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70주년과 북한의 단기 동향
모레는 7월 27일, 6.25 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이합니다. 최근 김영철이 대남 선전 활동에 다시 등장했으며, 사이버 공공기관의 사이버 전공자가 내년 총선에 대비해 급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올해와 내년에 걸쳐 단기간에 어떤 동향을 보일지 주목됩니다.
6.25 전쟁 발발과 인천상륙작전의 기적
- 25 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했습니다. 당시 우리는 소련이 제공한 탱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고, 가벼운 총으로 탱크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미군은 261척의 배를 동원하여 군대를 이끌고 왔지만, 북한군의 진격을 막지 못해 서울까지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9월 28일 서울을 탈환하고 38선까지 북진했습니다.
세계적인 전쟁으로 확전될 위기 속에서, 맥아더 장군은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습니다. 그는 “내가 만들 수 없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리처드 파인만의 말을 인용하며, 지능형 인공물을 직접 만드는 과정이 의식의 본질을 밝힐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맥아더는 모든 미국 대통령과 장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으로 진격했고, 이 작전의 성공은 낙동강 전선의 군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북진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이는 한반도가 자유 진영으로 가는 중요한 전략이었습니다.
한반도 분단의 아쉬움과 기후변화가 북한에 미치는 영향
전쟁으로 인해 개성을 잃은 것은 큰 손해였습니다. 만약 38선이 그대로 유지되어 장단과 송악산이 우리 땅이었다면, 북한은 기상이변에도 식량을 어느 정도 조달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합니다.
향후 100년간 남침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그 이유는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 때문입니다. 어마어마한 기근과 갑작스러운 폭우, 물난리 등 기상이변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볼 나라는 북한입니다. 우리는 저수지가 많고 수리 시설이 잘 되어 있지만, 북한은 그렇지 못해 식량 자급자족이 불가능합니다. 군대를 유지하더라도 식량 문제로 미국과 협상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중국 또한 기상이변으로 곡식 생산에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식량을 군대에 먹여 살릴 수 있는 대규모 지원이 없다면 전쟁은 어렵습니다.
한반도의 미래 안보와 기후변화의 위협
북한은 걱정거리가 아닙니다. 진정한 우리 안보의 미래는 급격한 기상이변에 있습니다. 올해 9월까지 한반도에 태풍이 6~7개 더 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미 비로 땅이 젖어 있고 저수지는 가득 차 있습니다. 태풍이 오면 북한은 큰 피해를 볼 것입니다. 고기압 전선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폭우가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집중되는 현상이 잦아질 것입니다. 명태가 러시아로 도망가는 것처럼 기온이 올라가면서 북한의 땅은 옛날 같지 않게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면 식량난은 더욱 심화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우리가 북한에 많은 식량 원조를 해야 할 처지가 될 것입니다.
맥아더의 신념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맥아더는 서양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남의 체제를 가지고 싸워서는 안 되며 서로 윈윈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을 노예로 만들지 않고 보좌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북침할 의사가 없으며, 중국과 외교를 강화하고 한반도를 중국과 미국이 주시하는 완충지대로 만들어야 합니다.
맥아더는 중국과 소련 국경에 맞닿는 것을 피했습니다. 이는 소련, 중국, 미국, 일본 네 나라 모두에게 불안정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남한이 완충 역할을 해야 합니다. 만약 개성이 우리 땅이 되어 러시아 국경에 붙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입니다.
김일성은 전쟁 준비를 위해 소련의 군사 전문가들을 동원했습니다. 일본군과 남한 군대는 전쟁 경험이 부족했지만, 미군이 참전하면서 상황이 바뀌었습니다. 미군이 35인치 탱크를 쏘면 탱크가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6.25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26일 밤중에 총회를 소집하여 16개 국가의 참전을 이끌어냈습니다. 당시 중국은 대만 편이었고, 소련은 독감에 걸렸다는 핑계로 참전하지 않았습니다. 백궁에서 100% 소련 탱크를 지원했지만, 소련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반도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던 시기, 러시아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27살의 김일성이 북한을 장악했습니다. 6월 25일 전쟁이 발발하기 전, 북한은 무기를 삽입하고 훈련하며 최전방에 포탄을 산더미처럼 쌓아두었습니다. 반면 남한 군인들은 6월에 30%가 휴가를 떠나는 등 전쟁 준비가 미흡했습니다. 이 모든 상황은 백궁에서 그림처럼 보고 있었으며,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했습니다.
맥아더는 머리가 비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두가 군산으로 가라고 했지만, 그는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김포공항을 장악하여 미군 물자를 보급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당시 서울로 진격하던 부대는 행주산성을 넘어 북쪽으로 진격하고 신천으로 진격해 왔습니다. 그러나 인천공항에서 공군기들이 급유를 받아 제공권을 장악하지 않으면 서울 장악은 불가능했습니다. 미군 비행기가 북한군을 폭격하여 북한군은 궤멸되었습니다.
맥아더는 부산에서 미 2사단이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부산이 함락되더라도 시간을 끌라고 계속 연락했습니다. 2사단장은 맥아더의 지시를 따르며 미군이 부산에서 싸우는 것처럼 위장했고, 그 사이에 맥아더는 인천으로 돌아 올라갔습니다. 이는 이중 작전으로, 미군이 부산에서 전쟁을 하는 것처럼 위장하면서 인천으로 상륙한 것입니다. 맥아더는 노련한 장군이었습니다.
한반도의 운명과 태극의 의미
백궁에서는 한반도의 모든 저항을 그림처럼 보고 있습니다. 한반도가 반으로 쪼개진 것은 백궁의 뜻이며, 일본이 온 것도 한반도를 반으로 쪼개려는 의도였습니다. 이곳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공산주의 국가가 만나는 정반합의 자리입니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고, 대륙 문화와 해양 문화가 부딪히며, 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가 충돌하는 곳입니다. 불교와 기독교가 반반이 될 정도로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곳입니다. 한반도는 세계 모든 것들이 모여 충돌하는 태극의 땅입니다.
이곳에서 정신적인 세계, 정신 문화의 혁명이 일어나고 물질문명의 혁명, 종교의 혁명, 사상 혁명이 통일될 것입니다. 다양한 문화가 치열하게 부딪히면서 오리지널의 꽃을 피울 것입니다. 한반도에서 모든 문화가 마지막 마무리를 하며, 심판자가 이곳에 오게 될 것입니다. 이 전쟁은 신인의 전쟁입니다.
맥아더는 불가능해 보이는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습니다. 밥을 먹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고 하는데, 이는 신기의 활동이었습니다. 참모들과 백악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래도 나는 인천으로 갑니다.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참모 7명 모두 반대했지만, 맥아더 혼자만 고집했습니다. 배 안에서 그가 한 유명한 말은 한 사람의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맥아더는 261척의 군함을 이끌고 인천으로 향했습니다. 모택동, 스탈린, 김일성에게 후방을 조심하라는 정보가 흘러갔지만, 맥아더는 9월 15일까지 진지를 완료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인천시는 폭탄으로 바다가 될 정도로 많은 폭탄이 쌓였습니다. 맥아더는 지도를 보고 머릿속으로 작전을 구상했습니다. 당시 도로망이 없었고, 철길이 태백산맥을 따라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인천을 막으면 모든 군의 동맥을 자르고 보급선을 차단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일본에 있는 비행기를 동원하여 제공권을 장악하고, 인천을 통해 북으로 진격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인천에서 서울까지 13일 동안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북한군은 연세대학교 뒤 무악산에 포진하여 기관총을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행주산성 쪽으로 진격해 온 북한군과 연희동 앞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김포공항으로 진격한 미군은 노량진에서 한강을 건너 도하 작전을 펼쳤습니다. 맥아더는 노련한 장군이었으며, 그의 에너지는 신인의 에너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