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Huh Kyung young’s Insights on Japan’s Ideologies: From Feudalism to Nationalism and the Spirit of “Revere the Emperor, Expel the Barbarians” – March 30, 2023

일본의 역사적 변혁과 사상적 뿌리: 막부에서 천황제로

일본은 장군들이 지배하던 막부 시대를 거쳐, 국가 발전을 위해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며 왕을 옹립했습니다. 이는 일본 역사에서 세 번째 혁명으로 기록됩니다. 왕을 존경하고 오랑캐를 물리친다는 ‘존왕양이(尊王攘夷)’ 사상이 이때 등장했으며, 이는 훗날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일본의 근본 사상이 됩니다. 오랑캐는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을 지칭하며, 이들을 물리치겠다는 양이 사상은 일본이 전 세계에서 천황의 위치를 최고로 높이겠다는 야망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천황의 말 한마디에 전쟁과 항복이 결정될 정도로 왕의 위치를 절대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민주주의 시대로 전환하며 총 다섯 번의 혁명을 겪었습니다.

일본 민족의 핵심 가치: 의(義)와 공리주의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며 일본 민족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가치는 바로 ‘의(義)’입니다. 일본은 의리가 없는 이익은 원치 않는다는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을 발전시켰습니다. 이는 ‘견리사의(見利思義)’, 즉 이익을 보거든 의를 생각하라는 공자의 말을 일본 사상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익을 추구하되 반드시 의를 지키겠다는 이 사상은 일본이 전체주의로 나아가고 전쟁을 일으키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사무라이 정신과 공리주의의 결합

일본인들은 의리를 최우선으로 여겼습니다. 예를 들어, 운전수가 회장의 비밀을 알고 증인으로 서야 할 상황이 오면 자살을 택할 정도로 의리를 중요시했습니다. 이는 사무라이들의 기본 정신으로, 공리에 대한 의리, 즉 왕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공자의 말을 빌려 의리 사상과 공리주의를 결합한 일본인들의 사고방식은 돈을 벌더라도 의를 중요시하며, 상관 앞에서 자결하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상업주의와 애국심의 결합: 국가 부강의 원동력

일본은 공리주의와 상업주의를 적극적으로 내세웠습니다. 상업이 발전해야 국가에 세금이 들어오고, 이를 통해 무기를 만들고 천황을 잘 보필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업과 상공업을 발전시켜 100년, 500년 된 대기업들이 즐비한 것도 이러한 사상적 배경 때문입니다. 상업주의는 의리주의와 결합하여 국가의 상업 활동이 최고의 애국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이는 존왕양이 사상과도 연결되어, 오랑캐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며, 상업을 통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애국이라는 논리로 이어졌습니다.

일본의 교육과 민족정신: 극기복례와 침략 사상

일본 젊은이들은 이러한 사상 교육을 통해 죽음도 불사하는 가미카제 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극기복례(克己復禮)’, 즉 자신을 이겨내고 예를 지키는 민족으로서, 밥을 적게 먹고 산업에 종사하여 세금을 잘 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고 전쟁 비용을 마련하여 천황을 세우는 것이 최고의 가치라고 교육받았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어린 시절부터 이루어졌으며, 오랑캐는 독일을 제외한 전 세계를 의미했습니다.

과거 일본의 군사력과 한국의 현실

일본은 우리가 호미도 만들지 못할 때 잠수함과 비행기를 만들어 미국을 침략할 정도로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민족이었습니다. 진주만 공습 당시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급히 도피할 정도로 일본의 공격은 위협적이었습니다. 대형 전함 100대가 파괴되고 수많은 해군 장성이 사망했으며, 일본 비행기들이 시카고, 워싱턴, LA 등 대도시로 몰려올 것이라는 소식에 미국 대통령은 절도했습니다. 오랑캐를 무찌르겠다는 양이 정신 교육을 통해 일본 아이들은 목표물을 향해 죽기 살기로 돌진하는 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 원자폭탄이 없었다면 일본이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모르고 있을 때, 일본은 왕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여기는 교육을 어릴 때부터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