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4th The Universe is Connected: Embracing absolute gratitude and altruism for a Harmonious Life – March 3, 2024

하늘궁, 운명을 바꾸는 성산 성지

120억 학년의 기운이 모여 있는 성산 성지 우영지 하늘궁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축하드립니다. 모든 물질에 신인님의 전함과 이름을 쓰면 썩지 않으며, 우리는 신인님의 전함과 사진을 붙인 우유를 마시며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건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통일장 이론이며, 신인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주 공간을 지배하시는 허경영 신인님께서 우리와의 소통을 위해 제344회 하늘궁 행사를 여십니다. 유튜브를 보고 계신 모든 분께서도 힘찬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브라질에서 이곳까지 오려면 30시간이 걸리는데, 그 먼 길을 오신 분이 여기 앉아 계십니다. 미국이나 브라질 등 먼 곳에서 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제가 요새 해외로 나가지 못했지만, 여기 앉아 있어도 그쪽이 다 보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어제 강의 제목은 아마겟돈과 천년 왕국, 하이에나 심판, 최후 심판, 이렇게 네 가지였습니다.

최후 심판과 인간 존재의 경이로움

남자와 여자가 한 사람을 만들려면 반드시 최후 심판이 있어야 합니다. 개인들은 그렇지 않습니까? 남자 한 사람이 아이 하나를 낳기 위해 몇 명 정도의 정자가 필요할까요? 여러분은 그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정자만 들어가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좋은 씨를 구하기 위해 5억 명을 희생시킵니다. 나머지 4억 9천9백9십9만은 무로 돌아가 하수도로 가서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곳으로 갑니다. 그들도 정자이며, 먼저 들어가려고 몸부림칩니다. 양쪽 난소로 뛰어 들어가는데, 이쪽에 2억 5천만, 저쪽에 2억 5천만이 들어가지만 한쪽을 헛다리 짚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왼쪽에 난자가 나와 있는지, 오른쪽에 나와 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두 난소를 향해 5억 마리가 뛰어 들어갔는데, 한쪽으로 들어간 5천만 마리가 난소에 붙습니다. 거기서 제일 먼저 온 정자가 난자에 들어가 버리면 난자는 돌덩이처럼 딱딱해져 버립니다. 그 후에는 다른 정자가 붙을 수 없습니다. 왜 달리기를 시킬까요? 강력한 유전자, 즉 정자만 고르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백궁, 즉 천국에 태어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경쟁이 치열합니다. 5억 대 1인데도 한 아이가 태어나려면 100억 대 1 정도 됩니다. 5억 마리가 첫 번에 딱 들어서 임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며칠 있다 또 5억 마리, 열흘 있다 또 5억 마리, 몇 달을 하다가 몇 년을 정자가 들어가서 임신이 하나가 되니, 수백억 중에서 한 사람이 잉태되는 기적을 통해 여러분이 이곳에 온 것입니다. 몇 천억의 정자가 들어가서 하나가 잉태되는 것이며, 나머지는 전부 무로 가서 하수도를 통해 지옥으로 가버립니다. 다시는 올라올 수 없습니다. 그 정자들 속에 여러분의 혼, 남자의 혼과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완벽한 생명체입니다.

백궁으로 가는 길: 치열한 경쟁과 선택

남자만 만나면 누구나 천국으로 갈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정자처럼 지금까지 죽은 인구가 약 8천억이 됩니다. 그 8천억 중에서 천만 명만이 백궁으로 가는 것입니다. 확률이 적습니다. 인간 하나가 태어나기 위해 희생되는 정자의 숫자보다도 적습니다. 그런데 왜 그 많은 사람을 다 데려가지 않고, 8천억 중에서 천만 명만 골라 간다고 하면 서운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백궁은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어야 가는 곳입니다. 하나의 인간으로 오는 데도 수천억의 경쟁률을 뚫고 올라온 사람이 바로 여러분의 모습, 여러분 정자의 모습입니다. 얼마나 치열합니까? 나머지 정자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몸부림치던 정자들이 무저갱에 다 있습니다. 얼마나 고르고 고르는 것이 하늘의 법칙인지 모릅니다. 그냥 쓸 수 없으며, 골라야 합니다. 입시 시험이나 수능 시험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100만 대 1도, 10만 대 1도 안 되는 경쟁률입니다. 어마어마한 시험을 거쳐 여러분이 태어났다는 여러분의 가치를 알아야 합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사람 같지만, 그 사람은 몇 천억 대 1로 태어난 사람입니다. 5억, 5억. 정자 한 번만 나가서 임신이 되나요? 3년 만에 임신되었다면 정자가 얼마나 희생된 것일까요? 숫자를 계산해 보십시오. 무지막지합니다. 그 수천억의 정자 중에 하나가 된 것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입니다. 사람 귀한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미운 사람도 이 세상에 혼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주적 연결성과 ‘우리’의 의미

티끌 같은 정자 하나에 우주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입니다. 티끌 하나하나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지, 단절된 것은 없습니다. 이 꽃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을까요, 안 되어 있을까요? 연결되어 있습니다. 독립된 존재는 이 우주에 없습니다.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했지만, 이것은 초등학교 때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이 공부를 많이 하고 나면 “아이고, 산도 산이 아니요, 물도 물이 아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산도 거리요, 물도 거리입니다. 수소가 물질에 들어 있습니다. 어릴 때는 “아빠, 저거 산이네”, “아빠, 저거 물이지”라고 하지만, 나이가 들어 깊이 들어가 보면 산도 산이 아니고 티끌이며, 물도 티끌입니다. 일체 모든 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하나이며, 지구라는 이 하나의 연결이 되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라는 단어가 정상인 것입니다. ‘우리’라는 말. 나 개인은 존속할 수 없으며,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나 혼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부모가 연결되어 있고, 자식이 연결되어 있으며, 친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음식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종이 한 장을 보십시오. 흰 종이 한 장이 독립된 것일까요? 이 종이를 보면 펄프 나무가 보이고, 펄프 공장이 보이며, 인부들이 일하고, 종이를 만들고, 표백제가 들어가고, 트럭으로 싣고 가는 과정이 보입니다. 이 안에 들어간 물질은 자그마치 우주 전체 물질이 다 투입된 것입니다. 이 종이를 보면 자연이 보이고, 나무가 보입니다. 온 우주가 이 종이 한 장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이거 종이다”라고 하면 잘못된 것입니다. 이 종이를 들면 “저것은 연마 미구 우주 구조 종이 앉아, 인간의 땀과 자연의 노력과 태양 빛과 그것이 없으면 어떻게 종이 나무가 클 수 있겠는가? 펄프 나무가 모든 해와 달과 바다와 물과 온갖 것이 종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일미진중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산도 산이 아니고, 물도 물이 아닙니다. 성철 스님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한 것은 초보 단계를 본인이 알면서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사물을 바라볼 때 단절해서 보면 안 됩니다. 이것을 종이라고 단절해서 보면 이 종이를 함부로 사용하게 됩니다. 이것은 우주이며, 우주의 환경 전체입니다. 수많은 사람의 정성이 들어간 것입니다. 여기에 연애편지가 들어가면 우리의 영혼까지 들어가고, 여기에 글을 쓰면 성경이 되고, 철학 서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것을 다 담습니다. 모든 물질을 담고 있는 데다가 정신적인 것까지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글자를 남길 수 있습니다. 러브레터를 쓰면 그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연결해 줍니다.

이웃 사랑과 공동체 의식

하나의 먼지가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의 종이든, 마이크든,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있는 것은 없으며, 전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것을 자르고 있습니다. 매일같이 이것을 잘라서 봅니다. “저 사람은 우리 집 아버지가 아니야”, “저 길거리에서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저 노인네는 나하고 떨어진 사람, 관계없는 사람이야”라고 생각하면 천벌을 받습니다. 길에서 밥 빌어 먹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주머니에 손이 들어가서 “밥 사 잡수세요”라고 해야 합니다. “당신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은 당신의 이웃이지만, 주어 되는 것입니다.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하니까 우리 어머니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세상이 모두 나와 연결되어 있는 가족입니다.

이 종이의 결점이 무엇입니까? 찢어진다고 하면 안 됩니다. “이것은 결점이 찢어지는 것이네”, “이것은 비닐이 아니네”라고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인생입니다. 늘 남의 결점을 찾아다니고, 남이 조금 잘 되면 무엇을 가지고 저놈을 끌어내릴까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 찢어지네”, “이것은 불도 잘 타 버리네”, “이것은 물에 닿으면 젖어서 아무것도 못 써”라고 종이에 대해 흉을 보기 시작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허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것이 내 가족이며, 내가 주머니에 비닐 열 장을 가지고 다니는 것처럼 남을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어제 보여드렸듯이, 비닐 열 장은 부피는 얼마 안 되지만 나중에 요긴하게 쓸 때가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제가 어제 보여드렸듯이, 이것은 봉지이며, 제 소변을 받으려고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남을 위해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지참하고 다녀야 사람입니다. 무겁지도 않습니다. 저는 산을 잘 다니고, 어디 가서 개똥 같은 것이 사람 다니는 데 있으면 주워서 담습니다. 제 양복 주머니에 넣습니다. 양복 주머니에 손 넣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줄이면 아주 작아져 버리고, 이렇게 들어가면 표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필요한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이웃입니다. 마음만 안타까워하면 안 됩니다. “아이고, 저거, 저거, 저거, 어쩌면 좋나?” 이러면 안 됩니다. 행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신사입니다. 돌아다니는 개가 전부 내 개이며, 우리 고향이고 우리 개입니다. 그들이 개똥을 싸 놓았으면 주워서 담아야 합니다. 흉을 봐도 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밟으면 굉장히 일이 복잡해집니다. 예쁘게 나 있을 때 싹 주워서 담아야 합니다.

이웃과의 화합과 배려

윗집에서 비가 새서 물이 밑에 집 침대에 떨어질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올라가서 “죄송하지만 제가 수리비를 댈 테니 물이 어디서 새는지 우리 같이 좀 고쳐 봅시다”라고 해야 그 사람이 성질을 안 냅니다. “당신 왜 물을 흘려? 왜 그걸 빨리 안 고쳐?”라고 하면 싸움이 붙습니다. 그렇게 하면 나중에는 윗집이 내 집과 같이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수리비를 내려고 자기들이 아, 내가 내겠다고, 내가 그걸 먼저 봤으니까 내가 내야 된다” 이렇게 해야 밑에 집에 사는 사람을 믿고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애들 쿵탕거린다고 해서 애도 안 낳았는데 애 가진 사람을 죄인 취급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것이 믿음 가진 영적인 사람들이 할 소리일까요? 애 낳으라고 지금 제사를 지내도 괜찮은데, 애 있다고 그게 무슨 죄인입니까? “왜 애가 조용하지 않냐”고 합니다. 애들은 애들 같아야 합니다. 애들 너무 에티켓 많이 가르칠 필요 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좀 돌아보십시오. 아기 때 어떻게 했습니까? 온 논밭을 뛰어다니면서 어른들이 보리 타작 해놓은 곳에 구멍 뚫어 기어들어가 안방 만들어 놓고, 여자애들 보고 밥상 가져오라고 소리 지르고, 돌멩이 위에 풀 얹어 가져오는 것을 빨리 안 가져온다고 소리 지르며 아버지 흉내를 냈습니다. 바람이 불고 겨울에 추운데 보리단 안은 따뜻하고 포근했습니다. 어른 흉내를 내는 것입니다. 부엌에서 밥 가져온다는 애들은 전부 잠을 잡니다. 우리는 어릴 때 얼마나 수다를 떨었습니까? 자기가 그렇게 어릴 때 뛰어다닌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아파트에 갇혀서 애들이 조마조마하게 여러 명이 우당탕탕하는 소리를 들으면 “아이고, 이거는 사람 소리가 나는구나”, “야, 지금도 저렇게 애를 키우는 집이 있구나” 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조용해라”, “애 없애 버려라”라고 하면 조용하면 그곳이 지옥입니다. 바글바글하고 쿵탕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아이고, 세상에 아직도 애를 저렇게 열심히 키우는 집이 있구나” 하고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의 소리를 마귀의 소리로 생각합니다. 행복한 소리이며, 나라가 살아나는 소리입니다. 집집마다 조용하면 무슨 아파트가 요양원이 되어 버립니까? 아파트가 노인들만 자빠져 누워 있고 조용하면, 이것이 지금 아파트의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애들은 어디 갔습니까? 없어져 버렸습니다.

저출산 문제와 영적 각성

여러분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지금 우리 영적으로 우리 하늘궁이 말입니다, 우리나라 애들이 0.6%로 점점 내려가고 있습니다. 0.1%가 되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애 낳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부 다문화 가족들, 해외에서 온 여자들이 무턱대고 애를 낳습니다. 다문화 가족 애들이 낳은 것이 0.6%, 0.5%를 차지합니다. 우리는 애를 안 낳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다시 깨어나야 합니다. 지금 선거 때라서 제가 무슨 출산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웃을 그렇게 애 소리 난다고 남의 집에 가서 칼을 들이대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위에서 떠들면 “아, 지금도 애를 키우는 사람이 있구나”, “아, 저 소리가 음악 소리보다 더 좋은 소리야”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애들이 그 좁은 구속에서 얼마나 답답할까요? 우리는 어릴 때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니고 놀았습니까? 애들이 길에서 뛰다가 차에 치여 죽기 딱 좋습니다. 천신의 매이고 콘크리트 집에서 콘크리트 학원으로, 콘크리트 학교로 끝나면 또 콘크리트로 기어들어옵니다. 아파트에 들어가서 도배지를 한번 싹 벗겨 보십시오. 그것이 콘크리트입니다. 우리 시골집은 콘크리트가 아니며, 흙으로 되어 있고 나무로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데서 살았습니다. 쟤들은 콘크리트면 전부 도배지입니다. 아파트에 들어가서 도배지를 쫙 찢으면 콘크리트, 시멘트, 시멘트 덩어리입니다. 거기에 도배지에 속아 우리는 안에서 집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가 막힙니다. 집에 도배지 다 뜯어내고 새로 지은 아파트에 도배하지 말고 한번 들어가 보십시오. 그곳이 끔찍스럽습니다. 옆집도 콘크리트, 여기도 콘크리트, 화장실도 콘크리트, 전부 콘크리트입니다. 아래 위가 다 콘크리트입니다. 거기서 여러분이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또 언제 잘못하면 밑에서 치매에 걸린 사람이 생깁니다. 애들이 있으면 치매에 걸릴 일이 없습니다. 애들이 없으니까 조용하니까 서로 치매에 걸려 나라가 망하는 것입니다. 어린애가 없는 나라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출산 정책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볼 때 종이 한 장도 내 이웃이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잘 찢어진다고 흉 보면 안 됩니다. 이것이 물에 젖으면 못 쓴다고 비닐류가 최고라고 하면 안 됩니다. 종이는 종이의 역할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이 종이처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절대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이웃의 피해를 내가 짊어질 때 이웃 사람 하나하나가 내 동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타심의 중요성: 풍선 실험 비유

옆집에 애들 소음이 나는데 “정말 애들이 있어서 부럽습니다”라고 하고 소리 난다는 소리도 안 하고 너무 잘해 주면, 그 애가 차에 뛰어 들어가는데 동네 사람들이 그 집 애인 줄 알고 금방 애를 붙들어 “위험하다”라고 하며 자기 애처럼 동네 사람이 다 봐 줄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이 신경질 내고 소리 지르면 그 애를 봐 줄까요? 서로서로 이웃에게 잘해 주면, 자기 자식이 골목 가다 위험에 닥칠 때 “어머, 저거 우리 옆집 아들 아니야? 야, 탁 구해내는 거야”라고 하며 자기 자손이 오래오래 가는 것입니다. 아파트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유일한 재산이라고 목에 힘을 주고 “야, 너가 뭐 그다 사냐? 왜 시끄럽냐? 조용히 좀 살자”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무조건적으로 택한 사람입니다. 일체 진중이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으며, 떨어져 있는 것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산도 물이요, 물도 산입니다. 옆집 아저씨도 내 아저씨고, 옆집 애도 내 아기입니다. 옆집 강아지가 눈 똥도 내 똥입니다. 우리가 다 치워 줘야 합니다. 정신으로 우리는 이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에 근심이 없어집니다. 월급이 작다, 고생스럽다, 힘이 든다, 이것은 전부 남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부자 돈이 내 돈이며,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세금 내면 나에게 노인 수당 나중에 뭐가 나올 것입니다. 요양원에 들어가면 국가에서 좀 주지 않습니까? 그것이 다 그 사람들이 사업해서 내는 돈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나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고, 우리가 늙어도 그 혜택을 받는 것입니다. 연결되지 않고 뚝 떨어진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의 티끌이 우주와 연결되어 있으며, 일체 티끌들이 그와 똑같습니다. 떨어져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물질은 없는 것입니다. 신인만 예외입니다. 신인만 여러분과는 다릅니다.

8천억이라는 인간, 그동안 죽은 인간이 그 정도 되며, 1조 인간 정도 됩니다. 그 1조에서 천만 명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몇 천억에서 어린이가 하나가 태어나는 것입니다. 몇 천억의 정자를 희생해서 한 인간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여러분들이 이제 사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사람 하나를 보면 이것이 몇 천억 대 1로 기적의 산물이며, 기적의 선물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적의 존재입니다. 그가 나중에 무저갱으로 가던 정자가 몇 천, 몇 천억의 정자가 하수도로 들어갑니다.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기 위해 몇 천억의 정자가 하수도로 들어가야 합니다. 몇 천억을 희생시키고 자기 혼자 태어난 것입니다. 백궁 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80억이라는 인간 숫자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수천억의 인간 중에 천만 명은 좀 많습니다. 정자에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그보다 경쟁률이 더 치열합니다. 백궁 가는 것은 그래도 한 명입니다. 수천억에서 한 명 구하는 것이 아니고 천만 명을 데려가는데, 인간은 수천억에서 하나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는 데 수천억의 정자가 없어지고, 3년 만에 한 사람, 정자 수천억 없어지고, 10년 만에 임신한 사람, 정자 얼마나 없어졌는지 계산할 수 있습니까? 그 경쟁률에 비하면 백궁 천국 가는 것은 그나마 천만 명 데리고 가는 것이 양호한 줄 알아야 합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을 한번 읽어 보십시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생명책에 기록되었다는 것은 제가 선택한 것입니다. 백궁 천국으로 들어가는 사람으로 등록이 된 자만 불못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불못은 무저갱에 들어가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면 좋겠지만, 수천 년간 죽지 않고 불타는 데서 계속 비명을 질러야 합니다. 살은 계속 타는데 이 살이 없어지지 않으며, 계속 불이 안 꺼지고 타는 것입니다. 그 고통을 수천억 년간 겪어야 하니 그 벌이 어마어마합니다. 백궁으로 가버리는 사람은 얼마나 거기에 비해서 대단합니까? 요한계시록 20장 15절 이 말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아주 무서운 말이며, 짧지만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은 자는 그냥 가는 것입니다.

식도락에 대한 백궁의 관점

신인님께서 우리는 모두와 연결되어 있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8천억 생명체를 죽이고 태어난 귀중한 사람이므로 이웃을 나와 같이 대하라는 귀중한 말씀을 오늘 또 우리에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또 깨우침을 주신 신인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박수 올려 주십시오. 먼저 영상 질문 올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신인님. 오늘은 식도락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식도락의 사전적 정의는 여러 가지 음식을 두루 맛보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입니다. 심지어는 먹기 위해 산다, 먹기 위해 운동한다, 먹기 위해 일한다, 먹기 위해 여행 간다라며 다른 것보다도 식도락을 삶의 낙으로 삼는 지구인들도 많은데요. 질문입니다. 첫째, 식도락을 좇는 사람들을 백궁에서 어떻게 보나요? 둘째, 백궁 세계에도 식도락을 누릴 수 있나요?”

식도락이라는 것은 인간은 모든 음식을 바라볼 때 자기의 마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어떤 사람은 면만 먹어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라면만 봐도 행복할 수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데 라면 하나 사서 먹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가 라면을 끓여 먹고, 먹는 도중에 그날 오후에 스튜디오 가서 무슨 노래, 요새 많이 하는 미스트롯에 출연하는 여자라면 노래 연습하느라 시간이 없어 식도락을 즐길 수 없습니다. 라면 하나 빨리 끓여 먹고 노래 연습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그럴 때는 라면이 최고의 식도락입니다. 미스트롯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먹는 음식에 좌지우지되지 않습니다. 모든 여러분이 음식을 대할 때에는 그가 음식을 대하는 처지에 따라서 식도락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음식이 무엇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수성찬을 자식이 차려 왔는데, 좋은 호텔에 가서 뷔페를 딸들이 아버지 잡수시라고 차려 주는데, 대장암 말기, 위암 말기에 있는 엄마가 그 음식 보고 식도락이 될까요, 안 될까요? 안 되는 것입니다. 식도락이라는 말을 아무데나 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몸 상태와 내 마음에 달려 있는 것이지 식도락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구마 하나만 삶아 가지고 시골에서 고구마를 큰 솥에 삶으면 고구마가 밑에가 약간 타서 구수한 냄새가 납니다. 가마솥에 고구마가 그렇습니다. 서울에서 삶는 것과 다릅니다. 밑에 고구마는 좀 희생을 당해 화상을 입었지만, 위에 고구마는 화상을 안 입었습니다. 껍질을 벗길 때 그 고구마 향이, 냄새가, 시골 고구마가 얼마나 맛있는지 모릅니다. 그냥 그것이 행복이며, 최고의 식도락입니다. 감자를 푹 여러 개 삶으면 서울에서 먹는 감자와는 다릅니다. 시골에서는 감자를 소에게 많이 주는데, 그 감자가 왜 그렇게 맛이 좋은지 아십니까? 이 감자가 아니라 무슨 별을 먹는 것 같습니다. 감자 껍질을 딱 벗겨서 감자를 탁 쪼개면 별처럼 빛납니다. 감자 속이 막 별처럼 은하계를 먹는 것입니다. 은하계를 통째로 먹습니다. 얼마나 맛이 좋은지 상상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먹는 사람에 따라서 식도락이 됩니다. 부자들이 자기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가는 것은 사람이 늙었을 때 하는 것입니다. 못 먹은 음식을 자식들이 사 주는 것입니다. 또 특별히 어려서 잘 못 먹은 사람은 식도락에 욕심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신병의 일종입니다. 거짓말이 아닙니다. 자기가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려고 하는 욕구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병이며, 건강과 관계가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어떤 음식도 감사하게 먹고, 음식을 먹을 때 굽는 사람을 생각하고, 이 양식을, 이 고구마 하나가 종이 한 장처럼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고 먹어야 합니다. 귀하게. “어머, 내가 이 고구마, 이게 흙에서 나오긴 했는데 이 고구마가 인간은 만들 때 흙으로 살게 해 놨거든. 근데 흙을 직접 먹어 보니까 살 수가 없어. 토하고. 그래서 우리가 인간에게 흙으로 살게 해 주기 위해서 고구마나 감자나 밀이나 보리를 만들어 준 거야. 그러면 흙의 기운을 개들이 빨아 당겨. 그래 흙을 식물로 바뀌게 만든 거야. 흙의 모양이 식물로 바뀐 거야. 실제는 흙에서 나온 거야.” 흙에서 나온 흙을 먹는데 모양만 바꿔 놓은 것입니다. 거기에 무슨 도락이 있습니까? 도락이 전부 긴데.

절대 감사와 천연 재료의 중요성

그래도 여러분이 음식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먹는 것을 식도락이라고 합니다. 오케스트라, 여러 가지를 섞어서 무엇을 만들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들은 제가 이야기했듯이 천연 재료를 사랑해야 합니다. 고구마면 고구마를 그냥 가루 가지고 여러 가지로 만들어 놓은 것보다 그냥 고구마, 폭삭 만한 것, 원형 그대로 천연 식품을 사랑해야 합니다. 천연 식품 맞습니다. 천연 재료, 이런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몸이 건강해집니다. 뿌리 채소도 먹어야 합니다. 당근을 싹 씻어 보십시오. 그 예술품을 어느 누가 당근 뿌리를 그렇게 예쁘게 만들 수 있습니까? 내려갈수록 작아집니다. 왜 그럴까요? 태양이 가까울수록 커지고, 태양에서 멀어질수록 작아지는 것입니다. 언제나 태양과 가까운 뿌리는 크고, 태양 밑으로 내려갈수록 작아지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서 철학을 공부하면서 그냥 당근을 하나, 생 당근을 씻어서 먹어 버리십시오. 물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침이 막 넘어가고, 피가 되고 살이 됩니다. 당근 주스를 갈아 먹는 것보다 씹어서 한번 주스를 만들어서 입에서 만들어서 먹어 보십시오. 좋습니다. 제가 식품에서 간과했듯이, 식도락도 좋지만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 절대 감사해야 합니다. 절대 감사는 무슨 감사입니까? 절대 감사입니다. 절대 감사는 상대 감사가 아닙니다. 고구마 하나를 먹어도 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내 아버지가 해준 것이면 내 아버지를 생각해야 하고, 월급을 받아서 고구마 사 먹는 사람은 기업체 사장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장님이 월급을 줘서 내가 이 고구마를 사서 삶아 먹는 것입니다. 그 뿌리를 생각하는 것이 절대 감사입니다. 그냥 식당 주인에게 “감사합니다”라고 밥상 갖다 주니까 감사하는 것은 상대적 감사입니다. 갖다 주니까 감사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진짜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 신입니다. 그 신인을 잃어버리고 그 식당 주인에게 막 “감사합니다”라고 먹으면 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감사한 사람이 몇입니까? 상대 감사입니다. 그 위에 절대 감사가 빠지면 안 됩니다. 소풍 갔는데 김밥을 꺼내서 먹을 때, 김밥을 만들어 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엄마입니다. 우리 엄마가 잠도 안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이 김밥을 내 소풍 간다고 만들었습니다. “아이고, 우리 엄마 고마워”라고 김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것은 상대적 감사입니다. 그런데 그 김밥을 원래 있게 해 준 자가 누구입니까? 신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신인에 대한 감사가 빠지면 암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음식을 먹었습니까? 그렇게 안 먹었기 때문에 환자가 나오는 것입니다. 절대 감사를 빼 버립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감사한 다음에, “어머님, 이 밥이 있게 해 주고 이 흙 속에서 이런 것이 쌀이 나오게 해 주고, 이렇게 바다에서 김이 나오게 해 주고, 어머님, 이걸 만들어 준 창조주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그것을 우리는 절대 감사라고 합니다. 그것을 여러분들은 안 합니다. 안 하면 되겠습니까?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이 복이 있는 자입니다.

백궁의 식도락과 정토의 삶

백궁에도 식도락이 있습니까? 이 질문도 있습니다. 백궁은 여러분도 알지만 특수한 식도락입니다. 음식을 먹는 식도락이 있는 섹터가 있습니다. 원하는 대로 가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먹을 수 있습니다. 배설이 존재할까요? 배설 기관 자체가 없습니다. 특수한 조직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 백궁, 500의 일반 궁은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전부 원하는 것을 다 하려면 백궁 안에서도 지구와 비슷한 별로 가야 합니다. 별이 아니라 터입니다. 그 섹터로 가면 자기 원하는 대로 다 바뀌고, 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도 있고 재미도 있고 그 즐거움이 다 있을 것입니다. 바로 자기의 그냥 밥을 안 먹는 지역으로 딱 가면 안 먹습니다.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배가 고프다는 이런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체 구조가 지금과 다릅니다. 얼굴이나 모양은 비슷하지만 인체 구조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는 때를 닦아야 합니다. 우리는 때를 닦는 이런 더러운 땅입니다. 더러울 예 자입니다. 이것은 더러운 땅이며, 예토입니다. 백궁은 무슨 땅이라고 할까요? 정도입니다. 보통 정토가 아닙니다. 이곳은 미생물이 있어야 식품이 나옵니다. 미생물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미생물이 있으면 전염병이 있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너무 아름다운 것입니다. 아름다우면서 불편한 것이 없습니다. 여자가 반찬 만들고 이런 것도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쪽 섹터로 가면 됩니다. 재미있습니다. 5만 가지를 다 할 수 있습니다. 영화만 보고 싶다면 인간이 만들어 놓은 영화만 보는 데가 있습니다. 가서 아무리 봐도 쫓기는 것이 없습니다. 누가 빚쟁이가 쫓아오거나 카드값 걱정 같은 것이 없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백궁 천국이라 해서 답답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원하면 원하는 세계가 탁탁 펼쳐지니 그것이 천국입니다. 지구에서는 저 바깥이 하늘궁 바깥이며, 이곳이야말로 정토입니다. 흠잡는 행위는 굉장히 위험한 것입니다. 이 하늘궁의 정토에 시비 거는 자들은 위험합니다. 굉장한 위험에 노출될 수 있습니다.

이타심과 신뢰의 법칙

다음은 최선우 진희님 질문입니다. 최선우 진희님 질문이 제일 어렵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하늘궁은 천년 왕국 본부로 자업자득으로 도달한 천사님들 축하합니다. 보답을 중시하는 천년 왕국은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자들의 것입니다. 신인님은 일개 절대 예를 마땅히 받으실 재림 예수. 만물은 신인에 복종하여 통일장입니다. 나는 오직 하늘에서 이은 전쟁을 막으려 신인님 강림하셨습니다. 지금은 사후 동물로 태어나고 영원한 고통의 무저갱에 가는 심판도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신인님은 45년 무료 급식과 홍제 성당 거린 및 강아지 분뇨 등에 누구도 할 수 없는 모범을 보이십니다. 신인님의 결점을 보는 자는 있을 수 없는 바보들입니다. 어떤 상황에도 간하게 타인의 장점을 보는 우리가 되어야겠습니다. 저출산으로 국가 소멸 위기입니다. 신인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으십니다. 질문입니다. 한국은 희생 없는 이기주의가 많이 납니다. 신인님처럼 신뢰를 얻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 진희님 질문은 우리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타심입니다. 우리가 풍선을 여러분 숫자만큼 만들어서 각자 자기 이름을 씁니다. 그리고 이 풍선을 여기다 집어 던져서 자기 이름을 찾으라고 합니다. 자기 이름이 쓰인 풍선을 찾으라고 하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립니다. 제일 먼저 찾아오는 사람에게 1억을 준다고 하면 난리가 날 것입니다. 풍선 300개, 500개를 다 뒤져야 자기 것이 나옵니다. 그럴 때 자기 것을 찾는 시간이 어마어마하게 걸립니다. 그런데 남을 먼저 생각해 버리면 금방 찾습니다. 자기가 잡은 풍선의 주인을 각자 돌려줘 버리면 됩니다. 남을 먼저 생각해 주는 것입니다. 제가 보니까 “아, 여기 가수 먹겠네” 하고 줘 버립니다. 그런데 누가 “허경영 씨, 여기 있네” 하면 금방 옵니다. 서로 남의 것을 찾아주다 보면 금방 풍선의 주인이 다 갈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이것을 이기심으로 자기 것만 찾아서 1억을 벌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아수라장이 되어 버립니다. 풍선을 서로 뒤지는데 몇 백 개를 뒤져서 자기 것을 찾아내려고 해 보십시오. 되겠습니까? 이것이 지금 세상입니다. 아수라장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질서가 없습니다. 그런데 각자 찾은 것을 그 사람에게 갖다 주라고 하면 자기 것이 금방 돌아옵니다. 어떤 사람이 “내 거 찾아가” 하면 “허경영 씨, 여기 있네요” 하고 주는 것입니다. 금방 찾을 것을. 그렇게 이것이 자본주의입니다. 자본주의가 이런 경쟁을 시킨다는 것입니다. 그 자본주의 질서를 잘 알면 “아, 남의 것을 도와주면 내 것은 저절로 오는구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입니다. 이 실험을 하버드 대학에서 했었는데, 세 시간 걸릴 것을 10분 만에 다 찾았습니다. 다 각자 자기 것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각자 찾으라고 하고 먼저 찾은 사람에게 점수를 준다고 하면 난리가 나 버립니다. 풍선이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막 풍선이 터지고 엉망진창입니다. 몇 백 명이 뛰어들어가서 풍선 짓을 찾으니 그것이 무엇이 되겠습니까? 이것이 자본주의이며, 이기주의입니다. 이기주의는 이렇게 혼란스러워집니다. 남 생각 먼저 해야 합니다. “내가 이 풍선을 찾으면 아, 당신 빨리 가서 1등해” 하고 줘야 합니다. 그러면 저절로 찾습니다. “허경영 씨, 여기서 주잖아” 이렇게 서로 상대방 것을 찾아주다 보면 풍선 찾으러 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씩 금방 다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이기심으로 살면 괴롭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이타심으로 살면 스트레스가 우선 없습니다. 남이 잘 되어야 하니까. 내가 손해를 봐도 “아, 난 이타심이 있으니 남이 내 돈 가져가서 잘 먹고 살면 다행이지 뭐” 이렇게 하면 안 죽는데, “이거 내 거 저놈 새끼가 가져가서 내 아까 죽어 오지는 않는 돈인데” 괴로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괴로워하면 돈이 알아서 옵니까? 더 안 옵니다. 내 건강만 나빠집니다. 그렇게 인생을 종치는 것이며, 죄만 짓는 것입니다. 입으로. 이를 부들부들 갈면서 죄를 짓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그래서 남을 먼저 생각하면 스트레스가 없습니다. 과장님이 막 나를 불러놓고 욕을 하고 꾸지람해도 과장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아, 과장님이 나 같은 놈을 데리고 있으려니 얼마나 괴로울까” 이 생각하면 되는데, “지가 뭔데 나보다 회사 먼저 났다 왔다고 말이야. 나를 과장이라고 나를 무시했는데”라고 생각하며 소주 마시면 자기만 버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만 있으면 모든 고통은 일시에 없어집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따라다닙니다. 그 사람에게만 그렇습니다. 제 지지자가 몇십 년 전부터 자꾸자꾸 생긴 것입니다. 제가 가면 사람이 따라다니고, 맨날 저에게 옵니다. 이것이 모이다가 안방이 되고, 안방이 이렇게 강의장이 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한 12제자 정도 따라다녔는데, 나중에는 제자가 몇십 명, 몇백 명, 몇천 명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제자가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사람을 흩는 사람과 모으는 사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흩는 사람은 이기주의자이고, 모으는 사람은 그 사람 속에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가 있는 것입니다.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합니다. 저는 설날 선물이 온 것도 남에게 다 갖다 줍니다. 사람들한테 선물도 줘야 하는데, 남이 저에게 준 선물까지도 다른 사람에게 선물합니다. 우리 진희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낙원에 살기 위해서는 이타심으로 살면 질서가 조용하고 아름답게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가십니까?

군자의 태도와 소인의 불화

우리는 이렇게 살기 위해서, 군자는 태이불교(泰而不驕)입니다. 훌륭한 사람은 강직하고 태평스럽습니다. 말은 없고 강해 보이는데, 그것이 교만해 보이는 것 같을 수 있습니다. 잘못 보면 교수님들 보면 교만해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제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군자는 이 테이블, 이것이 군자는 꼭 묵직하고 강직하고 음한 것 같지만 실제는 교만한 것이 아닙니다. 겸손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런 사람을 교만하게 착각하는 것입니다. 진짜 교만한 사람은 무엇입니까? 친이부화(親而不和)입니다. 굉장히 빨리 친해지고 착 달라붙어 살살살살살 합니다. 그러면 내 주머니 또 나갑니다. 아주 이 태이불교와 반대입니다. 아주 이런 사람이 99.9%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아주 금방 친해지는데 화합을 안 하고, 암암리에 이쪽 사람 편을 안 들고 저쪽 편을 들고 있습니다. 이렇게 파당을 짓습니다. 친절하게 와서 “어머, 신인 보이그룹 그 신인 문제가 있어” 막 이러는 것입니다. 그러면 친절하니까 그 자빠져 넘어갑니다. 그렇게 해서 파당이 생기고, 하늘궁 안에 파가 생기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만든다고요? 이런 사람이 만듭니다. 태이불교는 그런 짓 안 합니다. 이런 사람이 친일불화가, 친일불화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불화라는 것은 화합을 하지 못하게 해 버립니다. 파벌이 생기는 것입니다, 안에서. “어머, 저 목사님은 뭐 바람이 났대요” 뭐 거짓말로 교회 내에서 아주 치명적인 거짓말을 합니다. 이래 가지고 그 사람이 솔깃하니까 그거 듣느라고 친해지는 것입니다. 한참 듣다 보니까 이것이 거짓말인데 친절에 넘어가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친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냥 담담한 것을 태라고 합니다. 태평성대. 담담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또 교만한 사람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런 사람은 변절이 없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이 정몽주입니다. “백골이 진토되어 흙이 되더라도” 시가 있든 없든 임 향한 일편단심입니다. “가실 줄이 있으랴? 내 죽더라도 나는 당신 안 따라간다. 내가 섬기던 임금을 배신 못 하겠다.” 정몽주 그렇게 죽었습니다. 죽음을 자기가 미리 노래로 불렀습니다. 제일 처음에 “차신 사료, 사료 백번 갱 사료” 한문으로 그렇습니다. “이 몸이 차신, 이 몸이 몸이 죽어지고 백번 차신 사려 사로 백번 세로. 백골 위 진토 혼백 위무. 백골이 진토되어 흙이 되더라도 혼백이 있든 없든 혼백 유무. 어 향주 일편단심. 영육 리하여 임금 한 임금을 향한 마음이 영원히 가실 줄이 있으.” 이것이 한문으로 제가 많이 써 줬습니다. 시간 없어서 쓸 수가 없습니다. 요런 요런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백궁의 기쁨과 지구의 심판

여기는 천국이기 때문에 온 사람들은 즐거워야 합니다. 즐거움보다는 기뻐야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샘솟는 기쁨입니다. 즐거움은 아닙니다. 즐거움에 넘어가면 안 됩니다. 기쁨입니다. 다음은 대리 질문입니다. 울산의 박병욱 천사님, “신인님께서는 뇌를 1% 사용하는 지구별에 오셔서 심을 통해서 천만 명 내외를 백궁으로 데려가십니다. 그러면 지구보다 더 진화된 뇌를 10% 이상 쓰는 별에서, 별에 가셔서도 거기에 사는 인간들도 백궁으로 데려 가시는지요? 그렇다면 그때는 심판 대신 다른 방법을 사용하시는지요?” 이랬습니다. 전부 다 심판입니다. 밭마다 소출이 다르겠죠? 밭마다 소출이 다릅니다. 여기는 지구 밭입니다. 어떤 집은 열 명 낳고, 어떤 집은 한 명 낳고 그럽니다. 그 집 한 사람의 집이 하나의 별이며, 하나의 지구입니다. 하늘에서 볼 때 그렇습니다. 소출이 다릅니다. 그것은 그때그때 우리가 정합니다. 좀 특수한 별 지구도 있습니다. 그것이 여러분들이 만들어 놓은 개성 있는 가정이며, 지구 가정입니다. 거기서 뽑아오는 것입니다. 농부가 자갈밭을 들 패나 무라나 안 남으라 소출 나는 대로 가져오고, 나머지는 무저갱으로 넣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답이 되죠?

백궁의 이름과 지구의 얼굴

다음은 김 천사님께서 “백궁에서 쓰는 이름은 어떤 것인지요? 지구에 태어날 때는 조부모나 부모님이 이름을 지어 주시고, 스님으로부터 호도 받고 하는데 어려서는 호도 사용하곤 하거든요.” 이랬습니다. 백궁에서도 이름은 백궁에 가서 자기가 이름을 정할 때 백궁의 부모님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름을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이름이 여기처럼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동일한 이름이 없어야 합니다. 지구는 동일한 이름이 많습니다. 백궁은 동일한 이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나오는 기계가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탁 누르면 동명이 어디, 백궁 어디에도 동명이 있을 때 그 이름이 안 나옵니다. 완전 개성 있게 이름이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가 그 이름이 싫으면 또 고치면 됩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이름이 같은 이름이 있는 것은 안 됩니다. 이름은 무한대로 짓습니다. 그리고 이름마다 자기가 뜻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그 정보가 다 있습니다. 그 이름을 개인이 여기처럼 이렇게 해서 짓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지구 컴퓨터 이런 컴퓨터가 아닙니다. 딱 집어넣으면 착 나옵니다. 자기 아버지 이름, 거기 어머니 이름 딱 집어넣으면 내 이름, 성이, 이름이 다다닥 나옵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성을 따라가지는 않습니다. 여기는 성이 있는데, 백궁은 성이 없습니다. 성은 한 성입니다. 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냥 이름이 그냥 성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지구는 아까 말한 대로 친이처럼 파를 만듭니다. 그래서 이것은 무슨 박씨다, 이것은 김씨다 뭐 이렇게 파를 만드는데, 백궁은 그 파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동일한 성이라는 자체가 없습니다. 그냥 애칭이 헬리, 헬렌 뭐 이런 식이 되겠죠. 아주 간단합니다. 좋지 않습니까? 자기와 동일한 이름은 백궁 전체에 없습니다. 그 이름이 있으면 자동으로 지워져 버립니다. 안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구는 좀 불편합니다. 이름을 각자 짓다 보니까 옆집하고 이름이 같을 수 있습니다. 학교 선생도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어, 그 얘는 전이 박게” 그 뭐 이런 식으로 선생은 그걸 분해해야 하니까. 이런 것이 있지만, 백궁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상당히 발달의 끝입니다. 제가 대답해 주는 것이 AI에 나올까요? 하나도 안 나옵니다. 인간이 만든 컴퓨터나 AI 어떤 기기에서도 제가 지금 해주는 답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백궁의 감정과 인간의 희로애락

다음은 울산 남구 영성센터 김순곤 천사님, 이제 이 위에는 이제 그 말씀하신 것을 써 놓았고요. 백궁에 희로애락, 오욕, 희로애락, 애오욕정, 여덟 가지가 있습니다. 희로애락, 애오욕정, 칠정이 아니라 팔정인데, 인간들은 칠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여덟 가지가 있는데, 이것이 백궁에 그것은 인간 세계에서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에서 그 희로애오욕정을 졸업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할아버지가 할머니가 되면 자기가 시집올 때와 이 희로애오욕정이 달라집니다. 자식들이 젖하고 자식이고 모든 것이 다 그냥 불쌍하게 보입니다. 시집 왔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집 식구 하나하나를 점수를 매겨 “저건 성질이 못됐다”, “저거 뭐가 어떻다”, “저거 뭐다” 막 이런 평가를 하는데, 할머니가 되어 손자들 딱 보면 뭐든지 오케이합니다. 거짓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할머니가 나도 안 되어 봤지만 그렇지 않습니까? 손자가 열 명이 있으면 열 명이 다 그냥 손자입니다. 거기에 희로애락, 애오욕정을 넣지 않습니다. 그냥 다 보면 그냥 기쁠 뿐입니다. 감정의 수준이 있는 것입니다. 올라가면 감정이 성화되어 버립니다. 성화. 애오욕정은 인간 저급한 세상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희로애오욕정을 느끼는 것도 인간 세상에서도 낮은 사람들만 느끼는 것입니다. 양반은 무슨 감정을 가집니까? 이것은 천민들이 가지는 사고방식입니다. 이것이 칠정은 사단 칠정이 있지 않습니까? 이 정이든 정이든 이것은 천민이 가지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런데 양반들이 가지는 사고방식은 무엇입니까? 사단입니다. 측은지심, 수호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입니다. 남을 불쌍하게 봅니다. 이것이 할머니 마음입니다. 손자들하고 경쟁하겠다, 덕을 보겠습니까? 안 봅니다. 그들이 크기 전에 죽습니다. 할머니는 그들이 안쓰러운 것입니다. 오래 볼 수 없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무조건 사랑을 주는 것입니다.

사단칠정: 양반과 천민의 감정

측은지심이 있는 것입니다. 수호지심이 무엇입니까? 죄를 멀리하는 마음입니다. 내가 저 남자를 좋아하고 싶어도 이것이 죄가 될까 봐 못 하는 것입니다. 수호지심이. “어머, 내가 남편이 있는데 저 남자가 좋네?” 그러면 수호지심이 생깁니다. 죄를 멀리하는 마음. 양반들은 아무리 여자가 젊은 여자가 첩으로 삼으면 삼지, 그것하고 데이트하고 다니고 이것을 못 하는 것입니다. 아예 그런 감정을 못 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수호지심이라고 합니다. 측은지심으로 사람을 바라보고, 수호지심으로 나쁜 곳으로 빠지지 않는 마음을 항상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멀리하는 마음. 그다음에 사양지심. 무엇이든지 먹을 것이 있으면 남에게 먼저, 아래 것들한테 먼저 먹으라고 합니다. 근데 아래 것들이 먼저 갖다 줍니다. 맛있는 것은. 계속 받아먹으면 당뇨병입니다. “야, 좋은 건 너희가 먹고 좀 거친 거, 안 맛 없는 거 좀 가져와라” 이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양반입니다. 주는 대로 안 먹습니다. “야, 옆집에는 좀 논나 좋냐?” 이런단 말입니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그러면 이것이 사양지심입니다. 그다음에 시비지심. 이것이 옳으냐, 그르냐. 여기에 빠집니다. “아니, 내 아들은 공부하고 있는데 난 텔레비 보고 있는 게 이게 옳은 거야, 안 옳은 거야?” 이것이 양반들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공부하면 공부하는 척하고 책을 보고 신문이라도 보고 앉아 있는 것입니다. 재미있는 텔레비가 있으면 마누라 보고 저 한쪽 구석 가서 마누라 보라고 합니다. 아버지는 책을 보는 척하고 앉아 있어야 아들이 공부를 합니다. 이렇게 양반은 이 네 가지 마음, 측은지심, 수호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이 네 가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놈들은 희로애락, 기뻤다가 금방 울다가 슬펐다가 냄비 뚜껑처럼 조석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주로 이것이 여자의 마음입니다. 백궁에는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여기서 사단, 이 사단, 칠정 중에 양반이 가지는 사단이라는 이 이성적인 감정, 아주 성화된 이 감정보다 더 성화되어 있습니다. 가면은 그러니까 이런 것이 있습니다. 왕비가 이렇게 나와 있으면은 그냥 일반 시골집 아줌마들처럼 막 떠들고 이러지 않습니다. 조용합니다. 옛날에 어떤 영부인은 나병 환자 손을 막 만지고 이렇게 쓰다듬고 막 이랬습니다. 일반 사람은 “아이고 무서워” 이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은 아주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 나병 환자의 손을 잡습니다. 그 손가락 막 잘라진 그 손을 이렇게 잡습니다. 그것으로 유명해진 분도 있습니다. 그것이 고상한 감정입니다. 그것이 사단이 측은지심입니다. 얼마나 나병이 이렇게 무섭습니까? 나중에는 코가 없어져 버립니다. 나병 걸리면 코가 떨어지고 제일 먼저 손가락이 떨어집니다. 그다음에 코가 떨어지고, 그다음에 눈이 멀고, 얼굴에 볼 살이 물러져 없어집니다. 나병은 공기로도 옮고 피부로도 옮으니까 나병이 무섭습니다. 옛날에는 굉장히 나병이 많았습니다. 우리 동네 나병 환자들이 오면 밥을 얻으러 옵니다. 손이 없으니까 깡통을 팔에다 걸치고 옵니다. 그러면 애들이 깡통에 돌멩이를 막 집어 던집니다. 깡통을 손에 들고 있지 않고 팔에 걸치고 있으니까 이것이 얼굴 가까이 있습니다. 이렇게 다니는데 여기다 돌을 던지니까 나병 환자 이마에 막 피가 나고 그럽니다. 꼬마들이 그것을 합니다. 제가 막 그것을 말리고 그럽니다. 제가 막 쫓아가서 나병 환자 앞에 가로막고 “돌 던지지 마라. 누가 왜 이러냐?” 이렇게 하면 그 돌이 저에게 날아옵니다. 제가 이런 데 막 피가 나고 그런 적이 있습니다. 애들이 그 버릇을 못 고칩니다. 올 때마다 제가 막는데도 애들은 던집니다. 나병 환자들은 이렇게 무지무지 고생입니다. 손가락 때문에 일을 못 합니다. 농사를 못 짓습니다. 손이 없어져 버리니까 몽둥이 막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일을 못 하니까 밥을 얻어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동네는 부자 동네니까 꼭 나병 환자들이 여러 명씩 옵니다. 하루도 안 빠집니다. 바보들도 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 20리 떨어져서 나병 환자 사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 마을 앞에는 무서워서 안 갑니다. 꼬마들 잡아다가 간을 꺼내 먹으면 나병이 낫는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옛날에 그랬지 않습니까? 괜히 이 한센병 환자들을 그렇게 무시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한센이 외국 사람이 150년 전에 그 300년 전에 그 나병 균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이 한센병으로 바뀌었습니다. 한센이라는 사람이 그 병균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때부터 약이 나왔는데, 그래서 그때부터 한 150년 전부터 그 약이 나와서 치료가 되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완전한 치료가 안 됩니다.

마리안네와 마가렛: 절대 봉사의 삶

나환자촌에 오스트리아 여자 둘이 와서 죽을 때쯤 돼서 갔습니다. 80이 다 돼서 갔는데 훈장 받았다 그랬지 않습니까? 세상에 오스트리아에서 하나는 의사고 하나는 간호사입니다. 자기 아버지가 하는 병원에 있는 딸이 그 병원에 있는 간호사이고, 둘이 의사 그만두고 간호도 그만두고, 우리 한국에 와서 소록도로 온 것입니다. 1962년에 한 사람이 와서, 1966년에 둘이 와서, 둘이 와서 그 병원의 간호원 하나는 병원 집 딸이고, 하나는 그 딸인데 의사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병원의 간호원인데, 그 의사 밑에 수종 들던 간호원 두 명이 소록도에 와서 평생 40년을 나병 환자 피고름 닦아내고, 이 일을 하다가 80이 다 돼서 우리가 환자가 될 것 같다, 이러다가 우리가 환자 도움 받을 일이 생겨서, 고향에 가서 죽자 하고 돌아갔는데, 훈장을 받고 우리나라에서도 훈장을 받아 목련장을 받았습니다. 그 여자들이 대단히 훌륭한 여자입니다. 그 두 여자가, 제가 전에 이름 얘기했듯이 마리안네하고 마가렛입니다. 그 마가렛과 마리안네는 평생 시집도 안 가고 나병 환자만 만지다가 다 늙어서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이런 사람들의 감정은 희로애락, 욕정이 아니고, 사단의 측은지심, 수호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있습니다. 어느 것을 하나님이 좋아하시겠습니까? 하늘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무한 봉사입니다. 그때 오스트리아에서 바라볼 때 우리나라는 그 당시 GDP가 60불도 안 됐습니다. 마리안네와 마가렛이 올 때, 우리나라 GDP는 60불 이상이었습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그때 마가렛과 마리안네가 왔을 때, 우리나라 공무원 월급이 만 원도 안 됐습니다. 마리안네와 마가렛은 한 사람은 62년에 오고 한 사람은 66년에 왔습니다. 둘이 비자 때문에, 그 절차 때문에 늦게 왔는데, 이 두 사람이 한국에서 만나서 소록도에 온 것입니다. 한 병원에서 두 사람이 독신으로 평생을 있다 갔습니다. 그 사람에게 희로애오욕을 이야기해 보십시오. 그것이 무엇이냐고 할 것입니다. 오직 절대 봉사, 절대 감사, 신에 대한 절대 봉사입니다. 아까 제가 했듯이 절대 감사, 절대 봉사, 절대 희생입니다. 자기들의 모든 하는 일을 신이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신에 대한 절대 감사를 해야 하며, 절대 봉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거기에 자기 자신을 바친 것입니다. 대단하지 않습니까? 오스트리아 정부에서도 훈장 줬고, 우리나라에서는 목련장을 줬습니다. 대단합니다. 한국 사람들도 안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그것을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오스트리아의 의사 여자와 간호원이 둘이 와서 우리나라를 이만큼, 그 한센 환자를 위해서 희생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왔을 때 그 소록도에 있는 나환자 수가 5천 명이었습니다. 닦아주고 해 주는 것입니다. 옛날에 나환자 많았습니다. 지금 많이 줄은 것입니다. 5천 명의 나환자가 바글바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천국에 나환자가 다 못 들어갔습니다. 나환자 마을이 군데군데 있었고, 그 소록도로 간 사람이 5천 명입니다. 그 두 사람이 해결한 나환자가 5천 명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함부로 우리의 감정에 불만을 표시한다, 이런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절대 감사, 절대 봉사. 대가를 바라는 봉사 하면 안 됩니다. 절대 봉사. 신에 대해서 그냥 절대 봉사. 그런데 신이 가짜니 뭐니, 신인님의 약점을 찾고 그들이 그렇게 했을까요? 아닙니다. 그 여자가 그렇게 했을까요? 안 하는 것입니다. 한국 정부는 뭐 하고 있냐? 왜 이런 나환자를 안 보살피냐 이랬을까요? 아닙니다.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두 사람을 제가 백궁으로 보냈을까요, 안 보냈을까요? 보냈습니다. 제가 백궁으로 보내줬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가렛과 마리안네 이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두 사람을 백궁으로 보낸 자가 저입니다. 그렇게 하시고 우리는 감정을 노래할 애오욕정을 부리면 제가 만약 희로애락을 좋아하면 제가 여기 앉아 있을까요? 아닙니다. 그 사람 안티들 말마따나 수인은 먹고 놀러도 아니고 뭐 전부 전부 내 그런 사람입니다. 커피 한잔 안 먹어본 사람 아닙니다. 술 안 먹어 봤지 않습니까? 희로애오욕정은 없으나 음악은 좋아합니다. 음악은 상당히 감성적입니다. 또 신인은 그렇습니다. 인간의 감정선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밑바닥 사람들의 정서를 이해하는 음악을 되게 좋아합니다. 모든 밑바닥을 제가 다 한 바퀴 훑었습니다.

무한대의 개념과 전생의 흔적

다음은 창원의 김소희 천사님, “혹시 무와 무 다섯 개 무무무무무 같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무와 오무 같습니다. 무무가 오무입니다. 무가 하도 많으니까 무의 숫자가 무. 또 무가 올라면 무가 개가 되는 것입니다. 나중에는 무의 숫자를 따집니다. 무의 숫자가 몇 개냐 이것을 따지는 것입니다. 적형, 해자, 구관, 정제, 항라, 불무까지 갔지 않습니까? 그럼 다시 억, 해자, 항라, 불무로 가는 것입니다. 이 무가 몇 개냐. 그 위의 숫자는 여러분이 셀 수가 없습니다. 무한대이니까. 무한대의 숫자가 없습니다. 무한대 이상 못 넘어가니까 다시 또 1부터 해서 또 무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 개가 겹친 숫자를 또 그것이 또 넘어가는 것입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백궁에 가보면 그것이 전체 여러분의 무 숫자가 다 나옵니다. 그것이 레벨입니다. 확실히 얼굴을 보면 저 얼굴과 제 얼굴이 다릅니다. 미인이 많은 사람의 얼굴이 훨씬 미인입니다. 정말 기가 막힙니다. 이것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백궁에서는 딱 태어난 데를 보면 탁 나는 것입니다. 이 지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전생 업보에 따라 얼굴이 만들어지지 않습니까? 얼굴이 크게 만들어진 사람과 작게 만들어진 사람과 모양이 좋게 만들어진 사람과, 돼지같이 만들어진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얼굴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분증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주민등록증에는 마빡이 들어갑니다. 돼지 대가리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돼지 대가리 보고 뭐 그것을 어떻게 알아낼까요? 돼지 대가리는 똑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민등록증에는 돼지 대가리가 딱 붙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 대가리냐, 돼지 대가리냐, 개 대가리냐? 이것이 딱 판명이 나와 있습니다. 딱 보면 이것은 개상이며, 딱 보면 이것은 원숭이 상입니다. 이것은 공작 상이며, 이것은 말 상이며, 동자 상입니다. 상이 다 다릅니다. 거기에 주민증을 딱 보면 그것이 전부 동물로 보입니다. 사람의 얼굴인데 짐승을 닮은 것입니다. 다 전생이 무엇이라는 것이 다 나옵니다. 좋지 않습니까?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주민증을 그냥 가지고 다니지 않습니까? 그것이 돼지 머리를 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보면 왜 99.9% 돼지와 서로가 거기서 0.11% 백궁으로 간다는 것입니다. 천만 명만. 현재 지금 지구인에 99.9% 돼지 아니면 소로 가니까, 그것이 돼지 대가리 좀 무엇입니까? 제가 그 말하는 것이 무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것이 심판이며, 전부 동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백궁으로 가는 사람은 남의 흉을 보면 절대 안 됩니다. 어떤 사람도 정말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그냥 가족들한테 서운하지 않게, 딸내미, 아들내미 시집, 장가 잘 보내고 그냥 내가 굶지 않을 정도로만, 노후만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데 그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 압류가 오고, 무엇이 모자하고, 무슨 일이 터지고, 병원에 가면 수술비도 모자라고 막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냥 평범한 일상을 원했는데, 그것마저도 이루어지지가 않는 것입니다. 아들, 그러면 장가도 안 가고, 딸 장가도 안 갑니다. 속세, 용돈 내놔라. 나이 50에 용돈 내놔라. 집구석이 말입니다. 자기가 평범한 일상을 꿈꿨는데,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았는데도 생활이 안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봐야 병만 늘어나고, 이것을 애들한테 아프다고 할 수도 없고, 온 몸은 쑤시는데 나가서 벌어오지 않으면 이것을 애 용돈도 못 주고, 애들 밥도 굶기게 생겼습니다. 그런 사람 많습니다. 이 평범한 행복을 보장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쓸데없이 바쁘고 고생만 죽으라고 하고, 병만 늘어나고, 관절만, 다리, 무릎만 나빠지고 이러고 앉아 있는 것이 지금 인생입니다. 제가 그것을 다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백궁을 향해서 가고 있으니까 그것을 즐거움으로 알고 고통으로 느끼지 마십시오.

죽음의 형태와 전생의 업보

다음은 허정숙 천사님, “정말 천사 같은 사람은 심장 마비로 어느 날 갑자기 벼락처럼 사망하는 것이 오히려 복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임종할 때 심장 마비로 요절하는 사람들은 전생 업장이 무겁지 않은 건지요?” 이랬습니다. 벼락처럼이 아니라 번개처럼입니다. 벼락 맞는 것은 굉장히 끔찍합니다. 번개처럼 생명이 팍 가버립니다. 마지막 종명, 자기 목숨이 끝나는 것을 종이라 합니다. 종명이 좋아야 합니다. 종명이 가족이 있을 때 가는 것, 그것도 좋은 종입니다. 그런데 그냥 가족이 아무도 없는 데서 혼자 달려 가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 가족과의 인연 관계가 안 좋은 사람이라야 합니다. 유대가 좋은 사람은 돌아갈 때도 거창하게 돌아갑니다. 가족이 불러놓고 서서히 돌아갑니다. 가족 손 잡고 말을 하다가 가는 것입니다. 심장에 탁 먹는다고,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자식들과의 교류가 끊어져 버립니다. 엄마한테 한 말이 남아 있고, 저쪽에는 할 말도 못 하고, 이런 대화가 단절된 상태의 죽음입니다.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뭔가 어머니가 아프면 자식들이 “엄마, 내 그동안에 못 해줘서 미안해, 엄마 잘 가라” 뭐, 사고 내면서 서로 해묵은 감정을 풀면서 가야 하는데, 오늘날 엄마가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하면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운명하실 때 손 잡고 “어머, 잘 가” 뭐 이러고 뭐, 서로 “너는 앞으로 너 남편하고 다시 손 잡고 잘해 봐라” 뭐, 이렇게 마지막 대화를 자식과 나눌 수 있으면 좋은 것입니다. 그것이 종이며, 종명이 좋아야 착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런데 쓸쓸히 요양원에 누워서 그냥 자식들한테 “엄마, 죽었어요” 하고 연락해 주고, “어, 그래요”, “어, 알았어요” 하고 말입니다. 이렇게 쓸쓸히 죽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렇게 가족이 본원 앞에서 종하는 것이 좋았는데, 요새 그런 사람 더 드뭅니다. 세대가 많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런 시대가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장 마비로 죽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고, 마지막 데려가는데 무엇이 그렇게 바빠서 심장마비를 시켜 데려갑니까? 조용히 가족들과 대화하다가 유언을 하고 돌아가면 복이 좋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저라도 옆에 있으면 좋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옆에서 이렇게 눈을 감겨주면 대단히 좋은 것입니다. 그럼 그냥 눈 뜨고 보면 제가 또 하늘에서 만납니다. 좋겠죠? 심장마비는 자꾸 들먹거리는 것이 안 좋습니다. 그것이 뇌에 자꾸 들어가면 안 됩니다. 자꾸 심장마비, 심장마비 이러면 안 됩니다. 본인의 심장이 “어머, 이 사람이 심장마비를 좋아하나 보다” 이래 가지고 몸에서 심장마비를 준비하니까. 노래가 심장마비 노래가 있지 않습니까? 심장마비, 심장마비, 심장 이것을 계속 부르면 그 사람은 언젠가 심장마비가 옵니다. 이 뇌는 착각을 합니다. “어머, 우리 주인이 심장마비를 원하는구나. 그래서 자꾸 심장마비를 부르는구나. 심장마비를 일으킬 준비를 해.” 얘들이.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래 인체는 그렇게 딱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람, 낙엽 따라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지 않습니까? 다 그 노래 가사대로 간 것입니다. 그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여 가수가 눈이 땡그랗게 쳐다봅니다. 재미있습니다. 제가 하늘에서 강의해 주는 것은 그 안에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의미가 심오한 것입니다. 또 질문이 무엇이 있습니까? 심장마비는 업장과 무관하고 무하고 관계가 없습니다. 하나의 죽음의 하나의 형태인데.

평발과 손금으로 보는 전생과 성격

이현동 천사님, “현생의 평발이신 분들은 전생의 업보와 연관이 있는지요? 평발을 없애는 방법이 있는지요?” 평발인 사람은 전생에 양반들이 일을 하던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 평발이 아니고 이렇게 발이 말굽 발이 된 사람은 전생에 노예라는 것은 남의 일을 많이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평발은 전생에 가마를 너무 오래 탄 것입니다. 가마를 조금만 멀리 가면 가마가 대령합니다. 그러면 발이 어떻게 됩니까? 평발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평발은 전부 다 공부를 잘합니다. 다 전생에 다 가마 타던 사람들이고 학문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글 읽는 노인들이 옛날 사람들이 양반 가마 타고 다니는 양반들이 집에 글을 안 읽으면 가마 타고 이러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본 사람은 맨날 맨발로 짚신 신고 걸어 다녀야 하지 않습니까? 발이 어떻게 됩니까? 울퉁불퉁해집니다. 말발굽 같이 다니지 않으면 걸음을 못 걷습니다. 옛날에 길에 돌이 많아서 평발로 다닐 수 있었습니까? 다니기 어렵습니다. 이 아스팔트니까 평발로 다닐 수 있습니다. 구두가 있으니까 다닐 수 있습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발이 말발굽 같이 안 생기면 걸어 다닐 수가 없습니다. 평발인 사람은 전생에 귀부인이 있었거나 무슨 학자로 있었거나 선비로 있었거나 훌륭한 관리로 있었거나 이런 사람이 평발로 태어납니다. 벌써 그 골격을 보면 그 사람이 무엇을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전생에 무엇을 했는지 금방 나옵니다. 손을 펴 보십시오. 손을 펴 보십시오. 이 손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사람의 전생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는 것은 얼굴입니다. 딱 보면 전생이 보입니다. 전생 보이죠? 그다음에 손을 봐야 합니다. 손을 쭉 펴 보십시오. 뒤로 제껴 보십시오. 손이 이렇게 젖혀지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 사람은 굉장히 자연, 사람들하고 교제를 잘합니다. 교제가 쉽습니다. 이것이 넘어졌지 않습니까? 그다음에 요놈도 싹 뒤로 잘 넘어졌습니다. 그러니까 대인 관계를 영업직에 좋으니 이 사람이 영업 사원으로 쓰면 배달이 잘 됩니다. 이 사람이 식당에서 쓰면 매상이 올라가는 것입니다. 배달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이 사람을 보고 친절하다, 사람이 싹싹하다 막 이래 가지고 그것이 이 손에 나타나지 않습니까? 넘어지지 않습니까? 이러면 적응력이 좋습니다. 제 손을 보면 반대로 넘어집니다. 이것이 뒤로 넘어지면 부러집니다. 앞쪽으로 넘어져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아무리 뒤로 제껴 봐야 헛일입니다. 이렇게 제끼면 부러집니다. 부러지지 않습니까? 이 손은 항상 앞으로 꼬부라져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적응력이 필요 없습니다. 언제나 고집대로. 그다음에 엄지손 이 마디가 없습니다. 이 손이 뒤로 넘어지는 마디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 손은 무서운 것이 이것을 팍 찌르면 굉장히 위험합니다. 이것이 안 잡히니까 그냥 들어갑니다. 안에 가서 창자를 꺼내 올 수가 있습니다. 실제 옷을 벗고 있으면 팍 들어가면 이것이 들어가 버립니다. 이 손이 무슨 손입니까? 그런데 손을 이렇게 펴 보십시오. 이 손이 제 손하고 이렇게 한번 비교해 보십시오. 손은 일한 손입니다. 이 손은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손입니다. 세상 일을 안 했다는 소리입니다. 손이 컴퓨터로 그래픽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신기합니다. 그래픽 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손이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정교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을 이렇게 하면 사람이 나와 버리고, 이렇게 하면 사람이 고쳐지고, 이런 손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디가 톡톡톡 튀어나옵니다. 그러면서 막 이리 가고 저리 가고 막. 이것은 질서 정연합니다. 아니, 질서 정연합니다. 자로 잰 것 같지 않습니까? 이것이 신의 손입니다. 신의 손은 일을 한 흔적이 없습니다. 또 하나 특징은 신의 손은 이렇게 봤을 때 이 볼록한 부분이 되게 큽니다. 볼록하지 않습니까? 해 보십시오. 여기도 크긴 큰데 모양이 상당히 좀 다릅니다. 그런데 이 엄지 손이나 이런 손 전체가 규격이 딱딱 맞지 않습니까? 잰 것 같지 않습니까? 이것은 진화 과정에서 공간이 막 생깁니다. 생기지 않습니까? 신인님의 손은 상식을 벗어난 일을 할 수가 없는 손입니다. 그 손으로 사람을 죽이거나 전쟁터에 가서 방아쇠를 당기거나 이런 것을 못 하는 손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 손은 돕는 손입니다. 이 사람은 전생에 무슨 일을 했습니까? 험한 일을 한 것입니다. 뼈를 보면 전생에 배설한 사람 손은 또 욕하고 좀 달라야 합니다. 좋은 일을 많이 해서 저에게 온 것입니다. 이 손은 전생에 봉사를 많이 한 손입니다. 노동을 조금만 해 버리면 손이 이렇게 나옵니다.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진인 이리 와 보십시오. 진인 손은 조금 진화가 되어 있습니다. 조금 낫지 않습니까? 조금 낫습니다. 그런데 진인의 손은 뒤로 안 넘어지지 않습니까? 잘 안 넘어집니다. 이렇게 달이 손은 약간 넘어집니다. 이것은 의사의 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볼 때 이 새끼손가락 여기하고 굉장히 내려와 있지 않습니까? 저하고 좀 다르지 않습니까? 다릅니다. 다르지 않습니까? 여기가 저하고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 손과 이 손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이것은 전생을 보는 것입니다. 다 볼 수 있습니다. 이것과 이것이 차이가 심하고, 이것과 이것이 차이가 심합니다. 그래서 부족합니다. 그리고 요거가 요거는 비슷합니다. 그런 것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요거, 요것이 차이가 확실히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기 진희는 이 손과 이 손이 비슷하지 않습니까? 저는 다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신인님의 손과 진인의 손이, 진인의 손이 신인님의 손을 많이 닮아갑니다. 그 대신에 엄지가 넘어지는 것, 이것이 다르지 않습니까? 이것이 이렇게. 이것은 안 넘어지고. 상당히 진화된 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진인의 손이라 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진인을 따라올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이것을 손이라고도 함부로 내놓지 못합니다. 재미있습니다. 손에서도 완전히 달라져 버립니다. 얼굴에서 달랐는데 손이 또 달라집니다. 그래서 우리가 옛날에 왕비로 있었던 여자들 보면 섬섬옥수라고 하지 않습니까? 손이 무엇입니까? 다릅니다. 그래서 손을 가지고도 그 사람의 성격을 보는 것입니다. 얼굴은 전생 전체를 봅니다. 손은 그 사람의 성격이 다 나옵니다. 그 사람의 지식이나 재주, 이런 것이 손에 다 있습니다. 그런데 재벌의 딸로 태어났는데 아무 물증도 없이 귀하게 있는 여자의 손을 보면 손가락이 재벌 부러질 정도로 연약해 보입니다. 아주 손이 그냥 이렇게 만지면 손이 우르르 그냥 무슨지 이해가 가십니까? 수양버들 같이 나가 나 그대 확 분질 다 분절지 버릴 것 같이 그런 손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이 얼마나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느냐,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귀한 집에서 태어났느냐, 이런 것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러분보다 전생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손이 이뻐도 여러분들이 최고입니다. 여러분들은 가서 붕대 해 주고 간호 해 주고 막 그러다 봉사를 많이 하다 보니까 손이 험하게 됐을 뿐입니다. 여러분 손이 험하다고 해서 왕비가 아니다, 이것이 아닙니다. 저렇게 소록도에서 봉사한 마가렛과 마리안네라는 수녀가 있지 않습니까? 수녀가 아니라 그 두 여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수녀가 아니라 평범한 여자입니다. 평범한 의사와 그 여자의 병원에서 일하던 간호원 둘이 있습니다. “야, 우리 봉사하러 가자” 이래서 한반도에 온 것입니다. 그때 그 사람들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한국이 있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한국이란 나라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그 와서 나병 환자들 속에 들어가서 평생 있다 갔지 않습니까? 여러분 생활이 어렵다, 억울하다, 이 소리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누릴 것 누려본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은 부잣집 의사 딸로 태어나 가지고 번도 그런 거 못 누려보고 병원에서 하루 근무한 시간이 평균 16시간입니다.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저녁 밤늦게까지 환자 치료하면 잠을 잤는데, 그 시간을 전부 재보니까 하루 16시간을 평생을 일했습니다. 그런 여성들에 대한 분석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것을 다 보고 있는 사람이지 않습니까? 그런 여성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같이 이런 장애인을 싫어하는 민족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장애인을 돕는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얼굴도 예쁘게 생겼습니다. 처녀 때 왔을 때는 절세 미인들이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도 오스트리아 여자였습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인 줄 알고 호주 댁이라 하는데, 실제는 오스트리아 여자입니다. 그 오스트리아 여자들이 참 교육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독립운동가를 막 도와준 것입니다. 옆에서 도와주다가 부인이 된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희생정신에 이승만 대통령이 감동받은 것입니다. “어머, 이건 한국 여자는 따라올 수도 없는 여자들이야” 그래 가지고 그 사람과 살은 것입니다. 우리 여기 소록도에 온 여자와 같은 여자, 희생정신이 있으니까 이승만 대통령이 그 여자를 부인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자가 살던 방을 제가 들어가 봤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잠자던 방. 이화장 가면 있습니다. 그 서울대학교 뒤에. 그 아들이 저하고 친합니다. 고려대학교 교수입니다. 그분이 이승만 대통령 양 아들입니다. 늘 그분이 이승만 대통령의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가 봤더니 그분이 다 보여주고 설명을 해 줍니다. 세상에 커튼을 가지고 커튼을 가지고 만드는 옷뿐입니다. 전부 그 사람이 입은 옷은 커튼을 가지고 만든 것입니다. 그 커튼 우리 지지자들 중에 그 사람들이 집에서 버리는 커튼을 주워 가지고 가져와 가지고 원피스를 만들어서 전부 대통령 옷이 전부 커튼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뭐 때운 것이 엄청 많습니다. 땜방질한 것이. 들어가 보니까 프라이팬도 떼운 것입니다. “어머, 이런 게 대통령이 쓰던 비품이 전부 그냥 땜방질한 거네” 와, 이 이승만 대통령 무지무지하게 청렴했던 가지고 오래 입었지 않습니까? 그 여자 그거 식으로 커튼을 가지고 옷을 해 입습니다. 비비 언니도 커튼 가지고 옷을 해 입고 자기 애인한테 찾아갔지 않습니까? 남자 홀리러 갔지 않습니까? 그런 식입니다. 시간 관계상 질문은 여기까지 하고요. 체험 사례에 그 제자 학년 것인데 좋은 것이 있어서 지금 좀 다시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축복 체험 사례: 혈액암 완치와 부동산 매매

김희영 천사님 축복 체험 사례입니다. “제 아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신인님. 아들이 공무원 생활에서 아파트도 마련하고 이제 결혼만 시키면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행복을 시샘이라도 하듯 부천 모 병원에서 아들이 혈액암 림프종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 올해 2월에 일어났습니다. 평소에 유튜브를 통해서 신인님을 조금은 알고 있어 얼른 하늘궁 이영숙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축복 받으면 좋아진다고 최선을 다해서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바로 송금해 드리고 축복을 받고 이틀 후 부천 모 병원에서 오전에 부모 면담 시 나아도 여러 가지 후유증과 심지어 남자 구실까지 할 수 없다고 하고 내일부터 항암 1차 하기로 했는데 그날 오후 7시에 여기서는 위험하다고 림프종 센터가 있는 병원으로 이송하고 해서 오후 11시 30분 여의도 모 병원으로 옮겨져 항암 1차부터 시작해서 한 번도 일정이 늦춰지지 않고 2022년 6월 11일 항암 6차를 끝내고 완전 관해 되었다는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고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때 의사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처음에 왔을 때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몰랐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은 5년 후 완치 판정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골수 이식을 하자고 하셨지만, 신인님께서 링 테스트를 한 결과 이 아이는 살려야 할 아이라서 골수 이식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인님께 축복을 받았기에 첫 번째 병원에서 림프종 센터가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항암 6차 후 완전 관해가 되고 골수 이식 없이 아프기 전보다 더 건강한 모습으로 제 아들은 2022년 10월 중순에 복직을 합니다. 신인님, 제 아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신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다음은 조은정 천사님, “안녕하세요, 안산에 사는 조은정입니다. 저의 어머니는 모르고 계시지만 1년 6개월 전쯤 신인님의 축복을 받으셨습니다. 어머니는 공동명의로 18년 전에 지방에 땅을 사 놓은 게 있었는데, 거의 10여년 전부터 땅을 팔려고 내놓았는데 안 팔려서 3년 전쯤 신인님께 말씀을 드렸더니, 지원을 보시고는 ‘이거는 잘 안 팔리는 땅이네’ 하셔서 포기를 하고 있다가 공동명의자 분들도 답답해 하시고 해서 얼마 전 땅 지원을 들고 가서 또 신인님께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인님의 명령으로 팔리게 해 주십사 하고요. 그랬더니 신인님께서 보시고 바로 하시는 말씀이 ‘응, 다 해 놓았으니 빨리 부동산에 내놓아라’ 좀 다급한 목소리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그럼 올해 안에는 팔리려나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인님께서 말씀하신 지 꼭 7일째 되던 날 저녁, 부동산에서 매수자가 갑자기 내일 당장 계약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저렇게 서두르시는, ‘내일 꼭 계약하러 오세요’라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10여년 만에 계약이 성사되었습니다.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는 이 세상 돌아가는 개인들의 사소한 일까지도 신인님의 말씀 한마디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된다는 사실에 놀라고 또 한 번 느끼는 충격적이고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신인님을 만나는 계기로 아픈 몸이 다 나았고, 신인님의 축복으로 좋은 일이 일어나고, 신인님의 말씀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는 신기한 일들은 신인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할 수도 없고 알 수도 없는 일입니다. 신인님께서 강림하신 축복받은 이 땅에서 우리에게 직접 축복을 주시고 건강을 찾게 해주시는 신입니다. 신인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백궁 소원석의 영험함과 불로유의 기적

다음은 최서영님 체험 사례입니다. 간증, 백궁 소원석에서 소원을 빌고 무슨 일이. 2022년 8월 21일 일요일 부산 최서영 5일 동안 찾지 못했던 120만 원짜리 스플린트 장치를 찾았습니다. 침대 위에 둔 스플린트 장치가 위의 것만 없어졌다는 게 참 이상했습니다. 하루 이틀 아무리 온 방을 찾아도 없었습니다. 대천사님께 여쭈어보니 방 안에 있다고 합니다. 나흘을 찾아도 없었습니다. 다음 날 치과 갈 때 끼고 가야 하는데 날짜를 이틀 연기해 두고 하늘궁에 다녀오면 뭔가 풀릴 것 같았습니다. 5일째 되는 날, 백궁에 천사 사님, 스플린트 장치를 찾게 해 주세요. 단체 사진을 찍고 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을 무렵, 오후 4시 이후라면 아버님이 낮잠 주무실 시간인데 누워 계시다가 갑자기 일어나 찾고 싶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컴퓨터 본체 밑에 긴 막대기를 넣어 오른쪽으로 한번 하는데, 탁 하고 튀어나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신인님께서 백궁소원석은 한 가지 소원은 꼭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간절한 소망이 있으신 분은 영험한 백석에 소원 빌어 보심도 좋을 듯합니다. 신인님, 아연과 백홍석 방문 후 찾게 되어 너무 기쁘고, 감사드립니다. 지금은 우리가 왜 이런 것만 보냈냐 하면은 선거 때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러 뭐 이야기 이런 것을 많이 안 하고 있습니다. 가능하면 그냥 제가 영적으로 치료한 사례, 이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4월 10일 이후에는 이제 뭐 우리가 또 여러 가지 할 수 있는데, 지금은 좀 제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평범한 이야기들만 내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또 시비를 거니까.

다음은 재작년 9월 8일 작성했던 축복음 말씀 권능 체험 사례입니다. 김희자 천사님 간증 사례 올리겠습니다. “팔 염증 병원 가서 물리 치료, 약 복용 1년간 했는데 치료 받을수록 더 아파서 치료 중단해 버렸습니다. 옷도 못 입을 정도로 아팠습니다. 신인님 두 번 아련하고 통영에서 자주 갈 수 없어서 전화 상담 신청해서 신인님께 팔 좀 안 아프게 해 주세요 했더니 신인님께서 팔하라 하시니까 순식간에 좋아져 버렸습니다. 축복받고 명하고 크고 작은 신기한 일들이 많습니다. 노인 장기요양 1등급이 와상 환자이신 어르신께 광채 들어가라 했더니 감기도 금방 나아 버리고, 어르신이 추위도 많이 타시고 얼굴도 혈색이 없는 밤색인데 하얀 얼굴이 되었습니다. 광채를 자주 넣어 드렸습니다. 아들딸 고질병도 너무 좋아졌습니다. 가족들이 원수지간이었는데 신인님께서 가족 궁합 좋아지라고 해주시니까 이제 화목한 가족이 되었답니다. 신인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 운에 두고두고 받겠습니다.” 제가 고쳐 줘도 이것을, 이 영적인 현상을 안 믿는 자는 효력이 없습니다. 아주 땅이 팔려도 간절해야 합니다. 간절해야 하고, 제가 말하는 것이 설마 팔리냐 이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안 됩니다. “꼭 팔릴 거야. 진인님이 이야기했으니까 팔릴 거야” 이러면 팔립니다. 백궁은 아주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불로유가 좋다는 것도 있지만, 이것이 그냥 여기 그때 뭐 할 때 샵에서 붙여 줬거든요. 안경에. 사진을. 이것이 자꾸 빠졌었는데, 이것을 붙이고서 한번 조이고서는 지금까지 잘 쓰고 있습니다. 떨어져 가지고 그냥 통째로 위에서 떨어졌는데도 안경이 멀쩡합니다. 완전히 안경이 저기다가 떨어지고 했는데도 저도 안 다쳤습니다. 그래서 저는 참 희한하다고 하다가. 10차원 에너지가 이 2차원, 3차원 에너지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로유만 그렇게 되니까. 불로 안경이 모든 그냥 어떤 물질이든 용이 됩니다. 스틱 하나 이름이 붙어버리면 우주 물질입니다. 이 세상 물질 아닙니다.

더 희한한 것은, 그전에 불치병, 불치병, 이것은 병원에서 아주 고치지도 못하는 것을 가지고 엄청 비싸게 받고 그냥 그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아도 한 10여년 동안 안 났던 병입니다. 그런데 그냥 지금 아주 발끝마다 그냥 기분이 좋습니다.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축하합니다. 코도 없어졌습니다. 그냥 사라져 버렸습니다. 더 조기한 것은요. 요새 그 1년 만에 그냥 감기 작년에 한번 걸리고 신인님 말씀드려서 병원에도 안 가고 약도 그냥 딱 가고 한 며칠 있으니까 나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떻게 했는지 그냥 한 열흘 가더라고요. 병원에 한번 갔습니다. 이비인후과 가래 때문에 갔었는데 갔다 와 가지고서 그냥 에이, 그냥 하고서 그냥 하는데 제가 신인님 강의 생각이 나 가지고 부비동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샤워 끝나고서 저는 이제 그 이렇게 그 뭐 이렇게 따로 안 하고 그냥 그 불로 분무기 다 넣어 가지고 그냥 얼굴 그 이것을 또 뿌리고 이제 다 닫고서 여기 저 눈에도 뿌리고. 제가 백내장도 있는데 백내장도 진척이 안 되는지 괜찮습니다. 이 백내장 있는 사람들이 불로유를 자꾸 먹지 않습니까? 그러면 슬슬 없어져 버립니다. 백내장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고요. 안과도 안 가고, 여기저기 코에다가 분무기로 이제 그냥 해 가지고 이 소독을 했습니다. 이렇게 부비동이 공간이 크지 않습니까? 그것으로 분무기로 밀어 넣으면 그냥 안이 좋아집니다. 제가 고이던 그 기침 가래가 며칠 전서부터 없어졌습니다. 왜 그렇지? 왜 그렇지? 이렇게 기관지 또 대사지 않습니까? 대천사는 하지 더 좋아지지 않습니까? 병을 고치는지 모르게 고쳐집니다. 병을 고치는지 모르게 고쳐져 서서히. 먹던 것도 안 아집니다. 맥도 고치는지 모르게 나중에 없어집니다. 그런 것이지, 막 요거 나아야지 하고 먹는 것이 아니라 먹다 보니까 이것이 없어집니다. 아주 소리 소문 없이. 오늘은 행사를 여기까지만 해야겠습니다. 오늘 또 신인님께서 이웃을 나와 같이 대하라. 그리고 여러 가지 질문에 또 재밌는 이야기로 저희들에게 섭리의 답변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대천사님의 큰 위력에 대해서 우리가 체험 사례를 또 보았습니다. 다시 한번 신인님께 뜨거운 감사의 박수 올려 주십시오. 재미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늘궁에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것인데 또 앉아서 제가 또 하는 강의까지 듣고 아주 그냥 항상 복이 복이 그냥 복비가 내려 가지고 그냥 우산도 없이 그냥 복을 통째로 다 받습니다. 이제 또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