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Huh Kyung young’s Eight Blessings and Eight Evils: Understanding the Path to Heaven Through Humility and Harmony – February 13, 2025

기독교 ‘팔사(八邪)’와 ‘팔복(八福)’의 근원적 차이

안녕하십니까, 신님. 오늘은 기독교 팔사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신인님께서 2년 전 가르침으로 구성 팔락 팔복 팔사에 대해 가르침을 주셨고, 재림하신 이후에도 인간들에게 유효한 지침 사항으로 강조해 주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인간이 금기시해야 하는 팔사만 제대로 이해하고 경계하면 구성 팔락 팔복에 충분히 가까워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질문은 팔사의 의미와 현대적인 이해가 궁금하며, 그중에 특히 주술은 단순히 사주나 풍수의 범주까지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상의 나쁜 허위 선동과 같은 과도한 주술사 행위인 것인지, 주술에 금기시되는 부분과 주술이 왜 팔사에 들어가게 되었는지가 궁금합니다.

기독교 팔사는 여덟 가지 죽음을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상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이 상향성은 교만으로 이어집니다. 욕망은 교만이기 때문에 지옥으로 향하게 합니다. 인간 욕망의 세상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반면 소망은 하향성을 가지므로 겸손하며, 이는 천국으로 이어집니다. 겸손한 자는 천국으로 가고, 교만한 자는 지옥으로 갑니다. 모든 팔사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며, 소망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팔복은 소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팔복은 기도, 구원, 축복, 성령, 은사, 부활, 영생, 천국을 의미합니다. 반면 팔사는 공포, 불신, 흉악, 살인, 음행, 주술, 우상, 허위를 포함합니다.

주술에 대한 현대적 이해: 합리적 선택과 미신적 행위의 구분

팔사 중 주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교회를 지을 때 언덕 위에 짓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고 종소리가 잘 퍼져나가기 때문입니다. 이는 풍수를 보는 행위로 볼 수 있습니다. 아무 곳에나 교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입지 조건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교통 편의성이나 전망 등을 고려하는 것은 합리적인 풍수입니다. 성당도 강변에 짓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풍수는 서양 사상 중 합리주의, 즉 헬레니즘에 해당합니다. 합리주의는 인본주의적이며, 주술로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집을 지을 때 합리적으로 좋은 곳을 택하는 것은 주술이 아닙니다. 학교를 지을 때도 산속이 아니라 동네 아이들이 많이 있는 곳, 안전한 곳에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이것이 풍수이며 주술이 아닙니다.

주술에 들어가는 것은 합리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이 아닌 행위입니다. 집터를 좋은 곳에 짓는 것은 합리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것입니다. 신본주의는 인간을 무시하고 신이 최고라고 여기며, 신을 위해서는 인간을 죽여도 된다는 식의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안식일 날 사람을 고쳐주면 안 된다거나, 주일 날 예배 보러 가는 사람이 죽어가는 사람을 돕지 않는 것은 신본주의의 문제입니다.

하모니즘: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조화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문제점을 고친 것이 바로 하모니즘입니다. 하모니즘은 상생, 즉 서로 잘 사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팔복은 하모니즘에 해당하지만, 팔사는 하모니즘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팔사를 제외한 모든 고난이나 환난이 선을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음행이나 살인은 모든 것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음행이나 살인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어도 예배당에 가야 할 시간에는 다른 일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너무 신본주의적이고 인본주의가 결여된 것으로, 하모니즘이 되지 못했습니다. 유대인들이 핍박받고 망한 것은 하모니즘을 행하지 않고 율법만 고수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율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인간을 위해 존재해야 합니다. 인간이 먼저입니다. 기독교의 정의를 일반 사람들이 해석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팔사와 욕망의 결과: 죽음과 지옥으로의 길

팔사는 공포, 불신, 흉악, 살인, 음행, 주술, 우상, 허위 이 여덟 가지는 죽음을 가져옵니다. 이것들은 “무엇이든지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팔사는 욕망의 결과입니다. 소망은 공포나 불신을 유발하지 않습니다. 소망은 겸손하고 하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려가고, 더불어 잘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사람들이 자신을 올려놓는 것이지 스스로 올라가려 하지 않습니다. 하향성은 천국을 의미하며, 상향성은 인류를 오염시킵니다. 상향성은 절벽으로 이어집니다.

기도, 구원, 축복, 성령, 은사, 부활, 영생, 천국이라는 팔복과 팔사는 서로 대비되며 정반대입니다. 고난이나 환난은 우리가 남에게 은사를 주거나 성령을 받아 축복을 주거나 남을 구원할 때 찾아옵니다. 이러한 환난은 돈 주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남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거듭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도둑놈이 다시 거듭나는 것이 부활입니다. 담배를 끊고 술을 안 먹으면 부활된 것입니다. 부활을 해야 영생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고집대로 가면 팔사로 이어집니다. 고집을 버리고 가면 팔복으로 가는 것입니다.

소망과 겸손: 천국으로 가는 열차 티켓

천국으로 가는 방법은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욕망을 가지면 안 됩니다. 욕망은 스트레스 호르몬을 유발하지만, 소망은 정상적인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소망은 겸손해야 합니다. 어디를 가든 나보다 잘났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는 내가 앞장서야 합니다. 나보다 더 부자가 많으니 그 사람들이 돕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욕망의 열차를 타면 지옥으로 추락하고, 소망의 열차를 타면 천국 역에 도착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열차의 티켓은 겸손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그 열차에 입장할 수 없습니다. 욕망의 열차 입장권은 교만입니다. 욕망을 가진 사람들은 상향성을 지향하고, 소망을 가진 사람들은 하향성, 즉 밑바닥 사람들을 살피며 겸손해지고 자꾸 내려갑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의 진정한 의미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에는 팔사가 제외됩니다. 욕망과 욕망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은 곤란합니다. 소망을 가진 자가 하는 모든 일은 비록 궁지에 몰리고 감옥에 갈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팔사를 행해서는 천국에 갈 수 없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갔지만, 그 감옥은 지옥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이 감옥에 간 것은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질 수 있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승만, 안중근, 만델라, 김대중 선생 모두 감옥에 갔지만, 그 감옥은 그들을 대통령이나 영웅으로 만들었습니다. 감옥이 대통령이나 영웅이 되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요셉도 감옥에 갔다가 총리가 되었습니다. 악한 자가 정권을 잡으면 선한 자들이 감옥에 가지만, 이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입니다. 감옥에 가서 오히려 총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승만은 감옥에서 선교사가 넣어준 성경을 통해 기독교를 접하고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그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 유학을 가게 되었고, 프린스턴 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의 지도 교수였던 윌슨이 나중에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이승만은 정치적 기반을 다지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감옥에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 대통령들이 한국을 돕게 된 것도 이승만의 이러한 인연 덕분이었습니다. 이처럼 감옥을 가더라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살인이나 음행 같은 행위는 선을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행위 자체는 해서는 안 됩니다. 팔사는 모든 것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정반합(正反合)의 원리와 하모니즘 정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정반합의 원리를 의미합니다. 정(正)과 반(反)이 합(合)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서 반(反)이 꼭 살인 같은 극단적인 행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반합은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정과 반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합을 이뤄내야 합니다. 이것이 하모니즘입니다.

소망이 있는 자들이 국가를 살리겠다고 하는 것이지, 나쁜 짓을 하거나 살인범들이 아닙니다. 단지 이론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러나 팔사에 해당하는 행위는 정반합에서 제외됩니다. 그것은 인간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정반합을 논하는 것입니다. 정반합은 극단주의적인 것이 아닙니다. 여당과 야당은 해적이 아닙니다. 선거에서 붙은 국회의원들입니다. 이들을 모두 끌어안고 가야 합니다.

대통령이 야당 사람들을 불러 장관을 절반이나 준다면 여론이 달라질 것입니다. 야당 의원들도 조용해질 것입니다. 주요 요직에 야당 사람들을 포진시켜 여당을 견제하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전부 자기들끼리 장관을 다 해 먹으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야당 사람도 절반, 여당 사람도 절반을 임명하고, 안기부장은 야당, 뭐는 여당 식으로 하면 여당 사람도 맥을 못 춥니다. 이것이 정반합의 원리입니다. 지금 우리 정치인들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하모니즘 리더십: 붕당을 넘어 국민 통합으로

저는 항상 정반합을 노리는 사람입니다. 하모니즘은 여당도 칭찬하고 야당도 칭찬하는 것입니다. 대선 때도 아무도 비판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필요한 존재입니다. 국민이 뽑아준 사람인데 왜 비판합니까? 다른 당에 있다고 해서 우리 당 사람만 앉히면 안 됩니다. 야당이 국민의 50% 지지를 받는다면 50% 장관은 야당 사람으로 넣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라가 시끄럽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양보하고 당적은 여당에 있지만 행동은 야당과 여당을 똑같이 취급하면 존경심과 지지율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패거리가 되면 안 됩니다. 붕당은 없어져야 합니다.

대통령이 되면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 당에서 중립으로 돌아서면서 여야를 반반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언론이 대통령 편을 들기 시작하고, 야당도 대통령에게 브레이크를 걸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여당 사람에게만 맡기면 나라는 시끄러워지고 야당은 죽기 살기로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동서로 쪼개져 있는데, 한쪽이 다 잡으면 다른 쪽은 싫어합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고 나면 여야가 없어져야 합니다. 중립 입장에서 장관 절반, 고위직 절반을 항상 집권하지 못한 당의 사람을 많이 써줘야 합니다. 그러면 비난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존경하는 사람이 늘어나 나라는 잘 될 것입니다. 혼자 다 해 먹으려고 하면 깨집니다.

정반합, 즉 하모니즘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은 정반합, 여야 합을 말하는 것이지, 조폭 집단의 합이 아닙니다. 공포, 불신, 흉악, 살인, 음행, 주술, 우상 같은 팔사가 끼면 안 됩니다. 그런 자들은 정치권에 들어오지 못하게 걸러야 합니다. 그런 것까지 다 용서해서 정반합을 하면 나라가 안 됩니다. 선출된 자들 중에서 정반합을 해야 합니다.

국회의원도 무보수 명예직, 대통령도 무보수 명예직으로 한다면 국민들이 배 아파할 리가 없습니다. 야당 의원들이 많이 간부로, 장관으로 와 있을 때 야당에서 예산도 많이 해주는 것입니다. 비난하지 않고 감시병이 충분히 있으니 국민이 믿는 것입니다. 자기들끼리만 모여 가면 세력 관계에 갇히게 됩니다. 모든 대인 관계도 그렇게 하지 말고 항상 오픈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