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상상의 한계와 지적 수준의 차이
인간의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상상은 인간의 인지 기능에 속하지만, 그 범위는 개인의 지적 수준, 연령, 교육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일반 서민의 상상은 좁고, 공상가의 상상은 또 다르며, 과학자의 상상은 더욱 폭넓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상상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며, 알지 못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예를 들어, 공주가 날아다니는 것을 상상할 수는 있지만, 날아다니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어린아이는 이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비행기나 새처럼 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은 이미 본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우주의 진실: 상상을 초월하는 실재
실제 우주는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우주를 상상해왔지만, 기독교가 수천 년 동안 천동설을 상상했던 것처럼, 이는 과학적 데이터가 없는 상상에 불과했습니다.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이야기했을 때도 당시에는 과학적 상상이었을 뿐입니다. 결국 상상과 상상이 싸우다가 힘이 센 쪽이 이기는 역사가 반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간이 사는 별이 정확히 몇 개 있는지 이해하고 있습니다.
허경영이 제시하는 우주의 구체적 진실
인간이 사는 별의 비율은 매우 높으며, 저는 그 숫자를 정확히 제시합니다. 인간이 사는 별은 362무 8,800불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이 별들은 다양한 생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헬륨 가스가 아닙니다. 생 다이아몬드가 빛을 내며 빛의 폭풍을 일으키는 것이 마치 헬륨 가스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이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실입니다. 한 번도 듣거나 보지 못한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새를 보고 비행기를 상상하여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상상은 항상 본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형이상학적 상상의 어려움과 신의 영역
여러분은 태양이 생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고 그것이 폭발한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과학적인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형이상학적인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의 상상은 기껏해야 눈으로 본 것들을 연결하여 조합하는 수준입니다. 공중 부양이나 새처럼 날아다니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1초 만에 120억 광년을 이동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인체와 우주의 복잡성: 상상을 초월하는 신비
예를 들어, 인간의 대장에는 백조 마리 정도의 미생물, 즉 유산균이 존재합니다. 과학자들이나 의사들이 이를 말하기 전에는 아무도 그 존재나 수를 알지 못했습니다. 미생물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몸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심장이 뛰고 혈액이 순환하는 과정 또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합니다. 뇌의 혈관 하나만 잘못되어도 전신이 마비될 수 있습니다. 뇌 용량이 지적인 수준과 관련이 있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신명학적이고 과학적으로 탐구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인간은 기껏해야 IT나 인공지능 정도를 상상할 수 있을 뿐입니다.
신의 세계와 무한 지능의 가능성
그러나 신의 세계에 대한 상상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컴퓨터보다 더 무한한 지능을 가질 수 있고, 전 세계 언어를 모두 알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모든 만물이 저에게 축복받은 사람은 무한한 지능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제가 대천사를 넣어주면, 대천사에게 비행기가 추락할지 물어보고 안 타면 됩니다. 이것은 상상이 아닙니다.
상상력의 근거와 한계
상상력을 펼치는 것도 전대미문의 영역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어느 정도 근거가 있고 인간의 지적인 능력이 접근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상상이 가능합니다. 우주를 보지 않았다면 우주에 대해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옛날에 땅속에 도시가 있었다거나 지구 속에 도시가 있다는 이야기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에 불과합니다. 마그마가 있는 뜨거운 곳이 아니라 안데스 산맥 300km 아래에 그런 도시가 있다는 말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우주인들이 거기에 기도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
백궁에서의 무한한 지능과 상상력
백궁이라는 이상 세계에 가게 되면 지능이 무한대가 되므로, 상상력 또한 달라집니다. 인간의 지능은 한계점이 있어, 지능 100이나 150을 넘으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너무 머리가 좋으면 갑자기 미쳐버리는 경우가 과거에도 많았습니다. 이는 인간이 어느 선을 넘어서 우주의 비밀을 알게 될까 봐 신이 요절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면, 그것은 금단의 지역이 됩니다.
철학적 탐구와 논리의 비약
철학적으로 너무 깊이 사색하고 탐구하면 논리의 비약이 생길 수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만법귀일”, 즉 만 가지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고 말합니다. 그 하나는 마음입니다. “나는 불생불멸이요, 태어난 적도 없고 죽은 적도 없다”고 말하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재산이 얼마냐고 물으면 “내 몸인데 뭐가 불안하고 줄어드냐, 돈은 은행에 항상 있으니 내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착하게 살았냐고 물으면 “불법이죠. 더러운 것도 없고 깨끗한 것도 없어요. 이 세상에 다 똑같아요”라고 답하면 할 말이 없습니다.
고통 없는 삶과 재산에 대한 초월적 관점
상상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깨끗한지, 어떻게 살아야 더러운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고통입니다. 모든 문제의 답은 “우리는 더러운 놈도 없고 깨끗한 놈도 없고, 태어난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불생불멸, 부정불가, 늘어나는 것도 없고 손해 보는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늘어나는 것에 집착하여 자본주의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재벌의 재산 관념: 공익적 소유
이재용 회장이 삼성그룹의 주인이지만, 삼성그룹의 돈과 자신을 직접적으로 연관시키지 않습니다. 그는 부회장으로서 업무만 수행할 뿐, 그룹의 돈 버는 것이 자신과 지나치게 연관되어 있다고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는 편안해 보이며 장사꾼 같지 않습니다. 그가 가진 모든 재산은 공익적인 것입니다. 삼성 가족이 먹고살아야 하고, 국가에 세금을 내어 국가의 사역에 쓰여야 합니다.
재벌의 실상: 담보된 주식과 빈털터리
이건희, 이재용 정도의 재벌은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삼성 가족과 대한민국 가족이 먹고살아야 하므로, 자신은 하루 세끼만 먹으면 되니 삼성이 잘 되기만 바랄 뿐, 절대 개인 돈이 아니라고 여깁니다. 돈이 늘어나든 줄어들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돈을 나눠 쓰고 유세 떨며 카드 긁는 일도 없습니다. 재산이 많고 적음을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재벌은 기껏해야 출근해서 하루 세끼 밥 먹는 것 외에는 실업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재벌의 고달픈 현실과 국민의 오해
사람들은 재벌을 부러워하지만, 그들은 실제로는 행세하지 않습니다. 이재용 회장은 조용하고 여성 같습니다. 그의 주식은 100% 은행에 담보로 들어가 있습니다. 삼성이 빌린 돈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이재용의 모든 주식은 은행에 담보로 잡혀 있습니다. 재벌들은 국민들에게 국가 돈을 빌려 국민들을 살리고 있을 뿐, 개인 돈은 전부 압류되어 은행에 담보가 되어 있습니다. 모든 주식이 담보되어 있어 마음대로 팔아먹을 수 없습니다. 대주주들은 융자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최고 경영자의 주식은 담보되어 있어 빈털터리입니다. 오히려 월급쟁이들이 더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재벌의 자살과 상상의 비현실성
우리나라 첫 번째 부자였던 사람도 70조 원의 돈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경남 건설 회장은 세금 문제로 자살했습니다. 재벌들은 항상 뜯기는 고달픈 삶을 삽니다. 국민들은 “이재용은 재산이 얼마가 있을 거야”라고 상상하지만, 이러한 상상은 현실성이 없습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적 상상과 현실의 깨달음
미래에 대한 상상은 “내가 나중에 대통령이 될 거야, 장관이 될 거야, 재벌이 될 거야”와 같이 개인들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려는 희망적인 상상입니다. 청년들이 야망을 가지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 이것은 꿈이었구나. 월급을 다 모아봐야 몇억인데, 무슨 재벌이 되겠는가?”라는 현실을 알게 됩니다. 젊을 때는 그렇지 않지만, 결국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