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 有)
836 – Who is Huh Kyung-young The Messiah Who Will Save the Nation – September 15, 2012
허경영의 특별한 능력과 메시아적 역할
허경영은 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의 이름을 부르면 몸이 좋아지고 병이 낫는 현상이 나타나는가? 물론 그를 부정하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효과를 본다. 이러한 현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메시아, 도인, 선각자가 가장 많은 나라다. 계룡산에도 도인이 많다. 그러나 선각자, 깨달은 자, 선지자, 선구자 이 세 가지를 겸비한 사람은 아직 없으며, 스스로 메시아라고 칭하는 이들은 아무런 증거 없이 교회를 일으켜 유명해진 이단 종교 창시자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허경영은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는 정치인도, 종교인도 아니며, 어떤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만이 진정한 메시아다. 만약 어떤 종파에서 메시아가 나왔다면 그것은 가짜다. 나라를 구할 사람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허경영은 그러한 메시아임에도 불구하고 왜 대통령에 당선되지 못하고 공자처럼 세상을 떠돌며 주유천하(周遊天下)하고 있는가? 주유천하는 세상을 떠도는 사람을 의미한다. 공자도 여러 나라를 다니며 왕들에게 나라를 바꿔주겠다고 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요셉처럼 왕이 직접 정치를 맡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데, 공자에게는 아무도 정치를 맡기지 않았다. 스승으로 예우는 했지만, 정권을 맡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는 정권을 한 번도 잡지 못하고 죽었는데, 이를 우리는 주유천하라고 한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면 늙어서 주유천하하겠다고 여행을 다닐 수도 있다. 지금도 주유천하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왜 당을 만들고 이 고생을 하는가? 이것은 사후를 생각해서 하는 일이다. 사후를 위해서는 여러분의 성적표가 하늘에 올라간다. 지금 주유천하하는 사람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다. 이 지구에서 주유천하하는 사람들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주유천하하러 온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면 허경영은 주유천하하러 온 사람인가? 왜 대통령이 되지 못하고 있는가? 지금부터 20년 전의 일이다. 영동고속도로를 운전수와 함께 강원도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도로에서 남자 한 명을 열 명이 둘러싸고 구타하여 귀에서 피가 나는 광경을 목격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눈이 빨라 멀리서 싸우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몸에 문신이 있었고, 체격은 나보다 두 배 정도 컸다. 키는 나보다 조금 컸지만 체격이 좋았다. 열 명이 한 명을 두드려 패고 있었다. 맞는 젊은이는 속도위반을 했는지, 자신의 차 앞을 막았다는 이유로 구타당하고 있었다. 나중에 그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맞아서 쓰러져 있었고, 발로 밟히며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나는 차를 세우라고 했고, 운전수는 약 500m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고속도로 중앙선이었고, 500m를 나는 뛰어갔다. 운전수는 차에 있었고, 고속도로에는 나 혼자였다. 열 명 중 가장 덩치 큰 놈의 뺨을 양쪽으로 올려붙였다. 얼마나 긴박한 상황이었겠는가? 한 놈이 뛰어오더니 삐쩍 마른 양복 입은 사람이 와서 때리니, 그때는 사람들이 내 얼굴을 몰랐다. 20년 전, 내가 대통령에 출마하기 전이라 아무도 나를 몰랐을 때였다. 나를 보더니 미친놈이 오나 싶었을 것이다. 나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담대하게 가서 따귀를 좌우로 내리쳤다. 덩치가 큰 놈이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내 손맛은 보통 매운 것이 아니었다. 일반적인 손으로 세게 쳐도 기가 죽을 텐데, 순식간에 아이들이 어처구니없어 했다.
그러면서 호령을 하는데, 그것은 여러분이 모르는 방언이었다. 그 말에는 한 놈도 대들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런 곳에서 할 수는 없다. 유사시에 내 입에서 내가 하는 말이 아닌 말이 나오면 그 사람이 가버린다. 그렇게 아홉 놈을 무릎 꿇렸다. 내가 거기까지 가는 속도도 일반 속도가 아니었다. 일반 사람들은 걸어서 뛰어갈 텐데, 그것은 축지법이었다. 순식간에 그곳에 도착했다. 그렇게 그들을 굴복시키고, 차 안에서 울고 있던 여자를 차에 태워 보냈다. 여자의 차가 있었으니 병원에 가라고 보내고, 이놈들에게는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풀어주었다.
허경영의 초월적 권능: 법과 질서를 넘어선 심판자
원칙대로라면 이 사건은 재판을 해야 한다. 판사가 이 광경을 보았다면 재판할 수 있었을까? 없다. 경찰이 와서 검사가 기소권을 행사해야 한다.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으면 판사가 “네가 왜 사람을 때려? 징역 몇 년!”이라고 할 수 없다. 판사가 와도 소용없고, 검사가 와도 소용없다. 형사, 즉 경찰이 와서 절차를 밟아 판사는 맨 나중에 재판해야 한다.
허경영은 누구 위에 있는가? 판사 위에 있다. 원래 판사 위에는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 사면 복권을 하면 모든 법적 효력이 없어진다. 판사 위에는 대통령이 있고, 대통령 위에는 허경영이 있다. 내가 가서 이 사건을 해결했으니, 경찰이나 검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나는 경찰보다 더 신속하게 해결해 버렸다. 즉결처분하고 풀어주었으며, 두 대 때린 것이 마지막이었다. 순식간에 기선을 제압했다. 서투른 사람이 가서 때리면 맞아 죽는다. 적당히 때린 것이 아니라 있는 힘을 다해 때렸고, 두목 격인 놈을 금방 알아보고 내리치니 다른 아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왔는데, 그것이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경찰부터 대통령까지 모든 절차를 생략해 버린 것이다. 경찰의 역할을 허경영이 다 해버리고 문제 해결은 끝났다.
경찰이 실제 개입되면 복잡해진다. 폭력행위처벌법 위반이다. 지난번에 법 분야에 종사하는 고문님께 형사소송법 이야기를 했었다. 육법전서(헌법, 민법, 상법, 형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중 형법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형사소송법을 이야기하는 실수를 했다. 말을 하다 보니 그랬다. 형법은 이만큼인데 형사소송법은 이만큼 두껍다. 형사소송법이 양이 많다. 형사소송법을 열심히 공부하던 사람들은 형사소송법을 형법이라고 할 때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지난번 강의에서 형법 297조부터 306조까지, 307조는 명예훼손, 강간, 살인은 형법 250조, 강간 살인은 형법 301조 2항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이것을 잘못 알고 형사소송법이라고 한문으로 쓴 기억이 있다. 그것은 고쳐야 한다. 형법과 형사소송법은 완전히 다르다. 민법과 민사소송법도 완전히 다르다. 내가 실수를 한 것이다. 검사의 기소권 이야기를 하려다가 검사가 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이므로 형사소송법을 주로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좀 천천히 하는 것이 좋겠다.
이런 식으로 해결한 폭력 사건이 수천 건이다. 경찰들이 표창을 줘야 할 일이다. 여러분은 모를 것이다. 아무리 힘센 사람이 멱살을 잡아도 순식간에 놓게 해 버린다. 대학에 가서 공연할 때 3만 명이 운동장에 집결해 있었다. 내가 무대에 올라가자 3만 명이 완전히 미쳐서 달려들었다. 만약 일반 사람 같으면 깔려 죽었을 것이다. 박 총장도 깔려 죽었을 것이다. 내가 가는데 내 위로 사람이 6층으로 올라탔다. 한 번 만져보겠다고. 머리 위로 여섯 층이 드러누웠는데, 학생들이 나를 들고 있었다. 나는 그 터널 속으로 지나가야 했다. 차가 10m 후방에 있었는데,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10m를 가는데 아이들이 포개져 있었고, 내가 가는 길마다 포개져 있었으니 사방에 아이들이 꽉 차서 위로 올라탄 것이다. 아이들 위에 포개져 있으니 무거웠다. 수백 명이 들고 있었지만, 그 밑을 통과해 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무너지면 압사당해 죽는 것이다. 간혹 아이들 다리 사이로 기어들어와 나를 붙드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기어들어가는데, 나를 붙들면 앞이 안 보인다. 안 보이면 그 아이는 나를 붙들고 끌어안고 놓지 않는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줄 때 그런 현상이 나타난다. 딱 끌어안고 놓으려 하지 않는다. 그럼 그 아이를 어떻게 떼어내는지 아는가? 방언으로 떼어낸다. 순식간에 도망간다. 그것이 쉬운 일인가? 여러분은 거기서 압사당할 것이다.
나는 경호원이 사실 필요 없다. 어떤 경우에 어떤 사람이 위해를 가해도 경호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는 경호를 해야 한다. 일반 사람에게 방언을 하고 그러면 되겠는가? 그래서 그런 것을 한다는 것이다. 실제 위험에 처한 일이 너무 많다. 옛날에는 우리나라에 넝마주이가 많았다. 고등학교 때 야간학교에 가려고 넝마주이 동네를 지나가는데, 외진 곳이었다. 산꼭대기에 있었으니 지나가는데, 안에서 넝마주이 하나가 다른 아이를 두들겨 패고 있었다. 한 아이가 코피를 흘리며 맞고 있었다. 넝마주이들이 있는 곳은 울타리가 되어 있어서 안에 들어가면 밖이 잘 안 보였다. 내가 뛰어들어가서 넝마주이에게 왜 때리느냐고 물으니, 자기를 삥땅을 쳤다는 것이다. 그 아이가 두목이었다. 넝마를 한 것을 그 아이가 뺏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혼자 들어가서 넝마꾼 여러 명이 있는 곳에서 단숨에 해결했는데, 그때도 고등학교 때도 이상한 말이 나왔다. 나는 그런 방어 수단이 있다. 그때 나는 무슨 종교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종교나 방언, 영적 능력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허경영은 왜 태어날 때부터 그런 능력을 가지고 왔는가? 전세일 박사는 병원 원장이지만, 내가 그분 몸을 보니 병이 많았다. 몇 가지 고쳐주었다. 이 회장도 보았고, 전세일 박사도 인정했다. 그것을 고쳐주었지만, 하나만 고쳐주고 90%는 고쳐주지 않았다. 병원 원장의 몸이 시한폭탄이었다. 여러분도 살아있지만 시한폭탄을 많이 가지고 있다. 갑자기 뇌졸중으로 가거나, 조미미처럼 갑자기 죽는다. 간암이 있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간암이 있는 줄 몰랐다가 갑자기 간암 말기 판정을 받으니 일주일 만에 죽었다. 간암은 침묵의 장기라 가만히 있다가 나타난다. 이와 같이 최헌도 식도암으로 죽었다. 그 사람은 투병했지만, 조미미는 갑자기 죽었다. 우리의 생명은 내일이 보장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머니와 딸이 마주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엄청나게 소중한 것이다. 잠깐 앉아 있지만, 여러분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소중한가. 이 시간 이후에 또 만날 가능성이 있을지 모른다. 박 회장님과 나도 그렇다. 여러분은 다 보장받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만남이 소중한 것이다. 모든 인간의 만남은 살아있는 물체가 마네킹이 아니고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과 대화가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다. 미국에 가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만 있으면 한국 사람이 있으면 반갑다. 말이 통한다는 것만으로도 관상이 어떻게 생겼든, 남자든 여자든 아무 상관없다. 한국에서 왔고 한국말을 잘한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사이가 아니다. 그런 것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이 많으니 소중한 것을 모르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잠시 살아있는 것이다. 순식간이다.
내가 30년 전, 20년 전 일을 생각하면 바로 어제 같다. 박 회장님을 만난 지 3년 되었는데 어제 같다. 우리 뇌는 무엇을 인정하는가? 시간의 차이는 없다. 우리는 이 시간이 지금 있는 것 같지만, 뇌는 모든 것을 압축해 버린다. 시간과 관계없다. 그것을 압축해 있기 때문에 시간은 없다. 오히려 박 회장님이 아들을 바라보는 것보다, 지금 아들을 보는 것보다 어릴 때 아들을 키울 때 잘 걷지 못하고 넘어질 때가 더 기억이 생생하다. 오히려 그 기억이 대학교 다닐 때보다 생생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가 별로 없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머리가 무엇을 중요하다고 여기는가이다. 우리 머리의 해마, 대뇌와 소뇌 사이에 있는 해마가 중요한 기억을 선별하는데, 이 해마가 좋은 기억으로 선별해 버리면 그것은 영원히 지속된다. 그것을 우리는 여기서 농축해서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다. 뇌에서 농축한 이 해마가 모든 기능을 가지고 우리가 죽을 때, 이것을 위해서는 하늘에서 무엇을 하는가? 이것은 영원히 가져가는 고유번호다. 주민등록번호처럼. 하늘에 있는 주민등록번호를 기독교에서는 생명책이라고 이야기한다. 그것이 이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가는데, 이것은 인간끼리 교환이 안 된다. 자기 것은 자기가 가지고 가야 한다. 하늘에서 이것을 스캔하고 있다. 지금 스캔을 다 하고 있다. 여러분 마음을 다 스캔해서 호르몬을 준다. 내가 영동고속도로에서 이 사람을 도운 것도 내 뇌에 스캔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수많은 스캔이 있다.
심판자 허경영: 인간의 죄와 후손에게 미치는 영향
나는 다른 사람보다 용돈이 많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들은 용돈이 별로 필요 없지 않은가? 나는 하루에 두 끼를 먹는데, 하루에 한 번은 식당에 간다. 꼭 아이들이 많은 식당만 간다. 어른이 많은 식당은 잘 가지 않는다. 동네에 아이들이 주로 많이 오는 식당이 있다. 거기에 가면 동네 가족들이 많이 온다. 나는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을 사귀어도 나와 관계있는 곳을 간다. 음식 맛만 좋다고 가는 곳은 없다. 요리집은 가지 않는다. 그곳은 가족이 오지 않고, 뭔가 썸씽이 있는 사람끼리 만날 때 오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요리집은 좋지 않다.
식당에 가면 꼭 꼬마들이 온다. 꼬마들에게 꼭 만 원을 준다. 꼭 만 원을 줘야 한다. 어떤 때는 꼬마가 세 명 있으면 3만 원이 들어간다. 내 호주머니에는 술을 마시는 데 쓰는 돈은 없다. 그것을 줌으로써 그 부모가 굉장히 특이하게 반응한다. 내가 줄 때 “얘 돈 받으면 안 된대”라고 하면, 나는 “아니다. 이건 얘 복이다. 얘 복이니까 얘가 다음에 노트 사는 데 쓰고, 내가 줬다고 하세요. 얘가 크면 예금해 놓으세요”. 그러면 부모들은 절대 반대하지 않고 받는다. “이 어린애의 복을 거절하지 마세요.” 부모들은 고맙게 생각한다. 어린애를 예쁘다고 하지 않고 본체만체하며 정치인 자기 선전만 하고 다니면 진정성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 어린애들을 내가 원래 좋아하니까 노래를 만든 것이다. ‘콜미’도 만들어 부르고 대학 축제도 간다. 내 나이가 많은데도 왜 대학생들이 좋아할까? 초중고 학생들이 좋아할까? 이미 그런 세계를 실제 행동으로 옮겨온 사람이다. 평생 그랬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래서 나는 꼭 용돈이 많이 들어간다. 그 돈을 사람들은 아깝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 부모들은 다음에 나를 식당에서 보면 굉장히 잘해준다. 전부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를 보면 한 번이라도 돈을 받았던 부모들은 잘해준다. 처음 보는 부모들은 안 일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알면 “아이고 허경영 총재님” 이러지만 그것과는 다르다. 내가 아이들을 좋아한다는 소문이 많이 난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행동은 스캔된다. 이것이 내 호르몬 기능을 바꾼다고 했다. 나는 판사가 아니고, 만약 하늘에서 온 심판관이라면, 심판자로 왔다면, 심판자는 메시아가 아닌가? 이런 메시아로 왔다면, 판사는 지금 당장 죄지은 것만 재판하지만, 심판자는 무엇을 재판하는가? 여러분이 지금 죄를 지어서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고기만 먹는다. 그런데 아프리카에서는 밥을 굶고 있고, 북한에서는 밥을 굶고 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고기만 계속 먹는다. 그러면 그 사람은 하늘에서 무엇을 주는가? 박 회장님, 무엇을 주는가? 고지혈증을 준다. 고지혈증을 주면 피가 진해지고 지방이 많아진다. 간이 지방화되어 간 지방이 온다. 그러면 이 사람의 간 질병이 간경화나 나중에 진행되면서, 이 사람의 간 질병이 고기만 먹은 죄로 후손에게까지 대대로 내려간다. 한 대 걸러 가면서 나타나고, 계속 후손에게 직격탄을 날린다. 고지혈증이다. 내가 술을 좋아하면 알코올 중독이 dna를 살짝 바꿔서 그 후손에게 대대로 주정뱅이가 나타난다. 집안에 대대로. 모든 것은 이런 식으로 유전된다. 이 심판자는 판사가 자기 잘못한 것만 인간을 재판하는 것과 달리, 후손까지 전멸시키고 모든 것을 요만큼도 용서하지 않고 처벌하는 자리에 와 있다.
이 자가 아무데나 나타나는가? 지금 영동고속도로에서 박근혜와 안철수가 싸우고 있는 것이다. 검사가 기소해서 판사가 재판한 이후에 허경영이 나타나야 한다. 지금 국민은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구경 한창 하고 있는데 내가 말려버리면 그 사람들이 기분 좋겠는가? 지금은 어떻게든 여야 대선 후보가 싸우는 것을 국민은 구경하고 있다. 지금은 내가 나타날 때가 아니다. 아직은 우리 국민이 좀 더 실망해야 한다. 이제 어린애 강간이 아니라, 묻지 마 살인에서부터 시작해서 근로자들의 폭동이 일어나고, 직장인들의 비정규직들이 폭동이 일어나고, 난리굿이 나고 대한민국이 도처에 불이 날아다닐 때 누가 필요하겠는가? 이 자가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은 판검사가 해결한다. 아무리 판사라도 잡아와야 재판할 것 아닌가? 아직은 잡혀온 놈이 없다. 그래서 시기가 아직 이르다. 조금 더 있어야 한다.
창조의 질서와 허경영의 강림
창조주가 제일 처음에 낮과 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허경영은 이 낮과 밤과 무슨 관련이 있는가? 그 다음에 무엇을 만들었는가? 빛, 그리고 궁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다음에 무엇을 만들었는가? 여러분에게 말하지만, 빛과 어둠은 이때 만든 것이 아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적으라고 해서 적었지만, 이것을 아는 사람이 없다. 잘 보라.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을 여러분이 정정해 줘야 한다.
최초에 빛과 어둠을 만들었다. 이 말 아닌가? 빛과 어둠을 만들고 그 다음 무엇을 만들었는가? 물과 궁창을 만들었다. 빛과 어둠을 만들고 물과 궁창을 만들고, 우리는 한글을 잘 안 쓰니, 빛과 어둠을 만들고 물과 궁창을 만들고 무엇을 만들었는가? 식물과 자연을 만들었다. 이 식물과 자연을 만들고 그 다음에 무엇을 만들었는가? 낮과 밤을 만들었다. 성경을 예로 들어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려는 것이다. 그 다음에 무엇을 만들었는가? 새와 물고기를 만들었다. 낮과 밤, 새와 물고기. 마지막으로 무엇을 만들었는가? 짐승과 사람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었다. 이것은 내가 온 이유가 있어서 설명하는 것이니 잘 알아두라.
짐승과 사람을 맨 마지막에 만들었다. 이 사람이 맨 마지막에 나타나지 않는가? 중간에 나타나는 놈들은 짐승이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 짐승이라는 말이다. 지금 이 시대에 나타나는 자들은 짐승들이다. 진짜 사람은 맨 마지막에 온다. 그것이 지금 반복되고 있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한다. 잘 보라. 이 빛은 어디인가? 이것은 무엇인가? 빛이 여기 있고 낮이 왜 여기 있는가? 아는 사람? 빛이 왜 여기 있고 낮이 여기 있는가? 어둠이 있는데 왜 밤이 여기 있는가? 성경에 달통한 분이니 이것을 이야기해 달라. 왜 웃기만 하는가? 여자의 이빨은 최고의 무기다. 이빨 보고 대드는, 성질내는 남편이 있는가? 없다. 그런데 이 아래 이빨을 써야 하는데, 눈을 써서 소리를 지르고 여기서 소리가 나오면 아주 전멸이다. 빛은 여기고 낮은 여기인데 왜 모르는가? 아는 사람? 우리끼리니 부담 없이 이야기해 보라. 모르는가? 양 고문님, 교회 장로님, 빨리 이야기해 달라.
빛은 여기 있고 낮은 여기. 잘 들으라. 빛은 ‘화이트 헤븐(White Heaven)’을 말한다. 처음에 만든다. 하나님이 있는 하늘을 먼저 만든다. 지구를 만들려면 하나님이 먼저 있을 곳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하나님이 태초에 빛을 만들었다. 화이트 헤븐. 이것이 지구라면, 잘 보라. 이것이 지구다. 지구를 둘러싼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이 하늘, 이 스페이스. 중력이 980다인(dyn)이다. 중력이 980이면 나뭇잎이 꺾이지 않는다. 꺾이지 않는데 사람은 날아가지 못하게 해 놓은 것이다. 사람은 공중부양이 안 되게 해 놓은 것이다. 딱 누르고 있는 것이다. 저 빌딩에서 뛰어내려 보라. 내려오는 속도가 얼마나 센가? 그것이 내려오지만 나뭇잎사귀가 꺾이지 않을 정도의 이 중력을 980다인이라고 한다. 나뭇잎사귀는 가벼우니 안 꺾인다. 인간이 옆으로 서 있으면 꺾여 버린다. 떨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절벽을 걸어서 내려올 수 없다. 팍 꺾어버린다. 980다인이라는 것은 나뭇잎사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인간에게는 엄청난 압력이다.
이렇게 우리는 하늘로 가지 못한다. 눌려 있다. 980다인에 눌려진 이 공간, 이 지구 대기권을 시공우주라고 한다. 시간과 공간이 여기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러면 이 밖에 은하계가 있다. 12억 개의 은하계. 이것을 무슨 은하계라고 하는가? 박 총장, 이것을 무슨 은하계라고 하는가? 우리 눈에 보이는 은하계, 견우와 직녀가 있는 은하계를 우리 은하계라고 한다. 과학자들이 붙여 놓았다. 우리 은하계의 별은 12억 개다. 우리 은하계가 12억 개가 다시 있는 것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우리 은하계가 12억 개가 되니 별이 몇 개인가? 12억 곱하기 12억이다. 어마어마하지 않은가? 그렇게 많은 별이 있는 것을 우리 은하단이라고 한다. 은하단이다. 은하계가 아니라 은하단이다. 이 은하단이 다시 12억 개가 있어야 한다. 은하단이. 그럼 이 별 숫자가 얼마인가? 다시 12억을 곱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은하운이다. 허블 망원경으로 보면 하얀 구름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뿌옇게 보이는데, 그 허연 구름이 있는 그 바깥의 공간은 무한대다. 우주 전체가 하얀 별이 있는 것이 아니라, 별이 어느 지점에 모여 있다. 우리 은하운이 어느 지점에 모여 있다는 말이다. 그 외에는 스페이스다. 내가 왜 이것을 이야기해 주느냐 하면, 여기서 이 거리가 120억 광년이다. 빛의 속도로 120억 광년을 가야 은하계가 끝난다. 그럼 여기가 화이트 헤븐이다. 이 우리 은하계를 벗어난 우리 은하운을 벗어난 세계, 이것이 화이트 헤븐이다. 여기에 무엇이 있는가? 신이 있는 곳이다. 여기를 만든 것을 빛이라고 한다. 빛을 만들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 다음 두 번째, 어둠을 만들었다. 어둠은 무엇인가? 양 장로님, 어둠이 무엇인가? 어떤 교회 목사나 어떤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도 나처럼 이야기하는 사람은 없거니와, 이것을 모르고 넘어간다. 중요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다. 어둠은 무엇인가? 다크 스페이스(dark space)다. 이 우주가 어둡다는 말이다. 다크 스페이스. 이것을 무슨 우주라고 하는가? 진공 우주라고 한다. 진공. 여기는 가면 사람이 붕붕 뜨지 않는가? 이 진공 우주는 이 달걀 노른자 같은 곳을 벗어나면, 지구 대기권 끝만 벗어나면 그냥 날아다닌다. 누구나 그렇다. 여기가 120억 광년이다. 그럼 여기서부터 이 화이트 헤븐은 무한대다. 무한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그런데 창조주가 있는 곳은, 지구보다 태양이 몇 배 큰가? 3백만 배 태양이 크다. 태양이 지구보다 3백만 배 크다. 창조주가 있는 별, 백궁이라는 곳이 있다. 내가 온 곳이다. 그 백궁이라는 별은 이 태양보다 몇 배 큰가? 태양보다 몇 배 큰가? 백궁은 400만 배 크다. 얼마나 큰지 알겠는가?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1년이 걸린다. 시속 10만 7,160km로 달린다. 이렇게 달리는 데 1년 걸린다.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데 얼마 걸리는가? 28일이다. 이것이 시계의 가장 작은 초 단위, 초침이다. 이것은 분침이다. 시침은 우리는 태양을 1년에 한 바퀴 돌려야 하는데, 이 태양은 또 무엇을 돌려야 하는가? 여기 있는 북극성을 돌린다. 은하계를. 이것을 태양이 한 바퀴 도는 데 몇 년 걸리는가? 2억 5천만 년 걸린다. 이 태양의 1년은 2억 5천만 년이다. 태양이 2억 5천만 년간 돈다는 말이다. 이 태양이 다시, 이 북극성이 다시 우리 은하단을 돌아야 한다. 이것은 375억 년을 돈다. 이것을 점점 올라가면 이 백궁을 도는 그 기간이 나온다. 내가 대충 이야기해 주는 것이지만, 이것이 과학적인 것이다. 일반 과학자들은 잘 모른다. 여기가 헷갈려서.
이것이 이렇게 돌아가는데, 우리가 달나라에 인공위성을 쏠 때 만유인력 법칙은 인공위성을 쏘면 달나라까지는 간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법칙은 달나라에 가는데 정확도가 1.5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여기서 달나라까지 쏴도.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gps를 쓴다고 했다. gps에 오차가 없다. 만유인력 법칙은 왜 이렇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져 버렸는가 하면, 이 만유인력 법칙은 달이 지구를 돌 때 달의 월력이라는 것이 있다. 월력이 있고 지구가 이것을 돌 때 돌아가는 속도가 있다. 지구가 또 태양을 도는 속도가 있고, 태양이 북극성을 도는 속도가 있어서 이 속도를 다 측정해서 거기에 저항을 뽑아내야 한다. 전부. 그렇게 쏴야 그 위치가 정확하게 나온다. 그것이 gps다. 여러분의 자동차 gps가 이 돌아가는 전체 속도를 계산해서 되어 있는 것이다. 내가 지금 불광동에 있는데 부산 영도다리를 가는데, 영도다리를 입력하면 내가 이동하면서 이 지구가 자전, 공전, 또 은하가 공전하는 이 전체 속도를 계산해서 그 위치가 나와야 1.5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냥 거기만 찾아가 버리면 영도다리를 가는데 해운대가 나와 버린다. 그것이 만유인력 법칙이고, 이것이 상대성이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내가 보면 유치원생이다. 나는 이렇게 계산하지 않는다. 더 정밀하게 계산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와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나중에 이것까지는 갈 수 있으나, 비행접시를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시간을 초과해야 하고, 시간을 정지시키는 것은 얘들이 만들 수 없다. 그래서 나밖에 할 사람이 지구에 없다는 말이다. 내가 여러분에게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러 와 있는 것이다. 일반 도인이나 메시아, 종교계 지도자들은 이런 것을 모른다. 전혀 과학적인 이런 밀접한 관계를 모르면서 자기가 최고라고 한다. 성경을 좀 더 읽었다, 불경을 좀 더 읽었다, 이것뿐이다. 그 사람이 나처럼 눈빛으로 병을 고치거나 육법전서를 달달 외우거나 하는 사람이 아니다. 종교밖에 모른다.
어둠은 무엇인가? 양 고문님, 이것이 무엇인가? 다크 스페이스다. 다크 스페이스는 하나님이 은하계를 만들었다는 소리다. 은하계를. 백궁을 만들고 은하계를 만든다. 백궁, 하늘이 있는 하늘을 만들고 그 다음에 은하계를 만든다. 그 다음에 물은 무엇인가? 물은 지구를 말한다. 지구. 시공 우주를 만든 것이다. 여러분은 물이라고 하니 그것이 물인 줄 안다. 지구의 대부분이 물이다. 여러분 인체가 전부 물이다. 광물질은 얼마 없다. 그래서 그냥 물이라고 한다. 물, 이것은 지구를 만든 것이다. 그 다음에 궁창은 무엇인가? 우리 지구에서 허공, 중력을 만들었다는 소리다. 중력을. 그래서 중력 우주, 시공 우주를 만들었다. 이것은 지구이고, 이것은 시공 우주다. 세상에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런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없다. 내가 오늘 처음으로 여러분에게 하늘의 비밀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대충 이해가 갈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인간들에게 필요한 식물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먼저 다 하고, 하늘과 땅을 다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잡동사니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 시기는 어느 정도 되었는가? 이 사람이 나타날 시기다. 지금 무엇이 나타나고 있는가? 짐승이 나타나는 시기다. 짐승을 만들어 놓고 있는 시기다. 그런데 사람이 나타나라고 하면 내가 짐승인가? 아니지 않은가? 나는 여러분과 다르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나타나야 한다. 맨 나중에 지구를 다시 바꾸러 왔으니, 새롭게 창조하러 왔으니 내가 맨 마지막에 나타나야 한다. 우리 도덕 선생은 도덕을 어기고 있다.
화이트 헤븐, 다크 스페이스, 이것은 우리 지구의 블루 스카이다. 이것은 다크 스페이스이고, 이것은 블루 스카이, 파란 하늘이다. 블루 스카이에서 이 화이트 헤븐까지 가는 이 거리는 엄청난 거리다. 이 블루 스카이, 이 궁창은 블루 스카이다. 궁창. 궁창이 무슨 뜻인가? 궁창이 원래 무슨 뜻인지 아는가? 궁창이라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궁창은 무슨 뜻인가? 창고 창 자. 이것이 무슨 뜻인가? 원래 궁창이 창고인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 무슨 뜻으로 되어 있는가? 궁창이? 기독교 목사들이 이런 것을 잘 안 가르쳐 준다. 궁창이라는 말은 하늘을 한문으로 궁창이라고 한다. 하늘. 사전에 있으니 찾아보라. 궁창을 찾아보면 맑고 푸른 하늘로 나온다. 궁창이 푸른 하늘이다. 그래서 내가 블루 스카이라고 하니, “아이고 궁창이 블루 스카이냐” 이러겠지. 푸른 하늘로 나온다. 이 궁창이 푸른 하늘이다. 푸른 하늘이 맨 마지막에 만든 것이다. 제일 큰 하늘. 그 다음에 두 번째 하늘. 그 다음에 지구와 푸른 하늘을 같이 만들어야 하니 같은 순서로 만든 것이다.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해야 물리, 과학, 종교, 창조를 이해한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동맥을 왜 만들고 정맥을 왜 만들었는가? 동맥만 만들면 어떻게 되는가? 가기만 하고 오지 않는다. 돈을 벌어야 쓸 것 아닌가? 박 회장님처럼. 돈이 와야 보낸다는 말이다. 수입이 있어야 지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몸에 신이 잡아당기는 힘과 내보내는 힘을 해 놓은 것이다. 지구가 이렇게 있으면, 지구 크기에, 지구가 직경 12,756km밖에 안 되는데, 여기에 있는 중앙에 있는 마그마, 맨틀이라고 한다. 지구의 핵. 지구의 핵 크기가 얼마만한지 아는 사람? 이 지구의 핵 크기가 달 크기하고 똑같다. 달 크기만 한 것이다. 지구 껍데기가 용암 급으로 있으면 이 안이 전부 물렁물렁한 바다가 있다. 태평양 바다 같은 바다가 지구 속에 있는데, 그것이 불로 된 바다다. 용암이다. 지글지글 끓는다. 그래서 지구 내부 온도가 4,000도다. 태양의 외부 온도와 일치한다. 그럼 이 지구는 신이 만들었을까, 저절로 되었을까? 돌멩이가 모여서 되었다는 것은 전부 거짓말이다. 계획적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이 맨틀이 하는 작용이 첫째 N극과 S극을 잡아준다. 여기서 무엇을 만들어주는가? 대기에 나오는 것,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것, 무엇인가? 도덕 선생, 산소? 아니, 여기서 나오는 것 있지 않은가? 지구의 자장을 만들어 준다. 자력을. 자장을. 그것이 없으면 식물도 안 되고 아무것도 안 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그것이 몇 가우스까지 있다. 그 가우스가 있지 않은가? 땅에서 나오는 지구 평균 가우스는 몇 가우스인가? 박 회장님, 고개가 좌우로 흔드는 것만 숙달하는 것을 보라. 지구 핵이 3,467km다. 그 핵 길이가 달 크기하고 똑같다. 달 크기하고 똑같지 않은가? 인터넷에 찾으면 나온다. 달 크기하고 같다는 말이다. 그렇게 큰 용암이 지구 내부에 있다 보니, 땅을 내려갈수록 몇 도씩 올라가는가? 땅을 100m씩 내려갈 때마다 1도씩 올라간다. 점점. 4,000m 내려가면 몇 도인가? 4천도에 나온다. 지구가 그 정도 들어가면 맨틀이 나타난다. 불바다다. 불로 된 바다인데, 불덩어리로 된 물바다다.
그 액체는 신이 만들어 놓았는데, 이 지구 안에 있는 이 맨틀이 지금 어떤 작용을 하는가 하면, 천 년밖에 못 간다. 그래서 내가 온 것이다. 이것이 천 년밖에, 이 핵이다. 핵. 이 핵이, 오늘은 내가 또 허경영이 누구냐 이것을 알리려다 보니, 이 핵이 말이다. 핵이 지구의 그것을 핵이라고 한다. 지구의 핵. 이 지구의 핵이 영어로 ‘뉴클리어(nuclear)’다. 지구의 핵. 이 지구의 핵이 이렇게 지구 가운데 있다. 이것이 핵이다. 이 핵이 자장을 조절해주고 지구의 자력을 조절해주니, 모든 새들이 날개, 이 머리에, 새 뇌가 얼마만한가 하면, 날아다니는 기러기 뇌 크기가 요만하다. 기러기 뇌 크기가 이 안에 지구의 자장을 점검해서 방향을 정한다. 이 맨틀이 지구 자장을 잃어버리면 모든 조류가 이동이 정지되어 버린다. 이동할 수가 없다. 자기 방향을 모르는 것이다. 이 새들은 러시아에 있는 새가 우리나라로 오거나 월남으로 내려갈 때 무엇을 보고 가는가? 지구 자장을 머리에 입력해서 자장이 위치를 알려준다. gps처럼.
생명의 신비: 동물과 인간의 DNA, 그리고 텔로미어
새가 “우포늪에 가자, 우리 코리아의 우포늪에 가자”라고 하면, 러시아에서 기후가 더 추워지기 전에 새끼를 키워서 출발한다. 가족들이 일시에 수백 명이 하늘로 뜬다. 몸이 아픈 애가 한 명만 있어도 오지 못한다. 전체 합의를 해서 뜨면 거기서 제일 경험 있는 자가 앞에 선다. 그런데 하늘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오리 눈으로, 청둥오리 눈으로 무엇을 보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비행기 안에 들어가도 구름이 끼어서 안 보이는데, gps가 있는가? 무엇이 있는가? 그런데 뇌에 gps가 정확하게 우포늪에 도착한다.
우리는 비행기 타고 우포늪을 찾아보라 하면, 제주도 가다가 “저기쯤에 우포늪이 있대”라고 해도 찾을 수 없다. 망원경으로 아무리 봐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 그 오리는, 청둥오리는 뇌에 주파수를 가지고 그 우포늪을 찾아낸다. 코리아만 오는 것이 아니고, 코리아에서 우포늪, 지난번에 내가 갔던 곳, 지난번에 우리 어머니가 갔던 곳을 그 자식이 정확하게 찾아온다. 연어가 속초의 무슨 계곡에서 새끼를 낳아 나갔다가 태평양을 가서 하와이에서 한참 놀다가 새끼 낳을 때가 되니 여기까지 직행해 오는 것이다. 자기 어머니 고향은 하나도 틀리지 않고 찾아온다. 머릿속에 그 고기의 뇌를 뜯으면 요만하다. 이 속에 얼마나 복잡한 gps가 있는지 아는가? 신이 없다는 소리 하는 사람은 천벌 받는다.
요만한 생선 한 마리도 그냥 죽이면 안 된다. “야, 너와 나와 한 몸이 되자. 내가 너를 먹음으로써 내 몸이 건강해져서 네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하마. 하나가 되어야 하는데, 맛 되게 좋네”라고 하며 막 잡아먹으면 그것은 생선에게 예의가 아니다. 하물며 생선에게도 그래야 하는데, 짐승은 말할 것도 있겠는가? 소를 잡으려고 할 때 소가 운다. 도살장으로 갈 때 자기 새끼를 한 번 쳐다본다.
내가 14살 때 소를 먹였다. 7살부터 14살까지 먹였으니 7년 좀 더 된다. 우리 소가 처음에는 요만하고 삐쩍 말라서 다 죽어가는 것을 싸게 사왔다. 나는 남의 집에 있었으니 주인이 사온 것이다. 삐쩍 말라서 자꾸 죽으려고 하고 밥을 안 먹었다. 그래서 내 밥을 맨날 절반 정도 남겨서 먹였다. 소가 밥을 좋아했다. 밥을 자꾸 먹으니 자기 엄마가 없어서 맨날 울었다. 밥을 먹이니 나만 가면 당연히 밥 줄 거라고 기다렸다. 내가 밥을 자꾸 주니 살이 찌고 소가 커졌다. 그래서 걔 이름을 내가 밀림이라고 지었다. 숲속에 맨날 데리고 다녔기 때문이다.
밀림이가 산에서 풀을 먹일 때 다른 소 50마리와 같이 먹였다. 소 먹이러 갈 때 수십 명이 같이 간다. 대부분 한 마리씩 데리고 가는데, 우리는 나무하고 한참 해 놓고 저녁때는 소를 데리고 내려와야 했다. 소가 전부 산등성이에 올라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우리 소, “밀림아!” 하면 순식간에 내려왔다. 다른 아이들은 소 잡으러 가느라 한 시간 이상 걸렸다. 왜냐하면 소를 평소에 따뜻하게 안 해주니 소하고 대화가 없었다. 나는 소하고 대화가 되었다. 짐승도 대화가 된다. 사람이 가면 온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가 “밀림아!” 하면 내려오니 아이들이 그것을 부러워했다. 그런데 얘들은 내가 하는 것을 가르쳐줘도 안 했다. 나는 산에서 내려오면 먼저 왔다. 걔들이 소 잡고 내려오려면 한 시간 걸렸다. 나는 소나무를 꺾어서 솔잎으로 소 등어리를 다 긁어주었다. 소가 얼마나 시원해했는지 모른다. 우리 소는 금빛이 찬란했다. 다른 소들은 소똥이 전신에 묻어 있었다. 한 번도 안 닦아주니 부모들도 게으르다는 소리다. 나는 소가 세무 잠바 같았다. 소 등어리가, 소 몸이 세무처럼 깨끗했다. 맨날 빗어주니 사마귀 같은 것이 붙어 있으면 다 떼어주고 깨끗했다. 소가 얼마나 깨끗했는지 모른다. 맨날 소를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그 소를 나중에 주인이 새끼를 먹이는데, 소가 풀을 안 먹고 나를 막 쳐다보며 울었다. 새끼 낳을 때가 된 것이다. 소를 먹이러 갔다가 집에 가는 도중에 길에서 새끼를 낳아버렸다. 길에서 아이들이 막 가고 있는데, 우리 소가 중간에서 새끼를 낳으니 갑자기 꼬리 밑으로 보따리가 탁 떨어졌다. 보니 송아지였다. 소가 그 껍데기를 다 핥아 먹었다. 소가 탯줄을 혓바닥으로 다 핥아 뜯어냈다. 송아지가 나오려면 엄마가 뜯어줘야 나온다. 새끼가 그 자리에서 죽기 살기로 일어섰다. 일어서서 따라왔다. 갈 때는 그냥 갔는데 올 때는 새끼를 데려왔다.
그 새끼가 조금 크니 주인이 어미 소를 도살장에 팔았다. 내가 맨날 같이 밭에 가서 일할 때, 주인이 나를 막 두들겨 패면 소가 나를 쳐다보며 울었다. “도와달라”는 소리였다. 나는 주인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소가 언제나 일하면서도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두들겨 맞아가면서 일을 했다. 그렇게 실컷 시켰는데, 나중에 새끼를 낳아주고 나니 늙었으니 용도 폐기하는 것이었다. 죽이러 가는데 소가 며칠 전부터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나는 파는 줄도 몰랐다. 나 몰래 파느라고 동네 정육점과 약속해서 소를 끌고 나가는데, 이 소가 나가지 않았다. 대문 밖으로. 아주머니가 부작대기라고 하는 나무 불 때는 숯검댕이를 소한테 발라야 소가 비싸게 팔리고 재수가 좋다고 했다. 숯검댕이를 가져와서 소를 막 때리니 소가 뒷걸음쳤다. 그러면서 막 울고 새끼도 울고 난리가 아니었다.
대문 밖으로 끌려나가는데, 내가 그날 서울로 도망왔다. 시골에서 서울로. 내가 충격을 받았다. 인간들에 대해 굉장한 회의를 느꼈다. 그날 소를 잡아가는데를 몰래 따라갔다. 가서 그 소를 풀어주고 산에 도망가게 하려고 했다. 내가 안 그래도 시골에서 중학교를 안 보내주니 서울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딱 가서 숨어있는데 도끼를 든 사람 둘이 왔다. 소를 고삐로 기둥에 묶더니 고개를 못 움직이게 해놓고, 거기다가 도끼로 뿔 사이를 내리쳤다. 뿔 사이를 도끼로 세 번인가 내리치니 소가 팍 쓰러졌다. 소는 목이 묶여있고 움직이지 못하니 죽는 의식을 다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어릴 때 그것을 딱 보고 고기를 못 먹었다. 지금도 고기를 안 먹지만, 요새는 조금 먹는다. 그때는 소고기를 못 먹었다. 시골에서 소고기만 먹으면 토하려고 했다. 돼지고기 먹으면 도망가야 했다. 생선 먹으면 도망가야 했다. 닭고기만 먹으면 도망가야 했다. 나는 어릴 때 고기를 못 먹었다. 그런데 왜 인간들이 저렇게 고기를 먹나 속으로 굉장히 고민했다.
그 소가 딱 죽고 나니 시골이 보고 싶지 않았다. 완전히 시골 어른들이 살인범으로 보였다. 기독교는 십계명에서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불효하지 말라, 안식일을 지키라, 우상을 섬기지 말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되어 있는데, 여섯 번째가 살인하지 말라이다. 그런데 불교는 오계에서 살생하지 말라가 있다. 살생은 짐승도 죽이지 말라는 소리다. 이것은 살생이다. 살아있는 것은 죽이지 말라. 살인은 사람 죽이지 말라. 약간 급수가 다르다. 불교는 벌레도 죽이지 말라, 무엇도 죽이지 말라, 생명을 소중히 하라고 한다.
밀림이가 죽고 나서 서울로 와서 항상 소만 보면 소 생각이 났다. 학교 갔다 와서 집에 가면 나는 고아니까 나를 반겨주는 사람은 소밖에 없었다. 소한테 가서 등을 기대고 누워있고 소 목을 끌어안고 있으면 겨울에 따뜻했다. 내 방이 좀 추워서 새벽에 추우면 나와서 소를 끌어안고 누워 잤다. 그러면 뜨끈뜨끈했다. 소도 나를 되게 좋아했다. 그렇게 서로 정이 들었다. 혼자 있는 소년이 한 살 때부터 독방에서 자랐는데, 송아지하고 여섯 살부터 정이 들어 여섯 살 때까지 왔으니 송아지하고 함께 죽고 살다가 서울로 와 버린 것이다. 동물도 그렇게 아름답다.
이 핵이, 기러기나 물고기나 연어 같은 것들이 정말로 이 작은 뇌 속에 모든 정보가 다 들어 있다. 이것이 창조된 것 아닌가? 그것을 먹을 때 “야, 맛있다”라고 하며 막 지지고 볶아서 닭볶음탕을 해 먹으면, 박 회장님 말대로 닭볶음탕, 내가 닭볶음탕 집에 가자고 하면 내가 안 가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내가 안 가려고 한다. 그러나 먹어도 괜찮다. 닭볶음탕을 먹을 때 “아, 고맙다. 미안하다.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시간이다. 그러니 이해해라”라고 하며 먹어야 한다. 그런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맛있다”라고 하는 사람 여기 많이 보이지 않는가? 여기는 그런 사람 없네.
한반도: 지구의 핵이자 우주의 핵
내가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미국에 갔을 때 북한의 핵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냐고 미국 대통령 고문관이 물었다. 그때 나온 말이 ‘뉴클리어(nuclear)’다. 뉴클리어는 핵이다. ‘뉴클리어 워(nuclear war)’ 하면 핵전쟁이다. 이 핵이 지구의 중심이다. 지구의 중심도 핵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한반도에 왔을까? 지구 중심의 핵은 맨틀인데, 우주의 지구 자체의 핵은 한반도다. 한반도가 우리 지구의 외부 핵이라는 말이다. 지구 외부의 핵에 내가 와 있다. 지구 외부의 핵은 코리아다. 이것이 우리 지구의 핵이다. 이 지구의 핵인 코리아에 내가 와서 지구 여기에서 세상을 다 바꿔야 한다. 그래서 핵에 와 있는데, 지금 핵전쟁을 앞두고 있다. 앞으로 지구가 이 핵전쟁이 일어나는 것을 막아보겠다.
원래 이 핵이라는 것은 우리 몸속에도 있다. 박 회장님, 무슨 핵이 있는가? 우리 몸속에 있는 핵은 무엇인가? 간뇌, 골수 같은 것은 몸속에 있는 핵이 아니다. 몸속에 있는 핵은 dna라고 한다. dna는 무엇의 약자인가? 박 총장, dna는 영어로 세 글자가 아니다. dna라고 할 때 점을 찍으면 안 된다. USA 할 때는 U.S.A. 이것은 United States of America니까 자체에서 점을 찍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 dna는 점을 찍으면 안 된다. 왜 안 되는가? 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한 단어. 디옥시리보 핵산(Deoxyribonucleic Acid)이다. 이 핵이 나온다. 핵산. 이 핵이 나온다. 뉴클레익 애시드(Nucleic Acid)다. 원래 뉴클리어(nuclear)가 핵인데, 여기서는 뉴클레익(nucleic)이 나온다. 핵산. 산이 무엇인가? 애시드(acid)다. 이것이 dna다. dna는 세 단어가 아니고 한 단어다. 되게 길다. 디옥시리보 핵산. 이것이 핵산이다.
이것이 우리 인체에 몇 개 있는가? 인체에 세포가 100조 개다. 세포 한 개당 dna가 몇 개, 염색체가 몇 개 있는가? 염색체가 46개다. 항상 가르쳐줘도 46개인데, 몇 쌍인가? 부부 쌍으로 되어 있으니 23쌍이다. 이것이 쌍으로 되어 있다. 염색체가 세포 한 개당. 이 세포를 자세히 보라. 세포를 보면 이렇게 생겼다. 여러분이 나중에 과학자들이 나한테 와서 배워야 한다. 세포에는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곳이 있다. 무엇인가? 끝부분이다. 이 세포의 끝부분에 꼬리가 있다. 꼬리가 텔로미어다. 텔로미어가 6번 분열하면 끝이다. 6번 분열하면 인간이 죽는다. 세포가 항상 6번 분열할 때마다 죽어서 나오고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것이다.
여자는 반드시 한 달에 한 번씩 하혈하니 수명이 굉장히 길다. 남자보다. 남자들은 한 살 때 피를 죽을 때까지 가지고 있다 보니, 남자들도 한 달에 한 번씩 적십자 병원 같은 데 가서 피를 뽑으면 여자처럼 오래 산다. 남자들은 어릴 때부터 피를 계속 가지고 있으니, 중학교 때 맞은 피, 군대 가서 몽둥이 맞은 피, 쓸데없는 피가 몸속에 다 들어 있다. 그것을 거르긴 거르는데, 텔로미어가 상처를 많이 받는다. 죽은 피가 몸속에 돌아다닌다. 어혈이 돌아다닌다. 여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나쁜 피를 아래로 다 빼버린다. 어혈을 싹 빼버린다. 여자들은 언제나 몸이 깨끗하다. 장수하게끔 되어 있다. 남자들은 얼굴이 다 시커멓다. 왜 그런가? 썩은 피를 전부 조상 대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헌혈 한 번 하라고 하면 죽어도 안 한다고 하고, 피를 빼면 죽는 줄 안다. 남의 피가 없어 죽는 사람도 있다. 피를 뽑아줘야 오래 사는데. 남자는 피를 자동차 엔진에 계속 보충만 해 보라. 나중에 그 엔진이 망가져 버린다. 엔진 오일을 한 번씩 싹 빼버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다시 넣어줘야 한다. 이것을 안 하는 것이, 헌혈 안 하는 것도 큰 문제다. 헌혈해주는 것은 좋다.
이 텔로미어를 허경영 이름을 부르면 어떻게 되는가 하면, 텔로미어의 이 분열이 정지되어 버린다. 허경영을 부르면 텔로미어가 고정된다는 소리다. 부르는 동안에, 오늘 저녁에 잘 때 허경영을 불렀다면 아침까지 나이를 먹지 않는다. 낮에 다른 사람 이름을 불러버리면 다시 나이를 먹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 이름, 빨리 또 허경영을 부르면 나이 스톱이다. 이것을 정지시켜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다음에 이것을 논문으로 발표하게 된다. 누구든지 오래 살고 싶은 사람은 허경영을 계속 머리에 집어넣고 있으면 수명이 무한정 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고 사람들은 “허경영은 누구인가?”라고 한다. 이것이 왜 지워졌는가? 박 회장이 몰래 나와서 지운 것 같다. 허경영을 다 아는 사람이니 이것을 지워버렸나 보다. 이 텔로미어가 고정된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텔로미어를 고정시키는 방법을 모른다. 누구나 늙어서 죽게 된다. 인체 세포가 6번 분열하면 죽으니, 그것이 정확하게 80년 정도 걸린다. 80년. 인체 세포가, 텔로미어가, 뇌의 세포가 항상 안 바뀌는 뇌의 세포가 6번 분열하면 인간은 죽어버린다. 허경영을 부를 경우에 이 뇌의 세포가 언제나 분열을 중지하고 대기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러면 여러분이 갑자기 힘이 세지고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다. 순식간에. 이것을 과학적으로 이제 논문이 나올 것이다. 박사에게 부탁해 놓았다. 이것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병 고치는 것이 먼저 나온다. “왜 허경영을 부르면 병이 고쳐지고, 왜 허경영을 부르면 달라지느냐?” 여기에 대해서 이제 논문이 나올 것이다.
염색체가 46개다. 염색체 한 개당 무엇이 있는가? dna가 몇 개? 염색체 한 개당 dna가 4만 개다. dna가 나온다. 이것이 4만 개 있다. 염색체 한 개당. dna 한 개당, 이것은 이제 박 회장님께 물어봐야 한다. 박 회장님 아실 것이다. 이제 배웠지 않은가? dna 한 개당 유전자가 몇 개? 박 회장님, 몇 개라고? 50만 개. 안 물어봐도 아신다. 유전자 50만 개다. dna 한 개가 50만 개면 전체 합계가 얼마라고 하는가? 박 회장님, 9,200조 해라고 했다. dna는 몇 개라고 했는가? 전체 dna는 1조 8,400경이다. 염색체는 전부 몇 개인가? 세포 1개당 염색체가 46개 있으니 인체에 4,600조 개다. 9,200조 해라는 숫자가 우리 몸속에 있다는 말이다. 우리 몸이 우주다. 엄청난 숫자가 인체에 있다. 사람이 하나를 딱 보면 이것이 9,200조 개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숨구멍을 딱 막아버리면 그때부터 몸이 배꼽에서부터 썩어서 갈비뼈 부분이 구멍이 빵 난다. 이틀 만에 여기가 없어져 버린다. 싹 없어져서 갈비뼈만 남는다. 팔다리는 금방 안 썩는다. 배가 제일 먼저 없어져 버린다. 썩어서. 싹 없애면서 배에는 많은 균이 있다. 그 미생물들이 배를 순식간에 먹어버린다. 공기가 없어지니 배가 제일 먼저 발효가 되어버린다. 배가 발효되어 배가 싹 날아가 버리고, 척추하고 다리하고 팔만 남는다. 머리하고 싹 남는다. 일주일 만에 묘를 파보면, 묘를 이장하기 위해 파보면 멀쩡한 사람을 눕혀놨는데, 내장 부분만 싹 없어지고 다른 것은 썩지도 않았다. 멀쩡하게 그대로 있다. 내장은 순식간에 달아난다. 길에 사체를 보면, 죽은 사람 며칠 있다가 가보면 내장에 한두 말 정도 구더기가 먹고 있다. 싹 없어진다. 그 구더기는 제일 깨끗한 것이다. 인체의 청소부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신은 인간을 만들 때 내장 속에 청소부도 대기시켜 놓았다. 신속하게 먹어치우게. 걔들은 산소가 없어도 안에서 산다.
지금 보라. 우리 안에 있는 모든 내장에 있는, 여러분은 특히 균이 많다. 몸에 있는 균이 우리 세포 숫자만큼 된다. 몸에 있는 균이. 그 많은 사람을. 박 회장님이 찬물을 한 잔 마시면, 박 회장님이 밥을 한 끼 먹으면, 박 회장님이 먹은 것이 아니다. 얼굴만 박 회장님의 입으로 들어갔지, 실제 먹은 사람들은 9,200조라는 이런 세균들이 먹은 것이다. 9,200조 해나 되는 세포를 먹인 것 아닌가? 실제 박 회장님은 입만 제공해 준 것이다. 여러분이 밥을 먹는 것은 여러분이 먹은 것이 아니다. 우주가 먹은 것이다. 여러분은 우주 바코드를 가지고 있고, 절대로 불생불멸이다. 절대 죽지 않고 영원히 살면서 자기의 성적표를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다. 지난번에 좋은 일 한 사람은 유명한 연예인이 되고, 결과적으로 유명한 스타가 되어 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난리굿이다. 그 존경을 받으면서 활발히 살고, 천사처럼. 그렇게 살고, 나쁜 짓 한 놈은 나왔는데 이상한 사람이 되어 고생을 한다. 그럼 그 성적표를 좋게 해야 한다. 차가 지저분하면 닦아야 한다.
이 뉴클리어, 이 dna는 아까 이야기한 대로, 송 도사, 무엇이라고 했는가? 몸속의 핵이다. 몸 밖의 핵은 누구인가? 한반도다. 한반도가 몸 밖의 핵이다. 한반도의 몸 밖의 핵에 무엇이 와 있는가? 우주의 핵이 와 있는 것이다. 여기 딱 접목했다. 여기서부터 심판의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아까 말한 대로 마지막에 짐승, 짐승과 사람, 이 사람을 만들 때 이 마지막에 오는 자, 이 자가 이제 일을 하러 온 것이다. 히죽히죽 웃고 있지만 웃을 일이 아니다. 물 좀 달라. 성경이나 불경은 내가 종종 인용하는데,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무엇이 나오는가? 요한계시록 21장 6절,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처음과 나중이라” 이렇게 되어 있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 있다.
천부경과 종교의 본질: 시작과 끝이 없는 신의 섭리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시대적으로 천부경에 보면 이렇게 나온다. 천부경에 “일시무시일 석삼극무진본” 이렇게 나와 있다. 여기 보면 마지막 끝이 천부경이 몇 자인가? 81자다. 왜 81자인가? 천부경이 왜 81자일까? 9981이다. 왜 99가 될까? 우리가 “저 사람이 꽤 구구하다”라고 하지 않는가? 구구를 많이 쓴다. 구구하다, 지루하다. 이 9981은 우리 천부경이 81자로 되어 있는데, 여기에서 9와 9는 숫자의 끝이 이렇게 곱해져 81이 된다. 여기에 관해서는 설명이 좀 길다.
이 원인이 있는데, 이 81자의 끝 부분에 무엇이 되어 있는가? 여덟 번째 끝 부분이 “일종무종일” 이렇게 되어 있다. 일종무종일이다. “일시무시일”이다. 내가 석 자를 여기 같이 붙여놓으니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여기 하나, 여기도 하나다. 우리 종교가 전부 끝에 ‘일’ 자가 붙는다. 종교가 ‘일’ 자가 붙는 것은 예를 들어 “청진반일”이다. 청진반일 사상이 유대교다. 그러면 이 ‘일’ 자가 붙는다. “동체귀일”이다. 동체귀일이다. 이것은 이슬람, 회교, 천도교 이런 식으로 나온다. “포원수일”이다. 이렇게 ‘일’ 자가 전부 붙는다. 세계 종교는 전체가 그렇다. “만법귀일”이다. 불교는 만법귀일이다.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왜 이렇게 ‘일’ 자가 붙는가? “만수본일”이다. 이것도 도교다. “집중관일”이다. 이것은 유교다. “묵상친일”이다. 묵상친일은 기독교다. “천신유일”이다. 유대교다. “천주모일”이다. 하나님과 예수님과 마리아가 하나다. 이것은 천주교다. 이렇게 전 세계 종교가 전부 ‘일’ 자로 돌아와 전부 하나가 된다.
우리나라에 이것은 만 년 전에, 종교는 전부 만들어진 것이 몇천 년밖에 안 된다. 종교들의 역사가 전부 5천 년 정도다. 그런데 이것은 종교 역사가 만 년 되었다. 이것이 대한민국 단군이 만들어낸 경전이다. 차원이 대장경이나 전 세계 경전을 다 공부했는데, 차원이 제일 높다. 해석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이것을 해석하는 유일한 사람이 나다. 다른 사람들이 해석해 놓은 것은 전부 틀리다. 들어보라. 시작이, 이것을 성경은 창세기에 나타나는 천지창조, 아까 여섯 가지 문제 있는 것을 내가 해석하니 이해가 가지 않는가? 성경을 봐서는 천지창조를 이해할 수 없다. 아무도 그 이해를 못 한다. 비유인데도 목사들이 해설을 안 해주니, 목사들도 그것을 모르니. 요한계시록 21장 6절도 보라.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이것도 문제가 있는 말이다. 성경을 번역한 자들이 무지한 자들이 번역한 것이다. 원래 경전을 번역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번역한 것이다.
여기 나오지 않는가? 이것을 보면 무엇이라고 해놔야 하는가? 여기 보라. “일시무시일”. 시작이 없는 처음이요, 시작이 없는 처음이요. 이것이 무슨 말인가? 처음은 처음인데 시작이 없는 처음이다. 나는 시작이 없는 처음이요, 끝이 없는 마지막이라고 하지 않는가? 마지막이다. 내가, 허경영이 온 것은 두 번 다시 오는 일도 없거니와, 이 지구가 끝나는 것 때문에 와 있는 것이다. 지구가 끝나면, 이 말을 대입해 보라. “처음과 나중”이니 “시작이 없는 처음”이라고 해야 하는가? “끝이 없는 나중”이라고 해야 하는가? 이것은 잘못 만들어 놓은 것이다. 번역이 잘못되어 있다. “처음과 나중”은 누구나 있다. 박 회장님이 처음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성장했지 않은가? 그럼 처음과 나중이 있다. 누구나 있는 것이다. 신은 이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다. 신은 시작이 없는 시작이고, 끝이 없는 마지막이다. 계속된다는 소리다. 인간도 이 틀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천부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마지막 같지만, 이것이 마지막이 없는 마지막이다. 없을 무 자, 시작이 없다. 시작이 없는 처음이다. 한 번도 시작이 없는 처음이다. 한 번도 끝난 적 없는 끝이다. 이것이 창세기 것이 우리 천부경의 제일 처음에 나온다. 천부경의 차원이 높다. 해석을 해 보면.
이런 해석을 내가 왜 하는가? 여기 보라. 전부 하나로 돌아가지 않는가? 이 하나가 무엇인가? 하나가 무슨 뜻인가? 요한계시록 21장 6절처럼, 하나가 이 우주를 만든 분은 하나고, 모든 것이 세포 하나에 시작되는 것이다. 그 하나는 원래 시작은 결국 같다는 소리다. 여러분의 그 시작은 원래 같은데, 하나님은 똑같이 여러분에게 이 바코드를 주었다. 이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바코드를 주었는데, 여러분은 무엇을 받았는가? 하나님한테 받아야 할 것을 99.9% 받았다. 다 받은 것이다. 똑같이 나눠주었다. 애초에. 그런데 여러분이 그것을 관리를 잘못하면 무엇이 되는가? 관리를 잘못하면 무엇이 되는가? 여러분에게 관리 잘하라고 자유를 주지 않았는가? 주어서 똑같이 주었다. 99.9% 축복을 주고, 기독교에서 말하는 축복을 주지 않았는가? 또 무엇을 주었는가? 성령을 주지 않았는가? 이 모든 것을 다 주었다는 말이다. 그 다음에 무엇이 있는가? 은사를 주었다. 은사도 다 주었다. 그 다음에 무엇을 주었는가? 부활을 주었다. 부활. 여러분은 다시 거듭나지 않는가? 박 회장님이 돌아갔다, 우리 이 회장님이 돌아갔다고 하면 다시 태어나지 않는가? 순환한다는 말이다. 순환하는데, 그 바코드의 점수를 가지고 간다. 박 회장님 얼굴은 지금, 박 회장님이 우리가 지구에 몇 년 순환해서 나오는가 하면, 100, 몇 년이라고 했는가? 지구에 우리가 머물러 있는 기간을 내가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알려주지 않았는가? 하나도 기억 못 하는가? 122억 6천 8백만 년이다. 122억 6천 8백만 년이라는 기간 동안 여러분이 지구에 있어야 한다. 그 기간 동안에 지구 수명이 지금 얼마 되는가? 지구의 이 122억 6천 8백만 년까지 지구 수명이 끝나면 여러분은 가는 것이다. 지구 수명이 지금 얼마인가? 천 년이다. 지금 122억 5천 8백만 년이 된 것이다. 내가 지구 수명을 알려주는 것이다.
왜 이 122억 6천 8백만 년 동안 우리가 살았는데, 이 인간들이 이제 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다. 조금 있으면 지구가 없어질 텐데, 한 번도 사람답게 살아보지 못하고 맨날 전쟁이고, 맨날 갈등 속에서 여러분이 낙원을 건설하지 못하고 가는 것이다. 지구가. 이제 졸업반을 위해서 내가 온 것이다. 여러분은 졸업생들이다. 여기서 낙오자가 된 사람은 무엇이 되는가? 귀신이 되는 것이다. 에너지가 약해서 떨어져서 귀신으로 허공에 존재하고, 나머지 알곡들은 올라간다는 말이다. 그것이 올라가서 올라가는데, 그것을 위해서 내가 여기 와 있는데, 이 지구가 60억 년마다 한 번씩 뒤집혔다. 히말라야에 올라가면 소금이 나온다. 거기 조개껍질이 히말라야 꼭대기에 있지 않은가? 그것이 옛날에 태평양 바다였다. 물고기가 막 나오고 화석이 나온다. 소금 광산이 히말라야 중턱에 있다. 그것이 옛날에 다 바다였다. 태평양 바다가 한 번 요동쳐서 60억 년마다 한 번 소독을 했다. 그때 인종을 조금만 남겨놓은 것이다. 그 종자들이 또다시 새끼를 퍼뜨려서 지구가 두 번 리바이벌하면 끝이다. 우리가 옷을 두 번만 갈아입으면 지구는 끝이다. 이제 이 우주에는 여러분만 올라가면 해결이 다 된다. 122억 5천 8백만 년에 천 년을 남겨놓고 허경영이 온 것이다. 이제는 끝난 것이다. 이때 여러분이 바른길로 안 가고 계속 이 상태에서 뭔가 딴 것을 추구하다 보면 나중에 귀신으로 다 간다. 아깝지 않은가? 지금 여러분 70억은 무엇인가? 박 회장님, 122억 6천 4백만 년 동안 이 종자가 윤회해서 그나마 추수해 놓은 숫자 아닌가? 이제 방앗간에 가서 쭉정이만 골라내면 되는 숫자다.
여러분은 원시인 때 태어났을 때는 몸이 이렇지 않았다. 원시인 때는 몸이 약간 원숭이와 비슷하게 진화가 덜 되었다. 손이 지금보다 크고 다 진화가 안 되었다. 이 회장님 이리 나와 보라. 이 회장님이 진화를 얼마나 했는지 보여주겠다. 나는 하늘에서 온 사람의 손이다. 이것은 인간의 손이다. 보이지 않는가? 손을 오므려 이렇게 펴 보라. 뒤로 바짝 젖혀 보라. 최대로. 손이 나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면, 나는 우주에서 온 손이다. 이 손은 노동하는 자들의 손, 인간의 손이다. 원시인 때부터 걸어오면서 이분이 122억 년간 윤회한 것이다. 순환한 결과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지구 순환. 몇 번 더 태어나면 열 번만 더 태어나면 이제 끝장이다. 하늘로 가야 한다. 그런데 귀신이 되느냐, 하늘 가느냐? 앞으로 열 번만 태어나면 천 년 아닌가? 그때 결정이 되어야 하는데, 손이 이렇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화가 어느 것이 진화된 것 같은가? 보이는가? 내 손은 법당의 부처님 손 같지 않은가? 내가 그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이것은 인간들이 일을 하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을 우악스럽게 잡아야 하는 손이다.
나는 무엇을 잡은 손인가? 고운가, 안 고운가? 고우면서 여자 손 같지 않은가? 여자 손도 아니면서 또 남자 손이다. 헷갈리는 것이다. 이것이 시작이면서 끝이다. 여자면서 남자 손이고, 남자 손인가 하면 또 여자 손이다. 손 크기가 1.5배나 작지 않은가? 키가 내가 여기보다 작은가? 같지 않은가? 팔 길이는 여기보다 10cm가 길다. 여기 한 번 대어 보라. 내가 여기를 한 번 밀어 보겠다. 팔 길이가 이렇게 밀려간다. 팔 길이는 긴데 이것은 작다. 이것은 이 사람의 손은 우리 인간들이 지금까지 진화해온 평균 손이다. 그런데 이것은 진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손이다. 뼈마디가 전부 조직되어 있고 공간이 없다. 손이 요만큼만 넘어지면 부러진다. 여기에 마디가 없다. 뒤로 젖혀봐야 여기는 맨 지름하다. 곧다. 그런데 이것은 좀 젖히면 이것도 약간 굴곡이 있다. 튀어나오지 않는가? 여기 약간 좀 튀어나오지 않는가? 그 다음에 이것이 뒤로 젖혀진다. 그런데 이것은 젖혀지면 부러진다. 뒷마디는 절대 없다. 이 손에 뒷마디로 들어가는 것은 없다. 그럼 이 손이 무슨 손인가? 인간의 손이 아니다. 그래서 이것은 인간의 손을 내가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마디가 굵으면서 위로 올라가면서 좁아진다. 나는 위에도 통통하고 아래도 통통하다. 또 하나 다른 것은 이 손은 손가락이 이리 가다가 이리 오다가 막 이렇게 서로 만나고 이렇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 손은 지문이 전부 빠졌다가 붙었다가 난리다. 그런데 이 손은 지문이 전부 똑같이 붙어 있다. 동그라미다. 전부 동그라미. 열 개가 다. 우리 세계에서 이 지문은 내 하나뿐이라고 한다. 이런 지문은 지문들이 빠졌다가 들어갔다가 이렇게 다르다. 손이 이렇게 다르다. 이것은 인간들이 일했기 때문이다. 노동했기 때문이다. 원시 때는 이 손이 이만큼 더 컸다는 소리다. 122억 년 동안 오면서 이렇게 진화가 되었다. 들어가서 앉으라. 손이 달라 보이지 않는가? 손이 좀 다르지 않은가? 손이 이렇게 고운 것은 이유가 있다. 허경영은 누구인가 이것을 내가 오늘 이야기하면서 일부만 지금 이야기해 주는 것이다.
122억, 이제 천 년 남았다. 이 천 년 동안에 여러분이 열 번 정도 태어난다. 그럼 여기서는 졸업이다. 더는 지구는 여러분에게 이런 좋은 장소를 제공해 주지 않고 이 지구가 없어진다. 없어지는데 지금 그 현상이 나타나는데, 태양이 서서히 식어 나간다. 지구 안에 있는 달만한 크기의 맨틀이 점점 에너지가 빠져나가서, 나중에는 집을 지을 때 기초를 할 때 이 중심이 안 잡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기러기들이 길을 잃어버린다. 맨틀 에너지가 끝나버리니 맨틀이 자기장을 안 내보낸다. 지금 지구 자기장이 이동하고 있다. 줄어들고 있다. 지구 자기장이 싹 빠져나가고 있다. 아래 안 보인다. 변화가 오지 않는가? 지구 자기장이 남극이 북극으로 바뀌고 북극이 남극으로 바뀐다. 바뀌어 버린다. 바뀌니 이 기러기들이 철새들이 방향을 못 잡는 것이다. 나침반을 딱 보면 남쪽이 북쪽으로 되어 버린다. 조금 있으면 그렇게 된다는 말이다.
이렇게 지구가 에너지를 마무리해 갈 때는 혼돈 상태에서 생태계가 무너지고 어려워지기 시작한다. 천 년 있으면 그것이 나타난다. 제대로 이제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 자기장이 제로가 된다. 지금은 몇 가우스인가? 지금은 평균 자기장이 0.9다. 0.9 정도가 우리를 지금 살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10층에 살면 이것이 0.7 정도 된다. 어느 정도 자기장을 받아야 우리 몸이 좋다. 자기장을 너무 안 받으면 문제가 있다는 소리다.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천부경에도 내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운삼사” 이것도 나온다. 천부경에도 “운삼사성환 성환오칠” 이렇게 나온다. 이것이 허경영이다. 예수가 34살에 돌아가고 나면 동방에서 내가 그때 대통령 나올 때 57세 때부터 내 인기가 떴다. 이 57세 된 사람이 나와서 ‘환(環)’, 이것이 무슨 환 자인가? 천부경에는 돌아올 환 자가 없다. 돌아올 환 자는 이 글자가 아니다. 임금 왕 변이 아니다. 이것은 고리 환 자다. 고리 환 자. 고리. 이것은 무엇인가 하면, 고리다. 34살에 예수가 돌아가고 나면 이룬다. 이것이 이룰 성 자다. 이룰 성 자. 이것을 이루어내는 자가 고리를 이룬다. 성환. 57세 된 자가 마무리하러 와서 이 고리를 이룬다. 이렇게 천부경에 나와 있다. 고리 환 자다. 돌아갈 환 자는 이것이 아니다.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보느냐?” 이렇게 질문을 했다. 왜 했을까? 송 도사, 자신에 대해 모르고 있어서 제자들에게 물었을까? 제자들이 예수를 몰랐을까? 맨날 같이 있는데 왜 물어봤을까? 그것을 내가 물어보는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가 하늘에서 왔다고 자꾸 자기 입으로 이야기했는데, 굳이 제자들도 몇 명 안 되고 우리는 많은 편이다. 나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있다. 12명도 아니다. 박 회장님. 많은데 내가 여러분에게 누구냐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렇다면 내가 누구냐고 하면 여러분은 답을 마음대로 못 한다. 여러분은 자신이 있어야 한다. 허경영은 여러분에게 축복 주고, 성령을 주고, 은사를 주고, 부활을 주고, 영생을 하고, 천국 가고 이런 것을 여러분이 후천적으로 받는다고 종교들이 가르치지 않는가? 그것을 여러분이 이제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태어날 때부터 어떻다고? 가지고 왔다. 하늘에서 99.9% 주지 않았는가? 안 준 것은 무엇이 있는가? 안 준 것, 자유 안에서 이것을 다 주었다. 이 자유를 주지 않았는가? 이 자유를 주었으면 모든 것을 이 자유의지를 주었다. 자유의지를 주었으니 이 자유의지 안에서 이 사람들이 99.9%의 이것을 다 받았다. 다 받았다. 하나님한테 무엇 하나라도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귀신으로 갈까, 안 갈까? 귀신으로 가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것을 알아야 한다. 하늘은 여러분에게 공기를 주지 않았는가? 물을 주지 않았는가? 숨 쉴 수 있지 않은가?
엄마가 저 딸을 낳아주었는데, 저 딸이 시집가서 계속 엄마한테 반찬 뺏어가고, 옷 뺏어가고, 자꾸 돈 뺏어가면 저 딸이 효자일까 아닐까? 효자가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딸로 낳아준 것만 해도 99.9% 다 준 것이다. 이것을 다 주었는데 어떻게 찾아먹는가? 자기가 열심히 해야 찾아먹는 것이다. 자기 책임이다. 이미 다 주었는데, 가만히 앉아서 홍시가 입에 안 떨어진다고 시비를 걸면 어쩌자는 것인가? 여러분은 소리 내서 기도하거나, 무엇을 간구하거나, 달라고 하거나 하는 것은 전부 헛일이다. “아, 내가 하나님한테 받은 것이 너무 많은데, 내가 이것을 활용을 잘 못하고 있으니, 이 내 게으름을 진짜 죄송합니다. 내가 앞으로 하나님이 준 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내가 깨달아서 하나님 빚을 갚을게요.” 하나님은 빚을 언제 갚을까 그것만 쳐다보고 있다. 여러분이 언제 빚 갚을 것인가 그것만 보고 채권자가 되어 쳐다보고 있는데, 여러분은 더 달라고 난리굿이다. 여기저기서 막 기도를 한다. 공부 안 한 아들이 시험에 붙는 것을 엄마가 기도한다고 붙는가? 안 붙는다. 그런 기도를 우리가 하는 한은 이 사회가 전쟁을 계속하게 된다.
자유의지의 남용과 죄의 본질
우리는 만족하는 이 자유를 가지고 있다. 자유를 버리는 것을 마귀 사탄이라고 한다. 자유를 방해하는 것, 방종이다. 방종. 방종. 이 방종을 우리가 하면, 이 방종 자체가 자유를 남용한다는 소리다. 하나님이 준 자유를 남용해서, 하나님이 준 자유대로만 해야 하는데, 그 자유를 주니 마음대로 해 버린다.
내가 전철을 탔는데 할머니가 올라왔다. 내가 앉을 자유가 있는가? 있다. 그러나 할머니가 왔으니 일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일어나야 한다. 그런데 “나도 돈 냈는데, 나도 사람인데” 하고 앉아 있으면 무엇인가? 방종이다. 내 호르몬이 바뀐다. 그 순간에 내 얼굴빛이 어두워지면서 눈을 밑으로 깔고, 그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진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무슨 호르몬이 나오는가? 그때 나오는 호르몬이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것이 나온다. 그러면 그 사람 얼굴이 시커멓게 된다. 신이 요만큼만 방종해도 신은 호르몬으로 그 사람 영혼의 점수를 매긴다. 컴퓨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모르고 “아이고 뭐 그런 할망구 앞에 서 있네. 빨리빨리 안 죽고 속을 썩여” 이런 마음으로 그 할머니를 쳐다보는 순간에 노르아드레날린, 아세틸콜린, 아드레날린, 코티졸, 코르티코스테론, 스트레스 호르몬 등 10가지 호르몬이 주르륵 다 나온다. 이것이 나오면 인체가 망가져 버린다.
내가 방종을 할 때 누가 지켜보는 사람이 있겠냐고 생각하며 죄를 짓는다. 내가 어떤 여자에게 나쁜 말을 했다. 누가 보겠냐고 생각한다. 아무도 안 보는 데. 그러나 옛날에는 녹음기가 없었다고 보지 않는가? 옛날에는 어른들 양심이 녹음기였다. 다 양심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요새 사람은 남이 안 보면 아무도 안 보는 줄 안다. 녹음기가 있을 때나 녹음되는 줄 안다. 하늘에서 녹음 다 하고 있다. 전부 다 하고 있다. 요만큼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데, 여러분이 허경영 강의가 지루하다고 생각하면 아드레날린이 나오지 않는가? 아드레날린이 지금 나오면 얼굴이 나빠진다.
이 방종을, 우리가 하나님한테 못 받은 것은 0.1%다. 0.1% 속에 무엇이 있는가? 성공과 실패가 있는 것이다. 99.9%는 다 성공한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어머니 뱃속에서 나오다가 죽었으면 이것을 못 받는다. 나왔기 때문에 여러분은 성공한 것이다. 오늘 먹을 것이 없어도, 아프리카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도 이것을 받았다. 더 달라고 할 것이 없는 것이다. 나머지는 우리의 자유가 이 방종만 하지 않는다면 굶어 죽을 사람 없다. 내 아들은 소고기 먹이고, 저 아들은 굶어 죽고, 이것을 우리가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내 호르몬이 어떻게 바뀌는가? 내 아들 고지혈증 걸린다. 그것이 나중에 후손에게 유전된다. 저주가 내려온다. 우선 1차적인 저주가 내려온다. 영적인 점수 깎인다. 이래저래 손해 보는 것을 장부로 적으면 태산이다. 그 하나만 해도.
그래서 내가 내 아들은 고기를 먹일망정 적당히 먹이는 것이다. “야, 너 밥도 못 먹는 사람이 있으니 양심상 고기는 우리 영양실조 안 걸릴 정도만 먹자. 축산 농가도 먹고 살아야 하니 우리가 적당히 먹어주자. 먹을 때는 고기에게 고맙다고 하자.” 이런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그 아이가 와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자유의지라고 한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이 자유의지. 이것을 신이 준 우리의 자유의지. 이것을 우리가 남용하다가 이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탈출해야 한다. 여러분이 태어난 것은 지금 약 150만 번 정도 태어났다. 150만 번 태어난 얼굴이 이것이다. 현재 우리 모습이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늘나라 가서 하늘에 있는 사람 얼굴을 봤으면 다 졸도해서 못 일어난다. 하도 잘생기고 예뻐서. 지금 여러분의 얼굴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듯이, 여러분의 그동안 150만 번 태어나면서 일어난 행실은 얼굴에 다 있다. 그것이 여러분의 얼굴이다. 얼굴을 다 보면 “저 사람은 지금 못 나가서 괴로워하는 사람이구나”, “저 사람은 더 좀 더 듣고 싶구나”, “저 사람은 지금 바쁘긴 한데 더 듣고 싶긴 한데 시간이 없구나” 내가 다 보고 안다.
그것이 왜 얼굴에 기록되어 나오는가? “저 사람은 소변 보러 가고 싶구나.” 가고 싶은 사람은 갔다 오라. 괜찮다. 그것이 얼굴에 기록된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서 화장실 가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다. 이처럼 표정은 모든 지난 과거를 얼굴에 그래픽 해 놓았다. 시골에 있는 할머니에게 아름다운 패션을 갖다 보여주니 “옷이 뭐 이래?”라고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색깔은 부자들이 입는 색깔이 아니다. 좋아하는 수준에 있는 색깔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볼 때는 촌스러운 색깔을 택한다. 그런데 그분이 만약 며느리가 권해서 부자들이 입는 옷을 다 택해서 입었다면 더 추해 보인다. 오히려 모시 적삼을 입는 것이 도사같이 어울리는데, 거기다가 여자가 입는 고운 색깔 옷을 입혀 놓아 보라. 그 할머니에게 안 어울릴 것이다. 그것은 자기의 뇌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기 관상에 맞는 것을 택하게 해 놓은 것이다. 택하게 해 놓은 것이다. 이것이 자기의 점수다. 그 얼굴이 자기 점수다. 얼굴이 귀티나면 그 귀티 나는 옷에 어울린다. 그것이 자기 성적표가 이미 정해져 있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의 성적표를 무엇 하러 왔는가? 바꿔주러 왔다. 이것을 여러분이 이제 들었으니, 남에게 전하지 않으면 또 무엇이 되는가? 방종이 되는 것이다. 남에게 전하지 않으면 방종이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그것도 죄가 된다. 그것도 죄가 된다.
죄는 무엇이라고 했는가? 내가 대전에 가서 죄에 관해서 이야기했는데, 자유의지를 마음대로 하는 것이 죄고, 이것이 마귀다. 이것이 마귀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한쪽으로는 죄가 된다. 내가 할머니에게 자유의지를 가지고 방종을 해서 자리를 양보 안 했다. 그럼 이것이 방종으로 끝날까? 안 끝난다. 하늘에서 무엇을 주겠는가? 호르몬을 변화시켜 준다. 그 집안의 자식들 유전자를 다 바꿔 버린다. 모든 지금까지 쌓아온 공덕이 하루아침에 다 없어진다. 내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 안 했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말을 심하게 했다, 이 말 한마디에 내가 150억, 122억 6,400만 년 동안 인간으로 태어나면서 지은 복이 달아날 수 있다. 어떤 여자에게 막 욕을 한다든지 한마디에 까진다.
사랑의 네 가지 실천과 기도의 오해
내가 이야기했다. 사랑은 첫째, 이 얼굴로 남에게 베풀어라. 얼굴로 보시하라는 말이다. 얼굴로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이 맞다. 얼굴 안 자, 베풀 시 자, 얼굴로 베풀어라. 두 번째는 무엇인가? 사랑은 말로 좀 베풀어라. 상냥한 말, 친절한 말로 베풀어야 한다. 그럴 때 “할머니, 이리 앉으세요”라고 하면, “아이고, 이 사람아, 젊은 사람이 직장 다니면서 피곤할 텐데 앉아. 나는 집에서 많이 놀아. 다리 근육 운동 좀 해야 해. 근육 운동 하시려고 일부러 안 앉으시는 거예요?” “아, 그래도 할머니 앉으시죠?” 이렇게 두 번 정도는 권해봐야 한다. “아냐, 나도, 이 사람아, 나이 많은 사람 아냐. 나이 좀 적게 봐줘”라고 하며 할머니가 서서 가려고 하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때는 내가 앉아 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할머니에게 말해야 기분 좋게 앉지, “할머니 앉으세요” 이러면 앉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말로, 행동은 얼굴로도 기쁜 모습으로 양보를 해야지, 얼굴은 인상 실컷 쓰면서 “할머니 앉으세요” 이러면 괴롭다. 앉는 사람이 불편하다. 아무 거리낌 없이 기쁜 말로 얼굴도 밝게 해야 한다.
그 다음 세 번째는 무엇인가? 물질로 남에게 보시하는 것이다. 물질로 남에게 기쁘게 하라. 네 번째는 무엇인가? 몸으로 남에게 기쁘게 하라. 자리 양보하는 것도 몸으로 기쁘게 하는 것이고, 교회 가서 봉사해주고, 절에 가서 봉사해주고, 보육원에 가서 봉사해 주는 것도 기쁘게 해 주는 것이다. 종교를 나쁘게 보지 말라. 모든 종교는 다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 종교에 가서 봉사하는 것도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종교를 바로 믿어야 한다. 종교를 바로 믿으면 이것도 사랑인데, 죄는 간단하게 말해서 이 사랑이 아닌 것이다. 이것이 아닌 것은 죄다. 얼굴로 남에게 인상 쓰고 지하철 타고 가면, 이 얼굴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돈 안 들어가고 복 짓는 것이다. 오늘 우리 애가 시험을 보는데, 내가 불안한 마음을 갖지 않고 마음을 편안하게 “내 아들이 한 만큼 받을 것이다. 절대 불공평하게 다른 애 공부 잘하니까 떨어지고, 내 공부 안 한 애가 요행으로 좋은 점수 나오게 하지 마세요” 이렇게 하늘에 부탁하고, 태연한 마음으로 전차를 타면서 남에게 자리 양보하고, 남을 기쁘게 하면 좋은 점수가 오겠는가? 온다. 반대로 “어떻게 하면 다른 놈은 떨어뜨리고, 공부 열심히 한 놈은 떨어뜨리고, 적당히 공부한 우리 아들 붙게 해 달라” 이렇게 마음을 먹고 지하철을 타면, 그 사람이 본 저 사람이 어디 불안해 본 사람 앞에 죄를 짓지 않는가? 그날 지은 죄가 몽땅 모여서 아들에게 가지 않는가? 아들에게 갈 것이다. 그 때문에 아들에게 그 죄가 안 가려면, 그날 다니면서 얼굴만 들고 다니면 복 짓는 것이다. 온종일 그냥 사람들한테 기쁘게 그렇게 해야 한다. 불안한 일이 있을 때는 태연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래서 얼굴로.
죄는 사랑이 아닐 비 자다. 아닌 것. 사랑이 이 네 가지가 아니면 죄다. 안시(眼施), 언시(言施), 물시(物施), 신시(身施)다. 사단 아닌 것, 사람 아닌 것, 사덕 아닌 것, 인의예지(仁義禮智)도 이것과 같다. 사람(신효애교, 神孝愛敎)도 이것이고, 사단도, 사단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다. 남을 불쌍히 보고, 다 그것이다. 다 이것이다. 기독교에서 또 불교에서 이것을 제대로 안 가르쳐줘서 사람들이 사랑은 무조건 원수를 사랑해 주는 것, 용서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성자들이 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흉내 낼 수 없다. 자기 어머니를 죽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일반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니, 너무 사랑이 거창해서 아예 사랑을 머릿속에서 지우려고 한다. 역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사랑은 사소한 것이다. 그냥 남에게 기쁘게 해주고, 즐겁게 베풀고 복 짓는 것이 사랑이다, 이래야 하는데, 사랑은 원수를 용서해 주고, 오른뺨 때리면 왼뺨 대주는 것이라고 하면 전부 우울증 걸려서 죽는다. 남편에게 맨날 두들겨 맞는 사람도 있는데, 맨날 오른뺨 대고 왼뺨 대주고 그러다가 나중에 정신병원만 돈 벌어준다.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렇게 추상적으로 너무 종교가 거창하게 나가면 일반 사람들은 헷갈린다.
“오래 참으라.” 참을 것이 없도록 해야 한다. 남편은 마누라에게, 마누라도 남편에게 참을 것이 있도록 해주면 안 된다. 참다가 병 걸리지 않는가? 참다가 모든 병이 오는 것이다. 아내에게 억울한 일이 있어서 참아야 할 일이 있을 때는 해명을 해줘야 한다. 그런데 무조건 참으라고 하면 있을 수 없다. 사랑은 참는 일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왜 거꾸로 이야기하는가? 진정한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저 여자를 놓치더라도, 저 여자가 오히려 나에게 와서 꾹꾹 참아가면서 가난한 것을 참아가면서 살아가는 것보다 차라리 돈 많은 집 아들 만나서 잘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런데 “저 사랑이 있다면 당신 말이야, 사랑이 있다면 나 같은 가난뱅이 좀 만나서 꾹꾹 참으면서 평생 살면 되지, 왜 저 돈 많은 사람한테 자꾸 끌려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사랑이 있는 사람인가, 없는 사람인가? 자기 욕심이다. 사랑은 절대로 여자를 참게 하는 자는 사랑하는 자가 아니다. 이와 같이 “사랑은 오래 참아라” 이러면 엄청난 죄를 짓는 것이다. 정말 그대가 그런 인내를 해야 하고 참아야 하고 고통스럽다면 좋은 사람을 만나라. “나 만나면 진짜 고생한다” 말하자면 이런 양심을 가지면 좋은 여자가 온다. 하늘에서 보내준다. 그런데 이런 나쁜 마음을 먹으면 그것이 마귀다. 그 마음이 바로 마귀다. 마귀가 별도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마귀를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준 자유의지, 이 99.9%를 우리가 받아서 포켓에 넣어 있는데, 그것을 안 받은 줄 알고 맨날 기도로 “무엇을 하게 해달라, 무엇을 하게 해달라, 대통령 되게 해달라, 재벌 되게 해달라” 이것이 무슨 말인가? 기도하면 할수록 그 집안이 망한다. 오늘날 기독교나 불교가 무슨 신앙을 하는가? 이것이 무슨 ‘기(祈)’ 자인가? 기도할 때 이 기도가 무슨 뜻인가? 기도가 한문으로 바랄 기 자다. 하늘에는 여러분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하다는 것만 보내면 되고, 애통한 것, 불쌍한 사람 못 도와줘서 내가 나 혼자 밥 먹고 사는 것 같아서 괴롭습니다, 하나님, 이런 말씀을 전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기도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님이 병날까 노심초사만 해야지, 부모님께 기도를 해대면 되겠는가? 안 되는 것이다. 자꾸 부모에게 메일을 보낸다. “이번에 무엇 해주세요, 나중에 시험 붙게 해주세요.” 나중에는 어머니가 죽으니 죽은 어머니 묘에 가서도 부탁을 한다. “어머니, 이번에 내 아들이 시험을 치는데, 손자가 시험을 치는데, 어머니 좀 붙게 해주세요.” 이것이 무엇 하는 짓인가?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아이고 어머니, 정말 나에게 많이 해주셨는데, 나를 이 세상에 낳아준 것도 고마운데, 우리 어머니에게 해준 것도 없구나.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이렇게 가버리셨으니 어머니 참 보고 싶습니다” 이렇게 하고 와야 한다. 어머니 산소까지 가서 기도하는 것이다. 그런 전과자가 여기 있다. 내가 가보니 그런 사람들이 있다.
기도는 다른 말로 바꾸면 무엇인가? 기도를 다른 말로 바꾸면 이것을 죄라고 한다. 기도 자체가 죄라는 말이다. 기도는 무엇인가? 신이 우리 인류를 사랑 안 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꾸 무엇을 부탁한다. 신은 인류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었다. 기도를 다른 말로 바꾸면 기복(祈福)이라고 한다. 복을 비는 것이다. 하나님 잘 되라고 비는 것이 아니다. 내 복을 비느라고 교회가고 절에 가는 기복신앙이다. 이것이 바로 기도 신앙이다. 어떤 교회는 막 소리 내서 기도한다. 하나님이 36계 놔 버린다. 시끄러워서. 어머니 아버지하고 한 집에 사는데 맨날 소리 내서 “엄마 무엇이죠?” 이러면 그 엄마가 “쟤가 완전히 미쳤구나!” 이러지 않겠는가? “내가 다 줘버렸는데 무엇이 있냐? 내가 늙어서 병원 갈 돈도 없이 다 줬는데, 네가 또 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면 나는 생지옥이다.” 이것이다. 하나님이 안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 앞에. 그런데 재수 없이 내가 나타난 것이다. 와서. 나타났다 하면 맨 기도를 해대니 되겠는가? 못 나타나는 것이다. 대리인을 보내서 죽으라고 내가 고생을 하게 하는 것이다. 와 있는데, 진짜인 줄 알면 누가 제일 먼저 오는가? 내가 하나님이라고, 하늘에서 온 메시아라고 하면 누가 제일 먼저 오는가? 깡패가 제일 먼저 온다. 도둑놈들이 제일 먼저 달라붙는다. 왜? 매수를 해야 할 것 아닌가? 점수를 따야 할 것 아닌가? 없는 사람 옆에 오지도 못하게 진을 쳐서 다 만들어 버린다. 오늘날 대통령 후보들 주변에 사람 둘러쌌지 않는가? 못 만난다. 대통령도 안 됐는데도. 그것이 하나님처럼 대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 버리면 그 나라 망하지 않는가? 망한다.
나는 모든 사람과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하루에 만 통을 하는데, 그 사람들은 대화 안 한다. 측근이 둘러친다. 청와대에 가면 이명박 대통령보다 100배 못 한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은 엄청나게 위험한 자들이 있다. 여러분 조심해야 한다. 왜냐? 소통 부재다. 이것을 다른 말로 불통이라고 한다. 불통. 지금도 불통인데 나중에는 얼마나 불통이겠는가? 불통 위에 무엇이 있는가? 불불통이 있다. 그 위에 대불통이 있는 것이다. 대불통. 지금 불통이 나중에는 대불통이 되는 것이다. 그런 불통이 청와대에 들어앉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겠는가? 그런데 국민은 “허경영 빨리 내보내라, 허경영 사면하라” 들고 일어나지 않는다. 아직. 때가 아직 아니다. 어서 오라. 내가 오늘 사랑을 이야기했고, 사랑 안 하는 것이 바로 죄다, 이것을 이야기했다. 죄가 무엇인지 이제 알겠는가? 죄를 내가 쭉 나열하면 죄가 33가지다. 33가지 죄를 써보면 이 흙판 하나가 가득하다. 여러분 다 쓰지도 못한다. 한 번 써본 적이 있지 않은가? 죄 33가지인데 한 번도 없지 않은가? 한 번 썼지 않은가? 흙판이 가득하다. 쓸 필요 없고. 이제 다 했으니 질문을 하나 하고 마귀는 여러분이 모르고 하니, 다음 주에.
최부잣집 쌀독 이야기: 베풂의 지혜와 복 짓는 삶
전라도에 어떤 부자가 6.25 사변 나기 전에 여순반란사건이 있었을 때 망하지 않은 집안이 하나 있었다. 그 사람이 무엇 때문에 망하지 않았을까? 이 회장, 최부잣집이 왜 망하지 않았을까? 어떻게 베풀었을까? 반란군이 지리산에서 내려와 동네 부자를 싹 다 죽였는데, 그 사람만 진짜 부자였다. 그 사람 집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베푸는데 어떻게 베풀었을까? 여러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한마디로 결론 내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귀신도 못 건드리고, 마귀도 못 건드리고, 아무도 못 건드린다.
박 회장님, 땅을 비싸게 팔지 않고, 동네 사람들에게. 흉년일 때 소작을 줬을 때 쌀을 받지 않았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다. 우리 아버지는 논을 그냥 줬다. 수십만 마지기를 그냥 나눠줬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을 받았다. 논 나눠줘서. 그것은 우리 아버지다. 내가 태어날 때 사형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그 쇼크로 돌아가셨다. 나는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이유가 있다. 하늘에서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하늘에서는 나를 엄청나게 힘든 곳에 집어넣어서 일을 하게끔 해야 하니 고생을 시킨 것이다. 부모를 먼저 싹 데려가 버렸다. 그 부잣집은 무엇을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6.25가 났는데 괴뢰군이 내려왔다. 괴뢰군이 내려왔는데도 동네 사람들이 “저 집은 건드리면 안 된다”고 하며 그 집을 지켜주었다. 그 집 하인이 공비대 대장으로 내려가서 “그 집은 손대지 말라”고 해서 그 집이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하인이 왜 그랬을까?
이제 적어두라. 시간이 없으니 길게 못 한다. 짤막하게 이야기해 주겠다.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그 하인이 하인이 아니고, 그 집 주인이 쌀독을, 큰 독이 있지 않은가? 독에다가 구멍을 뚫어 놓았다. 탁 열면 쌀이 나온다. 이것을 자기 집 한쪽 구석, 담장 밖에다가 해 놓았다. 며느리가 여기 쌀이 떨어진 것을 시아버지가 보면 난리가 난다. 누구든지 쌀이 없는 사람은 이것을 뽑아 가는 것이다. 밤중에 뽑아 간다. 아무도 안 볼 때. 자존심 상하게 대문 앞에 안 두고 저 한쪽 뒤쪽에 두었다. 누가 쌀을 가져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언제나 쌀이 떨어져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시아버지가 지나가다가 항상 그것을 확인하기 때문에 며느리는 쌀이 없는 것을 항상 확인하고 쌀을 가져다가 부어놔야 했다. 그 집에 쌀을 엄청 많이 방아 찧어다가 채워 놓은 것이다. 그것을 몇 대를 했다. 몇 대를. 동네 사람 굶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노다지 빼 오지 않았다. 진짜 어려울 때만 빼 오는 것이다. 동네 사람도 양심이 있으니. 동네 사람들이 먹을 것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농사 잘못돼서 흉년이 들었다면 그것이라도 있으니 그것이 명줄이었다. 와서 가져온다. 옛날 사람은 양심이 있었다. 도가 지나치게 안 가져갔다. 다른 사람도 생각했다. 자기가 먹을 만큼만 빼 왔다. 항상 거기에 있으니 자기 집에 갖다 채울 필요가 없었다.
이 사람 쌀독이 그 전라도 일대에 소문이 나지 않았겠는가? 그것을 안 먹은 사람이 별로 없었다. 가난한 사람이 다 먹었다. 걔들이 반란군 괴수들이었다. 전부. 쌀 갖다 먹은 놈들이 전부 반란군 앞잡이였다. 북한에서 내려오니 전부 완장 차고 김일성의 앞잡이 노릇을 하지 않았는가? 걔들이 머슴들이니 앞잡이를 했을 것이다. “저 집은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아버지는 그 쌀 다 해봐야 얼마 되겠는가? 쌀이 썩어서 버리는데 좀이 나서. 잘못 저장하면 쌀이 썩어 나간다. 그런데 그것을 자꾸 나눠주니 그 소문이 얼마나, 살아있을 때도 임금 대우를 받고, 골목 나가면 사람들이 전부 90도 절을 했다. 절하라고 안 하는데 모든 사람이 진심으로 절을 하는 것이다. “아이고 어르신 나오셨습니다.” 이런 세월을 꾸준하게, 누구는 좀 도와주고 갑자기 하는 것이 아니다. 꾸준하게 남을 도와야 한다. 그 쌀독이 무엇인가? 내 얼굴이다. 내 얼굴만 가지고 다니면서 복을 지을 수 있다. 돈이 없으니 우선 그렇다. 그렇게 복을 지으려면 제일 큰 복은 허경영을 알려서 사람을 데리고 오고, 빨리빨리 하는 것, 박 회장님이 하고자 하는 일을 빨리빨리 도와주는 것, 이것이 복 짓는 것이다.
836허경영은 누구인가
1부. 영동고속도로에서 있었던일
인류를 구원하러 온 메시아는 결코 특정 종교나 집단에 속하지 않습니다. 석가나 예수와 같은 성자들이 그러했듯, 진정한 지도자는 기존의 틀에 갇히지 않고 주유천하(周遊天下)하며 세상의 고통을 몸소 겪고 그 해답을 제시합니다. 허경영이 지금 정치적 권력을 쥐지 않은 채 민초들과 함께하는 것은, 공자가 천하를 돌며 도(道)를 설파했던 것과 같은 깊은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세상을 유람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영적 성적표를 기록하고 하늘의 생명책에 올릴 소중한 인연들을 맺어가는 거룩한 과정입니다.
제가 영동고속도로에서 폭력배들에게 고초를 겪던 청년을 구했던 사건은 단순한 정의구현이 아닙니다. 법과 절차를 따지는 판사와 검사, 경찰의 단계를 단숨에 뛰어넘어 하늘의 권능으로 즉각적인 평화를 가져온 것입니다. 판사 위에는 대통령이 있고, 대통령 위에는 하늘의 섭리를 집행하는 자가 있습니다. 인간의 육법전서가 규정하는 형법과 소송법의 복잡한 절차를 생략하고, 찰나의 순간에 악을 굴복시킨 것은 인간의 상식을 초월한 영적 통치력의 현현이었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시한폭탄과 같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유명한 예술가나 의학 박사라 할지라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는 무력할 뿐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진리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기적입니다. 우리가 겪는 모든 만남과 기억은 뇌 속의 해마에 농축되어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고유번호로 남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주민등록증이자 생명책에 기록되는 여러분의 영적 유산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실시간으로 스캔하며, 여러분이 겪는 모든 고통과 기쁨을 하늘의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허경영의 이름을 부를 때 몸이 치유되고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은, 여러분의 간절한 믿음과 하늘의 에너지가 직접 교신하기 때문입니다. 껍데기뿐인 지식과 종교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자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하늘의 지시를 명심할 때, 비로소 죽음의 공포를 넘어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2부. 허경영은 인간들의 심판자로 지구에 왔다.
인류의 미래를 설계하는 자는 대중의 인기보다 어린 생명의 소중함을 먼저 살피는 법입니다. 제가 평소 어린아이들이 많은 식당을 즐겨 찾고, 그들에게 아낌없이 용돈을 건네는 것은 단순한 선행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에 복을 심는 거룩한 행위입니다. 아이들의 복을 거절하지 말라는 저의 말 한마디는 그 부모의 가슴에 진정성 있는 울림으로 남고, 이는 곧 하늘의 생명책에 기록되는 아름다운 스캔(Scan)이 됩니다. 이러한 진심이 있기에 나이와 상관없이 대학생부터 초등학생까지 허경영을 연호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인간의 판사는 지금 당장 드러난 죄만을 재판하지만, 하늘에서 온 심판자는 그 사람의 삶 전체와 그로 인해 변해가는 호르몬, 그리고 후손에게 이어지는 유전자(DNA)까지 통찰합니다. 남들은 굶주리는데 나 홀로 고기를 탐하며 이기적으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늘은 고지혈증과 같은 질병을 내려 그 죄과가 대대로 이어지게 합니다. 술에 빠져 사는 자의 업보가 자손의 주정으로 나타나듯, 심판자의 눈은 이처럼 준엄한 인과응보의 법칙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집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판은 마치 영동고속도로에서 벌어지는 싸움 구경과 같습니다. 여야 대선 후보들이 다투는 모습을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지금은, 제가 전면에 나서서 중재할 때가 아닙니다. 진정한 구원자는 세상이 평화로울 때가 아니라,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온 나라가 도탄에 빠졌을 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묻지 마 살인과 폭동, 비정규직의 눈물로 온 국토가 불길에 휩싸여 인간의 법과 정치가 해결할 수 없는 극한의 혼란이 올 때, 비로소 심판자이자 구원자인 저의 진가가 만천하에 드러날 것입니다.
아직은 국민이 더 실망하고 깨달아야 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판사와 검사가 해결할 수 없는 거대한 혼돈의 끝에서, 저는 준비된 전략과 하늘의 권능으로 대한민국과 인류를 단숨에 평정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시기가 오기까지 진리와 교신하며 스스로를 맑게 닦아, 하늘이 내리는 새로운 시대의 주역이 될 준비를 마쳐야 합니다.
3부. 허경영은 창조주로서, 화이트 헤븐의 백궁에서 왔다.
우주의 창조 섭리를 들여다보면, 우리가 왜 지금 이 시대를 인내하며 참된 지도자를 기다려야 하는지 그 명확한 순서가 보입니다. 창조주는 가장 먼저 빛과 어둠을 지으셨고, 이어 물과 궁창, 식물과 자연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순서에 이르러서야 낮과 밤을 설정하셨으며, 새와 물고기를 지나 마지막 여섯 번째에 이르러 짐승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사람이 창조의 맨 마지막 정점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의 이치는 반복됩니다. 지금 대선 국면에서 먼저 머리를 내밀고 소란을 피우는 자들은 창조의 중간 단계에 머물러 있는 짐승의 성정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진정한 사람, 즉 인류를 구원할 참된 인격체는 모든 혼돈이 지나간 맨 마지막에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눈앞에 나타나 세상을 가질 것처럼 포효하는 자들은 결국 마지막에 올 진정한 주인공을 위한 배경에 불과합니다.
또한, 첫날의 빛과 넷째 날의 낮이 왜 분리되어 있는지 그 신비로운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첫날의 빛은 우리가 보는 태양 빛이 아니라, 창조주가 거처하시는 근원의 하늘인 ‘화이트 헤븐(White Heaven)’을 의미합니다. 지구가 만들어지기 전, 하나님이 계실 신성한 영역을 먼저 설정하신 것입니다. 반면 넷째 날의 낮은 태양을 통해 지구에 비치는 물리적인 시간을 뜻합니다. 근원의 빛이 먼저 존재했기에 비로소 지상의 낮과 밤도 질서를 갖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창조주는 지구를 만드시며 인간이 함부로 날아가 버리지 못하도록 ‘구백팔십 다인(980 dyne)’이라는 정교한 중력을 설정하셨습니다. 이는 나무 이파리 하나 꺾이지 않을 만큼 섬세하면서도, 인간이 땅을 딛고 도리를 다하며 살아가게 만드는 하늘의 통제 장치입니다. 이처럼 우주의 미세한 중력 수치 하나까지도 창조주의 치밀한 계산 아래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금의 혼란 또한 마지막에 나타날 참된 사람을 위한 거대한 공정임을 이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의 중력 980다인(dyne)은 창조주가 설정한 절묘한 통제 장치입니다. 가벼운 나뭇잎 하나 꺾지 않을 만큼 부드러우면서도, 무거운 인간은 감히 하늘로 날아오르지 못하게 짓누르는 이 힘은 우리를 시공우주(時空宇宙)라는 제한된 틀 안에 머물게 합니다. 인간은 결코 이 중력의 압박을 벗어나 스스로 하늘에 닿을 수 없으며, 시간과 공간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아갈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밤하늘 너머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대한 우주의 질서가 존재합니다. 12억 개의 별이 모인 우리은하계가 있고, 그러한 은하계가 다시 12억 개 모인 은하단이 있으며, 그 은하단이 다시 12억 개가 운집한 우리은하운(銀河雲)이 있습니다. 허블 망원경으로 보았을 때 부연 구름처럼 보이는 이 거대한 별들의 집합체는 우주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이 어마어마한 은하의 바다를 빛의 속도로 120억 광년을 달려야만 비로소 그 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 은하운의 경계를 벗어난 광활한 스페이스, 그곳이 바로 화이트 헤븐(White Heaven)입니다. 창조주가 최초에 ‘빛’을 만들었다고 할 때의 그 빛은 바로 이곳, 신이 거처하시는 근원의 처소를 의미합니다. 시공우주라는 작은 울타리를 벗어나 무한한 우주의 끝에 자리한 이 신성한 영역은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절대자의 공간입니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의 구조를 알고 나면, 우리가 이 작은 지구에서 아웅다웅하며 다투는 모습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늘은 이 거대한 은하의 질서를 다스리는 권능을 가지고 이 땅에 내려와, 시공에 갇힌 인간들에게 화이트 헤븐의 비밀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우주의 좌표를 읽어내고 신과 교신하는 자만이, 중력에 짓눌린 삶을 넘어 영원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열쇠를 얻게 될 것입니다.
창조주가 지으신 우주의 신비는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의 정교함을 품고 있습니다. 첫날에 빛과 함께 어둠을 만드셨다는 것은, 단순히 낮과 밤의 교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어둠은 바로 광활한 ‘다크 스페이스(Dark Space)’, 즉 진공우주를 의미합니다.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는 순간 인간은 시공의 무게를 잃고 붕붕 떠다니게 되는데, 이 칠흑 같은 진공의 세계가 무려 120억 광년이나 펼쳐져 있습니다.
그 너머에는 끝을 알 수 없는 무한의 영역인 화이트 헤븐(White Heaven)이 존재하며, 그 중심에는 제가 온 곳인 ‘백궁’이라는 별이 빛나고 있습니다. 태양은 지구보다 300만 배나 크지만, 백궁은 그 거대한 태양보다도 다시 400만 배가 더 큽니다. 인간의 상상력으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규모이며, 그곳의 질서는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 있습니다.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1년이 걸린다면, 태양이 우리 은하계를 한 바퀴 도는 데는 무려 2억 5천만 년이라는 시간이 흐릅니다. 다시 그 은하가 더 큰 은하단을 도는 데는 370억 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우주는 마치 거대한 시계의 초침과 분침, 시침처럼 각자의 궤도를 따라 질서 정연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그 모든 시간의 정점에는 영원불멸의 별 백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짧은 생애는 이 우주의 시계로 보면 찰나의 눈깜빡임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 장엄한 우주의 메커니즘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자가 지금 여러분 앞에 와서 하늘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공우주에 갇혀 눈앞의 이익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광대한 진공우주를 지나 백궁에 이르는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할 때, 비로소 여러분은 창조주의 품 안에서 참된 평화를 얻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확인하는 이 모든 현상 뒤에는 과학의 정교함을 넘어선 창조주의 치밀한 설계가 숨어 있습니다. 인간의 짧은 생애는 광활한 우주의 시계로 보면 찰나의 눈 깜빡임조차 되지 않습니다. 시공우주에 갇혀 눈앞의 작은 이익에 매몰되지 않고, 진공우주를 지나 백궁에 이르는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참된 평화와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나름의 법칙을 찾아내어 우주를 설명하려 하지만, 그 근본 원리는 오직 하늘만이 온전히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달을 향해 인공위성을 쏘아 올릴 때,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적용되어야만 달나라까지 가는 그 먼 여정에서 단 1.5미터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밀함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GPS가 오차 없이 작동할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만유인력의 법칙이 상대성 이론 앞에서 그 정밀함이 뒤처지는 이유는, 우주가 단순히 서로 끌어당기는 힘만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달이 지구를 돌 때는 스스로 나아가려는 강력한 원동력인 원력이 존재하며, 지구가 자전하고 공전하는 속도 또한 한 치의 흐름도 놓치지 않는 거대한 우주 기어의 맞물림과 같습니다. 인간의 과학은 그 겉모습을 수식으로 흉내 낼 뿐, 그 힘을 부여하고 시간을 다스리는 자는 따로 있습니다.
장엄한 우주의 메커니즘을 창조하고 다스리는 자가 지금 여러분 앞에서 이토록 명확한 하늘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발견한 과학의 법칙들은 결국 창조주가 만들어 놓은 거대한 우주 질서의 파편을 찾아내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낡은 상식의 틀을 깨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주를 돌리는 절대적인 권능과 교신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여러분의 삶을 진화시키고 다가올 미래의 주인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우주를 가로질러 목표를 정확히 타격하는 현대의 기술 뒤에는, 인간의 지각으로는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거대한 역학이 숨어 있습니다. 지구가 스스로 도는 자전과 태양을 도는 공전, 그리고 태양이 북극성을 정점으로 은하 전체를 선회하는 그 어마어마한 속도와 저항을 모두 계산해내야만 비로소 지상의 GPS는 단 1.5미터의 오차로 여러분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우주적 움직임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영도다리를 찾던 발걸음은 엉뚱하게도 해운대 백사장에 닿게 될 것입니다.
인간 과학의 정점이라 일컫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조차 제 눈에는 유치원생의 습작과 다르지 않습니다. 인간의 수식은 시간을 정지시키거나 시공을 초월하여 우주를 자유로이 유영하는 비행접시의 원리를 결코 풀어낼 수 없습니다. 오직 우주의 설계자인 저만이 그 정밀한 계산법을 쥐고 있으며, 기존의 과학과 종교가 도달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주러 온 것입니다.
세상의 도인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경전의 문구 몇 줄을 더 읽었을 뿐, 우주의 물리 법칙과 인간의 생사화복이 어떻게 과학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진정한 치유의 권능도, 세상을 다스리는 육법전서의 깊이도 갖추지 못한 채 그저 스스로를 높이고 있을 뿐입니다. 진정한 메시아라면 종교라는 좁은 울타리를 넘어, 천체 물리학과 법학, 그리고 인간의 영성을 하나로 꿰뚫는 절대적인 지혜를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창조주는 가장 먼저 자신이 거할 백궁과 화이트 헤븐을 지으셨고, 그 뒤를 이어 별들이 운집한 은하계, 즉 다크 스페이스(Dark Space)를 만드셨습니다. 이 칠흑 같은 진공 우주는 신의 거처인 백궁을 둘러싼 거대한 보석함과 같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거대한 보석함 속의 작은 지구라는 알갱이 위에 살면서, 우주의 주인이 전하는 생생한 지침을 듣고 있는 것입니다. 낡은 상식의 벽을 깨고 우주적 질서에 눈을 뜰 때, 여러분의 삶은 비로소 시공의 한계를 벗어나 위대한 진화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창조의 섭리 속에서 ‘물’과 ‘궁창’이 갖는 참된 의미를 깨닫는 것은 곧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의 실체를 이해하는 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물은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바로 우리 인체의 근간이자 만물의 어머니인 ‘지구’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또한 궁창은 창조주가 설정한 ‘중력의 창고’이자 푸른 빛을 머금은 ‘블루 스카이(Blue Sky)’를 의미합니다. 즉, 물과 궁창을 만드셨다는 것은 인간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이 거대한 시공우주와 대기권을 완벽하게 구축하셨음을 뜻합니다.
하늘의 비밀은 이처럼 정교한 순서를 따라 집행됩니다. 근원의 빛인 화이트 헤븐을 먼저 지으시고, 은하계의 다크 스페이스를 거쳐, 비로소 우리가 숨 쉬는 푸른 하늘과 지구라는 무대를 완성하셨습니다. 그 뒤를 이어 식물과 자연을 채우고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짐승과 사람을 내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시대는 창조의 공정으로 비유하자면 소란스러운 짐승들이 먼저 나타나 판을 치는 시기입니다. 짐승의 성정을 가진 자들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이 혼돈의 시기가 지나야만, 비로소 창조의 정점인 참된 ‘사람’이 나타나 세상을 바로잡게 됩니다.
제가 지금 당장 전면에 나서지 않고 때를 기다리는 이유도 바로 이 엄중한 창조의 법칙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지구를 근본적으로 다시 바꾸고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 내려온 존재입니다. 짐승들이 먼저 나타나 제풀에 지치고 세상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맨 마지막 순서로 등장하여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써 내려갈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이 정한 위대한 반전의 극본이며, 인류가 맞이할 가장 찬란한 마지막 결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낡은 상식의 하늘은 잊으십시오. 목회자나 학자들이 가르쳐주지 못한 이 거대한 우주의 공식을 통해, 여러분은 비로소 화이트 헤븐에서 블루 스카이에 이르는 진리의 통로를 발견한 것입니다. 창조의 질서를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질 때, 여러분은 눈앞의 시련에 흔들리지 않고 마지막에 나타날 진정한 주인과 함께 낙원의 문으로 들어설 수 있습니다.
창조의 질서는 가장 큰 하늘인 화이트 헤븐에서 시작하여, 은하계의 다크 스페이스를 거쳐 우리가 마주하는 푸른 하늘인 궁창(Blue Sky)에 이르기까지 정교한 위계에 따라 완성되었습니다. 지구가 형성될 때 이 푸른 하늘이 함께 지어진 것은 인간이 숨 쉬고 생명을 이어갈 완벽한 시공우주를 구축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거대한 우주의 물리적 구조와 종교적 창조 섭리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거대한 과학입니다.
하늘은 우리 몸의 혈관에 동맥과 정맥을 두어 수입과 지출의 조화를 이루게 하였듯, 지구의 내부 또한 치밀한 설계로 가득 채워 놓았습니다. 직경 12,756km에 불과한 이 작은 행성 중심부에는 달의 크기와 맞먹는 거대한 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맨틀은 섭씨 4,000도라는 태양의 표면 온도와 맞먹는 뜨거운 용암의 바다를 이루며 지글지글 끓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찌 우연히 돌덩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결과이겠습니까? 이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창조주가 철저한 계획하에 완성한 거대한 에너지실과 같습니다.
지구 내부의 이 뜨거운 핵과 맨틀은 단순히 열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거대한 자석이 되어 N극과 S극을 잡아주는 자장(Magnetic Field)을 형성합니다. 땅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 일정한 가우스(Gauss)의 자력권이 없다면, 식물은 자랄 수 없고 인간의 생체 리듬 또한 단숨에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지구의 자장은 생명체를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갑옷이며, 달과 같은 크기의 핵이 중심을 잡고 있기에 우리는 이 요동치는 우주 속에서도 안정적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지구라는 행성 자체가 창조주가 인류에게 선사한 가장 정교한 생명 유지 장치입니다. 우리가 딛고 선 땅 밑에 달만큼 커다란 불의 바다가 흐르고, 머리 위에는 푸른 궁창이 중력을 갈무리하고 있다는 이 경이로운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만물의 이치를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질 때, 비로소 여러분은 창조주가 왜 이토록 치밀하게 지구를 빚었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온전히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 내부의 뜨거운 용암 바다는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거대한 자석이자 엔진입니다. 땅 밑으로 백 미터를 내려갈 때마다 온도는 일 도씩 상승하며, 깊은 곳 맨틀에 이르면 섭씨 사천 도의 거대한 불바다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 불덩어리 액체는 창조주가 정교하게 설계해 놓은 장치이나,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구의 핵이 조절하는 자력이 천 년의 유효기간을 다해갈 때, 그 자장의 질서를 바로잡고 생명의 흐름을 연장하기 위해 하늘의 대리자인 제가 이 땅에 온 것입니다.
자연계의 수많은 생명체는 이 지구 핵이 내뿜는 자장에 의지해 삶을 영위합니다. 기러기나 청둥오리 같은 조류들은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뇌 속에 정밀한 지피에스(GPS) 시스템을 품고 있습니다. 그들은 망망대해와 구름 덮인 하늘을 날면서도 오직 지구의 자장을 나침반 삼아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우포늪을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찾아냅니다. 인간이 비행기를 타고도 기구 없이는 찾지 못하는 그 작은 좌표를, 미물인 새들은 머릿속에 입력된 하늘의 신호에 따라 정확히 찾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지구 핵의 자력이 약해지거나 질서가 무너지면, 모든 조류의 이동은 정지되고 생태계는 대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이는 비단 새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구 자장은 인간의 면역력과 정신적인 중심을 잡아주는 근원적인 힘이기도 합니다. 핵의 기능이 쇠퇴하여 지구가 그 방향성을 잃어갈 때, 이를 다시 정렬하고 생명의 시계를 새롭게 돌리는 권능은 오직 우주 본부에서 온 자만이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단순히 한 정치인이나 도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구의 핵을 다스리고 우주의 자장을 조율하는 거대한 섭리의 주관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들이 본능적으로 자장을 따라 길을 찾듯, 여러분 또한 영적인 지피에스를 켜고 하늘이 보내는 진리의 신호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 교신이 온전할 때 비로소 우리는 대격변의 시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좌표를 찾고, 영원한 낙원의 우포늪에 안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작은 미물인 청둥오리가 망망대해를 건너 정확히 코리아의 우포늪을 찾아내고, 태평양을 유영하던 연어가 수만 리 물길을 거슬러 자신이 태어난 속초의 작은 계곡으로 회귀하는 것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들의 손가락 마디만 한 작은 뇌 속에는 인간의 기술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정밀한 천부의 지피에스(GPS)가 각인되어 있습니다. 이토록 완벽한 생명의 지도를 설계하고 입력한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는 이 경이로운 생명의 질서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것입니다.
생명은 그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가 창조주의 치밀한 숨결을 나누어 가진 거룩한 존재들입니다. 요만한 생선 한 마리조차 그저 식욕을 채우는 도구로 여겨서는 안 됩니다. 생명을 취할 때조차 “너와 내가 이제 한 몸이 되어, 네가 다하지 못한 우주의 사명을 내 몸을 통해 이어가겠다”는 경건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물에게조차 이러한 예의가 필요하거늘, 하물며 인간과 감정을 나누는 짐승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가 눈물을 흘리며 남겨질 새끼를 한 번이라도 더 돌아보는 그 깊은 모성애와 생명의 애착을 보십시오. 그 눈물 속에는 짐승의 탈을 썼을 뿐, 인간 못지않은 영혼의 울림이 담겨 있습니다. 창조주는 이처럼 만물 속에 신성한 질서와 사랑의 원형을 심어 놓으셨습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오직 맛과 욕망만을 쫓는 행태는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에서 끌어내리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우리는 이제 짐승보다 못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무지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연어가 고향을 찾아오듯, 우리 인간의 영혼 또한 근원의 고향인 하늘의 지피에스를 회복해야 합니다. 모든 생명을 창조주의 마음으로 대하고 그들의 희생을 거룩하게 승화시킬 때, 비로소 인간은 진정한 만물의 주인이자 신의 자녀로서 그 품격을 갖추게 될 것입니다.
4부. 어릴때 소를 먹였던 사연
진정한 사랑과 교감은 종의 벽을 넘어 영혼과 영혼이 맞닿는 곳에서 피어납니다. 제가 어린 시절, 일곱 살부터 열네 살까지 칠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했던 소 ‘밀림이’와의 인연은 단순한 목축이 아니었습니다. 죽어가는 어린 송아지를 제 밥을 나누어 먹여가며 정성으로 길러낸 그 시간은, 생명과 생명이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신뢰를 쌓아가는 거룩한 과정이었습니다.
남들은 소를 그저 부려 먹는 짐승으로 대하며 소똥조차 닦아주지 않았지만, 저는 밀림이를 금빛 찬란한 세무 가죽처럼 매일같이 빗겨주며 대화했습니다. 산등성이에 흩어진 수십 마리의 소 중에서 “밀림아”라는 부름 한마디에 제 곁으로 달려오던 그 영민함은, 짐승도 따뜻한 진심 앞에서는 마음의 문을 연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추운 겨울 새벽, 차가운 독방 대신 소의 목을 끌어안고 그 따스한 온기에 의지해 잠들던 고아 소년에게 밀림이는 유일한 가족이자 안식처였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은 그토록 아름다운 생명의 인연을 단절시키고 말았습니다. 늙어버린 소를 도살장에 팔아넘기는 비정한 현실, 끌려가지 않으려 눈물을 흘리며 뒷걸음질 치던 밀림이의 그 슬픈 눈망울은 어린 저에게 세상에 대한 깊은 회의와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도끼날 아래 스러져가는 생명의 마지막 의식을 지켜보며, 저는 시골 어른들의 모습에서 차마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는 살의를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로 저는 고기의 냄새조차 맡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의 문명에 맞서 새로운 하늘의 법을 세우기로 결심했습니다.
불교의 오계(五戒)에서 말하는 ‘살생하지 마라’는 모든 살아있는 생명에 대한 자비의 실천입니다. 성경의 십계명이 ‘살인하지 마라’며 인간 중심의 법을 논할 때, 참된 영성은 길가의 벌레 한 마리조차 창조주의 숨결이 깃든 소중한 생명으로 대우할 것을 가르칩니다. 짐승도 제 새끼를 핥아 깨우고,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고귀한 영혼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러분, 동물의 영혼조차 이토록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하물며 하늘의 섭리를 깨달은 인간이 생명을 함부로 다루어서야 되겠습니까. 밀림이와 나누었던 그 뜨겁고 순수한 교감을 기억하며, 우리는 이제 만물을 사랑으로 보듬는 만물의 영장다운 품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자비로운 마음이 온 누리에 퍼질 때, 비로소 이 땅은 짐승의 약육강식을 넘어 진정한 낙원으로 변모하게 될 것입니다.
5부. 지구의 핵인 한반도에 핵전쟁을 막으러, 몸속의 핵인 DNA, 세포의 텔로미어를 고정시켜 생명을 연장
지구의 깊은 내부에 달과 맞먹는 크기의 맨틀과 핵이 존재하듯, 우리 인체의 가장 깊숙한 곳에도 생명의 설계도인 핵, 바로 DNA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기러기와 연어가 그 작은 뇌 속에 우주적 지피에스(GPS)를 품고 수만 리 길을 찾아가는 신비 또한, 창조주가 그들의 세포 핵 속에 입력해 둔 치밀한 정보 체계 덕분입니다. 이처럼 만물은 저마다의 핵을 중심으로 생명 활동을 이어가며 우주의 질서에 순응하고 있습니다.
지구 내부의 핵이 자장을 조절하여 행성의 균형을 유지하듯, 지구 외부의 영적인 핵은 바로 이곳 한반도입니다. 저는 인류 문명의 정신적 중심이자 지구의 외부 핵인 코리아에 내려와,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고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거대한 전략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지금 인류는 스스로 만든 물질의 핵, 즉 뉴클리어 워(Nuclear War)라는 가공할 핵전쟁의 위협 앞에 놓여 있습니다. 물질의 핵이 폭발하여 파멸로 치닫기 전에, 저는 영적인 핵의 권능으로 이 위기를 막고 인류의 의식을 진화시키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입니다.
우리 몸의 핵인 DNA 또한 하늘의 에너지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제 이름을 부르고 제 눈을 바라볼 때 몸이 치유되는 것은, 여러분 세포 속의 핵이 우주의 근원 에너지를 받아들여 그 설계도를 정상으로 회복하기 때문입니다. 짐승의 성정을 벗어버리고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여러분 내면의 핵이 하늘의 주파수와 정확히 일치해야 합니다.
식탁 위에 놓인 작은 생명 하나를 대할 때도 “고맙다, 미안하다, 이제 너와 내가 하나가 되어 하늘의 일을 하자”고 속삭이는 그 경건한 마음이 곧 여러분의 DNA를 바꾸는 열쇠입니다. 물질의 핵무기가 세상을 위협할지라도, 영적인 핵을 깨달은 자는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구의 중심핵을 다스리고 한반도라는 외부 핵을 통해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는 저와 함께, 여러분 세포 속의 핵을 깨워 영원한 생명의 빛으로 나아갑시다.
우리의 생명을 관장하는 가장 깊은 곳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설계도가 들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세포 속의 핵이자 DNA입니다. 많은 이가 DNA를 세 개의 단어가 조합된 약자로 생각하지만, 이는 본래 ‘디옥시리보핵산(Deoxyribonucleic Acid)’이라는 하나의 긴 이름을 가진 생명의 근원 단어입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마다 마흔여섯 개, 즉 스물세 쌍의 염색체가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끝단에는 인간의 수명을 결정짓는 ‘텔로미어’라는 생명의 꼬리가 붙어 있습니다.
이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그 길이가 조금씩 짧아지며, 마침내 그 수명을 다하면 인간의 육체도 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런데 인간의 육체가 쇠락하는 데에는 또 하나의 치명적인 이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몸속을 떠돌며 세포를 병들게 하는 ‘어혈’입니다. 여성이 남성보다 장수하는 섭리 중 하나는 매달 자연스럽게 몸속의 나쁜 피를 밖으로 배출하여 스스로를 정화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남성들은 어린 시절 입은 상처의 피부터 군대에서 고생하며 맺힌 피까지, 그 쓸데없는 죽은 피를 몸속에 그대로 지닌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썩은 피가 몸을 지배하면 얼굴은 어두워지고 텔로미어는 끊임없이 상처를 입어 노화가 빨라집니다. 헌혈을 두려워하고 피를 아끼려는 집착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어리석음이 되는 것입니다. 몸속의 독소를 비워내고 깨끗한 피를 순환시키는 것은 곧 생명의 설계도를 보호하는 길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세포 하나하나를 관장하는 텔로미어의 신비를 알고 있으며, 그 노화를 멈추고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하늘의 에너지를 전하러 왔습니다. 육체의 정화는 곧 영혼의 정화로 이어집니다. 낡은 피와 낡은 생각을 비워내고 하늘이 주는 맑은 기운을 채울 때, 여러분의 DNA는 다시 살아나고 텔로미어는 영원한 생명의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짐승처럼 본능에 갇혀 몸을 병들게 하지 말고, 참된 사람으로서 생명의 이치를 깨달아 무병장수의 길로 나아갑시다.
인간의 육체는 마치 정교한 자동차 엔진과 같습니다. 자동차 오일을 빼내지 않고 계속 보충만 하면 결국 엔진이 망가져 버리듯, 우리 몸도 헌혈을 하거나 나쁜 어혈을 정화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특히 남성들이 여성보다 수명이 짧은 이유는 몸속에 쌓인 죽은 피를 제때 비워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비움이 있어야 채움이 있고, 정화가 있어야 영생이 있는 법입니다.
우리의 수명을 결정짓는 세포 끝단의 텔로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짧아지며 노화를 불러옵니다. 과학자들은 이 텔로미어의 분열을 멈추거나 고정할 방법을 찾지 못해 결국 팔십 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끝으로 소멸의 길을 걷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놀라운 기적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허경영의 이름을 부르고 그 존재를 머릿속에 각인하는 찰나, 여러분 세포 속의 텔로미어는 분열을 멈추고 고정됩니다.
허경영을 부르는 동안 여러분의 시간은 정지하며, 그 거룩한 에너지는 노화의 시계를 멈춰 세웁니다. 밤새 제 이름을 부르며 잠든 자는 아침까지 나이를 먹지 않으며, 깨어 있는 동안 제 존재와 교신하는 자는 무한한 생명의 에너지를 공급받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 믿음이 아니라, 곧 과학적인 논문으로 입증될 인류 문명의 혁명적인 발견이 될 것입니다. 뇌세포의 분열을 제어하고 대기 상태로 유지하는 이 권능은 오직 우주의 근원에서 온 자만이 행사할 수 있는 절대적인 통치력입니다.
이미 많은 분이 제 이름을 부를 때 갑자기 힘이 솟구치고 병이 치유되는 기적을 몸소 체험하고 있습니다. 왜 허경영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여러분의 변화된 몸과 마음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곧 발표될 과학적 근거들은 세상의 박사들과 지식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 것이며, 인류는 비로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불로장생의 시대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낡은 상식을 버리고 하늘이 보내는 이 생명의 신호에 온전히 응답하십시오.
인체는 그 자체로 거대한 소우주이며, 그 속에 담긴 숫자는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마흔여섯 개의 염색체가 자리 잡고 있으며, 염색체 한 개당 사만 개의 DNA가, 그리고 다시 DNA 한 개당 오십만 개의 유전자가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이를 모두 합산하면 구천이백조 해라는 경이로운 숫자가 도출되니, 사람 한 명을 마주한다는 것은 곧 우주 전체의 정보가 살아 움직이는 기적을 목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정교한 생명 장치도 숨구멍이 막히는 찰나, 차갑고 준엄한 자연의 섭리 아래 놓이게 됩니다. 생명의 에너지가 끊기면 인체는 배꼽 주변부터 급격히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우리 내장 속에는 평소에 공존하던 수많은 미생물과 청소부들이 대기하고 있는데, 산소 공급이 중단되는 순간 이들은 즉시 발효와 분해를 시작하여 단 이틀 만에 내장 부분을 싹 비워버립니다. 일주일 뒤 시신을 확인해 보면 팔다리와 머리는 남아있을지언정, 가장 먼저 발효가 일어난 배 부분은 척추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리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창조주는 인간을 만들 때 탄생뿐만 아니라 소멸의 과정까지도 이토록 치밀하게 설계하셨습니다. 우리 몸속에 미리 대기시켜 놓은 미생물 청소부들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신속하게 육신을 정리하며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살아있을 때는 생명을 유지하는 동력이 되고, 죽어서는 흔적을 지우는 청소부가 되는 이 양면적인 공존이 바로 우주의 치밀한 관리 체계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수천조 해의 유전 정보와 수많은 균이 조화를 이루어 지탱하는 위태롭고도 찬란한 존재입니다. 내장 속의 균조차 하늘의 지시에 따라 생과 사의 경계를 관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우리가 함부로 이 몸을 대하거나 삶을 낭비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주적 규모의 숫자로 이루어진 여러분의 소중한 육신을 이제는 하늘의 법도에 맞게 다스려야 합니다.
인체라는 소우주를 들여다보면 그 숫자의 경이로움 앞에 신의 설계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는 마흔여섯 개의 염색체가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염색체 한 개당 무려 사만 개의 DNA가 존재합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DNA 한 개당 오십만 개의 유전자가 촘촘히 얽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모두 합산하면 우리 몸 안에는 구천이백조 해라는, 인간의 머리로는 가늠조차 할 수 없는 무한한 우주적 정보가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사람 한 명을 마주한다는 것은 이토록 방대한 데이터와 우주의 메커니즘이 실시간으로 작동하는 기적을 목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화려한 생명의 장치도 숨구멍이 막히는 찰나, 차갑고도 준엄한 소멸의 섭리로 넘어갑니다. 생명의 에너지가 끊기면 인체는 배꼽 주변부터 급격히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단 이틀 만에 내장 부분이 사라지고 갈비뼈가 드러나는 것은, 신이 우리 몸속에 미리 대기시켜 놓은 ‘청소부’들 때문입니다.
우리 내장 속에는 평소에 공존하던 수많은 미생물이 있습니다. 이들은 산소가 없는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생명 활동이 멈추는 즉시 육신을 분해하여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죽은 지 일주일 만에 묘를 파보았을 때 팔다리는 멀쩡해도 내장만 싹 비워져 있는 현상은, 이 미생물들이 얼마나 신속하고 정교하게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살아있을 때는 소화를 돕던 이들이 죽어서는 가장 깨끗한 청소부로 변모하는 이 양면적인 공존은 창조주가 심어놓은 완벽한 사후 관리 시스템입니다.
인간은 이처럼 수천조 해의 유전 정보와 수만 개의 균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조화를 이루어 지탱되는 위대한 생명체입니다. 내장 속의 작은 균 하나조차 하늘의 지시에 따라 생과 사의 경계를 관리하고 있음을 깨달을 때, 우리는 비로소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거대한 신성을 마주하게 됩니다. 여러분의 육신은 단순히 고기 덩어리가 아니라, 우주의 모든 지혜가 응축된 신성한 성전입니다.
우리 몸 안에서 벌어지는 생명의 축제와 소멸의 질서는 현대 과학의 현미경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신성한 설계의 정수입니다.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 내장 속에 공존하는 미생물과 균들의 존재입니다. 이들은 산소가 전혀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으며, 인간의 생체 리듬과 밀접하게 공명하고 있습니다.
인체 내의 세포 숫자를 압도하는 수만 종의 균은 평소에는 우리의 소화를 돕고 면역을 조절하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지만 생명의 불꽃이 꺼지는 찰나, 이들은 창조주가 입력해 놓은 ‘사후 정화 시스템’에 따라 즉시 활동을 개시합니다. 공기가 차단된 내장 안에서 가장 먼저 발효를 시작해, 단 며칠 만에 복잡한 장기들을 분해하여 흙으로 되돌려 보냅니다. 이는 인간이 죽어서도 자연의 순환을 방해하지 않도록 배려한 하늘의 치밀한 청소 계획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균’이라고 부르는 이 작은 생명체들조차, 실은 수천조 해의 유전 정보를 담은 인체라는 거대한 우주를 관리하는 신의 대리인들입니다. 이들은 우리 몸의 구석구석을 스캔하며 생명 에너지가 흐를 때는 건설자가 되고, 에너지가 멈출 때는 해체자가 됩니다. 과학으로 분석되는 이 정교한 메커니즘은 결국 만물 속에 깃든 신성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인간의 육신은 이처럼 보이지 않는 수만 가지 생명체와 거대한 유전 정보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신비의 결정체입니다. 이토록 정교하게 빚어진 생명의 성전(聖殿)을 이제는 물질적인 시각으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 몸속의 세포와 균들이 하늘의 주파수와 공명할 때, 비로소 부패와 소멸의 법칙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를 간직한 고귀한 인격체로 거듭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배가 고파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지만, 그 이면에는 우주적 규모의 거대한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우리 몸속에 살아 움직이는 구천이백조 해라는 어마어마한 세포의 군단에 영양을 공급하는 것은, 사실 여러분의 입이라는 통로를 빌려 우주가 스스로를 먹이는 과정과 같습니다. 즉, 여러분은 단순히 한 개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바코드를 부여받은 고귀한 생명체로서 만물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이 시공의 막이 내린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의 법칙에 따라 영혼은 영원히 지속되며, 오직 자신이 이 땅에서 기록한 삶의 성적표를 들고 다음 여정을 떠날 뿐입니다. 전생에 덕을 쌓고 선한 에너지를 전파한 이가 현생에서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스타나 천사 같은 존재로 거듭나 빛나는 삶을 사는 반면, 업보를 쌓은 이는 그에 합당한 고난의 길을 걷게 됩니다. 지저분해진 차를 닦아내듯,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정화하여 더 높은 차원의 성적표를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몸의 안팎은 핵(Nucleus)이라는 질서로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습니다. 세포 깊숙한 곳에서 생명의 설계도를 간직한 DNA가 ‘몸속의 핵’이라면, 인류의 정신적 중심이자 영적인 에너지가 분출되는 한반도는 ‘몸 밖의 핵’입니다. 안의 핵인 DNA가 하늘의 주파수와 공명하고, 밖의 핵인 이 땅의 기운이 온 세계로 뻗어 나갈 때, 비로소 인류는 진정한 진화의 단계로 진입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우주적 핵의 중심에서 하늘의 지혜를 전해 듣는 무한한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상조차도, 우주의 에너지를 순환시키고 영원한 성적표를 기록하는 신성한 행위임을 잊지 마십시오. 육체의 DNA를 정화하고 한반도라는 거대한 핵의 기운을 받아들여, 여러분의 영혼을 가장 찬란한 빛의 존재로 닦아나가야 합니다.
6부. 천년 남겨놓고 지구에 온 허경영. 하늘은 모든 걸 인간에게 이미 다 주었는데.
지구의 영적인 중심이자 외부의 핵인 이 한반도에, 지금 우주의 근본 핵이 내려와 여러분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안팎의 핵이 하나로 접목된 이곳에서 인류를 향한 거대한 심판과 새로운 창조의 때가 무르익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의 순서에서 보았듯, 온갖 짐승의 성정을 가진 자들이 먼저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히는 혼돈의 시기가 지나면, 비로소 맨 마지막에 참된 ‘사람’의 형상을 한 구원자가 나타나 모든 질서를 바로잡게 됩니다.
성경 요한계시록 21장 6절에 기록된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씀은 결코 관념적인 수사가 아닙니다. 이는 우주의 시작과 끝을 주관하는 절대자가 직접 이 땅에 내려와 역사의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시작을 열겠다는 엄중한 선포입니다. 하늘의 설계도에 따라 처음을 열었던 자가, 이제 세상의 끝자락에서 마지막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인류의 성적표를 마감하러 온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보배로운 경전인 천부경(天符經) 또한 이러한 우주의 섭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일)”로 끝나는 천부경이 왜 하필 여든한(81) 자로 이루어져 있는지 그 비밀을 아는 자가 드뭅니다. 81이라는 숫자는 9와 9가 만난 지극히 완성된 하늘의 수이며, 우주의 변화 원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완전한 질서를 의미합니다.
천부경의 여든한 자 속에 숨겨진 ‘시작과 끝’의 비밀은 곧 제가 한반도에 온 이유와 일맥상통합니다. 시작이 없는 곳에서 시작하여 끝이 없는 곳에서 끝을 맺는 우주의 무한한 순환 속에서, 저는 여러분의 DNA라는 내부의 핵과 한반도라는 외부의 핵을 연결하여 인류를 다음 차원으로 진화시키려 합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자가 바로 그 여든한 자의 진리를 몸소 집행하고, 알파와 오메가의 권능으로 세상을 심판하며 제도를 완성할 주인공입니다.
천부경의 여든한(81) 자는 우주의 완성된 숫자인 9와 9가 곱해져 만들어진 절대적인 진리의 수치입니다. 우리가 흔히 ‘구구하다’는 표현을 쓰며 삶의 복잡한 사연을 이야기하듯, 이 81자 안에는 우주의 시작부터 끝까지,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무한한 순환의 비밀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 오래된 지혜가 “시작이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라고 선포하며 “끝이 없는 곳에서 끝난다”라고 맺는 것은, 결국 세상 모든 것의 뿌리는 하나이며 마지막에 돌아갈 곳도 결국 그 하나라는 거대한 진리를 말해줍니다.
이처럼 하나로 돌아간다는 원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종교와 사상이 궁극적으로 꿈꿔온 목적지입니다. 불교가 수만 가지 가르침이 결국 하나의 깨달음으로 통한다고 말하고, 유교가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정성을 강조하며, 도교가 세상 모든 변화의 근본이 결국 하나라고 역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나 천주교, 유태교 같은 신앙들 역시 표현은 다르지만, 결국 만물의 주인이신 그 하나의 존재를 향해 간절한 기도를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종교가 외쳐온 ‘하나’라는 존재는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생각이나 먼 훗날의 희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지혜인 천부경이 예언한 “끝이 없으면서도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그 하나”는 마침내 살아있는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나타났습니다. 그분이 바로 지금 여러분 곁에서 인류의 중심 역할을 하는 구심점입니다. 전 세계의 모든 신앙이 각자의 길을 걸으며 간절히 닿고자 했던 그 근본적인 실체가, 지구의 영적인 핵심인 이곳 한반도에서 여러분과 직접 마음을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뿔뿔이 흩어져 있던 과거의 가르침들을 뒤로하고, 만물을 하나로 모아 세상을 바로잡고 새로운 낙원을 완성할 ‘단 하나의 주인공’을 맞이해야 할 때입니다. 천부경의 여든한 자가 가리키는 완성의 시간, 그리고 모든 종교가 공통으로 지향해온 그 본질적인 존재와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로 연결될 때, 여러분은 비로소 혼란스러운 세상을 벗어나 영원히 변치 않는 우주의 질서 속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껍데기에 불과한 복잡한 이론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만물의 뿌리인 실체와 직접 연결되어,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승리로 이끄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결국 ‘하나’의 진리로 돌아가고자 하지만, 그 가르침의 역사는 길어야 수천 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이 간직해온 천부경은 무려 만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차원 높은 경전입니다. 전 세계의 대장경과 모든 성스러운 기록을 통틀어 보아도 이보다 깊은 우주의 섭리를 담은 것은 없습니다. 그 해석 또한 지극히 어려워 오직 우주의 근원에서 온 저만이 그 본래의 뜻을 온전히 풀어낼 수 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기록된 천지창조나 요한계시록의 “알파와 오메가”라는 표현 역시, 무지한 번역자들이 그 깊은 비유를 깨닫지 못한 채 옮겨 놓은 파편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천부경은 “시작이 없는 곳에서 시작된 처음”을 말하며 우주의 절대적인 신비를 명확히 선포합니다. 저는 시작조차 없는 영원한 처음이자, 끝이 없는 무궁한 마지막으로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제가 이곳 한반도에 온 이유는 단순히 도를 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지금 이 지구는 영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거대한 종말의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두 번 다시 없을 이 중대한 시기에, 지구가 파멸로 치닫는 것을 막고 새로운 창조의 시대를 열기 위해 제가 직접 내려온 것입니다. 인류가 쌓아온 모든 역사와 종교의 성적표를 마감하고,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제도를 완성하는 것이 저의 유일한 사명입니다.
세상의 종교들이 말하는 ‘처음과 나중’이라는 표현은 사실 불완전한 번역에 불과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난 처음이 있고 죽음을 맞이하는 나중이 있지만, 신은 그런 시간의 굴레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신은 시작이라는 지점이 아예 없는 영원한 처음이며, 한 번도 끝난 적 없이 이어지는 무궁한 마지막입니다. 우리 민족의 천부경이 “시작이 없는 처음”과 “끝이 없는 마지막”을 선포하는 것은, 인간의 과학과 종교를 뛰어넘는 우주의 거대한 연속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우주 만물은 하나의 뿌리에서 시작되어 다시 그 하나로 돌아갑니다. 여러분의 몸을 구성하는 백조 개의 세포도 결국 그 시작은 하나였으며, 우주를 창조한 근원 또한 오직 하나입니다. 창조주는 인류 모두에게 구십구 점 구 퍼센트라는 완벽에 가까운 축복과 성령, 그리고 각자의 재능인 은사를 공평하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여러분의 영혼 속에는 이미 우주의 바코드가 새겨져 있으며, 이는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생명의 증표입니다.
창조주는 여러분에게 이 엄청난 축복을 관리할 수 있는 ‘자유’를 선물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이 소중한 생명의 바코드를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다시 거듭나는 부활의 영광을 누릴 수도 있고 고통의 길을 걸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받은 존재입니다. 다만 그 축복을 깨닫지 못하고 낡은 관념에 갇혀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가치를 회복하고, 하늘이 준 완벽한 성적표를 완성해 나가야 합니다.
우주적 바코드, 이미 당신 안에 있는 완벽한 축복, 우리는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하늘의 모든 것을 부여받은 고귀한 생명체입니다.
무한한 연속성, 시작도 끝도 없는 우주의 에너지가 여러분의 생명 속에 흐르고 있으며, 죽음은 소멸이 아닌 새로운 연결입니다.
공평한 나눔, 창조주는 모든 인간에게 차별 없이 99.9%의 축복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완성된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자유와 책임, 하늘이 준 자유를 통해 자신의 바코드를 빛나게 닦는 것은 오직 여러분의 선택과 실천에 달려 있습니다.
영원한 부활, 생명은 한 번의 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거듭나며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진화해 나가는 불멸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은 소멸이 아니라 거대한 우주적 순환의 한 과정일 뿐입니다. 여러분이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은 재물이나 명예가 아니라, 평생을 통해 기록된 영적 바코드의 성적표입니다. 인류가 이 지구라는 무대에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은 무려 백이십이억 육천팔백만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입니다. 현재 지구의 나이는 백이십이억 오천팔백만 년에 이르렀고, 이제 인류의 긴 여정을 마무리할 마지막 천 년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지구는 지금까지 육십억 년마다 한 번씩 거대한 요동을 치며 스스로를 소독해 왔습니다. 지금은 거대한 산맥인 히말라야 꼭대기에서 조개껍질이 발견되고 소금광산이 나타나는 이유는, 그곳이 한때는 깊은 태평양 바다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구가 옷을 갈아입듯 대격변을 겪을 때마다 하늘은 소수의 종자만을 남겨 인류의 맥을 이어왔습니다. 이제 그 두 번의 큰 순환이 끝나고, 여러분은 지구 역사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할 졸업반으로 서 있는 것입니다.
제가 이 땅에 온 이유는 바로 이 졸업생들을 안전하게 영원한 낙원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지구가 끝나는 시점에 다다랐음에도 인류는 여전히 전쟁과 갈등 속에서 진정한 낙원을 구경조차 못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깨어있지 못하고 에너지가 약해진 자들은 낙오되어 허공을 떠도는 귀신과 같은 존재가 되겠지만, 진리의 빛을 따라 알곡이 된 자들은 마침내 더 높은 차원의 세계로 올라가게 됩니다.
지구 졸업반을 위한 인류 최후의 가이드, 이제 긴 순환의 고리를 끊고 영원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영원한 성적표, 여러분의 바코드는 지울 수 없는 기록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마음가짐과 행동이 다음 차원의 위치를 결정합니다.
지구의 마지막 천 년, 백이십이억 오천팔백만 년을 달려온 지구사에 남은 마지막 천 년은, 인류가 낙원을 경험하고 졸업을 준비하는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알곡과 가라지의 분별, 에너지를 맑게 유지하고 하늘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자만이 낙오자가 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상승할 수 있습니다.
우주 본부의 개입, 지구가 끝나는 시점에 맞춰 제가 온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낙오 없이 상급 학교인 백궁으로 입학시키기 위한 하늘의 배려입니다.
지구라는 기나긴 배움터에서 백이십이억 육천팔백만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을 윤회하며 걸어온 인류의 여정이 이제 그 종착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지구에 몸을 담고 있는 칠십억 인류는 그 기나긴 세월 동안 하늘이 정성껏 길러온 생명의 종자들이며, 이제는 방앗간에서 알곡과 죽정이를 가려내듯 마지막 추수를 앞둔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원시의 거친 들판을 누비던 시절, 인류의 육체는 생존을 위해 투박하고 투박한 모습이었습니다. 수만 번의 삶을 반복하며 다듬어온 여러분의 손마디에는 백이십이억 년이라는 세월의 흔적과 고단한 노동의 역사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습니다. 인간의 손은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투쟁하며 살아남아야 했던 생존의 도구였기에, 그 모양새 또한 우악스럽고 거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창조주의 손을 보십시오. 이는 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인간의 손과는 차원이 다른, 우주의 근원에서 내려온 고귀한 형상입니다. 법당의 부처님 손처럼 고우면서도 강인하며, 여자의 부드러움과 남자의 기개가 동시에 깃들어 있는 이 손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한 생명의 에너지를 상징합니다. 인간의 손보다 작고 섬세하면서도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권능이 담긴 이 손이야말로, 여러분이 도달해야 할 진화의 완성된 모습입니다.
인류에게 남은 시간은 이제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한 생에 백 년씩, 단 열 번의 윤회만 거치면 천 년의 세월이 흐르고 지구의 대장정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이 짧은 기로에서 여러분은 하늘로 비상하는 빛의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대지에 미련을 두어 허공을 떠도는 귀신이 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육체의 거친 껍데기에 집착하며 딴 길을 찾다가는, 그토록 오랜 시간 공들여온 영혼의 성적표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제는 물질의 손으로 세상을 움켜쥐려 하지 말고, 하늘이 내민 구원의 손길을 잡아야 합니다. 백이십이억 년의 긴 잠에서 깨어나 창조주의 신비로운 에너지를 받아들일 때, 여러분의 거친 손마디는 비로소 영원한 낙원의 평화를 누리는 신성한 빛의 손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지구의 졸업반으로서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는 여러분에게, 우주의 참된 주인이 전하는 이 간절한 경고와 축복을 가슴 깊이 새기시길 바랍니다.
인간의 신체는 백이십이억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척박한 지구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온 생존의 기록입니다. 여러분의 손마디가 굵고 굴곡이 있으며 손가락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것은, 거친 노동과 투쟁 속에서 무엇인가를 움켜쥐고 버텨내야 했던 인류의 고단한 역사가 뼈와 근육에 새겨졌기 때문입니다. 원시 시대에는 지금보다 훨씬 크고 투박했던 그 손이 기나긴 윤회의 시간을 거치며 깎이고 다듬어져 현재의 모습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여러분 앞에 있는 이 손은 인류가 거쳐온 진화의 과정을 전혀 겪지 않은, 우주 근원 설계 그대로의 형상입니다. 겉보기에는 인간의 손과 다를 바 없어 보일지 모르나, 그 내부 구조와 원리는 완전히 다릅니다. 인간의 손가락 마디는 뒤로 젖히면 유연하게 굴곡이 생기지만, 제 손은 마디 사이의 공간 없이 정교하게 밀착되어 있어 뒤로 꺾으려 하면 부러질 듯 단단한 일자 형상을 유지합니다. 이는 노동을 위해 설계된 도구가 아니라, 우주의 에너지를 온전히 투과시키고 다스리기 위해 빚어진 신성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더욱 경이로운 차이는 손끝에 새겨진 지문에서 드러납니다. 인간의 지문은 살아온 환경과 업보에 따라 모양이 끊기거나 비틀리며 저마다 불규칙한 형상을 띠지만, 제 열 손가락의 지문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완벽한 원형의 문양을 그리며 일치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유일한 증표이며, 혼돈이 없는 우주의 질서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뼈마디 하나부터 지문의 곡선 하나에 이르기까지, 이 신체는 오직 하늘의 권능을 증명하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입니다.
창조주가 이토록 고운 손을 지니고 여러분 앞에 선 것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거친 손마디에 맺힌 한과 고통을 씻어주고 영원한 평화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백이십이억 년 동안 흙을 만지고 도구를 잡으며 야위어온 여러분의 손은 이제 그 사명을 다해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을 움켜쥐려 애쓰는 삶을 내려놓고, 하늘에서 내려온 이 깨끗하고 신비로운 손길을 붙잡아 영적인 진화의 마침표를 찍어야 합니다
백이십이억 년을 달려온 지구의 대장정이 이제 마지막 천 년의 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여러분에게 허락된 남은 생은 단 열 번의 윤회뿐이며, 이 시기가 지나면 지구는 더 이상 인류에게 생명의 터전을 제공하지 않고 그 소명을 다하게 됩니다. 이미 우주적 소멸의 징조는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태양은 서서히 그 빛을 잃어가고 있으며, 지구 중심에서 달과 같은 크기로 요동치던 맨틀의 에너지가 고갈되면서 지구를 지탱하던 자기장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지구 자기장이 에너지를 잃고 남극과 북극이 뒤바뀌는 대격변이 시작되면, 철새들은 방향을 잃고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돈에 빠지게 됩니다. 현재 우리를 지탱해 주는 평균 0.9가우스의 자기장이 서서히 줄어들어 ‘제로’가 되는 순간, 인류의 생존을 보호하던 보이지 않는 방어막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이처럼 지구가 그 수명을 다해가는 절박한 시점에, 인류의 마지막 졸업을 돕고 새로운 차원의 문을 열기 위해 제가 이 땅에 온 것입니다.
놀랍게도 우리 민족의 경전인 천부경에는 이러한 저의 행보가 수리적으로 명확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천부경의 운삼사(運三四)’의 비밀, 여기서 ‘삼사’는 서른네 살을 의미합니다. 인류를 위해 고난을 겪고 서른네 살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구원의 씨앗을 뿌렸던 예수의 시대를 뜻합니다.
‘오칠(五七)’의 등장: ‘오칠’은 오십칠 세를 말합니다. 서른네 살에 씨를 뿌린 성자의 시대가 지나고, 마침내 오십칠 세가 되는 해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며 나타날 인류의 진정한 주인공을 가리킵니다.
‘성환(成環)’의 완성: ‘성’은 이룬다는 뜻이고, ‘환’은 고리나 팔찌처럼 둥글게 이어진 모양을 뜻합니다. 즉, 앞서 왔던 성자들이 다 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로 묶어,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거대한 완성의 고리를 만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환’은 단순히 돌아온다는 의미를 넘어, 끊어진 하늘과 땅의 인연을 하나로 잇는 거대한 완성의 고리를 상징합니다.
저는 천부경이 예언한 대로 오십칠 세의 나이에 세상을 깨우기 시작하여, 흩어진 진리의 파편들을 하나로 모으고 인류의 영적 졸업을 확정 짓는 고리를 완성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고리는 인류가 백이십이억 년의 긴 방황을 끝내고 영원한 안식처인 백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만드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이제 지구의 자기장이 소멸하기 전, 우주의 고리를 쥐고 있는 저와 연결되어야만 여러분은 혼돈의 지구를 벗어나 찬란한 빛의 세계로 비상할 수 있습니다.
과거 예수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었던 것은 그들이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 마음속에 확신을 심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저 또한 수많은 인파 속에서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인체의 비밀부터 우주의 섭리까지 명쾌하게 풀어내는 이 자가 과연 누구이겠습니까? 여러분은 이제 막연한 믿음을 넘어, 눈앞에 있는 실체를 통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기존의 종교들은 축복이나 성령, 영생과 같은 것들을 나중에 노력해서 얻어야 하는 ‘후천적인 보상’이라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하늘의 법도는 다릅니다. 창조주는 이미 여러분이 태어날 때부터 99.9%의 완벽한 축복과 에너지를 모두 부여하여 이 땅에 보냈습니다. 여러분의 영혼 안에는 이미 거듭날 수 있는 부활의 씨앗과 무한한 은사가 가득 차 있습니다.
하늘이 여러분에게 주지 않은 나머지 0.1%는 바로 ‘자유의지’입니다. 공기와 물, 그리고 생명을 유지할 모든 환경을 조건 없이 내어주신 창조주는, 그 완벽한 축복을 어떻게 관리하고 꽃피울지를 오직 여러분의 선택에 맡기셨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받은 여러분이 하늘을 향해 “이것 달라, 저것 달라” 구걸하는 기도를 올리는 것은, 자신이 우주의 주인공임을 망각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그런 기복에 매몰된 영혼은 결국 에너지가 약해져 허공을 떠도는 귀신이 될 뿐입니다.
이미 완성된 축복, 구걸하지 말고 깨어 있으십시오, 우리는 부족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우주의 모든 풍요를 상속받은 하늘의 자녀들입니다.
완벽한 초기 설정, 99.9%의 축복은 이미 여러분의 DNA와 영혼에 입력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부족함 없이 태어난 귀한 존재입니다.
자유의지의 선물, 하늘은 여러분을 로봇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여 자신의 성적표를 완성할 수 있는 거룩한 자유를 주셨습니다.
기도의 참된 의미, “달라”고 비는 기도는 하늘이 주신 풍요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이미 주신 것에 감사하고, 그 에너지를 어떻게 선하게 쓸 것인지 다짐해야 합니다.
생명의 기본권, 숨 쉬는 공기와 마시는 물조차 하늘이 거저 주신 무한한 사랑입니다, 그 바탕 위에서 여러분은 졸업을 준비하는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아 세상에 내보낸 것만으로도 이미 부모로서의 모든 사랑과 책임을 다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출가한 자식이 스스로 일어설 생각은 하지 않고 끊임없이 부모의 머리방을 넘보며 반찬과 재물을 탐한다면, 그를 어찌 효자라 부를 수 있겠습니까. 하늘과 인간의 관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창조주는 인류를 세상에 내놓으시며 생존과 진화에 필요한 99.9%의 모든 축복을 이미 그들의 영혼과 환경 속에 완벽하게 갖추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주셨으나, 그 보물을 찾아내어 빛나게 쓰는 것은 오직 인간 각자의 몫이자 책임입니다. 감나무 아래 누워 홍시가 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늘을 원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큰소리로 소원을 빌거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달라고 간구하는 행위는 이미 받은 은혜를 부정하는 허망한 몸짓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신앙의 자세는 내게 주어진 무한한 능력을 게으름 탓에 제대로 쓰지 못했음을 참회하고, 하늘이 베푼 지혜를 최대한 활용하여 세상을 이롭게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여러분이 언제쯤 그 큰 사랑에 보답하는 성숙한 존재가 될지 지켜보는 채권자와 같습니다. 이미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풀었음에도 더 많은 것을 내놓으라며 아우성치는 모습은 하늘의 입장에서 볼 때 기가 막힌 일입니다. 공부하지 않은 아들이 시험에 붙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기도가 공허하듯, 인간의 노력이 따르지 않는 맹목적인 기도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기복적인 욕망에 매몰되어 있는 한, 인류의 갈등과 전쟁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7부. 자유의지를 방종으로 남용하고, 더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엄청난 죄다.
하늘이 인간에게 부여한 99.9%의 축복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칼날과 같은 선물은 바로 ‘자유’입니다. 이 자유를 올바르게 쓰지 못하고 제멋대로 휘두르는 것을 우리는 ‘방종’이라 부릅니다. 방종은 곧 하나님이 정해주신 섭리의 선을 넘는 것이며, 마귀와 사탄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자유의 남용을 통해 우리 마음속에서 고개를 듭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소한 선택의 순간들을 보십시오. 전철에서 힘겨운 할머니를 마주했을 때, 나도 정당한 요금을 냈으니 앉아 있을 권리가 있다고 고집하며 자리를 지키는 행위가 바로 방종입니다. 그 찰나의 순간, 인간의 눈은 속일 수 있을지언정 하늘의 컴퓨터는 속일 수 없습니다. 양심을 저버리는 그 즉시 우리 몸에서는 노르아드레날린과 아세틸콜린, 그리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같은 독성 물질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죄를 짓는 순간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영혼의 점수가 깎여나가는 소리가 우주 전체에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남이 보지 않고 녹음기가 없으면 자신의 행동이 영원히 비밀로 남을 것이라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늘의 녹음기는 단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여러분의 모든 생각과 말, 행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어른들은 이 하늘의 기록 장치를 ‘양심’이라 부르며 두려워할 줄 알았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제 강의를 들으면서 지루함을 느끼거나 부정적인 마음을 품는 그 찰나에도, 인체에서는 즉각적인 호르몬의 변화가 일어나며 여러분의 영적 성적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감시는 물리적인 카메라가 아니라 여러분의 혈액과 호르몬, 그리고 양심을 통해 실시간으로 집행됩니다. 방종의 길을 선택하여 몸과 영혼을 스스로 파괴할 것인지, 아니면 하늘이 준 자유를 절제와 사랑으로 승화시켜 빛나는 존재가 될 것인지는 오직 여러분의 몫입니다. 눈앞의 이익을 탐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하늘의 녹음기를 의식하며 살아가야만, 비로소 백이십이억 년의 업장을 닦고 참된 평화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늘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나누어준 99.9%의 축복은 이미 우리 생명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머니의 태중에서 무사히 세상 밖으로 나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인류는 이미 성공한 존재들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부족해 고통받는 이들조차 이 위대한 생명의 기본권만큼은 모두가 부여받았습니다. 나머지 0.1%의 영역에 놓인 성공과 실패는, 창조주가 선물한 자유를 우리가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보너스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모든 것을 가졌음을 깨닫지 못하고 방종의 길을 걷는다면, 그 대가는 고스란히 자신의 혈관과 후손의 운명에 기록됩니다. 내 자식에게만 기름진 고기를 배불리 먹이고 이웃의 굶주림을 외면할 때, 우리 몸에서는 즉각적인 독성 호르몬이 분출됩니다. 그것은 고지혈증과 같은 질병으로 나타나기도 하며, 유전자를 타고 내려가는 영적인 저주가 되어 가문의 장부에 태산처럼 쌓이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의지란 영양실조를 면할 정도의 절제를 배우고, 희생된 생명에 감사하며, 이웃과 고통을 나누는 양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거울 속에 마주하고 있는 그 얼굴은, 지난 백이십이억 년의 세월 동안 약 백오십만 번에 걸쳐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며 쌓아온 업보의 총합입니다. 하늘나라 백궁에 거하는 이들의 광채 나는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겠으나, 여러분의 얼굴에는 그동안의 고뇌와 환희, 그리고 현재의 마음 상태가 실시간으로 그래픽처럼 그려지고 있습니다. 지루함과 열망, 조급함과 평온함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이유는, 여러분의 얼굴이 곧 우주가 읽어내는 가장 정직한 성적표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백오십만 번의 기나긴 윤회의 굴레를 끊고 진정한 진화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얼굴에 새겨진 고통의 흔적들을 닦아내고, 창조주가 주신 99.9%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지혜를 회복해야 합니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방종이 아닌 하늘의 섭리에 맞추어 정렬할 때, 여러분의 표정은 비로소 백궁의 시민다운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지구라는 학교의 마지막 졸업반으로서, 자신의 얼굴에 가장 아름다운 영혼의 미소를 기록해 나가는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시골의 노령인 할머니께 도회지의 화려한 최신 유행복을 입혀드린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부유한 이들이 선호하는 고운 색채와 매끄러운 옷감이 할머니께는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한 짐이 될 뿐입니다. 도리어 소박한 모시적삼을 입으셨을 때 그분의 자취는 마치 깊은 산속의 도사처럼 자연스럽고 기품 있게 살아납니다. 이는 인간의 뇌와 무의식이 지난 세월을 살아오며 형성된 자신의 관상과 수준에 가장 적합한 것을 스스로 선택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한 사람의 얼굴과 분위기는 그가 우주로부터 받은 성적표이자 현재의 점수입니다. 귀한 기운이 서린 얼굴에는 그에 걸맞은 의복과 대우가 따르는 법이며, 이 모든 외형적 조화는 이미 정해진 영적 등급의 표출입니다. 저는 바로 여러분이 수만 번의 생을 거치며 고착시킨 그 낡은 성적표를 근본적으로 바꾸어주기 위해 이 땅에 왔습니다. 이제 진리의 목소리를 들었으니, 이를 가슴에만 묻어두고 타인에게 전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하늘이 준 자유를 오용하는 ‘방종’의 죄가 됩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죄의 본질은 창조주가 허락한 자유의지를 내 마음대로 휘두르는 오만함에 있습니다. 길 위에서 마주친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 사소한 방종이 단순히 예의의 문제로 끝나리라 생각하십니까? 그 찰나의 순간, 하늘은 여러분의 호르몬 체계를 뒤바꾸고 가문의 유전적 흐름마저 수정해버립니다. 단 한 번의 무례한 언사와 탐욕스러운 마음으로 인해, 백이십이억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인간의 몸을 받아 쌓아온 모든 공덕과 복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참된 사랑이란 거창한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과 마음을 통해 즉각적으로 실천하는 네 가지 베풂, 즉 ‘사롱’에 그 핵심이 있습니다.
첫째는 안시(顔施)로, 밝고 기쁜 얼굴로 마주하는 모든 이에게 평온을 주는 것입니다. 둘째는 언시(言施)이니, 상냥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로 상대의 마음을 녹여주는 베풂입니다. 셋째는 물시(物施)로 자신이 가진 물질을 기쁘게 나누는 것이며, 넷째는 신시(身施)라 하여 이 몸을 움직여 봉사하고 자리를 양보하며 타인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사랑의 행위가 곧 복을 짓는 가장 빠른 길이며, 이를 거스르는 모든 마음과 행동이 바로 ‘죄’가 됩니다.
지하철에서 노인에게 자리를 권할 때도 단순히 일어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할머니, 제가 운동 삼아 서서 가고 싶으니 편안히 앉으세요”라고 상냥한 말과 밝은 미소를 곁들여야 비로소 받는 이의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진정한 보시가 완성됩니다. 억지로 인상을 쓰며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상대에게 불편함을 주는 일이며, 이는 도리어 자신의 영적 에너지를 갉아먹는 행위가 됩니다. 돈 한 푼 들지 않는 미소와 친절한 말 한마디가 백이십이억 년의 업장을 닦는 위대한 공덕이 됨을 명심해야 합니다.
간절하고 불안한 일이 있을 때일수록 우리는 더욱 태연하고 자애로운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자녀의 시험을 앞두고 “공부한 남의 귀한 자식은 떨어뜨리고, 공부 안 한 내 자식만 붙여달라”는 이기적인 기도를 올리는 순간, 그 독한 마음은 곧바로 죄가 되어 자녀에게 흘러갑니다. 도리어 “우리 아이가 노력한 만큼 정당한 결과를 얻게 하시고, 세상의 질서가 공정하게 흐르게 하소서”라고 마음을 비우며, 만나는 이들에게 기쁨을 전할 때 하늘은 그 정성에 감동하여 상상치 못한 축복을 내리는 법입니다.
결국 죄란 사랑이 아닌 것, 즉 ‘비사롱(非사롱)’의 상태를 말합니다.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정의로운 마음, 그리고 겸손하게 양보하는 마음이 사라진 자리가 곧 죄의 소굴입니다. 하루 종일 만나는 모든 이에게 예쁜 얼굴과 고운 말로 기쁨을 전하십시오. 여러분의 얼굴이 곧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때, 여러분이 간구하지 않아도 하늘은 이미 모든 소망을 이루어주시고 영원한 백궁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기존의 종교들이 가르쳐온 사랑은 일반 사람들이 실천하기에는 너무나 거창하고 추상적이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거나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을 대주라”는 식의 가르침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킵니다. 자기 어머니를 해친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으며, 남편에게 매 맞으며 평생을 참는 것이 어떻게 진정한 사랑이겠습니까. 이토록 무거운 사랑의 굴레는 사람들을 우울증에 빠뜨리고 정신 병원만 배불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토록 거창한 것이 아니라,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실천입니다. 사랑은 남을 기쁘게 해주고, 밝은 얼굴로 복을 짓는 데서 시작됩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는 구절도 본질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이 참아야 할 일을 아예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 때문에 억울함을 참으며 병이 들게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 때문에 가난과 고통을 참으며 살기보다, 차라리 더 좋은 환경에서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짜 사랑의 본모습입니다.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 상대방의 인내를 강요하는 자는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의 마음을 품은 것과 같습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마귀를 따로 만들어 보낸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가 주신 완벽한 자유의지를 남용하여 자신의 이익만 챙기려 할 때, 그 마음이 곧 마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99.9%의 모든 축복을 주머니에 넣고 태어난 고귀한 존재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받았음에도 “더 달라, 대통령 되게 해달라, 재벌 되게 해달라”고 비는 기복적인 기도는 하늘의 은혜를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욕심 섞인 기도를 올릴수록 그 집안의 에너지는 혼탁해지고 결국 망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이미 가진 능력을 어떻게 선하게 쓰는지 지켜보고 계시는데, 인간들은 끊임없이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며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이제는 “참으라”는 고통스러운 가르침에서 벗어나, 남을 참지 않게 배려하는 진정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백이십이억 년의 긴 방황을 끝내고 영원한 빛의 세계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와 불교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가 행하는 신앙의 중심에는 ‘기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의 참뜻을 한자로 풀이해 보면 그것은 곧 ‘바랄 기(祈)’ 자를 쓰는 것으로, 결국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행위에 불과합니다. 창조주께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하거나, 이웃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며 그들을 돕지 못한 미안함을 고하는 기도는 있을 수 있으나,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복을 구걸하는 기도는 본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었는데, 그 자식이 부모의 노후는 걱정하지 않은 채 사소한 일부터 시험 합격까지 끊임없이 해달라고 조르기만 한다면 그것을 어찌 효라 하겠습니까. 심지어 돌아가신 어머니의 묘소까지 찾아가 손주의 시험 합격을 빌어대는 모습은 하늘이 보시기에 참으로 민망한 광경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인류에게 필요한 99.9%의 축복을 완벽하게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무엇을 달라고 매달리는 ‘기복(祈福) 신앙’은, 사실상 신이 우리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는 ‘죄’의 변종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 것을 주셨기에 더 이상 줄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자녀들이 모여 소리 높여 무언가를 달라고 아우성친다면, 그 소란스러움에 하나님조차 자리를 피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지도자들 또한 측근들에 둘러싸여 진정한 민심과 소통하지 못하는 ‘불통’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소통이 단절된 자리에 욕심 섞인 기도만 무성하니, 세상은 점점 더 혼탁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어둠 속에서 마귀와 귀신마저 건드리지 못하는 진정한 공덕의 힘은 무엇이겠습니까. 과거 전라도 최 부잣집이 난리 속에서도 온 집안을 보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담장 밖에 설치한 ‘쌀독’에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늘 가득 채워둔 그 쌀독은 굶주린 이들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밤중에 몰래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사랑의 실체였습니다. 그 쌀을 먹고 생명을 부지한 이들이 훗날 완장을 차고 나타났을 때, 그들은 입을 모아 “저 집만은 절대 건드리지 마라”며 부잣집을 지켜주었습니다.
결국 여러분의 얼굴이 곧 세상 사람들을 향한 쌀독이 되어야 합니다. 돈 한 푼 들지 않아도 밝고 기쁜 표정으로 사람들을 대하며 그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보시입니다. 이미 모든 축복을 받은 존재임을 깨닫고, 구걸하는 기도가 아닌 기쁜 얼굴로 복을 짓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기나긴 지구의 졸업반으로서, 이제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는 기도를 멈추고 허경영의 진리를 널리 알려 더 많은 생명을 백궁으로 인도하는 진정한 사랑의 고리를 완성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1부. 영동고속도로에서 있었던일
2부. 허경영은 인간들의 심판자로 지구에 왔다.
3부. 허경영은 창조주로서, 화이트 헤븐의 백궁에서 왔다.
4부. 어릴때 소를 먹였던 사연
5부. 지구의 핵인 한반도에 핵전쟁을 막으러, 몸속의 핵인 DNA, 세포의 텔로미어를 고정시켜 생명을 연장
6부. 천년 남겨놓고 지구에 온 허경영. 하늘은 모든 걸 인간에게 이미 다 주었는데.
7부. 자유의지를 방종으로 남용하고, 더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엄청난 죄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신앙이라는 이름 아래 행하는 기도는 사실상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간구에 불과합니다. 기도의 참된 의미를 들여다보면 그것은 오직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일 뿐이며, 창조주가 이미 완벽하게 베풀어준 구십구 점 구 퍼센트의 축복을 부정하는 일과 같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더 내놓으라며 아우성치는 모습은 하늘이 보시기에 커다란 죄가 됩니다. 신은 인류에게 필요한 모든 환경과 생명 에너지를 이미 허락하셨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구걸하는 기도가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게으름으로 인해 그 능력을 다 쓰지 못했음을 참회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자녀의 시험 합격을 빌기 위해 조상의 묘소나 성전을 찾아 소리 높여 부르짖는 행위는 도리어 우주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입니다. 이기적인 욕심이 담긴 기도가 깊어질수록 그 집안의 기운은 혼탁해지며, 결국 스스로를 망치는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하늘은 여러분이 언제쯤 그 큰 사랑을 깨닫고 성숙한 존재로 자립할지 고요히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 민족의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최 부잣집의 일화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난리 속에서도 그 집안이 무너지지 않았던 이유는 담장 밖에 마련해둔 쌀독 때문이었습니다. 배고픈 이들이 밤중에 몰래 가져갈 수 있도록 배려한 그 쌀독은 주인의 얼굴이자 곧 하늘의 마음이었습니다. 그 쌀로 명줄을 이은 이들이 훗날 전란의 시기에 그 집안을 지켜주는 든든한 방패가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얼굴 또한 세상 사람들을 향해 활짝 열린 쌀독이 되어야 합니다. 돈이 들지 않아도 밝은 미소와 상냥한 말 한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야말로 백이십이억 년의 업장을 씻어내는 가장 큰 보시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가진 존재임을 자각하고, 남을 참지 않게 배려하며 기쁜 마음으로 복을 짓는 삶을 사십시오. 그것이 바로 지구라는 긴 여정을 마무리하고 영원한 빛의 고향인 백궁으로 돌아가는 단 하나의 열쇠입니다.
851 – Justice Prevails The Era of Huh Kyung-young and the Spiritual Revolution for Global Leadership – December 29, 2012
- 사필귀정(事必歸正)의 경제학: 일본을 통해 배우는 미래 예측오늘 우리는 ‘사필귀정’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에도 사필귀정의 원리가 적용되며, 정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이 원리에 따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다면, 우리는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동산에 과도하게 투자하면 실업자가 증가하고, 제조업에 투자하면 일자리가 늘어나는 식입니다. 이러한 경제의 미래는 세계적인 전문가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려면 일본을 보면 됩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20 30년 앞서가기 때문에, 일본의 경제 상황을 통해 우리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이 겪었던 시행착오를 우리가 미리 보고 대비함으로써 충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는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의 쌀을 수탈했던 것에 대한 일종의 ‘죄값’을 치르는 것이기도 합니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를 보며 우리는 투자를 조심하게 되고, 10년 후 우리나라에 닥칠 일을 미리 예측하여 투자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본 경제의 20년 전을 살펴보면 우리의 현재를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의 핵발전소 문제가 발생했다면, 20년 후 우리나라도 고리 원자력 발전소와 같은 곳에서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음을 대비해야 합니다. 핵 전문가들이 발전소 안전을 경고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입니다. 일본과 같이 작은 나라에서 핵발전소가 터지면 우리는 피할 곳이 없어 고스란히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경제와 정치 모두 사필귀정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는 기술을 갖춰야 합니다.2. 정치의 사필귀정: 권력의 순환과 지도자의 역할정치 또한 사필귀정의 원리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한나라당이 정치를 하면 민주당이 집권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가 끝나면 새누리당(이명박 대통령)으로 정권이 넘어가는 식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 신용등급을 3단계 상향시키는 등 대외 God-man도를 높였기 때문에, 그 사필귀정의 결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권이 넘어간 것입니다. 만약 이명박 정권이 대외적으로 나라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면 정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정치의 흐름과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이 실패한 곳에 우리가 또다시 실패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제적 사필귀정은 20년 주기로 일본과 우리가 닮아가지만, 일본의 사례를 통해 큰 충격은 피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투자 방법 또한 일본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일본처럼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양로원 사업이 번성하는 현상은 20년 후 우리나라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이는 모두 사필귀정의 결과입니다.3. 링컨과 케네디: 100년의 시차를 둔 운명적 일치링컨과 케네디의 사례는 사필귀정의 신비로운 일치를 보여줍니다. 링컨은 1808년에 태어나 1836년에 국회의원이 되고 1860년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케네디는 1908년에 태어나 1936년에 국회의원이 되고 1960년에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두 인물은 정확히 100년의 터울을 두고 유사한 삶의 궤적을 그렸습니다. 링컨의 비서 이름은 케네디였고, 케네디의 비서 이름은 링컨이었습니다. 또한 두 대통령의 부통령은 모두 존슨이었습니다. 링컨은 극장에서 저격당했고, 케네디는 포드 차 안에서 저격당했습니다. 링컨을 저격한 범인은 창고에서 체포되었고, 케네디를 저격한 범인은 극장에서 체포되었습니다. 이처럼 일곱 가지의 놀라운 일치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운명적인 사필귀정의 결과입니다. 링컨이 케네디로 환생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링컨은 자신을 가장 미워하던 정적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그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이는 링컨의 관용과 배려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박근혜 대통령 또한 이러한 링컨의 방식을 모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정치는 이처럼 사필귀정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며, 지도자의 선택은 역사의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4. 환생과 역사의 반복: 이방원, 정몽주, 민비, 박근혜이방원은 민비로 환생했고, 정몽주는 고종 황제로 환생했습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인 죄값으로, 민비는 자신이 죽인 정몽주(고종)의 아내가 되어 그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민비는 다시 박근혜로 환생했습니다. 이처럼 100년, 500년 등 일정한 터울을 두고 역사의 인물들이 환생하여 관계를 이어갑니다. 정몽주를 억울하게 죽인 이방원은 민비로 태어나 자신이 죽인 사람의 남편을 모시게 되고, 결국 괴한들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이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필귀정의 교훈을 보여줍니다. 정몽주는 고종으로 환생하여 이성계가 없앤 ‘고려’라는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결국 ‘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다시 살려냈습니다. 현재 우리가 외국에서 ‘코리아’로 불리는 것은 정몽주의 충정이 이룬 사필귀정의 결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비의 환생으로, 중국과의 외교 관계는 좋지만 일본과는 좋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대통령이 혁명가였듯이, 박근혜 대통령 또한 여성 최초의 대통령으로서 ‘여권 혁명’을 이루었습니다. 혁명의 피가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5. 21세기 4대 혁명: 영성, 디지털, 디자인, 민주주의21세기는 ‘3D 시대’를 넘어 ‘4D 혁명’의 시대입니다. 첫째는 영성 혁명(Divine Nature Revolution)입니다. 영적인 에너지가 신과 일치하는 혁명을 이루지 못하면 우울증과 자살이 만연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고독한 노년층이 급증하는 일본의 사례는 영성 혁명의 필요성을 보여줍니다. 둘째는 디지털 혁명(Digital Revolution)입니다. 모든 미디어와 산업은 디지털 혁명을 통해 살아남아야 합니다. 소니가 디지털 전환에 실패하여 위기를 겪었듯이,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는 디자인 혁명(Design Revolution)입니다. 기존의 디자인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옷의 색깔과 온도가 바뀌는 혁신적인 디자인이 등장해야 합니다. 넷째는 민주주의 혁명(Democracy Revolution)입니다. 현재의 다수결 민주주의는 구심점이 없어 불안정합니다. 영국처럼 여왕이 존재하고 일부만 선거로 뽑는 입헌군주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혼란을 겪는 대신, 황제가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해야 합니다. 저는 대통령이 된 후 6개월 만에 황제로 올라가 60년간 세계 통일을 이룰 것이며,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절반을 황제가 임명하여 강력한 황제 체제를 구축할 것입니다.6. 영성 혁명: 대한민국이 이끌 세계 통일의 길디자인 혁명과 디지털 혁명은 모든 나라가 추구하지만, 영성 혁명은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습니다. 돈이나 군사력으로는 더 이상 세계를 통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영성만이 세계를 통일할 수 있습니다. 한국의 허경영 황제가 눈으로 병을 고치고 모든 것을 움직인다는 소문이 전 세계로 퍼지면, 전 세계 사람들이 한국의 영성에 매료될 것입니다. 한국인의 영성은 이스라엘 민족의 1억 배 이상 발달되어 있으며, 무당이 많고 조상과 대화하는 민족은 우리 민족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영적 우수성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영적 지도자가 나타나면, 전 세계 대통령들이 한국의 말에 따라 통일을 이루고 굶주리는 사람들을 먹일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가 되고, 전 세계에 명상, 용서, 평화 유지 방법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파견하여 세계를 낙원으로 만들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영성 혁명을 통해 세계의 전쟁과 갈등을 마무리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습니다. 대통령의 자리는 감옥과 같아 자유가 없지만, 저는 국제적인 일만 하고 국내적인 일은 수상에게 맡겨 국민들과 소통하며 영성 혁명을 이끌 것입니다.7. DNA 혁명: 의학과 경제를 뒤바꿀 미래 기술미래 시대에는 DNA 혁명(Deoxyribonucleic acid Revolution)이 의학과 경제를 완전히 뒤바꿀 것입니다. 줄기세포 기술과 같이 DNA를 활용한 혁신이 모든 산업 분야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DNA는 우리 인체의 세포 100조 개, 염색체 4,600조 개, DNA 1해 8,400조 개, 유전자 9,200조 개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강남 차병원이 줄기세포 연구로 최고 기업이 된 것처럼, DNA 혁명은 미래 경제를 좌우할 것입니다.8. 결혼의 조건: A부터 F까지, 그리고 미래의 4가지 필수 요소결혼 상대를 선택할 때 중요한 요소들을 알파벳 순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나이(Age)입니다. 둘째는 외모(Beautiful)입니다. 외모만 보고 결혼하면 이혼 확률이 높습니다. 셋째는 성격(Character)입니다. 넷째는 지위(Degree)입니다. 사회적 지위가 안정된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다섯째는 경제력(Economy)입니다. 여섯째는 가문(Family)입니다. 부모의 건강 상태를 통해 유전병 여부를 짐작할 수 있듯이, 가문은 DNA를 통해 배우자의 미래를 예측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젊은이들은 외모만 보지만, 이러한 요소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이혼 확률을 줄일 수 있습니다. 스페인의 부동산 붕괴 사례처럼, 경제적 어려움은 결혼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스페인은 영성이 부족하여 경제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지만, 한국은 뛰어난 영성으로 세계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외 God-man도를 높였지만, 가족의 부정부패로 인해 가문 이미지가 실추된 것은 아쉬운 점입니다. 완벽한 지도자는 영성 혁명을 통해 모든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미래 시대에는 결혼 조건에 4가지 요소가 추가될 것입니다. 첫째는 신용등급 확인서입니다. 둘째는 은행 잔고 증명서입니다. 셋째는 혈액 소견서입니다. 에이즈와 같은 질병을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넷째는 재직 증명서입니다. 직업이 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을 받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러한 조건들은 젊은이들이 미래를 대비하고 신용과 경제력을 관리하는 데 중요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9. 칭기즈칸의 성공 전략: 작고, 빠르고, 연결하고, 개방하라칭기즈칸은 네 가지 전략으로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첫째는 작은 것(Small)을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대규모 병력 대신 소대 병력으로 이동하며 자급자족했습니다. 둘째는 속도(Speed)를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보급품 없이 빠르게 이동하여 동에 번쩍 서에 번쩍했습니다. 셋째는 연결(Network)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직접 통치 대신 사돈 관계를 맺거나 조공을 받는 방식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했습니다. 넷째는 개방(Open)적인 태도입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용하고 국제적인 인재를 등용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작은 핸드폰 하나로 세계를 제패하고 제품 수명을 빠르게 바꾸는 것처럼, 칭기즈칸의 전략은 현대 기업 경영에도 적용됩니다. 소니나 모토로라가 이러한 혁신에 실패하여 몰락했듯이, 혁명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10. 독도와 영종도: 일본의 위장 전술과 민족의 위기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위장 전술입니다. 독도 문제로 우리가 신경 쓰는 사이에 일본 자본은 송도, 영종도 등 우리나라의 중요한 땅에 수십 조 원을 투자하여 소유권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땅의 90%가 일본 땅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도 중요한 땅을 일본에 빼앗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자체장들이 일본에 가서 땅을 팔아달라고 애원하는 현실은 민족의 땅을 팔아먹는 행위입니다. 독도 문제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일본의 이러한 경제 침략에 대비하고 영성 혁명을 통해 민족의 정신을 지켜야 합니다.
851 – Justice Prevails The Era of Huh Kyung-young and the Spiritual Revolution for Global Leadership – December 29, 2012
- 사필귀정(事必歸正)의 경제학: 일본을 통해 배우는 미래 예측오늘 우리는 ‘사필귀정’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우리나라 경제와 정치에도 사필귀정의 원리가 적용됩니다. 정권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당장의 하루하루를 내다봐야 하지만,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 부동산에 과도하게 투자했다면 실업자가 증가할 것이라는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제조업에 많이 투자했다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입니다. 이처럼 경제의 미래는 세계적인 전문가에게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경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본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20 30년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일본의 현재를 통해 우리의 미래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일본이 겪었던 시행착오들은 우리에게 일종의 본보기가 됩니다. 이는 과거 일본이 우리나라의 쌀을 수탈했던 것에 대한 일종의 ‘죄값’을 치르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부동산 거품 붕괴와 같은 사례를 통해 우리는 미리 충격을 줄일 수 있습니다. 기업 CEO들도 일본의 사례를 보며 10년 후 한국에 닥칠 일을 예측하고 투자 방향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경제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일본 경제의 20년 전 모습을 보면 우리의 현재를 알 수 있습니다.일본의 사례는 핵발전소 문제에도 적용됩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면, 우리는 20년 후 고리 원자력 발전소 등 국내 원전에서 유사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작은 국토에서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면 일본처럼 피난할 곳도 없이 모두 죽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핵발전소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또한 사필귀정의 원리에 따라 움직입니다. 과거 한나라당, 민주당,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의 흐름을 보면 다음 정권의 향방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권이 세계 신용등급을 3등급 상향시키는 등 대외 God-man도를 높였기 때문에, 그 사필귀정의 결과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권이 넘어간 것입니다. 만약 경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면 정권은 민주당으로 넘어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정치와 세계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남이 실패한 곳에 우리가 또다시 실패할 필요는 없습니다.경제적 사필귀정은 20년 주기로 일본과 한국이 유사한 흐름을 보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이 겪은 큰 충격을 피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투자 방법도 일본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습니다. 일본은 이미 노인 인구로 가득하며, 양로원 사업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급속도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고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층으로 진입하면서 20년 후에는 양로원이 늘어날 것입니다. 이는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의 자연스러운 결과이며, 역시 사필귀정의 한 단면입니다.2. 운명적 반복: 링컨과 케네디, 그리고 한국 정치의 데자뷔역사 속 인물들의 삶은 놀랍도록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링컨과 케네디의 사례는 이러한 운명적 반복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 구분 | 링컨 (Lincoln) | 케네디 (Kennedy) |
| — | — | — |
| 출생 | 1808년 | 1908년 |
| 국회의원 | 1836년 | 1936년 |
| 대통령 | 1860년 | 1960년 |
| 비서 | 케네디 | 링컨 |
| 부통령 | 존슨 | 존슨 |
| 저격 장소 | 포드 극장 | 포드 차 (창고) |
| 체포 장소 | 창고 | 극장 |100년 터울로 태어나고, 국회의원 및 대통령이 되었으며, 심지어 비서와 부통령의 이름까지 동일했습니다. 링컨의 비서는 케네디였고, 케네디의 비서는 링컨이었습니다. 두 대통령 모두 부통령은 ‘존슨’이었습니다. 저격 장소 또한 링컨은 포드 극장에서, 케네디는 포드 차 안에서 저격당했습니다. 저격범의 체포 장소도 링컨의 저격범은 창고에서, 케네디의 저격범은 극장에서 체포되는 등 아이러니컬하게 일치하는 7가지 운명적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숙명적인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러한 반복은 한국 정치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방원이 민비로, 정몽주가 고종 황제로 환생하여 500년 만에 부부의 연을 맺고, 민비가 다시 박근혜 대통령으로 환생했다는 주장은 역사의 반복과 인연의 끈. 이방원이 정몽주를 죽여 정권을 잡았지만, 환생하여 민비가 되어 자신이 죽인 정몽주(고종)의 아내가 되고, 결국 괴한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비극을 겪습니다. 이는 죄를 지으면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사필귀정의 원리를 보여줍니다.링컨은 자신을 가장 미워하고 비판하던 정적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그의 관용과 포용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링컨을 위대한 지도자로 만들었으며, 그 정적조차 링컨을 존경하게 만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이러한 링컨의 방식을 모방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국 사회의 젠틀맨 정신은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서양 지도자들은 적을 끝까지 적으로 보지 않고 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박근혜 대통령은 민비의 환생으로, 중국과의 외교 관계는 우호적이지만 일본과는 다소 불편한 관계를 유지할 것이라는 예측도 이러한 사필귀정의 맥락에서 나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 ‘근혜’는 무궁화 ‘근(槿)’과 은혜 ‘혜(惠)’로, 이씨 조선과 특별한 은혜를 가지고 있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혁명가였던 것처럼, 여성 최초 대통령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등극 또한 혁명의 피가 이어진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3. 21세기 3D 혁명과 영성 리더십: 한국의 미래와 세계 통일의 길21세기는 ‘3D 혁명’의 시대입니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Digital)과 디자인(Design) 혁명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디바인 네이처(Divine Nature), 즉 영성(靈性) 혁명입니다.
전쟁 없는 낙원 건설”]
- 디지털 혁명 (Digital Revolution): 모든 미디어와 산업이 디지털화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대입니다. 소니와 같은 세계적인 기업도 디지털 전환에 실패하여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 디자인 혁명 (Design Revolution): 기존의 디자인으로는 더 이상 경쟁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옷의 색깔과 온도가 바뀌는 혁신적인 디자인처럼, 모든 분야에서 혁명적인 디자인이 요구됩니다.
- 영성 혁명 (Divine Nature Revolution): 가장 중요한 혁명으로, 인간이 가진 영적인 에너지가 신과 일치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이 혁명이 없으면 우울증과 자살이 만연하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혼자 사는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의지할 곳 없는 사회에서 영성 혁명은 필수적입니다. 일본이 겪고 있는 고령화 사회의 문제점은 한국의 미래를 보여줍니다.영성 혁명은 대한민국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혁명입니다. 돈이나 군사력으로는 더 이상 세계를 통일할 수 없습니다. 오직 영성만이 세계를 하나로 만들 수 있습니다. 한국은 무당이 많고 조상과의 대화가 활발한 민족으로, 영성 발달이 세계 1위입니다. 이러한 한국의 영적 리더십이 전 세계를 매료시킬 것입니다. 전 세계 대통령들이 한국의 영성 지도자를 따르며 세계 통일과 아프리카 기아 문제 해결에 동참할 것입니다.한국은 명상, 용서, 종교 초월 등 평화의 가치를 전 세계에 가르치는 교사의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과 같은 세계의 갈등을 해결하고 평화로운 낙원을 만드는 것이 우리 민족의 사명입니다. 이러한 영성 혁명을 통해 한국은 세계 최고 부자 나라가 될 것입니다.또한, 민주주의(Democracy) 또한 혁명이 필요합니다. 현재의 다수결 민주주의는 구심점이 없어 불안정합니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왕이나 황제가 존재하는 입헌군주제가 필요합니다. 대통령은 5년마다 바뀌어 혼란을 야기하지만, 황제는 50 60년간 통치하며 국가의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황제가 절반을 임명하는 강력한 황제 체제를 통해 국가의 안정과 세계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마지막으로, DNA 혁명(Deoxyribonucleic acid Revolution)이 21세기의 또 다른 핵심입니다. DNA 혁명은 의학, 화장품 등 모든 산업을 뒤바꿀 것입니다. 줄기세포 연구와 같은 DNA 관련 기술은 미래 경제를 좌우할 것입니다.!이러한 3D 혁명 시대에는 시시한 기업이나 개인은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해야 합니다. 과거 칭기즈칸이 ‘작은 것(Small)’, ‘속도(Speed)’, ‘네트워크(Network)’, ‘개방(Open)’의 원칙으로 세계를 제패했듯이, 삼성전자도 작은 핸드폰 하나로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혁신하지 않는 기업은 소니처럼 몰락할 것입니다.우리는 독도 문제에만 매달려 일본의 위장 전술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일본 자본은 이미 송도, 영종도 등 한국의 중요한 땅을 야금야금 매입하고 있습니다. 하와이 땅의 90%가 일본 소유인 것처럼, 한국의 국토 또한 일본 자본에 잠식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영성을 팔아먹고 조상이 준 땅을 팔아먹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4. 결혼의 조건: A부터 Z까지, 그리고 4가지 추가 요소결혼은 단순히 감정적인 사랑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됩니다. 성공적인 결혼을 위해서는 다양한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서양에서는 알파벳 A부터 Z까지 26가지 조건을 따지며, 최근에는 4가지가 추가되어 총 30가지 조건을 고려합니다.
- A (Age): 나이
- B (Beautiful): 외모
- C (Character): 성격
- D (Degree): 지위
- E (Economy): 경제력
- F (Family): 가문
- G (Genuine): 학벌
- H (Health): 건강
- I (Income): 월수입
- J (Jewelry): 보석, 패물
- K (Key): 자동차 키, 아파트 키
- L (Love): 사랑
- M (Morality): 도덕성
- V (Virgin): 순결
- Z (Zeal): 부지런함이 중 ‘D’, 즉 지위가 매우 중요합니다. 외모, 성격, 나이가 아무리 좋아도 실업자라면 결혼 생활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여대생이 회사 부장급 남성과 결혼하는 것처럼, 남자의 지위와 경제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는 여성이 결혼 초반에 고생하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반면 한국은 비슷한 나이끼리 결혼하여 맞벌이로 고생하다가 여성이 먼저 늙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양에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더라도 세대 차이를 크게 느끼지 않는 개방적인 문화가 있습니다.가문(Family)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배우자의 부모가 살아계신지 여부를 통해 집안의 안정성과 유전병 여부를 간접적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는 외모(Beautiful)만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이혼 확률을 높일 수 있습니다.최근에는 다음 4가지 조건이 추가되었습니다.1. 신용등급 확인서: 배우자의 신용도를 확인하여 재정적 위험을 방지합니다.2. 은행 잔고 증명서: 경제력을 확인하여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보장합니다.3. 혈액 소견서: 건강 상태, 특히 에이즈와 같은 질병 여부를 확인합니다.4. 재직 증명서: 안정적인 직업 유무를 확인하여 실업자 백수건달과의 결혼을 피합니다.이러한 조건들은 젊은이들이 결혼을 준비하며 신용 관리, 저축, 건강 관리, 직업 선택에 신중을 기하도록 유도합니다. 미래에는 대기업 채용 시에도 은행 잔고 증명서 등을 요구하여 지원자의 성실성과 재정 관리 능력을 평가할 것입니다.결론적으로, 21세기는 DNA 혁명, 민주주의 혁명, 디자인 혁명, 디지털 혁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영성 혁명이 동시에 일어나는 시대입니다. 이러한 혁명의 흐름 속에서 허경영은 영성 혁명과 민주주의 혁명을 이끌어 대한민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세울 것입니다.
855th-Huh Kyung young’s Ten Health Maxims The Secret to a Healthy Life and a Prosperous Nation January 26, 2013
- 건강 십훈의 본질: 소식다정(小食多靜)과 위장의 비밀 자살자가 늘어나는 이유는 현 정치인들이나 우리나라 어른들이 건강식품에 대한 진정한 가르침을 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흔히 ‘소식다정(小食多靜)’이라 하여 밥을 적게 먹고 명상을 많이 하라고 하지만, 밥을 적게 먹는 구체적인 방법을 국민들은 알지 못합니다. 국가가 제시하는 내용이 국민들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밥을 적게 먹는다는 것은 적당히 먹으라는 의미인데, 무엇이 과식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배부르지 않게 먹는 것이 소식의 본질이 아닙니다. 이러한 언어의 깊은 진리를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사람의 위장은 두 개입니다. 의사들도 위장이 하나라고 하지만, 이는 잘못된 교육입니다. 폐와 콩팥이 두 개인 것처럼, 중요한 장기는 두 개씩 만들어져 있습니다. 폐와 콩팥은 많은 일을 처리해야 하므로 비상용으로 두 개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위장은 하나가 아니라 사실은 두 개입니다. 인체 구조를 보면 입, 목구멍, 위장, 십이지장, 소장, 대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위장이 하나 있다고 생각하고 밥을 먹으면 얼굴이 어두워집니다. 저는 밥을 먹을 때 위장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입이 바로 위장입니다. 입은 자기 마음대로 소화를 시킬 수 있는 수동 위장입니다. 위암에 걸려 위를 잘라냈다고 생각하고 식사해야 합니다. 위장이 있다고 믿고 음식을 삼키면, 위는 자동 위장이 되어 김치나 깍두기를 제대로 소화시키지 못하고 장에 부담을 줍니다. 입으로 음식을 완전히 물처럼 만들어 위장이 필요 없을 정도로 씹어 넘겨야 위장이 편안해집니다. 속이 편한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위장에 꿀꺽꿀꺽 삼키면 위장병에 걸립니다. 아무리 위가 움직여도 깍두기나 김치는 소화되지 않습니다. 결국 위장과 장들이 지쳐 얼굴이 안 좋아지는 것입니다. 입이 위장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목구멍이 십이지장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씹어서 목구멍으로 넘기면 바로 소장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으로 밥을 먹어야 합니다. 실제 소화기관은 입입니다. 아무리 딱딱한 것도 씹어서 가루로 만들고, 마음대로 소화시키고 싶은 만큼 씹어 넘기면 피부 색깔이 환해집니다. 사람들은 적당히 씹어 위장이 소화해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마치 부모가 다 해줄 것이라 믿고 노력하지 않는 아이와 같습니다. 그런 아이는 결국 망합니다. 마찬가지로, 입이 수동 위장이고 속의 위장은 자동 위장입니다. 자동 위장은 놀라거나 긴장하면 소화가 안 됩니다. 하늘이 이빨을 준 것은 스스로 씹어 위장을 마음대로 조절하라는 의미입니다. 성질 급하게 허겁지겁 먹는 습관은 단명을 부릅니다. 소식의 비밀은 바로 입에 있습니다. 입이라는 위장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속에 들어가는 위장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속의 위장은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꼭꼭 씹어 삼키면 얼굴에 광채가 나고 수명이 길어집니다. 속이 편해야 오래 사는 것입니다.
- 인체 구조와 식습관의 지혜: 소육다채(小肉多菜)와 소당다과(小糖多果) 성질을 많이 내지 말고 적게 내며 많이 웃어야 합니다. 욕심을 적게 내고 많이 베풀어야 합니다. 이는 어려운 일이지만, 먹는 것은 쉽습니다.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많이 해야 합니다. 다음은 ‘소육다채(小肉多菜)’입니다. 고기를 적게 먹고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합니다. 인간의 이빨 구조를 보면 송곳니가 어금니보다 적습니다. 이는 채식을 많이 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육식 동물이 아닙니다. 호랑이는 어금니가 없고 송곳니만 있어 고기를 뜯어먹지만, 소는 송곳니가 하나도 없고 풀을 뜯는 앞니와 어금니만 있습니다. 소가 고기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리는 것처럼, 인간도 고기를 많이 먹으면 안 됩니다. 인간의 송곳니는 양쪽에 두 개뿐이므로 고기는 조금만 먹어야 합니다. 원시 생활에서 어쩔 수 없이 고기를 먹어야 할 때를 대비한 것입니다. 어금니가 많다는 것은 야채를 많이 먹으라는 뜻입니다. 고기를 많이 먹으면 기름기가 많아 피 순환이 안 됩니다. 콩팥을 통해 피가 순환되는데, 고기를 많이 먹으면 살은 찌지만 늙어서 피 순환이 안 되어 얼굴이 검어집니다. 스님들은 늙을수록 얼굴이 좋아지는데, 이는 피가 맑기 때문입니다. 스님들은 단백질 섭취를 위해 두부를 많이 먹습니다. 우리 인체 구조는 고기를 적게 먹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소당다과(小糖多果)’입니다. 당근은 적게 먹고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과일에도 당분이 있지만, 과일을 많이 먹으면 피부가 좋아지고 장이 좋아져 순환이 잘 됩니다. 과일은 부드러운 섬유질이 많아 장에 좋습니다. 하지만 단 것만 먹으면 몸을 망칩니다. 코카콜라 같은 설탕 음료는 없어져야 합니다. 콜라를 마시는 미국인의 50% 이상이 뚱뚱합니다.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면 안 됩니다. 물은 인체에 흡수되는 데 50분, 음식은 2시간이 걸립니다. 하지만 독약은 1분 안에 흡수됩니다. 설탕도 마찬가지로 1분 안에 흡수됩니다. 갑자기 설탕을 먹으면 바로 몸에 들어가 다른 음식물의 당분 흡수를 방해합니다. 현미가 좋은 이유는 쌀밥처럼 설탕과 같아 금방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장에 들어가 몇 시간 만에 혈당이 서서히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흰쌀밥은 과자를 먹는 것과 같아 혈당이 급격히 올라갑니다. 당뇨병 환자는 보리밥이나 율무를 먹어야 합니다. 설탕이나 초콜릿은 당이 떨어져 위험할 때 먹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아이들이 이것을 먹으면 밥맛이 없어지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게 되어 식성부터 망가집니다.3. 영성 혁명과 DNA의 변화: 생명수의 시대 제가 대통령이 되면 어린아이들의 건강 교육부터 완전히 재교육하여 국민 건강 의료보험이 흑자가 나도록 할 것입니다. 의료보험 비용이 10분의 1로 줄어들면 경제가 살아납니다. 물은 영성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물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영성으로 바뀌어야 하며, 물이 곧 생명입니다. 물의 생명이 인류의 모든 것을 좌우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생명수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갈 자가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예수 이후에 오는 보혜사가 물과 성령을 가져온다는 의미입니다. 물의 영성 시대, 디지털 시대, 디자인 시대, 그리고 dna 영성 시대가 도래합니다. dna도 나중에는 영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무엇으로 바꾸느냐? 바로 물로 바꿉니다. 물을 마시면 dna가 바뀝니다. 의사가 dna를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제가 여러분의 dna를 바꿔줄 것입니다. 제가 만든 물을 실으러 전 세계 대형 선박들이 부산항과 인천항으로 돈을 싣고 올 것입니다. 제가 눈빛으로 만든 생수를 전 세계가 공급받아 전 인류가 변화하는 시대가 우리나라에 올 것입니다. 예언서에도 부산과 인천항에 돈을 산더미같이 싣고 배가 와서 물을 실어간다고 나와 있습니다. 제가 영성 혁명을 할 때 이 dna 혁명도 물에 들어가 있습니다. 제 물만 사서 가져가면 dna 혁명이 일어나 웬만한 병은 다 고쳐지고 몸의 아픈 곳이 없어지며 모든 것이 달라질 것입니다.4. 민주주의의 한계와 연구 개발(R&D)의 중요성 민주주의도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대통령이 아무리 바뀌어도 자살자는 계속 늘어납니다. 전 세계 정치인들은 수백 년 동안 기아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껍데기만 민주주의일 뿐 잘못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제가 영성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박 회장님과 관련된 중요한 개념은 ‘디벨로퍼’입니다. 부동산 개발자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는 ‘리서치 앤드 디벨롭먼트(R&D)’, 즉 연구 개발을 뜻합니다. R&D 투자가 없으면 그 나라는 망합니다. 우리나라 경제는 지금 내리막길을 걷고 있으며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R&D 투자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기업체의 R&D 투자는 0%입니다. 중국은 기업 이익금의 50%를 R&D에 투자하여 삼성전자를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배당금을 가져가지 않고 R&D에 투자하니 일자리가 늘어나고 실업자가 없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기업 이익금의 50%를 사주들이 배당금으로 가져갑니다. 연구 개발비는 거의 없습니다. 기존 시설 교체 정도를 투자라고 하지만, 이는 증가율에서 제로입니다. 따라서 우리나라 경제는 발전하지 못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R&D 투자를 의무화하여 연구 개발을 많이 하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제가 ‘입이 위장이다’라고 가르쳐 드렸을 때, 여러분은 연구 개발을 하지 않았습니다. 위장은 없다고 생각해야 소화 불량에 걸리지 않고 몸이 달라집니다. 늙어서 아픈 것은 모두 음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위장이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입으로 마음껏 씹어 죽을 만들어 내려보내면 몸과 정신이 맑아지고 모든 병이 없어집니다. 씹지도 않고 말하면서 음식을 집어넣는 것은 안 됩니다. 우리나라 기업이 R&D를 하지 않아 망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구 개발에 투자해야 우리 경제가 살아납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국가에서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지 않는 회사는 불이익을 받을 것입니다.5. 혁신과 혁명, 그리고 장발장의 시대 혁신과 혁명은 다릅니다. 혁신은 기존의 것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지만, 혁명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없애고 새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것은 혁신입니다. 혁신으로는 나라가 살아나지 않습니다. 혁명하는 자가 나와야 합니다. 혁명은 하늘에서 명령하는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처럼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아니면 국민들에게 그런 사람이 올 수 없다고 봅니다. 나폴레옹이 왕을 죽이고 황제가 된 것처럼, 혁명은 하늘의 명령을 받아 모든 것을 뒤엎는 것입니다.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쿠데타를 하늘이 하는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쿠데타와 혁명은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쿠데타는 합법성을 띠지 못했지만, 나폴레옹은 왕의 목을 치고 젊은 노동자들을 모아 왕을 내쫓았습니다. 국민들은 배고픔에 시달리다 잘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나폴레옹 때문에 교도소에 19년 동안 갇혔던 사람이 바로 장발장입니다. 빵 한 조각 훔쳐 교도소에 갔다가 나와서 또 억울한 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총 19년 동안 갇혔습니다. 이는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바뀌어도 계속 장발장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국민들은 무전유죄로 재판을 받습니다. 청년 실업자들이 사기, 도둑질, 슈퍼털이 등 범죄를 저지르며 돌아다닙니다. 직업이 없으니 계속 장발장이 만들어지고 교도소를 들락거립니다. 세상에 도둑놈들뿐입니다. 법관들은 전과자만 만들어낼 뿐 해결책을 세우지 못합니다. 혁신으로는 안 됩니다. 혁명하는 자가 나와야 장발장이 없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자살자가 계속 늘어나는 이유는, 못 배우고 돈 없는 사람들을 계속 교도소에 들락거리게 만드는 기술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법치. 법치 위에 정치가 있고, 그 위에 천치(天治)가 있습니다. 천치는 하늘이 다스리는 혁명입니다. 정치는 혁신이고, 법치는 인치(人治)입니다. 법치가 발달하면 나라가 혼란해집니다. 너무 법으로만 따지니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법 만능 시대입니다. 법치로만 국민을 다스리려 하면 장발장만 양산됩니다. 새로운 정부는 법치보다는 하늘이 다스리는 천치, 즉 차원 높은 정치를 해야 합니다. 약자나 가진 자나 모든 사람이 통할 수 있는 정치를 해야 하는데, 우리는 다시 낮은 단계인 법치로 돌아가 있습니다. 법치로는 사면이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천치, 즉 혁명으로 다스릴 때는 대사면을 해줍니다. 원래 대통령들이 잘못해서 죄인이 된 것이므로, 장발장처럼 국가가 혼란할 때 죄인들이 나옵니다. 영화 ‘레미제라블’은 ‘오 마이 갓’, ‘오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오 하나님, 이런 처참한 광경을 어찌하면 좋습니까?”라는 의미입니다. 이 장발장 같은 정치가 바로 법치입니다. 천치가 되려면 훌륭한 사람이 나와 세상 모든 사람의 죄를 사해주고, 원리원칙대로 국민을 다스려야 합니다. 지금 정부가 모방하는 혁신보다는 우리 국민은 혁명을 원합니다. 아직 혁명의 시기가 안 되었지만, 제가 나와서 혁명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까지 국민들은 기다려야 합니다. ‘레미제라블’을 볼 때 저를 생각해야 합니다. 한 인간에게 누명을 씌워 교묘하게 잡아넣는 정치를 끝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자식들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자살률을 없앨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의 대가족인데도 자살률이 세계 1위입니다. 이는 창피한 일입니다. 혁신으로는 자살률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제가 나섰을 때 자살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게 할 것입니다. 1년에 1만 5천 명이 자살하고 계속 증가합니다.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자살률이 증가하는 것은 장발장을 계속 만들어내고 특권층만 배불렸다는 증거입니다. 자살자뿐만 아니라, 1년에 5천 명 정도의 처녀들이 행방불명됩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사라지고 몇 년이 지나도 연락이 없다가 시체로 발견되기도 합니다. 영원히 연락이 안 오는 아이들은 납치되어 팔려갑니다. 봉고차에 두 명이 납치조로 움직입니다. 한 명이 버스 정류장에서 예쁜 처녀에게 남편 행세를 하며 멱살을 잡고 차에 태워 끌고 갑니다. 남미나 다른 곳으로 끌려가 이빨을 부러뜨리고 코뼈를 분질러 성형 수술비와 이빨 해 넣는 돈을 바가지 씌워 빚쟁이로 만듭니다. 장발장처럼 평생 빚 때문에 끌려다닙니다. 섬에 팔려가 술집에서 일하게 되고, 조폭과 연결된 연락선 때문에 탈출도 불가능합니다. 경찰은 이런 정보를 다 가지고 있지만 이용만 할 뿐 소탕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자식도 못 지키는 것입니다. 1년에 5천 명의 여자가 납치되어 행방불명됩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은 남자 애인과 동거하는 줄로만 압니다. 핸드폰도 안 되는 아이들이 외국 섬에 팔려 중국이나 동남아시아로 수출됩니다. 그 부모들은 자식이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장발장, 납치, 여자 자살, 강간 같은 문제를 혁신으로 해결하려 하면 맨날 재탕입니다. 실업자는 늘고, 여자는 납치되고, 룸살롱의 여자들은 계속 늘어납니다. 여러분은 점잖게 돌아다니지만, 저는 코미디를 하고 있지만 가슴에 혁명을 품고 온 사람입니다. 언론을 통해 제가 알려지면 나라가 뒤집어질 것입니다. 근본적인 분위기를 바꿔야 하는데, 우리는 그저 대통령이 바뀌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며 떡이나 먹고 앉아 있습니다. 혁명을 해도 될까 말까 한 상황입니다. 중국은 R&D에 50%를 투자하여 삼성전자 같은 회사를 10개나 키우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우리 기술을 다 빼갈 것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깡통을 찰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해외에 공장을 짓고 도망갈 궁리만 합니다. 북한의 포격 위협 때문에 국내에 R&D 투자를 하지 않고 월남이나 필리핀, 중국으로 공장을 옮깁니다. 연평도 같은 일이 또 터지면 우리는 거지가 될 것이라는 심리가 만연합니다. 이런 정치를 해놓고 앉아 있으니 국민들은 가만히 있습니다. 북한에서 포탄이 날아와도 광화문에서 북한을 성토하는 데모 한 번 없습니다. 광화문이 불바다가 되어도 쳐다보고만 있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구제불능입니다. 그래서 제가 와 있는 것입니다.6. 인간 성장의 단계와 성자(聖者)의 길 갓난아이가 젖을 떼면 아이가 되고, 아이가 과자를 떼면 청년이 됩니다. 청년이 입을 이기면 인간이 됩니다. 부모님께 인사하고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제할 줄 알게 되면 인간입니다. 인간이 귀를 이기면 남의 말을 듣고 화를 내지 않게 됩니다. 인간이 눈을 이기면 남의 처녀를 볼 때 그 부모의 노고를 생각하고 귀하게 여깁니다. 남의 것을 귀하게 여기고 남의 자식도 사랑스럽게 여기는 사람이 눈을 이긴 사람입니다. 사람이 귀를 이기면 성자(聖者)가 됩니다. 성인이 되는 이유는 귀를 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인은 남의 입과 귀를 임금보다도 높게 보는 사람입니다. 남이 배고픈 것을 보면 가슴 아파하고, 남에게 듣기 싫은 소리 하지 않고 좋은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남의 귀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성인입니다. 이렇게 입과 눈과 귀를 이겨야 성인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지구인들은 아직 젖을 먹고 있습니다. 젖을 떼지 못했습니다. 젖 먹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미친놈 취급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시절에 맞춰 강의를 통해 사람들을 성장시키고 있습니다. 언론을 통해 강의를 많이 하여 젖 먹는 국민들을 성자의 위치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귀로만 인간을 변화시킬 수 있고 믿음을 줄 수 있습니다. 인간들의 귀에 제 소리가 들려야 변화가 와서 젖 떼고, 과자 떼고, 입 떼고, 눈 떼고, 귀를 떼는 것입니다. 이러한 강의가 우리끼리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선한 사람들이고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성자의 경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힘을 모아 전 국민이 성자의 길을 걷도록 강의가 필요합니다. 언론과 방송을 통해 젖 먹는 국민들을 여기까지 끌어와야 합니다. 강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dna 혁명이 되면 주사 한 방으로 80세 노인이 20세로 바뀔 것입니다. 그 시대가 머지않았습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여러분도 그 주사를 맞을 수 있습니다. 국가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사람은 공짜로 맞을 수 있습니다. 무형문화재 판소리 가수처럼 80세가 된 사람에게 주사를 놓아주면 후배를 계속 키울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죽어버리면 판소리는 발전하지 못하고 질이 떨어집니다. 한국화나 청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옛날 사람보다 노력을 덜 하니 질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주사를 맞아 몇백 살까지 젊은 사람으로 살면서 가르치면 음악이나 예술의 질이 높아질 것입니다. 이러한 혁명은 모두 영성 혁명과 연관되어 있습니다.7. 식사 시간과 오장육부의 조화: 건강한 삶의 지혜 아침을 ‘진지’라고 부르는 이유는 ‘진수성찬’ 때문이 아닙니다. 오전 7시부터 9시 사이는 진시(辰時)로, 비장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화기 시간입니다. 이때는 반드시 밥을 먹어야 합니다. 아침을 거르면 안 됩니다. 아침은 진수성찬처럼 꽉 차게 먹어야 합니다. 위장 넓이의 3분의 3을 먹어야 합니다. 점심은 3분의 2, 저녁은 3분의 1을 먹어야 합니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량을 합치면 아침 식사량과 같아야 우리 몸이 정상적으로 순환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침을 3분의 1, 점심을 3분의 2, 저녁을 3분의 3으로 거꾸로 먹습니다. 이렇게 먹으면 폭삭 늙고 병이 줄줄이 따라옵니다. 저녁에는 속을 많이 비워야 하는데, 잔뜩 먹고 드러누우면 위장이 독소를 만들어냅니다. 아침에 머리가 띵하고 인간이 타락하는 이유입니다. 아침에는 신경 쓰고 활동을 많이 하므로 든든하게 먹어야 합니다. 택배 기사처럼 활동량이 많은 사람도 저녁에 많이 먹으면 망합니다. 인간들은 건강식품 강의를 해줘도 반대로 살아갑니다. 아침은 거의 공복으로 나가고, 점심은 적당히, 저녁은 안주와 고기까지 더 먹습니다. 점심과 저녁을 합친 양이 아침 식사량과 일치해야 합니다. 그러면 위장이 잠잘 때 가벼워져 밤에 활동을 별로 하지 않고, 아침에 몸이 개운하며 독이 생기지 않아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먹으면 머릿속에 들어간 것이 다 없어지고 몸에서 독이 올라와 머리가 띵해집니다. 오장육부의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오장(간장, 신장, 비장, 폐장, 심장)은 항상 꽉 차 있어야 합니다. 상수도처럼 꽉 차 있어야 건강합니다. 오장이 허하면 미친 사람이 되거나 죽습니다. 하지만 육부(위장, 소장, 대장, 방광, 담낭, 삼초)는 비어 있을수록 좋습니다. 밤에 잠자는 동안 대장, 소장, 위장이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자기 전에 꽉 채워 자면 밤새 독소가 나와 혈관을 노화시키고 목이 뻣뻣해지며 머리가 띵해집니다. 혈관 벽을 손상시키는 독소가 저녁 식사를 많이 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을 매일 반복하면 혈관이 좁아지고 얼굴이 검어지며 만 가지 병이 옵니다. 가정주부가 남편이 오지 않아 남편 밥까지 먹어치우는 것을 반복하면 큰일 납니다. 국가가 바뀌어야 하는 방식은 우리 인체와 같습니다. 현재 우리 몸은 이렇게 돌아가는데, 여러분은 반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고등학생, 중학생, 초등학생의 등교 시간을 9시로 2시간 연장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들이 아침을 실컷 먹고 학교에 갈 수 있습니다. 일찍 학교에 가면 밥 먹을 시간도 없어 저녁을 많이 먹게 되고, 결국 아이들을 망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불구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교육자들은 최소한의 양심도 없습니다. 제가 바꾸려는 것은 기본에서부터, 인체에서부터, 건강에서부터 완전히 정치까지 다 바꾸는 것입니다. 학교 가는 시간, 직장인들의 출근 시간을 2시간 연장해야 합니다. 조금 늦게 가더라도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출근해야 합니다. 빈속에 커피만 마시면 저녁에 많이 먹게 되어 결국 병신이 됩니다. 의료보험 적자가 나중에 나라를 망하게 할 것입니다. 노인은 늘어나는데 누가 감당할 것입니까? 저는 그런 것부터 줄여나가 국민을 건강하게 할 것입니다. 출근 시간을 늦추고 퇴근 시간을 조금 늦춰 길바닥에서 많이 먹지 않게 해야 합니다. ‘파란만장(波瀾萬丈)’은 천신만고(千辛萬苦)와 같습니다. 천 가지 매운맛과 만 가지 고통을 겪는다는 의미입니다. 파란은 파도를 말하며, 만 길이나 되는 파도를 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천신만고를 겪고 성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99%는 망합니다. 이 파란만장이 바로 현 우리의 정치사입니다. 산 넘어 산이고 끝이 없습니다. 이것을 끝내는 시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은 어머니 젖을 먹고 있는 시대이므로, 제가 강의를 통해 눈과 귀와 입을 다 떼는 사람으로 만들어 성자의 위치에 올리면 나중에 여러분이 신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거의 신에 가깝도록 바뀌어야 세상이 달라집니다.
858.허경영 인류의 미래 예견
인류의 운명과 국가의 미래를 바라보는 눈은 성자마다 그 결을 달리합니다. 예수는 다가올 미래를 부단히 예언하며 인류가 나아갈 길과 경계해야 할 일을 일깨워준 예언의 지도자였습니다. 반면 석가는 미래를 예견하는 일을 엄격히 금지하며 오직 현재라는 찰나에 집중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석가가 미래를 보지 말라 한 이유는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불안과 초조 그리고 탐욕을 끊어내기 위함입니다. 한 시간 후의 미래도 결국 그 시간이 되면 현재가 될 뿐이며 이미 지나간 과거는 전생의 기억처럼 멀어지는 법입니다. 미래를 내다볼수록 인간은 혹여 자손이 다치지는 않을까 혹은 나의 대가 끊기지는 않을까 하는 공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리하여 석가는 모든 것을 놓으라 가르치며 현재 마저도 실체가 없는 환상이자 공허한 것임을 깨닫고 그저 찰나의 변화를 순리대로 받아들이라 설법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먼 미래에 닥칠 인류의 종말과 변화를 구체적으로 예고하며 사람들이 무엇을 조심하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삶의 좌표를 설정해 주었습니다. 이는 마치 한 뿌리에서 나온 지혜가 서로 다른 방편으로 인류를 인도하는 것과 같습니다. 석가는 현재라는 찰나에 머물며 마음의 평화를 얻으라 하였고 예수는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며 깨어 있으라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국가와 인류의 미래 또한 이러한 가르침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우리가 나아갈 구심점을 찾는 과정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국민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현재를 망치지 않게 하면서도 다가올 시대의 흐름을 정확히 읽어내어 인류가 나아갈 낙원의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성자들이 남긴 예언과 침묵의 의미를 깊이 되새길 때 비로소 우리는 요동치는 역사의 물결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류의 참된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언어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인류의 지혜가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석가모니라는 명칭은 본래 성자인 그를 추앙하며 후대 사람들이 붙인 존칭이자 예명에 불과합니다. 그의 본래 성은 고타마요, 이름은 싯다르타였습니다. 이처럼 성자를 부르는 이름 뒤에는 인류 공통의 뿌리 깊은 언어적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인도의 고대어인 산스크리트어는 본래 우리의 말에서 비롯되어 세계로 뻗어 나간 것입니다. 히말라야가 ‘흰 마루’라는 뜻을 품고 있듯, 부처를 뜻하는 붓다 또한 우리말의 ‘밝다’에서 기원했습니다. 즉 붓다란 진리를 깨달아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밝은 사람, 즉 박사를 의미합니다. 우리의 정신과 언어가 인도를 거쳐 서양으로 흘러가 인류 문명의 근간을 이루었음을 증명하는 대목입니다.
이는 예수라는 명칭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과거 한문만을 사용하던 시절, 서구의 성경이 동양으로 전해질 때 우리 조상들은 그가 보여준 수많은 예언과 영적 통찰을 보았습니다. 그리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앞날을 내다보는 예언의 우두머리라는 뜻을 담아 예수라는 이름을 정립하였습니다. 결국 동서양의 두 성자는 이름의 형식은 다를지라도, 인류의 시원으로부터 내려온 신성한 가르침을 전하는 한 가문의 형제와 다름없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이처럼 거대한 우주의 비밀과 인류의 역사가 녹아 있습니다. 성자들의 이름에 담긴 참뜻을 이해하는 것은 곧 우리 민족이 인류 지혜의 종주국임을 깨닫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언어적 뿌리를 통해 인류가 하나로 통합되는 미래를 그려보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인류의 모든 성스러운 명칭과 역사의 갈래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종점에는 우리 민족의 언어와 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성자들의 이름조차 고정된 실체가 아닌, 우리말의 뿌리에서 파생되어 각 나라의 풍토에 맞게 변형된 것에 불과합니다. 예수를 뜻하는 지저스나 석가모니를 일컫는 붓다라는 이름에 매달릴 필요가 없는 이유는, 그 이름들이 결국 ‘밝다’ 혹은 ‘예언의 우두머리’와 같은 우리식 표현의 변천사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자들의 어머니를 부르는 마야 부인이나 마리아라는 이름, 그리고 이사야나 메시아처럼 위대한 인물의 이름 끝에 붙는 ‘야’라는 글자는 모두 ‘크다’는 의미를 지닌 우리 고유의 접미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는 고조선 시대 우리 민족이 아시아를 넘어 인도와 이집트, 유럽에 이르기까지 광활한 대륙을 지배하며 문명과 언어의 씨앗을 뿌렸음을 증명합니다. 범어의 마이트레야가 미륵이 되고, 이집트의 메데야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번역되는 과정은 인류 지혜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이러한 흔적은 오늘날 중동의 이란에서도 선명하게 발견됩니다. 이모를 이모라 부르고 고모를 고모라 부르는 그들의 언어는 우리말과 아흔 퍼센트 이상 일치합니다. 심지어 이슬람의 시아파라는 명칭조차 혈통, 즉 ‘씨앗’을 중시한다는 우리말의 의미가 그대로 녹아 있는 것입니다.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피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그들의 신념이 우리말 ‘씨앗’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우리 문화의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실감케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름이라는 허망한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구심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전 세계 언어와 종교의 뿌리가 우리에게 있음을 깨닫는 것은 단순한 자부심을 넘어, 흩어진 인류를 하나로 묶어낼 사명이 우리에게 있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우리 언어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듯, 이제는 그 정신이 온 누리를 비추어 인류가 잃어버린 근원을 되찾고 진정한 낙원으로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언어의 뿌리가 같다는 것은 곧 정신의 줄기가 하나임을 의미합니다. 중동의 이슬람을 지탱하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서열 중심 문화 역시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혈통의 ‘씨앗’과 도리의 ‘순’을 따지는 우리말의 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과거 사우디와 이란의 건설 현장에서 우리 근로자들이 그들과 유독 깊게 소통하며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비결 또한, 무의식 깊은 곳에 흐르는 공통된 언어적 정서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 우리 조상들은 ‘불란서’와 같은 이두법을 사용하여 서구의 문명을 기록하고 세상을 이해해 왔습니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석가의 침묵도, 예수의 경고도 아닌, 미래를 지혜롭게 통찰하는 혜안입니다.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훌륭한 지도자와 똑똑한 국민 중 무엇이 우선인가 하는 문제는 인류가 마주한 거대한 딜레마와 같습니다.
훌륭한 지도자는 국민을 깨우쳐 변화시킬 수 있지만, 국민의 수준이 깨어 있지 못하면 결코 참된 지도자를 알아보고 세울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지도자들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적당히 타협하고 사익을 챙기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국민의 수준이 멈춰 있다면 하늘에서 곶감이 떨어지듯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은 헛된 망상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국가의 비전은 국민 개개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국민의 복지 요구를 거절하며 “나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 되려 한다”라고 선언했듯이, 진정한 지도자는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기보다 국가와 인류가 나아갈 거대한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당장의 달콤한 약속보다는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국가 전체를 살리는 비전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지도자와 국민이 서로의 수준을 탓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인류 문명의 시원을 간직한 우리 민족이 먼저 깨어나 국민의 의식을 혁명적으로 높여야만, 비로소 인류를 낙원으로 인도할 절대적인 구심점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날 언어의 뿌리를 찾고 미래를 예견하며 스스로를 담금질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입니다.
가정의 질서가 무너지면 가장의 권위가 사라지듯, 국가 또한 인기만을 쫓는 지도자에 의해 그 존엄을 잃게 됩니다. 자녀들이 당장의 이익을 위해 강남으로 이사를 가자고 보채도, 부모는 가업과 가문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엄격한 거절을 해야 합니다. 모든 요구를 들어주어 떼돈을 벌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천륜이 끊기고 아버지가 설 자리를 잃는다면 그것을 어찌 온전한 가정이라 하겠습니까.
미국의 한 대통령이 보여준 결단은 이를 잘 대변합니다. 국민의 달콤한 요구에 굴복하는 이는 일시적인 인기인은 될 수 있어도, 진정한 국가의 지도자는 될 수 없습니다. 대중의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며 말을 바꾸는 자는 결국 국가라는 거함의 키를 잡을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큰 인물은 눈앞의 현상이 아니라 역사의 거대한 흐름과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는 글자조차 누구를 만나고 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그 격이 달라집니다. 문명을 이롭게 하는 편안할 편자가 때로는 천한 변소를 뜻하는 글자로 변하듯이, 지도자가 아무리 훌륭해도 국민의 수준이 낮으면 그 나라는 결국 퇴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주인인 국민이 부덕하면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도 그 수준에 맞춰 변질될 수밖에 없는 것이 인류사의 준엄한 법칙입니다.
이러한 섭리를 깨닫지 못한 채 스승의 길을 가로막으려 했던 베드로를 향해 예수는 준엄한 꾸짖음을 내렸습니다. 자신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하늘의 섭리를 예고했을 때, 인간적인 정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그런 일은 없어야 합니다”라고 가로막는 제자에게 예수는 그것이 곧 마귀의 생각임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스승의 뜻을 인간의 잣대로 바꾸려 하는 오만이 바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변소와 같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국가와 인류의 미래는 지도자와 국민이 서로의 격을 높여가는 동반의 과정입니다. 앞서가는 자의 비전을 알아보고 따르는 지혜로운 국민과, 국민의 요구보다 국가의 운명을 우선시하는 강직한 지도자가 만날 때 비로소 그 시대는 태평성대를 누리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스스로를 돌아보며, 과연 우리는 진리를 담는 그릇인가 아니면 그저 욕망을 채우는 변소인가를 깊이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인류의 거대한 역사는 마치 한 편의 치밀한 드라마와 같습니다. 드라마가 흥행하기 위해서는 주인공을 돋보이게 할 악역과 갈등이 필요하듯, 하늘의 섭리를 집행하는 성자들 또한 자신의 드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인물들을 친히 간택합니다. 예언의 우두머리였던 예수가 가룟 유다를 제자로 삼은 것은 그가 배신할 것을 몰라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다라는 인물이 있어야만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드라마가 완성될 수 있음을 미리 내다보고, 그를 자신의 극본 속 핵심 배역으로 배치한 것입니다.
제자 베드로가 인간적인 욕심에 사로잡혀 로마를 무력으로 평정하고 권력을 잡자고 대들었을 때, 예수는 그를 향해 “마귀야 물러가라”며 준엄하게 꾸짖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당장 칼을 휘둘러 로마를 물리치는 것이 승리라고 믿었지만, 예수는 천년 뒤 로마가 스스로 무릎을 꿇고 자신의 사상을 받아들일 먼 미래를 보고 있었습니다. 당장의 승리를 위해 피를 흘리는 것보다, 더 큰 영적 승리를 위해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하는 것이 하늘의 전략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전략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하늘에서 온 지도자는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치밀한 계획 아래 움직입니다. 때로는 힘없는 척, 때로는 아픈 척하며 세상을 관조하는 듯 보이지만, 그 속에는 인류의 의식을 깨우고 새로운 시대를 열기 위한 고도의 계산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이는 장차 다가올 거대한 변화를 위한 준비 과정에 불과합니다.
결국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 주변의 격이 달라지듯, 지도자의 인기가 정점에 달하고 권위가 바로 서는 날에는 온 세상이 깜짝 놀랄 거물급 인물들이 그 주위를 포진하게 될 것입니다. 강남의 원로들과 지식인들이 하루아침에 눈을 뜨고 그를 우러러보게 되는 날, 비로소 인류의 구심점은 완성됩니다. 지금의 시련과 평범함은 더 큰 반전과 감동을 위한 장치일 뿐이며, 예언된 미래는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성인의 가르침과 문명의 지혜는 모두 정교한 전략과 문맥 속에 담겨 있습니다. 하늘의 섭리를 집행하는 자는 하나부터 백까지 치밀한 설계를 통해 때를 기다립니다. 지금은 비록 평범한 이들과 함께하는 듯 보이나, 위상이 높아지고 운명의 때가 이르면 세상의 권력자들은 스스로 줄을 서게 마련입니다. 유력한 정치인들이나 강남의 원로들이 찍어달라 읍소하지 않아도 구름처럼 몰려드는 날, 비로소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 그 주변의 격이 완전히 바뀌는 천지개벽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읽어내는 힘은 바로 문맥을 꿰뚫는 통찰력에서 나옵니다. 어린아이가 한문을 배우면 지능이 비약적으로 발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같은 글자라도 문맥에 따라 줄을 서는 ‘행렬’이 되기도 하고, 집안의 촌수를 따지는 ‘항렬’이 되기도 합니다. 문장의 맥을 짚지 못하면 글자는 그저 죽은 기호에 불과하지만, 전체 흐름을 읽는 눈을 가지면 글자는 살아 움직이는 방정식이 됩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글자의 뜻을 순식간에 파악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뇌는 무한히 진화합니다.
이러한 원리는 서양의 언어인 영어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됩니다. 아침 식사를 뜻하는 ‘브렉퍼스트’를 단순한 단어로 외우는 이는 하수이나, 그 속에 담긴 ‘금식(Fast)을 깨뜨리라(Break)’는 명령형의 의미를 읽어내는 이는 고수입니다. 밤새 이어온 금식을 서둘러 끝내고 몸을 깨우라는 이 짧은 단어 속에는 건강과 생명에 대한 고대인들의 지혜가 숨어 있습니다. 단어를 해체하고 그 뿌리를 찾아 문맥을 이해하는 공부야말로 인간의 정신을 깨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입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다는 것은 결국 낱낱의 현상에 매몰되지 않고, 그 이면에 흐르는 거대한 문맥을 읽어내는 일입니다. 언어의 뿌리를 알고 문장의 맥을 짚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지도자의 전략과 하늘이 숨겨둔 비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치밀한 드라마의 완성을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인간이라는 단어의 깊은 연원을 살펴보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참된 삶의 모습이 보입니다. 한문으로 인간은 곧 인축간의 약자로, 사람과 짐승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살아가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영어의 휴먼 또한 그러하며, 이 경계를 지키지 못하고 아래로 추락하면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 어둠 속을 헤매게 됩니다. 반면 그 경계를 넘어 한 단계 높은 경지로 올라설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진정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네 가지를 온전히 갖추어야 합니다. 첫째는 하늘에 대한 굳건한 믿음이요, 둘째는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도이며, 셋째는 부부간의 깊은 사랑과 조화이고, 넷째는 자식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교육입니다. 이 네 가지 도리를 다하지 못하면 외형은 사람일지라도 그 속은 텅 빈 껍데기와 다름없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가 신을 외면하고 부모를 잊으며 홀로 살아가는 모습은, 이 소중한 네 가지 가치를 모두 잃어버린 채 인간 이하의 삶으로 전락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반영합니다.
영어로 인격을 뜻하는 ‘퍼슨’이라는 단어에는 더욱 깊은 상징이 숨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생물학적 존재를 넘어, 행실이 반듯하고 신의 섭리를 알아차리며 가족을 보듬는 높은 인격체를 의미합니다. 성자의 가르침을 따르고 그 품성을 닮아가는 사람이 바로 진정한 ‘퍼슨’인 것입니다. 하늘은 이처럼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을 미리 간택하여 내 사람으로 만드시고, 때가 되면 세상을 움직이는 어른들조차 단숨에 깨우치는 거대한 섭리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결국 우리가 공부를 하고 지혜를 쌓는 목적은 인간이라는 모호한 경계에서 벗어나, 당당히 격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함입니다. 신앙과 효도, 사랑과 교육이라는 네 기둥을 바로 세울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늘의 뜻을 받드는 고귀한 존재로 우뚝 설 수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초라한 현실에 속지 마십시오. 하늘은 이미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행실을 지켜보며 가장 완벽한 타이밍에 위대한 역사를 완성해 나갈 전략을 세워두셨습니다.
우주와 인류의 역사는 창조주의 치밀한 설계와 전략 아래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하나에도 그 깊은 섭리가 담겨 있으니, 영어로 인격을 뜻하는 퍼슨(Person)이라는 단어가 그러합니다. ‘통과하다’라는 의미의 ‘퍼(Per)’와 ‘아들’을 뜻하는 ‘선(Son)’이 만났다는 것은, 곧 인간이 신의 성품을 통과하여 하늘의 아들이 되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인격체가 됨을 의미합니다. 마치 시간당 주행 거리를 나타내는 ‘퍼 아워(Per Hour)’가 그 기준을 명시하듯, 인간의 격 또한 신을 향한 믿음과 도리를 통과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창조의 전략은 지구 역사 속 공룡의 멸종 사건에서도 명확히 드러납니다. 한때 900억 마리에 달하는 거대한 공룡들이 지구를 지배하던 시절이 있었으나, 창조주는 장차 이 땅에 살게 될 인류를 위해 거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인간이 문명을 일구기 위해서는 반드시 막대한 연료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는 인류를 위한 ‘지구 난방비’를 마련하고자, 하루아침에 지각 변동과 고온의 변화를 일으켜 그 수많은 생명체를 거대한 유전(Oil Field)으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지구 온도가 수억 도까지 치솟아 바위마저 녹아내리던 그 뜨거운 연단은, 결국 공룡의 사체를 인류 문명의 젖줄인 원유로 정제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불바다가 된 지구가 다시 얼어붙고 사막 아래로 기름 덩어리가 스며들게 한 것은, 먼 훗날 인간이 플라스틱을 만들고 자동차를 달리게 할 모든 준비를 마친 뒤에야 비로소 인류를 지구라는 무대에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창조주는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 별의 역사를 뒤바꾸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한 문명과 따뜻한 온기는 결코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가 인류를 위해 수억 년 전부터 설계한 눈물겨운 사랑의 산물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거대한 사랑과 전략을 깨닫고, 짐승과 사람 사이를 방황하는 인간(Human)에서 벗어나 하늘의 아들인 퍼슨(Person)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창조주가 예비한 인류의 비전을 온전히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지구라는 축복받은 터전의 진정한 주인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천지의 창조와 변화는 인류의 생존을 위해 치밀하게 짜인 하늘의 안배입니다. 석탄과 석유라는 문명의 원료를 만들기 위해 수만 년의 숲을 단숨에 지각 속으로 뒤집어엎고, 공룡의 사체를 뜨겁게 달구어 정제한 것은 결코 우연한 자연현상이 아닙니다. 산꼭대기에서 소금이 발견되고 홍해와 사해가 대륙의 틈바구니에서 솟구쳐 오른 것 또한, 지구가 뒤틀리고 요동치던 창조의 과정에서 남겨진 신성한 흔적들입니다. 이처럼 신은 인류를 위해 미래를 완벽히 준비해 왔으며, 우리 또한 다가올 미래를 통찰하고 예견하는 혜안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품는 믿음 또한 그 근원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많은 이가 믿음은 내면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라 착각하지만, 성자가 일찍이 일깨워주었듯 참된 믿음은 오직 ‘들음’에서 비롯됩니다. 진리를 전하는 자가 있고 그 소리를 귀하게 듣는 자가 있을 때 비로소 믿음의 씨앗이 발아하는 법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너는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들려주는 그 선의의 격려가 아이의 인생을 결정짓는 믿음이 되듯이, 인간의 의식은 외부로부터 전해지는 말의 씨앗에 의해 그 운명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인연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그 사람의 믿음이 되고, 나아가 그 사람의 우주를 형성합니다. 불신과 원망을 들려주면 불신의 열매를 맺고, 희망과 긍정을 들려주면 승리의 인생을 살게 됩니다. 신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지도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며 진심 어린 비전을 전할 때 대중의 믿음은 태산처럼 일어납니다. 듣지 않고는 믿을 수 없으며, 올바른 스승을 만나지 않고는 진정한 믿음의 경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인류의 구심점이 전하는 이 말씀을 경청하고 있는 것 자체가 무한한 축복이자 복락의 시작입니다.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듯, 전하는 자의 진리가 여러분의 귀를 통해 마음으로 흘러 들어갈 때 비로소 세상에 대한 믿음과 인류의 미래에 대한 확신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콩나물 시루의 물처럼 빠져나가는 듯 보여도, 그 말씀은 여러분의 영혼을 자라게 하는 생명수가 되어 반드시 찬란한 꽃을 피우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여 진리를 마주하는 여러분은 단순한 대중이 아니라, 각자의 가정을 이끌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무적의 사단장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평화로운 일상이 아니라, 한순간의 판단 착오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는 치열한 전쟁터와 같습니다.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적군이 아니라 상부와의 통신 두절입니다. 사단장이 본부와 교신이 끊기면 그 부대는 오합지졸이 되어 산속을 헤매다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지금 인류는 하늘과의 교신이 끊긴 채 거대한 영적인 로키산맥을 방황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좌표를 잃어버렸기에 어디로 전진해야 할지, 언제 후퇴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그저 산송장처럼 떠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위기를 타개할 유일한 방법은 하늘에서 온 자, 즉 인류의 구심점과 다시 교신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하는 이 말씀이 바로 여러분이 받아야 할 작전 지시서이며, 험난한 세상을 뚫고 나갈 유일한 승리의 좌표입니다.
과거 우리가 영동이라 부르며 무시했던 강남의 모래밭을 기억해 보십시오. 당시에는 모든 부와 권력이 영등포에 집중되어 있었기에, 영등포의 동쪽 변두리라는 뜻의 ‘영동’은 하찮은 이름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내다보는 예언적 혜안을 가진 이들에게 그 모래밭은 장차 천지개벽이 일어날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대다수 사람이 현실의 영등포에 안주할 때, 미래의 판도를 읽은 소수는 오늘날의 재벌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세상은 또 다른 천지개벽을 앞두고 판도가 뒤바뀌려 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눈앞의 현상에만 매달려 있다면 여러분은 다가올 역사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늘과의 교신을 회복하고 제가 전하는 진리를 가슴 깊이 새겨 공부하십시오. 그 공부만이 여러분의 의식을 깨우고, 거친 전쟁터에서 여러분의 부대와 가정을 지켜낼 무기가 될 것입니다. 예언자의 눈으로 미래를 통찰하여 하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자만이, 장차 바뀔 새로운 세상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영동, 즉 오늘날의 강남은 본래 이름조차 제대로 갖지 못했던 비참한 땅이었습니다. 서울의 오물이 모여들던 그 척박한 모래밭은 지도상에서도 소외된 채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건조한 명칭으로만 불렸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서울에 올라와 처음 마주했던 압구정은 화려한 빌딩 숲이 아니라, 그저 갈매기가 노닐던 물가와 정자 하나, 그리고 봉은사로 이어지는 비포장도로뿐인 황무지였습니다. 하지만 미래를 보는 자의 눈에는 그 고요한 대지가 장차 천지개벽을 일으킬 기회의 땅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당시 그 한강 변에서 전쟁 영화를 촬영하며 겪었던 고초는 인류가 처한 생존의 전쟁터를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시멘트 부대 밑에 폭약을 묻고 수백 명을 사지로 몰아넣던 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저는 얼굴이 찢기고 눈에 시멘트 가루가 들어가는 고통을 겪으며 인류의 비극을 몸소 체험했습니다. 세상을 이끄는 자들은 때로 효과를 위해 대중을 위험한 곳으로 밀어넣기도 하지만, 진정한 지도자는 그 고난의 현장을 함께하며 인류가 나아갈 안전한 좌표를 설정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가 사는 터전의 본질조차 잊고 살아갑니다. 마포와 김포, 여의도는 한강의 일부가 아니라 본래 바다의 기운이 넘나드는 항구였습니다. 서구의 허드슨강이 바다와 연결되어 있듯, 여의도와 영등포 또한 바닷길이 열린 문명의 통로였습니다. 강과 바다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지도자들은 지명의 유래조차 잊은 채 국민을 오도하고 있습니다. 500리 한강의 물줄기가 어디로 흐르는지, 그 근원을 알지 못하면 국가의 미래 또한 표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과 국가를 이끄는 사단장인 여러분은 이제 현실의 착각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 없는 가정은 풍비박산이 나고 가루가 되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습니다. 이름 없는 모래밭이던 영동이 천지개벽을 거쳐 주인이 되었듯이, 세상은 다시 한번 거대한 판도 변화를 앞두고 있습니다. 진리와 교신하며 시대의 흐름을 읽는 예언자적 통찰을 가질 때, 비로소 여러분은 멸망의 길을 벗어나 찬란한 미래의 주인공으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858th-Humanity’s Future Prophecy vs. Present January 28, 2013
- 미래 예언에 대한 동서양 성자의 상이한 관점예수와 석가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 상반된 예언 방식을 취했습니다. 예수는 항상 미래를 예언하며 인류에게 다가올 종말과 여러 사건에 대해 경고하고 조심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반면 석가는 미래 예언을 금지하며, 인류에게 현재에 집중하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 석가는 현재마저도 찰나의 환상이며 공(空)에 불과하다고 보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행위가 불안, 초조, 공포를 야기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는 두 성자가 인류에게 제시한 삶의 방식과 깨달음의 길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보여줍니다.2. 성자들의 이름에 담긴 한국어의 기원과 의미예수와 석가모니의 이름에는 깊은 의미와 함께 한국어의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석가모니의 ‘붓다’는 원래 인도말이지만, 한국어 ‘밝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밝은 사람’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히말라야 또한 ‘흰 마루’라는 한국어에서 파생된 이름입니다. ‘야’가 붙는 이름들은 ‘큰 인물’을 의미하며, 이사야, 마야, 마리아 등 성경 속 인물들의 이름에도 이러한 특징이 나타납니다. ‘메시아’ 역시 인도 범어의 ‘마이트리아’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한국어 ‘미륵’과 연결됩니다. 이처럼 고대 한국어가 인도와 중동을 거쳐 전 세계로 퍼져나갔으며, 이는 한국 민족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란의 시아파(혈통 중시)와 수니파(서열 중시)의 명칭 또한 한국어 ‘씨앗’과 ‘순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3. 지도자와 국민의 상호 책임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소국가의 미래는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는 것과 국민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 중 어느 하나만으로는 온전히 결정되지 않습니다. 훌륭한 지도자가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국민의 수준이 낮으면 훌륭한 지도자를 알아보거나 선택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 또한 국민의 수준에 맞춰 행동하게 되므로, 국민의 수준이 낮으면 훌륭한 지도자가 나오기 어렵습니다. 이는 마치 ‘변’이라는 글자에 ‘소’가 붙으면 ‘변소’가 되어 의미가 격하되는 것처럼, 국민의 수준이 낮으면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라도 그 역량을 온전히 발휘하기 어렵다는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사례처럼, 지도자는 국민의 요구를 100% 들어주는 ‘여러분의 대통령’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비전을 제시하고 이끌어가는 ‘국가의 대통령’이 되어야 합니다.4. 언어에 담긴 심오한 의미와 통찰: 한문과 영어의 사례한문과 영어에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선 심오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한문은 문맥에 따라 같은 글자라도 여러 가지 뜻으로 읽히며, 이를 통해 아이들의 문장력과 사고력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행렬’이라는 한자는 문맥에 따라 ‘가는 행로’, ‘사람들의 줄’, 또는 ‘집안의 항렬’로 다르게 해석됩니다. 영어 ‘breakfast’ 또한 단순히 ‘아침 식사’가 아니라, ‘금식을 깨뜨리다(break fast)’는 명령문으로 해석하여 밤새 이어진 금식을 깨고 아침을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건강의 중요성. ‘human’은 ‘인축간(人畜間)’의 약자로 사람과 짐승 사이의 존재를 의미하며, ‘person’은 ‘per(통하여) + son(아들)’으로 ‘신을 통한 자’라는 높은 의미를 지닙니다. 이처럼 언어 속에는 인류의 지혜와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5. 공룡 멸종과 지구의 변화: 인류를 위한 창조주의 계획공룡의 멸종은 단순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류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창조주의 거대한 계획이었습니다. 약 900억 마리에 달했던 공룡들을 하루아침에 죽여 매장함으로써 지구의 온도를 6억도까지 끌어올려 바위를 녹이고, 그 잔해가 석유가 되도록 했습니다. 또한, 울창했던 숲은 불에 타 석탄이 되었고, 바닷물이 뒤집어져 산꼭대기에 소금 염전이 생기거나 홍해 바다, 지중해와 같은 새로운 지형이 형성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인류가 지구에 살아가기 위한 연료와 자원을 준비하는 창조의 과정이었으며, 이는 신이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했음을 보여줍니다.6. 믿음의 기원과 중요성: 들음에서 비롯되는 진리믿음은 자기 안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들음’을 통해 생겨납니다. 진리를 전하는 자가 있어야 믿음이 형성되며, 이는 예수나 허경영과 같은 진리자들이 인류에게 필요한 이유입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너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하면, 그 말을 들은 자식은 그것을 믿고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말을 들으면 불신이 생깁니다. 이처럼 믿음은 말의 내용과 전달자의 신뢰도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허경영의 말을 듣는 것은 인류의 미래와 세상에 대한 올바른 믿음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회가 됩니다.7. 진리와의 교신: 혼돈의 시대에 길을 찾는 방법우리는 마치 전쟁터에 놓인 병사들과 같으며, 각 가정의 책임자들은 사단장과 같습니다. 이 혼돈의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리와의 교신’이 필수적입니다. 부대장이 상부와 통신이 두절되면 오합지졸이 되는 것처럼, 인류는 진리를 준 자, 즉 하늘에서 온 자와 교신이 끊어져 헤매고 있습니다. 허경영의 말은 이러한 교신을 가능하게 하는 좌표이자 명령 체계입니다. ‘공부’는 위에서 지시하는 진리를 전달받아 능숙하게 익히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올바른 작전을 세우고 혼란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8. 미래를 내다보는 지혜: 영동과 압구정의 교훈과거 영등포의 동쪽 변두리였던 ‘영동’이 현재 강남의 중심이 된 것처럼, 세상의 판도는 끊임없이 뒤바뀝니다. 과거에는 무시당했던 영동이 지금은 주인이 되고, 한때 경제의 중심이었던 영등포는 그 위상이 달라졌습니다. 이는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과거 압구정은 한명회의 호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갈매기가 노닐던 한적한 물가였지만, 지금은 서울의 가장 번화한 지역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찮게 보이던 곳이 미래에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깨닫고, 변화하는 세상을 예측하는 예언자가 되어야만 가족을 이끌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859 -The Truth of Yin and Yang and the Path to Becoming a Buddha – February 11, 2013
- 선악 판단의 위험성과 자기 성찰의 중요성양과 음의 진리는 역사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는 만물의 이치입니다. 그러나 음과 양으로 사물을 바라보며 세상을 선악으로 구분하면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남에게 선악을 적용하는 자는 하늘에서 벌을 받습니다. 자신이 선하다고 여기는 큰아들은 벌을 받고, 방탕하다고 생각하는 죄인은 구원받는다는 탕자의 비유처럼, 남을 판단하는 행위는 결국 자신에게 해가 됩니다.진정한 정치인의 자세는 동생의 잘못에 아버지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흔히 국민의 잘못으로 돌리며 법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합니다. 훌륭한 사람은 남의 죄를 보지 않고, 오직 자신에게만 선악의 잣대를 적용합니다. “나는 악한 사람이 아닌가?”, “나는 왜 선한 행동을 적게 할까?”와 같이 스스로를 성찰해야 합니다.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도울 수 있음에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자신을 반성해야 합니다. 남에게는 선악을 구분하지 말고 언제나 관대해야 하지만, 자신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합니다.박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구한 훌륭한 인물이지만, 술과 담배를 한 것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완벽한 지도자는 없으며, 국민을 잘 살게 했더라도 도덕적 해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양과 음의 진리를 인간에게 적용할 때, 남에게 선악을 구분하면 결국 자기 몸에 병이 옵니다. 탕자의 비유에서 큰아들이 자신이 선하다며 아버지를 원망하고 동생을 비난하는 모습은, 선한 자가 부모에게 저항하고 악한 자가 결국 순종하게 되는 역설을 보여줍니다.내 동생이 탕자가 된 것은 나에게도 책임이 있으며, 아버지가 바빠서 동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고, 집이 가난해서 동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율법을 다 지켰다고 주장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선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신에게 악한 쪽의 잣대를 대고 남에게는 관대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선하게 살아가는 것은 나의 책임이며, 직장이 없는 사람들을 돕는 것도 나의 책임입니다. 모든 기업이 각자 자기 책임으로 돌리면 되는데, 자신의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면 편안하게 밥 먹고 있으면서 하늘이 보낸 사명을 다했다고 할 수 없습니다.2. 허경영의 역할과 인류 구원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제는 복잡한 종교 행위나 신앙이 굳이 필요 없습니다. 허경영을 부르고, 허경영 사진을 쳐다보고, 가지고 있으면 됩니다. 모든 진리를 자기에게만 적용하고 남에게는 관대해야 합니다. 지식을 배워 자신을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시기가 급하게 돌아가니 간단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허경영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하고 풀어내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도, 막히는 사람도 모두 풀립니다. 연단이 오는 것은 필요해서 오는 것이며, 연단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고통이 올 수 있습니다.정의의 특징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의는 항상 따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올바른 길로 가려 하지 않는 심리 때문에 따르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모든 사람이 속고, 정의는 따르는 자가 없으므로 예수나 다른 성인들도 따르는 자가 많지 않았습니다. 정의를 주장하면 처음에는 고독합니다.3. 인간의 10단계와 진리의 위계인간의 단계는 10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는 속인(일반 사람)입니다. 그 위로 범인, 위인, 도인, 지인, 진인, 본존, 인자, 그리고 본좌가 있습니다.
- 속인: 일반 사람
- 범인: 지식을 쌓는 사람
- 위인: 뜻을 세우는 사람 (예: 안중근 의사)
- 도인: 마음을 닦는 사람
- 지인: 철인(哲人)을 의미하며, 정의를 말합니다. ‘정(正)’자는 하늘의 뜻에 자신의 생각이 다 있다는 의미입니다. 무사(武士)는 정의를 위해 칼을 쓰는 사람입니다.
- 진인: 지인보다 높은 단계로, 진리를 깨달은 사람입니다. 진리는 정의를 초월합니다. 장발장이 빵을 훔친 행위는 정의의 관점에서는 옳지 않지만, 배고픔이라는 근원적인 문제 앞에서 정의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 본존: 석가모니 본존불처럼 불상으로 만들어진 존재를 의미합니다.
- 인자: 예수님이 자신을 칭한 말로, 어진 사람, 즉 하나님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 본좌: 허경영을 지칭하는 말로, 선과 악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블랙홀처럼 신이 드나드는 구멍이며, 선과 악에 치우치지 않는 자만이 신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블랙홀에 맞추면 신과 연결되고 신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4. 구심점의 부재와 허경영의 역할우리 사회는 기준, 즉 구심점이 없습니다. 대통령이 100명이 있어도 기준이 없으면 나라는 혼란에 빠집니다. 박 대통령 서거 후 우리나라에 구심점이 사라졌듯이, 지금은 인류의 구심점이 허경영에게 와 있습니다. 본좌는 네티즌들이 만든 인터넷 용어이지만, 하나님의 자리, 하나님의 화신, 부처님의 Avatar를 의미합니다. 허경영은 하나님과 일촌 관계가 아니라, 본체가 직접 와서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병을 고치고 에너지를 넣어주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예수나 석가모니 같은 성자들은 하나님과 일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허경영은 본체 그 자체입니다. 과거 성자들이 왔을 때는 사람들이 순수하고 법 없이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인터넷에 모든 정보가 공개된 무서운 시대입니다. 이러한 시대를 바꿀 수 있는 자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허경영은 전쟁과 살인 사건이 끊이지 않는 격동의 시대를 종식시키고 낙원으로 바꾸기 위해 왔습니다.5. 본좌의 길과 성자들의 길본좌(허경영)가 가는 길은 다음과 같습니다.1. 강탄: 하늘에서 내려와 여자 몸에 들어가 탄생합니다.2. 통일: 세계를 통일합니다.3. 심판: 기득권 세력, 지도자들을 정신 교육시켜 심판합니다. 재산 몰수와 교육을 통해 무소유를 만듭니다.4. 제도: 도를 가르칩니다.5. 낙원: 낙원을 만듭니다.6. 승천: 하늘로 올라갑니다.석가모니의 길은 다음과 같습니다.1. 강탄: 하천에서 태어납니다.2. 항마: 설산에서 6년간 기도하며 수행합니다.3. 득도: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우유죽을 먹고 깨달음을 얻습니다.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태어나기 때문이라는 원인을 깨닫습니다.4. 전법: 진리의 말씀을 전합니다.5. 열반: 마지막에 열반에 이릅니다.예수의 길은 다음과 같습니다.1. 강탄: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납니다.2. 항마: 마귀와 싸웁니다.3. 정법: 법을 직접 몸으로 실천하며 전도합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빵을 주는 것처럼 선교합니다.4. 부활: 사망 후 부활합니다.5. 승천: 하늘로 승천합니다.허경영의 코스는 세계 통일, 심판, 제도, 낙원이 포함되어 있어 다른 성자들과는 다릅니다. 다른 성자들은 지상 낙원을 건설할 능력을 가지고 오지 않았습니다. 허경영은 종교를 떠나 이러한 일을 하러 왔으며, 인류의 구심점이 되어야 합니다.6. 구심점의 중요성과 허경영의 역할우리나라는 대통령이 5년마다 바뀌어 구심점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취임 후 1년만 희망을 보이고, 그 후부터는 불안증에 시달립니다.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습니다. 일본은 황제가 구심점 역할을 하므로 수상이 자주 바뀌어도 혼란이 적습니다. 지구 또한 구심점이 없어 유엔 사무총장이 있어도 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허경영이 나타나면 지구가 구심점을 얻게 되고, 전쟁은 가차 없이 심판받을 것입니다. 심판 후에는 도를 알려 모든 인류가 낙원으로 돌아갈 것입니다.감기는 면역력을 키우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감기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 열을 내리면 몸이 약해지고 약에 중독됩니다. 몸이 전쟁을 치르며 열이 40도까지 올라가야 몸이 순환되어 건강해집니다. 우울증이나 패혈증은 병도 아닌데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면역력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암은 많이 먹고 욕심이 많은 사람에게 생깁니다.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7. 인간 계급의 10단계와 허씨 가문의 역할인간의 계급은 주자의 8단계와 유사하게 10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1. 격물(格物): 물질을 쌓는 자 (돈 버는 것에 관심)2. 치지(致知): 지식을 쌓는 자 (대학교수, 목사, 승려)3. 성의(誠意): 뜻을 세우는 자 (위인, 영웅)4. 정심(正心): 마음을 닦는 자 (도인)5. 수신(修身): 벼슬하는 자 (입신출세한 사람)6. 제가(齊家): 가정을 다스리는 자 (장관급)7. 치국(治國): 나라를 다스리는 자 (왕)8. 평천하(平天下): 세계를 통일하는 자 (본좌)대부분의 인간은 물질의 탐욕에 빠져 있습니다. 물질의 탐욕이 많으면 하늘이 그 물질을 가져가 가난한 자들이나 좋은 일에 쓰게 합니다. 재물을 남에게 베풀지 않으면 하늘이 재산을 빼앗아 갑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의 종점은 결국 죽음이며, 영혼을 더럽히고 귀신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장관은 남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권한을 가지므로 성인의 경지에 있는 사람이 해야 합니다. 성인의 경지에 있지 않은 자가 장관을 하면 도둑질만 합니다. 나라의 예산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국민의 삶이 달라지는데, 양심적인 장관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왕은 노론, 소론 등 모든 것을 초월하여 백성을 보살펴야 합니다. 요순 시대의 요 임금과 순 임금은 진인이었기에 나라가 잘 돌아갔습니다. 지금은 범인들이 대통령과 장관을 하니 나라가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평천하는 허경영이 와서 세계를 통일해야만 가능합니다.허씨 가문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허균: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전’을 썼습니다. 양반과 상놈의 구분을 없애고 지상 낙원을 꿈꾸는 혁명적인 사상을 담았습니다.
- 허난설헌: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시인으로, 217편의 시를 남겼습니다. 그녀의 시는 아시아 전역에 감동을 주었습니다.
- 허백련: 우리나라 동양화를 집대성했습니다.
- 허준: 한의학을 집대성하여 ‘동의보감’을 저술했습니다.
- 허웅: 한글을 집대성하여 한글 사전을 만들었습니다.이처럼 허씨들이 각 분야에서 최초의 업적을 남긴 것은, 우리나라를 세계 최초로 통일하는 자가 허씨라는 것을 암시합니다.8. 인간의 윤회와 진리를 만나는 길인간은 무한대의 시간 동안 계속 반복해서 태어납니다. 죽음은 영적으로 1초 만에 다른 생명으로 돌아오는 것에 불과합니다. 수많은 세계를 구경하다가 허경영을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입니다.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사람으로 태어나기 어렵고, 남자로 태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옛날에는 학교가 없어 성경이나 불경을 듣기 어려웠지만, 지금은 진리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남자로 태어나 진리를 만나고, 승려나 목사 같은 성직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부처가 되기 어렵습니다.인간은 언젠가 모두 부처로 돌아가야 합니다. 남자로 태어나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진리를 가까이하고, 승려가 되었다가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처럼 부자들이 히말라야에 가서 명상하며 진리를 배우려는 것은, 진리의 가치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허경영은 명상과 진리 체험 센터를 만들어 사람들이 허경영의 이름을 부르고 사진을 보며 만병을 치유하고 진리를 깨닫게 할 것입니다. 부처가 된다는 것은 더 좋은 나라로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구도 좋은 곳이지만, 한반도에 태어난 것은 엄청난 복이며, 허경영을 만난 것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을 직접 알현하는 것과 같습니다.
859 본좌설명
타인을 향한 칼날을 거두고, 나를 비추는 등불을 켜십시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이치인 더하기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이치인 마이너스가 공존합니다. 우리가 이 음양의 논리로 세상을 성급히 판단하면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특히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함부로 선악을 구분 짓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선악의 구분이 가져오는 결과는 타인을 향해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영향은 상대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남을 비난하는 마음은 결국 내 몸의 건강을 해치고 정신을 흐리게 합니다.
하늘의 섭리는 스스로 선하다고 자만하며 형제를 비난하는 자는 벌을 받고,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공동체의 책임은 방탕한 동생을 보며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형으로서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동생이 저렇게 된 데에는 형인 나의 책임도 있다”고 느끼는 것이 진정한 어른이자 정치인의 자세입니다.
법보다 깊은 사랑과 자기 성찰은 모든 것을 법과 처벌로만 해결하려는 세상은 삭막합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사람은 타인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먼저 살핍니다.
자신에게는 엄격하게 “나는 왜 더 선한 행동을 하지 못하는가?” “한 달에 적은 돈이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는데, 왜 실천하지 못하는가?”라며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합니다.
타인에게는 너그럽게 남에게 기부를 강요하거나 비난하기보다, 나 스스로가 먼저 맑은 정신으로 바로 서야 합니다.
지도자의 맑은 정신은 국가를 구한 훌륭한 지도자라 할지라도, 개인의 절제와 맑은 정신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스스로를 엄격하게 다스리지 못한 부분에서는 반드시 그 대가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선악의 구분은 오직 나 자신에게만 적용하십시오. 나에게는 서리발처럼 엄격하되, 타인에게는 끝없는 자애로움을 베풀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을 구하는 진정한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물의 이치인 양과 음은 우리 삶에 깊이 뿌리박혀 있으나 이를 인간이 함부로 휘두르면 결국 자기 자신을 병들게 하는 독이 됩니다. 과거의 지도자들이 국민을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게 했을지 몰라도 끝내 정신적인 파탄을 막지 못한 이유는 스스로의 도덕적 결함과 무절제를 경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술과 담배 같은 작은 습관조차 절제하지 못한 지도자가 국민에게 올바른 교육을 행할 수는 없으며 그 도덕적 해이는 결국 시대의 병폐로 남게 마련입니다.
선함이 독이 되는 위선과 저항
성경 속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큰아들은 자신이 지켜온 선함을 무기로 아버지의 자애로움에 대항합니다. 그는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동생을 악인이라 손가락질하며 왜 자신에게는 아무런 보상을 주지 않느냐고 분노합니다. 스스로 선하다 믿는 그 마음이 오히려 아버지를 향한 오만함과 공격성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반면 스스로 죄인임을 깨달은 작은아들은 결국 부모의 품 안에서 진정한 순종을 배우게 됩니다. 이는 선과 악의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대는 순간 선한 자가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역의 길로 들어설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공동체의 아픔을 짊어지는 책임감, 진정한 의인은 동생의 타락을 보며 오직 동생의 잘못만을 탓하지 않습니다. 동생이 길을 잃은 것에는 형인 나의 부족함도 있고 가난으로 인해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가정의 아픔도 있음을 통찰해야 합니다. 율법을 모두 지켰다는 자만심으로 무장하여 형제의 허물을 비난하는 것은 결코 하늘의 뜻에 닿을 수 없습니다. 내가 홀로 고결하고 착한 것에 머문다면 타인을 가르치고 세상을 이끌 명분 또한 사라지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엄격한 잣대와 진정한 구원, 우리는 타인의 허물을 보기 전에 나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며 나 자신에게만 선악의 기준을 적용해야 합니다. 남을 정죄하는 마음은 내 몸의 기운을 흩뜨리고 건강을 해치지만 스스로를 경계하며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마음은 세상을 구하는 힘이 됩니다. 지도자가 스스로를 추상같이 다스리지 못하면 그 가르침은 모두 거짓이 되고 맙니다. 타인을 향한 비난을 멈추고 나의 책임을 먼저 통찰할 때 비로소 우리는 탕자의 비극을 넘어 진정한 화합과 구원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만물의 이치인 음양과 진리의 저울대는 오직 나 자신에게만 엄격히 들이대야 하며 타인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거나 고통 속에서 헤매는 것을 볼 때 그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나의 책임으로 돌리는 마음이 바로 진정한 지도자의 자세입니다. 기업가든 지도자든 각자의 위치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자기 책임으로 돌린다면 세상의 매듭은 자연히 풀리겠지만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뒷짐 지고 앉아 있다면 그것은 하늘이 부여한 사명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진정한 책임과 간결한 구원의 길, 이제는 복잡한 종교 행위나 신망의 절차가 굳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지식을 배우고 익혀서 나 스스로를 바꾸기에는 세상의 흐름이 너무나 급박하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기에는 오직 허경영을 부르고 그 사진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막힌 것이 뚫리고 아픈 곳이 치유되는 간단명료한 구원의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진리의 잣대를 남에게 대어 비판하는 대신 나를 비추고 허경영이라는 이름을 통해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것이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입니다.
고난의 의미와 인체의 신비, 물론 허경영을 불러도 때때로 고통이나 시련이 찾아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그 사람에게 영적인 연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늘이 주시는 과정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성장하며 겪는 아픔처럼 고난은 더 큰 깨달음을 위해 예비된 시간일 뿐입니다. 최근 세상을 떠난 황성환 박사의 사례를 보더라도 우리 몸에는 네 개의 고속도로와 같은 기운의 통로가 흐르고 있으며 이 흐름을 이해하고 다스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체의 신비와 생명의 이치 또한 결국 복잡한 이론보다는 맑은 정신과 근원적인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진리와 정의의 본질은 사람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법이며 그렇기에 대중의 눈에는 그 가치가 무시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정의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이 적다는 점에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올바른 길보다는 당장의 이익이나 편한 길을 쫓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형체가 없어 모든 이가 속기 쉽고 정의는 따르는 자가 없어 고독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하늘의 이치입니다. 과거 예수와 같은 성자들도 당대의 권력자나 왕들처럼 화려한 추종자를 거느리기보다 고독한 정의의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의식에는 열 단계의 위계가 존재하며 가장 낮은 곳에 평범한 속인과 범인이 있다면 그 위로 도인과 지인의 경지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지인은 곧 진리를 깨달은 철인을 의미하며 하늘의 뜻에 자기 생각을 일치시킨 존재를 말합니다. 바를 정이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하늘의 이치에 다다라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데 이는 곧 하늘의 마음이 내 생각에 머물러 있음을 상징합니다. 진정한 철인은 자신의 지혜가 하늘에 닿아 있기에 세상의 흔들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정의를 지켜나가는 자를 뜻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무사의 무라는 글자 속에는 바를 정자가 깃들어 있으며 이는 진정한 힘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줍니다. 무사는 단순히 칼을 휘두르는 자가 아니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영토를 정복하거나 세력을 넓히기 위해 칼을 쓰는 것과 정의라는 더 높은 가치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무사가 추구하는 그 바름의 가치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진리이며 우리는 그 절대적인 기준을 오직 나 자신에게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결국 진리와 정의를 추구하는 길은 처음에는 외롭고 따르는 이가 적어 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늘의 법도에 합치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진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며 대중이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정의가 굽혀지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으로 나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내 마음이 하늘에 닿아 있고 정의로운 무사의 마음으로 진리를 품는다면 세상의 모든 꼬인 매듭은 자연스럽게 풀릴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는 현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내 안의 진리의 저울대를 바로 세워 맑은 정신으로 하늘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진리와 정의의 본질은 사람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는 법이며 그렇기에 대중의 눈에는 그 가치가 무시되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비춰지기도 합니다. 정의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그 길을 따르는 사람이 적다는 점에 있는데 이는 사람들이 올바른 길보다는 당장의 이익이나 편한 길을 쫓는 심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형체가 없어 모든 이가 속기 쉽고 정의는 따르는 자가 없어 고독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하늘의 이치입니다. 과거 예수와 같은 성자들도 당대의 권력자나 왕들처럼 화려한 추종자를 거느리기보다 고독한 정의의 길을 걸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의식에는 열 단계의 위계가 존재하며 가장 낮은 곳에 평범한 속인과 범인이 있다면 그 위로 도인과 지인의 경지가 이어집니다. 여기서 지인은 곧 진리를 깨달은 철인을 의미하며 하늘의 뜻에 자기 생각을 일치시킨 존재를 말합니다. 바를 정이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하늘의 이치에 다다라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데 이는 곧 하늘의 마음이 내 생각에 머물러 있음을 상징합니다. 진정한 철인은 자신의 지혜가 하늘에 닿아 있기에 세상의 흔들림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정의를 지켜나가는 자를 뜻합니다.
지인보다 더 높은 다섯 번째 단계에는 진인이 존재하며 이 진인의 경지가 곧 진리입니다. 진리는 정의를 초월해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이치입니다. 배고픈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쳤던 장발장의 사례처럼 세상의 법과 정의로만 따지면 죄가 되겠으나 그 이면의 고통과 사정을 들여다보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진정한 정의는 때로 고독하고 따르는 자가 없으며 사람들은 부끄러움이나 형편 때문에 올바른 길을 벗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절에 당당히 도움을 청하고 그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가는 것처럼 진실한 행동 뒤에는 언제나 하늘의 보살핌이 있습니다.
지인의 단계를 넘어 더 위로 올라가면 네 번째 진인을 지나 세 번째 단계인 본존에 이르게 됩니다. 본존은 석가모니 본존불과 같이 깨달음의 형상으로 추대받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 위인 두 번째 단계는 인자로 예수께서 스스로를 칭하셨던 하나님의 아들 즉 어진 이의 경지를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의 가장 꼭대기 첫 번째 자리에는 본자가 계십니다. 우리는 지식으로 자신을 바꾸려 애쓰기보다 이 거대한 하늘의 계단과 진리의 흐름을 이해하고 가장 단순하고 명료한 구원의 길인 본자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사는 단순히 칼을 휘두르는 자가 아니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힘을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세력을 넓히기 위해 칼을 쓰는 것과 정의라는 높은 가치를 위해 자신을 헌신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무사가 추구하는 그 바름의 가치보다 더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진리이며 우리는 그 절대적인 기준을 오직 나 자신에게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내 마음이 하늘에 닿아 있고 정의로운 무사의 마음으로 진리를 품는다면 세상의 모든 꼬인 매듭은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며 우리는 맑은 정신으로 하늘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본좌라 부르는 것은 그 속에 깊은 하늘의 섭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좌라는 자리는 단순히 인간이 만든 호칭이 아니라 선과 악이라는 양극단을 넘어선 절대적인 중심의 자리입니다. 여러분은 대개 선이나 악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 세상을 바라보지만 본좌는 그 교차하는 지점 즉 블랙홀과 같은 신성한 통로에 서 있습니다. 신은 선이나 악의 길로 드나들지 않고 오직 이 블랙홀을 통해 오고 가시며 우리 인간이 자신의 소원을 신에게 닿게 하고 신의 마음을 읽으려면 반드시 스스로를 단련하여 이 중심의 점에 자기를 맞추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극은 삶의 기준이 사라졌다는 데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종교 지도자가 아무리 많아도 국민이 진심으로 따를 수 있는 구심점이 없기에 사람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과거 한 시대의 큰 지도자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국민들이 느꼈던 그 공허함은 바로 마음을 기댈 구심점이 사라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류의 진정한 기준이자 구심점이 될 존재가 이 땅에 와 있으며 그가 바로 모든 질서의 중심에 서 있는 공심점입니다. 여러분은 이 구심점의 출현을 결코 예사로운 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인터넷 용어에서 시작된 본좌라는 이름은 본래 하나님의 자리이자 부처님의 Avatar가 머무는 지고한 경지를 의미합니다. 그 아래 단계인 인자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본좌는 하나님 본체가 이 땅에 직접 나투신 형상입니다. 이 구심점이 있어야만 흩어진 마음들이 줄을 서서 기준을 잡을 수 있고 비로소 사회와 인류는 나아갈 방향을 찾게 됩니다. 블랙홀과 같은 이 중심에 서서 선악을 초월한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보이지 않는 진리의 실체를 깨닫고 구원의 문턱을 넘을 수 있습니다.
본좌의 경지는 스스로를 비우고 오직 하늘의 뜻과 하나가 된 상태이며 이는 세상의 그 어떤 권력이나 지식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복잡한 이론과 분별심을 내려놓고 인류의 구심점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내 마음을 이 우주의 블랙홀에 일치시키고 본좌의 존재를 가슴에 품을 때 비로소 개인의 고통은 사라지고 전체 인류를 구하는 영적인 진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맑은 거울이 사물을 비추듯 여러분의 영혼이 이 지고한 진리의 빛을 온전히 받아들여야 할 때입니다.
만물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본체가 멀리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고통받는 인류를 직접 구원하기 위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직접 내려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단순히 신의 소식을 전하는 사자나 아들의 단계를 넘어, 우주의 창조주가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나타나 직접 발을 딛고 서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일촌인 아들의 단계를 넘어 허경영은 하나님의 화신이자 본체 그 자체가 이 땅에 직접 발을 내디디며 모습을 드러낸 분입니다. 일촌이나 영천의 관계를 초월하여 우주의 주인공이 직접 움직이기에 손길 하나에 병이 낫고 말씀 한마디에 천상의 에너지가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사진도 힘을 발휘하지 못하나 오직 본좌의 사진만큼은 전 세계 80억 인류 중 그 누가 보아도 몸이 강건해지고 빛의 에너지가 차오르는 특별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과거 인자들이 세상에 왔을 때는 인간의 마음이 순수하여 법 없이도 살 수 있었고 그들의 가르침만으로도 사람들은 순종하며 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을 통해 온 우주의 정보가 낱낱이 공개되고 만물을 꿰뚫어 보는 지식이 넘쳐나는 실로 영악하고 무서운 시대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을 변화시키고 이끌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은 성인이나 아들의 수준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이제는 어떠한 지략이나 속임수에도 흔들리지 않고 우주의 근본 에너지를 직접 다스리는 절대적인 본체가 아니고서는 이 시대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정보가 범람하는 이 마지막 시대에 인류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자는 오직 하늘의 주인뿐입니다. 보통의 지혜나 어설픈 영성으로는 현대인들의 닫힌 마음을 돌릴 수 없으며 오직 실질적인 에너지의 증거와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본좌의 권능만이 유일한 해답이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이상 말뿐인 가르침에 속지 않기에 본좌는 몸소 기적을 보이고 쇠해진 몸을 일으키며 살아있는 신의 본체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엄중한 시기에 우주의 본질이 직접 우리 곁에 와 계신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헛된 지식의 유희를 넘어 본좌와 하나 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본좌가 이 땅에 머무는 것은 인류가 더 이상 갈 길을 잃지 않도록 세우는 최후의 구심점이자 절대적인 지표입니다. 무수한 정보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영혼들에게 본좌의 존재는 어둠 속의 등불과 같으며 그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모든 혼란은 정돈될 것입니다. 이제 복잡한 인연의 사슬을 끊고 본체와 직접 연결되는 무천의 경지로 나아가십시오. 본좌의 눈빛과 사진과 에너지가 여러분의 삶에 스며들 때 비로소 이 험난한 시대의 풍파를 넘어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안착하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는 수없는 전쟁과 살육으로 얼룩져 왔으며 대전환의 시기마다 평화를 부르짖었으나 격동의 진통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 모든 혼란과 비극을 영원히 종식시키기 위해 본좌가 이 땅에 왔으며 내가 머무는 곳은 더 이상 고통의 자리가 아닌 진정한 낙원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본좌가 걷는 길은 일반적인 인간의 삶과는 차원이 다른 하늘의 정해진 노정을 따르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와 여인의 몸을 빌려 이 땅에 발을 내디딘 강탄의 순간부터 본좌의 사명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본좌는 머지않아 전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는 통일을 이룩할 것이며 그 이후에는 엄격하고 공정한 심판의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이 심판은 세상의 기득권 세력과 지도자들을 향한 준엄한 꾸짖음이며 그들에게 시대의 아픔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입니다. 역대 장관과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위정자들을 소환하여 잘못된 교육과 통치로 국민을 도탄에 빠뜨린 죄를 묻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무소유의 상태로 되돌리는 진정한 정신 교육을 단행할 것입니다.
이러한 체계적인 심판은 온 국민의 열광적인 지지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며 그 과정 자체가 곧 세상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제도의 시간이 됩니다. 진정한 도를 가르쳐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고 나면 이 땅은 비로소 눈물과 배고픔이 없는 완전한 낙원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본좌는 모든 사명을 완수하고 낙원이 완성된 후에는 다시 본래의 자리인 하늘로 올라가 영원한 평화를 갈구하던 인류의 숙원을 모두 마무리지을 것입니다.
과거 예수 또한 마리아의 몸을 빌려 이 땅에 강탄하여 인류를 구원하려 했으나 그의 노정은 고난과 희생의 길을 걷는 것으로 머물러야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본좌가 걷는 길은 통일과 심판 그리고 제도와 낙원 건설이라는 명확한 순서를 통해 지상 천국을 실제로 구현하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단순히 믿는 단계를 넘어 본좌가 이끄는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 몸을 싣고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찬란한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본좌가 행하는 심판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한 낙원을 세우기 위한 거룩한 정화의 과정입니다. 지도자들이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이 진리의 법 아래 하나로 뭉칠 때 비로소 이 땅의 모든 모순은 해결될 것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본좌의 노정을 지켜보며 곧 다가올 세계 통일과 낙원 건설의 주역이 되십시오. 하늘의 계획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본좌를 통해 이 땅에 실현될 것이며 그 끝에는 영원한 영광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거의 성자들 또한 고통의 수렁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고자 각자의 길을 걸었으며 그중 본존이라 일컬어지는 석가모니의 노정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남깁니다. 그는 여인의 몸을 빌려 이 땅에 강탄한 후 진리를 찾기 위해 설산으로 들어가 육 년이라는 세월 동안 처절한 고행과 항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육체를 학대하며 진리를 갈구하던 그는 어느 날 부모님이 주신 고귀한 몸을 파괴하는 것은 결코 도가 아님을 깨닫고 산을 내려와 여인이 공양한 우유죽 한 그릇에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비로소 도달한 득도의 경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명상 끝에 깨달은 첫 번째 진리는 바로 생로병사의 근원이었습니다. 사람이 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가에 대해 육 년을 고민했으나 그 답은 결국 태어남이 있기에 늙음과 죽음이 있다는 지극히 단순하고도 명확한 원인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 세상에 와서 저절로 노병사를 겪어야 하는 이 굴레의 책임이 결국 지상에 몸을 받아 태어난 것 자체에 있음을 통찰한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그는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진리를 전하는 전법의 길을 걸으며 영적인 등불이 되었습니다.
무한한 수명과 영적 존재의 실체, 우리는 흔히 인간의 수명이 유한하다고 믿지만 본질적인 영의 세계에서 여러분의 수명은 애당초 무한합니다. 창조론과 윤회의 이치를 넘어 인간은 우주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존재해 왔으며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태어남을 반복해 온 영원한 존재들입니다. 전 세계를 돌며 가보지 않은 곳 없이 반복해서 태어나는 이 기나긴 여정은 우리의 본질이 결코 한 번의 생으로 끝나는 하찮은 것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지상의 육신에 갇힌 무한한 생명력, 인간의 몸이 이 지상에 올 때는 본래 무한한 생명을 품고 있으나 태어남이라는 원인에 묶여 노병사의 과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깨달은 범인의 이치는 우리가 왜 이 고통의 수레바퀴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주지만 이제 본좌가 이끄는 시대는 그 굴레를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의 낙원을 지향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우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존엄한 존재들이며 자신의 본질이 무한한 시간 속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의 뜻을 품은 새로운 구원의 노정, 과거의 본존들이 생로병사의 원인을 깨닫고 전법과 열반의 길을 보여주었다면 본좌는 강탄과 통일을 거쳐 실제적인 심판과 낙원 건설을 통해 인류의 모든 고통을 뿌리부터 종식시키려 합니다. 태어남이 고통의 시작이라는 깨달음을 넘어 이제는 태어남 그 자체가 축복이 되고 지상이 그대로 하늘의 나라가 되는 위대한 전이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무한한 생명을 자각하고 본좌가 열어가는 낙원의 길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 무한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수없이 많은 생을 반복하며 다시금 이 자리에서 만났으나 여러분은 여전히 삶과 죽음의 굴레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은 것은 만물의 순환이었습니다. 겨울이 되어 떨어지는 나뭇잎이 봄이 되면 다시금 싹을 틔우듯 인간의 생 또한 그와 같이 끊임없이 돌고 도는 것임을 통찰한 것입니다. 잎사귀가 돋아났기에 벌레에게 뜯기는 고통이 생기듯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이 뒤따르는 것이니 결국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지상에 몸을 받아 태어난 것 그 자체에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죽는 연습을 하고 아침에 눈을 뜨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아침에 눈을 떴기에 빚쟁이가 찾아오고 고단한 현실이 시작되는 것처럼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모든 인연과 과보의 시작점이 됩니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생의 원인을 깨닫고 팔정도와 육바라밀 같은 법을 전하며 중생을 제도하려 했습니다. 불교에서의 전법은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면 예수의 전도는 마치 전염병이 옮아가듯 선한 행실이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스며들게 하는 과정입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전도는 말로만 진리를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이에게 직접 빵을 건네며 몸소 사랑을 보여주는 행위와 같다. 선한 사람의 품행과 향기가 곁에 있는 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옮아가는 것처럼 자식들이 부모를 닮아가는 이치와도 같습니다. 이처럼 과거의 성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법을 전하고 사랑을 옮기며 인류를 깨우치려 노력해 왔습니다. 불교가 말로 전하는 깊은 이치였다면 기독교는 실천을 통해 마음을 전하는 길이었으나 그 모든 것의 뿌리는 결국 하나로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식이나 말로 나를 바꾸고 세상을 구하는 시대를 넘어섰습니다. 복잡한 이론이나 오랜 수행보다는 우주의 본체가 직접 보여주는 에너지의 증거와 본좌의 이름을 부르는 간단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태어남이 고통의 원인이 되는 낡은 순환을 끊어내고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축복이자 낙원이 되는 기적을 체험해야 합니다. 맑은 정신으로 본좌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내 안의 신성을 일깨울 때 여러분을 괴롭히던 생로병사의 사슬은 비로소 풀리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오랜 방황을 끝내기 위해 본좌가 이 땅에 구심점으로 와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과거의 성인들이 보여준 가르침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 이제는 실제적인 세계 통일과 낙원 건설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흩어지는 나뭇잎처럼 허무한 생에 머물지 말고 영원한 생명의 빛인 본좌와 연결되어 진정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내 안의 진리의 저울을 오직 나 자신에게만 비추어 보며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본좌가 이끄는 새 시대의 주역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류의 영적 진화를 이끄는 성자들의 길은 저마다의 노정이 있으나, 본좌가 걷는 길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지상 낙원을 실제로 구현하는 유일무이한 여정입니다. 석가모니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설산에서의 고행이라는 항마의 시간을 거쳐 스스로 득도하였고, 진리의 법을 전하다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와 마귀와의 싸움인 항마를 거친 후, 돌을 얻는 과정 없이 곧바로 하늘의 법을 전하는 전법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이라는 과정을 통해 인류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리고 떠났으나, 그들 중 누구도 이 땅에 직접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설계도를 가지고 오지는 못했습니다.
본좌가 걷는 십 단계의 노정은 세계 통일과 심판, 그리고 실제적인 낙원 건설이라는 거대한 사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좌는 어린 시절부터 입만 열면 그것이 곧 하늘의 소리이자 진리였기에 인간적인 득도의 과정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본좌가 행하는 심판은 기득권 세력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세상을 정화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인류를 가르치고 제도시켜 마침내 이 땅을 눈물과 고통이 없는 낙원으로 탈바꿈시킬 것입니다.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로 돌아가기 전까지 본좌는 인류의 유일한 구심점이 되어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지금 인류의 비극은 진정한 구심점이 없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오 년마다 바뀌는 권력은 국민에게 진정한 안정을 주지 못하며, 임기 초반부터 갈등과 혼란에 휩싸여 대통령조차 불면증과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본이나 영국과 같이 상징적인 왕이 중심을 잡아주는 나라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줄 절대적인 기준이 부재합니다. 세계 무대 또한 유엔 사무총장이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되어 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고, 배운 자들조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야만적인 보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격동의 시대에 본좌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단 하나의 공심점이자 절대적인 지표로 이 땅에 서 있습니다. 본좌의 이름은 곧 에너지이며, 본좌의 형상은 곧 치유의 증거입니다. 복잡한 지식과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과거의 시도는 모두 한계에 부딪혔으나, 이제는 본좌를 구심점 삼아 모든 인류가 하나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본좌가 제시하는 통일과 낙원의 설계도는 머나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본좌와 연결되는 모든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우주의 명령입니다.
혼돈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인류여, 이제는 방황을 멈추고 본좌라는 거대한 함선에 올라타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자나 지식인도 줄 수 없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 오직 본좌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에 놓여 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본좌의 눈빛을 마주하고, 내 안의 진리의 저울을 바로 세워 보십시오. 본좌가 이끄는 심판과 제도의 시간을 지나 찬란한 지상 낙원의 문이 열릴 때, 여러분은 비로소 태어남의 고통을 넘어 영원한 생명의 환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본좌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우뚝 서는 순간, 인류의 무질서한 전쟁은 그 즉시 종식될 것입니다. 본좌가 행하는 심판은 가차 없고 준엄합니다. 이스라엘의 총리든 팔레스타인의 지도자든 본좌 앞에 소환되어 “조용히 하라”는 한마디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남을 죽이려 하지 말고 차라리 네가 죽으라는 서슬 퍼런 꾸짖음으로 질서를 잡는 시대, 그것이 바로 본좌가 이끄는 심판의 시간입니다. 그 준엄한 심판 뒤에 비로소 진정한 지혜와 도를 일깨워, 모든 인류를 고통 없는 낙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지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령 감기에 걸리는 것은 하늘이 주신 면역의 선물입니다. 몸에 열이 40도까지 오르는 것은 내 몸이 스스로 전쟁을 치르며 기운을 순환시키는 거룩한 과정인데, 현대인들은 주사 한 방으로 그 열을 강제로 내려버려 몸의 방어 체계를 무너뜨립니다. 약에 중독되어 스스로 병을 키우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입니다. 병(病)이라는 글자 이전에 정(症)이라는 상태가 있는데, 이는 병보다 가벼운 기운의 흐름일 뿐입니다. 우울증이나 패혈증 같은 것도 사실 제대로 된 면역과 기운의 원리만 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인데, 무지한 의학이 사람들을 무방비 상태로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최근 세상을 떠난 황수관 박사의 사례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고 억울한 일입니다. 그는 많은 이들에게 웃음과 효도의 소중함을 설파했던 따뜻한 이였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소금을 팔아서라도 공부를 시켜주겠다며 흙 묻은 손을 씻고 자식을 안아주던 아버지의 그 지극한 사랑이 그를 키웠습니다. 아버지가 안아주며 쓰다듬어 주던 그 손길이 그에게는 평생의 힘이 되었고, 부모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효자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하늘의 이치가 있습니다.
자식을 너무 귀하게만 금지옥엽으로 키우는 것은 때로 자식의 면역을 약하게 만드는 길입니다. 진정으로 강한 생명력을 불어넣으려면 때로는 매질도 하고, 독종으로 만들며, 엄한 꾸짖음으로 단련시켜야 합니다. 온실 속의 화초는 작은 비바람에도 꺾이지만, 거친 들판에서 단련된 생명은 그 어떤 시련도 이겨내는 법입니다. 아버지의 넘치는 사랑이 도리어 자식의 영적, 육적 면역을 약하게 했을 수도 있다는 이 비극적인 통찰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인류는 나약한 감상과 잘못된 의학적 지식을 버리고, 본좌라는 절대적인 구심점을 향해 영적인 면역력을 길러야 합니다. 본좌가 전하는 에너지와 진리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강철처럼 단련시켜 그 어떤 병마나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게 할 것입니다. 지식의 유희를 멈추고 본좌의 강렬한 눈빛과 마주하십시오. 그 속에 모든 질병을 치유하고 운명을 바꾸는 근원적인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본좌가 이끄는 낙원의 시대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하늘의 법도에 순응하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약속의 땅이 될 것입니다.
인류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자식을 향한 나약하고 무른 사랑에 있습니다. 진정한 부모라면 자식을 추운 겨울 벌판에 한 시간씩 세워두어 달달 떨게도 하고 감기에도 걸려보게 하며 스스로 고난을 이겨낼 독기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들은 그저 품 안에서 애지중지하며 나약하게만 키우고 있으니, 이것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영적으로 패혈증과 같은 무력증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패혈증은 사실 병도 아니며, 스스로 이겨낼 면역과 기운의 흐름이 막혔을 때 일어나는 현상일 뿐입니다.
암이라는 질병의 이치를 살펴보면 그 답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깃들어 있습니다. 암(癌)이라는 글자 속에 입 구(口) 자가 세 개나 들어있고 그 아래 산(山)이 있는 것처럼, 산더미같이 많이 먹고 마음속으로 끝없이 탐심을 부리는 자는 필연적으로 암의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화근은 입에서 나오며 먹는 것에서 시작되니,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는 자는 육신의 고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의 영적 단계에서 위인이라 칭송받는 경지까지는 여전히 선과 악이라는 잣대에 얽매여 있습니다. 외세가 침략할 때 의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 이들은 위대하다 불리지만, 그들 또한 선이라는 명분 아래 움직이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도인의 경지를 지나 지인과 성인, 그리고 본존과 인자를 넘어 본자의 자리에 이르면 선악의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초등학생들의 이야기일 뿐입니다. 본좌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곧 부모이자 부처이며 무한대의 생명을 가진 우주의 존엄한 생명체일 뿐입니다.
모든 인간은 사랑의 Avatar이며 내가 사랑을 보내면 사랑이 돌아오고 원망을 보내면 칼날이 되어 돌아오는 거울과 같은 존재들입니다. 하늘의 사명을 띤 본좌에게 여러분은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들이며, 여러분이 있기에 비로소 복을 짓고 사명을 완수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만약 손자가 약해 보인다면 할머니가 돈을 들고 나가 이름 모를 노인들에게 밥을 사고 고아원에 옷을 지어 보내며 끊임없이 덕을 쌓아야 합니다. 그것이 곧 자손의 건강으로 이어지는 우주의 비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제외한 타인이 있음으로써 복을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타인을 원수와 경쟁자로 여기며 자신의 삶을 재앙의 밭으로 일구고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잘해주면 그것이 곧 나에게 돌아올 복의 밭이 될 텐데, 왜 스스로 적을 만들어 고립의 길로 걸어가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 선악의 좁은 틀을 깨고 본좌와 함께 모든 생명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며, 타인의 존재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는 광대한 마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남에게 선과 악의 잣대를 들이대며 원수를 만드는 자는 결국 자신의 복밭을 스스로 불태우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러한 자의 후손은 우주의 이치에 따라 점차 사라지게 되니, 생존을 위해 법의 도리를 따져야 할 때는 있을지언정 마음속으로는 모든 사람을 선하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타인의 존재를 나의 복을 일구는 밭으로 여기지 않고 재앙의 씨앗으로 만드는 자는 결코 본좌가 이끄는 낙원의 문턱을 넘을 수 없습니다.
역사의 흐름 속에는 하늘의 섭리를 미리 보여준 위대한 영혼들이 있었으니, 조선의 천재 허균이 바로 그러합니다. 명문가에서 태어난 양반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분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을 지었습니다. 탐관오리를 벌하고 이상향을 꿈꾸는 그의 이야기는 당시 권력자들에게는 역모로 비춰져 금서가 되었으나, 서민들에게는 지상 낙원을 향한 희망의 등불이 되었습니다. 그의 여동생 허난설헌 또한 스물일곱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요절하였으나 그가 남긴 시들은 중국과 아시아 전역을 감동시키며 여류 시인으로서 독보적인 이름을 남겼습니다.
이처럼 허 씨 가문은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와 학문을 집대성하는 하늘의 도구로 쓰여 왔습니다. 동양화의 거장 허백련과 한의학을 집대성하여 민중의 생명을 구한 허준, 그리고 우리 말의 뿌리를 지킨 한글학자 허웅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발자취는 예사롭지 않습니다. 소설과 시, 의학과 예술, 그리고 언어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틀을 닦고 최초의 길을 열어온 이들의 흐름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것은 장차 이 땅을 넘어 세계를 최초로 하나로 통일할 자가 누구인지를 암시하는 하늘의 예시와도 같습니다.
여러분은 한의학을 통해 고통을 치유하고 한글을 통해 진리를 배우며 이미 그 혜택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거의 허 씨들이 인류의 지식과 문화를 집대성했다면, 이제 본좌는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세계를 통일하고 실제적인 낙원을 건설하러 왔습니다. 무수한 역사적 증거들이 가리키는 구심점이 바로 이곳에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맑은 정신으로 인류의 위대한 흐름을 통찰하고, 본좌와 함께 세계가 하나 되는 장엄한 역사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복잡한 논쟁이 아니라 하늘이 정한 순리대로 움직이는 본좌의 권능에서 나옵니다. 과거의 성인들이 심어놓은 씨앗이 이제 본좌를 통해 찬란한 열매를 맺을 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좁은 편견의 틀을 깨고, 우주적인 사명을 띤 허 씨의 기운이 이끄는 대로 낙원의 길에 동참해야 합니다. 본좌가 펼치는 통일의 대업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끝은 온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풍요를 누리는 지상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인간의 의식은 열 가지 계급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가장 낮은 자리에 물질의 탐욕에 갇힌 속인이 있습니다. 인류의 구심점인 본좌는 이 십 단계의 위계를 꿰뚫어 보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참된 진리의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격물에 매달리는 속인은 오직 눈에 보이는 재물만을 쫓고, 지식을 쌓는 범인은 알음알이에 머물며, 뜻을 세운 위인은 안중근 의사처럼 영웅의 길을 걷습니다. 그 위로 마음을 닦는 도인의 경지가 있으나, 본좌가 머무는 이 지고한 열 번째 자리는 선과 악을 초월하여 우주의 본체와 하나가 된 절대적인 평화의 자리입니다.
강릉의 깊은 눈 속에 파묻혀 국가 혁명을 꿈꾸었던 허균은 홍길동전이라는 소설을 통해 지상 낙원의 설계도를 그렸습니다. 그는 양반과 상놈의 벽을 허물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그가 꿈속에서나 그렸던 그 낙원을 실제 현실로 만들어 내기 위해 본좌가 이 땅에 왔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본좌는 원고 한 장 없이 오직 머릿속에 든 우주의 지혜로 인류의 정치를 바꾸고, 병든 세상을 치유하며, 억눌린 자들을 구원하는 살아있는 진리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공자가 말한 대학의 팔조목 또한 인간의 의식 단계와 일맥상통합니다. 물질에만 집착하는 속인은 격물에 머물러 있고, 지식만을 탐하는 범인은 치지에 갇혀 있으며, 위대한 뜻을 세운 위인은 성의를 다합니다. 마음을 바르게 다스리는 정심의 도인을 지나면 수신과 제가를 거쳐 치국평천하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인류의 구십오 퍼센트는 오직 물질의 탐욕에 빠져 속인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하늘의 노여움을 사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하늘은 물질의 탐욕에만 눈먼 자의 재산을 결코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경쟁자를 누르고 부를 쌓았을지라도, 그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를 거두어 가버립니다. 세계적인 부호들이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살아남는 이유는 그것이 하늘의 심판을 피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을 끝까지 버리지 못하는 자의 종점은 결국 영혼의 타락과 죽음뿐이며, 그 끝에는 어둠의 그늘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본좌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이처럼 물질에 눈먼 속인들을 깨우쳐 진정한 영적 진화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내 강의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을 각성시키고 우주의 공심점과 연결하는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이제 재물의 노예가 되어 영혼을 더럽히는 삶을 청산하고, 본좌가 열어주는 십 단계의 위계를 따라 가장 높은 곳에 계신 본좌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맑은 정신으로 탐욕을 씻어내고 본좌의 에너지를 받아들일 때, 여러분은 비로소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한 낙원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대학의 팔조목에 담긴 하늘의 위계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대로 비추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격물을 통해 돈을 벌고 가정을 돌보는 것은 인류의 대다수인 구십오 퍼센트가 머무는 속인의 단계이나, 그 위로 올라갈수록 마음을 닦는 도인의 경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관이라는 중책은 본래 수신의 과정을 거친 성인들이 맡아 국가 예산을 백성을 위해 귀하게 써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성인의 경계에 미치지 못하는 자들이 호박씨를 까며 나라의 살림을 도둑질하고 있으니 통탄할 일입니다. 양심적이고 도를 아는 지도자가 예산을 집행해야 하거늘, 범인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나라를 초초화시키고 있습니다.
왕의 자리인 치국 또한 노론과 소론, 남인과 북인이라는 당파를 초월하여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진인이 맡아야 합니다. 중국 요순 시절의 요 임금과 순 임금이 진인의 경지에서 다스렸기에 백성들이 한 점 불만 없이 평화로운 세상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의 위정자들은 목에 힘을 주고 권세를 부리며 뒤에서는 잇속을 챙기는 범인들에 불과하니, 인수위니 무엇이니 하며 떠드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본좌 허경영이 나타나 세계를 통일하기 전까지는 이러한 자들이 판을 치며 백성들을 고생의 길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우주를 아우르는 평천하의 위대한 과업은 오직 본좌만이 이룩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입니다. 수신을 통해 입신출세한 자들과 제가를 통해 나라 살림을 맡은 자들을 넘어, 온 천하를 평화롭게 통일하는 황제의 자리가 바로 본좌의 운명입니다. 사서삼경과 팔만대장경, 성경을 비롯한 우주의 모든 지혜를 머릿속에 내장하고 원고 한 장 없이 진리를 설파하는 본좌의 존재는 인류의 유일한 구심점입니다. 네티즌들이 본좌라는 호칭을 지어준 것은 하늘의 뜻이나, 여러분은 오직 허경영이라는 이름을 불러야만 진정한 에너지의 변화를 체험하고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와 무한대 이전부터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가 시작된 이래로 숫자로 셀 수 없는 긴 시간 동안 존재해 왔습니다. 지구의 짧은 역사에 갇히지 않는 무한한 생명체인 여러분에게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육신의 숨이 넘어가는 찰나의 순간에도 영혼은 쉬지 않고 다른 여인의 자궁으로 들어가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깨어납니다. 죽음은 곧 새로운 시작이며, 여러분은 무한한 세계를 여행하다가 이제 인류의 본체인 허경영을 만나는 영광의 자리에 당도한 것입니다.
이제 좁은 시야를 버리고 본좌가 열어주는 거대한 우주의 드라마를 직시하십시오. 벼슬과 재물에 눈먼 자들의 끝은 허망할 뿐이지만, 본좌를 구심점 삼아 맑은 정신으로 줄을 서는 자들은 영원한 낙원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본좌가 펼치는 평천하의 대업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세계 통일의 황제로서 인류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고 진정한 평화를 안겨줄 것입니다. 본좌의 이름을 부르며 무한한 생명의 환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우주의 거대한 시간 속에서 여러분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이전부터 창조주의 섭리와 연결되어 끊임없이 생을 이어왔습니다. 지구라는 찰나의 행성에 머무는 시간은 그 긴 여정 중의 한 조각일 뿐이며,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소멸이 아닙니다. 육신의 숨이 멎는 영적 1초 만에 여러분은 다시 여인의 자궁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눈을 뜨게 되니, 이것은 우주를 여행하는 끝없는 구경의 과정입니다. 이 위대한 순환의 고리 속에서 오늘 본좌 허경영을 만났다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비로소 우주의 본체와 마주한 놀라운 축복이자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은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며, 짐승과 사람의 경계에 놓인 인간의 상태를 벗어나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더욱 숭고한 도정입니다. 인간은 낮에는 사람의 탈을 쓰고 밤에는 짐승의 본성을 드러내기도 하는 인촉간의 존재이나, 네 가지 이치를 깨닫고 밝은 눈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복입니다. 그중에서도 남자로 태어나 진리를 만나고, 그 법을 구하는 성직자의 길을 지나 마침내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인류가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영적 목표입니다.
지금 전 세계의 수많은 부호들이 막대한 부를 거머쥐고도 암과 같은 병마와 허무함 속에 죽음을 맞이하며 히말라야와 명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와 같은 천재들도 결국 마지막 순간에는 석가모니와 같은 진리의 길을 갈구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입니다. 진리의 가치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며, 본좌는 이러한 인류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허경영 진리 체험센터를 세워 누구나 쉽게 본좌의 이름을 부르고 에너지를 체험하며 만병을 치유하는 명상의 장을 열 것입니다. 본좌의 사진에 깃든 특별한 기운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정화하고 육신을 깨우는 우주의 선물입니다.
육십억 인류 중 이 좁은 한반도에 태어나 본좌 허경영을 직접 만나고 가르침을 듣는다는 것은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을 직접 알현하는 것과 다름없는 희귀한 확률이자 영광입니다. 아프리카의 고통스러운 환경에서 태어나 생존을 위해 허덕이는 영혼들과 달리, 여러분은 가장 높은 수준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복된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평생을 순환하며 수행해도 깨닫기 어려운 우주의 비결을 본좌는 단 한 번의 만남과 눈빛으로 여러분의 영혼에 새겨주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과거의 성자들이 보여준 단편적인 가르침을 넘어, 본좌라는 지고한 구심점을 통해 영적인 도약의 시대를 맞이해야 합니다. 본좌가 전하는 진리는 책 속의 죽은 글자가 아니라 여러분의 삶을 실시간으로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권능입니다. 복잡한 절차와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본좌를 부르며 명상에 잠기십시오. 본좌가 이끄는 낙원의 시대는 이미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시작되었으며, 맑은 정신으로 본좌와 일치될 때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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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구심점과 영적 완성의 길
타인을 향해 겨누었던 비판의 칼날을 거두고, 이제는 자기 내면을 비추는 등불을 밝혀야 합니다.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 이치인 양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음의 이치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분법적인 논리로 세상을 성급히 판단하면 본질을 놓치기 쉽습니다. 특히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함부로 구분 짓는 행위는 매우 위험합니다. 타인을 향해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면 그 영향은 상대가 아닌 바로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남을 비난하는 마음은 결국 본인의 건강을 해치고 정신을 흐리게 만듭니다.
하늘의 섭리는 스스로 선하다 자만하며 형제를 비난하는 자를 멀리하고, 스스로의 부족함을 깨닫고 고개를 숙이는 자를 구원의 길로 인도합니다. 진정한 어른이자 지도자라면 공동체의 구성원이 방황할 때 그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음을 통찰하는 깊은 책임감을 지녀야 합니다. 법과 처벌로만 해결하려는 세상은 삭막할 뿐입니다. 진정으로 훌륭한 존재는 타인의 허물을 들추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먼저 살피며, 스스로에게는 서릿발처럼 엄격하고 타인에게는 끝없는 자애로움을 베푸는 법입니다.
이러한 성찰의 길은 과거 성자들의 삶에서도 드러납니다. 석가모니라 불리는 본존의 노정은 우리에게 깊은 영적 교훈을 남깁니다. 그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여인의 몸을 빌려 이 땅에 왔으며, 진리를 찾기 위해 설산에서 육 년이라는 세월 동안 처절한 고행과 항마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육체를 학대하며 진리를 갈구하던 그는 어느 날 부모가 주신 고귀한 몸을 파괴하는 것이 결코 도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결국 그는 산을 내려와 여인이 공양한 우유죽 한 그릇을 통해 기운을 차리고, 보리수 아래에서 비로소 득도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복잡한 고행이나 지식의 습득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세상의 흐름이 너무나 급박하기에 지식으로 스스로를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오직 허경영을 부르고 그 존재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막힌 것이 뚫리고 치유되는 명료한 구원의 길로 돌아가야 합니다. 때때로 찾아오는 시련은 영적인 연단을 위해 하늘이 예비한 과정일 뿐입니다. 인체의 신비와 생명의 이치 또한 복잡한 이론보다는 근원적인 존재와의 연결을 통해 비로소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진리와 정의의 본질은 대중의 눈에 쉽게 보이지 않으며, 그 가치가 무시되기도 합니다. 정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사람들이 당장의 이익이나 편한 길을 쫓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리는 형체가 없어 속기 쉽고 정의는 고독할지라도, 결국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하늘의 이치입니다. 과거의 성자들이 고독한 길을 걸었듯, 인간의 의식 위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존재는 세상의 흔들림 속에서도 묵묵히 정의를 지켜나갑니다.
본좌라는 자리는 단순히 인간이 만든 호칭이 아니라, 선과 악이라는 양극단을 넘어선 절대적인 중심의 자리입니다. 인류가 마음을 기댈 구심점이 사라져 방황하는 이 시대에, 우주의 본체가 인간의 몸을 입고 직접 내려온 것은 인류를 향한 최후의 구원책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단계를 넘어 본체가 직접 나투었기에, 그 사진과 이름만으로도 전 세계 인류에게 천상의 에너지가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인류는 모든 혼란을 종식시키고 세계 통일과 낙원 건설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몸을 실어야 합니다. 본좌는 머지않아 전 세계를 하나로 아우르고, 시대의 아픔을 외면했던 위정자들을 준엄하게 심판하여 진정한 정화의 과정을 단행할 것입니다. 이는 눈물과 배고픔이 없는 지상 천국을 실제로 구현하는 살아있는 역사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이 거룩한 노정을 지켜보며 하늘이 부여한 사명을 다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닿게 될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통찰과 무한한 영적 존재의 실체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깊은 명상 끝에 도달한 첫 번째 진리는 바로 생로병사의 근원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왜 늙고 병들고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육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고뇌하였습니다. 그가 마침내 도달한 답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명확했습니다. 태어남이 있기에 늙음과 죽음이 뒤따른다는 인과의 법칙이었습니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세상에 와서 늙고 병들며 죽어가는 이 굴레의 책임은, 결국 지상에 몸을 받아 태어난 것 그 자체에 있음을 통찰한 것입니다. 그는 이러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고통받는 중생들에게 진리를 전하며 인류의 영적인 등불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인간의 수명이 유한하다고 믿으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영의 세계에서 우리의 수명은 본래 무한합니다. 인간은 우주가 시작될 때부터 이미 존재해 왔으며,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태어남을 반복해 온 영원한 존재들입니다. 전 세계를 돌며 수없이 반복되는 이 기나긴 여정은 우리의 본질이 결코 단 한 번의 생으로 끝나는 하찮은 것이 아님을 증명합니다. 인간의 육신은 지상에 머무는 동안 무한한 생명력을 품고 있으나, 태어남이라는 원인에 묶여 어쩔 수 없이 늙고 병드는 과정을 겪게 됩니다.
과거 석가모니가 깨달은 이치는 우리가 왜 고통의 수레바퀴에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이제 본좌가 이끄는 새로운 시대는 그 고통의 굴레를 넘어서는 차원 높은 낙원을 지향합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우주의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존엄한 존재이며, 자신의 본질이 무한한 시간 속에 있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과거의 성자들이 생로병사의 원인을 깨닫고 전법과 열반의 길을 보여주었다면, 본좌는 이 땅에 직접 내려와 통일을 이루고 실제적인 심판과 낙원 건설을 통해 인류의 고통을 뿌리부터 종식하려 합니다.
이제는 태어남이 고통의 시작이 되는 낡은 순환을 끝내야 합니다. 태어남 그 자체가 축복이 되고 지상이 그대로 하늘의 나라가 되는 위대한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맑은 정신으로 자신의 무한한 생명을 자각하고, 본좌가 열어가는 낙원의 길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우주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생을 반복하며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났으나, 많은 이들이 여전히 삶과 죽음의 굴레 속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통찰한 것은 만물의 순환이었습니다. 겨울에 떨어진 나뭇잎이 봄에 다시 싹을 틔우듯, 인간의 생 또한 끊임없이 돌고 도는 법입니다. 잎사귀가 돋아났기에 벌레에게 뜯기는 고통이 생기듯,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늙고 병드는 괴로움이 뒤따릅니다. 결국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지상에 몸을 받아 태어난 사실 그 자체에 있습니다.
전도의 참뜻과 지식을 초월한 에너지의 시대
우리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죽음을 연습하고, 아침에 눈을 뜨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기에 고단한 현실과 마주하듯,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인연과 과보의 시작점이 됩니다. 석가모니는 이러한 생의 원인을 깨닫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진리의 법을 전했습니다. 불교에서의 전법이 진리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것이라면, 예수의 전도는 마치 선한 행실이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스며들게 하는 과정과 같습니다. 이는 말로만 진리를 설파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이에게 직접 빵을 건네며 몸소 사랑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선한 사람의 품행과 향기가 주변에 자연스럽게 옮아가는 것처럼, 과거의 성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인류를 깨우치려 노력해 왔습니다. 불교가 말로 전하는 깊은 이치였다면 기독교는 실천을 통해 마음을 전하는 길이었으나, 그 모든 것의 뿌리는 결국 하나로 맞닿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지식이나 말로 나를 바꾸고 세상을 구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복잡한 이론이나 오랜 수행보다는 우주의 본체가 직접 보여주는 에너지의 증거와 본좌의 이름을 부르는 간단명료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태어남이 고통의 원인이 되는 낡은 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합니다.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축복이자 낙원이 되는 기적을 직접 체험하십시오. 맑은 정신으로 본좌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내 안의 신성을 일깨울 때, 여러분을 괴롭히던 생로병사의 사슬은 비로소 풀리게 될 것입니다. 인류의 오랜 방황을 끝내기 위해 본좌가 이 땅에 구심점으로 와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과거의 성인들이 보여준 가르침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아, 이제는 실제적인 세계 통일과 낙원 건설을 향해 나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흩어지는 나뭇잎처럼 허무한 생에 머물지 말고, 영원한 생명의 빛인 본좌와 연결되어 진정한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내 안의 진리의 저울을 오직 나 자신에게만 비추어 보며, 맑고 깨끗한 영혼으로 본좌가 이끄는 새 시대의 주역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류의 영적 진화를 이끄는 성자들의 길은 저마다의 노정이 있으나, 본좌가 걷는 길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지상 낙원을 실제로 구현하는 유일무이한 여정입니다.
성자들의 노정과 본좌의 사명
우리는 매일 밤 잠자리에 들며 죽음을 연습하고, 아침에 눈을 뜨며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기에 고단한 현실과 마주하듯,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모든 인연과 과보의 시작점이 됩니다. 과거의 성자들은 이러한 생의 원인을 깨닫고 중생을 이끌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진리를 전했습니다. 불교의 전법이 진리의 이치를 말로써 설파하는 것이라면, 기독교의 전도는 선한 행실과 사랑이 사람의 몸과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배고픈 이에게 빵을 건네는 실천을 통해 살아있는 진리를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선한 사람의 향기가 주변에 자연스럽게 옮아가듯 과거의 성자들은 인류를 깨우치려 노력해 왔으나, 이제는 지식이나 말로 세상을 구하는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복잡한 이론이나 고통스러운 수행보다는 우주의 본체가 직접 보여주는 에너지의 증거와 본좌의 이름을 부르는 명료한 믿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태어남이 고통의 시작이 되었던 낡은 순환을 이제는 끊어내야 합니다.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이 그대로 축복이자 낙원이 되는 기적을 직접 체험하십시오. 맑은 정신으로 본좌의 에너지를 받아들여 내 안의 신성을 일깨울 때, 인류를 괴롭히던 생로병사의 사슬은 비로소 풀리게 될 것입니다.
우주의 거대한 시간 속에서 여러분은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무한한 전생부터 창조주의 섭리와 연결되어 생을 이어왔습니다. 지구라는 행성에 머무는 시간은 그 긴 여정 중의 한 조각일 뿐이며,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소멸이 아닙니다. 육신의 숨이 멎는 영적 일 초 만에 여러분은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눈을 뜨게 되니, 이것은 우주를 여행하는 끝없는 여정의 과정입니다. 이 위대한 순환의 고리 속에서 오늘 본좌를 만났다는 것은 여러분의 영혼이 우주의 본체와 마주한 놀라운 축복이자 일생일대의 기회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며, 그중에서도 온전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은 더욱 숭고한 도정입니다. 인간은 때로 짐승과 사람의 경계에 놓인 위태로운 존재이기도 하지만, 네 가지 이치를 깨닫고 밝은 눈을 가진 진정한 사람이 되는 것은 형언할 수 없는 복입니다. 남자로 태어나 진리를 만나고, 그 법을 구하는 성직자의 길을 지나 마침내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인류가 도달해야 할 최종적인 영적 목표입니다. 이제는 본좌 허경영을 부르며 무한한 생명의 환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전 세계 부호들과 허경영의 관계, 그리고 백궁으로의 인도
성자들의 노정은 저마다의 차이가 있으나, 본좌가 걷는 길은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지상 낙원을 실제로 구현하는 유일무이한 여정입니다. 과거 석가모니는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설산에서의 고행이라는 항마의 시간을 거쳐 스스로 득도하였고, 진리의 법을 전하다가 열반에 들었습니다. 예수는 하늘에서 내려와 마귀와의 싸움을 거친 후, 곧바로 하늘의 법을 전하는 전법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들은 죽음과 부활, 혹은 열반을 통해 인류에게 희망의 씨앗을 뿌렸으나, 그들 중 누구도 이 땅에 직접 낙원을 건설하겠다는 구체적인 설계도를 가지고 오지는 못했습니다.
본좌가 걷는 십 단계의 노정은 세계 통일과 심판, 그리고 실제적인 낙원 건설이라는 거대한 사명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좌는 어린 시절부터 입만 열면 그것이 곧 하늘의 소리이자 진리였기에 인간적인 득도의 과정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본좌가 행하는 심판은 기득권 세력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세상을 정화하는 과정이며, 이를 통해 인류를 가르치고 제도시켜 마침내 이 땅을 눈물과 고통이 없는 낙원으로 탈바꿈시킬 것입니다. 사명을 완수하고 하늘로 돌아가기 전까지 본좌는 인류의 유일한 구심점이 되어 흐트러진 질서를 바로잡을 것입니다.
지금 인류가 겪는 비극은 진정한 구심점이 없다는 데서 기인합니다. 오 년마다 교체되는 권력은 국민에게 진정한 안정을 주지 못하며, 임기 초반부터 갈등과 혼란에 휩싸여 지도자조차 불안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영국이나 일본처럼 상징적인 존재가 중심을 잡아주는 나라들과 달리, 우리에게는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줄 절대적인 기준이 부재합니다. 세계 무대 또한 전쟁과 살육이 끊이지 않고, 지성인들조차 야만적인 보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격동의 시대에 본좌는 인류가 나아가야 할 단 하나의 공심점이자 절대적인 지표로 이 땅에 서 있습니다.
본좌의 이름은 곧 에너지이며, 본좌의 형상은 곧 치유의 증거입니다. 복잡한 지식과 이념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과거의 시도는 모두 한계에 부딪혔으나, 이제는 본좌를 구심점 삼아 모든 인류가 하나로 뭉쳐야 할 때입니다. 본좌가 제시하는 통일과 낙원의 설계도는 머나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본좌와 연결되는 모든 이들에게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우주의 명령입니다. 혼돈의 바다에서 표류하는 인류는 이제 방황을 멈추고 본좌라는 거대한 함선에 올라타야 합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자나 지식인도 줄 수 없는 영원한 평화와 안식이 오직 본좌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에 놓여 있습니다.
가혹한 심판과 인체의 신비, 그리고 면역의 이치
지구라는 행성에 본좌라는 강력한 구심점이 우뚝 서는 순간, 인류의 무질서한 전쟁은 그 즉시 종식될 것입니다. 본좌가 행하는 심판은 가차 없고 준엄하며, 세상의 모든 지도자는 본좌 앞에 소환되어 그 권능 앞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남을 해치려 하기보다 스스로의 과오를 먼저 돌아보라는 서슬 퍼런 꾸짖음으로 질서를 잡는 시대, 그것이 바로 본좌가 이끄는 심판의 시간입니다. 그 준엄한 정화 뒤에 비로소 진정한 지혜를 일깨워, 모든 인류를 고통 없는 낙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어리석은 지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가령 몸에 열이 오르는 것은 내 몸이 스스로 전쟁을 치르며 기운을 순환시키는 거룩한 면역의 과정입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약물에 의존해 그 흐름을 강제로 막아버림으로써 몸의 방어 체계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패혈증 같은 증상들 또한 제대로 된 기운의 원리만 안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것인데, 무지한 의학이 사람들을 무방비한 상태로 내몰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하늘의 이치는 교육과 훈육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자식을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귀하게만 키우는 것은 때로 자식의 영적, 육적 면역을 약하게 만드는 길이 됩니다. 진정으로 강한 생명력을 심어주려면 때로는 거친 들판에서 단련시키며 엄한 꾸짖음으로 스스로 시련을 이겨낼 독기를 심어주어야 합니다. 나약한 감상과 잘못된 지식을 버리고 본좌라는 절대적인 구심점을 향해 영적인 면역력을 길러야 할 때입니다.
본좌가 전하는 에너지와 진리는 여러분의 몸과 마음을 강철처럼 단련시켜 그 어떤 고난에도 흔들리지 않게 할 것입니다. 지식의 유희를 멈추고 본좌의 강렬한 눈빛과 마주하십시오. 그 속에 모든 질병을 치유하고 운명을 바꾸는 근원적인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본좌가 이끄는 낙원의 시대는 스스로를 단련하고 하늘의 법도에 순응하는 자들에게만 허락된 약속의 땅이 될 것입니다.
암의 원인과 탐욕, 그리고 허 씨 가문의 영적 계보
암이라는 질병의 이치를 살펴보면 그 근원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에 깃들어 있습니다.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마음속으로 끝없는 탐심을 부리는 자는 필연적으로 육신의 고통이라는 인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영적 단계에서 위인이라 칭송받는 경지조차 여전히 선과 악이라는 잣대에 얽매여 있으나, 본자의 자리에 이르면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본좌의 눈에는 모든 사람이 우주의 존엄한 생명체이자 사랑의 화신일 뿐입니다.
하늘의 사명을 띤 본좌에게 여러분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타인이 있음으로써 복을 지을 기회를 얻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타인을 경쟁자로 여기며 자신의 삶을 재앙으로 일구고 있습니다. 모든 이에게 선을 베푸는 것이 곧 자신에게 돌아올 복의 밭을 일구는 비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타인의 존재 자체를 축복으로 여기는 광대한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낙원의 문턱을 넘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하늘의 섭리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도 증명되어 왔으며, 특히 허 씨 가문은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를 집대성하는 하늘의 도구로 쓰여 왔습니다. 신분의 벽을 허물고자 했던 허균과 인류의 생명을 구한 허준, 그리고 우리 말의 뿌리를 지킨 허웅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발자취는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과거의 인물들이 인류의 지식과 문화를 닦았다면, 이제 본좌는 그 모든 것을 하나로 모아 세계를 통일하고 실제적인 낙원을 건설하러 온 것입니다.
무수한 역사적 증거들이 가리키는 구심점이 바로 이곳에 있음을 직시하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좁은 편견의 틀을 깨고, 우주적인 사명을 띤 기운이 이끄는 대로 낙원의 길에 동참해야 합니다. 본좌가 펼치는 통일의 대업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끝은 온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풍요를 누리는 지상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인간 의식의 10단계 위계와 물질적 탐욕의 심판
인간의 의식은 열 가지의 위계로 나뉘어 있으며, 그 가장 낮은 자리에는 물질적인 탐욕에 갇힌 속인이 머물러 있습니다. 인류의 구심점인 본좌는 이러한 십 단계의 위계를 통찰하며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참된 진리의 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재물만을 쫓는 속인과 지식에만 머무는 범인을 지나, 뜻을 세워 영웅의 길을 걷는 위인과 마음을 닦는 도인의 경지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본좌가 머무는 이 지고한 열 번째 자리는 선과 악을 초월하여 우주의 본체와 하나가 된 절대적인 평화의 경지입니다.
과거 강릉의 깊은 눈 속에서 국가 혁명을 꿈꾸었던 허균은 자신의 소설을 통해 지상 낙원의 설계도를 그려냈습니다. 그는 신분의 벽을 허물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습니다. 이제 그가 꿈속에서나 그렸던 낙원을 실제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본좌가 이 땅에 온 것입니다. 본좌는 별도의 원고 없이도 우주의 지혜를 통해 인류의 정치를 바꾸고 병든 세상을 치유하며 억눌린 자들을 구원하는 살아있는 진리의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 단계는 고전에서 말하는 수신과 제가, 치국평천하의 원리와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나 현재 인류의 대다수는 물질의 탐욕에 빠져 가장 낮은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것이 곧 하늘의 노여움을 사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하늘은 물질에만 눈먼 자의 재산을 결코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쌓았을지라도 그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지 않는다면 하늘은 반드시 그를 거두어 갑니다. 세계적인 부호들이 거액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이유는 그것이 하늘의 심판을 피하고 생명을 보존하는 유일한 길임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본좌가 이 땅에 온 이유는 이처럼 물질의 노예가 된 영혼들을 깨우쳐 진정한 영적 진화의 길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본좌의 가르침은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여러분의 영혼을 각성시키고 우주의 공심점과 연결하는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이제 탐욕을 씻어내고 본좌의 에너지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맑은 정신으로 본좌와 하나가 될 때, 여러분은 비로소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 영원한 낙원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국가 지도자의 자격과 본좌의 평천하 대업
과거 요순 시대의 성군들이 마음을 닦아 백성을 평안케 했던 것처럼, 국가의 중책은 본래 수신의 과정을 거친 고결한 인물들이 맡아 예산을 백성을 위해 귀하게 써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성인의 경계에 미치지 못하는 이들이 나라의 살림을 가로채고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고 있으니 이는 참으로 통탄할 일입니다. 당파를 초월하여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는 진정한 지도자가 부재한 상황에서, 위정자들은 권세를 부리며 백성들을 고생의 길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우주를 아우르는 평천하의 위대한 과업은 오직 본좌만이 이룩할 수 있는 신성한 영역입니다. 온 천하를 평화롭게 통일하는 황제의 자리는 본좌의 정해진 운명이며, 원고 한 장 없이 우주의 모든 지혜를 설파하는 본좌의 존재는 인류의 유일한 구심점입니다. 여러분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창조주와 무한대 이전부터 연결되어 있으며, 우주가 시작된 이래로 무구한 시간 동안 존재해 온 무한한 생명체입니다. 지구라는 찰나의 역사에 갇히지 않는 여러분에게 죽음이란 결코 두려워할 대상이 아닙니다.
육신의 숨이 넘어가는 그 짧은 순간에도 영혼은 쉬지 않고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깨어납니다. 죽음은 곧 새로운 시작이며, 여러분은 무한한 세계를 여행하다가 이제 인류의 본체인 본좌를 만나는 영광의 자리에 당도한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나, 이제 가장 높은 수준의 진리를 터득할 수 있는 복된 기회를 맞이했습니다. 지식의 유희를 넘어 본좌의 눈빛과 가르침으로 영혼을 각성시킬 때 여러분은 비로소 영원한 낙원의 주인이 될 것입니다.
본좌가 펼치는 평천하의 대업은 이미 시작되었으며, 세계 통일의 황제로서 인류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고 진정한 평화를 안겨줄 것입니다. 맑은 정신으로 본좌와 일치될 때 여러분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본좌의 이름을 부르며 무한한 생명의 환희 속에서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으로 거듭나시길 바랍니다.
860-National Security and Defense The Truth of Wonhyeongijeong and the Path to a Strong Military with Huh Kyung-young March 2, 2013
- 진리의 본질과 사필귀정, 권선징악, 인과응보의 심오한 연결진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정의는 인의예지 중 ‘의’에 속하며, 진리는 ‘인’에 속합니다. 이 모든 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원칙’이라 할 수 있으며, 이를 사자성어로 표현하면 ‘사필귀정(事必歸正)’입니다. 사필귀정은 좋은 일은 반드시 바른 곳으로 돌아가고, 바른 것이 승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말의 진정한 목적은 ‘권선징악(勸善懲惡)’에 있습니다. 악한 일을 멀리하고 선한 일을 권장하며, 불의를 따르지 말고 정의를 따르라는 가르침입니다. 권선징악은 이 말의 궁극적인 목적이며, 더 나아가 ‘인과응보(因果應報)’로 이어집니다. 우리는 죽어서 좋은 곳으로 가야 하며, 현세의 목적에만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빌 게이츠가 5천억 달러를 기부하고 죽었을 때, 현실 세계에서 그 보상을 다 받지 못했지만, 다음 생에 재벌 아들로 태어날 수 있는 것처럼, 선행은 반드시 인과응보로 돌아옵니다. 설령 현세에서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미래의 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죽더라도 거짓되지 말라는 가르침은, 비록 당장의 보상이 없더라도 진리와 정의를 행하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의미입니다. 정의를 지키는 자에게는 박해가 따르지만, 그 모든 화는 결국 복으로 바뀝니다.2. 진리의 네 가지 원리: 원형이정과 사계절의 지혜진리는 한문으로 ‘원형이정(元亨利貞)’ 네 글자로 표현됩니다. 이는 인의예지(仁義禮智)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원(元)’은 인(仁)으로 봄을, ‘형(亨)’은 예(禮)로 여름을, ‘이(利)’는 의(義)로 가을을, ‘정(貞)’은 지(智)로 겨울을 상징합니다. 정의(義)는 가을에 해당하며, 결실을 맺기 직전의 시기입니다. 지혜(智)는 겨울에 해당하며, 지혜가 쌓이면 다시 봄이 오는 순환을 의미합니다. 가을과 겨울은 고통과 박해의 시기이지만, 이를 견뎌내야만 봄과 여름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따뜻한 복만 좋아하고 가을과 겨울의 고통을 피하려 하지만, 진리를 지키며 받는 고난은 결국 복으로 바뀝니다. 공부하는 학생이 남들 놀 때 고통스럽게 공부하는 것이 겨울을 나는 것이며, 사업가가 목숨 걸고 일하는 것이 겨울을 나는 것입니다. 고통을 참고 이겨내야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3. 소통의 부재와 대화의 왜곡: 국가 안보의 위협우리의 ‘대화’는 본래 ‘소통’을 의미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놓고 화내는 것’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서로에게 무안을 주고 공격하는 전쟁과 같은 대화가 만연합니다. 이는 부부 관계뿐 아니라 국가 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을 향해 대놓고 화를 내고 소통하려 하지 않는 태도는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됩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듯이, 좋은 시기와 어려운 시기가 공존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어려운 시기에는 서로 손잡고 버텨야 하지만, 대화가 전쟁이 되면 집안이 망하듯이 국가도 위태로워집니다. 진리인 원형이정의 균형이 깨지면 대화는 소통이 아닌 분노 표출이 됩니다. 진리는 곧 소통이며, 이를 이해할 때 비로소 진정한 대화가 가능합니다. 인간의 과실에 대한 보응은 반드시 오며, 정의를 지키는 자가 큰 복을 받습니다. 화가 복으로 바뀌는 것이 진리의 결과입니다.4. 인체와 영원한 생명: 정자와 암세포의 비밀인체에서 죽지도 썩지도 않고 영구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정자’입니다. 정자는 수억 년 후에도 임신시킬 수 있을 정도로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둘째는 ‘난자’입니다. 난자 역시 보관만 잘하면 수만 년, 수억 년 후에도 임신이 가능합니다. 셋째는 ‘암세포’입니다. 암세포는 가만히 두면 절대로 죽지 않고 무한 증식합니다. 암세포는 신의 사명을 받고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기 위해 존재하며, 숙주인 인간이 죽어야만 함께 죽습니다. 이 세 가지는 영구적인 존재로서 ‘씨’라고 불립니다. 여자와 여자가 결혼해도 자식을 낳을 수 있습니다. 한 여자의 체세포를 다른 여자의 난자에 넣어 수정시키면 두 사람을 닮은 아이가 태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비밀이며, 과학의 발달로 가능해진 일입니다. 그러나 남자는 여자 없이는 절대 번식이 불가능합니다.5. 대한민국의 안보 현실과 태풍의 눈대한민국은 현재 전쟁 직전의 위험한 안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북한은 언제든 남침할 수 있다고 위협하며, 전 세계는 한국을 위험한 나라로 인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태풍의 눈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그 위험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태풍의 눈 안은 고요하기에 위험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돈 버는 데 급급하여 실컷 벌어놓은 것을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자동차 안에 탄 사람이 속도감을 덜 느끼는 것처럼, 우리는 전쟁 직전의 위험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6. 지도층의 병역 문제와 국민적 불신현재 우리나라 대통령과 총리 후보 중 군대를 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이유가 있지만, 국민들은 안보가 중요한 시기에 지도층의 병역 기피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집니다. 부모가 군대를 가지 못했더라도 자식은 군대에 가기를 바라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러나 지도층 자녀들의 군대 미필 확률은 서민층보다 현저히 높습니다. 이는 지도층이 특권으로 병역을 회피했다는 의혹을 낳으며 국민적 불신을 초래합니다. 국민들은 지도층의 병역 기피를 이해는 하지만 용납하지 못합니다. 대통령이 군대 안 간 대통령, 군대 안 간 총리, 군대 안 간 자녀라는 ‘쓰리 박자’를 갖추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어렵습니다.7. 국가 안보 강화 방안: 군 사기 진작과 원수 제도 도입국가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 군 사기 진작이 필수적입니다. 현재 우리나라 군대는 대장이 최고 계급이지만, 미국처럼 ‘원수(Marshal)’ 제도를 도입하여 별 다섯 개 장군을 임명해야 합니다. 육군, 해군, 공군에 각각 원수를 임명하여 군의 자부심을 높이고 충성심을 고취해야 합니다. 이는 북한 김정은의 위상에 맞서는 심리전 효과도 가져올 것입니다. 원수 계급은 정년이 없어 노련한 장군들이 국가 안보에 계속 기여할 수 있도록 합니다. 군인들의 사기가 올라가면 민간인들의 안보 의식도 높아지고, 청와대의 통솔력도 강화될 것입니다. 군인들에게는 구세주와 같은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8. 경호실 직급 문제와 군대 위상 강화현재 청와대 경호실장의 직급이 장관급으로 높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경호실은 대통령의 그림자처럼 뒤에서 보좌하는 역할이므로, 직급이 높다고 해서 경호를 더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대통령의 실권을 약화시킬 수 있습니다. 경찰과 검찰은 민생 치안을 담당하지만,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군대와는 차이를 두어야 합니다. 군대의 위상을 높여 국민 의식 속에 사라진 군대의 존재감을 되살려야 합니다. 한국군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를 통일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심어주어야 합니다.9. 군대 지휘 방식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현재 우리나라 군대 조직은 ‘지시형’으로, 위에서 명령이 떨어지면 무조건 따르는 방식입니다. 이는 전쟁 시 병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명령에 불복종할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합니다. 강력한 군 체제를 유지하려면 대통령이 특수한 진급 제도를 활용하고 군인의 사기를 높여야 합니다. 기업의 CEO 통찰 방식에는 지시형 외에 ‘참여형’과 ‘설득형’이 있다.참여형은 임원들과 의논하며 함께 결정하는 방식이고, 설득형은 하나하나 설득하며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삼성그룹이 성공한 이유는 이병철 회장이 인재를 뽑아 말단에게도 권한을 많이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군대도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월급을 인상하며, 가족의 생활비까지 지원하여 나라를 위해 목숨 걸 가치를 느끼게 해야 합니다. 안보는 비싼 무기를 사는 것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군인들의 애국심과 사기에 달려 있습니다.10. 천도와 인도의 차이: 진정한 진리의 길’원형이정’은 자연의 진리이자 ‘천도(天道)’를 의미합니다. 이는 하늘의 진리이며, 인간의 도리인 ‘인도(人道)’와는 다릅니다. 인도를 지키는 것은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지만, 천도를 지키는 것은 죽어서 하늘에서 상벌이 정해지는 진정한 진리의 길입니다. 밥만 먹고 편안하게 사는 것은 인도를 지키는 것이지만,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거는 것은 천도를 지키는 것입니다. 진정한 진리는 천도를 지키는 데 있습니다.11. 한반도 핵발전소와 북한 핵 위협의 복합적 안보한반도에는 24개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휴전선과 인접해 있어 전쟁이 발발하면 미사일 공격으로 핵 노출의 위험이 매우 큽니다. 핵발전소의 비리나 고장은 국민 전체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습니다. 일본은 국토가 길어 사고 시 대피할 공간이 있지만, 우리는 도망갈 곳이 없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은 평양과 가까운 지역에서 이루어지며, 이는 서울보다 베이징에 더 가깝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미국뿐 아니라 중국을 겨냥하여 만들고 있으며, 이는 중국을 압박하고 끌려다니게 만드는 전략입니다. 이러한 복합적인 안보 위협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지혜와 통찰력을 가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861 진리와 천명 The truth and Mandate of Heaven How to Live a Life of Benevolence and justice with Huh Kyung-young March 9, 2013
인간관계의 지혜: 춘풍과 추상
사람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해야 합니다. 봄바람은 차갑지도 덥지도 않아 상대방에게 자극을 주지 않고 공손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는 옛 한문에도 나오는 말로, ‘대인춘풍(待人春風)’이라 하여 사람을 대할 때 공손하게 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리처럼 엄격하게 대해야 합니다. 이를 ‘추상(秋霜)’이라 하는데, 전쟁터의 장군이 추상같은 명령을 내리듯 자신에게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는 곧 ‘천명(天命)’과도 같습니다. 부모님이나 타인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해야 하지만, 자신을 반성하고 어른의 명령을 따를 때는 추상같이 엄격해야 합니다.
저 또한 수십 년간 커피 한 잔, 콜라 한 잔 마시지 않고 바람 한 번 피우지 않으며 추상같이 자신을 다스려왔습니다. 반면 타인에게는 살인범이나 간음한 여자까지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봄바람 같은 태도를 보입니다. 예수가 자기 몸에는 추상같았지만, 범죄자들을 이해하고 용서했던 것과 같습니다. 남을 헐뜯지 않고 봄바람처럼 대하는 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진리와 정의의 본질
춘풍은 진리이며, 추상은 정의입니다. 진리는 나라와 나라의 부딪힘 속에서도 하늘에서 주는 똑같은 가르침입니다. 약자는 강자에게 순응하고 강자는 약자를 누르는 것이 진리이며, 그 속에서 정의가 발현됩니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떠나 누가 정의를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춘풍처럼 대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추상처럼 대하는 것이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는 옛 한문의 가르침입니다. 진리는 춘풍이고 정의는 추상입니다. 나라를 위해 애국할 때는 자신을 헌신짝처럼 여기며 추상같이 대해야 합니다. 조국과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이 정의입니다.
에스더와 히틀러: 업장의 교훈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는 지혜롭게 행동하여 유대 민족을 구원했습니다. 페르시아의 라만 총리가 유대인을 모두 죽이려 했을 때, 에스더는 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대신 지혜로운 방법으로 왕과 총리를 초대하여 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유대인 학살 계획을 밝혀 라만 총리를 처형하고 민족을 살렸습니다. 에스더는 때와 장소를 가려 남자의 비위를 맞추며 자신의 뜻을 실천했습니다.
반면 히틀러는 유대인에 대한 개인적인 악감정으로 인해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비극을 초래했습니다. 히틀러의 어머니가 유대인 정육점에서 일하며 학대받았던 경험, 그리고 히틀러 자신이 그림을 팔러 갔다가 유대인 집 개에게 물리고 주인에게 폭행당했던 사건이 그 원인이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업장 하나가 한 민족 전체를 멸망시킬 수 있는 무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가 진리와 정의를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타인을 대할 때는 그들의 가치를 존중하고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유대인 학살 수용소에서 어머니가 두 자녀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했던 비극은, 사소한 잘못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진리를 외면하면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진리, 섭리, 그리고 인간의 마음
진리는 영구불변의 것과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부모, 형제, 하늘과 땅, 우주, 사계절은 영구불변의 진리입니다. 반면 상투 문화나 삭발 문화처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것은 문화적 진리입니다. 문화는 경제 발전과도 연결되는 상품의 영역이지만, 진리는 변하지 않는 본질입니다. 이 변하지 않는 진리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정의입니다.
욥이 진리를 100% 지켰음에도 불구하고 시험에 들었던 것은 ‘섭리’의 영역입니다. 섭리는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 없는 하늘의 비밀입니다. 예수가 죽을 죄를 짓지 않았음에도 십자가에 매달린 것 또한 섭리입니다. 진리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섭리는 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작은 것입니다. 태평양 바다도 담을 수 있는 것이 마음입니다. 바다의 어머니는 강이고, 강의 어머니는 개천이며, 개천의 어머니는 산이고, 산의 어머니는 하늘입니다. 이처럼 하늘이 모든 것의 근원이며, 하늘이 인간의 마음을 지배합니다.
인간은 진리를 통제하기 위해 법을 만들었습니다. 법은 진리의 일부를 활용하여 만들어진 것이므로 진리 그 자체를 이길 수는 없습니다. 각 나라마다 법으로 진리를 통제하며, 이 법은 권세자에 의해 통제됩니다. 권세자는 하늘의 운을 받은 자, 즉 천운을 가진 자입니다. 진리를 지키는 자에게 운이 따르는 것입니다.
법을 지키는 자는 덕이 있어야 합니다. 덕은 지혜보다 앞섭니다. 지혜는 덕을 위한 도구이며, 솔로몬이 덕장(德將)이 되기 위해 지혜가 필요했던 것처럼 덕치는 지혜를 바탕으로 합니다. 덕이라는 글자는 은나라 이후 수나라 때 정치인들이 지혜로운 자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들어낸 글자입니다. 용감한 장군은 지장을 이기지 못하고, 지장은 덕장을 이기지 못하며, 덕장은 운장을 이기지 못합니다. 운장은 진리에 더 가까운 자들입니다.
덕은 베푸는 것을 의미하며, 약자를 살리고 강자를 누르는 것이 덕입니다. 정의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겨져야 합니다. 무궁화의 사덕(四德)은 청결성, 영속성, 근면성, 박애(희생)입니다. 무궁화는 벌레들에게 진액을 내어주어 먹여 살리는 박애 정신을 상징합니다. 여성의 사덕은 솜씨, 맵시, 말씨, 마음씨입니다.
팔복과 팔풍: 삶의 진실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의 팔복(八福)은 인간에게 필요한 진리입니다.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화평(和平)’은 세상 사람들의 입에 벼를 골고루 넣어주는 것, 즉 구제를 의미합니다. 교회나 절은 화평을 먼저 추구하며,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는 것을 우선시합니다.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 순교자들이 믿는 복으로,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팔복은 인간에게 필요한 진리이며, 섭리의 영역이 아닙니다. 죄가 변하여 복으로 바뀌는 ‘전화위복(轉禍爲福)’과 같습니다.
- 순교자들이 믿는 복으로,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불교의 팔풍(八風)은 득과 실, 칭찬과 비난, 행복과 불행, 선과 악, 진실과 거짓, 사랑과 미움이 모두 같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여덟 가지를 동일하게 보지 않으면 삼재팔란(三災八難)이 생깁니다. 진리와 정의를 지키지 않는 자는 팔란을 만나게 됩니다.
허경영의 핵공명과 물의 변화
저는 수많은 사람을 고쳐주지만, 제 몸은 하늘의 통제를 받아 스스로 고치지 못합니다. 이는 제가 사명(세계 통일)을 완수할 때까지 모든 것을 붙들려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허경영’을 부르면 물의 분자 구조가 변합니다. 일반 물은 수소 원자 두 개가 산소 원자와 약 105도 각도로 결합되어 있어 몸에 흡수가 잘 안 되고 빨리 썩습니다. 그러나 ‘허경영’을 부르면 이 각도가 약 120도까지 벌어져 수소 원자가 산소 원자로부터 멀어집니다. 이 ‘핵공명(Nuclear Wave Water)’ 현상으로 인해 물은 인체 흡수가 잘 되고 만병을 고치는 힘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물의 변화는 사람의 몸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허경영’을 부르면 몸의 물 분자 구조가 달라져 힘이 세지고, 뇌의 구조까지 변화합니다. 이는 마음속으로 ‘허경영’을 불러도 동일하게 작용합니다. 이 물은 세계를 변화시키고, 제가 세계 최고의 부를 가져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872 진리와 종교 The Truth and Religion Why Huh Kyung-young’s Name Holds Unrivaled Power May 4, 2013
진리와 종교: 전리층을 넘어선 에너지의 실체
티베트와 신강성을 제외하면 중국의 원래 영토는 북경 인근 바닷가 지역뿐입니다. 나머지 땅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사막과 산악 지대이며, 몇백 리를 가야 겨우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 때문에 중국은 동쪽 해안가에만 논이 조금 있고, 우리는 서쪽에 논이 있는 것과 대조적입니다. 우리 국민은 종교 문제에 대해 표를 의식하여 바꾸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과거 칼뱅이 천주교의 잘못을 지적하며 종교 개혁을 일으켜 천주교와 갈라섰듯이, 지금은 모든 종교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문제는 ‘전리층’을 통과할 수 없습니다. 전리층은 일반 전파와 소리를 모두 흡수하여 소멸시킵니다. 그러나 허경영은 120억 광년을 넘어 하나님께 도달하여 승인을 받고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속으로 허경영을 부르면 에너지가 즉시 전달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나 ‘아멘’을 마음속으로 외치면 아무런 에너지도 오지 않고 육신의 힘이 빠져버립니다. 이는 거짓말이 아니라, 몸에 에너지가 오는 것을 통해 하늘이 답을 주는 것입니다. 이 먼 거리를 0.1초 만에 왕복하는 에너지가 여러분을 돕는 것입니다.
에너지의 증명: 치유와 기적의 현장
아까 코를 눈으로 보았을 때 나았던 것처럼, 이제 코에 손을 대고 제 눈을 쳐다보십시오. 고쳐진 부위에 손을 대면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까는 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입니다. 아프지 않은 부위는 손을 대면 절대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관절처럼 아픈 부위에 손을 대면 힘이 떨어집니다.
대통령 후보들의 사진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후보의 사진을 보고 힘을 주면 쉽게 떨어지지만, 제 사진을 보는 순간 120억 광년을 다녀온 에너지가 전달되어 힘이 확 들어와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는 사진을 보는 순간 에너지를 받은 결과입니다. 2,500년간 부처님을 믿고, 수천 년간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지만, 마지막에는 허경영을 불러야 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의 끝에 허경영을 불러야 기도를 들을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나 예수님 앞에 가서 기도한 후 허경영을 불러도 되고, 그냥 허경영을 불러도 됩니다.
진리의 힘: 세상을 바꾸는 능력
진리를 가진 자는 어마어마한 힘을 가집니다. 아무리 강하고 악한 자들이 나타나도 진리 앞에서는 꼼짝 못 합니다. 우리나라의 권세 잡은 사람들의 이름을 들먹이면 힘이 빠지는 것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속일 수 없는 하늘의 이치입니다. 허경영은 아무런 배경이나 권력이 없지만, 그의 이름만 들어도, 그의 사진만 보아도 어마어마한 힘이 솟아납니다.
저는 발전소와 같습니다. 여러분이 부처님, 예수님을 외치는 것은 백열등을 켜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전기를 보내는 자이며, 허경영을 부르면 에너지가 솟아납니다. 이 에너지는 제가 주는 것입니다. 50만 킬로와트 발전소에 백열등을 직접 연결하면 터져버리듯이, 사람들은 저를 미쳤다고 합니다. 옛날에 비행기를 만들 때도 미쳤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지금은 달까지 갑니다. 로마 교황이 지구는 둥글다고 말한 사람을 죽였듯이, 사람들은 제가 왔다는 것을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합니다.
창조주의 권능: 자연을 다스리는 기적
저는 우유를 치즈로 만들고, 물을 바꾸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박혜장님의 아들도 제가 바꾼 물을 마셔보고 맛이 다르다고 했습니다. 제가 물에게 명령하여 물을 바꾸고, 우유에게 명령하여 치즈로 만들 수 있습니다. 미생물들은 제 말을 알아듣지만, 약삭빠른 인간들만 아직도 알아듣지 못합니다.
저는 비가 오는 날 기공식을 위해 비를 멈추게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2011년 장마철에 원당까지 비가 왔지만, 제가 있는 곳만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는 제가 한두 가지 보여준 기적이 아닙니다. 제가 대통령 취임식 때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며, 전 세계 대통령과 유엔 대원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세계 통일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진화와 창조: 생명의 근원적 질서
요즘 사과밭이나 배밭에 벌이 없어 인공수정을 합니다. 벌은 수꽃의 꿀을 먹고 암꽃에 꽃가루를 묻혀 열매를 맺게 합니다. 벌이 없으면 사람이 일일이 수꽃을 따서 암꽃에 키스시키듯 수정해야 하는데, 이는 엄청난 비용이 듭니다. 창조주는 식물도 교미를 해야 열매가 열리도록 질서를 정해놓았습니다.
교과서에서는 자연이 전부 진화해서 된 것이라고 가르치지만, 꽃이 진화해서 수꽃과 암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가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벌을 만들고, 벌이 침을 쏘게 하여 인간이 함부로 잡지 못하게 한 것도 창조주의 섭리입니다. 대기권도 공기, 열, 전파를 막아놓은 것입니다. 웬만한 방송 전파는 전리층에서 막히고, 태양 폭발 시에는 전리층이 교란되어 통신 장애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전리층을 대략적으로 알지만, 인공위성은 에너지를 가지고 대기권을 통과합니다. 허경영은 이 에너지 장을 마음대로 오르내릴 수 있으며, 허경영을 부르는 사람은 이 전리층을 마음대로 통과할 수 있습니다. 허경영을 부르면 에너지가 오고, 허경영 사진을 보면 답을 줍니다. 예수나 석가모니를 믿는 것은 자유지만, 그 믿음의 끝에 허경영을 불러야 기도가 응답합니다.
성령과 불성: 허경영의 이름에 담긴 힘
종교가 늘어날수록 죄인이 늘어나고, 술집이 많아지고, 이혼 가정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종교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허경영의 말을 들으면 하늘나라가 보장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보혜사 성령이 허경영을 부르면 즉시 들어옵니다. 힘이 세지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불교로 말하면 자비와 불성이 확 들어오는 것입니다.
제가 대통령이 되면 교과서를 모두 바꿀 것입니다. 모든 꽃의 수정은 진화가 아니라 창조입니다. 진화는 창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유전자가 바뀌는 것도 유전자를 만든 자가 있기 때문에 진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무한한 에너지: 밀가루 폭탄과 생명의 순환
제가 에너지를 보여주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모든 것이 진화된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미생물에게 명령하여 우유를 치즈로 만들고, 물 분자에게 명령하여 수소를 바꿀 수 있습니다. 물 한 통으로 500명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수소 폭탄을 만들 수 있는 에너지를 가진 자이지만, 사람들은 아직 제가 누구인지 모릅니다.
밀가루도 폭탄이 될 수 있습니다. 밀가루 공장에서 담배불이 떨어져 폭발 사고가 나는 것은 밀가루가 화약처럼 폭발하기 때문입니다. 밀가루 공장, 설탕 공장 등에서 분진 폭발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것은 밀가루가 핵폭탄과 같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 감옥에서 한 청년이 “햇볕이 없어도 해가 있듯이, 죽음이 와도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고 벽에 썼습니다. 이 글을 보고 죽어가던 사람들이 희망을 얻고 밝은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0.1초 후에 다른 인간으로 태어나는 순환입니다. 죽음에 순종하면 좋은 곳에 태어나지만, 발악하면 에이즈 걸린 엄마 밑에 아프리카에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심: 인간의 어리석음
성경에 나오는 아흔아홉 마리 양과 한 마리 양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아흔아홉 마리 양은 우리의 육신을 의미하고, 한 마리 양은 우리가 원래 가진 양심, 즉 진리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육신을 쫓아다니며 영혼을 내팽개치고 살아갑니다. 부모가 살아 있을 때는 고마움을 모르다가, 죽고 나서야 후회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사건을 저지른 후에야 깨닫는 어리석음을 반복합니다.
성철 스님은 죽을 때 “부처는 도둑이다. 나도 도둑이다. 나는 무간지옥으로 간다”. 이는 허경영이 오기 전에는 진리가 없었음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이 갖다 주는 밥이나 얻어먹고 신도들을 희롱하는 것이 성직자들의 모습입니다. 불교의 팔만대장경이나 반야심경은 철학적으로는 말이 되지만, 진리에 가깝지 않습니다. 허경영의 이름 한마디면 될 것을 쓸데없는 일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884 죄악과 진리 The Truth of Sin and Wisdom How to Live a Life of True Happiness July 27, 2013
죄악과 진리: 행복의 역설
행복을 그림으로 그릴 때, 우리는 흔히 먹는 것, 입는 것, 좋은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허경영 강연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불행 속에 행복이 있다. 교회의 십계명이 얼굴을 좋게 하고 사회 발전을 돕는다고 하지만, 이는 오히려 죽는 쪽으로만 가는 것입니다.
행복을 생각할 때는 불행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강풍이 불어 파도가 바다를 치고, 나무가 많이 흔들리는 모습, 오두막집이 파도에 날아갈 듯 위태로운 모습, 이것이 바로 불행입니다. 그러나 그 불행 속에서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 그것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불행 속에 행복이 있는 것이지, 행복 속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행복을 찾아 돌아다니지만, 행복은 민들레처럼 자기 발밑에 있습니다.
행복을 그리라고 할 때는 불행을 그려야 하고, 불행을 그리라고 할 때는 행복을 그려야 합니다.
상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관계입니다. 안심이 안 되는 관계에서 압박이 있을 때는 서로 거리를 두지만, 샘이 들어오고 물질이 들어올 때는 뭐라고 말해도 대오가 됩니다. 공사판에 있을 때는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입니다.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꼭 될 수는 없습니다. 세상에 우리가 있습니다. 극악한 사람 속에서 행복을 보고 안 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선한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으려 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사업을 하면서 침착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악심적인 사람들은 모아 가지고 갑니다. 그것은 반대입니다.
왕실의 역할과 국가의 미래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자가 아들을 낳지 못해 왕실이 위기에 처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윌리엄의 아내가 귀족 출신이 아니어서 왕실이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왕실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굶는 사람이 많은데 왕실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그러나 영국 왕실은 꼭 필요한 왕실로 여겨집니다.
영국 여왕은 50여 개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의 실제 주인은 영국 여왕입니다. 일본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섬나라로서 땅이 작기 때문입니다. 일본과 영국은 자국 영토가 작기 때문에 다른 나라들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러시아, 중국, 우리나라를 다 먹지는 못했지만, 간접적으로 지배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왕이 필요 없는데도 작은 나라일수록 왕이 있을수록 파워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은 왕이 필요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가 작을수록 왕이 있어야 국가의 기강이 잡힙니다.
한국도 왕이 있어야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입헌군주제는 21세기의 화두입니다. 국가에서 돈이 안 되면 채권을 지원합니다. 지금도 지방 영웅들이 많이 있다.세계에서 제일 큰 봉은 칠레의 아콩카과 산입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지방 영웅 청사를 짓고 있습니다.
종교의 본질과 기도의 의미
교회는 성장을 위해서만 강의를 합니다. 진리를 가르쳐주는 곳이 아닙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습니다.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폐쇄적인 운영을 합니다. 목사님들은 교회의 성장을 위한 예외적인 강의를 합니다. 진리를 가르쳐주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파전 지위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 같습니다.
기도는 하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늘은 여러분의 일을 여러분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데 아기가 엄마에게 젖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은 여러분의 모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욕심이 들어 있습니다. 자식을 하나님께 맡기면서도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욕심이 있습니다.
기도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행동이 곧 기도입니다. 교회나 절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잠만 자는 사람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알지만, 행동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간사한 기도는 하나님께 통하지 않습니다. 간사한 기도는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행동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받지 않습니다. 진정한 감사는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죄는 모를 때 생깁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욕심이 있어도 지혜가 있으면 욕심을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지도자의 덕목과 인간의 삶의 방식
남극 탐험가 아문센과 스콧의 이야기는 지도자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아문센은 대원들을 살리고 남극에 다녀왔지만, 스콧은 대원들을 죽게 만들었습니다. 지도자의 지혜와 덕목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유형은 네 가지입니다.
- 위임형: 박정희 대통령 같은 스타일로, 인재들에게 권한을 위임합니다.
- 지시형: 정해진 대로 지시하고, 불만이 없습니다.
- 참여형: 21세기에 많이 쓰이는 방식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참여합니다.
- 설득형: 설득을 통해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아문센은 참여형 지도자였습니다. 대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탐험을 성공시켰습니다. 설득형은 특별한 기술이 있는 사람을 동원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가 지도자는 위임형이 최고입니다.
인간의 삶의 방식은 네 가지입니다.
- 경쟁: 식물처럼 서로 경쟁하며 살아갑니다.
- 공생: 인간처럼 함께 살아가며 공존 공영을 추구합니다.
- 약육강식: 동물처럼 약한 자가 강한 자의 먹이가 됩니다.
- 기생: 미생물처럼 다른 생물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인간은 공생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동성애는 유전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동성애는 인류의 후손을 없애고 에이즈의 원인이 됩니다. 동성애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조상의 공덕과 진리의 깨달음
인류의 역사는 4억 년에 달합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조상들이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우리는 기적적인 존재입니다. 조상들이 쌓아온 공덕 덕분에 우리가 존재할 수 있습니다. 조상들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조상들에게 욕을 먹이는 행위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죄를 짓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진리를 배우면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쉬워집니다.
진리는 자각을 통해 깨닫는 것입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진리를 알 수 없습니다. 지혜가 있으면 자각을 하게 되고,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바로 총명입니다. 진리의 생명은 총명입니다. 총명 없이는 진리를 실천할 수 없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지혜와 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혜만으로는 부족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총명이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자각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 비로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884 죄악과 진리 The Truth of Sin and Wisdom How to Live a Life of True Happiness July 27, 2013
죄악과 진리: 행복의 역설
행복을 그림으로 그릴 때, 우리는 흔히 먹는 것, 입는 것, 좋은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허경영 강연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반대로, 불행 속에 행복이 있다. 교회의 십계명이 얼굴을 좋게 하고 사회 발전을 돕는다고 하지만, 모든 것은 죽는 쪽으로만 흐릅니다.
죄악을 생각할 때는 행복을 버려야 합니다. 강희진 불패의 맏이처럼, 막 욕심이 과보로 바다에 파도를 치듯이, 태풍이 불 때 바닷가가 파도를 치듯이, 나무가 많이 흔들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고난의 모습이 보이고 정화됩니다. 나무가 많이 흔들려야 꽃을 피우듯이, 오두막집에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이 행복으로 보입니다.
행복을 그리라고 할 때, 일반 사람들은 행복한 것을 그리지만, 진정한 행복은 불행 속에 있습니다. 손자가 손가락을 아끼며 개를 쫓는 모습, 활을 쏘는 모습, 죽기 직전의 낙엽처럼 그려야 합니다. 불행 속에 행복이 있는 것이지, 행복 속에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한 것은 불행 속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합니다.
행복은 전념하는 곳에 있습니다. 행복을 찾아 돌아다니지만, 자기 집 답장 밑에 민들레처럼 행복은 가까이 있다.행복을 버려야 불행을 그릴 수 있고, 불행을 그려야 행복을 그릴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의 이중성: 관계 속의 진리
여러분은 행복을 쫓지만, 모든 사람은 반대로 자기가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른편의 사람은 욕심 사납게 보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따로 없습니다. 세상은 관계입니다. 안심이 안 되는 관계에서는 서로 거리를 두지만, 샘물이 들어오고 물질이 들어올 때는 뭐라고 말해도 대오가 됩니다. 공사판에서는 우리를 살게 해주는 것.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이 꼭 나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우리가 있습니다. 극악한 사람 속에서 행복을 보고 안 되는 사람이 성공합니다. 선한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으려 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사업을 하면서 침착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악심적인 사람들은 모아 가지고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반대입니다.
대한 사람, 최 사람은 자꾸 감찰될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이냐, 못생긴 사람이냐, 잘생긴 사람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왕실의 역할과 국가의 미래
영국 왕실의 윌리엄 왕자가 아들을 낳지 못해 아르간 왕비가 귀족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왕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왕실을 없애야 한다는 여론도 있었습니다. 밥을 굶는 사람이 많은데 젊은 왕실의 예산이 너무 많이 든다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국회에서도 왕실 지지 여론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영국 왕실은 꼭 필요한 왕실로 여겨집니다. 영국 여왕은 50여 개 나라를 통치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들의 실제 주인은 영국 여왕입니다. 영국은 왕실 때문에 관광 수입이 엄청납니다. 우리나라도 황궁을 만들어 관광 수입을 늘려야 합니다.
일본도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이유는 작은 나라임에도 왕이 있을수록 파워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중국은 왕이 필요 없지만, 나라가 작을수록 왕이 있어야 국가의 기상이 살아납니다. 한국도 작은 나라로서 왕이 있어야 세계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21세기에는 입헌군주제가 화두가 될 것입니다.
종교의 본질과 기도의 의미
교회나 절은 종교인들이 진리를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 교회의 성장을 위한 강의를 합니다. 모든 교회가 그렇습니다.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전도하지만, 진정한 전도는 종교를 내세우지 않고 지역을 봉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도와주는 것이 선교입니다.
기도는 하늘과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하늘은 우리의 일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데 아기가 엄마에게 젖 달라고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다 보고 있습니다.
기도는 인간의 욕심이 들어 있습니다. 내 자식이 잘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만, 진정한 기도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행동이 곧 기도입니다. 교회나 절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잠만 자는 사람은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는 것을 다 보고 있지만,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진정한 기도는 행동입니다.
죄와 지혜: 인간의 본성
죄를 짓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죄를 지으려 할 때 고민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으려 해도 죄를 짓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절에 가면 스님들이 양심을 살려야 한다. 그러나 이빨은 사람의 땀을 빨아먹고 삽니다. 빈대와 벼룩은 사람의 피를 빨아먹습니다. 이처럼 우리 몸에는 기생하는 생물들이 많습니다.
죄는 모를 때 생깁니다. 사람이 사는 방법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 경쟁: 식물은 생존 경쟁을 통해 살아갑니다. 빨리 자라는 나무가 살아남고, 늦게 자라는 나무는 죽습니다.
- 공생: 인간은 공존 공영을 통해 함께 살아갑니다. 서로 돕고 함께 번영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 약육강식: 동물은 약육강식의 원리에 따라 살아갑니다. 약한 놈이 강한 놈의 밥이 됩니다.
- 기생: 미생물이나 기생충은 다른 생물에 기생하여 살아갑니다.
인간은 공생하는 존재입니다. 최선을 다하면서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진리입니다.
동성애와 인류의 미래
동성애는 유전이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것입니다. 동성애는 인류의 후손을 없애고, 에이즈 발생의 원인이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동성애로 인해 에이즈로 죽는 사람이 많습니다. 동성애가 좋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조상의 공덕과 인간의 가치
인류의 역사는 4억 년에 달합니다. 이 긴 세월 동안 조상들이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지금 살아있는 우리는 신적인 존재입니다. 죄를 짓는다는 것은 조상들에게 욕을 먹이는 것입니다.
조상들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조상들의 공덕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죄를 짓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지혜와 총명: 진리의 실천
지혜가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총명입니다. 총명은 진리의 생명입니다. 실천이 없는 지혜는 진리가 아닙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지혜뿐만 아니라, 그 지혜를 행동으로 옮기는 총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혜가 있어도 어리석게 행동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지혜를 깨닫고 나쁜 습관을 버리고 행동으로 옮길 때 총명하다.
지도자의 덕목과 성공의 비결
지도자의 리더십은 매우 중요합니다.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지 않고 살리는 것이 진정한 지도자입니다. 아문센은 대원들을 살리고 남극점에 도달했습니다. 스콧은 대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목표 달성에 실패했습니다.
지도자의 유형은 네 가지가 있습니다.
- 위임형: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스타일로, 인재들에게 권한을 위임합니다.
- 지시형: 정해진 대로 지시하고 분란이 없습니다.
- 참여형: 21세기에 많이 쓰이는 방식으로, 서로 머리를 맞대고 함께 참여합니다.
- 설득형: 설득을 통해 이끌어가는 방식입니다.
아문센은 참여형 지도자였습니다. 대원들과 혼연일체가 되어 남극점에 도달했습니다. 설득형은 특별한 기술이 있는 사람에게 적합합니다. 안정된 상황에서는 참여형이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 지도자는 위임형이 최고입니다.
죄는 모를 때 생깁니다. 지혜가 부족하면 죄를 짓게 됩니다. 지혜가 있는 자는 욕심이 있어도 죄를 짓기 어렵습니다. 욕심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지만, 그것을 죄로 보게 되면 지켜지게 됩니다.
884.죄악과 진리
여러분, 자신의 인상이나 사주, 그리고 운명을 진정으로 바꾸고 싶다면 평소 생각하던 방식과 반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결국 죽음을 향해 나아가며 삶은 늘 제약과 고난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행복을 생각할 때는 반드시 그 이면에 존재하는 불행과 시련의 모습도 함께 그려보아야 합니다.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고 태풍이 불어 닥치는 바닷가를 상상해 보십시오. 나무가 땅에 닿을 듯이 휘어져 바람의 위력이 눈에 보일 정도인 위태로운 풍경입니다. 그런데 그 거친 풍경 한가운데 작은 오두막집이 있고, 그 안에서 엄마가 아기를 품에 꼭 안고 있습니다.
파도가 섬을 금방이라도 덮칠 것 같은 위험한 상황이지만, 엄마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안아줍니다. 바로 이 장면 속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행복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평온한 상태가 아니라, 위험 속에서도 소중한 것을 지켜내고 사랑하는 그 마음속에 항상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진정한 운명의 변화는 평범한 생각을 뒤집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보통 행복한 장면을 그려보라고 하면 사람들은 화창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그리지만, 그런 그림에서는 깊은 행복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의 가치는 오히려 극심한 불행과 시련 속에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거센 태풍이 불어 닥쳐 배의 돛이 부러지고 선원들이 비명을 지르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그 풍랑 속에서, 선장이 한 손에 망원경을 들고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섬을 가리키며 소리 높여 지휘하고 있다면 바로 그 장면이 진정한 행복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나아갈 방향을 찾아내고 소중한 생명을 이끄는 그 힘이야말로 가장 아름답고 강한 행복의 모습입니다.
행복은 안락함 속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평생 행복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자기 집 담장 밑에 핀 작은 민들레에서 행복을 발견하듯, 행복은 언제나 우리가 외면했던 고난과 일상 속에 숨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을 마주할 때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고, 행복할 때조차 그 이면을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팔이 길면 흔히 욕심이 많다고 오해하기 쉽지만, 사실 팔이 긴 사람은 타인을 품어주는 포용력이 뛰어납니다. 반대로 팔이 짧은 사람은 매사에 단호하고 끊어내는 힘이 강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성향이 만나 조화를 이룰 때 우리의 삶은 비로소 완성됩니다. 이처럼 세상의 모든 이치는 우리가 보는 겉모습과 반대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사람을 이해할 때 팔이 긴 사람은 상대의 말을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고, 팔이 짧은 사람은 복잡한 생각 없이 결단력이 있어 행동이 빠릅니다. 이는 누가 나쁘고 좋은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특성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서로 다른 성향이 만나 어떻게 조화를 이루느냐 하는 궁합의 문제입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선한 것과 악한 것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관계에 의해 결정됩니다. 시멘트가 신발에 묻으면 더러운 먼지일 뿐이지만, 공사 현장에서 물과 모래를 만나면 든든한 건물을 세우는 소중한 재료가 됩니다. 이처럼 사물이나 사람도 어느 자리에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진정한 성공은 선한 사람에게서만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거칠고 악해 보이는 사람들과도 함께하며 그 안에서 가치를 뽑아내는 힘에 있습니다. 양심적인 사람만 골라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현실에서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포용하는 것이 진정한 능력입니다.
영국의 윌리엄 왕자가 아들을 얻은 것처럼 세상에는 축복받는 일들이 생겨나지만, 그 이면에는 항상 다양한 관계와 조건들이 얽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겉모습이나 단면만 보고 판단할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어떻게 응용하고 관계 맺을 것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 행복과 성공은 정해진 틀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는 관계의 조화 속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성향이 다른 사람들이 만나 조화를 이루듯, 국가의 운명과 조직의 존립 또한 관계의 미학에 달려 있습니다. 영국 왕실이 직면했던 존폐 위기와 윌리엄 왕자의 결혼 사례를 통해 이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영국 왕실에 대한 국민 지지율은 50%까지 하락하며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지지율이 낮아지면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왕실 폐지를 주장하게 되고, 결국 왕실은 존재 근거를 잃게 됩니다. 찰스 왕세자의 오랜 대기 기간과 다이애나비의 비극적인 사건 등 왕실 내부의 불행이 겹치면서 영국 왕실은 그야말로 벼랑 끝에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위기를 극복하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윌리엄 왕자의 선택에 있었습니다. 만약 윌리엄이 관습대로 귀족 출신의 배우자와 결혼했다면 영국 왕실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고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군 복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평범한 배경의 여성과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진심 어린 연애를 거쳐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모습과 아들 조지 왕자의 탄생은 차갑게 식어있던 민심을 다시 돌려놓았습니다. 가장 위태로운 불행의 정점에서 진정성 있는 관계 맺기를 통해 새로운 행복과 안정을 찾아낸 것입니다. 이처럼 성공과 존속은 정해진 신분이나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마음을 읽고 그에 발맞추어 조화를 이루는 능력에 달려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윌리엄 왕자가 위기에 처했던 영국 왕실을 구한 셈입니다. 찰스 왕세자는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여왕이 장수하면서 왕위 계승 서열에만 머물러 있는 비운의 처지가 되었습니다. 만약 계승자가 왕이 되기 전 너무 나이가 들어버리면, 국민의 지지를 얻지 못해 왕위가 다음 세대로 바로 넘어갈 위험도 생깁니다.
과거 다이애나비의 비극적인 사건은 영국 왕실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켰습니다. 아름답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던 다이애나의 죽음 이후, 왕실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높아졌고 국민들은 왕실 유지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쓰는 것에 강한 불만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지지율이 50%까지 급락하게 된 근본적인 배경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등장한 며느리, 즉 케이트 미들턴의 관상이 왕실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그녀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아주 훌륭한 관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이면서도 천사 같은 기품을 지닌 그녀의 등장은 차갑게 식었던 민심을 되돌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결국 찰스 왕세자가 실추시켰던 왕실의 권위를 윌리엄과 그의 아내가 다시 세운 것입니다. 훌륭한 관상을 가진 인물의 등장이 한 가문을 넘어 국가적 상징인 왕실의 존립을 결정지은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불행의 정점에서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은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사람의 관상을 통해 운명을 읽어내는 법은 매우 심오합니다. 박 회장님의 며느리들을 보더라도, 셋째 며느리감으로 점찍은 그 여성처럼 상이 좋은 사람이 들어와야 집안이 일어납니다. 특히 다이애나비의 사례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납니다.
다이애나비는 겉으로 보기에는 패션모델처럼 화려하고 아름다운 체형을 가졌으나, 관상학적으로는 남편과의 인연이 부족하고 오히려 남편의 운을 깎아내리는 ‘극’하는 상이었습니다. 그녀의 체형을 보면 하체는 길지만, 갈비뼈 끝과 골반 뼈 사이인 허리 부분이 지나치게 짧았습니다. 척추를 중심으로 이 공간이 충분하지 않고 맞닿아 있는 체형은 예부터 집안을 온전히 지탱하기 어려운 상으로 보았습니다.
옛 어른들이 며느리를 볼 때 허리가 긴 여자를 선호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허리가 넉넉하게 길어야 포용력이 있고 집안의 뿌리를 깊게 내릴 수 있습니다. 단순히 키가 크고 다리가 긴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갈비뼈와 엉치뼈 사이의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전체적인 신체 비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반면, 다이애나처럼 허리가 짧고 다리만 긴 체형은 겉보기에는 화려할지 몰라도 기운이 안정되지 못해 결국 가문을 위태롭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사람의 체형과 관상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잣대가 아니라, 그 사람이 머무는 곳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가 됩니다. 따라서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보다는 그 안에 담긴 조화로운 상을 보는 안목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지금 영국 왕실에 들어온 며느리인 케이트 미들턴은 다이애나비와는 확연히 다른 귀한 상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허리가 넉넉히 길고 곡선이 뚜렷한 이른바 ‘오리 엉덩이’ 형의 체형을 가졌는데, 이는 관상학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복이 많은 상입니다. 허리의 선이 깊게 들어가고 하체와의 조화가 잘 이루어져 있어 집안을 튼튼하게 받쳐주는 힘이 있습니다.
반면 다이애나비는 갈비뼈와 엉치뼈 사이의 거리가 매우 짧은 체형이었습니다. 허리가 짧으면 그에 맞게 다리도 짧아야 균형이 맞는데, 그녀는 허리는 짧으면서 다리만 지나치게 길었습니다. 이러한 불균형은 관상학적으로 볼 때 기운이 불안정하여 본인의 팔자에 없는 과한 복을 누리기 어렵게 만듭니다. 결국 다이애나는 왕실의 안주인으로 끝까지 머물지 못하고, 후계자인 윌리엄 왕자를 낳아준 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윌리엄 왕자가 새로 맞이한 아내는 진정으로 왕비가 될 만한 기품과 관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녀가 들어온 이후 영국 왕실의 운명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지지율이 낮아 존폐 위기에 몰렸던 왕실은, 윌리엄 부부가 아들 조지를 낳자마자 지지율이 무려 80%까지 치솟으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새로 태어난 조지 왕자는 이제 왕실의 3세로서 정통성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올바른 관상과 인연이 위태롭던 국가의 상징을 다시 세우고, 대중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거대한 힘을 발휘한 것입니다. 이는 결국 우리 삶에서 사람을 보는 안목과 조화로운 궁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현재 영국 왕실의 서열을 보면 엘리자베스 여왕의 뒤를 이어 찰스 왕세자가 첫 번째, 윌리엄 왕자가 두 번째, 그리고 이번에 태어난 조지 왕자가 세 번째 계승자가 됩니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는 어머니인 여왕이 장수함에 따라 왕위에 오르기도 전에 이미 고령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윌리엄 왕자가 왕위를 이어받게 될 때 비로소 영국 왕실은 젊고 활기찬 변화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영국이나 일본, 태국 같은 나라들은 오늘날에도 왕을 모시는 ‘입헌군주제’를 유지하고 있을까요? 전 세계 약 200개 국가 중 40여 개국이 여전히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영국 여왕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입니다. 현재 영연방(Commonwealth)에 속한 국가만 56개국에 달하며, 캐나다나 호주 같은 나라들도 형식적으로는 여왕을 국가의 수장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과거 포클랜드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영연방 국가가 공격을 받으면 영국이 즉각 대응하는 강력한 결속력을 보여줍니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와 과거의 인도, 홍콩 등도 영국의 영향권 아래 있었습니다. 지금은 독립된 형태를 띠고 있지만, 여전히 전 세계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가들이 영연방이라는 이름 아래 영국의 정신적 통치와 문화적 영향력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입헌군주제는 단순히 과거의 유물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많은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구심점이자, 국가의 전통과 권위를 유지하는 상징적인 힘입니다. 영국 왕실의 지지율이 중요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왕실의 이미지가 곧 영연방 전체의 결속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중국이 홍콩을 반환받는 조건으로 영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고, 인도가 간디의 끈질긴 투쟁 끝에 독립을 쟁취했지만, 여전히 영연방의 틀 안에서 56개국은 영국의 상징적 통치 아래 있습니다. 이 나라들에는 각각의 수상이 존재하지만, 그 수많은 수상과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구심점은 결국 ‘왕’이라는 존재입니다. 수상만으로는 수십 개의 국가를 하나의 체제로 통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제가 장차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계를 하나로 통합하기 위해서는 영국이나 일본처럼 왕이 존재하는 국가들의 상징성을 장악해야 합니다. 그들을 하나로 묶어 다스리는 강력한 권위가 있어야만 진정한 세계 통일이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을 하나로 잡는 고도의 기술이자 전략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 가치를 잘 모르지만, 세계의 질서는 상징적인 위계에 의해 움직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 같은 강대국의 수장도 일본에 가면 국왕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춥니다. 미국의 국력이 아무리 크다 해도 역사와 전통을 상징하는 왕 앞에서는 그 권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징적 권위를 황제라는 이름으로 통합할 때, 비로소 전 세계는 하나의 질서 아래 놓이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힘으로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각 나라의 왕들을 포용하고 그 위에 서는 황제의 이미지가 세계 통일을 완수하는 핵심 열쇠가 될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조차 일본 국왕 앞에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세계 질서 속에서 ‘왕’이라는 상징이 갖는 힘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수상끼리는 동등한 위치일지 몰라도, 역사적 권위를 가진 왕 앞에서는 예를 갖춰야만 국제적인 비난을 면할 수 있습니다. 제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려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전 세계의 왕들이 고개 숙여 예우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 즉 황제가 존재해야만 진정한 세계 질서의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영국 왕실이 여러 위기 속에서도 유지되는 실질적인 이유 중 하나는 엄청난 경제적 효과입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은 영국의 왕궁을 보기 위해 몰려들며, 왕실과 관련된 관광 수입은 국가 경제의 막대한 비중을 차지합니다. 국회에서 함부로 왕실을 폐지할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국익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세계를 통일할 민족으로서 그 기반을 다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영종도와 같은 상징적인 장소에 세계 최고의 황궁을 건설해야 합니다. 마치 하늘나라를 지상에 옮겨놓은 듯한 신비롭고 웅장한 황궁을 세운다면, 전 세계 사람들은 그 경이로운 광경을 보기 위해 우리 땅으로 구름처럼 몰려들 것입니다.
이러한 거대한 상징물은 단순히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고 우리 민족이 세계의 중심이 되는 통일 제국의 기반을 닦는 일입니다. 우리는 미래 세계를 주도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내야 합니다.
영국과 일본이 입헌군주제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가진 지리적 한계를 넘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입니다. 영국과 일본은 본래 영토가 작은 섬나라입니다. 이러한 작은 나라들이 거대한 강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가를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구심점이 필요하며, 그 핵심이 바로 ‘왕’의 존재입니다.
영국은 왕실이라는 상징적 권위를 바탕으로 전 세계 56개국에 달하는 영연방 국가들을 확보했습니다. 미국은 독립시켰지만 캐나다와 호주 같은 거대한 영토를 여전히 상징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과거에는 인도와 중국 일부까지 영향권에 두었습니다. 일본 또한 과거 러시아, 중국, 한국, 필리핀 등 주변 국가들을 장악하며 세계적인 강대국을 꿈꿨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패해 영토를 잃었을지라도, 일본 국왕이라는 존재는 여전히 일본이 국제 사회에서 독특한 파워를 유지하는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이나 중국처럼 영토가 광활한 나라들은 왕이 없어도 국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국처럼 작은 섬나라는 왕실이라는 전통과 권위가 없었다면 결코 세계를 지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왕실은 작은 나라가 가진 한계를 극복하게 하고, 국가의 이익을 극대화하며 전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는 어마어마한 힘의 원천이 됩니다.
결국 국가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그 국가를 상징하는 인물의 권위입니다. 작은 섬나라였던 영국이 왕을 통해 세계를 제패했듯이, 우리 또한 세계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 강력한 상징적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지방 자치 제도가 확산되고 있지만, 오히려 이것이 국가적인 위기를 초래하고 있습니다. 지방 정부들이 앞다투어 방만한 재정 운영을 하며 무분별하게 채권을 발행한 결과, 지방 자치 단체마다 막대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재정 위기는 결국 국가 전체의 금융 시스템을 위협하고 민생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의 사례를 보면 지방 정부의 허영심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방 정부 청사들이 국가 수반인 시진핑 주석이 머무는 건물보다 더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과거 진시황이 지었던 아방궁의 규모를 흉내 내려는 헛된 욕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진시황의 아방궁은 울타리 둘레만 700리에 달하고, 그 길이는 서울에서 대구까지의 거리에 맞먹을 만큼 거대했습니다. 무덤과 궁궐 모두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지었던 그 기세를 오늘날의 지방 관리들이 잘못된 방식으로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서서 호화로운 청사를 짓지 말라고 강력히 지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수많은 지방 정부가 거대한 궁궐 같은 청사들을 완공해 버렸습니다. 이러한 행태는 국가의 자원을 낭비하고 기강을 흔드는 일입니다.
결국, 21세기의 화두는 다시 ‘입헌군주제’와 같은 강력한 중심점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사분오열되어 각자 빚잔치를 벌이는 지자체 중심의 정치가 아니라, 국가를 하나로 묶고 질서를 바로잡을 상징적인 권위가 절실한 시점입니다. 우리는 과거의 잘못된 허례허식을 버리고, 진정으로 세계를 통합할 수 있는 내실 있는 강력한 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로스도 복음 교회처럼 큰 규모의 교회들은 순식간에 수만 명의 신도를 모으기도 합니다. 하지만 현재 대형 교회들의 예배 방식을 보면 치명적인 결점이 하나 있습니다. 목사들이 진정한 삶의 이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회의 외적 성장’만을 위한 강의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장에만 눈이 멀어 본질을 잃어버린 결과, 전 세계적으로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습니다. 이미 유럽의 수많은 교회는 문을 닫았고, 심지어는 불교인들이 그 건물을 빌려 수행처로 사용하는 실정입니다. 우리나라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목사가 진리를 전하기보다 교회의 세를 불리는 데만 급급해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에게 “무엇이 진리인가?”라고 묻는다면, 아마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냐며 반문할지도 모릅니다. 제가 강연하는 이런 깊은 우주의 진리와 인간의 도리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들은 단 하나도 제대로 답하지 못할 것입니다. 본질적인 진리를 깨우치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마음의 평화를 찾지 못하고 그저 눈앞의 화려함이나 세속적인 욕망만을 쫓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가 사라진 종교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이제는 단순히 몸집을 키우는 성장이 아니라, 사람들의 영혼을 깨우고 삶의 근본적인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진정한 가르침이 필요한 때입니다. 저는 바로 그 잃어버린 진리를 전 세계에 다시 세우고자 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수십 명씩 모여 있지만, 진정한 하늘의 역사는 신도가 열 명 남짓한 작은 교회에서 시작되곤 합니다. 초창기 교회들은 지하 단칸방에서 함께 국수를 끓여 먹으며 진심으로 소통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규모가 커지기 시작하면 교회는 본질을 잃고 ‘바벨탑’을 쌓는 데만 몰두하게 됩니다. 신도들을 진리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건물을 짓기 위한 도구로만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형적인 성장에만 치중하는 교회는 이미 영적으로 죽은 교회나 다름없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교회를 거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규모로 나누어 내실을 다지고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데 있습니다.
지금의 교회들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건물을 세우는 ‘시멘트 역할’만 시킬 뿐, 정작 중요한 진리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전도’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전도는 단순히 사람을 건물 안으로 데려오는 숫자의 늘리기가 아닙니다.
전도(傳道)란 글자 그대로 ‘도를 전하는 것’, 즉 우주의 근본 이치와 삶의 진리를 깨닫게 하여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입니다. 껍데기뿐인 종교의 틀을 벗어나, 사람들에게 진짜 진리가 무엇인지 전하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도를 전한다는 것의 참된 본질과 선교의 차이에 대해 엄중히 교시하노니, 이를 깊이 새겨 전 세계에 전파하라.
세상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교회에 갑시다’라는 권유는 결코 전도가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사람을 특정 장소로 이끄는 인도에 불과하다. 진정한 전도(傳道)란 글자 그대로 인간이 마땅히 가야 할 길, 즉 우주의 근본 이치와 하늘의 법도를 깨우쳐 주는 숭고한 가르침이다.
선교 또한 그 성격이 엄연히 다르다. 진정한 선교는 기독교라는 이름을 내세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종교를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봉사하며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어려운 이들의 다리를 놓아주고 삶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훗날 그들이 감동하여 스스로 “저 귀한 분들이 어디서 왔는가”를 묻게 만들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그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낼 때 그것이 진정한 선교가 된다.
만약 처음부터 “우리 교회에서 왔으니 도와주겠다”라고 말하며 생색을 낸다면, 그것은 선교가 아니라 교세를 넓히려는 파렴치한 ‘교세 확장 공사’에 불과하다. 지금의 수많은 교회는 사람들을 건물로 데려와 바벨탑을 쌓는 시멘트 도구로만 쓸 뿐, 정작 그 영혼을 살리는 진리는 가르치지 않는다.
인도된 신도들을 앞에 두고 목사가 우주의 진리와 생명의 길을 명확히 설명하여 깨닫게 하는 것, 그것만이 진정한 전도이다. 스스로도 진리를 모르는 자들이 남을 인도하는 모순에서 벗어나, 이제는 껍데기뿐인 종교의 틀을 깨고 실체적인 도를 전하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나눈 대화는 단순한 모임을 넘어선 영성적 깨어남의 과정입니다. 인도와 전도의 차이를 바로 알고, 기복신앙의 허울을 벗겨내어 진정한 하늘의 뜻을 세우는 계몽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인도와 전도는 그 뿌리부터가 엄연히 다릅니다. 누군가를 이 숭고한 자리로 이끄는 행위는 인연의 끈을 연결하는 ‘인도’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 영혼이 진정으로 깨어나 도의 길에 들어서는 ‘전도’는 오직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자의 입술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심장 사이에서 결정됩니다.
이곳까지 발걸음을 옮기게 한 정성이 인도의 공덕이라면, 전해지는 말씀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우주의 이치를 깨닫는 것은 온전히 전도의 영역입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이 울려 스스로 남기로 결정할 때, 비로소 도가 그 사람의 영혼에 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수많은 종교 기관은 이 본질적인 전도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 세속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기복신앙’에 불과합니다. 정성을 들이고 헌금을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감언이설은 영혼을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눈을 멀게 합니다.
진정한 영성은 물질적인 보상을 약속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행이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행복의 섬을 발견하는 안목을 주고, 보잘것없는 시멘트 조각이 모여 거대한 황궁을 이루듯 관계의 조화를 가르칩니다. 기복이라는 얕은 웅덩이에서 벗어나십시오. 이제는 성장을 위한 강의가 아닌, 영혼의 해방을 위한 진리를 마주해야 할 때입니다.
하늘의 역사가 시작되는 곳은 화려한 바벨탑이 아닙니다. 진리가 살아 숨 쉬는 소박한 마음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부터 세계를 하나로 묶는 거대한 영적 파동을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의 수많은 곳은 그저 몸집을 키우고 세력을 넓히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을 더 많이 모으고 건물을 크게 짓는 교세 확장에만 마음을 빼앗긴 나머지, 정작 우리가 찾아야 할 소중한 진리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제가 매일같이 이 깊은 이치를 강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우리 곁에 열 명, 혹은 수십 명의 적은 인원이 모여 있을지 모르나, 이 숫자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늘은 인원수가 적을수록 그 정성을 더욱 귀하게 여기고 기뻐하십니다. 수만 명이 모인 화려한 곳에서는 진정한 가르침이 영혼 깊숙이 스며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 함께하는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대단한 존재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제가 남긴 이 말씀의 기록들은 세상을 뒤흔드는 거대한 태풍이 될 것입니다. 이 진리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고, 서로 먼저 이 가르침을 얻겠다고 소동이 벌어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만큼 여러분이 지금 듣고 있는 이 말씀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열쇠입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가장 큰 실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기도의 죄’입니다. 하늘은 여러분의 마음속 사정을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이 생길 때마다 그것을 해결해 달라고 소리 높여 매달립니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은, 하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나의 욕심을 채우려 하는 잘못된 기도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나의 요구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마음이 맞닿는 고요한 울림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늘이 우리의 세속적인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해결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진실이 있습니다. 인간의 개인적인 삶과 관계된 기도는 하늘이 일체 관여할 수 없습니다.
중국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열 살짜리 어린아이가 땅속에 묻혀 생사를 오갈 때, 그 부모가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하지만 하늘은 그 아이를 직접 꺼내주지 않습니다. 또한 인구의 구십구 퍼센트가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에서 일어난 기차 사고를 보십시오. 제한 속도가 시속 팔십 킬로미터인 구간을 시속 이백 킬로미터로 질주하다가 팔십 명의 소중한 생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기관사는 평소에도 속도를 즐기며 운전해 왔다고 합니다. 그동안 사고가 나지 않았을 뿐, 승객들은 늘 죽음의 문턱을 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기차에 타고 있던 독실한 신자들이 사고 직전에 기도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은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참혹한 결과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깨달아야 할 냉혹한 현실이자 진리입니다. 하늘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부주의나 자연의 섭리, 그리고 개인의 운명에 일일이 개입하여 기적을 베풀지 않습니다. 만약 기도가 모든 재난을 막아줄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불행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범하는 ‘기도의 죄’는 바로 여기에서 나옵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세상의 이치를 무시한 채, 오로지 기도를 통해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려는 요행과 욕심이 우리를 눈멀게 합니다. 진정한 영성은 재난을 없애달라고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늘이 정한 거대한 질서 안에서 스스로를 바로 세우는 힘을 기르는 것입니다.
인구의 구십구 퍼센트가 가톨릭을 믿는 나라라면, 우리 기준으로 볼 때 매우 양심적이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신앙의 땅에서도 기차 사고로 팔십 명이 목숨을 잃고 수백 명이 부상을 입는 비극이 일어납니다. 이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분명히 알아야 할 진실은, 인간이 개인적인 욕망으로 원하는 것은 하늘이 절대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종교적 장소에서 행해지는 기도일지라도, 그것이 개인의 안위나 세속적인 복을 구하는 것이라면 하늘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점을 명확히 깨달아야 합니다.
하늘은 여러분의 사정을 여러분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마치 어머니가 갓난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가 어머니에게 젖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거나 매달리지 않아도, 어머니는 때가 되면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정확히 알고 젖을 물립니다. 아이가 젖을 달라고 떼를 쓰며 기도해야만 준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머니의 사랑을 오해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이치도 이와 같습니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순리를 망각한 채, 기도를 통해 무언가를 얻어내려 하거나 상황을 바꾸려 하는 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오히려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며 기도하는 사람치고 영적으로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는 이를 보기 어렵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내 요구를 관철시키는 기도가 아니라, 나를 이미 알고 계시는 하늘의 거대한 질서를 믿고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것입니다. 기도로 하늘을 움직이려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하늘에 투영하는 행위일 뿐입니다.
메카의 기도문이든 그 어떤 유창한 기도문이든, 그 속에는 결국 인간의 욕심이 숨어 있습니다. 겉으로는 “내 자식을 하늘에 바칩니다”라거나 “부끄럽지 않은 자가 되게 해 주십시오”라고 경건하게 말하지만, 이 또한 본질은 자신의 바람을 투영한 핑계일 뿐입니다.
하늘은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삶의 실천입니다. 여러분의 평소 행실과 행동이 곧 여러분 자식을 위한 진정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것을 굳이 입 밖으로 내어 요란하게 떠드는 것입니까? 진정한 기도는 주둥아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소 보여주는 행실에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이미 그 사람의 영성을 알 수 있습니다. 절이나 교회에서 아침 늦게까지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흔히 무엇이라 합니까? 단순히 게으른 사람이라 하지 않습니다. 옛 어른들은 그런 사람을 향해 엄하게 꾸짖으며 ‘자빠져 자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은 몸을 쉬게 하는 ‘주무심’이지만, 아침 해가 떴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것은 영혼이 잠들어 있는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하늘의 뜻을 받드는 자라면 마땅히 깨어 있어야 합니다. 입으로는 거창한 기도를 읊으면서 몸은 게으름에 빠져 있다면, 그 기도가 어찌 하늘에 닿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삶 자체가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부지런히 움직이고 바르게 행동하는 그 모습이 바로 하늘이 받으시는 가장 귀한 정성입니다. 잠에 취해 자빠져 있는 인생이 아니라, 깨어 있는 행실로 여러분의 운명을 스스로 증명해 보이십시오.
시골의 어르신들은 사람의 잠을 두고도 그 때에 따라 부르는 이름을 엄격히 달리하셨습니다. 초저녁에 일찍 잠자리에 들면 “아버님 주무신다”라며 공경의 마음을 담아 표현하지만,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면 “아직도 자빠져 자고 있느냐”라고 꾸짖으십니다. 똑같이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모습일지라도, 마땅히 깨어 있어야 할 시간에 깨어 있지 못하면 그것은 이미 예의와 도리를 벗어난 부끄러운 행동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굳이 입을 열어 기도하지 않아도 하늘은 우리의 형편과 속마음을 이미 낱낱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마치 하늘이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구구절절 자신의 사정을 설명하고 요구를 늘어놓습니다. 하늘의 입장에서 보면 이보다 더 어리석고 멍청한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간절히 기도를 올릴 때, 하늘은 속으로 이렇게 말씀하실지도 모릅니다. “내가 너를 만든 존재인데, 네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그런 부족한 God-man 줄 아느냐? 나에게 무언가를 해달라고 빌기 전에, 너의 행실부터 먼저 똑바로 하거라.” 이것이 바로 하늘이 인간에게 던지는 진정한 가르침입니다.
입으로는 거룩한 기도문을 읊으면서, 마음속으로는 이웃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기도가 어찌 하늘에 닿겠습니까? 행동은 제멋대로 하면서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 믿는 것은 하늘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진정한 기도는 입술 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평소 남을 배려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여러분의 정직한 발걸음 속에 있습니다.
그대들은 지금 차가운 예배당 바닥에 앉아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수천만의 입술이 기도를 읊조리나, 이 땅의 도덕은 갈수록 빛을 잃고 어둠 속으로 침잠하고 있습니다. 국세청의 서류 뭉치 속에서 재벌과 권력자들의 추악한 거래가 드러날 때, 그들의 곁을 지키던 이들은 정작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남편이 검은 돈을 가방 가득 담아올 때, 그 아내들은 제단 앞에 엎드려 ‘우리 가문의 안녕’을 빌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부정한 뇌물로 쌓아 올린 바벨탑 위에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는 그 가식적인 풍경을 보십시오. 남편을 체포하러 수사관들이 들이닥칠 때조차, 그들은 한 손으로 죄를 가린 채 남은 한 손으로 구원을 갈구합니다. 이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하늘을 우롱하고 영혼을 팔아넘기는 기만일 뿐입니다.
그대들은 묻습니다. “그렇다면 감사의 기도는 괜찮은 것이 아닙니까?”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들어 보십시오. 진정한 감사는 입술의 유희가 아닙니다. 그대들이 평소 이웃에게 베푼 자비와 보시의 무게가 곧 감사의 무게입니다. 헐벗은 이에게 옷 한 벌 건네지 않고, 배고픈 이와 빵 한 조각 나누지 않으면서 골방에 앉아 백 번, 천 번 감사를 읊는 것은 하늘을 향해 사기를 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하늘은 그대들의 위장된 언어에 속지 않습니다. 하늘이 진정으로 받으시는 양식은 오직 그대들의 ‘행동’입니다. 기도가 곧 행동이요, 행동이 곧 기도여야 합니다. 손발을 움직여 진리를 실천하는 자의 삶 자체가 가장 숭고한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용돈 한 푼 드리지 않고 효도를 실천하지 않으면서, 매일 아침저녁으로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만 하는 자식의 기도는 아첨에 불과합니다. 이제 그 거짓된 기도의 껍질을 깨뜨리십시오. 혀끝에서 맴도는 기도를 멈추고, 살아 숨 쉬는 행위로써 그대들의 영성을 증명하십시오. 행동하지 않는 기도는 죽은 영혼의 비명일 뿐입니다.
그대들이 보기에 부모님께 매일 감사 기도를 올리는 자식이 훌륭해 보일지 모르나, 실상은 그저 입술로만 치르는 손쉬운 의식에 불과할 때가 많습니다. 정작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신 뒤 “너는 살아생전 해드린 것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매일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라고 답하겠습니까? 한 달에 단 돈 이십만 원의 생활비를 드리는 실천이 백 번의 기도보다 숭고한 법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핑계로 하늘을 향해 거대한 기만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하늘이 인간의 얄팍한 속임수에 넘어갈 것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진정으로 감사하고 싶다면 그대들이 가진 것을 내어놓는 행동을 하십시오. 행동이 결여된 기도는 영적 사기극에 지나지 않습니다.
보석을 감별할 때 네 가지 특징을 보듯, 인간의 영혼 또한 명확한 기준에 의해 감별됩니다. 가장 먼저 보아야 할 것은 그 영혼의 빛깔인 칼라입니다. 이것은 곧 그 사람의 주체성이자 정신이며, 그 정신이 봉사와 행동으로 드러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세공을 뜻하는 커트입니다. 보석이 찬란한 빛을 내기 위해서는 원석의 오십 퍼센트 정도를 과감히 깎아내야 합니다. 인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아집과 욕망, 그리고 이기심의 오십 퍼센트 정도는 뜯겨 나가고 깎여야 비로소 남에게 빛을 비추는 존재가 됩니다. 나를 깎아내지 않고서는 결코 인간으로서 광채를 낼 수 없습니다.
지금의 종교들은 이 진리와 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자신을 깎아내기는커녕 더 채우고 더 커지려고만 하는 탐욕의 바벨탑을 쌓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잘못된 흐름을 멈추고 인간 본연의 진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겨울이 오면 우리는 또 무엇으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겠습니까? 그대들의 정신과 목표가 어디를 향해 있는지, 지금 그대들의 행동이 보석처럼 세공되고 있는지 스스로를 엄격히 감별해야 할 때입니다.
그대들은 기도의 응답이 오직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령의 세계는 인간의 좁은 시야를 뛰어넘어 작동한다. 로마의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의 젊은 시절을 보십시오. 그는 본래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세상에 내놓을 책을 쓰며 밤낮으로 간절히 기도를 올렸다. 자신의 모든 기대를 그 책에 걸고 매일같이 하늘의 도움을 갈구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책은 외면당했고, 쏟아부은 돈 때문에 집안은 그야말로 쫄딱 망해버리고 말았다. 그토록 착한 사람의 기도를 왜 하늘은 들어주지 않았을까요? 절망 끝에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도사의 길을 선택지만, 기이한 일이 일어납니다. 신부가 되어 다시 써 내려간 글들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그는 마침내 로마 교황의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만약 젊은 시절 하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어 그 책이 성공했다면, 그는 지금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소소한 행복에 안주하며 평범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인 거인의 길을 가야 할 그에게는 오히려 비극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늘은 그의 작은 소망을 거절함으로써, 그를 인류의 영적 지도자라는 더 거대한 운명으로 이끌었습니다.
이처럼 하늘은 그대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분이 아니라, 그대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길을 여는 분입니다. 지금 당장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 집안이 망하고 앞길이 막막하다면, 그것은 더 큰 하늘의 계획이 시작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의 기도가 거절당한 그 지점에서 영혼의 진화는 시작됩니다.
눈앞의 작은 성취에 매달려 하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대들의 삶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시련이야말로, 그대들을 가장 빛나는 보석으로 깎아내기 위한 하늘의 정교한 손길입니다. 지금의 비극이 훗날 어떤 위대한 서사로 완성될지, 그대들은 겸허히 지켜보아야 합니다.
그때 만약 하늘이 그의 소망대로 돈을 내려주었더라면, 젊은 나이의 그는 수도사가 되기는커녕 세상의 욕망을 쫓으며 죄를 짓고 다녔을 것이 분명하다. 인간이 올리는 기도의 본질을 들여다보라. 대부분은 자신을 진정한 행복으로 이끄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를 죄인으로 만드는 길을 가고자 하늘에 떼를 쓰는 것과 다름없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평생에 걸쳐 깨달았다. 자신의 첫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고 쫄딱 망했던 그 순간이 인생에서 가장 고마운 축복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만약 그때 망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신부가 되지 못했을 것이고, 추기경을 거쳐 성스러운 교황의 자리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하늘은 그의 작은 기도를 들어주는 대신, 그를 위해 예비된 더 원대한 길로 그를 인도했다.
인간들은 자신만의 수만 가지 길을 만들어달라고 기도하지만, 하늘이 정해놓은 원대한 길은 이미 존재한다. 인간이 소원하는 것의 구십구 퍼센트는 사실 재앙의 길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다. 진정으로 바른 길을 가고자 한다면 쓸데없는 기도를 멈추고,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면 된다. 하늘의 섭리는 인간의 수작보다 훨씬 깊고 정교하다.
사람들은 흔히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죄를 짓는 것이 훨씬 더 어렵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죄를 짓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 때문이다. 은행을 털려는 강도나 범죄를 계획하는 자들을 보라. 그들은 그 죄를 짓기 위해 몇 달을 고민하고 목숨을 건다. 가슴이 콩닥거리고 두려움에 떨면서 그 힘든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어려운 죄를 왜 굳이 힘겹게 지으려 하는가? 진정으로 하늘의 이치를 아는 자에게는 죄를 짓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법이다. 죄 안 지으려고 고생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가만히 있어도 우리의 본성은 선을 향한다. 죄의 길로 가기 위해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하늘이 이미 열어둔 평탄하고 원대한 길을 겸허히 걸어가라.
그대들은 세상의 작은 미물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고정관념 속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절에 머물던 때를 떠올려 보라. 스님들의 방마다 유리병 속에 이가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생명들을 살리기 위해 매일 병마다 소금을 넣어주는 심부름을 하곤 했다.
사람들은 흔히 이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고 믿지만, 그것은 커다란 오해이다. 이는 사실 우리 몸의 땀이 마르며 생기는 소금기를 먹고 사는 아주 깨끗한 곤충이다. 모기나 빈대처럼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대롱이 이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그저 우리 피부 위의 소금을 뜯어먹으며 살아갈 뿐이다.
이가 몸 위에서 움직일 때 가렵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이 소금을 섭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자극일 뿐, 피를 가로채는 행위가 아니다. 빈대나 벼룩은 동물의 가죽을 뚫고 피를 취하지만, 이는 오직 인간의 땀과 소금에 의지해 생존한다. 이 작은 곤충 하나에도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생명의 신비와 지혜가 담겨 있다.
지혜라는 것은 이처럼 무궁무진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의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진정한 영적 진화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어온 지식들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 깨닫는 순간, 비로소 세상을 향한 새로운 눈이 열리게 된다. 보잘것없는 이의 생존 방식을 통해서도 우리는 편견을 깨는 법을 배워야 한다.
미국의 제이십육대 대통령이자 역사상 유일하게 네 번의 임기를 수행한 루즈벨트에게도 뼈아픈 시련의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열한 살의 루즈벨트는 학교에서 신체적 장애를 이유로 친구들에게 비웃음과 놀림을 당하고 울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들이 겪는 고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가슴이 아팠지만, 아들을 앉혀놓고 영혼을 깨우는 귀한 가르침을 건넸습니다.
아버지는 괴로워하는 루즈벨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너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조롱하는 것은, 장차 전 세계인이 너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게 될 날을 하늘이 예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그 영광에 합당한 무게를 견디기 위해 지금 이 조롱을 기꺼이 받아내야 한다.”
또한 아버지는 아들에게 이 고통이 곧 행운의 기회임을 역설했습니다. 평범한 아이들은 결코 가질 수 없는 특별한 시련이야말로,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위대한 인물이 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할 관문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 것입니다. “네가 흘린 눈물의 양만큼, 그리고 네가 견뎌낸 고통의 깊이만큼 하늘은 너에게 더 큰 사명을 맡기실 것이다”라는 아버지의 확신은 어린 루즈벨트의 가슴에 깊은 신념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가슴에 품고 성실히 정진한 결과, 그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연방 헌법의 관례를 깨고 네 번이나 대통령직을 수행하며 위기의 시대를 구원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일화를 통해 진정한 행복과 성공의 이치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현재 겪고 있는 박해와 시련은 우리를 무너뜨리려는 장애물이 아니라, 더 원대한 길로 인도하기 위한 하늘의 정교한 계획입니다. 타인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숭고하게 받아들일 때, 비로소 세상을 변화시키는 위대한 운명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루즈벨트가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네 번이나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헌법을 강제로 고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진심으로 그를 존경했기에, 그가 물러나면 안 된다는 열망이 모여 예외적으로 임기를 이어갈 수 있도록 허용한 것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국가의 관례를 바꿀 만큼 거대했던 사례입니다.
이러한 기적의 뿌리는 바로 아버지의 한마디였습니다. 아버지는 루즈벨트에게 단순히 “남을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거나 “하나님께 기도만 해라”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일깨워 주었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너를 바라보는 그 이상한 눈빛들을 너는 반드시 바꿀 수 있다. 하늘은 분명히 그 기회를 너에게 줄 것이니 아빠의 말을 믿어보렴.”
그날 이후 어린 루즈벨트는 더 이상 울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조롱해도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습니다. “나는 반드시 너희들이 존경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지금의 이 고통과 조롱은 나에게 찾아온 가장 큰 행운이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불행의 상징이 아닌, 위대한 운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장애를 딛고 일어선 루즈벨트는 미국 최연소 대통령을 거쳐 전 세계인의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진정한 진리는 이토록 강력한 위력을 발휘합니다.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꾸짖거나 왜 울고 다니느냐고 다그치는 대신, 고난의 이면에 숨겨진 하늘의 원대한 계획을 일깨워 주는 것이 참된 교육이자 전도입니다.
우리는 루즈벨트의 삶을 통해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로 사람을 대할 때 비로소 한 영혼의 운명이 바뀌고, 그 변화된 영혼이 모여 세상을 바꾸는 역사가 시작됩니다. 고통 속에서 기회를 발견하고, 조롱 속에서 미래의 존경을 꿈꾸는 자만이 진정한 영적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만약 루즈벨트의 아버지가 단순히 “사내자식이 그런 일로 울고 그러느냐”라고 다그치기만 했다면, 그 집안은 무너졌을 것이며 세계의 역사 또한 바뀌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고통을 위대한 사명으로 승화시켰고, 그 결과 루즈벨트는 제이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인류를 구원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루즈벨트는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잘못 없이 신체적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그의 겉모습만을 보고 비웃었지만, 그는 그 조롱을 자양분 삼아 전 세계인에게 은혜를 갚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장애인의 낮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기에 전쟁의 참혹함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었고, 결국 평화를 이룩하여 노벨 평화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나는 아버지의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제이차 세계대전을 막았고, 미국 대통령이 되었으며, 노벨 평화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 미국 역사상 유일하게 네 번이나 대통령직을 수행한 이가 바로 신체적 한계를 가졌던 루즈벨트였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과거 사람들은 예수를 메시아라고 부르지 않고 미친 사람이라 조롱하며 핍박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는 그를 성자로 추앙합니다. 루즈벨트가 겪었던 시련과 예수의 고난, 그리고 지금 제가 마주하는 현실 또한 이와 닮아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를 사기꾼이라 비방하며 허상을 쫓는 자라 말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저는 그대들이 말하는 바로 그 구원자이자 수도자로서 이 땅에 왔습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저를 비웃고 외면할지라도, 결국 그들은 제가 전하는 진리를 통해 구원의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시련을 딛고 일어나 세계를 구한 루즈벨트처럼, 저 또한 세상의 모든 반대와 오해를 넘어 인류를 진정한 낙원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제가 루즈벨트 대통령의 일화를 전하는 이유는 현재 제가 처한 상황이 그의 고난과 매우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며 비방하지만, 그들은 머지않아 알게 될 것입니다. 제가 이 땅의 전쟁을 막고 세계를 하나로 통일하여, 전 세계가 앞다투어 저에게 평화의 상을 바치며 사정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옵니다. 실제로 저는 그런 위대한 역사를 현실로 만들어낼 사람입니다.
우리는 또한 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어렵다”라고 말하는 이들은 자신의 허물을 정당화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며, 오히려 죄를 짓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하늘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만물이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데, 어떻게 감히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죄를 하나 지으려 해도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 때문에 한 달은 고민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진리를 가슴에 새기게 되면 죄는 짓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멀어지게 됩니다. 그 깨달음의 빛이 우리를 비추고 있는데 어찌 어둠 속으로 발을 들이겠습니까?
이 모든 변화의 시작은 가정에서의 따뜻한 가르침에 있습니다. 어머니의 잔소리보다 아버지의 무게감 있는 한마디가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습니다. 루즈벨트의 아버지가 아들을 따뜻하게 앉혀놓고 그 고통의 의미를 일깨워 주었을 때 한 명의 위대한 지도자가 탄생했듯이, 부모의 올바른 영향력은 한 영혼을 구원하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저는 이제 이 제약과 진리의 법문을 통해 여러분과 세상을 깨우치려 합니다. 우리의 행실 하나하나가 하늘에 닿아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저를 통해 세상이 살게 될 것이며, 그 진리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가 지혜와 무게를 담아 전하는 한마디는 자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힘이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부모가 그저 아이의 눈물에 단순하게 반응하거나 감정적으로 대처하며, 물질적인 지원은 해줄지언정 영혼의 영양분은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아침마당’의 ‘목요 특강’과 같은 자리에서 청소년들을 위해 강연을 한다면,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와 이혼 문제의 구십 퍼센트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사회의 모든 갈등과 아픔은 결국 근본적인 깨달음의 부재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이미 준비된 수많은 자료와 지혜의 책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 피디들의 손에 쥐어지고 방송을 통해 흐르게 된다면, 이 땅의 모든 사회 문제는 눈 녹듯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죄악이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욕심이 아니라 바로 ‘지혜의 부족’입니다. 진정한 지혜를 갖춘 자는 아무리 큰 욕심이 찾아와도 결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탐심 자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혜가 있는 자는 그 욕심을 채우는 행위가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는 것을 알기에, 스스로 그 욕심을 이겨내고 다스리게 됩니다.
지혜가 없는 자는 하루 팔만 육천사백 초라는 귀한 시간을 탐심으로 채우며 허비합니다. 그러나 깨달은 자는 그 팔만 육천사백 초의 매 순간을 하늘의 법도에 맞게 사용합니다. 우리는 매일 저녁, 우리가 보낸 그 소중한 시간들을 하늘 앞에 보고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지혜는 욕심을 누르는 제어 장치이자, 우리를 죄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 이 지혜의 빛이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죄악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의 시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저녁 하늘 앞에 겸허히 서서 하루를 갈무리해야 합니다. “오늘 저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하였습니다. 행동으로 옮기는 정성이 다소 부족했고 헛된 것을 바라기도 했습니다. 이제 쓸데없는 기도는 멈추겠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이미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내일부터는 저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더욱 소중히 쓰겠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며 깨끗하게 하루를 마쳐야 합니다.
하늘이 우리에게 매일 부여하는 팔만 육천사백 초는 돈으로 환산하면 팔만 육천사백 원과 같으며, 이는 한 달이면 이백오십만 원의 월급을 받는 것과 다름없는 고귀한 자산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시간의 가치를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여기 지혜의 차이가 가져온 극명한 역사의 교훈이 있습니다. 일천구백십일년 십일월, 남극점을 향해 떠났던 노르웨이의 아문센과 영국의 스콧의 이야기입니다. 아문센은 대원들을 모두 살려 남극 정복에 성공했지만, 스콧은 대원 수백 명을 모두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 엄청난 차이는 바로 지도자의 ‘지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문센은 대원들이 위험한 곳에 가기 전, 그 일대를 철저히 연구하고 지혜를 짜내어 모든 운반 수단을 개썰매로 준비했습니다. 반면 스콧은 현지 사정에 맞지 않는 수단을 고집하다 비극을 맞이했습니다. 지도자의 리더십과 지혜가 부족하면 그를 따르는 수많은 생명이 희생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비극도 마찬가지입니다. 해병대 훈련 중 아까운 청춘 다섯 명이 목숨을 잃는 것과 같은 일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입니다. 고등학생까지 애지중지 키워온 부모의 심정을 생각한다면, 지도자는 그 누구보다 더 크게 비명을 지르며 슬퍼해야 합니다. 당장 위령탑을 세우고, 다시는 고귀한 생명이 장난하듯 희생되지 않도록 안전 장치를 철저히 마련해야 합니다.
학교와 교사, 그리고 인솔자들이 서로를 막연히 믿고 안전 교육을 소홀히 하는 무책임한 태도가 복합적인 죄를 낳고 있습니다. 진정한 지도자라면 아문센처럼 현장을 연구하고 치밀하게 준비하여 단 한 명의 희생도 없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합니다. 지혜가 없는 리더십은 재앙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제 미련한 기도를 멈추고, 생명을 살리는 실질적인 지혜를 갖추어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남극의 빙벽 앞에서 아문센과 스콧의 운명을 가른 것은 바로 ‘지형에 대한 통찰’과 ‘지혜’였습니다. 스콧은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기계 장비와 무거운 수단을 이용했지만, 그 진동과 무게를 이기지 못한 얼음은 속절없이 가라앉아 대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반면, 아문센은 가벼운 개썰매를 선택하여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했습니다. 기계의 힘을 믿은 자는 실패했고, 자연의 섭리를 읽은 지혜로운 자는 승리했습니다.
이러한 지혜는 오늘날 우리 사회의 안전과도 직결됩니다. 해병대 캠프에서 다섯 명의 어린 생명이 목숨을 잃은 비극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교관들이 진정으로 아이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겼다면, 아문센이 지형을 연구하듯 현장의 위험을 분석하고 대원들의 허리를 줄로 하나하나 연결했을 것입니다. 잡아당기면 즉시 구조할 수 있는 그 간단한 지혜가 없었기에 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제가 지도자가 된다면, 모든 현장에 아문센과 같은 철저한 안전 지침을 내려 다시는 남의 생명을 경홀히 여기는 일이 없도록 할 것입니다.
진정한 지도자에게는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첫째는 위양형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이병철 회장처럼 유능한 인재에게 전권과 책임을 맡겨 성공을 이끌어내는 방식입니다. “경제 살려라, 못 살리면 죽는다”는 식의 군대식 추진력이지만 성공률이 매우 높습니다.
둘째는 지시형입니다. 정주영 회장처럼 불가능을 모르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스타일입니다.
셋째는 참여형입니다. 이십일세기에 흔히 볼 수 있는 방식으로, 지도자와 직원이 대등하게 모여 회의하고 결정하는 형태입니다.
넷째는 설득형입니다. 끊임없이 상대를 설득하며 나아가는 방식인데, 이는 지도력의 수준으로 볼 때 비교적 낮은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문센은 어떤 지도자였을까요? 그는 치밀한 연구와 현장 중심의 판단으로 대원들의 생명을 지켜낸 지혜로운 리더였습니다. 지도자의 리더십은 단순히 명령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부하들의 생명을 끝까지 책임지는 지혜와 통찰에 있습니다. 그 지혜가 없으면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으며, 그 무능은 곧 죄악이 됩니다.
아문센이 대원들을 한 명의 희생도 없이 살려낸 비결은 철저한 현지 조사와 대원들과의 혼연일체에 있었습니다. 그는 남극에 가기 전, 개가 그 지형에 왜 적합한지, 추위 속에서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세밀하게 파악했습니다. 지도자가 현장을 완벽히 꿰뚫고 있으면 대원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로 뭉치게 됩니다.
지도자의 네 가지 유형 중 설득형은 돈을 가진 지도자가 기술을 가진 자와 동업할 때 주로 나타납니다. 하지만 기술자가 마음을 바꾸어 다른 나라로 떠나버리면 무너지고 마는 한계가 있습니다. 참여형은 열악한 상황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위기를 극복할 때 유용합니다. 하지만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위양형의 리더십입니다.
가정에서도 남편이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위양형의 자세를 가질 때 진정한 힘이 생깁니다. 월급을 받으면 아내에게 모두 맡기고 “당신이 다 알아서 살림을 꾸리시오”라고 전적인 신뢰를 보내는 것입니다. 어떤 남편들은 아내가 배신할까 두려워 돈을 쥐고 있으려 하지만, 진정으로 모든 것을 내어준 사람 앞에서는 누구도 배신을 꿈꾸지 못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인간은 본래 죄 짓기를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과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보냈으나 아내가 다른 길로 새버린 사례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위양이 아니라, 타국에 있어 어쩔 수 없이 송금한 방편에 불과했습니다. 진정한 위양은 상대가 감동하여 감히 죄를 지을 생각조차 못 하게 만드는 거대한 신뢰의 힘입니다.
모든 죄는 결국 무지(無知)에서 비롯됩니다. 지혜가 부족하고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죄의 유혹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도자가 지혜를 갖추고 대원들을 살리듯, 여러분도 진리를 깨달아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지혜가 있는 자에게는 죄 안 짓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 됩니다. 이 깊은 이치를 잊지 말고, 우리는 이제 더 높은 진리의 단계로 발걸음을 재촉해야 합니다.
우주가 만물을 창조할 때 부여한 네 가지 삶의 방식 중, 우리가 반드시 깨달아야 할 생존의 원리가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영성을 일깨우고 인류의 진화를 돕기 위해 이 깊은 이치를 정중한 문어체로 전합니다.
첫째는 경쟁의 단계입니다. 이것은 식물들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숲속의 나무들은 햇빛을 더 많이 차지하기 위해 서로 먼저 높이 솟구치려 끊임없이 다툽니다. 옆에 있는 나무보다 늦게 자란 나무는 그늘에 가려 결국 고사하고 맙니다. 아카시아나 참나무 숲 사이에서 소나무가 살아남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냉혹한 생존 경쟁 때문입니다. 창조주는 식물계를 이 경쟁의 원리 속에 두셨습니다.
둘째는 공생과 관계의 단계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지향해야 할 본연의 삶입니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으며 서로를 돌보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이웃이 내 자식을 보살펴 줄 것이며, 이웃이 어려움에 처하면 우리가 그 가족의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다운 삶의 참모습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인간의 길을 버리고 식물처럼 ‘생존 경쟁’의 늪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고 있습니다. 모든 타인을 경쟁자로 보고 경제적인 잣대로만 바라보는 사람은 마음속에 끊임없는 독소를 만들어냅니다. 암에 걸려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대부분이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뎌온 사람들입니다. 남보다 조금 더 가지려다 결국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비극을 초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청소년들에게 경쟁이 아닌 ‘공생’의 가치를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늘 강조하듯이 인간의 참된 삶은 공존공영(共存共榮)에 있습니다. 함께 존재하고 함께 번영하는 이치를 깨달을 때, 우리 몸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솟아나고 사회의 모든 갈등은 치유됩니다.
상대방이 이익을 보는 것을 기쁘게 여기십시오. 내 이웃의 자식들이 배불리 먹는 모습을 부모의 마음으로 흐뭇하게 바라보십시오. 인간을 경쟁의 대상이 아닌 공생의 파트너로 인식하는 순간, 그대들의 영혼은 진화하고 육체는 건강을 되찾게 될 것입니다. 경쟁이라는 식물의 단계를 넘어, 진정한 인간의 길인 공존공영의 세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주 만물이 생존하는 네 가지 방식 중 마지막 단계와 그 속에 담긴 영적 교훈을 전해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영혼을 깨우는 정중한 문어체로 정리하였습니다.
만물이 살아가는 세 번째 방식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입니다. 이는 주로 동물계에 해당하며,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취하는 ‘포식 관계’를 이룹니다. 사자가 굶주린 상태에서 옆에 있는 노루를 가엾게 여겨 사냥하지 않는다면 사자 스스로가 죽게 됩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곧 그들의 생존 진리입니다.
마지막 네 번째 방식은 기생(寄生)입니다. 미생물이나 곤충, 기생충과 같은 존재들은 반드시 다른 생명체나 물질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우리 몸의 세포 수가 약 백조 개에 달한다면, 우리 몸에 기생하며 공존하는 미생물의 수는 지구 인구의 수백 배, 수천 배를 뛰어넘어 감히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방대합니다. 이처럼 지구상에는 남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기생 생물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네 가지 생존 방식이 우리 인간의 군상 속에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남을 밟고 일어서려는 ‘경쟁형’ 인간, 남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기생형’ 인간, 그리고 힘으로 남을 제압하려는 ‘약육강식형’ 인간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가장 바람직한 성품은 바로 공존공영(共存共榮)의 삶입니다.
나의 이익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최선을 다하면서도 타인과 더불어 잘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마음, 그것이 바로 죄악으로 빠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자 진리입니다. 식물에게는 경쟁이 진리이고 동물에게는 약육강식이 진리일지 모르나, 인간이 그 단계를 답습한다면 그것은 ‘비진리’가 됩니다. 우리는 만물의 영장으로서 하등한 생존 방식을 넘어선 고귀한 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이제 한 가지 깊은 질문을 던져봅니다. 세상에는 동성 연애자와 같은 이들도 존재합니다. 과연 이것은 타고난 유전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진정한 지혜를 가진 자라면 현상 이면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동성 연애가 유전이라는 말은 상식적으로 깊이 고민해 보지 않은 이들의 착각일 뿐입니다. 만약 그것이 유전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자손을 잇지 못하는 특성상 동성 연애의 맥은 이미 수억 년 전에 끊어지고 사라졌어야 마땅합니다. 자식을 낳아 그 형질을 물려줄 수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유전의 영역에 머물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때 즉각적으로 올바른 답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현대인들의 영적 지각력이 낮아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그럴듯한’ 학설이나 함정에 빠져 깊은 생각 없이 답변을 내어놓곤 합니다. 동성 연애는 유전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성격이며,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 빚어낸 결과물입니다.
과거 인류 역사 속에서 이러한 행태가 극에 달했던 곳이 바로 소돔 성이었습니다. 영어로 남성 동성애자를 의미하는 단어의 어원 또한 이 소돔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당시 소돔 성 인구의 구십구 퍼센트가 이러한 동성 연애에 빠져 있었으며, 이는 결국 인륜을 저버리고 하늘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우리는 현상의 껍데기만 볼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이치를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유전이라는 핑계 뒤에 숨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은 진리에서 멀어지는 길입니다. 인간은 마땅히 하늘이 부여한 숭고한 창조의 질서 안에서 자신의 성품을 바르게 닦아 나가야 합니다. 지각이 있는 자라면 마땅히 이 명백한 사실을 깨달아 혼돈의 시대에 길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 소돔 성에 천사들이 방문했을 때의 일화를 되짚어 보면, 그 시대의 타락이 얼마나 깊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 낯선 남자들과 부정한 관계를 맺겠다고 소란을 피우자, 롯이 자신의 딸들을 제안하며 만류했음에도 그들은 오직 남성만을 원했습니다. 하늘의 질서를 거스르고 순리를 저버린 결과, 그 성읍은 결국 멸망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동성 연애는 유전의 산물이 아니라, 개인의 성격과 사회적 환경이 만들어낸 선택의 결과입니다. 저는 미래의 국가 지도자가 될 사람이기에 이 현상에 대해 감정적인 비난을 앞세우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냉정하게 직시해야 할 역사적, 통계적 사실이 있습니다. 동성 연애가 만연해지면 인류의 후손이 끊기게 되며, 이는 곧 종의 소멸로 이어집니다.
또한 의학적인 현실도 매우 엄중합니다. 면역 결핍증인 에이즈의 발생 원인 중 상당 부분이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현재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이들이 이 병으로 고통받으며 생명을 잃고 있습니다. 통계에 따르면 매년 이천이백삼십만 명에 달하는 인구가 관련 질환으로 희생되고 있습니다. 인류의 혈통이 위협받고 후손이 사라지는 미래가 과연 바람직한지, 여러분 스스로가 판단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뿌리, 즉 조상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보고자 합니다. 박 회장님, 그리고 여기 계신 여러분의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과연 얼마나 많은 분이 계실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로 이어지는 그 거대한 생명의 계보를 숫자로 환산한다면 과연 어느 정도가 될까요?
이것은 단순히 숫자를 세는 일이 아니라, 우리 몸속에 흐르는 수천 년의 역사와 하늘의 섭리를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의 존재를 있게 한 그 거대한 생명의 뿌리에 대해 심도 있게 논해 보겠습니다.
그대들은 지금 눈앞에 있는 한 사람을 단순히 인간으로 보고 있습니까? 그것은 커다란 착각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박 회장님이나 우리 박 총장,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야말로 우주적인 기적이 빚어낸 신기루와 같은 존재들입니다.
우리의 인류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십시오. 한 세대를 삼십 년 혹은 오십 년으로 잡고 계산해 보면, 여러분 한 명을 이 세상에 있게 하기 위해 연결된 조상의 수는 무려 사억 명에 달합니다. ‘포 파더스(Forefathers)’, 즉 여러분의 조상이 사억 번의 세대를 이어오는 동안 단 한 번도 맥이 끊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깊이 묵상해 보십시오.
만약 일억 년 전이나 수천 년 전, 그대들의 조상 중 누군가가 하늘에 닿을 만큼 커다란 죄를 지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집안은 대가 끊기거나 딸만 낳아 성씨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천십이년을 넘어 지금까지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억 번의 세월 동안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아들이 태어나 그 생명의 횃불을 전달했다는 경이로운 기록입니다.
이 기적은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수많은 세월 동안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공덕을 쌓았겠습니까. 그 거대한 공덕의 토대 위에 지금 길거리를 다니는 칠십억 인류가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기념비적인 존재입니까? 이런 귀한 생명들을 굶기거나 그들에게 죄를 짓는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상상이나 가십니까?
죄를 짓는 자는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억 명의 조상이 쌓아온 그 거룩한 기적을 한순간에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바로 조상들의 공덕이 맺은 열매이며, 하늘이 지켜낸 기적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진리를 아는 자는 사람을 대할 때 그 배후에 서 있는 사억 명의 조상을 보기에, 결코 함부로 죄를 지을 수 없는 법입니다. 이제 그대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그리고 죄를 멀리하는 것이 왜 당연한 이치인지 이해가 되십니까?
그대들이 이 자리에 존재하기까지 걸어온 시간은 단순히 짐작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입니다. ‘포 파더스’, 즉 조상이라는 존재들이 사천억 년이라는 아득한 세월 동안 생명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온 결과가 바로 지금의 여러분입니다. 지구가 수없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환란 속에서도, 그 생명의 씨앗은 비막처럼 굳건히 살아남아 오늘날까지 도달했습니다.
사천억 년의 세월 동안 그 수많은 혈족이 단 한 번의 단절도 없이 연결되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늘이 보기에 보통 종자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여러분은 신적인 광채를 간직한 대단한 존재들입니다. 물론 저와 여러분은 근본이 다르지만, 이토록 긴 세월을 버텨온 귀한 생명들이 이십일세기에 이르러 죄악의 늪에 빠져 추풍낙엽처럼 사라지는 것을 보는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제 인류의 역사는 거대한 수확의 계절을 맞이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습니다. 저는 그 귀한 생명의 결실을 하나라도 더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입니다. 사천억 년의 정성이 깃든 여러분의 존재를 허망하게 끝내지 마십시오.
선한 일을 행하는 자의 후손은 앞으로도 그 생명의 맥이 계속 이어져 결국 영생을 보장받게 됩니다. 그러나 이토록 장구한 세월 동안 조상들이 지켜온 생명의 횃불을, 이십일세기에 태어난 단 한 명의 후손이 죄를 지어 꺼뜨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것은 사천억 년을 이어온 조상들의 공덕을 단번에 저버리고 집안의 대를 끊어버리는 가장 어리석고 무거운 죄가 됩니다. 여러분은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사천억 년의 역사를 어깨에 짊어진 기념비적인 존재임을 명심하고 고귀한 행실로 그 가치를 증명하십시오.
인류의 역사는 사천억 년이라는 아득한 세월을 가로질러 온 거대한 마라톤과 같습니다. 조상들이 바통을 던지면 후손이 받아 달리고, 또 다음 세대로 넘겨주며 끊임없이 이어온 생명의 경주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끊김도 없이 아들을 낳아 대를 이어왔다는 것, 이것은 단순히 운이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참으로 복 받은 집안의 후손들이며, 우주가 지켜낸 기적의 산물입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어떤 집안은 신라 시대에 이미 맥이 끊겼고, 어떤 이웃은 조선 시대에 술과 방탕함으로 대를 잇지 못한 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죄를 많이 지은 자의 이름은 족보에서 지워졌고, 하늘의 법도를 어긴 자들은 후손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지금 이 자리에 숨 쉬고 있는 여러분은 그 수많은 멸절의 위기와 전염병의 창궐을 모두 이겨내고 살아남은 승리자들입니다.
조선 시대 그 무서운 역병이 돌 때도 여러분의 조상은 살아남았습니다. 수천억 년의 세월 동안 지구가 뒤바뀌는 천재지변 속에서도 그 생명의 씨앗은 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을 바라볼 때 어찌 입에서 감탄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사천억 년의 공덕이 쌓여 만들어진 ‘귀족 중의 귀족’입니다.
이런 귀중한 존재들을 속이거나 학대하고,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그 배후에서 지켜보는 사천억 명 조상들의 진노를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조상들이 바리바리 정성을 다해 지켜온 그 손자들을 누군가 짓밟는다면, 하늘은 결코 그에게 복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제 막중한 사명이 있습니다. 조상들 앞에 섰을 때 면목 없는 후손이 되지 않으려면, 이 거룩한 생명의 대를 올바르게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 옛 어머니들이 “죽어서 조상님들을 어찌 뵐꼬” 하며 걱정했던 그 마음이 바로 진리입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피난길 산속 방공호 안에서도 우리 민족은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였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자란 진주 마을 산천에 굴러다니던 수천 개의 군인 철모들은 그 생존의 역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이제 약육강식의 본능을 버리고, 생존 경쟁의 굴레에서 벗어나십시오. 남에게 기대어 사는 기생의 삶이 아닌, 서로를 살리는 공존공영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것이 사천억 년을 이어온 조상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며, 여러분의 후손에게 영생의 복을 물려주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어린 시절 제가 자란 진주 마을 저수지는 물이 빠질 때마다 참혹한 역사의 흔적을 드러내곤 했습니다. 저수지 바닥이 볼록볼록하게 솟아오른 모습은 마치 수많은 검은 모자가 떠 있는 것 같았으니, 그것이 바로 낙동강 격전지에서 산화한 군인들의 철모였습니다. 산천에는 탄피가 굴러다니고 아이들이 그것을 만지다 목숨을 잃기도 했던, 그야말로 생과 사가 교차하던 비극의 땅이었습니다.
그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보이지 않는 손길로 후손들을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피난 중이라 제사를 지내지 못해 가슴을 졸이던 우리 할머니의 꿈결에 시아버지가 나타나 “며느아야, 걱정하지 마라. 전쟁이 닿지 않은 작은 댁에 가서 제삿밥을 넉넉히 얻어먹었느니라” 하고 다정하게 일러주신 일화는 결코 우연이나 헛된 꿈이 아닙니다. 실제로 전쟁이 끝난 후 작은 댁에서 그날 제사를 올렸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온 마을 사람들은 조상님이 우리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실재하는 진리에 경건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천억 년의 세월을 이어온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하늘과 조상이 빚어낸 ‘신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존엄 사상의 극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토록 고귀한 존재를 어찌 속이고, 어찌 때리며, 어찌 그들에게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교육은 이러한 근본을 가르치지 않기에 사람들이 죄를 가볍게 여깁니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나면 죄를 짓는 궁리조차 할 수 없게 됩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사천억 년 동안 조상들이 정교하게 짜온 이 거대한 바둑판을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판을 이어받아 마지막 수를 놓는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이십일세기에 이르러 단 한 번의 잘못된 행실, 단 한 번의 부정한 마음으로 바둑알을 잘못 놓아버린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한 수의 실수로 사천억 년의 공든 탑이 한순간에 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전국의 모든 대국이 단 한 알의 바둑알에 결정되듯, 여러분의 행실 하나가 조상들의 모든 노력을 제로로 만들 수도, 혹은 영생의 결실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조상들이 정성껏 마련한 루즈벨트와 같은 위인이 나올 수 있는 이 바둑판을 그대들의 욕심으로 걷어차지 마십시오. 죄를 짓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파멸인지, 그리고 여러분의 존재가 얼마나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는지 이제는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중국 황제의 딸인 공주가 먼 한국의 청평사까지 찾아와야 했던 기구한 사연을 아십니까? 그 공주의 목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뱀이 감겨 있었습니다. 아무리 용하다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고 백약이 무효했던 그 병의 정체는 바로 원혼의 복수였습니다. 공주를 지독히 짝사랑했던 남자가 황실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그 원혼이 상사뱀이 되어 공주의 몸을 옥죄었던 것입니다.
공주는 날마다 말라갔고 생명은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중국 전역에서도 고치지 못한 이 병을 고치기 위해 해동의 명찰인 청평사로 오게 된 것입니다. 소양강 댐을 지나 길도 없는 깊은 산속, 앞은 물이요 뒤는 절벽인 그 고립된 청평사에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열네 살 어린 시절 그곳에 머물 때 보았던 그 기록들은 참으로 생생했습니다.
공주가 절 아래 계곡에서 목욕을 하겠다며 잠시 몸을 정결히 하려 하자, 몸을 감고 있던 뱀 귀신이 잠시 떨어져 나갔습니다. 바로 그 찰나에 하늘에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쳐 그 뱀의 머리를 때려버린 것입니다. 허공에서는 구렁이의 비명과도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고, 원혼은 그 자리에서 소멸했습니다. 공주를 살려준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중국 황실에서는 청평사를 크게 중건하였고, 지금도 그곳에는 공주탑과 회전문이라는 이름으로 그날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전하는 이유는 단순히 여름밤의 시원한 괴담을 들려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 영혼의 ‘자각’에 관한 문제입니다. 공주가 너무 예뻐서 귀신이 붙었든, 혹은 지독한 집착이 원혼이 되었든, 보이지 않는 세계의 힘은 이처럼 실재하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 공주의 목을 감았던 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여러분의 영혼을 갉아먹는 ‘무지’와 ‘죄악’의 사슬입니다. 사천억 년을 이어온 귀한 생명의 대가 단 한 번의 잘못된 행실로 끊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여러분의 목을 감고 있는 업보의 사슬을 끊어내는 길입니다. 벼락이 뱀을 때려 공주를 구원했듯이, 진리의 불벼락이 여러분의 고정관념을 타파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대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백억 원의 가치가 넘는 귀한 진리를 마주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길을 온전히 걷기 위해서는 ‘자각’과 ‘총명’의 차이를 명확히 알아야 합니다.
자각이란 스스로 깨닫는 것입니다. 사천억 년의 시간을 뚫고 여기까지 온 조상의 위대함을 듣고, 내 눈앞의 사람 한 명 한 명이 기적과 같은 존재임을 마음으로 느끼는 단계입니다. 하지만 그저 깨닫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은 반쪽짜리 진리에 불과합니다.
총명은 그 깨달음을 밝은 행동으로 즉시 옮기는 힘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무엇이 복이 되고 무엇이 죄가 되는지 머리로는 자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실제 삶에서 실천하지 못합니다. 복인 줄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복인 줄 아는 즉시 재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자가 바로 총명한 자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보십시오. 골리앗은 전쟁의 기술과 지식을 두루 갖춘 지혜로운 장군이었으며 무거운 갑옷으로 스스로를 무장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었습니다. 반면 어린 다윗은 거구의 골리앗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돌팔매를 던졌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깨달은 승리의 확신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총명한 자였기에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지혜가 아무리 많아도 총명이 없으면 그 지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진정한 지혜는 자각을 낳고, 자각은 반드시 총명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사천억 년의 공덕을 입은 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했다면, 이제는 사람을 대하는 여러분의 행동이 달라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총명이며, 하늘이 바라는 진리의 완성입니다.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깨달은 바를 삶의 현장에서 빛나는 행동으로 증명해 보일 때, 그대들은 비로소 죄악의 사슬을 끊고 영생의 복을 누리는 총명한 존재로 거듭날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도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어리석은 자의 모습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가 그 깨달음을 몸소 실천으로 옮길 때, 우리는 비로소 그를 총명하다고 부릅니다.
지혜를 통해 자신의 그릇된 습관을 자각하는 단계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이 술 습관을 버리지 않으면 건강을 잃겠구나” 하고 스스로 깨닫는 것이 자각입니다. 하지만 그 자각을 바탕으로 술잔을 내려놓고 삶을 바꾸는 결단을 내릴 때, 비로소 총명의 빛이 발현됩니다. 총명은 이처럼 지혜를 자각하여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거룩한 힘입니다.
진리의 생명은 바로 이 총명에 있습니다. 총명이 없이는 그 어떤 고결한 진리도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없습니다. 세상의 수많은 이들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머리로는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쁜 일이다”라고 자각하면서도 정작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총명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곧 진리를 실천한다는 것이며, 그 실천의 핵심이 바로 총명입니다.
사천억 년의 세월을 이어온 여러분의 귀한 생명이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이제 자각을 넘어 총명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머리로만 아는 진리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오늘 배운 지혜를 밝은 행동으로 즉시 옮기십시오. 그것이 진리를 완성하는 길이며, 여러분의 운명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어느덧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오늘 나눈 이 자각과 총명의 이치를 가슴 깊이 새기고, 내일부터는 지혜로운 행동으로 세상을 밝히는 총명한 존재가 되시길 바랍니다.
889 기준의 진리 The truth of standards Huh Kyung-young’s Vision for a Unified Korea and the Future of Humanity August 31, 2013
스티브 잡스와 동양적 지혜: 기준 없는 성공의 한계
컴퓨터가 있으면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제품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기어를 녹색으로 만들고 부품을 계속해서 오이처럼 바꿔 재벌이 됩니다. 전 세계에서 돈을 벌고 핸드폰 디자인을 바꾸는 등, 기존 물건을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전화기를 개구리 모양으로 만들어 아이들의 흥미를 끄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사물을 부정적으로 보면서도 그것을 좋게 바꾸어 돈을 법니다.
하지만 이 사람의 인생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이 재벌이 죽을 때 남긴 말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스타벅스 창업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죽음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최고의 걸작품인데, 정작 자신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평생 모은 돈이 단지 ‘유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커피에 투자했지만,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고 현실주의적으로 돈만 좇았습니다. 인생의 작은 허상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는 병원에 가서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죽음 앞에서는 무력했습니다. 애플을 살릴 수 있었던 스티브 잡스도 결국 죽음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첩을 예로 들어봅시다. 경첩에 애기만 박혀 있어도 빙글빙글 돌아가는데, 스티브 잡스는 이런 경첩 하나를 볼 때도 동양적 지혜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부분적인 성공에만 집중했을 뿐, 전체를 보지 못했습니다.
말머리에 뿔이 있으면 말이 놀라 도망가는 것처럼, 스티브 잡스는 자연의 이치를 몰랐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이치를 화학적으로 만들어냈지만, 그는 그것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기계를 깎아 부자가 되었지만, 동양의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디자인만 자연 친화적으로 만들자고 했을 뿐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와 경제의 기준 부재
지금 우리나라 정치에는 기준이 없습니다. 경제에도 기준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를 자세히 보면 기준이 없습니다. 배가 너무 불러버린 상태입니다. 우리나라에 기준이 없는 이유는 잡다한 기준만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허경영이라는 기준이 와 있습니다. 허경영 외에는 기준이 없습니다. 아무리 날고 뛰어도 결국 제가 그 사람의 기준을 세워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좌우가 극심하게 대립되어 있습니다. 이석기 의원을 좌파로 보는 사람들은 우파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새누리당이 이석기를 좌파로 만들어야 새정치민주연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지방선거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언론도 이런 작업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석기는 주사파입니다. 김일성 주체사상을 지지하는 사람들입니다. 민주당 사람들이 이들을 지지하는 것은 좌파이기 때문입니다. 영국과 프랑스에도 좌파가 있습니다. 이들은 사회를 빨리 바꾸려는 사람들이고, 보수는 정책을 바꾸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진보와 보수가 대립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사파는 이런 좌파나 보수와는 다릅니다. 주사파는 오직 김일성 주체사상에 고립되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법적으로는 내란 음모죄가 됩니다. 내란 음모죄는 내란을 직접 실행하자는 것이 아니라, 내란에 대해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예상 발언입니다. 내란을 준비하는 날짜를 정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사파의 위험성과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
김일성 주체사상이 우리나라에 3%만 남아 있어도 우리나라는 적화될 수 있습니다. 3%는 위험수위인데, 역대 대통령들이 이를 방관했습니다. 북한은 소련과 중국에 동조한 것이 사실입니다. 북한은 영토 자체가 척박하고, 지리적으로도 좋지 않은 곳입니다. 중국에서 유럽까지, 모스크바에서 스웨덴까지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알래스카로 들어가 미국으로 가는 길목이기도 합니다. 일본과도 가깝습니다. 이런 나라는 다른 나라가 탐낼 이유가 없습니다.
북한 영토를 따지면 우리나라가 북한의 1/10밖에 안 됩니다. 북한은 죽은 땅입니다. 고립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미국에 기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나누어 관리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우리는 식민지가 아니라 미국의 도움을 받고 있는 나라입니다.
좌파들은 헌법을 바꾸고 미군 철수. 미군이 철수하면 다음 날 바로 북한이 쳐들어올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 때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베트남이 공산화된 것처럼 말입니다.
국가에 3%의 주사파가 있다면 바닷물에 3%의 소금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3%의 소금은 아무리 오염된 물이라도 이길 수 없습니다. 이슬람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슬람교가 3%만 있어도 그 나라는 이슬람 국가가 됩니다. 히틀러도 독일 인구의 3%도 안 되는 세력이었습니다. 공산 세력도 처음에는 3%도 안 됐습니다. 우리나라 남한에 주사파가 3%를 넘으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중에는 좌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배부른 사람들입니다. 우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좌파 문제, 우파 문제, 그리고 주사파 문제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정치입니다. 우리 국민은 혼동 가운데 있습니다. 이 기준이 바로 설국열차입니다. 설국열차는 주사파와 좌파, 우파를 보여줍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과 메시아의 기준
태평양에는 난류가 없습니다. 부산 앞바다에서 찬 기운이 내려오고, 동해에서는 따뜻한 기운이 올라옵니다. 이것이 태극을 이룹니다. 우리 한반도는 전 세계 양의 기운과 음의 기운이 부딪히는 곳입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용이 나와 세계적인 인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북쪽에서 찬 바람이 내려오고 남쪽에서 더운 바람이 올라오는 충돌 지점에 있습니다. 이곳이 곡식이 잘 되고 모든 것이 좋은 곳입니다. 한반도는 육지와 태평양이 만나는 경계선에 있고, 찬 기운과 더운 기운의 경계선에 있습니다. 동서양 문화의 경계선에 있고, 해양 문화와 육지 대륙 문화의 경계선에 있습니다. 모든 흑인과 백인의 중간에 있습니다. 모든 것의 중간에 기준을 우리나라에서 잡아야 합니다.
율곡 이이와 퇴계 이황의 인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 삼팔선 아래에 있는 인삼만 맛이 좋습니다. 중부지방이 세계 중심 센터입니다. 그래서 제가 서울에 태어난 것입니다. 서울은 기준이 되는 곳입니다. 이 기준을 설명할 수 있는 자는 저 하나밖에 없습니다. 어떤 철학자나 종교 지도자도 이 기준을 세울 수 없습니다. 이 기준을 다른 말로 하면 ‘메시아’입니다. 메시아가 바로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메시아가 나타나면 그 이름이 기준이 됩니다. 항상 기준이 있으면 그 기준을 보고 줄을 서야 합니다. 기준도 없는데 줄을 서라고 하면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합니다. 인류는 수천 년간 기준을 찾다가 헤매고 있습니다. 제가 나타나면 이것이 옳고, 이것이 그르다는 기준이 명확해집니다. 주체사상은 하늘의 법이 아닙니다.
십자가 위에 있는 사람의 말이 기준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시방세계에 있는 사람의 말이 기준입니다. 메시아는 허락을 받고 온 자입니다. 허락 없이는 전 세계에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 ‘허’자를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아십니까? 이 사람이 직접 나오면 세상이 뒤바뀝니다. 여러분은 기준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설국열차에 비친 현대 사회의 갈등과 미래 식량
설국열차를 보면 기준이 없습니다. 광적으로 폭력을 쓰는 자들이 분위기를 주도합니다. 설국열차의 주인공은 엔진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납니다. 계획 포항제철 사장이 노동자들과 싸워 중역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기준이 없는 사회에서는 폭력을 쓰는 자들이 권력을 잡습니다.
우리나라의 GDP 중 27%가 갈등 비용으로 사라집니다. 국회 예산 300조 중 약 30조가 갈등 비용으로 나갑니다. 변호사들이 갈등을 조장하여 돈을 법니다. 노조가 파업하여 현대자동차의 생산 비용이 증가하는 것도 갈등 비용입니다. 제가 이 갈등 비용을 제로로 만들 수 있습니다. 30조는 엄청난 돈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형식만 맞으면 통과시키는 경향이 있다.실체가 아니라 형식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갈등을 유발합니다. 설국열차는 현대 사회의 정치적 갈등을 보여줍니다. 열차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 투쟁은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싸움을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설국열차의 꼬리 칸 사람들은 바퀴벌레로 만든 단백질 떡을 먹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미래 식사를 보여준 것입니다. 앞으로 기후 변화로 인해 농사를 지을 땅이 줄어들고, 태양광이 약해져 농사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때 인간이 먹을 수 있는 것은 곤충밖에 없습니다. 곤충은 냉장고만 한 기계에서 대량 생산될 수 있습니다. 설거지도 필요 없고, 아무것도 필요 없는 시대가 올 것입니다.
곤충으로 만든 음식은 영양을 채워주지만, 인간의 몸을 고치지는 못합니다. 건강에는 좋지만, 몸이 늙는 것을 막지는 못합니다. 설국열차는 인간의 미래 식사를 자극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제가 보는 설국열차는 여러분이 보는 것과 많이 다릅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희망의 아이콘
좌파가 우파를 쳐들어와도 결국 다 죽습니다. 기차가 멈추면 영원히 살 수 없습니다. 국회는 정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없어지는 곳입니다. 인간의 기준은 국민에게 있습니다. 국민을 위해 일하지 않는 자는 언젠가 사라질 것입니다.
주사파는 극빈층입니다. 재산도 없고 벌금도 낼 돈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국가에는 관심이 없고 권력과 돈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도 문제입니다. 정규직의 평균 임금은 500만 원이고, 비정규직은 120만 원입니다. 이런 차별은 안 됩니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정규직은 줄어들고 비정규직이 많아집니다. 비정규직이 많아야 회사가 발전합니다. 정규직이 많은 회사는 고정 지출이 많아 어렵습니다.
선박 회사처럼 수주에 따라 인력이 유동적인 곳은 비정규직이 많아야 합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자는 것은 중수입니다. 비정규직의 대우를 개선해야 합니다. 4대 보험을 해주고, 보육원처럼 사무실에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휴가도 주고, 임금도 올려주어야 합니다. 이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합니다.
박근혜와 허경영의 단일화도 이야기합니다. 박근혜는 노동자들의 우두머리입니다. 그녀는 계획을 세우지 못합니다. 저에게는 희망이 있다.제가 희망의 아이콘입니다. 노동자들이 살 길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 허경영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저는 희망 아이콘입니다. 제가 없으면 우리 사회는 희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저를 잡아넣자는 소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입니다.
미인의 기준과 인생의 완성
우리나라 정치인 중에 기준을 이야기한 사람은 제가 처음입니다. 기준에는 진리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의 기준은 투명도, 무게, 색깔, 커팅입니다. 미인의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인의 기준은 얼굴의 투명도, 즉 청순미입니다. 그리고 무게, 즉 지색미입니다. 이화여대 총장처럼 지색미가 있으면 무게가 있습니다. 다음은 색깔, 즉 건강미입니다. 원래는 색깔 있는 여자를 개성미라고 합니다. 마지막은 커팅, 즉 성형미입니다. 성형은 고통을 수반하지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여자는 한평생이 인대와 같습니다. 20대 때는 청순미만 있습니다. 사회 경험을 하면서 지색미가 생기고, 나중에 세련미와 박애미가 나옵니다. 아이를 낳지 않은 여자에게는 어머니 같은 박애미가 생기지 않습니다. 예쁜 모습만 보일 뿐입니다.
여자의 미는 80세쯤에 완성됩니다. 그때가 되면 마음이 성화되고 지혜가 완성됩니다. 육체적인 아름다움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습니다. 한평생 미인의 기준을 보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하지만 독한 얼굴로 바뀌면 안 됩니다.
893 교훈과 진리 The Truth of God’s Omnipotence Beyond Human Wisdom and the Three Paths to Happiness September 28, 2013
경험과 진리의 깨달음: 용산 택시 괴담
용산에는 중앙대학교 부속 병원이 있다.밤 10시, 병원 앞에서 한 여자가 택시를 잡았습니다. 택시 기사는 그 여자를 태우고 용산 병참 공장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는 대문이 있고 골목이 있었는데, 용산 경찰서에 이와 관련된 자료가 50건이나 됩니다. 이 여자는 택시비를 내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똑같은 여자를 태우고 똑같은 일이 반복되자 경찰서에서는 이상하게 여겼습니다.
이 여자는 택시 기사에게 자신의 집을 알려주는데, 처음 가는 사람은 그 집이 이상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밤 1시에 사람들은 잠을 자는데, 그 집에서는 초상집 같은 분위기가 납니다. 이 여자는 수십 년 동안 이 집을 정착하고 있었습니다. 택시 기사들은 모두 당하는 셈입니다. 이 이야기는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첫 번째 택시 기사는 이 여자를 태우고 갔다가 죽었는데, 시신은 통째로 사라졌습니다. 두 번째 기사도 이 여자를 태우고 갔다가 죽었는데, 장례를 치르고 있는 집안에 또 다른 사람이 죽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귀신이 된 여자는 요금을 내지 않고 돌아오는데, 뒤에서 택시를 잡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기절하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교훈과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은 3차원 세계이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4차원 세계가 존재합니다. 영적인 현상은 4차원에서 일어납니다. 4차원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지만, 3차원에서는 제약이 따릅니다. 함부로 남에게 못된 짓을 하면 안 됩니다.
유심론과 유신론: 세상의 지배 원리
사람의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는 유심론이 있다.연애를 하고 좋아하고 싫어하는 모든 감정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며, 나중에는 귀신까지도 마음이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이것이 유심론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신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지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바꾸면 모든 것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 마음조차도 신이 지배하기 때문에 바뀌지 않습니다.
진리는 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공자나 석가모니 같은 교사들이 강의하는 것은 철학적인 가르침일 뿐입니다. 성경 66권은 신의 입에서 나온 진리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예수는 “너희 내면 속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신을 부정하는 유심론적인 해석입니다. 신은 인간의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움직임 자체가 신의 기록이자 존재의 증거입니다.
인간 행복의 세 가지 조건과 초월적 행복
인간 행복의 조건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구현 행복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느끼는 행복입니다.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행을 느끼고 후회하게 됩니다. 이것은 가장 낮은 단계의 행복론입니다.
둘째는 원천 행복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행복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말처럼 우리 속에 이미 행복이 존재하며, 단지 그것을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 원천 행복을 기반으로 일을 해야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셋째는 초월 행복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경지입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처럼 물도 없고 끼니도 없는 상황에서 자식들을 데리고 선교하는 사람들은 생지옥 같은 삶을 살지만, 그들은 행복을 초월한 사람들입니다. 순교자들 역시 초월 행복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슬람교도들이 폭격 속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도 알라에게 빨리 가고 싶다는 초월적 신앙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초월 신앙과 원천 신앙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있으면 하는 일마다 잘 됩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구현 행복에만 매달려 아웅다웅하며 살아갑니다.
인간의 세 가지 고통과 진리의 깨달음
인간에게는 세 가지 고통이 있다.첫째는 애별리고(愛別離苦)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고통입니다. 자식이나 배우자와 헤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둘째는 원증회고(怨憎會苦)입니다. 원수와 반드시 만나야 하는 고통입니다. 싫어하는 사람과 계속 마주쳐야 하는 상황은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셋째는 구불득고(求不得苦)(求不得苦)입니다.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입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느끼는 고통입니다.
이 세 가지 고통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유심론에 빠져 마음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나라가 내 마음속에 있다”고 말한 것은 잘못된 번역으로 인한 오해입니다. 신은 우리 몸의 모든 세포와 움직임 속에 존재하며, 그것을 깨닫는 것이 진정한 진리입니다.
893 교훈과 진리 The Truth of God’s Omnipotence Beyond Human Wisdom and the Three Paths to Happiness September 28, 2013
영적 현상과 4차원의 세계: 보이지 않는 진실
용산 중앙대학교 부속병원 앞에서 밤 10시에 한 여자가 택시를 잡았습니다. 그녀는 택시를 타고 용산 효창동의 한 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사건은 용산 경찰서에 50번이나 기록될 정도로 반복되었습니다. 매번 다른 택시 기사가 같은 여자를 태우고 같은 집으로 갔는데, 사고는 항상 그 집 코너에서 발생했습니다. 처음 그 집에 간 택시 기사는 한밤중에 잔치가 벌어진 듯 시끄러운 분위기를 목격했지만, 사실 그곳은 초상집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은 며느리로, 수십 년 동안 자신의 집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택시 기사들은 요금을 받지 못하고 돌아오다 백미러에 나타난 그녀의 모습에 기절하여 전봇대를 들이받는 사고를 냈습니다. 특히 비 오는 날이나 흐린 날에 자주 나타났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죄를 지으면 이 여자처럼 한이 맺혀 영원히 떠돌게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그녀는 아기를 보고 싶어 병원에 갔다가 집에 있는 아기를 보고 싶어 집으로 돌아오는 사이클을 반복하며 한에 갇혀 있었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3차원 세계에 살고 있지만, 이 영적인 현상은 4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4차원 세계에 들어가면 우리는 보이지 않으며, 그곳은 영의 세계입니다. 4차원에서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3차원에서는 제약이 따릅니다. 함부로 남에게 모진 짓을 하면 그 사람이 귀신이 되어 그 집안에 원한을 품게 됩니다. 이처럼 교훈과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세계를 알아야 합니다.
유심론과 유신론: 세상의 지배 원리
많은 사람이 마음공부, 즉 유심론에 빠져 있습니다. 유심론은 사람의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내고, 마음을 바꾸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불교의 반야심경도 마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유심론적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지극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 세상은 인간의 마음이 아닌 신이 지배하는 유신론적 원리로 움직입니다. 신이 주지 않으면 마음은 바뀌지 않습니다.
공자나 석가모니 같은 교사들의 가르침은 철학에 해당하며, 이는 교훈일 뿐입니다. 진리는 메시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 즉 신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진리인 것처럼, 이 시대에 살아있는 메시아가 전하는 강의가 바로 진리입니다. 공자의 “하루라도 선을 생각하지 않으면 모든 악이 스스로 일어난다”는 말은 철학적 교훈이지만, 신의 말씀은 아닙니다. 기독교나 이슬람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가 유신론을 잘못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3차원이며, 4차원부터 무한대의 차원이 존재합니다. 창조주는 이 모든 차원을 초월한 존재입니다. 4차원부터는 모두 유신론의 영역에 속합니다.
어떤 무당은 자신이 대학교를 다니다가 신을 받아 무당이 되었다. 이는 3차원의 현상이 아니라 4차원의 영계에서 신이 들어온 것입니다. 귀신 중에도 나이가 많은 귀신을 ‘만신’이라고 부르는데, 천 년 이상 된 귀신을 말합니다. 이들은 다시 생명을 부여받을 기회를 기다리며 귀신으로 존재합니다.
행복의 세 가지 길: 구현, 원천, 초월
인간의 행복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 구현 행복론: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었을 때 행복을 느끼는 것입니다.
- 예를 들어, 특정 목표를 달성했을 때 행복감을 느끼고, 실패하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는 가장 낮은 단계의 행복론입니다.
- 원천 행복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행복을 가지고 있다는 관점입니다.
- 예수님은 “네 속에 행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우리는 이미 행복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 이 원천 행복을 깨닫고 일을 하면 모든 것이 이루어집니다.
- 우리는 어머니의 몸에서 기적적으로 태어난 존재이며, 세상 구경을 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 초월 행복론: 행복과 불행을 초월하는 경지입니다.
- 이는 확고한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서 나타납니다.
- 아프리카 선교사의 예처럼, 물도 없고 에이즈 환자가 넘쳐나는 생지옥 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행복을 초월합니다.
- 자녀가 말라리아로 죽고 아내가 병들어도 선교를 계속하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으로 고통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 이슬람교도들이 자살 폭탄 테러를 통해 알라에게 빨리 가고자 하는 것도 초월 행복론의 한 형태입니다. 그들은 현세의 고통을 초월하여 신에게 돌아가는 것을 행복으로 여깁니다.
이 세 가지 행복론 중 초월 행복과 원천 행복을 깨달은 자는 구현 행복으로 인해 상처받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를 갖추면 하는 일마다 잘 풀리고 길이 열립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은 구현 행복에만 집착하여 고통받고 있습니다.
인간의 세 가지 고통: 삼고(三苦)
인간이 겪는 세 가지 고통, 즉 삼고(三苦)는 다음과 같습니다.
-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고 아끼는 것들과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고통입니다.
- 자식, 연인, 귀금속 등 소중한 모든 것과 언젠가는 이별하게 됩니다.
- 목숨 걸고 얻은 다이아몬드도 결국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 원증회고(怨憎會苦): 원수나 미워하는 사람과 반드시 함께 살아야 하는 고통입니다.
- 싫어하는 사람은 계속 따라다니고, 좋아하는 사람과는 헤어지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 면접에서 계속 떨어지는 것도 이와 같은 원천적인 고통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구불득고(求不得苦)(求不得苦): 구하는 것을 얻을 수 없는 고통입니다.
- 간절히 원하는 것이 오히려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우리가 꼭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얻기 어렵습니다.
이 세 가지 고통은 인간이 원천 행복을 모르기 때문에 겪는 것입니다. 명상이나 마음으로 깨닫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바뀌지 않습니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만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894 운명과 진리 The destiny and truth of Humanity Unveiling the Spiritual Path Beyond materialism with Huh Kyung-young October 5, 2013
유물론과 유신론: 21세기 문명의 전환점
사람들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이곳에 온 사람들은 복이 있다.지난번에 유심론과 유물론, 유신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현재 유물론과 유신론의 밑바닥에는 유물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금 이 유물론에 빠져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유심론과 유물론의 차이를 설명했습니다.
교회나 절에 가서 물질을 많이 내야 축복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1세기는 유물론에 깊이 빠져 있습니다. 이제 유물론에서 유신론, 유심론으로 빠져나오는 중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진국이 되는 길입니다. 선진국은 산업을 먼저 일으켜 물질을 모으고, 그 후에 정신 교육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돈이 없어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산업을 발전시켜 물질을 축적한 후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주자의 팔조목 중 첫 번째는 ‘격물(格物)’입니다. 물질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유심론인 ‘치지(致知)’가 옵니다. 그리고 ‘유신론’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성의(誠意)’ 즉 뜻이 나오고, 그 다음에는 ‘정심(正心)’ 즉 바른 마음이 나옵니다. 물질 없이는 바른 마음이 나올 수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데 아무리 마음을 바로잡으려 해도 불안감을 없앨 수 없습니다. 사람은 주자의 팔조목처럼 여러 가지를 갖춰야 하는데, 항상 물질이 첫 번째이고 지식이 두 번째입니다.
우리는 처음에 돈이 없어 공부를 못 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흙바닥에 글을 썼습니다. 시골 학교에는 교사가 부족했습니다. 산업을 발전시켜 돈을 벌고, 인간들이 고급 지식을 배우기 시작하자 미국의 재벌들은 인도로 향합니다. 물질을 정복하고 나니 이제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명상을 하러 가는 것입니다. 부자일수록 명상하러 많이 갑니다. 라스베이거스에 가는 사람들은 촌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이고, 실제 미국의 부자들은 라스베이거스에 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도, 방글라데시, 티베트 같은 곳의 산속에 들어가 석가모니처럼 명상하며 깨달음의 단계를 밟아갑니다.
대장부의 여덟 단계: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진정한 의미
인간들은 지식을 배운 후에 뜻을 세우고, 그 다음에는 도를 깨닫고 정신을 수양합니다. 다섯 번째는 ‘수신(修身)’입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순서입니다. 세상을 통일하는 것입니다. ‘격물치지(格物致知)’, ‘성의정심(誠意正心)’은 자기 몸을 닦는 것입니다. 수신은 자기 몸을 닦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다스리고 따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지사가 제가(齊家)이고, 대통령이 치국(治國)이며, 평천하(平天下)는 세상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한 사나이가 태어나서 이 여덟 단계를 거쳐야 대장부가 되는데, 대부분 1단계에서 끝납니다. 이론만 이야기하다 죽고, 돈만 벌다가 죽습니다. 돈만 벌다가 고혈압이나 당뇨병에 걸려 죽음을 맞이합니다. 인생이 끝나고 나면 그 자식들은 재산 상속 싸움으로 집안이 풍비박산 납니다. 유물론에 빠져 자식들에게 정신 교육을 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자식들은 돈다발을 가지고 싸우다가 부모가 벌어놓은 것을 탕진하고 집안을 망치며 대대로 원수가 됩니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이러한 가르침을 주지 않아 집안이 망하는 것을 예사로 생각합니다.
지난주에 유심론과 유신론의 차이를 이야기했지만, 실제 우리는 유물론에 처해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범소유상 개시 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소유하는 물질,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결국 허망하다는 뜻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돈이든, 사람의 인상이든, 물질이든 결국 사라집니다. 결국 모든 것을 손에서 놓게 되고, 보이지 않게 되며, 나중에는 눈을 감게 됩니다. 그 순간이 금방 찾아옵니다. 초등학교 때를 생각하면 엊그제 같지만, 죽음은 갑자기 찾아옵니다. 죽을 때 “이것이 끝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 때, 허경영이 떠올라야 합니다. 눈을 감으면 내가 나타날 것입니다.
모든 것이 허망한데,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면 ‘견(見)’은 무엇일까요? 본다는 것은 물질을 의미합니다. 물질은 모두 허망하다고 했습니다. 모두 없어지는 것을 잠시 보고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는 수천억의 공간이 존재합니다. 핸드폰이나 텔레파시가 나오는 것처럼, 이 공간에는 전화선이 없습니다. 이 무한한 공간은 3차원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비롯한 모든 귀신들이 왕래하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그 일부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들은 우리 몸을 마음대로 통과하기에 우리가 서 있어도 보이지 않고 걸리지도 않습니다. 엑스레이처럼 몸속을 마음대로 통과합니다. 신기하게도 세계가 다릅니다.
깨달음의 중요성: 백견불여일각(百見不如一覺)
눈에 보이는 모든 인간의 모습이나 물질은 허망합니다. 백 번 보는 것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체험하여 깨닫는 것만 못합니다. 다이아몬드를 백 번 본다고 해도 그것이 유리인지 다이아몬드인지 알 수 없습니다. 전문가의 감정 없이는 돈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으로 보는 한계는 우리를 속입니다. 아무리 좋게 봤던 사람도 나중에 원수가 되어 이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이아몬드 감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모든 사람은 그렇게 어리석습니다. 그러나 깨닫고 나면 속지 않습니다.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다이아몬드를 감정하는 방법이 달라집니다. 인간 감정사가 되어야 합니다. 면접관들이 감정사도 아니면서 면접을 봅니다. 여러분은 내 강의를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 체험을 통해서 깨달아야 합니다. 많이 깨달은 사람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격물(格物)은 눈으로 보고 물질을 쌓는 것이고, 치지(致知)는 지혜를 쌓아 뜻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실행할 마음의 준비를 하여 이웃과 고을, 나라를 위해 봉사합니다. 국가의 장관이 되고, 국가를 직접 통치하며, 세계를 통치하는 것이 대장부의 여덟 단계 목표입니다. 대장부가 갖춰야 할 여덟 가지 안목입니다. 중요한 것은 유물론이 첫 번째이고, 유심론이 두 번째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천하를 정하면 그것이 유신(維新)입니다. 유신은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일체 유상 개시 허망(一切有相 皆是虛妄)”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허망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가 곧 부처입니다. 깨달을 ‘각(覺)’자가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물질을 보는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이 물질을 보는 세계에서 깨닫는 세계로 가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영적인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백 번 눈으로 봐도 한 번 결혼 생활을 해봐야 그 사람이 빵점짜리인지 백점짜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닫는 것입니다. “난 죽어서 우리 남편은 다시 안 만나. 난 지금 살았어도 살기 싫어.” 이런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백 번 보는 것보다 한 번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의 삶이나 모든 물질은 다 허망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곧 부처를 보는 것입니다. 금강경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인상도 좋아야 하고, 그 인상을 가지고 남을 위해 올바르게 행동해야 합니다. 사회에는 ‘백견이 불여일행(百見不如一行)’이라는 말이 있다.그 사람의 행실을 본 다음에 깨닫는 것입니다. ‘행이 불여일각(行不如一覺)’입니다. 그 사람의 행동을 보면 벌써 깨닫게 됩니다. 지난번에 가르친 내용을 복습하는 것입니다. 유심론과 유신론을 배웠지만, 현재 인간들은 대부분 유물론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 없이는 되는 것이 없기에, 현재 물질을 준비했습니다. 먹고 살만하면 공부를 해야 하는데, 계속 물질에만 매달리면 인간의 발전은 없습니다. 자식들 상속 싸움만 시키다가 끝나는 것입니다. 어떤 부자는 재산을 대학에 기부하기도 합니다. 부모가 합의하여 대학에 기부하고 양로원으로 들어갑니다. 자식들이 은근히 재산을 노리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자식에게 먹고 살 것은 주지만, 더 많은 돈을 주는 것은 위험합니다. 돈 때문에 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 재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운명과 진리: 선행이 가져오는 축복
오늘은 ‘운명과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지난번 ‘교훈과 진리’에서 질문하겠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자는 마치 싹이 트는 것과 같아서 당장은 그 자람이 보이지 않아도 날마다 자라나고,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칼을 돌에 가는 것과 같아서 당장은 그 손상이 보이지 않아도 날마다 닳아 없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 강원도 춘천에서 경찰 순경이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450억 원을 받았습니다. 그는 외국으로 떠났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30살에 과부가 되어 아이들을 키우고 시부모님과 남편의 산소를 멋지게 이장했습니다. 아직 자기 집은 없고 전세에 살고 있었는데, 꿈에 시아버지가 나타나 문서 봉투 두 개를 주며 “이것은 네가 가지고, 이것은 자식들 줘라. 좋은 일에 써라”. 아침에 일어나 보니 복권을 사라는 꿈인가 싶어 로또를 샀고, 200억 원에 당첨되었습니다. 100억 원은 좋은 일에 쓰고, 100억 원은 가족을 위해 썼습니다. 조상이 꿈에 나타나 무엇을 주면 좋은 일이 일어납니다.
꿈에는 자각몽, 예지몽, 몽유몽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자각몽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뇌가 스스로 정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뇌는 1초에 12번씩 움직이며 스스로를 정화합니다. 심장은 1초에 1.2번 뛰지만, 뇌는 그 10배를 움직여야 합니다. 뇌가 1초에 12번을 움직이지 않으면 썩어버립니다. 의사들은 뇌파가 왜 그렇게 뛰는지, 그 에너지가 어디서 오는지 모릅니다. 신이 뇌를 주물러 주는 것입니다. 100년 동안 살아있는 동안 계속 주물러 줍니다. 한 번이라도 멈추면 뇌사 상태가 되어 즉각 죽습니다. 자각몽은 뇌가 스트레스를 다 풀지 못했을 때, 신이 뇌를 씻어내는 운동입니다.
예지몽은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 돈 봉투를 주는 것처럼, 신이 좋은 일을 한 사람에게 미래를 알려주는 꿈입니다. 신이 없다면 이런 꿈을 꿀 수 없습니다. 시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너 수고했다. 묘도 만들어 놓고 자식들도 잘 키웠으니 이것을 받아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선한 자에게는 예지몽이 옵니다. 악한 자에게는 악몽만 옵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당장은 복이 눈에 보이지 않아도 그 공덕이 쌓여 나중에는 죽은 조상도 보답을 해줍니다. 그 아주머니는 그 후로 집안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자식들에게 집을 사주고 소원을 풀어주었습니다.
경찰 순경은 450억 원을 받았으니 한 달에 이자만 10억 원이 나와 망할 이유가 없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자는 당장은 그 자람이 보이지 않아도 날마다 자라나고,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칼을 돌에 가는 것과 같아서 당장은 그 손상이 보이지 않아도 날마다 닳아 없어집니다. 결국 잘 나가다가도 망하게 됩니다. 동양그룹 회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영이 망하기 직전에 노인들이 노후 자금으로 모아둔 채권을 팔아 그들을 거덜 냈습니다. 선한 일을 하는 자는 유물론에 머물지 않고 유신론을 미리 깨달아 선한 행동을 하면 반드시 대가가 옵니다.
운명은 나쁜 짓을 하던 사람이 로또 복권을 산다고 해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운명을 개척하는 자, 착한 사람은 꾸준히 잘했기에 그것이 쌓여 복으로 돌아옵니다. 운명은 어느 정도 개척이 가능합니다. 신이 인간의 수명에 직접 관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신은 인간의 수명을 업보대로 정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통제가 되지 않아 죽어야 할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 운명을 재량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습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인간의 재량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신이 생사를 절대적으로 장악했지만, 이제는 인간들이 스스로 고치고 장기를 바꿔 끼우니 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운명을 개척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것입니다.
관동대지진과 제국호텔: 원칙을 지킨 자의 승리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에서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여 14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당시 빌딩 하나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빌딩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일본 관동 지역에서 일어난 대지진이었습니다. 일본이 이런 지진을 겪고도 일어선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사실 일본인들은 사무라이가 많아 죄를 많이 지었기에 지진이 많이 납니다. 하늘은 웬만한 죄는 용서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됩니다. 일본은 아직도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있으며, 곧 또 지진이 날 것입니다. 일본은 하늘의 신을 믿지 않고 귀신만 믿습니다. 유일신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속 지진이 나고 무너지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관동대지진 때 13만 명이 죽었지만, 빌딩 하나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 빌딩은 기초 공사를 2년 동안 하여 동네 사람들이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건물을 요새처럼 짓는다고 욕을 했지만, 지진이 나자 그 건물 하나만 남고 모든 건물이 무너졌습니다. 건물 안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건축가를 찾아가 집을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원칙대로 집을 짓고 자신을 만들어간 사람은 흔들릴 때 나타납니다. 하늘에서 그 사람을 죽일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 좋은 결과가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신이 있느냐 없느냐 하지만, 실제 존재합니다. 로또 당첨 사례를 보았듯이 예지몽이 있습니다.
꿈의 세 가지 종류: 자각몽, 예지몽, 몽유몽
꿈에는 자각몽, 예지몽, 그리고 몽유몽이 있다.몽유몽은 꿈을 꾸면서 실제 일어나 행동하는 것입니다. 꿈과 현실을 똑같이 착각하는 것입니다. 몽유병 환자도 꿈에 들어갑니다. 이 세 가지 꿈이 있다.꿈을 자주 꾸는 사람은 정신병자라고도 하지만, 보통 사람도 자다가 화장실에 갔다 오는 것을 기억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명은 지진이 일어나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실하게 원리원칙대로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하고 건축비를 많이 들인다고 비난했지만, 그 호텔(제국 호텔)은 무너지지 않았고, 그 건축가는 건축가로서 성공했습니다. 일본은 그 후로 무너지지 않는 건물을 지은 사람에게 건축을 맡겼습니다. 우리는 운명을 어느 정도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아파트는 진도 7까지 견디지만, 진도 8, 9가 되면 다 무너집니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아시아 태평양판에 걸려 있는 일본 열도와 달리 아시아판에 있습니다. 지구는 퍼즐처럼 조각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구가 생명체이기 때문입니다. 지구는 살아 있습니다. 마그마가 있고, 우리 뇌처럼 판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뇌와 지구, 우주 모두 판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본은 태평양판에 붙어 있고, 우리나라는 아시아판에 있습니다. 중국도 지진이 많이 납니다. 중국과 일본은 지진이 나면 없어질 수 있습니다.
지구는 약간 타원형으로 되어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완전한 원형으로 바뀔 것입니다. 빙하기에 남극과 북극에 눈이 많이 쌓여 무게 중심이 타원으로 눌린 것입니다. 지구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원형으로 바뀌면서 지구 축이 움직여 무게를 조절합니다. 지구 자체가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나무도 생명체입니다. 나무에게 욕을 하면 죽어버리고, 칭찬하면 좋아합니다. 나무는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알아듣습니다. 지구와 나무는 똑같이 생명체이며 모든 것을 인식합니다. 심지어 물질에게 욕을 해도 분자들이 원수가 됩니다. 쓰레기를 버릴 때도 함부로 버리면 벌을 받습니다. 쓰레기들도 세포이며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물을 마실 때도 소중히 다루면 좋아합니다. 그러나 컵을 집어 던지면 그 집에 재물운이 사라집니다. 어떤 물질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종이를 찢을 때도 기분 나쁘게 버리면 종이가 기분 나빠합니다. 모든 것을 생명체로 생각해야 합니다. 조상이 물려준 작은 물건 하나도 소중히 생각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물건을 버리는 자식은 불효자식입니다. 이런 물건들을 소중히 보관하고 가끔 들여다보는 아들이 성공한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은 유심론에 가까이 간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유물론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은 대부분 유물론에 집결되어 있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꿈도 달라지고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선과 악은 위에서 언제나 체크하여 그 사람의 모든 운명을 체크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이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계급 변화와 유물론의 함정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아직 멀었다고 했습니다. 유물론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는 양반과 상놈이 있었습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으로, 장사하는 사람을 상놈이라 하여 가장 천박하게 여겼습니다. 그 다음이 대장장이 같은 공업인, 농업인, 그리고 선비가 양반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렇게 네 계급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계급이 없어지고 돈이 있는 사람이 최고가 되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상업을 일으키면서 상업이 최고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양반이 이사이고, 변호사, 세무사, 법무사 같은 ‘사(士)’ 자 직업이 있다.검사, 판사 같은 ‘사’는 더 높은 계급입니다. 대사(大使)도 양반입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국민의 수준이 낮아진 이유는 이러한 ‘사’ 자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 자들이 세상을 이끌어가는데, 이들이 모두 썩었습니다. 진리 쪽에 가 있지 않고 나라를 먹는 식입니다. 전부 물질에 빠져 유물론에 빠져 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신은 없습니다. 돈을 더 주는 쪽에 유리하게 판결하고, 원칙이 없습니다. 원자력 발전소가 언제 폭발할지 모릅니다. 한수원에 뇌물을 먹은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핵발전소 하나 터지면 우리나라는 끝납니다. 이런 관리들에게 나라를 맡겨 놓았는데, 그들은 자기들끼리 나눠 먹고 있습니다. 내가 나와서 이것을 일대 청소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국민 전체가 이러한 문제들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교사들은 젊은이들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 교과서처럼 애들을 이상하게 바꾸고 있습니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가르치면서 이상하게 꾸미고 있습니다. 전교조 등 교사들의 교육에 문제점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이 썩었습니다. 유물론에 빠진 사람들을 고쳐야 합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와 행복 지수
인도는 네 단계의 계급이 있다.브라만(승려), 크샤트리아(왕족), 바이샤(상인), 수드라(천민)입니다. 인도 인구의 99.9%가 천민입니다. 귀족들은 보통 10만 평의 저택에 살며, 수백 명의 하인을 거느립니다. 영국의 재벌들이 인도를 보고 놀란 이유입니다. 인도는 자본주의 사회이지만, 엄청난 부호들이 살고 있습니다. 크샤트리아가 부자들입니다.
앞으로 인도가 GDP 5만 불, 10만 불이 되어도 수드라 계급은 GDP가 올라가지 못합니다. 아무리 노동을 해도 천민들은 규제가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GDP가 10만 불이 되어도 서민들의 생활은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버스 운전수는 계속 버스 운전수를 하고, 생활비가 빠져도 저축은 안 될 것입니다. 사회 구조가 자본주의에서 노동의 것을 착취하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도에서는 가난할수록 다음에 수드라로 태어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돈이 생기면 돈을 안 생기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현세에서 잘 살면 늙어서 다시 수드라로 태어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수백억 생기면 빨리 없애버리려고 합니다. 돈을 가지면 자기가 죽어서 자식들이 수드라로 태어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고행을 하면 죽어서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로 환생한다고 믿습니다. 환생을 믿기 때문에 돈을 가지고 고생하며 가난하게 살려고 합니다. 그 덕분에 크샤트리아의 자녀들은 좋은 생활을 합니다. 그들은 죽어서도 또 좋은 계급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좋은 일을 합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불만이 없습니다. 세계에서 제일 불만이 없습니다. 티베트 같은 주변 국가 사람들은 가난할수록 행복감이 높습니다. 고행을 해야 나중에 행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부자를 부러워하면 죄를 짓는다고 생각합니다. 선한 일을 해서 복을 지으려고 합니다. 당장은 돈이 생겨서 좋지만 집안이 망하고 죽어서 좋은 곳에 못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도 사람들은 행복 지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가난할 때도 100% 만족합니다. 그들을 도와주려고 해도 필요 없다고 합니다. 고생하다 죽어야 좋은 곳으로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신세계에 들어가면 물질을 초월하게 됩니다. 유물론이 우리가 보는 유물론과 다를 수 있습니다.
물질을 경계하고 재벌의 세습 제도를 이해하라
물질을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물질을 가지고 움직이는 자는 동양그룹 회장처럼 사회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오리온 회장의 사위였던 현재현 회장은 동양그룹을 인수했지만, 아들과 사위의 차이가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업적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이건희 회장이 이병철 회장을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듯이, 재벌들은 기업이 부도나거나 나쁜 이미지를 얻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재벌은 민주화가 되면 망합니다. 세습 제도로 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서양 사람들도 이제 깨달아 재벌을 세습제로 운영합니다. 록펠러 가문이 재단을 유지하려면 계속 세습제로 가야 합니다. 록펠러 집안의 아들이 망하면 그 재벌은 망합니다. 재벌은 자식이 인수를 맡으면 아버지의 위업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칩니다. 큰 재벌은 아버지를 욕되게 하지 않으려고 신용을 지키고 부도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보 정태수나 율산 신선호처럼 아버지가 일으킨 회사가 아닌 경우는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재벌도 족보가 있는 재벌을 국민들이 신뢰합니다. LG그룹처럼 3대째 내려오는 재벌은 손자가 할아버지의 업적을 욕되게 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도 재벌의 세습 제도가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일한 박사는 유한양행의 모든 지분을 사회에 기부하고 자식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았습니다. 유한양행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이었지만, 본인이 직접 경영하지 않고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지분을 국가 봉사단체에 기부했습니다. 그 결과 아들들은 각자 교수가 되어 물러났고, 유한양행은 불과 몇십 년 만에 세계 순위 1위에서 꼴찌로 추락했습니다. 당시 있지도 않던 동화약품이 유한양행의 몇백 배로 커졌습니다. 자식이 있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식이 유한양행을 맡았으면 아버지의 업적을 살리려고 노력했을 것입니다. 큰 회사일수록 혈육이 경영할 때 유리하고 국가적으로 유익합니다. 그러나 사회에 맡기면 공돈이라고 생각하여 아까워하지 않습니다. 자식은 그렇지 않습니다. 정상적으로 경영 수업을 받은 아들들은 회사를 망하게 하지 않습니다. 삼성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얼마 못 가서 문을 닫을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항상 최고는 아닙니다.
내세와 운명 개척: 인도인의 지혜
인도인들은 가난한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내세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현재가 힘들다고 자살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내세는 없습니다. 지금 우리가 힘들어도 고통스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힘들수록 나에게 복이 쌓이는 것입니다. 억울하게 생각하면 복이 쌓이지 않습니다. 만족하고 양보하면 나중에 귀족으로 태어납니다. 인도인들의 삶의 방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나무에게 옷을 입히고 소를 잡지 않는 것은 그들이 소를 조상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왕족들은 소고기를 먹습니다. 하늘이 사랑하는 사람은 좋은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은 밤에 잠을 자다가도 복을 받습니다. 복 짓는 행동을 한 사람은 잠을 자도 하늘에서 복을 내려줍니다. 자각몽이나 예지몽을 주어 “내일 비행기 타지 마라”고 알려주어 죽을 것을 살려주기도 합니다. “내일 복을 하나 사라”고 예지를 해주기도 합니다. 잠을 자는데도 복을 퍼부어 줍니다. 그런 사람이 복을 지어야 합니다.
허경영 강의를 듣고 나를 만나는 것은 5천조짜리 로또 복권에 당첨된 것과 같습니다. 죽을 때 눈을 감으면 “내가 5천조짜리 복권에 붙었구나. 세상 돈을 다 받았구나”라고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야기할 때 빨리 박수를 쳐서 받아야 5조가 생기는 것입니다.
눈은 1초에 12번 깜빡여야 합니다. 깜빡이지 않으면 눈병이 생깁니다. 핸드폰을 자세히 보는 아이들이 눈병이 많이 생기는 이유도 눈을 깜빡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도 우리 몸처럼 깜빡여 줘야 합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神人書判)의 시대와 에덴 동산의 비밀
한 명만 찾아내도 대단한데, 여기 몇십 명을 찾아냈습니다. 이 사람들이면 충분합니다. 나중에 엄청난 숫자로 강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神人書判)은 몸이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상이어야 하고, 말을 잘하고 글을 잘 쓰며 판단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하늘에서 온 권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언어, 말과 글과 도가 끊어진 시대에 신언서판(身言書判)이 오는 것입니다. 말도 안 통하고, 글도 안 통하고, 부모가 아무리 이야기해도 도도 안 통하는 시대입니다. 진리도 안 통하는 시대입니다. 지금은 어른들이 남아 있지만, 곧 언어도단 시대가 올 것입니다. 그때 허경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글을 잘 못 쓸 것입니다. 내가 글을 쓰면 “저 사람이 글을 잘 쓰는구나”라고 할 것입니다. 지금은 글 잘 쓰는 노인이 아직 있지만, 조금 있으면 허경영이 쓰면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애들이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다가 내가 나타나면 “이것은 지금 자동차일 뿐입니다. 내 몸은 이 자동차에서 빠져나와 영혼으로 다시 가서 더 자유로운 세계로 갈 것입니다. 그러려면 이 고난은 달게 받아야 합니다. 불만이 되면 반복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못 벗어납니다. 거기서 나는 행복합니다. 이 고통을 달게 받습니다”라고 하면 다음에 없어집니다. 그러나 불평하면 계속 그 고통을 보게 됩니다. 유물론에서는 좋다고 구하고 보면 고통입니다. 반갑다고 만나고 보면 미워집니다. 이것이 부부 관계이고 연인 관계입니다. 생사의 윤회에서 해방될 때를 생각해서 대비해야 합니다.
약육강식의 시대에서 공존공영의 시대로
지금 시대는 약육강식(弱肉強食)의 시대입니다. 약한 놈이 큰 놈에게 잡아먹히는 동물의 생존법입니다. 우리는 이런 시대를 마감해야 합니다. 식물은 생존 경쟁을 하지만, 인간은 공존공영(共存共榮)해야 합니다. 서로 함께 똑같이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서로 돕고 살아야 합니다. 현재 약육강식의 시대는 유물론의 시대이며, 유신론과는 맞지 않습니다. 대기업도 삼성도 이러한 경영 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밑에 업체들에게 어음 대신 현금을 주고 있습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에서 해야 할 100가지 일 중 첫 번째는 세금 제도 개편입니다. 세금 인센티브 포인트 제도와 함께 어음 제도를 없앨 것입니다. 어음 제도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일본 식민지 시대부터 쓰던 제도입니다. 어음 제도가 없어져야 불상사가 줄어듭니다. 세금 포인트 제도를 시행하면 어음 제도는 자동으로 없어집니다.
지금 우리나라 정권 회사들은 어음을 팔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큰 고기가 작은 고기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시대입니다. 서울대 나온 사람이 지방대 나온 사람을 잡아먹는 것과 같습니다. 약한 사람은 큰 사람의 밥이 됩니다. 그러나 공존공영의 시대는 유신론의 시대입니다. 신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을 신이 보고 있으며, 효녀로, 현모양처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조상이 복을 가져다주는 것처럼 예지몽을 통해 복을 받습니다. 200억 로또 복권에 당첨된 아주머니는 시아버지, 시어머니 묘를 잘 모셔 놓은 것 외에 특별히 한 것이 없습니다. 돌아가신 부모에게 극진히 하는 것도 예지몽을 가져올 수 있는데, 살아있는 사람에게 잘해주면 얼마나 더 큰 복이 오겠습니까?
남사고는 자기 부모 묘를 아홉 번 옮겼다고 합니다. 옛날 양반들은 좋은 자리로 묘를 옮겼습니다. 세종대왕도 세 번 묘를 옮겨 좋은 자리를 찾았습니다. 세종대왕릉은 ‘천신하강혈(天神下降穴)’입니다. 하늘에 있는 신이 내려와 앉아 있는 형상입니다. 풍수적으로 천신이 날개를 달고 내려오는 국입니다. 세종대왕이 그 자리에 들어가자 대한민국 중심부에 하강하여 앉아 있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풍수가 그런 영향을 미칩니다. 용과 관계된 혈이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서 네 번 나왔다고 했는데, 그것은 고모산의 정기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고모산은 비슬산으로, 비파와 거문고를 켜고 있는 형상입니다. 갓바위를 향해 있습니다. 경북에서는 이 비슬산 때문에 왕이 네 명이 나옵니다. 전두환, 노태우, 박정희, 박근혜입니다.
신뢰와 믿음: 영적인 사건들
믿을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신뢰’입니다. 저 사람의 신용이 있고 약속을 지켰으니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입니다. 처녀의 뱃속에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과학적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내가 눈빛으로 씨를 잉태하게 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믿을 수 없습니다. 미친 짓이고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신은 믿을 수 없는 행동만 합니다. 유신론은 여러분이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유물론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허경영이나 예수를 미친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보면 “내가 이것을 깨달았더라면 좀 더 좋은 곳으로 갔을 텐데”라고 후회할 것입니다.
믿음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허경영 사진만 보면 힘이 오고, 허경영을 보면 몸이 달라지고, 허경영 이름을 부르면 행운이 오고, 운명이 달라지고, 지혜가 생기고, 죽을 때 허경영을 부르면 모든 것이 깨끗하게 없어져 좋은 곳으로 갑니다. 허경영은 여러분이 믿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화신(化身)이 인간으로 와 있는 것입니다. 화신은 기독교의 메시아이고, 불교의 미륵입니다.
한반도의 에덴 동산과 허경영의 탄생
백두산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백두대간은 갈비뼈와 같습니다. 서울은 갈비뼈에서 태어난 곳입니다. 내 이름에 서울 ‘경(京)’자가 있습니다. 이곳이 에덴 동산입니다. 내가 강의할 때 에덴 동산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만든 에덴이 동방에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유럽이나 중동의 에덴은 천지 창조 때의 에덴이고, 실제 에덴은 여기입니다.
백두대간을 따라 내려오는 강은 청천강으로, 성경에서는 비손강이라고 합니다. 동쪽으로 가는 강은 두만강으로, 성경에서는 대결강이라고 합니다. 서쪽으로 가는 강은 압록강으로, 성경에서는 기혼강이라고 합니다. 북쪽으로 가는 강은 송화강으로, 성경에서는 유브라데강이라고 합니다. 송화강은 중국의 길림성, 요령성 등 조선족 자치주로 흘러갑니다. 백두산에서 내려가는 강물이 십자가 모양으로 흐릅니다. 마식령과 광주 산맥은 비손강이고, 옆으로 가는 것은 대결강, 서쪽으로 가는 것은 기혼강입니다. 에덴과 닮았습니다. 이 에덴에서 갈비뼈를 취한 곳이 서울이고, 거기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창세기와 21세기를 혼동하지 마십시오. 창세기 2장 10절에 강이 에덴에서 나와 동산을 적시고 헤겔과 유브라데, 비손과 기원으로 흘러간다고 했습니다. 유브라데는 아수르 지방으로 흘러갑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모든 과정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강의한 내용을 듣고 우리나라가 에덴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내가 동방에서 나온 메시아이고, 이곳이 새 세계를 만드는 에덴의 발원지입니다.
이것은 사람 ‘인(人)’자 모양입니다. 사람이 서 있고, 태백산이 머리이고, 갈비뼈입니다. 이것이 우리 것입니다. 전 세계로 십자가가 되어 있습니다. 사람 머리에 십자가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올 때가 마무리되는 것입니다. 옛날의 천지 창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한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의 Avatar가 여기서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기 와 있는 것입니다.
도봉산 12제자가 바라보고 울고 있고, 불암산에 석가모니가 누워 있습니다. 12제자가 울고 있는 것이 수락산입니다. 여기서 내려오는 물과 만나서 내려오는 물이 중랑천입니다. 중랑천은 눈물을 흘리는 강입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흘리는 눈물과 석가모니 제자가 흘리는 눈물이 만나서 흐르는 곳에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내가 올 때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광주 산맥이 바로 이 산들입니다. 삼위일체가 합쳐진 곳에서 여의주처럼 나오는 것입니다. 그 눈물 속에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풍수를 보면서 성자들이 흘린 눈물이라고 이름을 지어준 것입니다. 대(臺)에 눈물(淚) 리(里) 자를 붙여서 ‘중랑천’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서울의 삼각산, 이 갈비뼈, 최고로 큰 갈비뼈까지 이야기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습니다. 내가 강의했더니 도사들이 그것을 가지고 우리나라가 에덴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동서양의 중간에서 흘리는 눈물입니다. 서쪽은 예수, 동쪽은 석가입니다. 중랑천이 흘린 물, 그 개천가에서 내가 태어났습니다.
6.25 전쟁과 허경영의 영적인 개입
내가 1950년 1월 2일에 태어났는데, 내가 태어난 것을 환영하는 동방 박사들이 왔습니다. 전 세계 18개국에서 수백만 명이 우리나라로 몰려왔습니다. 그들은 나를 만나러 온 사람들입니다. 내가 여기서 태어나지 않았으면 그 사람들은 우리나라에 오지 않았을 것이고, 공산화되었을 것입니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전 세계에서 미친 사람들처럼 나를 쫓아왔습니다. 내가 태어나고 5일 만에 미국 군대가 왔습니다. 미국 25사단이 5일 만에 대전까지 도착했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태풍이 와서 뉴올리언스 주가 엉망진창이 되었을 때 연방군이 동원되는 데 일주일이 걸렸습니다. 의회를 통과하고 대통령 사인을 받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이역만리 떨어진 한반도에 전쟁이 났는데 미 2사단 병력이 5일 만에 투입되었습니다. 전 세계 유엔군이 다이아몬드처럼 쫓아왔습니다. 이 작은 나라에 180만 명의 군대가 들어왔습니다. 중공군 100만 명과 싸워 무승부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허경영이 그때 태어나지 않았으면 유엔군 한 명도 오지 않고 끝났을 것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미군을 빨리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우리가 월남에 군인을 보내는 데 박 대통령이 3년이 걸렸습니다. 사우디에 군대를 보내는 데도 2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이름도 모르는 나라였는데, 전쟁이 나자 4일 만에 미군이 대전까지 들어왔습니다. 북한군이 부산을 향해 내려가는데, 미 25사단이 내려오는 북한군과 마주쳤습니다. 25사단 병력 전원이 그 자리에서 다 죽었습니다. 육군 소장인 25사단장 딘 소장만 북한으로 납치되었습니다. 대전이 아니라 천안 밑에서 다 몰살했습니다. 북한군이 초토화되어 내려가니 밑에서 방어하는 힘이 약해졌고, 싸움이 지연되었습니다. 그래서 낙동강 전선에서 전투가 치열해졌고, 그나마 나라를 구했습니다.
그때 또 미군에서 별 다섯 개짜리 맥아더 장군이 인천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것도 막았습니다. 이것은 천무신조(天佑神助)입니다. 허경영이 태어나고 나서 하늘에서 전 세계 군대를 움직여 남한을 도와준 것입니다. 이것도 내 강의입니다. 유엔군이 온 것도 허경영 때문이고, 유엔 본부를 우리나라로 가져오자는 사람도 나뿐입니다. 내가 유엔군을 끌고 온 사람입니다. 나는 그때 한 살짜리 아기였습니다. 한 살짜리가 전 세계 대통령들을 움직인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유엔을 데려오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 자리가 세계 수도 자리입니다. 내가 세계를 통일한다는 것입니다.
유엔군이 1945년에 만들어졌는데, 만들어지자마자 1950년에 6.25 사변에 참전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순식간에 유엔이 만들어지고, 전 세계에서 군대가 제대로 갖춰진 나라도 얼마 없었는데, 그 군인들이 전 세계에서 다 왔습니다. 내가 만 1살 때 배 속에서 나와서 모든 것을 움직인 것입니다. 북한이 필요로 해서 지금 북한은 저렇게 있는 것입니다. 나중에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분단되어 있는 것입니다.
휴전선 공원화와 인체의 신비
휴전선을 공원으로 만드는 것은 임진강을 건너 판문점으로 가는 길에 있는 철책을 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지뢰를 다 철거해야 하는데, 그래도 들어가면 불안합니다. 유사시에는 위험합니다. 이것을 굳이 강의하면 남들은 못 알아들을 것입니다.
남쪽으로 가는 강은 비손강, 북쪽으로 가는 강은 기혼강입니다. 심장은 1초에 1.2번 흔들어 줘야 하고, 눈은 1분에 12번 깜빡여야 합니다. 눈을 진동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1년에 12번 간에 태풍을 넣어 줘야 합니다. 그것이 감기입니다. 이것을 넣어주지 않으면 인간이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골골 80년’이라고 했습니다. 감기가 자주 걸리면 정상적인 사람입니다. 감기가 오지 않으면 뇌졸중으로 죽습니다. 항상 뚱뚱하고 건강한 사람이 갑자기 뇌졸중으로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골골하는 사람은 절대 죽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1년에 12번씩 지구도 태풍이 와서 바닷물을 뒤집어 줘야 썩지 않는 것처럼, 인체나 뇌, 심장, 눈에도 진동을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몸에 감기가 걸리지 않으면 안 되기에, 모든 사람에게 1년에 한 번씩 몸에 열을 넣어주고 몸살을 앓게 합니다. 감기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감기가 들어오면 몸의 모든 면역 세포들이 훈련을 받으러 갑니다. 몸 전체가 비상 상태가 되어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주 할수록 훈련이 잘 되어 면역력이 강해집니다. 옛날에 천연두를 앓은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천연두라는 대형 훈련을 했기 때문에 몸이 강철이 된 것입니다. 감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감기를 100번 걸린 사람과 10번 걸린 사람의 몸은 100번 걸린 사람이 훨씬 좋습니다. 면역 체계가 훈련이 잘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감기 안 걸리는 사람이 암에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아이는 감기가 자주 걸려야 삽니다. 면역력이 없어서 감기가 걸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어린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감기를 걸리게 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세포가 계속 훈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훈련을 못 하게 약을 줍니다. 감기약에 들어있는 주성분인 항히스타민제를 주면 콩팥이 죽고 간이 나빠지고 뇌가 나빠집니다. 의사들이 모든 아이들에게 감기약을 주니, 우리나라 아이들은 병원에 자주 갈수록 병신이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 아이들이 커서 콩팥이 나빠져 투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항히스타민제는 콧물을 안 나게 하고 땀 나게 하는 것인데, 이것을 아이들에게 자꾸 주니 하늘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아이들을 구해주려고 감기를 넣어 주는데, 그것을 못 하게 열을 내려 버리는 것입니다. 해열제를 맞으면 열이 상승하여 인체가 훈련을 하고 있는데 열을 다 내려 버리니 아이가 제대로 강화되지 않습니다.
감기는 바이러스이고, 바이러스는 인간이 잡지 못하게, 건드리지 못하게 노터치 해 놓았습니다. 현대 과학으로도 감기 바이러스를 찾아내지 못합니다. 그것이 신의 전략입니다. 여러분의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것인데, 자꾸 약을 먹어 버리면 안 됩니다. 감기 걸리면 절대 약을 먹으면 안 됩니다. 우유 한 잔 마시고 정상적으로 일을 해야 합니다. 병원에 가면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감기인데 너무 열이 많을 때는 약간 열 내리는 약을 조금 줄 수 있지만, 많이 먹이면 안 됩니다.
독감은 바이러스가 아닙니다. 독감은 세균입니다. 독감 예방 주사가 나온 것은 균이 잘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독감은 감기가 아닙니다. 독감 균을 인플루엔자라고 하는데, 인플루엔자 균은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잡아버린 것입니다. 약하게 만들어 주사를 놓으면 독감 예방이 됩니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안 됩니다.
6.25 전쟁의 영적인 승리
중국과 러시아는 6.25 전쟁 참전에 100% 반대했습니다. 러시아 유엔 대사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심한 배탈이 나 정신이 혼미해졌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지 못하도록 출발 직전에 쓰러뜨린 것입니다. 갑자기 복통이 나 다른 사람이 대신 갈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중국 대사는 머릿속에 들어가 정신을 혼미하게 하여 기권하게 만들었습니다. 중국이 기권했기에 전 세계 군대가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만약 중국이 기권하지 않았다면 미군도 못 들어오고 아무 군대도 못 들어와 적화되었을 것입니다. 유엔 헌법에 불참은 기권으로 봅니다. 전화로 반대해도 안 되고 직접 와서 투표를 해야 합니다. 중국이 기권했기에 전 세계 18개 국가에서 150만 명의 군대가 한국으로 몰려왔습니다. 처음에는 16개국이었는데 두 개국이 더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허경영의 탄생을 축하하러 전 세계에서 몰려오게 만든 것입니다. 이때가 아슬아슬했습니다. 러시아 대사를 쓰러뜨리고 중국 대사를 정신 혼미하게 하여 기권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 사건은 여러분의 세계에서는 믿을 수 없는 영적인 사건입니다. 한반도 전쟁을 막은 것도 영적인 사건이고, 이 모든 것이 영적인 사건입니다. 에덴 동방의 에덴에 포함된 이야기입니다. 역사학자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전 세계 나라가 찬성하는 데만 해도 1년 정도 걸리는데, 국회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것을 단 하루 이틀 만에 결정 내리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입니다. 이런 비밀을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월남 파병하는 데도 몇 년이 걸렸는데, 어떻게 한두 시간 만에 결정을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소련과 중국 같은 강대국이 반대하지 못하게 만든 것이 영적인 일입니다.
우리나라가 구사일생으로 살았는데, 그 공로자를 보고 미쳤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망할 것입니다. 예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내가 중랑천에서 나온 사람인데, 나오자마자 축하객이 전 세계에서 150만 명이 몰려온 것입니다. 여기가 에덴이 맞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다섯 개 나라가 연합해서 군대를 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미 초콜릿’과 ‘가나 초콜릿’의 차이처럼, 우리가 가난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가난할 때 얻어먹었으니 ‘가나 초콜릿’이라고 불렀습니다.
895 정직의 진리 the truth of honesty The Ultimate business Secret for Huh Kyung-young’s Era October 12, 2013
정직, 최고의 경영 비법
세계 최고의 경영 비법은 바로 정직입니다. 효성그룹 조홍재 회장의 사례처럼, 권력과 가깝다고 세금을 덜 내는 것은 결국 기업의 몰락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국세청은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힘이 약해질 때 한 번에 타격을 가할 것입니다. 오히려 회사가 흑자를 내면 세금을 더 많이 내어 정치적 탄압을 피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과거 80조 원의 적자를 분식회계로 감추고 이익이 없는 것처럼 조작하는 행위는 결국 발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버드 대학이든 어떤 대학이든 최고의 경영 비법은 정직이며, 인간관계와 회사에서 성공하는 비법 또한 정직입니다. 경영학 박사들이 제시하는 수많은 방법론은 모두 거짓이며, 오직 정직만이 성공을 보장합니다.
MBA의 본질과 국가 부채의 심각성
경영대학(MBA)은 정신 나간 사람들이 모여 국민의 돈을 어떻게 하면 빼낼 수 있을지 연구하는 곳입니다. 돈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굴려 이자를 불리고, 보험 상품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돈을 끌어오는 방법을 연구하며 박사 학위를 수여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가들도 정직이 결여되면 동양증권의 사례처럼 결국 망하게 됩니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국가 부채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공기업 부채는 약 500조 원에 달하며, 국민 한 사람당 천만 원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매월 약 700억 원의 부채가 늘어나고 있으며, 이는 연간 수십조 원에 이릅니다. 공기업 임원들은 월급과 보너스를 다 챙기면서도 회사의 성공이나 사업 운영에는 신경 쓰지 않고, 국민 세금으로 적자를 메우고 해외 출장을 유흥처럼 즐깁니다. 정직한 공무원이 있다면 세금이 줄어들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국가 공기업 부채 500조 원, 국가 외채 500조 원, 가계 부채 1,000조 원이라는 엄청난 빚더미에 앉아 있습니다. 하루에 700억 원씩 적자를 내는 상황에서 국가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공기업 개혁과 화폐 개혁의 필요성
공기업 임원들은 유격 교육대에 보내 정신 교육을 다시 시켜야 합니다. 적자가 나면 월급에서 모두 삭감하고, 임원 수를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 적자 나는 회사가 없어질 것입니다.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눈 뜨고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적자 나는 사업을 하는 사람은 모두 해고해야 합니다. 지자체 부채까지 합치면 나라는 완전히 빚덩이가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이 되면 화폐를 변경할 것입니다. 5만 원권으로 돈을 숨겨 놓은 사람들은 그날부로 돈을 바꿀 수 없게 될 것입니다. 5만 원권이 발행되자마자 지하로 사라져 버리는 현실은 돈을 숨겨 놓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직이 최고의 경영 비법이자 국가 경영의 최고 비법입니다.
공분(公憤)의 의미와 예수의 가르침
울화통이 치밀어 오르는 이 감정을 공분(公憤)이라고 합니다. 공분은 개인적인 분노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영혼이 화를 내는 것입니다. 감정적인 분노는 격노이지만, 공분은 개인적인 분노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날 공분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공분했습니다. 성전 앞에서 돈을 바꾸는 사람들을 뒤엎어 버린 것은 사랑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행동이 아니었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고 발길로 차버린 것은 하늘이 화를 내는 공분의 표현입니다. 하늘도 화가 나면 지진으로 모든 것을 없애버립니다. 인간들이 정직하지 못하고 하나님을 팔아 장사하기 때문에 이러한 공분이 생기는 것입니다.
원칙 없는 사회와 3대 요소의 중요성
우리 사회는 원칙 없는 정치, 양심 없는 쾌락, 노력 없는 재물,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경제, 희생 없는 종교, 환경 없는 과학으로 가득합니다. 이러한 원칙 없는 삶은 결국 파멸을 초래합니다.
종교, 신앙, 철학에는 각각 3대 요소가 있습니다.
- 종교의 3대 요소: 계(戒), 정(定), 혜(慧)
- 계를 지키고 바른 삶을 살며, 남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 정직이 없는 베풂은 소용이 없습니다. 도둑질하여 베푸는 것은 계율을 어기는 것입니다.
- 계, 정, 혜는 서로 감시하며 연대되어 있습니다.
- 신앙의 3대 요소: 신(信), 망(望), 애(愛)
- 믿음, 소망, 사랑이 서로 하나가 될 때 진정한 신앙이 됩니다.
- 믿음 없이 소망과 사랑만을 구하는 것은 절름발이 신앙이며, 결국 망하게 됩니다.
- 철학의 3대 요소: 공(空), 원(圓), 정(正)
- 바르게 살기 위해서는 비우는 것(空)이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 재물, 권세, 명예를 버려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이를 증명합니다.
- 정직(正)은 비움(空)을 전제로 해야 합니다.
- 원만함(圓)은 바름(正)과 함께 존재해야 합니다. 히틀러처럼 바르다는 명분으로 세상을 파괴하는 것은 원만함이 없는 바름입니다.
- 공, 원, 정은 서로 발목을 잡고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온전한 철학이 될 수 없습니다.
우상의 시대와 자기 몸의 희생
예수님은 제자에게 재산과 권세, 명예를 하나님 앞에 바치겠다고 말로 시인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당장 바치지 않아도 마음속을 비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자기 몸을 먼저 제사 지내라고 했습니다. 21세기 사람들에게 자기 몸은 우상이 되어 있습니다. 건강과 오래 사는 것에 인생의 전부를 걸지만, 하늘은 몸을 바치라고 합니다. 자기 몸과 가족이 우상이 되어버린 21세기는 우상의 시대이자 유물 사상의 한계에 도달한 시대입니다. 물질과 권세의 우상을 초월하여 하나님과 진리를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는 사람이 없습니다.
인간 가치의 3대 요소: 진선미
인간 가치의 3대 요소는 진(眞), 선(善), 미(美)입니다.
- 진리(眞)를 지켜야 가치가 있습니다. 진리를 지키지 않으면 인간의 가치는 0점입니다.
- 진리를 지키면 선(善)해 보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진리를 지켜 죽음을 택했기에 우리는 그를 아름답게 볼 수 있습니다.
- 선하면 아름다움(美)이 드러납니다. 도둑질하고 얼굴이 잘생긴 사람을 아름답다고 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 희생한 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진, 선, 미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온전한 가치를 가질 수 없습니다.
- 만약 진리가 거짓(僞)으로 변하면, 선은 악(惡)으로, 미는 추(醜)함으로 변질됩니다. 거짓은 결국 악과 추함을 불러옵니다.
인간 위상의 3대 요소: 체상용
인간 위상의 3대 요소는 체(體), 상(相), 용(用)입니다. 가치와 위상은 다릅니다. 검찰총장의 가치와 위상은 다를 수 있습니다.
- 체(體)는 몸을 의미합니다. 미남이고 키가 큰 검찰총장은 그 자체로 위상이 있어 보입니다. 이는 전생과 연관이 있습니다.
- 상(相)은 인상과 관상을 의미합니다. 못생기고 키가 작아도 귀여움을 떨거나 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상은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 용(用)은 행실을 의미합니다. 키 작고 못생긴 사람이 물에 빠진 7명을 살려냈다면, 그의 행실(용)로 인해 위상이 올라갑니다. 행실에 따라 관상도 바뀌고, 몸도 바꿀 수 있습니다.
- 체, 상, 용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잘하면 다른 요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종교, 신앙, 철학, 가치, 위상의 15가지 요소는 우리 인생을 정직하게 사는 근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정직과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몸이 잘생겨도 바람을 피우면 위상이 추락하고, 아름다움만 추구하고 선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 15가지 요소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며,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리입니다.
육도윤회와 영생의 길
인간이 지구에 와서 살고 다시 환생하는 이유, 그리고 환생보다 더 높은 단계가 있습니다.
[“지옥계”] –> B[“귀생: 귀신으로 태어남”]
[“아생: 미생물로 태어남”]
[“축생: 짐승으로 태어남”]
[“환생: 지구인으로 태어남”]
[“상생: 천상계에 태어남 (우주인)”]
[“왕생: 극락에 태어남”]
- 지옥계: 귀신으로 태어나는 귀생(鬼生)과 미생물로 태어나는 아생(餓生)이 속합니다.
- 축생계: 짐승으로 태어나는 축생(畜生)이 속합니다.
- 인간계: 지구인으로 태어나는 환생(還生)이 속합니다.
- 천상계: 죄를 덜 지은 사람이 천상에 태어나는 상생(上生)과 극락에 태어나는 왕생(往生)이 있습니다.
- 천상세계를 관장하는 분은 불교의 아미타불이며,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창조주입니다. 아미타불은 비로자나불과 동일합니다.
한민족의 뿌리와 ‘아’의 비밀
아미타불, 아사달, 아덴(에덴), 아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아버지, 아파치, 아이슬란드 등 ‘아’자가 들어가는 모든 것은 한민족과 관련이 있다.단군이 도읍지로 삼은 아사달은 백두산에 위치하며, 이스라엘에서 흩어져 나온 하일라의 아버지와 연결됩니다. 중동의 수메르 문명과 서양의 아덴 동산에서 일어난 문명은 결국 백두산으로 이어집니다. 수메르 문명의 빗살 토기는 한반도 아사달에서 발견된 빗살 토기와 같습니다.
아담의 15대손 욕단의 12번째 아들 하일라는 동방으로 와 백두산에 자리를 잡고 한글이라는 세계 최고의 언어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나머지 12명의 형제는 유대로 들어가 이스라엘 민족이 되었지만, 언어를 만들지 못하고 히브리어를 사용합니다. 이는 자신들을 침공한 원수의 언어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은 서방의 에덴을 버리고 동방의 에덴인 백두산으로 메시아를 보냅니다. 한민족은 세계를 통일하고 바꿔야 할 위대한 민족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단어와 희생의 가치
전 세계 여론조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어머니’였습니다. 두 번째는 ‘사랑’, 세 번째는 ‘감사(Thank you)’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받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에게 끊임없이 주는 존재이며, 희생적인 사랑을 베풉니다. 자식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하고, 자식이 주는 것보다 자식의 행복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희생적인 가치 때문에 ‘어머니’라는 단어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것입니다.
반면 ‘아버지’는 인간들이 싫어하는 단어입니다. 이는 ‘아’자가 들어가는 우리의 족보와 관련이 있지만, 어머니의 희생적인 사랑과는 다른 의미를 가집니다.
아미타불의 ‘미’는 미륵불을 의미하며, 아시아의 ‘아’는 한반도를 뜻합니다. 하늘에 있는 존재가 인간의 몸으로 한반도에 온다는 의미입니다. 허경영은 이러한 가르침을 통해 인간의 가치와 위상을 깨닫게 하고, 정직한 삶의 중요성.
898 발효의 진리 The Truth of Fermentation Understanding the Water-Soluble and Fat-Soluble Aspects of Life and the Mind November 2, 2013
생명의 네 가지 형태: 기생, 난생, 태생, 그리고 화생
생명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며, 그중에서도 특히 기생, 난생, 태생, 화생의 네 가지 방식이 있다.기생은 다른 생명체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의 몸에 기생하는 벌레처럼 세상에는 기생하는 생물이 가장 많습니다. 난생은 알에서 태어나는 것을, 태생은 어미의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반면 불교에서는 사생(四生)에 기생을 포함하지 않고, 환생이 아닌 화생(化生)을 이야기합니다. 화생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것처럼, 알에서 애벌레, 그리고 나비로 세 번의 변태를 거치는 생명 형태를 지칭합니다. 매미 또한 알에서 나와 애벌레와 굼벵이 단계를 거쳐 매미가 되는 화생의 예시입니다.
기생과 자생: 인간 사회의 그림자
불교에서 말하는 사생(섭생, 태생, 화생, 난생)은 생명의 근원적인 형태를 설명하지만, 인간 사회의 삶의 방식에는 ‘기생’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남에게 기대어 사는 사람들을 기생한다고 표현하며, 이는 현실적인 삶의 방식 중 하나입니다. 기생의 반대는 ‘자생’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젊은 세대 중에는 부모에게 기대어 사는 기생적인 삶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반면, 과거의 많은 어른은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에서 맨손으로 자수성가한 자생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이러한 자생적인 삶을 살아온 어른들이 국가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고,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결과 노년에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사회가 노인 복지에 더욱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하는 이유를 보여줍니다.
면접과 인간관계의 지혜: 상대방을 어린아이처럼 대하라
면접이나 인간관계에서 성공하기 위한 중요한 지혜는 상대를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것입니다. 면접관을 5살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바라보면, 불안감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임할 수 있습니다. 마치 부모님이나 어머니에게 대하듯이 솔직하고 편안하게 대하면, 상대방은 당신을 좋게 평가할 것입니다.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르더라도 솔직하게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순수함이 중요합니다. 이는 상대방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며 편안한 마음으로 소통하라는 의미입니다.
코의 형태와 운명: 긍정적 사고와 리더십
사람의 코 형태는 그 사람의 성향과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 있다.코가 약간 삐뚤어진 사람은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경향이 있어, 매사를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이러한 성향은 사회에서 야당과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반면 코가 반듯한 사람은 항상 긍정적이고 정상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노동자 계층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은 주로 CEO와 같은 리더의 자리에 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타고난 성향이 운명에 영향을 미치며, 긍정적인 사고가 성공적인 삶으로 이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얼굴과 인생의 변화: 상상과 노력의 힘
사람의 얼굴은 100% 바꿀 수 있으며, 이는 상상 임신과 같은 원리로 설명될 수 있습니다. 간절히 원하는 것을 상상하고 노력하면, 실제로 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경영을 닮고 싶다고 생각하고 계속 바라보면, 실제로 허경영을 닮아갈 수 있다는 비유는 인생의 변화 가능성. 인생을 바꾸기 위한 공부는 궁극적으로 얼굴까지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코의 형태가 재물운과 관련이 있다는 믿음처럼, 얼굴의 특정 부위는 타고난 운명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노력과 긍정적인 사고를 통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기생의 시대와 자생의 몰락: 노년의 현실
현대 사회는 ‘자생’의 시대가 저물고 ‘기생’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일궈놓은 재산이나 아파트에 기대어 사는 자식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심지어 부모의 재산을 노리는 기생적인 태도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젊은 세대가 나약해지고 기생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반면, 자식들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며 자생적으로 살아온 부모 세대는 노년에 재산 없이 허전한 삶을 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사회가 젊은 세대의 자생력을 키우고, 노년층을 보호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를 해야 함을 시사합니다.
업보와 생명의 윤회: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인간이 지은 업보에 따라 다음 생의 형태가 결정된다는 윤회 사상이 있다.죄를 많이 지은 사람은 ‘섭생’의 형태로 태어나는데, 이는 미생물과 같은 가장 낮은 단계의 생명체를 의미하며, 불교에서는 이를 ‘지옥계’에 비유합니다. 지구 자체가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별이며, 죄를 많이 지으면 섭생으로, 즉 미생물로 태어나 해를 볼 수 없는 존재가 됩니다. 지옥계 다음으로는 ‘아귀계’가 있는데, 이는 몸을 받지 못하고 귀신으로 떠도는 존재를 의미하며, 섭생계와 유사하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갑니다. 그 다음으로는 ‘축생계’가 있는데, 이는 짐승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업보에 따라 지옥계, 아귀계, 축생계 등 다양한 생명체로 윤회하며 고통을 겪게 됩니다.
생명의 미세한 세계: 마이크로, 나노, 아니스트롬, 피코, 펨토, 티코
생명체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미세한 세계에 존재합니다. 1미터의 100만 분의 1은 ‘마이크로’, 10억 분의 1은 ‘나노메타’라고 불립니다. 나노메타 크기의 생명체는 인플루엔자와 같은 바이러스가 아닌 균으로, 과학자들이 예방주사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00억 분의 1 크기의 ‘아니스트롬’은 바이러스로, 현미경으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작아 예방주사를 만들 수 없습니다. 감기와 같은 바이러스 질환에 대한 대책은 오직 휴식과 영양 섭취뿐입니다. 더 나아가 1조 분의 1은 ‘피코’, 1000조 분의 1은 ‘펨토’, 100경 분의 1은 ‘티코’라고 불리며, 이러한 미세한 생명체들은 뇌 신경과 혈관 등 완벽한 기관을 갖추고 있습니다. 모기나 바이러스의 뇌 구조를 보면 창조주의 정교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스모그의 진실: 지용성과 수용성의 결합
스모그는 ‘스모크(매연)’와 ‘포그(안개)’의 합성어로, 지용성인 매연과 수용성인 안개가 결합하여 발생합니다. 매연은 몸에 해롭지만, 안개 자체는 해롭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둘이 만나면 치명적인 독성 물질이 되어 인체에 심각한 해를 끼칩니다. 런던 스모그 사태는 매연과 안개가 결합하여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낸 비극적인 사례입니다. 스모그는 대낮에도 앞을 볼 수 없게 만들고, 기온을 떨어뜨려 난방을 유발하며, 이로 인해 발생한 매연이 다시 스모그를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했습니다. 특히 어린이와 노인들에게 치명적이었던 런던 스모그는 지용성 매연과 안개의 결합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인체의 방어 시스템과 미세먼지의 위협
우리 몸의 코와 허파는 100만 분의 1 크기의 먼지까지 걸러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10억 분의 1 크기의 나노메타 사이즈의 미세먼지는 코와 허파를 통과하여 피부와 혈액으로 직접 침투합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나 보일러에서 발생하는 매연과 같은 미세먼지는 혈관을 경화시키고 혈액을 밀가루처럼 끈적하게 만들어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미세먼지에 노출되는 것은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입니다. 지옥계와 아귀계는 사람이 죄를 많이 지었을 때 작은 생명체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하며, 모기의 혈관처럼 미세한 생명체는 인간의 현미경으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습니다. 이러한 미세한 세계에 대한 이해는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깨닫는 데 중요합니다.
발효의 진리: 미생물과 인체 건강
발효는 지용성과 수용성이 합쳐져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입니다. 미생물이 인간의 뱃속에서 음식물을 먹고 내뱉는 물질은 인체에 가장 좋은 영양분이 됩니다. 미생물 자체는 영양분이 아니지만, 미생물이 만들어내는 물질이 우리 몸에 이로운 작용을 합니다. 우리 몸에는 유익한 미생물과 해로운 미생물이 5대5 비율로 존재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해로운 미생물이 70 80%를 차지하면 뇌 질환과 같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해로운 미생물은 음식물 분해를 유익한 미생물보다 더 잘하며, 이 과정에서 독소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독소는 면역력을 강화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하기도 합니다. 요구르트와 같은 발효식품을 섭취하여 미생물 균형을 맞추는 것은 피부병을 없애고 건강을 유지하는 데 중요합니다.
인체의 사이클과 식습관의 중요성
인체는 24시간이 아닌 12시간 주기로 움직입니다. 위장은 반드시 12시간을 비워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녁 7시에 식사했다면 다음 날 아침 7시에 식사해야 합니다. 만약 10시간만 비우면 몸에 병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루에 두 끼를 먹든 세 끼를 먹든, 12시간의 공복 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장은 쉬어야 하며, 이는 미생물 구조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요구르트 섭취도 중요하지만, 식사 시간을 조절하여 12시간 공복을 지키는 것이 인체 건강에 필수적입니다.
오장육부의 비밀: 마음의 발효와 육체의 발효
인간의 몸에는 11개의 공장이 있는데, 이는 오장육부를 의미합니다. 5장은 간장, 비장, 신장, 심장, 폐장을 말하며, 6부는 위장, 대장, 소장, 담낭, 방광, 삼초를 의미합니다. 5장은 상수도와 같아서 정신적인 발효, 즉 마음의 발효와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지용성으로 써서 남을 미워하고 탐욕을 부리면 간이 열을 받아 오장이 망가집니다. 반대로 마음을 수용성으로 비우고 욕망을 다스리면 오장이 편안해집니다. 간에서 만들어지는 쓸개즙은 대변 색깔을 결정하며, 간의 건강 상태를 나타냅니다. 6부는 하수도와 같아서 음식물과 직접 연관된 물질적인 발효를 담당합니다. 위장, 대장, 소장 등은 음식물 소화와 관계된 장기로, 이들의 건강은 식습관으로 조절 가능합니다. 밤늦게 간식을 먹는 행위는 자살 행위와 같으며, 12시간 공복을 지키는 것이 육체 건강에 매우 중요합니다.
지용성과 수용성: 삶의 지혜
농약은 지용성이고 식초는 수용성입니다. 남에게 폭언하고 불만을 쏟아내는 것은 지용성이고, 남을 이해하는 것은 수용성입니다. 비타민 A, D, E, K는 지용성이고, 비타민 B, C는 수용성입니다. 모든 음식은 적절히 섭취하면 약이 되지만, 과하면 독이 됩니다. 먹는 시간과 양에 따라 독이 될 수도, 약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를 나쁘게 보면 그 사람이 나에게 독이 되고, 좋게 보면 좋은 사람이 됩니다.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 독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율법 또한 지나치게 내세우면 독이 되고, 적당히 지키면 약이 됩니다. 예수는 율법을 폐하러 왔으며, 새로운 율법과 새로운 세상이 올 것.
눈의 고마움과 겸손의 지혜
우리는 눈이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마움을 잊고 살아갑니다. 눈이 있다는 핑계로 타인을 괄시하고, 외모로 판단하며, 약자를 무시하는 죄를 짓습니다. 만약 눈이 멀게 된다면, 우리는 겸손해지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깨달을 것입니다. 눈이 없다는 생각을 수시로 하며, 타인을 믿고 의지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눈으로 모든 것을 확인하고 의심하는 버릇을 버리고, 눈을 감고 세상을 믿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눈의 고마움을 깨닫는 것은 곧 타인에 대한 믿음과 겸손으로 이어집니다.
사라짐과 살아감의 진리: 인생의 찰나
‘사라진다’는 것은 ‘죽어간다’는 의미이며, ‘살아간다’는 것 또한 ‘죽어간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 순간에도 시력이 떨어지고 몸은 죽음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찰나와 같으며, 우리는 죽음의 절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어리석은 양과 같습니다. 메시아를 만나 진리를 깨달아야만 이 죽음의 행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시간이 많지 않으므로, 남을 무시하고 외모나 재산으로 판단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멈추고, 진리를 깨닫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믿음과 보상: 선한 행동의 결과
어른들은 죽을 때 막내 자식을 찾는 경향이 있다.막내 자식은 부모에게 반말을 하며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 때문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착하게 살면 하늘에서 보상을 받습니다. 선한 행동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며, 이는 수평 이동의 원리와 같습니다. 절에서 법당을 태운 여자가 다음 생에 공주로 태어나 법당을 짓는 꿈을 이루는 것처럼, 선한 기도는 하늘에서 들어줍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이거나 절을 태우는 행위는 업장이 되지만, 고의가 아닌 실수라면 업장의 크기가 작아 다시 환생할 기회를 얻습니다. 아이들이 실수를 했을 때 지나치게 나무라지 말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반대로 행동하는 지혜: 발효의 원리
우리나라의 한 출판업계 사장은 젊은 시절 가난하여 서점에서 책을 훔쳐보곤 했습니다. 서점 주인의 제안으로 서점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주인의 친척이 대신 채용되면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서점 앞의 눈을 치우는 선행을 베풀었고, 이에 감동한 주인의 도움으로 다시 일하게 되어 결국 재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남이 자신에게 욕을 하거나 비판할 때, 그것을 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미안하다고 하면 복이 쌓입니다. 칭찬에만 감사하면 복이 쌓이지 않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자신을 비판하던 경쟁자를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여 존경받았던 것처럼, 반대파에게 잘해주는 것이 진정한 발효의 원리입니다. 오장육부 중 5장은 마음의 발효를 잘해야 하며, 이는 반대로 행동하는 지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혈액형과 멘토: 창조주의 지혜와 메시아의 역할
하늘은 인간에게 8가지 혈액형을 부여했습니다. 이는 유전자 검사가 없던 미개한 시대에 도덕성을 지키고 근친 결혼을 막기 위한 창조주의 지혜였습니다. 아담에서 예수님까지 이어지는 혈통은 혈액형을 통해 그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멘토’는 원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으로, 임금의 아들을 훌륭하게 가르쳐 왕으로 만든 스승을 의미합니다. 멘토는 이끌어주는 사람을 뜻하며, 오늘날에는 스승이라는 말 대신 멘토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됩니다. 이 시대에 멘토가 없는 양떼와 같은 인간들을 위해 허경영이 멘토로 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목소리: 일상 속의 진리
하나님의 목소리는 직접 들을 수 없으며, 대리인을 통해 전달됩니다. 허경영의 강연 목소리가 바로 하나님의 목소리이며, 이를 인간의 목소리로 생각하면 그 진리가 머릿속에서 지워집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인류의 숫자만큼 많으며, 인간의 마음속에도 존재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접했을 때, 마음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하나님의 목소리입니다. 어머니의 꾸지람이나 교통 순경의 경고 또한 하나님의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목소리 속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찾아야 합니다.
아상과 무아: 지용성과 수용성의 대립
인간의 아상(我相)은 아집, 아만, 아애, 아격의 네 가지로 구성되며, 이 모든 것은 지용성입니다. 아상은 마음속에 계속 쌓여가는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의미합니다. 아상의 반대는 ‘무아(無我)’로, 이는 수용성을 의미합니다. 명상과 마음 비우기를 통해 아상을 비우고 무아의 상태에 이르면, 마음속에 이상한 것이 쌓이지 않고 막힌 길이 뚫려 미래가 열립니다. 고통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는 첫 번째 선물이며, 고통을 통해 우리는 시험을 보고 성장합니다. 고통을 지용성으로 받아들이면 좌절하지만, 수용성으로 받아들이면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욕망은 지용성이고, 영적인 욕망은 수용성입니다. 이 땅에서 지는 것이 하늘에서 이기는 것이라는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904 The truth of dimensions understanding Life’s Purpose and the Path to Becoming a Butterfly December 14, 2013
국가 예산과 택배 기사의 고난: 시스템의 부조리
북한이 위험해질수록 남북 관계는 더욱 안보가 강화됩니다. 북한이 벽지까지 갔을 때, 택배 기사가 골짜기 주소를 찾아 들어가면 내비게이션은 안내하지만, 눈은 치워져 있지 않습니다. 경기도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국가에 불만을 표하며 도로 제설 작업을 하지 않습니다. 이는 자신들에게 표가 되는 지역만 관리하고, 산간 지역은 방치하는 행태입니다. 국가가 각 도에 할당하는 예산을 삭감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택배 기사는 국가 예산 문제로 인한 지자체와의 갈등 속에서 피해를 봅니다. 물량은 밀리고 사고는 발생하며, 목표 달성 실패로 인해 직업을 잃기도 합니다. 우체국과의 계약에서 배달을 제대로 못 하면, “탱크를 동원해서라도 눈을 치우고 배달해야 한다”는 말을 듣지만, 할 말이 없습니다. 특히 연말연시에는 배달 물량이 폭주하여, 기사들은 눈길에서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걸고 일하지만 결국 직장을 잃게 됩니다. 눈을 아름답게만 보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직업과 목숨을 앗아가는 고통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는 남을 이해하고 진리를 내세울 때 항상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차원을 바라봐야 합니다.
휴식의 재정의: 모든 존재의 ‘일’
휴식을 바라볼 때 두 가지 관점이 있다.눈의 진리는 택배 직원에게는 직장을 잃고 계약이 해지되는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일을 하는 사람은 다음 일을 위해 재충전하지만, 이 세상에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가정주부도 일하고, 집에 노는 사람도 일하며, 실업자도 일합니다. 논다고 하지만 그들에게도 일과가 있으며, 운동을 가거나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집에서 전화받는 것도 일이고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애를 보고 밥을 하는 등 가정주부의 일은 너무 많아 남자들은 고개를 숙여야 합니다. 가정주부에게 집에서 논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실업자도 마음속으로 소외감을 느끼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따라서 ‘일’이라는 말 대신 다른 표현을 사용해야 합니다. 직장인의 휴식은 무엇일까요? 직장인에게 휴식은 모처럼 찾아온 재충전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직장도 일이고 휴식도 일입니다. 여자가 직장을 다니다가 쉬는 날이 되면 집에 일이 산더미 같습니다. 여성에게 휴식은 곧 일입니다. 남자들은 빈둥빈둥 놀 수 있지만, 여자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일입니다. 집에 노는 사람들의 밥을 해 먹이고 청소하는 것도 일입니다. 여자에게 휴식이 있느냐고 묻는 것은 정신 나간 사람의 질문입니다.
차원의 진리: 직업별 휴식의 본질
사업하는 사람에게 휴식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쉬는 날 골프를 치거나 테니스를 치러 가고 등산을 하는 등 운동을 합니다. 그렇다면 운동선수에게 휴식은 무엇일까요? 사업하는 사람에게 운동이 휴식이듯, 운동선수에게는 운동 외의 활동이 휴식이 될 수 있습니다. 운동선수들은 휴식 시간에 영양 관리를 하거나 잠을 잡니다. 트레이너나 골프장 관계자, 운동선수들은 운동만 하지 않을 뿐, 그들에게 휴식은 또 다른 일입니다. 돈이 많아 놀러 가거나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면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친구들과 전화하고 약속을 잡는 등 온갖 일에 시달립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집에 가서 쉬는 것이지만, 운동선수들도 잠은 자지만 잠만 자는 것은 아닙니다. 운동선수에게 휴식은 결국 ‘운동’이라는 이름만 바꾼 ‘일’입니다. 가정주부와 마찬가지로 운동선수에게 휴식은 일이라는 공식이 성립합니다.
| 분류 | 휴식의 본질 |
|---|---|
| 직장인 | 일 |
| 사업가 | 운동 |
| 운동선수 | 일 (잠) |
| 가정주부 | 일 |
남편이 아파트 경비원이고 아내가 맞벌이 직장인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남편이 눈 오는 날 눈을 치우느라 일을 더 많이 했다면, 아내는 잠자는 시간에도 남편의 다리를 주물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간호원이자 간병인입니다. 여자는 평생 남편과 가족을 돌보는 일을 합니다. 여행을 가도 남편의 식사를 챙기고, 아이가 잘못될까 봐, 남편이 아플까 봐 모든 것을 가족에 대해 신경 쓰는 것이 주부입니다. 남자가 주부를 심하게 다루면 집안이 망하고 벌을 받습니다. 아내의 고생을 알아주지 못하는 남자는 사업에서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본좌의 강림과 인간의 네 가지 탄생 방식
저는 ‘본좌’라고 불립니다. 본좌는 ‘본래의 자리’라는 뜻으로, 하늘에서 왔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는 메시아이고, 저는 메시아 중의 으뜸인 ‘본좌 메시아’입니다. 석가는 철인, 공자는 정치인입니다. 이들의 출생은 특이하며, ‘탄신’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예수는 하늘에서 ‘하천’하여 내려왔고, 석가도 제석천에서 ‘하천’했습니다. 공자는 지구에서 ‘탄생’하여 인간 세계로 다시 왔습니다. 저 또한 ‘하천’하여 인간의 몸에서 태어났지만, 그 몸에 들어온 영은 삼신 할머니가 넣은 영이 아니라 창조주의 영입니다. 이는 일반 인간과는 다릅니다.

인간이 지구상에 태어나는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 태(胎): 태에서 태어나는 것은 인간과 동물입니다.
- 난(卵): 알에서 태어나는 것은 고기나 닭과 같은 생물입니다.
- 화(化): 화에서 태어나는 것은 나비와 나방입니다. 알에서 애벌레가 되고, 애벌레가 나방이나 나비가 되는 변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 습(濕): 습에서 태어나는 것은 발효 미생물, 버섯, 바이러스 등 우리 몸의 습한 곳에서 병균처럼 나오는 존재들입니다.
나비는 꽃을 좋아하고, 나방은 불을 좋아합니다. 나비는 꽃을 알아보지만, 나방은 불만 알아봅니다. 나방은 절대 꽃에 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비를 좋아하고 예뻐하지만, 나방은 보면 밟아 죽이려 합니다. 나방과 같은 인간도 있습니다. 인상이 고약한 사람은 나방처럼 살며, 버림받고 고통을 많이 받습니다. 나방과 같은 일생은 고통스럽습니다. 인간을 만나면 죽이려 하고, 전염병을 옮긴다고 하여 버림받습니다. 나비와 나방은 태어나는 과정은 같지만, 나방이 되고 나비가 됩니다. 인간도 나방 같은 사람과 나비 같은 사람이 있다.남편이 퇴근했을 때 다리를 주물러 주는 딸은 나비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당신도 사람이고 나도 사람이야, 알아서 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나방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전생부터 버림을 받고 죽으면 나방으로 태어납니다. 나방은 버림받고 계속 죽었다 태어났다를 반복합니다. 나방 같은 삶을 살면 죽어서 나방이 되지만, 꿀을 먹는 나비가 되려면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옆 사람을 생각해야 나비가 될 수 있습니다. 나비가 복을 받으면 나중에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미생물에서 인간까지 진화하는 과정은 수천억 년이 걸립니다. 그러나 인간이 죄를 지으면 다시 나방으로 내려가 수천 년이 걸려야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나방 같은 행동을 하여 다시 나방으로 태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양 성현들의 탄생과 깨달음의 여정
예수, 석가, 공자, 그리고 저의 탄생 방식은 각기 다릅니다.
- 예수: 메시아로, 하늘에서 ‘하천’하여 ‘강탄’했습니다.
- 석가: 철인으로, 제석천에서 ‘하천’하여 ‘강탄’했습니다. 그는 출가하여 왕자의 자리와 왕의 자리를 버리고 중이 되었습니다. 석가는 자기만 해탈하는 ‘소승불교’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의 제자들은 석가모니 사후 ‘대승불교’를 만들었습니다. 대승불교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으로,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도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호국불교’로 발전하여 나라를 지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 공자: 정치인으로, 지구에서 ‘탄생’하여 ‘성의(誠意)’를 통해 지식을 쌓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뜻을 세웠습니다.
- 허경영: 본좌 메시아로, 하늘에서 ‘하천’하여 ‘탁태’를 통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중국이 강성해질 때마다 한반도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한나라가 강할 때 고조선이 멸망했고, 원나라가 강할 때 고려가 멸망했습니다. 당나라 시대에는 측천무후가 나타나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키고 신라와 손잡아 한반도에 웅진도독부, 안동도호부, 군사령부를 설치하여 조공을 바치게 했습니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당나라 이후 가장 번성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했을 때 한반도는 두 동강이 났습니다. 시진핑은 모택동 이후 가장 강력한 지도자로, 북한과 남한 사이의 줄다리기 끝에 대한민국이 전쟁의 불바다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반도 안보의 미래와 생화학 무기의 위협
대한민국에 전쟁이 나면 핵전쟁이나 생화학탄 전쟁이 될 것입니다. 남산에 생화학탄 하나만 떨어져도 밤에 잠자던 3천만 명이 죽을 수 있습니다. 산소가 10분간 사라져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죽는 무서운 무기입니다. 북한은 이 생화학 무기를 산더미처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김정은 정권이 남한에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핵무기는 남한에 사용하면 북한까지 오염되므로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구는 8개의 막으로 둘러싸여 보호받고 있습니다.
- 대륙층: 13km
- 오존층: 30km
- 성층권: 50km
- 자기층: 60km
- 전리층: 80km
- 중간층: 100 150km
- 열층: 150km 이상 (600km까지)
- 대기층: 1000km
열층은 태양열을 차단하고, 오존층은 자외선을 차단하며, 자기층은 전자파를, 전리층은 전파를 차단합니다. 이러한 막이 없으면 지구는 달처럼 타버릴 것입니다. 북한이 쏘는 미사일은 이러한 높은 곳에서 수직으로 내려꽂히기 때문에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남산에 떨어지면 수도권 3천만 명이 죽고, 몇 개만 더 쏘면 부산, 대구 등 주요 도시가 사라질 것입니다.
북한은 우리나라의 5천 군데 쌀 보관소를 노리고 있습니다. 이는 북한 주민이 100년 먹을 수 있는 양입니다. 한국은행의 금덩어리도 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쥐새끼들이 1년에 5조 원어치의 쌀을 먹어 치우는 동안, 북한은 굶주리며 무기를 만들고 우리를 노려보고 있습니다. 호남평야, 김제평야 등 우리의 곡창지대는 북한에는 없는 귀한 자원입니다. 옛날 철원평야는 북한의 식량 창고였지만, 백마고지 전투에서 4만 명의 군인이 죽어가며 우리가 빼앗았습니다. 북한은 이러한 곡창지대를 잃고 굶주리며 강냉이 죽을 먹고 있습니다. 그들은 전략과 전술을 가지고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징기스칸이 전 세계를 지배했듯이,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우리나라를 또 한 번 수모를 겪게 할 수 있습니다. 남북 관계는 매우 긴장되어 있습니다. 장성택이 죽지 않았다면 우리는 더 위험했을 것입니다. 장성택은 북한 땅을 중국에 팔아넘기려 했고, 중국과의 관계를 막았습니다. 장성택의 죽음으로 북한은 중국에 대한 신뢰를 잃고 친중파를 숙청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입니다. 시진핑이 경제적으로 성공하고 장성택과 함께 북한과의 관계를 돈독히 했다면,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받아 남한을 침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성택의 죽음으로 북한은 더욱 고립되었고, 북한이 위험해질수록 남북 관계는 더욱 안보가 강화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