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8 차별과 분별의 진리 The Truth of Discrimination and Distinction by Huh Kyung young August 9, 2014

차별과 분별: 고통의 근원

차별과 분별은 우리 모든 고통의 근원입니다. 젊은 세대들이 인터넷을 통해 이 강연을 많이 접하기에, 쉬운 방식으로 이 진리를 설명하고자 합니다.

한 의대생이 해부 실습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젊은 여성의 시신이었죠. 여자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시신은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습니다. 의대 교수가 해부를 시작하라고 지시했고, 학생은 칼을 여성의 가슴에 댔습니다. 순간, 여자가 벌떡 일어나는 듯한 착각에 빠져 도저히 칼을 댈 수 없었습니다. 시체와 살아있는 사람을 분간하기 어려웠던 것이죠. 교수의 재촉에 결국 칼을 대자 심장이 드러났고, 혈관을 따라 해부를 계속하니 자궁 속에서 작은 태아가 발견되었습니다. 교통사고로 죽은 임산부였던 것입니다.

이 의대생은 이후 결혼 생활에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자신의 부인이 시체처럼 보이는 경험을 하기도 했고, 실제로 많은 의사가 이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아있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몸이라는 것은 영혼이 없으면 죽은 것에 불과합니다. 영혼이 들어가면 살아나고, 혼이 없으면 죽는 것이죠. 학생의 눈에는 살아있음과 죽어있음의 경계가 모호하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해부 후 의대생은 인체 장기 하나하나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좁은 갈비뼈 안에 5장 6부, 즉 11개의 장기가 차곡차곡 포개져 완벽하게 기능하는 모습은 놀라웠습니다. 작은 씨앗에서 정자와 난자가 만나 그 많은 장기를 만들어내고, 도깨비처럼 아름다운 얼굴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신비로웠습니다. 남자들이 그 아름다움에 홀려 넘어가는 것을 보며 의사는 ‘남자들의 정신이 허상에 사로잡혀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자가 그렇게 아름다운 존재가 아닌데도, 왜 자신은 여태껏 그렇게 보았을까 의문을 가졌던 것입니다.

차별과 분별의 본질: 질적, 양적, 환경적 차이

차별과 분별은 무엇이 다를까요? 차별은 질적, 양적 차이나 환경적 요인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술이라도 세 번 내린 소주(옛날 임금이 마시던 술)와 한 번에 만든 화학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또한, 같은 술을 금잔에 담았을 때와 바가지에 담았을 때 맛이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환경에 따른 차별입니다.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잣집 딸은 아무리 못생겨도 귀하게 여겨지고 좋은 곳으로 시집을 가지만, 가난한 집 딸은 아무리 예뻐도 잘못하면 술집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인데도 돈이라는 환경에 따라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죠. 냉장고가 에스키모에게는 인기가 없지만, 아프리카에서는 비싸게 팔리는 것과 같습니다. 남녀의 차이도 질적인 차별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남녀 성차별을 비롯한 모든 차별은 존재합니다.

반면, 분별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을 다르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바다의 물과 파도를 예로 들어봅시다. 물과 파도는 본질적으로 같은 물이지만, 우리는 파도를 욕심이나 잡념으로 분별합니다. 맑은 물이 파도가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물 자체를 볼 수 있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파도 형태로 구분해 버립니다. 물과 파도는 차별할 것이 없지만, 우리는 이를 물과 파도로 분별하는 것이죠. 선과 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선과 악을 하나로 보는 것을 ‘중도’라고 합니다. 중용의 관점에서 보면 선악은 같지만, 분별심으로 바라볼 때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으로 나뉘어 보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의 오욕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차별과 분별 때문입니다. 강연을 계속 들어도 차별과 분별에 갇혀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길흉화복의 순환: 새옹지마의 지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둘로 나누어 보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좋고 나쁨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길은 언제나 흉을 가져오고, 흉은 언제나 길을 가져옵니다.

로또 복권에 당첨된 젊은이를 예로 들어봅시다. 이는 분명 길한 일이지만, 이후 친구와 친척을 잃고 직장을 잃으며 돈이 떨어지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흉한 상황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대학 입시에 떨어진 사람이 재벌이 되는 경우도 있고, 대학에 붙어 데모하다 폐인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는 대학 합격에 기뻐하고 불합격에 슬퍼하지만, 인생의 길흉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시험에 떨어졌다고 자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길은 반드시 흉이라는 새끼를 가지고 있고, 흉은 반드시 길을 가져옵니다. 공이 뛰었다가 떨어지는 것처럼, 인생은 오르내림을 반복합니다.

중국 사람들은 인생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합니다. 이는 길과 흉이 반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옹지마 이야기 속 노인은 말이 없어졌다고 괴로워했지만, 그 말이 암말을 데리고 돌아와 새끼를 낳았습니다. 이후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쳐 병신이 되었지만, 전쟁이 나 모든 젊은이가 군대에 잡혀갔을 때 그 아들만 남게 되어 집안의 대를 이었습니다. 마을의 잘생기고 똑똑한 젊은이들은 전쟁터에서 모두 죽었지만, 다리 병신이 된 아들은 살아남아 열 명의 자녀를 낳고 마을의 처녀들이 모두 그의 첩으로 들어와 집안이 번성했습니다.

이 노인은 불행하다고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결국 그의 불행은 행복으로 돌아왔습니다. 당시에는 아들이 불구자가 되어 창피했지만, 전쟁 후에는 오히려 그 덕분에 집안이 번성하게 된 것입니다. 마을 처녀들이 그를 차별하고 왕따시켰지만, 전쟁 후에는 시집갈 곳이 없어 그에게 매달려 첩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길과 흉은 끊임없이 순환하며, 마지막에 가서는 예측할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업보의 시작과 동업중생: 개인과 공동체의 책임

우리는 불행이나 장애를 겪는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이 죄가 많아서 저렇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장애인이 된 것이 그 사람의 죄 때문이 아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조종사의 실수로 비행기가 추락하여 많은 사람이 죽고 한 사람만 장애인이 되어 살아남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장애인이 된 것이 그 사람의 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업보에는 ‘시작’과 ‘과정’이 있습니다. 조종사 한 사람의 업보 때문에 500명이 죽는 비행기 추락 사고처럼, 개인의 업보가 아닌 타인의 업보로 인해 고통을 겪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불교에서는 ‘동업중생(同業衆生)’이라고 합니다. 즉, 조종사의 업보가 다른 사람들의 업보로 들어오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남의 잘못 때문에 여러 사람이 동시에 업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동업중생의 원리를 이해하면 차별과 분별이 사라집니다. 불행이 오면 저쪽에 행복이 있을 것이고, 내가 행복하면 저쪽이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합니다. 돈이 많으면 없는 사람을 위해 써야 하고, 돈이 없으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 살 것이라고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머물러 있을 뿐입니다. 이 진리를 깨달으면 모든 불만이 사라질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장애인을 매우 우대합니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 같은 나라는 장애인에게 100% 취업을 보장하고 모든 혜택을 줍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광을 보이기 위해 장애인을 보냈다고 나와 있습니다. 성한 사람들이 장애인을 얼마나 잘 대하는지 보겠다는 것이죠. 장애인은 선한 인간들의 마음을 시험하는 시험관과 같습니다. 서양에서는 어릴 때부터 이러한 교육을 시키기 때문에 아이들이 장애인을 놀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불교식으로 ‘죄가 많아서 저렇다’, ‘업보가 많아서 저렇다’고 잘못 해석하여 장애인들이 어릴 때부터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장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네 번이나 대통령을 역임했습니다. 국민들이 그의 장애를 이해하고 더 많은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애인을 차별하거나 분별해서는 안 됩니다. 술 자체는 같지만, 담는 잔이 달라진 것뿐입니다. 인간 자체는 모두 똑같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팔고(八苦): 차별과 분별이 낳는 여덟 가지 고통

우리가 남을 차별하면 반드시 그 고통이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이를 ‘팔고(八苦)’라고 합니다. 차별과 분별만 하지 않으면 이 여덟 가지 고통은 오지 않습니다.

  1.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는 반드시 헤어지는 고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랑에 너무 집착하면 이러한 이별의 고통이 찾아옵니다.
  2.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원수는 반드시 외나무다리에서 만나는 고통입니다.
  3. 구부득고**(求不得苦):** 지나치게 구하는 것은 반드시 얻을 수 없는 고통을 가져옵니다.
  4. 오온**성고(五蘊盛苦):**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이 성하여 생기는 고통입니다. 눈으로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인식하는 과정에서 차별하고 분별하여 좋고 나쁨을 나누면 고통이 따릅니다. 맛있는 것을 많이 먹어 당뇨병에 걸리는 것처럼, 오온에 집착하면 병마와 싸우고, 죽음과 싸우고, 결국 귀신과 싸우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병마와 싸우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하지만 허경영을 부르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그러한 고통이 없을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불러도 에너지는 우주에서 똑같이 전달됩니다. 세상의 모든 이름은 에너지를 소모시키지만, 허경영이라는 이름은 면역 기능을 100배 이상 올려줍니다.

미래에는 에볼라보다 만 배 무서운 전염병이 올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환경을 파괴하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아 생기는 병입니다. 그때는 어떤 의학으로도 대책이 없으며, 허경영 외에는 답이 없을 것입니다. 물론 영양제를 먹고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밥도 먹지 않고 이름만 부른다고 살 수는 없습니다. 영양 공급은 필수적이며, 그 위에 허경영을 부르면 영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허경영이라는 이름은 영적인 보호를 해주는 것이지, 영양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죽음의 의미와 영적인 치유

‘죽을 사(死)’ 자는 ‘저녁에 숟가락을 놓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저녁을 먹지 못하면 얼마 못 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낮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저녁에 밥을 못 먹으면 죽을 병에 걸린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땅속으로 들어가려면 밤에 밥을 안 먹으면 되는 것이죠. 지금은 링거 등으로 연명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숟가락을 놓으면 죽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삼시 세끼 밥을 잘 챙겨 먹고 영양제도 보충하면서 허경영을 불러야 합니다. 밥을 한 달 굶고 이름만 부른다고 살 수는 없습니다. 영양제와 밥을 먹었을 때 허경영이라는 이름은 영적인 보호를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허경영은 영적인 방식으로 사람의 몸을 치유합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손에 힘을 주게 한 후 특정 부위에 손을 대면 힘이 약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 부위에 문제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비염이 있는 사람의 코에 손을 대면 힘이 약해지고, 뇌가 좋지 않은 사람의 머리에 손을 대면 힘이 약해지는 식입니다. 간이 좋지 않은 사람의 간 부위에 손을 대면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문제 부위를 영적인 에너지로 치유하면, 다시 힘을 주었을 때 힘이 강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허경영은 얼굴만 보고 심장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는 한의사와 달리, 영적인 관점에서 몸의 이상을 파악하고 치유합니다. 밥을 먹었든 안 먹었든 관계없이 영적으로 치유하는 것이지만, 살아가기 위해서는 밥과 영양제는 필수적입니다.

허경영은 세상을 바꾸고 세계를 통일하기 위해 왔습니다. 팔레스타인 전쟁이나 남북 전쟁과 같은 모든 전쟁을 없애고 세계를 통일하는 것이 그의 목표입니다. 한국의 대통령이 되면 전 세계가 그를 알게 될 것입니다.

허경영의 치유를 받은 사람은 몸에 20명 정도의 천사가 투입됩니다. 이 천사들은 평생 함께하지만, 만약 다른 여자를 끌어안거나 남에게 욕을 하면 천사들이 놀라 도망가 버립니다. 마음이 깨끗할 동안만 천사들이 존재하며, 다시 병이 재발할 수 있습니다.

병이나 죽음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모르는 사람들은 말기 암에 걸려보면 알게 됩니다. 암은 자기 입밖에 모르는 욕심 때문에 옵니다. 입이 세 개라는 것은 욕심이 산처럼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선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것은 악합니다. 음식은 선하지만, 소변이나 대변은 독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