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자신을 알라: 자기 이해가 모든 지식의 시작
“너 자신을 알라”는 이 세상에 많은 지식이 있지만,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알아야 나머지 지식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고 남을 알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는 자기를 먼저 알고 남을 알면, 우리 한국이 개개인의 역량으로 러시아보다 앞서 세계 1위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러시아는 땅덩어리가 100배나 크지만 경제는 우리의 절반 수준입니다. 참 신기한 일이죠. 우리는 지금 러시아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습니다. 과거 로마, 만주, 몽골, 오바마 등 어마어마한 강대국들이 있었지만,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석유가 나와 그것을 팔아 부유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우리에게 뒤처졌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가 세계 1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저력입니다. 우리 민족이 스스로를 알고 다른 이념과 경쟁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도 모르고 다른 이념과 경쟁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학력과 학벌: 자신을 아는 또 다른 척도
너 자신을 안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스칼라십이 무엇인지, 학력이 무엇인지 아는 것을 포함합니다. 아카데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카데미는 한 명을 의미하며,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나오는 것이 아카데미입니다. 스칼라십은 학력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이 학력이 풍부한지, 박사인지 아닌지를 묻는 것입니다. 스칼라십은 그 사람이 공부한 역량을 묻는 것이며, 다른 말로는 학벌입니다. 그 사람의 학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 그 사람들의 자신을 알기 위해 시험을 보는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나는 평균이야, 우리 반에서 1등이 그러면 너 자신이 1등이라고 말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이 어느 정도의 위치에 처해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전생과 내생: 윤회를 통한 자기 이해
나를 알고 싶다면 먼저 내 전생을 알아야 합니다. 전생 검색을 통해 내가 재벌 아들이었는지, 거지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 따라서 내 전생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생에 낭비하고 돌아다녔다면, 이번 생에는 부유한 집안에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을 아는 방법입니다. 다음으로 내생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알아야 내 자신을 알 수 있습니다. 내 미래, 죽어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려면, 내가 무엇을 지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가 남을 기쁘게 해줬다면, 다음 생에는 사람들한테 존경받는 사람으로 태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남에게 해를 끼치고 나쁘게 행동했다면, 다음 생에 내가 어디로 갈지 정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무엇을 지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생을 알고 싶다면, 내가 무엇을 하고 돌아다녔는지 검색해야 합니다. 그러면 다음 생에 그 모습이 보이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결론적으로 “너 자신을 알라”는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갈지를 알라는 소리입니다. 내가 금생에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내가 아까 가르쳐 준 대로 업생이 있고 원생이 있습니다. 내가 원생으로 잘 태어날지, 업생으로 태어날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으면 업생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업생은 업을 많이 지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원하는 집에 태어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다 정해주는 것입니다. 동물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내가 남의 집 아들로 가는 것을 따져보세요. 너는 왜 하필 그 집 아들로 들어갔는지, 이미 정해져 버린 것입니다. 죽은 다음에 걸리는 것이니까 꼼짝없이 당하는 것입니다.
원생과 업생: 선택과 운명의 갈림길
원생은 자기가 착하게 산 사람이 죽어서 원하는 대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천국은 천생을 말합니다. 원생은 인간 세상에 죄가 많아서 태어나는 사람입니다.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네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머니, 내 아들이 지금 내가 죽었다고 우리 마누라가 슬퍼하고 있는데, 내 마누라에게 다시 태어나게 해주세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네 아들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합니다. 5년, 10년이 걸려 그 집에 아들이 딱 태어날 때 들어와서 태어나는 것입니다. 원생은 자기 아들 밑에 아들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래서 악을 많이 지은 사람은 업생으로, 선을 많이 베푼 사람은 죽어서도 자기 선택권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머지 동물들과는 다릅니다. 이것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착한 일을 했으니까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아들 밑에 태어나고 싶어요”라고 하면 그렇게 해줍니다. 하지만 그때까지 몇 년이 걸릴지 모르니 기다리라고 합니다.
업생의 비극: 원수가 되어 돌아오다
우리 여사님은 어디서 태어났을까요? 이것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여사님의 질문이 예사롭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어디서 왔느냐, 어디로 갈 것이냐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에 내가 업생이냐, 원생이냐를 알아야 합니다. 손자를 낳았는데 할아버지가 원생으로 태어난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손자를 낳았는데 집안을 망하게 하는 원수가 온 경우도 있습니다. 그것이 업생입니다. 업생은 전부 원수지간입니다. 좋은 집안인데 업생이 태어나면 그 집은 초토화됩니다. 아버지가 운전하다가 졸다가 대형 사고가 나서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아이 한 명 때문에 남편이 죽는 것입니다. 아이를 막 때리고 남편이 나가서 밤새도록 떨면서 얼어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아버지, 엄마를 죽이러 내가 온 것입니다. 남의 집 셋방에 사는데 집주인이 밤마다 시끄럽게 하고 괴롭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나쁜 놈입니까? 엄마가 어디를 가든 따라다니며 괴롭히고, 교통사고를 나게 하고, 남의 잠을 못 자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어린아이에게 한 짓이 방해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업생입니다. 원수가 원수를 갚으러 온 것입니다. 택시 기사가 운전하다가 사람을 치고 뺑소니를 쳤다면, 그 아이가 와서 그 사람에게 복수를 해서 괴롭히다 죽이는 것입니다. 자기가 죽었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너 자신을 알라”는 의미입니다.
선업을 쌓아 원생으로 태어나라
그러니까 우리는 좋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곳에 원생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가게 해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죄를 지은 사람들은 딱 정해져서 네가 가장 싫어하는 곳, 소나 개로 가는 곳, 고약한 집에 들어가서 고통을 맛봐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선택권이 없습니다. 원생은 원하는 대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여사님은 원생이 아니고 업생으로 태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다음에 좀 부족하면 있나? 내가 못생겼나? 원생으로 태어나면 얼마나 좋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