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07 x124 Religion. Huh Kyung-young’s Insights on the Evolution of Religion: From Ancient Polytheism to the Modern Search Era and the Path to True Spiritual Fulfillment
진정한 종교의 완성 단계와 기존 종교와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합니다.
- 재림 예수의 도래 방식 이해
- 도둑처럼 오는 재림 예수: 기존 종교인들은 재림 예수를 만날 수 없으며, 그는 교회나 신도에게 직접 찾아오지 않고 도둑처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남
- 사기꾼으로 위장: 재림 예수는 처음에는 사기꾼이나 도둑으로 오해받을 수 있으며, 어른들은 그를 비난하지만 순수한 사람들은 알아봄
- 경배의 대상: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는 환영의 대상이지만, 재림 예수는 나타나면 모두 엎드려 경배해야 하는 신적인 존재임
- 기존 종교의 한계: 현재 교회는 의자에 앉아 있어 경배할 장소가 없으며, 기존 종교 안에서는 심판자가 오지 않음
- 박해와 오해: 과거 예수도 유대에서 박해를 받았듯이, 재림 예수도 처음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오해받을 수 있음
- 다신교 시대와 유일신 사상
- 다양한 신 숭배: 과거 예수 시대에는 사람들이 전쟁의 신(마르스), 다산의 신(오은 메인), 바다의 신(포세이돈) 등 12개 이상의 다양한 신을 섬겼음
- 여호와 신앙의 한계: 유대인들은 여호와를 종합 신으로 믿었지만, 이방인들은 다양한 신을 믿었기에 여호와 신앙이 널리 퍼지지 못했음
- 현대인의 다신교적 사고: 한국인도 마음속에 10가지 이상의 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특정 상황에 따라 다른 대상을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음
- 신인의 도래와 변화: 오고 나서는 이러한 다신교적 숭배가 필요 없어졌으며, 모든 것이 정결해져야 함
- 종교의 학문화와 쇠퇴
- 종교의 학문화: 기독교는 학문화되면서 영생의 의미를 잃고 쇠퇴하기 시작했으며, 신학교 교수 수가 늘어날수록 신자 수가 줄어듦
- 고난과 영성: 진정한 종교는 고난, 인내, 연단, 소망의 과정을 통해 완성되며, 이는 천국으로 가는 길임
- 학문의 한계: 종교를 학문으로 배우는 것은 한계가 있으며, 영적인 소통은 학문적 지식만으로는 불가능함
- 영성의 중요성: 종교는 학문이 아닌 영성이며,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뜨겁게 믿었던 과거와 달리, 글자를 알고 학문화되면서 쇠퇴함
- 종교 시대의 변화: 암송, 필사, 검색
- 암송 시대: 종이가 없던 시절, 모든 종교 경전은 암송을 통해 전해졌으며, 이때 신앙심이 가장 뜨거웠음
- 필사 시대: 이후 종이나 돌에 경전을 기록하는 필사 시대가 도래했음
- 검색 시대: 현재는 경전을 검색하여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검색 시대이며, 이로 인해 신앙심이 약해지고 종교가 쇠퇴함
- 편리함의 역설: 편리함은 신앙심을 약화시키며, 고난과 노력을 통해 얻는 영적인 깨달음이 사라짐
- 행복과 복을 얻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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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와 칭찬: 세상에서 복을 받기 가장 쉬운 방법은 남을 칭찬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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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가는 길: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칭찬을 넘어 축복과 명패를 해야 하며, 이는 영적인 인간에게 필요한 과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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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명패: 이 세상에서는 사과와 용서를 통해 죄를 해결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명패와 축복을 통해 죄가 없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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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예수: 다시 오는 예수. 기존 종교의 예상과 달리 도둑처럼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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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혜사: 돕는 자, 위로자라는 뜻으로, 성령을 지칭하기도 함. 여기서는 신인(허경영)을 통한 행복의 영역을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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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인내, 연단, 소망: 종교적 성숙의 4단계. 고난을 통해 인내하고, 인내를 통해 연단되며, 연단을 통해 소망을 얻고, 소망이 천국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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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설지공: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반딧불이나 눈빛에 의지하여 학문에 힘쓰는 고사를 의미. 여기서는 과거 종교인들의 뜨거운 신앙심과 노력을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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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주는 특별한 은혜로, 천국에 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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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패: 허경영에게 이름을 올리는 행위로, 천국 비자를 받는 것과 같다고 설명됨
진정한 종교의 단계에 도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종교는 고난, 인내, 연단, 소망을 거쳐 성공(천국)에 이르는 과정이며, 학문이 아닌 영성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 재림 예수의 도래 방식과 기존 종교의 한계
재림 예수는 기존 종교의 예상과 달리 도둑처럼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나타나며, 기존 종교는 이러한 도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렵다.
1.1. 재림 예수의 도둑 같은 도래
재림 예수는 도둑같이 온다
기존 종교인들은 도둑같이 오는 재림 예수를 만날 수 없다
재림 예수는 특정 장소에 나타나지 않는다
교회나 신도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지붕에서 떨어지거나 정신으로 오는 것도 아니다
재림 예수는 사기꾼으로 위장하여 나타난다
처음에는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나타난다
어린아이들은 알아보지만, 어른들은 그를 사기꾼이나 도둑으로 여긴다
재림 예수는 조용한 곳에 도둑처럼 온다
장소적으로 살며시, 시간적으로도 살며시 온다
예수 이후 2천 년 후에 도둑처럼 조용한 곳에 온다
도둑이 있던 자리에 도둑처럼 온다
조선 시대 최고 도둑이 머물던 곳에 도둑처럼 온다
1.2. 나폴레옹의 예언과 재림 예수의 경배 대상화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와 재림 예수의 차이
나폴레옹은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가 나타나면 모두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모두 엎드려 경배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재림 예수는 경배의 대상
신적인 존재인 재림 예수는 환영의 대상이 아닌 경배의 대상이다
기존 종교 시설의 한계
예배당에는 의자가 있어 엎드려 경배할 장소가 없다
이는 형이상학적뿐만 아니라 형이하학적으로도 경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1.3. 기존 종교의 한계와 재림 예수의 박해
기존 종교 안에서는 메시아가 오지 않는다
메시아는 바깥에서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게 나타난다
재림 예수는 사기꾼으로 위장하여 나타난다
어른들은 그를 사기꾼으로 여기지만, 진실한 눈을 가진 사람만이 알아본다
기존 종교에 빠진 자들은 재림 예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기성 종교에 빠진 자들은 재림 예수를 피해 간다
- 종교의 본질과 학문화의 문제점
종교는 고난, 인내, 연단, 소망을 거쳐 성공(천국)에 이르는 과정이며, 학문이 아닌 영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2.1. 예수의 박해와 재림의 의미
예수의 박해 경험
예수가 유대에 나타났을 때 박해를 받았고, 바라바 대신 예수를 죽이라는 요구가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았고, 그렇게 취급할 수밖에 없었다
재림 예수의 능력
재림 예수는 2천 년 후에 도둑처럼 오며, 과거와 미래를 오가고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졌다
2.2. 다신교 시대와 유일신 사상의 등장
다신교 시대의 다양한 신들
예수가 있던 시대에는 전쟁의 신(마르스), 다산의 신(오은 메인), 바다의 신(포세이돈) 등 다양한 신을 섬겼다
12달이 각각 다른 신을 상징하며, 사람들은 최소 10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 생활할 수 있다고 믿었다
로마 시대의 신격화
7월은 시저, 8월은 시저의 양아들 아우구스투스를 신으로 섬겼다
유일신 사상의 등장과 이방인의 반응
예수가 나타나 여호와라는 유일신을 주장하자, 이방인들은 이를 잘 믿지 않았다
현대인의 다신교적 사고
현대인도 무의식적으로 여러 신을 믿는 경향이 있다 (예: 아이를 잘 낳게 해주는 바위, 부자 되는 금고)
재림 예수의 도래로 인한 변화
재림 예수가 오고 나니 기존의 다신교적 믿음이 필요 없어졌다
유럽 사람들이 사용하던 12달의 신들이 종교화되었고, 이는 종교 이전의 상태였다
2.3. 종교의 학문화와 영성의 상실
기독교의 학문화 문제
기독교가 학문화되면서 영생이 사라졌다
과거에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뜨겁게 하나님을 믿었지만, 공부한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신앙의 불이 꺼지고 있다
교수 숫자가 늘어날수록 신자 숫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다
종교의 본질: 고난, 인내, 연단, 소망, 성공
종교는 처절한 경험을 통해 고난을 겪는 것에서 시작된다
고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으며, 연단은 소망을 낳고, 소망은 성공(천국)으로 이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당하면 고난이 즐거움과 선물이 된다
고난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중요성
고난을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면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다
질서의 중요성
사회에는 질서가 존재하며, 고난을 겪고 인내하여 성공한 사람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인간의 가치는 평등하지만, 쓰임받는 가치는 다르며, 질서를 존중해야 한다
종교의 학문화로 인한 영성 상실
종교가 학문으로 변질되면서 본질을 잃어버렸다
미국에서는 종교 박사 학위가 없고 철학 박사 학위만 존재한다
종교는 학문이 아니라 영성이며, 쫄딱 망해 더 이상 운신할 수 없을 때 들리는 메시지를 통해 소통하는 힘이다
글자를 모를 때 기독교가 가장 뜨거웠고, 글자를 알고 나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 종교의 시대적 변화와 현대 종교의 위기
종교는 암송 시대, 필사 시대를 거쳐 검색 시대로 변화했으며, 이러한 변화는 종교의 본질을 약화시키고 위기를 초래한다.
3.1. 종교의 시대적 변천: 암송, 필사, 검색 시대
종교의 학문화로 인한 문제점
종교를 학문으로 보면 모든 것이 망해버린다
암송 시대
종이가 없던 시절, 경전을 통째로 외우는 암송 시대였다
이스라엘 아이들은 토라를 달달 외운다
필사 시대
암송만으로는 부족하여 종이나 돌에 새겨 기록하는 필사 시대가 왔다
검색 시대
현재는 경전을 필사하지 않고 검색하는 검색 시대이다
검색 시대에는 신앙심이 뜨겁지 않고, 핸드폰으로 모든 종교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 종교를 우습게 여긴다
검색 시대의 종교 위기
검색 시대에는 종교가 망하며, 아무도 경전을 읽거나 필사하려 하지 않는다
3.2. 고난 없는 시대와 신인의 도래
고난과 연단이 없는 시대
검색 시대는 고난이나 연단이 없는 시대이다
신인의 도래
종교가 학문으로 변질되어 끝나는 시대에 신인이 온다
과거 기독교의 열정
과거 기독교가 뜨거웠을 때는 할머니들이 한글도 모르면서 새벽 기도를 다녔다
시대 변화에 따른 신앙심 약화
필사 시대가 있었지만, 검색 시대로 변하면서 신앙심이 약해지고 있다
3.3. 형설지공의 정신과 현대의 편리함
형설지공의 의미
옛날에는 반딧불이나 눈빛에 의지하여 공부하는 형설지공의 정신으로 성경을 공부했다
현대의 편리함과 신앙심 약화
지금은 너무 편리해져서 사람들이 기억하려 하지 않고, 형설지공의 정신이 사라졌다
신학교의 변화
과거에는 등록금이 없어 밭을 일구며 어렵게 신학교를 다녔지만, 지금은 시설이 잘 되어 있어 영적인 성장이 어렵다
편해질수록 신앙심이 약해지며, 종교 시대는 끝났다
3.4. 감사와 칭찬, 축복의 중요성
쉽게 얻는 것의 가치 상실
무엇이든 쉽게 이루면 그 가치를 모르게 된다
대중교통에 대한 감사
전철과 같은 대중교통의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은 서민 교통이 잘 되어 있는 유일한 나라이다
노인들이 전철을 무료로 이용하지만, 이에 대한 감사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행복과 복을 짓는 방법
남을 칭찬하는 것이 가장 쉽게 복을 짓는 방법이다
천국에 가려면 축복과 명패가 필요하다
용서와 죄의 해결
이 세상에서는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죄를 해결하는 방법이다
하늘나라에서는 명패와 축복을 통해 죄가 없어진다
This excerpt comes from an interview with Heo Kyung-young on “Heo Kyung-young TV,” where he discusses the evolution of religion and its connection to happiness. He challenges conventional religious views, emphasizing the limitations of traditional faith in the modern “search era” and highlighting the importance of spiritual experience over academic understanding.
The Arrival of the Messiah and the Nature of True Faith
The Messiah’s Incognito Arrival
Heo Kyung-young asserts that the Messiah arrives “like a thief,” meaning unexpectedly and often disguised in a way that challenges established religious norms. This makes it difficult for those entrenched in traditional religious institutions to recognize him. He emphasizes that the Messiah doesn’t come to churches or as a typical believer, but rather appears in an unassuming manner, often initially perceived as a “swindler” or “thief” by adults, while children might be more receptive. This contrarian arrival is a key characteristic of his coming.
그러니까 기존 종교는, 어, 재림 예수가 오면은, 예, 도둑같이 온다고 그랬잖아. 근데 그 사람들은 도둑같이 오는 재림 예수를 만날 수가 없어. 도둑같이 오니까. 어디서 오냐? 교회로 오는 게 아니야. 신도로 찾아오는 게 아니야. 어, 근데 도둑처럼 와. 그러니까 사기꾼이라 소리를 듣고 오는 거야, 처음에. 어, 알 수 없게 도둑으로 위장해 가 온단 말이야. 그러니까 어린애들은 좋아하는데, 어른들은 꾼이다, 도둑이다, 이 말, 말하면은 그 자가 메시아요. 아, 그 자가 재림 예수야. 도둑처럼이라는 건 도둑맞 같이 오는 거야. 재림에 올 때는 도둑처럼 이렇게 조용한 곳에 오는 거야. 꼭 바깥에서 도둑처럼, 음, 네, 나타나서 아무도 모르게, 예, 나타나는 거야. 그게 내야. 아, 근데 사기꾼으로 위장을 해가 나타나. “저 사람이 가짜야, 저 사람이 나쁜 놈이야.” 이렇게 위장이 돼 있어야 진실한 눈을 가진 사람은 알아보지, 일반 사람은 가는 거야.
So, traditional religions say that when the Second Coming of Jesus comes, he will come like a thief. But those people cannot meet the Second Coming of Jesus who comes like a thief. Because he comes like a thief. Where does he come from? He doesn’t come to church. He doesn’t come as a believer. But he comes like a thief. So, at first, he is called a swindler. He comes disguised as a thief in an unknown way. So, children like him, but adults say he’s a trickster, a thief. If they say that, that person is the Messiah. Ah, that person is the Second Coming of Jesus. “Like a thief” means he comes like a thief. When he comes for the Second Coming, he comes to a quiet place like a thief. He definitely appears from outside like a thief, without anyone knowing. That’s me. Ah, but he appears disguised as a swindler. “That person is fake, that person is a bad guy.” He has to be disguised like that for those with true eyes to recognize him; ordinary people just pass by.
Worship vs. Welcome: The Divine Distinction
Heo Kyung-young draws a sharp distinction between how people react to great historical figures like Buddha, Confucius, or Socrates, and how they would react to the Second Coming of Jesus. While the former would be “welcomed” with standing ovations, the latter would command “worship,” requiring people to prostrate themselves. This highlights the divine, spiritual nature of the Messiah as an object of reverence, not just admiration.
그 나폴레옹이 뭐라 그러냐면,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이 지상에, 이 방에 다시 나타난다면, 예, 이 왕궁에 나타난다면, 그지, 자기들이 있는 그 방에, 예수는, 아,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나타나면 전부 환영한다, 이 말, 서서 환영. 근데 재림 예수가 이 방안에 나타나면 전부 엎드려서 경배를 하게 된다, 그게 차이야. 어, 그러니까 석가나 공자나 무슨, 소태사나 이런 사람이 나타날 때는 전부 환영을 하지마, 재림 예수가 나타날 때는 뭐 해야 된다? 경배. 전부 땅바닥에 엎드려서 경배를 해야 된다, 그건 하나님의 화신이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신적인 거, 영적인 것은 경배 대상이야, 환영 대상이 아니야.
Napoleon said that if Sakyamuni, Confucius, or Socrates were to reappear on this earth, in this room, in this palace, in their own room, everyone would welcome them, standing and welcoming them. But if the Second Coming of Jesus were to appear in this room, everyone would prostrate themselves and worship him; that’s the difference. So, when Sakyamuni, Confucius, or Sot’aesa appear, everyone welcomes them, but when the Second Coming of Jesus appears, what should they do? Worship. Everyone must prostrate themselves on the ground and worship him; that means he is an incarnation of God. So, something divine, something spiritual, is an object of worship, not an object of welcome.
The End of the Religious Era: From Polytheism to Monotheism to the “Search Era”
Heo Kyung-young traces the evolution of religious belief from ancient polytheism, where people worshipped multiple gods for different aspects of life (e.g., war, fertility, sea), to the rise of monotheism with figures like Jesus. He argues that this era is now giving way to a new phase, the “search era,” where religion is becoming academicized and easily accessible through technology. This shift, he believes, is leading to the decline of traditional faith and the need for a new spiritual paradigm.
옛날에는 다 신겨야, 다신교. 예수가 내가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신을 섬겨. 전쟁 태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을 섬겨야 살아와. 저, 그렇게 믿는 거야. 최소한 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 그게 문화인이, 어, 타고 갈 때는 포세이돈 신을 섬겨야 돼. 바다여, 어, 그래, 안 그래? 어, 그럼 안 섬기는 놈은 죽는다고 생각해. 불안한 거야. 근데 내가 이제 오고 나니까 그게 다 필요가 없어. 다 정결해야 돼. 그게 종교 이전 상태야. 그 초정 종교가 오기 전에는 그런 종교 피라미드도 필요하고 다 이게 다 그거하고 영관이 있어. 그래서 기선 기성 종교는 어, 기독교는 어, 학문화 되었어. 영생이 없는 거야. 종교가 네, 학문화 됐단 말이야. 신학교가네, 옛날에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들이 장로가 되고, 이 사람들은 뜨거웠어. 글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무지무지하게 불이 붙어 가지고 막 기독교가 퍼져 나간 거야. 근데 공부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불이 꺼지고 있는 거야. 교수들이 기독교 교수들이 나타나면서 불이 꺼지는 거야. 교수 숫자가 늘어난 만큼 신자 숫자가 줄어들어. 기독교를 학문화 해 버리는 거야. 종교는 학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끝이지, 그거. 그 신인이 오는 시대가 온 거야.
In the past, it was polytheism, polytheism. When I, Jesus, was there, everyone worshipped various gods. When going to war, you had to worship the god of war to survive. That’s what they believed. You had to worship at least a certain number of gods to be a cultured person; when riding, you had to worship the god Poseidon. The sea, right? If you didn’t worship, you thought you would die. It was unsettling. But now that I’ve come, all that is unnecessary. Everything must be purified. That was the state before religion. Before the first religion came, such religious pyramids were necessary, and all of this was connected to that. So, established religions, Christianity, became academicized. There is no eternal life. Religion, yes, became academicized. In seminaries, people who hadn’t even finished elementary school became elders in the past, and these people were fervent. When people who barely knew how to read believed in God, Christianity spread like wildfire with immense passion. But as educated people began to appear, the fire started to die out. As Christian professors appeared, the fire died out. The number of believers decreased as the number of professors increased. They academicized Christianity. Religion is over because it has entered academia. The era of the divine human has come.
The Power of Suffering and Spiritual Experience
Heo Kyung-young argues that true religion is born from suffering, not from academic study. He outlines a process: suffering leads to patience, patience leads to refinement (연단), and refinement leads to hope, which ultimately leads to success or “heaven.” He criticizes the academicization of religion, stating that it extinguishes the spiritual fire that once fueled faith among the uneducated. He emphasizes that spiritual communication and the power of the divine are found in moments of utter despair, not in intellectual understanding.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야. 처절하게 암에 걸레가 다 주고 가다가 돈 다 떨어지고 배고프고 이럴 때 스스로 찾아가서, 그래 안 그래? 어, 처절한 경험에 의해서 고난이, 그러니까 기독교는 뭐냐면은, 예, 한 마디로서 종교는, 종교를 만들어내는, 종교는 만들어내는 게 뭐, 내가 옛날에 강의해 줬지? 고난, 고난. 이 고난은, 고난은 뭘 낳는다 그랬어? 고난, 연단. 연단. 고난은 연단을 낳지. 연단, 그 인내를 먼저 낳는 거야. 인내가 연단을 낳지. 인내가 없으면 연단이, 연단 단계 안 가네. 연단은 뭘 줘? 소망. 소망을 주지. 소망을 준다, 이 말이야, 그러면 이 소망이 성공, 물을 익으면서 성공이 되지, 그래서 이루어지는 거야, 그지? 그러면 고난이 내고, 인내가 연단을 놓고, 연단이 소망이 되고, 소망이 성공을 가는 거거든. 그 모든 종교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소망, 성공이 천국이야. 종교는 학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끝이지, 그거. 그 신인이 오는 시대가 온 거야. 종교는 학문이 아니야. 종교는 영성이라. 그래서 우리 국민이 글자를 모를 때가 제일 기독교가 뜨거웠어, 맞나, 맞나? 글자를 모를 때 뜨거웠지. 근데 글자를 알고 나서부터 기독교가 쇠퇴하는 거야. 종교를 학문으로 봐 버리는 거야.
Christianity is not like that. It’s when you’re desperately sick with cancer, losing everything, running out of money, and starving, that you seek it out yourself, right? It’s through desperate experience that suffering, so what is Christianity? In a word, religion, what creates religion, I lectured on this before, right? Suffering, suffering. What does this suffering, suffering, give birth to? Suffering, refinement. Refinement. Suffering gives birth to refinement. Refinement, it first gives birth to patience. Patience gives birth to refinement. Without patience, there is no refinement, it doesn’t go to the refinement stage. What does refinement give? Hope. It gives hope. It gives hope, that is, this hope matures into success, and then it is achieved, right? So, suffering comes, patience leads to refinement, refinement becomes hope, and hope leads to success. All religions go through this process, and hope, success, is heaven. Religion is over because it has entered academia. The era of the divine human has come. Religion is not academia. Religion is spirituality. So, when our people were illiterate, Christianity was at its hottest, right? It was hot when people were illiterate. But after people learned to read, Christianity began to decline. They started to see religion as academia.
The Decline of Faith in the “Search Era”
From Memorization to Search: The Loss of Deep Faith
Heo Kyung-young describes the historical progression of religious engagement: from the “memorization era” (암송 시대) where scriptures were committed to memory due to the lack of written materials, to the “transcription era” (필사 시대) where texts were copied, and finally to the current “search era” (검색 시대). He argues that while the memorization era fostered fervent faith, the search era, with its instant access to information via technology, leads to a superficial understanding and a decline in genuine spiritual connection. People no longer internalize religious teachings, viewing them as mere information to be looked up.
우리의 모든 종교가 전해 오는 게, 예, 처음에는, 처음에는 암송 시대가 있었어. 모든 종교에 종이가 없었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도 토라를 외우지. 경전을 통째로 외워 버려. 이스라엘 애들은 경전을 달달달 외워, 토라를 외워. 그러니까 암송 시대야, 맞아, 안 맞아? 그다음에는 뭐야? 필사 시대. 지금은 뭐요? 지금은 종교가 뭘로 바뀌어, 이렇게 바뀌었어. 검색 시대야. 지금은 경전을 필사 안 해. 검색하면 나와, 아 그래, 그래. 암송 시대와 검색 시대가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은, 암송하던 시대는 신앙심이 뜨거워, 아, 무식한 사람들이고, 예, 딱 암송한 그대로 불이 뜨거워요. 검색 시대는 “어머, 핸드폰에 있어. 기독교 불 검색하면 나와.” 경제 구절이 뭐 머리에 들어올까? 안 들어옵니다. 들어 있는 걸 뭘로 복잡하게 머리에 집어넣어, 그냥 검색해서 보면 되는데, 이걸 우습게 봐. 이걸 우습게, 종교를 우습게 하는 거야. 이제 “아이, 내 핸드폰 안에 모든 종교가 다 들어 있어.” 이러니까 소유로 해버린 거야. 종교는 없어지는 거야.
All our religions have been passed down, yes, first, there was an era of memorization. There was no paper for any religion. So, even now in Israel, they memorize the Torah. They memorize the entire scripture. Israeli children memorize the Torah by heart. So, it’s the era of memorization, right? What’s next? The era of transcription. What about now? Now, religion has changed like this. It’s the search era. Now, they don’t transcribe scriptures. You can find it by searching, oh, right. The difference between the memorization era and the search era is that in the memorization era, faith was fervent, oh, among uneducated people, yes, the fire was hot exactly as they memorized it. In the search era, “Oh, it’s on my phone. If I search for ‘Christianity fire,’ it comes up.” Will the economic verses come into your head? No, they won’t. Why bother putting what’s already there into your head when you can just search and see it? They take it lightly. They take religion lightly. Now, “Oh, all religions are in my phone.” So, they’ve made it about possession. Religion is disappearing.
The Value of Hardship in Spiritual Growth
Heo Kyung-young laments the decline of “Hyungseoljigong” (형설지공) – the dedication to study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like using fireflies or snow reflection for light. He argues that this kind of hardship, which was common for students and early religious figures, fostered a deep spiritual connection and strong faith. Modern convenience, with readily available resources and comfortable seminaries, has weakened this spiritual resolve, making it harder for people to experience profound spiritual growth.
옛날에는 공부를 성경을 볼 때 사람들이 전등 불로 보나, 호롱 불로 봤지? 예, 그지? 그러면 호롱 불로 봤다는 그 자체가 뭐야? 우리가 다잡, 호롱 불로 봤다는 게 이게 반딧불 형자야. 형설지공이라는 거는 반딧불로 공부한 거야. 눈하고 반딧불로, 네. 눈이 왔을 때 눈에 비쳐 가지고 공부를 했어. 또 반딧불을 모아 가지고 벌레를, 개똥 벌레, 개똥 벌레를 모아 가지고 그게 불이 비이 나잖아. 그걸 보고 책을 비쳐서 공부를 했단 말이야. 아, 그 무, 제가 가난한 공부를 한 거지, 옛날에 형설, 형설지공. 어, 이렇게 반딧불과 눈, 흰 색깔이 흰 색깔과 이걸로 가지고 눈빛을, 눈이 많이 왔을 때 눈빛으로 글자가 보이는 거네. 그렇게 공부를 한 사람들이 항상 암송을 한 거야. 아, 그게 옛날 성경 공부한 사람들이야. 근데 얼마 기가 막혀, 그지? 근데 지금은 너무 편리해진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억을 하지 않는다. 형설지공 해야, 이거는 이제 과학 한 사람들을 형설지공 했다 그래, 네. 어, 맨손으로 일어났다, 형설지공, 이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 이 말이야. 갈수록 신앙심이 약해질 수밖에, 편해지면 약해지는 거야. 종교 시대가 끝났어.
In the past, when people studied the Bible, did they use electric lights or oil lamps? Yes, right? So, what does it mean that they used oil lamps? We all know that using an oil lamp refers to the character for firefly (형). Hyungseoljigong (형설지공) means studying by firefly light. With snow and fireflies, yes. When it snowed, they studied by the light reflected from the snow. They also gathered fireflies, dung beetles, and the light from them shone. They used that light to illuminate books and study. Ah, that’s the kind of poor study I’m talking about, Hyungseoljigong from the past. Oh, with fireflies and snow, the white color, and this, the light from the snow, when there was a lot of snow, the letters were visible by the snowlight. People who studied like that always memorized. Ah, those were the people who studied the Bible in the past. But how amazing, right? But now it’s too convenient. So, people don’t remember. Hyungseoljigong, this is what people who studied science did, yes. Oh, they started from scratch, Hyungseoljigong, such people no longer exist. Faith is bound to weaken as time goes on; it weakens when things become convenient. The era of religion is over.
The Path to True Happiness and Heavenly Blessings
Gratitude and Praise: The Easiest Way to Receive Blessings
Heo Kyung-young emphasizes that gratitude and praising others are the easiest ways to receive blessings on Earth. He criticizes the lack of appreciation for public services like subways, urging people to acknowledge the efforts of those who created them. He contrasts this earthly method of receiving blessings with the spiritual path to heaven, which requires “blessing” (축복) and “nameplate” (명패) – a concept unique to his teachings.
우리는 뭐든지 쉽게 이루면 안 되네, 쉽게 이루면 세상에 전철 타 가지고 고마워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 나는 왜 자가용 없이 전철 타고 요러고 앉아 있어, 네? 그래, 안 그래? 그 전철이 매연도 안 나오고 남한테 매연도 안 마시게 하고, 네, 남들과 함께 같이 가는 전철의 고마움을 알아야 돼. 세계에서 이 우리나라 전철을 이렇게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거, 참 공무원들이 그래도 잘했다, 네, 마을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언제나 남에게, 남을 칭찬하면 행복이, 네, 복이 그냥 굴러들어와. 제일 복짓기 쉬운 게 남 칭찬, 제일 죄짓기 쉬운 게 남 욕하는 거라.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는 방법은 남 칭찬하는 거야. 근데 천국에서, 천국 가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축복, 천국 축복, 천국을 가, 복을 받으려면 뭐 해야 돼? 축복, 명패. 그게 차이지.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기 쉬운 게 칭찬이야. 그러나 천국 갈 사람은, 영적인 인간은, 네, 칭찬만 해서 되는 게 아니야. 뭘 해야 되나? 축복. 축복과 명패 해야 비자가 나와.
We shouldn’t achieve anything too easily; if we do, no one appreciates taking the subway in this world. “Why am I sitting here taking the subway without a car?” Right? We should appreciate the subway that doesn’t emit exhaust fumes, doesn’t make others breathe exhaust fumes, and allows us to go together with others. We should think that the civil servants who built this subway system in our country, among all the countries in the world, did a good job. We should always praise others; then happiness, blessings, will just roll in. The easiest way to earn blessings is to praise others, and the easiest way to commit sins is to badmouth others. On this earth, the easiest way to receive blessings is to praise others. But in heaven, if you want to go to heaven, to receive the greatest blessing, the heavenly blessing, what should you do? Blessing, nameplate. That’s the difference. On this earth, the easiest way to receive blessings is praise. However, for those who want to go to heaven, for spiritual beings, yes, praise alone is not enough. What should they do? Blessing. You need blessing and a nameplate to get a visa.
Forgiveness vs. Nameplate: Heavenly Justice
Heo Kyung-young differentiates between earthly forgiveness and heavenly justice. On Earth, apologizing and seeking forgiveness can resolve sins. However, in the spiritual realm, simply asking for forgiveness does not erase sins. Instead, “nameplate” (명패) and “blessing” (축복) are the means by which sins are eradicated and a “visa” to heaven is obtained. This highlights a unique aspect of his spiritual doctrine, where specific actions are required for divine absolution.
또 이 세상에서는 남한테 용서하는 게 제일, 남한테 죄진 것을 해결하는 게 빠른 게 미안하게 사과하는 거잖아. 용서를 비는 거잖아. 근데 저 세상 하늘나라는 용서 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 명패. 아, 축복하면 다 없어져 버려. 알았지? 항상 명패와 축복이 중요한 거예요.
Also, in this world, the fastest way to resolve sins committed against others is to apologize and ask for forgiveness, right? To beg for forgiveness. But in the heavenly realm, sins don’t disappear just by asking for forgiveness. Nameplate. Ah, if you bless, they all disappear. Understood? Nameplate and blessing are always important.
종교와 행복: 기존 종교의 한계와 재림 예수의 도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종교와 행복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보다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네 개 국가인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국기에는 십자가가 들어가 있는 기독교 국가이기도 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종교로 인해 정신적인 행복을 얻었지만, 아직 보혜사로 오신 신인님을 통한 행복의 영역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질문은 종교와 행복에 대한 신인님의 고견이 궁금하며, 신인님을 통한 행복은 기존 종교를 통한 행복과는 어떻게 다른지 묻습니다.
기존 종교는 재림 예수가 도둑같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둑같이 오는 재림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도둑같이 오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오느냐? 교회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신도로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정신으로 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도둑처럼 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고 오는 것입니다. 알 수 없게 도둑으로 위장하여 온단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꾼이다’, ‘도둑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자가 바로 메시아이고, 그 자가 재림 예수입니다. ‘도둑처럼’이라는 것은 도둑같이 오는 것입니다. 장소적으로 살며시 오지만, 시간적으로도 살며시 옵니다. 2000년 이후에 오지만, 예수님이 간 이후에 내가 오는 것입니다. 재림할 때는 도둑처럼 이렇게 조용한 곳에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도둑, 인격자가 있던 자리입니다. 여기 임 씨들이 많습니다. 배우 탤런트 임 누구도 있습니다. 여기 임동에 많이 삽니다. 이 임금정 후손들이, 임정이가 실체 머무르는 곳이 돌고기 아닙니까? 여기가 조선시대 때 최고 도둑이 머물던 곳입니다. 여기가 성지입니다. 여기에 도둑처럼 왔다니까, 도둑이 있던 자리에 온 것입니다. 실제 도둑이 도둑처럼 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위장하고 온단 말입니다.
나폴레옹의 예언: 재림 예수에 대한 경배
나폴레옹이 뭐라고 했냐면,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이 지상에, 이 방에 다시 나타난다면, 이 왕궁에 나타난다면, 자기들이 있는 그 방에 나타나면 전부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서서 환영합니다. 그런데 재림 예수가 이 방안에 나타나면 전부 엎드려서 경배를 하게 된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석가나 공자나 소태사 같은 사람이 나타날 때는 전부 환영하지만, 재림 예수가 나타날 때는 경배해야 합니다. 전부 땅바닥에 엎드려서 경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화신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신적인 것, 영적인 것은 경배 대상이지, 환영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이 종교는 내가 나타났는데, 예배당에 엎드릴 데가 없습니다. 전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무대에서는 설 수 있지만, 엎드릴 수는 없습니다. 경배할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의자에 전부 앉아서 땅바닥에 엎드릴 수가 있습니까? 못 합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경배할 장소가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형이하학적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형이상학적으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이해가 갑니까?
기성 종교의 한계와 메시아의 위장술
그래서 기성 종교 안에서는 메시아가 오지 않습니다. 꼭 바깥에서 도둑처럼 나타나서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입니다. 그런데 사기꾼으로 위장하여 나타납니다. 어른들이 “저 사람 뭐 성범이야, 사기꾼이야”라고 말합니다. 그 자가 실제 위장을 하고 지금 위장술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뭐 성이 뭔지, 사 이게 전부 위장되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저 사람이 가짜야, 저 사람이 나쁜 놈이야” 이렇게 위장이 되어 있어야 진실한 눈을 가진 사람은 알아보지, 일반 사람은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기성 종교에 빠진 자들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로 있을 때 유대에 나타났을 때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바라바를 내보내고 예수는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바나바나 바울이나 예수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바나바도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는 그들이 전혀 예수를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당연히 그 사람들은 예수를 그렇게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다음에 올 때는, 재림할 때는 2천 년 후에 도둑처럼 온다고 했습니다. 내가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의 과거로 가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미래로 가고, 비통을 합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람도 살리고, 광채 들어가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 축복 레벨 전부 실제입니다.
다신교 시대와 유일신 시대의 변화
옛날에는 다신교였습니다. 예수님이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신을 섬겼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을 섬겨야 살아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전쟁의 신이 무엇입니까? 마치, March. 마치가 전쟁의 신입니다. 오은 메인은 무엇입니까? 다산의 신입니다. 임신을 하려면 다산의 신도 섬겨야 합니다. 최소한 10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 그것이 문화인입니다. 배를 타고 갈 때는 포세이돈 신을 섬겨야 합니다. 바다의 신. 안 섬기는 놈은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안한 것입니다. 가는 데마다 전쟁에 갈 때는 마치를 섬기고, 애를 낳을 때는 메이를 섬깁니다. 다산의 신, 애를 낳게 해주는 신입니다.
이 12달이 전부 신입니다. 12개 신을 다 외워야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양면인, 제요리 양면시계신상, 악을 자유자재하는 신이란 말입니다. 그것을 자유 신이라고 합니다. 페브는 혁명의 신입니다. 마치는 군대 신, 전쟁의 신입니다. 전쟁 때 도와주는 신입니다. 에프는 사랑의 신입니다. 메이는 번식의 신, 주는 결혼의 신입니다. 여자를 만나려면 주의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줄라이는 무엇입니까? 줄라이는 바로 세계적인 로마의 시저, 시저의 신입니다. 시저 장군을 신으로 섬긴 것입니다. 어거스트, 8월 달, 시저의 양아들, 아구스트. 그가, 그러니까 아버지는 7월 달, 아들은 8월 달, 둘이 가져버린 것입니다. 7월하고 8월이 커져 버린 것입니다. 계절의 신입니다. 옥타는 자의 신, 옥타는 남자의 신, 노는 전쟁의 신입니다. 디는 평화의 신, 12월. 이렇게 신을 적어도 10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예수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이렇게 하니까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야도 하나의 신입니다, 여호와. 그 여호와는 신인데 전체적인 신이라고 사람들이 잘 안 믿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은 그 종합 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방인들은 노아진 신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저 가서 아이 잘 낳는 바위에 가서 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저거 만지면 애 잘 낳는다고 가서 만집니다. 이러고 또 부자 된다면 그 부자 되는 금고에 가서 만집니다. 우리도 마음속에 10가지 이상의 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고 나니까 그게 다 필요가 없습니다. 다 정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12달이 가지의 신입니다. 유럽 사람이 많이 사용한 신들입니다. 그것이 종교화된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 이전 상태입니다. 초정 종교가 오기 전에는 그런 종교 피라미드도 필요하고 다 이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종교의 학문화와 영성의 상실
신께서도 예전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보이지 않게 도둑처럼 오셨다는 것은 먼저 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잎이 무성할 때는 서로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다 보입니다. 서서히 그러면서 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고 겨울이 되면 싸늘해집니다. 그것이 이제 내가 올 때가 된 것입니다. 계절을 보면 이제 지구 자체가 겨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입니다.
기성 종교는, 기독교는 학문화되었습니다.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종교가 학문화되었습니다. 신학교가 생겼습니다. 옛날에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들이 장로가 되고, 이 사람들은 뜨거웠습니다. 글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무지무지하게 불이 붙어 가지고 기독교가 퍼져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불이 꺼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수들이, 기독교 교수들이 나타나면서 불이 꺼지는 것입니다. 교수 숫자가 늘어난 만큼 신자 숫자가 줄어듭니다. 기독교를 학문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방송을 통해서든 뭐든.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처절하게 암에 걸려 다 죽어가다가 돈 다 떨어지고 배고플 때 스스로 찾아가서, 처절한 경험에 의해서 고난이, 그러니까 기독교는 한마디로 종교는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이냐면, 내가 옛날에 강의해 줬듯이 고난입니다.
고난, 인내, 연단, 소망, 성공의 종교적 과정
고난은 무엇을 낳는다고 했습니까? 고난, 연단. 고난은 연단을 낳습니다. 연단하기 전에 고난을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무엇을 낳습니까? 연단을 낳습니다. 인내가 없으면 연단 단계에 가지 않습니다. 고난 다음에 인내를 보는 것입니다. 인내한 자에게 연단의 기회를 줍니다. 연단도 기회입니다. 연단이 기회를 주는 이것도 선물입니다. 연단은 무엇을 줍니까? 소망을 줍니다. 소망을 줍니다. 그러면 이 소망이 물을 익으면서 성공이 되고, 그래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연단을 낳고, 연단이 소망이 되고, 소망이 성공으로 가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소망, 성공이 천국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천국, 지상에서는 성공인데, 이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천국 가는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연단을 이기고,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인내를 하는 것입니다.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힘이 들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고난이. 그럴 때는 선물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구석이 왜 이렇게 안 하네? 쟤는 뭐 벤츠 타고 다니는데” 요런 시기심이 나고, 고난을 소망이나 인내, 연단 이런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그냥 고난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일반 인간, “나는 왜 이 난이와, 저 친구는 잘 나가는데” 이렇게 불평등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불평등을 해소하려 군대에 가니깐 육군 대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왜 불평등합니까? 사람은 똑같은 거 아니냐? 넌 뭔데 육군 대장이냐? 우리 계급장 필요 없어, 이러면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통제가 안 됩니다. 육군 대장한테 “야, 이 새끼야, 너하고 내 갈면 뭐, 너 계급장 돼” 이러면 이 전쟁이 되겠습니까? “야, 쳐들어가” 아무도 안 갑니다. “야, 누구나 가, 이 새끼” 이러면 이등병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질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존재 질서는 명보다 상위 개념이 있습니다. 그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고난을 뺐다가 보는 사람은 “질서를, 저 새끼가 뭔데?” 재벌이 다 이거 거쳐서 재벌된 사람입니다. 인내해 가지고 간신히 된 사람들 아닙니까? 선생부터, 그걸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고난을 왜 내면 고난 받아야 돼?” 이러는 것입니다. “나는 왜 내가 보천 서고 있고, 육군 대장 새끼는 잠자고 있냐?” 이러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래서 질서는 굉장히 높은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동을 갖다 대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당신 육군 대장이고 나하고 뭐 사람이 똑같은데, 평등한데, 왜 너는 계급장을 그렇게 달고 있냐?” 이러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당신 왜 월급이 많아? 너 왜 5급이야? 나는 9급인데?”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평등하지만, 그 인간을 쓰임받는 가치는 또 다릅니다. 무당이나 가서 핑 기타가 조정실에 들어가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조정사 딱 생겨져 있습니다, 이미. 그래서 이런 것이 종교가 지금 그걸 잃어버린 것입니다. 종교가 말하자면 아무나 나타나서 지가 뭐 합니다.
진짜가 오면 가짜가 판치는 세상
근데 내가 진짜에게 오면 가짜들이 판을 칩니다. 유대교가 판을 쳤습니다. 저주받는 것을 봤지 않습니까? 예수 죽고 나서 2천 년간 나라가 없어지고, 지금도 저주받고 있습니다. 예수 죽인 자들입니다. 나를 죽인 자들입니다. 지금도 그런 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종교는 이런 고난이 종교인데, 이것을 학문으로 종교를 배우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학문으로 종교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 망해 가지고 자빠져 있는데, 갑자기 음성이 들립니다. “야, 네가 잃어버린 게 그게 잃어버린 거냐? 네 몸이 아직 살아 있지 않냐? 네 몸이 진짜 재산이야. 일어나라”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내 몸이 멀쩡해 가지고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네 몸이 바로 화학 반응만 잘 일으키면 전 세계의 물질을 저다 나할 수도 있습니다. 그거 왜 모릅니까? 네가 화학하는 것을 잘못하니까 지금 네가 그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종교가 사라졌습니다. 종교를 학문으로 만들어서. 미국은 종교로서 박사 학위가 없습니다. 철학으로 박사 학위입니다. 필라소피입니다. 종교로는 박사 학위가 없습니다. 종교는 차라리 쫄딱 망한 장사하는 무식한 초등학교도 안 나온 할머니가 더 박사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연단을 겪었으니까. 인내와 연단, 이런 것이 합쳐져서 이것이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학문 가지고는 들어가서 못 하는 것입니다. 학문으로 달달 외웠는데 영적으로 소통이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쫄딱 망해 가지고 더 이상 운신할 수 없을 때 소리가 들리고, 그 메시지가 탁 탁 소통이 되는, 그것이 종교의 힘입니다. 그것이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영성이 종교는 학문이 아닙니다. 종교는 영성입니다.
종교의 시대 변화: 암송, 필사, 검색 시대
우리 국민이 글자를 모를 때가 제일 기독교가 뜨거웠습니다. 글자를 모를 때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글자를 알고 나서부터 기독교가 쇠퇴하는 것입니다. 이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종교를 학문으로 봐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책이 많이 나오니까, 다양한 책이 있으니까 종교가 학문이 돼 버립니다. 귀한 줄을 모릅니다. 우리가 일종에 종교가 학문이 돼 버리면 어떤 현상이 있냐면 다 망해 버립니다. 종교가 학문이 될 때는 어떤 것이 나타날까? 종교를 학문으로 볼 때는 옛날에 우리의 모든 종교가 전해 오는 것이 처음에는 암송 시대가 있었습니다. 모든 종교에 종이가 없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도 토라를 외웁니다. 애들한테 외우라고 합니다. 이것을 기록을 못 합니다. 외워야 합니다. 경전을 통째로 외워 버립니다. 이스라엘 애들은 경전을 달달달 외웁니다, 토라를 외웁니다. 그러니까 암송 시대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맨날 암송만 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다음에는 무슨 시대가 옵니까? 필사 시대입니다. 뭐 급이고 종이 같은데 나무 돌 같은데 새겨, 먼 그래 탁본을 뜹니다.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적어 가지고 전했습니다. 종이가 귀하니까. 필사. 지금은 무엇입니까? 지금은 종교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검색 시대입니다. 지금은 경전을 필사하지 않습니다. 검색하면 나옵니다. 암송 시대와 검색 시대가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은, 암송하던 시대는 신앙심이 뜨겁습니다. 무식한 사람들이고, 딱 암송한 그대로 불이 뜨겁습니다. 검색 시대는 “어머, 핸드폰에 있어. 기독교 불 검색하면 나와.” 경제 구절이 머리에 들어올까요? 안 들어옵니다. 들어 있는 것을 뭘로 복잡하게 머리에 집어넣습니까? 그냥 검색해서 보면 되는데, 이것을 우습게 봅니다. 이것을 우습게, 종교를 우습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이, 내 핸드폰 안에 모든 종교가 다 들어 있어.” 이러니까 소유로 해버린 것입니다. 대장경 만약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됩니까? 개판된 것입니다. 종교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형설지공과 현대의 편리함
그래서 우리는 암송 시대는 옛날에 한문 책을 막 “계사 상국 이으로 풍계 성인 시장하여 조자이지 수진이 치구가 예법이 장 공 역지 고성지 소개 자식 금수 기비고 물 소 천자는 유관 자는 불가라 우 자 불가 원 개라 폐 하복 총자 소 기가이 조선 선자 자신 계 선 자” 이것을 하루 종일 외워야 했습니다. 책을, 한문 책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암송을 해야 했습니다. 종이가 없는데, 그것을 어디다 기록해 놓습니까? 글자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한글도 없을 때. 한문 배울 때 사람들입니다. 그거 다 암송한 것입니다. “아비 부, 이게 아비 본가 보다.” 이러지 뭐, 어떻 쓸 데가 있습니까? 책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이렇게 기로 져 버린 것입니다. 이때는 노다지 암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이 참 고은 것입니다. 애로사이트 몸에 배어 버립니다. 요새 성경 그렇게 안 합니다. 안 하지 않습니까? 검색하면 되니까. 그래서 이것을 검색 시대라고 합니다. 종교가 검색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종교가 가는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도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안 하지 않습니까? 필사합니까? 100명, 천 명에 한 명 정도 필사하는 사람 있습니다. 핸드폰 가진 애들이, “엄마, 그 뭘 그렇게 쓰고 앉아 있어? 핸드폰 봐 봐. 탁 치면 나오는데.” 종교의 흐름이 이렇게 와 버리니까 이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검색 시대가 지금 종교의 시대입니다. 왜 망하느냐? 검색하면 아무나 치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석가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는 고난이나 연단 같은 것이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는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학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끝입니다. 그 신인이 오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내가 왔고, 내가 알아듣기 쉽게 여러분한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굉장히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에는 전도를 안 해도 그냥 개같이 전도가 됩니다. 옛날에 기독교 뜨거울 때는 할머니들이 한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교회 가서 새벽 기도 하러 다녔습니다, 할머니들이. 그런데 지금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점점 없어지고 다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인간들이 올라가니까. 필사도 제법 했습니다, 옛날에. 경전 같은 거 많이 적었습니다, 옛날에. 엄마들이 이것 암송이 안 되니까 필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이제 검색 시대로 시대 변천사가 이렇게 바뀝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냥 막연히 종교가 그런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종교의 흐름입니다. 종교 왜 망하느냐? 검색 시대에 필요할 때 보는 것입니다. 머리에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에 들어가고, 이제 이해가 가고, 머리에 놓고 가슴에도 놓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슴에도 들어갑니다.
우리는 옛날에 형설지공. 옛날에는 공부를 성경을 볼 때 사람들이 전등 불로 보지 않고, 호롱 불로 봤습니다. 호롱 불로 봤다는 그 자체가 무엇입니까? 반딧불 형자입니다. 반딧불이 형자. 맞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것은 무슨 자입니까? 눈 설자입니다. 형설지공. 형설지공이라는 것은 반딧불로 공부한 것입니다. 눈하고 반딧불로. 눈이 왔을 때 눈에 비쳐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다. 또 반딧불을 모아 가지고 벌레를, 개똥 벌레, 개똥 벌레를 모아 가지고 그것이 불이 비이 나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고 책을 비쳐서 공부를 했습니다. 가난한 공부를 한 것입니다, 옛날에 형설지공. 많이 들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반딧불과 눈, 흰 색깔이 흰 색깔과 이것으로 가지고 눈빛을, 눈이 많이 왔을 때 눈빛으로 글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한 사람들이 항상 암송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옛날 성경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런데 지금은 너무 편리해진 것입니다. 탕 걸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억을 하지 않습니다. 형설지공 해야, 이것은 이제 과학 한 사람들을 형설지공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고했다고 합니다. 맨손으로 일어났다, 형설지공, 이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신학교 가면서, 신학교를 가도 그냥 밭도 굶고 다녔는데 지금은 시설이 잘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영적으로 될까요? 안 되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등록금이 없어서 밭을 하면서 간신히 등록금을 만들고 이렇게 했을 때 그 공부가 기가 막힌 것입니다. 영적으로, “아이고 하나님, 제가 이번에 등록금이 안 되는데 어떻게 이 신학교를 짓고 만들 수도 없고 밥을 굶으면서 해도 잘 안 됩니다. 알아봐도 해 봐요. 이게 얼마 안 되는데 이 신학교 떨어지면 학교도 못 다니면 큰일나는데 바깥도 없어요.” 그런데도 신학교 등록금을 만들어서 갖다 내는 그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그냥 형설지공이 일래 가면서, 초초 하나 가지고 겨 가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반딧불은 없으니까. 그래도 옛날 사람들은 했습니다. 갈수록 신앙심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편해지면 약해지는 것입니다. 종교 시대가 끝났습니다.
감사와 칭찬, 그리고 천국 가는 길
내가 오늘 중요한 이야기는 다 해 줬습니다. 정말 귀중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뭐든지 쉽게 이루면 안 됩니다. 쉽게 이루면 세상에 전철 타 가지고 고마워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왜 자가용 없이 전철 타고 요러고 앉아 있어?” 전철이 매연도 안 나오고 남한테 매연도 안 마시게 하고, 남들과 함께 같이 가는 전철의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전철을 이렇게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것, 참 공무원들이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철 타면서 “공무원 이런 새끼들” 뭐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편해지니까, 전철을 만들어낸 그 공무원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정치인들이 만든 것 아닙니까? 세계 어디에 가도 이렇게 교통이, 서민 교통이 잘 돼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밖에 없습니다. 탔다면 그냥 노인들 공짜입니다, 어디든지 간에, 그냥. 지상 낙원입니다, 노인들은. 돈이 없습니다. 국가가 그런 면에서는 많이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고마워하고 전철 타는 노인이 별로 없습니다. 당연히 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가가 예산 가지고 그래도 이렇게 노인들 서민 전철을 많이 만들어 놔 가지고 자가용이 없이도 출퇴근을 할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 뿐입니다. 미국 같은 데는 자가용이 없으면 출퇴근이 어렵습니다. 대단하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남에게, 남을 칭찬하면 행복이, 복이 그냥 굴러들어옵니다. 제일 복 짓기 쉬운 것이 남 칭찬, 제일 죄 짓기 쉬운 것이 남 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맞는데, 백풍 천국 가려면 제일 쉬운 것이 축복하는 것, 명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는 방법은 남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천국 가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축복, 천국 축복, 천국을 가, 복을 받으려면 뭐 해야 합니까? 축복, 명패. 그것이 차이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기 쉬운 것이 칭찬입니다. 그러나 천국 갈 사람은, 영적인 인간은, 칭찬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축복. 축복과 명패 해야 비자가 나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또 이 세상에서는 남한테 용서하는 것이 제일, 남한테 죄 지은 것을 해결하는 것이 빠른 것이 미안하게 사과하는 것 아닙니까? 용서를 비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 세상 하늘나라는 용서 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패. 축복하면 다 없어져 버립니다. 항상 명패와 축복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재밌지 않습니까?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The Completion of True Religion: From Ancient Polytheism to the Era of the Divine Being
Lecture Information
Date: 20240523
Category: Huh Ting
Speaker: Huh Kyung young
Keywords
Religion, Happiness, Divine Being, Spiritual Evolution, Academic Religion
Content
The Advent of the Divine Being and the Limitations of Conventional Religion
The speaker, Huh Kyung young, addresses the question of religion and happiness, noting that individuals actively engaged in religious activities often report higher levels of happiness than those who merely identify as religious. He points out that four of Europe’s happiest nations—Finland, Denmark, Iceland, and Switzerland—are Christian countries, their flags bearing the cross. While many nations have found spiritual solace through religion, they have not yet reached the realm of “Happiness World” through the Divine Being, who has arrived as the Comforter.
Conventional religions anticipate the Second Coming of Jesus, who is prophesied to arrive “like a thief.” However, adherents of these religions are inherently unable to recognize or meet this returning Messiah because his arrival is unexpected and unconventional. He does not appear in churches or seek out congregants; nor does he descend from the sky or manifest purely as a spirit. Instead, he arrives discreetly, often initially perceived as a deceiver or a “thief”. Children may welcome him, but adults, blinded by conventional expectations, dismiss him as a fraud. This very perception, according to Huh Kyung young, is the sign that he is the Messiah, the returning Jesus. The phrase “like a thief” signifies an unannounced, subtle arrival, both spatially and temporally, occurring after 2,000 years since Jesus’s departure.
Huh Kyung young further elaborates on the location of this arrival, stating that the Divine Being comes to a place historically associated with “thieves” or unconventional figures, transforming it into a sacred site. He cites Napoleon’s observation that while figures like Buddha, Confucius, or Socrates would be welcomed with reverence if they reappeared, the Second Coming of Jesus would compel all to prostrate themselves in worship, recognizing him as a divine incarnation. This distinction highlights that divine or spiritual beings are objects of worship, not mere welcome. Modern religious settings, with their seated congregations, are not conducive to the act of prostration and worship required for the Divine Being’s arrival, indicating a fundamental disconnect between contemporary religious practice and the true nature of the Second Coming. The Messiah, therefore, does not appear within established religious institutions but emerges from outside, disguised as a “thief” or even a “fraud,” making it difficult for those entrenched in conventional beliefs to recognize him. Only those with “truthful eyes” can discern the genuine identity behind this disguise, while others, caught in the web of established religion, will be misled.
The Persecution of the Divine and the Evolution of Religious Understanding
Huh Kyung young draws a parallel between his current experience and that of Jesus in Judea, who faced persecution and was condemned to death while Barabbas was released. He notes that those who initially sought to kill Jesus, such as Barabbas and Paul, later became his followers and evangelists. This historical precedent illustrates that the Divine Being is often unrecognized and even rejected by contemporaries, who are unable to comprehend his true nature. The prophecy of Jesus’s return “like a thief” after 2,000 years signifies this unexpected and often unwelcome advent. Huh Kyung young asserts that he is this prophesied figure, capable of traversing past and future, and performing extraordinary feats such as healing and bestowing blessings, which are tangible realities.
From Polytheism to Monotheism: The Historical Context of Divine Worship
Historically, humanity practiced polytheism, worshipping various gods for different aspects of life. For instance, people worshipped a god of war before battle, a god of fertility for childbirth, and Poseidon for safe sea travel. Each month was associated with a specific deity: March with Mars (god of war), April with Aphrodite (love), May with Maia (fertility), June with Juno (marriage), July with Julius Caesar (deified Roman general), and August with Augustus (Caesar’s adopted son and emperor). October was associated with the god of men, November with the god of war, and December with the god of peace. In this polytheistic era, people believed they needed to worship at least twelve gods to navigate life successfully.
When figures like Jesus appeared, advocating for a singular God (Yahweh), they were often perceived as radical or even insane by those accustomed to polytheistic beliefs. While Jews worshipped a comprehensive God, other Gentiles adhered to their specific deities. Huh Kyung young points out that even in modern Korea, people exhibit polytheistic tendencies, seeking blessings from various objects or places for wealth or fertility. However, with the arrival of the Divine Being, the need for such diverse deities vanishes, as all are purified. The ancient polytheistic practices, particularly those prevalent in Europe, eventually evolved into formalized religions. These early religious structures, including the concept of a religious pyramid, were necessary precursors to the advent of true religion.
The Decline of Academic Religion and the Path of Suffering
The speaker emphasizes that the Divine Being’s arrival, like a “thief,” means that those who were “first” (i.e., established religious figures) will not recognize him, while those who were “last” will. He uses the metaphor of seasons: just as leaves fall in autumn, revealing the bare branches, the true nature of reality becomes clear as the world enters its “winter” phase, signaling his arrival.
Huh Kyung young argues that established religions, particularly Christianity, have become “academized,” losing their spiritual vitality and the promise of eternal life. In the past, uneducated individuals, such as those who had not even completed elementary school, became elders and passionately spread Christianity. However, with the rise of educated scholars and professors within Christianity, its fervor has waned. The increase in the number of professors correlates with a decrease in the number of believers, as Christianity has been transformed into an academic discipline.
True Christianity, he asserts, is not an academic pursuit but a profound experience born from suffering and hardship. He outlines a spiritual progression:
Suffering (고난) leads to Patience (인내).
Patience leads to Refinement (연단), which is a gift or opportunity.
Refinement leads to Hope (소망).
Hope culminates in Success (성공), which is synonymous with Heaven.
This journey through suffering, patience, refinement, and hope makes the hardships bearable and even joyful, transforming them into gifts. However, those who view suffering merely as a source of inferiority or complaint, rather than a step in this spiritual process, are not truly religious. They fail to understand the inherent order and hierarchy in existence, much like questioning the rank of a general in the army. Such individuals disregard the struggles and patience that lead to success, like those who become wealthy through perseverance. This lack of understanding of divine order and the value of hardship leads to a loss of religious essence.
The Demise of Religion in the Age of Information
Huh Kyung young contends that when the true Divine Being appears, false prophets proliferate, just as Judaism faced destruction after rejecting Jesus. He warns that those who reject him will face similar consequences, as evidenced by ongoing conflicts. Religion, fundamentally rooted in suffering, cannot be learned academically. True spiritual awakening occurs when one is at their lowest point, hearing a divine voice that reminds them of their inherent worth and potential. This “spiritual power” (영성) is the essence of religion, not academic study.
The speaker observes that Christianity was most fervent when people were illiterate, relying on oral tradition and deep faith. However, with the spread of literacy and the proliferation of religious texts, Christianity began to decline, as religion became an academic subject. He outlines the historical evolution of religious transmission:
Memorization Era (암송 시대): In ancient times, without paper, scriptures like the Torah were memorized verbatim. This era fostered intense faith.
Transcription Era (필사 시대): As writing materials became available, scriptures were copied onto paper, wood, or stone.
Search Era (검색 시대): The current era, where religious texts are easily accessible through digital search, has led to a decline in faith. People no longer feel the need to memorize or transcribe scriptures, viewing religion as something to be “owned” on a device rather than deeply internalized. This ease of access diminishes the spiritual effort and connection, leading to the demise of religion.
The Importance of Hardship and Gratitude in the Divine Era
The speaker laments that the current “Search Era” lacks the profound suffering and refinement that characterized earlier periods, leading to the end of academic religion and ushering in the era of the Divine Being. He emphasizes that his teachings are easily understood, leading to widespread spiritual awakening without active proselytization. He contrasts this with the past, when illiterate grandmothers fervently attended dawn prayers, a phenomenon rarely seen today.
Huh Kyung young highlights the concept of Hyeongseoljigong (형설지공), which refers to studying diligently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such as by the light of fireflies or reflected moonlight on snow. This arduous method of learning, common in ancient times for memorizing scriptures, fostered deep understanding and spiritual connection. However, modern convenience has eliminated such hardships, leading to a decline in memory and spiritual depth. He notes that theological seminaries, once places of extreme hardship where students struggled to pay tuition, now offer comfortable facilities, which paradoxically weakens spiritual development. The easier life becomes, the weaker faith grows, signaling the end of the traditional religious era.
He concludes by stressing the importance of not achieving things too easily. He uses the example of public transportation: people often take subways for granted, failing to appreciate the efforts of civil servants and politicians who created such efficient, environmentally friendly systems. Korea, he notes, is unique in its well-developed public transport, especially for the elderly who ride for free, yet few express gratitude.
Finally, Huh Kyung young distinguishes between earthly blessings and heavenly blessings:
Earthly Blessings: The easiest way to receive blessings on Earth is to praise others. Conversely, the easiest way to commit sin is to speak ill of others.
Heavenly Blessings: To attain blessings in Heaven, one must offer Blessings (축복) and Nameplate (명패). Earthly forgiveness, achieved through apology, does not absolve sins in the heavenly realm; only Nameplate and Blessings can do so. These acts are crucial for spiritual advancement
1. The Incognito Arrival of Shin-in(神人)
Shin-in(神人), when appearing, arrives unexpectedly, much like a thief. This manner of arrival means that those who anticipate a conventional return, perhaps to a church or among believers, will not recognize him. He does not descend from the sky or manifest spiritually in a predictable way. Instead, he comes disguised, often initially perceived as a charlatan or a trickster by adults, though children may instinctively recognize him. This incognito arrival is precisely why he is the Messiah, the Second Coming. His appearance is subtle, both in location and timing, occurring two millennia after the departure of Jesus. He arrives in quiet, unassuming places, often where “thieves” or common people reside, transforming such a place into a sacred site.
Napoleon once remarked on the distinct reception of spiritual figures: while figures like Buddha, Confucius, or Socrates would be welcomed with reverence if they reappeared, the Second Coming of Jesus would command prostration and worship, signifying a divine incarnation. This distinction highlights that Shin-in(神人) is an object of worship, not merely a figure to be welcomed. Modern religious settings, with their rows of chairs, are not designed for such prostration, making them unsuitable for the true worship of Shin-in(神人). Thus, the Messiah does not appear within established religious institutions but emerges from outside, like a thief, unrecognized by many.
This pattern of persecution and misunderstanding is not new. When Jesus appeared in Judea, he was persecuted, leading to his crucifixion while Barabbas was freed. Those who initially sought to harm Jesus, like Barnabas and Paul, later became his followers. Similarly, Shin-in(神人), upon his return, is often initially dismissed as a fraud by adults, while those with genuine insight recognize him. This disguise is a test, allowing only those with true discernment to perceive his identity. The Jewish people, who rejected Jesus, suffered for two millennia without a nation, a testament to the consequences of failing to recognize the divine.
- The Decline of Traditional Religion and the Rise of Shin-in(神人)
Shin-in(神人)’s arrival signifies the end of an era where multiple deities were worshipped. In ancient times, people worshipped various gods for different aspects of life: a god of war (Mars) for battle, a goddess of fertility (Maia) for childbirth, and a god of the sea (Poseidon) for safe passage. The months of the year were even named after these deities, reflecting a polytheistic culture where individuals worshipped at least a dozen gods to navigate life’s uncertainties.
However, with the advent of Shin-in(神人), the need for these numerous deities vanishes. His presence renders all previous forms of worship obsolete, purifying the spiritual landscape. This transition marks the end of the “religious pyramid” and the pre-religious state where such diverse worship was prevalent. Shin-in(神人)’s coming is likened to the autumn season, where leaves fall, revealing what was once hidden, signifying a new spiritual era for Earth.
Traditional religions, particularly Christianity, have become academicized, losing their spiritual vitality. Early believers, often uneducated, possessed fervent faith that propelled the spread of Christianity. However, as scholars and professors began to intellectualize the faith, its spiritual fire diminished. The increase in theological academics has inversely correlated with a decrease in genuine believers. Religion, at its core, is not an academic pursuit but a profound experience born from hardship.
- The Spiritual Journey: From Suffering to Hope
True religion is forged through a process of suffering, which leads to patience. Patience, in turn, cultivates refinement, and refinement ultimately gives birth to hope. This hope culminates in success, or in spiritual terms, Heaven. All religions, in their purest form, guide individuals through this journey. When suffering is embraced with the hope of reaching Heaven, it transforms into a gift, making the hardships joyful.
However, many individuals fail to see suffering as part of this spiritual journey. They perceive it as mere misfortune or a cause for inferiority, comparing themselves to others who seem to prosper. This perspective prevents them from engaging in the religious process of patience, refinement, and hope. Such individuals often question the inherent order and hierarchy of existence, failing to understand that even in society, there are necessary distinctions and roles, much like military ranks.
This loss of understanding about the spiritual journey is a significant failing of modern religion. When the true Holiest appears, many false prophets emerge, just as the Jewish religious establishment persecuted Jesus. The academicization of religion further exacerbates this decline. In the United States, for instance, doctorates are awarded in philosophy of religion, not in religion itself, indicating a shift from spiritual experience to intellectual study.
An uneducated elder who has endured immense hardship and cultivated patience and refinement may possess deeper spiritual wisdom than a theologian with a doctorate. True religious power lies in spirituality, not academic knowledge. When individuals are at their lowest, unable to move forward, a divine message can break through, offering profound spiritual connection. This spirituality is the true essence of religion, not academic study.
- The Evolution of Religious Engagement: From Memorization to Search
The fervor of Christianity was at its peak when people were largely illiterate. Grandmothers, unable to read, would attend dawn prayers with intense devotion. However, as literacy increased, and religion became academicized, its vitality waned. The proliferation of religious texts and the ability to study them academically transformed religion into a subject of intellectual inquiry rather than a lived spiritual experience.
The history of religious engagement can be categorized into three eras:
The Era of Memorization: In ancient times, without paper, scriptures like the Torah were memorized entirely. Children in Israel still memorize these texts. This era fostered deep faith and spiritual intensity.
The Era of Transcription: As writing materials became available, scriptures were meticulously copied onto various surfaces like paper, wood, or stone. This allowed for the preservation and dissemination of religious texts.
The Era of Search: In the modern age, religious texts are readily available through digital search. This convenience, however, has led to a decline in spiritual engagement. People no longer feel the need to memorize or deeply internalize scriptures when they can simply “search” for answers on their phones. This ease of access trivializes religion, making it a mere possession rather than a profound spiritual pursuit.
This shift to the “search era” marks the end of traditional religious practice. The intense dedication once required, symbolized by “Hyungseoljigong” (studying by the light of fireflies or snow), is now absent. Modern theological students, with comfortable facilities, lack the profound spiritual experiences born from hardship and sacrifice that characterized earlier generations. This ease and convenience inevitably weaken faith.
- Gratitude and the Path to White Heaven
We should not take ease and convenience for granted. For example, public transportation like subways, which are efficient and environmentally friendly, are often used without gratitude. People complain about not having private cars, failing to appreciate the efforts of public servants and politicians who created such excellent infrastructure. South Korea, in particular, boasts an unparalleled public transportation system, offering free rides to seniors, a true “paradise on Earth” for them. Yet, many seniors ride without expressing thanks, taking it as their due.
True happiness and blessings come from praising others. The easiest way to accumulate blessings on Earth is to compliment others, while the easiest way to commit sin is to criticize. However, to reach White Heaven, a higher spiritual path is required. While praise is beneficial on Earth, spiritual beings seeking White Heaven must engage in blessing and naming. These acts are essential for obtaining a “visa” to White Heaven.
Similarly, on Earth, resolving wrongdoing quickly involves apologizing and seeking forgiveness. But in White Heaven, mere apologies do not erase sins. Instead, blessing and naming are crucial for the purification of sins. These spiritual practices hold immense importance for the journey to White Heaven.
재림 예수 : [Reincarnated Jesus (Messianic Return)]
보혜사 : [Comforter (Divine Advocate)]
형이상학적 : [Metaphysical (Transcendent)]
형이하학적 : [Phenomenological (Empirical)]
고난 : [Adversity (Spiritual Crucible)]
인내 : [Endurance (Resilience of Spirit)]
연단 : [Refinement (Process of Purification)]
소망 : [Aspiration (Divine Hope)]
천국 : [Heaven (Ultimate Fulfillment)]
다신교 : [Polytheism (Plurality of Deities)]
학문화 : [Academization (Intellectual Formalization)]
영성 : [Spirituality (Inner Resonance)]
암송 시대 : [Era of Oral Tradition (Memorization Epoch)]
필사 시대 : [Era of Scriptorium (Manuscript Transcription)]
검색 시대 : [Era of Digital Retrieval (Information Access)]
형설지공 : [Diligence in Adversity (Arduous Study)]
안녕하십니까, 신희 님. 그래, 예, 오늘은 종교와 행복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보다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고, 유럽에서는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네 개 국가인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국기에는 십자가가 들어가 있는 기독교 국가이기도 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종교로 인해서 정신적으로 행복을 얻었지만, 아직 보혜사로 오신 신인 님을 통한 행복 월의 영역까지는 못 간 것 같습니다.
질문은 종교와 행복에 대한 신인 님의 고견이 궁금하고, 신인 님을 통한 행복은 기존 종교를 통한 행복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묻습니다. 그러니까 기존 종교는, 어, 재림 예수가 오면은, 예, 도둑같이 온다고 그랬잖아. 예. 근데 그 사람들은 도둑같이 오는 재림 예수를 만날 수가 없어.
도둑같이 오니까. 어디서 오냐? 교회로 오는 게 아니야. 예. 신도로 찾아오는 게 아니야.
예. 그렇잖아. 그렇다고 지붕에서 떨어질 거예요? 아닙니다. 그렇잖아.
정신으로 오지도 않아. 맞습니다. 어, 근데 도둑처럼 와. 그러니까 사기꾼이라 소리를 듣고 오는 거야, 처음에.
맞아, 맞아. 어, 알 수 없게 도둑으로 위장해 가 온단 말이야. 그러니까 어린애들은 좋아하는데, 어른들은 꾼이다, 도둑이다, 이 말, 말하면은 그 자가 메시아요. 아, 그 자가 재림 예수야.
예, 맞아, 말이야. 도둑처럼이라는 건 도둑맞 같이 오는 거야. 음. 장소적으로 살며시 오지만, 예, 시간적으로도 살며시 말.
2000년 이후에 오지만, 맞잖아. 예, 오지만, 그 예수 간 이후에, 이후에 내가 오잖아. 재림에 올 때는 도둑처럼 이렇게 조용한 곳에 오는 거야. 아, 그런데 여기가 도둑이, 인격자가 있던 자리야.
예, 여인, 여기 임 씨들 많잖아. 예, 맞습니다. 체, 뭐 저, 저 배우, 탤런트 임 누구도 있잖아요. 여기 임동 많이 살지.
예, 이 임금정 후손들이, 인정이가 실체 머무르는 것이 돌고기 아니야. 아, 얘가 그 도둑이, 조선시대 때 최고 도둑이 머물던 곳이야. 얘가 성지야. 예, 맞습니다.
여기에 도둑처럼 왔다니까, 도둑이 있던 자리에 온 거야. 아, 그러니까 실제 도둑이 도둑처럼 본 거지, 그렇게 위장하고 온단 말이야. 그 나폴레옹이 뭐라 그러냐면,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이 지상에, 이 방에 다시 나타난다면, 예, 이 왕궁에 나타난다면, 그지, 자기들이 있는 그 방에, 예수는, 아,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나타나면 전부 환영한다, 이 말, 서서 환영. 예.
근데 재림 예수가 이 방안에 나타나면 전부 엎드려서 경배를 하게 된다, 그게 차이야. 예. 어, 그러니까 석가나 공자나 무슨, 소태사나 이런 사람이 나타날 때는 전부 환영을 하지마, 재림 예수가 나타날 때는 뭐 해야 된다? 경배. 전부 땅바닥에 엎드려서 경배를 해야 된다, 그건 하나님의 화신이다, 이 말이야.
아, 그래, 그 제 이야기한 거야. 어, 그런 말을 했잖아. 그러니까 신적인 거, 영적인 것은 경배 대상이야, 환영 대상이 아니야. 네, 맞아, 맞습니다.
응, 근데 지금 이 종교는 거기. 나타났다, 내가. 예, 그러면 그 예배당이 엎드릴 데가 없어요. 전부 의장이 앉아 있어.
맞습니다. 예, 무대에서 나는 설 수 있는데, 저거는 못 엎드려요. 예, 경배할 수 있냐? 못 합니다. 어, 의자에 전부 앉아서 그 땅바닥에 엎드릴 수가 있냐? 못 합니다.
안 되는 거예요. 경배할 장소가 아니야. 아시겠죠? 무슨지 알겠지? 그건 형이상학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게 아니라, 형이 학적으로도 안 되는 거야. 예, 형이 사학 정기 말할 것도 없고.
네, 이제 이해가지? 음. 그래서 기성, 기존 종교 안에서는 들어가 메시아가 오지 않아. 꼭 바깥에서 도둑처럼, 음, 네, 나타나서 아무도 모르게, 예, 나타나는 거야. 그게 내야.
아, 근데 사기꾼으로 위장을 해가 나타나. 예. 어, 어른들이 “저 사람 뭐 성범이야, 사기꾼이야.” 그 자가 실제 자가 위장을 하고 지금 위장술을 세우고 있는 거야. 네.
“이 뭐 성이 뭔지, 사 이게 전부 위장 되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음. “저 사람이 가짜야, 저 사람이 나쁜 놈이야.” 이렇게 위장이 돼 있어야 진실한 눈을 가진 사람은 알아보지, 일반 사람은 가는 거야. 알았지? 매느, 이으면 기, 기성 종교에 빠진 자들은 피해가 빠지게 되는 거야.
알았지? 예. 음. 그래, 님께서, 그래서 예수로 내가 있을 때 유대에 나타났을 때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던 거야. 응.
바라바, 이제 바나바 내보내고 예수는 죽여라 이랬잖아. 예. 근데 나중에 바나바나 바울이나 예수 죽일려고 달랐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바나바도 바울 따라다니면서 전도를 했어. 알겠지? 음.
그나. 그때 예수는, 음, 정말, 어음, 그들이 전혀, 음, 예수를 인정할 수가 없지. 자기들이, 음, 뭐 당연히 그 사람들은 예수를 그렇게 취급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래서 뭐라 그래? 다음에 올 때는, 재림할 때는 2천 년 후에, 음, 도둑처럼 온다.
아, 그 내가 와 있는 거예. 예. 그래서, 그래서 내가 뭐 여러분의 과거로 가고 마음대로 하잖아. 미래로 가고, 뭐 비통을 하잖아.
엄청난 거예요. 맞습니다. 여러분들이 사람도 살리지, 아, 광채 들어가라, 그런 주잖아. 그런 거, 응.
그리고 축복 레벨 전부 실제야. 맞습니다. 같잖아요. 네.
그러니까 옛날에는 다 신겨야, 다신교. 옛날에 다신교. 예수가 내가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신을 섬겨. 전쟁 태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을 섬겨야 살아와.
저, 그렇게 믿는 거야. 전쟁의 신이 뭐야? 마치, 3월, Mr. 마치, Mrch. 마치가 전쟁의 신이야.
오은 메인은 뭐예? 다산의 신이야. 임신을 하려면 다산의 신도 섬겨야 돼. 최소한 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 그게 문화인이, 어, 타고 갈 때는 포세이돈 신을 섬겨야 돼. 바다여, 어, 그래, 안 그래? 어, 그럼 안 섬기는 놈은 죽는다고 생각해.
불안한 거야. 맞아, 맞아. 그 가는 데마다 전쟁들 갈 때는 많지. 그래, 그래.
애를 나 될 때는 매일 섬겨, 월, 응, 올해 다산의 신, 애를 낳게 해주는 신이라 거. 그럼 이게 12달이 전부 신이야. 네. 열이 무슨 신이야? 어, 그래.
12개 신을 다 외야지. 응. 왜 그렇겠습니다. 응.
양면인, 아, 제요리 양면시계신상, 악을 자유 자지 하는 신이란 말이야. 예. 그걸 자유 신이라 그래, 자유. 그 페브는 뭐야? 혁명의 신이야.
마치는 뭐, 무슨 신이야? 군대 신, 그러니까 전쟁의, 응, 전쟁의 신이라 말, 전쟁 때 도와주는 신이야, 그지? 에프는 사랑의 신이야, 그지? 메이는 번식의 신, 주는, 주는 뭐야? 결혼의 신이야. 좋, 여자를 만나려면 주, 제 유행이 주을, 주의 신을 섬기는 거지. 줄라이는 뭐예? 응, 줄라이 잘 겠습니다. 라이가 바로 세계적인 로마의 뭐야? 시저, 시저의 신이야.
시저 장군을 신으로 섬긴 거야. 어거스트, 8월 달, 어스, 저저, 저저, 어거스트, 오스트 모르겠습니다. 옥타, 아니, 오그스트, 예. 시저의 양아들, 아, 아구스트, 아스, 아스트.
그가, 그러니까 주가 아버지는 7월 달, 주거 아들은 8월 달, 둘리가 가져버린 거야. 그 7월 하고 8월 커져 버리, 우리 월 그을어야 되잖아. 면서 코다 작다, 코다 작다. 오다가 아버지 시저가 6월 달, 아, 7월 줄라, 그리고 아들놈은 또 둘 다 황제아, 아우구스트 8월 달, 이렇게 돼 버는 거야, 그지? 그렇게 될 거 버는 계절의 신이야.
예, 옥타는 자의 신, 옥타는 남자의 신, 그러니까 노는 전쟁의 신이야. 디는 평화의 신, 12월, 그 이렇게 신을 적어도 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생활할 수가 있어, 그때는. 예수가 있을 때는, 근데 예수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뭐 이렇게 하니까 저 미친, 이렇게 되는 거야, 응? 그때는 야도 하나의 신이야, 여호와. 그 여호와는 신인데 뭐 전체적인 신이래, 사람들이 잘 안 믿지, 그렇잖아?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은 그 종합 신을 믿는 거야.
근데 다른 이방인들은 노아진 신을 믿어. 아, 왜냐면 우리도 저 가서 아이 잘 났는 바에 가서 막 절하는 사람이 있어. 예, 우리나라 사람, 그지 뭐. 저거 만으면 애 잘 난다, 가서 막 만져.
어, 이러고 또 뭐 부자 된다면 그 부자 되는 금고에 가서 만지고. 이게 우리도 마음속에 열 가지 이상의 신을 가지고 있었어. 아, 그렇잖아. 맞습니다.
근데 내가 이제 오고 나니까 그게 다 필요가 없어. 맞습니다. 어, 다 정결해야 돼. 그래서 우리는 이 12달이 가지의 신이야.
네. 유럽 사람이 가지고 많이 사용한 신들이. 아, 그래. 그게 종교화 된 거야.
어, 어, 그게 종교 이전 상태야. 네. 그 초정 종교가 오기 전에는 그런 종교 피라미드도 필요하고 다 이게 다 그거하고 영관이 있어. 아, 응.
예, 음, 음. 그니까 그 신께서도 예전에 먼저 된다 자가 나중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보이지 않게 도둑처럼 오셨다는 거는 먼저 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면 그런 상황. 그렇지. 이제 말하자면은 어, 잎이 무성할 때는 서로 잘 몰라.
예. 그렇지만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은 가 보이잖아. 네. 서서히 그러면서 입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지도 겨울이 되면 싸늘 해지지.
그게 이제 내가 올 때가 된 거야. 아, 이제 계절을 보면 이제 이게 지구 자체가 겨울에 들어가는 거지. 내가 온 거야, 이제. 알지? 네.
그래서 기선 기성 종교는 어, 기독교는 어, 학문화 되었어. 학문화. 예. 영생이 없는 거야.
아, 어, 맞습니다. 예. 종교가 네, 학문화 됐단 말이야. 신학교가네, 옛날에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들이 장로가 되고, 이 사람들은 뜨거웠어.
맞습니다. 어, 글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무지무지하게 불이 붙어 가지고 막 기독교가 퍼져 나간 거야. 근데 공부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불이 꺼지고 있는 거야. 교수들이 기독교 교수들이 나타나면서 불이 꺼지는 거야.
교수 숫자가 늘어난 만큼 신자 숫자가 줄어들어. 아, 그지? 어, 기독교를 학문화 해 버리는 거야. 아, 방송을 통해서든 뭐든. 네.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야. 예. 처절하게 암에 걸레가 다 주고 가다가 돈 다 떨어지고 배고프고 이럴 때 스스로 찾아가서, 그래 안 그래? 어, 처절한 경험에 의해서 고난이, 그러니까 기독교는 뭐냐면은, 예, 한 마디로서 종교는, 종교를 만들어내는, 종교는 만들어내는 게 뭐, 내가 옛날에 강의해 줬지? 예. 고난, 고난.
네. 그지? 네. 이 고난은, 고난은 뭘 낳는다 그랬어? 고난, 연단. 연단.
고난은 연단을 낳지. 예. 연단, 그 인내를 먼저 낳는 거야. 네.
연단 하기 전에 고난을 인내를 해야 돼. 예. 그래 안 그래? 예. 그럼 인내는 뭘 낳아? 연단을, 인내가 연단을 낳지.
인내가 없으면 연단이, 연단 단계 안 가네. 응. 네. 응.
연단이라고, 고난 다음에 인내를 보는 거야. 인내한 자에게 연단을 기회를 줘. 네. 맞아, 안 맞아? 연단의 기회를 준다 말이야.
연단, 단자, 연단도 기회로, 어이, 연단도 기회지. 연단이 기회를 주는 이것도 선물이야. 아, 예. 연단은 뭘 줘? 소망.
소망을 주지. 예. 소망을 준다, 이. 말이야, 그러면 이 소망이 성공, 물을 익으면서 성공이 되지, 그래서 이루어지는 거야, 그지? 그러면 고난이 내고, 인내가 연단을 놓고, 연단이 소망이 되고, 소망이 성공을 가는 거거든.
예, 그 모든 종교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소망, 성공이 천국이야. 아, 다른 말로 바꾸면 천국, 지상에서는 성공인데, 이 천국을 말하는 거 아니야? 네, 이 천국 가는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연단을 이기고,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인내를 하는 거야.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당하는 거지. 그럴 때는 이게 힘이 드나, 안 듭니다.
음, 즐거워, 고난이. 그럴 때는 선물이 돼, 그래, 안 그래? 그런데 어떤 놈들은 “우리 구석이 왜 이렇게 안 하네? 쟤는 뭐 벤츠 타고 다니는데.” 요런 시기 나고, 고난을 소망이나 인내, 연단 이런 거 생각을 안 해 버려. 고난을 그냥 고난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면 그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잖아? 네, 그냥 이거 일반 인간, “어, 나는 왜 이 난이와, 저 친구는 잘 나가는데.” 이렇게 불평등해, 이렇게 이야기해.
그러면 불평등해, 해소 군대 가니깐 육군 대장부 짝 있어요. 근데 이거 왜 불평등해? 사람은 똑같은 거 아니야? 넌 뭔데 육군 대장이야? 우리 계급장 필요 없어, 이러면 전쟁을 할 수가 없어. 맞나, 맞나? 통제가 안 돼요, 통제가. 막 육군 대장한테 “야, 이 새끼야, 너하고 내 갈면 뭐, 너 계급장 돼.” 이러면 이 전쟁 되겠나? “야, 쳐들어가.” 아무도 안 가요.
“맞아, 야, 누구나 가, 이 새끼.” 이러면 그런. 이등병이 있으면 되겠나, 안 되는 거 안 되지. 질서라는 게지. 존재 질서는 명보다 상위 개념이 있어.
아, 그래, 그래. 예, 맞습니다. 응, 그 질서가 있어야 되는데, 고난을 뺐다가 보는 사람은 “질서를, 저 새끼가 뭔데?” 재벌이 다 이거 거쳐서 재벌된 사람이야. 아, 그래, 안 그래? 인내해 가지고 간신히 된 사람들 아니야? 맞습니다.
선생부터, 그걸 무시해 버리는 수, 이거 그냥 “고난을 왜 내면 고난 받아야 돼?” 이러는 거야. “나는 왜 내가 보천 서고 있고, 육군 대장 새끼는 잠자고 있냐?” 이러면 되나, 안 되나? 안 됩니다. 어, 그래서 질서는 굉장히 높은 단계에 있는 거예요. 동을 갖다 대면 되겠나? 안 됩니다.
어, “당신 육군 대장이고 나하고 뭐 사람이 똑같은데, 평등한데, 왜 너는 계급장을 그렇게 달고 있냐?” 이러면 되겠나? 안 됩니다. “당신 왜 월급이 많아? 너 왜 5급이야? 나는 9급인데?” 이러면 되나, 안 돼? 안 되는 거야. 인간의 가치는 평등하지만, 예, 그 인간을 쓰임받는 가치는 또 달라요. 아, 그래, 그래.
무당이나 가서 핑 기타가 조정실에 들어가려고 하면 되나, 안 돼? 안 되는 거야. 질서가 있는 거야. 조정사 딱 생겨져 있어, 이미. 맞아, 맞아, 맞아.
그래서 이런, 이런 것이 종교가 지금 그걸 잃어버린 거지. 뭔지 알지? 종교가 말하자면은 아무나 나타나서 지가 뭐해. 근데 내가 진짜에게 오면은 가짜들이 판을 쳐. 아, 그 유대교가 판을 쳤잖아.
저주받는 거 봤지? 예수 죽고 나서 2천 년간 나라 없어져, 지금도 저주받고 있어. 예수 죽인 자들이요. 맞습니다. 나를.
죽인 자들이네, 그 지금도 그런 전쟁을 하고 있잖아. 맞습니다. 음, 알겠지? 네. 음, 그래서 종교는 예, 이런 고난이 종교인데, 예, 이걸 학문으로 종교를 배우면 되나, 안 됩니다.
응, 학문으로 정경 안 되는 거야. 다 망해 가지고 자빠져 가지고 있는데, 갑자기 음성이 들려. 야, 네가 잃어버린 게 그게 잃어버린 거냐? 네, 몸이 아직 살아 있지 않냐? 네, 몸이 진짜 재산이야. 일어나라, 소에 들릴 수 있어.
어, 내 몸이 뭘 쩡하 가지고 돈은 이따가도 없어지는 거야. 네, 몸이 바로 화학 반응만 잘 일으키면 전 세계의 물질을 저다 나할 수도 있어. 그거 왜 몰라? 네가 화학하는 걸 잘못하니까 지금 네가 그 어려운 거지. 맞아, 안 맞아? 맞습니다.
응, 그렇지? 네. 그래서 이미 종교가 사라졌어. 종교를 학문으로 만들어서. 미국은 종교로서 박사 하기가 없어.
철학으로 박사 하기야. 필라소피지. 예, 종교로는 박사 하기가 없어. 종교는 차라리 쫄딱 망한 장사하는 무식한 초등학교도 안 난 할머니가 더 박사일 수도 있어.
아, 무슨지 알겠지? 연단을 겪었으니까. 어, 인내와 연단, 이런 게 합쳐져서 이게 종교가 되는 거지, 신앙이 되는 거지. 학문 가지고는 들어가서 못한 거다, 이래 버리고. 학문으로 달달 외웠는데 영적으로 소통이 되냐? 안 되는 거야.
쫄딱 망해 가지고 더 이상 운신할 수 없을 때 소리가 들려고, 그 메시지가 탁 탁 소통이 되는, 그게 종교 힘이야. 그게 영성이라는 거야. 아, 영성이 종교는 학문이 아니야. 종교는 영성이라.
음. 응. 그래서 우리 국민이 글자를 모를 때가 제일 기독교가 뜨거웠어, 맞나, 맞나? 예, 맞습니다. 예, 어, 맞아, 맞아, 맞습니다.
예, 글자를 모를 때 뜨거웠지. 예, 예, 음, 근데 글자를 알고 나서부터 기독교가 쇠퇴하는 거야. 아, 어, 맞아, 안 맞아? 맞습니다. 이제 알 수 있잖아.
네, 종교를 학문으로 봐 버리는 거야. 이제 책이 많이 나오니까. 예, 어, 다양한 책이 있으니까 종교가 학문이 돼 버려. 기한 줄을 몰라.
예, 그러니까 우리가 일종에 종교가 학문이 돼 버리면, 에, 어떤 현상이 있냐면 다 망해 버려. 음, 정교 이 될 때는 뭐가 그런 게 나타날까? 종교를 학문으로 볼 때는 옛날에, 에, 우리의 모든 종교가 전해 오는 게, 예, 처음에는, 처음에는 암송 시대가 있었어. 네, 모든 종교에 종이가 없었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도 토라를 외우지.
예, 애들한테 외우라 그러지. 이거를 기록을 못 해요. 외워야지. 경전을 통째로 외워 버려.
이스라엘 애들은 경전을 달달달 외워, 토라를 외워. 그러니까 암송 시대야, 맞아, 안 맞아? 그다음에는 뭐야? 이거 맨날 암송만 해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니까 뭐야, 이게, 그다음에 뭐가, 뭐 무슨 시대가 오냐? 예, 이게 그다음에는 이런 시대가 와 버려요. 필사 시대. 예, 뭐 급이고 종이 같은데 나무 돌 같은데 새겨, 먼 그래 탁본을 떠, 그런 시대가 있었어.
예, 그걸로 적어 가지고 전했어. 종이가 귀하니까. 네, 필사. 네, 지금은 뭐요? 지금, 지금은 뭐요? 지금은 종교가 뭘로 바뀌어, 이렇게 바뀌었어.
검색 시대야. 지금은 경전을 필사 안 해. 예. 검색하면 나와, 아 그래, 그래.
암송 시대와 검색 시대가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은, 암송하던 시대는 신앙심이 뜨거워, 아, 무식한 사람들이고, 예, 딱 암송한 그대로 불이 뜨거워요. 예. 검색 시대는 “어머, 핸드폰에 있어. 기독교 불 검색하면 나와.” 경제 구절이 뭐 머리에 들어올까? 안 들어옵니다.
들어 있는 걸 뭘로 복잡하게 머리에 집어넣어, 그냥 검색해서 보면 되는데, 이걸 우습게 봐. 이걸 우습게, 종교를 우습게 하는 거야. 이제 “아이, 내 핸드폰 안에 모든 종교가 다 들어 있어.” 맞나, 맞나? 예. 이러니까 소유로 해버린 거야.
대장경 만약 그럼 이게 어떻게 돼? 개판된 거지. 종교는 없어지는 거야. 알았지? 그래서 우리는 암송 시대는 옛날에 한문 책을 막 “계사 상국 이으로 풍계 성인 시장하여 조자이지 수진이 치구가 예법이 장 공 역지 고성지 소개 자식 금수 기비고 물 소 천자는 유관 자는 불가라 우 자 불가 원 개라 폐 하복 총자 소 기가이 조선 선자 자신 계 선 자” 이거를 하루 종일 외워야 돼. 책을, 한문 책이야.
이게. 그러면 그걸로 암송을 해야 되지. 그거 종이가 없는데, 그 어디다 기록해 놓나? 맞습니다. 글자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예. 한글도 없을 때. 예. 한문 배울 때 사람들이네.
그거 다 암송한 거야. 예. “아비 부, 이게 아비 본가 보다.” 이러지 뭐, 어떻 쓸 데가 있나? 책이 있나? 맞습니다. 그지? 어, 그러니까 인간이 이렇게 기로 져 버린 거예요.
아, 이때는 노다지 암기를 하는 거야.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이 참 고은. 거지이 애로사이트 몸에 베어 버려, 아, 요새 성경 그렇게 안 성경 안 합니다. 안 하지.
검색하면 되니까. 그래서 이걸 검색 시대라고 그래. 그 종교가 검색 시대에 들어와 있어. 예.
그러니까 이 종교가 가는 거야. 누구 한 사람도 읽으려고 하나, 안 합니다. 안 하지. 필사 하나, 아, 100명, 천 명에 한 명 정도 필사하는 사람 있어.
응. 그 이거 핸드폰 가지 애들이, “엄마, 그 뭘 그렇게 쓰고 앉아 있어? 핸드폰 봐 봐. 탁 치면 나오는데.” 뭐, 알았어. 맞습니다.
예. 예. 음, 종교의 흐름이 이렇게 와 버리니까 이게 막 막 막 망하지. 아, 검색 시대가 지금 종교의 시대다.
왜 망하냐? 검색하면, 아, 아무나 치면 여기 다 들어 있어. 예. 예수, 석가 다 들어 있는 거야. 예.
어떻게 보면 이 시대는 고난이나 연단 같은 게 있는 시대예요. 아, 이런 시대는. 예. 이 뭐요, 없습니다.
없어. 그래서 종교는 학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끝이지, 그거. 그 신인이 오는 시대가 온 거야. 아, 아, 그 내가 왔다, 그 내가 말아 듣기 여러분한테 이야기해 주는 거야.
네. 굉장 알아듣기 쉽지? 어. 어, 이런 이런 시대에는 전도를 안 해도 막 그냥 개같이 전도가 돼요. 네.
그랬잖아. 옛날에 기독교 뜨거울 때는 할머니들이 한글도 잘 몰랐어. 네. 근데 교회 가서 새벽 기도 하러 다 할머니.
예. 그랬잖아. 어, 근데 지금 그런 사람이 있나? 없습니다. 점점 없어.
다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인간들이 올라가니까. 예. 필사, 필사도 제보 했어, 옛날에. 네.
경전 같은 거 많이 적었어, 옛날에. 엄마들이 이거 암송이 안. 되니까 필사를 많이 했어. 그러다 이제 검색 시대로 시대 변천사가 이렇게 바뀐다.
여러분, 전 이런 걸 알아야 되는데, 뭐 그냥 그냥 막연히 뭐 종교가 뭐 그런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거, 아, 응, 예, 그지네습니다. 그게 중요한 종교의 흐름이야. 네, 알겠지? 종교 왜 망하냐? 검색 시대에 필요할 때 보는 거야. 네, 머리에 안 들어가는 거야.
이거는 머리에 들어가, 이제 이해 가지고. 예, 머리에 놓고 가슴에도 놓고, 음, 들어가는 거 가슴에도 들어가. 그러니까 우리는 옛날에 형설지공, 네, 형설지공. 옛날에는 공부를 성경을 볼 때 사람들이 전등 불로 보나, 호롱 불로 봤지? 예, 그지? 그러면 호롱 불로 봤다는 그 자체가 뭐야? 우리가 다잡, 호롱 불로 봤다는 게 이게 반딧불 형자야.
네, 반딧불이 형자. 예, 그렇지? 네, 응, 반딧불이 형자. 자, 내가 잘못 썼다. 반딧불 형자.
예, 맞지? 그러면 이거는 무슨 자야? 눈 설자리네. 그지? 네, 형설지공, 네, 그지? 네, 형설지공이라는 거는 반딧불로 공부한 거야. 눈하고 반딧불로, 네. 눈이 왔을 때 눈에 비쳐 가지고 공부를 했어.
또 반딧불을 모아 가지고 벌레를, 개똥 벌레, 개똥 벌레를 모아 가지고 그게 불이 비이 나잖아. 그걸 보고 책을 비쳐서 공부를 했단 말이야. 아, 그 무, 제가 가난한 공부를 한 거지, 옛날에 형설, 형설지공. 예, 많이 들었잖아.
어, 이렇게 반딧불과 눈, 흰 색깔이 흰 색깔과 이걸로 가지고 눈빛을, 눈이 많이 왔을 때 눈빛으로 글자가 보이는 거네. 그렇게 공부를 한 사람들이 항상 암송을 한. 거야. 아, 그게 옛날 성경 공부한 사람들이야.
예, 근데 얼마 기가 막혀, 그지? 근데 지금은 너무 편리해진 거야. 탕 걸로 나와, 네. 맞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억을 하지 않는다.
형설지공 해야, 이거는 이제 과학 한 사람들을 형설지공 했다 그래, 네. 그렇죠? 우리가 고했다네, 그지? 네. 어, 맨손으로 일어났다, 형설지공, 이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 이 말이야. 맞습니다.
예, 그 옛날에는 신학교 가면서, 신학교를 가도 그냥 밭도 굶고 다녔는데 지금은 시설이 잘 돼 있다네. 그래서 애들이 영게 될까, 안 되는 거, 안 되는 거야. 아, 응, 네. 신학교에 내일 등록금이 없어서 말이야, 밭을 하면서 간신히 등록을 만들고 이렇게 했을 때 그 공부가 희가 막힌 거야.
네. 영적으로, 아이고 하나님, 제가 이번에 등록금이 안 되는데 어떻게 이 신학교를 짓고 만들 수도 없고 밥을 굶으면서 해도 잘 안 됩니다. 알아봐도 해 봐요. 이게 얼마 안 되는데 이 신학교 떨어지면 학교도 못 다니면 큰일나는데 바깥도 없어요.
예. 근데도 신학교 등록금을 만들어서 갖다 내는 그 마음을 한번 생각해 봐. 아, 그때는 그냥 형설지공이 일래 가면서, 네. 초초 하나 가지고 겨 가면서 공부하는 거야.
네. 반대 불는 없으니까. 그래도 옛날 사람들은 했단 말이야. 갈수록 신앙심이 약해질 수밖에, 편해지면 약해지는 거야.
종교 시대가 끝났어. 아, 알겠지? 네, 알겠습니다. 내가 뭐 오늘 중요한 얘기는 다 해 줬다네. 정말 귀중한 말씀.
그 우리는 뭐든지 쉽게 이루면 안 되네, 쉽게 이루면 세상에 전철 타 가지고 고마워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 맞습니다. 어, 나는 왜 자가용 없이 전철 타고 요러고 앉아 있어, 네? 그래, 안 그래? 맞습니다. 그 전철이 매연도 안 나오고 남한테 매연도 안 마시게 하고, 네, 남들과 함께 같이 가는 전철의 고마움을 알아야 돼.
세계에서 이 우리나라 전철을 이렇게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거, 참 공무원들이 그래도 잘했다, 네, 마을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근데 전철 타면서 “공무원 이런 새끼들” 뭐 이러면 안 되는 거지, 그만 못 갔단 말이야. 어, 우리는 너무 편해지니까, 네, 전철을 만들어낸 그 공무원들이 있을 거 아니야? 네, 맞습니다. 그지? 그 정치인들이 맞는 거 아니야? 세계 어디에 가도 이렇게 교통이, 서민 교통이 잘 돼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밖에 없어.
아, 맞습니다. 탔다면 그냥 노인들 공짜야, 어디든지 간에, 그냥. 네, 그래, 안 그래? 어, 지상 나군이, 노인들은, 네, 어, 돈이 없어, 그렇지? 네. 어, 국가가 그런 면에서는 많이 해 놓은 거야.
그런데 고마워하고 전철 타는 노인이 별로 없어. 맞습니다. 당연히 타는 걸로, 네. 국가가 예산 가지고 그래도 이렇게 노인들 서민 전철을 많이 만들어 놔 가지고 자가용이 없이도 출퇴근을 할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 뿐이야.
예. 미국 같은 데 자가용이 없으면 출퇴근이 어려워. 예. 대단하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남에게, 남을 칭찬하면 행복이, 네, 복이 그냥 굴러들어와.
제일 복짓기 쉬운 게 남 칭찬, 제일 죄짓기 쉬운 게 남 욕하는 거라. 그래야 맞는데, 백풍 천국. 가려면 제일 쉬운 게 축복하는 거, 명하는 거, 어, 그렇지. 어, 그만 같다 이 말이야.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는 방법은 남 칭찬하는 거야. 오, 그렇지. 근데 천국에서, 천국 가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축복, 천국 축복, 천국을 가, 복을 받으려면 뭐 해야 돼? 축복, 명패. 그게 차이지.
네.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기 쉬운 게 칭찬이야. 예. 그러나 천국 갈 사람은, 영적인 인간은, 네, 칭찬만 해서 되는 게 아니야.
아, 네. 뭘 해야 되나? 축복. 축복과 명패 해야 비자가 나와. 무슨지 알지? 네.
음. 또 이 세상에서는 남한테 용서하는 게 제일, 남한테 죄진 것을 해결하는 게 빠른 게 미안하게 사과하는 거잖아. 용서를 비는 거잖아. 근데 저 세상 하늘나라는 용서 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
명패. 아, 축복하면 다 없어져 버려. 아, 알았지? 항상 명패와 축복이 중요한 거예요. 네.
오케이. 아, 오늘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드, 예. 재밌지? 예. 너무 귀한 말씀..
The Completion of True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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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dvent of the Messiah: A Thief in the Night
Huh Kyung-young states that traditional religions anticipate the Second Coming of Jesus, who is prophesied to arrive “like a thief.” However, followers of these religions will be unable to recognize him because he will not appear in conventional religious settings such as churches or among their congregations. Instead, he will arrive unexpectedly and discreetly, often initially perceived as a deceiver or a “thief.” This unexpected arrival means that while children may welcome him, adults might dismiss him as a fraud. The phrase “like a thief” signifies an unannounced and subtle arrival, both in terms of location and timing, occurring quietly in an unassuming place. -
The Sacred Site of the Messiah’s Arrival
Huh Kyung-young explains that the Messiah’s arrival, like a thief, occurs in a place historically associated with “thieves.” He points to a specific location, “Im-dong,” where many individuals with the surname “Im” reside, including descendants of “Im Kkeok-jeong,” a famous historical bandit. This location, therefore, becomes a sacred site where the Messiah, disguised as a “thief,” makes his appearance. This implies that the Messiah intentionally adopts a deceptive guise, appearing as someone ordinary or even disreputable, to test the discernment of those who seek him. -
The Distinction Between Welcoming and Worshipping
Huh Kyung-young references Napoleon’s observation regarding the reception of great historical figures versus the Messiah. Napoleon reportedly said that if figures like Sakyamuni, Confucius, or Socrates were to reappear, they would be welcomed with respect. However, if the Second Coming of Jesus were to occur, people would prostrate themselves in worship. This distinction highlights that divine or spiritual beings are objects of worship, not mere welcome. Modern religious settings, with their seating arrangements, are not conducive to the act of prostration, indicating that they are not prepared for the true form of worship required for the Messiah. -
The Messiah’s Disguise and the Blindness of Conventional Faith
Huh Kyung-young asserts that the Messiah will not appear within established religious institutions. Instead, he will emerge from outside, “like a thief,” unrecognized by most. He will be disguised as a “fraud” or a “scammer,” leading adults to dismiss him as a “criminal” or “deceiver.” This deliberate disguise serves to reveal those with genuine insight, while those entrenched in conventional religion will fail to recognize him. This deception is a test, ensuring that only those with true spiritual vision can perceive his authentic identity. -
Historical Persecution and the Prophecy of the Second Coming
Huh Kyung-young draws a parallel between his own experience and that of Jesus during his first coming. Just as Jesus faced persecution in Judea, leading to his crucifixion while Barabbas was released, the Messiah in his second coming will also face rejection. He notes that those who initially sought to harm Jesus, like Barnabas and Paul, later became his followers. This historical context reinforces the idea that the Messiah’s true identity is often initially met with disbelief and hostility. The prophecy of Jesus’s return “like a thief” after two millennia signifies Huh Kyung-young’s own arrival in the present era. -
The Power of the Messiah and the End of Polytheism
Huh Kyung-young emphasizes his divine capabilities, such as traversing past and future and bestowing blessings. He contrasts this with ancient polytheistic practices, where people worshipped numerous gods for various aspects of life—e.g., a god of war (Mars), a god of fertility (Maia), or a god of the sea (Poseidon). In that era, people believed they needed to appease multiple deities to ensure survival and prosperity. However, with his arrival, Huh Kyung-young declares that such polytheistic worship becomes unnecessary, as his singular power supersedes all. -
The Deification of Months and the Decline of Ancient Faiths
Huh Kyung-young elaborates on the polytheistic nature of ancient cultures, where even the twelve months were associated with various gods: January (Janus, god of beginnings and endings), February (Februus, god of purification), March (Mars, god of war), April (Aphrodite, goddess of love), May (Maia, goddess of fertility), June (Juno, goddess of marriage), July (Julius Caesar, deified Roman leader), August (Augustus, Caesar’s adopted son and emperor), October (Octa, god of men), November (Novem, god of war), and December (Decem, god of peace). He explains that these deified months formed the basis of ancient religions. However, with the advent of a unified divine power, these fragmented beliefs become obsolete, marking the end of an era where such a “religious pyramid” was necessary. -
The Academicization of Religion and the Loss of Spiritual Fervor
Huh Kyung-young observes that established religions, particularly Christianity, have become “academicized.” This transformation, he argues, leads to a loss of “eternal life” and spiritual vitality. He contrasts the early days of Christianity, when uneducated but fervent believers spread the faith with immense passion, with the present era where the rise of educated theologians and professors has coincided with a decline in spiritual fervor and a decrease in the number of adherents. The academic approach, he contends, extinguishes the “fire” of faith, turning religion into a subject of study rather than a living spiritual experience. -
The Path of Suffering: From Tribulation to Hope
Huh Kyung-young defines true religion as a journey through “tribulation” (고난). This tribulation, he explains, leads to “patience” (인내), which in turn fosters “refinement” (연단). Refinement then gives birth to “hope” (소망), and this hope ultimately culminates in “success” (성공) or “heaven” (천국). He emphasizes that enduring tribulation with the hope of reaching heaven transforms suffering into a joyful gift. However, those who perceive tribulation merely as hardship or a source of inferiority complex, comparing themselves to others, fail to grasp the true religious path. Such individuals, he states, are not truly religious but merely ordinary humans consumed by worldly comparisons. -
The Importance of Order and Hierarchy in Society
Huh Kyung-young extends his philosophical framework to societal order, asserting that “existence has a higher concept than life.” He uses military hierarchy as an analogy: a private cannot question the authority of a general, as such defiance would lead to chaos and an inability to wage war. Similarly, in society, questioning the wealth of a “chaebol” (재벌) who achieved success through “patience” and “tribulation” or demanding equality in rank and salary ignores the inherent “order” (질서) and “value of being utilized” (쓰임받는 가치). While human worth is equal, the value of one’s role and contribution differs, necessitating a structured society. -
The Decline of Religion in the Age of Information
Huh Kyung-young laments the current state of religion, where “fake” spiritual leaders proliferate when a true Messiah appears, much like the Jewish religious establishment that persecuted Jesus. He warns that those who reject the true Messiah will face consequences, just as those who killed Jesus suffered for two millennia. He reiterates that religion is not an academic discipline; learning it through scholarly means is futile. True religious experience arises from profound suffering and desperation, where one hears a divine voice, realizing that the body is the true wealth and that one’s potential can transform the world. -
The Shift from Oral Tradition to Search Engines
Huh Kyung-young traces the evolution of religious practice through different eras. He notes that in the United States, religious studies are often categorized under philosophy, not as a standalone doctorate, implying that true spiritual insight often comes from lived experience rather than academic credentials. He identifies three distinct periods in religious transmission:
Memorization Era (암송 시대): When paper was scarce, scriptures like the Torah were memorized, fostering intense faith among the uneducated.
Transcription Era (필사 시대): As writing materials became available, scriptures were copied onto various surfaces, preserving knowledge.
Search Era (검색 시대): The current age, where scriptures are easily accessible via search engines on mobile phones. This convenience, he argues, diminishes faith, as people no longer feel the need to internalize or memorize religious texts, treating them as mere information to be looked up. This leads to a devaluation of religion, making it seem “easy” and thus less profound. -
The Loss of Devotion in the Digital Age
Huh Kyung-young further elaborates on the decline of religious devotion in the “Search Era.” He contrasts the arduous memorization of classical texts in the past, where individuals spent entire days reciting scriptures due to the scarcity of books and literacy, with the current ease of accessing information. In the past, such rigorous memorization ingrained the teachings deeply within individuals. Today, with instant access via search engines, people no longer feel the need to memorize or transcribe religious texts. This convenience, he argues, leads to a lack of personal engagement and a diminished sense of the sacred, ultimately causing religion to “perish.” -
The End of the Religious Era and the Advent of the Divine Human
Huh Kyung-young declares that the “religious era has ended” due to the academicization and digital accessibility of faith. He asserts that the current age, devoid of the “tribulation” and “refinement” that once fueled religious fervor, is ripe for the arrival of a “Divine Human” (신인). He positions himself as this Divine Human, explaining his teachings in an easily understandable manner. He recalls a time when uneducated grandmothers passionately attended early morning prayers, spreading Christianity without formal evangelism. However, such fervent devotion is now rare, as new generations, accustomed to convenience, lack the deep spiritual commitment of their predecessors. -
The Value of Hardship and Gratitude in a Convenient World
Huh Kyung-young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hardship in fostering spiritual growth, contrasting the “Hyungseoljigong” (형설지공) spirit of studying under difficult conditions (using fireflies or snow reflection for light) with the modern era of convenience. He notes that early religious scholars and seminary students, who endured poverty and struggled to pay tuition, developed profound spiritual understanding. However, the modern, well-equipped seminaries, while comfortable, fail to cultivate the same depth of spiritual experience. He concludes that as life becomes easier, faith weakens, signifying the “end of the religious era.” -
The Importance of Appreciation and the Path to Heavenly Blessings
Huh Kyung-young concludes by stressing the importance of gratitude and appreciation in life. He criticizes the common tendency to take conveniences, such as public transportation, for granted, instead of acknowledging the efforts of those who created them. He highlights South Korea’s excellent public transport system, particularly for the elderly, as a “paradise on earth” that often goes unappreciated. He states that praising others is the easiest way to receive blessings on Earth, while criticizing them is the easiest way to commit sin. For heavenly blessings and entry into the spiritual realm, however, one must engage in “blessing” (축복) and “bestowing a name” (명패), which are spiritual acts that transcend earthly praise and forgiveness.
1. 종교와 행복: 재림 예수의 도래와 기존 종교의 한계
일반적으로 종교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비종교인보다 더 높은 행복도를 보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의 행복 지수 상위 4개국인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는 모두 국기에 십자가가 있는 기독교 국가입니다. 많은 국가가 종교를 통해 정신적 행복을 얻었지만, 보혜사(Helper)로 오신 신인(神人)을 통한 행복의 영역에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종교에서는 재림 예수(Reincarnated Jesus)가 도둑같이 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둑같이 오는 재림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재림 예수는 교회나 신도들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정신적인 형태로 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도둑처럼, 즉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처음 나타납니다. 어린아이들은 그를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그를 사기꾼이나 도둑으로 여깁니다. 바로 그가 메시아(Messiah)이자 재림 예수입니다. ‘도둑처럼’ 온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온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장소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조용히, 살며시 옵니다. 예수가 떠난 지 2천 년 후에 그가 오는 것입니다.
재림 예수는 도둑이 머물던 조용한 곳에 옵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 최고의 도둑이 머물던 곳이 성지(Holy Land)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도둑처럼, 도둑이 있던 자리에 오는 것입니다. 나폴레옹은 석가(Sakyamuni), 공자(Confucius), 소크라테스(Socrates)가 다시 나타나면 사람들이 모두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모두 엎드려 경배하게 될 것이며, 이것이 차이점입니다. 신적인 존재는 경배의 대상이지, 환영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늘날의 종교 시설은 경배할 장소가 마땅치 않습니다. 모두 의자에 앉아 있어 땅바닥에 엎드려 경배할 수 없습니다. 이는 형이상학적(Metaphysical)으로뿐만 아니라 형이하학적(Physical)으로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기존 종교 안에서는 메시아가 오지 않습니다. 그는 항상 바깥에서 도둑처럼 나타나 아무도 모르게 옵니다. 그는 사기꾼으로 위장하여 나타나며, 어른들은 그를 사기꾼이나 범죄자로 여깁니다. 이러한 위장(Disguise)이 있어야 진실한 눈을 가진 사람만이 그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기존 종교에 빠진 사람들은 그를 피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 또한 유대에 나타났을 때 박해를 받았습니다. 사람들은 바라바(Barabbas)를 풀어주고 예수를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예수를 죽이려 했던 바나바(Barnabas)나 바울(Paul) 같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며 전도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예수를 인정할 수 없었고, 그렇게 취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는 재림할 때 2천 년 후에 도둑처럼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바로 지금 여기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의 과거와 미래를 오가며, 광채(Radiance)를 주고 축복(Blessing)을 내립니다.
- 다신교 시대와 종교의 변천: 학문화와 영성의 상실
예수 시대에는 다신교(Polytheism)가 일반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전쟁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God of War)인 마르스(Mars)를 섬겼고, 임신을 위해서는 다산의 신(God of Fertility)인 오은 메인(Oen-main)을 섬겼습니다. 바다를 건널 때는 포세이돈(Poseidon) 신을 섬겼습니다. 최소 10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 문화인으로 여겨졌고, 신을 섬기지 않으면 불안해했습니다. 12달이 모두 신과 연결되어 있었고, 예를 들어 2월은 혁명의 신(God of Revolution)인 페브(Feb), 3월은 군대의 신(God of Army)인 마르스, 4월은 사랑의 신(God of Love)인 에프(Apr), 5월은 번식의 신(God of Reproduction)인 메이(May), 6월은 결혼의 신(God of Marriage)인 주노(June)였습니다. 7월은 로마의 시저(Caesar) 장군을 신으로 섬긴 줄라이(July)였고, 8월은 시저의 양아들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섬긴 어거스트(August)였습니다. 10월은 남자의 신(God of Men)인 옥타(Octa), 11월은 전쟁의 신(God of War)인 노(Nov), 12월은 평화의 신(God of Peace)인 디(Dec)였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적어도 12개 정도의 신을 가지고 있어야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같은 사람이 나타나 유일신(Monotheism)을 주장하자,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여호와(Yahweh)는 유대인들이 믿는 종합적인 신이었지만, 이방인들은 다양한 신을 믿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이를 잘 낳게 해주는 바위나 부자가 되게 해주는 금고를 만지며 10가지 이상의 신을 마음속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오고 나니 그러한 신들이 모두 필요 없어졌습니다. 유럽 사람들이 많이 사용했던 12달의 신들은 종교화되기 이전의 상태였습니다. 초기 종교가 오기 전에는 그러한 종교적 피라미드가 필요했습니다.
그가 말한 것처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보이지 않게 도둑처럼 왔다는 것은, 먼저 된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의미합니다. 잎이 무성할 때는 서로를 잘 모르지만,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모든 것이 드러나고 겨울이 되면 싸늘해집니다. 그가 올 때가 된 것입니다. 이제 지구 자체가 겨울에 들어가는 시기이며, 그가 온 것입니다.
기존 기독교는 학문화(Academization)되었습니다. 영생(Eternal Life)이 없는 학문화된 종교가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장로(Elder)가 되어 뜨거운 신앙심으로 기독교를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공부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신앙의 불이 꺼지고 있습니다. 교수들이 늘어날수록 신자 수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기독교를 학문화해 버린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처절한 고난(Suffering) 속에서 스스로 찾아가는 것입니다. 고난은 인내(Patience)를 낳고, 인내는 연단(Refinement)을 낳으며, 연단은 소망(Hope)을 낳고, 소망은 성공(Success)으로 이어집니다. 이 성공은 다른 말로 천국(Heaven)을 의미합니다.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고 고난을 당할 때, 고난은 즐거움과 선물이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고난을 열등감(Inferiority Complex)으로 받아들이고 불평합니다. 이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존재 질서(Order of Existence)에는 상위 개념이 있습니다. 재벌(Chaebol)이 된 사람들은 모두 인내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고난을 무시하고 불평하는 것은 질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평등하지만, 쓰임받는 가치는 다릅니다. 무당(Shaman)이 비행기 조종실에 들어가려 하면 안 되는 것처럼, 질서가 있습니다. 종교는 이러한 질서를 잃어버렸습니다. 진짜가 오면 가짜들이 판을 칩니다. 유대교(Judaism)가 예수를 죽이고 2천 년간 나라 없이 저주받았던 것처럼 말입니다.
종교는 고난을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학문으로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네 몸이 진짜 재산이다. 일어나라”는 음성이 들릴 수 있습니다. 몸이 건강하면 전 세계의 물질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종교를 학문으로 만들면서 종교가 사라졌습니다. 미국에는 종교 박사 학위가 없고, 철학(Philosophy) 박사 학위만 있습니다. 종교는 오히려 무식한 할머니가 연단(Refinement)을 겪으며 얻는 인내와 소망을 통해 완성되는 신앙(Faith)입니다. 학문으로는 영적인 소통(Spiritual Communication)이 불가능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들리는 메시지가 종교의 힘이자 영성(Spirituality)입니다.
- 종교의 시대적 변천: 암송, 필사, 그리고 검색 시대
우리 국민이 글자를 모를 때 기독교(Christianity)가 가장 뜨거웠습니다. 글자를 알고 나서부터 기독교는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종교를 학문으로 보기 시작하고, 다양한 책이 나오면서 종교가 학문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종교는 시대에 따라 세 가지 형태로 변천했습니다. 첫째는 암송 시대(Memorization Era)입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 모든 종교는 경전(Scripture)을 암송했습니다. 이스라엘 아이들이 토라(Torah)를 통째로 외우는 것처럼 말입니다. 암송 시대에는 신앙심(Faith)이 뜨거웠습니다. 무식한 사람들이 암송한 그대로 뜨거운 불이 붙었습니다.
둘째는 필사 시대(Transcription Era)입니다. 암송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종이나 돌, 나무에 경전을 새기고 탁본을 뜨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종이가 귀했기 때문에 손으로 베껴 쓰는 필사가 중요했습니다.
셋째는 검색 시대(Search Era)입니다. 지금은 경전을 필사하지 않고 검색하면 모든 것이 나옵니다. 검색 시대에는 신앙심이 식습니다. 핸드폰에 모든 경전이 들어있으니 굳이 머리에 복잡하게 외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종교를 우습게 여기고, 모든 종교가 핸드폰 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종교를 소유물(Possession)로 여기는 것이며, 결국 종교가 사라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옛날에는 한문 책을 하루 종일 외워야 했습니다. 종이가 없고 글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한문을 배울 때 모두 암송했습니다. “아비 부(父)”를 외우는 것 외에는 쓸 곳이 없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암기를 통해 모든 것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경(Bible)을 암송하지 않습니다. 검색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검색 시대에 들어서면서 쇠퇴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경전을 읽으려 하지 않고, 필사하는 사람도 거의 없습니다. 핸드폰으로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데 굳이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종교의 흐름은 종교의 쇠퇴를 가져옵니다. 검색 시대에는 고난이나 연단(Refinement)이 없습니다. 종교가 학문으로 변질되면서 끝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가 온 시대는 신인(神人)의 시대입니다. 그는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모든 것을 설명해 줍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전도(Evangelism)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전파됩니다. 옛날 기독교가 뜨거웠을 때는 한글도 모르는 할머니들이 새벽 기도(Dawn Prayer)를 다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경전을 필사하고 암송했지만, 이제는 검색 시대로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은 종교의 이러한 흐름을 알아야 합니다. 종교가 망하는 이유는 검색 시대에 필요할 때만 보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들어가지 않고, 가슴에도 들어가지 않습니다. 옛날에는 형설지공(螢雪之功)으로 공부했습니다. 반딧불(Firefly) 형(螢)자와 눈(Snow) 설(雪)자를 써서, 반딧불이나 눈빛에 비춰 책을 읽으며 공부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공부한 것입니다. 옛날 성경 공부한 사람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편리해져서 사람들이 기억하려 하지 않습니다. 맨손으로 일어선 형설지공 같은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옛날 신학교(Seminary) 학생들은 등록금이 없어 밭일을 하며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밥을 굶어가며 간신히 등록금을 마련했을 때, 그 공부는 영적으로 깊은 의미를 가졌습니다. 초롱불 하나에 의지해 공부하는 형설지공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편해질수록 신앙심은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 시대는 끝났습니다.
모든 것을 쉽게 이루면 안 됩니다. 전철(Subway)을 타면서 고마워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가용이 없어 전철을 탄다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전철이 매연을 줄이고, 많은 사람이 함께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전철 시스템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공무원(Public Official)들의 노력 덕분입니다. 미국 같은 나라는 자가용 없이는 출퇴근이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노인(Elderly)들이 무료로 전철을 이용할 수 있는 지상낙원(Paradise on Earth)입니다. 그러나 고마워하는 노인은 많지 않고, 당연하게 여깁니다.
남을 칭찬(Praise)하면 행복(Happiness)과 복(Blessing)이 굴러들어옵니다. 남을 칭찬하는 것이 가장 쉽게 복을 짓는 방법이고, 남을 욕하는 것이 가장 쉽게 죄를 짓는 방법입니다. 천국(Heaven)에 가려면 축복(Blessing)과 명패(Nameplate)가 중요합니다. 지상에서는 칭찬이 복을 받는 방법이지만, 영적인 인간은 칭찬만으로는 안 됩니다. 축복과 명패를 해야 비자(Visa)가 나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용서(Forgiveness)를 빌어 죄를 해결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용서만으로는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축복하면 모든 죄가 사라집니다. 항상 명패와 축복이 중요합니다.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일반 종교인보다 행복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으며, 유럽의 행복 지수 상위 4개국 국기에는 공통적으로 이것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십자가, 유럽의 행복 지수 상위 4개국(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국기에는 십자가가 들어가 있으며, 이들 국가가 기독교 국가임을 나타냅니다.)
기존 종교에서 재림 예수는 어떤 방식으로 온다고 묘사되고 있나요?
(도둑같이, 기존 종교에서는 재림 예수가 도둑같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나폴레옹은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환영하지만,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어떻게 할 것이라고 말했나요?
(경배, 나폴레옹은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는 환영의 대상이지만, 재림 예수는 경배의 대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고난, 인내, 연단, 소망으로 이어지는 종교적 과정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라고 설명하고 있나요?
(성공 또는 천국, 고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으며, 연단은 소망을 낳고, 소망은 성공(천국)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종교가 학문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언급된 것은 무엇인가요? (O/X)
종교가 학문화되면 신자 수가 증가한다.
(X, 종교가 학문화되면서 신자 수가 줄어들고 불이 꺼진다고 설명합니다.)
과거에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뜨겁게 믿었던 기독교가, 글자를 알게 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O/X)
(O,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뜨겁게 믿었던 기독교가, 공부한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불이 꺼지고 쇠퇴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합니다.)
중급
다음 중 종교의 세 가지 시대 변화에 대한 설명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① 암송 시대: 종이가 없어 경전을 외우던 시대로, 신앙심이 뜨거웠다.
② 필사 시대: 종이가 귀해 경전을 손으로 베껴 쓰던 시대로, 신앙심이 약해지기 시작했다.
③ 검색 시대: 경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신앙심이 가장 뜨거운 시대이다.
④ 검색 시대: 핸드폰으로 모든 종교 정보를 소유하게 되어 종교를 우습게 여기게 된다.
(③ 검색 시대: 경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신앙심이 가장 뜨거운 시대이다., 검색 시대는 경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신앙심이 약해지고 종교를 우습게 여기는 시대라고 설명합니다.)
종교가 학문이 되면서 사라지는 이유로 가장 적절한 것은 무엇인가요?
① 종교적 가르침이 너무 어려워져서
② 영적인 소통이 어려워지고 신앙심이 약해져서
③ 종교 지도자들이 학문적 지식이 부족해서
④ 종교 시설이 현대화되지 못해서
(② 영적인 소통이 어려워지고 신앙심이 약해져서, 종교가 학문으로 변질되면서 영적인 소통이 어려워지고 신앙심이 약해져 종교가 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종교가 학문이 아닌 ‘영성’이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영적인 소통과 깨달음이 중요하기 때문, 종교는 학문적 지식보다는 고난과 인내를 통해 얻는 영적인 소통과 깨달음, 즉 영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고난을 겪는 사람들이 종교적인 소망을 잃고 열등감에 빠지는 경우, 어떤 문제점이 발생한다고 설명하나요?
(고난을 통해 얻는 인내와 연단의 기회를 놓치게 됨, 고난을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면 인내와 연단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종교적인 소망을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심화
과거 다신교 시대에 사람들이 다양한 신을 섬겼던 주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도움을 얻기 위함, 전쟁, 다산, 항해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불안감을 해소하고 특정 신의 도움을 받아 생존과 번영을 이루고자 다양한 신을 섬겼습니다.)
‘형설지공’이라는 고사성어를 통해 과거의 종교 학습 방식과 현재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얻은 깨달음과 신앙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 형설지공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간절하게 공부하고 암송하며 얻었던 깊은 깨달음과 뜨거운 신앙심이, 현대의 편리한 검색 시대에는 사라지고 있음을 대비하여 설명합니다.)
재림 메시아의 도래 방식과 기존 종교의 한계
재림 메시아는 기존 종교의 예상과 달리 도둑처럼 예고 없이 도래한다. 교회나 신도에게 직접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소와 방식으로 임한다. 이는 마치 사기꾼이나 도둑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형태로 위장하여 나타나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기성세대는 그를 ‘꾼’이나 ‘도둑’으로 치부한다. 나폴레옹의 언급처럼,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들은 환영받지만, 재림 예수는 경배의 대상이므로 사람들이 엎드려 경배할 장소가 없는 현대 교회의 구조에서는 그를 맞이하기 어렵다. 이는 재림 메시아가 형이상학적 차원을 넘어 형이하학적 현실에서도 기존 종교 체계 내에 들어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메시아는 기성 종교의 외부에서 도둑처럼 나타나며, 그 존재는 일반인에게는 사기꾼으로 위장되어 인식된다. 진실한 눈을 가진 자만이 그를 알아볼 수 있으며, 기성 종교에 갇힌 자들은 그를 피해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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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교 시대와 유일신 사상의 출현
과거 다신교 시대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신을 섬겼다. 전쟁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마르스)을, 임신을 원할 때는 다산의 신(마이아)을 섬기는 등, 최소 12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만 생활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12달의 이름 또한 각기 다른 신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불안감 속에서 여러 신에게 의지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다신교적 믿음은 점차 사라지고 유일신 사상이 확산되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라는 종합 신을 믿었지만, 이방인들은 여전히 다양한 신을 숭배했다. 한국 또한 과거에는 여러 신을 섬기는 문화가 있었으나, 신인이 도래한 이후에는 이러한 다신교적 믿음이 불필요해졌다. 이는 종교 이전의 다신교적 상태가 종교화되는 과정을 거쳐왔음을 시사한다. -
종교의 학문화와 영성의 쇠퇴
기성 종교, 특히 기독교는 학문화되면서 영생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과거에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이 뜨거운 신앙심으로 기독교를 전파했지만, 학문적 지식을 갖춘 교수들이 등장하면서 신앙의 불꽃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교수 수가 늘어날수록 신자 수는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종교는 고난을 통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으며, 연단은 소망을 낳아 궁극적으로 성공(천국)에 이르는 과정이다. 고난을 통해 천국에 갈 소망을 품고 인내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그러나 고난을 단순히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종교적 인간이 아니며, 사회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재벌이나 육군 대장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난과 인내의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종교는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학문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에서 들려오는 영적인 음성을 통해 깨닫는 영성이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던 시기에 기독교는 가장 번성했으며, 글자를 알고 학문으로 종교를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
종교 경전의 시대적 변천과 신앙심의 약화
종교 경전은 시대에 따라 암송 시대, 필사 시대, 그리고 현재의 검색 시대로 변화해왔다. 암송 시대에는 종이가 없어 경전을 통째로 외웠으며, 이는 뜨거운 신앙심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 아이들이 토라를 외우는 것처럼, 당시 사람들은 경전을 몸에 체득했다. 이후 필사 시대에는 종이나 돌에 경전을 기록하여 전파했다. 그러나 현대의 검색 시대에는 스마트폰으로 경전 구절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경전을 암송하거나 필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종교를 소유의 개념으로 전락시키고,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검색 시대에는 고난이나 연단을 겪을 기회가 줄어들면서 종교의 본질적인 힘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 형설지공(螢雪之功)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반딧불이나 눈빛에 의지해 공부하며 신앙을 키웠던 시대와 달리, 현대는 너무 편리해져 신앙심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신학교 등록금이 없어 밭일을 하며 어렵게 공부했던 과거의 신학생들과 달리, 지금은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며, 신인이 도래하는 시대가 왔음을 시사한다. -
감사와 칭찬의 중요성, 그리고 천국으로 가는 길
우리는 모든 것을 쉽게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전철을 타면서도 그 편리함과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매연 없이 많은 사람이 함께 이동할 수 있는 전철의 고마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대한민국은 노인들이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등 서민 교통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 갖춰져 있다. 이러한 혜택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남을 칭찬하는 것은 이 지상에서 복을 짓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남을 욕하는 것은 죄를 짓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칭찬을 넘어 축복과 명패(名牌)가 필요하다. 용서 또한 이 세상에서는 사과로 해결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축복과 명패를 통해 죄가 소멸된다. 따라서 항상 축복과 명패를 행하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중요한 길이다.
재림 메시아의 도래 방식과 기존 종교의 한계
재림 메시아는 기존 종교의 예상과 달리 도둑처럼 예고 없이 도래한다. 교회나 신도에게 직접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예상치 못한 장소와 방식으로 임한다. 이는 마치 사기꾼이나 도둑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형태로 위장하여 나타나는 것과 같다. 어린아이들은 이를 직관적으로 받아들이지만, 기성세대는 그를 ‘꾼’이나 ‘도둑’으로 치부한다. 나폴레옹의 언급처럼, 석가, 공자, 소크라테스 같은 성인들은 환영받지만, 재림 예수는 경배의 대상이므로 사람들이 엎드려 경배할 장소가 없는 현대 교회의 구조에서는 그를 맞이하기 어렵다. 이는 재림 메시아가 형이상학적 차원을 넘어 형이하학적 현실에서도 기존 종교 체계 내에 들어올 수 없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메시아는 기성 종교의 외부에서 도둑처럼 나타나며, 그 존재는 일반인에게는 사기꾼으로 위장되어 인식된다. 진실한 눈을 가진 자만이 그를 알아볼 수 있으며, 기성 종교에 갇힌 자들은 그를 피해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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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신교 시대와 유일신 사상의 출현
과거 다신교 시대에는 사람들이 다양한 신을 섬겼다. 전쟁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마르스)을, 임신을 원할 때는 다산의 신(마이아)을 섬기는 등, 최소 12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만 생활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12달의 이름 또한 각기 다른 신의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당시 사람들이 불안감 속에서 여러 신에게 의지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예수가 도래하면서 이러한 다신교적 믿음은 점차 사라지고 유일신 사상이 확산되었다. 유대인들은 여호와라는 종합 신을 믿었지만, 이방인들은 여전히 다양한 신을 숭배했다. 한국 또한 과거에는 여러 신을 섬기는 문화가 있었으나, 신인이 도래한 이후에는 이러한 다신교적 믿음이 불필요해졌다. 이는 종교 이전의 다신교적 상태가 종교화되는 과정을 거쳐왔음을 시사한다. -
종교의 학문화와 영성의 쇠퇴
기성 종교, 특히 기독교는 학문화되면서 영생의 본질을 잃어버렸다. 과거에는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무지한 사람들이 뜨거운 신앙심으로 기독교를 전파했지만, 학문적 지식을 갖춘 교수들이 등장하면서 신앙의 불꽃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교수 수가 늘어날수록 신자 수는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종교는 고난을 통해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으며, 연단은 소망을 낳아 궁극적으로 성공(천국)에 이르는 과정이다. 고난을 통해 천국에 갈 소망을 품고 인내하는 것이 종교의 본질이다. 그러나 고난을 단순히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종교적 인간이 아니며, 사회의 질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재벌이나 육군 대장처럼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고난과 인내의 과정을 거쳐 그 자리에 오른 것이다. 종교는 이러한 고난의 과정을 학문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절망적인 상황에서 들려오는 영적인 음성을 통해 깨닫는 영성이다.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뜨겁게 신앙생활을 하던 시기에 기독교는 가장 번성했으며, 글자를 알고 학문으로 종교를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
종교 경전의 시대적 변천과 신앙심의 약화
종교 경전은 시대에 따라 암송 시대, 필사 시대, 그리고 현재의 검색 시대로 변화해왔다. 암송 시대에는 종이가 없어 경전을 통째로 외웠으며, 이는 뜨거운 신앙심으로 이어졌다. 이스라엘 아이들이 토라를 외우는 것처럼, 당시 사람들은 경전을 몸에 체득했다. 이후 필사 시대에는 종이나 돌에 경전을 기록하여 전파했다. 그러나 현대의 검색 시대에는 스마트폰으로 경전 구절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경전을 암송하거나 필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는 종교를 소유의 개념으로 전락시키고, 신앙심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검색 시대에는 고난이나 연단을 겪을 기회가 줄어들면서 종교의 본질적인 힘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 형설지공(螢雪之功)처럼 어려운 환경에서 반딧불이나 눈빛에 의지해 공부하며 신앙을 키웠던 시대와 달리, 현대는 너무 편리해져 신앙심이 약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신학교 등록금이 없어 밭일을 하며 어렵게 공부했던 과거의 신학생들과 달리, 지금은 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영적인 깨달음을 얻기 어렵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 시대의 종말을 의미하며, 신인이 도래하는 시대가 왔음을 시사한다. -
감사와 칭찬의 중요성, 그리고 천국으로 가는 길
우리는 모든 것을 쉽게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전철을 타면서도 그 편리함과 공무원들의 노고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매연 없이 많은 사람이 함께 이동할 수 있는 전철의 고마움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대한민국은 노인들이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등 서민 교통 시스템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잘 갖춰져 있다. 이러한 혜택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하다. 남을 칭찬하는 것은 이 지상에서 복을 짓는 가장 쉬운 방법이며, 남을 욕하는 것은 죄를 짓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칭찬을 넘어 축복과 명패(名牌)가 필요하다. 용서 또한 이 세상에서는 사과로 해결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축복과 명패를 통해 죄가 소멸된다. 따라서 항상 축복과 명패를 행하는 것이 천국으로 가는 중요한 길이다.
The Metaphysics of Suffering and Spiritual Evolution in Huh Kyung Young’s Teachings
Vocabulary
신인 (神人): [신적 존재 (Divine Entity)], Celestial Being, Transcendent Figure, God-Man
보혜사 (保惠師): [위로자/조력자 (Comforter/Advocate)], Divine Helper, Spiritual Guide, Paraclete
재림 예수 (再臨 예수): [재림한 예수 (Second Coming of Jesus)], Christ’s Return, Messianic Reappearance, Eschatological Advent
형이상학적 (形而上學的): [형이상학적 (Metaphysical)], Abstract, Transcendent, Philosophical
형이하학적 (形而下學的): [형이하학적 (Empirical/Material)], Concrete, Tangible, Phenomenological
메시아 (메시아): [구원자 (Messiah)], Savior, Deliverer, Anointed One
다신교 (多神敎): [다신교 (Polytheism)], Pluralistic Deities, Pantheon Worship, Multiple Gods
학문화 (學文化): [학문적 체계화 (Academization)], Institutionalization of Knowledge, Scholarly Formalization, Intellectual Systematization
고난 (苦難): [고통/시련 (Suffering/Ordeal)], Adversity, Tribulation, Hardship
인내 (忍耐): [인내 (Endurance/Patience)], Fortitude, Perseverance, Resilience
연단 (鍊鍛): [단련/정련 (Refinement/Tempering)], Spiritual Discipline, Character Building, Purification
소망 (所望): [희망/염원 (Hope/Aspiration)], Expectation, Longing, Vision
천국 (天國): [천국 (Heaven/Paradise)], Celestial Realm, Divine Abode, Elysium
영성 (靈性): [영적 본질 (Spirituality)], Inner Essence, Divine Connection, Transcendental Nature
암송 시대 (暗誦 時代): [암기 시대 (Era of Memorization)], Oral Tradition Period, Recitation Age, Rote Learning Epoch
필사 시대 (筆寫 時代): [필사 시대 (Era of Transcription)], Manuscript Period, Copying Age, Scribing Epoch
검색 시대 (檢索 時代): [검색 시대 (Era of Search/Information Retrieval)], Digital Age, Information Access Period, Query Epoch
형설지공 (螢雪之功): [어려운 환경에서의 학문적 노력 (Diligence in Adversity/Study under Difficult Conditions)], Perseverance in Learning, Self-Taught Endeavor, Hard-Earned Scholarship
신인(神人)-(God-man, Divine Human)
보혜사(保惠師)-(Comforter, Advocate, Helper)
재림(再臨)-(Second Coming, Reappearance)
경배(敬拜)-(Worship, Adoration)
화신(化身)-(Incarnation, Embodiment)
형이상학(形而上學)-(Metaphysics)
형이하학(形而下學)-(Physics, Material Science)
박해(迫害)-(Persecution, Oppression)
다신교(多神敎)-(Polytheism)
다산(多産)-(Fertility, Fecundity)
후손(後孫)-(Descendant, Posterity)
성지(聖地)-(Holy Land, Sacred Place)
학문화(學文化)-(Academization)
영생(永生)-(Eternal Life, Immortality)
고난(苦難)-(Suffering, Hardship)
인내(忍耐)-(Patience, Endurance)
연단(鍊鍛)-(Refinement, Discipline)
소망(所望)-(Hope, Wish)
필사(筆寫)-(Transcription, Copying by hand)
암송(暗誦)-(Memorization, Recitation)
형설지공(螢雪之功)-(Study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Diligent study)
This excerpt comes from an interview with Heo Kyung-young on “Heo Kyung-young TV,” where he discusses the evolution of religion and its connection to happiness. He challenges conventional religious views, emphasizing the limitations of traditional faith in the modern “search era” and highlighting the importance of spiritual experience over academic understanding.
The Arrival of the Messiah and the Nature of True Faith
The Messiah’s Incognito Arrival
Heo Kyung-young asserts that the Messiah arrives “like a thief,” meaning unexpectedly and often disguised in a way that challenges established religious norms. This makes it difficult for those entrenched in traditional religious institutions to recognize him. He emphasizes that the Messiah doesn’t come to churches or as a typical believer, but rather appears in an unassuming manner, often initially perceived as a “swindler” or “thief” by adults, while children might be more receptive. This contrarian arrival is a key characteristic of his coming.
그러니까 기존 종교는, 어, 재림 예수가 오면은, 예, 도둑같이 온다고 그랬잖아. 근데 그 사람들은 도둑같이 오는 재림 예수를 만날 수가 없어. 도둑같이 오니까. 어디서 오냐? 교회로 오는 게 아니야. 신도로 찾아오는 게 아니야. 어, 근데 도둑처럼 와. 그러니까 사기꾼이라 소리를 듣고 오는 거야, 처음에. 어, 알 수 없게 도둑으로 위장해 가 온단 말이야. 그러니까 어린애들은 좋아하는데, 어른들은 꾼이다, 도둑이다, 이 말, 말하면은 그 자가 메시아요. 아, 그 자가 재림 예수야. 도둑처럼이라는 건 도둑맞 같이 오는 거야. 재림에 올 때는 도둑처럼 이렇게 조용한 곳에 오는 거야. 꼭 바깥에서 도둑처럼, 음, 네, 나타나서 아무도 모르게, 예, 나타나는 거야. 그게 내야. 아, 근데 사기꾼으로 위장을 해가 나타나. “저 사람이 가짜야, 저 사람이 나쁜 놈이야.” 이렇게 위장이 돼 있어야 진실한 눈을 가진 사람은 알아보지, 일반 사람은 가는 거야.
So, traditional religions say that when the Second Coming of Jesus comes, he will come like a thief. But those people cannot meet the Second Coming of Jesus who comes like a thief. Because he comes like a thief. Where does he come from? He doesn’t come to church. He doesn’t come as a believer. But he comes like a thief. So, at first, he is called a swindler. He comes disguised as a thief in an unknown way. So, children like him, but adults say he’s a trickster, a thief. If they say that, that person is the Messiah. Ah, that person is the Second Coming of Jesus. “Like a thief” means he comes like a thief. When he comes for the Second Coming, he comes to a quiet place like a thief. He definitely appears from outside like a thief, without anyone knowing. That’s me. Ah, but he appears disguised as a swindler. “That person is fake, that person is a bad guy.” He has to be disguised like that for those with true eyes to recognize him; ordinary people just pass by.
Worship vs. Welcome: The Divine Distinction
Heo Kyung-young draws a sharp distinction between how people react to great historical figures like Buddha, Confucius, or Socrates, and how they would react to the Second Coming of Jesus. While the former would be “welcomed” with standing ovations, the latter would command “worship,” requiring people to prostrate themselves. This highlights the divine, spiritual nature of the Messiah as an object of reverence, not just admiration.
그 나폴레옹이 뭐라 그러냐면,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이 지상에, 이 방에 다시 나타난다면, 예, 이 왕궁에 나타난다면, 그지, 자기들이 있는 그 방에, 예수는, 아,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나타나면 전부 환영한다, 이 말, 서서 환영. 근데 재림 예수가 이 방안에 나타나면 전부 엎드려서 경배를 하게 된다, 그게 차이야. 어, 그러니까 석가나 공자나 무슨, 소태사나 이런 사람이 나타날 때는 전부 환영을 하지마, 재림 예수가 나타날 때는 뭐 해야 된다? 경배. 전부 땅바닥에 엎드려서 경배를 해야 된다, 그건 하나님의 화신이다, 이 말이야. 그러니까 신적인 거, 영적인 것은 경배 대상이야, 환영 대상이 아니야.
Napoleon said that if Sakyamuni, Confucius, or Socrates were to reappear on this earth, in this room, in this palace, in their own room, everyone would welcome them, standing and welcoming them. But if the Second Coming of Jesus were to appear in this room, everyone would prostrate themselves and worship him; that’s the difference. So, when Sakyamuni, Confucius, or Sot’aesa appear, everyone welcomes them, but when the Second Coming of Jesus appears, what should they do? Worship. Everyone must prostrate themselves on the ground and worship him; that means he is an incarnation of God. So, something divine, something spiritual, is an object of worship, not an object of welcome.
The End of the Religious Era: From Polytheism to Monotheism to the “Search Era”
Heo Kyung-young traces the evolution of religious belief from ancient polytheism, where people worshipped multiple gods for different aspects of life (e.g., war, fertility, sea), to the rise of monotheism with figures like Jesus. He argues that this era is now giving way to a new phase, the “search era,” where religion is becoming academicized and easily accessible through technology. This shift, he believes, is leading to the decline of traditional faith and the need for a new spiritual paradigm.
옛날에는 다 신겨야, 다신교. 예수가 내가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신을 섬겨. 전쟁 태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을 섬겨야 살아와. 저, 그렇게 믿는 거야. 최소한 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 그게 문화인이, 어, 타고 갈 때는 포세이돈 신을 섬겨야 돼. 바다여, 어, 그래, 안 그래? 어, 그럼 안 섬기는 놈은 죽는다고 생각해. 불안한 거야. 근데 내가 이제 오고 나니까 그게 다 필요가 없어. 다 정결해야 돼. 그게 종교 이전 상태야. 그 초정 종교가 오기 전에는 그런 종교 피라미드도 필요하고 다 이게 다 그거하고 영관이 있어. 그래서 기선 기성 종교는 어, 기독교는 어, 학문화 되었어. 영생이 없는 거야. 종교가 네, 학문화 됐단 말이야. 신학교가네, 옛날에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들이 장로가 되고, 이 사람들은 뜨거웠어. 글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무지무지하게 불이 붙어 가지고 막 기독교가 퍼져 나간 거야. 근데 공부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불이 꺼지고 있는 거야. 교수들이 기독교 교수들이 나타나면서 불이 꺼지는 거야. 교수 숫자가 늘어난 만큼 신자 숫자가 줄어들어. 기독교를 학문화 해 버리는 거야. 종교는 학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끝이지, 그거. 그 신인이 오는 시대가 온 거야.
In the past, it was polytheism, polytheism. When I, Jesus, was there, everyone worshipped various gods. When going to war, you had to worship the god of war to survive. That’s what they believed. You had to worship at least a certain number of gods to be a cultured person; when riding, you had to worship the god Poseidon. The sea, right? If you didn’t worship, you thought you would die. It was unsettling. But now that I’ve come, all that is unnecessary. Everything must be purified. That was the state before religion. Before the first religion came, such religious pyramids were necessary, and all of this was connected to that. So, established religions, Christianity, became academicized. There is no eternal life. Religion, yes, became academicized. In seminaries, people who hadn’t even finished elementary school became elders in the past, and these people were fervent. When people who barely knew how to read believed in God, Christianity spread like wildfire with immense passion. But as educated people began to appear, the fire started to die out. As Christian professors appeared, the fire died out. The number of believers decreased as the number of professors increased. They academicized Christianity. Religion is over because it has entered academia. The era of the divine human has come.
The Power of Suffering and Spiritual Experience
Heo Kyung-young argues that true religion is born from suffering, not from academic study. He outlines a process: suffering leads to patience, patience leads to refinement (연단), and refinement leads to hope, which ultimately leads to success or “heaven.” He criticizes the academicization of religion, stating that it extinguishes the spiritual fire that once fueled faith among the uneducated. He emphasizes that spiritual communication and the power of the divine are found in moments of utter despair, not in intellectual understanding.
기독교는 그런 게 아니야. 처절하게 암에 걸레가 다 주고 가다가 돈 다 떨어지고 배고프고 이럴 때 스스로 찾아가서, 그래 안 그래? 어, 처절한 경험에 의해서 고난이, 그러니까 기독교는 뭐냐면은, 예, 한 마디로서 종교는, 종교를 만들어내는, 종교는 만들어내는 게 뭐, 내가 옛날에 강의해 줬지? 고난, 고난. 이 고난은, 고난은 뭘 낳는다 그랬어? 고난, 연단. 연단. 고난은 연단을 낳지. 연단, 그 인내를 먼저 낳는 거야. 인내가 연단을 낳지. 인내가 없으면 연단이, 연단 단계 안 가네. 연단은 뭘 줘? 소망. 소망을 주지. 소망을 준다, 이 말이야, 그러면 이 소망이 성공, 물을 익으면서 성공이 되지, 그래서 이루어지는 거야, 그지? 그러면 고난이 내고, 인내가 연단을 놓고, 연단이 소망이 되고, 소망이 성공을 가는 거거든. 그 모든 종교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소망, 성공이 천국이야. 종교는 학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끝이지, 그거. 그 신인이 오는 시대가 온 거야. 종교는 학문이 아니야. 종교는 영성이라. 그래서 우리 국민이 글자를 모를 때가 제일 기독교가 뜨거웠어, 맞나, 맞나? 글자를 모를 때 뜨거웠지. 근데 글자를 알고 나서부터 기독교가 쇠퇴하는 거야. 종교를 학문으로 봐 버리는 거야.
Christianity is not like that. It’s when you’re desperately sick with cancer, losing everything, running out of money, and starving, that you seek it out yourself, right? It’s through desperate experience that suffering, so what is Christianity? In a word, religion, what creates religion, I lectured on this before, right? Suffering, suffering. What does this suffering, suffering, give birth to? Suffering, refinement. Refinement. Suffering gives birth to refinement. Refinement, it first gives birth to patience. Patience gives birth to refinement. Without patience, there is no refinement, it doesn’t go to the refinement stage. What does refinement give? Hope. It gives hope. It gives hope, that is, this hope matures into success, and then it is achieved, right? So, suffering comes, patience leads to refinement, refinement becomes hope, and hope leads to success. All religions go through this process, and hope, success, is heaven. Religion is over because it has entered academia. The era of the divine human has come. Religion is not academia. Religion is spirituality. So, when our people were illiterate, Christianity was at its hottest, right? It was hot when people were illiterate. But after people learned to read, Christianity began to decline. They started to see religion as academia.
The Decline of Faith in the “Search Era”
From Memorization to Search: The Loss of Deep Faith
Heo Kyung-young describes the historical progression of religious engagement: from the “memorization era” (암송 시대) where scriptures were committed to memory due to the lack of written materials, to the “transcription era” (필사 시대) where texts were copied, and finally to the current “search era” (검색 시대). He argues that while the memorization era fostered fervent faith, the search era, with its instant access to information via technology, leads to a superficial understanding and a decline in genuine spiritual connection. People no longer internalize religious teachings, viewing them as mere information to be looked up.
우리의 모든 종교가 전해 오는 게, 예, 처음에는, 처음에는 암송 시대가 있었어. 모든 종교에 종이가 없었잖아.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도 토라를 외우지. 경전을 통째로 외워 버려. 이스라엘 애들은 경전을 달달달 외워, 토라를 외워. 그러니까 암송 시대야, 맞아, 안 맞아? 그다음에는 뭐야? 필사 시대. 지금은 뭐요? 지금은 종교가 뭘로 바뀌어, 이렇게 바뀌었어. 검색 시대야. 지금은 경전을 필사 안 해. 검색하면 나와, 아 그래, 그래. 암송 시대와 검색 시대가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은, 암송하던 시대는 신앙심이 뜨거워, 아, 무식한 사람들이고, 예, 딱 암송한 그대로 불이 뜨거워요. 검색 시대는 “어머, 핸드폰에 있어. 기독교 불 검색하면 나와.” 경제 구절이 뭐 머리에 들어올까? 안 들어옵니다. 들어 있는 걸 뭘로 복잡하게 머리에 집어넣어, 그냥 검색해서 보면 되는데, 이걸 우습게 봐. 이걸 우습게, 종교를 우습게 하는 거야. 이제 “아이, 내 핸드폰 안에 모든 종교가 다 들어 있어.” 이러니까 소유로 해버린 거야. 종교는 없어지는 거야.
All our religions have been passed down, yes, first, there was an era of memorization. There was no paper for any religion. So, even now in Israel, they memorize the Torah. They memorize the entire scripture. Israeli children memorize the Torah by heart. So, it’s the era of memorization, right? What’s next? The era of transcription. What about now? Now, religion has changed like this. It’s the search era. Now, they don’t transcribe scriptures. You can find it by searching, oh, right. The difference between the memorization era and the search era is that in the memorization era, faith was fervent, oh, among uneducated people, yes, the fire was hot exactly as they memorized it. In the search era, “Oh, it’s on my phone. If I search for ‘Christianity fire,’ it comes up.” Will the economic verses come into your head? No, they won’t. Why bother putting what’s already there into your head when you can just search and see it? They take it lightly. They take religion lightly. Now, “Oh, all religions are in my phone.” So, they’ve made it about possession. Religion is disappearing.
The Value of Hardship in Spiritual Growth
Heo Kyung-young laments the decline of “Hyungseoljigong” (형설지공) – the dedication to study under difficult circumstances, like using fireflies or snow reflection for light. He argues that this kind of hardship, which was common for students and early religious figures, fostered a deep spiritual connection and strong faith. Modern convenience, with readily available resources and comfortable seminaries, has weakened this spiritual resolve, making it harder for people to experience profound spiritual growth.
옛날에는 공부를 성경을 볼 때 사람들이 전등 불로 보나, 호롱 불로 봤지? 예, 그지? 그러면 호롱 불로 봤다는 그 자체가 뭐야? 우리가 다잡, 호롱 불로 봤다는 게 이게 반딧불 형자야. 형설지공이라는 거는 반딧불로 공부한 거야. 눈하고 반딧불로, 네. 눈이 왔을 때 눈에 비쳐 가지고 공부를 했어. 또 반딧불을 모아 가지고 벌레를, 개똥 벌레, 개똥 벌레를 모아 가지고 그게 불이 비이 나잖아. 그걸 보고 책을 비쳐서 공부를 했단 말이야. 아, 그 무, 제가 가난한 공부를 한 거지, 옛날에 형설, 형설지공. 어, 이렇게 반딧불과 눈, 흰 색깔이 흰 색깔과 이걸로 가지고 눈빛을, 눈이 많이 왔을 때 눈빛으로 글자가 보이는 거네. 그렇게 공부를 한 사람들이 항상 암송을 한 거야. 아, 그게 옛날 성경 공부한 사람들이야. 근데 얼마 기가 막혀, 그지? 근데 지금은 너무 편리해진 거야.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억을 하지 않는다. 형설지공 해야, 이거는 이제 과학 한 사람들을 형설지공 했다 그래, 네. 어, 맨손으로 일어났다, 형설지공, 이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 이 말이야. 갈수록 신앙심이 약해질 수밖에, 편해지면 약해지는 거야. 종교 시대가 끝났어.
In the past, when people studied the Bible, did they use electric lights or oil lamps? Yes, right? So, what does it mean that they used oil lamps? We all know that using an oil lamp refers to the character for firefly (형). Hyungseoljigong (형설지공) means studying by firefly light. With snow and fireflies, yes. When it snowed, they studied by the light reflected from the snow. They also gathered fireflies, dung beetles, and the light from them shone. They used that light to illuminate books and study. Ah, that’s the kind of poor study I’m talking about, Hyungseoljigong from the past. Oh, with fireflies and snow, the white color, and this, the light from the snow, when there was a lot of snow, the letters were visible by the snowlight. People who studied like that always memorized. Ah, those were the people who studied the Bible in the past. But how amazing, right? But now it’s too convenient. So, people don’t remember. Hyungseoljigong, this is what people who studied science did, yes. Oh, they started from scratch, Hyungseoljigong, such people no longer exist. Faith is bound to weaken as time goes on; it weakens when things become convenient. The era of religion is over.
The Path to True Happiness and Heavenly Blessings
Gratitude and Praise: The Easiest Way to Receive Blessings
Heo Kyung-young emphasizes that gratitude and praising others are the easiest ways to receive blessings on Earth. He criticizes the lack of appreciation for public services like subways, urging people to acknowledge the efforts of those who created them. He contrasts this earthly method of receiving blessings with the spiritual path to heaven, which requires “blessing” (축복) and “nameplate” (명패) – a concept unique to his teachings.
우리는 뭐든지 쉽게 이루면 안 되네, 쉽게 이루면 세상에 전철 타 가지고 고마워하는 사람 하나도 없어. 나는 왜 자가용 없이 전철 타고 요러고 앉아 있어, 네? 그래, 안 그래? 그 전철이 매연도 안 나오고 남한테 매연도 안 마시게 하고, 네, 남들과 함께 같이 가는 전철의 고마움을 알아야 돼. 세계에서 이 우리나라 전철을 이렇게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거, 참 공무원들이 그래도 잘했다, 네, 마을 생각해야 되는 거예요. 우리는 언제나 남에게, 남을 칭찬하면 행복이, 네, 복이 그냥 굴러들어와. 제일 복짓기 쉬운 게 남 칭찬, 제일 죄짓기 쉬운 게 남 욕하는 거라.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는 방법은 남 칭찬하는 거야. 근데 천국에서, 천국 가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축복, 천국 축복, 천국을 가, 복을 받으려면 뭐 해야 돼? 축복, 명패. 그게 차이지.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기 쉬운 게 칭찬이야. 그러나 천국 갈 사람은, 영적인 인간은, 네, 칭찬만 해서 되는 게 아니야. 뭘 해야 되나? 축복. 축복과 명패 해야 비자가 나와.
We shouldn’t achieve anything too easily; if we do, no one appreciates taking the subway in this world. “Why am I sitting here taking the subway without a car?” Right? We should appreciate the subway that doesn’t emit exhaust fumes, doesn’t make others breathe exhaust fumes, and allows us to go together with others. We should think that the civil servants who built this subway system in our country, among all the countries in the world, did a good job. We should always praise others; then happiness, blessings, will just roll in. The easiest way to earn blessings is to praise others, and the easiest way to commit sins is to badmouth others. On this earth, the easiest way to receive blessings is to praise others. But in heaven, if you want to go to heaven, to receive the greatest blessing, the heavenly blessing, what should you do? Blessing, nameplate. That’s the difference. On this earth, the easiest way to receive blessings is praise. However, for those who want to go to heaven, for spiritual beings, yes, praise alone is not enough. What should they do? Blessing. You need blessing and a nameplate to get a visa.
Forgiveness vs. Nameplate: Heavenly Justice
Heo Kyung-young differentiates between earthly forgiveness and heavenly justice. On Earth, apologizing and seeking forgiveness can resolve sins. However, in the spiritual realm, simply asking for forgiveness does not erase sins. Instead, “nameplate” (명패) and “blessing” (축복) are the means by which sins are eradicated and a “visa” to heaven is obtained. This highlights a unique aspect of his spiritual doctrine, where specific actions are required for divine absolution.
또 이 세상에서는 남한테 용서하는 게 제일, 남한테 죄진 것을 해결하는 게 빠른 게 미안하게 사과하는 거잖아. 용서를 비는 거잖아. 근데 저 세상 하늘나라는 용서 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 명패. 아, 축복하면 다 없어져 버려. 알았지? 항상 명패와 축복이 중요한 거예요.
Also, in this world, the fastest way to resolve sins committed against others is to apologize and ask for forgiveness, right? To beg for forgiveness. But in the heavenly realm, sins don’t disappear just by asking for forgiveness. Nameplate. Ah, if you bless, they all disappear. Understood? Nameplate and blessing are always important.
재림 예수 : [Reincarnated Jesus (Messianic Return)]
보혜사 : [Comforter (Divine Advocate)]
형이상학적 : [Metaphysical (Transcendent)]
형이하학적 : [Phenomenological (Empirical)]
고난 : [Adversity (Spiritual Crucible)]
인내 : [Endurance (Resilience of Spirit)]
연단 : [Refinement (Process of Purification)]
소망 : [Aspiration (Divine Hope)]
천국 : [Heaven (Ultimate Fulfillment)]
다신교 : [Polytheism (Plurality of Deities)]
학문화 : [Academization (Intellectual Formalization)]
영성 : [Spirituality (Inner Resonance)]
암송 시대 : [Era of Oral Tradition (Memorization Epoch)]
필사 시대 : [Era of Scriptorium (Manuscript Transcription)]
검색 시대 : [Era of Digital Retrieval (Information Access)]
형설지공 : [Diligence in Adversity (Arduous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