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45 The Hero Does Not Follow the current, But Creates It: Dae-eo Yeoksu, Dae-jo Yeokpung – January 5, 2022

당원의 자세: 직책을 버리고 선대부위원장으로 하나 되라

당원들은 혼신을 다해야 합니다. 국무장관님께서 앞으로 우리 당원들에게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 말씀하셨듯이, 모든 직책에 대한 관심을 버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선대부위원장이며, 직책을 부여받는 일 없이 백의정권으로 임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천벌을 받을 것입니다. 나중에 백회(百會)가 열리고 백궁(白宮)에 가보면 얼마나 문제가 있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전 당원이 선대본부장입니다.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듯이, 이것이 여야당과 달라야 하는 점입니다. 신인이 있는 당원은 신인이 선대본부장입니다.

큰 물고기와 큰 새: 시류를 거스르는 영웅의 길

제 머리에서 나오는 발상은 장기적으로 보면 적중하는 화살입니다. 여러분의 계획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보십시오. 누가 그것을 판단해야 할까요? 제가 판단해야 합니다. 큰 물고기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작은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지만, 큰 물고기는 물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지 않고 반대로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를 ‘대어역수(大魚逆水)’라고 합니다. 큰 물고기는 물을 거꾸로 거슬러 간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대조역풍(大鳥逆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간다는 의미입니다. 바람이 불면 그것을 반대로 맞으며 날아오릅니다. 비행기가 바람이 가는 방향으로 갈 때는 추락합니다. 비행기는 뒤에서 바람이 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앞에서 바람이 와야 비행기가 양력을 얻어 뜰 수 있습니다. 독수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뒤에서 오는 바람에 독수리가 뜨면 곤두박질칩니다. 양력이 생기지 않으니 추락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큰 새들은 그 바람을 이용합니다. 이 대선에서 큰 인물은 대선의 풍향계를, 즉 바람을 안고 뜹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과 밑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은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은 여론을 따라가자고 합니다. 바람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바람이 곧 여론입니다. 우리는 바람, 즉 여론을 반대로 칩니다. 눈부신 이야기를 해서 여론이 이렇게 부는데도 그것을 반대로 치고 올라갑니다. 여론의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영웅들입니다. 그래야 양력이 생겨서 뜰 수 있습니다.

독수리가 골짜기에 있는 노루를 잡으러 갈 수는 없습니다. 다시 뜰 장소를 봐야 합니다. 넓은 평지에 먹잇감이 있어야 독수리가 내려가서 먹이를 먹고 다시 힘껏 뛰어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골짜기 같은 곳에 처박혀 있는 먹이는 잡지 않습니다. 양력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양력을 이용해서 착륙하고 또 양력을 이용해서 떠야 하는데, 골짜기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먹이가 있어도 가지 않습니다. 평지가 있어야 독수리가 다다다다 뛰면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항상 큰 물고기는 물을 거슬러 가고,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간다고 합니다. 영웅은 역풍을 맞고 가는 것입니다. 만약 안중근 의사가 편안하게 살았다면 일반 사람처럼 살았을 것이고 영웅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역풍을 맞았습니다. 일본이라는 바람이 얼마나 거 셌습니까? 우리 국민들은 그 바람에 끌려갔지만, 그중 한 사람은 끌려가지 않고 반대로 일본을 향해 돌진했습니다. 총끝이 용이 되었습니다.

큰 영웅들은 시야가 여러분과 다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정반대입니다. 민심이나 이런 것을 절대 바라보지 않습니다. 잔잔한 물고기는 민심을 따라 흘러가지만, 그 물살을 거슬러갈 힘이 없습니다. 그런 힘이 있어야 합니다. 큰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갈 힘이 있습니다. 인생을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일반인과 큰 영웅은 사는 방법이 다릅니다. 석가모니를 일반 사람으로 친다면 시류에 따라 왕실에서 편안하게 있으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왕자리를 버리고 역풍을 맞고 갔습니다. 산속에 가서 고행을 했습니다. 그것이 역풍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름이 남았고, 가문의 이름이 남았습니다.

인도 소 숭배의 지혜: 민심을 움직이는 전략

예를 들어, 인도 사람들은 소를 잡아먹지 않고 신으로 모십니다. 우리는 소를 일시키고 먹고 또 잡아먹지만, 인도는 소를 하나님처럼 섬깁니다. 왜 소를 신으로 모시게 되었을까요? 모든 만물을 다 신으로 섬겼지만, 특별히 소를 신으로 모신 이유가 있습니다. 인도 사람들이 너무 가난해서 소만 모이면 다 잡아먹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니 서로 남의 소까지 잡아먹었습니다.

그래서 인도 정부는 지혜를 썼습니다. 시바 여신이 소를 타고 다니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인도 전역에 그것을 붙였습니다. “시바 여신은 소를 타고 온다”라고 말입니다. 시바 여신이 소를 타고 오는데 소를 잡으면 되겠습니까? 그때부터 소를 못 잡아먹게 되었습니다. 소가 사라져 농사일이 어려워지자 정부가 머리를 쓴 것입니다. 시바 여신이 소를 타고 왔다고 종교적으로 선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진짜 시바 여신이 소를 타고 오는 그림이 여기저기 있었고, 몇천 년 전부터 내려왔다고 하니 국민들은 “어머, 소 잡아먹으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소가 신이 되어버렸습니다. 인도는 아스팔트 도로를 가다가 소가 들어오면 절대 경적을 울리면 안 됩니다. 소가 일어날 때까지 전부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서 있어야 합니다. 신에게 경적을 울리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소가 갈 때까지 전부 차에 앉아 기다립니다. 인도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길에는 온통 소똥 천지입니다. 소가 움직이면 그때서야 차들이 움직입니다. 교통경찰도 소가 길을 막고 있으면 꼼짝 못 합니다. 신이 막고 있는데 왜 말이 많냐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소를 신격화했더니 소를 잡아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너무 안 잡아먹어서 탈입니다. 소고기를 아예 못 먹게 되어버린 것입니다. 시바 신을 잡아먹는 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바 신이 소를 타고 옵니다. 불교에서는 문수보살이 푸른 사자를 타고 나타난다고 합니다. 사자를 타고 나타나니 사자는 진짜 무섭지만, 그 사자가 에메랄드 색깔의 푸른색입니다. 문수보살이 사자를 타고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시바 여신이 소를 타고 나타났다고 하여 인도에서 소의 멸종을 막은 것입니다. 인도 왕실의 지혜였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소를 시바 여신으로 보게 되어 절대 잡지 않습니다.

이처럼 큰 정치인은 “소 잡아먹지 마라”고 직접 말하는 대신 전략을 씁니다. 역풍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소의 모습에 신을 투영하여 소를 타고 오게 나타나게 합니다. 소는 곧 신이 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지금 인도는 소가 넘쳐나고, 농사도 짓지만 먹지는 않습니다. 길거리에 마음대로 돌아다닙니다.

영웅은 시류를 만들지, 따르지 않는다

영웅은 시류에 흘러가지 않고 거슬러 갑니다. 영웅은 시류에 반대로 갑니다. 영웅은 결국 시류를 만들 수는 있지만, 시류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시류를 따라가는 자가 있다면 영웅이 아닙니다. 이것이 아주 명언입니다. 영웅이 허경영입니다. 허경영은 신이니 인간들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