,” “Jangeom,” “Sa-dan,” “Chil-jeong,” “God-man,” “Haneulgung”) to ensure consistent and accurate rendering of core concepts.
Human Post-Editing by Subject Matter Experts: Native speakers of the target language who are also familiar with philosophical/religious discourse (especially Korean spiritual concepts) should review and edit the MT output. This step is crucial for capturing nuances, cultural context, and His unique tone.
Back-Translation for Quality Assurance: For critical passages, perform a back-translation from the target language to Korean. This helps identify any misinterpretations or loss of meaning in the translation process.
Contextual Review: A final review by someone familiar with Huh kyung young’s broader teachings can ensure that the translated content aligns with his established philosophy and terminology.
Community Feedback (Optional but Recommended): If feasible, release initial translations to a community of followers or interested individuals for feedback, especially for less common languages.

This approach balances efficiency with accuracy, leveraging technology while ensuring human expertise and contextual understanding.

  1. Content Gaps & Unaddressed Areas
    Practical Application of “Viewing with the Spirit”: While the lecture discusses viewing with the eyes and mind, the concept of viewing with the “spirit” (영으로) is introduced as even more powerful (transforming into wealth/재물), but its practical application or how one cultivates this spiritual vision is not elaborated.
    Mechanism of Transformation: viewing with the mind “changes” things (e.g., knowledge to wisdom, information to peace), but the underlying psychological or spiritual mechanism of this transformation is not deeply explored.
    Addressing Skepticism/Counterarguments: The lecture presents its core ideas as self-evident truths (” ” – “Isn’t that right?”), but it does not address potential skepticism or counterarguments regarding the subjective nature of “mind-viewing” or how to resolve conflicting “mind-views” among individuals.
    Specific Examples of “Bangpyeon Jihye” in Action: Beyond the general principle, more concrete, diverse examples of how “Bangpyeon Jihye” can be applied to complex modern problems (e.g., economic inequality, political polarization) would strengthen the argument.
    The Role of “God-man” in Facilitating Wisdom: He mentions his role as a “God-man” and the “Haneulgung” in bringing peace, but the specific connection between his divine status and the cultivation of “Bangpyeon Jihye” in others is not fully detailed.

  2. Future Predictions & Prophetic Statements
    Global Spread of Haneulgung and World Peace: “This will spread throughout the world, and world peace will be realized.”
    Establishment of Haneulgung Globally: “After building the third and fourth Haneulgung, it will eventually spread worldwide, with Haneulgung in every country… We can build Haneulgung all over the world.”

Executive Insight
This lecture by Huh kyung young offers a profound re-framing of perception, arguing that true wisdom, peace, and even health stem from viewing the world not merely with the “eyes” (superficial, objective observation) but with the “mind/heart” (deep, empathetic understanding). The core takeaway is that shifting one’s internal perspective—a concept termed “Bangpyeon Jihye”—transforms knowledge into wisdom, conflict into peace, and self-interest into compassion. For professionals, this implies that effective leadership, problem-solving, and innovation require moving beyond data-driven analysis to cultivate emotional intelligence and a holistic, empathetic worldview. It challenges the prevailing knowledge-centric paradigm, suggesting that an overreliance on objective information without a corresponding increase in wisdom can lead to societal discord and personal dissatisfaction. The lecture advocates for an internal transformation as the prerequisite for external harmony and progress.

지식과 지혜의 차이: 마음으로 보는 관점

  1. 지식과 지혜의 본질적 차이
    지식(知識)은 사물을 눈으로 볼 때 얻어지는 정보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지혜(智慧)로 변화합니다. 교실에서 습득하는 지식은 눈으로 보는 것에 그쳐 지혜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지혜로 전환됩니다. 이는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을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시기(猜忌)와 질투(嫉妬)가 따르지만,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비심(慈悲心)으로 변모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미워하지 않는 것은, 자식을 사랑의 눈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탕자(蕩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마음으로 볼 때 탕자는 더 이상 탕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발생하며, 이는 부자지간(父子之間)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부모는 자식을 향한 사랑을 통해 탕자조차도 반갑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마음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합니다. 지식 또한 눈으로만 보면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승화됩니다. 인간의 지혜는 체험을 통해서만 완성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지혜가 됩니다. 부모가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사랑은 자비심(慈悲心)이 되고,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으로 발현됩니다. 이는 단순한 사랑이 아닌, 차원이 다른 사랑의 이해를 의미합니다.

  1. 정보와 평화: 마음의 관점
    정보(情報)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눈으로만 바라보면 그것은 곧 전쟁(戰爭)이 됩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목적은 대개 타인과의 경쟁이나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平和)가 찾아옵니다. 이는 전쟁과 평화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정보가 전쟁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마음으로 보면 평화를 이루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궁(天空宮)의 정보는 이 지상에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늘궁이 세워지고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며, 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평화(世界平和)를 실현하는 기반이 됩니다. 반면, 종교들은 때때로 세계 평화 대신 전쟁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기업들이 정보를 전쟁용으로 활용하는 것과 달리,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됩니다. 영성(靈性)의 관점에서 정보를 바라보면, 핵무기 정보가 핵폭발처럼 강력한 변화를 일으켜 하늘궁이 급속도로 확장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방편지혜(方便智慧)는 세상을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안경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며, 나아가 영(靈)으로 보면 더욱 강력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마음으로만 보아도 지혜로 바뀌는데, 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재물(財物)로 바뀌는 등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방편지혜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을 포함합니다.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이러한 사단이 발현되지만, 눈으로만 보면 시기 질투가 생겨 사랑하는 사람도 결국 다투게 됩니다.

  1. 마음으로 보는 사랑과 사물
    사랑을 마음으로 보지 않고 눈으로만 보면, 결국 다툼과 고통 속에서 헤어지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 재벌 회장이 낡은 텔레비전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이유는, 그 텔레비전이 단칸방 시절 아내와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과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낡은 고물로 보지만, 회장은 마음으로 아내와의 정(情)을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새 텔레비전이 와도 바꾸지 않는 것은, 그 텔레비전이 죽은 아내를 기억하고 젊은 시절의 행복을 그리워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으로 사물(事物)을 보는 방식입니다. 기계적인 눈으로 보면 고물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소중한 의미를 지닙니다.

눈과 마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은 마음으로 사물을 볼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欲) 같은 칠정(七情)에 불과합니다. 칠정은 감정적인 반응이며, 사단은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발현됩니다. 마음으로 볼 때 사단이 나타나고, 눈으로 볼 때 칠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마음으로 사랑하면 양보(讓步)와 배려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좋은 옷이 있으면 아내에게 먼저 사주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눈으로만 보면 “그 옷 입은 게 어때서?”와 같은 이기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사랑이 있으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게 됩니다. 칠정은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사단은 깊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1.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 사단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은 인간의 마음을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눈 것입니다. 배운 자, 즉 도인(道人)은 마음으로 사물을 보기에 측은지심(惻隱之心) 등이 발현됩니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 낮은 세계의 사람은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지만, 도인은 그 사랑 속에 있을 이별과 고통을 내다보며 측은함을 느낍니다. 아버지가 어린 딸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딸의 아름다움 뒤에 시집가서 겪을 고생과 어려움을 미리 걱정하며 마음으로 딸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딸에게 돈을 더 주려 하고, 더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합니다. 첫 딸이 태어나면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딸이 혹시라도 고생할까 봐 자신의 삶의 기준을 설정합니다. 이는 딸의 미래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눈으로만 보면 남의 여자를 사랑할 때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하고 다가서지만, 마음속에 진정한 사랑이 없기에 결국 다투게 됩니다. 그 사람의 진정한 행복이나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물을 볼 때 눈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마음으로 봐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칠정(七情)이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사단(四端)입니다. 기쁨을 볼 때도, 양반(兩班)이나 도인은 그 기쁨 뒤에 반드시 슬픔과 대가(代價)가 따른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함부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남의 딸을 볼 때는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고, 그저 즐거움의 대상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들에 핀 꽃도 하늘의 허락 없이 꺾으면 안 됩니다. 꽃은 많은 사람이 보라고 피어 있는 것이지, 꺾으라고 피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피어 열매를 맺고 씨를 퍼뜨리려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꽃을 볼 때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저 꽃이 들에 있지만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피어 있네”라고 생각하며 그 꽃의 자존심(自尊心)을 존중해야 합니다. 함부로 꺾으면 하늘의 저주를 받습니다. 남의 딸을 괴롭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즐거움만을 좇는 행위이며, 이는 심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1. 지혜와 방편지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지혜(智慧)는 사물을 바라볼 때 필수적입니다. 똑같은 사랑이라도 지혜로운 눈으로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이 되지만, 눈으로만 바라보면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欲) 같은 천박한 칠정(七情)이 됩니다. 자기 딸을 단순히 예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딸을 바라보면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겪을 고생과 어려움을 생각하면 언제나 측은지심이 딸에게 향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딸에게 잘해주려 합니다. 남자는 딸을 마음으로 보지 않고, 당장의 기쁨과 즐거움만을 좇아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눈으로만 보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의(正義) 또한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이 다릅니다. 정의를 눈으로 보면 단순한 정의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平和)가 됩니다. 눈으로 정의를 보면 남이 어떻게 하는가만 살피게 되지만,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보면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 합니다. 남의 평화를 짓밟지 않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정의입니다. 정의를 눈으로 보는 자는 남을 재단(裁斷)하고 비판하는 데 사용하지만, 마음으로 보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정의를 들이대어 스스로를 바로잡습니다. 불교(佛敎)는 정의를 깨달음(覺悟)에 들이대고, 기독교(基督敎)는 믿음(信仰)에 들이댑니다. 불교는 깨달음에 목표를 두며, 믿음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불교의 신앙은 깨닫는 것이고, 기독교의 신앙은 믿는 것입니다.

  1. 몸과 종교의 본질: 마음과 영의 관점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 건강(健康)이 됩니다. 몸의 나쁜 점을 고치고, 음식 습관을 개선하는 등 건강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외모(外貌)로만 몸을 바라보면 매일 늙어가고 죽음으로 향하는 자신을 보며 염세주의(厭世主義)에 빠지게 됩니다. 외모에만 치중하는 자는 치장(治粧)에만 매달리지만, 마음으로 몸을 바라보는 자는 몸의 메커니즘과 리듬을 유지하고 살려 건강해지는 데 집중합니다. 사물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마음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고,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로 외부를 보는 것입니다.

불교(佛敎)는 남에게 눈을 돌리는 종교가 아니라, 자력(自力)으로 스스로를 의지하는 종교입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누구도 깨달음을 줄 수 없습니다. 불교는 자력으로 부처(佛陀)가 되는 길을 제시하고, 기독교(基督敎)는 타력(他力), 즉 하나님(上帝), God-man, 예수(耶穌)와 같은 메시아(救世主)를 통해 구원(救援)받는 길을 제시합니다. 기독교는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지만, 불교는 이미 모든 것이 와 있으며,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불교의 세계관은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로, 보이는 세계(화장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장엄세계)가 합쳐진 것입니다. 화장세계는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를 의미하고, 장엄세계는 마음으로 보는 내적인 세계, 즉 우주의 원리와 변화를 의미합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보이는 세계에 속지 말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으로 보라고 설파했습니다. 화장장엄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하며, 이를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합니다. 보이는 세계는 지식(知識)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지혜(智慧)입니다. 불교는 철학적(哲學的)인 종교이며, 최고 목적은 깨달음(覺悟)입니다. 정각(正覺), 열반(涅槃), 해탈(解脫), 보리(菩提), 반야(般若)의 무아(無我), 성불(成佛)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기독교는 신앙(信仰)이 근본이고, 불교는 깨달음(覺悟)이 근본입니다. 화장과 장엄의 만남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눈으로 보는 세계와 마음으로 보는 세계의 조화를 의미합니다. 물질 세계는 겉껍데기에 불과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장엄한 세계의 일부입니다. 기독교인도 불교의 철학적 코스를 이해해야만 화장과 장엄 세계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God-man을 만나야 이 두 세계를 모두 깨닫게 됩니다.

지식과 지혜의 차이: 마음으로 보는 관점

  1. 지식과 지혜의 본질적 차이
    지식(知識)은 사물을 눈으로 볼 때 얻어지는 정보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볼 때 비로소 지혜(智慧)로 변화합니다. 교실에서 습득하는 지식은 눈으로 보는 것에 그쳐 지혜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지혜로 전환됩니다. 이는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사랑을 인간의 눈으로 보면 시기(猜忌)와 질투(嫉妬)가 따르지만,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비심(慈悲心)으로 변모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의 잘못에도 불구하고 미워하지 않는 것은, 자식을 사랑의 눈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탕자(蕩子)가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그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을 마음으로 볼 때 탕자는 더 이상 탕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을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발생하며, 이는 부자지간(父子之間)에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부모는 자식을 향한 사랑을 통해 탕자조차도 반갑고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마음으로 보는 것과 눈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결과를 초래합니다. 지식 또한 눈으로만 보면 단순한 정보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승화됩니다. 인간의 지혜는 체험을 통해서만 완성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지혜가 됩니다. 부모가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그 사랑은 자비심(慈悲心)이 되고,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으로 발현됩니다. 이는 단순한 사랑이 아닌, 차원이 다른 사랑의 이해를 의미합니다.

  1. 정보와 평화: 마음의 관점
    정보(情報)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눈으로만 바라보면 그것은 곧 전쟁(戰爭)이 됩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목적은 대개 타인과의 경쟁이나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平和)가 찾아옵니다. 이는 전쟁과 평화라는 극명한 대조를 보여줍니다. 정보가 전쟁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마음으로 보면 평화를 이루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늘궁(天空宮)의 정보는 이 지상에 평화를 이루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늘궁이 세워지고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았으며, 이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평화(世界平和)를 실현하는 기반이 됩니다. 반면, 종교들은 때때로 세계 평화 대신 전쟁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기업들이 정보를 전쟁용으로 활용하는 것과 달리,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됩니다. 영성(靈性)의 관점에서 정보를 바라보면, 핵무기 정보가 핵폭발처럼 강력한 변화를 일으켜 하늘궁이 급속도로 확장되는 것과 같은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방편지혜(方便智慧)는 세상을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은 눈으로 보는 안경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며, 나아가 영(靈)으로 보면 더욱 강력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마음으로만 보아도 지혜로 바뀌는데, 영으로 보면 모든 것이 재물(財物)로 바뀌는 등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납니다. 방편지혜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을 포함합니다.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볼 때 이러한 사단이 발현되지만, 눈으로만 보면 시기 질투가 생겨 사랑하는 사람도 결국 다투게 됩니다.

  1. 마음으로 보는 사랑과 사물
    사랑을 마음으로 보지 않고 눈으로만 보면, 결국 다툼과 고통 속에서 헤어지게 됩니다. 이는 인간의 일반적인 생각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 재벌 회장이 낡은 텔레비전을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이유는, 그 텔레비전이 단칸방 시절 아내와 함께했던 행복한 추억과 사랑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낡은 고물로 보지만, 회장은 마음으로 아내와의 정(情)을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새 텔레비전이 와도 바꾸지 않는 것은, 그 텔레비전이 죽은 아내를 기억하고 젊은 시절의 행복을 그리워하는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으로 사물(事物)을 보는 방식입니다. 기계적인 눈으로 보면 고물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소중한 의미를 지닙니다.

눈과 마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은 마음으로 사물을 볼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欲) 같은 칠정(七情)에 불과합니다. 칠정은 감정적인 반응이며, 사단은 이성적인 판단을 통해 발현됩니다. 마음으로 볼 때 사단이 나타나고, 눈으로 볼 때 칠정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자기 아내를 마음으로 사랑하면 양보(讓步)와 배려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좋은 옷이 있으면 아내에게 먼저 사주고, 자신은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사랑입니다. 그러나 눈으로만 보면 “그 옷 입은 게 어때서?”와 같은 이기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사랑이 있으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게 됩니다. 칠정은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사단은 깊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1. 딸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과 사단
    사단(四端)과 칠정(七情)은 인간의 마음을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눈 것입니다. 배운 자, 즉 도인(道人)은 마음으로 사물을 보기에 측은지심(惻隱之心) 등이 발현됩니다. 두 사람이 사랑하는 모습을 볼 때, 낮은 세계의 사람은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지만, 도인은 그 사랑 속에 있을 이별과 고통을 내다보며 측은함을 느낍니다. 아버지가 어린 딸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딸의 아름다움 뒤에 시집가서 겪을 고생과 어려움을 미리 걱정하며 마음으로 딸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딸에게 돈을 더 주려 하고, 더 많은 것을 가르치려 합니다. 첫 딸이 태어나면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딸이 혹시라도 고생할까 봐 자신의 삶의 기준을 설정합니다. 이는 딸의 미래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걱정하는 아버지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눈으로만 보면 남의 여자를 사랑할 때 그저 예쁘다고만 생각하고 다가서지만, 마음속에 진정한 사랑이 없기에 결국 다투게 됩니다. 그 사람의 진정한 행복이나 미래는 보이지 않습니다. 사물을 볼 때 눈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마음으로 봐야 합니다. 눈으로 보는 것은 칠정(七情)이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사단(四端)입니다. 기쁨을 볼 때도, 양반(兩班)이나 도인은 그 기쁨 뒤에 반드시 슬픔과 대가(代價)가 따른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함부로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않습니다. 남의 딸을 볼 때는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고, 그저 즐거움의 대상으로만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이라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들에 핀 꽃도 하늘의 허락 없이 꺾으면 안 됩니다. 꽃은 많은 사람이 보라고 피어 있는 것이지, 꺾으라고 피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해 피어 열매를 맺고 씨를 퍼뜨리려는 자연의 섭리입니다. 꽃을 볼 때도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저 꽃이 들에 있지만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피어 있네”라고 생각하며 그 꽃의 자존심(自尊心)을 존중해야 합니다. 함부로 꺾으면 하늘의 저주를 받습니다. 남의 딸을 괴롭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즐거움만을 좇는 행위이며, 이는 심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것입니다.

  1. 지혜와 방편지혜: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지혜(智慧)는 사물을 바라볼 때 필수적입니다. 똑같은 사랑이라도 지혜로운 눈으로 보면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같은 사단(四端)이 되지만, 눈으로만 바라보면 희로애락(喜怒哀樂)과 애오욕(愛惡欲) 같은 천박한 칠정(七情)이 됩니다. 자기 딸을 단순히 예쁘다고만 할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딸을 바라보면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앞으로 겪을 고생과 어려움을 생각하면 언제나 측은지심이 딸에게 향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딸에게 잘해주려 합니다. 남자는 딸을 마음으로 보지 않고, 당장의 기쁨과 즐거움만을 좇아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눈으로만 보는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정의(正義) 또한 눈으로 보는 것과 마음으로 보는 것이 다릅니다. 정의를 눈으로 보면 단순한 정의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平和)가 됩니다. 눈으로 정의를 보면 남이 어떻게 하는가만 살피게 되지만,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보면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 합니다. 남의 평화를 짓밟지 않고,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정의입니다. 정의를 눈으로 보는 자는 남을 재단(裁斷)하고 비판하는 데 사용하지만, 마음으로 보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정의를 들이대어 스스로를 바로잡습니다. 불교(佛敎)는 정의를 깨달음(覺悟)에 들이대고, 기독교(基督敎)는 믿음(信仰)에 들이댑니다. 불교는 깨달음에 목표를 두며, 믿음보다는 스스로 깨닫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불교의 신앙은 깨닫는 것이고, 기독교의 신앙은 믿는 것입니다.

  1. 몸과 종교의 본질: 마음과 영의 관점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바라보면 건강(健康)이 됩니다. 몸의 나쁜 점을 고치고, 음식 습관을 개선하는 등 건강을 위한 노력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외모(外貌)로만 몸을 바라보면 매일 늙어가고 죽음으로 향하는 자신을 보며 염세주의(厭世主義)에 빠지게 됩니다. 외모에만 치중하는 자는 치장(治粧)에만 매달리지만, 마음으로 몸을 바라보는 자는 몸의 메커니즘과 리듬을 유지하고 살려 건강해지는 데 집중합니다. 사물을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마음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고,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로 외부를 보는 것입니다.

불교(佛敎)는 남에게 눈을 돌리는 종교가 아니라, 자력(自力)으로 스스로를 의지하는 종교입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하며, 누구도 깨달음을 줄 수 없습니다. 불교는 자력으로 부처(佛陀)가 되는 길을 제시하고, 기독교(基督敎)는 타력(他力), 즉 하나님(上帝), God-man, 예수(耶穌)와 같은 메시아(救世主)를 통해 구원(救援)받는 길을 제시합니다. 기독교는 메시아가 올 것이라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이지만, 불교는 이미 모든 것이 와 있으며,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 불교의 세계관은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로, 보이는 세계(화장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장엄세계)가 합쳐진 것입니다. 화장세계는 눈에 보이는 물질 세계를 의미하고, 장엄세계는 마음으로 보는 내적인 세계, 즉 우주의 원리와 변화를 의미합니다.

석가모니(釋迦牟尼)는 보이는 세계에 속지 말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마음으로 보라고 설파했습니다. 화장장엄세계는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가 동시에 존재함을 의미하며, 이를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합니다. 보이는 세계는 지식(知識)이고, 보이지 않는 세계는 지혜(智慧)입니다. 불교는 철학적(哲學的)인 종교이며, 최고 목적은 깨달음(覺悟)입니다. 정각(正覺), 열반(涅槃), 해탈(解脫), 보리(菩提), 반야(般若)의 무아(無我), 성불(成佛)이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기독교는 신앙(信仰)이 근본이고, 불교는 깨달음(覺悟)이 근본입니다. 화장과 장엄의 만남은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 눈으로 보는 세계와 마음으로 보는 세계의 조화를 의미합니다. 물질 세계는 겉껍데기에 불과하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장엄한 세계의 일부입니다. 기독교인도 불교의 철학적 코스를 이해해야만 화장과 장엄 세계를 온전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God-man을 만나야 이 두 세계를 모두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