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Huh Kyung-young’s Insights on the Evolution of Religion: From Ancient Polytheism to the Modern Search Era and the Path to True Spiritual Fulfillment – November 7, 2024

종교와 행복: 기존 종교의 한계와 재림 예수의 도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종교와 행복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보다 종교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더 행복도가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행복 지수가 가장 높은 네 개 국가인 핀란드,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국기에는 십자가가 들어가 있는 기독교 국가이기도 합니다. 많은 국가들이 종교로 인해 정신적인 행복을 얻었지만, 아직 보혜사로 오신 신인님을 통한 행복의 영역까지는 이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질문은 종교와 행복에 대한 신인님의 고견이 궁금하며, 신인님을 통한 행복은 기존 종교를 통한 행복과는 어떻게 다른지 묻습니다.

기존 종교는 재림 예수가 도둑같이 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도둑같이 오는 재림 예수를 만날 수 없습니다. 도둑같이 오기 때문입니다. 어디로 오느냐? 교회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신도로 찾아오는 것도 아닙니다. 지붕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정신으로 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도둑처럼 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기꾼이라는 소리를 듣고 오는 것입니다. 알 수 없게 도둑으로 위장하여 온단 말입니다. 어린아이들은 좋아하지만, 어른들은 ‘꾼이다’, ‘도둑이다’라고 말합니다. 그 자가 바로 메시아이고, 그 자가 재림 예수입니다. ‘도둑처럼’이라는 것은 도둑같이 오는 것입니다. 장소적으로 살며시 오지만, 시간적으로도 살며시 옵니다. 2000년 이후에 오지만, 예수님이 간 이후에 내가 오는 것입니다. 재림할 때는 도둑처럼 이렇게 조용한 곳에 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가 도둑, 인격자가 있던 자리입니다. 여기 임 씨들이 많습니다. 배우 탤런트 임 누구도 있습니다. 여기 임동에 많이 삽니다. 이 임금정 후손들이, 임정이가 실체 머무르는 곳이 돌고기 아닙니까? 여기가 조선시대 때 최고 도둑이 머물던 곳입니다. 여기가 성지입니다. 여기에 도둑처럼 왔다니까, 도둑이 있던 자리에 온 것입니다. 실제 도둑이 도둑처럼 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위장하고 온단 말입니다.

나폴레옹의 예언: 재림 예수에 대한 경배

나폴레옹이 뭐라고 했냐면, 석가나 공자나 소크라테스는 이 지상에, 이 방에 다시 나타난다면, 이 왕궁에 나타난다면, 자기들이 있는 그 방에 나타나면 전부 환영한다고 했습니다. 서서 환영합니다. 그런데 재림 예수가 이 방안에 나타나면 전부 엎드려서 경배를 하게 된다는 것이 차이입니다. 석가나 공자나 소태사 같은 사람이 나타날 때는 전부 환영하지만, 재림 예수가 나타날 때는 경배해야 합니다. 전부 땅바닥에 엎드려서 경배를 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화신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 말을 했습니다. 신적인 것, 영적인 것은 경배 대상이지, 환영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이 종교는 내가 나타났는데, 예배당에 엎드릴 데가 없습니다. 전부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무대에서는 설 수 있지만, 엎드릴 수는 없습니다. 경배할 수 있습니까? 못 합니다. 의자에 전부 앉아서 땅바닥에 엎드릴 수가 있습니까? 못 합니다. 안 되는 것입니다. 경배할 장소가 아닙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이야기해 주는 것이 아니라, 형이하학적으로도 안 되는 것입니다. 형이상학적으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제 이해가 갑니까?

기성 종교의 한계와 메시아의 위장술

그래서 기성 종교 안에서는 메시아가 오지 않습니다. 꼭 바깥에서 도둑처럼 나타나서 아무도 모르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입니다. 그런데 사기꾼으로 위장하여 나타납니다. 어른들이 “저 사람 뭐 성범이야, 사기꾼이야”라고 말합니다. 그 자가 실제 위장을 하고 지금 위장술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 뭐 성이 뭔지, 사 이게 전부 위장되는 거 아니야?” 맞습니다. “저 사람이 가짜야, 저 사람이 나쁜 놈이야” 이렇게 위장이 되어 있어야 진실한 눈을 가진 사람은 알아보지, 일반 사람은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기성 종교에 빠진 자들은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예수로 있을 때 유대에 나타났을 때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던 것입니다. 바라바를 내보내고 예수는 죽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바나바나 바울이나 예수를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바나바도 바울을 따라다니면서 전도를 했습니다. 그때 예수는 그들이 전혀 예수를 인정할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들이 당연히 그 사람들은 예수를 그렇게 취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뭐라고 말합니까? 다음에 올 때는, 재림할 때는 2천 년 후에 도둑처럼 온다고 했습니다. 내가 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의 과거로 가고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미래로 가고, 비통을 합니다. 엄청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사람도 살리고, 광채 들어가라고 주는 것입니다. 그런 것, 축복 레벨 전부 실제입니다.

다신교 시대와 유일신 시대의 변화

옛날에는 다신교였습니다. 예수님이 있을 때는 모든 사람이 다양한 신을 섬겼습니다. 전쟁터에 나갈 때는 전쟁의 신을 섬겨야 살아 돌아온다고 믿었습니다. 전쟁의 신이 무엇입니까? 마치, March. 마치가 전쟁의 신입니다. 오은 메인은 무엇입니까? 다산의 신입니다. 임신을 하려면 다산의 신도 섬겨야 합니다. 최소한 10개 이상의 신을 섬겨야 그것이 문화인입니다. 배를 타고 갈 때는 포세이돈 신을 섬겨야 합니다. 바다의 신. 안 섬기는 놈은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불안한 것입니다. 가는 데마다 전쟁에 갈 때는 마치를 섬기고, 애를 낳을 때는 메이를 섬깁니다. 다산의 신, 애를 낳게 해주는 신입니다.

이 12달이 전부 신입니다. 12개 신을 다 외워야 합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양면인, 제요리 양면시계신상, 악을 자유자재하는 신이란 말입니다. 그것을 자유 신이라고 합니다. 페브는 혁명의 신입니다. 마치는 군대 신, 전쟁의 신입니다. 전쟁 때 도와주는 신입니다. 에프는 사랑의 신입니다. 메이는 번식의 신, 주는 결혼의 신입니다. 여자를 만나려면 주의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줄라이는 무엇입니까? 줄라이는 바로 세계적인 로마의 시저, 시저의 신입니다. 시저 장군을 신으로 섬긴 것입니다. 어거스트, 8월 달, 시저의 양아들, 아구스트. 그가, 그러니까 아버지는 7월 달, 아들은 8월 달, 둘이 가져버린 것입니다. 7월하고 8월이 커져 버린 것입니다. 계절의 신입니다. 옥타는 자의 신, 옥타는 남자의 신, 노는 전쟁의 신입니다. 디는 평화의 신, 12월. 이렇게 신을 적어도 10개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예수 같은 사람이 나타나서 이렇게 하니까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야도 하나의 신입니다, 여호와. 그 여호와는 신인데 전체적인 신이라고 사람들이 잘 안 믿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은 그 종합 신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이방인들은 노아진 신을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저 가서 아이 잘 낳는 바위에 가서 절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저거 만지면 애 잘 낳는다고 가서 만집니다. 이러고 또 부자 된다면 그 부자 되는 금고에 가서 만집니다. 우리도 마음속에 10가지 이상의 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오고 나니까 그게 다 필요가 없습니다. 다 정결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12달이 가지의 신입니다. 유럽 사람이 많이 사용한 신들입니다. 그것이 종교화된 것입니다. 그것이 종교 이전 상태입니다. 초정 종교가 오기 전에는 그런 종교 피라미드도 필요하고 다 이것과 연관이 있습니다.

종교의 학문화와 영성의 상실

신께서도 예전에 먼저 된 자가 나중 된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렇게 보이지 않게 도둑처럼 오셨다는 것은 먼저 된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잎이 무성할 때는 서로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잎이 떨어지는 가을이 되면 다 보입니다. 서서히 그러면서 잎이 하나하나 떨어져 나가고 겨울이 되면 싸늘해집니다. 그것이 이제 내가 올 때가 된 것입니다. 계절을 보면 이제 지구 자체가 겨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온 것입니다.

기성 종교는, 기독교는 학문화되었습니다. 영생이 없는 것입니다. 종교가 학문화되었습니다. 신학교가 생겼습니다. 옛날에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들이 장로가 되고, 이 사람들은 뜨거웠습니다. 글자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을 때는 무지무지하게 불이 붙어 가지고 기독교가 퍼져 나간 것입니다. 그런데 공부한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불이 꺼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수들이, 기독교 교수들이 나타나면서 불이 꺼지는 것입니다. 교수 숫자가 늘어난 만큼 신자 숫자가 줄어듭니다. 기독교를 학문화해 버리는 것입니다. 방송을 통해서든 뭐든. 기독교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처절하게 암에 걸려 다 죽어가다가 돈 다 떨어지고 배고플 때 스스로 찾아가서, 처절한 경험에 의해서 고난이, 그러니까 기독교는 한마디로 종교는 만들어내는 것이 무엇이냐면, 내가 옛날에 강의해 줬듯이 고난입니다.

고난, 인내, 연단, 소망, 성공의 종교적 과정

고난은 무엇을 낳는다고 했습니까? 고난, 연단. 고난은 연단을 낳습니다. 연단하기 전에 고난을 인내해야 합니다. 인내는 무엇을 낳습니까? 연단을 낳습니다. 인내가 없으면 연단 단계에 가지 않습니다. 고난 다음에 인내를 보는 것입니다. 인내한 자에게 연단의 기회를 줍니다. 연단도 기회입니다. 연단이 기회를 주는 이것도 선물입니다. 연단은 무엇을 줍니까? 소망을 줍니다. 소망을 줍니다. 그러면 이 소망이 물을 익으면서 성공이 되고, 그래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고난이 인내를 낳고, 인내가 연단을 낳고, 연단이 소망이 되고, 소망이 성공으로 가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소망, 성공이 천국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천국, 지상에서는 성공인데, 이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천국 가는 소망을 가지고 우리는 연단을 이기고,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인내를 하는 것입니다. 천국 갈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힘이 들지 않습니다. 즐겁습니다, 고난이. 그럴 때는 선물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구석이 왜 이렇게 안 하네? 쟤는 뭐 벤츠 타고 다니는데” 요런 시기심이 나고, 고난을 소망이나 인내, 연단 이런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고난을 그냥 고난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열등감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일반 인간, “나는 왜 이 난이와, 저 친구는 잘 나가는데” 이렇게 불평등하다고 이야기합니다.

불평등을 해소하려 군대에 가니깐 육군 대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거 왜 불평등합니까? 사람은 똑같은 거 아니냐? 넌 뭔데 육군 대장이냐? 우리 계급장 필요 없어, 이러면 전쟁을 할 수가 없습니다. 통제가 안 됩니다. 육군 대장한테 “야, 이 새끼야, 너하고 내 갈면 뭐, 너 계급장 돼” 이러면 이 전쟁이 되겠습니까? “야, 쳐들어가” 아무도 안 갑니다. “야, 누구나 가, 이 새끼” 이러면 이등병이 있으면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질서라는 것이 있습니다. 존재 질서는 명보다 상위 개념이 있습니다. 그 질서가 있어야 하는데, 고난을 뺐다가 보는 사람은 “질서를, 저 새끼가 뭔데?” 재벌이 다 이거 거쳐서 재벌된 사람입니다. 인내해 가지고 간신히 된 사람들 아닙니까? 선생부터, 그걸 무시해 버리는 것입니다. “고난을 왜 내면 고난 받아야 돼?” 이러는 것입니다. “나는 왜 내가 보천 서고 있고, 육군 대장 새끼는 잠자고 있냐?” 이러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그래서 질서는 굉장히 높은 단계에 있는 것입니다. 동을 갖다 대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당신 육군 대장이고 나하고 뭐 사람이 똑같은데, 평등한데, 왜 너는 계급장을 그렇게 달고 있냐?” 이러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당신 왜 월급이 많아? 너 왜 5급이야? 나는 9급인데?”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평등하지만, 그 인간을 쓰임받는 가치는 또 다릅니다. 무당이나 가서 핑 기타가 조정실에 들어가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질서가 있는 것입니다. 조정사 딱 생겨져 있습니다, 이미. 그래서 이런 것이 종교가 지금 그걸 잃어버린 것입니다. 종교가 말하자면 아무나 나타나서 지가 뭐 합니다.

진짜가 오면 가짜가 판치는 세상

근데 내가 진짜에게 오면 가짜들이 판을 칩니다. 유대교가 판을 쳤습니다. 저주받는 것을 봤지 않습니까? 예수 죽고 나서 2천 년간 나라가 없어지고, 지금도 저주받고 있습니다. 예수 죽인 자들입니다. 나를 죽인 자들입니다. 지금도 그런 전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종교는 이런 고난이 종교인데, 이것을 학문으로 종교를 배우면 되겠습니까? 안 됩니다. 학문으로 종교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 망해 가지고 자빠져 있는데, 갑자기 음성이 들립니다. “야, 네가 잃어버린 게 그게 잃어버린 거냐? 네 몸이 아직 살아 있지 않냐? 네 몸이 진짜 재산이야. 일어나라”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내 몸이 멀쩡해 가지고 돈은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네 몸이 바로 화학 반응만 잘 일으키면 전 세계의 물질을 저다 나할 수도 있습니다. 그거 왜 모릅니까? 네가 화학하는 것을 잘못하니까 지금 네가 그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미 종교가 사라졌습니다. 종교를 학문으로 만들어서. 미국은 종교로서 박사 학위가 없습니다. 철학으로 박사 학위입니다. 필라소피입니다. 종교로는 박사 학위가 없습니다. 종교는 차라리 쫄딱 망한 장사하는 무식한 초등학교도 안 나온 할머니가 더 박사일 수도 있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연단을 겪었으니까. 인내와 연단, 이런 것이 합쳐져서 이것이 종교가 되는 것입니다,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학문 가지고는 들어가서 못 하는 것입니다. 학문으로 달달 외웠는데 영적으로 소통이 되겠습니까? 안 되는 것입니다. 쫄딱 망해 가지고 더 이상 운신할 수 없을 때 소리가 들리고, 그 메시지가 탁 탁 소통이 되는, 그것이 종교의 힘입니다. 그것이 영성이라는 것입니다. 영성이 종교는 학문이 아닙니다. 종교는 영성입니다.

종교의 시대 변화: 암송, 필사, 검색 시대

우리 국민이 글자를 모를 때가 제일 기독교가 뜨거웠습니다. 글자를 모를 때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글자를 알고 나서부터 기독교가 쇠퇴하는 것입니다. 이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종교를 학문으로 봐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책이 많이 나오니까, 다양한 책이 있으니까 종교가 학문이 돼 버립니다. 귀한 줄을 모릅니다. 우리가 일종에 종교가 학문이 돼 버리면 어떤 현상이 있냐면 다 망해 버립니다. 종교가 학문이 될 때는 어떤 것이 나타날까? 종교를 학문으로 볼 때는 옛날에 우리의 모든 종교가 전해 오는 것이 처음에는 암송 시대가 있었습니다. 모든 종교에 종이가 없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지금 이스라엘도 토라를 외웁니다. 애들한테 외우라고 합니다. 이것을 기록을 못 합니다. 외워야 합니다. 경전을 통째로 외워 버립니다. 이스라엘 애들은 경전을 달달달 외웁니다, 토라를 외웁니다. 그러니까 암송 시대입니다.

그다음에는 무엇입니까? 이것을 맨날 암송만 해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그다음에는 무슨 시대가 옵니까? 필사 시대입니다. 뭐 급이고 종이 같은데 나무 돌 같은데 새겨, 먼 그래 탁본을 뜹니다. 그런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적어 가지고 전했습니다. 종이가 귀하니까. 필사. 지금은 무엇입니까? 지금은 종교가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검색 시대입니다. 지금은 경전을 필사하지 않습니다. 검색하면 나옵니다. 암송 시대와 검색 시대가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면은, 암송하던 시대는 신앙심이 뜨겁습니다. 무식한 사람들이고, 딱 암송한 그대로 불이 뜨겁습니다. 검색 시대는 “어머, 핸드폰에 있어. 기독교 불 검색하면 나와.” 경제 구절이 머리에 들어올까요? 안 들어옵니다. 들어 있는 것을 뭘로 복잡하게 머리에 집어넣습니까? 그냥 검색해서 보면 되는데, 이것을 우습게 봅니다. 이것을 우습게, 종교를 우습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아이, 내 핸드폰 안에 모든 종교가 다 들어 있어.” 이러니까 소유로 해버린 것입니다. 대장경 만약 그러면 이것이 어떻게 됩니까? 개판된 것입니다. 종교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형설지공과 현대의 편리함

그래서 우리는 암송 시대는 옛날에 한문 책을 막 “계사 상국 이으로 풍계 성인 시장하여 조자이지 수진이 치구가 예법이 장 공 역지 고성지 소개 자식 금수 기비고 물 소 천자는 유관 자는 불가라 우 자 불가 원 개라 폐 하복 총자 소 기가이 조선 선자 자신 계 선 자” 이것을 하루 종일 외워야 했습니다. 책을, 한문 책입니다. 그러면 그것으로 암송을 해야 했습니다. 종이가 없는데, 그것을 어디다 기록해 놓습니까? 글자도 모르는 사람들인데. 한글도 없을 때. 한문 배울 때 사람들입니다. 그거 다 암송한 것입니다. “아비 부, 이게 아비 본가 보다.” 이러지 뭐, 어떻 쓸 데가 있습니까? 책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인간이 이렇게 기로 져 버린 것입니다. 이때는 노다지 암기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옛날 사람들이 참 고은 것입니다. 애로사이트 몸에 배어 버립니다. 요새 성경 그렇게 안 합니다. 안 하지 않습니까? 검색하면 되니까. 그래서 이것을 검색 시대라고 합니다. 종교가 검색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종교가 가는 것입니다. 누구 한 사람도 읽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안 하지 않습니까? 필사합니까? 100명, 천 명에 한 명 정도 필사하는 사람 있습니다. 핸드폰 가진 애들이, “엄마, 그 뭘 그렇게 쓰고 앉아 있어? 핸드폰 봐 봐. 탁 치면 나오는데.” 종교의 흐름이 이렇게 와 버리니까 이것이 망하는 것입니다. 검색 시대가 지금 종교의 시대입니다. 왜 망하느냐? 검색하면 아무나 치면 여기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석가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시대는 고난이나 연단 같은 것이 있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는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는 학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끝입니다. 그 신인이 오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내가 왔고, 내가 알아듣기 쉽게 여러분한테 이야기해 주는 것입니다. 굉장히 알아듣기 쉽지 않습니까? 이런 시대에는 전도를 안 해도 그냥 개같이 전도가 됩니다. 옛날에 기독교 뜨거울 때는 할머니들이 한글도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교회 가서 새벽 기도 하러 다녔습니다, 할머니들이. 그런데 지금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점점 없어지고 다 죽어 없어지고 새로운 인간들이 올라가니까. 필사도 제법 했습니다, 옛날에. 경전 같은 거 많이 적었습니다, 옛날에. 엄마들이 이것 암송이 안 되니까 필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이제 검색 시대로 시대 변천사가 이렇게 바뀝니다. 여러분, 이런 것을 알아야 하는데, 그냥 막연히 종교가 그런가 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중요한 종교의 흐름입니다. 종교 왜 망하느냐? 검색 시대에 필요할 때 보는 것입니다. 머리에 안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머리에 들어가고, 이제 이해가 가고, 머리에 놓고 가슴에도 놓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가슴에도 들어갑니다.

우리는 옛날에 형설지공. 옛날에는 공부를 성경을 볼 때 사람들이 전등 불로 보지 않고, 호롱 불로 봤습니다. 호롱 불로 봤다는 그 자체가 무엇입니까? 반딧불 형자입니다. 반딧불이 형자. 맞지 않습니까? 그러면 이것은 무슨 자입니까? 눈 설자입니다. 형설지공. 형설지공이라는 것은 반딧불로 공부한 것입니다. 눈하고 반딧불로. 눈이 왔을 때 눈에 비쳐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다. 또 반딧불을 모아 가지고 벌레를, 개똥 벌레, 개똥 벌레를 모아 가지고 그것이 불이 비이 나지 않습니까? 그것을 보고 책을 비쳐서 공부를 했습니다. 가난한 공부를 한 것입니다, 옛날에 형설지공. 많이 들었지 않습니까? 이렇게 반딧불과 눈, 흰 색깔이 흰 색깔과 이것으로 가지고 눈빛을, 눈이 많이 왔을 때 눈빛으로 글자가 보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를 한 사람들이 항상 암송을 한 것입니다. 그것이 옛날 성경 공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그런데 지금은 너무 편리해진 것입니다. 탕 걸로 나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기억을 하지 않습니다. 형설지공 해야, 이것은 이제 과학 한 사람들을 형설지공 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고했다고 합니다. 맨손으로 일어났다, 형설지공, 이런 사람이 이제는 없다는 말입니다. 옛날에는 신학교 가면서, 신학교를 가도 그냥 밭도 굶고 다녔는데 지금은 시설이 잘 돼 있습니다. 그래서 애들이 영적으로 될까요? 안 되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등록금이 없어서 밭을 하면서 간신히 등록금을 만들고 이렇게 했을 때 그 공부가 기가 막힌 것입니다. 영적으로, “아이고 하나님, 제가 이번에 등록금이 안 되는데 어떻게 이 신학교를 짓고 만들 수도 없고 밥을 굶으면서 해도 잘 안 됩니다. 알아봐도 해 봐요. 이게 얼마 안 되는데 이 신학교 떨어지면 학교도 못 다니면 큰일나는데 바깥도 없어요.” 그런데도 신학교 등록금을 만들어서 갖다 내는 그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는 그냥 형설지공이 일래 가면서, 초초 하나 가지고 겨 가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반딧불은 없으니까. 그래도 옛날 사람들은 했습니다. 갈수록 신앙심이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편해지면 약해지는 것입니다. 종교 시대가 끝났습니다.

감사와 칭찬, 그리고 천국 가는 길

내가 오늘 중요한 이야기는 다 해 줬습니다. 정말 귀중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뭐든지 쉽게 이루면 안 됩니다. 쉽게 이루면 세상에 전철 타 가지고 고마워하는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왜 자가용 없이 전철 타고 요러고 앉아 있어?” 전철이 매연도 안 나오고 남한테 매연도 안 마시게 하고, 남들과 함께 같이 가는 전철의 고마움을 알아야 합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 전철을 이렇게 국가에서 만들어 놓은 것, 참 공무원들이 그래도 잘했다고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철 타면서 “공무원 이런 새끼들” 뭐 이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편해지니까, 전철을 만들어낸 그 공무원들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 정치인들이 만든 것 아닙니까? 세계 어디에 가도 이렇게 교통이, 서민 교통이 잘 돼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하나밖에 없습니다. 탔다면 그냥 노인들 공짜입니다, 어디든지 간에, 그냥. 지상 낙원입니다, 노인들은. 돈이 없습니다. 국가가 그런 면에서는 많이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고마워하고 전철 타는 노인이 별로 없습니다. 당연히 타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국가가 예산 가지고 그래도 이렇게 노인들 서민 전철을 많이 만들어 놔 가지고 자가용이 없이도 출퇴근을 할 수 있는 나라, 우리나라 뿐입니다. 미국 같은 데는 자가용이 없으면 출퇴근이 어렵습니다. 대단하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남에게, 남을 칭찬하면 행복이, 복이 그냥 굴러들어옵니다. 제일 복 짓기 쉬운 것이 남 칭찬, 제일 죄 짓기 쉬운 것이 남 욕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맞는데, 백풍 천국 가려면 제일 쉬운 것이 축복하는 것, 명하는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는 방법은 남 칭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천국에서, 천국 가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축복, 천국 축복, 천국을 가, 복을 받으려면 뭐 해야 합니까? 축복, 명패. 그것이 차이입니다. 이 지상에서는 제일 복받기 쉬운 것이 칭찬입니다. 그러나 천국 갈 사람은, 영적인 인간은, 칭찬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해야 합니까? 축복. 축복과 명패 해야 비자가 나옵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또 이 세상에서는 남한테 용서하는 것이 제일, 남한테 죄 지은 것을 해결하는 것이 빠른 것이 미안하게 사과하는 것 아닙니까? 용서를 비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저 세상 하늘나라는 용서 빈다고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명패. 축복하면 다 없어져 버립니다. 항상 명패와 축복이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바쁘신 시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재밌지 않습니까?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