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3.30 z103 Free Will & Reincarnation

자유의지 외에 그 사람이 살아생전 지은 인과관계가 환생에 99%의 비중으로 크게 작용한다.
귀신이 되지 않고 죽었을 때는 그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업식대로 환생이 결정된다.
업식은 그 사람의 인과관계를 의미한다.
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비록 1%의 비중이지만 인간의 모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2023.03.30 z103 Free Will & Reincarnation Heaven Palace Talks Free Will Reincarnation Philosophy Spirituality

1부 죄 지은 자를 먼저 용서하라 : 하늘궁 화요대담 103-1회
2부 자유의지와 환생: 하늘궁 화요대담 103-2회

한일 관계의 역사적 맥락과 현재 상황을 이해하고, 개인의 자유 의지가 환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관점을 제시

  1. 한일 관계에 대한 이해
  • 국민 정서와 정치적 판단의 괴리:

    • 한국 국민의 3분의 2는 일본의 사과 없는 관계 개선에 반대
    • 그러나 윤 대통령의 대일 정책은 대승적인 관점에서 진행되는 것
    • 국민은 감정적으로 흐르기 쉬우며, 일본은 이미 수십 년간 50번 넘게 사과했지만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음
    • 원한 관계는 풀기 어려우며, 다음 생까지 이어질 수 있음
  • 역사적 관점:

    • 일본의 죄:
    • 1905년 한일 무조약 체결 및 외교권 강탈
    • 한일 합방
    • 명성황후 시해
    • 독일과 일본의 차이:
    • 독일은 폴란드 학살에 대해 사과했지만, 일본은 한국과 조약을 맺고 합방을 진행하는 등 방식이 다름
    • 일본은 한국을 러시아와 중국 침략의 길목으로 활용
    • 한국 내부의 친일 세력:
    • 과거에도 친일파가 존재했으며, 일본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협력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음
    • 이는 현재의 친미/친중 세력과 유사한 양상
  • 용서와 실리 외교의 중요성:

    • 대승적 용서:
    • 죄를 지은 자가 먼저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입은 자가 먼저 용서하는 것이 대승적인 태도
    • 이는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달하여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
    • 실리 외교:
    • 명분보다는 실리 외교를 통해 국민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야 함
    • 일본과의 한일 통화 스와프 등 경제 협력은 한국에 큰 이득
    • 일본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측면도 있음 (공장, 철도 등)
  1. 자유 의지와 환생
  • 환생의 결정 요인:

    • 자유 의지: 죽을 때 가장 강하게 생각하는 대상 (어머니, 아버지, 연인 등)에게로 환생하려는 의지
    • 인과 관계 (업식): 그동안 지은 업보에 따라 환생이 결정되지만, 자유 의지가 일부 작용
    • 신은 자유 의지를 건드리지 않음: 인간의 자유 의지는 신도 개입할 수 없는 영역
  • 자유 의지의 중요성:

    • 자유 의지는 인간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함
    • 인연에 의해 오는 것도 있지만, 자유 의지에 따라 인연을 끊고 떠날 수도 있음
  1. 일본의 역사적 인물과 한국
  • 이동방문 (이동방문):

    • 가난한 농부 출신으로 동양학을 공부하여 사상적으로 무장
    • 군인보다는 외교 전문가였으며, 한반도 정세를 이해하려 노력
    •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을 진정시키고 아시아 정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 했음
    • 그의 죽음 이후 일본 국수주의자들이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됨
    • 서양 문물을 연구하고 유학하여 국제주의적 사고를 가짐
    • 부모님이 조선 출신이라는 설이 있어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김
    • 천황의 성씨가 한국에서 유래했다는 역사적 연구도 있음
    • 대마도 또한 한반도에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
    • 한반도를 향해 제사를 지내는 등 고향으로 여김
  • 한일 관계의 본질:

    • 일본과 한국은 형제 국가이며, 혈족끼리 통일된 역사적 배경이 있음
    • 일본인들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어부들에 의해 형성된 민족
    • 한국인과 일본인은 외모가 매우 유사함
  • 대승적 견지: 개인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을 넘어 전체를 아우르는 큰 관점

  • 소성적 견지: 개인의 감정이나 작은 이익에 얽매이는 관점

  • 사단칠정:

    • 사단 (四端):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양반의 사상
    • 칠정 (七情): 희(喜), 노(怒), 애(哀), 락(樂), 애(愛), 오(惡), 욕(欲)으로, 서민들의 감정
  • 실리 외교: 명분보다는 실제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외교 정책

  • 자유 의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능력으로, 환생에 큰 영향을 미침

  • 업식 (業識): 과거의 행위와 그로 인해 형성된 잠재의식으로, 환생에 영향을 미침

1. 개요

1.1 서론
이 보고서는 한일 관계와 개인의 자유의지 및 환생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주제를 다룬다. 특히, 국가 간의 갈등 해결 방식과 개인의 삶에 미치는 자유의지의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한다. 이 주제들은 우리가 과거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데 중요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1. 한일 관계: 용서와 실리
    한일 관계는 국민적 감정보다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실리 외교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2.1. 국민 정서와 지도자의 역할
국민 정서의 특징
한국 국민의 3분의 2는 일본의 사과 없는 관계 개선에 반대하며,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는 관계 개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사적인 감정이든 공적인 감정이든 감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다.
일본이 수십 년간 50번 사과했음에도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끝없는 사과 요구는 결국 한국을 힘들게 할 수 있다.
한번 맺은 원한은 풀기 어려우며, 개인 간의 원한도 다음 생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비유한다.
대승적 지도자의 역할
윤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대승적인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소극적인 관점에서 보면 복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이 아무리 사과하고 돈을 내놓아도 한국 국민의 마음속에는 용서가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승적인 정치 지도자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

2.2. 역사적 관점과 실리 외교의 중요성
일본의 역사적 행위와 한국의 입장
일본은 1905년 한일 무조약을 맺어 한국의 외교권을 대신하고, 이후 합방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 침략의 길을 확보했다.
이는 폴란드를 공격한 독일의 방식과는 다르며, 일본은 한국을 공업화하고 한국인을 고용하며 강대국 침략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했다.
일본의 가장 큰 죄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국민의 사고방식과 사회 계층
한국 국민의 약 30%는 ‘사람’으로서 이성적이고 대승적인 견지를 가지며, 나머지 70%는 ‘인간’으로서 감정에 치우친다.
조선 시대의 양반(30%)은 측은지심, 양보,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지성적인 태도를 가졌고, 상놈(70%)은 칠정(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에 따라 살았다.
현재 국민의 30%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찬성하지만, 70%는 감정적으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원수를 끝까지 원수로 여기는 감정적인 태도와 달리,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로 삼은 목사의 사례처럼 대승적인 용서가 필요하다.
용서의 주체와 실리 외교
죄를 지은 자가 먼저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피해를 당한 자가 먼저 “괜찮소, 내가 용서하오”라고 말할 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진다.
강한 자가 용서하는 것이며, 이는 상대방에게 감동과 에너지를 주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한일 통화 스와프와 같은 실리 외교는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되며, 명분만을 내세우는 것은 북한의 태도와 유사하다.
윤 대통령의 일본과의 관계 개선 노력은 진취적이고 대승적인 것이며, 이에 시비를 걸면 경제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다.
명분보다는 실리 외교를 통해 국민의 삶을 살려야 하며, 역사적 자존심만 내세우는 것은 밥 먹여주지 않는다.
일본이 한국에 공장을 짓고 철도를 놓아 개화에 기여했으며, 그들이 버리고 간 공장을 통해 기술을 배운 점도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의 명분론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은 서민들의 삶을 위해 실리 외교가 더 중요하다.
대통령이 과감하게 실리 외교를 추진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국가가 발전한다.

  1. 자유의지와 환생
    인간의 자유의지는 환생과 운명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는 신도 간섭할 수 없는 영역이다.

3.1. 자유의지의 중요성
환생과 자유의지
인간은 죽으면 자기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듯이, 환생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백궁에서 환생을 결정할 때 그 사람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본다.
죽을 때 어머니, 아버지, 헤어진 연인 등 강하게 생각하는 대상에게로 환생할 수 있다.
선교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 죽을 때 선교사를 생각하면 그 집안으로 환생할 수도 있다.
자유의지의 절대성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만큼은 간섭하지 않는다.
인간은 마음대로 행동하고 선악을 구별하며 살아도 되지만, 자유의지는 신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1%밖에 안 되지만, 그 1%가 인간의 모든 운명을 바꿀 수 있다.
자유의지 때문에 인간은 성장 과정에서 많은 고생을 겪는다.

3.2. 환생과 인과관계
업식과 자유의지의 작용
인연에 따라 환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좋지 않은 곳으로 가서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귀신이 되면 한국 자리에 머물지만, 귀신이 되지 않고 죽었을 때는 내면의 잠재의식인 ‘업식’에 따라 환생이 결정된다.
업식대로 결정되지만, 자유의지가 약간 작용하여 약간의 변동은 하늘에서 간섭하지 않는다.
역사적 인물과 환생의 예시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을 선진화시키는 데 기여했으며, 북한은 과거 일본의 영향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공업화된 지역이었다.
이성박물(이동방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동양학을 공부하여 사상적으로 무장하고, 외교 전문가로서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이해가 깊었다.
그는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을 진정시키고 아시아 정세를 다독거리려 했으나, 그의 죽음으로 인해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이성박물은 서양을 잘 아는 국제주의자였으며, 그의 부모님이 조선 출신이라는 설도 있어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여겼다.
일본 천황의 성씨가 한국에서 유래했다는 역사적 연구도 있으며, 대마도 역시 한국과 관련이 깊다.
일본인들은 한반도를 향해 제사를 지내며 고향을 바라보는 관념이 있었고, 일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어부들에 의해 만들어진 형제 국가이다.
한국과 일본의 혈족 관계
경상도 여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낙지에 간 사례나, 배가 떠밀려 도착하는 곳이 일본이라는 점을 통해 한국과 일본의 혈족 관계를 강조한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똑같이 생겼다는 점도 이러한 혈족 관계를 뒷받침한다.

1부 죄 지은 자를 먼저 용서하라는 말의 의미는? 피해를 당한 사람이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밀어 가해자를 감동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관계를 개선하고 실리 외교를 통해 국가의 이익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1.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적 인식과 대승적 관점의 필요성
    국민 대다수는 일본의 사과 없는 관계 개선에 반대하지만,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대승적인 관점에서 실리 외교를 추구해야 한다.

1.1.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국민 여론과 감정적 접근의 한계
국민 3분의 2는 일본의 사과 없는 관계 개선에 반대한다.
국민의 59%는 일본의 사과 없는 음식 수입에 반대하며, 일본의 태도 변화 없이는 관계 개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민은 사적인 감정이나 공적인 감정에 치우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50번 이상 사과했지만, 한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끝없는 사과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이는 한 번 맺은 원한은 풀기 어렵다는 ‘대원(大怨)’의 개념과 유사하다.
복수심에 기반한 소극적 관점은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일본이 아무리 사과하고 막대한 돈을 내놓아도 한국 국민의 마음속에는 용서가 어렵다.
따라서 대승적인 정치 지도자의 차원에서 관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

1.2. 과거 한일 관계의 복잡성과 일본의 전략적 사고방식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 개선 사례와 다른 한일 관계의 특수성
독일과 폴란드는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지만, 일본은 한국과 1905년 한일 무조약을 맺고 외교권을 대신했으며, 이후 합방을 단행했다.
이는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여 괴롭히거나 유대인을 학살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일본의 ‘대동아 공영권’ 주장과 전략적 합의
일본은 자신들의 천황을 존경하기 위해 미국, 러시아, 중국을 오랑캐로 여기며, 일본 영토의 100배 이상 되는 나라를 노렸다.
일본 천황과 히틀러는 아시아와 미국, 그리고 유럽과 러시아 서쪽을 각각 통일하자는 전략적 합의를 했다.
한국은 폴란드와 유사하게 러시아 침공의 길목 역할을 했으며,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세워 한국인을 고용하고 공장을 지어 강대국 침략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했다.
일본이 미국, 러시아, 중국을 침략할 때 한일 합방은 강제였더라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국 내 친일 세력의 존재와 복잡한 역사적 배경
과거 한국에는 친일파, 청나라파, 일본파가 있었듯이, 현재도 친미파, 친중파가 존재한다.
김옥균 같은 석학들은 일본을 의지하여 안보를 지키려 했으며, 일본 문물을 싫어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청나라와 일본의 전쟁에서 일본이 한국의 주도권을 차지하며 러시아와 중국을 밀어냈다.
일본의 가장 큰 죄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1.3. 국민의 감정적 사고와 대승적 사고의 차이
국민의 70%는 감정에 치우치는 ‘칠정(七情)’으로 살아간다.
국민의 30% 정도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지만, 나머지 60~70%는 감정에 좌우된다.
칠정은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을 의미하며, 서민들이 이러한 감정에 따라 살아간다.
이들은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 감정적으로 원수를 끝까지 원수로 여긴다.
국민의 30%는 이성적인 ‘사단(四端)’으로 살아가는 양반의 사고방식을 가진다.
사단은 측은지심(불쌍히 여기는 마음), 수오지심(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 사양지심(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을 의미한다.
이들은 남을 불쌍히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남에게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가려 행동하는 지성인이다.
이들은 대아적(大我的)이고 대승적(大乘的)인 견지를 가지고 사회를 이끌어간다.
이들은 정답을 논하고 사서 받지만, 칠정으로 사는 서민들은 정답이 없었다.
대승적 용서의 중요성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로 삼은 목사의 사례처럼, 대승적인 용서는 상대방을 감동시킨다.
한국은 일본을 감동시켜야 하며,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1. 실리 외교의 중요성과 대승적 용서의 가치
    피해를 입은 쪽이 먼저 용서의 손길을 내밀어 가해자를 감동시키는 대승적 용서는 국가의 실리 외교를 가능하게 하며, 이는 국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필수적이다.

2.1. 피해자가 먼저 용서하는 대승적 자세의 필요성
피해자가 먼저 용서해야 가해자가 진정으로 반성한다.
범죄자가 먼저 잘못을 빌기보다, 피해자가 “괜찮소, 내가 용서하오”라고 말할 때 범죄자가 반성하게 된다.
예를 들어, 배고파서 도둑질한 사람에게 “괜찮다, 내가 좋은 집에 사는 게 내 죄도 있다. 다음부터 잘하자. 배고프면 우리 집에 와라”라고 말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이다.
강한 자가 용서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이다.
아들을 죽인 사람을 찾아가 양자로 삼은 목사의 사례처럼, 용서를 빌지 않는 상대에게 먼저 용서를 베푸는 것이 대승적인 용서이다.
죄지은 사람이 먼저 용서를 빌면 용서해주는 것은 측은지심이 아니며, 양반이나 공자의 사고방식이 아니다.
국민의 70%는 죄지은 사람이 먼저 용서를 빌기를 원한다.

2.2.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외교의 중요성
한일 통화 스와프는 실리 외교의 좋은 예시이다.
일본은 한국에 45번 이상 사과했으며, 한일 통화 스와프는 한국의 달러 부족 시 일본 달러를 빌려주는 대단한 협력이다.
명분주의는 국가 경제에 피해를 준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존심을 내세우는 북한과 달리 실리를 추구했다.
북한은 일본의 돈을 받지 않겠다고 하지만, 한국은 명분을 내세워 돈을 요구하고 개인들이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이상한 근성을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과의 관계 개선 노력은 진취적이고 대승적인 행동이며, 이에 시비를 걸면 경제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보게 된다.
국가를 살리기 위해서는 명분보다는 실리 외교를 할 수밖에 없다.
명분주의는 역사적으로 성공하지 못했다.
전봉준 장군, 녹두장군, 임꺽정 등 명분을 내세운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양반들이 항상 사회를 장악했으며, 노예들은 양반을 이긴 적이 없다.
일본과의 관계를 소극적으로 바라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끝없는 투쟁과 방황이 반복될 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리 외교는 국민을 위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기에 순수하게 역사를 바라보며, 과거의 문제를 풀고 미래로 나아가려 한다.
한국이 과거에 국방을 견고히 하지 못해 일본에 지배당한 것도 우리의 잘못일 수 있다.
일본 총리가 사과한다고 해서 일본 국민 전체가 사과하는 것은 아니며, 일본 국민의 65~70%는 한국에 대한 사과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제적인 경제 전쟁 속에서 명분주의로 감정 싸움을 하면 한국은 엄청난 위험에 처한다.
일본은 한국의 개화에 기여했으며, 일본이 남기고 간 공장을 통해 기술을 배우고 발전했다.
민주당의 명분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은 실리 외교를 통해 서민들의 삶을 살려야 한다.
대통령이 과감하게 실리 외교를 추진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국가가 발전한다.
역사적 자존심은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니며, 국제 정세는 명분과 실리 중 서민을 살리는 실리를 택해야 한다.
명분만 내세우며 일본을 비난하면 인기는 좋을지 몰라도 나라는 망하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라를 살리려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인다.

2.3. 용서가 가져오는 긍정적인 영향
칭찬과 용서는 상대방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준다.
좋은 정책이 있으면 칭찬해야 하며, 이는 편을 드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옳다고 말하는 것이다.
피해를 받은 사람이 먼저 마음을 열고 용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출근길에 실수로 신발을 밟은 사람에게 “괜찮다, 나도 남의 신발 많이 밟아봤다. 걱정 마시고 가세요”라고 말하면 상대방은 마음이 뜨거워지고 살맛이 난다.
이는 상대방에게 용기를 주고, 세상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용서는 선순환을 만든다.
용서를 받은 사람은 자신도 남을 용서하게 되어, 살벌한 세상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낸다.

2부 죽을 때의 자유의지가 1%의 비중으로 환생에 영향을 미치며, 나머지 99%는 살아생전 지은 인과관계에 따라 결정됩니다.

  1. 환생 결정 요인: 자유의지와 인과관계
    환생은 죽을 때의 자유의지가 1%의 비중으로 영향을 미치며, 나머지 99%는 살아생전 지은 인과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1.1. 환생에 미치는 자유의지의 영향
자유의지의 역할
인간이 죽으면 백궁에서 환생을 결정할 때 그 사람의 자유의지를 고려한다.
자유의지는 환생 결정에 1%의 비중을 차지한다.
죽을 때 특정 대상을 강하게 생각하면 그 대상과 관련된 곳으로 환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죽을 때 어머니를 부르면 어머니에게로, 헤어진 여자를 생각하면 그 여자에게로 갈 수 있다.
선교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 죽을 때 선교사를 생각하면 선교사의 집안으로 환생할 수도 있다.
자유의지의 중요성
자유의지는 환생에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
착한 사람은 자유의지를 통해 원하는 곳으로 환생할 수도 있다.
타국에서 죽었어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그곳으로 환생할 수 있다.

1.2. 환생에 미치는 인과관계의 영향
인과관계의 비중
자유의지 외에 그 사람이 살아생전 지은 인과관계가 환생에 99%의 비중으로 크게 작용한다.
귀신이 되지 않고 죽었을 때는 그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업식대로 환생이 결정된다.
업식은 그 사람의 인과관계를 의미한다.

1.3. 신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건드리지 않는 이유
자유의지의 신성함
신은 인간을 지구에 두었지만, 자유의지만큼은 건드리지 않는다.
인간은 마음대로 행동하고 선악을 구별하며 살아도 되지만, 자유의지를 건드리는 순간 신은 화산을 폭발시켜 인류를 멸망시킬 수도 있다.
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비록 1%의 비중이지만 인간의 모든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자유의지로 인한 고통
인간이 질그릇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유의지 때문에 많은 고생을 겪는다.
하늘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따른 약간의 변동을 간섭하지 않는다.

1.4. 인연과 자유의지에 따른 환생의 결과
인연과 자유의지
어떤 인연으로 환생하는 것은 좋지만, 자유의지로 인해 좋지 않은 결과로 환생할 수도 있다.
인연이 강해 한국에서 인플레이션이 심해도 한국에 머무는 경우도 있다.

  1. 이등박문의 사상과 일본의 한반도 인식
    이등박문은 일본의 국수주의를 진정시키고 아시아 정세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려 했던 국제주의자였으며, 일본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와 깊은 혈족 관계를 맺고 있다.

2.1. 이등박문의 사상과 역할
이등박문의 환생 여부
박정희 대통령이 한국을 선진화시킨 것처럼 이등박문도 환생했다고 생각한다.
이등박문의 업적과 영향
이등박문은 북한에 대규모 공장을 짓고 군수품 원료를 수집하여 북한을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로 만들었다.
당시 북한은 남한보다 몇 배 잘 살았으며, 전력 생산도 엄청나게 좋았다.
일본 조선총독부도 북한의 공업화를 추진하여 북한은 아시아 최고의 공업 국가였다.
이등박문이 살아있었다면 한반도 정세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본다.
이등박문의 사상적 배경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동양학을 공부하여 사상적으로 무장했다.
그는 군인보다는 외교 전문가였고 한반도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상은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을 막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는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을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이등박문은 전쟁에 미친 국수주의자들을 차단하고 브레이크 역할을 하던 희망 외교관이었다.
그는 아시아 정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며 다독거리려 했다.
그는 서양을 잘 아는 국제주의자였으며, 일본만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등박문 사망의 영향
이등박문이 죽으면서 그의 꿈은 실패로 끝났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이 전쟁에 미치게 되었고,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이등박문에 대해 잘못 알고 있다.

2.2. 일본과 한반도의 혈족 관계
일본 천황의 기원
일본 천황의 성은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설이 있다.
이등박문의 부모님도 조선이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일본의 한반도 인식
일본인들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는 관념이 있었다.
제사를 지낼 때 한반도를 향해 지내며, 고향을 바라보는 마음을 가졌다.
일본과 한국의 형제 관계
일본을 보는 눈을 바꿔야 하며, 일본은 한국의 형제 국가이다.
북한과의 통일도 필요하지만, 일본과의 통일은 가장 혈족끼리 통일된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한반도에서 배를 타고 건너간 어부들이 정착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경상도 여성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인이 된 경우도 많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은 생김새가 똑같다.

1. The Paradox of Forgiveness: National Sentiment Versus Statesmanship

The current national discourse reveals a significant divide regarding Japan’s apology and the normalization of relations. A substantial portion of the populace, approximately two-thirds, opposes reconciliation without a clear change in Japan’s attitude and a sincere apology. This sentiment, driven by deep-seated emotions, often overlooks the broader implications of international relations. While it is natural for individuals and nations to harbor strong feelings, a purely emotional approach can hinder progress. Japan has offered apologies numerous times over several decades, yet these have often been met with continued resentment, creating an endless cycle that ultimately harms both nations.

Historical grievances, particularly those involving profound suffering, can evolve into a deep-seated animosity that is incredibly difficult to resolve. Such profound resentment, akin to a “great grudge,” transcends ordinary disputes and can persist across generations, even influencing future familial relationships. This enduring animosity means that calls for perpetual retribution against Japan, while emotionally understandable, may not serve the nation’s long-term interests.

President Yoon’s current approach to Japan is rooted in a statesmanlike perspective, which prioritizes long-term national interests over immediate emotional gratification. A narrower, more emotional viewpoint would indeed demand continued retribution, insisting on Japan’s abject apologies, profound repentance, and substantial financial reparations. However, even if such demands were met, the deep-seated resentment within the Korean populace might remain unresolved. True forgiveness, therefore, must originate from a higher, more magnanimous level of leadership.

  1. Historical Context and Divergent Paths to Reconciliation
    The historical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differs significantly from other post-conflict reconciliations, such as that between Germany and Poland. While Germany inflicted immense suffering on Poland, Japan’s actions toward Korea involved a series of treaties, including the 1905 Korea-Japan Treaty, which effectively transferred Korea’s diplomatic authority to Japan, followed by annexation. This was not merely an invasion but a strategic move to secure a pathway for Japan to confront Russia and China.

Japan’s imperial ambitions, driven by a belief in the divine authority of its Emperor, aimed to establish a “Greater East Asia Co-Prosperity Sphere,” uniting Asia under its dominion, much as Hitler sought to unify Europe. Korea, in this grand strategy, served as a crucial strategic point. The Japanese established the Government-General of Korea, offering preferential treatment to collaborators and employing Koreans in factories built on Korean soil, leveraging Korean resources and labor for their expansionist goals.

Unlike Poland, which did not have an annexation treaty with Germany, Korea’s situation was complicated by the presence of pro-Japanese factions, similar to how pro-American and pro-Chinese factions exist today. These factions believed that aligning with Japan could benefit Korea, offering an alternative to Chinese influence. This internal division meant that the annexation, while coercive, was not entirely without internal support, making the historical narrative more complex.

Japan’s most significant historical transgressions against Korea can be summarized into three major categories. Public sentiment regarding these issues is often divided: approximately 30% of the population maintains a rational, principled stance, while the remaining 60-70% are primarily driven by emotion.

  1. The Philosophical Divide: Rationality Versus Emotion in National Affairs
    In traditional Korean thought, society was broadly divided into two groups: the “Sadan” (Four Virtues), representing the noble class, and the “Chiljeong” (Seven Emotions), representing the common people.

The Sadan (Noble Class):
Comprised about 30% of the population.
Characterized by compassion, self-reflection, humility, and a strong sense of right and wrong.
Possessed a broad-minded and statesmanlike perspective, guiding society with wisdom and foresight.
These individuals were seen as the intellectual and moral backbone, capable of making decisions based on principle rather than fleeting sentiment.

The Chiljeong (Common People):
Comprised about 70% of the population.
Driven primarily by emotions such as joy, anger, sorrow, pleasure, love, hate, and desire.
Their decisions were often impulsive and reactive, lacking the long-term vision of the noble class.
When viewed through the lens of the Chiljeong, forgiveness for historical grievances becomes nearly impossible, as emotions of resentment and a desire for retribution dominate.

This philosophical divide explains why a significant portion of the public finds it difficult to forgive Japan. Their emotional response, while understandable, contrasts with the statesmanlike approach that prioritizes national interest and long-term stability.

  1. The Power of Unilateral Forgiveness: A Path to Transformation
    True forgiveness,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deep-seated grievances, often requires a magnanimous act from the wronged party. It is not merely about the perpetrator seeking forgiveness, but about the victim extending it unconditionally. Consider the profound example of a pastor who adopted the young man who murdered his own son. This act of unilateral forgiveness transcends ordinary human emotion and embodies a higher moral principle.

When the wronged party says, “It’s alright, I forgive you,” even before the perpetrator has fully repented, it creates a powerful emotional shift. This act of grace can inspire genuine remorse and transformation in the perpetrator. It is the stronger party who offers forgiveness, not the one who demands it. This approach can move the other party to genuine introspection and change.

Japan has apologized over 45 times, and recent initiatives like the Korea-Japan currency swap agreement are significant steps towards practical cooperation. This agreement, which allows Korea to borrow Japanese dollars during times of need, is a substantial benefit. Prioritizing national pride over such practical benefits, as North Korea often does by refusing aid, can be detrimental. While some argue for maintaining a strong stance based on principle, a pragmatic approach that prioritizes the welfare of the people is often more effective.

President Yoon’s current policy towards Japan, despite criticism, is a forward-thinking and statesmanlike decision. Constantly dwelling on past grievances only perpetuates economic harm. While principled arguments have their place, they have historically failed to achieve lasting success without a pragmatic foundation. The noble class, throughout history, has always held sway, understanding that practical benefits often outweigh emotional satisfaction.

Continuing an endless cycle of conflict, akin to the perpetual struggle between Israel and its neighbors, serves no one. It is time to bring an end to this cycle. President Yoon, as a non-career politician, approaches these issues with a fresh perspective, unburdened by historical political baggage. He seeks to resolve past issues for the sake of future generations.

It is possible that our ancestors’ failure to adequately protect our nation and its people contributed to the historical injustices. While Japan’s actions were undeniably wrong, we must also acknowledge our own shortcomings in national defense. Blaming only the aggressor without introspection is unproductive. A mere apology from a Japanese prime minister does not represent the entire Japanese populace.

  1. Pragmatism in International Relations: Prioritizing National Interest
    In the current global landscape of intense economic competition, prioritizing practical diplomacy is crucial for the survival and prosperity of the nation. Emotional, principle-driven conflicts can severely jeopardize a country’s standing. Japan, despite its historical role, has also contributed to Korea’s modernization, building factories and railways that are still in use today. These contributions, though born from a painful past, undeniably accelerated Korea’s industrial development.

While the Democratic Party’s arguments for a principled stance have merit, the current priority must be pragmatic diplomacy to ensure the economic well-being of the common people. If leaders prioritize national pride over practical benefits, it is the ordinary citizens who suffer the most from economic hardship. President Yoon’s bold decisions, even if unpopular, aim to create jobs and foster national prosperity.

History shows that national pride alone does not feed the people. International relations often present a choice between principle and pragmatism. While principled arguments resonate with some, the ultimate goal must be to improve the lives of the citizens. A leader who sacrifices personal popularity for the nation’s well-being, like President Yoon, deserves commendation.

The Holiest emphasizes that the wronged party should be the first to open their heart and offer forgiveness. This act of grace, saying “It’s alright, don’t worry,” can profoundly impact the other person, filling them with warmth and renewed purpose. It is an act of empowering the other, fostering a sense of hope and encouraging them to extend forgiveness to others in turn, transforming a harsh world into one of compassion.

  1. Free Will and Reincarnation: The Journey of the Soul
    The concept of reincarnation is deeply intertwined with an individual’s free will. Just as one returns home after work, the soul, upon death, gravitates towards those it cherished most. If one dies thinking of their mother, they will likely be reborn into a family connected to her. Similarly, thoughts of a father or a lost love can guide the soul’s next journey. This free will, though seemingly a small factor, can profoundly alter one’s destiny.

While the accumulated karma and past actions (known as “eopshik” or karmic imprints) largely determine one’s reincarnation, free will plays a crucial, albeit subtle, role. A person who has lived virtuously might, through their free will, choose a path that deviates from their karmic trajectory. For instance, someone who received significant help from a missionary in a foreign land might, upon death, choose to be reborn into that missionary’s family, driven by gratitude.

The Holiest has granted humanity absolute free will on Earth. Humans are free to act, distinguish between good and evil, and live as they choose. However, this free will is so potent that even the Holiest refrains from directly interfering with it. While the Holiest could, for example, cause a volcanic eruption to end humanity, the sanctity of human free will prevents such intervention. This 1% of free will, though seemingly small, holds the power to change an individual’s entire fate.

  1. The Legacy of Leaders: Park Chung-hee and Ishiwara Kanji
    The question of whether President Park Chung-hee has reincarnated is often raised. His legacy is undeniably linked to Korea’s modernization. During his era, North Korea, with its extensive factories and abundant resources, was economically superior to South Korea, largely due to Japanese industrialization efforts during the colonial period. North Korea was, at one point, the most industrialized nation in Asia.

Another significant historical figure is Ishiwara Kanji, a Japanese military officer and strategist. He was not a typical nationalist but a globalist who studied Western thought and understood international relations deeply. He envisioned a peaceful resolution to conflicts in Asia, advocating for a more harmonious approach rather than aggressive expansion. He was a “diplomatic expert” rather than a mere soldier, striving to stabilize the Korean Peninsula.

Ishiwara Kanji’s vision was to prevent a full-scale war in the Pacific. His death, however, removed a crucial moderating influence, allowing more extreme nationalists to gain power and push Japan towards the devastating Pacific War. He was a “brake” on the radical elements, and his absence led to a more aggressive and destructive path.

Ishiwara Kanji’s perspective was influenced by the belief that Koreans and Japanese shared a common ancestry, viewing Korea as a “brother nation.” Historical research suggests that even the Japanese imperial lineage has roots in the Korean Peninsula. This shared heritage, including the migration of people from the Korean Peninsula to Japan, underscores a deep, familial connection between the two nations.

일본 사과에 대한 국민적 감정과 대승적 용서의 필요성

국민의 3분의 2가 일본의 사과 없는 태도에 반대하며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들이 사적인 감정이든 국가 공적인 감정이든 감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50번이나 사과했지만,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없는 사과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우리 스스로가 고통받게 됩니다. 원한 관계는 한 번 맺으면 풀기 어렵습니다. 개인 간의 원한도 다음 생에까지 이어져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듯이, 국가 간의 원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현재 행보는 대승적인 경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소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본에게 복수를 해야 마땅합니다. 일본이 절절매며 사과하고 막대한 돈을 내놓아도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는 용서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용서해야 할까요? 대승적 정치 지도자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독일과 폴란드, 그리고 일본의 역사적 차이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일본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독일은 폴란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괴롭혔고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한일 무조약을 맺고 외교권을 대신했으며, 이후 합방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을 침략하는 길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과는 다릅니다.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세워 협조하는 사람들을 대우하고 공장을 지어 한국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한국의 조약이나 월산도 등을 이용해 강대국을 침략하는 데 필요한 길을 확보한 것입니다. 일본 왕국이 한일 합방을 강제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폴란드를 칠 때와는 다른 합방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친일파가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듯이, 과거에는 김옥균 같은 석학들이 일본에 의지하여 안보를 도모하려 했습니다. 청나라 파와 일본 파가 있었듯이, 지금도 미국 파와 중국 파가 존재합니다. 일본의 문물을 싫어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청나라와 일본이 싸우다가 결국 일본이 한국의 주도권을 차지했고, 러시아와 중국은 밀려났습니다.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도 큰 죄입니다. 일본의 가장 큰 죄는 세 가지입니다.

국민의 감정과 이성: 사단칠정론으로 본 한일 관계
국민의 약 30%는 이성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60% 정도는 감정에 치우칩니다. 사람을 한문으로 ‘사람’이라고 할 때, 이 사람은 네 가지 본성을 가집니다. 신에 대한 믿음, 부모에 대한 사랑, 부부간의 사랑, 자식에 대한 교육, 즉 신화애교입니다. 인간의 30%는 이러한 ‘사람’의 본성을 지닌 양반과 같습니다. 이들은 남을 측은하게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남에게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지성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아적이고 대승적인 견지를 가지고 사회를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70%는 칠정(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으로 살아가는 서민, 즉 상놈입니다. 이들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며, 욕심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양반은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가지고 정답을 논했지만, 서민들은 정답이 없었기에 칠정으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30%는 윤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칠정으로 바라보기에 일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원수는 끝까지 원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승적 용서와 실리 외교의 중요성
어떤 목사는 자기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적인 용서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범죄를 당한 자가 먼저 “괜찮소, 내 용서하오”라고 말할 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강한 자가 용서하는 것이지, 당하게 한 자가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람이 먼저 용서를 빌면 용서해주는 것은 측은지심이 아닙니다. 양반의 사고방식이나 공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70%의 국민은 그러한 용서를 원하지만, 일본은 이미 45번 이상 사과했습니다.

일본과의 한일 통화 스와프는 우리가 달러가 부족할 때 일본의 달러를 빌려주는 대단한 협력입니다. 우리가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택했습니다. 북한은 일본의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리를 추구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계속해서 이상한 근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진취적이고 대승적인 행보입니다. 여기에 시비를 걸면 경제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명분보다는 실리 외교를 해야 합니다. 명분만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양반이 노예들을 장악했듯이, 언제나 양반들이 사회를 이끌어왔습니다. 대승적인 경지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바라보지 않고 소성적으로만 접근하면 끝없는 투쟁과 갈등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끝없는 투쟁과 방황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순수하게 역사를 바라봅니다. 우리 선조들이 한 일을 우리가 풀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국방을 견고히 하지 못해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 젊은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있습니다. 적국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본 수상이 와서 사과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사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일본 국민 전체가 사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리 외교와 국민 경제의 미래
일본은 우리의 언덕입니다. 일본이 지어놓은 공장과 철도를 우리가 지금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희생당했지만, 그들 덕분에 우리가 개화되고 기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청양을 만들 줄 몰랐지만, 그들이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민주당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은 실리 외교를 통해 서민들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양반들이 명분만 가지고 싸우면 가난한 국민들만 배고프게 됩니다. 대통령이 과감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국가가 발전합니다. 역사적인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정세는 명분과 실리라는 두 가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서민들을 살려야 합니다. 민주당의 말도 명분으로는 맞지만, 서민 경제가 파탄 나는데 대통령이 인기만 연연하며 일본을 비난하고 앉아 있으면 나라는 망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라를 살리려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좋은 정책이 있다면 칭찬해야 합니다.

용서의 힘: 상대에게 에너지를 주는 행위
피해를 받은 사람이 오히려 마음을 열고 용서해야 합니다.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괜찮다, 나도 남의 신발 많이 밟아봤다”고 말하며 상대방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말해주면 상대방은 마음이 뜨거워지고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이 세상 살 만한 가치가 있다면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살벌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자유의지와 환생의 원리
인간은 죽으면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외국인이 타국에서 죽었어도, 환생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백궁에서는 환생을 결정할 때 그 사람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죽을 때 어머니를 그리워하면 어머니에게로,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버지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헤어진 여자를 생각하며 죽으면 그 여자에게로 갈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 죽을 때 선교사를 생각하면 그 선교사의 집안으로 환생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매우 중요하며, 그 외에는 그 사람이 지은 인과관계에 따라 결정됩니다. 착한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타국에서 죽었어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강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그 자유의지 때문에 인간은 많은 고생을 합니다. 인연이 되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좋지 않은 인연을 끊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귀신이 되면 한국에 머물지만, 귀신이 되지 않고 죽었을 때는 잠재의식, 즉 업식에 따라 결정되며, 여기에 자유의지가 조금 작용합니다.

이등박문의 역할과 일본 국수주의의 부상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을 선진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북한은 과거 일본이 쫓겨난 후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남한보다 몇 배나 잘 살았고, 일본이 만들어 놓은 발전소 전기를 사용했습니다. 일본 조선총독부는 북한의 공업화를 추진하여 아시아 최고 수준의 공업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등박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동양학을 공부하여 사상적으로 무장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군인이라기보다는 외교 전문가였고, 한반도를 상당히 이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가 있었다면 한반도의 정세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을 막으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을 진정시키려 했던 인물이었으나, 그가 죽자 국수주의자들이 전쟁에 미쳐 날뛰게 된 것입니다. 이등박문은 국제주의자였고, 서양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조선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보았고, 천황의 성도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역사 연구도 있습니다. 대마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한반도를 고향처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형제 국가로 보아야 합니다. 북한과의 통일도 필요하지만, 일본과의 통일도 혈족끼리의 통일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어부들이 만든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