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Huh Kyung young’s Insight: Dilemmas as Opportunities for Heroes and the Wisdom to Navigate Life’s Toughest Choices December 4, 2024

딜레마: 피할 수 없는 선택과 그 본질

딜레마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선택지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을 의미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굶어 죽거나 빵을 훔쳐야 하는 선택, 자율주행차가 사고 시 운전자와 보행자 중 한 명만 살려야 하는 선택, 전염병 지역을 봉쇄할 것인지 확산시킬 것인지의 선택 등이 그 예입니다. 딜레마는 인간의 삶 속에서 시간적 압박과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의 결과에 따라 새로운 변곡점을 만들며 역사를 크게 바꾸기도 합니다. 정답도 없고 윤리, 도덕, 이성, 진로도 가치를 정할 수 없는 회색 지대의 영역인 딜레마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지고 신을 절실히 찾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한순간, 한순간 딜레마에 직면하여 결정을 내려야 할 일이 계속해서 찾아옵니다. 대기업 CEO는 매일이 딜레마의 연속이며, 한 번의 순간적인 판단 착오가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딜레마는 위기이자 기회이다

대기업 CEO가 하나의 사업에 대한 결정을 할 때 그것은 딜레마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딜레마는 언제나 기회를 만들어 줍니다. 영어로 딜레마는 위기이며, 위기는 곧 기회입니다. 딜레마는 찬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딜레마가 많은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며, 딜레마가 없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출근하고 퇴근하는 쳇바퀴 같은 일상만 반복하는 사람들은 딜레마를 겪어보고 싶어도 기회가 없습니다. 10년간 월급 생활을 한 사람에게는 딜레마가 없을 것입니다.

생사의 기로, 다리 위 딜레마

다만 운전하고 가다가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는 것과 같은 딜레마는 만날 수 있습니다. 앞에 차가 쾅 무너져 다리가 내려앉았는데, 브레이크를 밟아 난간에 간신히 멈춰 섰지만 차가 계속 흔들리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운전석에서 내려야 살 수 있을지, 차에 가만히 있어야 살 수 있을지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리가 무너지는 위험 때문에 아무도 도와주러 올 수 없고, 헬기가 오면 진동 때문에 다리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운전자는 차에 앉아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문 밑으로는 죽음이 도사리고 있고, 뒤따라오던 차들도 무게 때문에 다리가 더 내려앉을까 봐 가까이 오지 못합니다. 마이크로 지시만 할 뿐입니다.

이때 뒷좌석에는 자녀들이, 옆자리에는 배우자가 타고 있어 온 가족이 몰살당할 직전입니다. 차는 멈춰서 흔들리고, 앞바퀴는 걸려 내려가면서 뒷바퀴는 이쪽 다리에 붙어 흔들리는 상황, 이것이 바로 딜레마입니다. 이 위기에서 살아남으면 영웅이 되는 기적 같은 순간입니다. 이때 운전자는 빨리 배우자와 자신이 앞문을 열고 내려야 합니다.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면 위험합니다. 앞쪽을 가볍게 해 주어야 뒤쪽이 무거워져 덜 흔들리기 때문입니다.

딜레마 속 과학적 판단과 지혜

문을 열고 내릴 때 문을 활짝 열면 차의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차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속하게 차 문을 조금만 열고 비비고 나와야 합니다. 무게 중심이 차 문에 쏠리게 해서는 안 됩니다. 차 문을 약간 열고 몸만 빠져나오면 앞쪽으로 무게가 쏠리지 않고, 둘이 빠져나오면 뒤가 무거워져 차가 앞으로 쏠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뒷문을 살짝 열고 아이들을 꺼내 탈출해야 합니다.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은 모든 과학적인 상식과 지식이 총동원되어야 합니다.

문을 덜 열고 내리는 것이 아니라, 빨리 내려야 뒤가 가벼워지고 앞의 무게를 가볍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문을 활짝 열면 두 문이 앞으로 확 가면서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려 모두 죽게 됩니다. 문을 안 열고 가능하면 창문이나 지붕 쪽으로 해서 뒤로 넘어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문을 조금 열고 나갈 것인지, 문은 그대로 놔두고 뒤로 빠져 뒷문을 열고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이 빠를지, 이 판단을 잘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이것이 딜레마입니다.

앞 의자에서 뒤 의자로 가는 것 자체가 차의 진동을 더 추가할 수 있습니다. 문을 살짝 열고 빠져나가는 것과는 다릅니다. 여러 가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문을 안 열고 뒤로 넘어서 뒷자리로 가면 무게 중심을 뒤에 주어 차가 덜 흔들리지만, 차는 조금씩 앞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 순간에 빨리 무게 중심을 바꿔주지 않으면 차는 떨어집니다. 이러한 딜레마의 순간에는 그 사람의 모든 과학, 철학, 수학 지식, 피타고라스 법칙까지 총망라되어 동원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평소에는 괜찮지만 위기 때는 실력이 얼마만큼 축적되어 있고 경험이 얼마만큼 있느냐에 따라 위기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는 제임스 본드와 간첩의 지능 싸움과 같습니다. 위기일발의 순간은 그 사람이 계속 딜레마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레이건 대통령의 유머와 딜레마 극복

레이건 대통령이 총을 맞았을 때 한 말이 있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맨날 총을 맞아 총 맞는 것이 장난인 줄 알았고, 총알을 피하지 못한 것이 자신의 실수라고 말했습니다. 영화배우로 있다 보니 총알이 날아오는 것을 장난으로 알고 피하지 못했다는 유머였습니다. 간호원이 수술을 위해 옷을 벗기자 “낸시(부인)가 우리가 이러고 있는 걸 알면 어쩌지?”라고 말했고, 의사에게는 “당신 공화당 확실해요? 민주당이면 나를 칼로 죽일지도 모르니까”라고 말해 모두를 웃게 했습니다.

레이건에게 총을 맞았다는 것은 딜레마였지만, 그는 그것을 유머로 승화시켰습니다. 자신이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총알을 피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말했습니다. 배우로 활동하면서 가짜 총알만 보았기에 진짜 총알을 예사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총알이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경호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면서 경호원들은 덜 미안해했고, 레이건은 자신의 죽음을 장엄하게 생각하는 지도자다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미국인들은 ‘덕(duck)’이라는 단어를 몸을 잽싸게 피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합니다. 레이건은 “I forgot to duck”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총알을 피하는 것을 잊어버렸다고 표현했습니다. 이는 경호원들의 실수를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죽음을 유머로 승화시킨 명언으로 평가받습니다.

젊은 세대의 딜레마와 위기 대처 능력

위기에 대처하는 능력은 나이가 많을수록 경험이 많아 더 좋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평생 없던 일을 처음 당하기 때문에 위기에 약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위기를 많이 겪고 있지만, 젊은이들은 경험이 부족하여 위기 앞에서 그대로 노출됩니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내가 내려야 가족을 구하는지, 그대로 있어야 가족이 안전한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은 무게 중심, 수학, 교육받은 지식, 피타고라스 법칙 등 모든 함수 관계가 머릿속에 동원되어야 합니다. 차가 흔들리고 절벽에 걸려 떨어지면 죽는 상황에서 운전수가 내리면 무게 중심이 덜 흔들릴지, 자기 몸이 어떻게 빠져나가는 것이 좋은지, 아니면 있는 것이 좋은지 계산해야 합니다.

위기는 위험한 기회이다

위기는 글자 그대로 위험한 기회입니다. 행운은 언제나 위험한 기회 속에 있습니다. 위험하지 않은 기회는 발전이 없습니다. 완전한 위험한 기회를 위기라고 합니다. 위기라고 하면 기회가 아닌 줄 알지만, 사실은 위험한 기회입니다. 이 위험한 기회를 쟁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전쟁이 있는 곳에 영웅이 나오고, 공부 못하는 곳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전부 다 공부를 잘하면 잘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습니다. 언제나 반대급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딜레마를 겪습니다. 생사의 딜레마, 성공과 실패의 딜레마 등 모든 것이 딜레마입니다.

높은 이자의 주택 대출을 갈아타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딜레마입니다. 어떤 사람은 갈아타서 1년에 200만 원을 절약했지만, 어떤 사람은 갈아타려다가 보이스피싱에 당해 집을 날리기도 합니다. 너무 돈에만 좋게 다가가다 보면 보이스피싱에 빠질 수 있습니다. 딜레마는 모든 사람에게 위기의 기회를 줍니다. 안전한 기회는 세상에 없으며, 그것은 아무것도 주지 못합니다.

좁은 길을 택하는 용기

넓은 길은 가지 말아야 합니다. 넓은 길은 가봐야 동전 하나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좁은 길로 가야 산삼을 캘 수도 있습니다. 남이 안 가는 길로 가는 것이 위험한 기회를 가는 것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험을 감행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감행하여 성공한 사람이 있는 것이지, 편안한 가운데 기회가 오는 것은 없습니다.

남자의 역할: 딜레마에 대한 대비

남자는 언제나 딜레마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여자와 데이트를 하러 갔는데 조폭들이 둘러쌀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호주머니에 모의 권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장난감 권총이지만 실제 권총처럼 생긴 것을 하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이 둘러싸고 주먹이 날아오려 할 때 “내 경찰이야, 이 새끼들 잘 걸렸다! 너희 여기서 공원에서 이런 짓 몇 번째야? 여자 몇 번 이렇게 했어? 똑바로 서, 이 새끼들아!”라고 외치면 전부 손을 들고 엎드리거나 달아날 것입니다. 가짜 총이라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준비성이 있는 것입니다. 딜레마에 대해 언제나 예비하는 마음이 있어야 여자를 보호할 수 있습니다.

태권도나 무술 실력이 있으면 더 좋지만, 굳이 무술을 쓸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가짜 권총을 가지고 있으면 좋습니다. “야, 인마, 내 경찰 신분증 보여줄까?” 하면서 꺼내는 척하면 됩니다. “이 새끼들, 이 진짜 경찰, 너희들 잘 걸렸다. 우리가 잠복하고 있는 중이야. 이 여자도 경찰이야, 너도 권총 꺼내!”라고 일부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자가 얼마나 놀라겠습니까? 나중에는 가짜라고 알려주면 됩니다. 현장에서는 당황하는 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이런 순발력 있는 준비성도 있어야 합니다.

남자는 언제나 자기 가족이나 주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대비책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태권도도 배우고 무술도 배워야 합니다. 평소 남자들은 자기 몸을 가꾸면서 유단자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공부도 하고 스포츠 무술도 할 줄 아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여자는 자기 친구를 구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위기가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위험한 기회에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은 전부 영웅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든 전쟁에서 이긴 장군들이 유명한 것은 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영웅이 있는 것입니다.

설악산 딜레마: 자연 보호와 생업의 충돌

과거 신흥사에 있을 때 딜레마와 비슷한 상황을 겪었습니다. 어부들은 배를 만들기 위해 나무를 캐야 했고, 스님들은 나무를 지켜야 했습니다. 설악산은 국립공원이 아니었지만, 낙락장송처럼 좋은 소나무만 노려 베어갔습니다. 배를 만드는 데는 나무의 뿌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송진이 가득한 소나무가 아니면 물에 들어가면 썩기 때문에, 설악산의 낙락장송처럼 비바람을 이겨낸 소나무의 송진이 많아야 배가 썩지 않았습니다. 외국에서 수입한 나무는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매년 설악산의 소나무가 없어지자 조계사에서 산을 감시하는 상감 스님이 내려왔습니다. 그는 무술 유단자였습니다. 밤마다 스님과 함께 산을 돌아다니면 소나무를 몰래 베어가는 나무꾼들을 만났습니다. 열댓 명의 나무꾼들이 도끼와 톱을 가지고 밤에 몰래 와서 나무를 베어갔습니다. 베는 현장을 찾을 수 없어 내려오는 길목에서 기다렸습니다. 추운 날씨에 기다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나무꾼들이 오면 도끼와 톱을 들고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가는 사람들이었기에 제압하려 하면 스님과 자신을 죽여 묻으려 했습니다. 발차기를 하고 도끼를 뺏어 던지며 싸웠지만, 달밤에 싸우는 것은 매우 위험했습니다.

속으로는 그 사람들이 안쓰러웠습니다. 그것도 생업이었고, 그 나무를 가져가야 배를 만들고 일당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무꾼들을 잡는 것도 괴로웠습니다. 스님에게 “저 사람들을 처리해야 합니까? 싸워야 합니까? 인정사정없이 해야 합니까? 설악산이 다 없어진다고 합니다”라고 물었습니다. 산 경관을 망가뜨리는 사람들이지만, 다른 것으로 밥 먹고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배를 만들지 못하면 고기를 잡을 수 없으니, 이것은 완전한 딜레마였습니다.

결국 이 딜레마 때문에 설악산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밤마다 어부들을 두드려 패고 도끼를 뺏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신인이었기에 다치지 않았지만, 스님은 무술 고수였고 인정사정이 없었습니다. 자식도 마누라도 없으니 죽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싸웠습니다. 스님들은 싸움하면 무서운 존재였습니다. 사명대사의 승군이 일본군에게 무서웠던 이유도 그들이 생사를 초월한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딜레마를 정리한 것은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선악을 떠나는 길밖에 없었습니다. 절에서 많은 경험을 하며 인생을 배웠습니다. 한쪽에서는 잡아먹으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막으려 하는 것이었습니다. 산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산을 도벌하는 사람과 지키는 사람의 싸움에서 나무가 살아남는 것입니다. 국립공원 앞바다에서는 배를 만들어야 하니 밤마다 배 만드는 업자들이 기어들어와 소나무가 야금야금 없어졌습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도 소나무를 당할 수 없었습니다. 플라스틱 같은 재료는 가볍기 때문에 배가 소나무처럼 무게가 있으면서 바다에서 안정감을 가질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