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과에 대한 국민적 감정과 대승적 용서의 필요성
국민의 3분의 2가 일본의 사과 없는 태도에 반대하며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들이 사적인 감정이든 국가 공적인 감정이든 감정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지난 수십 년간 50번이나 사과했지만,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끝없는 사과를 요구하게 되고, 결국 우리 스스로가 고통받게 됩니다. 원한 관계는 한 번 맺으면 풀기 어렵습니다. 개인 간의 원한도 다음 생에까지 이어져 가족을 불행하게 만들 수 있듯이, 국가 간의 원한도 마찬가지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현재 행보는 대승적인 경지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소성적인 관점에서 보면 일본에게 복수를 해야 마땅합니다. 일본이 절절매며 사과하고 막대한 돈을 내놓아도 우리 국민의 마음속에는 용서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용서해야 할까요? 대승적 정치 지도자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독일과 폴란드, 그리고 일본의 역사적 차이
독일과 폴란드의 관계는 많이 개선되었지만, 일본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독일은 폴란드 사람들을 집중적으로 괴롭혔고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1905년 한일 무조약을 맺고 외교권을 대신했으며, 이후 합방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을 침략하는 길을 제공했습니다. 이는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과는 다릅니다.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세워 협조하는 사람들을 대우하고 공장을 지어 한국 사람들을 고용했습니다. 한국의 조약이나 월산도 등을 이용해 강대국을 침략하는 데 필요한 길을 확보한 것입니다. 일본 왕국이 한일 합방을 강제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폴란드를 칠 때와는 다른 합방 정책을 펼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친일파가 많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미국에 안보를 의지하듯이, 과거에는 김옥균 같은 석학들이 일본에 의지하여 안보를 도모하려 했습니다. 청나라 파와 일본 파가 있었듯이, 지금도 미국 파와 중국 파가 존재합니다. 일본의 문물을 싫어하는 사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일본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청나라와 일본이 싸우다가 결국 일본이 한국의 주도권을 차지했고, 러시아와 중국은 밀려났습니다. 일본이 명성황후를 시해한 것도 큰 죄입니다. 일본의 가장 큰 죄는 세 가지입니다.
국민의 감정과 이성: 사단칠정론으로 본 한일 관계
국민의 약 30%는 이성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나머지 60% 정도는 감정에 치우칩니다. 사람을 한문으로 ‘사람’이라고 할 때, 이 사람은 네 가지 본성을 가집니다. 신에 대한 믿음, 부모에 대한 사랑, 부부간의 사랑, 자식에 대한 교육, 즉 신화애교입니다. 인간의 30%는 이러한 ‘사람’의 본성을 지닌 양반과 같습니다. 이들은 남을 측은하게 여기고,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남에게 양보하고,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지성적인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대아적이고 대승적인 견지를 가지고 사회를 이끌어갑니다.
그러나 70%는 칠정(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으로 살아가는 서민, 즉 상놈입니다. 이들은 감정에 따라 행동하며, 욕심을 제어하지 못합니다. 양반은 사단(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가지고 정답을 논했지만, 서민들은 정답이 없었기에 칠정으로 살았습니다. 지금도 30%는 윤 대통령의 정책에 찬성하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칠정으로 바라보기에 일본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원수는 끝까지 원수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대승적 용서와 실리 외교의 중요성
어떤 목사는 자기 아들을 죽인 청년을 양자로 삼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승적인 용서입니다. 우리는 일본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범죄를 당한 자가 먼저 “괜찮소, 내 용서하오”라고 말할 때 진정한 용서가 이루어집니다. 강한 자가 용서하는 것이지, 당하게 한 자가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닙니다. 죄지은 사람이 먼저 용서를 빌면 용서해주는 것은 측은지심이 아닙니다. 양반의 사고방식이나 공자의 생각은 그렇지 않습니다. 70%의 국민은 그러한 용서를 원하지만, 일본은 이미 45번 이상 사과했습니다.
일본과의 한일 통화 스와프는 우리가 달러가 부족할 때 일본의 달러를 빌려주는 대단한 협력입니다. 우리가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도 자존심보다는 실리를 택했습니다. 북한은 일본의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지만, 우리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실리를 추구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계속해서 이상한 근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번 일본과의 관계 개선은 진취적이고 대승적인 행보입니다. 여기에 시비를 걸면 경제적으로 더 큰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명분보다는 실리 외교를 해야 합니다. 명분만 내세우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은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양반이 노예들을 장악했듯이, 언제나 양반들이 사회를 이끌어왔습니다. 대승적인 경지에서 일본과의 관계를 바라보지 않고 소성적으로만 접근하면 끝없는 투쟁과 갈등만 반복될 뿐입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끝없는 투쟁과 방황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끝내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치인이 아니었기에 순수하게 역사를 바라봅니다. 우리 선조들이 한 일을 우리가 풀고 가야 합니다. 우리가 과거에 국방을 견고히 하지 못해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 젊은이들을 보호하지 못한 책임도 있습니다. 적국에만 책임을 돌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일본 수상이 와서 사과한다고 해서 그것이 진정한 사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일본 국민 전체가 사과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실리 외교와 국민 경제의 미래
일본은 우리의 언덕입니다. 일본이 지어놓은 공장과 철도를 우리가 지금도 이용하고 있습니다. 희생당했지만, 그들 덕분에 우리가 개화되고 기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청양을 만들 줄 몰랐지만, 그들이 기술을 전수했습니다. 민주당의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지금은 실리 외교를 통해 서민들이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양반들이 명분만 가지고 싸우면 가난한 국민들만 배고프게 됩니다. 대통령이 과감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국가가 발전합니다. 역사적인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 것이 아닙니다.
국제정세는 명분과 실리라는 두 가지 기로에 서 있습니다. 서민들을 살려야 합니다. 민주당의 말도 명분으로는 맞지만, 서민 경제가 파탄 나는데 대통령이 인기만 연연하며 일본을 비난하고 앉아 있으면 나라는 망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자기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라를 살리려는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좋은 정책이 있다면 칭찬해야 합니다.
용서의 힘: 상대에게 에너지를 주는 행위
피해를 받은 사람이 오히려 마음을 열고 용서해야 합니다. 진정성이 없다고 생각하더라도 “괜찮다, 나도 남의 신발 많이 밟아봤다”고 말하며 상대방을 안심시켜야 합니다. 걱정하지 말고 가라고 말해주면 상대방은 마음이 뜨거워지고 에너지를 얻게 됩니다. “이 세상 살 만한 가치가 있다면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는 용기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도 또 다른 사람을 용서해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살벌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자유의지와 환생의 원리
인간은 죽으면 자신의 가족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갑니다. 외국인이 타국에서 죽었어도, 환생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됩니다. 백궁에서는 환생을 결정할 때 그 사람의 자유의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죽을 때 어머니를 그리워하면 어머니에게로, 아버지를 생각하면 아버지에게로 가는 것입니다. 헤어진 여자를 생각하며 죽으면 그 여자에게로 갈 수도 있습니다. 선교사에게 도움을 많이 받은 사람이 죽을 때 선교사를 생각하면 그 선교사의 집안으로 환생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매우 중요하며, 그 외에는 그 사람이 지은 인과관계에 따라 결정됩니다. 착한 사람은 자유의지에 따라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타국에서 죽었어도,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강하면 그곳으로 갈 수 있습니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지만, 그 자유의지 때문에 인간은 많은 고생을 합니다. 인연이 되어 오는 경우도 있지만, 자유의지에 따라 좋지 않은 인연을 끊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귀신이 되면 한국에 머물지만, 귀신이 되지 않고 죽었을 때는 잠재의식, 즉 업식에 따라 결정되며, 여기에 자유의지가 조금 작용합니다.
이등박문의 역할과 일본 국수주의의 부상
박정희 대통령은 한국을 선진화시키는 데 기여했습니다. 북한은 과거 일본이 쫓겨난 후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였습니다. 남한보다 몇 배나 잘 살았고, 일본이 만들어 놓은 발전소 전기를 사용했습니다. 일본 조선총독부는 북한의 공업화를 추진하여 아시아 최고 수준의 공업화를 이루었습니다.
이등박문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었지만 동양학을 공부하여 사상적으로 무장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군인이라기보다는 외교 전문가였고, 한반도를 상당히 이해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가 있었다면 한반도의 정세가 달라졌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는 2차 대전 태평양 전쟁을 막으려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을 진정시키려 했던 인물이었으나, 그가 죽자 국수주의자들이 전쟁에 미쳐 날뛰게 된 것입니다. 이등박문은 국제주의자였고, 서양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부모님이 조선 출신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보았고, 천황의 성도 한반도에서 건너갔다는 역사 연구도 있습니다. 대마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한반도를 고향처럼 바라보았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형제 국가로 보아야 합니다. 북한과의 통일도 필요하지만, 일본과의 통일도 혈족끼리의 통일이었습니다. 일본 사람들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어부들이 만든 나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