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1 x102 Huh Kyung young’s Insights on Maintaining One’s Original Intentions.

예수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으며, 이것이 진정한 초심이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을 우선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놓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상대방을 불행하게 만들 욕심이 아닌, 아버지와 같은 높은 차원의 사랑이다.

2024.03.01 x102. Huh Kyung young’s Insights on Maintaining One’s Original Intentions. The Challenge of Upholding “Chosim” in a Corrupt World

Hidden Order and Human Free Will: A Philosophical Examination of Universal and Earthly Systems

초심의 중요성과 유지 방법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제공합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삶의 여러 영역에서 진정한 자신을 지키는 지혜를 얻는 것이 최종 결과물.

  1. 초심의 정의와 중요성 이해
  • 초심은 ‘소명’, ‘소망’, ‘꿈’, ‘희망’과 같은 자기 본연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 초심은 개인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가졌던 순수하고 깨끗한 첫 마음.
  • 초심을 지키는 것은 성인(聖人)의 특징이며, 처음과 끝이 일치하는 삶을 가능하게 합니다.
  • 초심을 잃으면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습니다.
  1. 초심을 잃는 원인 파악
  • 사회 구조적 요인: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예토(더러운 땅)’이므로, 때가 묻기 쉽습니다.
    • 공무원, 장교 등 처음에는 청렴하지만, 현실적인 필요(가족 부양 등)로 인해 초심을 잃기 쉽습니다.
  • 마음의 변화: 죄는 본래 없지만, 마음이 욕망을 따라가면서 죄가 되고 초심을 잃게 됩니다.
    • ‘재무자성 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는 죄가 본래 없으나 마음을 따라 일어난다는 의미.
  • 욕망의 추구: 불교는 비우는 종교,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이지만, 인간은 사랑 대신 욕망을 채우려 하기에 초심 유지가 어렵습니다.
  • 관계의 변화: 연애나 결혼 초기의 좋은 감정(초심)도 시간이 지나며 상처가 쌓여 변질되기 쉽습니다.
    • 거의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합니다.
  1. 초심을 지키기 위한 자세
  • 중도(中道) 유지: 예토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곧 초심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 중도는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경지.
  • 공심(公心) 유지: 초심은 대부분 사심이 아닌 공심(공적인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 선교사처럼 타인을 돕겠다는 공심이 현실의 어려움(자녀의 죽음, 전염병 등)으로 인해 사심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 서양 선교사들은 가족을 잃어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강직한 초심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 이웃 사랑 실천: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처럼, 이웃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초심을 지키는 길.

    • 층간 소음이나 윗집 누수 문제 발생 시, 상대방을 비난하기보다 이해하고 먼저 도움을 제공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 남의 개가 버린 배설물을 치우는 것처럼, 주변 환경을 내 것처럼 아끼고 돌보는 행동이 초심의 발현.
  • 희망과 꿈 간직: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이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품는 것이 중요합니다.

    •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힘들었던 시절이 오히려 가장 행복하고 희망찼던 때로 기억될 수 있습니다.
  • 변절하지 않는 굳건함: 정몽주처럼 목숨을 걸고 한 임금을 향한 일편단심(초심)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 권력과 이익(농공행상)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 진정한 초심.
  • 진정한 사랑: 상대방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놓아줄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자 초심.

  • 초심을 잃고 욕망에 휩쓸리는 경우:

    • → ‘재무자성 종심기’를 되새기며, 욕망이 아닌 공심과 이웃 사랑에 집중하여 마음을 다스립니다.
  • 현실의 어려움으로 초심이 흔들리는 경우:

    • → ‘예토’라는 현실을 인지하고, 중도를 지키며 긍정적인 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려 노력합니다.
  • 관계에서 상처를 받아 초심을 잃는 경우:

    • → 상대방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관계를 바라봅니다.
  • 초심(初心):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처음 품는 마음. 순수하고 깨끗한 본연의 소망, 소명, 꿈, 희망을 의미.

  • 예토(穢土): 불교 용어로, 번뇌와 고통으로 더러워진 현실 세계를 의미.

  • 정토(淨土): 불교 용어로, 깨끗하고 평화로운 이상 세계를 의미.

  • 재무자성 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는 본래 자성이 없으나, 마음을 따라 일어난다는 불교 경전의 구절.

  • 공심(公心): 사사로운 욕심 없이 공정하고 공적인 마음.

  • 사심(私心): 개인적인 욕심이나 이기적인 마음.

  • 중도(中道): 불교 용어로, 양극단을 떠나 치우치지 않는 올바른 길.

  • 농공행상(論功行賞): 공로를 논하여 상을 줌. 주로 정권 교체 후 공신들에게 관직이나 재물을 나누어 주는 행위.

  • 초심을 지킨 역사적 인물:

    • 석가모니, 예수, 공자: 초심과 종심이 같은 성인들.
    • 간디: 초심과 끄심이 같아 인도에서 존경받는 인물.
    • 정몽주: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을 지키며 죽음을 택한 인물.
  • 초심을 잃은 역사적 인물:

    •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 재임 초기에는 청렴했으나, 말년에는 부패로 오해받음.
    • 혁명가들: 혁명 초기에는 초심을 가졌으나, 나중에는 부패자로 재판받는 경우가 많음.
  • 초심의 비유:

    • 새 차: 처음에는 아끼고 관리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소홀해짐.
    • 연애와 결혼: 처음에는 좋지만, 시간이 지나면 원수가 되기도 함.
    • 태산: 티끌(진진)이 모여 태산이 되듯, 작은 죄들이 쌓여 초심을 잃게 됨.
    • 젊음: 초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이며,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함.

초심을 유지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무엇인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며, 이는 남의 개똥을 치우거나 윗집 누수를 내 돈으로 고쳐주는 등 이타적인 행동으로 발현될 때 진정한 초심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1. 초심의 의미와 중요성
    초심은 개인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의 첫 마음이자 소명 의식으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1.1. 초심의 정의와 본질
    초심은 시작의 마음이자 소명 의식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할 때 첫 마음인 초심을 잃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초심은 개인이나 사회 전반에서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초심은 희망과 꿈을 의미한다
    초심은 영어로 ‘호프(Hope)’ 즉, 자기 소명, 소망, 꿈, 희망을 의미한다.
    초심이 뚜렷한 사람은 처음과 끝이 일치하는 삶을 살 수 있다.

  2. 초심을 잃는 원인과 어려움
    초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외부의 유혹과 환경적 요인, 그리고 마음의 변화 때문이다.
    2.1. 초심 유지가 어려운 이유
    외부 유혹과 환경적 요인
    초심을 지키기 어려운 이유는 중간에 유혹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간디와 같이 초심과 끝심이 같은 인물은 드물며, 정치인 중에서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마음의 변화로 인한 초심 상실
    ‘재무자성 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는 죄는 본래 없으나 마음을 따라 일어난다는 뜻이다.
    죄는 본래 없지만, 마음이 죄를 일으키면 초심을 잃게 된다.
    예토(穢土)에서의 삶
    이 사회는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 즉 깨끗한 땅이 아니라 예토(穢土), 즉 더러운 땅이다.
    예토에서는 오욕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살아가므로 때가 묻기 쉽고, 첫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
    공무원이나 장교들이 임명될 때는 청렴하지만, 살다 보면 가족 부양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초심을 잃기 쉽다.

2.2. 초심 상실의 보편적 현상
인간관계에서의 초심 상실
연애나 결혼 초기의 좋은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한다.
이혼한 부부가 연애 시절 주고받은 편지를 버리지 못하는 것은 초심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티끌이 태산이 되는 과정
‘태산 적각 내 일일 진진 내(泰山積脚來 一日塵塵來)’는 태산도 티끌과 티끌이 모여 만들어진다는 의미이다.
처음에는 깨끗했던 마음도 티끌처럼 작은 죄들이 쌓여 태산처럼 커지면서 초심을 잃게 된다.
이는 마치 순수했던 연인 관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욕설과 나쁜 감정이 쌓여 원수가 되는 것과 같다.
초심을 지키는 것의 어려움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도를 지키는 것만큼 어렵다.
중도는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도의 절정이다.

  1. 초심을 지키는 자세와 방법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이타적인 행동을 실천해야 한다.
    3.1. 초심을 지키는 자세
    혁명가와 정치인의 초심 상실
    대학교 시절 부정부패에 대항하던 젊은 학생들도 나중에는 부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혁명가들도 나중에는 재산 압류 등 부패 혐의로 재판을 받는 경우가 많다.
    공심(公心)에서 사심(私心)으로의 변질
    초심은 대부분 사심이 아닌 공심, 즉 사회에 봉사하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아프리카 선교사의 예처럼, 현실적인 어려움에 직면하면 공심이 사심으로 변질될 수 있다.
    반면, 서양 선교사들은 가족을 잃으면서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는 등 강직하게 초심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선진국 신앙인들의 본받을 만한 점으로, 십자군 정신처럼 초심을 끝까지 지키는 특이한 기사도 정신을 보여준다.

3.2. 초심을 잃는 보편적인 현상
군인과 자동차의 비유
육사생들은 군기가 잡혀 있지만, 장교가 되면 군기가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다.
새 차를 샀을 때 아끼고 관리하려는 초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차가 낡아지면 관리도 소홀해진다.
부부 관계도 처음에는 초심으로 시작하지만, 상처가 쌓이면서 초심이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
초심을 잃은 사람들도 마음속에는 초심이 남아 있어, 흘러간 음악을 들으며 위로를 받기도 한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변호사의 예처럼, 성공 후에도 초심을 가졌던 때를 그리워하는 경우가 많다.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이며, 돈이 없어도 희망이 있어 행복한 때이다.

3.3. 초심을 지킨 인물과 그 의미
정몽주의 일편단심
정몽주는 목숨을 걸고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을 지키며 초심을 잃지 않았다.
이방원이 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몽주는 농공행상(정권 잡은 후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논공을 베푸는 것)에 참여하지 않고 죽음을 택했다.
이는 사심이 아닌 공심을 끝까지 유지한 대단한 초심의 예시이다.
초심을 지키는 것의 바람직함
인간으로서 초심을 지키는 모습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사회적으로도 권장된다.

3.4. 초심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
불교는 비우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이지만, 인간은 욕망을 채우려 하므로 초심 유지가 어렵다.
예수의 가르침처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마음이 초심을 지키는 핵심이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 발생 시, 윗집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소리가 나면 ‘내 새끼들이 뛰어다니는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이 초심을 지키는 태도이다.
이타적인 행동 실천
남의 개가 잔디밭에 싼 똥을 내 개똥처럼 치우는 행동은 초심을 지키는 이타적인 실천이다.
윗집에서 물이 샐 때, 화를 내기보다 먼저 일주일 정도 기다려보고, 그래도 계속되면 내가 수리비를 대주겠다고 제안하여 이웃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해야 한다.
교통사고 발생 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내 보험으로 처리해주는 것도 초심을 지키는 행동이다.
무료 급식을 하는 것도 남이 굶는데 내가 밥 먹고 있을 수 없다는 이타적인 초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초심을 지킬 때 따르는 결과
초심을 가지고 인간성을 지키면 많은 사람이 모여들지만, 기회주의자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고 결국 패망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놓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자 초심이다.

초심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 초심은 자신의 소망과 소명, 즉 공심을 의미하며, 인간은 예토(더러운 땅)에 살기에 때가 묻어 초심을 잃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중도를 지키면 초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1. 초심의 의미와 중요성
    초심은 개인이 어떤 일을 시작할 때 가졌던 첫 마음으로, 자신의 소망, 소명, 꿈, 희망을 의미하며, 대부분 이타적인 공심을 바탕으로 한다.

1.1. 초심의 정의와 본질
초심은 개인의 소망과 소명이다.
초심은 영어로 ‘호프(Hope)’라고 표현할 수 있으며, 자기의 소망, 소명, 꿈, 희망을 뜻한다.
예를 들어, 훌륭한 검사나 법관이 되겠다는 처음의 다짐과 같은 것이다.
초심은 대부분 공심이다.
초심은 사심이 아닌, 사회에 봉사하고 이웃을 돕겠다는 이타적인 마음인 공심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선교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초심에 해당한다.

1.2. 초심 유지의 어려움과 그 원인
초심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외부 환경과 개인의 욕망으로 인해 변질되기 쉬우며, 이를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초심과 종심이 일치하는 사람은 드물다.
석가모니, 예수, 공자와 같은 성인들은 초심과 종심(마지막 마음)이 같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은 혁명 초기에는 청렴했지만, 말년에는 부패하여 많은 오해를 받았다.
간디는 초심과 종심이 같아 인도에서 존경받지만, 만약 그가 부패했다면 존경받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은 예토(더러운 땅)에 살기에 때가 묻기 쉽다.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깨끗한 땅)와 달리, 우리가 사는 사회는 오욕에 몸부림치는 예토(더러운 땅)이다.
예토에서는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때가 묻고, 이로 인해 첫 마음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공무원이나 장교가 임명될 때는 청렴을 다짐하지만, 가족을 부양하고 살아가면서 유혹에 쫓겨 초심을 잃기 쉽다.
마음이 죄를 일으켜 초심을 잃게 한다.
죄는 본래 없지만, 마음이 죄를 일으키고 그 마음을 따라가면서 죄가 된다.
이는 마치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듯이, 처음에는 깨끗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는 욕망과 유혹으로 인해 변질되는 것과 같다.
연애 초기의 순수했던 마음이 결혼 후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원수가 되는 것처럼, 초심은 쉽게 사라진다.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도를 지키는 것만큼 어렵다.
초심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이는 도의 절정인 중도를 지키는 것과 비견될 정도로 힘들다.
그러나 도를 가지고도 천국에 갈 수 없듯이, 초심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할 수 없다.
혁명가나 젊은이들도 초심을 잃기 쉽다.
부정부패에 대항하던 젊은 학생들도 나중에는 부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혁명가들도 시간이 지나면 재산이 불어나고 부패자로 재판받는 경우가 있다.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이지만,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바뀌고 초심을 잃기 쉬워진다.
현대 사회에서는 초심을 가진 젊은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1.3.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한 자세
예토에서 초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중도를 지키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토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초심을 지키는 것이다.
더러운 땅인 예토에서 때가 묻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안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곧 초심을 지키는 것과 같다.
공심을 사심으로 변질시키지 않아야 한다.
선교사가 아프리카에서 봉사하다가 자녀의 질병 등으로 인해 사심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다.
반면, 과거 서양 선교사들은 한국에서 가족을 잃으면서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겠다며 초심을 지켰다.
이는 선진국 신앙인들의 강직한 모습으로, 십자군 정신처럼 초심을 끝까지 지키는 특이한 기사도 정신을 보여준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으며, 이것이 진정한 초심이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 발생 시,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저렇게 뛰어놀까 이해하고 내 자식처럼 생각해야 한다.
길에 버려진 개똥을 자신의 개가 버린 것처럼 여기고 치우는 행동이 초심을 지키는 예시이다.
윗집에서 물이 샐 때, 화를 내기보다 먼저 기다려주고, 수리비를 대주겠다고 제안하며 이웃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이 초심이다.
교통사고 발생 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의 차가 좋은 차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다 잘못했다고 말하며 보험 처리를 해주는 것도 초심이다.
매달 1억 5천만 원씩 무료 급식을 하는 것도 남이 굶는데 자신만 밥을 먹을 수 없다는 이웃 사랑의 초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고 비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불교는 비우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사랑이 아닌 욕망을 채우려 한다.
욕망을 채우려 할수록 초심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1. 초심을 지킨 역사적 인물과 그 의미
    초심을 끝까지 지킨 인물들은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으며, 이는 후대에 귀감이 된다.

2.1. 정몽주의 일편단심
고려에 대한 변치 않는 충절을 지켰다.
정몽주는 “이 몸이 죽어지고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시조처럼, 목숨을 걸고 고려에 대한 초심을 지켰다.
그는 이방원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조선을 인정하지 않고 고려와 함께 죽겠다고 선언했다.
농공행상에 참여하지 않았다.
정몽주는 이방원에게 가면 권력을 나누어 갖는 농공행상에 참여하게 될 것을 알았기에,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다.
이는 자신의 초심인 공심을 지키기 위해 사적인 이득을 포기한 행동이다.

  1. 초심의 아름다움과 가치
    초심은 대단히 아름다운 것이며, 젊음과 희망을 상징하고,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다.

3.1. 초심이 주는 행복과 희망
가난하고 고아였던 시절이 그리운 이유이다.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가난하고 고아였던 시절의 초심이 주는 즐거움은 없다.
어려웠던 시절의 경험이 현재를 버티게 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젊은이들은 돈이 없어도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대단히 행복한 존재이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공부하던 때가 힘들었지만, 합격 후의 희망과 꿈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가장 아름다운 시기였다고 회상한다.
변호사가 되어 돈을 벌고 살아가지만, 그때의 순수했던 초심을 그리워한다.

3.2. 초심이 담고 있는 진정한 사랑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을 우선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보다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질 수 있다면, 기꺼이 놓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이는 상대방을 불행하게 만들 욕심이 아닌, 아버지와 같은 높은 차원의 사랑이다.
초심을 지킬 때 사람이 모여든다.
초심을 가지고 인간성을 지킬 때 많은 사람이 모여든다.
반면, 기회주의자처럼 변절하는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고 결국 패망하게 된다.

This excerpt from Hurting 1.02 on Huh Kyung-young TV features an interview with Mr. Shin about the importance of maintaining one’s original intentions (초심). Mr. Shin emphasizes that while it’s incredibly difficult to uphold one’s initial pure motivations in a corrupt world, it is the hallmark of true greatness and attracts people. He illustrates this with historical figures and everyday examples, stressing that true love and public service stem from an unwavering initial resolve.

The Elusive Nature of Original Intentions (초심)

The Rarity of Upholding Initial Resolve
It’s incredibly rare for people to maintain their initial pure intentions from beginning to end. Most people, even those who start with noble goals, eventually deviate due to external pressures and temptations. This makes those who do uphold their “초심” truly exceptional.

초심과는 마지막이 일치한 사람이 별로 없어. 아 그런 사람은 이제 석가모니나 예수나 예 뭐 공자나 네 이런 사람은 초심이 말씀이야 아 네 초심이나 종심이나 같아 네 그 사람들은 처음과 끝에 성 성인들은 예 그게 뒤집어진 일이 없어 성자들은 그런 장점이 있어 음음
Few people’s end matches their initial intention. Those who do are like Sakyamuni, Jesus, or Confucius. For them, their initial intention and their final intention are the same. Saints, from beginning to end, never waver. That’s the advantage of saints.

초심을 유지한 사람들이 상당히 정치인으로서는 더 물어. 아 음 그렇지 않을 거겠습니? 음 그러니까 상당히 어 초심은 유지하기가 어려운 거야.
People who maintain their initial intentions are quite rare as politicians. it’s quite difficult to maintain one’s initial intention.

The World Corrupts Pure Intentions
Our society is not a “pure land” but a “defiled land” where people are constantly swayed by desires. This inherent impurity of the world makes it incredibly difficult to preserve one’s initial pure heart, as external factors and personal needs inevitably lead to compromise.

그러니까이 우리가에이 사회가 예이 사회가 정토 불교에 말하면 정토 예 깨끗한 땅 네 이게 아니란 말이에요. 예 구조 자체가 네.이 구조 자체가 예토야 더러운 땅.
this society, in Buddhist terms, is not a pure land, a clean land. The structure itself is a defiled land, a dirty land.

이런 땅이 아니다 보니까이 예토에서는 때가 묻게 돼 있어. 아 음 천 첫 마음을 지키기가 어려워.
Because it’s not such a land, in this defiled land, one is bound to get dirty. It’s hard to keep one’s first heart.

근데 이게 살다 보면 딸도 있고 자식도 있고 결혼도 해야 되고 이게 필요한 거예요. 아 그럼 그게 쫓기는 거야.
But as you live, you have daughters, children, you have to get married, and these things become necessary. Then you get chased by them.

The Accumulation of Small Deviations
Just as a great mountain is formed by countless tiny dust particles, our initial pure intentions can be eroded by the accumulation of small, seemingly insignificant compromises and desires. These small deviations, over time, can completely transform one’s original purpose.

태산도 진진이라는이 티끌 티끌 네 티끌 티끌 티끌 진짜 티끌 애자예요 예 티끌과 티끌이 모여 가지고 태산이 되 예 무슨 일? 어 원래 대산이 없어요.
Even a great mountain is made of dust, tiny particles. Dust and dust gather to form a great mountain. What’s the matter? Originally, there was no great mountain.

그러면이 대산이 이렇게 쌓였는데 우리는이 우리 업보도 이래. 아 처음에는 마음이 깨끗해 예 하나야 네 자꾸 싸요. 아 그래가 그 죄가 예 우리 재무자성 종심기가 돼 버린 거.
this great mountain is piled up, and our karma is like this too. At first, the mind is clean, it’s one. But it keeps accumulating. And then that sin becomes our “재무자성 종심기” (a state where sin, though originally absent, arises from the mind).

어머 그 여자하고 처음에는 굉장히 사유 좋고 연애 편지 쓰고 막 순수했는데 이게 살다 보니까 서로 욕서를 하고 그냥 나쁜게 쌓이고 쌓 그게 태상이 돼 버려.
at first, I had a very good relationship with that woman, wrote love letters, and was pure, but as we lived, we cursed each other, and bad things accumulated, and that became a great mountain.

The Essence of True “초심”

Public-Mindedness Over Self-Interest
True initial intention (초심) is almost always public-minded (공심), focused on serving others or a greater cause. However, the challenges and realities of life often cause this public-mindedness to shift towards self-interest (사심), making it difficult to maintain the original noble goal.

초심이이 사심이야 사심이 아니거든 예 소심은 대부분 공심이야. 그렇잖아 그지? 공심이란 말이야.
Initial intention is not self-interest. Initial intention is mostly public-mindedness. It’s public-mindedness.

근데 막상가 보니까 애들이 전편 걸리고 자기 자식들 갈 학교도 없고 네.만으로는 전병 걸 다 죽고 가고 보니까 이게 초심이 사심으로 바뀌는 거야.
But when I actually went there, the children were getting sick, and there were no schools for their own children. When I saw them all dying from illness, my initial intention changed to self-interest.

아 근데 이게 사심으로 아 사심이 끼어드는 거야. 음 뭐 아내를 살려야 되겠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되겠다 뭐이 되고.
But then self-interest, oh, self-interest intervenes. Like, “I need to save my wife,” or “I need to go back to Seoul.”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 ultimate expression of “초심” is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is means extending empathy and understanding to others, even when they cause inconvenience, and being willing to sacrifice for their well-being. This profound empathy is what truly defines an unwavering initial intention.

그러니까 내가 예수로 있을 때는 내 의서 내모과 같이 생각하라 그랬잖아.
when I was Jesus, I said, “Think of your neighbor as yourself.”

그래서 진짜 초심 있는 사람은 예 원수를 사랑으로 했잖아.
a person with true initial intention loved their enemies.

뭐 걔들을 이해해 버려. 그러면네 자식 내 자식이 없어. 지금 내 자식이야.
Just understand them. Then there’s no “your child” or “my child.” They are my children now.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랬잖아. 예 아, 그러니까 내가 비용을 대서 그걸 좀 고쳐드리겠다.
I sai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ll pay for it and fix it for you.

아 어떻게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겠다. 음 그 내가 한 달에 1억 5천씩 무료급씩 하는 것도 네 그래서 하는 거야.
I will somehow think of my neighbor as myself. That’s why I provide 150 million won worth of free meals every month.

초심은 남과 차이 좋게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자. 이게 우리의 초심이에요.
Our initial intention is to get along well with others and love our neighbors as ourselves. This is our initial intention.

The Beauty of Youth and Hope
Youth is inherently tied to “초심” because it is a time filled with hope, dreams, and pure aspirations. As people age, they tend to become more conservative and lose that initial spark. The longing for one’s challenging but hopeful past, even when successful, highlights the intrinsic value of that initial, uncorrupted state.

그래서 우리는이 젊음이라는게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야. 네 여러분들은 예 그렇잖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초심을 가지고 있잖아.
youth is when we have our initial intentions. You all. Young people in Korea have their initial intentions.

어 아무리 부자가 돼도 네 그거는 즐거움이 없어.음 그 쪼다릴 때 그게 행복이야.
No matter how rich you become, there’s no joy in it. That struggling time, that’s happiness.

젊은이들은 돈이 없지만 대단히 행복한 거야. 아 근데 그걸 몰라요.
Young people don’t have money, but they are extremely happy. But they don’t know that.

그 그 때가 희망이 있는 거야. 나 이거 시험에 붙을 거야. 예 그지? 네 그러면 그 내가 만나던 애인이 얼마나 반가워할까? 우리 아빠가 얼마나 반가워할까? 막이 그 희꿈이 차이 아 초심 때는 예 맞습니다.
That’s when there’s hope. “I’m going to pass this exam.” Then, “How happy will my girlfriend be? How happy will my dad be?” That dream is full of hope during the initial intention.

True Love is Selfless
In the context of relationships, maintaining “초심” means that true love is selfless. It involves wishing for the other person’s happiness, even if it means letting them go to find a better partner. This level of detachment and genuine care, akin to a parent’s love, is the highest form of initial intention in personal relationships.

아,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서 가는게 그 여자한테 행복이야. 아 그럴 때는 내가 눈치를 안 보여야 돼. 예 적당히 떨어져 줘야 돼.
if there’s a better person for her, it’s her happiness to meet him and go. In that case, I shouldn’t show any resentment. I should appropriately distance myself.

그게 아버지 같은 마음이야. 굉장히 높은 차원에 높은 차원이지. 그게 사랑이야. 그 진짜 사랑은 그런 거야.
That’s a father’s heart. it’s a very high level, a very high dimension. That’s love. True love is like that.

The Philosophical Imperative of Maintaining One’s Initial Purpose

Lecture Information
Date: 20230809
Category: Huh Ting
Speaker: Huh Kyung young

Keywords
Original Intention, Integrity, Public Service, Spiritual Purity, Human Nature

Content

The Elusive Nature of Original Intention
The discourse commences with a profound inquiry into the concept of “original intention” (초심), a foundational principle in human endeavor and spiritual development. It is observed that individuals, throughout their lives, frequently deviate from or waver in their initial resolve when embarking on new learning or ventures. This phenomenon is not confined to personal experience but is also evident across societal strata, manifesting as slumps or mannerisms. He, Huh Kyung young, highlights historical and spiritual parallels, noting that Christianity, for instance, has diverged from the original teachings of Jesus, leading to the assertion that Jesus alone embodies the true Christian spirit. Similarly, Buddhist monks, upon entering the temple, are said to possess a complete state of spiritual devotion, which often diminishes over time. This pervasive tendency to lose one’s original intention prompts a deeper exploration into its essence, its ideal form, and the requisite mindset for its preservation.

The Challenge of Sustaining Initial Resolve
He introduces the Buddhist aphorism, “초발심시 신통장” (Chobalshimshi Shintongjang), which translates to “the moment of initial resolve is the moment of divine power,” or “초발심시 변정가” (Chobalshimshi Byeonjeongga), meaning “the initial resolve is enlightenment.” This underscores the profound significance attributed to one’s first intention. For instance, an individual aspiring to become an honorable prosecutor or judge initially possesses a pure and noble ambition. However, history is replete with examples of those who, despite starting with integrity, succumbed to corruption. The case of Ferdinand Marcos, the former Philippine president, is cited; he began his tenure with a reputation for incorruptibility but ended with accusations of immense wealth accumulation, exemplified by his wife Imelda Marcos’s vast shoe collection. This illustrates the rarity of individuals whose initial and final intentions remain congruent.

Saints and sages such as Shakyamuni, Jesus, and Confucius are presented as exceptions, whose initial and ultimate intentions were identical, embodying an unwavering commitment to their principles. For them, the beginning and the end were one, a testament to their steadfastness. The original intention, in essence, is akin to hope, one’s calling, aspiration, or dream. When this sense of purpose is clear and resolute, as exemplified by Mahatma Gandhi, the individual’s initial and final intentions align, earning them enduring respect. Conversely, if Gandhi had succumbed to corruption, his legacy would be tarnished. This highlights the extreme difficulty, particularly for politicians, in maintaining their original intention. one should not seek to add to their initial resolve but rather strive to preserve it. The commitment to serve the nation, for example, is challenging to uphold amidst numerous temptations.

The Genesis of Deviation: The Mind’s Influence on Purity
He elaborates on the difficulty of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 by referencing the Buddhist concept of “재무자성 종심기” (Jaemu-jaseong Jongshim-gi), which posits that “sins inherently have no nature of their own; they arise from the mind.” This means that sin does not exist independently but is generated by the mind’s actions and attachments. The inherent self (자성) is pure and devoid of sin; however, when the mind succumbs to external influences and desires, it creates and follows these impulses, leading to sin and the erosion of original intention. This process explains why the beginning and end often diverge. Initially, the mind is pure, but as it interacts with the world, it becomes tainted. sin is not intrinsic to one’s nature but is a product of the mind’s deviation.

The Corrupting Influence of the “Defiled Land” (Yeto)
The concept of the “defiled land” (예토, yeto) from Pure Land Buddhism is introduced to explain why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 is so challenging in the human world. Unlike the “pure land” (정토, jeongto), which is inhabited by spiritual practitioners, our society is a yeto, a “dirty land” where individuals are entangled in the five desires (오욕). In such an environment, it is inevitable that one becomes stained. Public officials, for instance, take oaths of integrity upon appointment, and military officers are initially incorruptible. However, as they navigate life’s demands—raising children, getting married, and fulfilling familial obligations—they face pressures that can compromise their initial resolve. These external pressures and personal needs often lead to a deviation from their original, pure intentions, making it exceedingly difficult to preserve them.

The Erosion of Initial Intention in Relationships and Possessions
The difficulty of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 extends to personal relationships and material possessions. Couples, for example, begin their courtship and marriage with deep affection and pure intentions. However, over time, these initial feelings often erode, leading to conflict and even animosity. He asserts that nearly 99.9% of people fail to maintain their original intention in relationships. The poignant example of a woman cherishing old love letters from her now-divorced husband illustrates this point. These letters, filled with heartfelt sentiments, represent the purity of their initial love, yet their relationship ultimately dissolved into enmity. The reluctance to discard these letters, despite the broken relationship, signifies the enduring value placed on that initial, pure intention. This demonstrates that while the concept of original intention is easily articulated, its preservation is profoundly difficult.

The Accumulation of “Dust” and the Loss of Purity
He employs the metaphor of a mountain (태산, taesan) formed from countless specks of dust (티끌, tikkeul or 진진, jin-jin) to illustrate how initial purity can be gradually corrupted. Just as a mountain is not inherently present but accumulates over time from minute particles, human karma and intentions follow a similar trajectory. Initially, the mind is pure and singular. However, through repeated actions and experiences, negative influences accumulate, transforming the original purity into a “mountain of sin,” akin to the Buddhist concept of “재무자성 종심기” (Jaemu-jaseong Jongshim-gi), where sin, though not inherent, becomes a formidable reality. The initial pure love between a couple, marked by sincere letters, can devolve into mutual recrimination as negative experiences accumulate like dust, forming an insurmountable barrier. This gradual accumulation makes it incredibly difficult to prevent deviation and maintain one’s initial resolve.

The Distinction Between Original Intention and the Middle Way
The discussion then differentiates between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 and adhering to the Middle Way (중도, jungdo). While both are challenging, the Middle Way represents a higher spiritual plane.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 is a fundamental aspect of spiritual discipline, but the Middle Way transcends this, representing the pinnacle of spiritual attainment. However, even reaching the “zenith of the Way” (도의 절정) does not guarantee entry into heaven or paradise without divine blessing and recognition. no human-conceived “Way” can lead to heaven; such paths are confined to the human realm. This implies that while spiritual practices are valuable, they are insufficient for ultimate salvation without a higher intervention.

The Cycle of Idealism and Corruption in Society
The lecture further explores the societal implications of losing original intention, particularly in the context of political and social movements. Students who protest against corruption, driven by their initial idealism, often succumb to the very corruption they once opposed once they gain power. Revolutionaries, too, frequently face trials for corruption after achieving their goals. This cyclical pattern demonstrates that even those who begin with noble intentions to reform society can eventually become entangled in the same corrupt practices. He notes that many who participated in revolutionary movements, despite their initial purity, later accumulated vast wealth, indicating a deviation from their original ideals. This reinforces the idea that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 is an arduous task in the “defiled land” of human society.

The Transformation of Public-Mindedness to Self-Interest
He addresses the question of how to prevent the loss of original intention, acknowledging that in the yeto (defiled land), becoming tainted is almost inevitable. However, maintaining the Middle Way within this yeto is presented as a means of preserving original intention. Original intention is typically characterized by public-mindedness (공심, gongshim), a selfless desire to serve others, such as a missionary’s aspiration to help the less fortunate in Africa. Yet, upon encountering the harsh realities of the world—children suffering from disease, lack of education—this public-mindedness can gradually transform into self-interest (사심, sasim).

The example of foreign missionaries in Korea is contrasted with this tendency. Many Western missionaries, despite facing the deaths of their spouses and children from infectious diseases, steadfastly refused to return to their home countries for treatment, choosing instead to be buried in Korea. This unwavering commitment to their mission, even in the face of immense personal tragedy, exemplifies a strong, unyielding original intention, a “chivalrous spirit” that prioritizes their calling above all else. In contrast, some Korean missionaries abroad might return home under similar circumstances. This highlights a cultural difference in the steadfastness of faith and commitment, suggesting that advanced nations often exhibit a stronger adherence to original intention. He concludes that the shift from public-mindedness to self-interest is a significant challenge in preserving one’s initial resolve.

The Metaphor of the Automobile and the Enduring Echo of Initial Intention
He uses the metaphor of an automobile to illustrate the gradual erosion of original intention. A new car, like a fresh start, is pristine and cherished. Owners initially commit to meticulously caring for it, but over time, this dedication wanes. After years of use, the car accumulates wear and tear, losing its initial luster and requiring less diligent maintenance. Similarly, individuals, like military cadets with strict discipline, may become lax once they achieve higher ranks. This deviation from initial discipline mirrors the loss of original intention.

Despite this erosion, the memory of the original intention often persists. Just as an old car might evoke nostalgia for its pristine state, individuals who have lost their initial resolve often retain a longing for that pure beginning. The example of a couple who initially vowed eternal love but later experienced conflict still cherishes the memory of their early, pure affection. This longing for the past, often expressed through a fondness for old music, provides solace and a connection to that lost innocence. Even a successful lawyer or judge, who once studied diligently in solitude with the pure intention of passing the bar exam, may later realize that the period of struggle and aspiration was the happiest time of their life, far more fulfilling than the subsequent pursuit of wealth and status. This suggests that while original intention may be lost in practice, its emotional resonance can endure.

The Value of Youth and the Scarcity of Original Intention
Youth is presented as the period when original intention is most vibrant and prevalent. Young people, particularly in Korea, are seen as embodying this initial resolve. However, as individuals age, they tend to become more conservative, and the presence of young people with strong original intentions is becoming increasingly rare, posing a significant societal problem. He laments the diminishing number of young individuals who possess this invaluable quality, emphasizing that youth itself is a treasure. Despite His reluctance to delve into political matters during an election period, the profound beauty and importance of original intention are underscored.

The Paradox of Poverty and the Power of Hope
The discourse delves into the paradoxical nature of happiness, suggesting that the struggles and hardships of one’s youth, particularly periods of poverty and orphanhood, are often recalled with fondness later in life. Despite achieving wealth, the joy experienced during times of scarcity is often absent. He posits that the very act of enduring hardship provides a foundation for resilience. Young people, though lacking financial resources, are inherently happy because they possess hope and dreams. They may endure difficult conditions, such as studying for exams without proper meals, but this period is imbued with the hope of future success and the anticipation of loved ones’ reactions. This “original intention” phase is characterized by a powerful sense of aspiration and optimism, which Mr. Huh urges people to never lose.

Historical Exemplars of Unwavering Original Intention
The historical figure of Jeong Mong-ju is presented as a prime example of unwavering original intention. His famous poem, expressing his steadfast loyalty to the Goryeo Dynasty even unto death, illustrates an absolute refusal to compromise his principles. Despite Yi Bang-won’s attempts to persuade him to switch allegiance to the new Joseon Dynasty, Jeong Mong-ju remained resolute, choosing death over betrayal. His commitment to his king and his refusal to participate in the “distribution of rewards” (농공행상, nonggong haengsang)—the sharing of power and spoils among those who established the new regime—demonstrates a profound adherence to public-mindedness over self-interest. This act of ultimate sacrifice for his original intention is lauded as a magnificent display of integrity. He advocates for individuals to emulate such steadfastness, promoting the cultivation of original intention as a desirable human trait.

The Contrast Between Buddhist Emptiness and Christian Fulfillment
He draws a distinction between Buddhism and Christianity in their approaches to the human spirit. Buddhism is characterized as a religion of “emptying” (비우는 종교), focusing on detachment and the release of desires. In contrast, Christianity is described as a religion of “filling” (채우는 종교), emphasizing the filling of the heart with love. However, human nature often misinterprets this “filling” as the satisfaction of desires rather than the cultivation of love. This constant pursuit of material and worldly desires makes it exceedingly difficult to maintain original intention, as the accumulation of possessions and experiences further complicates one’s initial purity.

The Practice of Unconditional Love and Empathy
He, embodying the teachings of Jesus, emphasizes the importance of loving one’s neighbor as oneself, even one’s enemies. This principle is applied to everyday situations, such as dealing with noise from upstairs neighbors in an apartment building. Instead of reacting with anger, a person with true original intention would empathize with the children, understanding their need to play in a confined space. This perspective transforms “their children” into “my children,” fostering a sense of shared humanity.

A personal anecdote further illustrates this point: Huh Kyung young carries bags to pick up dog waste left by other people’s dogs in public parks. This act, performed without complaint or judgment, reflects his commitment to keeping the environment clean and treating all dogs as if they were his own. This selfless act, driven by a desire to prevent others from stepping in the waste, is presented as a manifestation of his original intention to maintain a clean “Heaven House” (하늘궁, haneulgung) and extend care beyond personal ownership.

Resolving Conflict with Compassion and Self-Sacrifice
He recounts another personal experience to demonstrate the practical application of original intention in conflict resolution. When water leaked from an upstairs neighbor’s bathroom onto his bed, a situation often more distressing than mere noise, Huh Kyung young chose not to confront the neighbor immediately. Instead, he patiently waited for a week, hoping the leak would stop. When it persisted, he approached the neighbor with humility, apologizing for the inconvenience and offering to cover the repair costs himself. This act of selflessness and compassion fostered a positive relationship with the younger neighbor, who was deeply moved by his gesture.

Similarly, in traffic accidents, Huh Kyung young takes full responsibility and covers all insurance costs, especially when his car is superior, to prevent the other party from suffering significant financial burden. These actions—offering free meals to the needy, cleaning up others’ dog waste, and resolving neighborly disputes with generosity—are all expressions of his original intention to love his neighbor as himself. true original intention involves proactive kindness and avoiding judgment or blame, even when others are at fault. This approach transforms potential conflicts into opportunities for connection and mutual respect.

The Magnetic Power of Unwavering Original Intention
The unwavering adherence to original intention, characterized by love and compassion for others, is presented as a powerful magnet that draws people together. Huh Kyung young observes that his consistent care for the elderly over 40 years has led to a growing following, with thousands now attending his events. This demonstrates that genuine, unchanging character attracts people, whereas opportunists who frequently shift their intentions fail to garner lasting support.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 is crucial for building trust and fostering enduring relationships.

The concept is extended to romantic relationships: if a partner finds greater happiness with someone else, true love dictates that one should gracefully step aside, prioritizing the other’s well-being over one’s own possessive desires. This “fatherly heart” (아버지 같은 마음) represents a higher form of love, where one wishes for the beloved’s ultimate happiness, even if it means their departure. This selfless perspective, which transcends personal attachment and ego, is the essence of true original intention in love. The lecture concludes by reiterating the profound importance of original intention in all aspects of life, from personal conduct to societal interactions, and its role in attracting genuine connection and fostering true happiness.

초심, 인간의 본질적 소망이자 희망

인간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할 때, 처음 가졌던 마음인 초심을 잃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처음 가르친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진정한 크리스천은 예수뿐이라는 말씀이나, 불교 스님들이 절에 처음 올 때의 마음이 불심이 완성된 상태였다는 이야기처럼, 초심을 잃고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은 개인과 사회 전반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초심은 다른 말로 ‘희망(Hope)’, 즉 자신의 소명이나 소망, 꿈을 의미합니다. 간디처럼 초심과 끝심이 같은 사람은 인도에서 존경을 받지만, 부패로 감옥에 갔다면 존경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초심을 유지하는 정치인은 드뭅니다. 초심은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초심에 무언가를 더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초심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중간에 유혹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초심을 잃게 되는 근본 원인: 마음의 작용
초발심시 신통장(初發心時 神通藏), 초발심시 광명당(初發心時 光明堂)이라는 말처럼,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재무자성 종심기(罪無自性 從心起)라는 말처럼, 죄는 본래 없지만 마음에 의해 일어납니다. 자기 스스로의 본성(自性)에는 죄가 없지만, 마음이 그것을 일으키고 따라가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초심을 잃어버리는 원인은 마음의 작용에 있습니다. 죄는 본래 없는 것이지만,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면 처음과 끝이 달라지게 됩니다.

예토(穢土)의 속성: 때 묻기 쉬운 세상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 즉 깨끗한 땅이 아닙니다. 이 구조 자체가 예토(穢土), 즉 더러운 땅입니다. 정토는 수도자들이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오욕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사는 예토이기에 때가 묻기 쉽습니다. 공무원들이 선서하고 임명받을 때, 장교들이 임명받을 때는 청렴하지만, 살다 보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에 쫓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초심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연애할 때나 결혼할 때 좋았던 첫 마음이 나중에는 원수가 되는 것처럼, 거의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합니다.

티끌이 태산을 이루듯, 죄도 쌓여 초심을 잃게 된다
태산도 티끌과 티끌이 모여 이루어지듯이, 우리의 업보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깨끗하지만, 자꾸 쌓여 죄가 태산처럼 되어버립니다. 재무자성 종심기처럼 죄는 본래 없지만, 티끌 같은 나쁜 마음들이 쌓여 태산처럼 변하니, 이를 막기란 어렵습니다. 처음의 변절이 안 된다는 것, 즉 초심을 지킨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중도를 지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중도는 도의 절정이며,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입니다. 그러나 도를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으며, 인간 세계에서 끝납니다.

혁명가의 초심과 부패의 현실
대학교 다닐 때 부정부패에 대항하며 시위하던 젊은 학생들의 초심이 계속 이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나중에는 부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명했던 자도 부패자로 재판받고, 혁명 정신을 가졌던 많은 이들이 나중에는 재산이 수천억 압류당하는 등 부패에 연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예토에서는 어쩔 수 없이 때가 묻지만, 이 예토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곧 초심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공심(公心)에서 사심(私心)으로 변질되는 초심
초심은 대부분 사심이 아닌 공심입니다. 사회의 선교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초심입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면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들과 가족의 현실 앞에서 초심이 사심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단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공심이 아내를 살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사심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 선교사들 중에는 한국에 와서 가족이 전염병으로 죽어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겠다고 초심을 지킨 강직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군 정신처럼 초심을 끝까지 지키는 특이한 기사도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공심으로 가야 할 초심이 사심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초심을 잃어가는 일상의 비유
육사생들은 군기가 잡혀 있지만, 장교가 되면 군기가 흐트러지는 것처럼 초심을 잃습니다. 새 차를 살 때는 아끼고 닦겠다는 초심이 생기지만, 20년이 지나면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부부가 100년 해로하겠다는 초심으로 시작하지만, 상처가 쌓여 초심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초심이 남아 있어 옛날을 그리워하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절간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변호사처럼,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가난하고 고아였던 시절이 그리운 것처럼, 돈이 없어도 희망을 품고 공부하던 초심의 시절이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정몽주와 이방원의 초심: 지조와 변절
정몽주는 목숨을 걸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노래하며 고려에 대한 초심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조선을 인정할 수 없었고, 자신이 모시던 왕을 배신할 수 없다는 강직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방원이 초심을 바꾸라고 권유했지만, 정몽주는 농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며 초심을 지켰습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며, 우리가 권장하는 바입니다.

비움과 채움, 그리고 욕망
불교는 비우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사랑이 아닌 욕망을 채우려 하기에 초심 유지가 어렵습니다. 자꾸 보는 것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랑과 초심의 실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이 나도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저렇게 뛰어놀까 이해하고, 내 자식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남의 개가 잔디밭에 똥을 싸도 내 개라고 생각하고 치우는 것이 초심입니다. 윗집에서 물이 새도 화를 내기보다 먼저 비용을 대어 고쳐주겠다고 말하며 이웃과 친해지는 것이 초심입니다.

이처럼 초심은 남과 사이좋게 지내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허경영에게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것은 그가 옛날부터 노인들을 극진히 대우하며 초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절하는 기회주의자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고 결국 패망합니다.

진정한 사랑과 초심
여자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여자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돈이 없는데 억지로 데려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욕심입니다. 더 좋은 집안의 좋은 사람이 나타났다면 묵묵히 놓아주는 것이 아버지 같은 마음이며, 높은 차원의 사랑입니다. 초심은 이처럼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the God-man. 오늘은 초심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인간들은 살아가면서 어떠한 것을 배우거나 시작할 때 첫마음인 초심을 잃거나 흔들리는 경우들이 생깁니다. the God-man께서 기독교는 그동안 예수가 처음 가르친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고 하시면서 진정한 크리스천은 예수뿐이라는 말씀도 해 주셨고 불교의 스님들도 처음 절에 올 때의 마음이 불심이 완성된 상태였다고도 하하하셨습니다.

예. 그런 것처럼 초심을 잃고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은 개인이나 사회 전반에서 보이기도 합니다. 질문은 초심은 무엇이고 올바른 초심이란 무엇인지가 궁금하고 인간들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 사회적으로 무슨 일을 할 때 예 초발심시 신통장 아 예 그러니까 초발심이 초발심시 변정가 예 그러니까 초발심이 깨달음이다 아음 그러니까 그게 점에는 내가 훌륭한 검사가 되겠다 훌륭한 법관이 되겠다고 같은 네 옛날에 있었지 예 마르코스 예 마르코스가 필리핀 그 대통령으로 로 할 때 행명할 때는 청렴했지.

예. 근데 막판에 가서는 만나라 구도가 뭐 3천 컬레 샀고 뭐 굉장히 했잖아. 어 그럼 오해를 많이 받았잖아. 돈이 많다 뭐 이게 지금 그 아들이 대통령 또 나오고 그랬잖아.

어 그러니까 그만큼 초심과는 마지막이 일치한 사람이 별로 없어. 아 그런 사람은 이제 석가모니나 예수나 예 뭐 공자나 네 이런 사람은 초심이 말씀이야 아 네 초심이나 종심이나 같아 네 그 사람들은 처음과 끝에 성 성인들은 예 그게 뒤집어진 일이 없어 성자들은 그런 장점이 있어 음음 그래서 초심은에 우리가 굉장히 이제 그 우리가음 자기가 초심을 다른 말로 말하면 영어로 말하면은 호프 아 자기 소명 예 자기의 어떤 소망 네 그 꿈이란 말이야 아 희망 예 그지 예음 그니까 그 호프인데이 호퍼가 어 초심인데 그 자기의 소망이나 소명 정신이 뚜렷하면은 는 간디 같은 경우는 초심과 끄심의 같아. 그렇잖아.

지금 인도의 존경을 받고 있잖아. 근데 깐디가 부패미로 감옥가 있으면 그게 안 된 거야. 또.

맞습니다. 그런게 있잖아. 그러니까 초심을 유지한 사람들이 상당히 정치인으로서는 더 물어.

아. 음. 그렇지 않을 거겠습니? 음. 그러니까 상당히 어 초심은 유지하기가 어려운 거야.

아. 초심에다가 뭘 더한다고 생각하면 안 돼. 초심이 내가 뭐가 되었다 국민을 위해서 봉사하겠다 하면 그걸 유지하기가 어려운 거야.

맞습니다. 중간에 그냥 유혹하는게 많아. 그 초심 지키기가 어렵지.

그러나 초심을 지킨다는 건 초발심시 신통장, 초발심시 광명당 뭐 이런 거지. 그리고 재무자성 종심기.

죄는 원래가 없는데. 죄는 말 원래가 없는데. 밑에서 보겠습니다.

죄는 원래 없다이 말이야. 재무 재무.

재무 어 자성. 죄는 원래가 없는데 예 마음에 의해서 일어난다. 네 마음에 의해서 마음을 따라가는 거야.

네 자성이라는 것이 네이 자기 스스로의 자자성에는 죄가 없어. 근데 마음을 그걸 일으킨다. 그걸 따라가다 그건 죄가 되는 거지.

네. 이래서 초심을 잃어버려. 이래서이 우리의 초심을 잃어버리는 거야.

음. 초심을 잃는 데는 요런 원인이 있다. 음. 죄는 원래가 없는 건데.

예. 자성 자체에는 죄가 없어요. 근데 이놈 자성이 이 마음을 따라가 버리면 그게 끝나는 거야.

예. 처음과 끝이 달라요. 처음에 깨끗하지.

재무자. 어.

뭐 보는 보일러. 보러. 어.

재모자성 중심. 이해가지? 그 초심이라는 건 어.

음. 음. 그러니까이 우리가에이 사회가 예이 사회가 정토 불교에 말하면 정토 예 깨끗한 땅 네 이게 아니란 말이에요. 예.

구조 자체가 네.이 구조 자체가 예토야. 더러운 땅. 더러운 땅.

네. 이게 정토라는 건 수도자들이 있는 곳이지.

안 그래? 여기는 오욕에 몸부림지는 자들이잖아. 이게 우리 예토야.이 극락이지.

예. 이런 땅이 아니다 보니까이 예토에서는 때가 묻게 돼 있어. 아. 음.

천 첫 마음을 지키기가 어려워. 뭐 공무원들이 공무원 선서하고 뭐 인명 받을 때 뭐 장교들이 임명 받을 때는 청렴하지.

그래. 근데 이게 살다 보면 딸도 있고 자식도 있고 결혼도 해야 되고 이게 필요한 거예요. 아.

그럼 그게 쫓기는 거야. 또예.

어. 그러다 보니까 어 초심을 지키기가 어렵다. 아 그래서 우리 초심을 존경해.

음. 초 첫 마음이 연애하는 사람들도 결혼하는 사람들도 처음에 연애할 때는 사이가 좋아요. 초심은 결혼할 때도 첫 결혼할 때 좋아.

사이가. 나중에는 보면이 원수가 돼가는 거린다 말이야. 초심을 못 지키지.

거의 99.9%가 초심을 못 지켜. 그래서 우리는 초심을 사랑하는 거야. 처음에 그 여자가 연애 편지를 이만큼 끄집어내.

그건 자기 이혼한 남편과 연애할 때 주고받은 러브레트야. 그게 총심이 단계 있어. 아 기가 막힌 내용이지.

네. 구구절절이 그냥 눈물나는 내용인데 지금은 원수돼서 이혼했어. 아 그렇습니다. 근데 그걸 불태 버리려니까 너무 아까워.

예. 세계 문학이 다 들어 있어. 편지 안에 그지? 초심이 그렇게 어려운 거야. 그 우리는 쉽게 초심이다 이렇게 말하기가 아 어려워.

음. 그러니까 우리가 1일 1일 저재 이게 예 태산이 네 태산 저각 내 예 1일 진신 내 예 태산 처각 내 1일 진진 내야 예 이게 무슨 말이냐면은이 태산도 진진이라는이 티끌 티끌 네 티끌 티끌 티끌 진짜 티끌 애자예요 예 티끌과 티끌이 모여 가지고 태산이 되 예.

무슨 일? 어. 원래 대산이 없어요.이 먼지이 미시한 먼지들이 쌓여가 티끌 티끌 이일 진진 티끌 진짜 티끌자.

예. 음.

티끌과 티끌들이 다 해 가지고 네. 매일같이 모여 가지고. 이게 태산으로 온 거야.

태산 적금한테 적자잖아. 적금이 된 거지. 그 대산이 만들어진 거야.

예. 그러면이 대산이 이렇게 쌓였는데 우리는이 우리 업보도 이래. 아 처음에는 마음이 깨끗해.

하나야. 자꾸 싸요. 아 그래가 그 죄가 예 우리 재무자성 종심기가 돼 버린 거.

예. 쟤는 원래 없는데 태산이 돼 버려 쟤가. 아 그래.

예. 어머 그 여자하고 처음에는 굉장히 사유 좋고 연애 편지 쓰고 막 순수했는데 이게 살다 보니까 서로 욕서를 하고 그냥 나쁜게 쌓이고 쌓 그게 태상이 돼 버려. 아이이 진 예 티끌 진짜 티끌자 네 이름이 쌓여 가지고 태산으로 바뀌니 그걸 누가 막냐 이거 말이야. 아.

어. 그러니까 처음 변절이 처음에 변절이 안 된다는 초발 첫 마음을 지킨다는 게 초심을 지킨다는게 그렇게 어려운 거다. 이해가지? 예.

음. 마치 중도를 지키는 것만큼 뭐 어렵다고 느껴져. 어. 그렇지.

어. 초심을 지킨다는 거는 음. 중도는 초심을 시키는 거하고 차원이 좀 달라. 중도는 이제 차원이 더 올라가는 거야.

아, 초심 지키는 차원보다 중도는 더 올라가는 거지. 음.

그건 그거는 도의 절정이지. 도의 절정. 근데 도의 절정이라도 축복 안 받고 명패 안 하면 네. 극락으로 갈 수가 없잖아.

천국에. 그러니까 도를 가지고는 천국으로 갈 수가 없어. 어떤 도도 천국 갈 수가 없어. 인간 세계에서 끝나.

아, 맞습니다. 음. 그래서 우리가 대학교 다닐 때에 부정 부패하는 놈들 대모하고 막 그랬잖아.

그러까 그 젊은 학생들의 초심이 계속 갈까? 안 갑니다. 안 가.지도 나중에 부패자가 되는 거야. 네, 맞습니다. 혁명했던 자도 부패자로 재판받아.

맞습니다. 그렇잖아. 그지? 또 행명했던 우리 정신들 많았잖아.

예. 근데 나중에 또 재산이 몇 천억 뭐 압류당하고 뭐이 사는 거 보면 그 떡꾸물이 많아. 그지? 예.

그 그거하고 또 뭐라고? 그래서 그 초심이 무엇인지 말씀해 주셨고 그 초심을 지키기가 어려운데 초심을 잃지 않으기 위해서는 음. 근데 그도 the God-man이 말씀 해 주신 거 같아서 예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때가 묻는다고.

어. 그러니까 어쩌 때가 묻는데이 예토에서 중도를 지키면은 그것 초심을 지키는 거지. 아. 어.

중도를 지킨다는 건 초심을 지키는거나 마찬가지야. 아. 음. 음.

그 초심이라는 거는이 우리가이 누구나 네. 초심이이 사심이야. 사심이 아니거든.

소심은 대부분 공심이야. 그렇잖아. 그지? 공심이란 말이야. 소심이라는 건 내가 사회에 선교사가 돼 가지고 불쌍한 사람들 아프리카 가서 많이 돕겠다.

이게 초심이야. 아. 그렇게 했어. 근데 막상가 보니까 애들이 전편 걸리고 자기 자식들 갈 학교도 없고.

네.만으로는 전병 걸 다 죽고 가고 보니까 이게 초심이 사심으로 바뀌는 거야.이 공심이에 아 교단을 위해서 자기 하나님을 위해서 희생하겠다.

아 근데 이게 사심으로 아 사심이 끼어드는 거야. 음 뭐 아내를 살려야 되겠다. 다시 서울로 돌아가야 되겠다. 뭐이 되고 네 그런데 외국 선교사는 우리나라 와 가지고 네 몇백 명이 죽었어.

네 오자마자 언도가 자기 자식이 죽어 전염배. 아 근데 자기 만누라가 또 죽어 가네. 그래서 나는 고국에 가겠다.

선교사람들이 막 미국에 가서 치료하세요. 안 가. 가족 다 주고 자기도 주고. 아 그런 선교사들이 있었단 말이야.

어 그게 서양 사람들의 선교사 그게 강직해. 아 초심을 안 바꿔. 내가 그냥 한국 땅에 묻히겠다.

예. 안 간다는 거야.만으로 죽고 자시죠. 근데 우리나라 사람은 외국의 선교를 갖다 그런 일이 있으면 와요.

그러니까 그만큼 선진국의 그 신앙인들은 본받을 만한게 있어.

아. 초심을 지켜. 어.

자기가 십자군이면 십자군으로 끝까지 나가고 뭐 그걸 지키는 거야. 그 아주 그 특이한게 있다. 기사도 정신이 있다이 말이야.

음. 초심을 지킨다. 음. 음.

그래서 이게에 공심으로 가야 되는데 사심으로 아 흘러갈 수가 있단 말이야. 그지.

맞습니다. 그래서 그 쉬운 이야기가 아니야. 알겠지.

네. 음. 그래서 우리는 어 육사생들은 군기가 탁 재혀 있어.

그래. 안 그래? 장교 되고면 좀 허르죠. 아.

예. 초심이 아니야.

어. 음. 그래서 자동차와 같아. 새차 살 때는 키가 막혀.

이뻐. 어.

나중에 컨이고 하면 첫 차의 소리가 아니야. 이게.

그래. 초심이 아니야.

차를 사을 때는 내가 차를 끼겠다. 초심이 생겨. 차를 막 닦고 뭐 이거 이런게 좀 할 수 있잖아.

근데 이게 아니 20년가 봐. 누가 그 열심히 닦겠나? 좀 더시해죠. 어.

초심이 사라져. 자동차와 같이 그렇게 허트려지는 거예요. 여기저기 지어 박히고 막 상처가 나고 뭐 그래. 안 그래? 아 그러니까 나중에 아유 닦는 것도 귀찮아지.

예. 그러지. 어 그래서 인간이도 상세가 나 아 그 그렇잖아. 그지? 초심한 부부가 100년 해로 하겠다 붙었지.

근데 이게 안 되는 거야. 상처가 자꾸 생긴 거. 아 소심이 어디로 가고 없어.

그래도 어 그들의 마음속에는 그 초심이 남아 있어. 아 그 옛날 생각을 하면 흘러간 음악을 좋아하고 그 음악 세계로 들어가서 그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잖아. 초심을 그리고 하는 거예요.

아. 음. 그 자기가 땅방에서 사법곳이 본다. 그 앉아 있을 때 그 나중에 변호사돼서 재벌이 판사도 하고 다 부 영화를 누릴 때 그 자기가 절간에서 공부할 때 그때가 행복한 때라는 걸 깨달아.

그 초심을 내가 사고이 붙을 거야.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 그지? 한 고시 붙어가 뭐 검사되고 뭐 부장 판사되고 뭐 이래 살다가 나중에 결혼해서 마누라고 뭐 티격하고 뭐 이사 다니고 반령이 나면 또 저리 가야 되고 이리가 이사이다 보리다 봐 이러면 공무원들 그러니까 나중에 생각해 보니까 돈도 벌었어 예 정년 퇴직에서 딱 보니까 자기 인생이 제일 행복했던 데는 사법곳이 떨어져가 공부할 때 네 절간에서 어 그 밥안기 그 적은 거 먹어 나면 끓리 먹어면서 사복고싶때 그 머리 싸지 말고 공부하던 그때가 제일 아름다운 거야. 아 초심이 예 그래 맞습니다. 지금은 그냥 돈이라면 쫓아가서 변호해 주고 뭐 이런 변호사가 됐지만 그때 그리운 거야.

아 그지? 음. 그래서 우리는이 젊음이라는게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야.

네. 여러분들은 그렇잖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초심을 가지고 있잖아.

네. 늙으면 보보수적으로 바뀌어요, 약간.

안 그래? 맞습니다. 어. 그 그 초심 있는 젊은이들이 지금 안 태어나. 아.

음. 그게 참 문제가 많지.

어. 초심을 이제 보기 젊은 사람 보기가 어려워지잖. 젊은 사람이 보물이야.

맞습니다. 갈수록

큰일 났어. 난 선거때라 그런 말 한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러나 초심은 대단히 아름다워.

그지. 그래서 어 가난하고 고아가던 시절이 그리운 거야.

어 아무리 부자가 돼도 네 그거는 즐거움이 없어.음 그 쪼다릴 때 그게 행복이야. 아 나중에 알아봐. 그 쪼달릴 때가 있기 때문에 버티고 있는 거야.

음. 그래서 젊은이들은 돈이 없지만 대단히 행복한 거야. 아 근데 그걸 몰라요.

사먹고 싶어 보느라고 밥도 못 먹고 앉아가 수염도 못 갖고 앉아가 공부하던 그 때가 지겨운 거 같지. 그 그 때가 희망이 있는 거야. 나 이거 시험에 붙을 거야.

예. 그지? 그러면 그 내가 만나던 애인이 얼마나 반가워할까? 우리 아빠가 얼마나 반가워할까? 막이 그 희꿈이 차이. 아 초심 때는.

예. 그지? 그래서 우리가 초심을 잃지 말라.

굉장히 강조하는 거예요. 아. 음. 그래서 정몽주 끝까지 초심을 지켰어.

네. 목숨 걸고 이몸이 죽어지고 고쳐지고 백꼬리 진터디 역시나도 있단 없다. 임 한 임금을 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그거 얼마나 무는 말이야. 어. 절대 자기는 초심을 바꿀 수 없다.

고려와 같이 자기는 죽겠다. 조선은 인정할 수 없다. 이렇게 나오잖아.

예. 정 맞습니다. 근데 이방은 초심을 바꿔라. 바꿔라 자꾸 이러지.

네. 안 그래? 맞습니다. 어.

근데 정는 안 바뀌어. 나는 북아. 어.

난 그냥 당신이 죽이면 죽는 거고 나는 내가 가야 될 길로 가겠습니다. 고래를 잊을 수가 버릴 수가 없습니다. 딱 그래서 나는 내가 모시던 왕을 배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 얼마나 그 대단한 거야.

예. 그게 초심이야.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공심을 계속 유지를 유지한 거지.

어. 거기 자기 사자가 붙어 버리면 살이 사육이 거기 뭐가 나와? 논아 먹는 거. 그게 뭐야? 정권 잡은 다음에 지끼리 뇌물.

아, 뇌물 아니 정권 잡은 다음에 자기들끼리 논아 먹는. 농공 행상. 농공 행상. 더 농공 행상에 안 들어가겠다는 거야.

나는 아, 무슨을 주고 땅 주고 막 그러거든. 거기 들어가게 되는 거야. 들어가면 이방원이한테 막 가면 농공 행상을 논나 먹자이 소리야.

아, 권력을 서로 누려 가지자 이거야. 나는 안 갈 난 농공 행상 안 하겠다. 정목률 끝까지 죽는 거야.

그 멋있잖아.

그게 이제 초심을 지키는 거죠. 예예.

맞습니다. 처심을 지킨 자들이 있지.

음. 인간으로서는 그런 모습을 좀 지향하는 것이 어 그게 바람직하지. 그래서 우리는 그런 걸 권장하고 있어. 아.

어.

참 그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야. 그러니까 불교는 비우는 종교고 기독교는 채우는 종교야.

아. 어.

불교는 피우잖아. 그러면 뭐 이렇게 피우는 종교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예요. 아.

음. 그 그래. 안 그래? 어. 그래서 그런 종교가 있는데 우리의 마음은 계속 뭔가를 채우려고 그래.

음. 사랑을 채우는게 아니야.

그래. 욕망을 채우니까. 채우니까 초심 유지가 어렵지.

맞습니다. 어. 자꾸 보는게 늘어나니까.

음. 그러니까 내가 예수로 있을 때는 내 의서 내모과 같이 생각하라 그랬잖아. 음.

근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파트에서 위에서 소이 나지. 그러면 굉장히 싫어해.

예. 좀 그런게 있지. 어. 그러게 대항을 해.

예. 그럼 우리 인간의 초심이 아니야. 아. 변심한 거야.

아. 음. 그래서 진짜 초심 있는 사람은 원수를 사랑으로 했잖아.

예. 대부분 다 알고 있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우당탄 그래도 절대 안 오가.

그래. 얼마나 애들이 답답하면 아파트에서 저렇게 살아야 되냐?

부상이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때 같으면 첫 뛰어놓을 때가 많은데 이게 아파트 주택에 들어지 애들이 살리지 얼마나 답답할까? 맞습니다. 아 뭐 걔들을 이해해 버려. 그러면네 자식 내 자식이 없어.

지금 내 자식이야. 아 그래 맞습니다.

음. 저게 어떻게 내 남의 자식이야? 내 자식이지.

맞습니다. 요새 애도 없는데. 그러니까 소리가 나면 아, 그런가 보다.

내 새끼들이 저 뛰어다니는구나. 이런 생각해야 되는 거야. 아.

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다니잖아.

다가이 하늘 이런데 가면 잔디밭에 똥이 있잖아. 그럼 내가 내 양복에 항상 개똥 치우는게 들어 있어. 요걸 꺼내 가지고 음.

요렇게 해 가지고 이게 내 초심이야. 아 나는 남의 개를 내 개처럼 개들이 똥을 길 우리 잔디밭에 놓으면 네 이래 가지고 내가 요걸 이러면 하나가 떨어져 안 떨어져 예 떨어집니다. 떨어지지.

그럼 이게이 떨어지면은 이게 봉지야. 얘 안에 똥 넣는 거야. 그럼 요렇게 하나 쓸 때 요렇게 쓰는 거야. 개똥 넣어 가지고 내 호주에 있는 넣어.

예. 그럼 그게 내 개냐? 아닙니다. 다른 개가 한 거잖아. 그럼 잔디한테 다른 사람이 밟을까 봐서 아, 이걸 내가 항상 호주이 넣어 다니는데 많다니까.

예. 가지고 다니는게 봐. 많잖아. 네, 맞습니다.

상당히 많아요. 여러 개를 가지고 다녀.

이렇게. 보이지.

그럼네 번을 치울 수 있는 거야. 그럼 내 호주이 똥이 똥덩어리가 들어 있는 거지. 아. 어.

근데 내 개가 아닌데 내가 왜 그러고 다니냐 이러면 그게 초심이 아니야. 무슨지 알겠지? 우리 하늘공을 깨끗하게 한다. 그리고 내 초심이 그대로 들어 있어.

그 이런 거를 양복 주머니에 여기다 넣어서 네 요가 다녀 내가 아 손숭어처럼 하나 꺼내면 쓰고 아 이걸 저 연한테 누가 셋탁다 하면서 또 빼 버렸나 봐 아 어 항상 가지고 있다이 말이야 그 이게 초심이야 남의 개가 버린 걸 내가 치운다 네 그 남의 개나 내 개나 예 그래 안 그래 맞습니다 예 어 내가 아파트 샀는데 예 천간 소음은 인간들이 제일 싫어하는 거잖아. 근데 그보다 더 싫은게 뭔지 알아? 모르겠습니다. 윗집에서 내 침대 위로 물이 떨어지는 거야. 아.

예. 윗집 화장실에서 물이 세 가지고 밑으로 떨어져요. 어.

그게 제일 괴로운 거잖아. 어.

그런데도 윗집에서 물이 샌다고 내가 올라가서 강해할까? 물이 혹시 안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한 일주일.

안 그래? 예, 맞습니다. 그래서 일주일도 계속 물이 떨어져. 할 수 없이 올라가서.

네. 죄송하다고. 그 우리 집에 물이 떨어지는데 제가 제가 수리비를대 줄테니까 그 물을 좀 잡으면 안 되겠냐고. 이렇게 내가 이야기를 해.

아 그래 가지고 그 사람이 나하고 친해졌어. 아 무슨 알지? 올라가서 이거 보시오. 뭐 무리 이러면 이미 그 사람 인간관계를 끝난 거야. 그건 이웃이 아니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랬잖아. 그러니까 내가 비용을 대서 그걸 좀 고쳐드리겠다. 우리 집에 물이 세는데 이거 좀 어떻게 하면 좋겠냐?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고맙신 겁니다.

맞습니다. 그 사람이 나보다 젊은 사람이야. 아. 어.

나보다 안 몇십살? 그러니까 그 사람이 성질 내겠냐? 못 냅니다. 안 내지. 어.

어. 그리고 내가 어디 가서 차가 받치면 내가 다 잘못됐다 그러고 내가 보험치를 해 줘. 내 차가 좋은 차니까 예 그 사람한테 덮으시면 그 엄청난 피해가 있잖아 맞습니다. 그서 그냥 내가 다 범실해 버려.

아 어 그런 것이 초심이야. 아 어떻게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겠다. 음 그 내가 한 달에 1억 5천씩 무료급씩 하는 것도 네 그래서 하는 거야. 아

남이 굽는데 내가 맞습니다. 그냥 밥 먹고 있을 순 없잖아. 이렇게 남의 개가 똑 불평 안해.

그 사람 왜 개를 갖다 다 주면서 이걸 안 치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미 나는 God-man이 아니야. 아 어 남이 안 밥도로 해 주면 되지. 버린 사람에 대해서는 걸면 그거는 안 되는 거야.

물이 떨어진다. 그 천간소보다 더 안 좋은 거야.

안 그래? 그렇지만 그걸 그릇으로 받쳐 놓고 좀 참아야 돼. 아 한 일주일 정도는 혹시 안 나올 수도 있잖아. 근데 계속 나와. 그때로 올라가서 내가 좀 고쳐 드릴 테니 이렇게 이야기해 지금 가서 물이 떨어지는데 인상 쏘면 그거 어떻게 되나? 맞습니다.

이웃이 원수가 되는 거예요. 조심해야 되네. 그럴 때는 예 아주 극들어 몸을 아쳐 가지고 하면 그 사람이 감동을 받아요.음 그래 가지고 그 물을 잡는데 다 생각 걸렸어.

아 그 모르고 하는 사람이 와 가지고 하는데도 그걸 빨리 못 잡아요. 아 자기들이 예예 그 뭐 화장실을 뭐 깨야 되고 뭐 복잡하잖아. 어디서 세는지는 몰라. 그게 어디서 뭐 파이퍼가 세나 이래가 잡았는데 안 다툰다는 거.

아 이게 중요한 거야.이 자이에. 근데 천관 소음이 딱 올라가서이야이 새끼야 막 이러면 이건 초심을 잃어버린 자들이야. 아 내 이웃을 내모가지 사랑하라.

이게 내가 한 말이야. 예수 때.

아 그래. 안 그래? 그러에 대해서 우리가 이웃에 개가 똥르면 그 내 개라고 생각해야 돼. 그걸 내가 주워 가지고 내 호주만이 넣는다니까.

안 그래? 비닐로 쐈는데 뭐 지저분한 거 있나? 냄새만 나지. 넣어서 가는 그 나중 쓰레기 통해 갖다 버릴 거 아니야.

어 이해가지? 어 그게 초심이야. 초심은 남과 차이 좋게 내 이웃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자. 이게 우리의 초심이에요.

맞아. 음. 그것이 그래서 허경영한테는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거야.

왜? 옛날부터 노인들을 극진히 대워해 줬어. 네, 맞습니다. 그 40년 전 사람들이 오잖아.

예. 그러게 사람이 자꾸 자꾸 늘어난 게 지금 몇 천 명씩, 몇 만 명씩 오는 거야. 와.

예. 그러니까 인간성이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이 몰려오는 거지. 자꾸 막 변절이 되고 이런 자는 기회주의자야.

네, 맞습니다. 그 기회주의자에게는 사람이 안 몰려.

어, 결국 패망하는 거예요. 이제 이해가지? 이해습니다. 초심이 그렇게 중요한 거야.

어, 여자가이 남자 세계에다가 갑자기 저 남자로 팩 돌아서 이게 그것 사고가 많이 나요.

그런게 있지. 어. 그래도 술사 또 여자가 돌아서도 남자가고 12월마데.

맞아. 안 맞아? 왜? 그 사람은 살아 있기 때문에.

네.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고 그러면 이해해 줘. 그지? 그러니까 초심이라는게 무시무시한 거야. 음.

그지? 어.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서 가는게 그 여자한테 행복이야.

아. 그럴 때는 내가 눈치를 안 보여야 돼. 적당히 떨어져 줘야 돼.

시장에 갔는데 더 좋은 차가 나중에 나타나네. 그러면 그 여자가 다른 더 행복한 남자 만나서 살살게 바해야지. 사랑한다면.

아, 그래. 안 그래? 맞습니다. 어.

그게 아버지 같은 마음이야. 굉장히 높은 차원에 높은 차원이지. 그게 사랑이야. 그 진짜 사랑은 그런 거야.

그 사람을 내가 돈도 없는데 데려와서 불행하게 만들겠다. 이거는 욕심이야. 더 좋은 집안에 좋은 사람이 나타난나 보다.

묵하게 나또야돼. 음. 내가 초심에 대해서는 대충 이야기 잘했을 거예요.

예. 오케이.

예. 오늘도 귀중한 시간 오셔서 좋은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닐로 어디로 달아나버렸어?.

The Philosophy of ‘Chosim’: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s in a Corrupt World

Vocabulary
초심 (初心): [첫 마음 (Original Intention)], Initial Resolve, Foundational Commitment, Pristine Mindset
초발심시 신통장 (初發心時 神通藏): [처음 마음을 낼 때 신통력이 나타난다 (Divine Power Manifests at the First Aspiration)], Initial Enlightenment, Awakening of Innate Wisdom, Primordial Insight
재무자성 종심기 (罪無自性 從心起): [죄는 본래 자성이 없고 마음을 따라 일어난다 (Sins Have No Intrinsic Nature; They Arise from the Mind)], Mind-Dependent Transgression, Subjective Origin of Vice, Mental Genesis of Error
예토 (穢土): [더러운 땅 (Defiled Land)], Corrupt World, Impure Realm, Terrestrial Imperfection
정토 (淨土): [깨끗한 땅 (Pure Land)], Pristine Realm, Sanctified Domain, Ideal Abode
공심 (公心): [공적인 마음 (Public-spirited Mind)], Altruistic Intent, Collective Consciousness, Benevolent Spirit
사심 (私心): [사사로운 마음 (Selfish Mind)], Personal Interest, Ego-driven Motive, Self-serving Desire
농공행상 (論功行賞): [공을 논하여 상을 준다 (Rewarding Merit)], Distribution of Spoils, Allocation of Honors, Patronage System
일편단심 (一片丹心): [한 조각 붉은 마음 (Unwavering Loyalty)], Unswerving Devotion, Steadfast Allegiance, Singular Dedication
중도 (中道): [치우치지 않는 바른 도리 (Middle Path)], Moderation, Balanced Approach, Equanimity

초심: 본래의 마음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

  1. 초심의 본질과 그 유지의 어려움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할 때, 처음 가졌던 마음인 초심(初志)을 잃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처음 가르친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언급된 것처럼, 진정한 크리스천은 예수뿐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불교의 스님들 또한 절에 처음 왔을 때의 마음이 이미 불심(佛心)이 완성된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초심을 잃고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현상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초심은 다른 말로 희망(Hope), 즉 자신의 소명(召命)이나 소망(所望), 그리고 꿈을 의미합니다. 간디와 같은 인물은 초심과 마지막 마음(終心)이 일치하여 인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간디가 부패하여 감옥에 갔다면 지금과 같은 존경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특히 정치인들에게는 매우 드문 일입니다. 초심은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초심에 무언가를 더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간에 수많은 유혹이 따르기 때문에 더욱 어렵습니다.

초심을 지킨다는 것은 ‘초발심시 신통장(初發心時 神通藏)’, ‘초발심시 광명당(初發心時 光明堂)’과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또한, ‘재무자성 종심기(罪無自性 從心起)’라는 말처럼 죄는 본래 없지만, 마음을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본성(自性)에는 죄가 없지만, 마음이 그것을 일으키고 따라가면 죄가 됩니다. 이로 인해 초심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본래 없는 것이지만,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면 처음과 끝이 달라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깨끗했던 마음이 변질되는 것입니다.

  1. 예토(穢土)에서의 초심 유지와 그 어려움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 즉 깨끗한 땅이 아닙니다. 이 구조 자체는 예토(穢土), 즉 더러운 땅입니다. 정토는 수도자들이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오욕(五慾)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사는 예토입니다. 이러한 예토에서는 때가 묻기 마련이며, 첫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공무원들이나 장교들이 임명될 때는 청렴한 마음을 가지지만, 살아가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필요한 것을 채우려다 보면 초심을 지키기 어렵게 됩니다.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할 때의 첫 마음은 매우 좋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으며, 거의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합니다. 초심은 마치 티끌(塵)과 티끌이 모여 태산(泰山)을 이루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업보(業報) 또한 이와 같아서, 처음에는 깨끗했던 마음이 자꾸 쌓여 죄가 태산처럼 커지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순수했던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쁜 감정들이 쌓여 태산처럼 변질됩니다. 이처럼 티끌이 쌓여 태산으로 바뀌는 것을 막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초심을 지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도(中道)를 지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중도는 도(道)의 절정(絶頂)에 해당하며,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입니다. 그러나 도의 절정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축복을 받지 못하면 극락(極樂)이나 천국(天國)으로 갈 수 없습니다. 어떤 도(道)도 인간 세계에서 끝나며 천국으로 인도할 수는 없습니다. 젊은 시절 부정부패에 대항하며 시위하던 학생들의 초심도 계속 유지되기 어렵고, 결국 부패한 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명가들 또한 나중에는 부패자로 재판을 받기도 합니다.

  1. 초심을 잃지 않는 자세와 공심(公心)의 중요성
    우리가 살아가는 예토(穢土)에서는 어쩔 수 없이 때가 묻게 됩니다. 그러나 이 예토에서 중도(中道)를 지킨다면 그것이 곧 초심(初志)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초심은 대부분 사심(私心)이 아닌 공심(公心)입니다. 예를 들어, 사회의 선교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초심입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면 열악한 환경과 개인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초심이 사심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단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공심이 아내를 살리거나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사심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반면, 서양 선교사들 중에는 한국에 와서 가족을 모두 잃고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겠다고 결심하며 초심을 지킨 강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는 선진국 신앙인들의 본받을 만한 점으로, 그들은 십자군(十字軍) 정신처럼 초심을 끝까지 지키는 특이한 기사도(騎士道)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공심으로 나아가야 할 초심이 사심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은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군기(軍紀)가 잘 잡혀 있지만, 장교가 되면 군기가 해이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초심을 잃어버리는 모습입니다. 새 차를 샀을 때 차를 아끼고 닦는 초심이 생기지만, 20년이 지나면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자동차가 여기저기 긁히고 상처가 나면 닦는 것도 귀찮아지듯이, 인간 관계에서도 상처가 생기면 초심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그 초심이 남아 있어, 옛날을 그리워하며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1. 젊음의 초심과 희망, 그리고 이웃 사랑의 실천
    사법고시(司法考試)를 준비하며 절간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나중에 변호사나 판사가 되어 부귀영화(富貴榮華)를 누릴 때보다 더 행복했다고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시 합격 후 검사나 부장판사가 되어 결혼하고 이사 다니며 살다가 정년 퇴직 후 돌아보면, 가장 행복했던 때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희망에 차 있던 그 초심의 시절입니다. 지금은 돈을 쫓아 변호하는 삶을 살지만, 그때의 순수했던 초심을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초심을 가지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초심을 가진 젊은이들을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은 큰 문제입니다. 젊은 사람은 보물과 같습니다. 초심은 대단히 아름다운 것입니다. 가난하고 고아였던 시절이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그리워지는 것은, 그때의 어려움 속에서 희망과 행복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은 돈이 없지만 대단히 행복한 존재이며,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희망에 차 있던 그때가 가장 아름다운 때입니다.

정몽주(鄭夢周)는 끝까지 초심을 지킨 인물입니다. 그는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노래하며 고려(高麗)에 대한 일편단심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절대 초심을 바꿀 수 없으며, 고려와 함께 죽겠다고 주장하며 조선(朝鮮)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방원(李芳遠)이 초심을 바꾸라고 설득했지만, 정몽주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가겠다며 모시던 왕을 배신할 수 없다. 이는 공심(公心)을 끝까지 유지한 모습입니다. 만약 그가 사심(私心)을 가졌다면 정권 잡은 후의 논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몽주는 농공행상에 참여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며 초심을 지켰습니다. 인간으로서는 이러한 모습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는 이를 권장합니다.

  1. 종교적 관점에서의 초심과 이웃 사랑의 실천
    불교는 비우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사랑이 아닌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초심(初志) 유지가 어렵습니다. 욕망이 자꾸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Jesus)는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이 나면 싫어하고 대항하는 것은 인간의 초심이 아닌 변심한 모습입니다. 진정한 초심을 가진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처럼, 층간 소음을 내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 아이들을 내 자식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허경영(Huh Kyung-young)은 하늘공원(Haneulgongwon)에서 다른 사람의 개가 잔디밭에 똥을 싸면 자신의 개가 아니더라도 항상 주머니에 개똥 치우는 도구를 가지고 다니며 치웁니다. 이는 하늘공원을 깨끗하게 하려는 초심이 그대로 담겨 있는 행동입니다. 남의 개가 버린 것을 치우는 것은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겠다는 초심의 실천입니다.

아파트 윗집에서 물이 새어 침대로 떨어지는 상황은 층간 소음보다 더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허경영은 즉시 올라가서 항의하는 대신, 물이 혹시 멈출 때까지 일주일 정도 기다립니다. 계속 물이 떨어지면 윗집에 올라가 죄송하다고 말하며, 자신이 수리비를 댈 테니 물을 좀 잡아달라고 정중하게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면 윗집 사람과 친해질 수 있으며, 이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젊은 사람이라도 성질을 내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차 사고가 나면 자신의 차가 좋은 차이므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다 잘못했다고 말하고 보험 처리를 해줍니다. 이처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는 것이 초심입니다. 한 달에 1억 5천만 원씩 무료 급식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남이 굶고 있는데 자신만 밥을 먹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남이 버린 개똥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남이 밟지 않도록 치워주는 것이 초심입니다. 윗집에서 물이 떨어질 때도 그릇으로 받쳐 놓고 일주일 정도 참다가, 계속되면 정중하게 수리를 제안해야 합니다. 인상을 쓰며 항의하면 이웃이 원수가 됩니다. 아주 극진하게 몸을 낮추면 상대방이 감동을 받습니다. 층간 소음이 날 때도 올라가서 화를 내는 것은 초심을 잃어버린 자들의 행동입니다. 이웃의 개가 똥을 싸면 내 개라고 생각하고 치워주는 것이 초심입니다. 비닐로 싸면 지저분할 것도 없고 냄새만 날 뿐이며, 나중에 쓰레기통에 버리면 됩니다. 초심은 남과 사이좋게 지내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허경영에게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이유는 그가 옛날부터 노인들을 극진히 대우해 주며 초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절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에게는 사람이 몰리지 않고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초심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이해해 주고 적당히 떨어져 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돈이 없는데 억지로 데려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욕심입니다. 더 좋은 집안의 좋은 사람이 나타났다면 묵묵히 놓아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며, 매우 높은 차원의 사랑입니다.

초심의 본질과 유지의 어려움

인간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할 때, 처음의 마음인 초심을 잃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the God-man께서는 기독교가 예수가 처음 가르친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으며, 진정한 크리스천은 예수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불교의 스님들도 처음 절에 왔을 때의 마음이 불심이 완성된 상태였다고 언급하셨습니다. 이처럼 초심을 잃고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현상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납니다. 초심은 무엇이며, 올바른 초심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이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됩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초발심시 신통장(初發心時神通藏)’, 즉 ‘초발심시 변정가(初發心時便正覺)’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처음 마음을 일으킬 때가 곧 깨달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훌륭한 검사나 법관이 되겠다는 처음의 다짐과 같습니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도 집권 초기에는 청렴했으나, 말년에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초심과 마지막이 일치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석가모니, 예수, 공자와 같은 성인들은 초심과 종심이 같았습니다. 그들은 처음과 끝이 변하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녔습니다.

초심은 다른 말로 ‘호프(hope)’, 즉 자신의 소명, 소망, 꿈, 희망을 의미합니다. 간디와 같이 자신의 소망이나 소명 정신이 뚜렷한 인물은 초심과 끝심이 같았습니다. 그는 현재 인도에서 존경받고 있습니다. 만약 간디가 부패로 감옥에 갔다면 지금과 같은 존경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정치인으로서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입니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초심에 무언가를 더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간에 많은 유혹이 따르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1. 초심 상실의 원인과 예토의 속성
    초심을 지킨다는 것은 ‘초발심시 신통장’, ‘초발심시 광명당’과 같은 의미를 내포합니다. ‘재무자성 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라는 말이 있습니다. 죄는 본래 자성(自性)에 없으나, 마음에 의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자기 스스로의 본성에는 죄가 없지만, 마음이 그것을 일으키고 따라가면 죄가 됩니다. 이로 인해 초심을 잃게 됩니다. 죄는 본래 없지만,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면 처음과 끝이 달라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깨끗하지만,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가면 죄가 쌓여 초심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 즉 깨끗한 땅이 아닙니다. 이 구조 자체는 예토(穢土), 즉 더러운 땅입니다. 정토는 수도자들이 있는 곳이며, 이곳은 오욕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사는 예토입니다. 이러한 예토에서는 때가 묻기 마련이므로, 첫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공무원들이 선서하고 임명받을 때, 장교들이 임명받을 때는 청렴합니다. 그러나 살다 보면 가족을 부양하고 결혼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에 쫓기게 됩니다. 이로 인해 초심을 지키기가 어려워집니다.

연애하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사이가 좋습니다. 결혼할 때도 처음에는 좋지만, 나중에는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의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심을 사랑합니다. 이혼한 부부가 연애 시절 주고받았던 러브레터를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편지에는 초심이 담겨 있으며, 구구절절 눈물 나는 내용이지만 지금은 원수가 되어 이혼한 상태입니다. 세계 문학이 다 들어있을 법한 그 편지를 불태우기 아까워하는 것처럼, 초심을 지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는 쉽게 초심을 말하기 어렵습니다.

  1. 업보의 축적과 초심의 변질
    ‘일일진진내(一日塵塵來) 태산적각내(泰山積脚來)’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태산도 티끌과 티끌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원래 태산은 없으며, 미세한 먼지들이 쌓여 태산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업보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깨끗하고 하나이지만, 자꾸 쌓여 죄가 태산처럼 커집니다. 죄는 본래 없지만, 태산처럼 쌓여버리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서로 사랑하고 순수했던 관계도 살다 보면 욕설과 나쁜 감정이 쌓여 태산처럼 변질됩니다. 티끌과 티끌이 쌓여 태산으로 바뀌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초심을 지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도를 지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중도는 도의 절정이며,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입니다. 그러나 도의 절정에 이르렀다 해도 축복받지 못하고 명패하지 않으면 극락이나 천국으로 갈 수 없습니다. 어떤 도도 천국으로 갈 수 없으며, 인간 세계에서 끝납니다.

대학교 시절 부정부패에 항의하며 시위하던 젊은 학생들의 초심이 계속 유지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역시 나중에는 부패한 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명가들도 부패자로 재판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혁명 정신을 가졌던 많은 이들이 나중에는 수천억 원의 재산을 압류당하는 등 부패에 연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예토에서의 초심 유지와 공심의 중요성
    우리가 사는 곳이 예토이므로 때가 묻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예토에서 중도를 지키면 그것이 곧 초심을 지키는 것입니다. 중도를 지킨다는 것은 초심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초심은 대부분 사심이 아닌 공심입니다. 사회의 선교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초심입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면 아이들이 전염병에 걸리고, 자식들이 갈 학교도 없으며, 아내마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현실에 직면하면 초심이 사심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단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공심이 아내를 살려야겠다는 사심으로 변질되어 서울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외국 선교사 중에는 우리나라에 와서 수백 명이 죽은 사례도 있습니다. 오자마자 자식이 전염병으로 죽고, 아내마저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겠다고 결심한 선교사들이 있었습니다. 서양 선교사들은 강직하게 초심을 지켰습니다. 십자군이라면 끝까지 십자군으로서의 정신을 지키는 기사도 정신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공심으로 나아가야 할 초심이 사심으로 흘러갈 수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군기가 잘 잡혀 있지만, 장교가 되면 다소 흐트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초심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새 차를 살 때는 아름답고 아끼겠다는 초심이 생기지만, 20년이 지나면 누가 그 차를 열심히 닦겠습니까? 초심은 사라지고 차는 여기저기 긁히고 상처가 납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심을 가진 부부가 백년해로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살면서 상처가 생기면 초심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초심이 남아 있어, 흘러간 음악을 들으며 옛 추억을 그리워하고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절간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나중에 변호사나 판사가 되어 부와 영화를 누릴 때보다 행복했다고 깨닫는 경우가 있습니다. 고시 합격 후 검사, 부장판사로 살다가 결혼하고 이사 다니며 바쁘게 살다 정년퇴직 후 돌아보면, 돈을 벌었지만 가장 행복했던 때는 사법고시 공부를 하던 절간 시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는 시험에 붙을 것이라는 희망과 애인, 부모님이 반가워할 모습에 꿈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초심을 잃지 말.

  1. 초심의 가치와 실천적 지향점
    정몽주는 끝까지 초심을 지켰습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시조처럼, 그는 목숨을 걸고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을 지켰습니다. 조선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며 자신이 모시던 왕을 배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는 공심을 유지한 초심의 발현입니다. 이방원이 농공행상(論功行賞)을 제안하며 권력을 나누자고 했지만, 정몽주는 이를 거부하고 죽음을 택했습니다. 이는 초심을 지킨 멋진 모습입니다. 인간으로서는 이러한 모습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우리는 이를 권장합니다.

불교는 비우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채우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비우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웁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채우려 합니다. 사랑이 아닌 욕망을 채우려 하므로 초심 유지가 어렵습니다. 자꾸만 원하는 것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이 나면 싫어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는 초심이 아닌 변심입니다. 진정한 초심을 가진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처럼, 층간 소음을 내는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이해합니다. 우리 때처럼 뛰어놀 곳이 없는 아파트에서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하며, 내 자식처럼 여깁니다.

하늘공원에 가면 잔디밭에 개똥이 있을 때, 허경영님은 항상 양복 주머니에 개똥 치우는 도구를 가지고 다니며 남의 개가 싼 똥이라도 자신의 개똥처럼 치웁니다. 이는 하늘공원을 깨끗하게 하려는 초심의 발현입니다. 아파트 윗집에서 물이 새어 침대로 떨어지는 상황은 층간 소음보다 더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허경영님은 일주일 정도 기다려보고, 계속 물이 떨어지면 윗집에 올라가 죄송하다고 말하며 수리비를 대줄 테니 물을 잡아달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렇게 하면 윗집 사람과 친해질 수 있습니다. 만약 화를 내며 따진다면 이웃 관계는 끝나는 것입니다.

허경영님은 차 사고가 나면 자신의 차가 좋은 차이므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다 잘못했다고 말하며 보험 처리를 해줍니다. 이것이 초심입니다. 어떻게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생각하겠다는 마음입니다. 한 달에 1억 5천만 원씩 무료 급식을 하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남이 굶고 있는데 자신만 밥을 먹고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이 버린 개똥을 치우는 것도, 물이 새는 윗집에 화를 내지 않고 도와주는 것도 모두 초심을 지키는 행동입니다. 초심은 남과 사이좋게 지내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허경영님에게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이유는 그가 옛날부터 노인들을 극진히 대우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40년 전부터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지금도 찾아오며, 수천 명, 수만 명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인간성이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 사람이 모여드는 것입니다. 변절하고 기회주의적인 사람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으며, 결국 패망하게 됩니다. 초심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여자가 다른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을 때,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 이해하고 놓아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 그 여자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면, 묵묵히 놓아주어야 합니다. 이는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며, 매우 높은 차원의 사랑입니다. 돈이 없는데도 억지로 데려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욕심입니다. 초심에 대한 이야기는 이처럼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다음 중 초심을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언급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요?

① 사회의 유혹과 부패한 환경
② 개인적인 욕망과 사심의 개입
③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및 불화
④ 가족 부양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

(정답: ③, 해설: 본문에서는 사회의 유혹, 개인의 욕망, 가족 부양 등 현실적인 문제들이 초심을 잃게 만드는 원인으로 언급되었으나, 주변 사람들과의 갈등 및 불화는 직접적인 원인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신경망 학습 과정에서, 손실 함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매개변수(가중치와 편향)를 반복적으로 조정하는 최적화 기법은 무엇인가요?
(정답: 경사하강법, 해설: 경사하강법은 손실 함수의 기울기를 계산하여 경사가 가장 가파른 방향으로 매개변수를 조금씩 업데이트하며 최적의 값을 찾아가는 방법입니다.)

초심을 다른 말로 ‘소명’, ‘소망’, ‘꿈’, ‘희망’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고 언급되었습니다. (O/X)
(정답: O, 해설: 본문에서 초심을 영어로 ‘hope’라고 하며, 자기 소명, 소망, 꿈, 희망과 같은 의미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예토’는 어떤 의미인가요?
(정답: 더러운 땅, 해설: 본문에서 ‘예토’는 정토(깨끗한 땅)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오욕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사는 ‘더러운 땅’을 의미합니다.)

중급
다음 중 초심을 지킨 인물로 언급된 사람들을 모두 고르세요.
① 마르코스
② 간디
③ 정몽주
④ 이방원
⑤ 석가모니
⑥ 예수
⑦ 공자

(정답: ②, ③, ⑤, ⑥, ⑦, 해설: 본문에서 마르코스는 초심을 잃고 부패한 인물로,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초심을 바꾸라고 권유한 인물로 언급됩니다. 반면 간디, 정몽주, 석가모니, 예수, 공자는 초심을 끝까지 지킨 인물로 언급됩니다.)

‘재무자성 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는 죄가 본래 없으나 마음에 의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는 초심을 잃는 과정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설명하세요.
(정답: 죄는 본래 자성(스스로의 본성)에는 없지만, 마음이 욕망을 따라가면서 죄를 일으키게 되고, 이로 인해 처음의 깨끗한 마음인 초심을 잃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 초심을 지키는 것이 어렵다고 설명하며, ‘태산처각내 일일진진내(泰山處脚內 一日塵塵內)’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정답: 태산도 티끌과 티끌이 모여 이루어지듯이, 죄 또한 처음에는 미미한 마음의 움직임(티끌)이 쌓여 결국 큰 죄(태산)가 되어 초심을 잃게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에서 언급된 ‘중도’는 초심을 지키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설명되었나요?
(정답: 예토와 같은 더러운 세상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곧 초심을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되었습니다. 중도는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경지입니다.)

심화
본문에서 불교와 기독교를 각각 ‘비우는 종교’와 ‘채우는 종교’로 비유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관점이 초심 유지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설명하세요.
(정답: 불교는 비우는 종교로서 욕망을 비워내 초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로서 이웃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가치를 채워 초심을 지키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 사랑 대신 욕망을 채우려 할 때 초심 유지가 어려워진다.)

화자가 아파트 층간 소음이나 윗집 누수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에서 드러나는 ‘초심’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정답: 화자는 층간 소음이나 누수 문제 발생 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심지어 자신의 비용을 들여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는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초심의 본질을 실천하는 것으로,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공심(公心)을 의미합니다.)

다음은 초심과 관련된 설명입니다. 옳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
① 초심은 대부분 공심(公心)이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면 사심(私心)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②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는 시기이며,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하여 초심을 잃기 쉽습니다.
③ 초심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한다고 언급됩니다.
④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욕망을 적극적으로 채워나가야 합니다.

(정답: ④, 해설: 본문에서는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욕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욕망을 비우고 이웃을 사랑하는 공심을 유지해야 한다.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욕망은 초심을 잃게 만드는 원인으로 언급됩니다.)

화자가 자신의 경험을 예시로 들며 ‘개똥을 치우는 행위’를 초심과 연결하여 설명했습니다. 이 예시가 전달하고자 하는 초심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정답: 이 예시는 자신의 것이 아닌 남의 개가 버린 개똥을 스스로 치우는 행위를 통해,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초심의 핵심 가치를 보여줍니다. 이는 타인의 불편을 헤아리고 공동체를 깨끗하게 유지하려는 이타적인 마음과 책임감을 의미합니다.)

제1장 초심의 본질과 중요성

  1. 초심의 정의와 이상적 형태
    인간은 삶을 영위하며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할 때, 처음 가졌던 마음인 초심을 잃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발생한다. 허경영 선생은 기독교가 예수의 본래 가르침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진정한 크리스천은 예수뿐. 또한 불교의 스님들도 처음 절에 왔을 때의 마음이 이미 불심이 완성된 상태였다. 이처럼 초심을 잃고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현상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난다.

초심은 다른 말로 희망(Hope), 즉 자신의 소명, 소망, 꿈을 의미한다. 초발심시 변정가(初發心時 便正覺)라는 말처럼, 초심은 깨달음과 같다. 처음에는 훌륭한 검사나 법관이 되겠다는 마음, 혹은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이 초심이다.

이상적인 초심은 처음과 끝이 일치하는 것이다. 석가모니, 예수, 공자와 같은 성인들은 초심과 종심(終心)이 같았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는 성자들이다. 간디 또한 초심과 끝심이 같아 인도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간디가 부패하여 감옥에 갔다면 존경받지 못했을 것이다.

  1. 초심 유지의 어려움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치인 중 초심을 유지하는 사람은 드물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대통령도 집권 초기에는 청렴했으나, 말년에는 부패하여 많은 오해를 받았다. 이는 초심과 마지막이 일치하는 사람이 거의 없음을 보여준다.

초심에 무언가를 더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초심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중간에 유혹하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2.1. 초심을 잃는 원인: 마음의 작용
죄는 본래 자성(自性) 자체에는 없다. 그러나 마음이 죄를 일으키고 그 마음을 따라가면 죄가 된다. 이로 인해 초심을 잃게 된다. 처음에는 깨끗했던 마음이 마음의 작용으로 인해 변질되는 것이다.

2.2. 예토(穢土)의 영향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 즉 깨끗한 땅이 아니다. 이 구조 자체는 예토(穢土), 즉 더러운 땅이다. 정토는 수도자들이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오욕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사는 예토이다. 따라서 예토에서는 때가 묻기 마련이며, 첫 마음을 지키기 어렵다.

공무원이나 장교들이 임명될 때는 청렴한 마음을 갖지만, 살아가면서 가족을 부양하고 필요한 것을 추구하다 보면 초심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연애나 결혼 초기의 좋은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한다.

2.3. 티끌이 태산이 되는 과정
태산도 티끌(塵塵)과 티끌이 모여 이루어진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업보도 처음에는 깨끗한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작은 죄들이 쌓여 태산처럼 커진다. 연애 초기의 순수했던 마음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쌓인 나쁜 감정들로 인해 태산처럼 변질되는 것과 같다. 이처럼 티끌이 쌓여 태산으로 변하는 것을 막기란 매우 어렵다. 초심을 지키는 것이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1. 초심을 지키는 자세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도를 지키는 것과 유사하다. 중도는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도의 절정이다. 그러나 도의 절정에 이르러도 축복받지 못하면 천국으로 갈 수 없다. 어떤 도(道)도 인간 세계에서 끝나며 천국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젊은 시절 부정부패에 항거하던 학생들도 나중에는 부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혁명가들도 결국 부패자로 재판받기도 한다. 이는 초심을 지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3.1. 공심(公心)의 유지와 사심(私心)의 경계
초심은 대부분 사심(私心)이 아닌 공심(公心)이다. 사회에 봉사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초심이다. 그러나 막상 현실에 부딪히면 자녀의 교육 문제나 전염병 등으로 인해 초심이 사심으로 바뀌는 경우가 발생한다. 교단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공심도 사심이 끼어들 수 있다.

반면, 서양 선교사들은 한국에 와서 가족을 잃으면서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겠다는 강직한 초심을 지켰다. 이는 선진국 신앙인들의 본받을 만한 초심 유지의 모습이다. 그들은 십자군 정신처럼 끝까지 자신의 초심을 지킨다.

공심으로 나아가야 할 초심이 사심으로 흘러갈 수 있다.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3.2. 일상생활에서의 초심 실천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은 군기가 잡혀 있지만, 장교가 되면 흐트러지는 경우가 있다. 이는 초심을 잃는 모습이다. 새 차를 샀을 때 아끼고 닦던 초심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부부도 처음에는 백년해로를 다짐하지만, 상처가 쌓이면서 초심을 잃는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그 초심이 남아 있어 과거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절간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변호사의 이야기처럼,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이다. 가난하고 고아였던 시절이 그리운 것은, 그때가 희망으로 가득 찬 행복한 때였기 때문이다.

정몽주는 목숨을 걸고 고려에 대한 일편단심을 지켰다. 이방원이 초심을 바꾸라고 권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몽주는 고려를 버릴 수 없다며 죽음을 택했다. 이는 공심을 끝까지 유지한 초심의 모범이다. 정몽주는 권력을 나누는 농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했다. 인간으로서 이러한 초심을 지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3.3. 사랑과 이웃에 대한 마음
불교는 비우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사랑이 아닌 욕망을 채우려 하기에 초심 유지가 어렵다.

예수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아파트 층간 소음 문제에서 윗집 아이들을 자신의 자식처럼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초심이다.

허경영 선생은 하늘공원 잔디밭에 있는 개의 배설물을 자신의 개가 버린 것처럼 여기고 직접 치운다. 이는 하늘공원을 깨끗하게 하려는 초심의 발현이다.

윗집에서 물이 샐 때도 화를 내기보다, 일주일 정도 기다린 후 자신이 수리비를 대주겠다고 제안하여 이웃과의 관계를 좋게 유지한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도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모든 보험 처리를 하는 것이 초심이다. 한 달에 1억 5천만 원씩 무료 급식을 하는 것도 남이 굶주리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초심에서 비롯된다.

초심은 남과 사이좋게 지내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허경영 선생에게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그가 초심을 가지고 노인들을 극진히 대했기 때문이다. 변절하는 기회주의자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고 결국 패망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즉 상대방의 행복을 우선하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자 높은 차원의 초심이다.

초심: 처음의 마음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

  1. 초심의 본질과 그 유지의 어려움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며 어떤 일을 배우거나 시작할 때, 처음의 마음인 초심(初心)을 잃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많다. 기독교가 예수의 가르침과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고, 불교 승려들도 처음 절에 왔을 때의 불심(佛心)이 완성된 상태였다는 점은 초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초심을 잃고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현상은 개인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나타난다.

초심은 다른 말로 희망(hope), 소명(calling), 소망(desire), 꿈(dream)과 같은 자기의 이상을 의미한다. 간디와 같이 자신의 소망과 소명 정신이 뚜렷했던 인물들은 초심과 마지막 마음(終心)이 일치했다. 그러나 정치인들 중 초심을 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초심을 지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초심에 무언가를 더하려 해서는 안 된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간에 많은 유혹이 따르기 때문에 힘들다.

  1. 초심을 잃게 되는 원인: 예토(穢土)와 마음의 작용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 즉 깨끗한 땅이 아닌 예토(穢土), 즉 더러운 땅인 이 사회의 구조는 우리가 때가 묻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수도자들이 있는 정토와 달리, 오욕(五慾)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사는 예토에서는 첫 마음을 지키기가 어렵다. 공무원이나 장교들이 임명될 때는 청렴한 초심을 가지지만, 살아가면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에 쫓기다 보면 초심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연애를 시작하거나 결혼할 때의 설레고 좋은 초심도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어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거의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한다.

죄(罪)는 본래 자성(自性) 자체에는 없지만, 마음이 그것을 일으키고 따라가면서 죄가 된다. 이처럼 마음이 자성을 따라가면서 초심을 잃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깨끗했던 마음이 점차 쌓여 태산(泰山)처럼 죄가 되어버리는 과정은, 티끌(塵)과 티끌이 모여 태산이 되는 이치와 같다. 처음에는 순수했던 관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쁜 감정이 쌓여 태산처럼 변질되는 것이다.

  1. 초심 유지의 자세와 그 가치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도(中道)를 지키는 것과 유사하게 어렵다. 중도를 지키는 것은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경지이다. 그러나 어떤 도(道)도 천국으로 갈 수는 없으며, 인간 세계에서 끝난다.

젊은 학생들의 초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변질되어 부패한 자가 되기도 하고, 혁명가들도 결국 부패자로 재판을 받기도 한다. 예토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곧 초심을 지키는 것이다. 초심은 대부분 사심(私心)이 아닌 공심(公心)이다. 사회에 봉사하겠다는 선교사의 초심도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히면서 사심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서양 선교사들 중에는 가족을 잃으면서도 초심을 잃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기를 택한 강직한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기사도(騎士道) 정신으로 초심을 지켰다.

새 차를 살 때의 초심처럼 차를 아끼고 닦는 마음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초심은 상처로 인해 사라지기 쉽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그 초심이 남아있어 과거를 그리워하게 만든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절간에서 공부하던 때가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변호사의 이야기처럼,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기이다.

정몽주(鄭夢周)는 목숨을 걸고 고려(高麗)에 대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의 초심을 지켰다. 그는 이방원(李芳遠)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농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며 공심을 유지했다. 이러한 초심을 지키는 모습은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태도이다.

불교가 비우는 종교이고 기독교가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인 반면, 인간의 마음은 사랑이 아닌 욕망을 채우려 하기 때문에 초심 유지가 어렵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처럼, 아파트 층간 소음이나 윗집 누수 문제에 대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초심을 지키는 태도이다. 남의 개가 버린 배설물을 치우는 행동이나, 차 사고 시 상대방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자신의 보험으로 처리하는 것도 이웃을 사랑하는 초심의 발현이다.

초심을 지키는 것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힘이 된다. 기회주의자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고 결국 패망하게 된다. 사랑하는 사람이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즉 아버지와 같은 높은 차원의 사랑 또한 초심의 중요한 부분이다.

The Enduring Significance of Original Intentions

When individuals embark on new endeavors or acquire knowledge, they often find their initial resolve, their “first mind” or original intention, wavering or even disappearing. This phenomenon is not limited to individuals but is observed across society. For instance, Huh Kyung young has stated that Christianity deviated from Jesus’s original teachings, asserting that only Jesus was a true Christian. Similarly, Buddhist monks, upon entering the temple, were said to possess a complete state of Buddhist devotion. The question arises: what constitutes this original intention, what defines a righteous original intention, and what posture should people adopt to preserve it?

  1. The Rarity of Sustained Original Intentions
    In society, when we undertake tasks, there’s a saying, “The initial resolve is the path to enlightenment.” This means that the first intention itself is enlightenment. For example, someone might begin with the aspiration to become an exemplary prosecutor or a distinguished judge. Historically, figures like Ferdinand Marcos, who was incorruptible at the outset of his presidency in the Philippines, later faced accusations of corruption, with his wife Imelda Marcos reportedly owning thousands of pairs of shoes. His son is now president, yet few individuals maintain their original intentions until the very end.

Only sages such as Siddhartha Gautama, Jesus, and Confucius have demonstrated an unwavering consistency between their initial and final intentions. For these enlightened beings, their beginning and end were one. Original intention, in essence, is one’s hope, one’s calling, one’s aspiration, one’s dream. When this sense of hope, calling, or purpose is clear, as it was for Mahatma Gandhi, the initial and final intentions align. Gandhi is still revered in India; had he been imprisoned for corruption, this would not be the case. Maintaining one’s original intention is particularly rare among politicians, making it a challenging endeavor.

  1. The Erosion of Original Intentions
    One should not assume that original intention can be augmented. If one’s initial resolve is to serve the nation, maintaining that commitment is difficult due to numerous temptations. The saying “No sin inherently exists; it arises from the mind” illustrates this. Sin is not intrinsic to one’s nature; it originates from the mind’s inclinations. Our inherent nature is pure, but when the mind follows these inclinations, sin emerges, leading to the loss of original intention.

This world, unlike the pure land described in Buddhist teachings, is a defiled land. It is a realm where individuals struggle with five desires, making it inevitable that one’s initial purity will be stained. Public officials, upon taking their oaths or receiving appointments, are often incorruptible. However, as life progresses, with family responsibilities and financial needs, these initial intentions are often compromised. This makes it challenging to uphold one’s original resolve.

Even in romantic relationships, couples are often harmonious at the beginning. The initial intention at the start of a marriage is often one of affection, but over time, many relationships devolve into animosity. Nearly 99.9% of people fail to maintain their original intentions. We cherish the memory of that initial love, as seen in old love letters that, despite their beautiful sentiments, now represent a past relationship that ended in divorce. Preserving original intention is indeed a formidable task.

  1. The Accumulation of Defilements
    The proverb “Even Mount Tai is formed by the accumulation of dust” illustrates how even the grandest things are built from tiny particles. Similarly, our karmic burdens accumulate. Initially, the mind is pure and singular, but as defilements gather, they transform into a mountain of sin, just as dust accumulates to form Mount Tai. A couple’s relationship, initially pure and filled with love letters, can become burdened by accumulated negativity and harsh words, transforming into a mountain of animosity. This accumulation, like dust forming a mountain, is difficult to prevent, making it challenging to preserve one’s initial resolve.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 is akin to upholding the Middle Way, though the Middle Way represents an even higher spiritual attainment. While the Middle Way is the pinnacle of spiritual realization, it alone cannot lead to heaven without blessings and recognition; it concludes within the human realm.

Students who once protested against corruption often become corrupt themselves. Revolutionaries, too, frequently face trials for corruption later in life. This demonstrates the difficulty of sustaining the initial resolve of youth. In this defiled world, upholding the Middle Way is synonymous with preserving one’s original intention.

  1. The Transformation from Public to Selfish Intentions
    Original intention is typically a public-minded intention, not a selfish one. For example, a missionary’s initial resolve might be to help the less fortunate in Africa. However, upon witnessing the suffering of children, the lack of schools for their own children, and the prevalence of disease, this public intention can shift to a selfish one, driven by the desire to protect one’s family or return home.

In contrast, some Western missionaries in Korea remained steadfast in their original intentions, even when their children and spouses succumbed to infectious diseases. They refused to return to their home countries for treatment, choosing instead to be buried in Korea. This unwavering commitment to their calling, this knightly spirit, exemplifies the preservation of original intention.

However, this public-minded intention can easily devolve into selfish desires. This is not a simple matter. Military academy cadets maintain strict discipline, but this often loosens after they become officers, indicating a departure from their initial resolve.

  1. The Fading of Initial Enthusiasm
    Original intention is like a new car: initially beautiful and meticulously cared for. However, after years of use, the car’s condition deteriorates, and the initial enthusiasm for maintaining it fades. Similarly, a couple’s initial resolve for a hundred years of happiness can be eroded by accumulated hurts and challenges. Although the original intention may recede, its memory often lingers, offering solace through nostalgic music or reflections on happier times.

A lawyer who once studied diligently in a temple, aspiring to pass the bar exam, might later realize that the happiest time of their life was not during their successful career as a prosecutor or judge, but during those challenging days of study, fueled by the hope of passing the exam. The initial dream of success, the anticipation of loved ones’ joy, represents the beautiful essence of original intention. This is why we emphasize the importance of not losing one’s original intention.

  1. Exemplars of Unwavering Resolve
    Jeong Mong-ju, a loyal subject of the Goryeo Dynasty, steadfastly maintained his original intention, even at the cost of his life. His poem, expressing unwavering loyalty to his king, demonstrates his refusal to acknowledge the new Joseon Dynasty. Yi Bang-won urged him to change his allegiance, but Jeong Mong-ju remained resolute, choosing death over betraying his king. This unwavering commitment to his public-minded intention, refusing to partake in the spoils of the new regime, exemplifies the preservation of original intention. Such individuals, who uphold their initial resolve, are worthy of emulation and encouragement.

  2. The Challenge of Maintaining Original Intentions in a World of Desire
    Buddhism is a religion of emptying, while Christianity is a religion of filling with love. However, the human mind constantly seeks to fill itself, not with love, but with desires. This pursuit of desires makes it difficult to maintain original intention.

For example, when Huh Kyung young was Jesus, he taught to love one’s neighbor as oneself. Yet, people often react negatively to noise from upstairs neighbors. This is a deviation from original intention. A truly resolute person would not react with anger but with compassion, understanding the challenges of living in apartments and the need for children to play. They would see their neighbor’s children as their own.

Huh Kyung young carries bags to pick up dog waste in public parks, even if it’s not his dog’s. This act, driven by the desire to keep the park clean and prevent others from stepping in it, reflects his original intention. Similarly, if water leaks from an upstairs apartment onto his bed, he would wait a week before approaching the neighbor. If the leak persists, he would offer to pay for the repairs himself, fostering a positive relationship rather than creating conflict. This approach, prioritizing the well-being of neighbors, embodies the principle of loving one’s neighbor as oneself.

This unwavering commitment to original intention is why many people are drawn to Huh Kyung young, who has consistently treated the elderly with respect for decades. People are drawn to those who maintain their original intentions, while opportunists who constantly shift their allegiances ultimately fail.

Original intention is profound. If a loved one finds greater happiness with someone else, true love dictates that one should wish them well and gracefully step aside. This selfless act, akin to a father’s love, represents a higher form of love, free from possessive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