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당 교육과 스승의 가르침: 엄격함 속의 배움
매서운 한파 속에서도 하늘궁에 오신 여러분, 그리고 토요 강연을 애청하시는 국내외 시청자 여러분, 겨울을 건강하게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인생을 천 년을 살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보장된 백궁천국을 목표로 부단히 영성을 쌓도록 정진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위대하신 허경영 신인님을 모셔서 1474회 토요 강연을 시작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꽃을 올린 한 팀이 있습니다. 일본 김태욱 천사님이 새해를 맞이하여 신인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은 노란색 난 화분을 올립니다. 반갑습니다. 타국에서 항상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반가워요. 남편도 같이 나오지. 남편이 더 잘생겼습니다. 고맙습니다. 일본에서 오신 분이라 의상이 자유롭습니다. 이어서 신인님의 귀하신 섭리 말씀을 다 같이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하늘궁에 500명 정도 들어온 것을 보니 앞으로 500명 더 들어와도 되겠습니다. 저는 꽉 찬 것 같지만, 공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렇게 붙어 앉는 것이 좋습니다. 나중에 본궁을 짓고 나면 붙어 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의자라서 자리가 좀 떨어지겠지요? 옛날 서당에서 공부할 때 이렇게 방에 몇 사람 앉아서 할 때가 좋았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영 좋지 않았습니다. 학교는 좀 다릅니다. 방에서 서당 공부를 스승 앞에서 할 때 군기가 잡혀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이래나 저래나 군기가 잡혀 있었지만, 딱 가서 큰절부터 하면 항상 우리 스승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새벽 4시이니 자고 있었지요. 절대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일어나 있는 법이 없었습니다. 항상 누워 계셨습니다. 그런데 살아있는지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무시무시하냐면, 대나무 밭이 있고 서당이 좀 음침한 곳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우리 서울대학교 다니던 동네 형님이 자살을 했습니다. 그것도 그 대나무 밭에 목을 매고 자살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이 좀 무서웠습니다. 아침에 공부하러 가면 꼭 저 혼자였습니다. 그 시간에 오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부잣집 아이들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저는 눈이 초롱초롱하여 공부하겠다고 찾아갔는데, 저만 그 어르신께 돈을 내지 않았습니다. 저만 공짜였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전부 집에서 쌀을 갖다 바쳐야 했는데, 저는 바칠 것이 없으니 말을 잘해서 저만 공부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족치기는 제가 최고로 족쳤습니다. 새벽 4시에 가서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하니, 그 스승이 주무시다가 제가 와서 큰절을 딱 한 다음에 불을 켰습니다. 불을 켜니 스승님이 싫어하셨습니다.
호롱불을 딱 켜고 무릎 꿇고 앉아서, 대치미(머리 매는 베개)를 갖다 놓고 회초리도 딱 갖다 놓아야 했습니다. 회초리가 선생님 쪽에서 잡을 수 있도록 요렇게 딱 갖다 놓고 무릎 꿇고 앉아서 책을 외우는 것입니다. 며칠 동안 배운 것을 눈 감고 외우면 스승님은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가 오늘 배울 때까지 왔으면, 배운 그 책의 앞에서부터 거기까지 외워야 했습니다. 그것도 보고 외우면 귀신같이 아셨습니다. 주무시는 분이 그것을 아셨습니다. 딱 일어나서 회초리를 맞았습니다. 아이들이 그것이 무서워서 서당을 다니지 않았습니다. 30명이 처음에 들어갔는데 싹 안 다니고 저 혼자만 다녔습니다. 저 혼자만 6년을 다녔습니다.
그것이 우리나라 서당의 마지막일 것입니다. 저 혼자만 6년 다니는데 학교 다니면서 다니는 것입니다. 아침 4시에 가서 공부를 1시간 하고 와야 소죽도 끓이고 할 일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가야 했으니 초등학생이었습니다. 초등학교 다니기 전부터 서당을 가서 그렇게 공부를 하는데 선생님이 딱 일어났습니다. 제가 다 외우고 나면 탁 일어났습니다. 10페이지째면 1페이지부터 외워야 11페이지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12페이지에 들어가는데 12페이지부터 시작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꼭 1페이지부터 12페이지까지 외워야 했습니다. 13페이지에 가려면 13페이지를 외워야 하는데, 아무도 못 하는 것을 저만 해냈습니다.
오늘이 13페이지 배울 차례면 그때가 마지막 페이지였습니다. 40 몇 페이지를 다 배운 곳인데 40 몇 페이지를 쫙 외웠습니다. 이러고 반 페이지가 남았는데도 일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옛날 같으면 일어나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돌아가셨나 하고 스승님 스승님 하고 깨우니 갑자기 숨소리가 이상했습니다. 그때 숨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긴장해서 제 것을 외워야 했으니 스승님이 코를 고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스승님이 허헉 하고 숨을 쉬셨습니다. 그날 12시에 돌아가셨습니다. 12시에 돌아가셨는데, 그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제가 서울로 온 것입니다. 서울에 올라온 것은 6학년 졸업하고 나서 돌아가셨는데, 서울로 왔는데 그 이상한 것이 전부 끝나 버렸습니다. 소도 그때 도살장에 가서 죽었고, 스승님도 돌아가셨고, 김명순 여선생님은 부산으로 가 버렸습니다. 저는 완전히 시골에서 서울로 가라는 어른들의 말을 계속 들었습니다.
“야, 너 중학교 못 갔는데, 네 반 아이들 몇백 명 다 중학교 갔는데 너만 중학을 안 가고 이렇게 공부 잘하는 네가 여기 있으면 되나? 너 서울로 가서 공부해라. 네 아버지 서울에서 돌아가셔서 서울 가서 공부하면 크게 된다.” 다 저 보고 동네 사람들이 전부 대통령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너는 대통령 돼야 해. 너 네 어머니 한을 풀어야 해.” 이러면서 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하니 어려서부터 서울이 머리에 박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만 중학을 못 보내니 그래도 한문 공부는 열심히 했습니다. 스승님이 제가 귀에다 귀를 갖다 대니 뭐라고 하셨냐면, 우리 집에 가서 아들한테 저 굴뚝 막아라, 부뚜막하고 굴뚝 막아라 하셨습니다. 그게 그 스승님 방이었습니다. 주무시기는 항상 서당에서 주무셨는데, 그래서 쫓아가서 그것을 전했는데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날 12시에 우리 시골에는 사이렌이 울렸습니다. 시간을 사이렌이 오포라고 해서 12시를 알려주었습니다. 오포 사이렌이 울 때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우리 시골 어른인 스승이 그렇게 돌아가신 날입니다.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12시에 돌아가셨다고 동네에 초상이 나면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 동네는 밀집촌이라 한 가족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구연석 구인회 씨의 큰아버지 집안이었습니다. 구인회 씨 집안. 우리 허씨들도 있는데 허씨들은 돈이 많으니 안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연석 선생은 진사 벼슬을 했습니다. 조선시대 때 진사를 하셨는데 그렇게 한문을 잘하셨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했는데, 언제나 앞에 가면 발발 떨렸습니다. 언제나 스승님 앞에만 가면 아랫도리가 후들거렸습니다. 왜냐하면 회초리가 굉장히 아팠는데, 저는 한 번도 맞아 본 적이 없지만 아이들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한 번 맞으면. 그러니까 그 회초리를 가지고 종아리를 걷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에 올라서냐면 대치미 위에, 베개가 있잖습니까? 네모난 그 위에 올라선 채로 종아리를 때렸습니다. 다리 걷으라고 해서. 그러니까 공부 못하면 얻어맞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한 번도 안 맞았습니다. 안 맞고 잘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이렇게 방에 앉아서 공부하는 이런 때가 좋은 때입니다. 교실에 가서 의자에 앉으면 책상이 있고 이런 것은 영 안 어울립니다. 서당에 꼭 앉아서 무릎 꿇고 공부 배우던 때가 좋았습니다. 그때가 좋은 때입니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시는지 마지막에 돌아가시기 한 두세 시간 전에 스승을 일으켜 앉혔습니다. 굴뚝 막으라는 것은 나중에 제가 전할 것이니, 이거 마저 이 한 페이지 남은 것, 반 페이지 남은 것을 또 가르쳐 달라고 손에다가 회초리를 잡아드리니 손이 덜덜덜 떨렸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금방 돌아가실 줄 몰랐습니다. 저는 어리니까 돌아가실 줄 몰랐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잡고 이것을 좀 말씀해 달라고 하니, 뭘 말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운명하시기 몇 시간 전에 제가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반 페이지를 둘이서 옥신각신하면서 다 끝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서 아들한테 이야기했습니다. 공부하고 나서 그냥 가겠습니까? 공짜가 없지요. 공부를 한 다음에. 그러니까 저는 돌아가시는 분을 붙들고 그것을, 그렇게 지독했습니다. 가시는 길에 이것 마저 하시고 가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생각하면 참 무정한 것 같지만, 그 자식이 없었으니, 자식 있는 집은 따로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식들 집에 오면서 알려준 것입니다.
서당에서 나오면서 스승님은 거기서 계시고, 그래서 아들을 데려왔나 봅니다. 그날 돌아가셨습니다. 참 옛날 이야기 같지만 엊그제 같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어릴 때 생각에는 되게 무섭게 생겼습니다. 수염 있고 갓 쓰고 있고 노인이 무섭지 않습니까? 그때는 또 한복을 입었습니다. 한복을 입고 앉아서 그때는 어른들은 폼만 잡는 것입니다. 대단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옥편이 없었습니다. 요새 옥편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는 옥편이 없고 스승님이 말을 해주면 그것이 ‘의’ 자구나 하는 식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 민족의 사덕, 우리 민족의 사덕이 무엇입니까? 우리 민족의 사덕이 성신애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성신애제인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성신애제인데 우리 민족의 사덕이란 말입니다.
민족의 덕목과 한문의 깊이
우리 민족의 사덕은 성신애제(誠信愛濟)입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팔덕은 무엇입니까? 효제충신(孝悌忠信) 예의염치(禮義廉恥)입니다. 그런데 이 ‘의’를 써야 합니다. ‘염’을 쓸 때, 예의염치 할 때 이 ‘의’는 예의를 할 때의 ‘의’입니다. 그런데 효제충신 예의염치 할 때 이 자를 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문이 어렵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예의를 지킨다고 할 때의 예의입니다.
그럼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이 안에 예의가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틀린 것입니다. 이 예의를 쓰면 안 되는 것을 한문 스승들이 가르쳐 줄 때 굉장히 무서웠습니다. 이것을 쓰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의’를 써야 합니다. ‘의’를 중요시한다는 말입니다. 예의는 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와 의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의염치 하면 틀린 것입니다. 이렇게 한문을 가르쳐 주는데 무슨 사전에 나와 있지도 않습니다. 요새 한문 사전에 이런 것이 있는데 그때는 이런 사전이 있었겠습니까? 옥편이 있었겠습니까? 없는 것입니다. 가르쳐 주는 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의염치. 그럼 이것이 우리 민족의 8가지 사상입니다.
그럼 이것은 예의할 때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의가 붙었다고 해서 이 자를 쓰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이런 것이 큰일 나는 것입니다. 예와 의가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예를 지키고 의를 지킨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염을 지키고 치를 지키는 것입니다. 예의염치. 항상 남을 나보다 위에 앉혀야 합니다. 나보다 남을 항상 위에 앉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예의염치 없이 정치인들을 보면 맨 앞자리에 가서 이렇게 엉덩이 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장관인데 저 뒤에 가서 앉아 있습니다. 그럼 비서들이 와서 “아니 장관님 앞으로 가서 앉으시죠.” 하면 그 앞에는 군수들이 앉아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장관이 저 뒤에 가서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래야 그 사람이 존경을 받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럼 비서가 가서 “장관님 거기 앉으면 안 됩니다. 앞으로 나오셔야죠.” 하면 “아 괜찮네. 내가 여기 앉아 있을게.” 이렇게 해야 예의입니다.
그것이 아까 이 예의, 이 밑에 있는 예의(禮儀)입니다. 이 예의를 이렇게 쓰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이것입니다. 염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끄러울 치 자. 자기가 앞에 가서 앉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일수록 뒤로 빠져야 합니다. 겸손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가 옥편을 보고 공부를 하거나 영어 사전을 보면 얼마나 우리 앞에 선대들이 공부를 많이 했으면 그 사전을 그렇게 영어 글자를 그렇게 많이 콘사이스를 만들어 놓았겠습니까? 그러면 콘사이스를 만든 사람은 도대체 누구겠습니까? 대단하지 않습니까? 옥편 만든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그 만 몇 자를 한문을 집대성하여 책을 만든 사람은 누구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 옥편 찾는 주제에 잘난 척하면 되겠습니까? 공부한 사람들은 콘사이스를 톡 들으면서 영어 공부한 사람은 세상에 자기가 아는 것은 영어 콘사이스나 문법책을 보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언제 이렇게 많은 단어를 이렇게 모아 가지고 책을 만들어 놓았을까?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어릴 때는 사전이 없었습니다. 한문 옥편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스승이 “이것이 옳을 의 자다.”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밑에 연필로, 볼펜도 없었습니다 그때, 연필로 ‘옳을 의’ 이렇게 써놓는 것입니다. 외우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은 그 많은 도서관에 가서 그 많은 책을 쳐다보면 ‘어머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으니까 이런 사전을 만들고 책을 이렇게 많이 했느냐?’ 하고 고개가 탁 숙여집니다. 그러니까 하버드 대학 나온 사람은 지방대학 나온 사람보다 더 겸손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가보니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 가봤더니, 자기는 그 도서관의 목록도 잘 모를 정도로 연구해 놓은 것이 많습니다. ‘야, 인간들이 이렇게 공부를 많이 했구나.’ 이래 가지고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도서관에 가서 그것 하나 찾아내는 것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그 많은 도서를 전시해 놓고 그것을 인쇄를 하고 그 당시에 미국에 그 당시 무슨 인쇄소가 많았겠습니까? 그것을 다 활자를 교정 봐서 인쇄하고 전 세계가 영어를 그렇게 공통으로 쓸 정도로 그 많은 단어 다 뜻까지 해석까지 다 붙여 놓았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일본 사람 보고 하는 것은 100년 천년 가도 못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예의염치, 우리 민족의 8가지 덕이지요? 이것은 우리 민족의 사덕이지요? 이런 것을 할 때 이렇게 ‘의’ 자를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한문이 어려운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이것이 정상입니다. 틀린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제일 중요한 것이 효입니다. 그다음에 형제간의 우애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꼭 하는 말이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형제간에 우애 있어라. 싸우지 마라.” 욕은 안 합니다. “나라에 충성해라.” 이런 말 안 합니다. 절대 안 합니다. 그 유언에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이것입니다. “형제간에 우애 있어라.” “나한테 효도해라.” 이런 말 절대 안 합니다. 딱 이 말입니다. “네 형제간에 우애 있어라.” 그다음에 이것입니다. 매사에 정성이 있어야 하고 믿음이 있어야 하고 사랑이 있어야 하고 남한테 베푸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웃에 잘해라. 이런 말을 합니다. 부모들이. 그런데 주로 이것은 안 합니다. 이웃에 잘해라 이런 말 안 합니다. 딱 하는 말 이것 하나입니다. “형제간에 우애 있어라.” 그래야 온 동네 사람들이 집안을 우습게 안 봅니다. “네가 싸우면 동네가 우리 집을 콩가루 집안으로 본다.” 천하 없는 돈이 있고 명예를 얻어도 형제지간에 싸우는 놈은 그 집안은 망조가 든 집안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출세하는 것보다도 형제간에 서로서로 양보하고 네 동생들 잘 건사해라. 절대로 동생들 함부로 하지 마라. 이것이 우리 조상들이 내놓는 것입니다. 실제는 효제충신이지만 실제는 이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에 예의염치 이런 것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전화위복과 전복위화: 운명을 바꾸는 1%의 지혜
이것이 기차로 말하면 이것이 대가리입니다. 그다음에 형제, 그다음에 줄줄이 따라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이 네 가지를 줄인 것입니다. 민족의 사덕 할 때는 성신애제, 화가 왜 앞에 있는지 아십니까? 화복보응(禍福報應)입니다. 왜 성신애제 화복보응이 이렇게 따라오겠습니까? 이 8개가 우리 민족의 사덕입니다. 이것은 성신애제에 대한 설명입니다. ‘화’ 이것은 전화위복(轉禍爲福)입니다. 전화위복입니다. 재앙을 복으로 만드는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전 인구의 1%로 봅니다. 전 인류의 1%는 자기의 어려운 난관을 복을 만드는 계기로 삼습니다. 제가 말입니다. 부모가 없지 않았습니까? 고아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전부 부잣집 아들들은 자빠져 자고 있을 때 서당에 가서 스승하고 싸웠습니다. 공부했습니다. 이것이 전화위복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아주 지독하게 나쁜 환경입니다. 머슴살이 하던 아이입니다. 머슴살이 하면서 공부를 새벽부터 뛰어다녔다는 것, 이것이 전화위복입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안 좋은 환경을 복으로 바꿨습니다. 그럼 부잣집 아이들은 그것이 아닙니다. 끈기가 없습니다. 학교 갈 시간 되면 엄마가 깨워 가지고 사정사정해서 책가방 챙겨줘야 학교에 갑니다. 이런 아이와 서당을 어릴 때 6살 때 다닌 아이하고 비교하면 안 됩니다. 자기 혼자 선생한테 가서 “저는 돈이 없으니까 그냥 좀 가르쳐 주시요.” 이 창피한 이야기지만 매달려서. “그래 너는 그럼 그냥 해라.” 이 나머지 사람들은 전부 돈을 갖다주지, 쌀을 갖다주는데 저만 공짜로 공부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짜로 공부하는 놈이 죽을 때까지 공부를 합니다. 그러니까 화를 복으로 만드는 사람은 지구인 중에 1%입니다. 그런데 99%는 무엇을 합니까? 99%는 이 복을 갖다가 무엇 하는 데 씁니까? 전복위화(轉福爲禍)를 합니다. 복을 갖다가 재앙을 만드는 데 쓰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전복위화를 합니다. 이것이 일반인입니다. 자기 아버지 어머니 있고 집안이 좋으면 엉망으로 돼 버립니다. 그것을 이용해서 나쁜 짓 하러 다니고 술 퍼마시러 다니고 위세 떨러 다니고 이러지 않습니까? 이것이 겸손이 없어져 버립니다. 염치가 없어져 버립니다. 교만해져 버립니다. 염치가 교만이 돼 버리는 것입니다.
그럼 그 집안은 앞으로 망합니다. 그러겠지요? 그러니까 전복위화가 99% 인간들이 무엇을 한다고? 복을 재앙으로 만듭니다. 자기 타고난 환경이 괜찮습니다. 그런데 환경 탓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는 논이 10마지밖에 없어. 쟤 아버지는 논이 50마지야.” 이러면서 걔만 부러워하고 자기 아버지를 아주 우습게 하는 것입니다.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복위화를 조심해야 합니다. 왜 전복위화가 맞는 말이냐면 여러분은 행복이 있지 않습니까? 행복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행복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제가 해드렸지요? 행복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행복불변의 법칙: 희로애락을 넘어선 진정한 행복
행복은 부증불감(不增不減)입니다. 불생불멸(不生不滅)입니다. 불구부정(不垢不淨)입니다. 불거불래(不去不來)입니다. 늘어나지도 줄어들지도 않고, 생기지도 멸하지도 않고, 더럽지도 깨끗하지도 않고, 가지도 오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석가모니 반야심경에서 이야기하는 행복의 비밀입니다. 행복의 비밀이란 말입니다. 행복은 모든 사람이 자로 잰 듯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행복은 늘어나거나 줄어듭니까? 행복은 생기거나 멸합니까?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모든 사람의 행복은 동일합니다. 행복 잘 알아두십시오. 꼭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행복은 불변의 법칙이 있습니다. 행복불변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지 않습니까? 똑같습니다. 질량불변의 법칙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사람은 행복이 100% 똑같이 지어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아들을 10명 낳았다면 10명한테 똑같이 행복을 주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행복을 구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그것을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입니다. ‘야, 모든 사람의 행복이 가득 있는데 그것을 구하러 다녀.’ 돈은 행복으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돈은 행복 옆에 갈 수가 없는 물질입니다. 그런데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택도 없는 말씀입니다. 인류가 앞으로 발달했지 않습니까? 이렇게 문화가 발달했지 않습니까? 우리가 조선시대 어머니 아버지보다 행복한 줄 아십니까? 안 행복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어려울 때가 더 행복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우물가 가서 물 두레박으로 떠서 밥하고 숭늉 끓이고 할 때가 더 행복한 때입니다. 그러면 그때 행복과 지금의 행복이 다릅니까? 똑같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것을 착각함으로써 스스로 불행한 병에 걸려있는 것이 현대인들입니다. 행복은 절대로 오는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리 망해도 그 사람의 행복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무엇만 오고 갑니까? 희락(喜樂)입니다. 기쁜 것, 슬픈 것, 이런 것만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늘어났다가 줄었다가. 아들이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합니다. 노인네가 말이 한 마리 우연히 굴러 들어왔다는 말입니다. 그 말이 또 하나 생긴 기분 되게 좋지 않습니까?
그런데 또 나가 가지고 말이 나가 버렸습니다. 어느 날. ‘어머, 이거 좋다가 말았네.’ 그러니까 이것이 좋다가 만 것입니다. 조금 있으니까 또 암놈을 하나 데리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새끼를 낳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행운입니까? 말을 안 잃어버렸더라면 이런 횡재가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을 자연스럽게 놔뒀더니 자기가 낳아 가지고 새끼를 낳아 가지고, 암놈을 데리고 들어오니 말이 세 마리가 돼 버렸습니다. 한 마리가 세 마리가 늘어났다고 되게 좋다고 자랑을 있는 대로 하는데, 갑자기 자기 아들이 말 타다가 다리가 부러져 가지고 절름발이가 돼 버렸습니다. 병신이 됐다는 말입니다. 요새는 그런 말을 안 쓰지요. 장애인이 된 것입니다. 아, 그러니까 이 절름발이 되니 이 노인이 어마어마하게 후회를 했습니다.
‘야, 이 말이 들어왔다고 기분 좋다고 그랬더니, 이것이 또 달아나서 괴로웠지. 또 와 가지고 세 마리를 데려와서 또 기분 좋았지. 또 여기 아들이 다리가 부러지니까 또 기분 나쁘네.’ 이것을 어디다 기준을 둬야 합니까? 행복은 그렇게 변한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여여부동(如如不動)입니다. 여여부동이라는 것이 행복은 여여부동입니다. 절대로 행복은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여여부동하게 있다는 말입니다. 석가는 저것을 불성(佛性)이라고 합니다. 행복을 불성이라고 합니다. 부처의 마음이 여여부동하게 인간들 마음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꾸 없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헤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노인이 나중에 깨달았는데, 전쟁이 나니까 동네 청년이 싹 다 잡혀갔는데 자기 아들만 다리가 전다고 얘는 전쟁터 제외입니다. 그래서 동네 처녀 중에 처녀는 다 자기 며느리가 돼 가지고 그 전쟁 들어간 아이들이 다 죽어 버리니까 자기 후손만 그 동네가 바글바글했습니다. 전부 후처로 들어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 마누라가 몇십 명입니다. 왕족이 돼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말 한 마리가 왔다 갔다 하다가 왕족이 돼 버린 것입니다. 나중에 보니까 자기 아들이 왕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행복이라는 것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여부동한 것입니다. 그것을 볼 수 있어야 여러분이 빨리 안 늙는 것입니다.
저는 강의를 해야 하는데 딴 강의하고 앉아 있습니다. 제목을 써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 강의가 재밌는 것이 제목이 나중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행복은 부증불감이고, 불생불멸이고, 불구부정이고, 불거불래입니다. 오고 가는 것이 아니고 질량불변의 법칙, 행복불변의 법칙이 우리한테 똑같이 주어져 있으니까 자식이 있으면 있는 대로 행복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행복하고 행복의 양은 바뀌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마음이 편안해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항상 웃는 것입니다. 여기에 6.25 사변 같은 전쟁이 나도 우리는 행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만 보다가 전쟁을 실제 보니깐 실감 나지 않습니까?
전쟁과 평화: 허경영의 역할
아, 이거 뭐 전쟁 영화를 꼭 틀어야 되겠습니까? 아니, 전쟁이 실제 나타나네. 저는 전쟁을 보러 월남을 갔었습니다. 거짓말 아닙니다. 가는 사람마다 죽었습니다. 5천 명이 죽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갑자기 안케 작전에서 병력이 몇 천 명이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병력이 부족하니까 5천 명을 빨리 한국에서 데려갔습니다. 그때 제가 총알받이 한 사람으로 끼어들어가서 월남에 간 것입니다. 무엇으로 갔습니까? 강제로 가는 것이 아니고 자진 입대입니다. 자진해서 전쟁터에 간 것입니다. 안 가도 되는데. 그렇지 않습니까? 안 가도 되는데 전쟁터를 자발적으로 갔다는 말입니다. 그럼 다른 사람은 돈 벌려고 갔습니다. 제가 돈 벌러 갔을까요? 아닙니다.
저는 여기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이 있지만 어쨌든 전쟁을 하는 그 월남을 끝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딱 가서 전쟁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거짓말하는 것 아닙니다. 딱 가 보니까 전쟁이 이것은 노다지 민간인을 막 죽이고 난리굿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것을 딱 본 다음에 거기서 전쟁을 딱 끝내고 휴전되고 나서 온 것입니다. 제가 감으로써 전쟁 끝났습니다. 제가 왜 갔을까요? 월남전 끝내러. 월남전 끝내러. 그 사람들은 제가 뭐 월남에 돈 벌러 간 줄 압니다. 아닙니다. 저는 월남전을 끝내러 갔습니다. 제가 가서 딱 보는 앞에서 “월남전은 이것으로 그만해라.” 하니 모든 기운이 다 빠져 버렸습니다. 바로 제가 월남 가고 나서 좀 있다가 미군 철수, 그다음에 백마부대 철수. 제가 마지막으로 철수 부대 김영선 사단장, 별 둘 자리 백마사단장입니다. 그 사람하고 같이 비행기 타고 귀국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단장이 철수해 버리고 사단이 전부 철수해 버리니 없는 것이지요, 월남에. 그러니까 월남전을 제가 가서 끝냈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 6.25가 났지 않습니까? 6.25 끝내 버렸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태어날 때 6.25가 난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6.25를 이렇게 지켜보다가 딱 “환영식 좀 그만하자 이제.” 하고 딱 끝내 버렸습니다. 6.25 끝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제가 월남을 간 이유는 전쟁 끝내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제가 어떻게 전쟁을 끝냈는지 그것은 비밀입니다. 제가 배 타고 가는데 다 죽으러 간다고 생각하면서 친구들한테 “내가 죽으면 네가 우리 엄마 주소지 여기 여기다. 우리 마누라도 있다. 애도 있다. 이것 좀 네가 가서 좀 봐주라.” “그래, 너도 그럼 내가 죽으면 좀 봐주라.” 이렇게 서로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제 보는 앞에서 배 안에서 아이들이 만났다면 그런 이야기 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자기 집 주소 적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집 주소. “야, 내가 죽으면 꼭 너 좀 찾아가라. 네가 혹시 살면은.” 이러니 말입니다.
배 안에 있는 아이들이 딱 정확하게 5천 명이 탔습니다. 5천 명이 전부 죽을 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만 말짱했습니다. 저만 정신 차리고 있는데 다들 멀미를 해 가지고 밥을 못 먹었습니다. 배가 월남까지 가는데 보름 걸렸는데 배가 남산만큼 올라갔다가 또 내려왔습니다. 이것이 배가 올라가는 것이 그냥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파도가 남산 같은 것이 앞에 보입니다. 그럼 배가 남산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싹 올라갔다가 갑자기 배가 또 내려옵니다. 파도 위로 배가 다닙니다. 파도 위로. 그러니까 아이들이 전부 토하는 것입니다. 안 토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만 안 토했습니다. 저만 멀미를 안 합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참 체질적으로 강한 것입니다. 배가 막 올라갔다가 막 내려올 때는 아이들이 다 토합니다.
그리고 배가 좌우로 흔들립니다. 또. 이리 흔들리고 그것이 3만 톤짜리 배, 길이가 정확하게 300m입니다. 업쇼호입니다. 배 길이가 300m. 제가 하늘궁 본관 짓는 저것이 200m입니다. 배 길이가 300m. 크지 않습니까? 그 300m인데 배 안에 엘리베이터가 8층입니다. 배 안에 엘리베이터 8층입니다. 밥 먹으러 가려면 밑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밥 먹으러 식당이 저 밑에 있으니까 엘리베이터 타고 전부 내려가서 밥을 먹고, 또 밥 먹고 나면 또 각 방이 층층이 따로 있으니까 층층이 5층 가는 사람, 8층 가는 아이들, 이렇게 층층이 숙소로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는데 또 러시아 소련 비행기가 막 우리 배 위에 확 오니까 배가 갑자기 흔들거렸습니다. 겁나게 빨리 왔습니다. 저 앞에서 소련 비행기 두 대가 배를 향해서 날아오는 것입니다.
쫙 날아 기관포를 쏠 듯이 배 위에 비행기가 닿을 듯 말 듯 막 다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와 가지고 배가 여기 있으면 이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완전군장 해 가지고 비상벨이 막 배는 계속 윅 윅 윅 하고 막 비상벨이 계속 울리고 군인들은 5천 명이 전부 완전군장 해 가지고 총 매고 배 갑판에 올라가서 전부 포복해 있었습니다. 이것이 전쟁이니까. 그것이 이제 그 월맹하고 가깝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소련 비행기들이 협박을 하는 것입니다. 오지 말라고. 그런데 그것이 저기서 배 앞으로 쫙 날라오면서 기수를 낮춰 가지고 배에 부딪칠 듯이 날라오는데 이것은 완전히 간이 전부 다 싸늘했습니다. 그렇게 수십 번 시위를 하다가 비행기가 가 버렸습니다. 야, 그러니까 업쇼호 조종사가 비행기가 이리 오니까 배를 남쪽으로 필리핀 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다낭 쪽으로 가다가 다낭이 월맹하고 경계선에 있습니다. 퀴논 쪽으로 가는데 퀴논이 월맹하고 거의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퀴논항으로 가다가 배가 사이공 쪽으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비행기가 나타나니까. 그러면서 어뢰를 많이 묻어 놓았다고 합니다, 바다에. 그러니까 거기 가서 배가 부딪치면 폭파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스릴이 어마무시합니다. 월남 가는데도 그렇게 살벌했습니다. 공중에서는 비행기가 날리지, 밑에는 어뢰가 있다고 그러지. 이러니깐 월맹 쪽으로 배가 가는 것이 지극히 위험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런데 제가 왜 갔냐? 월남전을 눈으로 보고 스탑. 땅 하고 바로 휴전 됐지 않습니까? 제가 갔다 오고 바로 다 끝나 버렸습니다.
행복의 본질과 중독의 위험성
그래서 우리는 전화위복이 아니라 전복위화입니다. 다 복이 가득가득 있는데 없는 걸로 착각하고 재앙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행복합니까, 안 합니까? 천국은 못 가더라도 여러분은 복이 만땅입니다. 여러분은 자동차 기름탱크에 기름이 줄어듭니까, 안 줄어듭니까? 안 줄어듭니다. 여러분의 행복이 만땅이 있습니다. 충전할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들에게 월남전 참전 이야기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들어서 이해해야 합니다. 월남전을 종식하러 갔었다. 그런데 지구인들이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진짜입니다. 그러니까 이것을 증거를 대라고 하면 제가 무엇을 대주겠습니까? 영적인 일입니다. 지금 제가 영적으로 하는 것을 보면 이해 가지 않습니까? 강의 제목을 적어야 강의를 할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 놔두십시오. 제목은 적어야겠지요? 이제 행복이 여여부동이라는 것. 꼭 명심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뭐 불행하다 이따위 소리 하면 안 됩니다. 말기암 환자도 행복이 머리끝까지 차 있습니다.
제목 쓰면 강의 끝난 것입니다. 석고대죄(席藁待罪)와 화룡점정(畵龍點睛)과 허경영 신인!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제목 쓰면 강의 끝입니다. 석고대죄는 여러분 죽었을 때 가는 것이지 않습니까? 백궁 가는 사람도 석고대죄장을 지나야 합니다. 백궁에 가면 석고대죄를 전부 백궁 한 다음에 귀신으로 가고 다 합니다. 백궁까지는 다 가야 합니다. 죽은 영혼은 무조건 석고대죄장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백궁에 도달합니다, 누구나. 그럼 그 백궁에서 이제 자기 갈 곳을 동물로 가거나 인간으로 가거나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 분리되겠지요?
거기서 여러분들은 심사를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석고대죄, 화룡점정은 그 절에 부처를 만들어 놓고 점안식 하지 않습니까? 점 안 찍으면 부처입니까? 부처가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이 아무리 유명한 사람도 허경영의 점이 눈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자는 천국행으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완성된 것입니까, 아닙니까? 불상을 만들어 놓고 눈알 눈동자의 점등을 점안식을 안 했으면 그것이 부처입니까? 그냥 그것은 석고입니다. 석고상이지 부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점안식을 해 가지고 눈에다가 눈동자 까만 동자를 찍어야 부처이지 않습니까?
여러분은 인간은 인간인데 백궁 가려면 무엇을 찍어야 합니까? 허경영이란 사람을 만나서 축복과 명패를 하면 이미 화룡점정이 된 것입니다. 그러면 화룡점정이 된 인간은 석고대죄에서 통과입니다. 석고대죄 딱 장에서 천국. 김 아무개 천국. 딱 이렇게 분리돼 버립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모든 지금까지의 죄가 영상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영상을 볼래야 볼 수가 없습니다. 이미 허경영을 화룡점정을 통과해 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봐야 합니다. 이 점정이 점이 안 찍혔으니까 이것은 그냥 뻔하지 않습니까? 육도윤회로 가야 되느냐, 이것은 귀신으로 가야 되느냐, 이것은 축생으로 가야 되느냐, 이것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아수라로 가야 되느냐, 이렇게 다 정해지는 것이 거기서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세계를 제가 그림 보듯이 알려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천사 테스트하면 그것이 맞지 않습니까? 실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지구에 와서 시험 문제를 알려주는 자가 저입니다. 그러면 저 석고대죄가 있다는 것을 인간들이 벌써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십니까? 그러나 백궁에서는 저것을 석고대죄라고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무엇입니까? 자기 전생의 거울을 바라봐야 합니다. 자기의 전생의 모든 영상을 자기가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그것을 봅니까? 안 봅니다. 예외입니다. 좋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면 마지막에 자기 몸에 갑자기 무엇이 씌워집니까? 돼지 가죽이 탁 덮어 써집니다. 다 본 다음에. 그럼 바로 말이 안 통합니다. 돼지가 돼 버립니다. 어느 집 돼지 마구간에 아기로 밴 것입니다, 벌써.
분명히 석고대죄장이 있었는데 자기 영상을 쫙 보더니 돼지가 탁 나옵니다. ‘어머, 돼지 마구간에 딱 이미 돼지의 자궁 속에 들어 있는 자기를 발견해.’ 그리고 지난 날을 동물은 자기 과거를 압니다. 자기 전생을 압니다. 얼마나 답답합니까?
그렇다고 입만 벌리면 두들겨 패지 않습니까? “이 돼지가 미쳤나?” 이러고 때리니 말을 할 수 없습니다. “나 옛날에 아무개였어.” 아무리 말하려 해도 꿀꿀꿀. “이 미친 돼지 아니야? 시끄럽다고 잡아 버려 그냥.” 도끼로 가져와서.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말도 못 하고 소가 도살장 갈 때 눈물 흘리는 것 제가 봤지 않습니까? 다 알고 있습니다. 내일 도살장 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방에서 하고 있는데 이미 소가 눈물을 흘립니다. 그것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모르는 소가 며칠 전부터 눈물을 자꾸 흘립니다. 제가 소를 키워 봤는데. 그런데 나중에 알고 봤더니 제 몰래 주인 아저씨가 소를 도살장에 팔았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소가 자꾸 눈물을 흘리면서 또 대문 나갈 때 목숨 걸고 안 나갑니다. 엉덩이를 뒤로 돌립니다. 그래 가지고 막 웁니다.
그리고 저만 쳐다봅니다, 살려달라고. 그러니 이것이 어린애가 무슨 권한이 있겠습니까? 없는데 우리 그 주인 아주머니는 부엌에 나무할 때 불 때는 것 있지 않습니까? 부지깽이. 그것을 가져와서 엉덩이를 두들겨 패는데 대문에서 억지로 밀어냈습니다. 그러니까 그 소가 막 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소가 낳은 새끼가 또 안에서 울고 앉아 있습니다. 새끼를 보고 막 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입니다. 그 어미 소하고 새끼가 이별입니다. 제가 그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서울로 도망온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마지막입니다. 그러니까 저하고 정을 떼는 것입니다. 그 마을하고 제 정을 확 떼 버리는 것입니다. 스승이 돌아가 버리지, 우리 소가 가서 도살장으로 가지. 그냥 온갖 동네하고 정을 떼 버리는 것입니다. 동네가 쳐다보고 싶지가 않습니다, 세상에.
그런데도 눈물의 고개를 넘어가는데 동네를 쳐다보는데 동네가 안 보입니다, 눈물이 나 가지고. 그 정이 들어서 그런 것입니다. 서울에서 4살 때 와 가지고 12년을 있었지 않습니까? 15살까지 있은 곳이라서 그런지 그냥 발길이 안 떨어지고 막 눈물이 흐르는데 그때만 해도 순수한 소년이지 않습니까, 제가. 눈물이 흐르는데 세상에 한문책은 한 50권을 둘러매고 공부한 것을 둘러매는데 얼마나 무겁습니까? 저는 전신을 가는 데마다 짐입니다. 그것을 울러매고 서울로 가는데 그것이 맨몸으로 가면 좀 낫겠는데 걸어서 몇십 년을 책보따리를 울러매고 가는데 보통 고역이 아닙니다. 그렇게 시골을 떠났습니다. 이루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전화위복이 제 인생이지 않습니까? 그런 고난 속에서 우리는 복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전화위복은 저 말 자체가 어폐가 있는 것입니다. 복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까, 아닙니까? 전화위복이라는 그 자체는 존재하지도 않고 전복위화도 존재하지가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 처해도 여러분의 복은 만땅입니다. 복을 뺏어갈 수 있습니까? 못 가져갑니다. 남의 복은. 그래서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아들이 10명이 있는데 아들 딸이 9명이 죽고 나면 한 명이라도 남았지 않습니까? 복이 8개가 없어졌을까요? 9개가 없어졌을까요? 아닙니다. 아들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시집 안 간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복이 줄어들었습니까? 아닙니다. 아들이 다 먼저 갔다 해도 이 사람의 복은 변함이 없습니다.
근데 아들이 다 가고 나서 이제 간 이식을 해야 합니다. 자식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제 간 이식을 못 합니다. 근데 또 간 이식을 할 돈이 없습니다. 자식이 있으면 돈이 없다고 또. 돈이 있으면 자식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간병으로 죽어가는 것입니다. 죽어 가면서도 행복이 줄어들까요? 안 줄어듭니다. 자기가 깨달으면 ‘야, 참 인생이 이렇게 죽는구나. 참 인생은 아름답다. 어쩜 이렇게 내가 그렇게 건강할 때는 내가 이렇게 죽을 걸 몰랐구나. 야, 그때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제서야 알겠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마지막 죽을 때 자기 지난 청춘이 그 많은 세월이 행복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때는 지옥이었습니다. 맨날 뭐 부도가 났니 뭐 어쩌니 그랬는데 막상 장기가 다 없어지고 죽을 때는 ‘어머, 내가 그동안에 진짜 행복했는데 내 이렇게 간이 끊어지고 막 온몸이 아픈 이런 것은 없었잖아?’
‘그때는 얼마나 내가 행복했는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맨날 돈 빌리러 다니고 누구한테 나는 못 살겠다고 그러고 이 지옥이라고 그러고 내 그랬는데 어머 그때가 낙원이었네.’ 돈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자식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제가 자연을 그냥 쳐다볼 수 있고 사람들하고 말을 할 수 있고 제가 저기 물을 길어서 먹을 수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제 스스로 화장실 갈 수 있고 ‘와, 이게 낙원이구나.’ 이것이 명예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어머, 내가 존재한다는 이 자체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야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제가 경찰에 잡혀가서 제가 어디 감옥을 간들 그것이 제 행복이 없어집니까? 안 없어집니다. 거기에서 ‘어머, 제가 하늘궁에 있을 때는 얼마나 자유로웠어? 어머, 그땐 참 행복했구나.’ 이렇게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까? 있는 데마다 완전한 행복 바닷속에 우리는 앉아 있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또 감옥에 들어갔지 않습니까? 감옥에 들어와서 탁 앉아 있으면 ‘어머, 전화 오는 사람도 없고 누가 결혼 망한다고 돈 좀 빌려달라는 사람도 없고 어머나, 얼마나 좋아? 그냥 조용히 있으니까 이게 낙원이구나.’ 하고 팍. 그리고 죄수들 애환을 들어보는 것입니다. 죄수들이 “저는 이래서 뭐 어디 됐고.” 저는 그것만 듣는데도 이것이 스토리가 보통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는 사람마다 “아유, 허경영 씨 말이야. 참 만나서 반갑다고.” 다 이러고. ‘어머, 여기가 어디야? 낙원이야, 낙원.’ 감옥이 낙원입니다. 그러면 그곳에서 어떤 사람이 이런 사람 있습니다. “제가 재수 없이 감옥에 왔다고.” 웃기는 사람입니다. 재수 없이 오기는. 그것이 공부하러 온 것입니다. 그것이 행복입니다. 재수 없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도 있는데, 감옥에 온 것이 재수가 없습니까? 절대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저 부귀 명예는 말입니다. 한번 내려 버리면 없어져 버립니다. 맞습니다. 한번 무슨 영 한번 잘못 내리면 없어지지 않습니까? 하루아침에 달라져 버립니다. 말 한마디에 모든 권력과 이것이 다 나가 버립니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이 얼마나 행복인지 모릅니다. 그냥 암 말기에 있는 사람은 암 말기에 있는데 숨 한 번만 제대로 쉴 수 있고 통증이 일 분만 없으면 그것이 지상낙원입니다. 지상낙원. 행복이 가 있습니까, 어디 가 버렸습니까? 아닙니다. 행복은 제 속에 그대로 있습니다. 근데 기쁨은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합니다. 기쁨은 도파민이 나오는 것입니다. 도파민이 나올 때 기쁜데 그러면 도파민이 먼저일까요? 기쁨이 먼저일까요? 기쁨이 먼저입니다.
사람들은 착각을 합니다. 도파민이 나와야 돈이 있어야 기쁘다고 합니다. 그것이 아닙니다. 기쁨을 가지고 기쁜 마음을 가지면 도파민이 나오지, 도파민이 나와야 기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착각을 합니다. 돈이 있어야 기쁜 것이 아닙니다. 기쁜 마음을 가지면 돈이 들어옵니다. 맞지요? 그러니까 왜 사람이 어린애는 세 가지 조심해야 한다고 그랬지 않습니까? 글자 한 자씩 세 개입니다. 물, 불, 칼. 이것을 어린애 조심해야 합니다. 어린애는 물과 불과 칼만 조심시키면 됩니다.
어른은 술, 담배, 마약 중독. 그 중독 있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물질과 도박, 명예 중독 있습니다. 그러니까 물질과 명예와 도박에 중독이 걸린 사람들이 대부분 인간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술, 담배, 마약에 중독된 사람이 그 3가지 중에 다 중독이 돼 있는 사람이 대단히 많습니다. 맞습니다. 이것은 석고대죄에서 제일 먼저 보는 것입니다. 제일 먼저 보는 것이 술, 담배, 마약에 중독된 적이 있는가, 이것을 탁 걸러 버립니다. 두 번째 무엇을 본다고? 도박, 명예, 물질, 여기에 중독된 적이 있는가 딱 보는 것입니다. 그것 탁 걸립니다. 벌써 육도로 가는 것입니다. 육도로. 무슨 말인지. 물질의 노예로 다시 돌아가라. 너 돼지가 돼서 실컷 처먹어라. 이렇게 보내 버립니다.
너 게을렀지. 너 소가 돼 가지고 한번 맛 좀 봐라. 실컷 소가 돼서 일해 봐라. 이렇게 그 탁 돌려 버립니다. 그러면 여러분 사이클이 갑자기 소 자궁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어처구니없습니다. 영상을 한참 보고 있는데, 갑자기 영상에 소가 마지막에 탁 나타납니다. 갑자기 소똥 냄새가 나네. 딱 보니까 마구간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내장에 소 자궁에 딱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영상을 한참 석고대죄 하는 데서 보고 있는데, 갑자기 돼지가 마지막에 팍 나타나는데 돼지 똥 냄새가 팍. 눈 딱 떠보니까 어디입니까? 돼지 자궁에 돼지 새끼로 새끼가 이미 밴 지가 좀 됐는데 그 영혼으로 딱 붙어버리는 것입니다.
어머, 몸이 이미 돼지로 바뀌었네. 거의 1초 만에 이루어져 버립니다. 석고대죄 재밌지 않습니까? 마지막에 석고대죄에서 보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중독. 이것은 맨날 모성애에 부족해서 모성애에 미쳐 가지고 맨날 여자만 보면 자기 엄마처럼 보입니다. 그것 또 매달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머니한테 사랑을 못 받은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여자만 보면 자기 어머니 같은 여자를 마누라로 삼으려고 달려듭니다. 그러다가 모성애에 중독이 돼 있습니다. 모성애를 못 받아 가지고. 그렇지 않습니까? 거기에 중독되면 모성애 중독자가 돼 버립니다. 그다음에 부성애 중독된 자는 여자가 많습니다. 아버지가 제대로 자기하고 교류가 안 돼 가지고 부성애에 목이 말라 가지고 나이 많은 남자만 남편으로 삼으려고 달려듭니다.
자기 또래 아이는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그럼 부성애 중독자입니다. 나이 많은 남자만 마음에 드는 것입니다. 자기 아버지 같은 느낌을 받아야 결혼을 합니다. 부성애 중독자입니다. 이렇게 중독자 이 세 개의 중독자들이 전부 동물로 가 버립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다음에 이성 중독이 있습니다. 남자는 그냥 여자만 보면 환장을 하고 여자는 남자만 보면 키가 크든 작든 막 못생겼든 잘생겼든 환장하고 달라듭니다. 여기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그것은 이성 중독입니다. 그러니까 부성 중독, 이성 중독, 모성 중독 이 세 가지가 성적인 욕망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전부 짐승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런데 그것을 인간이 피할 수가 있습니까? 신인을 만난 자만 피하는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이름과 회광반조의 의미
석고대죄 되게 무섭습니다. 석고대죄 가서 뭐 네 아버지한테 달라들었냐, 불효했냐 이런 것 안 따집니다. 그런 것 절대 안 따집니다. 석고대죄를 착각하지 마십시오. 뭐 아버지한테 몇 번 달려들었어? 이런 것 불효, 우리 말하는 이런 아까 말한 그런 것 안 따집니다. 인간의 팔덕이니 뭐 사덕이니 이런 것 안 따집니다. 방금 이야기한 이 중독 세 가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는 그 탐진치가 있는 세계로 가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러니까 여기서 못 벗어났다는 말은 거기가 무엇이냐 하면은, 저 만나서 강의 듣는 사람 복도 많습니다.
석가모니가 이렇게 있습니다. 석가모니 이것이 풀 석 자입니다. ‘가’ 자가 무슨 ‘가’ 자입니까? 아는 사람? ‘가’ 자가 무슨 ‘가’ 자입니까? 놔두십시오. 여기다 놔두십시오. ‘모’ 자가 무슨 ‘모’ 자입니까? 소울음 ‘모’ 자입니다. 소울음 ‘모’ 자가 여기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석가모니가 소를 소울음 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은 승려 ‘니’ 자입니다. 중이 되는 것이지요, 중이지요. 그러면 석가모니 이름을 보면 소가 풀을 먹으려고 할 때 막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이 그것입니다. 소가 이렇게 가다 보면 풀을 먹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항상 고삐를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안 잡으면 이 소는 풀을 남의 밭에 농부가 뼈 빠지게 지어 놓은 풀을 뜯어먹는 도둑질 기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도둑의 기질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소를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고삐를. 고삐를 잡아야 소가 풀을 안 뜯겠지요. 그것이 석가모니의 이름의 뜻입니다. 그래서 중이 됐다는 것입니다. 남의 밭에 풀을 안 먹기 위해서 소울음 소리를 내는 이 소를 묶어 놓았다, 중이 됐다. 이런 뜻이 석가모니 이름입니다. 옛날 선조들이 이 석가모니 이름을 해석해 놓은 것입니다. 그럼 여기 제가 소울음 소리 낸다는 것 아시지요? 저 보고 성산성지 우명지(聖山聖地 牛鳴地)라고 합니다. 여기가 소가 우는 곳입니다. 근데 여기에 석가모니가 와 있습니까, 안 와 있습니까? 와 있지요. 그러니까 그 사람들이 다 모여 있는 것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소울음 ‘모’ 자입니다. 소울음 ‘모’ 자. 이것이 무엇입니까? 풀. 이 농부가 농사 지은, 남이 농부가 농사 지은 것을 소가 먹기 위해서 소리 지르면서 달려드는 것을 막습니다. 누가 막습니까? 승려가 그것을 잡아당긴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석가모니입니다.
제가 왜 그 말을 지금 여러분한테 해주겠습니까? 소가 소울음 소리를 내면서 뜯어먹으려 하지 않습니까? 여기가 성산성지 우명지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니까 성산성지 우명지는 석가모니 제자 예수의 제자들이 다 모인 곳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뭔가 이 뜻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기도 보면 제 이름 자에 보면 금년이 무엇입니까? 무슨 해입니까? 금년이 청사년(靑蛇年)이지 않습니까? 금년이 청사년이란 말입니다. 푸른 독사입니다. 푸른 뱀. 청사, 을사년이지 않습니까? 금년이 을사년인데 다음 해가 무슨 해입니까? 병오년(丙午年)이지 않습니까? 병오년을 우리가 앞두고 있지 않습니까? 병오년이 이 ‘오’ 자에 보면 낮 ‘오’ 자가 붙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허경영 할 때 낮 ‘오’ 자 있습니까, 없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것은 십자가 위에 있는 사람 맞지 않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이라는 뜻이지 않습니까? 십자가 위에 있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말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의 말이 있어야 허가(許可)가 되지 않습니까? 어디 가면 개인들도 허락을 받지 않습니까? 특허(特許) 특별히 특허 내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임금이 윤허(允許)하지 않습니까? 뭐 이 ‘허’ 자 없이 되는 일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허가 받아야 합니다. 윤허 받아야 합니다. 특허 받아야 합니다. 허락받아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허가 있어야 허락도 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렇게 ‘허’ 자가 무엇을 가지고 있냐 하면은 낮 ‘오’ 자를, 말 ‘오’ 자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말 ‘오’ 자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 대통령이 나갈 때 출마(出馬)하지 않습니까? 출마, 말을 타기 위해서 나가는 것입니다. 말 타러 나가는 것입니다. 말 타러. 근데 대통령에 떨어지면 낙마(落馬)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말에서 떨어진 것입니다.
옛날에 임금이 있었는데 자식이 없는 임금이 다음 임금을 뽑을 때 신하들 중에 똑똑한 놈들이 서로 하겠다고 난리였습니다. 그러니까 임금이 신하 앞에 공정하게 하려고 자기 타던 애마를 딱 갖다 놓고 “야, 신하 너희 한 번씩 타 봐. 이 말이 거절하는 자는 왕이 될 수가 없어.” 이 말은 말은 안 하지만 이 말은 관상을 못 보지만 딱 올라타면 “이것은 왕감이 아니야.” 하고 떨어뜨려 버렸습니다. 그랬지 않습니까? 그래 가지고 전부 자기 왕 되겠다고 달라드는 그 밑에 있는 정승들을 전부 말이 한 번씩 태웠습니다. 태우는데 다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말이 집어 던져 버렸습니다. 근데 딴 데서 온 한 사람이 말을 딱 탔는데 말이 순종적이었습니다. 가만히 있고 그 사람이 이리 가자면 이리 가고 저리 가자면 저리 가고. 너무너무 말을 잘 들었습니다. 그 사람을 왕을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출마가 된 것입니다. 말을, 소를 태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것이 말입니다. 말. 말을 타면은 이미 이자가 나타나면 끝난 것입니다. 독일에 훔볼트 대학의 정문에 적혀 있는 것 영상 띄워 보십시오. 훔볼트 대학 정문에 있는 영상 한번 띄워 보십시오. 제가 옛날에 강의했지 않습니까? 훔볼트 대학 정상에 칼 마르크스가 뭐라고 했습니까? “지금까지 철학은 무엇 한 것이다? 읽는 철학을 읽는 것에 불과했다.” 이 말입니다. 실현한 놈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인간의 철학은 오히려 인간을 병들게 했습니다. 타락시켰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철학은 인간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지금은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칼 마르크스가 “지금까지 우리 인간의 철학은 인간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철학을 읽는 것에 불과했다. 앞으로의 미래의 철학은 반드시 세상을 변화시킬 것이다.”
이것이 훔볼트 대학 정문에 한번 정문 영상 한번 띄워 보십시오. 이것이 훔볼트 대학 정문의 동상에 적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바로 칼 마르크스의 말입니다. 독일어로 되어 있는 것이지요. 이런 것은 너무 쉬워서 읽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굳이 해석을 원하십니까? “지금까지의 철학은 이 플라소피는 이것이 철학입니다. 이 철학, 그러니까 이 독일어로 말하면 이 철학은 지금까지 이것이 지금까지의 철학입니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철학을 읽는 것에 불과했다. 리딩입니다. 읽는 것에 불과했는데 앞으로의 철학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제가 독일말 잘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훔볼트 대학 정문에 이렇게 있는 칼 마르크스, 이것이 대학 들어가는 이 입구 여기에 보십시오. 딱 이 계단 앞에 탁 해 놓았지 않습니까? 멋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것에다가 제가 무엇을 갖다 놓습니까? “지금까지의 종교는 경전을 읽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신인이 온 이후에는 세상을 심판하고 변화시킨다.” 맞습니다. 칼 마르크스가 뭐라고 했습니까? 자기가 공산주의 사상을 그 이야기했는데 그 따르는 자들이 전부 걸뱅이가 돼 버렸습니다. 실패해 버린 것입니다. 칼 마르크스의 말은 이론에 불과했었다는 말입니다. 실제 가서는 전부 걸뱅이가 돼 가지고 공산주의가 막 이탈합니다.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다 이탈해서 달아나 버리고 러시아 하나만 남아 있습니다. 깡깡 어는 땅, 농사도 잘 안 되는 땅, 그 동토만 남아 버린 것입니다, 러시아만.
땅덩어리만 넓지 쓸만한 땅이 별로 없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에서 곡물이 제일 많이 나옵니다. 이렇게 따뜻하고 곡물이 제일 많이 나오는 유럽하고 붙어 있는 땅은 다 뺏겨 버렸습니다. 다 칼 마르크스를 반대하는 자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칼 마르크스 이론을 따른 자들은 전부 배고프고 거지가 되어 있습니다. 얼음이 가득한 땅에 갇혀 있습니다. 맞습니다. 지금까지 종교 지도자들이 이 세상을 바꿔 놓았습니까? 인류가 종교 지도자들의 각 종교의 미래를 걱정할 정도로 쇠퇴가 내려가 버렸습니다. 그러지요? 그런데 심판자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래도 훔볼트 대학의 정문에 칼 마르크스의 이렇게 말이 남아 있다는 것 참 대단한 것입니다.
이것이 독일 대학교는 우리나라하고 좀 다른가 봅니다. 상당히 철학자의 칼 마르크스의 이론을 이렇게 정문에다가 비석을 만들어 세워 놓았습니다.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의 철학은 무엇이었다고? 읽는 것에 불과했다. 미래의 철학은 미래의 철학은 세상을 변화시킨다.” 여기 그냥 허경영이가 나타나면 세상을 변화시킨다 했으면 더 쉽지 않습니까? 뭐 이렇게 복잡하게 합니까? 바꾸십시오, 바꾸십시오, 흑판으로 바꾸십시오. 재밌지 않습니까? 그래서 석가모니인들 이것이 소울음 소리를 내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러다 여기 왔습니다. 진인으로. 왔지 않습니까? 그럼 그 자는 저를 만나러 온 것입니다.
진짜 소울음 소리를 내는 자의 성산성지 우명지. 세인부지 한심사(世人不知 寒心事). 또 무엇입니까? 말세성제(末世聖帝). 아니, 말세에 성제가 나타났는데 이 세 글자는 여러분 꼭 알아두어야 합니다. 아니, 성산성지 분명히 우명지지 않습니까? 소가 우는 곳입니다. 소가 우는 곳이다. 말세에 성제가 나타납니까, 안 나타납니까? 말세 하늘에서 제왕이 왔지 않습니까? 말세성제가 하늘에서 딱 오는데 이 사람들이 무엇을 한다고? 시부지(視不知)입니다. 보기는 보는데 자세히 봅니까, 안 봅니까? 시부지, 보는 둥 마는 둥.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러니 세상 세인부지. 세상 사람들은 한심사. 세상 사람들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맞지요? 이 세 마디는 각종 예언이 있지만 이 세 마디는 경전에 나오는 말입니다.
자, 말세성제. 말세에 성산성지 우명지에 말세성제가 나타났는데 세상 사람들이 하늘궁을 아주 우습게 압니다. 시부지 쳐다봅니다. 시부지라는 것은 보기는 보는데 자세히 안 보지 않습니까?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시부지 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말이 멋있지 않습니까? 시부지 시부지 시부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가 석가모니입니다. 이것을 석가마니라고도 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이 마니가 많이 달라는 소리입니다. 석가모니한테 가서 많이 달라고 복을 받으러 가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석가마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많이 달라는 것을 여기서 말이 나온 것입니다. 많이 많이 많이 달라 이 말입니다. 많이 달라는 것입니다. 많이. 근데 한문으로 저 마니가 우리나라 말로 많이입니다. 많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석가모니한테 가서 다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 달라, 뭐 달라. 달라는 것이 한 가지가 아닙니다. 뭐 어머니 안 아프게 해 달라, 우리 아버지 뭐 많이 많이 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가 아니라 석가마니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석가모니가 아니고 뭐라고? 석가마니. 그래서 이것을 소가 풀 뜯으러 가는 것을 막는다는 말입니다. 풀을 뜯으러 가는 것을 막지 않습니까, 소가? 울면서 먹으려고 하는 것을 승려가 막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을 불교에서는 뭐라고 불교에서 이야기하냐면 이것을 회광반조(回光返照)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석가모니 이름에서 나온 것입니다. 이 소를 자꾸 풀 뜯으러 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을 막아야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회광반조. 빛이 있는 쪽으로 자꾸 잡아당기는 것입니다, 반조. 줄을 잡아당겨 줘야 반조가 되지 않습니까? 반대로 비치게.
그러니까 이 회광을 돌아가는 불빛을 자꾸 다른 데로 좋은 데로 비치게 만드는 것, 그것을 회광반조라고 합니다. 회광반조라는 말이 무슨 말이냐면 소가 밭을 갈 때 풀 뜯으러 막 이렇게 입이 가지 않습니까? 일을 하면서 입이 주둥아리가 갑니다. 그것을 고삐로 잡아당기는 것을 회광반조라고 합니다. 우리가 탐욕을 탐진치를 향해서 입이 나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입이 나가는 것을 잡아당겨서 원위치로 돌리는 것을 회광반조란 말입니다. 나가는 이 빛을 반대로 바른 길로 가게끔 잡아당겨 주는 것, 회광반조. 이제 이해 가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석가모니 이름은 다른 말로 하면 회광반조라는 글입니다. 회광반조.
그럼 우리는 언제나 탐진치로 빠져나갑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회광반조라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회광반조가 이 육근(六根)이 있지 않습니까? 육근, 육식(六識), 육진(六塵), 육경(六境). 육근이 무엇입니까?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입니다. 육근이 육식으로 바뀐다는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육진이 됩니다. 육진이 되지요. 6가지의 고통이 되는 것입니다. 육진, 진애(塵埃)라고 있지 않습니까? 육진이 무엇으로 바뀌었냐면 육경이 되는 것입니다. 육경, 6가지 경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이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회광반조입니다. 회광반조. 이것은 무엇이냐면 이것은 감성이란 말입니다. 육식이라는 것은 이것은 안이비설신의가 만들어 내는 전부 다 이것이 우리의 감정 작용이지 않습니까? 이것을 못하게 만드는 것을 회광반조라고 합니다. 반대로 해 버린다, 반대로 비친다 이것이지요. 반대로 비치는 것은 여기 애착을 두고 비치는 것입니다. 이것을 회광. 돌려 버리는 것이지요. 빛으로 진정한 빛으로 돌려 버린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것이 회광입니다.
그러니까 육근이나 육식이나 육진이나 육경은 인간의 오욕(五欲)에서 나온 것이지 않습니까? 이 오욕에서 나온 이 오욕은 근본적으로 마음 심 자가 붙어 있지 않습니까? 이 오욕은 일반 욕구와 다릅니다. 이 욕구와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욕구에는 마음 심 자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효도하겠다는 욕구, 거기는 마음 심 자가 없습니다. 이것은 근본 욕구이지 오욕은. 마음 심이 있으니까 무슨 욕구입니까? 무슨 욕망입니까? 식욕, 색욕, 재물욕, 명예욕, 수면욕. 이 5가지는 인간 누구나 본능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능 심 자입니다. 이것이. 마음 심 자가 한문으로 이것이 본능 심 자란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마음 심 자를 우리는 심소(心所)라고 합니다. 마음의 장소. 이 심소는 모든 인간에게 오욕이 딱 들어 있습니다. 그래 이 심소를 없애야 하는 것이지요. 없애면 순수한 욕구. 오욕은 식욕, 색욕 이런 것은 없앨 수가 없습니다. 맞지요? 그래서 이 오욕에 낙 자가 붙어서 오욕락(五欲樂)입니다. 이 오욕락은 아주 더러운 것이란 말입니다. 바로 육근과 육식과 육진과 육경에 사로잡힌 것을 오욕락이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 오욕락은 무엇 무엇입니까? 7가지.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이것이 7가지가 오욕락입니다. 오욕에 의해서 생기는 이것이 다 도파민이 나옵니다. 이것이 다 무슨 중독이 되면 도파민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술 먹으면 도파민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먹어서 나오는 도파민이 오욕락입니다. 여기서 보면 색욕 있지 않습니까? 섹스할 때 도파민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즐거운 것입니다.
이것은 전부 다 오욕이라 해서 안 좋은 욕구입니다. 이것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이성입니다. 그럼 오욕락은 감성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감성을 이성으로 바꾸면 무엇이 된다고? 희로애락애오욕이 없어져 버립니다. 무엇이 생깁니까? 사단(四端)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 돈이 많이 생기고 나서 보니까 사람들이 전부 불쌍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돈이 많이 생기고 나서 보니까 전부 어려운 사람이 눈에 보입니다.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근데 이 사람은 사단이 생긴 것입니다. 그런데 돈이 많고 보니까 술집만 머리에 떠오르고 갑순이만 만나러 가야 되겠다, 저런 이쁜 여자만 찾으러 가야 되겠다, 영화배우를 만나러 이러면 이것이 어떻게 됩니까? 돈이 많이 생긴 것이 화근이 돼 버리는 것이지요.
근데 돈이 많이 생기고 보면 전부 사람이 불쌍해 보입니다. 자기는 한 5천억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저 한 달에 100만 원 200만 원 벌러 다니는 것을 보니까 불쌍하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불쌍해 보입니다. ‘어머, 저 구멍가게 길거리에 가게가 아름답게 막 루이비통 이런 가게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 종업원들이 전부 불쌍해 보이는 거야.’ 왜 불쌍해 보입니까? ‘어머, 저거 한 달에 저거 뭐야? 돈 한 300만 원 주는데. 나는 한 달에 이자만 500억이 들어오는데 불쌍해 보여, 안 보여?’ 그것이 불쌍해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사실은 우리는 그런 부자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얽매여 있는 자들을 보면 ‘어머, 길에서 루이비통 가게 앞에도 차가 다녀, 버스가 다녀. 하루 종일 가게로 매연이 들어오는데 매연이 나가는 구멍은 없어. 뒷문은 없는 거야.’ 가게집들이. 가게방들이 뒷문이 있습니까? 잘 없습니다. 앞문으로 버스 매연이 계속 들어옵니다.
거기 앉아 가지고 미스코리아 같은 애들이 “어서 오세요.” 그리고 호텔 앞에서 안내하고 앉아 있습니다. 소공동 가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럼 거기가 지옥으로 보입니다. 지나갈 때 저는 이렇게 보면 ‘어머, 여기가 생지옥이구나.’ 전부 뭐 물건 사겠다고 그 버스가 수십 대가 막 줄을 서 있습니다, 정류장에. 그것이 롯데백화점 앞입니다. 근데 막 거기에 바글바글 안에 종업원들은 멀쩡하게 생겼는데 매연을 노다지 마시고 거기는 먼지 뭐 이 브레이크 라이닝 가루 뭐 전부 발암물질이 바글바글한데 거기 들어 앉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있는 그것이 직업입니다. 그 중생들 바라보면 이것이 얼마나 비참합니까? 저 개미굴 같은 저 가게 들어와 가지고 공기도 안 통하고 앞에는 차만 바글바글 버스만 다니고 거기 앉아서 하루 종일 근무하고 집에 가서 “엄마, 나 직장 갔다 왔어.” 그리고 한 달에 몇백만 원 받아옵니다. 그 몇백만 원이 병을 저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 중생들의 생활을 이렇게 보면 너무너무 비참한 것입니다. 그것을 자본주의 사회의 말로라고 합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합니까? 그냥 쿠팡에서 그냥 배달해주지 않습니까? 갈 필요가 있습니까? 왜 가게에 앉아서 매연을 들이 마시고 있습니까? 왜 가구점에 앉아 가지고 하루 종일 먼지를 마시면서 누가 가구 사러 오지 않나 하고 앉아서 쳐다보고 앉아 있습니까? 근데 앞에는 버스가 막 다닙니다. 그것을 마시고 있네.
백담사에 있는 승려가 참 최고이지 않습니까? 그럴 때는 그렇지 않습니까? 조용한 데 앉아서 맑은 공기 마시고 뭐 개나리 꽃 피고 뭐 개울에 막 물고기들이 바글바글한 그 백담사 계곡에서 다 스님 앉아 가지고, “야, 행자 도시락 좀 가져와.” 그럼 거기서 먹고 그것이 지상낙원이 아니겠습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 비하면 저 롯데 명동 롯데는 세상에 매연 매연은 다 먹고 앉아 가지고, 출근하는데 2시간 그것도 빨라야 합니다. 돈 별로 없는 사람 출근하는 데 3시간도 걸립니다. 저 변두리에서 지하철을 몇 번 갈아타고 막 이렇게 간신히 직장에 오는데 세상에 그 오고 가는데 하루에 5시간 허비를 합니다. 그 5시간은 콩나물 같은 데 앉아 가지고, 여자하고 엉덩이만 닿으면 성추행으로 또 고소가 돼서 잡혀갑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하철에 탔는데 재수 없이 옆에 신경이 날카로운 여자가 있으면 그냥 신고를 해 가지고 “이 남자가 내 옆에서 성추행해.” 이래 가지고 또 재수 없이 또 감옥을 갑니다. 자기 잘못한 것도 없는데. 우리가 제 아들을 착하게 키워 놓았더니, 아이가 말주변이 없어 가지고 “성추행했다.” 그러니까 “그래요? 난 안 했는데.” 이러고 잡혀가는 것입니다. 성추행범으로 잡혀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멀쩡한 대학생이 취업해 가지고 이제 직장에 출퇴근하는데 첫 출근에 성추행범으로 재판을 받습니다. 그러니까 그 엄마가 한이 맺힙니다. “이 뭐하는 짓이야?” 아니, 차도 없으니까 처음에 지하철에 막 복잡한데 기어들어와서 좀 밀었더니 이것이 성추행범입니다. 앞에 여자가 있으니까 좀 밀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성추행할 마음도 없었는데 성추행범으로 신고를 해 버리니까 조사 안 받으면 되겠습니까? 받아 가지고 영락없는 성추행범으로. 경찰이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잘생긴 거 보니까 성추행범 맞구만.” 이러고 앉아 있습니다.
남의 집에 장대 같은 아들을 멀쩡한 아들을 그 만원 버스 좀 밀고 들어갔다고 지하철에 좀 밀고 들어갔다고 여자 밀었다고 성추행으로. 이것이 직장 첫날부터 대학교 공부시키고 20년을 아이를 십몇 년을 공부시키고 키워놓은 장대 같은 아들을 성추행범으로 징역 2년. 이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이것이? 뭐하는 사람들입니까? 그 멀쩡한 집에 아들들 전부 병신 만들려고 작당을 했습니까? 그러니까 그런 만원 버스를 안 탈 수도 없고 타면은 밀리고 밀면은 앞에 여자가 있고 그것 어쩌자는 것입니까? 세상에 그런 법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것 말입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 전부 성추행범 만들고 말 것입니까? 정신들 차리십시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한적하고 외진 데서 무엇 무슨 그런 것이 있다든지 버스 전철에서 뭐 그랬다고 그것을 사람을 전부 잡아넣으면 그것 어쩌자는 것입니까?
멀쩡한 사람이 말주변도 없는 사람이 착한 청년이 사회생활 처음 하는데 그것 걸려 가지고 지역을 갑니다. 법정에 제가 가 봤더니 법정에서 엄마가 막 뒤로 자빠져서 웁니다, 땅에서. 그래 왜 그러냐니까 “우리 아들은 성추행 그런 것 한 적도 없는데 버스 한번 잘못 탔는데 아 그 차 타 가지고 여자한테 붙었다고 그러니 그 아이는 그러지 않았다는데. 저놈의 판사가 징역을 때렸다고.” 막 아니 법정 복도에서 드러누워서 웁니다, 엄마가. 여러분 그렇게 하면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세상에 월급 몇 푼 받겠다고 말입니다. 아들이 사회 첫 출발했는데 그날 성추행범으로 몰려? 해도 해도 너무 안 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이가 안 태어나는 것입니다, 지금.
그래, 너희끼리 아이 없는 것 한번 맛 좀 봐라. 젊은이들이 결혼 안 해 버립니다. 잘못됐지 않습니까? 절대로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시간 없어서 지금 6시? 끝내야 합니다. 저는 누가 이야기 안 해주면 마냥 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이렇게 샐러리맨들 젊은 청년들 불쌍하게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젊은 청년들 뭐 연애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성추행범으로 신고 이런 것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주 악질적인 사람이 확실한 악질한 범죄가 있어야 하지. 데이트 한 달 몇 번 했다고 성추행범으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이 지금 감옥에 들어가 있습니다. 고쳐야 합니다.
자, 그래서 이런 욕구도 없던 사람을 갖다가 부모한테 효도하려고 직장 간 것인데 성욕을 위해서 오욕을 위해서 한 짓이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너무 우리는 법이 발달돼서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에 도달했습니다. 법 만능주의가 지금 판을 치고 있습니다. 고쳐야 합니다. 제가 왜 오늘 이 석고대죄 화룡점정을 이야기하냐면은 허경영 신인을 만나면 점정한 것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눈에 점 찍은 것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맞지요? 명심하라는 말입니다. 이야기해야 될 것은 태산 같은데 또 다음에 하면 되지 않습니까? 우리는 행복의 바다에 있지 않습니까? 누구한테도 안 뺏기지 않습니까? 이런 오욕에서 오는 도파민 놓는 그것이 기쁨이다, 슬픔이다 이런 것 좀 이제 졸업하십시오.
하늘궁 광천 불로수의 기적
그런 도파민은 인체에 별로 좋지가 않습니다. 진짜 도파민은 무엇이냐면 세상에 많이 양보해 버리고 제가 조용히 있을 때 도파민이 나옵니다. 그때 꽃 한 송이, 들에 있는 꽃 한 송이 이렇게 볼 때 그 아름다움이 보이는 것입니다. 또 친구한테 양보해 주고 자기는 조용히 있을 때 ‘어머, 그 친구가 잘 되는 것을 보면 기쁜 거야.’ 거기서도 도파민이 나옵니다. 맞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제가 모르던 진리를 탁 보게 되면 도파민이 나옵니다. 왜 꼭 술, 담배, 즐거움, 남 때려잡고 거기서 도파민이 나와야 합니까? 안 됩니다. 진짜 도파민은 조용히 나오는 것입니다. 얼마든지 사색, 허경영만 생각하면 도파민 나옵니다.
아까 광천수. 일본에서 광천수 한 것 결과가 나왔지 않습니까? 이것은 원본입니다. 일본말로도 나와 있고 번역도 돼 있지 않습니까? 여기 일본 광천수 회사에서 도장 찍혀 있지 않습니까? 이 도장이 그렇게 무서운 도장입니다. 일본에서 제일 좋은 물. 저 북해도 얼음만 있는 쪽에서 나오는 그 좋은 물을 비교했을 때 우리 것이 32%가 높다. 띄워 보십시오. 어마어마한 물이 하늘궁에 쏟아져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한번 띄워 보십시오. 맨 마지막 이 몇 페이지입니까? 이 페이지 원본도 띄워 보십시오, 원본. 한국의 테스트 물이 아쿠아포린 투과성에 관한 시험 결과 보고서. 일본 이 원본 맞지요? 이 맨 뒷장 띄워 보십시오. 도장 찍힌 것. 도장 찍혀 있지 않습니까? 이 도장 찍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세계 물 최고 권위자들이 조사한 것이지요?
이 우리 한국수 여기 무엇이 있지 않습니까? 여기 무엇이 있지 않습니까? 또 앞장 것 여기 보면 이것이 몇 %입니까? 여기가 32%가 증가돼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일본 최고 물이고 이것은 한국 것입니다. 우리 것입니다. 이렇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이것이 32%가 높다는 것 이것은 뇌에 물이 많이 침투해 들어가고 우리 한국 물은 지방에 다 들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한글로 된 것 이것 띄워 보십시오. 이 장면 한글로 된 것. 도장 다 찍혀 있지 않습니까? 이제 이번에 원본이 왔습니다. 이것 말고 다음 장, 다음 장. 자, 보십시오.
이것 좀 키워 보십시오. 아니 아니 좀 줄이고 글자 읽을 수 있어야지. “한국 물의 AQP7 투과성 측정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 물 369, 히타 수돗물 280이었다.”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히타 물이라는 것은 일본 북해도 저쪽에 얼음 산에서 나오는 물, 최고 좋은 물이 히타수입니다. 일본에서 제일 좋은 물이 히타수입니다. 말하자면 빙하에서 나오는 물입니다. 그 좋은 물이 “한국 물의 AQP7 투과성 측정이 다음과 같았다. 한국 물 369, 히타수는 280이었다. 히타수는 1로 했을 때 한국 물은 AQP7 투과성이 상대치를 그림 6b에 나타냈다. 그 결과 히타 수돗물의 한국 물은 32% 증가했다.” 이것 3.2%가 아닙니다. 32% 저 나오는 우리 물이 32%가 어디로 증가합니까? “일본 수돗물에 비해 한국 물의 t 검정 시험은 유의차가 있었다.”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그 다음 올려 보십시오. 올려 보십시오. 더 더 올려 보십시오.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32%라는 것은 대단한 것이지요? 이것이 또 올려 보십시오. 그 다음 장. “히타 수돗물에 대한 한국 물의 아쿠아포린 투과성을 일람으로 나타낸 것이 그림 7이다.” 한국 물은 히타 수돗물에 비해 AQP4 및 7에 대한 투과성이 1.2배, 1.32배 높아 유의차가 있었다. 기타 AQP의 투과성은 수돗물과 거의 같았다. 나머지는 비슷한데 이렇게 높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 뇌와 지방에 들어가는 물입니다. 뇌 침투성. 그러니까 AQP 이 물은 비교가 안 됩니다. 올려 보십시오. “AQP4는 뇌세포의 막에서 많이 볼 수 있고.” 맞지 않습니까? 우리 물이 뇌세포막에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건망증, 치매, 무슨 이런 것에 좋은 것입니다. “볼 수 있고 AQP7은 지방세포에서 많이 볼 수 있음이 보고되고 있다. 또 당사의 연구에서는 뇌세포 속의 세포수도 AQP4 투과성이 높은 물이며, 지방 조직 속의 세포수도 AQP7 투과성이 높은 물인 것이 밝혀졌다. 이러한 연구 결과의 근거로 볼 때 한국 물은 뇌 및 지방 조직 활성화에 기여할 가능성이 높은 물로 추정할 수 있다.” 맞지요? 그런데 이번 것 틀어 보십시오. 이것 왜 여기 깔깔했습니까? 바로 펴 놓으십시오. 도장 도장 찍은 것은 여기 나왔지 않습니까? 아까 도장 찍은 것 원본.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돼 있지 않습니까? 마지막 이것이 방금 읽은 것입니다. 일본말로. 다 돼 있지 않습니까? 아까 그것은 옛날에 나왔던 것을 영상 찍은 것이고, 지금은 이것이 다 돼 있지 않습니까? 다 돼 있습니다. 밑에 글자는 안티들이 막 공격할까 봐서 그 회사가 그 회사를 또 공격한다니까 또 물 그것 했다고. 세계 최고의 물 박사입니다. 일본에서 연구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국 물이 어디에 좋다고? 우리 물을 먹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뇌가 좋아지고 무엇이 좋아집니까? 지방이 5kg씩 빠진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5kg씩 빠진 사람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대단히 우수한 물인데 안 팝니다. 절대 안 팝니다. 아무나 와서 떠 가져가면 됩니다. 우리가 불로유 팝니까? 여러분이 뭐 만들어 먹든 말든 저는 관여 안 합니다. 불로수 우리가 뭐 팝니까? 안 팝니다. 여러분이 와서 떠먹으면 됩니다. 가 보십시오. 누가 거기 가서 뭐 물값 내놓으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러나 개인이 떠 가지고 비용 들여서 누구한테 보내는 것은 우리는 터치할 수가 없습니다. 맞지요? 그렇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신인이 여기 오고 나서 8년 만에 우리 아버지 사형받은 날 백궁에서 6월 22일 날 금년 6월 20일 저 물이 터졌습니다. 땅속 3.3km에서 수직으로 올라오는 물입니다. 상상을 불허하는 물입니다. 그러면 저것이 밤낮으로 수도꼭지 없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저것이 언제 나올까지 나오는가 여러분 지켜보는 것이 재밌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오해하고 나쁘다 그러면 그 물이 잠시 멈출 수가 있습니다. 저 물이 무서운 물입니다. 신인을 봐서 주는 것입니다. 근데 여러분들이 저를 모함하고 끝까지 저를 뭐 나쁘니 좋으니 이러면 그 물이 또 어느 날 탁 끊어집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 물 먹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 회원들은 지금 저 물 먹을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회원 아닌 사람들도 물 먹을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지금은 여러분들에게 주고 있지만 여러분들 입에서 나쁜 말이 자꾸 나오고 저 물을 오해하고 자꾸 이러면 어느 날 물이 탁. 안 되겠지요? 지금 이제 좀 더 예뻐지려고 하는 찰나에. 안 되겠지요? 이제 얼굴이 좀 광이 나려고 하는 찰나에 스톱하면 될까요? 안 됩니다. 아, 지금 물을 떠가면서 뒤로 피식피식 웃습니다. ‘야, 신인님 몰래 물 잘 떠간다. 신인님은 떠가는 것도 모르시겠지.’ 이러고. 다리가 저릿하다. 그럴 때는 백궁석에 들렀다 가면 됩니다. 양심의 가책이 될 때는 백궁석에 가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하고라도 가야지. 그러면 더 좋아지겠지요? 효과가 날 것입니다. 알겠습니까? 무용 무용 노래 노래.
네, 어쨌든 우리가 세계 최고의 영적인 물, 우리 광천 불로수 자축의 박수 크게 한번 보내 주십시오. 아, 참 우리는 복이 참 너무나 많은 분들입니다. 자, 노래하는 시간 하늘궁 홍보 노래 김지연, 강옥기, 박현숙 순서로 하겠습니다. 미디어팀 바로바로 준비해 주십시오.
(백궁정거장)
정거장 정거장 하늘궁은 백궁 정거장
하늘의 천신이 내려 좌정하고 계시네
비파와 거문고 황제 출생 기뻐하고
만 명의 장군을 호령하고 통솔하시네
용이 노네 노네 용이 노네 노네 여의주를 물고서
나네 나네 나네 날아오르네 용이 날아오르네
피네 피네 피네 목단 꽃이 피네 활짝 피었네
품네 품네 품네 황금 닭이 알을 품고 있네
아 ~ 하늘궁은 지상의 백궁 정거장
성산성지 우명지 소 울음소리가
울려 퍼질 때에 백궁 본향으로
선택된 우리 인도하는 백궁 정거장
정거장 정거장 하늘궁은 백궁 정거장
하늘의 천신이 내려 좌정하고 계시네
용이 노네 노네 용이 노네 노네 여의주를 물고서
거북 거북 거북이 금덩이가 하늘에서 내려와
십자나무 도통한 자가 함께 있네
품네 품네 품네 봉황새가 알을 품고 있네
아 ~ 하늘궁은 지상의 백궁 정거장
성산성지 우명지 소 울음소리가
울려 퍼질 때에 백궁 본향으로
선택된 우리 인도하는 백궁 정거장 백궁 정거장
세계 최고의 무용입니다. 우리 백궁 정거장 무용은 세계 최고 무용이지 않습니까? 레벨 500무 들어가라. 정말 우리 백궁수 노래는 엄청난 노래입니다. 이 물이 안 나왔으면 저 노래가 있을 수 있습니까? 없지요? 아유, 지금은 또 오늘 패션은 또. 몸이 호리호리하면 한복도 잘 어울리고 서양 옷도 잘 어울립니다. 뚱뚱한 사람은 어울리는 것이 없습니다.
(공경합니다)
이 세상을 준다 해도 허경영이 없다면 무슨 의미 무슨 꿈을 갖고 살아갈 수 있나요?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세계 황제 허경영 세계 황제 허경영 가슴 떨리는 허경영 인류의 등불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틀림없는 신인님 세계 통일 이루는 세계의 황제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지상낙원 만들어 주신 국민 모두 무료급식을 한평생을 지켜 온 당신 신인님을 공경합니다.
세계 황제 허경영 세계 황제 허경영 가슴 떨리는 허경영 인류의 등불 이리 보고 저리 봐도 틀림없는 신인님 세계 통일 이루는 세계의 황제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허경영 지상낙원 만들어 주신 국민 모두 무료급식을 한평생을 지켜 온 당신 신인님을 공경합니다.
박수 소리가 작습니다. 다시 한번. 아이고, 레벨 500무 들어가라. 패션이 안 맞는 사람 레벨이 적게 들어가는 수가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맨날 그러시니까 제가 죄인 된 것 같습니다.
(New Jerusalem Castle)
How do I address Him?
Who gave love to my desperate heart and
allowed living water to my thirst
How do I address Him?
That took me home when I am lost and touched my torn heart
Come to me with no worry
I love you to throw myself to the burning fire for thee
Not for a single day or year even for the whole life
With the whole-hearted love
He loved us
How couldn’t we recognize Him?
Why did we exclude Him?
Aren’t we blind that we couldn’t see with eyes and couldn’t realize with our minds?
Now I see Him
Now I feel Him
Your love
Your true heart
In this New Jerusalem Castle
Not for a single day or year even for the whole life
With the whole-hearted love
He loved us
Now I see Him
Now I feel Him
Your love
Your true heart
In this New Jerusalem Castle
Now I see Him
Now I feel Him
Your love
Your true heart
In this New Jerusalem Castle
레벨 500무 들어가라. 아니, 노래도 노래도 좋지만 그림이 영상이 좋지 않습니까? 아주 종합판입니다. 제 영상의 종합판 잘 만들었지 않습니까? 우리 지지자가 만든 모양입니다. 아주 잘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다 찾아내는지 모릅니다.
자, 우리 세 분에게 다시 한번 큰 박수 주시기 바랍니다. 네, 이어서 무료급식 영상 미디어팀 부탁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가슴 깊이 간직할 귀하신 말씀 주신 존경하는 신인님께 큰 박수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신인님. 그리고 경청해 주신 여러분, 그리고 아울러서 또 무료급식도 참여해 주신 여러분에게 깊은 감사 인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제가 새해를 맞아서 밝고. 아, 네, 전체 에너지 신인님의 전체 에너지를 다. 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