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랑, 이별과 삼라만상의 한탄
아리랑은 이별에 대한 노래입니다. 나를 버리고 떠나는 낭군, 혹은 낭자를 향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아리랑을 두 번 반복하는 것은 한 번은 여인, 즉 낭자를 향한 것이고 다른 한 번은 사내, 즉 낭자를 향한 것입니다. 이는 종각 처녀의 이별 장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나를 두고 떠나는 남자, 나를 두고 떠나는 종각, 나를 두고 떠나는 처녀”와 같이 전각의 이별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아라리가 되며, 어떻게 나를 버리고 떠나냐는 한탄이 담겨 있습니다. ‘라’는 삼라만상을 의미하며, 삼라만상이 나를 버리고 가는 것 같다는 표현은 세상이 나를 버리는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는 남녀를 보며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를 부르는 것은, 이 두 사람이 나를 떠나가니 세상이 나를 버린 것과 같다는 슬픔을 담고 있습니다. 자신의 애인이 세상 전체인 셈입니다.
두문동 사건과 아리랑의 비극적 탄생
이 아리랑은 고려 시대에 나왔습니다. 두문동 사건을 아실 것입니다. 조선 시대에 고려의 멸망을 한탄하며 고려의 높은 벼슬아치들이 두문동에 숨어 살았습니다. 이들이 두문동에서 아리랑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 이를 알아내어 두문동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죽이고 흔적을 없애버렸습니다. 수백 명의 고려 충신들이 한 명도 남김없이 불타 죽었습니다. 여기서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두문동에서 두문불출하던 고려 충신들이 모두 죽고 나서, 정조 임금이 즉위한 후 그들을 위로하는 제사를 장안에서 지냈습니다. 정조대왕은 이 충신들이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냐며 제사를 지내도록 명했습니다. 이후 고종 황제 때가 되기 전, 아리랑을 공식적으로 경복궁에서 불렀습니다. 고려 충신들이 부르던 노래를 조선의 선비 관리들이 경복궁 안에서 불렀다는 것은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래서 아리랑만 들으면 눈물이 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아리랑 가사에 담긴 민족의 한
아리랑은 “나를 두고 떠나는 사내”와 “나를 두고 떠나는 처녀”를 의미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는 이 사내와 처녀가 나를 두고 떠나니, 삼라만상 이 세상 모든 것이 나를 버리는 것 같다는 한탄입니다. 나라가 조선으로 바뀌면서 선비들이 세상의 자유를 버렸다는 것을 연인에 빗대어 노래한 것입니다.
이 아리랑이 고려 충신들이 불린 이유는 고려 시대에 10살 때 결혼을 시켰던 역사와 관련이 있습니다. 청나라에서 와서 괜찮은 여자들을 모두 잡아갔기 때문입니다. 시집간 여자는 잡아가 지 않았으므로, 아이들을 서둘러 결혼시켜 잡혀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잡혀간 아이들은 부모와 영원히 볼 수 없었기에, 이는 삼라만상과 이별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세상 전체와 이별이 웬 말이냐”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금지곡에서 민족의 노래로
고려 시대에 우리 민족을 중국에 바쳤던 아픔이 이 노래에 담겨 있습니다. 관리들이 와서 시집 안 간 처녀들을 중국으로 끌고 갔고,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이 노래는 국가에서 부르지 못하게 한 금지곡이었습니다. 조선 시대에도 금지곡이었으나, 조선조 말기 정조 임금 이후 위로제를 지내고 두문동에 위로비를 세운 후에야 왕실에서 아리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에게 알려진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가는 저 남자, 나를 버리고 가는 저 처녀”라는 가사는 하나는 사내 낭자, 다른 하나는 처녀 낭자를 의미합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나는 그대들이 나를 버리면 이 세상이 나를 버린 것이다. 세상 전체를 떠난 것이다”라는 슬픈 노래입니다. 옛날 아리랑 원곡은 비바람이 몰려오고 검은 구름이 몰려오는 듯한 가사로, 들으면 눈물이 팡팡 쏟아질 정도로 슬픕니다.
두문동 사건과 아리랑의 깊은 의미
아리랑은 두문동 사건 때문에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두문동에 모여 있던 고려 충신들은 아리랑을 부르며 자신들의 신세를 달랬습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산속 두문동에 모여 숨어 있었으나, 조정에서 이를 알아내어 고려 선비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이 선비들은 중국으로 잡혀간 처녀들을 위로하며 애국심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리랑은 두문동에서 전수되어 온 슬픈 노래입니다.
아리랑 고개는 나라와 나라로 넘어가는 고개, 즉 다시는 넘어올 수 없는 고개를 의미합니다. 조선 시대에는 가지 않겠다는 고려 충신들의 결의가 담겨 있습니다. “가시는 님은 심리로 보러 가서 발병난다”는 가사는 고려가 조선을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변절자들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저주와, 떠나간 어린 처녀들에 대한 한이 이중으로 중첩되어 있습니다. 두문동 사건과 청나라에 조공 바쳐진 처녀들의 상처, 남녀 이별의 아픔이 아리랑에 담겨 있습니다.
아리랑, 민족의 혼을 담은 애국가
아리랑은 애국가와 같습니다. 올림픽 때 아리랑이 나오는 것은 우리 민족이 강대국에게 딸들을 바쳐가며 명맥을 이어왔다는 아픔을 깨닫고 단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아리랑을 듣고도 깨닫지 못하면 우리 민족은 혼이 없어진 것입니다. 우리 할머니들이 끌려갔던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두문동 사람들을 죽였지만, 나중에는 정조대왕이 그들에게 사죄하고 제사를 지내며 충절을 애도했습니다.
아리랑은 애국심과 이별의 아픔, 그리고 힘이 약해 딸 자식들을 뺏겼던 비극적인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낭만적인 이별과는 다릅니다. 어린 처녀들이 부모를 두고 중국으로 끌려가 영원히 찾을 수 없었던 비극입니다. 아리랑은 단순한 노래 같지만, 독립과 애국, 충신들의 입에서 입으로 이어져 온 깊은 뜻을 가진 노래입니다.
아리랑의 보편적 감동과 민족의 정서
아리랑은 남북한이 동시에 눈물 흘릴 수 있는 유일한 노래입니다. 미국 같은 타국에서 아리랑이 나오면 안 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카네기 홀에서 “님은 갔습니다” 한마디를 했을 때, 교포들은 통곡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조국을 잃어버린 설움이 그 한마디에 터져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짧은 가사가 강렬한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 또한 우리 민족의 정을 보여줍니다. “사뿐히 절여 밟고 가시옵소서”라는 표현은 연약한 존재에게 상처 주지 말고 조심해서 가라는 의미와 함께, 갔다가 즉시 돌아와 달라는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문학적인 표현은 상상을 초월하며, 한국어로만 가능한 민족의 감성을 보여줍니다.
두문동 사건의 재조명과 민족의 절개
두문동 사건은 우리 민족에게 굉장한 사건입니다. 고려 충신들은 정몽주뿐만 아니라 두문동에 모여 두문불출하며 조선에 협력하지 않았습니다. 이성계는 72명의 고려 충신들을 몰살하고 그 흔적마저 없앴습니다. 그러나 정조대왕은 340여 년이 지난 후 그들의 충절을 기리며 비석을 세우고 위로했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이 자랑할 만한 인물들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입니다.
북한 사람들은 절개가 있고 지조가 있습니다. 개성 상인들의 신용은 이러한 절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6.25 전쟁 때 북한이 노린 것이 개성이었습니다. 고려의 수도를 빼앗아 조선이라는 이름을 가질 만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두문동 사건과 아리랑은 우리 민족의 아픔과 절개, 그리고 혼을 담고 있는 중요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