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원천과 이타적 삶의 가치
강의를 할 때 항상 기쁨이 넘칩니다. 여러분도 힘들더라도 기쁨을 찾아야 합니다. 아들이 사법고시에 합격하거나 직장에 들어가면 기쁘고, 적금을 들었을 때도 기쁨이 있습니다. 하늘궁에 헌금을 하여 레벨이 올라가면 무언가 없어졌는데도 기쁩니다.
82세의 한 남성은 아프리카에 가서 흑인 양자 두 명을 두었습니다. 자신의 아들은 미국에서 의사로 성공했지만, 그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는 세 사람이 악수하면 그중 두 사람은 에이즈 환자일 정도로 질병이 만연하지만, 82세의 그는 에이즈에 걸릴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데 재산을 아낌없이 썼습니다. 그는 혈육에게 재산을 주면 상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혈육에게 주는 것은 의무일 뿐, 진정한 상은 없다는 것입니다. 82세에 어린 양자를 두었으니 직접 키우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대단한 행동은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하늘궁의 축복과 두려움 없는 삶
120억 강릉 백궁의 기운이 모인 이곳 하늘궁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을 밟으면 여러분의 운과 운명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모든 물질에 허경영을 쓰면 썩지 않으며, 허경영 신인님의 사진을 붙이거나 이름을 쓴 우유, 즉 ‘블루유’를 마시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강건해집니다. 이는 신인님께서 아인슈타인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통일장을 보여주신 것이며, 신인님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주 공간을 지배하시는 허경영 신인님께서 346회 하늘궁 행사를 여십니다.
하늘궁은 세계 최고의 명당이며, 이곳에 오면 세상의 두려움이나 근심 걱정이 사라집니다.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처럼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는 말씀처럼, 두려움은 죄인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백궁 천국에 갈 사람들은 이미 정해졌으며, 앞으로 천만 명이 더 올 것입니다.
우주의 소리와 복음서의 진정한 의미
두려워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성경은 사람들이 썼지만, 원래 제1 복음은 우주 자연의 소리입니다. 파도 소리, 별이 돌아가는 소리, 지구가 운행하는 소리 등은 너무 커서 우리가 들으면 죽게 됩니다. 우리의 고막은 그 소리를 통제하여 들리지 않게 합니다. 시속 10만 7,160km로 자전하며 공전하는 지구의 괴음은 들으면 모두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천둥 번개 소리에는 두려움을 느끼지만, 우주의 거대한 소리는 들리지 않습니다.
제2 복음서는 어머니 뱃속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심장 소리입니다. 제3 복음서는 구약 성경이며, 제4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의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복음입니다. 제5 복음서는 구약과 신약을 연결해 주는 히브리서입니다. 히브리서를 통해 예수와 모세, 아브라함, 멜기세덱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며 유다 지파였기에 제사장이 될 수 없었습니다. 레위 지파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서는 예수를 멜기세덱의 지파로 설명합니다. 멜기세덱은 유대인의 지파가 아니며,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주었던 존재입니다. 멜기세덱 덕분에 예수는 대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는 다윗의 후손이나 유다 지파의 후손만이 아니라 멜기세덱의 관찰을 받아온 존재입니다. 히브리서는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와 같습니다.
제6 복음서는 요한계시록이며, 제7 복음은 신인인 제가 나타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봉인 중 마지막 봉인을 떼는 것이 바로 저입니다. 성경은 말이 많은 책이지만, 일반 목사나 신학자들은 천년만년 보아도 그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를 달통해야 구약과 신약을 견주어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예수와 구약 시대를 이어주는 책입니다. 기독교인이나 유대인 중 신인 외에는 그 비밀의 열쇠를 아는 자가 없습니다. 저는 그 장본인이기에 모든 것을 풀어서 여러분에게 알려주러 온 것입니다. 백궁에 갈 사람들은 저를 만나게 되지만, 지식이 많고 시건방진 사람들은 저를 만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구약 등에 빠져있는 지식인들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과 형사취수제
아브라함의 후손은 36억 명에 달합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후손은 소수에 불과하며, 이스마엘 지파의 후손이 훨씬 많습니다. 중동 인구의 절반가량이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이들이 두 배로 갈라지면서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전문 이야기는 재미없을 수 있지만, 신인은 가짜가 아닙니다. 대장경, 불경, 성경 등 모든 경전을 꿰뚫어 보고 있는 자가 지상에 온 것입니다.
옛날에는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사는 ‘형사취수제’ 또는 ‘수혼제’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는 전쟁이 많았던 이스라엘과 우리나라처럼 과부가 많았던 민족에게서 나타났습니다. 남자들이 전쟁터에서 많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칼이나 활에 맞아 독이 퍼져 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떤 마을은 거의 다 과부였습니다. 장애인 신랑을 만난 사람은 과부가 되지 않았습니다. ‘새옹지마’처럼,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불편해진 아들은 군대에 끌려가지 않아 살아남았고, 다른 청년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여성들은 재산 상속권이 없었기에 이혼할 수 없는 구조였습니다. 모든 문서가 남자 이름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없으면 재산이 없었으므로 이혼이 없던 시대였습니다. 지금은 여자가 재산권을 가지면서 복잡해졌습니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도 항상 따라다닙니다. 과거에는 남편이 있으니 이혼하지 않고 살았지만, 과부가 되면 재혼하는 경우가 드물었습니다. 혼자 살다 죽는 경우가 많아 원한이 많았을 것입니다.
지금 하늘궁에 온 사람들은 낙원 문턱에 있는 것입니다. 과거 여성들이 독립할 수 없어 시동생을 따라가야 했던 암울한 시대가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남편이 괴롭혀도 이해해야 합니다. 부부간에 문제가 있어도 “내가 너무 많은 자유를 남편에게 원하는구나”, “세상이 좋아졌다고 내가 너무하는구나”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백궁에 갈 때까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좋지만, 죄를 짓더라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모범을 보여야 다른 사람들이 하늘궁으로 올 수 있습니다.
하늘궁에 다니면서 부부싸움이 생기거나, ‘블루유’를 마시고 이상한 행동을 하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남에게 내놓을 때는 침착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너무 좋은 것이라 사람들이 눈이 부셔서 못 쳐다볼 수도 있습니다. 남편에게 말로 설득하려 하지 말고, 아내가 좋아지고 예뻐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아프던 사람이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 남편도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조심하지 않으면 욕을 먹을 수 있습니다.
남편의 가치와 겸손의 미덕
이사야서 41장 10절 말씀처럼, 제가 있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두려워하지는 않더라도 어려워는 해야 합니다. 남편 한 사람이 태어나기 위해 1조 개의 정자가 희생되었습니다. 여러분이 백궁에 가기 위해 1조 명의 인류가 지구에서 태어났다 죽고를 반복하여 마지막으로 여물은 것이 여러분입니다. 나머지 9,900억 명은 시신으로 돌아가 무제경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러분 천만 명은 뽑혀서 낙원으로, 천국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이 1조 대 1의 확률입니다.
남편도 1조 명의 정자가 죽어서 잉태된 남자입니다.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게다가 백궁 가는 여자 옆에 붙어 있으니 보통 복이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보기 싫은 남편도 다시 보아야 합니다. 그가 백궁 천국에 갈 사람 옆에 붙어 축복을 받고 명패를 받으니 얼마나 노련한 사람이며, 조상 공덕이 어마어마한 사람입니까? 남편이 허경영을 욕하더라도 화내지 말고, 그가 대신 욕을 먹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태도를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남편이 욕을 해도 아내가 바뀌는 모습을 보면, “허경영이 뭘 하길래 저러나” 하며 몰래 유튜브를 찾아볼 것입니다.
남편은 1조 명의 정자가 희생되어 태어난 신랑입니다. 예사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는 별것 아닌 것 같아도, 1조 명의 정자를 물리치고 잉태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 가치를 모르고 아무나 낳는 줄 압니다. 이 세상에 아무나 낳는 줄 아십니까? 1조 명이 하수구로 빠져나갑니다. 그들도 태어날 능력이 있는 존재들이지만 희생된 것입니다. 그 희생을 통해 태어난 아들이 바로 내 남편이고 내 아내입니다. 아내가 하늘궁에 오지 않는다고 남편이 윽박지르면 안 됩니다. 존중해 주면 오지 않아도 천국에 보낼 수 있습니다. 좋은 것을 가졌다고 자랑하다가 없는 사람과 싸우면 안 됩니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탄 사람은 더 겸손해야 합니다. 좋은 차를 타고 가다가 작은 차와 부딪히면 “제가 잘못했습니다. 피해 본 것이 있으면 제가 보상해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자기가 잘못했는데 제가 보험을 낼 게 아니에요. 제가 낼 테니까 염려 마세요. 당신이 이 보험금 부담하기 너무 힘들어요. 이 차는 견적이 1억이 넘어 나와요. 당신 부담할 필요가 없어요. 제가 고쳐 보내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얼마나 고마워하며 90도로 인사하고 가겠습니까?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좋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남 앞에서 유세 떨면 안 됩니다. 겸손해야 좋은 차도 타는 것입니다. 마약 맞고 여자를 죽인 사람처럼 머리 덜 된 사람은 좋은 차를 가지고도 문제를 일으킵니다. 좋은 옷 입었다고 너무 으스대지 마십시오.
저는 고등학교 때 짜깁기 옷을 입었습니다. 짜깁기 옷만 생각하면 배호가 생각납니다. 그런 것도 지난날의 추억입니다. 짜깁기 옷을 입었다고 기죽으면 안 됩니다. 사람은 태어나기 어려운 존재인데, 무엇을 입든, 무슨 직책을 가지고 있든, 무슨 노동을 하든 어떻습니까? 모두 대단한 존재입니다. 이제 남편과 아내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형사취수제와 여성 인권의 변화
형사취수제는 성경에 ‘수혼제’로 나옵니다. 우리 민법에도 옛날에는 형사취수제 같은 법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 제도를 보면 여자 팔자가 정말 개 팔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무것도 아니었고, 재혼할 수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단,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 사람은 시동생밖에 없었습니다. 그 외에는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보쌈’이었습니다. 여자가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보쌈을 당해야 했습니다. 인물이라도 좋아야 누가 밤에 와서 데리고 갔습니다. 그것은 합법적인 도둑놈이었습니다. 과부들은 은근히 도둑놈이 오지 않을까 기대하며 보따리를 들고 오는 사람을 보면 ‘나를 데리고 오는 것 아닌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여성의 인권이 너무 좋아졌습니다.
전생의 복과 윤회의 법칙
연예인처럼 얼굴이 예쁘거나 끼가 많은 사람들은 전생에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현생에 많은 이들에게 기쁨을 줄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궁을 찾아와 신인님을 직접 알현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더 큰 복을 지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멋진 연예인이라도 신인님을 모른다면 지구를 졸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신인님을 알아본 사람들만이 이데아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연예인들은 예쁜 쪽으로 진화한 것이지, 지능이 높거나 복을 많이 지은 것은 아닙니다. 마음씨를 예쁘게 쓴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버지가 혼자 남았을 때 시집도 가지 않고 아버지를 봉양했거나, 어려운 사람을 아버지처럼 계속 도왔다면 다음 생에 예쁘게 태어날 수 있는 심사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불쌍한 사람을 많이 도왔고, 어떤 사람은 예쁜 마음을 써서 보통 사람보다 더 예쁜 짓을 한 것입니다. 얼굴이 예쁜 쪽으로 복을 쓴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열심히 밭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하고 동네 어려운 노인들을 봉양한 사람은 예쁜 사람으로 태어나기보다 다른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그것은 ‘도’입니다. 예쁜 것이 아니라 효도 행동을 한 것입니다. 나환자처럼 얼굴이 문드러진 사람을 옆에서 간호하며 평생을 남편으로 삼아 살았다면 미인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 행동이 그 사람의 얼굴 결점을 보완해 주었거나, 못난 사람의 얼굴 상처를 감싸준 것입니다. 소록도에서 나환자를 치료해 준 사람은 다음 생에 미모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에이즈 환자들과 악수하고 포옹하며 예수를 전하다가 에이즈에 걸려 죽은 사람은 예쁜 짓을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체적인 악조건을 용서하고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음 생에는 날씬한 미인으로, 백설공주처럼 태어납니다. 이것은 한 치의 오차도 없습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많이 주고 적선하며 사회 활동을 많이 하고 저수지를 만들어 농사를 잘 짓게 해준 사람은 멋있는 정치인으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미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강인한 전사로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그가 좋은 일을 한 것이 무엇이냐에 따라 예쁘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멧돼지가 다리가 부러져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다리를 묶어 살려주었다면, 그 못생긴 멧돼지를 따뜻하게 살려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멧돼지는 농부들의 고구마 밭을 망쳐 농사를 해코지할 것입니다. 도둑을 살려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 마음씨는 예쁘니 미모로 태어나지만, 농부들에게 피해를 주었으니 가난한 여배우로 태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씨는 나이팅게일 같지만, 부자로 태어나지는 못합니다. 봉사한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살려주되, 학의 다리를 묶어준 것과 멧돼지 다리를 묶어준 것은 미모가 달라집니다. 학의 다리를 묶어주면 부잣집 미모로 태어납니다. 그러나 학은 소라나 물고기 같은 생명을 무지하게 많이 잡아먹어야 삽니다. 그것을 잡아먹으라고 다리를 고쳐준 것입니다. 고쳐준 것은 고맙지만 많은 생명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까마귀는 생명체를 먹지 않고 모기나 독충처럼 인간에게 해코지하는 곤충만 잡아먹습니다. 까마귀 다리를 묶어준 사람은 학 다리를 묶어준 사람보다 더 미인으로 태어납니다. 까치 다리를 묶어준 사람은 까마귀 다리를 묶어준 사람보다 더 가난하게 태어납니다. 까치는 농작물을 다 망치고 잡식성이기 때문입니다. 배밭이나 사과밭을 망쳐버리니 업이 생겨 가난하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미인으로 태어나지만 가난합니다. 멧돼지, 학, 까마귀, 까치 다리를 묶어준 사람 모두 다르게 태어납니다. 미모도 좋고 왕비가 되어 왕궁에서 평생을 아름답게 살다 죽은 여인은 까마귀를 묶어준 사람일 것입니다. 좋은 일을 해도 그 결과가 다릅니다. 백궁에서는 상상도 못 할 컴퓨터 작용이 일어납니다.
자기 얼굴에 불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가 한 것이 요거구나”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선생님이 시험 점수를 매겨주는데 “나는 열심히 했는데 왜 20점밖에 안 돼요?”라고 따지면 안 됩니다. 깨꼬리 다리를 묶어준 사람은 유명한 가수로 태어납니다. 깨꼬리는 목소리가 좋으니 그 목소리를 받아올 수 있습니다. 목소리가 예쁜 것도, 얼굴이 예쁜 것도 모두 상입니다. 못난 것도 모두 자신이 받은 점수입니다. 불만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서 시험 성적표를 줬는데 말이 많을 필요가 없습니다. 석가모니가 돌아온다 해도 저만큼 법문을 재미있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알아듣기 쉬운 법문을 해야 합니다. 팔만대장경이 왜 필요합니까? 요만한 책 한 권이면 모든 사람이 착하게 될 수 있습니다.
독립적 자아와 연대적 자아의 완성
지구의 목적은 백궁의 인간을 공급하기 위한 인큐베이터이자 천국 아이가 탄생하는 양성소 및 훈련소입니다. 하늘궁에 온 우리들은 마귀의 시험을 통과하여 축복과 명패로 완성되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신인님을 직접 알현하는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절세 미인이 되는 백궁에 갈 것이며, 대천사는 백궁에서 최고의 권세자가 됩니다. 신인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고, 유일하게 암흑 물질과 에너지를 주관하시며, 보이지 않는 귀신을 통제하시고, 시공간을 주관하시며, 만물이 명정에 복종합니다. 마지막 때 지구에서 천만 알곡을 추수하시고, 마지막 인류는 쭉정이가 되어 폐기 처분되어 무적형으로 보내지는 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무한하고 치열한 경쟁이 우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연대적 자아로서 일반인들처럼 시기하고 질투하지 않고, 나보다 남이 잘 되기를 바라고 백궁에서 서열이 높아지기를 응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독립적 자아’라고 했습니다. 한 집안에 한 사람만 하늘궁에 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시부모도 축복해 주고 명패해 주어 죽은 조상까지 천국에 다 보내주어야 합니다. 독립적 자아는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자아가 ‘성숙’해야 합니다. 성장은 키가 크는 것이고, 성숙은 내적으로 크는 것입니다. 성숙된 며느리는 시아버지, 시부모, 외조부, 외조모까지 백궁 명패를 해주고 축복을 주어 온 집안이 낙원으로, 천국으로 다 가는 것입니다. 그 집안에 한 사람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대할 수 있는 ‘연대적 자아’를 가져야 합니다.
‘아(我)’라는 글자는 손에 창을 든 모습으로, 이기주의와 베타주의를 상징합니다. 이런 심보로 세상을 살면 안 됩니다. 집안에 하늘궁에 온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그 집안은 구제됩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하늘궁에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집안에서 한 명씩만 와도 그 집안은 구제됩니다. 마귀는 코로나를 한 집에만 집어넣으면 집안 전체가 코로나 위험에 처하게 합니다. 우리는 ‘역코로나’입니다. 허경영을 알아 하늘궁에 온 자가 어떤 집안에 한 명만 있어도 그 집안 전체의 조상부터 먼저 죽은 자와 나중에 죽을 자까지, 아들, 손자, 증조부까지 축복해 주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구제해 버리는 며느리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대적 자아의 완성입니다.
사람의 자아는 점점 진화해야 합니다. 자기 아상만 맨날 높이면 안 됩니다. 시어머니가 옛날에 자신을 괴롭혔다고 시어머니를 구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해 주어야 그 자식에게 좋은 것입니다. 해주고 봤더니 그 시어머니가 자기 손자로 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손자도 명패해 주고 축복해 놓으면 모두 지구끼리 잘 되는 것입니다. 집안이 모두 천국으로 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천만 명이 하늘궁에 오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천만 명을 빨리 만들 수 있습니다.
여성들이 사회적 자아를 형성하는 것은 먹고살기 위해 직장에 가야 하므로 당연합니다. 직장 경험이 있는 여성이 자아가 더 넓어집니다. 과장도 있고 여러 사람이 있으니 둥글둥글하게 지내야 버틸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자아도 중요하지만, 연대적 자아도 알아야 합니다. 나만 복받는 것이 아니라 시부모, 친정 부모, 심지어 돈 많은 사람은 고조부까지, 외가, 처가, 친가 모두 해주는 것입니다. 돈을 가지고 있어 봐야 얼마만 해결될 뿐, 아껴봐야 소용없습니다. 죽을 때 그 돈 때문에 자식들이 싸움만 벌어집니다. 엄마 통장에 천만 원밖에 안 남았는데 네 명의 형제가 싸우는 것입니다. 나누기가 완벽하게 안 되니 누구 하나도 더 주는 것을 목숨 걸고 못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집안이 말이 됩니까? 끝 숫자 때문에 골치 아픕니다.
하늘궁에 온 사람은 비록 한 사람이라도 그 가문에 백 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무아(無我)’를 말한 것은 이 욕심꾸러기 나라에 창을 들어 나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나를 버리면 그 안에 진짜 진화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이론만 있을 뿐 에너지가 제로입니다. 정각, 열반, 해탈, 보리, 반야, 삼매, 무아, 성불 등 불교의 여덟 가지 보물은 에너지가 없습니다. 반면 기독교의 기도, 힘있음, 구원, 축복, 성령, 은사, 부활, 영생, 천국은 그대로 에너지가 있습니다.
불교는 철학이면서 우주에서 기다리는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의 도덕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불교는 종교로서 신에 의탁하지 않고 자신을 의탁하는 것입니다. ‘자성불’이 되자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상일 뿐 실제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50년을 수도하고 명상해도 아름다운 과부에게 빠져 스님이 옷을 벗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수도가 부질없는 것입니다. 괜히 여자들이 갖다 주는 것만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석가모니 이름을 팔아서 말입니다. 공부한다는 것이 과연 중생을 위한 공부인지, 자기 하나의 호구지책을 위한 공부인지 분석할 수 없습니다. 불교에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정각, 열반, 해탈, 보리, 반야, 삼매, 무아, 성불은 모두 에너지가 떨어집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천국은 에너지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성불이라는 것 자체는 인간이 갈 수 없는 세계이며 허공에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을 지배해 오면서 아시아가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의 지배를 받게 했습니다. 인도가 영국의 지배를 받은 것도 불교를 믿는 나라가 기독교를 믿는 나라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간디가 영국에 가서 대학을 다닌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언제나 축복이 넘쳐나는 에너지가 있습니다. 불교는 맨날 두들겨 맞고 지배받았습니다. 중국도 영국 눈치를 보았습니다. 기독교적인 파워는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 무섭습니다. 불교적인 것은 전부 다운됩니다.
불교를 믿으면서 좋은 일을 하면 집안에 재앙은 적어집니다. 좋은 일을 했는데 재앙이 오겠습니까? 백궁에서는 그것을 쳐다봅니다. 좋은 일을 한 것은 맞으니 예쁘게 태어나게는 해줍니다. 그것은 자동 법칙입니다. 절에 다니면서도 남에게 보시하고 좋은 일을 하면 얼굴은 좋게 태어나지만, 백궁에는 영원히 못 갑니다. 저를 만나야 합니다. 기독교도 에너지가 오니 번성하지만, 불교인들의 에너지는 기독교인들의 에너지보다 약합니다. 전도를 하는 데 있어서 기독교인들이 더 적극적입니다.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하는 사람들은 기독교인이 더 많습니다. 우리나라 이화여대, 연세대학교도 기독교인들이 와서 만들었습니다. 불교인들이 인도에서 와서 만들지 않았습니다. 에너지가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불교 절에도 있었고, 기독교 목사님 아들도 했습니다. 다양한 것을 전부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저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의 성품을 파악하기 위해 목사 아들도 하고, 스님 아들도 하고 돌아다녔습니다. 이스라엘에 있을 때도 그랬습니다. 2000년 전에도 저는 주소지가 없었고 낙원에 있었습니다. 에너지가 다 들어오는 것은 맞습니다. 어떤 종교를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도 훌륭한 종교이고 기독교도 다 훌륭한 종교입니다. 그러나 초종교 하늘궁에 와서 신인을 만나야 그들은 천국 대열에 들어갑니다.
1조 대 1의 기적과 조상의 공덕
여러분은 1조 명을 물리치고 태어난 사람입니다. 항상 상대방의 얼굴을 볼 때, 이 사람이 이런 형상을 가지기까지 1조 명을 물리치고 여기에 왔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사람의 아버지가 신라 시대 때 돌아가 혈육이 끊어질 수도 있었지만, 지금 시대까지 혈손이 이어져 온 것입니다. 위로 올라가면 끝도 없이 조상들이 이어져 왔기에 지금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만약 이 사람이 여자라면, 이 여자의 아버지가 원시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아들을 낳지 않았다면 그때 없어졌을 것입니다. 딸만 낳은 사람은 벌써 신라 시대 때 없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조상은 수만 년 동안 아들을 낳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보통 집안입니까? 사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것만 해도 무서운 것입니다.
건물 화장실을 청소하는 여자를 보더라도, 저 사람의 아버지는 얼마나 복을 지었길래 원시 시대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을 낳았다는 것입니까? 그래야 저 여자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 사람을 보고 청소하는 사람이라고 무시하면 안 됩니다. 저분도 21세기까지 살아있는 나와 똑같이 살아있는 조상이 어마어마한 공덕을 지은 사람입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쳐다볼 때, 여러분의 조상이 아들을 계속 낳았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딸도 낳았겠지만, 아들이 대를 끊지 않았기에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와서 여기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 중에서 딸만 낳은 사람은 그 조상의 원망선에서 대를 끊어버린 것입니다. 몇백 년 후에는 여러분이 없을 것이고, 그 집안은 흔적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들이 아들을 낳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1조 분의 1의 확률로, 원시 시대부터 지금까지 아버지가 아들을 낳은 적이 없다는 것은 대단한 인물이라는 증거입니다.
제 말을 예사로 듣지 마십시오. 사람을 무시하면 천벌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티들에게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법적으로는 대응하겠지만, 절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이 지구에 영원히 있는 것이 아니니, 신인을 의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면 그런 사람으로 보입니까? 여러분은 예쁘고 천국 갈 동지이니, 아버지가 딸을 보듯이 예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상하게 보인다면 그것이 병입니다. 사람들을 좋게 보는 것뿐입니다.
축복의 권능과 생리통 완화 사례
어떤 여성은 생리통이 심하고 뭉침혈이 많아 항상 찝찝하고 소리 지르며 화장실을 자주 다녔습니다. 잠잘 때도 불안해서 항상 똑바로 누워서 신경 쓰며 잠들었습니다. 그러나 축복받은 뒤 첫 생리를 하는데 생리통 없이 시작하고 맑은 혈만 나왔습니다. 딱 4일 정도 하고 깔끔하게 끝나서 놀랐다고 합니다. 신인님을 뵐 때마다 몸이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인체를 잘 알기에, 여러분은 원래 이상이 없게 되어 있는데 질병이 온 것입니다. 축복은 자신을 고칠 뿐만 아니라 남도 고치는 권능을 여러분에게 나누어 준 것입니다. 제자들이 100% 제 권능을 가져간 것은 아니지만, 축복이라는 권능만큼은 가져갔습니다. 여성들은 자식을 낳아야 하므로 항상 피를 맑게 해야 합니다. 남자들은 피가 콩팥에서 걸러지지만, 제 몸을 위해서만 쓰고 여성은 아이를 위해 써야 하므로 피가 맑아야 합니다. 남성들은 피가 탁하지만, 여성의 피는 가임을 하려면 맑아야 합니다.
남성들은 피를 코피로 빼냅니다. 청년 시절에는 여자들이 생리하는 시기에 코피가 자주 납니다. 코만 잘못 풀어도 피가 쏟아져 내립니다. 그 양이 엄청 많습니다. 여성들은 밑으로 피를 빼내고, 남자들은 코로 빼냅니다. 코피가 자주 날수록 좋은 것입니다. 여성들이 피를 많이 빼낼수록 새로운 피는 빨리 만들어집니다. 옛날에는 영양이 안 좋은 상태에서 코피가 나오니 불편하고 어지러웠습니다. 피는 굉장히 소중한 것입니다. 피가 상하지 않도록 스티커를 붙여놓거나 배에 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자궁에서 나온 피는 밖에 있는 피이므로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환생
코페르니쿠스는 갈릴레이로 환생하여 자신의 억울함을 증명했습니다. 갈릴레이의 전생이 코페르니쿠스인 것입니다. 죽은 지 100년 만에 바로 갈릴레이로 태어나 지동설을 확인해 준 것입니다. 백궁은 정확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죽을 때는 천동설을 어겼다고 비난받았지만, 100년 후 과학이 발달하여 지동설을 이해할 만한 시대가 되자 갈릴레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나 증명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것을 증명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였기 때문에 증명이 가능했습니다. 지구에서 단 한 사람, 다시 부활하여 증명한 것입니다. 환생한 것입니다. 이렇게 오차가 없습니다. 1조 대 1의 확률입니다. 하버드대 교수들도 이런 논문은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전생을 다 봅니다. 저의 12통 중에 전생을 보는 것은 ‘여명통’이며, 불교의 ‘숙명통’과 같습니다. 석가모니는 육통을 했지만, 저는 12통을 합니다. 과거 조상이 어디 있는지까지 다 압니다. 불교는 철학적으로 알아낸 것이기에 코페르니쿠스가 갈릴레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증명했습니다.
치아 건강의 중요성과 유한양행의 정신
덧니가 많아 식사하기 불편하다면 교정 치료를 해야 합니다. 이빨이 서로 맞지 않으면 치매, 중풍이 올 수 있습니다. 어금니가 마주칠 때 뇌가 유지됩니다. 시험 칠 때 생각이 안 나면 입을 크게 벌려 탁탁 부딪히면 생각이 납니다. 뇌가 좋아집니다. 치아가 부딪히지 않으면 소화도 안 되지만, 어마어마하게 피해를 봅니다. 잇몸으로 살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어금니는 꼭 있어야 합니다. 아랫니가 맞아야 옆 사람에게 피해를 안 끼칩니다. 나중에 치매 걸려 자식도 못 알아보게 됩니다. 잇몸에 염증이 생기면 절대 안 됩니다. 치아 염증은 자살하는 것과 같습니다. 치아 염증이 생기면 ‘비콤’을 먹어야 합니다. 유한양행에서 나오는 비콤을 한 달 먹어봐야 만 원밖에 안 하니, 사놓고 하루에 한 알은 먹어야 합니다. 인사돌 같은 것도 있습니다. 영적으로 안 될 때는 그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제가 유한양행을 좋아하는 이유는 유일한 씨가 유한양행을 국민 기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주식을 자식에게 안 주고 전문 경영인들을 동원하여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습니다. 유한양행은 박카스나 음료수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것은 양심이 없다고 생각하여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영양제만 만듭니다. 그 정신이 좋아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유한킴벌리 같은 휴지 같은 것도 나오지만, 이 기업은 이윤보다는 사회적 기업과 분배를 지키는 회사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우리나라 제약회사 랭킹 1위였지만, 지금은 몇백 등 뒤로 밀렸습니다. 음료수를 만들어 매출을 올리는 제약회사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유한양행은 양심적으로 국민의 영양제와 비타민을 만들어 국민 건강에 기여합니다. 에비오제도 만들었을 것입니다. 이익이 적으니 후발주자 제약회사들이 다 장악했습니다. 동아제약 같은 제약회사들은 음료를 만들어 매출을 올립니다. 유한양행은 이런 음료를 만드는 제약회사들을 멸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백궁에서 알고 있는 선한 기업체입니다. 우리 민족이 자랑하는 기업입니다. 저는 유한양행 주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에덴동산과 우주의 반복 원리
에덴동산의 중앙은 신의 가슴입니다. 창세기에 나온 이 내용은 우주 전체의 362무 8800불의 지구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사람이 사는 별이 362무 8800불이라는 것은 정확한 숫자입니다. 이런 숫자를 과학자들이나 종교단체에서 쓰는 곳은 없습니다. 신인만이 이런 것을 계산합니다. 사람이 사는 별이 몇 개냐고 물으면 다른 종교에서는 지구밖에 더 있겠냐고 할 것입니다. 태양이 생다이아몬드로 되어 있고 온도가 1도라는 것은 제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1억도라고 하지만, 태양이 불탄다면 우리는 그 매연 때문에 살 수 없습니다. 우주가 시커멓게 될 것입니다. 태양은 영원히 타지 않는 물질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63빌딩에서 해가 넘어갈 때 빛이 내려와 자동차에 불이 나게 합니다. 63빌딩 유리창은 1억도가 아니라 0도입니다. 안 뜨겁지만 빛이 비쳐 불이 나는 것입니다. 생다이아몬드는 빛을 계속 만들어냅니다. 빛이 360 모퉁이를 만들어 놓으면 빛이 그 안에서 튕기고 돌면서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빛을 가두는 것입니다. 거울을 여러 개 갖다 놓으면 빛이 그 안에서 도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태양의 작동 원리입니다. 반사경의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생다이아몬드는 그 안에서 빛을 공놀이하듯이 하면서 열량을 냅니다. 다이아몬드는 타지 않습니다. 차에 불이 나는 것입니다. 63빌딩도 불 안 타는데 그것을 1억도라고 합니다. 1억도는 지구가 1억도입니다. 땅속으로 깊이 내려갈수록 온도가 뜨거워져 100m 내려갈 때마다 1도씩 올라갑니다. 나중에 6천도, 더 내려가면 1억도입니다. 지구가 1억도인데 왜 태양을 1억도라고 합니까? 태양은 0도입니다. 굳이 이야기한다면 1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이런 과학적인 것을 이야기해 준 사람은 없습니다.
에덴동산의 중앙은 신의 가슴이며, 이 원리는 우주 전체의 모든 별에 있는 인간이 사는 곳에 똑같이 적용됩니다. 양심도 똑같고, 모든 형상도 같습니다. 문화만 별마다 빨리 간 곳, 늦게 온 곳, 원시 시대인 곳이 있을 뿐입니다. 이 지구도 2000년, 3000년 있으면 없어지고 새로운 별로 태어날 때 백궁에서 인간들이 옵니다. 여기서 교육을 시켜 종자를 걸러내야 합니다. 이 우주는 전부 반복입니다. 오늘 저녁에 비가 내렸지만 또 옵니다. 지난 토요일에 강의했지만 일요일에 또 합니다. 제가 반복하는 이유는 여기서 걸러내서 백궁으로 가면 반복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기서는 어제 한 것을 오늘 하고 출근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놀고, 모든 사람이 얼굴이 밝고 기쁨이 넘쳐 있습니다. 지구에 있던 기억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생의 기억을 못 하지만, 백궁에 가면 수십억 년 동안의 기억이 다 나옵니다. 얼마나 보고 싶은 사람이 많겠습니까? 그래서 그곳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지구에서 원시 시대에 있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때는 배고프고 험했지만, 백궁에서 보니 낙원이 따로 없습니다. 수도도 없어 물 한 방울 마시려면 개울에 가서 입 대고 먹던 원시 시절이 있었는데, 백궁에 오니 수도를 틀 필요도 없고 한 번 먹으면 안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 세상을 이데아라고 하는데, 그 이데아를 가기 위한 곳이 하늘궁입니다.
여러분의 선악 개념을 지상에서 심어주기 위해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있었던 것입니다. 선악과와 생명나무가 있어야 여러분이 벌거벗은 것을 알게 됩니다. 안 그러면 모두 벗고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있음으로써 여러분이 재미를 느끼는 것입니다. 동물은 아직 선악과를 못 먹었습니다. 벌거벗고 돌아다니지만 엉덩이를 감추려고 도망가지 않습니다. 사람처럼 옷을 물어뜯어 몸을 가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인간에게만 그 특혜를 준 것입니다. 문제는 선악과를 먹고 눈이 밝아진 데 있습니다. 그것도 여러분을 시험하기 위해 해 놓은 것입니다. 교육 장소에 문제점을 던져준 것입니다. 학생들을 며칠 굶겨 놓고 어디로 오라고 하는데, 오는 과정에 먹을 것을 놔둡니다. 빵을 구워 옆에 쌓아놓고 ‘건드리면 안 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애들이 다 지나갔는데 빵이 다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선악과입니다. 누구든지 손이 닿지 않게 배가 며칠 굶주려 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빵 냄새가 기가 막힙니다. 그것을 통과해서 모두 한 개씩 호주머니에 넣습니다. 나중에 선생이 와서 호주머니를 꺼내라고 하면 제일 많이 나오는 사람이 제일 악한 사람입니다. 그것이 인간들을 시험하는 과정이 지구입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숙달되었는지 보는 것입니다. ‘자기는 며칠 굶는다. 저것은 만지면 안 된다’ 하고 안 먹는 것입니다. 제가 담배 술 안 먹는 것과 똑같습니다. 옆에 술과 담배가 있어도 손이 안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과한 것입니다.
은하 우주 전체의 별들에는 똑같이 동산 중앙 우리 가슴에 양심에 선악과가 있습니다. 지구라는 곳은 어차피 선악의 개념을 가지고 훈련시키는 재료가 이 두 가지입니다. 생명나무와 선악의 나무입니다. 생명은 애착을 갖게 해주는 것입니다. 생명을 뺏어가겠다고 하면 기겁을 합니다. 선악의 나무는 여러분이 교만이 생겨 남의 악한 것만 찾으려고 합니다. 선악나무는 가능하면 안 따먹는 것이 좋습니다. 악한 사람은 자기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트럭 한 트럭 정도 되는 악한 일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백궁에 가보면 압니다. 선악과가 그냥 나타납니다. 비디오테이프가 트럭으로 한 트럭이라고 했듯이, 죄 짓는 것은 많지만 좋은 일 하는 것은 비디오 한 장도 안 됩니다. 설날 엄마 아빠한테 가서 절하는 것, 집에 찾아갈 때 양말 사 가지고 가는 것 외에는 별로 없습니다. 전부 죄 지은 것만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남의 죄를 보려고 합니까? 저는 여러분을 보면 예쁜 것만 보입니다. 도둑질하고 왔어도 도둑으로 안 보입니다. 좋은 것만 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미 백궁 들어가는 시험에 다 붙었습니다. 붙었으니 굳이 교육 안 해도 선한 자들이 마지막 상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갈급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미 천국 갈 사람으로 완성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여러분이 천국 가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뿐입니다. 천국에 못 간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이렇게 떠드는 것은 밖에 있는 사람들, 이제 천만 명 나에게 좀 오라고 떠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 강의를 들을 대상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졸업생입니다.
불교와 기독교 경전의 비교와 신인의 역할
불교와 기독교 경전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성경은 불교적인 요소를 많이 뺀 것입니다. 제가 예수로 있을 때 파키스탄이나 인도 등지를 여행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중요한 것은 불교는 모든 언어에서 에너지가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불교는 초기에 하나의 철학 서적입니다. 바른 말이고 진리의 말이지만, 절대자와 관련이 없습니다. 자생적으로 인도에서 생긴 것입니다. 인도 자체에서 전 세계적으로 종교가 각자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삼신 할머니를 믿는 종교가 만들어졌듯이, 인도에서 만들어진 종교는 하늘의 신과 관련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많은 신을 인정합니다. 인도의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같은 계급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은 윤회를 믿어야만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교가 발전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윤회는 인간들이 스스로 터득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하는 윤회와는 다릅니다. 불교의 윤회관과 기독교, 제가 하늘에서 와서 직접 이야기하는 신앙과는 다릅니다. 불교에서는 어떤 에너지를 다 배제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인도인보다 머리가 좋습니다. 유대인들이 인도 사람들보다 머리가 우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에너지 없는 것만 택했고, 불교는 쫓겨다니는 종교가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나왔지만 인도에서는 불교를 믿지 않고, 북쪽으로 쫓겨나 티베트로 도망갔다가 중국으로 도망가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왔다가 일본으로 가서 더 이상 갈 데가 없습니다. 이렇게 불교가 되어 있는 종교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불교의 염주를 천주교가 가지고 있습니다. 똑같습니다. 노틀담 사원이 교회가 아니라 절이었습니다. 유럽의 모든 교회가 옛날에는 ‘템플’이었습니다. 템플은 영어로 절입니다. 교회라는 것은 없고 전부 템플이었습니다. 프랑스까지도 노틀담 사원이 있습니다. 그것이 전부 절입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성녀라고 했지, 신부님, 목사님 같은 말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나옵니다. 기독교와 유대교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불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판이하게 다릅니다. 기독교는 불교에서도 가져온 것이 있지만, 유대교에서 가져온 것이 더 많습니다. 유대교에서 만들어진 것과 인도에서 만들어진 것이 같은 문화권에 있다 보니 뒤죽박죽이 되었지만, 신이 관여한 것은 불교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교는 철학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름에서도 에너지가 나오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유대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닌 중간 종교입니다. 기독교를 쓸 때 ‘기(基)’자를 씁니다. 기본이 되는 종교라는 뜻입니다. ‘독(督)’은 감독한다는 뜻입니다. 기본을 어디가 기본인가를 알아내는 종교입니다. 창조자를 알아내는 종교입니다. 무엇에서 시작되었는가를 알아내는 종교입니다. 불교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철학적인 것입니다. 석가모니의 철학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가 태어난 나라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도 이스라엘에서 쫓겨났지만, 그래도 이스라엘에 기독교가 전파되었습니다. 기독교는 그 기본이 도대체 어디서 인간이 태어났느냐, 창조의 근본을 따지는 종교입니다. 한문으로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불교의 ‘불(佛)’자는 사람이 우주에 걸쳐 윤회한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씨앗이 나가서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윤회를 말합니다. 이것은 하늘과 땅, 허공을 윤회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자입니다. 부처 불자인데 의미가 다릅니다. 기독교는 창조자가 누구냐, 이것이 어디서부터 왔느냐, 우리가 이것을 최초를 파헤치는 것입니다. 유대교와도 다릅니다. 유대교는 암소와 양을 잡아 제사장이 레위 족속들이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기를 제사 지낸다면 펜을 떠서 밖에 가서 태워야 합니다. 맨날 소와 양을 잡아 고기를 불태우니 그 냄새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재가 될 때까지 태워야 했습니다. 제사 지낼 때마다 그렇게 하니 종교로서 유대교가 기가 막혔습니다. 나중에 제가 죽고 난 다음에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제 그런 짓 하지 마라, 예수 피로서 대체하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뀌었지만, 태생이 불교와 기독교는 완전히 다릅니다. 불교는 소를 잡아 태우지 않습니다. 소가 신입니다. 윤회를 믿기 때문에 소를 죽이는 행위 자체가 존재할 수 없는 종교가 불교입니다. 유대교나 기독교는 근본이 무엇을 죽여서 제사를 지내야 하는 종교였습니다. 하늘에다가 말입니다. 양이나 소를, 그것도 깨끗한 송아지를 죽여서 불에 다 태워야 했습니다. 그 피를 뿌려야 했습니다. 불교는 살생 금지입니다. 근본이 완전히 다릅니다.
하늘은 그렇게 동물을 잡아 제사 지내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석가모니적인 것도 있고 윤회도 합니다. 불교적인 것과 유대교적인 것 모두 함정이 있습니다. 제가 바로잡아주는 것입니다. 옷 하나에도 서양 사람들이 배틀 짜는 기계에서 온 것과 동양에서 물레에서 온 것이 섞여 있습니다. 동서양이 다 섞여 있습니다. 기독교에도 동서양이 섞여 있고, 불교에도 동서양이 섞여 있습니다. 동양 것만 가지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서양 기술이 섞여 있습니다. 종이 한 장도 그렇습니다. 모든 것이 동서양이 섞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신이 실제 왔느냐? 온 종교가 기독교의 이쪽에서 예수 쪽에서 제가 왔습니다. 종교를 그런 것을 만들었습니까? 기독교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지만, 하늘궁은 재림 예수가 종교를 초월해서 와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싸움에 제가 끼어들었습니까? 독자적으로 온 것입니다. 초종교입니다. 모든 종교는 이제 유천 과정입니다. 거기는 별이 몇 개인지도 모르고, 사람이 사는 별이 몇 개인지도 모르고, 천동설 한다고 때려죽였습니다. 지동설이 나중에 알려지고 갈릴레이가 다시 태어나서 “이것 보세요. 내가 왕년에 코페르니쿠스인데, 이런 겁니다” 하고 다시 알렸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여기 보면 윤회가 있습니다. 불교적인 윤회도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제가 왔다는 것입니다. 성부가 예수와 석가의 그런 정신을 다 여기에 포함시켜서 왔는데, 주로 석가의 것은 빠지고 예수의 것이 재림 예수와 왔으니 기독적인 요소가 들어와 있습니다. 불교적인 것은 강의 때 오랫동안 강의해 주었습니다. 윤회를 알아야 하니 말입니다. 석가모니 말이 일리가 있지만, 신이 개입된 것은 아닙니다. 신인의 말을 들어야 결론이 나옵니다.
석가모니가 돌아갈 때 무엇을 먹고 돌아갔습니까? 죽을 먹고 돌아갔습니다. 누가 그 죽을 주었습니까? 자기가 가장 믿는 신도가 주었습니다. 그 신도가 준 죽에 독이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석가모니는 “여기 독이 들었다”는 말을 하지 않고 그냥 먹고 죽어주었습니다. 그 사람이 준 죽이 상했든지 어쨌든 그것을 먹고 돌아갔습니다. 거기에 신이 개입되어 있었습니까? 순수한 인간적인 죽음입니다.
또 하나, 석가모니를 주의해야 하는 것은 석가모니에게 사촌 형 ‘데바달타’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데바달타는 석가모니가 어릴 때부터 석가모니만 보면 잡아먹으려고 들었습니다. 중이 되었을 때도 따라와서 괴롭혔습니다. 석가모니를 죽이려고 수도 없이 시도했습니다. 청년 때부터 왕위를 뺏으려고, 자기 조카를 죽이려고 동생을 죽이려다 못 죽였습니다. 사촌 동생입니다. 그러나 석가모니는 “내가 평생을 내 모든 걸 바쳐도 내 형님 하나를 못 바꾼 사람이야”라고 말했습니다. 자기에게 원한 관계를 가지고 죽이려고 맨날 이상한 모함을 하고, 자기 침대 밑에 여자를 죽여 놓고서는 “저거 바람피웠다고” 덮어씌웠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석가가 한평생 동안 법으로서 제도하지 못했습니다. 성자는 성자라고 하는데 그 능력에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 내 형님도 하나 못 바꿨는데 내가 뭘 세상을 바꾸겠느냐?” 이런 말이 나옵니다. 그것이 석가모니의 솔직한 초기 경전에는 다 있습니다. 그러나 후세 제자들이 좋은 것만 맞추어 놓은 것입니다.
성경은 수치스러운 것이 너무 많이 들어 있습니다. 다윗 왕만 바람을 피우지 않습니까? 그것이 예수의 조상입니다. 저의 조상입니다. 온갖 나쁜 죄악이 성경에 다 나옵니다. 그러나 불교 경전은 그것을 많이 빼버리고 좋은 것만 내려왔습니다. 기독교 성경을 자세히 보면 솔직한 것이 많습니다. 아브라함이 바람피운 것부터 다윗이 모두에 나옵니다. 시아버지와 자서 조상의 혈통이 이어졌는데, 그렇게 자랑스러운 조상이 아닙니다. 유다 족이 그렇게 유치하게 이어져 왔습니다. 그런 것이 솔직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신이 성부가 없는 것입니다. 성자 이야기만 있습니다. 저의 하늘궁에는 이제 성부가 왔습니다. 제가 예수로 있을 때는 여러분에게 축복을 그렇게 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사람을 살릴 수 없었습니다. 오순절 때 예수가 돌아가면서 성부가 개입할 때 성령이 나간 것입니다. 몇몇 사람에게만 축복과 같은 것이 나간 것입니다. 그 이후에 이것이 처음입니다. 세계 역사에 처음으로 있는 대사건에 여러분이 은총을 받은 것입니다. 제가 은총을 여러분만 선택해서 주었습니까? 무슨 법칙이 있다고 여러분만 택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했습니다. 보편성의 원칙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특별해서, 특수성이 있어서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보편적으로 착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해서 백궁까지 가게 이 문턱까지 온 것입니다. 이것은 특수성은 하늘이 택한 것이고, 여러분은 스스로 천국 갈 자격을 취득한 것입니다. 은총을 그냥 준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천국 갈 자격을 획득한 자들입니다. 이 보편성의 원칙에서 여러분은 천국 갈 기회를 가진 것입니다. 스스로 만들어 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착한 종자들이 21세기 제가 올 때까지 이어진 것입니까? 만약 여러분 아버지가 바람을 피워서 여러분을 안 낳았더라면, 조선 시대 때 딸만 낳았더라면, 신라 시대 때 딸만 낳았더라면 끝나는 것입니다. 수도 없는 원시 시대 때까지 여러분의 조상은 아들을 계속 낳았기 때문에 여러분이 21세기까지 온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 조상들에게, 그 조상이 얼마나 착했으면 여기까지 여러분을 바라게 했겠습니까? 제가 올 때까지 여러분을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여러분 집안이 좋은 일을 수도 없이 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특수한 사람이 아닙니다. 보편성의 원칙에서 매번 인간으로 태어나면 좋은 일을 해서 그 아버지가 아들을 계속 낳고 아들이 연결해서 여러분이 여기까지 저를 만날 때까지 미사일을 쏘아 올린 것입니다. 그 집안이 여러분 하나를 저를 만나게 함으로써 그 집안이 전부 백궁 천국을 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집안에 할 일은 이제 끝난 것입니다. 여러분이 저를 만남으로써 이제 여러분 집안은 다 앞으로 여러분이 명패해 주고, 이것을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자업자득이라는 스스로 보편성, 누구나 기회는 똑같이 주어졌는데 여러분이 백궁 외곽이 되었습니다. 착하게 살았습니다. 시험을 잘 본 것입니다. 나쁜 데로 안 빠지고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여기에 종자가 모였으니 여러분들은 천국에 가서 영원히 사는 것으로 합격입니다.
오늘 또 우리들에게 모든 종교들의 잘못된 점을 재림 예수로서, 그리고 신인님으로서 바로잡아 주시는 말씀을 해주셨고, 우리들의 질문과 체험 사례들에 대한 섭리로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내셔서 오늘도 우리들과의 소통의 시간을 주신 신인님께 다시 한번 뜨거운 감사의 박수 올려주십시오. 백궁 가서 감사를 표현할 기회가 많습니다. 여러분들이 대단한 분들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제가 항상 여기에 나오면 시끌벅적하지 않습니까? 나쁜 사람들 모아놓고 교육시키러 온 것이 아닙니다. 자, 우리는 오른쪽 주먹을 쥐고 “나는 백궁 간다. 나는 백궁 간다. 나는 확정됐다”라고 외치고 노래를 들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