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인의 탁발 시절: 연꽃은 진흙에 물들지 않는다
밤늦게 절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16살 때, 높은 곳에 있는 절에 밤늦게 찾아오는 요한슨 스님을 보았습니다. 그때는 스님들이 시주를 잘 받지 않았기에, 동네에 가서 염불을 외고 쌀을 얻어왔습니다. 요즘 스님들은 시주를 받으면 돈을 주어 돌려보내기도 합니다. 시주를 많이 하는 사람에게는 문제가 있는 것이죠. 적게 주면 스님들이 말해주고 싶어도 적게 주니 말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초가집에 살 때, 동네에 무덤도 있고 집 세 채 너머에 어떤 젊은 청년이 밥을 달라고 하더군요. 당시 저는 초가집에 살았는데, 어머니가 바가지에 밥과 나물을 가득 담아주셨습니다. 옛날에는 거지들이 밥을 달라고 하면 주곤 했습니다. 저도 서울에 와서 밥을 많이 얻어먹었지만, 크게 부끄럽지는 않았습니다.
스승과의 운명적 재회: 밥 한 그릇의 인연
어느 날 밥을 얻어먹으러 갔는데, 그곳이 담임 선생님 댁이었습니다. 제가 전교 회장이었지만, 집안 사정으로 밥을 얻어먹는 학생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습니다. 친구들도 몰랐죠. 담임 선생님 부인이 밥을 주셨는데, 퇴근하고 오신 담임 선생님이 저를 보시고는 “이 회장이 여기 웬일이냐? 회장이 밥을 얻어먹는 학생이었냐?”라고 놀라셨습니다. 그래도 선생님은 저를 이해해주셨습니다.
선생님은 문간방에 세를 사셨는데, 그 집에서 잔치가 있어 밥을 얻어먹고 있었습니다. 그때 대문이 열리면서 선생님이 들어오신 것이죠. 선생님은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저를 찾으러 왔을 때도 저를 뚫어지게 보셨습니다. 저는 우리 집 사정을 이야기해드렸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매달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교장 선생님 댁으로 돈이 왔고, 담임 선생님께 전달되었습니다. 허경영 씨 학비라고 하면서 다음 날 바로 주셨습니다. 선생님은 학생에 대해 미리 조사를 안 했다며, 이제껏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그때부터 저에게 막 대하셨죠.
소문과 깨달음: 돈에 초연한 학생
제가 이병철 회장 댁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학교에 퍼졌습니다. 교복도 달라지고, 완전 진수가 단어지자 학교 선생님들이 저를 잘 대했습니다. 삼성그룹 회장의 양아들이라는 소문이 돌았죠. 1965년도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지금은 70대가 넘었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주민등록증이 처음 나왔습니다. 제가 살아온 역사를 보면 여러분은 상상도 못 할 세월입니다.
선생님은 저를 볼 때 신인이라도 조금 이상한 기운이 있다고 생각하셨을 겁니다. 저는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습니다. 여전히 저를 잘 보셨고, 제가 전교 회장에 목회 부장도 했으니 몸은 마켓 제목 이미지였죠. 저는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셨습니다. 제가 삼성그룹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나니 아무도 저를 건드리지 못했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저를 박달집 교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밥을 얻어먹는 것에 태연하고 초연했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니 빵이라도 훔쳐 먹지 않았겠습니까? 청소년 시절에는 엄청난 허기가 많았습니다. 그래도 저는 빵이나 찐빵 같은 것이 먹고 싶어도 용돈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이병철 회장 댁에 가서는 용돈을 주는 것을 반납했습니다. “용돈은 앞으로 저에게 주지 마십시오. 공부하는 데 지장이 됩니다.”라고 말이죠. 이병철 회장의 아들들에게는 용돈을 똑같이 주었지만, 저는 받지 않았습니다.
무아(無我)의 역설: 깨달음의 허상
불교에서 무아를 터득했다고 하는데, 그것은 무아가 된 것이 아닙니다. 무아를 터득한 그 마음도 또 있지 않습니까? 그때는 무아가 안 되는 것이죠. 무아를 없앴다고, 열반에 들었다고 하지만, 무아를 터득했다는 깨달은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자체도 자기 마음입니다. 이 세상은 무상하고 나라는 존재는 없다고 해도, 나아가고 있다는 그 마음을 인식한 것은 누구입니까? 말이 안 맞는 것이죠. 무아를 터득한 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가 얼마나 넌센스인지 아십니까? 무아를 터득했다는 것은 그 무아를 터득한 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위에서 컨택을 하는 것이지, 자기가 깨달아서 위로 올라가서 컨택하는 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정직하고 올바르면 위에서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을 만나게 해서 컨택하는 것입니다.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지, 해탈해서 무아가 되어 어느 시점에 도달했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탁발의 진정한 의미: 목숨을 비는 행위
탁발은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탁발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없는 것이죠. 자기가 살 수 없지 않습니까? 주는 음식이 자기 목숨입니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빌러 왔습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밥을 달라는 것은 자기 목숨을 얻으러 온 것이죠. 그리고 “나는 목숨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 목숨을 먹고 무아를 정당하고 도통하겠다는 것이죠.
우리는 위에서 인간을 만든 자가 컨택을 할 때, 그 사람이 올바른 행동을 할 때 컨택해서 오라고 합니다. 청와대에서 초청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몸부림쳐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청와대에서 “허경영 씨 한번 봅시다”라고 해야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청와대에 들어가고 싶다고 아무리 기도하고 애써도 못 들어갑니다. 백궁에 가는 것도 우리가 득도를 해서 그 사람이 선택된 것이지, 여러분 노력으로 뭐가 되고 깨달음이 되고 해탈이 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평생 있어도 위에서 “당신 득도했습니까? 무아를 얻었습니까?”라고 물으면 다시 얼마가 버린 성체를 10 모항 구간 조기 내 거 더 무가지 꺼려하게 생겼더라고요.
진정한 도통: 일상 속의 깨달음
도를 닦는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진정한 도통은 직장 다니면서 있습니다. 직장 다니면서 환자를 치료하고, 그 자체가 도통입니다. 사람이 치유도 해주고, 술집에 와서 술도 마셔보고, 시도 읊고, 개도 치고, 남도 고치고, 한쪽에는 꽃집 학교로 환자를 만듭니다. 절에는 도산 중들이 “내가 참 제도 많이 지었다. 스님들의 마지막 이윤 하나도 통했다” 이런 소리 한번 해봅시다.
스님이 산중에서 혼자 도통했으나 아무도 그 사람을 도통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도통했다는 것을 아느냐? 어느 절의 문중에 들어가 유명한 스님 밑에서 시봉을 하다가 인정을 받아 인가를 받는 것입니다. 인가를 받으면 주지를 하든지 뭐가 되는 것이죠. 그렇게 해서 원로 스님이 되는 것입니다. 혼자 산속에서 도통을 아무리 해봐야 불교에서는 죄색이 좀 조도를 주어 버린 것입니다. 불교 스님들이 도를 이뤘다는 것은 참 아쉽지만, 문중에서 인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한계: 신의 영역 부정과 수동태적 삶
어차피 하늘은 인간들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인간들은 그것에 수동태로 따르는 것이지, 절대 능동태가 아닙니다. 불교는 인간이 능동태라고 하는데, 이것은 큰 넌센스입니다. 신의 영역을 석가모니가 부정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나는 본 것은 모른다”고 합니다. 사후 세계를 논한 적이 없습니다. 제자들이 다 안 될 엄마였음. 사후 세계 그것을 것만이 그러잖아. 두둥 꿀물 2도 몰래 어느 고 나나.
이 세상에 보이는 것 하나가 경전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새소리도 경전이고, 정물화도 경전입니다. 저 손실을 보십시오. 저것이 복음입니다. 최고의 복음. 이 세상에 소예 복음 보면 첩보. 이것이 최고의 경전입니다. 경전이 아닌 것이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남에게 오승이패를 주고, 예의를 갖추고 해주는 것이 경전의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연꽃의 비유: 진흙에 물들지 않는 삶
연꽃은 진흙 속에 있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습니다. 진흙이 연꽃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진흙 속에 있는 연꽃은 진흙에 묻지도 않고, 진흙이 연꽃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우리가 나쁜 환경에 있어도 우리에게는 옳은 적이 있는 아나. 신이 가는 길은 연꽃처럼 아름답습니다. 집착할 것이 없습니다. 진흙에서 나왔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우리도 나쁜 환경에 있어도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타자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
이 세상 모든 것이 법문이고 경전입니다. 새소리, 물소리, 심지어 욕하는 소리까지도 경전입니다. 고통이라는 것은 원래 존재하지 않습니다. 연꽃이 아무리 진흙 속에 있어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것처럼, 고통 속으로 들어가 봐야 고통은 없습니다.
타자의 눈으로 보라는 것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입니다. 나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나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익이 나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이 타자의 눈입니다. 만약 자기가 중심이 되어 버리면 성공의 길이 막힙니다.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면 자기에게도 이익이 돌아옵니다. 항상 타자의 눈으로 자기를 보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고 타인에게도 이익이 되는, 양쪽 다 이익이 되는 것이 자리이타입니다. 남에게 이익이 되어야 합니다. 나에게만 이익이 되면 안 됩니다.
인간의 오욕(五慾)과 자리이타
우리가 돈을 벌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옵니다.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요만큼의 오차도 없습니다. 공짜 이익을 취하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돈 때문에 자식이 죽거나 재앙이 올 수도 있습니다. 자리이타가 아닌 것은 천국 질병을 가져오고 패가망신을 가져옵니다. 자리이타를 주로 행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그래야 소화도 잘되고 잠도 잘 옵니다.
인간에게는 오욕(五慾)이 있습니다. 물욕, 색욕, 식욕, 수면욕, 명예욕입니다.
- 물욕: 물질에 대한 욕구로, 자기 몸을 지키기 위한 가장 큰 욕구입니다.
- 색욕: 자기 종족을 번성시키려는 본능적인 욕구입니다.
- 식욕: 자기 몸을 보존하려는 욕구입니다.
- 수면욕: 몸의 휴식을 위한 욕구입니다.
- 명예욕: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입니다.
이 오욕은 본능적인 것이지만, 이 오욕을 자리이타로 가져가야 합니다. 남의 자세를 보고 있는 것들이 나에게 피해로 오고, 그 사람들이 잘 빠지면 그것이 나에게 이익으로 돌아옵니다. 이것이 자리이타입니다.
똥도 약이 될 수 있다: 미생물의 힘
어떤 농장에서 돼지 똥에서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발효 미생물 사료를 먹였기 때문입니다. 일반 유산균과는 다른 종의 유산균을 사용한 것이죠. 농업진흥청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그 농장에서 자체적으로 발견한 것입니다. 결집에서 나오는 매실을 항아리에 넣어 10년 동안 썩히지 않고 발효시켜보니 식초처럼 변했습니다.
여기서 유익균, 유해균, 중간균 세 가지 미생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중간균은 유익균과 유해균 사이에서 좋은 물질을 만들어냅니다. 유익균이 좋아하는 식이섬유도 함께 섭취해야 합니다. 유해균이 많으면 메탄가스가 많이 나옵니다. 유익균이 발효시킨 것을 돼지에게 주면 장이 발효가 잘 되어 메탄이 나오지 않습니다.
항생제는 균의 반란을 일으켜 장 트러블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클로스트리듐 디피실레균은 항생제 내성균으로, 치료가 어렵고 사망률도 15%에 달합니다. 이에 대한 치료법으로 대변 이식이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의 질 좋은 대변을 환자의 대장에 이식하는 것입니다. 대변은 구하기 어렵고, 보관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대변 이식은 현재까지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캡슐로 먹는 방법도 있습니다.
축복의 힘: 암흑 물질을 영보약으로
어릴 때 산에서 똥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추울 때 똥에서 김이 많이 나는데, 그것을 먹으니 속이 따뜻해졌습니다. 똥에서 냄새가 나지 않으면 먹을 수 있습니다. 고구마를 먹으면 그대로 나오는데, 그것을 먹으니 속이 편안했습니다. 일주일 동안 속이 편안했습니다.
제가 먹은 똥은 영양분으로 바뀌었습니다. 제 체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나쁜 것도 축복을 주면 좋은 것으로 바뀝니다. 똥에 독소가 없으니 몸에서 거부하지 않고 영양소로 바뀝니다. 아무리 유해한 것을 먹어도 축복받은 사람에게는 해롭지 않습니다. 이것은 암흑 물질이 된 것입니다. 암흑 물질은 그냥 물질이 아닙니다. 영혼의 암흑 물질이 된 것이죠.
암흑 물질을 제자리로 돌리는 것은 분자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쌀만 먹어도 몸에 해롭지 않나요? 이것을 바꿔서 먹는 것입니다. 축복을 주면 암흑 물질이 영보약이 됩니다. 축복이 없을 때는 암흑 물질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축복을 받은 사람은 건강해지고, 그냥 물을 마신 사람은 안 됩니다. 축복이 들어가면 물질의 분자 구조가 바뀌어 영보약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먹으면 아픈 곳이 좋아지고 영원한 에너지가 나옵니다.
미생물의 중요성: 나노 단위의 분해
우리 인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에 의해 존속합니다. 우리는 음식을 나노 단위까지 쪼갤 수 없습니다. 우리 대장은 나노 단위로 흡수합니다. 마이크로 단위로 씹어 쪼개도 대장에서 흡수하지 못합니다. 나노 로션을 바르면 몸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처럼, 미생물은 원시시대부터 음식을 나노 단위로 쪼개 대장에 전달해줍니다. 미생물이 음식물을 먹고 싼 대변이 나노 단위로 나오는 것입니다.
미생물이 좋아하는 식이섬유를 주지 않으면 장에 있는 점막을 먹어버립니다. 이것이 장기실입니다. 장에 구멍이 뚫려 독소가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죠. 이것이 장 누수 증후군입니다. 대장을 자세히 보면 미세한 구멍들이 뚫려 있습니다. 화공약품을 바르면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우리 몸은 받아들이는 구멍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여자들이 음식을 할 때 손맛이 나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이 음식에 담기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정결하고 훌륭한 여자가 만든 음식은 맛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