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가르침을 향한 여정
오늘도 신의 님을 알현하기 위해 오신 여러분, 그리고 토요 강연을 애청하시는 국내외 시청자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하늘 공원은 날로 발전하여 앞으로 전 세계인들이 몰려오는 최고의 성지가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국민들을 행복하고 잘 살게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위대하신 신인 님을 뜨거운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불가능은 없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구절은 운동선수들이 스타트할 때 항상 마음속으로 외우는 것입니다. 1초, 0.0몇 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자신감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자기 힘만으로 이룬다고 생각하면 절대 1등을 할 수 없습니다. 신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축복받은 자들은 그 힘을 가지고 있지만, 보석을 가지고도 없는 줄 착각하고 불안해하며 울고 앉아 있습니다. 죽는 사람도 살리는 능력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써먹지 않고 공포에 떨고 있다면 되겠습니까? 지금 이 시대는 녹록지 않은 시대입니다. 어려울 때 여러분이 가장 유리합니다. 축복이라는, 성령이라는 완전 무기, 능력의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굉장히 유리한 고지를 가지고 있지만, 이를 모르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은 자녀들도 알아야 할 구절입니다. 스포츠맨들이 0.0몇 초를 다툴 때 자기 능력만으로 이긴다고 생각하면 챔피언이 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 구절을 암송하는 것입니다. 마음속으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전하는 말
마태복음 10장 20절에는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내가 말한다기보다는 신이 도와주어 성령이 도와주어 말을 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면접 시험을 볼 때 여러 임원들이 앉아 있는데, 그들을 말로 이길 수 있을까요? 심장이 떨립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든 단점을 찾아내려 합니다. 천 명 중 한 명을 뽑아야 하니 단점을 찾아내야 합니다. 몇 명이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 곳에서 인간이 아무리 자기 힘으로 한다고 되겠습니까? 이 구절이 필요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성령의 도움으로 말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이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학원에서 배운 대로 답하면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성령으로 말을 해야 이 사람들이 감동을 받습니다. 이 두 가지 구절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는 무한 경쟁할 때, 다른 하나는 사람에게 면접을 볼 때 명심해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도움으로, 성령의 도움으로 말이 나간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남에게 말을 할 때 성령이 말하는 것처럼, 천사가 말하는 것처럼 말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도 너희가 남에게 말을 할 때는 성령께서 말하듯이, 천사가 말하듯이 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인간이 말하듯이 하면 누가 감동을 받겠습니까? 이것이 오늘 강의의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자존심과 자존감의 역설
우리는 어떤 인간과 대화할 때, 그 자식이 싸가지가 없다는 말을 하면 안 됩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 사람의 자존심은 올라갈지 몰라도 자존감은 떨어집니다. 자존심을 올리면 자존감이 내려갑니다. 반대로 자존심을 내리면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부부가 서로 양보하고 끝까지 존댓말을 하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은, 싸우는 상대방이 욕을 하다가도 나중에는 ‘그래도 우리 마누라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더 이상 흥분하지 않도록, 저 사람의 건강에 해롭겠다 싶으면 자신을 낮춰야 합니다. 자기 자존심을 낮추는 것입니다. 깊이 생각해 보니 당신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며 빠져야 합니다. 그러면 남편은 성질낼 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그래도 우리 마누라가 사람이 됐어. 내가 좀 정신이 없는 사람이야. 내가 참 성질이 더러워’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렇게 자기의 자존감을 자꾸 저축해야 합니다. 이것을 저축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어떤 가정도 안정이 됩니다.
독립적 자아, 사회적 자아, 연대적 자아
내 자존심만 내세우면 어떻게 될까요? 독립적 자아만 추구하면 집안에 암 환자가 나옵니다. 영국의 국왕은 전립선암이고, 며느리는 위암입니다. 그 집안이 행복할까요? 왕관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암이 사람을 죽여 오는데 왕관이 어디 있고 명예가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 자존심만 세우면 집안에 환자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독립적 자아로만 살면 안 됩니다. 사회적 자아가 있습니다. 왕궁에는 체통이 있습니다. 왕궁의 입장을 봐서 연애도 삼가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적 자아는 이 가문에 여러 사람과 같이 있는 나를 의미합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지만 한 단계 올라가야 합니다. 나는 내 가정을 이끌어가야 하고, 자식들이 있습니다. 남편과 전투만 벌이면 집안이 되겠습니까? 어린 아들과 딸, 내 가족과 함께 있어야 하니 조금 양보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 성장은 아무 필요 없고 성숙해야 합니다. 사회적 자아가 있고, 그다음에는 연대적 자아가 있습니다. 연대적 자아는 우리 가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윗집에서 물이 떨어지면 바로 올라가서 따지는 것이 아니라, 며칠 기다려 봤는데 물이 멈추지 않아 왔다고, 수리비를 댈 테니 알아보면 안 되겠냐고 말해야 합니다. 당신 집이 뭐 하는 짓이냐고 따지면 연대적 자아가 깡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깡패가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있는 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아니면 안 됩니다. 입에서 쌍욕이 나오면 되겠습니까? 요새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힙니다. 80%가 욕입니다. 욕 잘하는 사람은 얼굴에 쓰여 있습니다. 신인은 욕하기 생겼습니까? 욕먹으면 금방 눈물 흘리는 사람입니다. 나는 바가지를 뒤집어쓰고도 웃는 사람입니다. 사회에서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해도 내가 나쁘지 않으면 되는 것입니다. 휘둘릴 이유가 없습니다. 감옥에 가고 사형을 받아도 십자가에 한 번 더 가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도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관리들에게 “너희 벌 받아라!” 이런 말은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용서와 사랑의 본질
예수가 부활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은 베드로였습니다. 세 번 부인한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저 자식 못된 놈, 나를 세 번이나 부인해. 너 다시는 안 볼 거야”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조용히 찾아가 “베드로야,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을 연달아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마음속으로는 사랑하고 있었지만 로마 병사들의 총칼이 무서웠던 것입니다. 순진한 사람이 놀라서 말이 나간 것입니다. 예수님을 부인했지만 금방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자리를 피하려고 한 것을 예수님은 알았기에 이해하고 다시 찾아간 것입니다. 이스라엘에 사람이 없어서 다시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반대하거나 안티하는 사람들을 신은 미워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는 조치하겠지만, 미워서 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일을 계속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를 미워하고 따르는 자들을 수도 없이 죽이러 다닌 바울이 결국 기독교를 전 세계에 전했습니다. 예수는 바울을 데려다 썼습니다. 걸어가고 있는데 소질이 있고, 얼굴은 못났지만 머릿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물불 가리지 않고 할 사람이고, 로마 신분증도 가지고 있고, 공부도 제일 좋은 대학을 나왔으니 12제자는 옆에 가지도 못할 정도였습니다. 저런 사람을 확 바꿔서 써야겠다고 생각하여 장님을 만들어 썼습니다. 기독교는 그 사람 때문에 퍼진 것입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 용서해 주었습니다. 다시 제자들을 설득해 놓고 40일 만에 올라갔습니다. 신인이 이야기하는 것은, 자존심을 내세운 자는 언제나 낮아지려고 하는 자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고, 자기를 올리려고 하는 자는 거꾸로 됩니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입니다.
말의 품격과 영적 성장
우리는 남과 말을 할 때 평상시에 험한 말을 절대로 쓰면 안 되고, 복 나가는 말을 절대로 써서도 안 됩니다. 그러면 술이 당기게 되어 있습니다. 나는 술 담배를 먹지 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청소년 시대에 모든 환경이 술 담배를 먹지 않고는 견디기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고, 서울에 와서 야간 중학을 15살에 들어갔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야간 중학생의 50%는 고아원에서 왔고, 나머지는 집안 환경이 중학을 갈 수 없는 아이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야간이었고 검정고시를 봐야 했습니다. 나는 중학교 검정고시, 고등학교 검정고시, 대학 검정고시를 봐서 대학에 들어간 사람입니다. 한 번도 정규 교육은 받지 못했고, 방통대도 야간이었습니다. 낮에 학교 간 적이 없습니다. 굉장히 술 담배가 당기는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스트레스 아닌 것이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러니 맨날 시골의 산만 생각했습니다. 시골의 잔디 소매이든 언덕, 강변, 지리산이 보이고 남해 바다가 보이는 지수면 산등성이에서 풀 베고 소 먹이고 나무하는 모습만 매일 서울에서 떠올랐습니다. 내가 왜 이 공장에서 먼지를 마시면서 고생을 해야 하나, 왜 버스 조수 하면서 갈색을 받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복 입은 여자아이들한테 내 옷이 다 담아 색감 해져 버릴 정도로 옷을 안 갈아입고 버스 조수를 했습니다.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도 술, 담배, 커피는 먹지 않았습니다. 커피는 나쁜 것도 아니지만 돈이 들어가니 먹지 않았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말려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신기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습니다. 항상 공장에서 일을 해도 마음은 시골에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소 먹이고 풀 뜯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스트레스가 없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면서도 시골 고향의 들에 항상 내가 있는 것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축구하고 있는데 나는 학교 끝나면 더 바빴습니다. 소 먹여야 하고, 나무하러 가야 하고, 학교 끝나면 더 바빴습니다. 스포츠는 절대 보지 않았습니다. 야구를 어떻게 하는 건지, 축구를 어떻게 하는 건지, 바둑을 어떻게 두는 건지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 있으면 영어 단어 200개를 외웠습니다. 한문 공부해야 하고, 영어 공부해야 하고, 만화 그려야 하고, 학교 숙제해야 하고, 소죽 끓여야 하고, 일이 산더미 같았지만 한 번도 그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 시간을 썼다는 것입니다. 시골에서도 다른 아이 같으면 삐질 일입니다. 스무 살에 똥장군을 지고 가는데 내가 퍼서 담아야 했습니다. 어릴 때는 초등학생이 똥장군을 지고 일어서면 출렁거려 옷이 더러워졌습니다. 학교 가면 아이들이 냄새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그 어린 나이에 그것을 해도 스트레스가 없었습니다. 항상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농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살 때 나에게 피해를 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어릴 때 사회적 자아를 이미 깨달았고, 연대적 자아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내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고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면 좋게 해줄까 하는 연구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여러분 앞에 수천 번을 서게 되는 것입니다.
공간에서 시간으로의 이동
공자가 신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산 사람 일도 못 하는데 죽은 일을 뭐하러 묻느냐고 이야기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사람 구실 하는 것도 무지무지하게 어렵다는 뜻입니다. 석가모니도 살아 있는 사람과의 연대적인 자아를 깨닫는 것도 무아로 한다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무아나 진화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를 없앤다는 것은 해결이 안 됩니다. 이것은 글자에만 있는 것이지, 무아나 진화는 영혼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이 사랑, 내가 이야기하는 이 사랑은 남에게 성질 안 내는 것이고, 남에게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조건 입 밖에 말을 꺼낼 때는 하나님한테 한다, 신인한테 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남편에게 한마디 할 때도 남편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신인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공간에서 공간으로 가는 사람이 99.9%입니다. 우리는 공간에서 시간으로 가야 합니다. 공간에서 공간으로 가는 사람들은 전부 서민들입니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1%는 공간에서 시간으로 가는 자들입니다. 학교 가서 공부하라고 엄마가 가리니까 갔습니다. 교실에 앉아 있으면 공간입니다. 그런데 교실에서 1분 1초가 아깝다면서 선생님 오기 전에 단어를 외우고 공부를 하고 있다면 이것은 효자입니다. 시간과 싸우고 있어야 합니다. 시간 속에 있어야 합니다. 공간 속에 있는 자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남을 위해서이지, 자기 걸음도 못 합니다. 언제나 공간 속에 있는 자는 공간에서 공간으로만 이동합니다. 오늘 학교 갔다가 집에 왔다, 직장 갔다가 집에 왔다, 이렇게 공간에서 공간으로 오다가 한평생 가버립니다. 그런데 공간에서 시간으로 가는 자는 100% 다 성공합니다. 시간은 무엇입니까? 같은 학교 갔다가 집에 갔다가, 직장 갔다가 집에 갔다가 하는 개미 쳇바퀴 같은 일상입니다. 여러분이 그러지 않습니까? 이런 공간을 시간으로 바꿔야 합니다. 여러분이 하늘 공으로 오고 있다면 그것은 시간입니다. 그중에 99.9%는 버스 안에 공간에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미 하늘궁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그런 것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무엇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그럼 이것은 시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 뇌를 비우면 이미 공간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극장에 들어가면 공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 들어가 버립니다. 영화를 보니까 어떤 시간 속에 끌려 들어가 시간을 보는 것입니다. 그 시간 속에 들어가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 속에 들어가면 언제나 발전밖에 없습니다. 버스를 탔다면 이미 마음은 하늘궁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동이 하늘궁 행동으로 바뀝니다. 누구 미워하지도 않고, 어제 남편에게 괜히 들었나 하는 생각을 벗어나서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것은 시간 속에 들어간 것입니다. 어제 남편과 두 시간 동안 싸웠구나, 내 천사 나왔겠다 하면서 오면, 오는 시간이 다섯 시간 걸렸다면 다섯 시간 동안 레벨이 올라갑니다. 시간이 왜 중요하냐면 레벨이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그 시간은 무조건 레벨이 올라갑니다. 버스 안에서 의자 노래를 부르고 앉아 있으면 레벨이 올라갔을까요? 공간을 이용한 것입니다. 아무리 버스를 타고 가도 레벨이 안 올라갑니다. 하늘궁에 가면 내가 어떻게 되고, 하늘을 생각하고 내 말을 생각하면 레벨이 올라갑니다. 시간은 레벨을 올려주지만, 공간은 어떤 레벨도 안 올려줍니다. 동사무소에 서류 떼러 갔는데, 여기는 동사무소라고 생각하면 레벨이 안 올라갑니다. 거기서 기다리는 동안에도 내 영상을 본다든지, 신인님 것을 복습한다든지, 하늘을 생각한다든지 하면 생각하는 만큼 레벨이 올라갑니다. 레벨을 못 올린다고 억울한 지방 사람들은 시간을 투자하면 됩니다. 마음속으로 신인을 생각하고, 하늘궁 생각을 하면 레벨이 올라갑니다. 동사무소나 구청에 가서 시간 남으니까 멍하니 사람 쳐다보고 앉아 있으면 레벨이 안 올라갑니다. 거기 가서도 신인님이 지난주에 한 강의가 이런 것이었지 하고 옆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누구 하나 붙들고 시간이 있으면 좀 전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전할 수도 있습니다. 프리토킹을 하든지, 과자를 하나 사서 입에 넣어주면서 말을 건네는 것입니다. 신인을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적인 이야기이지, 정치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면 그 레벨이 올라갑니다. 하늘궁 소식을 알리는 것입니다. 하늘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어디 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레벨이 올라갑니다. 레벨 올리는 방법을 알려주었습니다. 공간에서 시간으로 이동할 때는 반드시 공간에서 공간으로 가지 마십시오. 공간에서 시간으로 들어가면 항상 레벨이 올라갑니다. 머릿속에 신인을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옆에 친구와 이야기하더라도 저 사람이 신인에게 조금 벗어난 이야기를 하면,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돼. 레벨 나가”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러면 그 사람은 레벨이 올라갑니다. 자꾸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말에 솔깃해서 “어머, 그 사람이 그렇게 도둑질했어? 요걸 사면 이건 전부 거짓말인데”라고 하면 레벨이 다운됩니다. 그동안 쌓아놨던 레벨이 한순간에 다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는 이런 인간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지구인들의 99.9%입니다. 공간에서 시간으로 갈 줄 알아야 합니다.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안 하고 친구들과 대화하고 있으면 공간에서 공간으로 간 것입니다. 그런데 도서관 가서 엄마에게 “난 도서관 간다고 왔어. 나 공부해야 돼. 우리 엄마 아버지 늙은 아버지 어머니, 나중에 배운 비도 볼 수 있고 내가 우리 집에 기둥이 우리 집에는 아들이 내 하나뿐이야. 그럼 나는 죽기 살기로 공부해야 돼” 이렇게 마음을 먹고 공부를 하면 이것은 시간 속에 있는 아이입니다. 엄마에게 “도서관 갔다 왔어”라고 말하고 실컷 놀다 왔다면, 도서관에서 핸드폰 게임이나 하며 놀았다면 그 아이는 공간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핸드폰 속도 공간입니다.
남을 정죄하지 않는 항복 지심
남을 정죄하게 될까요, 안 될까요? 안 하게 됩니다. 남을 정죄하는 것은 남에게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자존심을 내세우면 남을 덮어씌우는 것입니다. 내 자존감을 높이면 내가 져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항복 지심이라고 했습니다. 남에게 항복해 버려야 합니다. 남을 이기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자존감이 올라갑니다. 상대방은 “저 사람, 사람이 참 좋아”라고 말합니다. 빡빡 우기면 항복한 사람입니까? 항복 지심 말고 행복 지심이 있습니다. 행복 지심은 글자가 다릅니다. 항복하는 마음을 가지면 행복 지심이 되는 것입니다. 쓰는 것은 내가 이렇게 쓴다고 했습니다. 항복을 이렇게 하면 행복이 됩니다. 행복이 되면 H자입니다. H자 열몇 가지인데 알려주었습니다. 헤드, 하트, 헬스, 모든 것이 히터, 뜨거운 것, 모든 것이 H입니다. 또 헤븐, 하늘, 홀리 스피리트, 성령도 H입니다. 중요한 것은 전부 H로 되어 있습니다. 허경영도 H로 시작합니다. 허경영은 전부 다 H입니다. 그래서 내가 H 열 가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성령도 H, 하늘도 H, 나도 H, 심장도 H, 손도 H, 중요한 것은 전부 들어 있습니다. 이제 그 시대가 왔습니다. 신이 나타났습니다. 이것을 지금 남에게 항복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에게 항복할 줄 모르면 그 사람은 이미 큰 인물이 못 됩니다. 항복 지심이 공간에서 가는 것입니다. 정말 놀러 가자고 하면 나는 놀러 못 간다고 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는 시간을 낭비할 수 없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를 나중에 내가 부양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기쁨을 줘야 합니다. 인간을 하늘에서 만든 원인도 기쁨 때문에 만들었는데, 내 어머니 아버지에게 자식도 부모에게 기쁨 주라고 있는 것입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부모에게 기쁨을 선물해야 하는데, 놀러 다니면 기쁨은커녕 나중에 어머니 아버지 밥 팔아 집안 말아먹는 짓입니다. 나는 그런 불효 자식 되고 싶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못 놀아도 좋습니다. 시간에 들어가야 합니다. 나는 그런 공간 필요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공간에서 공간으로 가는, 공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결국 평생 직장에서 집, 직장에서 공간에서 공간, 공간에서 공간만 하다가 평생 끝나는 것입니다. 그러다 또 지옥 공간으로 갑니다. 술집도 공간입니다. 깊이 생각할 것이 무엇입니까? 술집 가서 공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남에게 항복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그냥 항복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가서 매달리고 못 박혀 그대로 죽어도 절대 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항복 지혜입니다. 이것은 공자 말이지만, 내 말입니다. 우리는 여러 사람과 연대가 되어 있습니다. 삼일 운동 때 많은 사람이 죽으면서도 우리가 독립을 해야겠다고 해서 연대가 되었습니다. 사회가 각 문중이나 각 단체들이, 종교 단체들이 연대해서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래서 민족의 자존감, 민족의 자존감을 회복한 것입니다. 삼일 운동을 해서 회복했습니다.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해 주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민족 자결주의를 자꾸 세뇌했습니다, 윌슨 교수에게. 윌슨 교수는 이승만 청년이 대한민국을 구할 청년이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저 진짜 애국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청년은 살금살금 나에게 민족 자결주의를 가르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윌슨이 나중에 민족 자결주의를 주장해서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 각 주의 주들도 민족 자결주의에 해당됩니다. 주정부들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그 주정부들이 좋아하는 말만 윌슨이 하는 것입니다. 가만 들어보니 상당히 민주를 할 것 같아서 뽑아준 것입니다. 윌슨이 대통령이 되고 그 사람에 의해서 우리 민족이 해방된 것입니다.
신의 힘을 빌리는 지혜
아까 처음에 읽은 빌립보서는 정말 심각한 초를 다투는 일을 할 때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내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불가능이 없다고 팍 도전해야 합니다. 무슨 일을 앞두고 자식들이 불안, 공포에 떨고 엄마 아버지 연락이 안 되더라도 이미 그런 상황에서는 엄마 아버지 생각 연락하는 것보다는 저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신의 힘을 받으면 나는 불가능이 없다고 딱 하고 딱 하면 그냥 이기는 것입니다.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 앞에는 일이 순탄하게 해결됩니다. 지금 이 위기에는 그런 것이 필요합니다. 또 하나는 마태복음 10장 20절입니다. 이것은 면접 볼 때 쓰는 것입니다. 면접 볼 때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전부 성령에 의해서 나가는 말이 되라고 해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그렇게 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면접 시험관이 질문을 딱 하는데, 내 개인 생각으로 답하면 점수가 안 나옵니다. 성령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나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내가 성령을 주신 신인의 능력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면 그냥 자신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말하기 쉽습니다. 이런 말은 신인이 좋아합니다. 이런 말은 신인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미 다 아는 것입니다. 우리 신인은 이런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그대로 하면 그 사람들이 다 막힙니다. 경기 선수들이 총을 딱 들고 달리기 원, 쓰리, 투, 원, 제로, 빵! 총을 쏠 때 마음속으로 외워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나는 불가능이 없다”고 열 번 외워야 합니다. 총 쏘기 직전까지 외우면서 쳐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능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생각하면 힘이 있을까요? 없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훌륭한 선수들은 특수한 믿음들이 강합니다. 그리고 자기 입버릇처럼 입을 움직입니다. 세계 챔피언 된 사람들을 보면 수영 선수고, 마라톤 선수고 입을 쭈글쭈글 움직입니다. 성경 구절을 외우고 있는 것입니다. 미친놈처럼 입을 움직입니다. 수영 선수들, 외국 선수들 뭐 하기 전에 자세히 보면 입술이 움직입니다. 무엇을 외우는 것입니다. 딱 외우다가 빵! 그러면 세포가 달라집니다. 면접 볼 때 불안하죠? 내가 하는 말은 성령의 힘이 해주는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암기하고 딱 들어가면, 그 앞에 면접관들이 불쌍해 보입니다. 월급은 얼마나 받으시는지, 공간에서 공간을 이동하는 사람들 아니냐, 또 뭐 좀 있으면 퇴근하시겠지 하고 아주 하찮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령의 말이 나가는 것입니다. 그들을 따뜻하게 불쌍히 보면 내 말이 좋아집니다. 공포 대상이 아닙니다. 성령이 나를 도와주고 있고 내 안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겁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말이 좋게 나갑니다. 질문을 딱 하는데 더듬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자네는 아빠 엄마 있나?”라고 물으면 이미 있는 것도 알고 묻는 것입니다. 저 사람 묻는 의도가 무엇일까요? 아빠 엄마가 계신데 아버지가 몸이 좀 편찮으셔서 제가 생활을 앞으로 도맡아야 되기 때문에 꼭 이번 시험에는 내가 붙어서 우리 집안의 생활비를 내가 좀 보태야 되겠는데, 상당히 제가 지금 어려운 기로에 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아빠가 그 사람들이 아빠입니다. ‘저런 자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고 그 사람들이 공감을 해버립니다. 창피한 이야기 같지만 그렇게 이야기하면 ‘아, 저놈은 절실한 놈이구나. 부모 생각을 해서 제가 직장에 왔구나. 저거 제 자존심 채로 온 애가 아니다. 저거 생각하는 것이 부모한테가 있단 말이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시험관도 부모입니다. ‘애들도 좀 저랬으면 좋겠다’ 하고 그런 애를 뽑습니다. 심리적으로 굉장히 무서운 말입니다. 아빠도 편찮으시고 엄마도 좀 편찮으신데 제가 앞으로 일을 해서 하루라도 빨리 해서 집안 형편을 좀 도우려고 하는데 제가 좀 상당히 솔직한 심정으로 꼭 붙어야만 될 입장이 있습니다라고 솔직히 그냥 좀 붙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애는 괜찮습니다. 솔직히 그 뭐 자존심 내세우고 고상한 척하고 살면 떨어지는 것입니다. 절박함이 보이는데 절박함이 아닙니다. 부모님도 편찮으시고 두 분을 내가 앞으로 보호해야 하는데 생활이 제가 돈을 벌어야 될 입장이니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직장을 구했습니다라고 말하면 ‘너는 되네’ 하고 박살 내버립니다. 성령이 들어갔으니까 이렇게 성령이 공감할 수 있는 언어를 써야 하는 것입니다. 적금을 들었는데 직장 들어가서 이 적금을 내려고 그러면 1억을 모으려면 이런 미친놈입니다. 여기가면 네 적금 들어주는데 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령이 안 들어 있습니다. 이제 이해가죠? 성령은 이웃을 생각하는 것, 부모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는 하늘이 그 심사위원입니다. 그 사람도 부모입니다. 공감이 된다는 것이 공감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성령을 주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성령의 감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 강의를 들으면 젊은 사람들이 면접 시험 잘 보겠지.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그렇게 솔직하게 나가면 ‘어머, 내 새끼도 제 같았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드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제는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내가 빨리 취업을 해서 여자를 얻어서 자식을 낳기를 원합니다. 아버지가 독신 혼자고, 형제 아버지 형제가 아버지밖에 없고 나도 독자입니다. 나는 빨리 취업을 해서 결혼해서 아버지 어머니도 해야 하지만, 결혼해서 아버지 어머니 앞에 자식도 나와서 집안에 내가 가장으로서 책임이 참 무겁습니다. 가나 시험이 됐으면 정말 고맙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그 시험관이 되게 솔직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것이 뻔합니다. 나라에 애를 낳겠다, 빨리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영국 유학 갈려니까 유학비를 벌러 왔다고 하면 이것은 영성적인 것이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것은 주변을 생각하면서 나가 줄 때 사람이 도움이 오는 것입니다. 어떤 인터뷰를 해야 하는지 알 것입니다. 비싼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시간하고 지금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금준미주는 천인내요, 술자의 아름다운 술은 천 백성의 피다. 이것은 목력 이야기입니다.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공감을 일으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인터뷰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금항아리, 금술잔에 아름다운 술은 천 백성의 피로 되었다. 천이라는 것은 숫자로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백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만 백성 하면 만 명이 아닙니다. 천 백성 하면 천 명이 아닙니다. 전체 국민 전체 숫자가 붙어 버리면 이런데 숫자가 붙으면 그 숫자를 계산하면 안 됩니다. 만 백성이 천 백성입니다. 옥쟁반에 아름다운 안주는 만 백성의 기름입니다. 이것도 만 백성의 피요, 이것도 만 백성의 기름입니다. 국민이 몇 명인지는 그 당시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만 자나 천 자가 붙으면 모든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백 사람의 피요, 모든 사람의 기름을 짠 것입니다. 그것을 누가 먹고 앉아 있습니까? 정신들이 먹고 있잖아. 촛물 눈물 떨어질 때, 여기서 미는 또 같은 말입니다. 정말은 요자나, 요자나, 요자나 똑같은 말을 계속 써 놓으면 복이 흉하니 이런 시를 지을 때는 이렇게 놓은 것입니다. 모든 백성의 눈물이 떨어지고, 모든 국민의 눈물이 떨어지고, 이것이 다 같은 자입니다. 모든 백성의 피요, 모든 백성의 기름이, 모든 백성이 눈물 흘린다는 말입니다. 노래 소리가 높은 곳에 모든 국민의 원망 소리가 높습니다. 원자는 또 여기 모든 국민의 원망이 다 붙어 있는 것입니다. 국민의 원망 소리가 아주 높습니다. 이것이 춘향전입니다. 춘향이를 구하러 이도령이 무엇을 쓰고 갔습니까? 일부러 다 망가진 갓. 내가 그렇게 위장하고 한 번 입고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재밌겠죠? 내가 갑자기 다 떨어진 갓을 쓰고 두루마기를 입고, 지저분한 것을 입고 오면 재밌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시 한 수 읊어 달라고 술 한 잔 달라고 그렇게 나타났습니다. 봐도 완전 거지입니다. 달라고 하니 변사또 밑에 있는 이방이 “야, 저렇게 지저분한데 저 와서 저 왜 저러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양반인가 보다고 시 한 수 읊겠다는데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딱 보더니 제일 눈치 빠른 사람이 이방입니다. 딱 보더니 눈매를 보니까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거지인데 분명히 눈매가 이상합니다. 그런데 앞에 첫마디 금준미주가 딱 나오니까 ‘얼시구나, 이거 암행어사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방은 좀 술이 덜 취해서 사또가 많이 취했고 계급이 높을수록 주저앉아 있는 것입니다. 이방은 눈치가 빨랐습니다. 빨리 ‘나 저 저기 저 화장실 좀 갔다 달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또 보고 ‘사또, 이거 의사가 도망갑시다’ 이러면 큰일 나니까 들키니까 먼저 달아나 버렸습니다. 조금 있으면 이탈자가 생깁니다. 그런데 옥졸을 다 읊으니 달달달 떨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사가 틀림없다, 님이 위장하고 온 것이 틀림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 가지고 그냥 옥졸을 딱 쓰고 나니까 이 사람들 태도가 싹 달라집니다. 한두 명씩 다 일어납니다. ‘나 우리 집에 뭐, 다 꽁 빼죠.’ 그런데 사또는 도망을 못 가는 것입니다. 사또는 일어나면 안 되잖아. 그 사또는 술에 취해서 눈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서 상황을 모르고 있는데 옥졸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딱 보니까 이것은 판결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마시면서 국민들, 너네들이 지금 여기 지금 뭐 하고 앉아 있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다 춘향이를 잡아놨습니다. 춘향이를 잡아놓고 그 짓을 하고 있으니 되겠습니까? 그래 가지고 춘향이를 구해냅니다. 그 사람이 위장하고 들어가서 그렇게 하는 것이 재밌는 것입니다. 위장하고 안 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냥 관아에 가서 그냥 ‘사또 의사 출도’ 이러면 됩니다. 그런데 꼼짝 마 하고 잡으려면 잔치할 때 딱 가면 간부들을 다 잡을 수 있습니다. 미처 뛰쳐나간 놈도 대문을 못 나갔습니다. 관아 안에서 눈치 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대문 나가면 이미 바깥에 포졸들이 수백 명이 와 있습니다. 하나의 관할을 누를 만한 군사가 와 있습니다. 며칠 날까지 그리로 몰아라 하면 그 딱 모여 있는 그 어사 출도입니다. 그래 가지고 춘향이가 구해집니다. 내가 이 이야기를 왜 했을까요? 신인은 우리가 어떤 자리에 올라가면 자기를 낮춰야 합니다. 그것이 벼슬이라고 서로 하겠다고 싸우면 되겠습니까? 가능하면 싸워도 상대방 비방을 안 하고 올라가야 합니다. 항상 떨어지더라도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 뭐 나가서도 비방을 안 하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난번에 보니, 요번에 선관위에 내가 우리 등록했잖아. 그 등록 서류 보니까 선관위에서 뭐가 나오냐면 내 재산 기록, 그거 다 나옵니다. 정관으로 보니까 교통사고 두 번 난 것이 들어 있더라고요. 그것도 벌금 내게 전과로 들어갑니다. 선거법 위반, 명예훼손 한 번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세 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통사고도 그것이 들어갑니다. 교통사고 특례법에 걸린 것 두 건, 그다음에 내가 선거 때 막 빨리 달리다 보니까 그렇게 됐고, 그다음에 하나는 저 명예훼손에다가 선거법 위반, 아시죠? 근데 들어갔다 왔습니다. 그래서 세 건이 되어 있더라고요. 이런 사람은 이것은 진짜 안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술 먹고 백성들의 술, 이거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관리들이 안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제 선거 되니까 나는 정치 이야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왜 하느냐, 이렇게 된 것은 자존감을 낮추는 것입니다. 제가 뭐 술 먹고 뭐 떠든다고 자존감이 올라갑니까? 자존심만 올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방이 술을 먹는다 그래도 “야, 술 먹지 마” 이래야 하는 것입니다. 사또가 술 먹겠다 그래도 이방이 “사또님, 그거 하면 안 됩니다” 이래야 하는 것입니다.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위장과 지혜
아가타 왕국에 페넬로페 왕비가 있었습니다. 그 왕의 이름은 오디세우스입니다. 이 사람이 이도령입니다. 이 사람이 왕비입니다. 이 왕이 트로이 목마의 주인공입니다. 트로이 목마를 크게 만들어서 그 안에 군인들을 잔뜩 넣어 가지고 밀고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선물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선물이 아닙니다. 그 안에 군인이 잔뜩 들어 있습니다. 그 선물 받으라고 성문을 열어주니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는데 안에서 열고 전쟁해서 이겼습니다. 그 왕, 저 왕입니다. 저 오디세이 왕이 이 트로이 목마의 주인공입니다. 트로이 목마 유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페넬로페 왕비가 저 산에 가서 20년 동안 전쟁터에서 안 돌아왔습니다. 저 오디세이 왕이 전쟁하러 갔는데 20년 동안 유럽에 나갔는데 안 돌아왔습니다. 전쟁에서 죽은 왕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세계적인 황제 알렉산더 대왕도 나가서 집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전쟁도 병을 얻었습니다. 그래 가지고 몇 살에 죽습니까? 33살에 죽었습니다. 그때는 전쟁터 나가면 시체가 되어서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몇 년씩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도 20년 만에 돌아오는데 돌아오니까 이 왕비 옆에 남자들이 많이 끼어 있겠지. 그것들이 왕비랑 결혼만 하면 권력을 잡지 않습니까? 왕은 죽었습니다. 그러니까 나하고 결혼하자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 그냥 왕궁에 진을 치고 있습니다. 들어가면 이 오디세이 사람, 오디세우스가 죽겠지. 그러니까 거지로 이도령처럼 위장해 갔다고 했습니다. 거지로 위장해서 들어갑니다. 들어가서 그 사람들 앞에서 활쏘기를 하는데 저 활을 당기는 사람이 그 마누라하고 결혼하는 것입니다. 관역이 또 있습니다. 그 관역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활을 잡는 사람마다 활이 안 당겨집니다. 얼마나 활이 센지, 그런데 그 활이 신의 힘을 사람을 알아보는 활입니다. 주인을 알아보는 활입니다. 그런데 그 왕궁에 있는 개가 제일 먼저 이 사람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개한테 들켰습니다. 위장을 했는데 이 개는 성춘향보다 한 수 더 떴습니다. 그 늙은 개가 20년을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딱 보니까 저것이 주인이잖아. 거지같이 위장해도 사람은 모릅니다, 이것이 위장입니다. 그런데 개가 알아 가지고 달라붙습니다. 막 좋다고 막 달라붙으니 왕비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입니다. 저 개가 다른 놈한테는 짖으면서 저 사람한테는 왜 좋다고 달라붙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약간 의심이 갑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개가 달라붙어도 의심을 안 합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놀랐습니다. 개가 자기를 알아보니까 들킨 것 아니냐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도 해보라고 해서 활을 딱 냅니다. 활이 쫙 펴집니다. 아무도 그 활을 못 폈는데 쫙 펴서 관역을 탁 통과합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왕비가 왕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리 자기가 차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드라마틱합니다. 이것보다 더 한 수 위였던 것이 개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내가 그래서 비교해 보는 것입니다. 개가 세상에 20년 만에 온 주인을 알아보고 그렇게 반가워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에 막 죽일 놈이다, 도둑놈이다 해가지고 자살 직전에 자기 집 개는 계속 와서 달라붙고 이쁘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이미 죽을 약을 입에 넣었습니다. 넣었는데도 자기 개가 막 좋다고 막 뽀뽀하고 달라붙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죽으면서 사람한테는 미워서 죽는데 개는 안 미운 것입니다. 이 인간들 싫어서 내 약 먹고 죽지만 이 우리 개를 누가 키우니 하고 걱정하면서 죽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었는데 그 집 개가 왔는데, 주차장에서 개가 막 쫓아오는 것입니다. 주차장에서 문을 열고 차를 타는데, 백화점 주차장에서 개가 한 마리 쫓아오는 것입니다. 막 못 오게 하는데 가로막고, 개가 막 좋아 난리입니다. 달라붙습니다. 그 개를 너무 쫓아오게 가다가 서 가지고 할 수 없이 태웠는데, 그게 가보니까 저것이 엄마입니다. 세상에. 집에 데려와서 지금 키우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천사 때다 하니까 저것이 죽은 엄마입니다. 얼마나 신기합니까? 우리 회원 중에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개가 한 장을 하더랍니다. 그냥 주, 자기를 보니 막 그냥 막 같이 올라타고 막 난리가 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이 오디세우스에게 달라붙던 개나, 그 개는 전생을 온 개입니다. 전생 기억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개가 되게 영리합니다. 그 이야기를 해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그 주차장에서 지하 주차장에서 뛰쳐 온 개. 그래 가지고 막 그 사람을 붙들고 늘어지는데 자기 어머니입니다. 그게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아들이 올 것을 알고 그 지하실에 주차장에 있었냐는 말입니다. 의연하지 않습니까? 성춘향은 저 오디세우스에게 졌습니다. 오디세우스는 다시 왕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그냥 가서 ‘이것이 내 왕국이다’ 하고 나갔다가 맞아 죽습니다. 자기를 숨겨야 합니다. 자기를 낮춰야 하는 것입니다. 자존심만 내세우다가는 죽습니다.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서는 거지 옷을 입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전 국민에게 누명을 쓰고 예수가 십자가에 가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죽을 때도 자기를 낮춰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다시 내가 왔습니다. 다시 와서는 업그레이드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나사로 집을 안 가도 됩니다. 그냥 여기 앉아서 ‘나사로’ 이래 버리면 나아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공짜로 와서 보고 앉아 있습니다. 여러분은 앉아 있고 나는 서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적반하장이라고 합니다.
능력, 인격, 축복, 명패: 천국으로 가는 길
능력과 인격은 무엇입니까? 지옥입니다. 능력과 인격은 자존심을 너무 내세웁니다. 어느 학교다 뭐 이러면 이것이 마치 세계에서 최고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능력도 있고 인격 있는 자는 지옥 가기가 99.9% 쉽습니다. 그래서 내가 초기에 12제자가 전부 초등학교 안 나온 사람입니다. 그것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너무 겁쟁이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대학 나온 사람, 로마 시민권 가져 있지, 대학 나왔지, 그리스 로마를 잘하지, 아주 또 헬라를 잘하지, 히브리어를 잘하지, 아주 이것은 천재입니다. 이것은 사통팔달입니다. 그런데다 또 잘생기면 바람 나서 전도 안 할 텐데, 또 완전히 키가 뭐 좀 그런 데다가 또 고구마 같지도 않게 생겼습니다. 거기다 병을 하나 넣어 준 것입니다. 왜? 몸이 성하면 또 여자 옆에만 돌아다닐 수가 있으니까, 이 또 또 이 기독교 망신 시키니까. 그러니까 것도 가시를 딱 넣어줬습니다. 맨날 대장에 통증이 오게 만듭니다. 그것 고쳐 달라고 기도를 번지게 하다가 나중에는 기도를 멈춥니다. ‘이것이 없었으면 내가 과연 예수를 증언하러 다닐까? 내 목숨이 얼마 안 남았는데’ 요렇게 최후까지 합니다. 만약에 자기가 몸이 좋았으면 중간에 새끼로 빠져나갈 수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고 나를 꼼짝 못하게 만듭니까? 그래서 아주 세트로 다 좋게 놓았습니다. 좋은 것을. 학벌이 많은 자 때문에 기독교가 로마 국교가 된 것입니다. 그 12명, 그 초등학교 안 나온 12제자 가지고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바울 때문에. 바울이 해까닥 돌아가지고 오는 바람에. 우리가 무슨 우리를 반대하는 자가 있다 해서 여러분들이 그들과 섞이면 안 되지만, 나는 그대로 두고 있는 것입니다. 법률적으로 하지, 감정 싸움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는 다 필요해서 만든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더 깨끗해질 수가 있습니다. 역경을 순경으로 만들라고 있는 것입니다. 역경이 역경으로 끝나면 어떻게 됩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인은 역경을 오히려 딛고 올라서는 자가 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 믿으면 되겠습니까? 이 능력 안에는 지력도 있지만 재력도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은 안개와 같습니다. 인격도 너무 고상하면서도 사람들과 위화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런 것은 대부분 저쪽 지옥으로 빠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능력 플러스 인격 플러스 축복, 명패가 있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꼼짝없이 천국입니다. 내가 천사 데려가면 천사 축복 주고, 백궁의 천국에 들어가는데 학벌을 보고 있습니까? 안 봅니다. 본인들이 알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합격자들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말과 행동
베드로전서 4장 11절을 읽어보십시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그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는 이가 하나님이심이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느니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우리가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내가 무료 급식하죠? 급식을 무료 급식하면, 이것은 내가 여러분이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신이 영광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신을 위해서 영광을 받게 해야지, “어머, 내가 신한테 돈을 냈으니까 영광은 내 거야” 이러면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레벨이 올라가지, 영광은 여러분들의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남편에게, 마누라에게 말 한마디 해도 꼭 하나님한테 말하듯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냥 인간이야, 저거 저거 학벌이 뭐 있나 없어 이렇게 생각하고 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절대 안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점수를 먹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으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방금 이 문장, 굉장히 중요한 문장입니다. 저 구절을 우리 자녀들이 봐야 합니다. 자녀들에게 “너 저거 봐라. 친구한테 말하면 다 너도 하나님한테 하듯이 해라. 무슨 말인지 알지?”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말만 꺼내면 입에서 욕이 나오는데, 우리는 따라할 수도 없습니다. 솔직히 따라하기도 민망합니다. 내가 이렇게 지금 강의 여러분은 앉아 있고 나는 서서 하는데, 내가 조금 앉으니까 역겹습니다. 나도 좀 앉아 보는 것입니다. 나도 뭐 음료 좀 마시고. 요새 어떤 사람들이 교회는 안 와도 사람이 안 와도 골치 아프다고 합니다. 왜 골치 아프냐? 주차장이 없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차장을 늘릴 만큼 성장해야 하는데, 사람은 오는데 주차장은 땅이 비쌉니다. 주변에 주변 사람이 건물 팔아. 그러면 건물 사서 하려고 주차장 하나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래서 교회를 어디다 지었느냐에 따라서 발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딱 정해져 버립니다. 교회를 그냥 시장통에 지었다면 주변에 주차장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럼 교회가 점점 커지면 어디로 나갑니까? 변두리로, 변두리로 나갑니다. 나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차장 때문입니다. 하늘 공은 그런 것을 미리 내다보고 멀리 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무엇을 하나 해도, 먼 미래를 내다보고 움직이는 자와, 말을 한마디 해도 내가 나중에 잘되고 내 후손이 잘되려면 말이 한마디 한마디가 하나님한테 하듯이 해야 하는데, 무슨 깡패처럼 말을 하면 되겠습니까? 말을 한마디 해도 이렇게 교회를 어디다 지어야 하느냐? 이것도 먼 미래에는 자동차를 타고 교회를 올 것입니다. 그러면 이 시장통에는 자동차가 설 수가 있는 곳이 없습니다. 열 대만 서면 온 동네에서 욕을 하고, 저놈 교회 저거 문 닫아 새끼, 저거 뭐 이렇게 나옵니다. 그러면 교회가 욕을 먹는 대상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미래를 내다보면 어디다 지어야 합니까? 저 아예 여의도 백사장에 조용기 목사님 잘 지었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었습니까? 서대문에 있었습니다. 거기 있었으면 주차 한 대도 못 합니다. 조용기 목사님이 300명 정도 신도가 될 때 서대문에 있었습니다. 서대문 로터리. 거기 주차장이 있을 데가 없습니다. 방을 봐도 주차장 있습니까? 그 옆에 적십자 병원이 그 교회 뒤쪽에, 앞에는 로터리, 뒤쪽 옆에는 로터리. 더 주차 공간이 없는 것입니다. 불광동에서 서대문까지 간 것도 대단하게 간 것이라고 했는데, 한숨 돌리기도 전에 ‘어머, 나중에는 이것이 만 명까지 와야 될 텐데, 이거 3만 명, 뭐 3천 명이 들어올 300명밖에 못 들어오는 이 교회를 가지고 아, 서대문이 좋다고 이래 있으면 되겠나?’ 요런 생각 했겠죠. 목사님이 그러니까 주차장 때문에 여의도로, 여의도, 여의도 갔다 그냥 지은 것입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그 생각했는지 몰라도 밑에 있는 장로가 그 당시 서울시 부시장이 차일석 장로라고 있거든. 그 차일석 장로가 여의도가 그때 비행장 하다가 때려치우고 개발하려고 할 때 허벌판이었습니다. 국회의사당도 없을 때. 국회의사당 땅을 교회로 하라고 줬는데 하니까 목사님이 “어머, 이렇게 넓은 땅을 우리가 왜 사냐?” 그니까 장로님이 “나중에 저 주차장도 해야 되고 땅이 많이 필요할 겁니다.” “아이고, 필요 없어. 요요요요요요 3천 평, 요쪽에 개천 배에 3천 평, 요것만 있으면 우리 뒤집었어.” 좁은 것입니다. 주차장은 어디다 세웁니까? 강변에다 세우고 있습니다. 강변에. 비가 많이 오면 못 세웁니다. 철저하게 후회를 한 것입니다. 몇십 년을 후회하다 돌아가셨습니다. 그 훌륭한 그 목사님이 조용기 목사님, 내가 잘 아는데 굉장히 훌륭한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미래를 내다보는 게 차일석 장로가 “아, 이렇게 국회의사당 자리, 여기 최고야. 야야, 그렇게 넓은 땅, 3만 평도 모자란데 3천 평을 택한 거야.” 그것을 후회하시고 그것이 오지하 나한테까지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나한테까지. 가던 호텔 지하에서 나하고 식사를 하시는데 그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 목사님 동생도 내가 잘 알고 목사님도 아는데 목사님이서 식사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굉장히 미래를 내다봐야 교회도 확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조 목사님은 그런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 큰 대로 가야 된다 이건 알았는데, 그렇게까지 자동차가 늘어나고 그렇게까지 넓은 주차장이 필요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지금 교회들이 주차장 문제 때문에 그것이 지금 발전이 안 됩니다. 왜 차 50대, 100대 어디다 세웁니까? 그 신도 그래도 100명 가지고도 되겠습니까? 이것은 차 때문에 무엇이 안 됩니다. 또 외지에서 먼 데서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요새는 그 동네에서만 그 교회 오는 것이 아닙니다. 먼 데서 오다 보니까 이것이 교통, 차 문제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하는데 우리가 미래를 좀 알아야 할까요, 안 알아야 할까요? 알아야 합니다.
AI 시대와 영적 능력의 중요성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했습니까? 비대면 근무, 재택 근무, 온라인. 요 세 가지가 지금 이렇게 될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사람 많습니다. 비대면에 재택에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일어납니다. 다 이어집니다. 이렇게 될 줄 우리가 알았습니까? 순식간에 이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파지다, 그다음에 클라우드다, 이크 시대가 와 버렸습니다. 그래 가지고 지금 AI 인공지능 시대가 와 버렸습니다. 인공지능이 못하는 것이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하는 사람이 제일 많이 질문하는 것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기술이 있지 않습니까? 인공지능 하는 사람들이 제일 질문 많이 하는 것이, 인공지능 하는 사람들이 궁금한 것이 아침에 날이 흐린데 우산을 들고 나가야 합니까, 그냥 갈까요? 아무리 인터넷 쳐도 답이 안 나옵니다. 그런 정도는 답이 앞으로 나옵니다. 인공지능이 그것이 될 수 있습니다. 아침에 비가 날이 흐린데 우산을 들고 갈까요, 안 갈까요? 이것을 치면 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 정도는. 그런데 백두산이 언제 폭발할까? 이것은 나옵니까, 안 나옵니까?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안 나옵니다. 전혀 오류가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AI 지금 인터넷이 거기까지 발전했지만, 그 지금 최근에 발전된 것은 GPT입니다. 그것도 답이 안 나옵니다. 오류가 많이 나옵니다. 미스코리아 누구, 외국에 뭐 그것을 쳤는데 고릴라가 나옵니다. 그런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2%까지 이 오류, 오류 확률이 10%, 오차 범위가 2%까지 줄었습니다. 2%까지 줄었는데 틀린 것은 완전히 틀려 버립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사는 그렇지 않습니다. 천사는 100%입니다. 내가 우산을 들고 와야 하는지, 그저 천사한테 물으면 오늘 하늘로 갈까요, 말까요? 뭐든지 답이 나옵니다. 내가 무슨 속옷을 뭘 입었지? 나옵니다. 다 됩니다. 모든 것을 쳐 주는데 AI 시대, 인공지능 시대에 도전할 수 없는 것, 없는 것이 무엇입니까? 도저히 알 수 없는 것, 영의 세계입니다. 인공지능한테 내가 속옷 팬티를 뭘 입었습니까?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압니다. 내가 몇 살까지 살까요? 나옵니다. 인공지능에서는 안 나옵니다. 인간의 모든 감각 기능이 나오는데 나올 수 있는데 미래가 끼어 있거나 영적인 것은 인공지능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 능력은, 이것은 능력도 아닙니다. 지금 저것 가지고는 살 수 없는 세상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 영적 성장이 우리는 급 성장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놓치고 축복을 넣어서 성령을 주었는데, 여러분들 초능력, 권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는 사람도 살아라. 오늘 영상 보여줄 것입니다. 이 시대를 내가 여러분들에게 미리 준 것입니다. 채 GPT, AI 이런 것은 옆에 올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 아들이 무슨 과를 갈까요? 이것을 치면 나올까요? 안 나옵니다. 채티에서 그 어린애를 어떻게 압니까? 안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학과를 갈까요? 이 대학을 갈까요? 뭘 전공할까요? 여기다 취업을 할까요, 말까요? 집 할까요, 말까요? 다 나옵니다. 이것은 생활 성입니다. 이 모든 것을 알 수 있는데, 네 미래도 훤히 다 알 수 있고, 지금 내가 오늘 움직이는 것도 이것 다 알 수 있는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AI가 필요 있습니까? 필요 없습니다. 오류가 10% 걸려들면 그냥 망하는 것입니다. 오류 2% 걸려들면 팍 속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마어마하게, 여러분들은 백궁 갈 때까지 최고의 영적 재산 가지고 있습니다. 자부심을 가지기 바랍니다. 허성정 우리 위원장이 올리는 것을 우리가 잠깐 보고 해야겠습니다. 나는 정치 이야기를 지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선거가 있지만 정치 이야기를 할 수가 없고, 영적인 이야기만 합니다. 정치 이야기가 좀 섞이면 재미가 있는데, 한 4월 10일까지만 참으면 됩니다.
재림 예수 허경영과 예수의 청년 시절
재림 예수 허경영과 예수의 청년 시절 2. 허성정, 대륙 백제 만주 신라의 저자. 재림 예수 허경영의 가르침이 점점 열기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2천 년 전 신인 허경영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이스라엘에 존재했을 당시, 그가 인도, 네팔, 티베트,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시리아, 그리스, 이집트 일대를 방문하며 구도의 길을 걸었던 얘기는 너무나 미진합니다. 재림 예수 허경영은 신약성경과 사복음서 통째로 빠져 있는 예수의 청년 시절 구도 과정을 속 시원하도록 상세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잠깐요, 이란, 이라크 있죠? 터키는 없구나. 읽으세요. 세계 기독교인들은 잃어버린 예수의 청년 시절 18년을 완전히 복원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다행하고 복된 일입니다. 재림 예수 허경영 본인의 증언과 리바이 도우리 목사가 하늘로부터 받은 성약 성서를 종합하면, 청년 예수는 12세부터 30세까지 인도권에서는 유태인 의성자혜원 아이란 호칭으로 살았습니다. 이집트권에서는 그리스도라는 호칭으로 세상에 존재하였습니다. 예수는 구도의 과정을 통하여 다양한 종교와 사상, 그리고 문화들을 경험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태교, 인도의 불교와 브라만교,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이집트의 밀교 등을 완전히 터득했습니다. 예수는 당시의 종교와 사상 체계를 완전히 소화한 세계 최고의 지식인이었습니다. 이집트의 형제단에서 그리스도란 칭호를 받은 예수는 알렉산드리아에서 개최된 세계의 일곱 성자들의 모임에 초대됩니다. 이 회의에는 세계 일곱 국가의 영적 지도자들이 참석하여 인류의 미래에 관한 대책을 강구하는 회의였습니다. 여기서 예수는 감독 동적 연설로 화답합니다. 이 모임에는 극동의 맹구, 인도의 비자파크, 페르시아의 카스파, 아시리아의 아시비나, 그리스의 아폴로, 이집트의 마세노, 이스라엘의 필로가 참석하였습니다. 예수는 이 회의의 주인공으로 참석한 후 18년간의 타국 생활을 마치고 드디어 고향인 이스라엘로 돌아왔습니다. 이윽고 예수는 공생활 준비를 위해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는 그곳에서 40일 동안 금식 기도를 합니다. 이때 예수는 세 번에 걸친 마귀의 시험을 거친 후 마침내 그리스도로서의 사역을 시작합니다. 예수가 최초의 복음 사역을 시작한 곳은 요르단 강의 세례자 요한이었습니다. 오늘은 지난 후에 걸쳐서 재림 예수 허경영과 예수의 청년 시절 속편을 보내기로 합니다. 최대한 압축하였습니다. 이 글은 윤청광의 ‘불경과 성경, 왜 그렇게 같을까?’라는 책을 참조하여 씁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윤청광 저서를 일독하기 바랍니다.
성경과 불경의 유사성: 진리의 보편성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
성경에서 예수는 “열매를 보면 그 나무를 알 수 있다. 가시나무에서 어찌 포도를 딸 것이며, 엉겅퀴에서 어찌 무화과를 따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불경에서 석가모니는 “선인 선과 악기 학과라. 선한 열매가 익은 뒤에는 복을 만난다. 악기 열매가 익은 뒤에는 죄를 받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성경과 불경이 공히 열매를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의 열매 이야기는 불경의 열매 이야기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나는 진리요, 내가 법이다
성경에서 예수는 “빌립보야, 그대가 나를 보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본 자”라고 하였습니다. 불경에서 석가모니는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본 사람이요, 나를 본 자는 곧 법을 본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석가모니는 “나는 법이니,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과 불경 모두 예수나 석가모니 자신이 법과 진리의 근본 자리라는 것을 공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불교의 성불을 대치한 말입니다.
행하는 것과 실천하는 것
성경에서 예수는 “나더러 주님이라 부른다고 해서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불경에서 석가모니는 “제아무리 경전을 많이 읽고 외워도 실천하지 않는 게으른 사람은 성인의 문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행하는 것과 불경에서 실천하는 것이 완성의 문으로 들어가는 조건이라고 똑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부모의 원수도 갚지 마라
성경에서 예수는 원수를 사랑하라, 나를 저주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마저 대어 주어라, 일곱 번씩 이른 번이라도 용서하라 하였습니다. 이것은 예수의 독창적 창작물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불경 곳곳에는 보다 더 큰 용서를 하라고 나옵니다. 불경에는 보살은 부모를 죽인 원수도 갚지 말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한들이 톱날로 나의 사지를 끊는다 할지라도 성을 낸다면 이것은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 예수의 철저한 사랑은 석가모니의 철저한 자비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999명의 죽인 살인마
성경에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과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양을 잃은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놔두고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선다는 얘기입니다. 불경에 999명의 피살자, 한 명의 살인자가 나옵니다. 불경에 999명의 죽인 살인마 아잉 사카가 마지막 한 명을 죽이려다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구원되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것은 성경이 불경의 살인마 아잉 사카 얘기를 길 잃은 한 마리의 어린 양으로 각색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성령 모독과 경전 비방
성경에는 사람의 아들을 거역하는 것은 용서를 받을 수 있어도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불경에 야광이 어떤 악한 사람이 부처님을 훼방하고 비방하고 그 죄는 오히려 가벼우나 법화경을 훼방하고 비방하면 그 죄는 매우 무겁다. 다른 곳에는 경전을 훼방하고 비방한 죄는 아비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하는 경고가 적혀 있습니다. 성경은 법화경의 내용을 알고 있고 그것을 기독교식으로 신학으로 승화해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뿌리는 자의 비유가 같다
성경에는 뿌리는 비유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밭에 씨를 뿌리러 갔다. 어떤 씨는 길바닥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돌밭에 떨어지고, 어떤 씨는 가시밭에 떨어졌다. 불경에 석가모니가 자기 자신을 씨 뿌리는 농부로 비유하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고 설법합니다. 어떤 것은 돌과 나무가 무성한 황무지에 떨어진 예를 들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과 불경이 똑같은 비유와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분석해 보면 예수 혹은 성경이 석가모니 혹은 불경에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다 풍성한 예화로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빛에 대한 비유가 같다
성경에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나는 빛을 증거하러 왔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등의 얘기가 수없이 나옵니다. 불경 역시 “그는 세상을 비추는 빛이다. 눈이 있는 자 빛을 보리라. 지혜의 밝은 빛이 해와 같이 비춘다.” 등 빛에 대한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성경과 불경이 모두 같은 카테고리인 빛을 비유로 해서 예수와 석가모니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마귀와 불경의 악마
성경에는 예수가 단식하며 기도할 때 마귀의 시험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불경에 석가모니가 단식하며 명상하는 동안 악마의 시련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에서 마귀가 굶주린 예수에게 떡을 빵으로 만들라고 한 것이나, 불경에서 굶주린 석가모니에게 바로의 걸식을 하라고 권하는 것은 같습니다. 예수는 사람이 빵으로만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으로 산다고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석가모니 역시 사람이 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광음천 기쁨을 양식으로 먹고 산다고 하며 유혹을 뿌리칩니다. 마귀가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마귀에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줄이라고 유혹합니다. 불경에서 악마는 석가모니에게 나라 전체를 직접 통치하라고 히말라야 산을 황금 산으로 바꾸라고 유혹합니다. 이에 대해 예수는 하느님을 섬기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다고 하면서 마귀의 유혹을 뿌리칩니다. 석가모니 역시 무력을 따르는 자는 무욕의 결박된 것이니 사람은 마땅히 그 결박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유혹에서 벗어납니다. 성경의 이야기와 불경의 이야기가 구성과 전개 그리고 교훈까지 똑같습니다. 이러고도 성경이 불경을 베끼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배신자와 도망친 제자들
성경에는 예수는 자신의 12두 제자 중 유다가 배신할 것을 알았는데, 불경에서 석가모니도 자신의 제자 중 데바 달타가 자기를 배신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배반자 유다가 칼과 몽둥이를 들고 예수를 붙잡아 가자 제자들이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불경에서 석가모니도 코끼리의 위해를 당했을 때 500명의 제자들이 모두 도망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는 자기의 제자들이 칼을 쓰려고 하자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고 경고한 것처럼, 석가모니도 데바 달타 향해 악은 악으로 망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불경을 참고로 하여 이야기의 기초를 설계하고 교훈의 내용을 완성해 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음식
성경에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인 기적이 나옵니다. 불경의 유마일 경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르침을 듣기 위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을 앉혀 놓고 없던 음식을 순식간에 만들어 그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 남을 수 있도록 하는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몰려든 군중, 먹을 것이 없는 상황, 기적을 일으키는 예수와 유마힐, 배불리 먹는 과정, 먹고도 남는 부스의 기적 등이 하나의 공식처럼 똑같습니다. 불경에서 음식의 기적은 본생경 A 길상 초품, Qu 바수 아픔에도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성경이 불경을 참고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
성경에는 예수가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불경의 방등경이나 법사경문에는 재물을 다 버리고 법의 상속자가 되라고 한 것은 똑같습니다. 예수는 부자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고, 석가모니는 재물에 집착하면 열반에 들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불경의 예화가 풍성하고 역사가 오래된 것을 보면 역시 성경이 불경을 참고했을 것입니다.
간음한 여자와 도망친 창녀
성경에는 간음한 여자를 잡아온 사람들에게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여자에게 돌을 치라고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양심의 가책을 받아 하나 둘 순서대로 그 자리를 도망쳤습니다. 불경에 석가모니가 물건을 훔쳐 도망친 창녀를 잡으려고 찾아다니던 젊은이들에게 죄지은 여자를 찾는 것과 그대들 자신을 찾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급하냐 힐문했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더 급하다고 대답하고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과 불경의 소재와 내용이 거의 유사합니다.
남의 잘못과 자기 잘못
성경에는 예수가 형제의 눈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한다고 한 말이 있습니다. 불경에 남의 잘못은 드러나게 보지만 자기 잘못은 도박꾼이 불리한 주사위 눈을 숨기듯 한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남을 비판하지 말라. 그러면 너희도 비판받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불경에 남 듣기 싫은 말을 하지 말라. 그러면 남도 너에게 싫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성경의 산상수훈은 불경의 법구경을 대거 참고한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의 기적과 석가의 신통술
성경에는 예수가 일으키는 기적들이 수없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장님이 눈을 뜨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중풍병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능력은 예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경의 본생경에 거의 다 들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수많은 병자들을 고쳤으며, 전염병을 물리치고 홍수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석가모니의 제자들은 아주 거리도 잠깐 사이에 왔다 갔다 하는 신통술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불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 성경에도 수없이 반복 기록되어 있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다
성경에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불경의 여러 경전에도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와 약이 필요하지 않지만 병든 자에게는 의사와 약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예수가 자신을 의사에 비유한 것은 석가모니가 자신을 의사에 비유한 것과 일치합니다.
하느님 나라와 마음속에 부처
성경에는 하느님 나라는 여기에 있다 혹은 저기에 있다 말할 수 없다.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고 하였습니다. 불경에 극락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마음 속에 부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이나 불경에서 내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은 같은 말입니다.
진정한 보물
성경에는 너희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였습니다. 불경에 마음속에 지녀야 할 참다운 보물은 자비, 경건, 절제, 침착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하늘에 쌓아둔 보물은 좀이나 녹이 쓸지 않으며, 도적질도 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불경에 “다른 사람이 가져갈 수도 없고 도적이 훔쳐갈 수도 없는 보물을 가지고 떠나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와 장소가 엄청나게 달랐음에도 그 가르침은 같습니다. 이것 역시 불경의 가르침을 성경적으로 다듬은 것으로 보입니다.
하늘이 내리는 평등한 사랑
성경에는 하느님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에게나 해를 비춰 주시고, 의로운 자나 불리한 자에게도 비를 내려 주신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불경의 법화경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석가모니는 법화경에서 어떤 차별도 없는 비를 골고루 내리듯이 모든 중생들에게 가르침의 비를 내린다고 하였습니다. 성경의 문장은 불경의 법화경 문장을 그 핵심 부분만 잘 간추려 다이제스트 해 놓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가톨릭의 묵주와 불교의 염주
열심한 가톨릭 신자들이나 가톨릭의 수도사들은 손이나 목에 묵주를 걸고 다닙니다. 불교의 승려들도 손이나 목에 염주를 달고 다닙니다. 가톨릭의 묵주나 불교의 염주는 형태도 비슷할 뿐 아니라, 묵주 알과 염주 알이 모두 108개로 되어 있음도 같습니다. 가톨릭 수도원의 규칙이나 생활 방식은 불교의 절간 분위기와 너무 유사합니다. 이것 역시 가톨릭이 불교를 차용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상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성경에는 불경의 내용이 상당히 들어 있습니다. 성경의 편지보다 불경의 편지가 다 200년이나 뒤지는 것은 객관적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불경을 참고로 편찬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 그것은 어떠한 흠이나 허물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문제는 되는 것은 기독교가 불경의 내용을 일부 차용한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기독교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불교의 흔적을 여러 가지 수단으로 지웠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불교의 흔적이 있는 복음서들은 정경 목록에서 모두 제외시켰습니다. 성경에서 차용하고 있는 불교 부분의 인용 사실은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진실입니다. 현재 외경 내지 위경으로 전해지는 도마 복음서나 베드로 복음서 등에는 불교 냄새가 짙게 배어 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 복음서들은 기독교의 정경 목록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워버린 내용은 예수의 청년 시절 일대기와 그의 치열한 구도 과정입니다. 그것을 성경에서 제외시켜 버렸으니 오늘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절름발이가 되어 있고, 역사적 예수의 실제 모습은 올바르게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뒤틀린 세상입니다. 진리를 밝히는 성경마저 뒤틀려 있으니 세상이 어찌 온전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은 신인 허경영의 말씀대로 말세의 징후를 곳곳에서 보이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는 재림 예수 허경영 신인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신인 허경영은 자신이 재림 예수 당사자였습니다. 그는 2천년 전 이스라엘에서 직접 살았던 사람이고, 예수 시절 모든 사건의 현장에서 주인공을 했던 사람입니다. 2천년 전 예수가 지구에 와서 가르쳤던 것은 절대자의 존재, 절대자에 대한 믿음, 절대자의 인간 사랑, 고통을 통한 인간 성숙,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등가성, 지상 삶의 상대성과 유한성, 본향이 하늘나라의 시민권 획득을 목표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신인 허경영의 말대로 이대아 본향 세계의 완성을 목표로 우리 삶의 방향을 잡아야 합니다. 바로 그 목적 때문에 예수는 인간의 몸을 직접 입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갔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의 신비를 인간 세상에 완전하게 계시하고 하늘나라로 귀환하였습니다. 끝으로 필자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기독교를 패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기독교가 불교의 아류 종교라거나 아바타 종교라는 인상을 주기 위해서 쓰는 글도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 자체로서 자기 완결성을 가진 종교입니다. 신이 직접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고 있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불교나 유교는 신과 관련이 없는 종교입니다. 불교나 유교에 신이 없습니다. 그래서 불교나 유교는 그냥 철학일 뿐입니다. 인간 삶의 질을 확장시키는 사변 종교일 뿐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종교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속에서 신을 그리워하며 만들어낸 인간의 종교일 뿐입니다. 2천년 전에 예수는 이제 허경영의 이름으로 경기도 양주시 하늘궁에 다시 와 있습니다. 이른바 예수의 재림입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우리 모두에게는 살아 있는 신의 말씀입니다. 우리 생애에서 창조주의 화신을 우리가 만났다는 것은 기적 같은 일입니다. 우리는 매일 그분으로 난리를 치고 매 순간 까무라칩니다. 우리 생애에서 백천만 겁난조 신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애에서 잃었던 아버지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신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의심을 하는 사람들은 어찌 된 영문입니까? 도대체 신인 허경영에 대해 안티를 하는 사람들은 또 무슨 대장입니까? 시대의 징표가 그렇게도 읽혀지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우리 생애에서 삼위일체 조주를 볼 수 있는 눈은 행복합니다. 우리 생애에서 삼위일체 재림 예수 말씀을 듣는 귀는 행복합니다. 감춰진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입니다. 마태오 10장 26절, 2024년 3월 22일 국향.
갈릴리 지형과 신의 음성
많이 모이면, 최고 많이 모이면 만 명이 모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내가 있을 때. 다섯 병이 이어 했을 때는 약 만 명이 모였습니다. 실제 만 명이 모였는데 스피커가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지금도 이것 없으면 잘 안 들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 명도 내 말이 안 들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소리를 질렀을까요? 조용히 이야기하는데도 다 들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들이 그 당시 이스라엘에 안 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갈릴리. 내가 이야기한 갈릴리는 우리 한반도 땅보다 400m 낮습니다. 바다보다 400m 낮은 곳입니다. 갈릴리에서 강의를 많이 했습니다. 육지보다 400m 낮습니다. 갈릴리 호수가. 이스라엘의 지형이 400m 낮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헬몬산 북쪽에 있는 헬몬산은 2800m가 넘습니다. 281m 뭐 이렇게 높습니다. 백두산보다 높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갈릴리 언덕에서 이렇게 강의를 할 때, 이 북쪽에 낮에는 여기서 바람이 이리로 갑니다. 5시가 되면 이 바람이 여기가 시대가 높을 것 아니겠습니까? 400m 높으니까 여기는 미치 아아, 이렇게 내려옵니다. 그 지형이 이렇게 생겼다는 말입니다. 갈릴리 뒤에 있는 그 산도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되냐면 낮에는 오전에는 이리로 바람이 붑니다. 오후에는 산에서 찬바람이 내려옵니다. 갈릴리 쪽으로. 그러면 내가 여기서 꼭 강의할 때는 오후입니다. 여기서 찬바람이 내려오면서 내가 여기서 말을 할 때는 이 말을 하면 말이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원형 돔과 비슷하게 들립니다. 이스라엘 지형이 원형 돔의 지형입니다. 앞에서 스피커 둔 사람이 밑에 원형 바깥 원형을 향해서 떠들면 원형 쪽이 말이 다 들립니다. 그래서 내가 헬몬 산을 향해서 이 시산을 시온산 쪽으로 하면 시온산 쪽에서 말이 내려와 울립니다. 그래 가지고 만 명이 옆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여러분, 로마 경기장 같은 데 가서 앞에서 원형 극장 가서 떠들면 말이 마이크 없이 다 들립니다. 로마 시대 때 마이크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원형 경기장에 모인 사람이 2만 명, 3만 명입니다. 말이 옆에서 속삭이는 것처럼 들립니다. 마이크를 쓰기 좋게 유대 지형이 무엇 같이 생겼다고요? 갈릴리가 육지. 예루살렘과 갈릴리 때가 지형이 바다보다 400m 낮습니다. 기가 막히죠. 엄청 지형이 낮은 곳입니다. 그러니까 산들이 있으면 소리가 갔다가 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산을 등지게 하면 만 명이 안 들고, 5천 명이 안 들고, 말이 잘 들립니다. 앰프가 필요 있습니까? 그래서 노래를 부르면 노래가 막 왕왕 울립니다. 그냥 저만 그런 것을 이용했기 때문에 이것이 병을 가능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했다는 말입니다. 거기 있었던 사람이 나입니다. 내가 축복 줄 때 어마어마한 빛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그 사람 받은 사람은 계속 여러분이 걸어 다녀도 하늘에서 빛이 오고 있습니다. 그 영상 내 보여줄 것입니다. 어떤 큰 교회 목사님이 왔는데, 자기가 이 사진을 보고 기절했다는 것입니다. 자기 축복 주려고 내가 손이 닿는 순간에 번쩍. 축복 들어가라 안 해도 됩니다. 손이 머리에 닿는 순간에 번개 불이 번쩍. 그런데 그것이 이 안이 안 보일 정도로 하얘져 버립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 눈에는 안 보입니다. 내가 만약에 여기 누구 나와서 손을 딱 대고 축복을 주지 않습니까? 데리고 주기 전에 손만 딱 대면 번쩍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이리 넣어 버립니다. 여기 우리 사, 우리 대천사지. 요번에 여기를 이렇게 됐다. 여러분 눈에 안 보이죠? 이것이 번개 불이 번쩍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들어가는데 축복을 주면 이것이 안 나옵니다. 계속 불이 안에 들어 있습니다. 죽을 때까지. 그러니까 이 사람이 막 권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들어가는데 그것이 사진으로 포착되었습니다. 한 번 앉아서 봐 보십시오. 좀 앉으십시오. 내가 설명해 줄 것입니다. 영상을 한 번 띄어 보십시오. 그 목사님이 며칠 전에 왔습니다. 얼굴 가립니다. 축복 주세요. 번쩍하지 않습니까? 다시 해 보십시오. 축복 주세요. 다시 스톱 해 보십시오. 내 손이 그 사람한테 가는 사이의 번쩍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그리고 축복 주세요 하는 말은 딴 사람이 한 말이고 내가 먼저 준 것입니다. 잘 보십시오. 이것이 환합니까, 안 합니까? 이 사람 보입니까? 내 보입니까? 이 빛이 내리 꽂는 것 보입니까, 안 보입니까? 보입니다. 보이죠? 이것이 그냥 비하고 같습니까? 아닙니다. 다르죠. 이것이 사실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빛은 없는 빛입니다. 어마어마한 이것이 암흑 물질이 내가 백궁 갈 때 번쩍하지 않습니까? 그것과 똑같습니다. 이것은 지구의 에너지가 아닙니다. 그러면 이 사람 몸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것이 영원히 권력 행사. 집에 가보면 몇 자리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학교, 자기가 다니는 호텔에서 누구 자는데 자기 직장 다 이렇게 되어 버립니다. 하여 버립니다. 하여. 이 빛이 암흑 에너지. 그 암흑 에너지가 찍힌 것입니다. 또 한 번 한 장 더 돌려 보십시오. 말고 또 돌려 보십시오. 그 목사 서 있는 것입니다. 이 목사 서 있죠. 무슨 빛이 보이죠? 이것이 여러분한테 오는 것입니다. 이 사람이 걸어 다니면 이런 빛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것이 축복받은 사람들이 좀 특이하지 않습니까? 안 받은 사람은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그럼 이 사람이 무엇입니까? 능력을 행하는 것입니다. 광대라 뭐 왜 우주 에너지가 통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여. 비행접시가 다 올라갈 때 통로가 탁 나타나지 않습니까? 그것이 여러분한테 축복으로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작게, 이 사람이 축복받은 목사님이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슨 빛이 내려와 있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다닙니다. 따라다녀 봤죠? 그러니까 일반인이 아마 자기 어디 행사 놀러 가서 찍은 건데, 축복받은 이후에만 이런 현상이 계속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또 뭐 간증할 것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아까 저분이 전화가 또 왔습니다. 이것 말고 또 간증할 것이 있다고 했습니다. 어, 나한테 전화 왔는데 이것 말고 또 간증할 것이 여러 가지 있다고. 자기가 너무너무 놀랍다고. 아니, 그러니까 이 사람이 나한테 간증 받을 때, 그것이 자기 카메라에 찍혀 버렸습니다. 자기 아까 카메라 봐 보십시오. 이것이 찍혀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서치라이트를 켜도 이렇게 안 됩니다. 이 뭐 빛이 위에서 내려오는 것 맞지 않습니까? 팍 내려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내가 고쳐 준다고 뭐 썩 이러고 이렇게 하면 그냥 되는 줄 압니까? 빛이 그냥 우리 눈에는 아무 에너지가 이렇게 찍기가 어렵습니다. 이것이 런 촬영이 우연이 된 것입니다. 내 얼굴도 못 알아보겠죠? 이 사람 얼굴도 못 알아봅니다. 이것이 자기, 이 사람이 이것을 보고 기절한 것입니다. 찍히는 과정 한 번 보십시오. 원인지 다시. 아니, 이것 말고 첫 스타트, 시작해 보십시오. 내 손이 그 사람 앞으로 가는 세 되어 버리지 않습니까? 축복 주세요. 무슨 말인지 알죠? 그냥 번쩍 하는데, 이것이 원래 촬영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촬영이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사람이 그 사진을 가지고 와서 정말 이상하다고. 자기가 이것을 보고 너무너무 축복이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봤죠? 그리고 자기가 왜 자기가 어디 가서 서 있으면 빛이 위에서 내려오나, 이것입니다. 그럼 이것이 무엇입니까? 이것이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진을 자기가 우리한테 보냈습니다. 내가 뭐 사진 압니까? 이것 모르죠. 교회 목사로서 너무너무 놀랍다고. 그래서 이분이 아마 또 뭐 나한테 이야기할 것이 있다는데, 오늘 강의 때문에 내가 이야기 길게 못 했는데, 간증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너무 기가 막힌데, 목사님이. 그래서 우리 얼굴은 가려 드렸습니다. 이분이 분이십니다. 빛이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여러분들은 축복받은 것이 왜 내가 광채 대로 하면 사람이 살아납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우주의 암흑 에너지 속에 이미 여러분은 백궁에 비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비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왜 여러분은 백궁 비자를 하늘에서 결제를 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축복을 받아 가지고 성령이 성령 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그냥 살아나라. 그러면 광채 되라. 그러면 살아납니다. 뭐 그렇게 말하도 급하면 그냥 일어나라. 뭐 깨나라. 뭐 말은 마음대로 해도 됩니다. 되든 안 되든. 되죠? 여기 우리 초, 오늘 저 뭐, 어제 언제 대천사 됐죠? 일주일 전에 받았죠. 일주일 전에 받았죠? 나와 보십시오. 이분은 일주일 전에 받아 나니까 좀 약간. 일주일 됐습니까, 대천사 된지? 굉장히 몸이 호리호리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자, 이것 잡아 보십시오. 마음속으로 해 보십시오. 광채 되라. 광채 나가라. 자, 해 보십시오. 마음속으로 했습니다. 손 힘 주십시오. 이것 광채 되려 한 것입니다. 맞습니까? 광채 나가라도 한 번 해 봐야겠죠. 해 보십시오. 했습니다. 나가 버리지 않습니까? 광채가. 그러면 죽는 사람입니다. 살아나라 하면 그것 해 보십시오. 했습니다. 살아난 것입니다. 죽어라 해 보십시오. 했습니다. 죽어 버리죠. 이 물질도 말을 알아듣습니다. 여기서 말을 이것이 암흑 에너지 체입니다. 이 자체가 암흑 에너지 축복 체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 마음만 먹으면 물질에도 전달되고 사람도 전달됩니다. 이 물질에 전달되는 것 봤습니까? 무슨 전기 코드가 있습니까? 전달. 왜 그렇게 못생겼냐? 마음속으로 했습니다. 이쁘다. 마음속으로. 금방 못생겼는데도 서운해? 생각 안 합니다. 얘는. 너 미워 죽겠다 했습니다. 그냥 힘 빼버립니다. 너 사랑해. 힘 주죠. 그러니까 이런 목적도 사랑한다 그러면 에너지를 주고, 밉다 그러면 힘을 다 빼버립니다. 이것이 말로 했습니까? 아니요. 마음으로 했죠. 무엇이 에너지가 전달될까요? 바로 뭐, 이것이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것이 되는 것입니다. 맞죠? 그럼 이제 말로 해 보십시오. 너 못생겼다. 너 못생겼네. 너 잘생겼다. 금방 못생겼다 그러다 잘생겼다 그러면 얘가 삐질 텐데. 또 에너지를 줍니다. 멍청하게. 못생겼다, 겼다. 금방 또 빼버립니다. 잘생겼다. 그러니까 살아라. 말로 해 보십시오. 살아라, 살아나라, 살아나라. 살아났죠. 죽어라, 죽어라. 말로 하나, 마음을 하나. 전달되죠. 이것은 십원 세계입니다. 인간 세계에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얘가 이 사람 마음속에 들어간 것을 다 압니다. 다 읽습니다. 근데 석가모니나 그 당시 예수 때는 이것이 안 되는 것입니다. 신의 세계는 이것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여러분이 이해할 정도의 내만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약에 더 이상 것을 보여주면 여러분 전부 정신병이 들어버립니다. 정말입니다. 무슨 말인지 알죠? 만약에 기산 저수지 옆에 우리 그 커피 만들어 놨죠. 내가 나중에 물리로 걸어가면 다 기절해 가지고 못 일어납니다. 그 호숫가를 내가 많이 준비해 놨습니다. 별의별 다 보게 됩니다. 자, 이것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렇게 초 현상을 내가 단계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과학자가 이것을 잡고 마음속으로 너 내 사랑하는 사람 닮았다. 마음 그렇게 먹어 보십시오. 그러면 이 사람한테 무한한 에너지를 넣어줍니다. 너 내가 미워하는 사람을 닮았다 그러면 그냥 이 사람 에너지 다 빼버릴 힘이 있습니다. 없어지죠. 말로 하나 마음으로 먹으나 눈치가 단입니다. 이것이 다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럼 얘한테 뭐 하나 물어보십시오. 너 말이야, 말을 하십시오. 너 말이야. 내가 좀 이쁘다고 생각하니? 이쁘다고 생각한답니다. 너 내가, 내가 우리 남편보다 먼저 죽는다고 생각하니? 더 오래 사는 남편이 들으면 서운하겠죠. 이것이 진실입니다. 그럼 넌 내가 남편보다 오래 사니? 물어보십시오. 넌 내가 남편보다 오래 사니? 그렇답니다. 이제 이해가죠? 그러니까 얘는 궁금한 것은 다 말해줍니다. 너 내가 흰 팬티 입었니? 흰 팬티 입었어? 밝은 색 팬티를 입었나? 무슨 색을 입었어? 맞아요, 흰 거 맞습니다. 흰 거 맞습니다. 그러니까 아니, 얘가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내 오돌이가 까만 것을 입었니? 아니랍니다. 내 오돌이가 흰 것을 입었니? 어머, 그렇답니다. 내가 명찰을 안 달았냐? 내가 명찰을 안 달았네. 아이, 달았다. 이것 명찰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대천사 명찰 있지 않습니까? 뭐, 얘는 말이야, 모르는 것이 한 개도 없습니다. 그럼 뭐, 얘는 압니까? 얘 장법은? 너 내가 목걸이를 했니? 어머, 했답니다. 내 목걸이가 까만 색이니? 아니랍니다. 내 목걸이가 색이니? 내 목걸이가 금색이 검색이? 뭐, 속옷 팬티만 아는 것이 아닙니다. 다 압니다. 머리카락 숫자, 뭐 모든 배꼽,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습니다. 다 알고 있겠죠. 그러니까 이 영적인 세계는 이런 것 아무 것을 잡아도 얘를 잡아도 비밀이 다 누설되는 것입니다. 다 나옵니다. 그런데 나는 잡을 필요가 없습니다. 놓아도 됩니다. 하도 얘하고 말이 통해 다 그러니까 여기서 미국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도 말이 통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은 가서 잡아야 합니다. 이렇게 잡아야 합니다. 자, 나는 이것 안 잡아서 본인이 들고 있습니다. 미워, 사랑해. 맞습니까, 안 맞습니까? 나는 잡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놓아도 똑같습니다. 여기도 놓아도. 자, 미워 잡아 보십시오. 미워해서 잡아 보십시오. 손. 그것은 힘 없죠. 여기다 놓고 이것 이제 미국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것 미국이라 생각하십시오. 자, 사랑해. 알러지나. 그러니까 이것을 말로 안 해도 다 되죠. 그러니까 나는 잡을 필요가 없는데 여러분은 잡아야 합니다. 이렇게 격, 격을 권능을 낮춰 놓은 것입니다. 여러분 피어가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것을 넣어 준 것입니다. 몸에 달고 있는 명찰이 이런 것 하나, 물건 하나가 예사로 보일까요? 아니, 전부 소통이 되는 물질입니다, 이것. 그럼 아침에 일어나면 여러분이 이 집안에서, 여러분 가정집에서도 사랑해 이래야 합니다. 사랑해. 그런데 여러분은 벽을 잡아야 합니다. 나는 벽을 잡을 필요 있습니까? 없습니다. 사랑해 이러면 전부 내보고 웃고 난리입니다. 좋아 가지고 신뢰에서 막 에너지가 확 박혀 버립니다. 밤에 자고 나오면 여기가 조용하지 않습니까? 나는 저서 나오자마자 사랑해 싹 다 그냥 나한테 막 에너지를 보내고 난리 구입니다, 그냥. 이제 알겠죠? 그러니까 우리가 인간에게는 물질에든 갈시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한테 안 하는 사람을 멀리 해버리면 됩니다. 그것을 귀로 들으면 어떻게 됩니까? 우리 몸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얘한테 나쁜 말 자꾸 해 보십시오. 그런 전화를 받으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레벨이 확 떨어져 버립니다. 받은 것만으로도 레벨이 떨어집니다. 뼈 빠지게 올라온 레벨이 없어지니까 우리가 안티도 사랑해야겠지만 그들의 전화를 귀로 들으면 레벨이 다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전화번호가 좀 이상하다면 딱 길 때는 딱 끊어버리고, 아, 이거 잘못됐구나 빨리 끊고 나한테 전화 안 해도 빨리 죄송합니다. 다음에 왔을 때 나한테 죄송하다 그리고 레벨 원상 복구해 주세요. 됩니까? 그럼 내가 레벨을 다시 원상 복구해 줍니다. 레벨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자, 번 안티를 사랑해요. 그, 그 이것이 가짜인데도 가짜도 은 가짜 볼까요? 아니요, 진짜 봅니다. 레벨, 레벨 다 없어졌죠. 그러니까 여러분이 안티 전화 받고 시시하고 있으면 나한테 레벨을 넣어 달라고 해야지. 레벨, 내가 원상 복구되라. 자, 레벨, 레벨 이제 원상 복구됐다 말입니다. 그 이것 안 하고 어머 안티 신인님한테 전화 미안하고 그냥 그만둬 버려. 레벨 없습니다. 순식간에 나가버립니다. 다 나갔죠? 다 나갔는데 내가 다시 원상 복구해 줍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 제가 레벨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좀 더 이래 이래는 것입니다. 그럼 원상 복구되라. 이러면 원상 복구되는 것입니다. 그때 가지고 있는 레벨이 다 복구됩니다. 그런데 안 말도 안 하고 있으면 레벨이 들어가지도 않고, 얘 있는 것도 없어져 버렸고. 무 레벨에 무 레벨로 백궁을 가게 되는 백궁 가지. 그럼 좋습니까? 안 안 좋죠.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있으면 빨리 나한테. 내가 여러분 레벨을 매일 확인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여기 온 사람들은 다시 레벨이 전부 원상 복구 내라. 여기 온 사람들은 안티 전화 받은 기억이 있더라도 레벨은 전부 원상 복구 되라. 여러분들은 이제 나한테 전화할 필요 없습니다. 나한테 뭐 레벨 복구 주세요 이럴 필요 없습니다. 다 복구해 주었습니다. 그러면 다음에 오는 사람들은 그런 사람이 있으면 나한테 이야기를 하십시오. 그 복구해 버려야 합니다. 요번에 대천사 되신 분입니다. 재밌죠? 재밌습니다. 없습니다. 많이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지켜야 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깊은 깨우침을 주신 신희님께 큰 박수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신희님 감사합니다. 이제 신희님께서 전체 에너지를 여러분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