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15 The Greater Mountain Has The More Valleys – May 26, 2021

조직 내 갈등: 자연스러운 성장통이자 발전의 동력

안녕하세요. 오늘도 무척 바쁘게 보내셨습니다. 조금 연관된 이야기입니다. 사실 제가 하늘궁에 온 지 3년이 되었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나이도 다양하고, 학력도 다양하고, 생각도 다양했지만, 오로지 공통점은 신인님에 대해 감동받고, 신인님의 생각과 모든 것에 빠져 신인님을 위해 뭔가 일을 해야겠다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지난 총선, 서울시장 선거, 그리고 앞으로 대선을 앞두고 우리 당원들과 하늘궁 회원들이 신인님을 위해 일하는 과정에서 분쟁이 더러 발생합니다.

분쟁은 적당하면 괜찮지만, 심해지면 33가지 죄악 중 시기, 질투, 음모, 술수 등 여러 가지가 파급적으로 도미노 현상을 일으킵니다. 우리 회원들과 당원들이 부딪힐 때 어떻게 지혜롭게 대처해야 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에게는 불교의 12연기 중 첫 번째인 무지, 즉 어두움이 있습니다. 제 유튜브를 유심히 보면 해답이 다 있습니다. 해답이 있지만 숙달이 안 되어서 그렇습니다. 모든 세계 조직, 아무리 강력한 징기스칸 조직이나 손자병법에 나오는 어떤 조직에도 갈등은 존재합니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몸의 면역 세포가 자신을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이 생기기도 합니다.

인체는 완벽하게 만들어졌지만, 인간들이 그것을 잘못 활용하여 인체 면역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물질을 자꾸 섭취하여 자가면역질환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시스템을 제공했지만, 인간들이 콘크리트 속에서 살다 보니 그런 병이 생긴 것입니다. 이것을 신에게 돌리는 사람도 있지만, 자가면역질환이나 대부분의 질병은 인간들의 실수로 발생합니다.

좋은 자동차를 주었는데 사용법을 몰라 엔진 오일을 바꾸지 않으면 성능이 떨어지고, 결국 자가면역질환처럼 자기 차가 자기 엔진을 공격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계를 주어도 관리할 능력이 부족하고 기름칠하고 닦고 조이지 않으면 고장 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조직이든 발전을 위해서는 면역질환과 같은 갈등이 존재합니다. 서로 조직 내에서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면역질환도 자기가 잘해보겠다고 하다가 이상한 물질과 부딪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적으로 오인하여 자기가 지켜야 할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환부역조 시대의 혼란과 갈등의 본질

우리는 환부역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할애비를 팔아먹고 조상을 팔아먹는 환부역조 시대입니다. 할애비가 바뀌고, 종교가 불교에서 유교로, 다시 기독교로 바뀌는 환부역조가 일어납니다. 열심히 제사를 지내던 사람에게 멈추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혼란 상태에 빠지다 보니, 모든 조직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충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불교에서, 어떤 사람은 대순진리에서, 어떤 사람은 증산도에서, 어떤 사람은 가톨릭에서 뼈가 굵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허경영의 강의 내용에 대해서도 충돌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발전적이라고 보지, 후퇴라고 보지 않습니다. 인류 문화는 그렇게 투쟁에 의해 지금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투쟁의 역사입니다. 부부도 처음에는 열렬히 사랑하지만, 나중에는 싸우기도 합니다. 조직 내에서 그런 문제가 생기는 것을 걱정하는 것 자체가 문제입니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질 것 같으면 걱정을 하겠지만, 걱정은 할 이유가 없습니다. 분쟁과 트러블은 어린아이가 자라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부 시행착오를 겪게끔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 바로잡아 주면 아이들은 발전이 없습니다. 스스로 길을 찾아가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길을 몰라 헤매고 다니는데 갑자기 나타나 “야, 이리로 가!”라고 하면 안 됩니다.

내비게이션만 보면 안 됩니다. 때에 따라서는 내비를 끄고 기억력을 더듬어서도 가봐야 합니다. 그런 숙달을 해야 하는데, 뭐든지 내비가 해주고, 뭐 해주고 하니까 사람들이 아까 말한 감인대가 안 되는 것입니다. 견딜 줄 모르고, 인내할 줄 모르고, 기다릴 줄 모르는 인간들이 부모에게도 대드는 형국이 오니, 우리는 그 갈등과 다툼을 합리적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경쟁과 비난을 포용하는 바다와 같은 그릇

열두 명의 군소 후보가 모여 있는 자리에서도 서로 다투고 갈등하는 자리입니다. 서로 상대에게 날카로운 질문을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는 것 자체에서도 사랑으로 그것을 포용합니다. 따지긴 따지고 서로 논쟁을 하지만, 나중에는 꼬리를 내립니다. 마지막에 그렇게 됩니다. 그것이 나중에 저 사람이 어떤 그릇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끝나고 나서 저에게 쫓아와 사진 찍고 하는 것도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경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볼 줄 알아야 하고, 자기를 비난하고 욕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바다에는 쓰레기를 갖다 부어도 바다가 반응하지 않습니다. 용해하고 다 받아들입니다. 거기서 왜 붓냐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들어오면 그 안에서 갈등하고 태풍을 일으켜 섞고, 그것을 믹서해서 없앱니다. 그와 같은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조직도 그런 갈등은 다 있습니다. 그래서 계파가 있습니다. 그 갈등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계파입니다. 계파라는 이름은 갈등이라는 이름의 변질된 이름입니다. 당에 계파가 왜 있어야 하냐고 하면 공산주의 당이 됩니다. 태백산맥에 어마어마한 계곡이 있는데,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합니다. 계곡마다 장단점이 있고, 수천, 수만 개의 계곡마다 개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있음으로써 태백산이 존재하고 봉우리가 존재합니다.

태백산 봉우리가 계곡을 다 없애버리고 다이아몬드처럼 민짜로 만들어버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후지산처럼 죽은 산이 되어버립니다. 우리나라 산의 특징은 계곡이 많은 것입니다. 계곡마다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그것이 매력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하는 화이부동(和而不同)입니다. 같지는 않지만 골짜기가 다 다른데, 그것이 태백산을 떠받치고 있는 것입니다. 화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서로 계곡과 계곡이 충돌하지 않고 자기 영역만 지키지, 옆 계곡으로 쳐들어가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서로 갈등하는 것 그 자체를 즐겁게 바라봐야 합니다. 아, 큰 산맥이 하나 나타났구나, 큰 산이 하나 나타났구나, 수많은 골짜기가 나오는구나. 작은 사람은 골짜기가 한두 개입니다. 이미 큰 산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은 갈등이 심해진다는 것입니다. 골짜기가 쪼개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 이미 큰 인물이 하나 나타났구나. 갈등이 생기니 예수가 나타나고 나서 얼마나 전쟁을 많이 했습니까? 이리 쪼개지고 저리 쪼개지고. 큰 인물이 나타나니 석가가 나타나 인도에서 쫓겨나 동남아를 떠돌고, 인도에는 힌두교가 되어버리고 석가모니는 흔적이 없어졌습니다.

큰 인물이 나타나면 각 나라에 계곡이 많이 생깁니다. 큰 산맥이니까 계곡이 많습니다. 조그마한 야산은 계곡이 간단합니다. 위에서 “야, 이렇게 해!” 하면 됩니다. 그것은 한 가정입니다. 한 가정은 기껏해야 아내 계곡, 남편 계곡, 자식 계곡 세 개입니다. 서너 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정도 계곡이 있는데, 큰 거대한 조직이 수많은 계곡을 거느린다는 것은 조직이 커졌다는 소리입니다.

청와대 대통령 게시판에는 욕하는 글이 70%입니다. 그것이 수많은 계곡입니다. 대통령은 눈도 까딱하지 않습니다. 안티가 70%입니다. 제 인터넷에는 안티가 70%는 아닙니다. 상당히 계곡이 적습니다. 대통령이 계곡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더 높은 자리에 있으니 대통령은 수많은 반대자들을 보면서도 국민을 잘 살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저 반대자들을 없애야겠다고 얘기하지 않고 국민들을 걱정합니다. 일희일비하면 안 됩니다.

우리 조직에 대해서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신인은 그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고, 그것이 전부 긍정적인 곳으로 되게끔 구조가 되어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은 조직은 세상에 없습니다. 또 한 사람 한 사람의 열정이 뜨겁습니다. 어떤 조직보다 농도가 짙습니다. 다만, 여야가 센 것은 우리는 돈을 얼마 못 쓰는데 그 사람들은 대통령 선거 때 500억씩 나옵니다. 방대한 자금이 움직인다는 것이 우리와 좀 다른 점입니다. 군소 후보의 설움이 거기에 있습니다.

겸손, 겸양, 겸허: 인간의 품격을 높이는 세 가지 덕목

신인님, 아까 겸손, 겸양, 겸허 그리고 감인대, 그것도 중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제가 감인대라고 이렇게 쓰지만 사람들은 저 사람은 쌍팔년도 아닌데 뭐 그런 말을 쓰냐, 겸손이라고 합니다. 이 겸손은 겸손 자체가 가장 낮은 단계입니다. 이것은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 그런데 이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은 이것을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겸양이라는 말입니다. 겸양은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양보. 이것은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겸허는 정신으로 하는 것입니다. 겸허한 정신입니다.

이런 마음이나 이런 행동이나 이런 정신은 차원이 다릅니다. 겸손은 1차원, 겸양은 2차원, 겸허는 3차원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이 가져야 할 덕목입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이냐 하면 제가 세 가지를 얘기했습니다. 감(堪), 인(忍), 대(待). 이 감(堪)은 견딜 감, 견딘다는 뜻입니다.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이것은 참을 인(忍), 참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다릴 대(待), 기다리는 것입니다.

사업을 하더라도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당장 소득은 없어도 6.25 전쟁이 나서 쌀 장사가 쫄딱 망했어도 정주영 회장처럼 기다릴 줄 알아야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세 글자 없이는 지킬 수가 없습니다. 겸손과 겸양과 겸허가 없이는 감당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집에 와서 멱살 잡고 흔들어 재끼고 칼로 찔러 죽이겠다고 할 때도 겸손, 겸양, 겸허한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마음을 비워서 “내게 요게 다입니다. 가져가시고 오늘 저녁에 우리 애들 라면 값만 남겨주세요.” 이 정도는 되어야 겸허한 것입니다.

그런데 죄송하지만 여기서 몇천만 원만 남겨주신다면 제가 장사해서라도 그 원금을 갚을 기회는 주면 좋겠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 가져가지 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채권자들이 “야, 이 사람 말도 일리가 있다. 다 가져가면 이 사람 우리 빚 갚겠나? 이거 다 털어봐야 얼마 안 되는데. 야, 장사 밑천, 리어커 밑천 5천만 원 주자.”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워버리면 다 가져가라 했다가 다시 받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야, 우리가 다 가져가 버리면 이 사람은 무위도식하고 다니면서 우리 빚 이거 일부 가져가면 되냐? 그러니까 이 사람 돈을 주자.”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포장마차 하는데 얼마 들어가냐고 물으면 5천만 원이라고 하고, 하루에 얼마씩 버냐고 물으면 하루에 몇십만 원씩 벌겠다고 하면, 내 돈 갚아나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모아가지고 돈을 줍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을 이끌고 가야 참을성 있고 견디는 것입니다. 거기서 울며불며 울화통 터뜨리고 내가 왜 이 모양이 되었냐는 둥 신세 타령하고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견딜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고난을 참고 기다리고. 감인대, 이것이 살림 밑천입니다. 어려운 사람들의 살림 밑천입니다.

제가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빵집에 할머니가 졸고 앉아 있어도 골목에 그 빵을 주워 먹어도 아무 상관이 없지만 절대 주워 먹지 않았습니다. 그냥 굶고 구경만 하고 갔습니다. 그 정신이 견딜 줄 아는 것입니다, 가난을 견딜 줄. 거기에 홀라당 넘어갔으면 지금 소년원을 거쳐서 감옥에 가 있고, 세계적인 도둑놈 두목이 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신인이 그래서 되겠습니까? 신인의 역할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신인은 견디고 참고 기다릴 줄 아는 귀신이자 신인입니다.

이 겸손과 겸양과 겸허는 자동차의 1단계, 2단계, 3단계 기어와 같습니다. 겸손한 마음이 있으면 자연히 겸양을 하게 되고, 그러면 겸허해지는 것입니다. 아까 얘기한 것입니다.

히틀러의 실패: 포용력 부족과 덕의 부재

히틀러가 2차 대전에서 실패한 것은 작전 실패가 아니라, 아리안 족과 수메르 족과의 싸움에서 히틀러는 수메르족인 유대인을 무찌르려고 했던 것입니다. 만약 그 유대인들을 포용했더라면, 그 유대인 중에는 핵무기 과학자가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미국까지 도망가겠습니까? 그러면 핵무기를 히틀러가 미국보다 몇 배 먼저 만들었을 것입니다. 미국에는 그런 과학자가 없었으니까요. 유대인들이 영국으로 도망갔다가 영국에서 배 타고 미국으로 도망가 버린 것입니다. 미국에서 그 유대인들을 주워 모아 엄청 잘 대우해 준 것입니다. 그러니까 핵무기를 금방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독일은 유대인을 다 죽여 놓고 뒤늦게 핵무기 만드는 기술자를 찾아냈지만, 그 유대인들이 핵무기 만드는 것을 지연시킨 것입니다. 계속 총을 들이대고 만들라고 하는데도 느리게 만든 것입니다. 죽여버리면 인재가 없어지니 죽일 수도 없고. 그러니까 그들은 실패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을 죽이는 것을 그들이 보았습니다. 600만 명을 죽이는데 핵무기를 만들겠습니까? 안 만들죠. 그것이 무엇에서 실패한 것입니까? 포용, 포용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세계를 정복한 다음에 유대인을 교육시키면 되는 것입니다. 죽이지 않아도 그 머리들을 쓸 생각을 해야 합니다.

2차 대전의 실패는 무기가 아닙니다. 덕이 부족한 것입니다. 덕의 싸움입니다. 덕의 싸움에서 독일이 너무 박복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600만 명의 유대인을 죽입니까? 히틀러가 감정이 앞섰다는 것입니다.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감인대, 기다릴 줄 몰랐던 것입니다. “야, 저 유대인들이 핵 만드는 기술자들이야. 저거를 잡아라.” 이래 놓으면 기술자들이 다 도망갑니다. 미국에서 핵을 만들어 가지고 돌아올 줄 아무도 모른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도움을 받았으면 되는 것입니다. 제가 내다보는 것은 좀 다릅니다.

2차 대전의 실패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포용하지 못한 것입니다. 미국이 결국 일본을 이기게 된 것은 유대인들의 도움입니다. 망명 온 유대인들을 대우해 주고 연구비를 주고 대우를 하니 이 사람들이 핵무기를 재빨리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일본을 이겼습니다. 만약 일본이 유대인들을 대우를 잘해줬어 보십시오. 큰일 나는 것입니다. 일본이 유대인들을 데려다 핵을 만들어서 아시아가 먼저 세계를 통일했다면 그것은 제가 원치 않는 것입니다. 한반도가 뜰 수가 없습니다. 일본이 먼저 잡아버리니까. 그래서 제가 그것은 그리 못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제가 50년에 나왔을 때, 제가 50년에 나왔을 때는 이미 핵으로 미국이 만들어 가지고 전쟁에서 이겼을 때입니다. 이기고 나서 제가 나타난 것입니다, 몇 년 있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