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4.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와 주인 아저씨를 만나듯이, 신을 직접 만나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대

진정으로 업을 소멸하려면, 베푼 것을 마음에서 씻어내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응무소주이생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영성의 세계는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다. 인과응보의 순환(개미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를 없애버려야 한다.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악인이고, 이웃을 위해 살았다면 선인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처럼, 선한 일을 하고도 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중도(中道)의 경지에 이르면 선과 악의 구분이 사라진다.

2025.01.04. 오욕을 이성으로, 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켜라!

Transcend the Five Desires: From Instinct to Reason, Reason to Spirituality”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응무소주이생심 (應無所住而生其心): → [Produce a Mind Without Dwelling / Mind of Non-Attachment]
오욕(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을 이성으로, 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궁극적으로는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얻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1. 명예와 지위의 허상 이해
  • 명예와 지위는 일시적인 즐거움일 뿐, 결국 고통과 불안을 초래합니다.
  • 무명(이름 없음)이 진정한 즐거움.
  • 벼슬이나 높은 자리는 절벽 꼭대기에 있는 것과 같아 항상 불안합니다.
  • 남편 자리, 아내 자리 등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삶이 중요합니다.
  • 명예에 미치면 인생을 망치고,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못하게 됩니다.
  • 명예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사람이 보.
  1. 오욕(五慾)의 본질 파악
  • 오욕은 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을 포함하며, 그 밑에는 마음 심(心)자가 붙어 있습니다.
  • 오욕은 본능적인 욕망이며, 고쳐지지 않은 욕망.
  • 본능의 욕에서 마음을 없애는 것이 정상적인 욕.
  • 남을 돕는 마음은 본능의 욕구가 아닌 좋은 욕.
  1. 본능을 이성으로 승화
  • 본능을 고치면 이성이 됩니다.
  • 본능은 희로애락 애오욕(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의 일곱 가지 감성에 사로잡힌 것.
  • 이성은 측은지심(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악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겸손히 사양하는 마음),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과 같은 사단(四端).
  • 수도(修道)를 통해 본능을 버리고 이성으로 돌아서면, 오욕에 매달린 사람들이 불쌍해 보.
  • 이성적인 사람은 빵을 줘도 남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남으면 먹습니다.
  • 본능적인 사람은 굶어 죽을까 봐 먼저 가져갑니다.
  • 본능을 이성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1. 이성을 영성으로 승화
  • 이성 세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영성 세계로 들어갑니다.
  • 영성 세계에서는 업(業)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 남에게 밥을 주고도 “내가 밥을 줬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업이 됩니다.
  •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아무것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는 경지에 이르러야 업이 없습니다.
  • 불교의 인연 인과(因緣因果)는 업장(業障)과 같으며, 차생고 피생(此生故彼生: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의 우주 자연 원리.
  • 이 업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업을 줄여야 합니다.
  • 영성 세계에서는 체(體)와 용(用)을 초월한 세계가 가능합니다.
  • 영성 세계에서는 성령과 천사를 받고, 사람을 살리는 영 능력이 생깁니다.
  1. 행동의 판단 기준
  • 모든 행동을 할 때 남에게 이로운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 남에게 이로우면 옳은 생각(선)이고, 나에게만 이로우면 틀린 생각(악).

  • 선과 악은 중도의 세계에서는 하나이며, 선한 일을 하고도 선했다고 하지 않아야 합니다.

  • 오욕(五慾): 인간의 다섯 가지 본능적인 욕망 (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

  • 본능: 희로애락 애오욕과 같이 고쳐지지 않은 인간의 원초적인 감성.

  • 이성: 본능을 갈고 닦아 변화된 마음으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사단(四端)을 포함.

  • 영성: 이성 세계를 넘어선 단계로, 업을 차단하고 신과 직접 소통하며 영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경지.

  • 업(業):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 인과(因緣因果)의 결과로, 행위에 따라 쌓이는 선악의 총체.

  •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금강경의 구절로, 아무것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뜻. 집착 없이 행하는 것을 의미.

  • 차생고 피생(此生故彼生):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는 뜻으로, 모든 존재가 상호 의존적임을 나타내는 불교 원리.

  • 종교의 종류

    • 불교: 심무도(心無道), 즉 자기 마음을 찾아 깨닫는 철학.
    • 기독교: 심신교(尋神敎), 즉 신을 찾아 기도하는 신학.
    • 초종교: 신을 직접 모시는 시신교(侍神敎)로, 신을 직접 만나고 대화하는 종교.
  • 행복의 기준: 하루 세끼라도 먹으면 대만족하는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천국)를 갈 준비를 하는 것.

  • 미디어 시청: 허경영 강연 외에는 다른 미디어를 볼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인과 선인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남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가 그 기준이며, 나에게 이로운 것은 악, 남에게 이로운 것은 선이라는 판단 기준을 통해 오욕(五慾)을 이성으로, 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오욕을 이성으로, 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켜라!

  1. 인간의 욕망과 행복의 본질
    명예와 지위는 진정한 즐거움을 주지 못한다.
    높은 명예와 지위는 결국 내려오게 되어 있으며, 오히려 불안과 고통을 수반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권력자들이 명예 때문에 불행을 겪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임금조차도 권력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불안해하며, 평범한 농부의 삶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이름 없는 삶(무명)이 진정한 즐거움이다.
    명예나 지위에 얽매이지 않는 삶은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롭다.
    벼슬이나 출세는 절벽 끝에 서 있는 것과 같아 항상 불안감을 동반한다.
    경쟁 사회에서 명예에 집착하면 인생을 망칠 수 있다.

  2. 오욕(五慾)의 본질과 승화
    오욕은 인간의 본능적인 욕망이다.
    오욕(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 등)은 모두 ‘마음 심(心)’이 붙어 있는 본능적인 욕구이다.
    이러한 욕구들은 고쳐지지 않은, 순수한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능적인 욕구를 이성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이성은 본능적인 욕구에서 마음을 없애고,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과 같이 긍정적인 욕구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맹자의 사단(四端), 즉 측은지심(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악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지심(겸손히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이성의 영역에 해당한다.
    반면, 본능은 희로애락(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과 같은 감성에 사로잡힌 상태이다.
    수도(修道)를 통해 본능을 갈고 닦아 이성으로 나아간 사람은 타인의 고통을 측은히 여기고(측은지심), 자신의 욕구를 절제하며 남을 배려한다.
    본능에 사로잡힌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먼저 챙기지만, 이성적인 사람은 남을 먼저 생각하고 양보한다.
    본능을 이성으로 바꾸는 것은 마음에서 불필요한 욕구를 제거하는 과정이다.

  3.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 영성으로 나아가기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썩는다.
    본능과 오락에 빠져 있는 한,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고통의 바다에 머물게 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변질되고 썩기 마련이다.
    육체 또한 병들고 고통받으며, 이는 개인과 가족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준다.
    보이지 않는 세계, 영성을 추구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것에 매달리면 결국 후회하게 된다.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하루 세 끼를 먹는 것에 만족하고, 보이지 않는 천국(영성)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4. 종교와 영성의 차이
    불교는 마음을 찾는 철학이다.
    불교는 ‘심무도(尋牛圖)’처럼 자신의 마음(소)을 찾아가는 종교이며, 마음의 행방을 깨닫는 철학이다.
    기독교는 신을 찾는 신학이다.
    기독교는 보이지 않는 신을 책과 기도를 통해 찾아가는 신학이다.
    초종교는 신을 직접 만나는 영성의 세계이다.
    기존의 철학과 신학을 초월하여 신을 직접 모시고 만나는 것이 초종교이다.
    이는 마치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와 주인을 만나는 것과 같다.
    신을 직접 대면하고 대화하며, 천국을 경험하는 것이 영성의 세계이다.
    이러한 영성의 세계는 기존의 후진적인 종교관을 초월하는 것이다.

  5. 인과응보와 업, 그리고 영성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될 일은 된다는 것은 인과응보의 원리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
    이는 불교의 인연인과(因緣因果) 사상과 연결된다.
    업(業)은 인과응보의 다른 표현이다.
    인연인과를 다른 말로 업장(業障) 또는 업(業)이라고 한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는 차생피생(此生彼生)의 원리는 우주 자연의 변치 않는 원리이다.
    영성을 통해 업을 줄일 수 있다.
    본능에 머물러 있으면 업이 계속 증가하지만, 이성 세계를 넘어 영성 세계로 들어가면 업을 차단할 수 있다.
    남에게 베풀고도 “내가 베풀었다”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 또한 업이 된다.
    진정으로 업을 소멸하려면, 베푼 것을 마음에서 씻어내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응무소주이생심(應無所住而生其心)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영성의 세계는 윤회를 벗어나는 길이다.
    인과응보의 순환(개미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하나를 없애버려야 한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에 들어가면 열반적정(涅槃寂靜)에 이르고,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반야(般若)의 경지이다.
    신을 직접 만나는 초종교는 이러한 윤회와 업의 굴레를 초월하는 대단한 경험이다.

  6. 행동의 판단 기준: 이로움과 해로움
    모든 행동의 판단 기준은 ‘남에게 이로운가’이다.
    어떤 행동을 할 때, 그것이 남에게 이로운지 생각하면 올바른 생각이다.
    반대로, 나에게만 이롭고 남에게 해롭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며 악(惡)이다.
    선인과 악인의 기준은 타인에 대한 태도이다.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악인이고, 이웃을 위해 살았다면 선인이다.
    궁극적으로 선과 악은 하나이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처럼, 선한 일을 하고도 선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중도(中道)의 경지에 이르면 선과 악의 구분이 사라진다.
    이는 응무소주이생심의 정신과 일맥상통한다.

이 세상에서 악인과 선인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가? 남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에 따라 선악이 결정되며, 이는 본능을 이성으로, 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에서 업을 줄이고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는 길입니다.

  1. 명예와 지위는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다
    명예와 지위는 일시적이며 불안정하여 진정한 즐거움을 주지 못하며, 이름 없는 삶이 오히려 평안과 행복을 가져다준다.
    1.1. 명예와 지위의 허망함
    명예는 일시적이며 불안정하다
    명예는 결국 즐거움을 주지 못하며, 높이 올라간 사람은 반드시 내려오게 된다고 말한다.
    유관순 열사의 사례처럼 살아있을 때는 명예를 얻지 못했지만, 죽고 나서야 이름이 알려지는 경우가 있다.
    대통령이나 장관의 명예는 1년에서 5년 정도로 짧으며, 물러나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을 언급하며 명예를 추구하는 것이 결국 즐거움이 아님을 강조한다.
    이름 없는 삶의 평안함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이름 없는 자, 즉 무명(無名)을 아는 자라고 말한다.
    임금이 명예 없이 시골에서 아내와 오순도순 밥을 먹고 밭을 가는 농부의 삶을 부러워하는 것은 최고의 명예가 이름 없는 삶에 있음을 보여준다.
    임금은 언제 독살당할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신하가 먼저 음식을 먹어 안전을 확인하는 등 마음 편할 날이 없다.
    반면 이름 없는 자는 죽임을 당할 위험이 없어 항상 마음이 편안하다.

1.2. 명예와 지위가 주는 고통
벼슬과 권력의 불안정성
백궁 천국에 가는 것이 중요하며, 벼슬은 언제 날아갈지 모르는 불안정한 것이다.
벼슬 있는 사람은 절벽 꼭대기에 서 있는 것과 같아 항상 떨어질까 봐 불안해한다.
권력이 있다고 해서 목에 힘줄 일이 아니며, 오히려 이름 없는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살 수 있다.
가장 자리의 중요성
남편 자리, 아내 자리와 같은 가장 자리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여성이 국장이나 처장 등 높은 지위에 오르는 것을 출세라고 여기지만,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명예욕이 가져오는 폐해
경쟁 사회에서 명예에 미쳐버리면 인생을 망치게 된다.
명예에 사로잡히면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된다.
명예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있다.

  1. 오욕을 이성으로, 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키는 과정
    인간의 본능적인 오욕을 이성으로, 나아가 영성으로 승화시켜야 진정한 행복과 깨달음에 이를 수 있으며, 이는 업을 줄이고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2.1. 오욕과 본능의 이해
    오욕의 본질
    오욕(五慾)은 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 등 다섯 가지 욕구를 의미한다.
    오욕의 ‘욕(慾)’자 밑에는 마음 심(心)자가 붙어 있어, 이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임을 나타낸다.
    오욕은 본능의 욕망이며, 고쳐지지 않은 원초적인 욕망이다.
    본능과 이성의 차이
    식욕, 색욕, 수면욕, 명예욕 등은 본능에서 온 욕망이다.
    본능의 욕에서 마음을 없애는 것이 정상적인 욕이 된다.
    남을 돕겠다는 마음은 욕이지만, 본능적인 나쁜 욕구가 아니다.
    본능을 고친 것이 이성(理性)이며, 이성은 사단(四端)인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나타난다.
    반면 본능은 희로애락 애오욕(喜怒哀樂 愛惡欲)과 같은 일곱 가지 감정으로, 본능에 사로잡힌 자들의 감성이다.

2.2. 본능을 이성으로 승화시키는 과정
수도를 통한 이성으로의 전환
본능을 갈고 닦아 버리고 이성으로 돌아선 자들, 즉 수도를 한 자들의 마음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바뀐다.
오욕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이 생기며, 자신은 본능에 매달리지 않게 된다.
본능의 희로애락에 얽매이면 싸우고 자존심 대결을 하지만, 거기서 벗어나면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생긴다.
이성적인 행동의 예시
어린아이는 빵을 주면 먼저 가져가려 하지만, 본능을 버리고 이성으로 바뀐 자들은 남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남으면 먹는다.
본능에 사로잡힌 사람은 굶어 죽을까 봐 먼저 가져가지만, 이성적인 사람은 서로 양보한다.
이처럼 본능을 이성으로 바꿔야 한다.

2.3. 영성으로의 나아감과 진정한 행복
명예의 허망함과 이름 없는 삶의 가치
명예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는 것이므로, 마음에서 명예를 빼야 한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편안하며, 무명(無名)이 위력이다.
전쟁이 나면 이름 있는 자들은 표적이 되지만, 이름 없는 자들은 안전하다.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나는 길
본능에 치우쳐 오락에 빠져 있는 한, 탐진치(貪瞋癡)에서 벗어날 수 없고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썩어버리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매달리면 후회하게 된다.
백궁에 가서 만나는 존재들은 병들지 않고 썩지 않지만, 이 세상의 인연은 결국 고통으로 이어진다.
만족과 영성으로의 준비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하루 세 끼라도 먹으면 대만족해야 한다.
이러한 마음가짐이 보이지 않는 세계, 즉 천국을 갈 준비가 되며 영성 공부가 된다.

  1. 종교의 본질과 신인의 역할
    인간의 운명은 스스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업에 의해 정해지며, 불교와 기독교는 각각 마음과 신을 찾는 종교이지만, 신인은 이 모든 것을 초월하여 신을 직접 만나는 초종교의 시대를 연다.
    3.1. 인간의 운명과 업의 원리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될 일은 된다
    인간이 스스로 어떻게 하든지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될 일은 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원리와 같다.

3.2. 불교와 기독교의 본질
불교는 마음을 찾는 철학
불교는 심무도(尋牛圖)처럼 소를 찾아다니는 것과 같으며, 소는 자기 마음을 상징한다.
불교는 심심교(尋心敎), 즉 마음을 찾는 종교이며, 마음의 행방을 찾아 깨닫는 종교이다.
불교는 철학으로 분류된다.
기독교는 신을 찾는 신학
기독교는 심신교(尋神敎), 즉 신을 찾는 종교이다.
신을 직접 볼 수 없어 책과 기도를 통해 신을 찾는다.
기독교는 신학으로 분류된다.
두 종교의 차이점
불교는 내 마음을 찾는 것이고, 기독교는 신을 찾는 것이므로 다르다.
이 두 가지가 세상 종교의 양대 산맥이다.

3.3. 신인의 초종교 시대
신인의 등장과 초종교
철학과 신학이 우리나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지만,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 모든 것을 초월하는 초종교(超宗敎)의 시대를 연다.
신인은 시신교(侍神敎), 즉 신을 모시는 종교로, 신을 직접 만날 수 있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와 주인 아저씨를 만나듯이, 신을 직접 만나 마주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후진적인 종교를 초월해야 한다
심심교와 심신교는 후진적인 것이므로, 이를 초월해야 한다.

  1. 업을 줄이고 영성으로 나아가는 길
    인과응보의 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본능을 이성으로, 이성을 영성으로 승화시켜야 하며, 모든 행동의 기준은 남에게 이로운가에 두어야 한다.
    4.1. 인과응보와 업의 원리
    인과응보의 법칙
    인간이 스스로 어떻게 하든지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될 일은 된다는 것은 철학에서 다루는 내용이다.
    석가모니는 인(因)과 과(果) 사이에 연(緣)이 있지만, 연을 초월하여 바로 과를 붙였다.
    인연인과(因緣因果)는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다는 법칙이다.
    업(業)의 개념
    인연인과를 다른 말로 업장(業障), 즉 업(業)이라고 한다.
    차생피생(此生彼生)의 원리
    차생피생(此生彼生)은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는 의미로, 불교의 원리이자 우주 자연의 원리이다.
    이는 인연인과와 같은 맥락으로,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는 상호 연관성을 나타낸다.
    업을 줄이는 방법
    업에서 이탈하는 방법은 업을 줄이는 것이다.
    본능에 있을 때는 업이 계속 증가하지만, 이성 세계로 들어가고 더 나아가 영성 세계로 들어가면 업을 차단할 수 있다.

4.2. 영성으로의 승화와 무주상보시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중요성
남에게 밥을 주고도 “내가 밥을 줬다”고 생각하면 그것 또한 업이 된다.
상대방의 밥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돈으로 밥을 사주고도 마음에서 깨끗이 잊어버려야 한다.
응무소주 이생심(應無所住 而生其心), 즉 ‘아무것도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라’는 가르침처럼, 베풀고도 베풀었다는 생각조차 없어야 업이 되지 않는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나오고’ 하는 것은 유해(有海), 즉 개미 쳇바퀴 돌듯이 윤회하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를 없애버리면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세계가 되고, 이는 열반적정(涅槃寂靜)과 반야(般若)의 세계로 이어진다.

4.3. 감성, 이성, 영성의 차이와 신인의 역할
감성, 이성, 영성의 차이
사람은 감성으로 사는 사람, 이성으로 사는 사람, 영성으로 사는 사람으로 나뉜다.
기존 종교들은 대부분 이성의 세계에 머물러 있다.
신인의 영성 세계
신을 만나면 영성(靈性)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신인은 성령과 천사를 주며, 실제 영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유일한 존재이다.
신인은 이론과 실체가 일치하며, 축복을 통해 사람을 살리고 영적인 능력을 부여한다.
체(體)와 용(用)의 초월
체(體)가 있으면 용(用)이 있고, 용이 있으면 체가 있는 것이 끊임없이 바뀌는 세상의 이치이다.
하지만 영성의 세계에서는 체도 아니고 용도 아닌 세계가 가능하며, 이는 수학처럼 거짓말을 하지 않는 숫자와는 다른 마음의 영역이다.

4.4. 선악 판단의 기준
남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모든 행동을 할 때, 그것이 남에게 이로운가를 생각해야 한다.
남에게 이롭다면 그것은 틀리지 않은 생각이며, 옳은 생각이고 선(善)이다.
반대로 나에게만 이롭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며, 악(惡)이다.
진정한 선인의 삶
자신의 몸 하나만 건사하고, 가족을 불량한 돈으로 먹여 살리지 않는 떳떳한 삶이 부유한 삶이다.
신인을 만나기 전에는 남에게 이로운가가 선악 판단의 기준이 된다.
자신만을 위해 살았다면 악인이고, 이웃을 위해 살았다면 선인이다.
선악을 초월한 경지
석가모니의 말처럼 선과 악은 하나이며, 무주상보시의 세계에서는 선한 일을 하고도 선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한다.
이 경지에 이르러야 불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다.

명예 (名譽): → [Reputation / Esteem]

무명 (無名): → [Anonymity / Obscurity]
오욕 (五慾): → [Five Desires / Quintuple Appetites]
물욕 (物慾): → [Materialism / Avarice]
색욕 (色慾): → [Carnal Desire / Lust]
식욕 (食慾): → [Appetite / Gluttony]
수면욕 (睡眠慾): → [Desire for Sleep / Somnolence]
재물욕 (財物慾): → [Greed for Wealth / Cupidity]
본능 (本能): → [Instinct / Primal Urge]
이성 (理性): → [Reason / Rationality]
사단 (四端): → [Four Moral Sprouts / Four Beginnings of Virtue]
측은지심 (惻隱之心): → [Compassion / Pity]
수오지심 (羞惡之心): → [Sense of Shame and Dislike / Disapprobation]
사양지심 (辭讓之心): → [Sense of Deference and Yielding / Courtesy]
시비지심 (是非之心): → [Sense of Right and Wrong / Moral Judgment]
희로애락애오욕 (喜怒哀樂愛惡慾): → [Seven Emotions / Septenary Passions]
감성 (感性): → [Sensibility / Emotion]
수도 (修道): → [Spiritual Discipline / Cultivation of the Way]
탐진치 (貪瞋癡): → [Three Poisons (Greed, Anger, Ignorance)]
사필귀정 (事必歸正): → [Justice Will Prevail / All Things Return to Right]
심무도 (尋牛圖): → [Ten Ox-Herding Pictures / Stages of Zen Practice]
심심교 (尋心敎): → [Mind-Seeking Doctrine / Philosophy of Self-Discovery]
심신교 (尋神敎): → [God-Seeking Doctrine / Theology]
시신교 (侍神敎): → [God-Serving Doctrine / Direct Communion with God]
초종교 (超宗敎): → [Trans-Religion / Supra-Religion]
인연인과 (因緣因果): → [Causality and Consequence / Karmic Connection]
업장 (業障): → [Karmic Obstruction / Negative Karma]
차생피생 (此生彼生): → [This Arises, That Arises / Dependent Origination]
영성 (靈性): → [Spirituality / Divine Nature]
응무소주이생심 (應無所住而生其心): → [Produce a Mind Without Dwelling / Mind of Non-Attachment]
무녀무상 (無念無相): → [No-Thought, No-Form / Formless Awareness]
열반적정 (涅槃寂靜): → [Nirvana’s Tranquility / Ultimate Peace]
반야 (般若): → [Prajna / Transcendent Wisdom]
체와 용 (體와 用): → [Essence and Function / Substance and Application]

명예와 지위는 진정한 즐거움이 아니다

명예는 결국 즐거움을 주지 못합니다. 높은 명예에 오른 사람은 반드시 내려오기 마련이며, 살아서는 유관순 열사처럼 감옥에서 죽지만, 죽고 나면 이름이 올라갑니다. 명예 때문에 재미를 보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통령이나 장관의 명예는 1년에서 5년 정도이며, 물러나면 감옥에 가기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처럼, 명예를 추구하는 것은 결국 즐거움이 아닙니다.

무명(無名)의 즐거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은 무명(無名), 즉 이름이 없는 자입니다. 유명한 임금이 지방 순시를 하다가 농부가 아내와 오순도순 새참을 먹는 모습을 보면 눈물을 흘립니다. 임금은 “나도 저렇게 명예 없이 시골에서 아내와 오순도순 밥을 먹고 밭을 가는 생활을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최고의 명예입니다. 임금은 언제 밥에 독약이 들어올지 몰라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국수를 비벼도 신하가 먼저 먹어보고 죽지 않아야 임금이 먹을 수 있습니다. 이름 없는 자는 누가 죽이려 하지 않으니 항상 마음이 편합니다. 임금은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것과 같습니다. 후궁이 많다고 기분 좋을 리 없습니다. 서로 자기 파벌에서 후궁을 내세우려 하고, 그 여자에게서 아이가 없으면 또 문제가 됩니다. 임금은 여자와 함께 살아도 문제, 안 살아도 문제입니다. 인간의 명예나 지위는 결국 즐거움이 아닙니다. 이름 없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벼슬의 허망함과 불안정성
여러분은 백궁 천국에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벼슬은 언제 날아갈지 모릅니다. 벼슬 있는 사람은 절벽 꼭대기에 서 있는 것과 같아 항상 떨어질까 봐 불안해합니다. 오늘 회사를 봐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내일 당장 인사이동으로 버려질 수도 있습니다. 권력이 있다고 목에 힘줄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마음 편안하게 사는 것을 부러워해야 합니다. 그저 남편 자리, 아내 자리만 지키면 됩니다. 여자가 국장이나 처장으로 출세했다고 올라가는 것은 썩 좋은 것이 아닙니다. 경쟁 사회에서 명예에 미쳐버리면 인생을 망칩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 맹목에서 벗어나야 비로소 사람이 보입니다.

오욕(五慾)과 본능의 한계
우리에게는 오욕(五慾)이 있습니다. 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 등이 그것입니다. 이 다섯 가지 욕에는 모두 ‘마음 심(心)’자가 붙어 있습니다. 이것은 본능적인 욕망입니다. 고쳐지지 않은 욕망입니다. 식욕, 색욕, 수면욕, 명예욕은 모두 본능에서 온 것입니다. 이 본능의 욕에서 마음을 없애는 것이 정상이 되는 욕입니다. 남을 돕겠다는 마음은 욕이지만, 본능적인 나쁜 욕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능에서 고쳐지지 않은 것입니다.

본능을 이성으로 승화시키는 길
본능을 고친 것을 이성(理性)이라고 합니다. 이성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사단(四端)입니다. 반면 본능은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과 같은 칠정(七情)입니다. 이는 본능에 사로잡힌 자들의 감성입니다. 본능을 갈고닦아 버리고 이성으로 돌아선 자들, 즉 수도(修道)를 한 자들의 마음은 측은지심으로 바뀝니다. 오욕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본능의 희로애락을 따지다 보면 싸우고 자존심 대결을 하지만, 거기서 벗어나면 옳고 그름이 명확히 보입니다. 어린아이는 빵을 주면 먼저 가져가려 하지만, 본능을 버리고 이성으로 바뀐 자들은 남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으면 먹습니다. 본능에 사로잡힌 사람은 굶어 죽을까 봐 먼저 가져갑니다. 본능을 이성으로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오욕에서 마음을 빼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썩는다
명예는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됩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편안합니다. 무명(無名)이 위력입니다. 전쟁이 나면 이름 있는 자들은 북한에서 내려와 다 잡아갑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은 안전합니다. 이처럼 세상은 우리가 본능에 치우쳐 있고 오락에 빠져 있는 한, 탐진치(貪瞋癡)를 벗어날 수 없고 고통의 바다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백궁에 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고 썩습니다. 백궁에 가서 만나는 여자는 썩지 않고 병도 들지 않습니다. 이 세상 여자는 연애할 때는 건강해 보이지만, 몇 년 지나면 자궁암, 난소암, 유방암 등으로 고통받습니다. 인체가 생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치료하다가 남자의 신세가 망가지고 집안은 초상집 분위기가 됩니다. 한 사람은 맨날 아파 죽는다고 시름하고 항암 치료가 10년, 20년 계속됩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이런 눈에 보이는 세상에 매달리면 나중에 후회합니다. 일이 잘 되든 안 되든 하루 세 끼라도 먹으면 대만족입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세계, 천국을 갈 준비가 되어 있고 공부가 된 것입니다.

종교의 본질과 초종교의 시대
“인간이 스스로 어떻게 하든지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될 일은 된다”는 말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을 의미합니다. 불교는 철학이며, 마음을 찾는 종교입니다. 심무도(尋牛圖)처럼 소를 찾아다니는 것은 자기 마음을 찾아가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신을 찾는 종교, 즉 심신교(尋神敎)입니다. 세상의 종교는 이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불교는 마음을 찾는 것이니 철학이고, 기독교는 신을 찾는 것이니 신학입니다. 이러한 철학과 신학이 우리나라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신이 나타난 초종교의 시대가 왔습니다. 이는 이 두 가지를 모두 초월합니다. 우리는 신을 직접 모시는 시신교(侍神敎)입니다. 신을 찾을 필요 없이 직접 와 있기 때문에 만나면 됩니다. 병아리가 계란에서 박차고 나와 주인 아저씨를 만나듯, 우리는 신을 직접 마주하고 대화하며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심심교나 심신교에 머무는 것은 후진적인 것입니다.

인과응보와 업(業)의 순환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될 일은 된다”는 것은 인과(因果)의 원리입니다. 석가모니는 인(因) 다음에 연(緣)이 있어야 하지만, 연을 초월하여 바로 과(果)를 붙였습니다.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 없는 원인이 없습니다. 이것을 업장(業障) 또는 업(業)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있다”는 차생피생(此生彼生)의 원리입니다.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나고, 저것이 생겨나면 이것이 생겨납니다. 이는 우주 자연의 원리이며, 여기서 이탈할 수 없습니다.

업을 차단하고 영성으로 나아가는 길
업에서 이탈하는 방법은 업을 줄이는 것입니다. 본성에 있을 때는 업이 계속 증가하지만, 이성 세계로 들어가고, 더 나아가 영성 세계로 들어가면 업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남에게 물질적으로 밥을 주고도 “내가 밥을 줬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업이 됩니다. 당연히 저 사람의 밥이라고 생각하고, 내 돈으로 밥을 사주고 아무도 모르게 마음에서 싹 씻어버려야 합니다. 이것이 응무소주이생심(應無所住而生其心)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나오고, 저것이 있으면 이것이 나오는 개미 쳇바퀴 도는 유해(流轉)의 세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를 없애버리면 문여무상(聞如無相)의 세계가 되고, 열반적정(涅槃寂靜)이 되며, 반야(般若)의 세계가 됩니다.

감성, 이성, 영성의 차이
우리는 감성으로 사는 사람, 이성으로 사는 사람, 영성으로 사는 사람이 다릅니다. 기존 종교들은 거의 이성의 세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나 신을 만나면 영성(靈性)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성령을 주고 천사를 주며, 실제 영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자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이론과 실체가 일치하는 것입니다. 축복을 주면 사람도 살리고 영 능력이 생깁니다. 이러한 영성을 직접 경험하게 해줍니다. 체(體)가 있으면 용(用)이 있고, 용이 있으면 체가 있습니다. 이것이 맨날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나 체도 아니고 용도 아닌 세계, 즉 영성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행동의 판단 기준: 남에게 이로운가
수학만큼 거짓말이 없는 것처럼 숫자는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행동을 할 때는 이것이 틀린지 안 틀린지 알려면 남에게 이로운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남에게 이롭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로운가 생각한다면 그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판단 기준은 아주 쉽습니다. 남에게 이롭다면 맞는 생각이고, 나에게 이롭다면 틀린 생각입니다. 나는 그저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됩니다. 봉사를 하든, 약자를 돕든, 내 가족을 먹여 살리면 됩니다. 내 가족은 불량한 돈으로 살지 않습니다. 이렇게 떳떳하게 살면 얼마나 부자입니까. 선의 기준, 악의 기준, 종교의 기준, 모든 기준은 신인을 만나기 전에는 남에게 이로우면 옳은 것이고 선입니다. 남에게 해로우면서 나에게 이로우면 악입니다. 내가 얼마나 나를 위해 살았느냐는 악인이고, 내가 얼마나 이웃을 위해 살았느냐는 선인입니다. 그러나 석가모니의 중도(中道) 세계로 들어가면 선과 악이 하나입니다. 응무소주이생심으로 선한 일을 하고도 선했다고 하지도 않고 했다고 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그 세계까지 가야 불교를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1. The Ephemeral Nature of Fame and Position

Fame and high positions, though seemingly desirable, ultimately fail to bring true joy. Those who ascend to great heights inevitably face a descent. Historical figures like Yu Gwan-sun, who died in prison, only had their names recognized after their passing. While alive, their fame brought little personal enjoyment. Political positions, often lasting only a few years, frequently lead to disgrace or imprisonment upon their conclusion. The pursuit of such transient glory, as exemplified by the tragic end of former President Roh Moo-hyun, does not lead to happiness.

True contentment lies in anonymity. A person unknown to the world experiences genuine joy. Even a king, burdened by the constant threat of assassination and the complexities of court life, might envy the simple, harmonious life of a farmer and his wife sharing a meal in the fields. The king’s life is a constant prison, surrounded by political intrigue and the demands of numerous concubines, each vying for influence. Such a life, whether with or without a partner, is fraught with problems. Therefore, human fame and position are not sources of lasting happiness.

Anonymity is a source of strength and security. In times of conflict, those with prominent names are often targeted, while the unknown remain safe. This principle applies universally: those who are not entangled in the pursuit of worldly recognition live more securely.

  1. Transcending the Five Desires
    The five desires—materialism, lust, gluttony, sleep, and ambition—are rooted in primal instincts. The Korean character for “desire” (욕, yok) inherently contains the character for “heart” (심, sim) beneath it, signifying that these desires originate from the heart. These are not refined aspirations but raw, untamed urges.

To achieve a higher state of being, one must transcend these instinctive desires. When the “heart” is removed from these desires, they transform into noble aspirations, such as the desire to help others. This shift from instinct to reason is crucial.

Instinctive emotions are characterized by joy, anger, sorrow, pleasure, love, hate, and desire. Those who are enslaved by these seven emotions are driven by their primal nature. However, through self-cultivation and spiritual discipline, individuals can shed these instincts and embrace reason. This transformation leads to compassion, where one recognizes the suffering of those still bound by the five desires.

For example, a child driven by instinct will immediately grab a piece of bread. In contrast, someone who has cultivated reason will wait for others to eat first, taking only what remains. This demonstrates the profound difference between instinctive and rational behavior. Just as a professor might defer to others, acknowledging their potential hunger, we must transform our instincts into reason.

  1. The Journey from Instinct to Spirituality
    The path of human development progresses from instinct to reason, and then from reason to spirituality.

Religious philosophies often operate within the realm of reason. Buddhism, for instance, is a philosophy focused on finding one’s own mind, while Christianity seeks God. Both are quests for understanding, one internal and one external. However, a higher, “super-religion” transcends both by offering a direct encounter with the divine. This is akin to a chick breaking free from its shell to meet its owner, symbolizing a direct relationship with the divine rather than merely searching for it.

The concept of “what is meant to happen will happen” (사필귀정, sa-pil-gwi-jeong) is rooted in the Buddhist principle of cause and effect (인과, in-gwa). Every action has a consequence, and every consequence has a cause. This is also known as karma or “upjang” (업장). The universe operates on this principle: “if this exists, that exists; if that exists, this exists.”

To escape this cycle of cause and effect, one must reduce their karma. While instinctive actions increase karma, moving into the realm of reason begins to mitigate it. Further ascension into the spiritual realm allows one to completely transcend karma. For example, giving to others without any expectation or thought of having given creates no karma. This is the essence of “응무소주 이생심” (eung-mu-so-ju-i-saeng-sim), meaning “to dwell on nothing and yet give rise to the mind.”

  1. The Criteria for Righteous Action
    In the absence of a direct encounter with the divine, the fundamental criterion for distinguishing right from wrong, good from evil, is simple: does an action benefit others?

Righteousness and Goodness: If an action benefits others, it is righteous and good.
Wrongdoing and Evil: If an action harms others but benefits oneself, it is wrong and evil.

This principle provides a clear moral compass. Living a life dedicated to the well-being of others defines a virtuous person, while a life solely focused on self-interest defines a wicked one. However, in the highest spiritual state, as taught by figures like Sakyamuni, good and evil merge into one. In this state, one performs good deeds without acknowledging them as such, transcending the duality of good and evil.

Ultimately, clinging to the visible world leads to regret. True satisfaction comes from simple contentment, such as having three meals a day. This prepares one for the unseen world, for White Heaven. The physical world is inherently flawed, subject to decay, illness, and suffering. Relationships, though initially joyful, can become sources of immense pain and burden due to the impermanence of the human body.

Therefore, it is essential to detach from worldly attachments and focus on spiritual growth. This perspective allows one to navigate life’s challenges with peace and prepare for a higher exist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