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새해, 신인(神人)을 알현하는 축복
갑진년 새해, 구정 설날 연휴에 신인(神人)을 알현하러 성산성지 우명지 하늘궁에 오신 것을 환영하고 축하드립니다. 모든 물질에 허경영을 쓰면 썩지 않아, 우리는 1년 전부터 허경영을 쓴 1년 넘은 우유를 먹고 건강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그토록 찾던 통일장입니다. 오늘 또 우주 공간을 지배하는 신인께서 우리와의 소통을 위해 제341회 한우구 행사를 여십니다. 유튜브를 보고 계신 모든 분들께서도 힘찬 박수로 알현해 주십시오. 반갑습니다. 앞으로 대천사가 될 분들이 이렇게 천만 명이나 하늘궁에 모여 오는 것은 기적이며, 대단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정말 최고의 행운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여러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그 시험에 합격한 것입니다. 교회나 절에 다니는 사람이 특별한 대우를 받아 선택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이 특별해서 구원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직 구원된 사람은 없습니다. 하늘궁에 왔던 사람 중에 구원된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물질적 욕망을 넘어선 진리
전도서 3장 11절을 찾아 읽어보십시오.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과 신인이 좋아하는 것은 다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노력하여 복을 지어 신인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등불에 기름을 채우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80억 인구가 그러고 있지만, 내가 왔음에도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전도서 3장 11절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물질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물질이 당장 필요하기 때문에 거기에 끌려다니는 것이지, 물질은 사모의 대상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실수와 3차 세계대전의 예고
아브라함이 이삭을 사모한 것이 지금 3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단지 자기 자식 하나를 너무 사모한 것입니다. 영적인 것을 사모해야지, 왜 육적인 것을 사모합니까? 그래서 첫째 아들 이스마엘을 내쫓고, 그 첫째 아들을 낳아준 아내 하갈도 내쫓아버립니다. 광야에 나가면 들짐승도 있고 무서운데, 그 여자가 아이를 데리고 나가 죽든 말든 내쫓아버리고 이삭에게 빠져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3차 세계대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아랍인들이 세계인들이 쓰고 있는 기름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그 기름을 등불에 넣어야 내가 오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그들은 기름을 장악하고 등불을 켜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기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에는 등불이 없어 나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쪽에서 온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내가 그쪽에서 태어나겠습니까?
신인(神人)의 강림과 한반도의 지맥
어제 내가 그림을 그렸듯이, 지중해 바다 옆에 이스라엘이 있습니다.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요단강을 거쳐 갈릴리 호수로 흐릅니다. 갈릴리 호수 옆에는 갈릴리가 있고,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이 있습니다. 2000년 전에 나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습니다. 나사렛에서 성장하고 갈릴리 호수에서 활동을 많이 했습니다. 이 세 군데를 왔다 갔다 한 것입니다. 내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 변두리 중랑교, 그곳이 2000년 전 나의 베들레헴입니다. 수도 옆 변두리, 4대 성 밖, 동대문 밖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성 밖입니다. 거기서 내가 2000년 전에 태어나 나사렛에 가서 살고, 갈릴리 호수에서 활동한 것과 같습니다. 내가 진주에 가서 자란 것과 똑같습니다. 서울에서 나가 시골로 가서 자란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설정은 비슷합니다. 나의 성장 과정이 이렇습니다. 마치 갈릴리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베들레헴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사렛에 있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갈 때는 베들레헴에 가서 나사로 집에서 머물렀습니다. 이렇게 행동 반경이 뻔합니다.
사해와 갈릴리: 물질적 욕망과 영적 풍요의 비유
헬몬산에서 내려오는 눈 녹은 물은 요단강을 거쳐 갈릴리 호수로 흐릅니다. 그 밑에는 사해가 있습니다. 사해는 갈릴리 바다와 달리 죽은 바다입니다. 갈릴리에서 내려오는 물을 받아들이지만, 내보내는 곳이 없습니다. 나가는 강물이 없으니 사해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물질을 사모하면 사해가 되는 것입니다. 물이 들어오면 내보내는 갈릴리처럼 항상 맑을 수 있습니다. 짠물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을 모아두고 내보내지 않으면 짠돌이가 되는 것입니다. 이 호수가 소금 호수가 되는 것입니다. 물을 내보내면 아무리 소금이라도 빠져나가고 새로운 얼음 녹은 물이 들어와 항상 소금물이 될 수 없습니다. 중동에 사해와 같은 바다가 여러 곳 있는데, 모두 나가는 곳이 없어 고여 있습니다. 아무리 소금물이라도 비가 억수같이 오면 강물이 나가는 곳이 있어야 소금물이 빠져나가고 다시 민물로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몇 천 년간 나가는 곳이 없으니 그것이 욕심쟁이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처럼 되는 것입니다. 물질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인간 차별의 비극과 유대교의 과오
인간을 첩이든 하인이든 종이든 그 인간 자체의 가치를 차별화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교가 세계의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은 인간 계급을 넣어 너무 차별했기 때문입니다. “저것은 이슬람의 후손들이야, 우리는 선민이야, 저것은 인간 말종들이야” 이렇게 차별하니 유대교가 히틀러에게 600만 명이 죽고도 지금도 정신을 못 차린 것입니다. 항상 영혼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 돈을 쥐고 있다고 해결될까요? 내가 와서 불벼락을 내리러 와 있습니다. 내가 2000년 전에 이곳을 다시 가고 싶겠습니까? 이쪽은 지중해에 있고, 우리는 이쪽에 바다가 있습니다. 백두산은 똑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거기서 내려오는 물입니다. 이스라엘과 내가 있는 곳, 내가 반대편에 와 있습니다. 땅 끝 극동의 마지막, 아시아의 끝입니다. 이쪽 건너는 유럽입니다. 이스라엘이 당시 내가 일로 왔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일로 온 것은 이것입니다. 아시아를 볼 때, 여기 유럽이 있고, 여기 한반도 지맥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 메디마 지맥이 남한입니다. 북한은 아무리 해봐야 모이는 것이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충청도 사람들이 대통령이 된 일이 그렇게 많이 있습니까? 만들어내줍니다. 지맥이 움직이니까. 여기가 힘을 쓸 수 없는 풍수적인 곳입니다. 태백산맥이 끝나는 곳이 경상도이고, 전라도입니다. 경상도, 전라도는 힘을 쓰지만, 중간에 충청도는 삼거리를 제공해 줄 뿐, 지맥이 있는 지역의 끝머리는 아닙니다. 그래도 충청도도 남한이니까 지맥에는 들어갑니다. 휴전선이 지맥이 아닙니다. 끝머리가 남한입니다. 남한의 힘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지맥을 가지고 물질을 사모하는 데 쓰면 3차 대전이 올 것입니다. 물질은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물질을 사모하면 스트레스받아 살 수 없습니다.
영혼을 사모하는 삶: 물질적 집착을 버리고 백궁으로
전도서 3장 11절에 보면 영혼을 사모하게 해 놓았다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수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영혼을 사모해야 합니다. 지구를 다 주어도 여러분은 불만일 것입니다. 세계 여자를 한 사람에게 다 주어도 불만일 것입니다. 한 사람에게 세계 남자를 한 여자에게 다 주어도 불만일 것입니다. 물질을 사모하게 해 놓지 않았는데, 여러분이 물질을 사모하는 쪽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세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본처에게서 애 하나 낳게 해달라고 해서 낳게 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안 주려다가 막판에 100살이 되었을 때 100살 기념으로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이제 철이 들었거니 했는데, 100살이 되었는데도 맏아들 이스마엘을 이집트인이라고 내쫓아버립니다. 인종차별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은 영혼을 사모하는 자가 아닙니다. 이삭을 너무 분재로 만들었습니다. 분재는 큰 나무가 되지 못하고 사람을 병신 만드는 것입니다. 마마보이를 만드는 것입니다. 옆에 이스마엘이 있고 하갈이 있을 때 이삭이 거목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형과 같이 뛰어다니고 형형해야 하는데, 혼자 가만히 앉아서 자기 또래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아이를 키우면 안 됩니다. 종의 자식이라 자기 피인데, 이집트인이 낳았다고 해서 내보냅니다. 그래서 지금 이집트인에게 당하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가서 종살이하고 몇백 년 종살이하며 당합니다. 육을 사모하는 자는 영혼을 사모하는 데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설날의 교훈: 육체적 집착에서 벗어나 영혼으로
오늘이 설날인데, 여러분이 지금까지 육을 사모하다가 정신병에 걸린 사람이 많습니다. 돈 떼였다, 생활이 어렵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고, 그 길로 들어서서 행복해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꼭 가져야 할 것은 십자가를 그리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세 개 있습니다. 그 밑에 돈이 있습니다. 돈, 조개 패자. 조개가 옛날에 돈이었습니다. 재물할 때 이 글자를 씁니다. 이 돈 위에 십자가 세 개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음 심자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돈을 생각하는 마음은 밑에 있고, 십자가 삼위일체를 생각하는 마음은 위에 있습니다. 삼위일체입니다. 십자가 하나, 둘, 세 개. 인간은 대분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분심, 대의심, 대발심: 영혼을 향한 세 가지 마음
이스마엘을 버리는 것을 보았으면 하갈이 “여보, 왜 이집트인이라고 해서 이스마엘을 내쫓아요? 안 됩니다. 우리 이삭이 제대로 인간이 되려면 형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버리자고 하니 하나님까지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당장 이삭을 데려와서 칼로 포를 떠서 불에 태워서 나에게 올려보내라”고 한 것입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이 하갈과 이스마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 맛을 보이는 것입니다. 다 큰 아이를 죽여서 살을 자르고 뼈를 자르고 불을 지르라고 합니다. “네가 이렇게 육체의 물질에 무슨 한을 했느냐? 이것이 내가 하늘에서 내린 벌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도 와서 칼을 드니 봐준 것입니다. 대분심은 불의한 것을 보면 마음이 크게 발동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대의심을 해야 합니다. 과연 천국이 있느냐? 백궁 명패는 무엇이며, 대천사는 무엇이며, 천사를 준다는데, 우리는 인간적으로 볼 수 없는데 왜 우유가 썩지 않느냐? 이것이 대의심입니다. 이 대의심은 그냥 일반 의심이 아닙니다. 크게 의심해 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이 돈을 모아서 이것을 하버드 대학이나 미국의 네이처 과학 잡지에 실어야겠다고 뛰어다니면서 의심을 풀어야 하는 것입니다. “신인님이 불로유를 만드는데 내가 그것을 일일이 확인하고 다녀야 하나?” 여러분이 대의심을 가져야 합니다. 큰 의심을. “이것이 왜 썩지 않느냐? 이것이 과학으로는 있을 수 없네. 어떻게 천군천사를 저분이 건드리고 있느냐? 대천사를 막 넣어주네? 이것은 가짜가 아니네?” 가짜라면 돈 1억 내고 받아갈 사람이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매일 나에게 전화가 옵니다. 오늘도 무슨 전화가 왔는데, 자기가 넘어지는데 바로 무엇이 받쳐주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팍 받쳐주었답니다. 이런 일이 자기는 처음이랍니다. 안전벨트도 안 했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 튕겨 나갔는데 자기만 안 튕겨 나갔습니다. 대천사만 안 튕겨 나갔습니다. 무엇이 자기를 잡았는지 알 수 없답니다. 안전벨트도 없는데 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버스 안에서. 버스가 쾅 했는데 다 튕겨 나왔는데 자기만 안 튕겨 나왔습니다. 스펀지 같은 것이 자기만 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러 사람이 튕겨 나왔는데 왜 자기만 안 튕겨 나오냐고 나에게 묻는 것입니다. 그것이 대천사입니다. 이제 이해가 갈 것입니다. 이런 것이 대의심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째서 이렇게 되느냐.
그다음은 대발심입니다. 전도서 3장 11절 말씀처럼 여러분은 영혼을 사모하게 해 놓았지, 물질을 사모하게 해 놓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대발심. “내가 지금까지 썩은 마음을 먹고 있었구나. 이제 이렇게 해야겠다.” 이혼한 사람이 새 여자를 만났는데 계속 보기가 싫습니다. 마누라가 끝까지 자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보니 이 이혼한 남자는 이혼한 남자가 아니고 마누라가 옛날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 마누라 죽은 집안에 귀신이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보니. 그런데 그 여자, 세 번째 만난 여자가 엄청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지, 자기는. 왜 싫은지 모르게 계속 미워합니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보니 원인이 무엇입니까? 죽은 여자의 조상들이 이 사람에게 붙어 괴롭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옆에 가면 귀신 냄새가 있습니다. 귀신이 붙은 사람은 같이 차를 타면 귀신 냄새 때문에 계속 구역질이 나옵니다. 무슨 냄새인지 알 수도 없습니다. 구토가 납니다. 내가 무덤을 많이 파봐서 압니다. 옛날에 묘 이장할 때 내가 가서 일했습니다. 묘자리가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1년도 안 된 묘를 파는데 얼마나 귀신 냄새가 나겠습니까? 그런데 그 귀신 냄새가 나는데 이 여자는 그 남자 옆에만 가면 귀신 냄새가 난다고 계속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귀신을 내보내 버리니 냄새가 날까요, 안 날까요? 안 납니다. 귀신의 특징은 냄새를 풍기는 것입니다. 대발심은 물질에 집착하지 않고 영혼에 집착하면 발심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궁에서 백궁천국에 갈 것입니다. 전도서 3장처럼 나는 영혼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저 모든 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안티가 나를 괴롭혀도 내가 걱정이 없는 것은, 나는 이 세상 그 어떤 것에도 끄달리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인(神人)의 고통과 깨달음의 길
여러분이 나를 이상하게 보는 것은 개미가 나를 흉보는 것과 비슷합니다. 스트레스받을까요? 할아버지가 손자가 할아버지 수염을 잡아당기며 “할아버지 왜 이렇게 못생겼어?”라고 해도 스트레스받지 않습니다. 예쁩니다. “네가 할아버지 얼굴을 분석할 줄 아느냐?” 분석은 못해도 할아버지가 못생긴 것은 틀림없다고 해도 할아버지는 스트레스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누라가 “당신 왜 그렇게 못생겼어?”라고 하면 스트레스받을 수 있습니다. 인간들이 나에게 개미 떼들이 나를 안티하고 감옥에 가두어도 내가 괴로울까요? 감옥에 가도 괴롭지 않고, 나와 있어도 괴롭지 않습니다. 가난한 것도 겪었고, 청소년 시절에 여성들 앞에서 교복도 없이 학교에 가서 창피당한 것도 다 겪었습니다. 나중에 교복 입고 다니면서도 창피당했습니다. 그 모든 창피를 당해도 하나도 창피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이 사람들 속에서 내가 이 길을 걸어가야 배고픈 것도 알고 남 힘든 것도 다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석가모니처럼 왕궁에서만 자라면 무엇을 알겠습니까?
석가모니와 대바달타: 정의감의 발현
석가모니가 어느 날 대바달타와 싸움이 붙었습니다. 대바달타는 석가모니를 죽을 때까지 암살을 시도하다가 결국 죽이지 못했습니다. 대바달타는 석가모니보다 나이가 많고 형이며, 석가모니 삼촌의 아들입니다. 왕궁에서 같이 자랐습니다. 그런데 대바달타는 어릴 때부터 석가모니만 죽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맨날 싸우니 아버지가 왕이 어느 날 보니 석가모니가 남과 싸우지 않는데 자기 형과 대판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석가모니 아버지가 카필라 국왕이 쳐다보면서 왜 쳐다보았겠습니까? “저 석가모니가 혹시 앞으로 중이 될까 봐 걱정했는데, 형에게 달려들고 무술을 쓰고 둘이서 자빠지는 것을 보니 쟤도 용사 기질이 있다”고 아주 기분 좋아했습니다. 대바달타는 석가모니가 중이 되고 나서도 평생 중이 되어 같이 암살하려고 평생 그렇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석가모니가 너무 환경이 좋은 데 자라니 싸우는 것까지도 왕은 부러워했습니다. “내 아들이 이제 남자 기질이 나오네, 이제 무사 기질이 나오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석가모니가 자발적으로 여자를 모르는 것 같아서 여자를 알게 하려고 아무리 기생 여자를 옆에 두어도 석가모니는 넘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바달타는 기생만 괴롭혔습니다. 아파서 다 죽어가는 기생을 자기와 같이 자게 했습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죽게 생겼습니다. 병들어서 죽어가는 기생을 불러 관계를 맺고 이러니 석가모니가 분심이 나서 가서 면상을 때려버린 것입니다. 자기 형을, 사촌 형을. 그 아버지도 아주 도둑놈 같고 대바달타도 되게 악질이었습니다. 그것이 의분입니다. 대분심입니다. 개인적인 사심이 아니라 인간이 저렇게 노예라고 해서 노예를 그렇게 갈시하는 것입니다. 그 한여들은 노예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얻어맞으면서 “야 이놈아, 한여들이 사람이냐? 내가 한여들과 자는데 네가 왜 시비냐? 너도 왕자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석가모니는 “형, 아무리 한여라도 사람이야. 똑같이 대해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좋은 환경에서 크는데도 석가모니가 이 대분심을 서서히 가져낸 것입니다. 자발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정의감이 남달랐습니다.
3대 마음: 영혼을 사모하는 자의 자세
이렇게 대분심이나 대의심이나 대발심이 3대 마음입니다. 영혼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어야 하는 마음입니다. 저 이스라엘이 하갈을 내쫓고 이집트 사람을 자기 장남 이집트 여자의 피가 섞였다고 해서 이스마엘을 버린 죄가 지금 중동 3차 대전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물류를 막고 있습니다. 그것이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저 형제간의 싸움은 3차 대전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와 있습니다. 내가 와서 그들이 싸우는 것을 지금 보고 있습니다. 2000년 전에도 보았고 4000년 전에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 시절은 그 이전입니다. 그때도 본 것입니다. 4000년 전 전쟁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인류 전체의 목숨을 쥐고 있습니다. 전도서 3장 11절을 잊지 마십시오. 우리는 여러분을 만들 때 영혼을 사모하게 해 놓았는데, 이것이 어디로 가버렸습니까? 물질적으로 가버린 것입니다. 물질에 미쳐 있습니다. 죽을 때는 통장도 못 가져가는데. 통장이 영원한 것입니까?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십시오. 아무것도 없어도 나는 속 편하다. 나는 백궁 천국 간다. 나는 영원으로 가는 열차를 탔다. 좋지 않습니까? 기쁘지 않습니까? 아주 기쁩니다. 여러분이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티끌 속 우주의 진리
나는 눈치가 보여서 이것으로 끝내야겠습니다. 인간은 영혼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분심, 대의심, 대발심 이 세 가지를 가져야 합니다. 갑진년 새해를 맞아 우리에게 귀중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의 박수 올려주십시오.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질문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은 체험 사례는 못 합니다. 질문 먼저 올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허경영 신인님. 오늘은 판타지 소설과 외계인의 관계에 대해 질문드립니다. 음모론에 심취한 사람들은 종종 판타지 소설, 영화에 대해 이런 말을 합니다. 판타지 창작물에는 마법사, 좀비, 거인, 소인족 등 현실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것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작가들의 창의성을 칭찬합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그 작가들이 세상에 없는 뭔가를 창조해낸 것이 아닙니다. 진실은 바로 외계인입니다. 판타지 창작물에 기반을 세운 유명한 작가들은 사실 하늘이 점찍은 인물들이고, 외계인으로부터 텔레파시를 통해 뇌에 영감을 주입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영감을 준 외계인들에게 그 판타지는 그들의 지구에서는 현실인 것들입니다. 음모론자들은 이런 주장을 하며 인간들의 창의성에는 한계가 있음을 역설하는데요. 질문입니다. 지구별의 판타지 창작물은 정말 인간들의 1% 창의성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외계 행성의 현실을 기반으로 한 것인지 신인님의 고견이 궁금합니다.
소설과 대설: 인간의 창작물과 신의 진리
그것은 여러분이 잘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소설에서 시작합니다. 글을 씁니다. 판타지를 쓴 것도 소설입니다. 왜 이 ‘소(小)’자를 쓸까요? 여러분은 지금 대설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신인과 만나서 하는 대화는 대설입니다. 판타지나 팔만대장경이나 성경이나 모든 것은 소설에 들어갑니다. 신이 직접 대화하는 것은 대설입니다. 학자들이 심지어 쓰는 논문도 소설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우주의 섭리에는 맞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외계인들은 인간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이상하게 생긴 것이 없습니다. 그것을 잘못 읽으면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주복을 입은 모습을 외계인으로 보면 안 됩니다. 우리도 달나라 갈 때 얼굴이 이상한 것을 덮어쓰고 가지 않습니까? 나타나면 그것을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보면 안 됩니다. 머리는 이만하고 몸은 저만하다고. 위장한 모습을 외계인이라고 보면 안 됩니다. 백궁에 가도 인간의 모습입니다. 잘생겼을 뿐입니다. 그 대신에 백궁 세포는 늙지 않습니다. 백궁의 생명은 죽지 않습니다. 백궁의 생명은 영원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여기는 유한한 특징이 있고, 한계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모든 물질은 나중에 없어질 것입니다. 소설은 전부 인간이 오욕에 의해서 만들어내는 창작물입니다. 이것은 오온에서 나옵니다. 오온은 수상행식입니다. 상상한다는 것입니다. 색수상행식이 1, 2, 3, 4, 5. 물질, 감각, 인식, 반응, 정보. 이것이 인간의 이것을 가지고 판타지 이런 것을 만듭니다. 이것이 나오는 것이 ‘소(小)’자부터입니다. 그래서 소설입니다. 이것은 대설도 아니고 중설도 아닙니다. 그래서 소설은 ‘소(小)’자가 왜 붙느냐? 그것은 조작된 것이라는 소리입니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이 붙으면 ‘대(大)’가 붙어야 합니다. 대설. 왜 대설이냐? 대중입니다. 대중이 무엇을 합니까? 대중연설, 대설입니다. 대중에게 연설하는 것은 소설처럼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외계인이 나타난다 무엇이다, 이런 강의는 없습니다. 대중연설은 언제나 사실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대설은 실제 일이고 소설은 가짜입니다. 거기에는 진실이 없습니다. 그래서 ‘소(小)’자를 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막간을 이용해서 우리가 즐기기 위해서 가짜로 만들어 놓은 것이라 ‘소(小)’자를 붙이는 것입니다. 전부 가상에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오온이 만든 색수상행식, 상상을 하는 것입니다. 색수상행식, 오온이 육발음에서 나옵니다. 안이비설신의, 색상행미, 662, 36 곱하기 현재, 미래, 과거 3세를 곱하면 108입니다. 그 108번뇌가 불교에서는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은 철학적인 것입니다. 이런 철학은 여러분이 백궁 가는 데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냥 상식적으로 알아두라는 것입니다. 저 오온이 이 소설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지금 이 과학 문명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분심이나 대발심이나 대의심은 지구를 떠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지구 밖의 세계. 이 지구에서는 그 대의심과 대분심에 답이 없습니다. 여러분 허경영 이름이 왜 우유가 썩지 않느냐, 왜 쇠 덩어리가 썩지 않느냐, 왜 허경영 이름이 자동차 엔진 소리가 달라지느냐, 이것을 의심하면 거기에 천국이 있습니다. 그 의심의 꽃은 백궁입니다. 대운심이나 대분심은 대발심은 결국 백궁 영혼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어디로 퍼즐이 연결되어 있습니까? 백궁 천국하고 퍼즐이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상당히 쉽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스님들한테 오래 듣는 것보다 내가 불교 이야기를 조금 해주면 금방 이해가 갈 것입니다. 여러분 불교 이야기가 금방 이해가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님한테 가서 들으면 아리송합니다. 나는 상당히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공감의 기적: 오병이어와 카네기의 성공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라고 시비하는 자들에게 침묵하며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재림 예수 신인님은 삼위일체로 심판하시고 알곡을 취하십니다. 신인님은 만물의 주인이시고 아버지이십니다. 모든 분야의 일인자이십니다. 신인님의 통일장은 과학과 우주를 넘어섭니다. 분재와 같은 인물뿐이요, 분쟁과 기아가 난무한 세상의 유일한 거목으로 예언대로 갑진년, 을사년에 출연하시어 세계는 한 가족이 되고 남한은 지문과 인장처럼 세계 중심이 된다고 합니다. 인간의 마음은 광활하여 지구를 다 주어도 충족할 수 없고 영혼을 사모하여 신인 주시는 백궁천국만이 충족할 수 있습니다. 신인의 고통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이었으며 거짓의 안티족들은 심판받습니다. 질문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실수와 차별은 철천지 원수를 만들었으며 인류의 조상 아담의 아들은 시기와 질투로 최악의 범죄자가 되었습니다. 예토인 이 세상은 누구나 상처가 있습니다. 공감 능력 향상이 절실합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인님?
여러분은 사실 하버드 대학 교수들을 모아놓고 강의를 해야 합니다. 내가 강의하는 사람이 재미가 별로 없겠지요. 뭔가 좀 대의심을 하거나 대발심을 대분심을 가진 사람들이 앉아서 막 쳐다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복이란 복은 다 지어 이제 천국에 들어갈 사람들이니 별 재미는 없겠지만, 그래도 알아두는 것이 백궁 가서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에 2000년 전에 제일 많이 활동한 곳이 갈릴리입니다. 갈릴리에서 갈릴리 바다를 내려보는 언덕이 있었습니다. 잔디밭에 오병이어가 있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기적이 일어난 곳도, 그 기적을 보여준 곳도 갈릴리 바닷가입니다. 갈릴리 호수를 내려다보는 언덕입니다. 언덕에서 5천 명을 먹였다고 합니다. 이것이 공감입니다. 공감의 기적입니다. 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준 사람의 도시락은 어린아이의 도시락입니다. 어린아이가 “예수님 배고프시죠?”라며 준 것입니다. 그것이 5천 명을 먹이고도 12 광주리가 남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먹인 사람이 5천 명이 아닙니다. 남자만 5천 명입니다. 여자는 그 당시 사람으로 계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린아이도 계산에서 뺀 것입니다. 모인 사람이 자그마치 6,500명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여자는 그렇게 예수를 따라 강의를 들으러 잘 오고 이런 것이 없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여자도 그래도 천여 명이 있었을 것입니다. 남편을 따라온 것입니다. 여자는 먹을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이에게 주려고 도시락도 가지고 있었으니 여자를 줄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숫자를 빼버린 것입니다. 남자만 5천 명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그러면 5천여 명에게 500여를 주는데, 이 어린아이와 예수 사이에 공감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공감은 기적을 만들어버립니다. 공감의 기적입니다. 평소에 내가 맨날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따라다니는데 맨날 밥을 주었을까요? 맨날 500여를 해서 먹였을까요? 아닙니다. 그날만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당시 예수는 성부, 성자, 성령이 아니었습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할 때였습니다. “제발 우리 제자들 먹을 것 좀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고 이럴 때였습니다. 그러면 또 어디 가서 얻어먹을 것이 생기고 이럴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어린아이가 기특하게도 예수님 앞에 와서 자기 식사를 먹으라고 준 것입니다. 이것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여러분은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되게 충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나중에 그 손자에게 상속을 다 해줘 버립니다. 아들놈에게 안 주고. 손자에게 직접 상속을 해버립니다. 손자가 너무 기특하고 할아버지 마음에 드는 소리만 하고 다니고 이러면 그 아들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손자에게 다 주고 싶습니다. 이것과 비슷한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 당시, 그 당시 내가 성부였습니다. 나는 예수의 몸을 가져왔지만 성부가 나에게 붙어 있습니다. 성자, 성부, 성령이 와 있습니다. 이 에너지를 넣어서 그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 기적은 계속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한 번. 오병이어가 공감의 기적이라고 합니다. 공감이 있을 때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카네기가 철강 회사에 경비로 들어갔습니다. 경비로 들어가서 맨날 청소 열심히 하고 회장이 나오려고 하면 그 경비니까 밖에 경비만 서면 될 텐데 공장 안까지 쓸고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회장이 오면 그는 한 시간 전에 와서 청소를 다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카네기의 모습이었습니다. 회장이 카네기가 경비인데 맨날 와서 사무실 청소까지 하고 한 시간 미리 와서 다 하는 것을 소문 나서 들었습니다. 회장이 공감이 강했는지, 그 아이에게 나중에 죽을 때 철강 회사 주식을 그 경비에게 다 주었습니다. 그래서 카네기가 재벌이 되었습니다. 공감입니다. 자기 아들은 도둑놈이었습니다. 맨날 돈이나 사고나 치고 다니고. 아들에게도 좀 주었지만 제일 많이 준 사람이 카네기입니다. 그리고 카네기를 진급시켰습니다. 그래서 카네기가 그 철강 회사 회장이 되었습니다. 공감을 가진다는 것은 이 사회에서 인간관계를, 아까 말한 대로 대발심, 대분심, 대의심, 인간관계를 그렇게 영혼의 세계에다 줄을 달아야 합니다. 그냥 발심, 분심, 의심 이것은 별로 좋은 것이 아닙니다. 앞에 ‘대(大)’가 붙을 때는 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대의심은 “이것이 도대체 페니실린이 왜 나오느냐?” 분해하고 분석하다가 나온 것입니다. 곰팡이균이. 대의심을 하는 자는 과학자가 될 수도 있고 세계적인 발명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만들고 보니 아인슈타인이 만들고 보니 “아, 이것은 인간의 영역으로는 이 통일장은 접근이 안 되네. 오, 이것이 신이 있구나. 이것이 신의 세계가 있구나” 한계점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불교 쪽으로 들어갑니다. 불교를 뒤지니 삼천대천세계 일미진중함시방막천계가 나옵니다. 티끌 하나에 우주가 있다는 동네. 이러니 아인슈타인이 거기에 꽂힌 것입니다. 불교에 가면 이 답이 나오느냐? 거기 가도 통일장은 없습니다. 생명 에너지가 없습니다. 인간은 그저 연구하다가 끝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인슈타인은 무엇을 공부했습니까? 인간은 요만한 아메바가 진화하여 벌레가 되었다가 무엇이 되었다가 인간이 되었다. 인간은 우연히 태어났다. 이것을 믿는 자입니다, 아인슈타인. 진화를 믿는 것입니다, 과학자니까. 그런데 실제 인간은 우연히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나의 작품으로 나온 것입니다. 영원한 세계를 지향해서 가게끔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저 백궁 천국으로 가게끔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마음이 하늘을 보면 그리운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러냐? 그 본향이 그리워지는 것입니다. “어딘가 저 별 사이에 내가 가야 할 곳이 있을 텐데” 이러더니 “아이고, 이 지구가 이것이 내 고향이야?” 이것이 아닙니다. 은하수를 딱 바라보면 “어딘가 내가 고향을 떠나왔구나. 우리가 언젠가 저기를 가야 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의 눈을 보면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그런 사람의 눈은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지날 때 우주 정거장에 햇살이 비치네. 엄마, 이런 소년의 눈동자는 불타오르고. 엄마, 이런 소년의 두 눈에 눈물이 흐르네. 신나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신나게 달려라, 은하철도 999. 은하철도 999.” 은하를 바라보면 그 어딘가 어머니가 나를 부르고 있다. 거기로 여러분이 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 세상 쪽을 바라보니까 맨날 돈 타령, 카드값 막아야 합니다. 이것이 눈에. 은하수를 바라보니까 “내가 왜 이런 세상에 와서 이 고생을 하고 있나?” 희망을 가집니다. 공감 이야기하다가 내가 노래를 다 불렀습니다. 은하철도 999는 소설로 쓴 만화입니다. 그래도 은하철도를 하늘에다 철도를 만들어 놓고 생각했다는 것이 재미있지 않습니까? 비행기에 있으면 재미가 없을 텐데. 철도를 해 놓으니 그 은하철도에 있는 차장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은하철도에 그 안에 있는 티켓 검사는 안내하는 여자가 있겠지요? 예쁩니다. 잘못 보면 기절합니다. 너무 예뻐서가 아니고. 은하철도 타고 싶지요? 그러면 백궁 가면 됩니다. 그런 것은 다 공감이 잘 됩니다. 아주 그런 것은 공감이 잘 됩니다.
강도와 집주인의 공감: 인간관계의 본질
내가 어제 이야기했듯이, 강도가 들어왔는데 손을 들라고 하니 한쪽 팔만 들었다고 합니다. 왜 한쪽 팔만 드느냐고 물으니 “이쪽 팔은 신경통 때문에 근육이 잘못해서 손을 못 듭니다. 한쪽만 듭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집주인이 “나도 그런데”라고 말했습니다. 강도가 “이런 약이 되게 좋아요”라며 주머니에서 약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둘이서 커피 마시고 친해져 버립니다. 대화가 되는 것입니다. 강도가 “내가 괜히 이 집에 왔는데 돈 털러 와서 미안해요” 이런 식으로 공감이 형성되어 버린 것입니다. “언제부터 어깨가 그렇게 아팠어요?” “나는 몇 년 됐네.” “나도 몇 년 됐는데 무슨 이야기가 좋더라고.” 서로 소통이 된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강도하러 왔어요?” “돈이 어려워서. 팔이 나빠서 노동을 하는데 이것을 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집털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냐고” 내가 몇 푼 주는 것입니다. 친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면서 인사 깍듯이 하고 나가는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도둑도 사람이 공감해 버리면 도둑이 아닙니다. 굉장히 착합니다. 대화를 하는데. 그런데 집에는 자기 꼬마가 학교 다니는데 돈 달라고 하고, 돈은 없으니 한탕을 하겠다고. 그래서 자기가 이렇게 왔노라고 미안하다고. 공감이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저 사람 나쁜 사람이야, 저 사람 좋은 사람이야” 이렇게 결정하면 곤란합니다. 남의 약점만 늘어놓으면 도둑만 늘어나고 강도만 늘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남과 공감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요새 얼마나 어려울까. 다들 얼마나 어려울까. 내가 오늘 돈을 100만 원 잃어버렸는데, 잘됐다. 어려운 사람이 주워갔으면 얼마나 그 사람이 반가울까” 이렇게 공감을 해야 합니다. 이런 어려운 세상에 내 돈 잃어버린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잃어버린 것을 아까워하며 인상 쓰는 것보다는 “내가 한 달 번 것, 그래 어려운 사람이 주워가라” 차라리 마음이 편하고 홀가분합니다. 대리 질문 들어가야 하는데요. 들어가기 전에 말씀드려야 하는데, 오늘 설날이라서 질문 끝나고 몇 분 모셔서 신인님께 노래 몇 곡 올려드릴 것입니다. 오늘 대리 질문 올리겠습니다. 재미있습니다. 하늘을 보면 여러분 땡 잡은 것입니다.
귀신의 영혼과 선물에 대한 이해
먼저 하영순 천사님, 귀신은 영이 없이 혼만 있는 상태로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귀신도 영과 혼이 있는 것입니다. 귀신이 영이 없다는 것은 전부 거짓말입니다. 귀신도 영혼에 영이 있어야 자기 죄를 깨닫고, 자기가 왜 이렇게 귀신이 되었나 이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 후회하는 시간이 끝없이 깁니다. 자기 어머니 집에 아까 보니 이혼한 사람에게 귀신이 붙어 있다고 했습니다. 만나는 여자가 순탄치 못한 것입니다. 귀신이 붙어 있으니. 어떤 여자가 오면 방해를 합니다. 자꾸 여자가 원하는 것을 안 해줍니다. 누가 안 해주라고 합니까? 귀신이. 자기의 딸과 헤어져 다른 여자 만나는 것이 기분 좋겠습니까? 그런데 귀신이 붙는 것입니다. 그 귀신은 갖다 붙이는 역할을 합니까,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까? 떨어뜨리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는 가능하면 남과 그런 원한 관계를 안 맺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가 질문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귀신도 영혼이 그대로 있습니다. 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혼은 여러분이 잘 알지만, 영혼은 혼백입니다. 혼과 백이 붙어 있는 것을 영혼이라고 합니다. 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음은 이혜윤 전사님, 신인님 안녕하세요. 동경 거주하는 이혜윤입니다. 선물 받은 사과를 먹다가 불현듯 궁금증입니다. 예전에 강연에서 축복을 받은 분들은 물건 사고 돈을 지불한 순간부터 중화가 된다고 하셨는데요, 선물 받은 것은 어떻게 되는지요? 선물 받은 것도 중화가 된 것입니다. 선물도 그냥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뭔가가 대가를 했으니까 오는 것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아무나 선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어쨌든 선물이 왔다는 것은 공감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해도 되고, 저렇게 해도 관계가 없습니다. 먹어도 되고, 부담을 갖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것은 내 거야, 이것은 저 사람 거야” 너무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단, 여러분이 뭉텅이 돈을 주웠다, 내가 7천만 원 주워서 돌려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돈은 전세 자금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 집안이 망합니다. 그런 것은 악착같이 찾아주지만, 돈 만 원짜리 주웠다고 그것 주인 찾아다니면 되겠습니까? 이것은 누구 거야? 사면 안 됩니다. 돈을 아끼는 마음에서 주워서 깨끗하게 해서 쓰면 그것이 좋은 일입니다. 그것 들고 파출소 가는 사람도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습니까? 너무 돈에 그렇게 겁을 내서는 안 됩니다.
불로유의 신비: 전자파 차단과 암흑물질
다음은 오민환 전사님, 전자파 나오는 주변에 불로유를 놓아둘 경우 불로유에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는지요? 불로유는 전자파를 차단하는지요? 불로유는 방사선, 전자파 이 나쁜 것은 다 차단해버립니다. 불로유를 먹고 가서 엑스레이를 찍거나 이러면 달라집니다. 불로유 먹고 비행기 타면 방사선 피해가 없습니다. 불로유를 먹고 방사선 암, 췌장암 환자가 30번 항암을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말짱합니다. 70 몇 살 먹은 여자입니다. 우리 영상 많이 보았습니다. 불로유는 그런 것과 그래서 암흑물질입니다. 암흑물질은 인간 세상에서 만드는 어떤 파장도 걱정이 없습니다. 되게 좋습니다. 나는 나중에 노래 듣는다고 합니다. 그냥 시간을 슬슬 빨리빨리 보냅니다. 나는 노래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이 많이 웃고 이렇게 보내는 것이 기쁜 시간입니다. 여러분은 어쨌든 백궁천국은 너무 아름다운 곳이고, 은하철도 999를 타고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은하철도 999보다 더 멋있게 가는 것입니다.
자연계의 힘과 미립자의 세계
다음은 조은희 천사님, 안녕하세요. 중랑구 조은희 질문 올립니다. 자연계의 4대 힘에 관한 영상을 보다 신의 존재성을 부인하는 것에 대해 중력과 전자기력 경계선에서의 불확정적인 것을 들었습니다. 날리는 먼지와 떨어지는 바위에 다른 힘이 있는 것 같은 비유로 들렸습니다. 그 경계선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지금 말씀하는 것은 아주 초보적인 이야기입니다. 우주에 8가지 힘이 있습니다. 중력, 자력, 권력 등 우주의 8력. 이 자연계의 이런 힘은 지구가 중력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많습니다. 돌이 떨어지는 것이나 이런 것은 중력의 영향이지, 전자기력이 있거나 전자기력이 바위에서 발생해봐야 얼마나 발생하겠습니까? 그런데 저것은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 중력이 바위를 쪼개서 미분자, 미립자로 만들어 보십시오.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가볍겠지요? 그러면 전자에 의해서 끌려갑니다. 우리가 책받침을 머리에 비비면 머리카락이 들리지 않습니까? 전자기력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가벼운 것은. 그러나 바위는 안 되는 것입니다. 바위를 분쇄해서 미세한 먼지로, 나노 입자, 나노 입자로 만들 때는 따라다닙니다. 전자기력에 의해서 끌려갑니다. 거기서는 경계선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위를 안 깨고 그대로 하면 전자기력이 생깁니까, 안 생깁니까? 안 생깁니다. 우리는 모든 물질이 미립자 형태로 되면 전자기력이 생기는데, 전하를 띠게 됩니다. 전하를 띤다는 것입니다. 이 전하를 띠는데, 이 전하가 물질의 사이즈가 나노에, 나노보다 작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나노의 200배가 되면 보입니다. 나노보다 200배가 크면 그것이 먼지입니다, 초미세먼지. 그런데 그것이 눈에 보일 듯 말 듯 합니다. 현미경을 끼면 보입니다. 그것이 초미세먼지가 나노입니다. 나노보다 그 밑에 들어가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노는 10억 분의 1입니다. 100만 분의 1은 마이크로입니다. 마이크로 정도 되면 콧구멍에 걸리는 미세먼지입니다. 그런데 나노가 되면 나노는 10억 분의 1입니다. 마이크로는 100만 분의 1입니다. 마이크로 정도 되면 콧구멍에 걸리는 미세먼지입니다. 그런데 나노가 되면 나노는 10억 분의 1입니다. 10억 분의 1. 나노는 10억 분의 1이니까 우리 피부 속으로 들어갑니다. 바로 나노 화장품을 발랐다. 그러면 피부 속으로 쏙쏙 들어가 버립니다. 땅콩보다 작습니다. 나노는 안 보입니다. 그런데 나노가 200개가 모이면 우리 눈에 보이는데, 그것이 먼지입니다. 나노 하나가 나타나면 무엇입니까? 초미세먼지는. 나노가 200개 내지 300개가 모이면 눈에 보입니다. 그것이 먼지입니다. 그것은 피부로 안 들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마스크를 쓰라는 것이, 초미세먼지에는 마스크를 쓰라는 이유가 피부로도 막 들어갑니다. 초미세먼지가 코로도 들어가고 이러면 허파 깊이 들어가고 우리 살 속에 다 들어가 버립니다. 물을 많이 먹으면 그것이 쉽게 나갑니다. 그래서 초미세먼지가 많다는 날은 물을 많이 먹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몸속으로 막 피부로 들어온 나노 먼지가 소변으로 빠져나갑니다. 소변으로 빼내야 합니다. 나노 문제는 허파에서 콩팥으로 간으로 제 맘대로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몸속에 들어가서 피를 타고 안 가는 곳이 없습니다. 이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말하는 것입니다. 미세먼지는 허파에서 갇힙니다. 그런데 초미세먼지는 허파에서 피 속으로 들어가서 온몸을 돌아다니다가 쌓이면 머리 아프고 좋겠습니까? 그래서 나노보다 더 적은 것이 무엇입니까? 옴스트롬. 옴스트롬은 몇만 분의 1입니까? 100억 분의 1입니다. 나노는 10억 분의 1인데, 우리가 10억이 영어로 빌리언입니다. 100만은 밀리언이고 10억은 빌리언입니다. 이것이 10억 분의 1보다 더 작은 100억 분의 1이 옴스트롱입니다. 옴스트롱. 옴스트롱이 그것보다 더 적은 것은 무엇입니까? 피코 1조 분의 1. 피코가 1조 분의 1입니다. 1조 분의 1. 피코가 1조 분의 1. 그것이 영어로는 1조가 트릴리언입니다. 빌 게이츠 재산이 265 트릴리언, 265조입니다. 트릴리언이 영어로 조입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트릴리언을 넘어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나는 그 트릴리언을 넘어서 천조가 쿼들리언입니다. 쿼들리언 천조. 적어도 천조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계에 동의를 하려면 천조는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 가지고 안 됩니다. 신인은. 쿼들리언 그 위에 그 다음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퀸틀리언. 퀸틀리언이 얼마입니까? 백경입니다. 백경. 백경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인은 불로유나 여러 가지 내 아이템으로 백경, 1년에 33경 정도가 들어옵니다. 어마어마합니다. 여러분은 신인이 세계의 돈을 쥐었다 놨다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퀸틀리언. 천조 퀸틀리언. 일해는 무엇입니까? 섹틸리언. 일해의 재산을 가진다. 그것은 섹틸리언입니다. S-E-X-T-I-L-L-I-O-N. 섹틸리언. 이 천조 분의 1. 이것은 얼마나 작은 미세먼지, 초미세먼지. 천조 분의 1. 이것이 아토. 아토가 ATTO입니다. 아토가 몇 조 분의 1입니까? 백경 분의 1입니다. 백경. 천조가 아니라 백경 분의 1입니다. 아토가. 그러면 흔들려다 아토는 일해입니다. 일해 분의 1입니다. 이 미립자를 소립자를 일해 분의 1로 줄여 보십시오. 그것이 이 우주가 아까 말한 전하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전하에 의해서 끌려다닙니다. 아까 전자파. 파동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그냥 빛입니다. 물질이 최소 단위로 내려가면 빛이 되어버립니다. 나노 단계에서도 빛입니다. 그 밑으로 점점 내려가서 1해까지 내려가지 않습니까? 그것이 어마어마한 과학의 세계인데 인간들은 그것을 상상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런 것을 아니까 지금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슨 과학자가 거기까지 이야기를 합니까? 나니까 이야기합니다. 나는 억조경 해자양 구간정제 강화라 불무 무량 숫자까지를 밥 먹듯이 합니다. 그러나 일반 과학자들은 그것이 안 됩니다. 머리가 복잡해서 그 사람들은 전자계산기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억조경 해자양 그런데 억조경 이 경을 못 넘어섭니다. 해 다음에는 해자양, 구간정제, 강하라, 불무 여기까지 쪼개버리면 어떻게 될까요? 상상도 못 하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기껏 쪼개는 것이 억, 조, 경. 돈을 가져도 그냥 억, 조, 경 가지면 다 가진 것입니다. 여기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세계는 영혼을 여러분이 사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숫자는 사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영혼을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 숫자 억조경 해자형 그런 숫자는 안 가져도 괜찮습니다. 내가 다 가지고 있는 것이니까. 여러분이 잘 못 알아들어도 내가 그렇게 말을 하는 이유가 이것이 기록에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학자들도 보고 있습니다. 신인이 저렇게 말을 하는구나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그것이 무슨 귀신 신화를 까만 소리인가 이래도 듣고 있어야 합니다.
조상님 축복 명패와 불로유 보관법
다음 김찬천사님. 성함을 모르는 조상님들 축복 명패는 어떤 이름으로 신청을 해야 할까요? 조상님들 조상 중 안타깝게 돌아가신 분이 많다고 들어 꼭 해드리고 싶은데요. 신인이 마련 시 요청드리면 순서대로 보내주시나요? 친척들과 교류가 안 되어 확인은 할 수 없어서요. 예를 들어 외외증조할머니, 이렇게밖에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도 관계없습니다. 여러분 이름이 없어도 백궁에서는 저 사람의 외정조할머니, 외외정조할머니, 외고조할머니 하면 다 들어갑니다. 바로바로 들어가 버립니다. 저것은 이제 답이 되었습니다. 제일 간단합니다.
다음은 김무진 전사님 불로유 보관 방법에 대한 질문입니다. 올해 실외 창고에 대량 보관을 추진 중인데요. 영하에 어느 것은 괜찮은지요? 따로 보온장치가 필요한지 알고 싶어 질문드립니다. 특별한 보온장치는 필요 없습니다. 특별한 보온장치는 필요 없고 그냥 창고에 넣어 놓으면 됩니다. 터지거나 이런 일은 없으니까. 우리 우유가 내 이름을 붙이면 일단 암흑물질이 되는 것입니다. 암흑물질은 지구인들이 사용하고 있는 물질은 5% 이내입니다. 95%는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입니다. 전체 다 해서 대부분이 공간이 많습니다. 건물이 많습니까, 공간이 많습니까? 공간이 많습니다. 먼 데서 바라보면 지구가 요만한 먼지입니다. 나머지 전부 공간입니다. 그 공간이 전부 암흑물질과 암흑 에너지입니다. 내가 여기 앉아서 트럼프를 탁 하면 에너지 들어가지 않습니까? 트럼프에게 축복을 탁 넣을 수 있고 뺄 수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여러분이 과학자들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입니다. 내가 여기 있는 전체 에너지 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축복을 1초 만에 다 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여러분 확신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주었다가 1초 만에 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금 불안한 감정이 나에게 전달이 됩니다. 자꾸 대답하면서 신인님이 또 뺐다가 다시 넣는 것 아닌가, 괜히 불안하지 않습니까? 혹시 또 빼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내가 하나 해줘야 할 것이 있습니다. 조용히 해야 합니다. 그동안 안티들이 보낸 메시지를 보거나, 그 메시지를 모르고 켰다가 들었거나 안 들었거나, 들은 사람도 이 순간에 전부 없는 것으로 하고 전부 원상 복귀되고 내 별이나 축복이나 천사나 모든 것이 원상 복구되라. 혹시나 거기에 대해서 불안감을 가지면 안 됩니다. 내가 그것을 어떻게 열다 보니 안티들이 무엇을 보냈네, 그러면 그것을 안 봤다, 일부 봤다고 해서 오늘 내가 다 용서했습니다. 이제는 앞으로는 보지 마십시오. 보지 말고 봤으면 나에게도 봤다고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모르고 무언가 하고 봤다, 그러면 그렇게 되었을 때는 즉시 나에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내가 지금까지 잘못 본 것은 100% 용서했습니다. 좋지 않습니까? 나는 여기 앉아서 우주 전체를 달을 더 밝게 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내 마음대로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안 하고 있는 시기입니다. 왜? 너무 갑작스러우면 사람들이 눈이 부셔서 못 봅니다. 처음에는 축복 주다가 그 다음에 천사 주다가 대천사 주었지, 이렇게 단계적으로 합니다. 이와 같습니다. 나중에는 내가 어디까지 보여주는가, 여러분이 보면 여러분이 혹시 벗금을 물고 와서 그러면 내가 또 정이 안 듭니다. 내가 여러분을 보면 굉장히 인간적으로 정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내가 진짜 이상한 것을 보여주면 여러분이 무서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안 합니다. 그러나 축복, 대천사, 중론은 안 무섭지 않습니까? 단 내가 진짜라는 것을 여러분이 알지 않습니까? 이 정도 지금 해놓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가 한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때 한 것은 기적이 아닙니다. 그것이 무엇이 플러스 되었습니까? 성부가 플러스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 때 그렇게 부르짖던 그 하나님이 나에게 들어와 있지 않습니까? 그럼 나는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나는 여러분을 심판하러 왔고 그 자가 신이 틀림없는데, 인간의 모습을 쓰니 여러분에게 끌려다니는 것입니다. 감옥 가라면 감옥 가야 하고, 욕을 하면 “뭐 개새끼야” 그러면 그 사람 들어야 하고. 그래도 나는 바뀝니까, 안 바뀝니까? 안 바뀝니다. 손자가 아무리 할아버지 따귀를 때려도 절대 손자가 밉지 않은 것입니다. 나는 그냥 그대로 넘어가면서 내가 지구에 온 일만 하면 되고, 나중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한 가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사람이 워낙 나중에 많이 오고 천만 명이 되어갈 때는 내가 권위를 나타내게 됩니다. 지금은 권위를 나타낼 단계가 아닙니다. 그때는 내 옷도 달라지고 내 앉는 자리도 이렇지 않습니다. 완전히 권위가 달라집니다. 외국의 대통령들이나 유엔 사무총장 이런 사람들이 오면 내가 여기 앉아 있으면 되겠습니까? 그때는 만나는 것도 까다로워지고 권위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저 갈릴리 호숫가에 앉아서 잔디밭에 앉아서 내가 처음에 여러분과 대화할 때, 거기서 내가 대화한 것이 팔복입니다. 그 팔복을 내가 이야기할 때 그럴 때와 같은 단계입니다. 초기 단계, 친화적인 단계. 나중에 가면 권위가 만들어집니다. 그 권위 위에 내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세워지면서 세계를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도 온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권위의 단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감나무가 지금은 그냥 이렇게 깡말라가지고 겨울에 볼품이 없습니다. 그런데 가을이 되면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으면 권위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깡마른 개울 나무입니다. 와서 그냥 이놈한테도 차이고 저놈한테 밟히고 그런 때입니다. 욕도 먹고 막 그런데, 나중에는 그 감나무가 정원의 나머지 나무들은 푸르고 예쁜데, 사철나무도 감나무는 삐쩍 말라가지고 아무것도 없는데 저 볼품없는 나무를 왜 저렇게 놔두고 있습니까? 그러겠지요? 그런데 그것이 나중에 한번 보십시오. 그 정원수보다도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가지고 빨갛게 익어 있을 것이고, 그럴 때는 얼마나 그 감나무가 아름답습니까? 그때는 감나무가 정원에서 제일 무게를 잡고 있습니다.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 따먹으려 해도 겁이 납니다. 이렇게 잘생긴 감을 내가 딸 수 있나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삐쩍 말라가지고 감나무가 이파리 다 떨어지면 얼마나 초라해 보입니까? 그것을 감나무라고 합니다. 그 감나무를 바라보는 여러분의 자세가 진짜 감나무는 그렇게 비참해 보입니다. 그러나 나를 그렇게 여러분 잘못 보면 안 됩니다. 여러분은 알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세인들은 나를 그런 삐쩍 마른 나무다 이렇게 볼 수 있지만, 실제는 그 감나무가 나중에는 그 정원에서 제일 멋진 나무입니다. 나머지 사철나무, 정원수가 무엇이 열립니까? 감나무는 맛있는 감을 주지 않습니까? 겨울 내내 곶감을 먹게 해주지 않습니까? 자, 다음 질문. 재미있습니다. 오늘은 질문 여기까지 하고, 오늘 설날이라 그냥 넘어갈 수도 없고 약간 작은 공연 몇 분 모시겠습니다. 먼저 청량에서 오신 이수지님 모셔서 우리가락 민요를 먼저 들려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