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Huh Kyung-young’s Insight: The True Meaning of Asceticism and the Path to Heavenly Desire, Beyond Earthly Suffering and Maslow’s Hierarchy of Needs – April 23, 2025

고행의 본질: 좁은 길과 인간의 욕망

고행에 대한 질문을 드립니다. 불교에서는 고행을 위해 독신 생활을 하거나 잠을 자지 않는 용맹정진을 하기도 하며, 기독교에서는 금식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또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과 궁즉통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고행을 했을 때 길이 열리는 경험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고행의 법칙은 무엇이고 올바른 고행은 무엇인지 궁금하며, 고행이 극에 가까워 중도와 거리가 먼 것 같은데 고행과 중도의 관계는 어떻게 봐야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하늘로 가는 길은 실제 좁습니다. 좁을 착(窄)자를 씁니다. 하늘로 향하는 도를 향하거나 천로역정(天路歷程)은 심착(甚窄)입니다. 매우 좁습니다. 이 좁다는 말은 고행을 의미합니다. 넓은 길은 우리가 그냥 갈 수 있지만, 좁은 길은 절벽길이 있고 험난합니다. 좁은 길은 매우 험난하고 좁습니다.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 것이 고행입니다.

석가모니의 고행과 깨달음의 한계

불교에서는 고행으로 뭐든지 해결하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행을 통해 해결하려 했지만, 석가는 실패했습니다. 6년 고행을 해봤지만 헛것이었습니다. 고행을 마치고 나와 여자가 준 우유죽을 먹으며 고행은 헛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석가는 고행을 해보기 전에는 고행이 효과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고행을 해보니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육체를 괴롭혀서 무엇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육체를 고행시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육체를 괴롭히면 마음이 해탈할 수 없습니다. 고의적인 고행은 소용이 없습니다. 고의적으로 고행을 해서 도를 깨닫겠다는 것은 전부 헛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은 에너지가 없습니다. 정각, 열반, 해탈, 보리, 반야, 삼매, 무아, 성불 이 여덟 가지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석가모니 입에서 나온 모든 말은 에너지가 없습니다. 자기가 육체적인 고행을 해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석가모니 나름대로 수행법을 여러 가지 했지만, 명상이나 참선, 사마타 등 그 모든 것이 에너지가 없습니다.

기독교의 축복과 불교의 극락

기독교에는 축복, 성령, 은사, 부활, 영생, 천국이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극락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존재하는데 왜 극락은 존재하지 않을까요? 산을 올라가는 사람이 정상에 도달하면 그곳이 극락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상에 올라가면 다시 내려와야 합니다. 극이라는 단어는 천국에는 쓰지 않습니다. 천국은 그 자체가 보통 세계입니다. 지상을 벗어난 사람들이 볼 때는 그곳이 영원히 사는 세상입니다. 그곳에는 레벨만 있으면 됩니다. 선행을 통해 레벨을 만들고 기여만 하면 됩니다. 그곳에는 돈이 필요 없습니다.

극락이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추상적인 것입니다. 정각, 열반, 해탈, 보리, 반야, 삼매, 무아, 성불 여덟 가지는 추상적인 것입니다. 불교의 고행은 추상적인 것입니다.

삶 자체가 고행이며 욕망의 길

고행을 다른 말로 바꾸면 삶입니다. 삶을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기 때문에 고행이라는 말을 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아들이 서울대에 붙으면 앞으로 좋은 배우자를 얻으려고 또 고통을 겪어야 하고, 아이를 얻으면 또 좋은 아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학원에 보내야 합니다. 이것이 계속 반복되어 마음을 놓을 날이 없습니다. 아무리 성공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행은 실제로는 지상의 삶 그 자체를 고행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평범한 삶의 반복일 뿐입니다. 남편이 감옥에 가는 것도 아내의 지조를 확인할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남편이 감옥에 1년 있다 오니 아내가 일해서 적금을 들어놨다면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지만 어떤 사람은 보따리 싸서 행방불명되기도 합니다. 내가 감옥에 가는 것도 제자들의 테스트입니다. 누가 정신 체력이 있는 진짜배기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오는 모든 것은 이 세상의 삶일 뿐이지 고행이나 극락은 없습니다. 오히려 오직 천국 가는 좁은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넓은 길은 쉬운 길, 인간의 욕망의 길입니다. 인간의 욕망은 매우 넓습니다. 욕망으로 가는 길은 대로입니다. 발만 들이면 전부 위험한 곳입니다. 발만 들이면 욕망의 길입니다.

하늘의 이치에 맞춰 가는 길은 10만 명 중 한 명 꼴입니다. 좁은 길입니다. 모든 사람은 인간의 욕망의 넓은 길로 가려고 합니다. 모든 사람이 희로애락, 애오욕에 걸립니다. 성질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내는 칠정(七情)에 끌려다니며 큰 길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욕망의 길입니다.

매슬로의 욕구 5단계와 영성 욕구

욕망의 길도 단계가 있습니다. 맨 밑에 있는 것은 생리적 욕구입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야 하는 생리적 욕구가 채워져야 합니다. 택배하는 사람은 생리적 욕구를 위해 고난을 겪습니다. 바쁘게 뛰어다녔는데 몸은 병들고 차는 고장 납니다. 생리적 욕구를 채우고 나면 그다음 단계는 안전 욕구입니다. 안전 욕구는 주택을 수반합니다. 집이 있어야 하고, 마누라도 있어야 하고, 아이도 안전해야 합니다. 이것을 채우기가 더 어렵고 고난이 따릅니다. 은행 이자가 들어갑니다.

안전 욕구가 채워지면 그다음은 사회적 욕구입니다. 사회적 욕구가 채워지면 명예의 욕구가 나타납니다. 이것도 고난이 따릅니다. 선거에 떨어지고 여러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다음은 존경 욕구입니다. 존경받고 싶은 욕구입니다. 존경 욕구 다음에는 자아실현 욕구가 옵니다. 이것이 인간의 마지막 욕구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왜 왔는지, 왜 사는지 등입니다. 이 모든 것은 고난입니다. 욕(欲)자가 붙었기 때문입니다. 이 길은 넓고 모든 인간이 이 길로 갑니다. 이것이 고속도로와 같습니다.

이런 욕구 없이 마지막으로 추구하는 욕구는 영성 욕구, 즉 천국 욕구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욕구는 똥구멍과 같습니다. 이 세상은 100년이지만, 천국은 무한대입니다. 천국 욕구를 알고 나면 남과 싸울 일도 없고, 이 세상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돈이 와도 놀러 다니고 자랑할 필요도 없습니다. 술을 봐도 그렇고 꽃을 봐도 그렇고 초월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즐거움과 희로애락, 애오욕을 초월하는 것이 영성 욕구입니다.

이 영성 욕구는 매슬로가 이야기한 인간의 5단계 욕구에는 없습니다. 제가 덧붙인 것입니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는 전 세계가 인정하는 것입니다.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에 대한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오면 그다음에는 영성 욕구가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를 가고 절에 가는 것입니다. 이 영성 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헛다리를 짚습니다. 사실은 욕구에 종교가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으로는 해답이 없습니다.

천국 욕구를 실제 채워주는 자가 와 있습니다. 이 욕구가 붙은 것 자체가 고난입니다. 천국은 욕이 아닙니다. 천국 가는 것이 주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자아실현을 넘어서면 그것은 욕구가 아니라 깨달음입니다. 깨달으니까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구는 이 자체가 전부 고행입니다. 석가모니는 고행을 별도로 떼어냈습니다. 왕궁에 있어도 고행입니다. 전쟁이 쳐들어올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다 죽을 수도 있습니다. 왕궁보다 무서운 곳이 없습니다. 왕궁에 있는 사람은 전쟁이 나면 전부 죽습니다.

고난은 욕구가 있는 곳에 따라다닙니다. 욕구가 없어지면 고난도 없습니다. 실과 바늘처럼 욕구가 있으면 고난이 항상 따라갑니다. 해외에 가서 선물을 살 때,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사는 것이 아니라 딸이 좋아하는 것을 삽니다. 그러면 고국에 돌아갈 때까지 기분이 좋습니다. 딸이 얼마나 기뻐할까 상상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을 사면 기쁨은 잠깐입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선물을 구하지 않고 하늘이 좋아하는 선물을 구해 놓아야 합니다. 하늘에서 기뻐할 선물을 가지고 있으면 불안할 것이 없습니다. 여행의 피곤함도 없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선물을 구했다면 어머니에게 갈 때까지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누구도 기뻐할 선물이 없습니다. 하늘에 가야 내가 여기서 좋은 일하고 착하게 사는 그 선물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아무리 선물 준다고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으로 가는 것이 목표인 사람은 희로애락, 애오욕이 필요 없습니다.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사단(四端)이 먼저 형성됩니다. 이것은 이성입니다. 자아실현에 가면 자욕이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을 가지게 됩니다. 욕구를 초월하면 이 네 단계를 가졌다고 천국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알 뿐입니다. 천국 가려면 사단도 필요 없습니다. 행동에 옮겨 놓아야 합니다. 그것이 축복 명패입니다.

욕구 5단계와 고난의 섭리

욕구의 5단계는 고난의 5단계입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려면 고난과 시험이 따릅니다. 이 욕구의 5단계는 인간들의 철학일 뿐입니다. 실제 천국을 가는 것은 섭리입니다. 섭리는 진리 위에 있습니다. 진리는 섭리를 따라갈 수 없습니다. 진리는 지구에서 필요한 것이고, 섭리는 하늘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하늘의 우주 법칙은 섭리이고, 지구의 우주 법칙은 진리입니다.

석가모니의 깨달음과 걸식의 문제점

석가모니의 고행은 철학적으로 인간의 존재 이유를 깨닫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진리까지만 깨달은 것입니다. 아무리 깨달아도 나중에는 걸식해야 합니다. 남들이 죄를 지으면서 농사짓고 벌레 잡아가면서 얻은 것을 얻어먹어야 했습니다. 석가모니는 죽을 때까지 걸식했습니다. 걸식하는 사람들은 생명체를 죽여가며 농사를 짓습니다. 스님은 살생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얻어먹습니다. 이것은 노동을 하지 않고 인간을 부려먹는 것입니다. 절에 앉아 있으면 시주가 올라옵니다.

석가모니 제자 500명이 한곳에 모여 있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동네는 작은데 제자 500명이 모여 앉아 있으니 식사 해결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2만 명이 따라왔는데, 기적으로 밥을 먹였습니다. 2만 명 중 어른만 5천 명이고, 애들과 여자까지 합치면 2만 명 정도 됩니다. 2만 명이 화장실도 없이 노상에 끌고 다녔습니다. 이스라엘에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350만 명이 애굽에서 이동해 왔는데, 350만 명이 화장실이 없었습니다.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350만 명은 우리나라 60만 대군의 여섯 배입니다. 60만 대군을 먹이는 데도 돈이 엄청나게 들어가는데, 350만 명의 이스라엘 국민들이 해방되어 애굽에서 풀려났으니 전부 허벌이었습니다.

진리를 설파한 자들이 전부 실패한 것입니다. 전부 허위였습니다. 제가 옴으로써 이제 이것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저는 인터넷 시대에 와서 인터넷으로 빨리 알리는 것입니다. 지금 시작이 되었고, 금년부터 더 알려질 것입니다. 저를 잡으려고 하고 안 들어가려고 하고 이러다 보니 언론에 나오게 됩니다. 이제 허경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허경영이라는 사람을 괴롭히고 잡아들이려고 하는 여론이 슬슬 저에게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등장입니다. 역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되어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금년에 신인출(神人出), 진사성인출(辰巳聖人出)이 나옵니다. 제가 이제 두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물속에서 용이 올라올 때 지저분하게 물 뚝뚝 떨어지면서 올라오지, 얼굴 싹 닦아서 깨끗하게 올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지저분하게 물이 온 전신에 뚝뚝 떨어지면서 올라오는 것입니다. 진사 성인이 나온다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