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18 From the Era of Conflict and Disorder to the Era of Coexistence and Harmony – July 12, 2023

충돌의 시대: 분노와 상처가 낳은 사회적 병폐

취소 말이 나오는데, 전 세계 기업들이 K-산업화 성지로 만들고 있습니다. 전 세계 중소기업 협회 150명이 왔습니다. 유물이 마을이 부상하고 진주가 난리 났습니다. 세계에서 이런 곳은 대단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은 전생에서 받은 것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제가 처음에 시인이 되었을 때, 저에게 화를 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가능한 한 화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환자들을 볼 때 인상을 찡그리지 않으려 했습니다. 환자분들이 웃으면서 인사를 건넬 때, 모니터를 보며 인상을 쓰고 있는 제 모습을 보면 속으로 미안했습니다.

옛날에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처럼 별것도 아닌 일로 사무장을 원망하고 분노, 미움, 공격, 사소한 욕망, 갈망이 생깁니다. 요즘 영화 같은 살인 사건도 있지 않습니까? 10대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 때문에 아이를 죽이는 일도 있습니다. 슬픔과 후회, 그리고 무기력함에 혼미해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막을 입은 영혼의 상처가 서로 남아 다음 행성에서 무의식적으로 발현하는데, 이것을 치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론 시인님을 만나 에너지 받고 축복받으면 당연히 도움이 되지만, 본인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화를 내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화를 내는 경지에 이르면 이성이 임계점을 넘어 감성으로 둔갑해 버립니다. 감성적으로만 반응하고 이성은 사라집니다. 그냥 감정적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흑인들이 자기 동족을 쏴 죽이겠다며 수갑을 채우다가 갑자기 죽였다는 사건도 있었습니다. 이성을 버리고 감성으로만 행동하여 백인만 보면 난동을 부리고 부수는 것입니다. 스스로 이성을 포기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백인들하고 한번 붙어봐야겠다. 감옥 가도 좋다. 사생결단으로 나오겠다”는 집단 감성이 폭발 전에는 힘을 얻습니다. 농민들이 수탈을 당한다며 임금과 정부에 대해 동학농민운동 같은 것도 집단 분노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분노를 위한 분노를 내는 것입니다. 나중에 정신이 들고 보면 “내가 분노로 사람을 죽였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그때까지는 모릅니다.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분노 조절 장애: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

요즘 젊은이들 중에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이들이 많습니다. 조현병 같은 정신질환이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불안증이 아니라 병입니다. 정신병, 정신질환이 날이 갈수록 걱정입니다. 과거에는 종교가 술 마시는 사람이나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가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분노가 많이 잠재워지고 종교의 역할이 컸습니다. 우리 사회가 분노에 대해서는 종교가 완전히 원수를 사랑하라고 강하게 누르니 많이 줄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분노가 너무 상처가 되어 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아버지들의 분노가 자식들에게 상속되어 자식들이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유전이 된 것입니다. 이는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다른 나라 아이들은 정서가 안정되어 자율적으로 공부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구조적으로 강압적입니다. 아이를 제조 공장에서 만들듯이 “학교 가야지, 학원 가야지” 하고, 엄마 아빠는 맞벌이를 해야 합니다. 이러니 한국 아이들은 상황이 더 심해졌습니다. 부모들이 아이들과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적어지고, 학원에 가면 못된 친구들과 콘크리트 안에 오래 있습니다. 말이 학원이지, 아파트처럼 콘크리트로 도배되어 숨 막힙니다. 완전히 자연 속에서 초원이 보이고 아름다운 경치가 보여야 하는데, 아이들은 벗어나고 싶은 욕구가 강합니다. 이것이 교육이 최대한 실패한 결과입니다. 분노 교육을 만들어냈습니다. 조현병은 우리가 만든 병입니다.

우리가 과외를 시작한 것은 짧은 시간에 세계 6위 경제 대국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우수하지 못한 아이들이 많이 나와 경제는 그만큼 성장했지만, 우수하지 못한 아이들은 분노밖에 남지 않습니다. 분노가 쌓였는데 누가 조금만 무시하면 “이 자식 봐라, 내가 공부 못할 걸 어떻게 알지?” 이런 식입니다. “멍청하다”는 말을 들으면 분노가 아주 겹쳐 버립니다. 자기의 열등감에 자극을 주면 폭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잘하는 아이가 1%이고, 모자란 아이가 대부분입니다. 이 아이들의 앞으로의 진로나 대책이 없습니다. “네가 노력 안 했잖아”라는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나타나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즐거워야 합니다. 내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사랑해요”라고 합니다. 이것이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나에게 “사랑해요”라고 수백만 번 말합니다. 이것이 소통의 공간입니다. 그런데 지금 엄마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아이는 없습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교육에 실패했습니다. 한국을 급속도로 발전시키다 보니 나타난 후유증이 조현병과 분노조절장애입니다. 우리 어른들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무책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 엄청난 책임감을 느낍니다. 청소년 교육 자체에 대한 엄청난 책임감을 느낍니다.

학원 중심 교육의 폐해와 대안

무조건 학원이 없어져야 합니다. 학원에 못 보내니 유치원 때부터 학원을 보내는데 돈이 있나 싶습니다. 학원비가 엄청납니다. 맞벌이를 해봐야 초등학교, 고등학교 학원비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둘이 맞벌이를 해도 아이를 못 낳는 원인도 학원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육이 어디서 해야 시험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제멋대로 시간을 보내게 하고는 부모들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공부하든 말든 아이들이 알아서 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교육 기관에서 학원을 제외했더라면, 예체능 학원, 피아노, 태권도 같은 특기 학원은 인정해야 하지만, 교과 학원은 없어져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망국적인 것입니다. 다른 나라에는 그런 학원이 없습니다. 그러니 돈에 따라 교육 차별이 심해지고 출산율이 저하됩니다. “내 아들 고생하는 거 못 보겠다. 내 아들 공부 못해서 교육이 실패했기 때문에 성장통을 겪은 거야”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정서적인 면을 더 강조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양적으로만 잡았고, 이제 아이들 교육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정서적으로 아이들이 모든 교육을 바꿔야 합니다. 길거리에 가게는 좀 있는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인가 싶을 정도로 경제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앞으로 교육 개혁을 통해서만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장해 봐야, 지금 세계 6위지만 세계 1위가 되어 봐야 우리 경제는 또 세계 1위입니다. 앞으로 교육이 리그전으로 가야 합니다. 그런 것을 모두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 경제도 살리고, 교육도 살리고, 아이들도 정신병원에 가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강남 학부모들이 만들어낸 우리 경제 성장은 이해하지만, 경제 성장을 해봐야 국민에게 이익이 가는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습니다. 옛날에는 택시 기사도 집을 사고 꿈을 가졌는데, 지금은 잘 나가는 사람도 꿈이 없습니다. 강남에 40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자살하려고 했던 사건도 있었습니다. 자기 회사에서 잘릴 것 같으니 부장이었는데, 돈도 있었지만 앞으로 회사에서 쫓겨나면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계속 똑같은 생활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교육을 제대로 바꾸면서 해결해야 합니다.

그것이 결국 망국이 되기 때문에 그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제가 70년대 고등학교 때는 과외가 있었지만, 그때는 돈이 없는 동기들도 서울 법대에 가고 좋은 학교에 갔습니다. 요즘은 강남 학원에 다니지 않고는 도저히 지방에서 좋은 학교에 가기 어렵습니다.

충돌의 시대와 가족주의의 그림자

주요 내용이 폭력과 욕설인 영상이 천만 명 이상 봤습니다. 사회가 그만큼 타락했다는 증거입니다. 싸우는 모습은 영화로도 봐서는 안 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상대가 죽으면 쾌감을 느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병원에서 근무해 보면 시간마다 살인 충동이 나타납니다. 무엇인가가 딱 들어오면 살인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호르몬에 의해서도 좌우됩니다. 인체와도 연결되어 자기의 생체 파동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업장입니다.

지구에서 우리가 하도 낙서하면 낙서에는 힘이 없습니다. 낙서는 전부 허상입니다. 허상으로 나갑니다. 음파가 되어야 10이라는 숫자가 중앙에 10이 됩니다. 이 낙서는 10이었고 5입니다. 이 낙서는 만나는 것보다 싸우는 것입니다. 전부 반대입니다. 코끼리만 가는 것입니다. 사이클의 시대에도 나타납니다. 하도 시대는 좋은 긍정적인 일만 자꾸 쌓이고, 낙서 시대에는 많은 것마다 부딪힙니다. 운때가 그런 시대이니 여기저기 충돌이 많습니다. 자연도 비가 와서 허물어지고 충돌하여 사람을 죽입니다. 이것이 충돌의 시대가 온 것입니다. 지금 북한을 보십시오. 계속 긁지 못해서 이러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충돌의 시대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1차 대전 때부터 계속 이 낙서 시대가 오래가고 있습니다.

내가 전면 부상하면 상생의 시대입니다. 상생의 시대에는 투쟁하고 있는 일을 해도 최저 임금만 주더라도 국가에서 150만 원이 나온다면 생각합니다. 하도가 되어 마음이 안정됩니다. 그러면 그에 맞는 지도자가 나옵니다. 요술 시대처럼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데 이것이 제대로 쓰이지 못해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사회 간접 비용은 너무 많이 지출됩니다. 사회 간접 비용이 시장을 죽여 버립니다. 이런 경제 문제는 이미 옛날에 알고 결혼식을 일으킵니다. 노인들의 빈곤은 앞으로 결혼 때문입니다. 인생의 그 분노 조절 장애는 그 분노가 있는 데다가 현실적으로 정치가 잘못되다 보니 아이들 교육 잘못이 불가사의하게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쁜 조건이 전부 집결되어 있습니다. 다중 요소가 들어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왜 늦게 와서 이러냐”고 하면 “당신이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라고 쌓입니다. 지하철에서 시달린 것, 교통 체증에 시달려 집에 오는데 2시간 걸린 것이 폭발하는 것입니다.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부잣집 아들도 있었는데 당신에게 붙들려 분노가 폭발하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가장 취약점이 있는 민족입니다. 감수성이 예민한 것처럼 이성적인 민족이 아닙니다. 감성적인 민족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는 개인주의가 없습니다. “내가 망해놓고서는 엄마 아빠가 돈이 없으면 당했다”고 합니다. “삼촌이 안 도와줘서 그렇다”고 합니다. 집안을 전부 자기와 연관해서 친구가 안 도와줬다고 원망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전부 자기 책임이 있고, 자기가 잘못된 것은 자기가 해결해야 합니다. 몇 살 되면 독립하고, 그것이 윤리적으로도 상당히 이타적인 행동입니다. 이타주의입니다. 개인주의가 이타주의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니까, 자기의 소질에 만족하면 세상 사람들 길거리에서도 아끼고 앉아 있습니다. 창피한 것도 없습니다. 철저한 자기만의 개인주의입니다. 남이 뭘 한 것에 대한 원망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가족주의가 되어 남을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하고, 정부를 원망하는 것이 아직까지도 막혀 있습니다. 파고 들어가면 생깁니다. 그래서 환자를 다룰 때 개인주의적으로 상담하면 안 됩니다. 철저히 가족주의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공부를 많이 시켰을 텐데 믿으면서 그 가족적인 것을 자꾸 풀어 들어가면 정신병이 고쳐집니다. 이런 식으로 파고 들어가면 아버지 대신 저 사람이 사과를 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많이 깔려 있고 속에 응어리가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보호를 못 받았다든지, 엄마가 열심히 일하고 맨날 밤늦게 들어오고, 아빠는 일찍 오면 성질내고, 나는 그냥 아픈 눈치 보고 얻어맞고 그렇게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이 엄마가 조금은 늦게 들어온 것에 대한 감정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성장 과정을 물으면서 내가 대신 아버지 대신 사과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것에 대해 자기가 피해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보고 “교육 잘못 받아서 망친 인간들”이라고 합니다. 아이들 탓을 하는 것이 아직까지 우리가 가족주의라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지금 완전히 “꼰대들, 꼰대들”이라고 합니다. 아버지 세대와 그렇게 되는 이 세대차 갈등이 있습니다. 우리의 실수한 것은 어린아이들이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나입니다. 농담하면서 “사랑해요”라고 하고, 전화 끊을 때도 “사랑해”라고 합니다. 대화창이 열리고, 아이들은 나에게 전화해서 뭐 그냥 그러냐고 합니다. 대단한 것입니다. 아이들과 대화 창구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경제 발전의 딜레마와 정신세계의 중요성

실제 젊은이들이 방황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세계 경제가 희망이 없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제가 발전되면 환경이 급속히 파괴됩니다. 우리가 화를 많이 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은 경제를 많이 발전시킨 결과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허파를 더 많이 갉아먹는 것입니다. 이것도 마냥 즐거워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정신세계에서 만족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야 합니다. 물질로서 만족하려고 하다 보면 지구가 10개라도 부족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딜레마에 있습니다. 경제가 살지 않으면 아이들이 희망이 없고 직장이 없고 일자리가 없습니다. 또 경제를 살리려면 난리가 납니다. 미래에는 엉망이 되고 굴뚝에서 연기가 계속 나옵니다. 강을 버리고 수질이 차단될 때 보면 좋아졌습니다. 아시아의 환경은 중국에서 황사가 덜 날아왔습니다. 이것은 또 미국하고 잘 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딜레마에 봉착해 있습니다. 지금 미국에서 여성 장관이 가서 중국과 다시 잘해보자고 합니다. 인사 문제로 중국과 미국이 손을 잡고 잘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항상 그렇습니다. 이것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나타날 때 전반적으로 할 수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인간들은 사랑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하나만 가지고 계속 제사를 지냅니다.

인도의 잠재력과 한계: 중국과의 비교

인도가 앞으로 G2 국가로 갈 수 있을지, 중국을 대체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중국과 사이가 나쁠 때 인도 총리가 미국을 간 것은 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초청한 것입니다. “너 없으면 중국, 인도라도 있다”는 식입니다. 그것을 보여주었는데, 미국이 가만히 보니 중국이 러시아와 붙어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통속이 되면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분리 작전도 써야 합니다. 그러니 다시 또 인도를 통해 중국을 견제하는 것입니다. “중국하고 이렇게 좀 같이 하자”며 인도는 제쳐버리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 대국이 잘 나가야 세계 질서가 잡힌다”며 러시아와 인도를 싹 빼버리고 지금 그렇게 나가고 있습니다. 미국은 인도 쪽으로 살짝 하면서 경고만 한 것이지, 인도 자체를 그만큼 발전시키려면 어마어마한 간접 비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사회 간접 시설이 발전하려면 인도 사람들이 뜨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인도는 완전합니다. 사회 간접 시설을 하려면 중국 같으면 10개를 팔아야 합니다. 그래서 미국은 중국을 인도가 따라잡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인도는 영국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아 어느 정도 실력이 뛰어나고 영어를 많이 쓴다는 것이 인도의 미래 장점입니다. 그래서 인도가 중국을 앞서기는 어렵습니다. 인도 기차를 보셨죠? 꼭대기에 타고 이동할 때 보면 그렇습니다. 인도가 근대화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은 그것을 알아 인도를 잠시 이용하고 중국을 채찍과 당근으로 다루는 것입니다. 중국을 러시아와 분열시키는 것이 미국의 목적입니다. 인도 GDP가 영국 다음이더라고요. 강남역은 저리 가라 할 정도입니다. 빈부 격차가 심하니 상류층들은 교육을 어마어마하게 시킵니다. 저택도 우리나라 부자는 부자도 아니고, 보통 부잣집이 50만 평이라고 합니다.

인도 힌두교의 사상과 행복의 의미

인도 힌두교에는 창조론이 있는데, 거기에 아반트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영어 아바타가 있지 않습니까? 그 사람들은 신에 대한 모습은 우리와 조금 다르지만 모든 물질이 아바타입니다. 소도 신의 아바타고 다 아바타인데, 걔네들은 이것을 아바타로 만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아바타로 만들지 않습니까? 실제 얘가 오만 가지를 알려주자, 그것을 나는 부여하는 능력이 있고 인도 사람들은 그것이 없습니다. 다만 그냥 모든 물질이 신이 만든 신의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것을 범신론이라고 합니다. 그 아바타가 신이 하나가 아니고 이 물질 모두가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이니까 물질을 존경하고 물질을 바라보는 관념이 우리와 다릅니다. 그래서 힌두교가 좋은 사상입니다. 좋은 사람을 내가 가르쳐 주지 않고 능력만 줍니다.

석가모니는 인도 사람인데 이것을 보지 않습니다. 우리 인도의 힌두교는 석가모니의 인연론이 힌두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좋은 곳에 태어나고 천민으로 오래 있으면 나중에 좋은 곳에 올 수 있다고 윤회한다는 사상이 힌두교 사상입니다. 석가모니는 그것을 배제해 버립니다. 배제하고 죽으면 윤회에 대해서는 논하지 말고, 살아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죽음 이후에 대해서 우리가 뭘 깨닫겠냐는 정도로 나가는 사람입니다. 석가모니가 힌두교도들과 같이 산에서 6명이 고행을 하다가 그 사람들은 계속하는데 석가모니는 내려와 망명하고, 제자들이 불교를 떠나버린 것입니다. 처음에 석가가 있을 때는 불교가 떠나고 나서는 그게 지금 불교가 너무 철학적이고 어려워 아주 쉽습니다.

우리 군대 있을 때 월남에 있을 때 작전 지역에 들어가면 옆으로 틀어진 바람이 압니다. 보리밥이 당겨서 반찬은 된장밖에 없습니다. 반찬도 없습니다. 반합을 딱 갖다 줍니다. 한 개씩을 주면 반찬 하나도 없어도 그 밥이 엄청 맛있습니다. 초소 옆에 농가가 있습니다. 농민들이 밭이 있지 않습니까? 고추도 따옵니다. 군인들이니까 그것을 된장에 찍어 먹으라고 된장을 자주 이해하고 먹는데, 그 보리밥이 얼마나 단지 없으니까 보리밥 한번 씹을 것 아닙니까? 지금도 그 맛이 아닙니다. 가난하지만 그 사람들의 생활 만족도가 굉장히 높고 불만이 없습니다. 우리 군인들일 때는 그것만 먹어도 밥이 빨리 안 오나 쳐다보고 앉아서 기다립니다. 밥을 배달해 주고 갑니다. 그 반합 들고 오면 그렇게 행복합니다. 젊은이들 배가 고프지 않습니까? 세상 그렇게 맛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이 행복 수준이 높습니다. 중국보다 행복 수준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척박하니까 다 만족입니다.

윤회하고 카스트 제도 때문에 브라만이 된다는 것입니다. 브라만 밑에 사투리, 수드라로 있어야 브라만으로 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수드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윤회하니까 어디에 가 있어도 나는 언젠가 브라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카스트 제도입니다. 나는 관리가 될 수 있고, 왕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일반 국민들이 발전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같이 있어도 다 만족입니다. 인도 사람의 성격은 농업과 상업이 다 맞는데, 영국 식민지 되면서 공업화되면서 완전히 다 망가지고 초토화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영국이 원하는 것입니다. 영국이 무기도 생산해야 하고 사람들을 집단적으로 관리해야 하니까, 농업을 할 때는 집단 관리가 안 됩니다. 농민들을 많이 변화시켰습니다. 우리도 일본에 와서 공업화했습니다. 농사를 지었는데 군수 물자를 만들고 공장을 많이 지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이전에는 잘 살았는데, 피곤한 척했습니다. 식량도 별로 안 하고 평화롭게 살았는데, 영국 식민지화되면서 인도에 아편을 많이 재배했습니다. 세계는 아직까지 당분간은 미국과 중국 체제를 봐야지, 인도는 아직까지는 크게 투자 대상이 아닙니다. 이 영상을 보는 사람만 10년 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