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 예수의 출현과 기존 교회의 한계
전 세계 교회들은 심판 시기에 맞춰 오시는 재림 예수를 맞이하기 위해 십자가를 높이 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인(神人)은 초림 예수가 계셨던 서방 지역이나 다른 국가의 교회들을 찾아가지 않고, 한반도에 새로운 예루살렘 성을 직접 짓고 있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교회에 직접 가지 않고 새 예루살렘 성을 새로 짓는 의미는 무엇이며, 기존의 수많은 교회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신을 이성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이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신을 이성으로 증명하려는 시도에 대한 반박입니다. 인간은 신을 이성적으로 증명할 수 없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지구가 돈다고 주장했을 때, 가톨릭은 하늘이 돌고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과학적으로 옳았지만, 당시 사람들에게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웠습니다. 100년 후 갈릴레이가 과학적으로 이를 증명하면서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옳았음이 밝혀졌습니다.
메시아의 증명과 교회의 반발
마찬가지로, 지금 사람들이 신인(神人)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유사합니다. 메시아라는 증거를 내놓으면 교회는 오히려 더 완벽하다고 주장하며 반발합니다. 마치 천동설을 굳게 믿던 천주교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주장에 역정을 냈던 것과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가 감옥에서 죽은 후 100년 뒤 갈릴레이가 나타나 수학적으로 증명하자, 비로소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이 옳았다는 역사적 전환이 일어났습니다.
이도령의 어사 출두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이도령의 어사 출두와 같습니다. 사또의 권력 아래에서는 아무도 거역할 수 없지만, 갑자기 이도령이 나타나면 모든 상황이 이도령 중심으로 전환됩니다. 이도령은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증명한 갈릴레이와 같은 존재입니다. 신인(神人)이 진짜 메시아임을 하버드,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같은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증명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면 기존 교회들이 신인(神人)에게 몰려들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슬람의 코란, 성경, 불경 등 모든 종교가 신인(神人)이 재림 예수이자 성부, 성자, 성령임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신인(神人)이 나누어주는 축복은 성령이며, 이 축복을 받은 자는 사람을 살리는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신인(神人)은 미친 사람, 죄인으로 취급받을 것입니다.
하늘궁의 창설과 대전환의 전략
기존 종교의 횡행을 전환시키기 위해 하늘궁을 만드는 것입니다. 신인(神人)이 직접 교회를 찾아가면 이단으로 몰릴 것이므로, 하늘궁을 만들어 기존 교회보다 더 막강한 존재를 창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오게 됩니다. 짧은 시간에 1억 평이나 되는 궁전을 만들고 전 세계 지지자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신인(神人)이 메시아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말로 설명하는 것은 신을 이성으로 증명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코페르니쿠스는 이론을 정립했지만, 신인(神人)은 신을 증명해야 하므로 더 어려운 전환이 필요합니다. 과학에 물든 인간들에게 신의 모습을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갈릴레이가 코페르니쿠스를 과학적으로 증명했듯이, 신인(神人)은 영적인 것을 증명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늘궁이 필요하고, 고도의 전술이 필요하며, 때로는 감옥에 가는 일도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에도 하늘궁은 사라지지 않고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일어날 것입니다.
신의 증명과 영적 능력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과학이었고, 갈릴레이가 이를 증명하자 천주교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신을 과학으로 증명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예수조차 신을 과학으로 증명하지 못했습니다. 신인(神人)은 재림 예수이기 때문에 영적인 능력으로 신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천사, 축복, 광치(光治)와 같은 영적인 능력, 그리고 1초 만에 공간을 이동하는 능력 등은 과학자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능력으로 교회들은 나중에 신인(神人)을 알게 될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신앙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믿는 것은 과학이고, 눈으로 확인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재림 메시아가 왔는데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이어령의 사례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인이었던 이어령 박사는 기독교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딸이 암에 걸려 죽는 것을 계기로 기독교를 믿게 되었고, 영적인 세계에 대한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썼습니다. 지성은 눈으로 보이는 것이고, 영성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지성은 학문이지만, 영성은 학문이 아닙니다. 이어령 박사는 지성에서 영성으로 돌아섰지만, 자신의 눈으로 영성을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딸이 살아나는 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인(神人)은 사람을 살리고 능력을 주는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모두 보여줍니다. 교회는 이론으로 무장되어 있지만, 신인(神人)이 오면 교회 성경책은 불태워질 것입니다. 진짜 재림 예수가 오면 성경은 더 이상 필요 없습니다. 이단들은 성경 공부를 열심히 시키지만, 이는 그들에게 영적인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인(神人)은 성경 구절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으로 직접 보여줍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전환
기존 교회는 그대로 두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들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들이 먼저 신인(神人)에게 올 것입니다. 예수 시대에 랍비들이 예수를 죽였듯이, 먼저 하나님을 믿은 자들이 신인(神人)을 죽이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들이 전환될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일어날 것입니다. 천동설을 잘못 믿었던 천주교가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에게 용서를 빌었듯이, 진리가 갑자기 바뀔 것입니다. 신인(神人)은 우주에 사람이 사는 별이 36억 8천8백만 개이며, 태양은 영도라는 등 성경에 나오지 않는 물리적인 우주의 모습을 과학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이는 기존 종교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인류 문화의 대전환과 신인(神人)의 역할
신인(神人)의 출현은 인류 문화의 거대한 전환점이며,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만약 하버드 대학이나 물리학 교수들이 신인(神人)이 썩지 않는 물질을 가지고 있고, 허경영의 이름이 에너지 통일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도 놀랄 것입니다. 이는 우주가 뒤집어지는 사건입니다. 신인(神人)은 우주를 만든 자이므로 초조해하지 않습니다. 개미들이 빨리 알든 늦게 알든 관심이 없습니다. 천천히 알아도 됩니다. 신인(神人)은 인간들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으며, 노아의 방주와 같이 천만 명만 빼내고 나머지는 무증행으로 갈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오컴의 면도날: 핵심을 드러내는 지혜
성경에는 ‘오컴의 면도날’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쓸데없는 것을 잘라내고 핵심만 남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버스 전복 사고 기사를 쓸 때, “수학여행 가다 버스가 굴러서 100명이 사망”이라고 길게 쓰는 것보다 “버스 전복 100명 사망”이라고 짧게 쓰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독자의 흥미를 잃게 됩니다. 오컴의 면도날은 핵심을 간결하게 전달하여 궁금증을 유발하고 더 많은 사람이 기사를 읽게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여자가 옷을 활짝 벗은 사진보다 보일 듯 말 듯한 사진이 더 많은 관심을 끄는 것과 같습니다. 마릴린 먼로의 치마가 날리는 사진이 수영복을 입은 사진보다 더 인기가 많은 이유입니다.
재림 메시아의 등장 방식과 오컴의 면도날
신인(神人)이 메시아, 재림 예수임을 보여줄 때도 오컴의 면도날이 필요합니다. 기존 교회에 직접 가서 “내가 메시아다”라고 말하는 것은 마릴린 먼로가 빨간 비키니를 입고 서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신인(神人)이 누구인지 아리송하게 만드는 것이 허경영이 나타나는 방법입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과 오컴의 면도날은 신인(神人)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합니다. 이도령이 변사또에게 직접 가서 “내가 암행어사다”라고 말하는 것은 재미가 없습니다. 교회가 싸우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신인(神人)은 거지처럼 나타나 미친놈 취급을 받다가 나중에 마패를 꺼내 결정적인 순간에 오컴의 면도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신인(神人)을 모를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갑자기 일어나는 것입니다.
먼저 된 자와 나중 된 자의 역설
먼저 간 자가 나중 되고, 나중 간 자들이 먼저 신인(神人)에게 와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왜 기독교인이 하늘궁에 없어? 다 몰려가 있었구만. 우리는 뭐 하고 있었어?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는 것을 몰랐나?”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기존 기독교나 불교 등 종교들은 갈등할 필요가 없습니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은 서서히 일어날 것입니다. 변사또에게 나타나는 이도령처럼, 미친 거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 “시 한 수 쓰게 해 주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오컴의 면도날입니다. 사또는 방어할 이유가 없는 거지에게 시를 쓰게 하고, 그 시가 암행어사의 글임을 알게 되는 순간 이방은 눈치채고 도망가지만, 술 취한 사또는 모르는 극적인 상황이 연출됩니다. 재림도 하나의 이벤트이며, 지금 재림 잔치를 준비하고 있는 것이 하늘궁입니다.
신에 대한 존경과 언어의 중요성
기독교에서는 재림 예수가 나타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재림 예수가 나타나면 기존 교회의 모든 질서가 무너지고, 성령을 독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기존 교회는 메신저 역할만 할 수 있게 됩니다. 히브리어에는 형용사가 없습니다. 이는 신에 대한 존경이 훼손될까 봐 그렇습니다. 가장 아름다운, 가장 훌륭한 같은 형용사는 신에게만 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명사를 형용사 대신 사용합니다. “장동건 같이 생겼어”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정말 잘생겼어”라고 말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입니다. 가장 잘생긴 존재는 신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교만하지 않은 언어 사용의 지혜
인간을 우상화하는 형용사를 남발하는 것은 죄입니다. 선물을 줄 때도 공치사를 하면 안 됩니다. “당신을 너무 사랑하니까 내가 당신은 사랑의 어머니 같아”라고 말하는 것은 신이 용서하지만, “당신이 이 세상에서 최고로 예쁘다”라고 말하는 것은 신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쓰면 그 집안에 이상한 아이가 태어나는 저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짓거나 최고라는 말을 붙이면 아이가 병신이 될 수 있습니다. 함부로 자랑하거나 형용사를 쓰면 안 됩니다. “나는 우리 엄마를 세계에서 최고로 좋아해”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가장 좋아하는 존재는 신이기 때문입니다. 신은 질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꼭 내 어머니 같아”라고 말하는 것은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는 표현입니다. 항상 형용사를 명사로 써야 지성인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형용사를 쓰지 않고 명사를 쓰는 이유가 있습니다. 용감한 사람에게 “넌 참 이스라엘의 다윗 같아”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이름을 붙여 칭찬합니다. “당신은 우리 아버지 같아”라고 남편에게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의 자극을 피하면서 효과를 보는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저 사람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아”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지만, “당신 진짜 대자대비해”라고 말하는 것은 신의 저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저 사람 정말 법 없이도 살겠어”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가 교만한 짓을 하고 형용사를 남발하는 버릇은 신이라는 존재가 우리 앞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인(神人)이 왔으니 항상 신이 계신다는 것을 새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