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역과 사역자의 본질적 의미
안녕하십니까, 신님. 오늘은 사역과 사역자에 대해 질문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역은 종교적으로 쓰이는 말이지만, 신과 하늘을 위해 봉사한다는 점에서 종교에서도 이해관계가 생길 수 있는 단어로 보입니다. 현재 재림 예수, 보혜사, 신인님의 존재를 확인한 많은 지구인들이 신인님을 더 알리기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힘을 다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신님께서는 하늘을 찾아오는 제자들을 메신저인 천사이자 인간이라고도 하셨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늘궁에 오가며 신인님을 알리고자 하는 사람들은 백궁 사역자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진정한 사역과 사역자란 무엇인지, 그리고 백궁 사역자들의 마음가짐이나 행동은 어떠한 기준을 가져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헬렌 켈러의 소망과 진정한 사역의 가치
이제 백궁 천국을 여러분이 알게 되었습니다. 헬렌 켈러가 죽을 때 남긴 책에서, 3일만 눈을 뜨게 해준다면 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눈을 뜨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제일 첫 번째로 밤이 낮이 되는 관계, 즉 태양이 어떻게 떠오르는지, 어둠이 밝음으로 확 바뀌는 그 광경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 넓은 천지가 어떻게 어둠이 있다가 밝음으로 확 바뀌는지, 자신이 눈을 감고 깜깜한 세계에 있다가 밝음으로 확 바뀌는 것 같은 그 변화가 궁금하다는 것입니다. 태양이 무엇이기에 그것이 나오면 천지 대지가 다 밝아지는지, 그 어마어마한 광경을 한번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두 번째로 보고 싶은 것은 어머니 아버지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고 했습니다. 헬렌 켈러의 부모는 “우리 딸 헬렌 켈러를 돌봐줄 만한 선생을 모집한다”고 공고했고, 설리번 선생이 그 신문 기사를 보고 찾아갔습니다. 설리번 선생은 45년간 헬렌 켈러의 손과 발이 되어 그녀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고, 귀가 들리지 않으며, 말을 못 하는 세 가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시킨 것입니다. 물론 보지는 못했지만, 그 여성의 헌신이 바로 진정한 사역입니다.
사랑과 헌신이 없는 사역은 가짜다
자격증만 있다고 사역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어떤 사역도 가짜입니다. 월급에 관심이 있거나 돈 때문에 사역을 한다면 헬렌 켈러를 그렇게 만들 수 없습니다. 돈 때문에 온 사람은 결코 그런 기적을 만들 수 없습니다. 신도들을 보면서 “교회 헌금이 얼마가 모이겠습니다” 이것만 계산하는 목사가 있다면 그 교회는 커지지 않습니다. 교인 한 사람 한 사람과 마음이 통해야 합니다. 교회 성장에만 눈이 꽂혀 있다면 그것은 나쁜 사역자입니다.
어떤 여자가 미쳐서 정신과 의사가 와도 말을 듣지 않고 비명을 지르고 욕하며 발광을 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늙은 할머니가 그 광경을 보다가 나중에 그 아이를 바르게 만들었습니다. 그 할머니가 오면 아이는 조용해졌고, 손만 잡아도 조용했습니다. 이 할머니는 다른 사역자들과 달랐습니다. 목사도, 정신과 의사도, 선생도 안 되는 일을 할머니는 해냈습니다. 할머니는 선생이 아니었지만, 따뜻하게 손을 잡고 대하자 아이는 발광하지 않았고, 할머니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했습니다. 정신과 의사도 고치지 못한 아이를 그 할머니가 결국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할머니는 자기 손녀 같은 아이가 불쌍하고 안쓰러워서 순수한 마음으로 사역을 한 것입니다. 결국 그 아이를 정상으로 만들어서 시집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전문가들도 안 되는 일입니다.
사역자의 정체성과 사명감: 홍익 이념과 충효 사상
사역자라는 것 자체에 정체성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민족 중흥의 역사적인 사명을 갖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홍익 이념이 우리의 정체성이자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실천은 무엇일까요? 바로 충효예입니다. 우리가 효도하고 나라를 위하는 충성심이 중요 사상입니다. 홍익 이념을 아버지로, 충효 사상을 자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실천입니다. 홍익 이념이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느냐 하면, 충효 사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념은 수많은 사상을 만들어냅니다. 그중 으뜸이 충효 사상, 즉 나라를 생각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이 감정이 없으면 홍익 이념이 될 수 없습니다. 홍익 이념이라는 거대한 이념은 충효 사상이라는 자식으로 인해 빛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홍익 이념을 근본으로 모시고, 충효 사상을 임시적인 지상 목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저 하늘나라 백궁, 천국을 가는 것을 정체성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지구에 있는 것은 임시적인 것입니다. 여기 있는 것은 주가 되는 것이 하나도 없으며, 전부 사라질 것입니다. 저 백궁이 우리의 이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사상은 지구에 있으니, 우리가 동고동락하고 공정 공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홍익 이념은 모든 세상을 아우르고 다 함께 잘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정 공영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이념이자 우리의 본질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거지는 실천입니다. 실천은 우리의 사상입니다. 효도는 만행의 근본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내 부모이고, 나보다 나이가 적으면 내 형제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든 홍익의 개념이 있으면 단군의 자손이 같은 핏줄이니, 같이 나누고 같이 해야 합니다. 길에 보이는 노인은 전부 내 아버지, 길에 보이는 할머니는 전부 내 어머니라는 마음가짐이 홍익 이념이자 충효 사상입니다.
홍익 효도와 지정의 일치
내 집에 있는 아버지 어머니에게만 효도하는 것은 홍익 이념이 아닙니다. 효도는 효도이지만, 홍익적인 효도, 즉 넓은 효도를 해야 합니다. 남의 아버지는 내 아버지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함부로 대하면 안 됩니다. 모든 아버지에게 효도를 해야 홍익 효도입니다. 개인적인 효도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홍익인간이라는 거대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개인 효도도 전부 남의 아버지도 내 아버지처럼 한 동네에서 같이 지내는 다물 민족, 다물 사상, 즉 함께 일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지도자이며, 모든 사람이 다 사역을 하는 자입니다. 사역자가 따로 없습니다. 국민 전체가 사역자입니다. 만나는 노인이 전부 우리 부모입니다. 내 부모에게만 효도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잘 살게 해주고 대접해주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가야 성공합니다. 내 아버지 어머니에게만 효도하겠다는 것은 홍익인간의 효도가 아닙니다.
이것을 잘 길러내는 자, 즉 지정의를 잘 길러내는 것이 사역자입니다. 지혜만 잘하고 정의가 없거나 의리가 없다면 안중근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사역자가 아닙니다. 안중근도 우리 민족을 위한 일종의 사역자였고, 목사도 사역자, 스님도 사역자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사역자입니다. 그 사역자가 가져야 할 근본 정신이 지정의입니다. 지혜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정의가 있어야 하고, 의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 지정의를 갈고닦음으로써 우리가 사역자로서의 구색을 갖추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를 하는 목사가 신도 숫자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지정의가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의 노인이 와서도 “따뜻하게 식사를 하셨습니까? 우리 사모와 같이 식사합시다”라고 말하며 따뜻하게 대하면, 이것이 가족이 되어 성도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교회 헌금이나 신도 숫자에만 머리를 쓴다면 이것은 지정의가 아닙니다. 이것은 홍익 효도가 아닙니다. 홍익이 앞에 붙어야 우리는 다른 민족을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평범한 사역자는 안 됩니다. 지정의를 제대로 갖추고 그것을 확대하고 확장시켜 나가야 하며, 지정의를 일치시켜야 합니다. 지정의가 세계가 일치되게 나가는 것이 사역자입니다. 의리만 따지면 그는 독립운동가입니다. 무조건 총 쏴서 죽이면 그것은 안중근이지, 지정의가 하나가 된 것이 아닙니다. 지정의, 사랑도 쓰고 정의도 쓰고, 즉 지정의가 일치해야 하고 지정의를 확장해 나가야 합니다. 자기 어머니 아버지에게만 지정의를 하고 다른 사람에게 매몰차게 대하면 지정의가 확장되지 않습니다.
사역자의 궁극적 자세: 지정의 일치와 홍익 이념 실천
지정의를 넓게 확장해 나가면서 홍익 이념과 충효 사상을 실천하는 것,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우리 이 땅에 태어났다”는 정체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새마을 운동은 실천입니다. 주체 사상을 생활 운동으로 활성화하는 것이 실천입니다. 우리는 본질과 실천을 항상 일치시킬 때, 지정의와 본질, 실천이 일치할 때 사역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역자가 교회 헌금에만 관심이 있거나 교회 건축을 늘리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 안 됩니다. 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토 확장에만 관심 있다면 히틀러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사역자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적인 홍익 개념이나 충효 사상 같은 정체성을 가지고, 영혼으로서 그것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충과 효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움직인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사역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설리번이라는 여자가 헬렌 켈러를 찾아왔을 때, 이 사람이 바로 진짜 사역자였습니다. 월급보다 그 아이를 어떻게 하면 도울까를 생각했습니다. 헬렌 켈러가 마지막 유언에서 “태양이 뜨는 것, 밤이 낮으로 바뀌는 것을 한번 보고 싶고, 부모 얼굴 보고 싶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고 싶다. 그러면 자기는 그다음 깜깜한 세상으로 들어가도 한이 없다. 3일만 자기에게 그것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애틋합니까? 그다음은 자기가 깜깜한 암흑의 세계로 가도 여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의 기도를 가만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있으면서도 불만이 그렇게 많습니다. 우리는 해가 뜨는 것도 관심 있게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헬렌 켈러는 밤이 낮으로 바뀌는 그 광경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것을 써먹지 못하고 제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은 사역자이며, 하늘은 외상이 없다
진정한 사역자는 진짜 지정의 세 박자가 일치해야 합니다. 내 부모가 아닌 모든 나이 많은 사람이 내 부모이고, 나보다 나이 적은 사람이 내 동생이며, 내 형제이고, 모든 이가 내 자식입니다. 여기에 대해 주체성을 가지고 정체성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럴 때 이것이 진짜 사역자입니다. 길게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진정한 사역자는 설리번 선생님이 보여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사역자가 아니냐고요? 아버지는 한 가정의 사역자입니다. 나는 자식으로서 또 사역자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역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늘의 특징은 인간과 달리 외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남의 돈을 떼먹을 수 있지만, 하늘은 외상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내가 누구를 괴롭히면 반드시 대가가 돌아오고, 내가 누구를 잘해주면 반드시 바로 그 답이 옵니다. 하늘은 외상이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대의명분을 저버릴 때, 우리가 사역자라는 것을 저버릴 때, 하늘에서 그에 대한 정확한 답과 결과를 주십니다. 정확합니다. 남을 위해 한 달 동안 일해 줬는데 월급을 안 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입니다. 하늘은 그런 일이 없습니다. 내가 사역자로서 최선을 다하면 대가가 옵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도 외상이 없고 떼먹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하늘을 위해 일할 만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