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28 Huh Kyung-young’s Metaphysical Insights: Unveiling the Universe as a Grand metaverse and the Power of spiritual Communication – August 26, 2021

가상 세계와 현실: 메타버스의 본질

우리는 가상 세계인 꿈속에 살면서도, 꿈 밖에 있는 실제 영의 세계, 즉 백궁의 세계를 조금씩 엿보고 있습니다. 모든 비밀은 천사를 통해 나오며, 모든 통제는 영의 세계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가상 세계는 우리가 한 번 체험하면 바뀌지 않는 세계이며, 시간의 제약이 없는 완벽한 세계입니다.

이것은 상상 속의 개념이 아니라, 자유의 3대 이치에 따라 운용되는 것입니다. 운용 방식에 따라 메타버스처럼 지구의 생존 방식도 메타버스입니다. 인간의 내면에 메타버스가 주어져, 스스로 어떤 꿈을 택하고 어떤 메타버스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마치 지게꾼이 되는 것을 스스로 설정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에 들어가 스스로 설정을 합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 이미 설정된 것을 따라갑니다. 전생에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다음 생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메타버스에서 태어나 운행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이미 결정해 놓은 것입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메타버스에 들어가 “오늘은 지게꾼이 되어보자”라고 선택하는 것과 같습니다. 가상 세계의 운행 속에서 스스로 팔자를 정하는 것이며, 자신도 모르게 코드를 입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메타버스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부자가 되거나 좋은 친구를 만났을 때, 다른 길을 선택하며 운명이 바뀌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코드를 찍듯이 스스로 체험을 선택하고, 이러한 기로에 계속 서게 됩니다. 메타버스 안에서 자신이 들어가고 싶은 곳을 선택하는 것은 가상 세계의 운용자로서 무엇을 결정하느냐에 따라 작동하는 것입니다.

체와 용의 원리: 세상의 운용 방식

세상은 ‘체’와 ‘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체’는 본질적인 것이고, ‘용’은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를 바꿀 수는 없지만, 아버지를 잘 활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하나의 인간관계로서 기가 막히게 활용하여 서울대에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은 바뀌지 않지만, 활용 방식은 계속 바뀝니다.

지구는 체와 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인간이 이 세상의 주체입니다. 인간은 이 ‘체’를 활용하며 살아갑니다. 백궁에 가서도 이 체와 용의 관계는 계속 유지됩니다. 백궁에서도 “나는 지구의 시대로 가고 싶다”, “지구의 몇 세기로 가고 싶다”라고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주 전체가 메타버스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메타버스를 만들어 놓았지만, 우리는 이미 메타버스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조선 시대로 갈 수도 있고, 고려 시대로 갈 수도 있습니다. 옛날 어머니와 살던 시절의 모습으로 돌아가 강변에서 살았던 기억을 되살릴 수도 있습니다. 저승에 가면 그 모든 기억이 납니다. 백궁 자체도 메타버스 스타일로 운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꿈속에서 상처를 입고 시달리다가 가상 세계로 들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과거에 제가 강의했던 내용이 지금의 메타버스 개념과 일치합니다. 백궁이라는 세계는 여러분이 그때그때 공연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고려 시대의 장군이 될 거야”라고 선택하면, 장군이 되어 전투에 참여하고 영토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구에서의 운명이 아니라,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되는 것입니다. 인간 자체가 자유의지에 따라 어떤 인간이 될지 결정하는 것이 바로 메타버스입니다.

영의 세계와 시간의 초월

영의 세계는 이 메타버스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계입니다. 백궁의 한 사람에게 축복을 주면, 120억 광년, 240억 광년의 거리를 10초 만에 내려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법의 세계입니다.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과학이 아닙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집니다. 지구에서는 120년, 240년이 걸리는 일이 영의 세계에서는 0초 만에 일어납니다. 이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할까요? 불가능합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과거로도 가고 미래로도 갑니다. 타임머신을 철저히 탑니다. 500년 전으로 돌아가면 500년 전의 모습이 열립니다. 50년 전으로 돌아가면 50년 전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이 세상에 와서 모든 것이 닦여 있습니다. 500년 전에는 생명이 위험한 지경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라 시대로, 고조선 시대로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50년 전으로 돌아가면 잘 닦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60년 전은 부모님이 태어나기 전입니다. 부모 미생전의 본래 면목을 보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태어나기 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5천 년 전으로도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는 인간이 아니었습니다. 과거로 회귀하여 가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 인간들이 본래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백궁에서는 이것이 마음대로 됩니다. 메타버스를 계속 갈아탈 수 있습니다. 백궁에서는 부모 미생전의 본래 면목으로 계속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 영의 세계에서 여러분은 자유의지가 상위 개념입니다. 상위 자유의지가 결정함으로써 어떤 부모의 아들로 태어날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버튼을 누르는 것과 같습니다. 전생에 이건희 아들로 태어날 만한 업장을 쌓은 것입니다. 전생은 그 사람의 업장입니다. 전생의 업장, 전전생의 업장 등 모든 업장의 연속입니다. 이 상위 세계에서 연속된 세계로 다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체’의 세계입니다.

업장과 영적 통제

‘체’의 세계에서 업장을 통해 태어나기 1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태어나기 1년 전에는 백회가 열려 있습니다. 하지만 백회가 닫힌 인간으로, 히틀러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그렇게 만들어집니다. 어머니 뱃속에 태어나기 전으로 돌아가면 백회가 열려 있던 시대였습니다. 이런 식으로 과거로 정확하게 들어갈 수 있으며, 오차가 없습니다. 백궁의 영적인 세계는 오차가 없습니다.

제가 여기 와서 사람들을 보면, 어떤 사람은 술에 취해 돌아다니고, 어떤 사람은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미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백궁에 갈 때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레벨은 숫자로 표시되는데, 이 숫자는 지구의 생각일 뿐, 우주 전체에서 통용되는 작은 숫자가 아닙니다. 지구에서는 숫자로 표현하지만, 백궁에서는 숫자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쓰는 숫자가 아닙니다. 지구에서 임의로 정한 것입니다. 백궁에서는 연회 주로서 축제에 쓰이는 레벨의 단위가 다릅니다. 모든 글자도 다릅니다. 이것을 지구에서 계산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벨은 창조와 편차를 나타냅니다. 숫자는 에너지를 표시하고, 레벨은 에너지로 나타납니다. 영적인 에너지도 이렇게 표시됩니다. 강력한 에너지는 눈에 보이게 됩니다. 칼라로 보이고, 화면으로도 보입니다. 정신 세계는 여러분에게 설명하기 어렵고 복잡합니다. 제가 한 사람에게 축복을 주면 0.1초 만에 백궁이 0.1초 만에 나타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면 이해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암을 고칠 때도 과학자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최고 전문가들도 고치지 못하는 것을 제가 고칩니다.

영적 치유와 인간의 한계

의사들은 눈을 빼버린 사람을 치료할 수 없습니다. 눈알을 구해서 꽂아야 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 눈알을 뽑아서 고치는 것은 안 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영적으로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다리가 부러졌을 때 의사들은 다리를 붙일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만 통제할 수 있습니다. 심장이 멈춘 사람을 의사들은 심장에 전기를 가해 살려냅니다. 하지만 심장을 떼어내 버리면 안 됩니다. 심장 수술 전문가는 신경을 꽂아야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인간이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의사가 수술하다가 심장이 멎으면 광채가 끊어집니다. 광채는 본체를 말합니다. 광채가 끊어지면 본체가 끊어지는 것입니다. 광채가 되라는 말은 상위의 명령입니다. 인간은 본체와 가상 세계의 중간에 있습니다. 인간은 백궁과 인간 세상에서 이렇게 쓰이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는 외적인 운행도 메타버스입니다. 스스로 택한 코스입니다. 이 사람에게 가야 할지, 이 여자를 만날지 등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체, 상, 용’의 3원칙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철학의 3대 원칙입니다. 살아온 경험을 가지고 결정을 합니다. 메타버스는 원래 아는 것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메타버스가 해야 할 일을 찾는 것보다 천사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확실합니다.

영적 체험과 가피

저는 원자력을 가지고 과거로 갑니다. 조선 시대, 고려 시대, 고조선 시대로 갈 수 있습니다. 가면 그 시대의 습성을 볼 수 있습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메타버스입니다.

우리는 꿈속에서 가피를 입습니다. ‘몽중 가피’라고 합니다. 꿈속에서 나를 만나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많이 경험합니다. 제가 그 사람에게 섹스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신의 모습으로 나타나면 그 여자가 저를 맞이하고 옷을 벗고 섹스를 합니다. 그러면 작은 아기가 태어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여자는 그런 꿈을 꾸면 좋은 일이 생깁니다. 마음을 먹는 것도 다양합니다. 이것이 몽중 가피, 명가피입니다.

‘현정 가피’는 직접 만나는 것입니다. 축복하고 안아주는 것입니다. 제가 직접 안아주는 것은 현실적인 가피입니다. 명운 가피는 축복을 받으면 자신도 모르게 좋아지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걸리는 것은 모릅니다. 자신도 모르게 좋아지는 가피입니다. 자꾸 왔다 갔다 하니까 좋아집니다. 봉사도 하고 선거운동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저를 계속 부르고 하면 사람이 맹해집니다. 현정 가피는 저를 만나서 명패도 받고 축복도 받았으니 백궁에 간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명운 가피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세계와 이 세계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의지가 들어 있습니다. 의지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곰이 만나서 잠을 잤는데도 명운 가피를 입을 수 있습니다. 자꾸 생각나니까 젊어지고, 여성 호르몬도 많이 나옵니다. 생리가 안 오던 여자가 생리를 다시 시작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실제적인 작용입니다. 제가 축복을 주면 몸이 달라지고 가피를 입습니다. 제가 부를 이어받는 실제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의 신경망과 물질의 지능

이 모든 것이 메타버스입니다. ‘체, 상, 용’의 원리에서 제가 나타나면 ‘용’이 나타납니다. 그 ‘용’은 ‘상’에서 나타납니다. ‘상’은 원래 ‘체’의 본체이며 움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상 세계를 ‘이자’라고 부릅니다. ‘이’는 두 개입니다. 이 두 개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세계가 그 위에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아들의 자리입니다.

우리는 두 개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든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하늘의 소리는 두 개의 귀로는 들을 수 없습니다. 하늘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두 개의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이치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음속의 소리입니다. 마음속의 소리는 힘이 있습니다. 마음속에 있는 소리를 알아야 그 소리를 되돌려 들을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언어를 다 알아듣습니다. 하지만 말로 하지 않는 것으로도 통신이 됩니다. 마음먹으면 반응을 합니다. 마음속으로 “오늘 하루 즐거웠다”라고 생각하면 전달됩니다. “오늘 하루 기분 나빴다”라고 생각하면 전달됩니다. 몸에 있는 넥타이와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에너지를 감지합니다. 말로 하는 것은 양쪽 귀가 듣고, 마음으로 아는 것은 제3의 귀가 생겨야 알아듣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의 귀입니다. 이것이 전부 하늘이며, 저의 신경망입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신경망에 변조된 모습이며, 저의 육신과 영혼의 변용입니다. 수술하는 사람이 수술 칼을 들고 “잘해보자”라고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기운이 몸에 힘입어 작용합니다. 활인 기운이 자연스럽게 주어집니다. 하지만 수술하는 부분에 생각을 빼먹고 텔레파시를 보내지 않고 욕심만 앞서 “1시간 이내에 끝내겠다”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환자에게 활력을 주어야 물질들이 반응합니다. 의사가 잡지 않으면 통하지 않습니다. 잡고 있어야 통하는 것입니다.

저는 앉아만 있어도 전기가 통하지만, 의사들은 자신이 손대지 않은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만져봐야 합니다. 떨어져 있는 것은 안 됩니다. 겉으로 가서 “살아보자”라고 생각하면 통합니다. 잡은 것, 칼, 이것이 통하는 것입니다. 환자에게 “건강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안 됩니다. 하지만 “잘 될 것 같아요”, “몸이 따뜻해질 거야”, “좋은 것 같아”라고 말하면 몸이 반응합니다. “좀 어려울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부부지간에 서로 실망스러운 말을 하면 철저하게 차단됩니다. 떨어져서는 해도 문제없지만, 붙잡고 할 때는 엄청난 위력을 발휘합니다. 심장이 멎은 사람은 붙잡고 감싸야 합니다. 광채가 들어오면 먹어도 됩니다. 광채가 들어오면 만지지 않아도 됩니다. 광채가 들어오면 텔레파시가 통합니다. 떨어져 있을 때는 안 됩니다. 저는 떨어져 있어도 초능력을 발휘합니다. 저는 안 잡아도 됩니다. 제 마음대로 됩니다. 리액션이 텔레파시로 들어가고, 아무리 먼 별도 0초 만에 됩니다.

제 영의 세계는 무한한 기술이 있습니다. 이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저의 신경망입니다. 신령한 신의 신기한 말입니다. 인간들이 물질로 아무리 변조시키고 풀어도 저의 신경망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물질은 지능이 인간보다 100배가 높습니다. 이런 말을 한 사람이 있습니까?

신의 존재와 물질과의 소통

프랑스어로 “저 사람 죽게 내버려 둬”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죽습니다. “저 사람 살려줘”라고 말하면 그 사람은 살아납니다. 텔레파시로 말을 해도 모든 언어가 통합니다. 제가 100개국의 언어를 모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영의 세계입니다. 텔레파시로 말을 해도 모든 언어가 통합니다. 마음먹고 있는 것을 모든 사물이 녹화합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것이 신경망입니다.

하늘은 건물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물망처럼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가장 위로 보고 살지만, 이렇게 무시무시한 물질들이 신의 신경망처럼 여러분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 신의 신경망이 모든 것을 압니다. 흙에서 온 것은 흙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이 신경망이 바로 저의 신경망입니다. 물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정문을 쥐고 그 영혼이 초래했다고 말했습니다. 흙 입에서 나오는 소리는 텔레파시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마음속으로 텔레파시를 보내면 전달됩니다. 말을 안 해도 마음속의 말을 감지합니다. 모든 언어를 다 알아듣습니다. 이것이 신의 현상입니다. 어떻게 모든 언어를 텔레파시로 마음속으로 먹었는데 현상이 나타날까요? 신이 이 세상에 와서 이런 말까지 하는 사람이 앉아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 사물은 지능이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신경망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저의 신경망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도 손으로 잡지 않아도 됩니다. 말이 닿지 않아도, 말을 안 해도 통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여기서 마음먹은 것을 즉시 반영할까요? 마음에는 메타가 많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다 알아듣습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환자를 수술하거나 관리할 때 모든 동작이 달라져야 합니다. 환자를 잡고 텔레파시를 먼저 보내야 합니다.

이 물질 망이 마음을 안다면, 신은 이 모든 생물의 몸과 상이 전부 신과 같습니다. 거기에 저의 신경망이 있으니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제가 집을 지었을 때, 자연 상태의 집을 말합니다. 수십 배 넓은 땅에 나무도 있는 그대로 놔두고, 원래대로 복원해 놓으면 아바타처럼 됩니다. 이것이 피가 안 됩니다. 자연 친화적인 모습입니다. 걱정 없이 날아다니고 잔디밭도 계속 앞으로 음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건물은 기존에 있던 것을 놔둡니다. 자연 친화적으로 대화하는 것입니다.

땅을 회관할 때도 제가 건드립니다. 나무도 제가 다른 용도로 제외하고, 새롭게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집을 짓는다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나무를 잡고 “고맙다”라고 말하고, 땅에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신과 대화하고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안 하고 집을 지은 사람들은 좋지 않습니다. 미신이 아닙니다. 땅과 대화하고 나무와 대화하며 “잘 되게 해주세요”라고 말해야 합니다.

모든 물질과 소통해야 합니다. 말로 안 해도 됩니다. 세계 언어를 다 해도 소통이 됩니다. 프랑스 말로 집어넣어도 통합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면 나뭇잎도 반응합니다. 이 물질이 모든 국가의 200개 국가의 언어를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언어를 다 압니다.

제가 CSP를 봤는데, 옆쪽으로도 뜨고 총으로도 뜹니다. 전반적으로 기분 좋았다는 에너지를 보여줍니다. 집에 가서 배를 잡고 “네가 있어서 좋다”라고 말하면 좋아합니다. 돈이 있으니까 반갑다고 말하면 좋아합니다. 우리는 좋고 괴로운 것이 신의 품 안에 있습니다. 의자를 갖다 놓고 이야기해도 됩니다. “잘 있었냐”라고 말로 해도 되고, “이번 여행에서 재밌었다. 너는 어떠니?”라고 말하면 다 알아듣습니다. 얘네도 말을 못 하니까 몸으로 반응합니다. 좋았다고 말하면 “그랬구나”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감마파로 연결됩니다. 혼자가 이것을 혼자서도 감지합니다. 이 이야기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입니다. 현 세계의 의학과 과학, 물리학을 뒤엎는 이야기입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아도 됩니다. 만물이 지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의사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는 것은 과정을 증명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