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3 The Enormous Difference Between Viewing Things with Knowledge and Viewing Them with Wisdom: A Perspective from Huh Kyung young – April 13, 2025

지식과 지혜: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

인간의 지식이 식재료라면 지혜는 요리 도구와 같습니다. 지식은 지혜로 잘 다루어졌을 때 비로소 진가를 발휘합니다. 현재는 AI 발전으로 인간의 지식 수준은 급격히 높아졌지만, 지혜는 정체되어 지식이 지혜를 집어삼킨 형국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는 인간의 지혜를 넘어선 신의 방편 지혜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지혜는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볼 때 생겨납니다. 지식을 눈으로만 보면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교실에서 배우는 지식도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바뀝니다. 사랑을 사람의 눈으로 보면 시기와 질투가 붙지만, 사랑을 마음속으로 바라보면 자비심으로 바뀝니다. 어머니가 자식이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밉지 않은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돈을 다 탕진하고 돌아온 탕자도 사랑의 눈으로 보면 예쁘게 보입니다. 사랑을 눈으로 보면 시기 질투가 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자식이 탕자가 되었어도 반갑고 기쁩니다. 지식을 눈으로 바라보면 그저 지식일 뿐이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로 바뀝니다.

지혜의 본질: 체험과 마음의 작용

인간이 말하는 지혜는 체험을 해야만 지혜가 됩니다. 그러나 지식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모든 것이 지혜가 됩니다. 부모가 사랑을 마음으로 바라보면 사랑이 자비심이 되고, 측은지심, 수호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됩니다. 사랑을 눈으로 바라보면 시기 질투가 되어 결국 싸우게 되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지혜가 됩니다.

정보의 홍수 속 평화와 전쟁

이 세상은 정보의 홍수입니다. 정보를 눈으로 바라보면 정보일 뿐이며, 이는 곧 전쟁입니다.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는 남과 경쟁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보를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됩니다. 하늘궁이 만들어지고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찾은 것처럼, 이 평화가 전 세계로 퍼져나가 세계 평화가 실현될 수 있습니다. 종교들이 세계 평화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만드는 현실과는 대조적입니다. 핵무기 정보도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에 쓰일 수 있습니다.

방편 지혜: 세상을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

방편 지혜는 세상을 보는 안경을 바꾸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눈으로 보는 안경을 가지고 있지만, 마음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며, 더 나아가 영으로 보면 더욱 강력해집니다. 마음으로만 봐도 지혜로 바뀌는데, 영으로 보면 돈과 재물로 바뀌는 등 모든 것이 변화합니다. 방편 지혜는 측은지심, 수호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마음의 작용을 통해 발현됩니다. 마음으로 사물을 바라보면 이러한 지심들이 자연스럽게 생겨나지만, 눈으로만 보면 희로애락애오욕과 같은 감정에 갇히게 됩니다.

재벌 회장의 낡은 TV와 마음의 눈

재벌 회장이 낡은 흑백 TV를 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이야기는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것의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기자는 낡은 TV를 바꾸라고 권하지만, 회장은 “당신들은 눈으로 텔레비전을 보지만 나는 마음으로 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단칸방 시절 아내와 함께 TV를 보며 행복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그 TV가 아내의 존재를 상징한다고 말합니다. 눈으로 보면 고물에 불과하지만, 마음으로 보면 아내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보물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방식입니다.

사단과 칠정: 마음과 눈의 차이

눈으로 사물을 보면 희로애락애오욕과 같은 칠정(七情)으로 보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측은지심, 수호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같은 사단(四端)으로 보입니다. 칠정은 얕은 눈으로 보는 것이고, 사단은 깊은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사단과 칠정으로 나뉘는데, 배운 자는 마음으로 보아 사단을 느끼고, 낮은 세계의 사람은 눈으로 보아 질투와 부러움을 느낍니다. 아버지가 딸을 볼 때 예쁘다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고생을 내다보며 측은지심을 느끼는 것이 마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들꽃과 사랑: 마음으로 바라보는 세상

들꽃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눈으로 보면 그저 예쁜 꽃이지만, 마음으로 보면 최선을 다해 피어 있는 꽃의 자존심을 헤아리게 됩니다. 함부로 꺾으면 하늘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남의 딸을 볼 때도 마음으로 사랑을 가지고 보지 않으면 그저 즐거움의 대상으로만 보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의 행복과 미래를 헤아리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정의: 눈과 마음의 시선

정의를 눈으로 보면 그저 정의라는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 갇히지만, 마음으로 바라보면 평화가 됩니다. 눈으로 정의를 보면 남이 어떻게 하는가만 살피고 남에게 정의를 들이대려 하지만, 마음으로 정의를 바라보면 내 자신부터 바뀌어야 함을 깨닫습니다. 내가 정의롭지 않으면서 남을 비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정의를 눈으로 보는 자는 남을 재단하는 데 사용하지만, 마음으로 보는 자는 자신에게 정의를 들이대어 스스로를 바로잡습니다.

불교와 기독교: 깨달음과 믿음의 길

불교는 정의를 깨달음에 들이대고, 기독교는 믿음에 들이댑니다. 불교는 믿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것에 목표가 있습니다. 깨닫고 죽으면 끝나는 것이 불교의 길입니다. 불교는 자력(自力)으로 부처가 되는 종교이며, 누가 구원해 줄 것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반면 기독교는 타력(他力)으로 하나님, 신인, 예수를 통해 구원받는 것을 믿습니다.

불교의 세계관: 화장장엄세계

불교의 세계관은 화장장엄세계(華藏莊嚴世界)입니다. 화장(華藏)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세계를 의미하고, 장엄(莊嚴)은 보이지 않는 내적인 세계를 의미합니다. 이 두 세계가 합쳐진 것이 불교의 세계관이며, 이를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합니다. 석가모니는 보이는 세계에 속지 말고, 보이지 않는 마음의 세계를 보라고 설했습니다. 눈으로 보이는 세계는 지식이고, 마음으로 보는 세계는 지혜입니다. 이 화장 세계만 보고 하나님을 믿으면 문제가 생기며, 장엄 세계도 함께 깨달아야 합니다. 신인을 만나야 화장과 장엄을 모두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몸을 바라보는 시선: 외모와 건강

마음으로 내 몸을 바라보면 건강이 됩니다. 하나하나 나쁜 것을 고치고 음식도 조절하며 건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외모로 내 몸을 바라보면 매일매일 늙어가는 죽음으로 향하는 모습만 보게 되어 염세주의자가 됩니다. 외모에만 치중하는 자는 치장에만 매달리지만, 마음으로 몸을 바라보는 자는 몸의 메커니즘과 리듬을 유지하고 살려 건강해지는 길을 택합니다.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마음으로 나를 보는 것이고,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로 외부를 보는 것입니다. 불교는 남에게 눈을 돌리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닫는 자력의 종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