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The Essence of Suffering: Overcoming Pain Through Objectivity and Self-Sovereignty with Huh Kyung-young – July 5, 2024

고통의 본질: 탐진치와 삼독

인간은 번뇌와 팔고(八苦) 등의 고통을 겪으며 내적으로 성장합니다. 여러 번 겪은 고통에는 내성이 생겨 무뎌지기도 하지만, 고통을 고통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마다 어김없이 더 큰 고통이 찾아와 무방비 상태로 받아내게 됩니다. 팔고에 생과 사가 포함된 것처럼,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리고 윤회를 거듭하며 끝없는 고통을 겪습니다.

고통의 본질은 인간의 탐진치(貪瞋癡)에 있습니다. 기독교나 불교 모두 탐하는 것, 성질내는 것, 어리석은 것을 고통의 본질로 봅니다. 우리는 이를 삼독(三毒)이라 부릅니다.

고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지혜

고통을 가까이서 보면 고통이지만, 멀리서 보면 낙(樂)이 됩니다. 모든 것을 가까이서 보면 고통이 따르지만, 멀리서 본다는 것은 내가 객관적인 관찰자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관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말고, 마치 허경영이라는 한 인간이 이런 일을 겪는구나 하고 자신을 벗어나 객관적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내가 겪는 고통을 허경영이라는 타인이 어떻게 바라볼지 지켜보는 관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고통의 주체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시각을 갖게 됩니다. 고통의 주체가 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고통이 닥쳐도 객체로서 바라봐야 합니다. 우리는 그 고통의 주체가 자신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 자신은 그 고통과 무관합니다. 고통스러워하면 그곳이 불덩어리가 되지만, 나는 그 불과 관계없는 독립된 존재입니다. 자신을 객체로 보면 고통과 나는 분리됩니다. 마치 굴뚝에서 불을 때도 사명당이 화상을 입지 않는 것처럼, 지수화풍(地水火風)으로 이루어진 몸에 탐진치가 있으면 불타는 고통을 겪지만, 자신을 분리하면 고통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인생을 드라마처럼, 주인공처럼

인생을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입니다. 이는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주몽 드라마를 볼 때 내가 주몽이 되어 뛰어다니지만, 주몽이 죽을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인생도 내가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조연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지만, 주인공은 이 우주의 주최자로서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주체성의 고귀함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 했습니다. 이는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 아래 내가 가장 고귀한 존재라는 주체성을 분명히 가져야 합니다. 각 개인이 주체성을 가지고 사물을 바라보면 흔들리지 않지만, 주체성을 잃어버리면 객체가 되어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인생의 조연이 됩니다. 본인이 죽으면 우주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체성을 가지면 인생은 변하지 않는 동시에 변하는 것이 없는 역설적인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가까이서 보면 모든 것이 변하지만, 멀리서 지구를 보면 변하는 것이 없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지렁이가 바글거리는 지옥 같지만, 멀리서 보면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입니다. 고통은 내 마음에서 비롯되며, 내가 보는 관점에 따라 고통이 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합니다. 주체성이 있으면 즐거움과 고통에 휘둘리지 않지만, 주체성이 없는 사람은 휘둘립니다. 고통이 닥쳐도 사계절의 순환처럼 받아들이면 놀랄 일이 없습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진정한 의미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교만이 아니라, 하늘과 땅 아래 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주체성이 뚜렷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을 가장 존귀한 존재로 인식해야 합니다. 공이 날아오면 무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처럼,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엄청난 방어 능력을 발휘합니다. 뇌에서 명령한 적이 없는데도 몸이 반응하는 이러한 무조건 반사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입니다.

석가모니는 삼계(지계, 인계, 천계)가 모두 고통(三界皆苦)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당안지(我當安之)” 즉, 나는 당연히 편안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고통이 있어도 나는 변함없는 주체성을 가지고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고귀한 주체성입니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가 이토록 대단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신의 작품

인간은 신의 작품입니다. 다빈치가 만든 모나리자가 수천억의 가치를 지니듯, 신이 창조한 인간은 그보다 훨씬 더 고귀한 존재입니다. 모나리자 그림 수천 개를 줘도 한 사람과 바꿀 수 없습니다. 인간은 신의 작품이기에 무시되거나 괄시받아서는 안 됩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은 모두 모나리자 그림보다 비싼 존재입니다.

유전자의 변화와 마음의 힘

인간의 몸은 100조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각 세포에는 46개의 염색체가 있으며, 염색체 하나에 4만 개의 DNA가, DNA 하나에 50만 개의 유전자가 있습니다. 이 엄청난 수의 유전자가 우리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마음을 기쁘게 잘 쓰면 유전자가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키 작은 엄마가 키 큰 딸을 낳는 것처럼, 유전자는 마음에 의해 변화할 수 있습니다. 다윈의 진화론도 사실은 종이 지역에 따라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물속 먹이를 잡으려던 새의 부리가 길어지는 것처럼, 환경과 마음에 따라 유전자는 변화합니다.

이러한 유전자의 변화는 세포와 염색체, DNA에 영향을 미쳐 우리 몸 전체를 바꿉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뒤에는 “삼계개고 아당안지”가 붙어 있습니다. 이는 석가모니의 말씀이며, 유전학적으로도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관찰자 시점과 이성적 판단

고통은 자기 마음 아닌 곳에서 나오는 것이 없습니다. 무조건 반사처럼, 우리는 의식하지 못해도 자신을 보호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제3의 눈과 같습니다. 언제나 나를 내가 보면 안 됩니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를 봐야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운전 중 사고가 났을 때, 당사자가 아닌 보험회사 직원처럼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면 감정 싸움을 피하고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습니다.

희로애락애오욕은 감정이지만,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네 가지 마음은 이성적인 마음입니다. 특히 측은지심은 타인의 어려움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태도를 갖게 합니다. 이러한 이타적인 마음은 고통을 줄이고 화합을 이끌어냅니다.

자본의 윤리: 이타주의적 자본주의

자본에는 윤리가 있어야 생명력이 있습니다. 윤리 없는 자본주의는 타락하고 불경기를 초래합니다. 은행이 연체 이자를 올리는 대신, 연체 원인을 분석하여 이자를 감면해 주는 자본의 윤리가 필요합니다. 국가가 불경기를 만들었다면, 영세민들을 위해 은행에 지원하여 경매를 피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현재의 자본주의는 이기주의적 자본주의로 변질되어 서민 가정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타심으로 고통을 극복하다

고통은 근본적으로 각자의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이타심을 가질 때는 고통이 없지만, 이기심으로 뭉쳐 있으면 모든 것이 고통이 됩니다. 슈바이처나 페스탈로치처럼 이타심으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고통이 오히려 낙이 됩니다. 고통을 바라보는 눈이 이타심이냐 이기심이냐에 따라 고통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일자리가 없어 구청에서 일당으로 모래주머니를 나르는 청년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를 마을을 지키는 봉사라고 생각하면 적은 돈을 받아도 불만이 없고, 운동 삼아 즐겁게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당만 바라보고 이기심으로 일하면 힘들고 불평만 늘어 병이 됩니다. 고통은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고통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고통이고 모든 사람이 원수처럼 보입니다.

마음의 포도당: 사단칠정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바라볼 때, 우리는 사단(四端)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 네 가지 이성적인 마음을 모든 사람을 만날 때 적용해야 합니다. 성경이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가르치듯이, 우리는 타인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이타심에 써야 고통이 없습니다. 이기심에 쓰면 모든 것이 고통이 됩니다. 밥 먹는 것도 이기심으로 먹으면 고통이지만, 이타심으로 먹으면 이빨 운동이 되고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행위가 됩니다.

뇌에 필요한 포도당이 부족하면 치매 증상이 나타나듯이, 마음에도 포도당이 필요합니다. 마음의 포도당은 바로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입니다. 마음에 독소를 집어넣는 것은 포도당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도 항상 윤활유와 호르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침 식사를 통해 뇌에 포도당을 공급하듯이, 마음에도 이타적인 마음의 포도당을 공급하여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