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85 The Politics of responsibility: Protecting the Sun and Moon – Semtember 16, 2022

책임의 본질: 죄와 책임은 본래 없다

이태원 참사 이후 야당과 언론, 시민단체는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강조하며 ‘책임’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자신의 책임이라고 이야기한 단체나 개인은 없었습니다. 고위 관료들은 비통함을 표했을 뿐입니다. 오세훈 시장은 무한한 책임을 언급했지만, 많은 이들이 책임에 두려워하며 일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가족 부양과 자식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결혼을 피하는 세태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마지막 시험 또한 책임에 대한 것입니다.

원래 인간에게는 죄 자체가 없으므로 책임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마음에 의해 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기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며, 자기 스스로 죄를 만드는 것입니다. 죄 자체는 원래 없습니다. 호랑이가 노루를 잡아먹는 것은 죄가 아니며, 그렇게 만들어져 먹게끔 되어 있습니다. 소가 풀을 뜯어 먹는 것도 풀이 죽는다고 해서 죄가 아닙니다. 이는 생존을 위한 생존의 법칙일 뿐입니다.

정치의 단계: 법치, 예치, 덕치, 그리고 이치

가장 낮은 단계의 정치는 법치입니다. 법치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예치는 법치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우리 단군 시대에는 이보다 더 높은 정치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위에 인간, 즉 홍익인간의 이념이 있습니다. 법치 정치는 다른 말로 책임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큰 사고가 났을 때 총리가 물러나는 것이 책임 정치의 예입니다. 책임 정치는 정치 자체가 책임으로 시작해서 책임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예치 정치는 국민 전체에게 책임을 돌리며, 당사자가 없습니다. 덕치 정치는 도덕 정치와 같습니다. 맹자는 법치 사상을, 공자는 예치 사상을 주장했습니다. 이들 중 공자가 조금 더 높은 차원에 있습니다. 노자의 덕치는 공자의 스승인 노자가 주장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단군의 이치 정치가 가장 높은 정치입니다. 이는 나무가 서서 자연의 이치대로 성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자연과 더불어 갈 때 사고가 나지 않습니다.

밤 문화와 사회 문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삶

해가 지는데 밤중에 기어나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행위입니다. 밤에는 공무원들도 퇴근하고 경찰들도 잠을 자야 합니다. 밤에는 자연의 이치대로 쉬어야 합니다. 해와 함께 떴다가 해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이치 정치입니다. 영문화를 발전시켜 청년들을 길바닥으로 내모는 것은 문제입니다. 스트레스에 죽을 것 같으면 자기 마음만 컨트롤하면 됩니다. 밤중에 스트레스를 풀 이유가 없으며, 집에서 조용히 있어도 됩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고지혈증 같은 질병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잠을 안 자는 사람들은 모두 병자들입니다. 술을 마시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옷차림도 부적절하여 사고가 나면 옷이 망가지는 분위기에 들어갑니다.

이들은 미안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기보다 재수가 없다고 여깁니다. 책임 정치는 법치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깊이 들어가면 덕치나 예치에서는 국민 전체가 자연을 배제했던 홍익 사상을 따릅니다. 젊은이들이 낮에는 자고 밤에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를 하거나 밤 문화를 즐기는 올빼미족으로 바뀌는 것은 국가적인 문제입니다. 서양에서는 밤이 되면 도시가 조용해지는 질서 잡힌 문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런 문화를 정착시키지 못하고 들뜬 문화를 가지고 이런 일을 벌이는지 의문입니다.

특정 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갑작스러운 사고에 대한 과도한 반응일 수 있습니다. 만약 미리 통제했더라면 지나치다고 욕을 먹거나, 장사 대목에 초를 친다고 비난받았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 사회 문화 자체가 문제입니다. 밤 문화는 미개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은 주체성이 부족합니다. 죄 자체는 없는데도 남에게 죄를 덮어씌우려 합니다. 자기들이 잘못해놓고 과장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평생 공직자로서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상황은 기가 막힙니다. 자살하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겪습니다.

히틀러의 단계적 책임론과 방관의 위험성

책임 정치는 특정 총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는 다릅니다. 일본에서 총리를 바꾸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어렵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완벽한 신정 정치, 이치 정치 위에 습지 정치, 즉 신생 정치가 있습니다. 이렇게 높은 단계가 있는데, 책임 공방만 하는 것은 문제입니다. 물론 책임을 물어야겠지만, 국민 전체에게 경종을 울리고 문제점에 대해 성찰해야 합니다. 훌륭한 공무원들을 너무 다치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국민들은 마음속으로 밤 문화가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밤낮을 바꿔 생활하는 아이들은 꿈도 희망도 없이 낮에 자고 직장도 안 가고 밤중에 나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상상도 못 할 이야기입니다. 저는 술, 담배, 커피를 해본 적이 없으며, 중고등학교 대학 시절 다방에 가본 적도 없습니다. 친구를 만나면 항상 은행에 갔습니다. 은행 응급실에 들어가면 예금도 없는 주제에 냉장고에 들어가 이야기했습니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학생이 들어오면 조용해지니 치안도 안전했습니다. 예금하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저축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릴 때 학교 다닐 때 사이다나 빵을 사 먹지 않고 항상 은행에 갔습니다.

밤에 공부하는 것은 밤 문화를 통해 정보를 교환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서양 정치인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히틀러의 책임론은 매우 중요합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잡을 때 처음에는 간단한 죄를 지은 사람들, 세금을 제때 안 낸 사람들을 처벌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방관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다른 부류의 사람들을 잡았고, 사람들은 또 자신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박을 많이 한 사람들을 잡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하나 잡아나가다 보니 나중에는 유대인을 잡았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단계적으로 사람들을 잡아나갔습니다.

나중에는 혈통을 가지고 사람들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종교는 아직 괜찮다고 생각하며 목사들은 이를 방관했습니다. 마지막에는 종교 지도자까지 압박했습니다. 그때서야 목사들은 자신이 진작 나섰어야 했다고 후회했습니다. 히틀러는 지도자로서 자기에게 당장 책임이 오지 않으니 유대인 문제, 노동자 문제, 학생 문제 등 남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지도자 자신에게까지 책임이 들이닥쳐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히틀러의 단계적 책임론입니다. 처음에는 유대인이 아니니, 20대가 아니니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모두 걸려들었습니다. 독일의 지성인들이 히틀러의 단계식 책임론에 걸려든 것입니다.

처음에는 다 주는 것만 쳐도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종교 지도자까지 개조하려 했습니다. 그때서야 자신이 진작 나서서 민족을 막았어야 했다고 깨달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히틀러는 나중에 책임질 사람이 죽어버리니 최종 책임자가 없어졌습니다. 히틀러는 자기 앞에 있는 책임자들을 모두 처리하고 유럽을 장악했습니다. 독일의 지성인들은 나중에 히틀러가 민족을 이 모양으로 만든 놈들을 하나하나 처리해 나갈 때 입 다물고 있었던 것을 깨달았습니다. 알고 보니 단계적으로 책임이 올라와 결국 독일 지성인들까지 처형당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유대인에게까지 책임이 미쳤습니다. 지성인들은 항상 자신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공룡을 키운 것입니다. 지성인들이 나서서 이 책임론을 막았어야 했는데, 자기 것이 아니라고 방관했습니다. 결국 거대한 책임이 자신들에게까지 올라왔습니다. 목사들만 남겨두고 유대인을 잡기 위해 혈통을 조사하고 또 다시 사람들을 쳤습니다.

집단 의식과 이치 정치의 필요성

책임을 처음부터 방관하면 나중에는 책임질 사람이 없어집니다. 책임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최고 지도자들도 책임이라는 두 글자를 가지고 정권을 운영하지만, 책임은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닙니다. 가장 낮은 단계의 개념입니다. 인류의 전쟁이나 지금처럼 엄청나게 큰 사건 사고가 생길 때는 대부분 집단적으로 억눌린 의식들이 터지면서 발생합니다. 이런 일이 터지면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지금 터지는 일들은 모두 반복입니다. 풍선에 바람을 많이 넣으면 터지듯이, 팽창과 수축은 생명의 본질입니다. 심장이 그러하듯이, 언제 터질지 모릅니다. 계속 터지고 수축되면 또 터집니다.

이런 상황을 진정시키려면 대통령이 물러나서 그 에너지 자체를 차단하는 원천적인 이치 정치가 필요합니다. 예치까지는 괜찮지만, 덕치는 법치를 위한 것입니다. 누구나 바라보는 형이상자와 형이하자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는 자들과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자들로 나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돈이나 경제와 같은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이치와 같은 것입니다. 형이상학적으로 사물을 보는 자들은 부자나 이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볼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무 가치가 없으며, 없어질 것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보물이 아닙니다.

눈에 안 보이는 것, 즉 이치와 세계 법치는 보입니다. 과목도 있고 처벌도 보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줄 알지만, 여기에 숙달된 인간들은 폐인들입니다. 이것이 책임론입니다. 스스로 윤리를 지켜 스스로 책임을 느끼는 공동체가 중요합니다. 이것은 어떤 특정한 것이 아닙니다. 죄를 받고도 수치심을 모르는 것은 진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법치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안 됩니다. 예치는 예치 자체가 수치심을 스스로 알게 해주는 것입니다. 원래 죄는 없는데 자기 스스로 죄가 있다고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남을 죄인이라고 덮어씌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태가 생겨 처신을 잘못해도 그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을 원치 않는 국민들은 스스로 가책을 느낍니다.

이런 사태가 나면 지도자들이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더라도 책임을 느끼고 회개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도의적으로 책임을 느낄 때, 나중에 또 그런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형이하자의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제 강의가 형이상학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환자들도 알아듣게 보여줍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것만 인정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실제 보물이 아닙니다. 보물은 윤리이며, 윤리 법전은 없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계시나 예의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교육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법전 때문에 우리가 얽매이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차원이 높은 것이며, 그 위에 이치가 더 무섭습니다.

해와 달을 지키는 문화: 청년 교육의 중요성

아무리 이화로 된다고 해도, 이와 이로 화합해야 합니다. 해가 뜨면 일어나야 하고, 밤이 되면 자야 합니다. 이태원 사고는 문화 자체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이 문화를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청년들의 교육을 문화 때문에 망쳐버렸습니다. 많은 청년들이 방향을 잃었습니다. 자살률이 높고, 죽지 못해 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이 책임을 모두 함께 느껴야 합니다. 우리가 미쳤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 저 해를 바라보면서 밝은 세상을 만들지 못할까요? 해 뜨면 나와야 하고, 해 지면 들어가서 가족끼리 천국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화하고 소통해야 합니다.

그러나 스트레스 쌓인 사람들이 폭발하는 장소를 찾아다니는 것은 문제입니다. 제가 시인으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앞으로 하늘궁이 커지면 이런 운동을 할 것입니다. “해와 달을 지키자.” 이 영상을 보는 사람만 20년 젊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