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된 세상과 인간의 노력: 전생의 업보와 시운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결정된 세상과 인간의 노력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신인께서는 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과가 없거나, 반대로 노력하지 않아도 큰 성과가 나타나는 것은 결정된 세상의 영향으로 보입니다. 이는 인간이 잘될 것이라는 희망이나 안 될 것이라는 절망처럼 확률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보다, 결정된 세상을 인정하는 것이 더 명확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노력이 자유 의지인지, 결정된 세상에서 노력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자유 의지를 내세우지 않고 결정된 세상에 따른다는 것을 하늘에서 어떻게 보는지도 궁금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자유 의지가 있기에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노력하지만, 그 노력의 방향은 다릅니다. 누구나 화살을 과녁을 향해 조준하지만, 그 화살이 과녁에 꽂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이는 당시의 바람 등 여러 요인에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활을 잘 쏘는 사람도 태풍이 불 때는 영향을 받는 것과 같습니다.
신공이 아닌 이상, 누구나 화살을 과녁을 향해 당겼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인생이 흘러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성공한 사람도 있는데, 이는 전생에 뿌린 씨앗이 있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사람이 연구를 해도 어떤 사람은 연구를 잘하고,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연구에 서툽니다. 이는 전생부터 연구하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가수가 노래를 잘한다면 전생부터 노래하던 사람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 사람과 경쟁해서는 이기기 어렵습니다. 이를 ‘필’이라고 부르며, 사람들이 천재나 신필이라고 칭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소질을 의미합니다. ‘천재’의 ‘천’은 하늘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생에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뜻으로, 하늘로부터 가져온 전생의 재능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천부적으로 운전을 잘한다면 전생에 운전과 관련된 경험이 있었을 것입니다. 전생에 곡괭이 들고 흙을 퍼서 농사짓던 사람은 운전을 잘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전생부터 단련된 사람과 현생에서 처음 하는 사람의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창의성과 불만족: 문화를 발전시키는 원동력
우리는 인간에게 창의성을 주었습니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꿈꾸고 개발해 나가는 창의성을 인간에게 주었지만, 만족성은 주지 않았습니다. 만족성을 주어버리면 문화가 멈춰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언제나 불만족을 주었고, 이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인간은 늘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맵니다.
창의성은 ‘외식’과 ‘내심’의 관계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외식’은 바깥에서 본 것을 가지고 끊임없이 인연을 만들어가는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반면 ‘내심’은 요동치지 않는 무(無)의 상태, 즉 고요한 본래의 마음을 뜻합니다. 바다 깊은 곳이 고요하듯이 우리 본래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바깥 세계, 즉 외식은 언제나 인연이 오고 갑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면 말초신경이 자극받는 것처럼,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지만 내면 세계는 누구나 부처와 같아 흔들림이 없습니다. 강도가 배고파 절벽에서 떨어지는 할머니를 보면 구해주는 것처럼, 인간의 속마음은 모두 착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외식이 이상한 환경에서 자라거나 원한을 품게 되면 악연이 생기기도 합니다.
인간은 외식과 내심을 분리하여 내심에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내심에 접근하기 위해 명상을 하지만, 실제 부처의 마음속에는 접근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내면 세계가 너무 깊이 들어있어 접근이 어렵고, 명상을 하려 해도 졸음이 오거나 다른 세계로 빠져버립니다. 이처럼 내심의 세계는 절대 흔들림이 없지만, 바깥 세계인 외식은 언제나 흔들립니다. 이 외식을 흔들리게 만든 것이 바로 창의성입니다. 창의성은 끝없이 만족을 모릅니다.
휴대폰을 예로 들어봅시다. 처음 휴대폰이 나왔을 때는 대단한 것이었지만, 이제는 사이즈를 줄이고, 영상이 나와야 하고, 말로 해도 알아서 척척 작동해야 합니다. 나중에는 생각만 해도 노래가 나오거나, 궁금한 것을 바로 알려주는 수준까지 발전할 것입니다. 내 생각과 휴대폰이 일치하는 세상이 올 때까지 창의성은 끝없이 계속될 것입니다. 만족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전 휴대폰은 이제 어린아이들도 필요 없다고 할 정도로 5만 가지 기능이 나와야 합니다. 나중에는 휴대폰이 스스로 “제가 여기 있어요”라고 대답하는 수준까지 발전할 것입니다. 이처럼 휴대폰과 내가 교감하는 세계까지 창의성은 계속될 것이며, 인간에게 만족성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창의성은 곧 창조입니다. 인간 스스로 창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며, 이는 자유 의지입니다. 이 자유 의지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자유 의지의 통제와 법의 역할
자유 의지는 제한이 없지만, 사회에서는 법과 윤리, 도덕으로 통제됩니다. 경호 스님과 만공 스님의 일화처럼, 다리가 아프다고 투덜대던 만공 스님이 몽둥이를 든 남자들에게 쫓기자 다리 아픈 것을 잊고 잘 달리는 모습에서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자유 의지가 제한이 없다고 해서 지나가는 여자를 스님이 끌어안는 것은 용납되지 않습니다.
지하철에서 10년간 출퇴근한 사람이 어느 날 성추행 고소장을 받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성추행한 사실도 없고,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데 고소장이 날아오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회는 여성의 편을 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자유 의지가 일정하게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법에 의해 통제됩니다. 남자들은 법에 의해 억울하게 잡혀 들어가기도 합니다. 여자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조심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는 저출산에도 기여하는 바가 큽니다. 옛날처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습니다. 한 번 찍으면 성추행, 두 번 찍으면 스토킹, 세 번 찍으면 구속이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 의지의 남용을 막기 위해 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금을 내고 싶지 않아도 법 때문에 내야 합니다. 우리의 자유 의지는 윤리 도덕의 통제를 받다가, 윤리 도덕을 벗어나면 법의 통제를 받습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유 의지이지만, 국제법의 통제를 받습니다. 일본 국내법으로는 통제받지 않지만, 국제법에서는 독도가 누구의 땅인지 따질 수 있습니다.
자유 의지는 끝없는 발전을 추구합니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동해를 일본해로 바꾸는 것처럼, 교묘하게 자유 의지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하나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지도에서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되면서 독도가 일본해 안에 있게 되어 우리는 불리해졌고, 기득권을 뺏겼습니다.
자유 의지의 근원: 탐진치와 명상
명상을 통해 자유 의지를 컨트롤할 수 있습니다. 좋은 물건을 갖고 싶다는 애착을 명상을 통해 줄일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사고 싶어 하는 젊은 사람들도 명상을 해보면 그것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명상을 통해 외식(바깥 세계에 대한 욕망)의 재연을 줄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사람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유 의지는 ‘삼독’, 즉 탐진치(탐하는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때문에 발현됩니다. 이 세 가지 독이 자유 의지를 자극하여 창의성을 만들고 무언가를 개발하려는 욕심을 불러일으킵니다. 문화는 이 탐진치에서 발전해 나갑니다.
우리의 마음은 끊임없이 바깥에서 인연을 만들어내려 합니다. 이것이 창의성입니다. 좋은 것을 만들면 창의성이 되지만, 나쁜 것을 만들면 독성이 됩니다. 창의성이라고 해서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노력의 결과: 전생의 업보와 시운의 조화
결정된 세상과 노력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자면, 창의성도 있고 노력도 하지만, 그 결과는 ‘연생연멸(因緣生滅)’, 즉 인연에 의해 태어나고 인연에 의해 없어진다고 했습니다. 노력의 결과는 그 사람의 노력에 따라 달라지지만, 노력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노력하지 않았는데도 성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전생의 업보와 시운이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이나 300년 전에 부동산 사업이나 아파트 사업을 했다면 성공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시운(時運), 즉 시절 운이 중요합니다. 시절에 맞아야 하고, 자신의 사주, 관상, 소질에 맞아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6.25 사변 때 돈 벌겠다고 돌아다니면 어렵겠지만, 전쟁 때 돈을 버는 화약 장사나 포탄 장사도 있었습니다.
사람의 모든 길흉화복은 ‘청시 자신지 소치(全是自身之所致)’, 즉 모두 자기 자신이 만든 것입니다. 모든 인간의 발전과 퇴보는 자기 자신이 만들고 자기 자신이 덕을 보는 것입니다. ‘자성자박(自繩自縛)’처럼 스스로 묶고 스스로 푸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신과 맞고, 시절과 맞아야 하며, 자신의 운대, 얼굴, 체형과 맞아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미리 결정되어 있지만, 그 결정된 것은 자기 자신이 결정해 놓은 것입니다. 전생에 자신의 소질을 스스로 개발해 온 것입니다. 범죄 기술이 발달하는 것도 결정되어 있습니다. 이를 ‘관성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관성의 법칙은 모든 운명에 적용됩니다.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튕겨 나가는 것처럼, 운명에도 속도가 있고 사이클이 맞춰져 있습니다. 서울대 다니는 학생과 지방대 다니는 학생의 관성이 다르고, 산에서 굴러 내려오는 돌과 평지에서 굴러가는 돌의 속도가 다른 것과 같습니다. 관성의 법칙은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자신이 가속한 결과입니다.
관성의 법칙: 숙명과 민족성
자신의 관성이 곧 운명이자 숙명입니다. 관성의 대표적인 예로는 부모, 형제를 들 수 있습니다. 부모와 형제는 바꿀 수 없습니다. 혈액형, DNA도 바꿀 수 없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한국 사람의 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은 음식을 조금만 먹으려 하고,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보다 열 배를 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일본 사람의 관성이 덮여 있고, 한국 사람은 옛날에 굶주렸던 업보로 인해 많이 먹는 식탐이 DNA 유전자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관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일본은 음식 쓰레기를 제일 안 버리는 나라이고, 한국은 음식 쓰레기를 가장 많이 버리는 나라입니다. 일본 사람들은 먹을 것만 딱 집어먹고, 한두 개씩만 먹습니다. 관성이 다릅니다. 세계에서 에티켓과 매너가 가장 좋은 민족이 일본 사람입니다. 반면 한국 사람은 뻔뻔하고 부딪혀도 “왜 이래?”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처럼 관성은 부모, 형제, 혈액형, 나라 등 바꿀 수 없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이 그 사람의 운명과 숙명에 영향을 줍니다. 한민족의 특징은 창의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일본 사람보다 창의성을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바꿔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은 그 사람의 숙달된 관성, 즉 숙명을 의미합니다. 그 사람의 전공 분야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자신의 전공 분야로 가면 성공하지만, 전공을 바꾸면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전공을 바꿔서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전생의 업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놀러 가더라도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친구를 만나면 자신도 고시 공부를 하게 되어 판검사가 되는 것처럼, 관성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자유 의지와 생존 능력: 하늘이 준 선물
인간이 자유 의지를 쓴다는 것은 하늘에서 볼 때 인간에게 준 생존 능력입니다. 자유 의지가 있어야 인간이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아내, 장모, 장인을 위해서도 기도하지만, 동물은 그렇지 않습니다. 장모님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고, 돌아가시면 천국에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러나 동물은 장모님이라는 개념도, 천국이라는 개념도 없습니다. 인간은 보이지 않는 세계의 모든 구조를 뇌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의 그림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생각하고 만화로 만들 수도 있습니다. 동물은 그런 것을 만들지 못합니다.
인간은 천국과 지옥을 제 마음대로 만듭니다. 행복한 가정을 그려보고 실현하려다가 여자를 만나 심하게 다투어 살인자가 되어 감옥에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전생에 여자를 괴롭힌 과거가 있어 관성이 작동한 것입니다. 죽이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참지 못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 관성이 범인이며, 자기 자신이 이 관성을 만든 것입니다.
우리의 외식은 언제나 여러 가지 인연을 만들려고 달려들고, 말초 신경을 자극하면 가장 먼저 끌려갑니다. 친구들이 놀러 가자고 해도 “나는 지금 놀러 갈 시간이 없어, 숙제해야 해”라고 말하며 외식에 끌려다니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전생의 관성 때문입니다. 반대로 감옥에 가거나 전과자가 되는 길에 솔깃한 사람도 있습니다. 당구 치는 친구만 찾아다니면 당구만 치다가 폭력 사태에 휘말려 감옥에 가는 스토리가 만들어집니다. 반면 사법고시 공부하는 친구를 보며 자신도 고시 공부를 시작하여 판검사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상고 출신임에도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대통령까지 된 것은 형님이 고시 공부하는 것을 보고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동질의 근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는 관성의 인력이 작용합니다. 동물들도 자기들끼리 모여 있고, 광물질도 광물질끼리 모여 있는 것처럼, 동질성이 있습니다. 자연은 이 동질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창의성을 가지고 이 동질성을 타파해야 합니다.
자유 의지의 확장: 자금력과 권력의 중요성
자유 의지는 자기 자유대로 쓰는 것이지만, 윤리나 도덕이 자유 의지를 통제하는 브레이크 역할을 합니다. 법은 자유 의지의 규제 장치입니다. 일론 머스크가 돈이 없다면 달나라 가는 계획을 세울 수 없을 것입니다. 즉, 자신의 자유 의지를 무한정 확대하려면 재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재원이 많아지면 자유 의지가 커지는 것입니다. 수십만 명을 데리고 달나라에 가겠다거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재원과 자유 의지가 결합될 때 가능합니다. 트럼프가 부동산 업자에서 대통령이 된 것처럼, 자유 의지는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일론 머스크가 전기차 사업을 하다가 우주 여행 사업을 만드는 것처럼, 자유 의지는 자금력과 결합하여 무한한 변수를 일으킵니다.
창의성은 있지만 돈이 없다면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창의성과 돈이 결합하면 일론 머스크처럼 되는 것입니다. 일론 머스크는 수많은 전생 동안 남을 많이 살려냈기에 지금의 재물을 얻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공이 그의 돈 창고와 같아서 부르면 돈이 나옵니다. 마음먹으면 무엇이든 만들 수 있습니다. 창의성이 물질을 좌지우지하는 능력을 가질 때 발전하고 기업화됩니다. 기술이 없어도 돈만 주면 전기차를 만들고 우주 정거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창의성이 요술 방망이가 되는 것입니다. 창의성은 자금을 만날 때 발전합니다. 자금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창의성은 자금과 권력을 만나야 합니다. 이 권력을 만나고 자금을 만드는 과정 또한 창의적인 아이디어에서 비롯됩니다. 어떤 여자가 장래성과 인간성이 좋은 사람을 보고 후원자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일론 머스크처럼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나 그런 후원자를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일론 머스크는 남아프리카 난민 출신으로 미국으로 이민 와서 성공한 사람입니다. 순전히 창의성 하나로 밀어붙여 세계 최고의 재벌이 된 것입니다. 쓰레기통을 뒤지던 아이가 창의성으로 돈을 만드는 재주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아프리카계 출신입니다. 이들은 말을 잘하고 창의성이 뛰어납니다. 언어의 창의성이 뛰어나서 안 되는 것도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하여 국민들을 설득합니다. 부자가 태어날 때부터 부자가 아니듯이, 아프리카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대통령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청소년 자유 의지 통제 기술: 채찍과 당근
창의성만 있고 돈이 없다면 창의성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남자는 창의성이고 정자는 자금력과 같아서, 둘이 결합해야 머스크처럼 위대한 결과가 나옵니다.
아이들이 공부는 안 하고 인터넷이나 게임만 하는 경우를 생각해봅시다. 창의적인 엄마는 간단하게 해결합니다. “다섯 시간 공부하면 한 시간 핸드폰 게임하게 해 줄게.” 이 약속만 받아내면 됩니다. 다섯 시간은 공부하고 한 시간은 마음껏 게임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이 한 시간이 아이의 자유 의지이지만, 다섯 시간은 엄마의 의지에 구속받는 것입니다. 아이의 자유 의지는 게임만 계속하고 싶은 것이므로, 이 자유 의지를 축소시켜 주어야 합니다. 단계적으로 다 막아버리면 아이가 힘들어합니다. “한 시간 공부하면 용돈도 준다”고 하면 아이는 다섯 시간 공부를 하게 됩니다. 게임은 하고 싶지만, 다섯 시간 동안 공부를 안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엄마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아이는 어쩔 수 없이 공부를 하게 됩니다. 이러다가 점점 공부에 재미를 붙일 수도 있습니다. 게임 한 시간을 위해 다섯 시간 공부하는 것이므로, 자기 자유 의지가 통제되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아이의 자유 의지를 통제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게임을 하고 싶은 자유 의지가 있는 아이에게 “무조건 공부해”라고 하는 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자유 의지의 양을 축소시켜 주어야 합니다. 게임할 수 있는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시간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분리시켜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이는 게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을 위해 참고 공부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유 의지가 통제되기 시작하면 아이는 나중에 성공하여 “우리 엄마가 그렇게 안 했으면 내가 어떻게 됐을까”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 의지를 다루는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꾸짖으면 자유 의지가 반발하여 오히려 엇나가게 됩니다. 법이나 윤리로 통제되지 않는 가정에서는 채찍과 당근을 적절히 사용하여 자유 의지를 통제해야 합니다. 엄마와의 협상을 통해 아이는 중법 정신과 사회성을 배우게 됩니다. 자유 의지를 통제하는 방법은 그 양을 줄여주는 것입니다. 일주일 동안 회사에 나가면 일요일 하루는 쉬는 것과 비슷합니다. 일요일을 바라보고 열심히 일하는 것처럼, 아이도 한 시간 게임을 위해 다섯 시간 공부하는 것입니다.
금요일이 ‘불금’인 이유는 자유 의지가 통제를 덜 받는 시간이 오기 때문입니다.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의무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직장에 있어도 자유 의지는 있지만, 먹고 살기 위해 속박되어 있는 자유 의지입니다. 토요일, 일요일의 자유 의지는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해방된 자유 의지입니다. 자유 의지도 질이 다릅니다. 가족과 있을 수 있는 자유 의지와 의무적으로 회의에 참석하는 자유 의지는 다릅니다. 질 좋은 자유 의지가 긍정적으로 작동해야 합니다.
만약 일요일이 없다면 폭동이 일어나 사람이 살 수 없을 것입니다. 엄마가 “5일 동안 공부하고 나면 한 시간 게임”이라고 하는 것은 일주일 전법과 비슷합니다. 월화수목금 5일 동안 공부하고 6일째는 좀 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주일 내내 공부만 하고 하루는 게임만 해”라고 하면 안 됩니다. 매일 공부를 하되, 그 사이사이에 노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지능이며, 자유 의지를 통제해 가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청소년들을 좋은 길로 이끌기 위해서는 이러한 기술이 필요합니다. 청소년들은 자유 의지가 무한대로 뿜어져 나오는데, 그것을 통제하는 기술이 없으면 엇나가기 쉽습니다.
5대 1의 전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5일 일하고 이틀 쉬는 것처럼, 다섯 시간 공부하면 한 시간 게임하게 해주는 것입니다. 내면에서는 공부보다 오락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오락에 몰입하면 도파민이 쏟아져 나오지만, 공부는 하기 싫어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다섯 시간 동안 도파민이 나오면 안 되므로, 흥분하는 시간은 잠깐 한 시간 정도로 제한해야 합니다. 도파민이 나오면 피로가 풀리고, 다시 다섯 시간 동안 아드레날린(스트레스 호르몬)이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한 시간 동안 도파민이 나옵니다. 이러한 기쁨과 고통을 계속 맛보게 해주는 것이 청소년들에게는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 페달을 작동하는 것을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지식은 하버드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국가의 지도자가 된다면 대한민국 문제는 한 달 안에 다 해결될 것입니다. 모든 장관을 불러 지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평범한 교육이나 외국 유학으로는 이러한 능력을 가질 수 없습니다. 신인처럼 완벽한 시스템을 내면에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질문에도 정확한 답이 나와야 하고, 거기에 대한 대응책이 나와야 합니다. 자유 의지 통제 방법, 청소년들을 이끌어가는 방법, 조직을 이끌어갈 때 자유 의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등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도파민이 나오게 해 주어야 합니다. 계속 일만 시키면 스트레스 병에 걸려 중환자가 됩니다. 일정 기간 동안 쌓인 아드레날린을 도파민이 나와 씻어주어야 합니다. 엄마가 5대 1로 한 시간을 정해준 것처럼, 스트레스가 너무 쌓이면 안 됩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할 때는 무조건 도파민이 나옵니다. 도파민이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은 영화입니다. 영화에 몰입하면 도파민이 쏟아져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