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와 사랑, 그 딜레마의 본질
원수는 상대방에게 깊은 원한을 맺을 정도로 해를 끼친 사람이나 집단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이해관계의 충돌, 사상적 갈등, 배신 등 다양하고 복잡한 이유로 원수가 되며, 이는 마치 기름과 물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합니다. 신인께서는 사랑이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한 방향을 함께 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불교의 ‘원증회고(怨憎會苦)’를 떠올리면 원수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원수와 한 방향을 함께 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이는 큰 딜레마이자 난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원수와 사랑의 관계, 원수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원수 관계의 최선의 해결책인지에 대한 질문을 드립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원수 관계
우리가 오해에서 원수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도 안티가 생기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집안이나 민족끼리 원한 관계가 얽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도력과 영토 확장: 워싱턴, 알렉산더, 이순신
미국이라는 나라는 처음에는 버지니아 주변의 작은 지역에 불과했습니다. 워싱턴은 측량 기술을 배워 지도에 능통한 사람이었고, 수많은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하여 미국을 키웠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싸우며 영토를 빼앗고, 수십 번의 전쟁을 겪으며 미국 영토는 50개 주로 확장되었습니다. 하와이도 나중에 왕국에서 빼앗은 것입니다. 워싱턴 외에도 링컨, 루즈벨트, 제퍼슨 같은 인물들이 영토 확장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측량 전문가이자 지도에 밝은 자들이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제패한 것도 그가 지도 전문가였기 때문입니다. 지리를 잘 파악하여 영토를 정복했습니다. 이순신 장군 또한 지리, 해양 지형에 밝아 울돌목을 명량대첩의 전장으로 정했습니다. 이순신, 알렉산더, 나폴레옹, 징기스칸과 같은 세계적인 영웅들은 모두 지리에 밝은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땅의 박사들이었고, 지도를 잘 보아 세계를 제패했습니다.
사랑의 본질: 무지를 깨우치는 내비게이션
땅에 대해 오해하면 안 됩니다. 저리 가면 죽는 줄 모르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이란 모르는 자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오해하고 가는 자를 알게 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저리 가면 안 된다”고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이 바로 사랑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없다면 많은 사람이 갈등을 겪을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은 인간을 올바르게 인도하는 사랑입니다. 내비게이션이 우리에게 주는 사랑은 매우 큽니다. 때로는 오류가 있어 불평하기도 하지만, 내비게이션 덕분에 우리는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에는 달이나 별을 보고 길을 찾았습니다. 그것 또한 사랑이었습니다. 핸드폰도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러한 하드웨어 자체가 사랑입니다.
사랑과 미움의 양면성: 도구의 중립성
그러나 이 사랑스러운 핸드폰 때문에 감옥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핸드폰에 마약 거래 기록 같은 나쁜 정보가 저장되어 있거나, 내비게이션 기록 때문에 재판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도구 자체는 사랑도 미움도 아닙니다. 인간이 오해를 통해 자신을 망하게 할 사람을 사랑하거나, 자신을 도와줄 사람을 원수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허경영을 원수로 보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상은 변함이 없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사랑과 원수로 나뉘는 것입니다. 예수나 사업가들에게도 대상은 변함이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나 김대중 선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원수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대상은 사랑도 원수도 아니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오해를 하는 것입니다. 이해를 하면 오해가 풀립니다.
대한민국의 현실과 워싱턴의 교훈
미국은 짧은 시간에 영토를 확장했지만, 대한민국은 수천 년간 작은 나라로 남아 중국, 북한, 일본에 위축되고 있습니다. 미국과는 반대로 급팽창하지 못하고 위축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두 개의 나라로 나뉘어 ‘소한민국’이 되었습니다. 진정한 ‘대한민국’이 되려면 남북이 하나로 합쳐져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서로를 원수라 부르며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외세가 볼 때는 하나의 땅덩어리인 코리아이지만, 그 안에서 두 동강이 나 두 개의 소한이 모여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부끄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워싱턴과 같은 인물들의 탁월한 지도력과 전략을 본받아야 합니다. 워싱턴과 마오쩌둥은 작은 지역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나라를 통일한 지략가들이었습니다.
사랑과 원수는 동전의 양면
워싱턴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은 얼마나 원한이 맺혔겠습니까? 마오쩌둥에게 밀려 대만으로 쫓겨난 장개석 군대는 지금도 이를 갈고 있습니다. 대인은 원수도 없고 사랑도 없이 중립적으로 바라봅니다. 사랑 뒤에는 언제나 원수가 숨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다가 더 좋은 여자가 나타나면, 사랑했던 여자가 강간으로 고소하여 남자가 억울하게 징역을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과 원수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습니다. 사랑이 원수가 될 수도 있습니다.
군자의 사랑: 연민과 절제
깨달은 자, 즉 군자는 사랑을 함부로 가까이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을 할 때는 도파민이 많이 나오는데, 도파민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적당히 나와야 합니다. 사랑을 할 때는 연민을 가지고 사랑해야 합니다. “저 여자는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평생 결혼할 수 없는 여자다”, “저 여자는 돈이 없으니 내가 도와줘야 다른 남자에게 시달리지 않고 잘 살 수 있을 거야”와 같이 연민을 가지고 사랑하는 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장애인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간호원이 장애인 청년을 치료하다가 연민을 느껴 결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즉 연민이 있을 때 그것이 진짜 사랑입니다. 조건을 따져 결혼하는 것은 가짜 사랑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연민을 수반해야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가 바로 연민입니다. 슬픔을 베푸는 것이 연민입니다. 그 사람을 불쌍히 생각하여 사랑하고, 내가 저 사람의 언덕이 되어주겠다는 마음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에로스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에는 항상 연민이 붙어 있습니다. 아버지가 딸을 바라볼 때 연민의 정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죽으면 저 어린 딸을 누가 돌보나”, “학비를 못 대줘서 졸업을 못 하면 큰 죄를 짓는 것이다”와 같은 마음이 연민입니다. 아버지는 감옥을 가더라도 딸을 공부시켜야 한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것이 진짜 사랑이며, 연민을 동반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결혼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계약입니다.
원수를 향한 자비로운 시선
군자는 사랑을 연민으로 해야 합니다. 군자의 사랑에는 자비, 양성, 온유, 절제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자비가 매우 중요합니다. 상대를 슬프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원수를 바라볼 때도 자비의 사랑으로 봐야 합니다. 그를 불쌍히 여기면서 “나도 저 원수와 같은 심성을 가지고 있는 자야”, “나도 잘못 건드리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입장이 되어보는 것이 자비입니다. 저 사람이 우리 엄마를 죽였다고 생각하면 원수이지만, 나도 누가 와서 욕을 하거나 엄마를 때리면 사람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살인자를 바라볼 때도 연민을 가지고 봐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도파민과 쾌락의 절제
군자는 너무 기뻐해서도, 너무 슬퍼해서도 안 됩니다. 항상 연민을 가지고 인간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군자가 너무 기뻐하면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됩니다. 도파민이 많이 나오면 마약과 같습니다. 마약은 도파민을 왕창 나오게 하여 황홀경에 빠지게 합니다. 술은 그보다 적게, 커피는 더 적게 도파민을 분비시킵니다. 사랑을 하면 도파민이 낭비됩니다. 쾌락은 도파민이 낭비되는 것입니다. 군자는 쾌락을 절제해야 합니다. 기뻐도 안 기쁜 척, 슬퍼도 안 슬픈 척할 때 연민이 들어 있고, 도파민 소모가 적절해집니다. 도파민이 너무 많으면 인슐린이 고갈될 수 있습니다. 술, 담배 등으로 도파민을 과도하게 생성하면 인슐린이 부족해져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합니다. 몸의 건강을 위해 언제나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닙니다. 기쁜 일이 있어도 “내가 이렇게 기뻐해서 되겠나? 다른 사람이 지금 궁핍할 텐데”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내가 웃고 있는 이 시간은 상대의 웃음을 빼앗아 온 것일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하루 생활비가 천 원도 안 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항상 그 사람들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지고, 내가 잘 먹고 잘 사는 것에 죄책감을 가져야 합니다.
관계 속의 행복: 고독은 잘못된 견해
“혼자서 잘 살아라”, “고독해지고 나 혼자서 잘 사는 방법을 깨달아야 한다”는 견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잘 살아야 합니다. 행복은 관계에 있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해도 엄마, 아빠가 없으면 행복하지 않습니다. 옛 애인이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리면 행복이 없습니다. 집에 가서 된장찌개를 끓여 먹고 반찬 없이 밥을 먹으면서 옆을 지켜주던 여자가 있을 때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반가운 것입니다. 행복은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나 요즘은 혼자 앉아 수도자처럼 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는 좋은 것이 아닙니다. 관계를 맺는 것이 인생에 좋은 것입니다. 인간관계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관계를 통한 성공: 물티슈의 지혜
장사가 안 되는 식당들이 많지만, 관계의 지혜를 알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식당 주인이 손님에게 물티슈를 하나씩 뽑아주며 “손에 세균이 있을 텐데 닦으시고, 핸드폰도 좀 닦으세요. 우리 식당은 청결을 원칙으로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웃으면서 따뜻하게 이 말을 건네면, 손님들은 이 식당이 깨끗하고 음식을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들은 모두 핸드폰을 가지고 있는 홍보 요원이 됩니다. 한 장의 휴지를 줄 때 네 장을 주면서 손과 핸드폰을 닦으라고 권하면, 식사할 때 건강에 좋다는 인상을 줍니다. 이런 식당은 소문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주방이 지저분한 식당이 많지만, 이런 행동을 통해 음식에 대한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손님을 왕으로 대하는 것을 넘어 신으로 대해야 합니다. 손님을 신으로 대하면 자연히 식당이 잘됩니다. 굽신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손님을 신으로 대하면 위기를 극복하고 다른 식당이 문을 닫아도 버틸 수 있습니다. 손님 대우를 잘하면 모두 홍보 요원이 됩니다. 자신과 관계한 사람들은 허경영을 칭찬하고 다니게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