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지의 본질과 오남용의 위험성
인간에게는 영혼과 함께 1%의 자유의지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은 이 자유의지를 오남용하여 세상 물질을 사유화하고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습니다. 우주를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신조차 인간의 자유의지만은 지켜볼 뿐입니다. 그렇다면 신은 인간이 자유의지를 어떻게 사용하기를 원하며, 올바른 사용법은 무엇일까요? 자유의지를 포기하거나 반납할 수 있는지, 혹은 자유의지가 없는 영혼도 존재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성 정체성 혼란: 자유의지 남용의 단면
성의 정체성은 남자로 태어났으면 남자로 지켜야 하는 고정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이들이 성 정체성을 찾는다며 고정된 성을 바꾸려 합니다. 이는 자유의지의 남용 사례입니다.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화장실에 남녀 표시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자신을 남자라고 생각하면 남자가 되고, 여자라고 생각하면 여자처럼 꾸미고 나옵니다. 태어난 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부모가 부여한 성에 불만을 품고 자유의지로 성을 바꾸려는 시도가 나타납니다. 외국에서는 40%의 학생들이 성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으며, 이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성을 바꾸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자유의지가 남발되는 시대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절대 의지와 섭리: 자유의지의 기준점
남녀 7세 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옛말처럼, 성은 완전히 정체성이 있는 진리입니다. 그러나 자유의지가 남용되면서 이 진리가 왜곡되어 죄악으로 변질됩니다. 남녀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중성적인 인간들이 나타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결혼을 거부하는 등 자유의지가 남용되는 현상이 심화됩니다.
신(神)의 의지는 절대 의지이며, 이는 섭리(攝理)와 같습니다. 신은 X 염색체와 Y 염색체를 만들었으며, 이는 변동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로 자신의 성을 바꾸려 하며, 이는 창조자의 절대 의지, 즉 섭리를 저버리는 행위입니다. 진리를 저버리면 우주의 섭리가 망가집니다.
에덴동산의 타락과 인류의 원죄
자유의지 남용의 역사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는 신의 절대 의지인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자유의지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이는 신의 절대 의지를 꺾은 행위이며, 인류 최초의 죄, 즉 원죄의 시작입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신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신의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형제간의 갈등과 자유의지 남용의 확장
원죄 이후에도 자유의지 남용은 계속됩니다. 가인은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벨을 살해했습니다. 이는 “살인하지 말라”는 신의 절대 의지를 거역한 행위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의 후손들은 수천 년간 싸우고 있으며, 이는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는 신의 말씀을 저버린 자유의지 남용의 결과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요셉을 시궁창에 빠뜨린 사건, 야곱이 형 이삭의 장자권을 빼앗은 사건 등 성경 속 많은 갈등은 자유의지 남용으로 인한 범죄의 사례입니다.
이러한 형제간의 싸움은 전 세계적인 대전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 아파하는 인간의 심리처럼,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시기 질투가 발생하고 자유의지가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이는 인류를 파멸로 이끄는 자유의지 남용의 심각성을 보여줍니다.
사회적 책임과 자유의지의 올바른 사용
자유의지를 올바르게 사용하려면 ‘의좋은 형제’처럼 서로를 배려해야 합니다. 직장을 얻은 사람은 직장을 얻지 못한 친구를 위로하고 도와야 합니다. 자신이 잘나서 직장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자유의지를 남발하고 친구를 비난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다른 사람의 직장을 빼앗은 것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고, 자신의 성공이 타인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자유의지는 신에 대한 무한한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신처럼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의지는 소중하지만, 이를 남용하면 신보다 높은 위치에 오르려 하고 신을 시험하려 합니다. 이는 잘못된 자유의지 사용입니다.
절대 의지를 기준으로 삼는 자유의지
진정한 자유의지는 언제나 절대 의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절대 의지는 저울의 추와 같아서, 추가 없는 저울은 기준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신이 “넌 남자야, 넌 여자야”라고 결정한 것처럼, 절대 의지는 변동 없는 기준입니다.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 기준에 맞춰 자유의지를 사용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주신 것에 감사하고 보답하려 노력하는 것이 부모에 대한 자유의지의 올바른 사용입니다.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하는 것은 ‘방종’이며, 이는 구제불능의 인간을 만듭니다. 오늘날 99%의 인간들이 방종에 빠져 자연계를 파괴하고, 부모의 말을 거절하며, 성 정체성을 마음대로 바꾸려 합니다. 이는 순종이 사라지고 방종만이 남은 시대의 비극입니다.
십계명과 섭리: 자유의지의 잣대
기독교인에게는 십계명이 자유의지의 잣대입니다. “다른 신을 내게 두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등 십계명은 자유의지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불교에도 이와 유사한 기준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준, 즉 절대 의지는 다른 말로 섭리입니다. 신의 섭리에 맞춰 진리가 존재해야 합니다.
각 나라의 진리는 다를 수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공산주의가 진리이고, 북한에서는 전체주의가 진리입니다. 그러나 섭리는 같습니다.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라”, “부모를 공경하라”와 같은 기본적인 하늘의 섭리는 북한이나 남한이나 동일합니다. 진리는 나라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섭리는 저울의 추처럼 변하지 않는 기준점입니다. 자유의지는 이 기본적인 섭리를 따라야 합니다.
양심과 자유의지: 방종의 시작
자유의지는 양심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양심을 도적질하는 것이 바로 방종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신의 명령을 어긴 것은 양심을 저버린 행위입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한문 글자에 담겨 있습니다. ‘금할 금(禁)’자는 두 개의 나무(선악과와 생명나무)를 보지 말라는 명령을 의미하며, ‘배 선(船)’자는 노아의 방주에 여덟 식구가 탄 것을 나타냅니다. 모든 한문은 기독교의 성경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는 신의 섭리가 언어 속에 녹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귀신 ‘귀(鬼)’자 역시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꼬시는 마귀를 상징합니다. 한문이 기독교보다 수천 년 전에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한자 한 자를 풀면 기독교의 내용과 일치합니다. 이는 자유의지가 양심을 저버리고 방종으로 흐를 때, 인류의 범죄가 시작됨을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