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Huh Kyung-young’s Digital Perspective on Life, Death, and the Pursuit of Spiritual Fulfillment – Fubruary 1, 2023

죽음과 삶: 사후 세계를 향한 여정

오늘은 ‘잘 죽는 방법’에 대한 질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잘 산다’는 것은 사후 세계를 고려하지 않는 삶일 것이고, ‘잘 죽는다’는 것은 사후 세계를 고려한 삶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하여 자손을 만들고 죽는 것, 독신으로 조용히 살다 죽는 것, 이기적으로 살다 죽는 것, 이타적으로 살다 죽는 것 등 주어진 환경과 선택에 따라 죽음의 점수표는 다양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질문은 사후 세계 관점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는 것이 가장 잘 죽는 방법인지, 그리고 잘 죽은 인간은 사후 세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인지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노화: 가장 무서운 질병

인간은 누구나 노화가 진행됩니다. 노화는 질병 중 가장 무서운 질병입니다. 어떤 원 세포든 탄생하면 죽어가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세포는 매일 죽어 나가지만, 동시에 새로운 세포가 잘 만들어집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죽어간다는 의미이며, 죽어간다는 것은 또다시 살아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생사무변론: 디지털로 반복되는 삶

죽음과 삶은 ‘사향하처(死向何處)’입니다. 이는 우리가 어디로 죽어가고 있는가, 어느 곳을 향해 죽어서 가고 있는가를 의미합니다. 천국으로 가는 사람, 지옥으로 가는 사람, 동물로 가는 사람 등 가는 곳만 다를 뿐,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점은 모두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생과 사는 별개의 인연이 아닙니다. 생과 사는 살아있는 동안에도 계속 반복되는 컴퓨터의 0과 1처럼 디지털로 순환합니다. 죽는 세포와 다시 태어나는 세포가 반복되듯이, 죽는 영혼이 있으면 다시 태어나는 영혼이 기록됩니다. 인간의 나고 죽는 것은 하나의 사이클이며, 이는 아날로그가 아닌 디지털입니다. 무한대가 나오는 오만가지 현상이 컴퓨터처럼 반복되는 것이 생사무변론입니다.

죽음의 공포: 무지에서 비롯된 불안

생사는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왜 우리는 죽음에 대한 고통과 공포를 느끼는 것일까요? 이는 우리가 시험을 치르고 나서 점수를 모를 때 불안감을 느끼는 것과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한 점수를 모르기 때문에 다음 세계가 어떻게 정해질지 몰라 불안한 것입니다. 하늘 위에 온 사람들은 천국에 100번 간다고 말합니다. 디지털이 멈춰버리는 것, 즉 0과 1의 반복이 끝나버리는 것이 천국입니다. 영원히 0과 1을 반복하지 않고 존재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심장 판막: 정교한 생명의 증거

노화의 신비는 심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심장은 하루에 약 10만 번을 뛰며, 100년을 뛴다고 가정하면 어마어마한 횟수입니다. 심장 판막은 매우 얇고 정교하게 세 개가 오므려져 피를 뿜어내고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100년 동안 뛴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나이가 들면 판막이 손가락만큼 두꺼워져 제대로 닫히지 않아 수술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인공 판막은 10년 정도밖에 못 쓰지만, 태어날 때부터 가진 판막은 100년을 씁니다. 심장 판막의 구조를 보면 인간이 우연히 만들어진 존재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교한 심장 판막이 평생 뛰면서도 점점 두꺼워지는 노화 현상은 피할 수 없습니다.

죽음은 끝이 아닌 전환: 영혼의 디지털 연속성

‘기가 죽는다’는 말은 죽는 것도 사는 것이고, 사는 것도 죽는 것이기에 ‘잘 죽는다’는 말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도달해야 비로소 잘 죽는 것입니다. 생사무변론처럼 죽어가고 있지 않으며, 생사는 둘이 아닙니다. 죽는다는 말 자체가 인간이 영혼의 존재를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영혼은 물질이 아니라 QR 코드와 같은 소프트웨어입니다. 하늘에서 부여받은 개개인의 QR 코드는 암흑 에너지이며, 이는 다른 사람과 섞일 수 없습니다. 이 QR 코드가 다음 몸에 들어가 새로운 존재를 차지하는 것입니다.

죽음의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죽음이 두렵고 공포를 느끼는 것은 죽고 나서 어디로 갈지 모르고, 그 세계를 경험해 본 기억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르는 데서 오는 공포는 곧 무지입니다. 깜깜한 곳에 들어가 불이 없으면 공포가 오지만, 그곳이 어디인지 알면 공포는 줄어듭니다. 마치 납치되어 지하실에 떨어졌을 때, 그곳이 어디인지 모르면 공포스럽지만, 몰래카메라임을 알면 공포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죽음 자체가 하나의 연극이라는 것을 깨달으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당연히 받아들이고 다시 몸을 받게 되므로 공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눈을 감으면 다른 세상이 펼쳐지는 것과 같습니다.

신 앞에 서는 인간: 생사의 결론

누구나 죽으면 신 앞에 나타나야 합니다. 거기서 결론이 나옵니다. 백궁에 나타나 시스템에 의해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생사는 별개의 인연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이 있는 것으로 바뀐 것이 생명체입니다. 전생으로 가보면 이미 존재했던 것입니다. 무기체에서 유기체로, 무정물에서 생명으로, 그리고 인격체로 바뀌는 과정은 마치 영화 촬영을 준비하는 것과 같습니다. 백궁에서 볼 때는 잘 죽고 잘 사는 것을 떠나, 진입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습니다.

인간의 욕구 8단계: 영성으로 향하는 길

인간의 욕구는 8단계로 나뉩니다. 1단계는 생리 욕구(먹고 자는 것), 2단계는 안전 욕구(안전한 것을 찾는 것), 3단계는 애정 욕구(가족을 가지고 싶은 것), 4단계는 존경 욕구(존경심을 가지고 싶은 것), 그리고 그 위로 자아실현 욕구, 영혼에 대한 욕구, 종교를 찾는 욕구 등이 있습니다. 이 8단계를 순조롭게 올라가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생리 욕구조차 해결하지 못하고 안전 욕구도 채우지 못하는 사람들은 1단계에서 인생이 끝나버리기도 합니다. 석가모니는 존경 욕구까지 모두 채웠기에, 그 위에 있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 욕구에 도달하여 왕실을 떠나 영혼의 욕구, 영생의 욕구까지 추구한 것입니다.

잘 먹는 삶의 역설: 죽상동맥경화증

인간이 생리 욕구 단계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먹는 것이 오히려 병을 부르기도 합니다. 죽상동맥경화증은 피가 죽처럼 걸쭉해지는 고지혈증과 같은 동맥경화증으로, 잘 먹는 사람들이 많이 걸리는 병입니다. 피가 걸쭉해지면 몸을 돌아다니다가 머리에 들어가면 중풍이 오고, 어깨에 들어가면 쑤시고 아픕니다. ‘죽상’이라는 단어는 피가 걸쭉하다는 의미입니다. 동맥이 죽처럼 변하고 떡이 되어 경화증이 오면 가장 위험한 것이 복부 대동맥 확장증입니다. 복부 대동맥이 풍선처럼 확장되어 피가 고여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이러한 질병들은 아무 증상 없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병들을 안고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