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Huh Kyung young’s Insights on Maintaining One’s Original Intentions: The Challenge of Upholding “Chosim” in a Corrupt World – March 2, 2024

초심, 인간의 본질적 소망이자 희망

인간은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배우거나 시작할 때, 처음 가졌던 마음인 초심을 잃거나 흔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처음 가르친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 진정한 크리스천은 예수뿐이라는 말씀이나, 불교 스님들이 절에 처음 올 때의 마음이 불심이 완성된 상태였다는 이야기처럼, 초심을 잃고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일은 개인과 사회 전반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초심은 다른 말로 ‘희망(Hope)’, 즉 자신의 소명이나 소망, 꿈을 의미합니다. 간디처럼 초심과 끝심이 같은 사람은 인도에서 존경을 받지만, 부패로 감옥에 갔다면 존경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초심을 유지하는 정치인은 드뭅니다. 초심은 유지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초심에 무언가를 더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초심을 지키기 어려운 것은 중간에 유혹하는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초심을 잃게 되는 근본 원인: 마음의 작용

초발심시 신통장(初發心時 神通藏), 초발심시 광명당(初發心時 光明堂)이라는 말처럼, 초심을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재무자성 종심기(罪無自性 從心起)라는 말처럼, 죄는 본래 없지만 마음에 의해 일어납니다. 자기 스스로의 본성(自性)에는 죄가 없지만, 마음이 그것을 일으키고 따라가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초심을 잃어버리는 원인은 마음의 작용에 있습니다. 죄는 본래 없는 것이지만, 마음이 그것을 따라가면 처음과 끝이 달라지게 됩니다.

예토(穢土)의 속성: 때 묻기 쉬운 세상

우리가 사는 사회는 불교에서 말하는 정토(淨土), 즉 깨끗한 땅이 아닙니다. 이 구조 자체가 예토(穢土), 즉 더러운 땅입니다. 정토는 수도자들이 있는 곳이지만, 이곳은 오욕에 몸부림치는 자들이 사는 예토이기에 때가 묻기 쉽습니다. 공무원들이 선서하고 임명받을 때, 장교들이 임명받을 때는 청렴하지만, 살다 보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현실적인 필요에 쫓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초심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연애할 때나 결혼할 때 좋았던 첫 마음이 나중에는 원수가 되는 것처럼, 거의 99.9%의 사람들이 초심을 지키지 못합니다.

티끌이 태산을 이루듯, 죄도 쌓여 초심을 잃게 된다

태산도 티끌과 티끌이 모여 이루어지듯이, 우리의 업보도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깨끗하지만, 자꾸 쌓여 죄가 태산처럼 되어버립니다. 재무자성 종심기처럼 죄는 본래 없지만, 티끌 같은 나쁜 마음들이 쌓여 태산처럼 변하니, 이를 막기란 어렵습니다. 처음의 변절이 안 된다는 것, 즉 초심을 지킨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입니다. 이는 중도를 지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중도는 도의 절정이며, 초심을 지키는 것보다 더 높은 차원입니다. 그러나 도를 가지고는 천국에 갈 수 없으며, 인간 세계에서 끝납니다.

혁명가의 초심과 부패의 현실

대학교 다닐 때 부정부패에 대항하며 시위하던 젊은 학생들의 초심이 계속 이어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나중에는 부패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혁명했던 자도 부패자로 재판받고, 혁명 정신을 가졌던 많은 이들이 나중에는 재산이 수천억 압류당하는 등 부패에 연루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예토에서는 어쩔 수 없이 때가 묻지만, 이 예토에서 중도를 지키는 것이 곧 초심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공심(公心)에서 사심(私心)으로 변질되는 초심

초심은 대부분 사심이 아닌 공심입니다. 사회의 선교사가 되어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마음이 초심입니다. 그러나 막상 현장에 가보면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아이들과 가족의 현실 앞에서 초심이 사심으로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단을 위해 희생하겠다는 공심이 아내를 살리고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사심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서양 선교사들 중에는 한국에 와서 가족이 전염병으로 죽어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 땅에 묻히겠다고 초심을 지킨 강직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자군 정신처럼 초심을 끝까지 지키는 특이한 기사도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공심으로 가야 할 초심이 사심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초심을 잃어가는 일상의 비유

육사생들은 군기가 잡혀 있지만, 장교가 되면 군기가 흐트러지는 것처럼 초심을 잃습니다. 새 차를 살 때는 아끼고 닦겠다는 초심이 생기지만, 20년이 지나면 그 마음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부부가 100년 해로하겠다는 초심으로 시작하지만, 상처가 쌓여 초심이 사라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속에는 초심이 남아 있어 옛날을 그리워하며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며 절간에서 공부하던 시절이 가장 행복했다고 회상하는 변호사처럼, 젊음은 초심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가난하고 고아였던 시절이 그리운 것처럼, 돈이 없어도 희망을 품고 공부하던 초심의 시절이 가장 행복한 때입니다.

정몽주와 이방원의 초심: 지조와 변절

정몽주는 목숨을 걸고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라고 노래하며 고려에 대한 초심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조선을 인정할 수 없었고, 자신이 모시던 왕을 배신할 수 없다는 강직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이방원이 초심을 바꾸라고 권유했지만, 정몽주는 농공행상(論功行賞)에 참여하지 않고 죽음을 택하며 초심을 지켰습니다. 이는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모습이며, 우리가 권장하는 바입니다.

비움과 채움, 그리고 욕망

불교는 비우는 종교이고, 기독교는 사랑으로 채우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사랑이 아닌 욕망을 채우려 하기에 초심 유지가 어렵습니다. 자꾸 보는 것이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이웃 사랑과 초심의 실천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아파트 층간 소음이 나도 아이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저렇게 뛰어놀까 이해하고, 내 자식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남의 개가 잔디밭에 똥을 싸도 내 개라고 생각하고 치우는 것이 초심입니다. 윗집에서 물이 새도 화를 내기보다 먼저 비용을 대어 고쳐주겠다고 말하며 이웃과 친해지는 것이 초심입니다.

이처럼 초심은 남과 사이좋게 지내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허경영에게 많은 사람이 몰려오는 것은 그가 옛날부터 노인들을 극진히 대우하며 초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변절하는 기회주의자에게는 사람이 모이지 않고 결국 패망합니다.

진정한 사랑과 초심

여자가 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 여자의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돈이 없는데 억지로 데려와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욕심입니다. 더 좋은 집안의 좋은 사람이 나타났다면 묵묵히 놓아주는 것이 아버지 같은 마음이며, 높은 차원의 사랑입니다. 초심은 이처럼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