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9 Who is Huh Kyung-young?: The Divine Human’s Journey from Humble Beginnings to Global Influence – February 15, 2025

서문: 혼돈의 시대, 신인의 메시지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군웅의 시대입니다. 하지만 세파에 휘둘리지 말고, 자신의 영성을 드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좋은 날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의 빛과 소음이 되시고, 이 세상의 신을 다스리는 전능하신 허경영 신인님을 모시고 2월 셋째 주 토요 강연을 시작하겠습니다.

감사와 공지: 하늘궁 방문 및 순례 행사

오늘 시상식이 있습니다. 먼저 대구 영성센터 월자 대천사님이 신인님께 감사하며 한복을 차려입고 나오셨습니다. 두 번째로 광주 전남 영성센터 이명옥 천사님이 신인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노란색 꽃을 올립니다. 끝으로 광천 백궁 영성 TV 현영선 대천사님이 대천사 1주년 기념으로 감사의 꽃바구니를 신께 올립니다. 아주 탐스러운 꽃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어서 해외 순례단 공지를 하겠습니다. 비디오 팀, 영상 띄웠죠? 해외 순례단 하늘궁 방문에 대한 공지 내용입니다. 2025년 해외 순례단 하늘궁 방문 및 순례 행사 일정이 10월 16일부터 10월 26일까지로 잡혔습니다. 해외에서 허경영 신인님의 유튜브를 시청하고 계시는 분들 중에서 올해 하늘궁 방문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은 10월 순례 행사에 맞춰 계획을 세우면 그룹 방문 혜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올해는 특별 이벤트로 준비되어 있으니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시길 바랍니다. 유튜브 화면에 공지가 나갑니다.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신인님의 귀하신 섭리 말씀을 다 같이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허경영은 누구인가: 탄생과 예언

허경영이 누구냐고 물으면 여러분이 대답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저는 6.25 사변 때 태어났습니다. 1950년 1월 1일, 음력으로는 1949년 11월 13일입니다. 양력으로 1950년 1월 1일생입니다. 음력으로는 1949년 11월 13일입니다. 대통령 출마하면서 나이를 세 살 올렸습니다. 그래서 1947년 7월 13일로 올렸습니다. 이것이 제 호적이고, 이것이 제 본 나이입니다. 이것은 양력 나이입니다. 강증산 선생이 1909년에 돌아가셨으니, 제가 정확하게 40년 만에 태어났습니다. 그분은 1909년 6월에 돌아가셨고, 저는 1월에 왔으니 두 달 빨리 왔습니다. 딱 40년 안에 제가 온 것입니다.

태어난 곳은 중곡동입니다. 대순진리 본부가 있는 곳입니다. 중랑교 개천 다리 밑 움막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곳이 제가 정확하게 태어난 곳입니다. 당시 그곳을 중곡동이라 불렀고, 대순진리는 그 이후에 본부를 만들었습니다. 신기한 일입니다.

제 이름에는 ‘경’자가 있습니다. 이름은 11획입니다. ‘허’자는 예언되어 있는 글자입니다. ‘경’자는 분명히 서울에서 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자는 영성과 사람의 영혼과 육체, 피, 영과 피가 합쳐진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제단에 올려져 영육이 편해야 편안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복강녕할 때 ‘영’자를 씁니다. 허락을 맡아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은 동경, 서경, 남경, 북경 가운데 있는 서울입니다. 그래서 우리 서울은 성이라고도 합니다. 동경, 서경, 남경, 북경을 붙이면 안 됩니다. 전 세계 수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동경이 있으면 여기에 서경이 있고, 중국에 남경이 있고 북경이 있습니다. 여기가 서울입니다. 그래서 서울에서 났다고 합니다.

이름의 획수도 중요합니다. 강증산 선생은 이름에 ‘경’자가 있어야 하고, ‘영’자는 영육 간에 일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전체 획수가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씨가 11획만 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11은 1300년 전 원효대사가 미래의 신이 인간으로 올 때, 그 미륵의 성씨는 억이라고 했습니다. 그 영상을 띄워 보십시오. 11획 영상, 원효대사입니다.

이름의 수리: 11획과 10획의 운명

11획부터 먼저 보겠습니다. 11은 천지조화의 목록으로 최고의 부귀와 영화를 얻는 금복의 수리입니다. 이것은 역술인들이 이름 지을 때 숫자를 보는 책입니다. 천지창조와 같이 천지간의 만물이 다시 새로 영상으로 하늘이 내린 금복을 크게 누리는데, 곧 하늘이 준 복록이 있겠습니다. 매사를 도모하며 원하는 대로 얻을 수 있고, 하늘에서 언제나 좋은 징조의 찬연한 구름이 길게 둥둥 떠 있으므로 필요할 때마다 행운의 비를 내려주어 만사가 순리대로 계속 발전합니다. 제가 대통령 처음 나갈 때 돈이 없었지만 500억이 필요하다고 하면 500억이 만들어집니다. 참 신기합니다. 누가 가지고 올 것이라고 하면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대통령에 나간다고 합니다. 공탁금이 5억이었는데, 그 서울시의 건물 하나 값과 같았습니다. 30년 전에는 건물 하나를 팔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3억이지만, 그때 5억은 30년 전 화폐 가치로 몇십 배 올랐습니다. 그때 5억을 만들려면 자동차 다섯 대 정도의 돈을 현금으로 실어야 했습니다. 그것을 제가 대통령 나간다고 돈 만들어지라고 하면 다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름 수리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마음을 먹으면 그냥 도모가 되어 계속 발전합니다. 이것은 천지조화로는 대결운을 뜻합니다. 항상 온건하고 착실할 뿐만 아니라, 한때 좋지 않은 일이 나타나도 곧 복귀가 됩니다. 부모 없이 태어나 고생했지만, 나쁜 일이 와도 금방 복귀되어 오히려 새옹지마가 됩니다.

10획을 한번 보겠습니다. 나보다 한 획만 성씨가 잘못된 사람은 이것을 키워 보십시오. 이것은 안 보여도 됩니다. 10획은 공허와 몰락, 그리고 암흑, 천재에서 헤매는 고독한 수리입니다. 성씨가 10획이면 좋지 않습니다. 이름 지을 때 이 획수를 쓰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1, 2, 3, 4, 5, 후천 6, 7, 8, 9, 10입니다. 후천의 수입니다.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듯하나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일이 뜻과 같지 않고 일생 동안 온갖 고초와 결함을 맛보면 전도가 암담합니다. 하는 일마다 허수고 요동, 공로가 없으면 늙을수록 더욱 그러하며 괴롭고 엄청나게 슬픈 수리입니다. 모든 것이 암흑적으로 변해 허공을 헤매도 끝이 보이지 않는 형국이 됩니다. 특히 자기 관리에 소홀하거나 근면 성실하지 못하면 더욱 좋지 못한 일을 겪게 됩니다. 성공을 바라면서 어떤 일에 매진해도 성공은 그냥 재앙과 양하만 닥치며 실패와 몰락만 가득 남는 형상입니다. 특히 여인은 애정의 번뇌가 그치지 않으며 비참과 괴로움으로 불행하게 지내는 운세의 수리입니다. 숫자 하나 차이가 어마어마합니다. 10획은 이름 지을 때 쓰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름 지을 때 아무렇게나 지으면 안 됩니다. 획수 차이가 큽니다.

원효대사의 예언: 신인의 출현

원효대사가 이야기한 것을 보겠습니다. 오늘은 좀 빨리 해야 합니다. 원효대사입니다. 경감유록에도 나와 있고, 원효결서에도 나와 있습니다. 선천 1, 2, 3, 4, 5, 후천 6, 7, 8, 9, 10입니다. 10이라는 숫자는 아주 더럽습니다. 이름자에 쓰면 안 됩니다. 여러분, 10은 완성수라고 하지만, 이름에는 무지무지하게 나쁜 수입니다. 완성수 맞습니다. 그러나 1, 2, 3, 4, 5, 6, 7, 8, 9가 마지막 수입니다. 10이라는 숫자는 원래 없는 것입니다. 1에다가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그런 수는 원래 없습니다. 9가 마지막인데 10이 이렇게 들어갔다는 것은 이런 수와 다릅니다. 1에다가 동그라미가 하나 붙었습니다. 10이라는 숫자가 그렇게 안 좋은 수입니다. 후천의 끝입니다. 선천, 후천, 선천 시작, 후천 끝수입니다. 거기다가 하나가 더 붙으면 선천 후천 공존이 됩니다. 도의 본체는 신입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책 한 페이지를 설명해 놓았을 것입니다. 그 밑을 보십시오.

11, 천개. 11이라는 숫자, 천개, 하늘 신의 뜻에 의하여, 하늘의 뜻입니다. 신의 뜻에 의하여 11이라는 수는 우주의 거대한 섭리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11이라는 수는 도의 본체로 하늘 신인이, 이 신자는 귀신 신자를 써도 됩니다. 진인이라는 하늘 신인이 육신을 빌어 지상에 올 때 가지고 오는 것입니다. 제가 육신을 가지고 왔습니다. 이것은 장난이 아닙니다. 이미 제 성에도 이것이 딱 정해져 있습니다. 이것은 1300년 전에 나온 책입니다. 번역해 놓은 것입니다. 자라 수는 도의 본점으로 하늘 신이 육신을 빌어 지상에 올 때 가져오는 지상의 성씨 총액은 11, 수리에 맞추어 11로 된 성씨를 택하여 온다고 했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천천히 다시 언급하기로 하고, 우선 신인이란 인력에 과연 무엇이고, 이제 이렇게 나옵니다.

원효결서, 원효대사가 1300년 전에 이 한반도에 이 획수 성을 가진 자가 온다, 그 자가 신이다. 대순진리 도전에도 신이 나옵니다. 그 자는 분명히 자기를 신인이라 그럴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상에 자기를 신인이라 하는 자는 제가 처음입니다. 그런데 이 11획에는 성씨가 왜 신인인가 나옵니다. 화면을 치워 보십시오. 무엇이 나오냐면, 이 성씨가 격암유록에 나옵니다. 공전, 멸병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면, 획수가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열, 11획입니다. 이것이 반드시 김해 허씨를 말합니다. 김씨를 없애서 거기서 성씨가 나오면 김의 김씨가 아니라 김의 허씨입니다. 김씨는 김씨인데 발음은 김씨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부지자와 같습니다. 이 사람은 무부지자, 아버지 없는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무부지자 신인입니다. 성지화성부지, 성이 없어 성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성부지 신인입니다. 그 신인이라는 사람은 11획으로 오기는 오는데, 그 성씨가 또 11획은 맞습니다. 11획 맞습니다. 무부지자여야 합니다. 아버지 밑에서 자라도 안 됩니다. 어머니 밑에서 자라도 안 됩니다. 어머니 밑에서 자라는 것이 낫기는 하지만, 어머니가 키우면 또 안 되는 것입니다. 신기하게 그렇습니다. 모욕부자입니다. 어머니가 기르는 것은 절대로 안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성부지, 성을 모릅니다. 알 수가 없습니다. 지혜 지자가 아니라 알 지자로 써야 하는데, 빨리 쓰다 보니 성을 알지 못한다고 썼습니다.

이 사람이 또 어디서 와야 하냐면, 사인불인, 사인불인 신인입니다. 이 신인이 오기는 오는데 사람이면서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신인 맞습니다. 사람도 되고, 사람 아니니까 신자와 인자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가 무슨 신이라고 합니다. 그런 가짜 종교들이 있습니다. 귀신도 신이고, 무당도 신이니, 그것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신과 인간이 붙었다는 것은 제가 처음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가 신이라고 하면 직접 나타날 수 있습니까? 신인이니까 나타나는 것입니다. 제가 신이라고 하는 사람은 잘못된 사람입니다. 신인이라고 한 사람은 제가 처음입니다. 사람은 사람인데, 사람이 아닌 사람이, 그런 신인이 온다는 것입니다.

아까 장소가 나왔습니다. 격암유록에 나옵니다. 두레박 같은 이곳에, 여기가 무슨 땅입니까? 여기가 성산성 명지 소가 와서 울고 있는 곳입니다. 제가 지금 떠드는 것이 우는 것입니다. 명지라는 곳입니다. 성산성 명지가 유에 궁가에 나옵니다. 유록 4장에 나옵니다. 신인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또 어디서 온다고 했습니까? 한반도입니다. 섬이면서 섬이 아닙니다. 사도부도 섬이면서 섬이 아닙니다. 섬이면서 섬이 아닙니다. 도부도 섬이고, 사도부도 여기서 또 신인입니다. 신인 출현이 한반도입니다. 전 세계에서 사도부도는 우리 한반도밖에 없습니다. 이탈리아가 사도부도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위에 압록강 두만강이 없습니다. 그냥 유럽과 붙어 버렸습니다. 플로리다가 사도부도와 비슷하지만, 위가 미국 본토와 붙어 버렸습니다. 우리 한국처럼 섬이 양쪽에 압록강 두만강으로 딱 면이 바다에다 한 면은 강입니다. 백두산이 달랑 붙어 있는데 그 꼭대기도 또 못입니다. 물로는 다 떨어져 있습니다. 산으로는 붙어 있는데 그것마저도 위에 못이 있고, 그 못에서 영주로 내려가면 압록강,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두만강이니, 땅이 붙어 있기는 있는데 위에가 물로 쪼개져 있습니다. 네 개가 쪼개져 있는데 섬이라고 안 하고 반도라고 합니다. 이탈리아 반도는 플로리다 반도와 같은 반도입니까? 사반불반입니까? 반도이면서도 반도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반불반입니다. 사반불반이 우리 땅입니다. 그 사람들은 사반불반이 아니라 그냥 반도입니다. 그냥 반입니다. 사도부인, 공전멸병, 김해 허씨, 다 맞습니다. 이것이 이렇게 딱 맞으니 대순진리 같은 곳에서 강증산 씨가 경전에서 나오는 그 이야기가 정확합니다.

그 사람들이 나중에 바구니 이름 우당 지어놓고 소를 찾아라, 소 찾은 사람이 경석규 종무원장입니다. 그분이 저를 만났습니다. 당신이 우리가 찾는 소라고 해서 의장님이 저를 본 것입니다. 저는 그때 의장님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의장님의 일에 도이지 모시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원장님 만나러 갔을 때는 그분이 이미 종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종무원장 때였습니다. 나중에 거기서는 직책을 경성 그냥 원장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거기 일종의 무대에는 장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국 대도에 종정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우리가 부를 때는 그렇습니다. 대순진리에서는 도전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감옥을 부를 때 여러 가지로 부릅니다. 감옥을 부를 때 감옥소라고 했습니다. 조선 말기에는 감옥소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교도소라고 합니다. 그다음에 또 형무소라고도 합니다. 작은 집, 큰 집이라고도 합니다. 형무소, 또 구치소라고도 합니다. 구치소는 재판이 끝나면 구치소에 있으면 안 됩니다. 재판이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만 구치소에 있습니다. 구치소에 보통 6개월 있어야 합니다. 구치소 6개월 있으면 재판 중입니다. 형이 확정되면 교도소로 가는 것입니다. 지금 바로 잡혀 들어가면 구치소로 가고, 형무소, 교도소입니다. 이 ‘도’자도 빨리 쓰다 보니 이렇게 써 놓았습니다. 마디 촌자 밑에 있습니다. 마디 촌자가 날려 이런 자입니다. 교도소 ‘도’자는 이런 자입니다. 인도할 ‘도’자입니다.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교도소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도부도처럼 이렇게 다양하다는 말입니다. 교도소를 우리가 다양하게 부르듯이 다양하게 부릅니다.

유년 시절의 배움과 성장: 지수초등학교와 서당 교육

중요한 것은 다리 밑에서 태어나 진주 지수면으로 갔습니다. 지수면 가서 지수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지수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당에서 천자문을 배웠습니다. 천자문 배우고 동몽선습을 배웠습니다. 그다음에 경몽요결을 배웠습니다. 계몽편도 배웠습니다. 명심보감, 소학도 배웠습니다. 이 사이에 이천자문이 있습니다. 이 천자문을 떼야 합니다. 명심보감부터 올라가 소학, 대학, 쭉 올라갑니다. 이것을 다 지수초등학교 다니면서 다 배웠습니다. 여기에 사서삼경을 지수초등학교 때 싹 다 뗐습니다. 마지막에 천자문 일람도 배웠습니다. 천자문 일람도 마지막에 뗐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학,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주역 싹 나갔습니다. 이것을 초등학교 때 다 뗐습니다. 경몽요결의 저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율곡 이이 선생이 쓴 책입니다. 경몽요결은 한국에서 한문 배우는 사람은 어릴 때 다 떼야 합니다. 경몽요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구사도, 시사명, 청산, 은사입니다. 말을 할 때는, 남을 바라볼 때는 밝게 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경몽요결에 나오는 것입니다. 구사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아홉 번 생각합니다. 사도라고 있었습니다. 이 사도를 율곡이 만든 것입니다. 경몽요결에 나옵니다. 우리가 남을 바라볼 때는 무조건 밝게 보라고 했습니다. 시사명, 말할 때는 은필사충, 말은 반드시 중심 있게 하라고 했습니다. 원필사충입니다. 들을 때는 반드시 청명하게 들으라고 했습니다. 성필사총입니다. 이것이 전부 구사도, 경몽요결에 들어가면 나옵니다. 어릴 때 경몽요결을 배운 사람과 안 배운 사람의 행동이 다릅니다. 말을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 욕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 반드시 필자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도구필, 사도야스토라 이런 데 나옵니다. 계몽선습이나 경몽요결이나, 계몽편에도 나옵니다. 이것은 율곡 선생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어릴 때 이런 것을 공부한 아이와 안 한 아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렇게 제가 성장했습니다. 전인적인 교육을 받아서 지수초등학교, 우리나라에서 제일 알아주는 학교입니다. 1회 졸업생이 이병철, 효성의 조재, 우리나라 재벌이 187명 나왔습니다. 제가 시골 초등학교에 38회로 들어갔습니다. 이병철 회장보다 40살이 적습니다. 우리 할아버지도 거기 나오고, 우리 아버지도 거기 나오고, 다 지수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서울 중곡동 다리 밑에서 태어난 제가 이곳에 갔습니다. 가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강훈련을 받았습니다. 농사 짓고, 새끼줄 꼬고, 똥 치고, 똥장 지고 다니고 어린 나이에 그랬으니 제가 키가 컸습니다. 1m 74도 큰 키입니다. 진짜 많이 큰 것입니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앉은 사람은 거의 1m 60입니다. 제 친구들은 전부 시골 아이들이 1m 80 정도 된 애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양반 동네니까 잘 먹어서 우리나라처럼 그렇게 못 먹은 동네가 아닙니다. 우리 승조도 1m 83 정도 됩니다. 전부 키가 큽니다. 저만 지게를 져서 키가 작았습니다. 제가 동몽선습이나 천자문이나 계몽편이나 명심보감, 소학, 대학 이런 것을 쭉 공부하면서 무슨 살이를 한 것입니까? 얼마나 고달팠는지 말도 못 합니다. 지게 지고 가다가 책 보다가 자빠지고 넘어지고, 말도 못 하게 다쳤습니다. 저는 책을 보면서 길을 다닌 유일한 사람입니다. 나무 지어 오다가 산에서 내려오면서도 책을 보고 공부를 하면서 가야 했습니다. 아침에 서당 선생한테 가서 안 하면 터지고, 또 학교 숙제 안 하면 또 선생한테 가서, 숙제해야지, 한문 숙제해야지, 일해야지, 말도 못 합니다. 만화 그려서 팔아야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노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성장해서 정말 기가 막힙니다. 말이 안 나옵니다. 여러분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진주 지수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우리 반 300명, 그때 졸업반이 300명이었습니다. 한 반에 60명, 80명 이랬는데, 여러 개 반이어서 많았습니다. 중학교 안 보내준 사람이 저 하나였습니다. 전부 다 중학교 가는데 저만 안 갔습니다. 서당 졸업하고 나서, 서당하고 초등학교 졸업이 비슷하게 했습니다. 서당 선생이 돌아가시는 날 제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시골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소가 또 죽었습니다. 서당 선생 죽고, 갑자기 소가 도끼 맞아서 죽고, 선생이 떠나 버리고, 이것이 저를 그곳을 떠나게 만들었습니다. 제가 계획적으로 떠난 것이 아니라 환경이 그렇게 되어 서울로 온 것입니다. 동네 중학교 300명이 돈을 모아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 돈을 어떻게 주었냐면, 신문지에 싸서 주었습니다. 동전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지금처럼 만 원짜리가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문지에 싸서 주는데, 제가 풀 베다가 들에서 풀 베는데, 그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이 20리 걸어갔습니다. 20리 걸어가니까 아침 일찍 갔습니다. 그 아이들이 중학교가 우리에게서 20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가는 길에 저를 본 것입니다. 저 주려고 모아 놓았습니다. 저를 보러 와서 제가 풀 베고 있는데 저에게 주는 것입니다. 그 아이들이 울면서 주는데 제가 안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무조건 서울로 가서 공부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이 주니 떼도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을 받아 가지고 지게를 들에다가 세워 놓고, 지 작대기로 고아 놓고 다 두고 가는데, 산에 가서 쳐다보니까 지게가 그렇게 가슴이 아파 눈물이 났습니다. 지게가 안 보였습니다. 그중에 우리 어머니 산소 가서 하룻밤 자고 서울로 간 것입니다. 고개를 넘어가는데 우리 동네가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눈물이 나서 눈이 얼마나 부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때 제가 서울을 가봤습니까? 기차를 타봤습니까? 우리 동네 밖에는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서울에서 왔지만 어릴 때 온 것이니, 그때부터 객지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밥을 먹어 본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전부 주워 먹고 얻어 먹고, 수박 껍질 얻어 먹고 그랬습니다.

서울에서의 고난과 배움: 구두닦이, 금반지 공장, 그리고 종교 탐구

진주에서 서울에 도착했습니다. 기차 안에서 딸기가 들어와서 배고파서 딸기를 먹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가져온 것인데 맛있게 먹었습니다. 생각하면 날강도였습니다. 배고픈 사람 앞에 코 앞에 딸기 바구니가 들어왔습니다. 그 딸기가 덜 익은 것이 많았습니다. 딸기가 새 딸기 났을 때였나 봅니다. 초록색 딸기도 있었습니다. 빨간 것도 있는데 초록색도 있고, 처음 딴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그렇게 맛있는 것이었습니다. 딸기 없어지는 것을 아주머니는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저도 양심껏 먹었습니다. 많이 먹으면 안 되니 야금야금 주워 먹었습니다. 목도 마른데 제 앞에 전부 신발이었습니다. 누워 있으니 그 사람들 신발이 옛날 신발이라 깨끗하지 않았습니다. 그 신발이 여러 켤레가 있었습니다. 기차 위에 앉은 사람들 밑에 기어 들어갔으니 말입니다. 제 몸이 거기 들어갈 수 있는 것이 기가 막힙니다. 작으니까 말입니다. 맨 그 들어가서 누워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올라오는데 그 먼지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차표 검사하는 사람이 올 때는 똑똑 소리가 났습니다. 저 서부터 똑딱 똑딱 이렇게 잘랐습니다. 그 소리가 나는데 시골에서 왔으니 겁이 얼마나 났는지, 누워 있는데 중간에 끄집어 내릴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가 옆으로 싹 지나갔습니다. 아무도 몰랐습니다. 귀신도 몰랐습니다. 제가 불법을 해 본 것이 그것이 처음입니다. 국가의 열차를 무임승차로 탄 것입니다. 나라의 열차를 말입니다.

서울에 와서 구두닦이를 했습니다. 염교 시장에서 배추 사가는 아주머니들, 리어카를 밀어주면 500원을 주었습니다. 동전 하나를 주는 것입니다. 아현동 고개 같은 곳은 리어카가 못 올라갔습니다. 당시 서울이 전부 그랬습니다. 길이 안 좋았습니다. 밑에서 밀어줘야 했습니다. 밀어주면 500원을 주었습니다. 구루마 아저씨들은 미는 사람이 없으면 구루마를 못 했습니다. 야채를 싣고 못 갔습니다. 동네마다 언덕이 있었습니다. 맨날 뒤에 밀고 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배추 산 아주머니가 따라왔습니다. 지금처럼 차가 다니고 이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밀어주고, 구두 닦고, 엑스트라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화계사에 갔습니다. 여기서 직장이 30번 바뀌었습니다. 자동차 조수, 버스 운전도 했습니다. 15살 때 버스 운전 사고도 냈습니다. 자동차 버스 안에서 자다가 불이 났습니다. 금반지 만드는 공장에 가서 코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말도 못 합니다. 이런 것을 하다가 화계사에 가서 팔만대장경을 보았습니다. 그냥 보니까 다 떼 버렸습니다. 3년간 대장경을 다 암기했습니다. 한번 보면 다 배웠습니다. 대장경 나오는 것을 지금 외우고 있습니다.

여기서 스님, 숭산 스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 최고 주먹이었습니다. 대체성을 내쫓고 화계사, 해인사 같은 절을 다 찾은 사람입니다. 그 숭산 스님이 37회 미국으로 간다고 하면서 계사를 남에게 줘 버리고 자신은 빈털터리로 일본으로 가 미국으로 가는데 저에게 “야, 너는 내가 볼 때 중이 되면 안 돼. 너는 해야 될 일이 있어. 너 나하고 같이 나가자.”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숭산 스님을 따라 나왔습니다. 숭산 스님은 개나리 보따리 하나 딱 지고 미국 가는데 일본을 거쳐 간다고 했습니다. 부산에 가서 배를 타야 한다고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는데 저에게 “빠이빠이, 살아서는 자기를 못 볼 거다. 이제 경 너는 공부해라. 너는 절에 있지 마라. 그 대신에 당분간은 청용사 절에 가서 공부해라. 거기는 스님이 한 분 있으니 공부하기 좋다. 일이 없으니까.”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절을 찾다가 못 찾았습니다. 밤에 내려오는데 여자 다섯 명이 있었는데 전부 집사였습니다. 내수동 교회 집사였습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에 내수동 교회가 있습니다. 종로 교회하고 무슨 교회하고 두 개가 있는데 내수동 교회 집사들이 제 가방을 뺏어 버렸습니다. “그 우상 있는데 그거 왜 가냐?”고 했습니다.

기독교 십계명의 첫 번째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입니다. 두 번째는 “우상 섬기지 마라”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 망령되이 일컫지 마라”입니다. 네 번째는 “안식일 지켜라”입니다. 다섯 번째는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여섯 번째는 “살인하지 마라”입니다. 일곱 번째는 “간음하지 마라”입니다. 여덟 번째는 “도둑질하지 마라”입니다. 아홉 번째는 “거짓말하지 마라”입니다. 열 번째는 “내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마라”입니다. 불교는 이것과 다릅니다. 불교는 이런 식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모든 계명은 이런 것이 없어도 됩니다. 항상 첫 번째 것, 이것을 안 지키면 다른 것을 다 지켜도 소용이 없습니다. 저것이 뱀 대가리입니다. 우리의 머리와 같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서 이런 것을 해 봐야 아무 소용 없습니다. 지켜 봐야 소용 없습니다. 언제나 제1계명만 지키면 끝납니다. 제 말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신인 아닌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천국 간다고 하면 그것이 이해가 갑니까? 계명이 무엇입니까? 허경영을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계명이 사람의 머리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저를 섬기는 것이 신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계명을 어기면 다른 계명은 자동으로 무너져 버립니다. 그것을 알아야 합니다. 열 가지 몰라도 됩니다. 한 가지만 명심해서 지키면 됩니다. 하나님이 절대자가 신이 있다, 그것 하나만 딱, 그것이 여호와다, 그것이 신인이다, 이렇게 딱 믿으면 그 외의 것은 간음을 하든, 불효를 하든, 남의 집을 뺏어 가든, 강도를 하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법전을 공부할 때, 경전을 공부할 때는 단순합니다. 복잡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무지하게 어려서 저는 그것을 단순하게 접근해서 다 떼 버렸습니다. 아주 희한하게 합니다. 불교 경전도 딱 들어가니까 십계명이 있습니다.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양설, 아고, 탐진치, 이것이 십계명입니다. 살생을 해 버리면 나머지 다 지켜봐야 소용 없습니다. 사람을 가서 죽여 버리면, 자신이 천 없는 좋은 일을 했어도, 계명을 다 지켜도 소용이 없습니다. 살생 계명 하나를 지키면 다른 것은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을 죽인 사람의 죄가 금방 없어질까요? 살생이, 불교도 살생이 죄와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는 이 죄가 동일 선상에 있어야 합니다. 불교는 제일 강조하는 것이 살생, 기독교는 제일 강조하는 것이 신입니다. 그 1계명을 가지고 제가 어릴 때 비교를 했습니다.

화계사에서 스님을 서울역에 보내주고 제가 절을 찾았는데, 절을 못 찾다가 여자 다섯 명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내수동 교회, 내수동 교회 목사 양아들로 들어갔습니다. 홍근석 목사 아들로 들어갔습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목사였습니다. 한쪽 귀가 먹었습니다. 공산군한테 맞아 가지고 말입니다. 홍근석 목사님은 부인도 없고 자식도 없고 혼자였는데 제가 그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버지 부르고 담요 한 장 가지고 둘이서 잤습니다. 절대 신도가 갖다 줘도 이불을 안 받았습니다. 자신이 북한에서 가져온 담요 그것만 덮고 평생 살다가 돌아가신 분입니다. 굉장히 무서운 사람 밑에 있었습니다. 밤마다 잠자는 것이 걱정스러웠습니다. 붙어서 자면 담요가 어떤 때는 목사님이 다 가져가 버리고 어떤 때는 제가 가져와 버리고 정신이 없으니 이불 하나 가지고 둘이서 붙어서 자는데 영 불편했습니다. 그래도 제가 거기서 주일반 아이들을 가르쳤습니다. 찬양 가르치고 성경 가르치고 그랬습니다. 여기서 성경을 다 뗐습니다. 완전히 다 기독교 성경을 다 독파했습니다. 유교 서적, 불교 서적, 기독교 서적 다 뗐습니다. 완전 독파했습니다. 아이들 가르쳐야 하니 파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목사님 집에서 나와 고등학교 2학년 지나고 3학년 때 공부 열심히 해야 하는데 맨날 교회 아이들이 일이 산더미 같았습니다. 내수동 교회에서 홍제동 가서 아이들 데리고 북을 치는데 북이 제 키만 했습니다. 그것을 앞에다 배에다 매고 저는 왜 짊어지는 것이 그렇게 많았는지, 절에 가면 지고 물 지고 와야 했습니다. 나무 해야 했습니다. 맨날 지고 다녔습니다. 계사는 지고 다니는 것이 없으면 안 됩니다. 우물이 저기 있다니까 지금 쥐 털면 나오는 그런 데가 아닙니다. 가서 물을 길어 가지고 지고 와서 부어서 밥을 해야 했습니다.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허리가 무지하게 눌렸습니다. 어린 아이인데 말입니다. 그런데다가 또 이 목사님한테 가니까 맨날 토요일마다 북을 이만한 놈을 갖다가 어깨에 지는데 무거웠습니다. 장단을 맞춰야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을 인솔해 가는데 앞이 안 보였습니다. 북이 이렇게 가리니까, 제가 아이였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지만 좀 어렸습니다. 길바닥이 안 보이니까 치고 산을 내려가고 올라갔습니다. 성터에 올라가서 글을 썼습니다. 성에서 보면 동네가 판자촌 다 보였습니다. 거기서 북을 둥둥 치면 아이들이 다 올라왔습니다. 보통 100명 정도 올라왔습니다.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국수 먹으러 가자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가면 국수를 공짜로 주었습니다. 국수에 호박을 썰어 넣는데, 그 국수를 기가 막히게 맛있게 만들었습니다. 그 국수를 먹으면 아이들이 가버렸습니다. 그것을 먹으러 가야 하니 동네 엄마들이 빨리 가서 국수 먹고 오라고 하면 이제 그 100명을 인솔해 가지고 오는데, 오면서 북을 장단 맞추어 예수가 우리는 부을 소리, 그 음성 부드러워, 문 앞에 나와, 노래가 있었습니다. 오라 오라 뭐 이렇게 막 그냥 방학시 말고라 뭐 이러다 쾅쾅 치면서 가면 아이들이 따라 불렀습니다. 그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찬송가를 수십 편 부르고 오는 것입니다. 내수동 교회 와서 국수를 딱 주면 아이들이 기가 막히게 먹었습니다. 그때 가난했으니까 말입니다. 그것을 먹고 설교하고 제가 설교해 줘야 했습니다. 설교하고, 밥 해 주면 끝나는 것입니다. 공부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간이 몽땅 그냥 공부하는 시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토요일은 공부를 못 했습니다.

제가 딱 해보다가 한 1년 반 정도 하다가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네 밥은 네가 벌어 먹어야 되는데, 또 교회 일은 서비스 하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금반지 공장에 넣어주었습니다. 목사님 아는 사람이 금반지 공장 사장이었습니다. 서울역에 있었습니다. 들어갔는데 그냥 금 녹이는 것을 제가 담당했습니다. 청산가루를 하얀 가루였습니다. 청산가루를 금을 넣을 때, 금을 녹일 때 자꾸 같은 숟가락으로 넣는데, 그것이 코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펄펄, 코피가 매일 흘리니 나중에는 못 하겠다고 했습니다. 금반지 공장은 창문이 없었습니다. 밤에 딱 잠그면 금고였습니다. 그 안에 종업원들이 낮에 숨을 쉬는데도 숨이 가빴습니다. 불, 금을 녹이니 불을 자꾸 떼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창문은 도둑놈 때문에 하나도 없었습니다. 들어가면 금덩이를 저울에 다, 언제나 금덩이가 창고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저울 위에 있었습니다. 딱딱 떼어갈 때 무게를 밑에 기록해야 했습니다. 2km 뗐다, 1km 뗐다. 금이 지금처럼 이렇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원석의 금이었습니다. 그것을 떼내어 쓴다고 했습니다. 도끼 가져가 보십시오. 이만한 금인데, 금반지 수출하는 공장이었습니다. 제가 거기서 금반지를 얼마나 금을 녹였겠습니까? 합금을 해야 했습니다. 신주 달아서 넣고 넣고 18k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청산가리 넣으면 새하얀 연기가 나오면서 검은 것이 올라왔습니다. 그것이 때였습니다. 불순물이었습니다. 그것을 제거하면 금이 색깔이 달라졌습니다. 금을 제련하는 것을 거기서 제가 하다가 코피가 나서 숨을 못 쉬겠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교실에서도 코피가 나오고 큰일 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목사님, 저는 이제 목사님 아들, 그만하고 저는 저 홍제동 꼭대기 가서 천막 치고 거기서 공부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홍제동 꼭대기 올라가서 천막 치고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제가 어떤 사람 다리 다치고 부러지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어떤 좀 넉넉한 사람한테 갔습니다. 그런 것도 다 사람들이 못하게 하니 안 합니다. 좀 넉넉한 사람한테 가서 제가 좀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때 죽다가 살았습니다. 복막염이 터졌습니다. 영하 30도에서 공부하는데 말도 못 합니다. 밤마다 쥐가 와서 코를 물어 뜯어 제가 코가 몇 번 떨어졌습니다. 코 사이를 확 집었습니다. 쥐가 잡아 당겼습니다. 자다가 눈을 뜨니까 쥐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코를 딱 물었는데 이빨이 이렇게 관통이 되었습니다. 이빨이 이쪽 코에서 이쪽 코로 물고 잡아 당기는 것입니다. 제가 잠을 딱 깨서 보니까 코를 잡아 당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때리면 코가 날아갈 것 같아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쥐를 살살 건드렸더니 도망갔습니다. 그래서 밑에가 찢어졌습니다. 고쳐졌지만 피가 철철철 흘렀습니다. 들쥐가 옮긴 병이 제가 아마 무슨 문제가 생겼던 것입니다. 배가 불러 올라왔습니다. 맹장이 터진 것입니다. 망령이 된 것입니다. 그 바람에 제가 돈 많은 사람 집으로 가게 된 것입니다. 저승으로 가려다가 백에서 오지 마라, 더 해라, 알았죠? 노루가 제 천막 안에 돌아다니고 제 배를 밟고 다니는 것입니다. 눈을 딱 뜨니까 노루가 추우니까 텐트 안에 돌아서 제가 있는 줄 모르는 것입니다. 제가 누구 있는지, 저를 밟고 다녔습니다. 그런 텐트 생활을 겨울에 영하 30도 이럴 때 제가 했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호떡은 하루에 하나, 하루에 호떡 하나로 고등학교 시절에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부잣집에 들어갔습니다. 제가 군, 그 집 제가 거기서 뭐, 그 사람들 도움으로 누구라는 이야기 저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사람들 도움으로 제가 이제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공부를 했습니다.

군대 생활과 월남전 참전: 보안부대와 법무부 검사 서기

그다음에 제가 군대 갔습니다. 논산 훈련소에 갔습니다. 훈련소 가서 제일 먼저 발령받은 곳이 옥인동, 청와대 옆에 옥인동 방첩대 발령을 받았습니다. 지금 보안사령부입니다. 방첩대에 딱 갔는데 그날 보안사령관으로, 보안사령부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강창성 씨가 방첩대장이었는데 갑자기 이름을 보안사령부로 바꿔 버렸습니다. 김재규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강창성 씨가 물러나고 김재규가 본사, 딱 그 밑에 제가 있었습니다. 거기서 이제 머리는 안 깎고 사복 입고, 권총 차고, 군대 생활 시작한 것입니다. 의정부, 여기 의정부 검문소에 106 보안 부대로, 청와대 보안 부대 있다가, 방첩대 있다가 106 보안 부대로, 육군단 보안 부대, 의정부 검문소, 거기에 있다가 제가 다시 강원도로, 춘천 쪽에 갔다가 다시 광주, 대구로 갔다가, 대구에 있다가 다시 광주, 전남 광주 34단 가서 근무하다가, 보안부대원이니까 여기저기 돌아다녔습니다. 1군, 2군을 마음대로 다녔습니다. 광주에서 다시 춘천으로 갔다가, 춘천에서 월남으로 간 것입니다. 굉장히 많이 다녔습니다.

월남에 가서, 월남에서 검사, 백마 법무부 검사 서기를 했습니다. 법무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수사를 신인이 다 한 것입니다. 법무부 검사 서기였습니다. 그때 제 검사, 담당 검사가 육군대위였습니다. 장동환 검사입니다. 그 사람이 제 강의장에 왔었습니다. 얼마 전에 말입니다. 그 사람이 육군 법무감, 별 몇 개 달고 육군 법무감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여기 대법원장이, 육군에 법무감이 되었습니다. 제가 강의하는데 온 것입니다. “어이고, 허경영 씨”라고 하는데 보니까 몇십 년 전에 월남에서 제가 검사로 모시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제 병력 표입니다. 보십시오. 수용 연대, 논산에 29연대 들어갔습니다. 소리 키워 보십시오. 논산 29연대입니다. 29라고 적혀 있습니다. 1971년입니다. 2월 15일 맞습니다. 그다음 이것은 무엇입니까? 전입이, 글씨를 좀 작게 보여 주십시오. 수용 연대, 72년 4월 6일, 이것이 근거입니다. 여기 보안병 되어 있습니다. 보안병 되어 있습니다. 제 무슨, 이것이 보안병 간 것입니다. 보안 학교 백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청와대 거기서, 청와대 거기서 보안 학교가 이제 선행 쪽에 있습니다. 보안학 백기 교육을 받았습니다. 여기 보안병 나옵니다. 제2 훈련소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여기 보면 보안 학교 되어 있습니다. 보안사입니다. 위에는 보안사로 갔다는 것입니다. 71년 4월 2일 날 청와대에, 청와대 옆에 있는 보안대 제가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때가 방서 보안대로 바뀌었을 때입니다. 보안사 글자 보입니까? 그다음에 보안 학교 보입니까? 학교로 간 것입니다. 보안사에 가서 청와대 거기서, 청와대에서 근무하다가 바로 며칠 있다가 보안 학교로 갔습니다. 여기서 재벌 2세들을 몇십 명을 만났습니다. 우리나라 부잣집 아들들이 보안대에 많이 와 있었습니다. 크라운, 제가 회장, 지금 크라운, 해태크라운 회장, 영달 동생 이윤영, 우기야, 윤영욱이가 제 보안학회 동기입니다. 백기입니다. 거기서 부잣집 아들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만났습니다. 전부 부잣집 아들 아니면 거기로 올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그랬습니다. 여기서 논산 훈련소 몇천 명 중에서 네 명이 보안 학교로 갔습니다. 백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보안학 병 기초반 백기 교육, 106 보안부대의 정부입니다. 106 보안 부대는 포천 육군단을 말합니다. 106 보안 부대 7년 5월 11일 날 명 받았습니다. 106 보안 부대로 가고, 그다음에 205 보충대로 또 갔습니다. 대구입니다. 205 보충대 되어 있습니다. 대구입니다. 거기 있다가 갑자기 저 대구로 또, 그다음에 본부, 무슨 무슨 부대, 이렇게 또 옮겼습니다. 또 전교사 본부로, 전교사 광주입니다. 강하면 교, 정교사가 있습니다. 교육받는 곳입니다. 전교 사령부, 전교사 본부대로 갔습니다. 그다음에 제7 보안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엄청, 그다음에 여기 올려 보십시오. 여기 72년에 무슨 구사단입니다. 구사단, 구자입니다. 사단으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구사단 보안, 이렇게 나옵니다. 본부 중대로 발령받았습니다. 제4단 또 갔습니다. 군인들은 한 군데 가면 있어야 하는데, 저는 몇십 군대로 옮겨 다녔습니다. 사단에 또 어디냐면 저기 산입니다. 일산, 일사단입니다. 문산입니다. 박 대통령이 사단장을 옛날에 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12연대장을 올림픽 한 사람, 전두환이가 여기 일사단 산자 하고, 그다음 노태우 또 하고, 그다음에 12연대 연대로 왔습니다. 이때 연대장이 올림픽 한 사람, 박세직, 박세직 연대장이었습니다. 제가 박세직 연대장을 만났습니다. 12연대 발령을 받아서 갔더니 박세직 연대장이 저를 맞이해 주었습니다. 연대장이었습니다. 박세직 연대장이 나중에 전두환 대통령 밑에서 올림픽, 노태우 밑에서 총 책임자를 했습니다. 그 사람 한다고 했습니다. 그다음에 제2중대 이렇게 해서 사단 외무도, 중대본부 이렇게 해서 계속 옮겼습니다. 73년 2월 27일 저녁일 것입니다. 제대했습니다. 월남 관계가 여기 나타나야 하는데, 1사단 본부중대, 9사단 이것이 월남입니다. 9사단 보입니까? 9사단 부로 72년에 나왔습니다. 보안 사단에 월남에 간 것입니다. 파월입니다. 9사단 가서 1년 반 있다가 온 것입니다. 72년인데, 73년 4월이 되었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사단. 그다음에 사단 12대 때 제대할 때입니다. 군대를 월남사지, 전후방을 다 돌아다녔습니다. 제가 일반 사람이 이 보안 부대로 갈 수 있습니까? 절대 못 갑니다. 아무리 백이 좋아도 보안대 못 들어갑니다. 양복 입고 권총 차고 다니는 거기에 아무나 들어가겠습니까? 뭔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이야기는 해 봐야 안 믿을 것입니다. 안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 사람 옆에 있었냐고 하는데 제가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런 말은 안 합니다. 그러나 제 기록은 그렇게 나옵니다. 군대 생활, 월남에서 얼마나 많은 장교를 제가 이 월남에 기고할 때 제 사진입니다. 보십시오. 동족 상잔, 강대국 대리 전쟁을 직접 체험한 뒤 휴전이 된 몇 개월 뒤 마지막 철수 병력으로 허경영 대통령이 73년 2월 월남에 나타난 비행장에서 고고로 철수하기 위해 비행기에 오르고 있습니다. 제 얼굴 맞습니다. 비행기 탈 때는 사복이 안 됩니다. 군장을 완전 군장을 해야 하고, 배낭 메고, 전투 태세 전부 총 들고 다 비행기를 타는 것입니다. 이 비행기를 탈 때 우리는 완전 군장을 철모를 쓰고 완전 군장 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월드 레인데 딱 타니까 미국 스튜어디스가 미스코리아 같이 생겼습니다. 그때는 미국 비행기인데 전세 비행기인데 500명 타는 비행기에 우리가 500명이 탔습니다. 사단장도 타고 다 탔습니다. 그런데 이 비행기를 기다리는 것이 이틀을 기다렸습니다. 이틀 만에 이것이 나타난 것입니다. 전쟁 중이라 비행기가 금방 안 오더라고 했습니다. 활주로에 드러누워 가지고, 춥지 않으니까 들어가 이틀 밤을 잤습니다. 거기서 군대 AI 그 저 레이션 먹고 자는 것입니다. 전체 군인이 거기서 자고 앉아 있는데 북한 비행기가 와서 “대한민국의 청년 장병 여러분, 왜 남의 나라 와서 이렇게 싸우고 있습니까? 지금 빨리 돌아가지 않으면 여러분 고국에 어머니 아버지도 영원히 못 보게 된다”고 했습니다. 계속 한국 여자인데 어떻게 그렇게 말을 잘하는지 모릅니다. 우리 군인들이 다 울었습니다. 활주로에 누워가 이러면 비행기는 언제 오나 이러고 오는데 그 비행기가 낮게 떴습니다. 낮게 뜨면서 마이크로 우리를 정신적으로 이것을 하는데 무엇 때문에 원수 여러분이 싸우냐, 여러분 부모의 형장에 있는 고로 빨리 돌아가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마음이 약해져서 날려고 했습니다. 참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이 공항 주변에 전신의 배도한 깃발이, 빨간 깃발 빼고 깃발이 다 걸려 있었습니다. 월남 정부 편드는 사람 하나도 없고 전부 빨갱이였습니다. 전부 배도였습니다. 활주로에 누워 있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다들 죽느냐 사느냐, 이 비행기가 마지막 오느냐, 딱 오니까 대단했습니다. 이 비행기를 올라 타니까 거기는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재밌습니다.

아이들은 사진 찍을 생각도 없었습니다. 저 혼자만이 사진을 남겼습니다. 아이들은 보안 부대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은 힘이 없으니 그냥 타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찍으라고 하니 찍고, 백마부대 장교들이 전쟁터에서 명령 불복, 헬리콥터 뛰어내리면 다 죽으니까, 소대장이 철수해라, 철수해라, 막 이랬습니다. “너 지금 전진 안 하고 너 뭐 하고 있어? 아, 지금 전진, 전진 지금 못 하겠습니다. 애들이 다 죽습니다.”라고 연대장 말을 안 들었습니다. 대대장 말을 안 들었습니다. 이것들이 오는데 수십 명이 잡혔습니다. 명령 불복이었습니다. 부하가 헬리콥터도 뛰어내리자마자 그 자리에서 죽어 버렸습니다. 기관총을 쏘니 뛰어내리자마자 죽는데 뛰어내리라고 하니, 아이들이 헬리콥터에서 못 뛰어내리는 것입니다. 밑에서 내려가자마자 비명 지르며 죽었습니다. 기 한 3, 3미터에서 보였습니다. 중대장, 소대장이 발로 확 차니 뚝 떨어지는데, 다 다치고 죽였습니다. 그것을 빨리빨리 내려 보내지 않는다고 대대장이 “야, 이 자식아, 너 지금 명령 불복이야. 빨리 내려보내, 죽든 말든.”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조수를 썼습니다. 제가 다 썼습니다. 검사 서기니까 말입니다. 그것을 다 쓰는데 전부 봐주었습니다. 명령 불복이면 징역 사형 7년 이상입니다. 그런데 전부 교도소 안 가게 했습니다. 명령 불복한 장교가 전부 육사 나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육사 나왔으니 전투장 가야 진급이 빠릅니다. 월남을 차지해서 온 군인들이, 남의 집에 귀한 자식들을 전과자 만들면 되겠습니까? 우리 검사님이 저를 되게 좋아하는 이유가 “검사님, 그냥 좀 봐줍시다. 이거 전부 우리 육사 나온 장교들 무슨 전과자 만드는 겁니까? 월남이.” “저 자식이 죽는데, 저 병사가 막 죽는데, 어떻게 명령대로 저는 없으니까 전진해라, 투입해라, 이러는데 안 되는 거야.” 그래서 제가 좋은 일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 강의장에 그 검사님이 온 것입니다. 별 세 개 육군 중장이었습니다. 육군 헌병감, 육군 법무감입니다. 육군에서는 법적인 것은 제일 높은 사람, 권 법무감입니다. 민간으로 치면 대법원장입니다. 되어서 저에게 온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봤습니다. 종로 강의장에 왔습니다. 그분이 장동한 중장입니다. 육군 법무감입니다. 그 사람은 사회에 가서 변호사도 안 하고 법관 안 하고 그냥 군대 생활을 해 버린 것입니다. 제 군대 양력 보니까 제가 거기 근무한 것이 확실히 있습니다. 그런데 저 보고 전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전부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제7보안, 구사단 이것이 월남입니다. 72년 5월 16일입니다. 여기서 나와서 1사단 갔습니다. 1사단 12연대 2중대입니다. 이렇게 해서 제가 나중에 제대하는 것입니다. 군대 생활에 보면 보안이라고 해 놓았습니다. 595 이것이 보안 학교로 병 기초반 백기, 보안 학교 백기입니다. 9기까지 보안 학교가 홍릉에 있었습니다. 백기는 서소문, 서능입니다. 학교를 옮겨 놓으니 일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 한 학교 기생이 고생 많았습니다. 지금 제 강의 듣는 사람들이 제 보안 학교 시절을 보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제 군 기록입니다.

봉사 활동과 사회 참여: 농어촌 봉사, 불교 봉사, 기독교 봉사

제일 처음에 제가 두 살 때 그런 무리 없이 시작했습니다. 그때 제일 처음에 한 것이 농어촌 봉사였습니다. 한국 농어촌 봉사 대장, 이것을 제가 했습니다. 봉사대, 봉사대, 농어촌 봉사대를 했는데 대학생들 데려와서 시골에 뭐 심게 해주고 그랬습니다. 이것을 제가 오래 했습니다. 이것을 하다가 우산 돌리는 것, 우산 봉사, 이것은 제가 여태 우산 봉사가 대한 불우자 봉사회장이었습니다. 봉사회장인데 전국 대학생들이 제 것이었습니다. 전국적으로 했습니다. 대한 불우자 봉사회장, 그다음에 한국 농어촌 봉사 대장을 때 기록 올려 보십시오. 제가 뭘 했는지 사람들이 잘 모릅니다. 제일 처음 한 것이 농촌, 농번기에 대학생들 모아 가서 일하는 것, 그것을 제가 처음에 했습니다. 보십시오. 불기 227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제가 여의도 보십시오. 여의도 불교 신자 100만 명 모인 가운데 단상에 올라가 있습니다. 단상 올라가 있습니다. 이것이 찬타님입니다. 스리랑카 종정 불교, 이것이 게제은 원장, 이것이 저입니다. 제가 젊을 때입니다. 이 사진 좀 키워 보십시오. 이것이 저입니다. 이 여자가 가수 송춘이입니다. 이 사람은 불자 봉사 회장입니다. 이렇게 보면 군무부, 군종 단장, 군대 불교 스님들이 군대 파견된 것인데, 이 사람이 제일 높습니다. 이것이 총무원장, 이것이 다 불교의 인사들이 모임 하는데 제가 여기서 있습니다. 옷도 예쁩니다. 잘 나갔습니다. 제가 그 당시에는 사람들이, 제가 어릴 때 우리 시골에 극장이 가설 극장이었는데, 돈이 없으니까 못 들어갔습니다. 아이들이 30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영화는 시작했고 아무도 없고 지키는 사람도 앉아 있는 꼬마들 30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30명이 누구를 보나, 그 사람 얼굴만 쳐다보면 절대 안 늦습니다. 그 사람들이 그러면 그 사람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면 저 보고 저는 번번이 그랬습니다. 제 눈에서 눈물이 날 듯 말 듯, 그렇게 영롱하게 쳐다보니 “너, 이리 나와, 너, 너 이름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저 허경영”이라고 인터뷰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못 들어갔습니다. 제가 그때 아이들도 좀 넣어 주세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 머리가 어릴 때는 그것이 우리가 그, 저를 넣어 주는 것도 미안한데 아이들 같이 좀 넣어 주세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혼자 쏙 들어갔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 기도가 매번 사람이 바뀌어 올 때마다, 올 때마다 저를 보면 넣어 주었습니다. 이상하게 텔레파시를 보냈습니다. 제가 아주 불쌍하게 쳐다봤습니다. 마음이 통해 “야, 너 이리 좀 나와”라고 했습니다. 제 옷이 제일 시집 분했습니다. 제 옷이 제일 쉬웠습니다. 부모가 옷을 바꿔 입혀 주는 것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저를 딱 지적해서 넣어 주었습니다. “너 들어가서 영화 보러 들어가.” 이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한국일보 12층입니다. 13층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거울입니다. 한국일보 건물에 미스코리아 뽑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매년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여기서 하는데 여기를 스님들이 행사장으로 썼습니다. 사진 돌려 보십시오. 제가 불교에서 저를 굉장히 봉사를 많이 하니 총무원 경 스님이라고 있습니다. 총무원장이 저에게 불교 봉사를 좀 해달라고 해서 불렀습니다. 불교에서 저를 초청해서 여의도에서 우리나라 큰 스님들도 이 사람 옆에 못 섭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 선 것은 봉사를 많이 했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 저를 데려가려고 자꾸 여기 불렀던 것입니다. 황진경 스님, 스리랑카 스님, 통역관, 제가 서 있습니다. 저쪽은 누가 서 있나 보십시오. 이것이 저이고, 이것은 일본에 갔을 때입니다. 일본에 갔을 때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이것이 여의도 행사장 앞 제일 센터입니다. 센터 제 사진입니다. 그다음에 제가 있습니다. 여기 변미루 스님입니다. 강남에 봉원사 절 조실 스님 변미 스님입니다. 봉원사, 여기에 대한불교 청년회 회장 이 사람입니다. 청년회 회장입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 불교, 이것이 청년들입니다. 이 많은 청년들이 전국 회장들입니다. 여기 전부 명찰 달고 있습니다. 다 명찰을 달았습니다. 저도 명찰을 달았습니다. 대한불교 청년회 제가 고문으로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저를 대하니까 말입니다. 조계종에서 저 보고 봉사 많이 하니 대한불교 봉사 해주라고 해서 불교 봉사회 회장, 그것을 띄워 보십시오. 대한불교 봉사회 회장도 했습니다. 또 올려 보십시오. 이제 이 사진 치우고 불교 봉사회 회장 한정 띄워 보십시오. 제가 봉사 단체는 기독교 봉사회 회장, 불교 봉사회 회장, 오만 곳에서 저를 불렀습니다. 제가 봉사 많이 했습니다. 그다음에 그 글, 그것 왜 안 나옵니까? 글, 그 글, 허청년, 박삼중님입니다. 전국 교도소 재성 후원자, 대한불교 봉사회 회장 허경영 해 놓았습니다. 불교에서 저 보고 봉사하는 회장으로 해 달라고, 조계종 총무원장이 임명장을 주었습니다. 그 임명장도 있으면 비춰 보십시오. 대한불교 조계종 총, 이것이 86년입니다. 저는 기독교, 불교 봉사 운동을 양쪽을 다 뛰었습니다. 종교를 떠나서 모든 종교와 봉사를 했던 것입니다. 보십시오. 노인복지사, 각변 노안으로 시달리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물심양면 도와주시기, 그 뜻을 기리고자 감사장 준다고 되어 있습니다. 제가 농어촌 봉사만 한 것이 아니고 불교 봉사, 기독교 봉사, 제가 물질을 대 가지고 다 봉사를 해 주었습니다. 그다음에 빨리빨리 띄워 보십시오. 하나 가지고 오래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허청년 거 띄우라고 했습니다. 왜 안 나옵니까? 진도가 나가야 합니다. 왜 자꾸 뚱뚱한 것만 띄웁니까? 허청년 거, 이렇게 시간이 걸리면 안 됩니다. 다른 것도 띄워 보십시오. 빨리빨리 띄워야 시간이 없습니다. 대한민국 봉사 대상, 법무부 대한민국 봉사 대상입니다. 이것은 법무부 서울 소년원 유재선입니다. 기하는 평소 비행소년 선도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당원에서 보호하고 있는 원생의 교정 교육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소년, 보호 행정입니다. 이것은 또 청주 법무부 치료 과소 소장입니다. 기하는 불우한 해명을 어린이들을 위하여 물심 장맹, 제가 불교 봉사 해로도 나오고 나옵니다. 이것도 아까 것, 이것은 청주 교도소장입니다. 이것은 누구입니까? 대한 적십자 사장, 회장 김철입니다. 기하는 우리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아름다운 나눔을 했습니다. 또 돌려 보십시오. 아름다운 대한민국 상, 또 돌려 보십시오. 법무부 갱생 위원, 다 띄워 보십시오. 빨리빨리 띄워 보십시오. 법무부 검사장 한 것 어제 띄웠던 것, 이것이 수백 장인데 시간이 없으니 빨리빨리 지워야 합니다. 이것 말고, 이것은 제가 마흔 살 때입니다. 18년 전이니까 22살 때부터입니다. 법무부, 검찰청 명장들 뭐 하고 있습니까? 세팅을 해 놓으라고 했습니다. 세팅을 빨리빨리 말을 해야 제가 알아듣습니다. 다 됐습니까?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다 찾아 놓으라고 했는데, 이것 참, 그것 시리즈로 앞으로 붙여 놓으라고 했습니다. 허청년 거 다 찾았습니까? 이것이 무슨 소리입니까? 전번에 한번 했습니다. 이것 큰일입니다. 진도가 나가야 하니 법무부 그것이라도 하라고 했습니다. 검찰청, 이것 안 되겠습니다. 앞으로 이것 이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시리즈로 나오게 해야 합니다. 이것 찾는데 시간이 그렇게 걸립니까? 이것 찾는데 그렇게 시간이 걸립니까? 다른 것도 빨리빨리 찾으십시오. 지금 줄줄이, 이것 참.

이것은 법무부 갱생 보호위원 했습니다. 농촌 봉사한 것, 그것 빨리 띄우라고 했습니다. 이것 검찰 했습니다. 저는 전부가 봉사였습니다. 젊은 시절이 전부 봉사였습니다. 이것은 법무부 장관이 해 주었습니다. 법무부 보호하라고 했습니다. 법무부 갱생 보호, 비행 소년들입니다. 이것은 교도소 다니면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지방 우리 검찰청, 서울, 서울 지방 검찰청 청장이, 이것 검사장이 준 것입니다. 지방검찰 소년 선도 위원입니다. 상임 선도 의원입니다. 실제 선, 선도 조건부 기소 유예입니다. 허청년 거 띄우라고 했습니다. 허청년 거, 바로 띄우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일이 많습니다. 청년들이, 학생들이 스무 살 미만 미성년자들이 어디 와서, 징역 2년 받으면 제가 2년 동안만 맡아 주면 감옥에 안 갑니다. 기소 선도 조건부 기소 유예입니다. 반드시 기소에서 감옥을 가야 하는데 제가 맡아 주면 감옥 안 갑니다. 검찰에서 그런 아이는 저에게 보내 줍니다. 징역 하는 것보다 허 선생한테 보내주면 제가 구속 안 되게 제가 선도하겠다고 하면 끝납니다. 이것으로 돈을 벌려고 하면 무진장 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냥 무조건 구속이 안 되니까 말입니다. 이런 것은 아무한테나 그 당시 해 줍니까? 그렇습니다. 그때도 제가 이런 것만 한 것이 아니라 농촌 봉사부터 봉사가 수, 불교, 기독교 봉사, 봉사가 수도 없이 많이 했습니다. 제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는지 모릅니다. 빨리 다른 것 띄우라고 했습니다. 이것도 찾으십시오. 지금 제가 이야기할 때, 초청장, 그것입니다. 이것이 부시 대통령 초청장입니다. 부시 대통령 초청, 참 오래되었습니다. 부시 만났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시, 부인이 부시 내외 초청, 그렇게 나옵니다. 금색깔 새끼 보십시오. 이쪽, 이쪽. 이것이 부시고 이것은 부시 부인입니다. 사람 여기 부시, 크, 마이크, 마이크 뒤. 그다음 제껴 보십시오. 이것 제껴 보십시오. 돈 제껴 보십시오. 대통령, 부통령, 또 제껴 보십시오. 대통령 가족, 부통령 가족, 또 제껴 보십시오.

정치적 영향력과 대중적 인기: 허경영 미니홈피 1위

허 프로필입니다. 이것이 로터리 클럽입니다. 한국 로터리 클럽, 로터리 클럽 연수원에서 제가 강의할 것입니다. 제가 강의를 지방에 어마어마하게 다녔습니다. 강의를 말입니다. 이런 단체들 강의. 여기 보면 허경영이 1위입니다. 정치인 홈피 순서에 보면, 허경영 미니홈피가 11, 3159 히트입니다. 박근혜가 1, 15천, 열 배입니다. 이명박 1300, 13천, 제가 몇 배입니까? 배입니다. 정동영, 나경원, 이해창, 이해창 2935입니다. 이 히트수가 이렇게 내려갑니다. 정치인 미니홈피 주소 전체 순위는 나옵니다. 이렇게 나옵니다. 2009년입니다. 제가 정치인들 중에 지지자가 최고 많았습니다. 또 띄워 보십시오. 또 해 보십시오. 또 다른 것, 일괄되게 빨리빨리 넘겨 버리십시오. 이렇게 오래 가지고 있지 마십시오. 다른 사진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허경영 출소하자마자 1위 복귀. 이것은 제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후 처음으로 4위까지 내려왔습니다. 허경영이 복귀하니 1위입니다. 그다음에 박근혜, 나경원, 이명박 4위입니다. 어마어마한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CF 9개가 왔습니다. CF 밀려 가지고, 그런 정도의 인기였습니다. 누가 감당이 안 됩니다. 여기도 9, 박근혜, 이명박, 정동영 이런 순서입니다. 이런 순서로 항상 제껴 보십시오. 또 다른 것 빨리 띄워 보십시오. 이것도 다 계속 1위입니다. 인터넷 홈피 정치 랭킹 순위 나왔습니다. 허경영 1위입니다. 이해창, 박, 정동, 박근혜 쭉 나옵니다. 네이버 키워드인 기업인, 정, 외국인정 순위 베스트 다 나와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체 기업인과 정치인이 네이버에서 인기 키워드 순위가 무엇입니까? 허경영, 허, 박근혜, 이명박, 노무현, 이해찬, 김희선, 박정희, 김대중 이런 순입니다. 이것이 정치인들 인기 순위였습니다. 그 당시에 말입니다. 3천여 명 정치인 중에 1위였습니다. 이런 것이 하나도 가짜가 아니라 어마어마했습니다. 여러분들, 이렇게 보시면 이것이 틀림없는데 아니라고 합니다. 보십시오. 사람이 말입니다. 저 치워 보십시오. 올려 보십시오. 이것이 청풍의 아들입니다. 청풍이, 제가 군대가, 제가 딱 청풍이 저를 딱 보더니, 그 사람이 관상을 잘 봅니다. 저를 딱 보더니 “허선생, 왜요? 우리 아들을 3년만 공짜로 좀 써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그 아들입니다. 3년간을 자기 아들을 좀 데리고 있으라고 했습니다. 월급은 자기가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3년간 청풍이 월급 내고 아들을 저에게 3년을 맡겼습니다. 이때가 제가 대통령 나왔을 때, 이것이 그분 아들입니다. 저 밑에서 3년간 하다가 3년 딱 채우고 돌아간 것입니다. 아버지한테 말입니다. 지금 청풍 삼성 하면 아들이 있습니다. 그 가면 앉아 있다고, 이 친구가. 또 다른 것 털어 보십시오. 이것이 제 공연장이지만 핸드폰입니다. 올려 보십시오. 제 다리 이만큼 올리고 있습니다. 아이들 여기 사진 찍고 있습니다. 이것이 몇만 명입니까? 라인 나웃 할 때 찍은 것입니다. 제 발입니다. 받으십시오. 학생들이 열광합니다. 대학교 연병장에 사람이 저렇게 모이기는 어렵습니다. 몇만 명이 모였습니다. 허경영이가 공연한다고 하니 몇만 명이 모인 것입니다. 이것이 밤 10시입니다. 밤 10시 공연입니다. 대단합니다. 영상 봤습니다. 우리, 이것 털어 보십시오. 다른 것을 빨리 바꿔 보십시오. 허청년 기사 찾았습니까? 아직 못 찾았습니다. 허청년 기사 옛날에 누가 띄웠습니다. 그 입력을 그렇게 하, 이것 제 공연할 때 모습입니다. 좀 더 키워 보십시오. 이것이 저입니다. 아이들 손이 말입니다. 이것이 홍대입니다. 이것은 홍대 공연인데 아이들 손 좀 보십시오. 멋있게 찍었습니다. 저입니다. 이렇게. 이것이 막 칠 때니까 막 머리 틀어지고, 마이클 잭슨을 저리 가라 할 정도였습니다. 아이들이 말입니다. 이 손이 말입니다. 제가 손을 이렇게 하니 아이들 손이 다 올라와 있습니다. 막 이랬습니다. 이 사진 잘 찍었습니다. 공연하는 사진입니다. 이것을 잡을 수가 없는, 이것을 이 손으로 잡으면 난리 나는 것입니다. 멋있습니다. 재밌습니다. 미국 제 사진, 미국에 부시 만나러 갔을 때 사진입니다. 재밌습니다. 이런 사진은 백에 붙여놔도 멋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니, 이렇게.

부시 대통령과의 만남: 국제적 교류

이것이 부시 만날 때, 이것이 파티장입니다. 이 의자가 전부 신주로 되어 있었습니다. 유니언 스테이션입니다. 여기 동상들이 보입니다. 이것이 한 10층 높이, 천장이, 이 천장이 한 10층 높이, 앉아 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입니까? 이기호 대통령 경제수석입니다. 대통령 경제수석입니다. 이것이 저, 이것 부시 파티장입니다. 부시가 와 있습니다. 옆에 와 있는 사진입니다. 이 사람 뭐 소개합니다. 이기호, 이분이 대통령 경제 수석이었습니다. 당시에 말입니다. 제가 여기 앉아 있습니다. 여기 보면 몇 번입니까? 23번이 제 자리입니다. 안에 총 앉은 사람이 300명이 전 세계에서 초청되었는데 부시를 직접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여기는 여기가 유니 스테이션입니다. 건물이 높습니다. 다른 사진 띄워 보십시오. 다른 사진. 외국 여자들, 외국 여자들입니다. 또 띄워 보십시오. 제가 미국을 안 갔습니까? 보입니까? 이것이 미국의 한국 사람들이 있는 미국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전부 미국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또 띄워 보십시오. 이 들어가는 문이 특이합니다. 이 사람들이 외투를 벗은 것입니다. 전부 코트를 맡겼습니다. 코트가 이 문 바깥에 코트 맡기는 데가 있습니다. 전부 남자가 코트를 벗겨 주었습니다. 안에 입은 옷들이 이것입니다. 들어오고 여기 저하고 뭐, 예. 또 치워 보십시오. 띄워 보십시오. 이것이 파티장 안쪽에 테이블이 전부 웨이버 세이빙 하는 사람들이 전부 흑인들이 100% 흑인들이 서 있습니다. 이렇게 서 있고 우리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미 공화당 의장 심홍석입니다. 이 사람이 심 공화당 의장입니다. 부시 대통령 친구입니다. 이 사람도 의장이고 부시 대통령도 선거대책 의장입니다. 이 사람도 미 대통령 부시 대통령 선거 의장입니다. 이 사람이 키가 한 1m 85 정도 됩니다. 저하고 서 있을 때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또 제껴 보십시오. 이 파티장 아닙니까? 보입니다. 사람들이 서 있습니다. 이 높이가 대단합니다. 전부 대리석 지붕이 안 보입니다. 이런 것이 층층이 있습니다. 여기 보면 올라갑니다. 여기 이제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카메라 외에는 찍을 수가 없습니다. 카메라만 이것을 찍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최고로 큰, 이것은 파티장 안에 있는 것, 이것이 미국 대통령 표시입니다. 딱 이것이 파티장 사진 나와 있습니다. 여기가 접수대입니다. 접수대 보입니다. 여기 었는데, 미국 아메리카 내려 보십시오. 깃발 있습니다. 국기. 여기에도 불이 켜져 있습니다. 이것이 천천히 올라갑니다. 좌우지간 들어가면 천장이 그런 큰 파티장입니다. 거기에 300명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대리석이 멋있습니다. 보면. 이 사람들이 서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기둥이 아닙니다. 조각품들이 전부. 한 파티장이, 이것이 메인 카메라 외에는 절대 카메라를 찍을 수가 없습니다. 여기가 미국에서 최고로 막강한 사람이, 전 세계에서 300명이 딱 들어온 것입니다. 취임식에는 몇십만 명이 가는데, 여기는 300명이 딱, 대통령이 결정한 사람만 들어갑니다. 우리나라에서 두 사람, 또 치워 보십시오. 이제 박근혜 하야입니다. 이것 제 부인이 아니고, 아까 본 그 의장의 부인입니다. 이 사람이 키가 큽니다. 이 사람 부인입니다. 부시, 여기 있습니다. 부시가 서 있는데, 바로 앞입니다. 제껴 보십시오. 그다음에 부통령, 부시가 지금 연설하고 있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 있고, 여기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부시, 그다음에 여기 부통령 부부, 이것이 부시 부인, 이것이 부시 부인입니다. 부시 아들하고 다 서 있습니다. 서 있습니다. 이렇게 부시가 그날 파티에 당선 축하 파티인데, 전 세계에서 300명이 이 큰 파티장에 딱 모였는데, 전부가 노랑 머리였습니다. 전부 거의 다 노랑 머리인데, 우리는 까만 머리였습니다. 여기도 노란 머리가 많습니다. 지금 연설하고 있습니다. 그 밑에 제가 앉아 있는 것입니다. 또 제껴 보십시오. 사진 빨리빨리 제끼십시오. 시간 없으니까. 이것이 박근혜 대통령 되기 전입니다.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마사회장입니다. 제가 여기 앉아 있습니다. 가짜로 앉을 수 있습니까? 그런 뭐, 자, 그쪽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닙니다. 신인이 여기 자연스럽게 앉아 있습니다. 이 원입니다. 있습니다. 여기 아무나 앉는 테이블이 아닌데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마사회장 자리입니다. 제가 있습니다. 꽃 안 달았습니다. 제 꽃입니다. 여기 이 사람하고 여기 제가 가서 처음에 만나기 전에 악수했습니다. 악수하고 있습니다. 이 마사회장이 국회 출신입니다. 김영삼 씨가 대통령 할 때입니다. 마사회 행사에 이 사람이 딱 오면, 이 경우는 본능적으로 손이 박근혜를 딱 이렇게 가리킵니다. 본능적으로 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앉힌 것입니다. 이 자리에 말입니다. 이 사람들이 앉혀 준 것입니다. 제가 일부러 안나, 안 쳐주니까 앉는 것입니다. 여기 제 자리가 되어 있습니다. 조금 전 사진 봤습니다. 악수하는 사진 다시 보십시오. 제가 왔다, 여기도 웃고. 웃습니다. 이것이 가짜로 웃는 것입니까? 기분 나쁘게 웃는 것입니까? 좋게 웃는 것입니까? 아주 기분 나쁘게 웃습니까? 기분 나쁘면 손도 안 내밉니다. 악수 안 합니다. 밝게 웃습니다. 웃으면서 다 나왔습니다. 이 사람하고 이 사람이 인사해서 이리로 앉으라고 앉은 것입니다. 오해가 많습니다. 이상한 오해들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다른지. 자, 그다음에, 이 앉아서 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미국입니다. 미국에 부시 만나러 갔을 때 같이 찍은 사진인데, 박근혜 대통령 부시 파티장에 초청이 안 되었습니다. 거기는 저 외에는 안 되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 박근혜 대통령이 올 때 국회의원이 여덟 명이 왔습니다. 그 사람들은 파티장에서 대통령을 못 봅니다. 그 사람들 파티는, 저는 특별 파티고, 그 사람들 파티는 A, B, C 되어 있었습니다. 그 A, B, C 파티는 트럼프, 부시가 바빠서 못 간 것입니다. 그래서 못 만났습니다. 이것이 메릴랜드 민주당, 민주당 방송국에서 초청해 막, 그렇습니다. 제 옆에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가짜입니까? 아닙니다. 가짜 아닙니다. 이것이 워싱턴입니다. 날짜 여기 있습니다. 2001년 1월 21일입니다. 또 사진 주십시오. 또 띄워 보십시오. 이것 밑에서 사람들이 다 보고 있는 것입니다. 전부 보고 있는 사진입니다. 두 사람 앉아 있습니다. 이것이 가짜로 안나, 이것 언제입니까? 99년 10월 8일, 여기는 아무도 없는 곳입니다. 실내입니다. 실내 소파. 맞습니다. 소파 맞습니다. 하나 앉아 있습니다. 그때 제가 커면, 넥타이 했습니다. 박근혜, 이것이 국립 묘지에 앉아 있습니다. 이렇게 앉아 있습니다. 다인 정도가 아닙니다. 미국의 워싱턴에서도 찍은 사진이, 그것 말고 많이 있습니다. 그냥 워싱턴 사진 더 띄워 보십시오. 이것은 박근혜, 박 대통령 사진 전시에, 세종문화회관입니다. 이런 것은 날짜가 없습니다. 이것은 워싱턴이 둘이서 있습니다. 가짜 사진입니까? 아닙니다. 서 있습니다. 이것, 이것 꽃다발 앞에서 이제 기자들 앞에 포즈 잡은 것입니다. 저것이 그냥 우연히 가서 이렇게 찍습니까? 아닙니다. 둘이서 있습니다. 그다음에 또 보십시오. 제가 미국을 간 적이 없다고 합니다. 그때 부시 만나러 갔는데, 이런 사진이, 지, 뭐, 가짜라고 합니다. 제가 가짜면 지금 띄울까요? 아주 그냥 안티들이 “아주 잘됐구나.” 이럴 것입니다. 진짜 사진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도 부시 만나러 가서 워싱턴을 여러 군데 초청 가서 다닌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금, 이것이 아니라 교포들이 초청해 가지고 가서 찍은 사진입니다. 그것이 우연하게 찍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더 이야기는 안 합니다. 전부 거짓말이라고 하니까 말입니다. 부시 만난 것, 이번에 트럼프 찍은 사진이 가짜가 아닙니다. 전부 진짜입니다. 트럼프 찍은 사진 올려 보십시오. 너무너무 억울합니다. 왜 그리 사람을 푸시, 농촌, 그것 빨리 찾으십시오. 봉사대. 찾았습니까? 보십시오. 이것이 트럼프, 이렇게 웃는 것 보십시오. 트럼프가 저렇게 세게 웃는 것은 없습니다. 트럼프 사진 좀 확대해 보십시오. 앞으로 당겨 보십시오. 되게 많이 웃었습니다. 어금니빨이 보이게 웃었습니다. 왜 웃었습니까? 댓글, 줄여 보십시오. 이 사진을 찍을 때, 이 사진이요, 옆에 임천근 씨가 서 있습니다. 실제입니다. 임천근 씨가 있는데, 이것이 임천근 씨 어깨입니다. 여기 어깨가 있습니다. 옆으로 치워서 임천근 나온 사진 여기 있습니다. 임천근 씨 어깨가 이렇게 나옵니다. 우리 사진에. 우리 사진 있습니다. 임천근 씨가 미국 대통령 여섯 명의 고문을 했습니다. 경문에 나옵니다. 띄워 보십시오. 이것이 가짜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이 가짜라고 합니다. 그때 방송부에서 했다가, 이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임천근 씨가 차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동생 도드 닉슨, 또 띄워 보십시오. 올려 보십시오. 체이, 미국 부통령, 임천근 씨, 또 올려 보십시오. 이것이 임천근 씨입니다. 트럼프, 부시 대통령, 아버지 부시 대통령 동생, 임천근 씨입니다. 가족, 가족들이 집 골프장에서 찍은 것입니다. 이것이 보통 사진입니까? 미국 대통령의 세 부자와 임천근 씨가, 여기 부시 대통령 어깨 손 얹어서, 이 사람은 미국 대통령들을 친구 만나듯이 집에 가 가지고 같이 밥을 같이 먹고 그럽니다. 여기 레이건 집에 임창근 씨 와 있습니다. 레이건 집에 온 것입니다. 낸시, 젊을 때 낸시 옆에서 있습니다. 또 올려 보십시오. 레이건, 부시, 또 미국 대통령 익사, 이것 찍은 것, 부시하고 같이 찍은 것. 또 다니, 올려 보십시오. 그다음 이것은 부통령이, 대통령 후보, 미국 대통령 후보, 이 사람 이름 무엇입니까? 유명한 대통령 후보, 이 사람이, 이 사람, 부인, 또 띄워 보십시오. 임청근 씨하고 이상 코리 가드너입니다. 또 치워 보십시오. 빨리빨리 치워 보십시오. 치우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포드 대통령, 임청근 씨 여기 있습니다. 포드 대통령. 이것 한 것 무엇입니까? 포드 대통령, 포하고 포하고 찍은 사진 맞습니다. 대통령하고 정부 그냥 같이 가족처럼. 또 보내 보십시오. 이것이 레이건 하고 찍었습니다. 젊을 때. 한국 사람으로서 미국의 여섯 명의 대통령의 자문위원을 한 사람은 이 사람입니다. 저 보고 가자, 부시 만나러, 트럼프 만나러 가자, 데려가는데 그것이 가짜입니까? 이것은 포드 대통령. 부시 대통령, 부시는 많이 찍었습니다. 부시 대통령, 이것이 개인 집입니다. 집에서 찍은 것입니다. 집무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부시하고 찍은 것 상당히 키가 작습니다. 이것이 제가 아버지하고 찍은 것, 젊을 때 아버지하고. 아버지 부시. 이것은 저, 이것 누구입니까? 이것 부시 대통령 영부인입니까? 부시 부인하고 찍은 것. 조지 허터 부시 영부인 바바라 여사입니다. 그다음 또 보십시오. 맥케인, 맥케인 사원이나 찍은 것. 다 됐습니다. 그다음 그것 띄워 보십시오. 제가 농어촌 봉사한 것. 이 사진 한 장, 둘이만 찍은 것 한 장 이렇게 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여기에 들어오면 일부러 요리 서 있는 것입니다. 정인으로 또 안 찍었다고 그럴까 봐서. 우리 자전에 보면 이 사람 어깨가 딱 나와 있습니다. 한쪽에 어깨가 있습니다. 우리 사진에 보면 17대 허경영 대통령만 제국 최대 100만 젊은 조직이 움직이고 있다, 허경영을 사는 호사모, 허경영 사상 청년 연합인 허청 지도부의 실체, 이것이 누구입니까? 그 당시 탤런트 박규식입니다. 화사모 회장 박규식입니다. 그다음 치워 보십시오. 이 글씨가 쫙 나옵니다.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갑자기 대통령 선거에서 사퇴하여 거의 청년 조직 100만 명이 노무현 대통령 쪽으로 많이 움직임으로써 한나라당이 1.5% 차이로, 1.5% 어디, 어디? 1.5% 차이로 참패를 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말이 나올 만큼 거의 갑작 사태는 2007년 대선을 위한 허노 간의 밀약 내지는 장기적 포석이 있었다고, 저하고 노무현하고 이제 친했으면 뭐 그렇게 된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가 기사에 나옵니다. 보십시오. 허청여, 내려 보십시오. 보십시오. 당 대통령 총 포기하고 자기들 쪽으로 영입하여 대선의 성장이 왜 본격적으로 회의와 있단 근거를 입수하여 지면에 개재했다. 호청년이 허경영 청년 연합입니다. 농어촌 봉사대 2002년 대선 당시 노사모의 몇 배에 다른 청년 학생 조직으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자생적 조직인 데다 그 규모가 가장 크고 그 회원 가입이 까다로워 최소한 1년 정도 기다려야 회원이 됩니다. 대학생들이 제 조직에 들려면 1년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들이 굉장히 싫어하지만 들어오기가 어렵습니다. 1년 정도 기다려야 회원 가입 성인이 나올 정도였다는데 그러다 보니 카이스트 박사가 82명이 되었으면 보십시오. 카이스트 박사가 82명이 제 조직에 되었으며, 벤츠 기업의 대표들이 상당수 포함되는 등 조직의 양과 질이 잘 조화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조직이 막강해지자 본격적으로 여기서 회유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올려 보십시오. 그 밑에 올려야지 했다. 다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청년 천국 의장인 여맹 의장은, 그 천국 의장은 여맹입니다. 제 조직입니다. 제가 제일 위고 의장, 서울대 출신의 당시 유망 벤처 기업의 대표, 대단했습니다. 여러 곳에서 해의 하심에 한번 움직일 때마다 집이 다섯 대 이상, 원들을 데리고 다녔으며 밤 12시까지 회원들의 이메일과 회원과의 자격 심사에 몰두했으며, 2년 대선 1개월 앞두고 계의 테러 세력에 의해 여맹 의장과 허청 간부 12명이 일주일 동안 납치되었다가 풀려난 사실도 있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청년은 여맹 의장에 의해 더욱 결속되어 갔고 전국 대학과 청년 조직은 호청년 회원 가입 조건을 완화하여, 그때는 좀 완화를 시키라고 해서 제가 완화하여 회원을 확대기 시작했다. 2002년 대선을 전해 민주와 허행 정제를 지지하는 허청 조직을 엄청난 물량 공세를 제시하며 여야 정당을 내시 세력들이 계속해서 그들을 회유해서 돈으로 나옵니다. 천윤 저당과 자주혁신 연맹이 단체는 질리게 허청 연과의 통합을 원하며 노골적으로 좋은 정권을 내걸었다. 천국 대학생에서 대학에서 허청회 가입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청년 가입이 1년씩 지원되는, 던 가입 조건이 까다로워지자 전국적으로 청년이 화제가 되었던 것이다. 청년은 허, 사상 청년 연합입니다. 얼마나 조직이 많았겠습니까. 대학생들이 들어오려면 1년 기다려야 합니다. 제가 그 조직을 했습니다. 그것이 농촌 봉사대입니다. 허청년, 허경상 청년이라면 전국적인 조직으로 확대되면서 각저 당시로 농천 봉사 활동 맞습니다. 농천 봉사 활동을 헌신적으로 하면서도 언론사에는 실제 일체 실체를 밝히지 않은 채 오직 봉사만 하는 단체로 알려져 있다. 제가 그렇게 해서 안 했습니다. 제가 전국 대학생을 유명한 사람들만 뽑아 가지고 다 한 조직을 한 것입니다. 어마무시하게 많습니다. 이 조직이. 이 신문에 난 기사입니다. 당시 최천 민주당에서 허청 앞으로 보낸 이곳에 공개한 메일의 내용을 읽어보면 짐작이 가도 남는다. 메일, 허경영을 추종하는 100백만 여명의 청년 조정은 여야는 물론 사방에서 해위를 받기 시작했다. 또한 허, 허사는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인기 탤런트 규식이 허경영을 사는 모임을 만들어 정적 확산되어 가고 있다. 허사, 허청, 허모, 허경령 위하는 모임, 허경영 팬클럽, 애국 청년단, 구국 전위대 등이 모두 100여만 명이 넘는 거대 조직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메일들을 일부 지면에 공개해 본다. 반핵, 반김, 자유통일 국민대 참가, 한네 이름 허경령 사상 청년이라 공보국 나옵니다. 조회수 3천 231입니다. 허정, 허정연 상임위원회는 3월 1일 거행하는 반핵 방진 국민대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할 것을 결의하다. 100만 명 이상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3일 국민대회에 호청년 깃발 아래 열정적 전의 대오가 기세차에 주동적으로 참여할 것이며, 당연 허청 구국 선언은 애국의 길, 부강 조국을 위하여 삼종의 고향자 일반 시민에게 배포할 것이다. 나옵니다. 제 조직이 아직도 국내에서는 랭킹이, 랭킹, 그다음 보십시오. 또 호청년 공보국, 아시아 연방의 구성이시며 유대한 사상 철학 가신 개회하는 허경령 총장님과 조국의 어머니 당 민주 공화당을 목숨으로 옹위 보호하는 애족 애민의 권위 결사, 허연의 공부장 강철입니다. 그것이 전국으로 대학생한테 나가는 공입니다. 저희는 총재님의 전을 모신 강일관 청년 조직으로서 강고하게 투쟁하여 성원 전체가 일심 단결하여 계의 향도, 성신, 위대한 총재님의 사상으로 철저히 무장한 불패의 애국 대오가 되고자 상임위원장 여명 동제 영도 아래 억세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무슨 청년 조직을 움직였습니다. 대통령을 한 것입니다. 이번 민주 왕도에서 주신은 우리 조직에 대한 무한한 영광이며 다 없는 충성이 대서 더욱 경결이 분투하고 강고한 조직을 엮고 세우는데 있어 사변적 의미로 합니다. 건 민주관 당의 임의로 문제적인 글을 올린 저희 보위국 소속의 자주 혁신 동지는 보위국장 현무 동지의 책임 하에 별도 교양 과정을 통하여 보다 헌신적인 호청년 선원으로 성장이 될 것입니다. 상임위원장 여명 동지께서 친히 전체 선원들에게 반모약 투쟁에 총봉기하라는 지침을 내려주신 바 있습니다. 이는 애족 애민의 찬연한 노정에서 오로지 영원한 민족의 지도자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사상 철학을 전면적으로 계승 발전시키시는 위대한 허경영 총재님만이 존엄높은 민족의 영수로서 가장 최대한의 경례를 받으시고 가장 절대적인 권위를 지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은 언어가 좀 특이합니다. 허경영 사상 청년 연합이 지향하는 노정은, 이것이 줄여서 청년입니다. 허경영 사상 청년 연합이 지향하는 노정은 우리의 모든 청년들이 위대한 허경영 총재님만을 끝없이 숭배하고 따르는 충성의 청년 대오로 억세게 자라나는 영광스러운 노정이 한국식 민주주의를 고수하고 빛내기 위한 중단없는 전진에서 허경영 지도자님의 예비 전투부대 별동대로서 위력을 남김없이 과시하는 긍지높은 노정이 될 것이다는 어마무시한 글입니다. 이 아이들의 메일이 계속 수천 개입니다. 이 메일이 전부 아이들한테 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시아 연방, 조금 전에 한 것 아닙니까? 허상 허청 탄생의 내막, 나옵니다. 본인은 90년대 중반 대학시절 애국 청년단에 몸 담은 사람, 최근 호청년 자주신 망의 통합 논의를 바라보면서 느끼는 바가 남다름을 감출 수 없다. 호청년 탄생의 내막을 본인이 아는 한, 보에서 밝힌 여러분이 이해를 돕고자 하니 부디 관리자는 이것을 삭제, 삭제하지 말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1985년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고대, 서강대 약 20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아주 수재들만 가지고 시작한 것입니다. 출범 애국 청년단, 조국의 부강 발전이 여는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하여 다양한 사상적 침노를 극복하여 마침내 박정희 대통령의 민족 사이 위대한 영웅을 가슴속에 모시게 되었다. 이후 2000년 16년을 소조 이으로 몇 면의 내오다 조직 확대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보다 구체적인 지도사들을 모세야 됐다. 박정희 대통령의 위대한 사상체를 계성 발전시키는 현존 인물이 누구인가 모세 가든 중 2001년 말 민주 과당과 허행 총재를 인식하게 되면서 마침내 허영경 사상 청년 여으로 개하, 이름 바꿨습니다. 대학 순수한 대학생 조직이 몇 개 대학이 연합해서 저를 세운 것입니다. 급에서 청년에 개칭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 의장의 청년은 전국 대학과 각 지방 조지 확장되었으며 호사모, 허모, 애국 청년당, 구국 전위대 100여만 명으로 급증하였으며 허청 년에 가입하기 위해 1년씩 기다려야 할 만큼 회원 가입이 엄격했고 허는 조적으로 운영되어 전국적으로 농촌 봉사활동을 전개해, 대선의 허경영을 위해 뛰고 있는 봉사단도 허경영을 한국의 통일 대통령으로 만들려고 하는 정치적 뜻이 있는 조직이라 볼 수 있다. 제가 지금은 여기서 이 대통령을 나가다가 이제 종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말 한마디 내리면 전국 대학생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조직들이 있었습니다. 박사만, 카이스트 박사만 80 몇십 명, 한 100명 됩니다. 한인들 전부 그 사람들이 허경영을 하는데 계속 대통령 언론에서 저를 미친놈으로, 미친 뭐 애 놨는데 얼마죠? 저런 미친놈 이랬습니다. 그러나 제 말이 맞습니다. 아이들은 제 말하는 것입니다. 허경령이 청년을 무너뜨리려고 다른 정당들이 여야 정당 계속 여기 나옵니다. 쭉쭉 보십시오. 이 사진들. 이것 말고도 보십시오. 호청년 뭐야, 이 와기 위한 정치권의 회의에 대한 점검 회의일. 이것 청년을 와해하려고 이런 메일을 막 보내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애국 우파 세력의 대동 단계를 통해서만 누란의 위기에 빠진 자유 대안을 구출할 수 있다고 소위 진보를 하는 붉은 세력이 청와대 앞마당까지 차지하였고 민주를 자칭하는 무리들이 공일정을 찬양하고 있다. 진정한 애국세력은 을 벗어던지고 구국의 함성으로 매국 역정 무리들을 소탕하는 결전에 나서야 한다. 이한 세기에 정열적 활동을 받 버리는 애국 청년당 허청 실러 초구의 보배요, 구구의 복음이라 할 수 아니할 수 없다. 또한 그들이 고 박정희 대통령 조국 근대와 업적과 세마을 운동 높이 찬양, 따고자 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로서 한국 청년 운동사에 한 획을 긋는 대전환일 것이다. 부정과 반항으로 점철된 청학생들이 이제 긍정과 선도하는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이루는 것이다. 애국 청년당 청년이 순고함을 감내하며, 그토록 열과 활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20년 가까운 역사와 전통 속에 한 점 부끄러운 오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여인이라는 호청년 지도자의 우경 오류다. 이제 여기서 와해가 일어납니다. 제가 나중에 이것을 접었습니다. 이 호청년을 접은 것이, 안 합니다. 여야에서 계속 난도질하는 것입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의 사상을 조명하는 바른 노선에 대하여 허경영 존대는 신중한 금지, 아멘 없이 제의, 박정희 대통령 정치 구에 매몰되어 무조건적인 지지를 강요했다. 하물며 자랑찬 조직의 이름을 허경영 사랑 청년이라고 개칭하는 등 마치 허경영 총재의 개인 사조직인 것처럼 느끼게 하였다. 그런 실체가 가오는 전체 대오를 혼란에 빠뜨리게 하였고, 그 결과는 허경영 총재가 대통령 선거 출마조차 못 하는 것으로 밝혀지자 조직 전체를 심각한 회의주의 물들이게 하였다. 제가 그때 출마를 못 했습니다. 이 문제가 많아서 그때 못 할 때입니다. 따라서 여에 대한 탄핵은 당연한 기계이며, 제가 데리고 있던 그 여인을 탄핵하는 것입니다. 탄핵한, 탄핵은 당연한 기결, 안에서 이상한 세력들이 등장하는 것입니다. 단한 기계면 잘못된 노선을 바로잡는 단초를 말하는 것으로 평가한다. 새로운 영도자로 조직을 이끌어 가고 있는 강혁 동지와 지도부는 전임 지도부의 오류를 대지 말고, 하루속히 혁신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자주 혁신 연맹은 모든 것을 다 제공할 용의가 있다. 이것들이 물량 공세를 나오는 것입니다. 자주 혁신 연맹은 어느 큰 정당이 거기서 자주 혁신 연맹을 만들어 가지고 우리 회원들을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자주 혁신 모든 것을 다 제공할 용의가 있다. 이는 구국의 정의 조직체에 대한 마땅한 대접이 더욱 성장 발전 조국을 구세계 옹호, 보위하기 바라는 중심의 발로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수정 제의하는 바이다. 두 조직과 통합해서 명칭은 자유대한 청년 전선, 약칭 대한 청전 애국 청년단, 약칭 구국 청년 전선으로 한다. 여명 등 전임 지도부는 강혁 위원장 의견을 존중하며 사면대 향후 3년간 여한 지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자주 혁신 연맹 소속 성원들은 100% 배기 종군 자세를 임하며 강혁 위원장의 영도를 받는다. 자주혁신 연맹의 모든 지도부, 지부, 하부 조직의 자금, 건물 등 재 권리를 즉시 양도하며 향후 5년간 필요 경비를 전액 부담한다. 기 제시한 조건은 유효하다. 이런 조건을 우리 회원들한테 제시하면서 강력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이 100만 조직이 제가 16대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안 나갔습니다. 좌파를 지지했다고 여기서 파벌 싸움이 생긴 것입니다. 이 조직을 제가 농어촌 봉사 활동을 수도했다는 늦게 오래까지 했습니다. 2003년까지 말입니다. 제 정치적인 조직이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이 막나 됐고 최고 지성인들, 카이스트 박사만 100여 명, 대단하지 않습니까. 그런 조직이었다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지워 보십시오. 여기 보십시오. 호청년 활동은 민주당뿐만 아니라 기존 정당에서 매우 관심거리다. 자생적이고 강력한 기일과 일사불란 행위가 돋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무리 좋은 뜻과 실천을 가지고 있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건 여러분을 뒤 해줄 수 있는 기관이나 정당이 없기 때문입니다.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높은 뜻을 새천년 민주당에서 활짝 십시오. 여러분들이 입장을 간곡히 호소합니다. 입당을, 입당식 청년 상, 성님을 밝히시고 소속 부을 알려주면 여러분의 높은 나라 사랑을 마음껏 펼 수 있도록 물심 장면으로 당인 지원을 악기장 새천 민주당에서 빼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스톱했습니다. 보십시오. 청년 여러분, 민주당에서 진정한 애국을 천 당원이 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은 새천년 민주당으로 제가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이 사람들이 흡수가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스톱했습니다. 굉장한 농어촌 봉사 조직이었습니다. 이제 지워 보십시오. 이제 시간이 없습니다. 이것도 지우고 빨리 지우고 원래 화면으로 돌아가십시오. 제가 농촌 봉사했고 봉사 회장을 하면서 청년을 끌고 가서, 공동 5천에 봉사를 했습니다. 대학생들이 전부 다, 그것은 누구 아이디어입니까? 제 아이디어입니다. 제가 우산 봉사만 한 것이 아닙니다. 제일 농어촌 봉사를 오래까지 했습니다. 우산 봉사하면서 대통령 나가, 저 뭐야, 저저 무력 없이 하면서 또 허청년을 이끌었습니다. 그것이 2000 몇 년도까지 이끌었습니다. 대단합니다. 제 말 한마디면 전국 100만 명이 움직였습니다.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제가 험난한 길을 걸어왔습니다. 말도 못 합니다. 맨날 그냥 저쪽 당해, 그냥 우리를 화해시키려고, 그것을 제가 이끌어 왔습니다. 강력합니다. 제 말은 그냥 제가 이렇게 하면 다 이렇게 가고, 이렇게, 그런 사람들인데 물량 공세가 왔습니다. 제가 또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을 지원하고, 제가 안 나가니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내분이 생긴 것입니다. 제가 제일 많이 한 것이 농어촌 봉사, 한국 농어촌 봉사를 제가 제일 많이 했습니다. 그다음에 우산 봉사, 대한 불우자 봉사회장입니다. 대한 불우자 봉사회장에 표창 받은 것 없습니까? 찾아 보십시오. 그런 것이 주로 했습니다. 그러다가 신인이 대통령 나왔습니다. 제가 무료 급식 54년, 이제 55년째입니다. 우산 봉사, 농촌 봉사, 이것이 어마어마하게 오래 한 것입니다. 2000 몇 년도까지 전국을 다 했습니다. 몇 명 데리고 가서 하는 것이 아니고 전국 대학생들을 전부 제 지지자들이 농촌 가서 농번기 일해 주었습니다. 오래 했습니다. 그런 봉사를 하면서 또 무슨 봉사 했습니까? 무력 없이 봉사는 허경영이가 최고로, 봉사를 대통령 세 번만 나온 것, 그것은 봉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국가를 위해서 이제 본격적으로 정치적으로 제가 국가를 도우려고 한 것이고, 제 조직은 일개 여야 정당을 못지 않았습니다. 나옵니다. 결국은 물량 공세 앞에서 제가 노무현과의 어떤 인연 때문에 밀었고, 또 그렇게 갔고, 저는 또 노무현과 박 대통령 여야를 다 좋아합니다. 그래서 지금 뭐 여당도 그렇고 야당도 저는 편을 안 듭니다. 제가 나중에 민중당 제가 들어갑니다. 이것 하기 전에 민중당 들어가서 이재오 민중당 창당에 개입했습니다. 이재오, 제정구, 이유재, 장기표, 장기표는 얼마 전에 돌아갈 때까지 저에게 전화 왔습니다. 저하고 제일 친합니다. 서울대 철학과 나온 장기표, 노무현 대통령과 한양 사람입니다. 이재오, 제정구, 이유재, 장기표, 공무청, 리한 사람, 김 누구입니까? 김부겸, 김부겸. 김부겸 저보다 더 민중당이 늦게 돌아서 제가 있을 때 김부겸이 밑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재오와 허경영이 같이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다 국회의원, 장기표만 국회를 못 했습니다. 다이 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민중당이 신선한 농촌 봉사하는 그런 조직과 비슷했습니다. 제 세력들이 민중당에 많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민중당을 나중에 해체했습니다. 해체하고 신한국당으로, 이 사람들이 다가 신한국당, 저는 공화당으로 창당을 해서 공화당으로 대통령 나가고, 이 사람들이 민중, 국민의 힘으로, 신한국당 가고, 장기표는 안 가고, 김부겸, 가고, 이런 식으로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 정치계 1세대들입니다. 제가 굉장한 조직의 경력이 많습니다. 지금 조직도 그때 조직만큼 전 세계로 퍼져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이 그렇게 대단했다는 것 아시겠습니까? 저는 농촌 봉사 운동을, 시골 출신이니까 농촌에 돈 안 받고 우리가 도시락 싸 가지고 가서 농, 해주고 했습니다. 절대 뭐 농촌한테 가서 밥 내놔, 이런 말 안 하게 한 것입니다. 각자 도시락 싸 가지고 농촌 가서 봉사, 당일로 올라와, 또 그다음 날 내려가, 이렇게 봉사 많이 했습니다. 대학생 농촌 봉사가 많았습니다. 그것이 청년에서 한 것입니다. 거의 많습니다. 거기에 최고 지도자가 신인이었습니다. 그 신인을 잘못 알고 무슨, 뭐, 무슨, 뭐 이런, 뭐, 그 사람들 지금 현재 경찰에서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신인은 어려서부터 우산 놔주고 무료 급식하고 농촌 봉사하고 이런 걸로 검찰청, 법무부에서 저를 “아이고, 우리 좀 도와주시오”라고 했습니다. 불교 조종에서 여의도에 그만 명 모인 불교 신자들 모인 거기 스리랑카 찬탄한다, 스님이 왔을 때 저를 단상에 세웠습니다. 제가 젊었습니다. 오늘은 총무원장이 행사하는 데가 보니까 한국일보 13층에, 여기 제가 섰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여기 보면 여기가 이 불교 재등, 불교 227년 부처님 오신 날 재등 대회입니다. 여의도에 거기 딱 서 가지고 그 밑에 막 처부 등을 들고 그 행사하는 거기에 단상에 센터 보드에 제가 서 있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제 옆에 여기 누가 서 있냐면 불교 신도의 회장, 동국대학교 교수가 있어서 그 사람이 서 있고 저는 불교 봉사회 회장 이렇게 해서 여기 이 스리랑카 불교 종정 이런 사람들이 쭉 서 있는데 앞에서 있습니다. 그다음에 이쪽 올려 보십시오. 녹은 저리 저리. 여기는요, 여기는 저, 저, 이것은 이제 청년들, 청년 조직들. 여기 오는 건 총무원장, 이분도 총무원장을 했습니다. 군법사 단장, 불교 봉사 회장, 여자 회장. 이것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송춘, 송춘, 수, 수사 여성. 송춘이하고 있을 때 제 옷, 그때 옷 잘 입었습니다. 옷 색깔이 괜찮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입은 옷 중에 색깔이 제일 좋습니다. 아주 제가 활동을 어마무시하게 했습니다. 저만큼 바쁘게 지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봐도. 제가 이렇게 나가면 목숨 거는 아이들이 포진해 있고 경비서는 아이가, 경호서는 아이가 100여 명씩 따라다니고 제 밑에 있는 의장이 움직이면 차가 다섯 대가 경호를 해야 합니다. 납치한다고. 조직이 크니까 말입니다. 그런 조직을 운용했습니다. 지금은 이제 하늘궁에 제가 이제 온 원래 목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오늘 너무 늦어서 이야기를 길게 못 하겠습니다. 시간이 많이 되었지만 오늘 좀 중요한 것입니다. 허경영이 사람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어마무시한 활동을 했습니다. 우산 봉사, 무료 급식 봉사,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55년을 했지만은 지금 제가 그동안 농촌 봉사한 조직은 100만 명에 가까웠습니다. 그 조직들이 움직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지금 하늘궁을 만드는 것이 뭐, 그것이 배가 아파 가지고, 이것을 무너뜨리겠다고 하면 더 큰 것을 만들어 버립니다. 제가 그때 37살 때 대통령 나갈 테니까 돈이 한 500억 있어야겠다고 하면 돈이 만들어집니다. 제가 세 번 나갔습니다. 세 번 나갈 때마다 돈을 만들어, 만들어서 나갑니다. 지금 이번에도 직접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나간 것입니다. 선거법을 어기니, 뭐 일 샀는데 나중에 보면 저는 절대 법을 어기는 사람이 아닙니다. 전부 카이스트, 서울대 이런 대학생들이, 그 사람들이 저를 부를 때 조국의 민족의 태양, 이렇게 부르던 사람입니다. 아이들이 보는 것이 있습니다. 저쪽에서 와해를 시켜서 그렇지, 어마어마한 조직입니다. 우리는 부정하게 안 했기 때문에 모든 순수한 청년들이 뭉쳐 있었습니다. 재밌었습니다. 제가 나타나면 안 되게 되면 항상 숨어 다니고 굉장했습니다. 옛날에 제가 나타나면 대학생들이 막 절도했습니다. 무슨 비밀 조직 비슷하니까 말입니다. 허경영 하면 전설적인 이름입니다. 여러분은 저를 보지만, 그 사람들은 허경영 나타나면 절도해 버립니다. 확, 허경영은 볼 수 없는 인물로 되어 있습니다. 탁 가려져 가지고 말입니다. 재밌습니다. 제 젊을 때 그것 보니까 옷도 잘 입었습니다. 사진을 잘못 찍어서 그렇지, 옆에 송춘이라든지 좀 이름 있는 사람만 오면 멋있어집니다. 이상한 사람들하고 있으면 사진이 이상합니다. 멋있는 사람이 오면 얼굴이 달라집니다. 재밌습니다. 오늘은 일부만 이야기한 것입니다. 신인을 너무 가볍게 보면 안 됩니다. 신인이 어려서부터 이렇게 봉사활동으로 한평생 보냈는데, 어떻게든 가짜를 만들어 보겠다고, 허경영을 이용해서 출시하겠다, 이런 사람들이 있으면 조심해야 합니다. 허경영은 그렇게 불의에,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넘어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어떻게 추적하던 그들에게 민사 소래 배상까지 들어갑니다. 저에게 누명 씌운 사람들 다 민사 손해배상 다 들어갑니다. 나중에 집까지 날아가는 수가 있어도 끝까지 그것을 할 것입니다. 제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지만, 신인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들 끝까지 법적인 문제로 가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는 안 합니다. 자, 그럼 이제 다른 것 하십시오. 시간이 늦었습니다. 뭘 해야 합니까? 오늘은 늦었으니 한 사람이라도 해야 합니다. 무료 급식 빨리 하고, 찾는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앞으로 다 찾아 놓으십시오. 세팅으로 잠번 해 놓으십시오. 다음에 2탄으로도 해야 합니다. 그 위에다 잘해, 저 펴라, 찢어진 것, 그런 것을 펴야 합니다. 깨끗이. 큰일 날 쓰레기가 아닙니다. 순서는, 그 위에다 얹어야 합니다. 어느 것이 먼저입니까? 저쪽 것이 먼저, 저것 무엇입니까? 저것 어디 밑에 있으면 그것은 밑으로 넣어야 합니다. 제가 이것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닌데, 오늘 시간 관계상 한만 하라고 하십니까? 제 노래 한 곡으로만 끝내고 오늘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원, 한 빛물결 마장 호수에 금매도 그려보는 하늘이요. 이원대 철새들이 물살을 가르며 내게 오라, 벗어라, 날개 치하해, 사는 웃고, 힘이 들 때 근히 감사 주고, 더루 만져주, 경영 신인님, 품석 같은 하늘, 아오리 늘군 사랑이 넘쳐 흐르네. 고맙습니다, 여러분. 영롱한 물결 피산 호수에 금매도 그려보는 하늘이요, 원새 철새들이 물장 붙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나이하, 다는 게 로고, 힘이 들 때면 히 감사 주고, 거룩 만져주, 거경 신인님, 본석 같은 하늘궁, 아오리 하늘고 사랑이 쳐 흐네, 아 우리 하늘고 사랑이 넘쳐, 해 하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빨리 불러야 합니다. 아닌가 만, 그것만, 시간이, 오늘 시간이 늦어 가지고, 그럼 뭐 하니, 자음 00개 레벨 광채 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