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 오해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의 체제를 말할 때 민주주의보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표현할 때가 많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과 더불어 개인의 자유와 권리도 함께 보호하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유를 단순히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무정부주의로 착각하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자유란 무엇이며,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저의 견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공산주의의 선전 도구로서의 ‘자유’와 ‘민주’
자유는 공산주의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민주 또한 공산주의가 가장 많이 붙이는 단어입니다. 백성 대중을 위주로 하니 민주가 붙는 것입니다. 북한의 정식 명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반드시 붙어 있습니다. 자유나 민주주의는 공산 국가들의 주요 주제이자 선전 도구입니다. 옛날에는 노예로 잡혀 소작농 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자유가 없다고 여겼습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 밑에 노예가 되어 있다고 프로레타리아를 이런 식으로 몰아세웁니다. 공산주의는 전부 평등하고 자유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민주와 자유는 공산주의의 전형적인 선전 도구입니다.
자본주의와 자유의 역설적 관계
자본주의는 다른 말로 차별주의입니다. 돈 없는 사람은 자유가 없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10시간 이상 일을 해야 하니 자유가 박해받는 것입니다. 돈이 없으면 자유가 없는 것입니다. 낮에 일하고 밤에 또 일해야 하는 형국이니, 자본이 있는 사람은 골프를 치며 자유를 누리지만, 없는 사람은 자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24시간 주인 따라 운전해야 하고, 택배 기사는 택배를 해야 합니다. 자유가 그만큼 제한을 받습니다. 자본주의가 자유의 침해를 가장 많이 받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는 돈이 많은 사람은 무제한의 자유를 누릴 수 있고, 없는 사람은 무조건 직장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일해야 밥을 먹습니다. 공산주의는 국가에서 배급이 나오니 어떤 면에서는 자유에 그렇게 억압받는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반대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의 다양한 노예 상태
우리는 집을 은행에서 빌렸습니다. 우리는 은행이라는 곳에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금전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을 은행에 이자로 갖다 줍니다. 결국 은행의 노예, 자본의 노예, 시간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를 노리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예가 아닌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한 5% 정도는 부모로부터 건물을 물려받아 걱정 없이 살지만, 이들조차도 부모가 “절대 사업하지 마라. 사업하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고 유언합니다. 사업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사기꾼들에게 속아 수천억을 날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입니다. 재벌 2세들이 부모가 죽으면서 “절대 사업을 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강남에 빌딩을 가진 사람들이 자식에게 빌딩을 물려줄 때 첫 번째 약속이 사업하지 말 것, 두 번째는 임차인들을 만나지 말 것입니다. 임차인을 만나면 인정에 휩쓸려 말려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 관리 직원들이 만나야지, 주인은 만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아들이 빌딩을 관리하다가 날려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괜히 동업자로 도장이 찍히면 건물 뺏어 먹는 귀신들에게 당할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어마어마하게 무시무시한 경제 체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본이 있으면 위험합니다. 특히 은행에서 빌렸다면 순식간에 빚쟁이가 되어 헤어날 길이 없습니다. 반면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이 없으니 고민할 것이 별로 없습니다. 그들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항상 내세웁니다. 은행가의 노예, 권력자의 노예,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이 자본주의입니다. 이곳은 민주주의가 많은 나라가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자본주의는 자본을 가진 자가 주인이라는 의미이므로, 밑에 사람들은 자유가 제한받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의무를 다한 자의 권리
자유는 의무를 다한 사람만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납세 의무, 병역 의무, 국방 의무와 같은 의무를 다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권리입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사업을 못 하게 됩니다. 국세청이 가만두지 않습니다. 의무를 다하지 않을 때는 자본주의는 예외가 없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으면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실패하면 거지가 됩니다. 정신적인 자유가 있을 수 없습니다. 불안한 것입니다. 사업을 해본 아버지가 천신만고 끝에 빌딩을 사다 놓고 아들에게 “절대 사업하지 말고 이것만 가지고 살아라”고 하는 이유입니다. 강남에 빌딩을 가진 사람들 중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아들들이 사업한다고 하다가 날린 사람도 많습니다. 사업 경험도 없으면서 건물 담보를 해주고 사인 한 번만 하면 망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입니다. 그런 전문가들이 주변에 다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절대 임차인 만나지 마라. 사업하지 마라. 빌딩 팔지 마라. 그대로 가지고 있어라. 그러면 너는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진정한 자유를 가진 사람도 사업을 마음대로 못 하게 합니다. 자유가 없습니다. 재산을 지키려니 자본주의에서는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자유가 어마어마하게 제한받고 있습니다. 우선 시간을 내가 좀 놀고 싶어도 휴일이 아니면 꼼짝 못 합니다. 자유 제한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와 방종의 경계
자본주의는 자유보다는 우리 국민들이 방종으로 빠져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방종은 자유의 반대입니다. 방종은 의무를 지키지 않고 누리는 자유입니다. 의무가 없는 자유는 방종입니다. 자유는 의무가 더해진 것이고, 의무가 더해지지 않으면 방종입니다. 우리의 자본주의는 의무가 더해지지 않은 방종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99%가 방종으로 가고 있습니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와 자유의 제한
자유는 정치를 떠나서 중요한 영역입니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사회적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모든 욕구는 자유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생리적 욕구도 자유에 관계된 것이고, 안전에 대한 욕구도 자유에 관계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는 전부 제한이 있습니다. 의무가 따릅니다. 세금 내지 않은 돈으로 밥을 먹을 수 없습니다.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도 세금을 내야 합니다.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사회적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는 모두 경쟁입니다. 이 다섯 단계를 거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이 욕구를 실현하는 자가 별로 없습니다. 대부분 생리적 욕구만 충족하다가 인생을 마칩니다. 자아실현은 고사하고 사회적 욕구도 얻지 못합니다. 사회적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결국 자유를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가 제한받고 있는 것입니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는 자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마지막 자아실현의 욕구인데, 이 자아실현이 바로 자유입니다. 법을 어기지 않는 자유, 방종이 아닙니다. 이 다섯 단계에는 방종이 끼어들 수 없습니다. 생리적 욕구에 방종이 끼어들면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정신을 차려도 이 5단계 욕구조차 어렵습니다.
공산주의와 수동적 자유
공산주의는 집단 체제입니다. 시키는 것만 하면 됩니다. 욕구를 마음대로 만들 수도 없고, 아예 이런 욕구가 없습니다. 그저 수동적이고 편합니다. 이상한 일을 하다가 반동으로 몰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남한에 와서 처음에는 경쟁 체제가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회의를 느낀다고 합니다. 지역, 학벌 등으로 차별받는 것을 보며 차라리 경쟁이 없는 사회가 나을 뻔했다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유에 대해 피상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무엇일까요? 매슬로의 다섯 단계 중 자아실현이 자유이지만, 이것도 완전한 자유가 아닙니다. 그 위에 영성의 자유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영적으로 완전히 독립하여 천국을 갈 수 있는 것, 이것이 진정한 지구 탈출 자유, 지구를 벗어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지구에 묶여 있는 것은 속박입니다. 영적으로 깨어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그것을 ‘대자유’라고 합니다.
무위자연(無爲自然)과 대자유(大自由)
모든 사상에 얽매이지 않는 사상이 무위자연 사상입니다. 그것이 자유 사상입니다. 어디에도 묶이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려고 하면 법에 걸리고, 법이나 윤리가 딱 지키고 있습니다. 형법 몇 조, 민법 몇 조 등 법문이 지키고 있으니 자유가 없습니다. 나중에는 무위자연의 세계를 관리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벗어나는 것을 대자유라고 합니다. 석가모니가 왕으로 있다가 왕실에 얽매여 구속되어 있는 자신을 보고 “나는 왕 안 하렵니다. 나 좀 자유롭게 놔주세요”라고 하며 왕궁을 벗어나자마자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왕궁에 들어가면 각종 왕의 규칙이나 의무에 얽매여 있습니다. 거기서 벗어나니 속박에서 나왔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라고 생각했지만, 거기서 또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설산에 있다가 굶어 죽을 것 같아 내려와 여자가 주는 우유죽을 먹습니다. 결국 매슬로 1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얽매이는 것입니다. 생리적 욕구를 무시했더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생리적 욕구에 얽매여야 합니다. 이것이 대자유가 아닙니다. 산속에 앉아 있을 때는 무위자연이지만, 입에서 “무위자연으로는 못 삽니다”라고 합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입니다. 무위자연은 추상적으로만 존재하고 실제로는 무엇을 먹어야 합니다. 다시 매슬로 5단계 욕구의 1단계인 생리적 욕구로 돌아가야 합니다. 화장실도 가야 하고, 산을 오염시키기도 합니다. 무엇을 먹어야 합니다. 욕구 단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착각한 것입니다. 무위자연이 실현되었습니까? 진정한 자유가 실현되었습니까? 우리가 입이 있는 한, 위장이 있는 한 진정한 자유 실현은 어렵습니다. 석가모니는 왕궁을 벗어나 대자유인이 되었다고 했지만, 가보니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차라리 우유죽을 먹으며 “사람은 먹어야 사는구나”라고 깨달은 것입니다. “내가 일도 안 하고 공짜로 저 여자 것을 먹었네. 이건 죄를 지은 것이네. 업을 지은 것이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계에서 대자연인이 되고 무위자연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우리가 자연인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보듯이, 산에 가서 풀을 먹고 자급자족하지만, 쌀이나 다른 것은 자급자족이 안 됩니다. 내려가서 사 와야 합니다. 결국 돈에 속박을 받는 것입니다. 돈에 구속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유가 아니라 구속입니다. 그래서 자유를 함부로 논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공산주의의 ‘자유’와 ‘민주’ 남용
공산주의는 자유를 막 논합니다.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민주도 논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나라 앞에 민주를 붙입니다. 어느 공산주의 국가나 민주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은 나라 이름이 없습니다.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그들 헌법 1조는 자유입니다. 우리는 기가 막힙니다. 하지만 우리가 자본주의에서 누리는 자유는 방종입니다. 말은 자유라고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전부 방종입니다. 어떻게 하면 법을 어겨서 살아남을까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자유입니다. 우리의 자유는 다른 말로 방종이 아닙니까? 자유의 반대를 우리는 자유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었으면 어떻게 하면 세금을 적게 낼까 연구합니다. 세금에 구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방종입니다. 무엇이든 자유의 반대를 하면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실현이 불가능합니다. 먹고 살아야 하니 속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자유(自由)’ 한자의 심오한 의미
자유(自由)의 ‘유(由)’는 요만큼 음료수가 있는 곳에 빨대를 꽂아 음료수를 빨아먹는 모습입니다. 유(由)자가 그렇게 생겼습니다. 이것을 빨대라고 보면, 과일에 추수통을 꽂아 추수를 빨아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由)자입니다. ‘자(自)’는 자기 스스로라는 뜻입니다.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빨대를 꽂아 빨아먹는 것입니다. 음식을 해 놓고 빨아먹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전(油田)의 유(油)자입니다. 땅속에 기름이 가득 들어 있어 이것을 뽑아 올리는 것이 유전입니다. 지구에서 빨아먹으면 유전이고, 밭에서 빨아먹으면 농사입니다. 밭에서 무엇을 빨아냅니다. 이것이 유(由)자입니다. 여기에 집 뚜껑이 있으면 ‘집 주(宙)’자입니다. 우주할 때 주(宙)자입니다. 우주는 자유를 이 지구라는 곳에서 빨아먹는 것입니다. 유전도 뽑아 올리고 식물도 여기서 뽑아 올립니다. 이 행위를 하는 곳이 집입니다. 이것은 집이고, 밭에 빨대를 꽂아 밭에서 무엇을 뽑아 먹는 것입니다. 농사 지어서 먹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宙)자입니다. 이것은 시간 개념입니다. 풀이 자라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그래서 주(宙)자는 시간을 말합니다. 우주할 때 우(宇)자는 공간 개념입니다. 공간과 시간을 합친 것을 우주라고 합니다. 이것이 왜 공간 개념이냐 하면, 이것은 집 우(宇)자입니다. 이것도 집이고, 집 가(家)자도 있습니다. 집 안에 돼지를 키우면 이것이 집입니다. 집 사(舍)자도 있습니다. 관사나 기숙사할 때 쓰는 사(舍)자는 공동체가 산다는 뜻입니다. 개인이 사는 집은 가(家)자가 붙고, 전체 인구가 다 사는 집은 주(宙)자를 붙입니다. 몇백억이 사는 곳은 우(宇)자가 붙습니다. 이것이 집입니다. 우(宇)는 하늘의 집이고, 주(宙)는 땅의 집입니다. 이것은 공간의 집입니다. 우주 공간 전체가 집입니다. 주(宙)는 지구의 집이고, 가(家)는 가정의 집이고, 사(舍)는 기숙사, 공동체의 집입니다. 이렇게 집이 네 개로 나뉘어 있습니다. 우(宇), 주(宙), 사(舍), 가(家) 모두 집입니다. 우(宇)는 공간 개념이고, 주(宙)는 시간 개념입니다. 이것이 다릅니다. 밭에서는 시간이 걸려야 싹이 나옵니다. 농사입니다. 여기는 시간 걸릴 것이 없습니다. 한자가 이렇게 같은 집자라도 공간 개념, 시간 개념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네 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살든 저기에 살든 이것은 자유입니다. 하지만 실제 살아보면 자유가 안 됩니다. 음식을 해야 하고, 농사지어야 하고, 시간을 뺏기고 노동을 해야 합니다. 진정한 자유가 과연 될까요? 농사를 다 해놨는데 갑자기 태풍이 와서 사과 농사가 다 망가졌습니다. 그것이 자유일까요? 하늘에서는 “누구 사과 농사 짓는 것을 우리가 싹 쓸어버리는 것도 우리 자유야”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면 자유와 자유가 충돌합니다. 우리 인간의 자유와 하늘의 자유가 충돌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재지변입니다. 우리는 집 짓고 잘 사는데 왜 소나기가 와서 다 떠내려갑니까? 하늘이 도대체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 왜 농사 다 지었는데 우박이 와서 다 망쳐버립니까? 농부는 “이게 과연 하늘이 할 짓이냐? 우리가 1년 내내 농사지었는데 잠깐 우박이 와서 사과밭을 초토화시켜 버리네. 그럼 이 농부는 뭘 먹고 살라고 저러냐?”라고 할 것입니다. 하늘에서 우박 때리는 것도 자유입니다. 그 자유와 자유가 충돌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자유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입니다. 집 잘 짓고 사는데 아파트가 지진에 무너집니다. 누가 한 것입니까? 하늘의 자유입니다. 인간이 피해를 봅니다. 자유와 자유도 충돌하는 것입니다. 땅은 “너 살게 해줬는데 우리가 뭐 좀 지진 났다고 왜 우리한테 걸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아니, 하늘이 있다면서 이게 뭡니까? 도대체 하나님은 우리가 뭐 도둑질했습니까? 내가 농사 지어 먹고 살겠다는데 왜 지진 나서 다 무너지고 비가 와서 다 떠내려가 버리고 이거 뭡니까?”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부는 절대로 하늘에 대항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자유는 하늘도 가져가 버립니다. 목숨까지 가져가 버립니다. 우리가 무슨 자유가 어떻고 이래서 하면 무엇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이런 우주의 섭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 자유를 논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모릅니다.
법과 법의 충돌, 자유의 모호성
자유와 자유가 충돌하기 때문에 지방법원과 대법원이 충돌합니다. 고등법원이 지방법원에서는 무죄했는데 고등법원에서는 유죄일 수 있습니다. 지방법원에서는 유죄했는데 고등법원에서는 무죄일 수 있습니다. 무엇을 믿으라는 것입니까? 3심에서는 또 뒤집힙니다. 이렇게 자유와 법과 법도 충돌합니다. 이 판사는 왜 무죄라고 하고 저 판사는 왜 유죄라고 합니까?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자유를 침해하는 것입니다. 왜 이랬다저랬다 합니까? 한 번에 끝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는 이렇게 함부로 논할 수 없습니다. 공간 개념과 시간 개념이 우주입니다. 우(宇)와 주(宙)도 모두 집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의무를 다한 사람만이 주장할 수 있습니다. 인간으로서 의무를 다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인간으로서 의무를 다하는 길은 자살밖에 없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죽었을 때는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으면 누군가 내 때문에 피해를 봅니다. 이것은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남을 딛고 일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와 민주주의는 우리가 굉장히 깊이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왕정 제도와 민주주의의 본질적 유사성
옛날 왕정 제도는 민주주의가 아니었을까요? 왕정 제도도 왕은 항상 백성을 생각합니다. 백성들이 왕을 세웠습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주의를 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다 민주주의입니다. 공산주의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고, 중국도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대의원 대회를 하고 대표를 뽑기 때문입니다. 모두 민주주의 절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 세계가 “우리는 민주주의다”, “우리는 공산주의다”라고 이야기하면 유치원생입니다. 사상과 이념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크게 보면 인간들이 사는 방법이 민주주의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민주주의라도 집에 가면 아버지가 왕입니다. 가장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할아버지가 있으면 할아버지가 왕입니다. 가정도 왕국과 비슷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밖에서는 민주주의인데 집에 가면 가장이 있습니다. 가장이 자기 중심으로 집안을 이끌어 갑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입니까, 독재입니까? 독재입니다. 일일이 아이들에게 투표하고 이러지 않습니다. 그냥 따라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부산으로 이사 가자” 하면 가야 합니다. “우리는 부산 이사 못 가겠어요”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가정들은 민주주의를 한다면서 실제로는 가장 독재 체제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가장이라면 어머니를 따라야 합니다. “엄마, 나 엄마 따라 못 가겠어”라고 하면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독재자를 따라와야 합니다. 어머니가 갑자기 저쪽으로 가자고 하면 따라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것은 독재 체제입니다. 아주 희한합니다. 여러분은 민주주의다, 자유주의다, 자유를 함부로 논하면 안 됩니다.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철학적으로는 엄청난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민주라는 것은 백성이 임금인데, 백성이 임금이라고 말은 해 놓고 실제로는 지록위마(指鹿爲馬)와 같습니다. 사슴을 말이라고 합니다. 신하가 왕에게 “저것은 말입니다”라고 거짓말을 하면 왕이 “그래” 하고 넘어가는 것입니다. 신하가 말을 하면 임금이 따라갑니다. 민주주의에서 백성들이 이야기하면 왕이 따라가 주면 좋지만, 지록위마가 민주주의라는 뜻입니다. 밑에 사람이 이야기하니까 다 믿어버리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지도자가 현명하지 못하면 큰일 납니다. 나라를 망쳐버리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다가 이상하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주의가 대세가 아닙니다. 지도자는 강력한 독재력도 있어야 합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섣불리 논하면 안 됩니다. 굉장히 무서운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민주주의라도 집에 가면 일단 독재 체제입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으면 그 독재 체제를 할수록 집안이 조용합니다. 우리는 거기에 물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독재 체제를 안 하고 각자 자유롭게 나갔더니 집안이 콩가루가 되어 버립니다. 아버지 말도 안 듣고 엄마 말도 안 듣는 아들들이 득실거리는 것이 지금 사회입니다. 지금 민주주의가 잘못되어 가정에까지 들어와 가정이 통제 불능입니다. “결혼은 내 마음이에요”라고 합니다. 이것이 통제 불능 상태로 민주주의가 확대된 것입니다. 잘못 전파되어 아이들이 부모 말 들을 필요 없고 자기 주장만 합니다. 민주주의가 인디비주얼리즘, 극도의 개인주의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와 민주주의가 혼동되면 안 됩니다. 이것이 말이 민주주의지 개인주의가 확대되어 버린 것입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것처럼 위험한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자들이 전부 민주주의를 앞에다 붙여 놓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경제적 본질
공산주의는 정치 용어가 아니라 자본의 용어입니다. 공동으로 생산한다는 것은 재정 이야기입니다.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는 정치 이야기가 아닙니다. 공산주의를 정치주의로 볼 때는 공산주의라고 쓰면 안 됩니다. 자본주의를 이야기할 때는 공산주의를 쓰지만, 국가를 실제적으로 볼 때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경제적 용어입니다. 공동 생산과 개인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적 용어입니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무엇이라고 합니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입니다. 북한은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이고,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입니다. 공동 생산, 공동 분배를 하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는 공산주의이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입니다. 우리가 북한을 공산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국가입니다. 우리도 민주주의입니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입니다. 자본가가 1순위입니다. 자본이 없는 사람은 자유를 구속받습니다. 그래야 먹고 삽니다. 북한은 특징이 민주주의인데, 인간에게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자본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국가가 자본을 가지고 있습니다. 배급을 받고 이익은 전부 국가가 가져갑니다. 개인이 부자가 되어 누구를 무시하거나 하는 것이 없습니다. 처음에 이야기할 때 프로레타리아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민주주의와 우리 자본주의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민주주의입니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사회주의입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정치적인 용어가 아닙니다. 북한과 남한을 다시 이야기하면, 경제적인 용어로 여기는 자본주의, 북한은 공산주의입니다. 자본을 가지고 논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을 공산당이라고 하면 틀린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사상 교육이나 이념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아 이것을 혼동해서 “저들은 공산당, 공산주의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다”라고 하면 안 됩니다.
한국 사회의 ‘방종’과 ‘자유’의 왜곡
우리가 지금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해 물었습니다. 자유는 의무를 다한 사람들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인데, 우리 남한 사람들은 의무를 다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전부 자유가 아닌 방종입니다. 의무를 회피하는 자들이 누리는 권리가 자유입니다. 방종입니다. 우리 국민은 전부 방종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자유를 누리는 자는 별로 없습니다. 전부 방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세금을 적게 낼까, 어떻게 하면 요것을 피해 볼까, 다 이것이 국가 권력에 대해서 방관자 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대세 흐름입니다. 세금 내는 놈은 병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되면 국가가 안 됩니다. 세금을 내면 훈장을 줘야 합니다. 세금 많이 낸 사람은 법률적으로 큰 실수를 해도 봐줘야 합니다. 사법에서 봐줘야 합니다. 그것을 안 봐주는 것입니다. 예외 없이. 그러면 누가 사업을 하겠습니까? 여러 사람을 살리는 일인데. 제가 공약했듯이, 대통령이 되면 자동차 번호를 빨간색으로 해서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은 빨간 번호판을 달게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보면 “아, 저 사람은 빨리 피해 줘야 되겠다. 국가에 세금을 많이 내는 자야”라고 생각하고 피해 움직여 주는 것입니다. 놀러 다니는 자들이 가로막고 “저 빨간 차가 오는데” 이러면 우리 경제는 수출이 안 됩니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을 우대해 줘야 합니다. 빨간 난방, 10분 정도 주민등록증도 빨간 색깔로 표시해 줘야 합니다. 그러면 자부심이 생깁니다. 그렇게 해 주고 세금을 적당히 내는 사람은 파란색, 세금을 아예 안 내는 수급을 받는 사람은 흰색깔로 해야 질서가 잡힙니다. 교통할 때 “어머, 저 빨간 차 오네” 하면 좀 피해 줘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와 똑같아” 이러면 우리는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공산주의 같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가 무엇을 많이 하기 위해서 우리가 차도 비켜주고 시간도 많이 할애해 주고 상도 많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자본 버는 사람들이 뭐 잘못하면 도둑놈 같이 생각해서 탈세했다고 도둑놈이라고 합니다.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가 뭔지도 모르고 지금 자본주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라면 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상도 많이 주고 사업을 하게끔 해 주고, 세금을 밀리면 연체 이자를 안 받고, 세금만 밀리면 사업을 못 하게 압류해 버리면 안 됩니다. 사업하는 사람을 우대하면 그것이 진정한 자본주의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입니다. 그런데 사업하는 사람을 질시합니다. 우리는 그렇습니다.
성경적 자본주의와 납세 포인트 제도
성경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달란트를 줬는데, 돈을 늘린 사람은 돈을 못 늘린 사람의 것을 싹 다 뺏어서 늘린 사람에게 줘 버립니다. 그것이 성경의 자유이자 성경의 자본주의입니다. 달란트를 어디 해외 갈 때 예수가 “너는 다섯 달란트, 너는 두 달란트, 너는 한 달란트를 주었는데, 다섯 달란트 받은 너는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너는 돈을 숨겨 놨다가 나중에 주인에게 주네”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 한 달란트를 뺏어서 전부 다섯 달란트 있는, 돈 많이 번 사람들에게 줘 버립니다. 성경이 자본주의를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다섯 달란트 번 것을 뺏어서 없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자본주의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거짓을 도와주고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라고 하지만, 실제 자본주의 자체 질서는 성경에 나와 있습니다. 돈을 늘리는 자본가들에게 예우를 해 주고 구속 상태가 아니게 해 주고, 탈세를 잡히든 뭐하든 구속을 면할 수 있는 세금 낸 기록이 많으면 불구속 상태 수사를 해야 합니다. 특권을 줘야 하는 것입니다. 자동차 번호판도 빨간색, 차에 경광등도 설치하게 해 줘야 합니다. 세금 많이 낸 사람은 삐뽀삐뽀하고 좀 빨리 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정신 앰뷸런스 수준으로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재벌들이 자존감이 생깁니다. 그것이 안타까우면 북으로 넘어가라고 해야 합니다. 이래야 경제가 활성화되고 서민들이 그 사람들 것을 보고 잘 살 수 있습니다. “있는 놈은 전부 도둑놈으로 때려 죽이자”는 것이 옛날 6.25 때 북한에서 내려온 군인들이 남한의 지주들을 때려 죽이는 그런 형국으로 지금 정치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자본가를 도둑놈 보듯이 보면 안 됩니다. 성경처럼 가진 자를 예우해 주고 못 가진 자는 도와주면, 세금 많이 낸 사람이 도와줄 것 아닙니까? 이것을 국가가 조율해야 하는데, 있는 사람들은 항상 협박, 공갈 협박, 탈세 조사, 진정서가 들어오면 실사 조사 등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없는 사람은 아주 깨끗한 사람으로 보고, 있는 사람은 완전 도둑으로 봅니다. 누가 사업을 하겠습니까? 그래서 우리나라 기업이 해외로 많이 도망가는 것입니다. 미국 이민 간 사람들이 그 꼴 안 보려고 간 사람이 많습니다. 자유롭게 살려고 간 것입니다. 정치적인 박해가 없습니다. 미국은 그렇습니다. 그래서 납세 포인트 제도를 제가 공약에 내세웠습니다. 납세 포인트 제도입니다. 1년에 이 사람이 세금을 얼마 이상 내면 무조건 혜택이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납세 포인트가 높으면 그 자식들이 대대로 포인트가 상속됩니다. “저 집은 빨간 포인트야”라고 하면 그 집은 그동안 국가에 세금 낸 것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돈만 상속받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국가에 끼친 그 명예를 상속받아 자식이 누리는 것입니다. 이래야 국가에 손해를 본다 해도 사업을 해서 사람을 많이 고용하고 해 볼 생각이 있습니다. 이런 것을 무조건 범죄자로 매도해 버리니 안 됩니다. 납세 포인트, 비행기도 마일리지 주지 않습니까? 납세만 마일리지가 없습니다. 표창도 없고, 돈 쓰는 놈만 표창 주고. 일정 이상의 사업을 해서 외화를 늘렸고, 직원을 그만큼 먹여 살렸으면 그 공로가 후손에게까지 가야 하는데, 왜 재벌을 나쁘게 봅니까? 왜 기업하는 사람들을 나쁘게 봅니까?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6.25 때 양반 집에 들어가서 지주들을 칼로 죽이는 그런 정신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노는 것이 장땡이라고 생각하고, 노는 사람은 큰소리치고, 사업하는 사람은 맨날 절절 매고 무서워합니다. 잘못하면 감옥 가는 것입니다. 사업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겁을 냅니다. 사법부는 너무 발달해서 세계 최고의 고소고발 1위입니다. 일본이 한 명 고소할 때 우리는 970명, 일본이 10명 고소할 때 우리는 2만 명 고소합니다. 이것이 무엇하는 것입니까? 세계 고소고발 1위입니다. 기업하는 사람이 자유가 있습니까? 개인도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지만, 기업하는 사람도 자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만큼 세금을 내주지 않습니까? 그들을 억압하는 사회입니다. 황우석 박사가 무엇을 개발하니까 의사들이 배 아파서 황우석 박사를 내쫓아 버립니다. 황우석 박사는 어디 갔습니까? 사우디에 가서 자신의 기술을 개발하는 자유를 인정받아 공을 세우고 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그렇습니까?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것을 잘한 사람은 우대를 해 줘야 하는데, “어머, 저거는 수의사야. 저 새끼가 의사들 앞에서 목에 힘을 주네”라고 합니다. 수의사라도 그것을 개발해서 국가 경제를 살리는 데 얼마든지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습니까? 그것을 못 잡아먹어서 엘리트들이 집단으로 대들어 내쫓거나 감옥에 보내거나 해외로 도피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논하려면 정치가 앞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자유는 아직까지 논할 가치가 없습니다. 논할 자격이 안 됩니다. 의무를 다하는 사람만이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인데, 사업을 다해서 세금 낸 사람들이 입을 못 열게 하니, 의무를 다한 사람은 전부 범죄자입니다. 그리고 빈둥 노는 사람들은 맨날 비판만 하고 앉아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을 못 잡아먹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발전이 안 됩니다. 여러분들도 의무를 다하는 사람을 우대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열심히 해서 회사를 만들고 수익을 창출하면 됩니다. 그렇게 머리 좋고 유능한 사람들을 전부 죽여 버립니다. 무엇을 개발한 것에 자금 대 준다고 해 놓고 10년, 20년씩 밀려 다음 정권으로 자꾸 미뤄 버립니다. “이런 특허를 개발했습니다”라고 하면 “어, 그럼 우리는 돈이 안 되는데요. 저쪽 가서 알아보세요”라고 서로 핑퐁하고 앉아 있습니다. 그럼 누가 개발하겠습니까? 외국에 갖다 주는 것입니다. 오늘 저에게 물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질문 자체가 굉장히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기업의 자유
민주주의는 그 사람이 노력한 것을 인정해 주는 사회입니다. 그것을 착취하지 않는 사회, 인정해 주고 그 사람의 명예를 높여 주는 사회입니다. 매슬로의 5단계 욕구 중 자아실현의 욕구까지 간다는 것이 권력자들 사이에서 생존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아실현까지 가기가 어렵고, 그 안에서 좌절해 버립니다. 이것이 매슬로 5단계입니다. 자아실현 단계 다음은 제가 있는 영성 단계, 영적인 자유 단계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6단계까지. 그런데 이 5단계에서 인간들이 5단계까지 가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그냥 생리적 욕구에 인생을 다 망쳐 버립니다. 시간 다 허비해 버립니다. 안전의 욕구는 좀 괜찮은 사람들이나 올라갈 수 있습니다. 대기업 사장도 불안합니다. 언제 어디서 언론에서 안 좋은 것이 나올지, 갑자기 “사료로 만든 우유” 같은 것이 나올지 모릅니다. 버리는 것을 가지고 만들었다는 사고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래서 명예가 실추되기도 합니다. 기업들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언론이 기업의 발목을 딱 잡고 있습니다. 족쇄를 걸고 있습니다. 언론은 또 배가 고픕니다. 언론하는 사람들 다 배가 고픕니다. 언론하는 사람들의 예우를 그만큼 해 줘야 합니다. 언론을 그렇게 배고프게 해 놓으면 대기업에 광고를 안 주면 대기업을 씹습니다. 무엇 좀 크려고 하면 기업이 안전하지 못합니다. 또 채권력에 의해 “야, 너 잘 나가냐?”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요새 수익이 좋다며”라고 하면 이것은 꼴 잡은 것입니다. 갑자기 무엇이 또 날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안전에 대한 욕구, 2단계가 유지가 어렵습니다. 누가 기업하려고 하겠습니까? 신인이 한번 나타나야 모든 것이 정리되어야 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레벨 좀 올리십시오. 허경영 우주 에너지 제품은 역시 본좌랜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