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1 성장통의 진리 The Truth of growing pains: Reversing Values and the Objective Worth of Humanity by Huh Kyung Young – June 21, 2014

성장통의 진리: 인간 가치의 재발견

오늘은 ‘성장통의 진리’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인간의 가치는 고난을 통해 비로소 깨달아집니다. 과거 이등병 시절, 고참으로서 후임을 도와주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저 후임이었던 사람이 훗날 검사장으로 다시 만났을 때, 그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고생을 아는 사람은 타인을 무시하지 않으며, 겸손하게 인사할 줄 압니다. 요즘 자녀를 하나만 키우는 부모들은 자녀에게 인사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합니다. 어른을 봐도 인사하지 않고, 어른이 먼저 인사하면 고개만 끄덕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성장 과정에서 고통을 겪지 않은, 즉 ‘성장통’을 겪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대나무는 한 번에 곧게 자라지 않습니다. 중간중간 ‘성장통’을 겪으며 마디를 만듭니다. 그래야 단단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 속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가 보호할 때는 괜찮지만, 부모가 세상을 떠나고 홀로 남겨지면 작은 충격에도 쉽게 부러지고 맙니다. 이런 아이들이 우리 사회에 상당히 많습니다.

전도된 가치와 왜곡된 인식

현재 우리 사회의 가치는 완전히 ‘전도’되어 있습니다. ‘전도’란 뒤바뀌었다는 의미입니다. 가치가 거꾸로 된 것입니다. 다른 말로 ‘착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착각하는 것을 넘어 ‘왜곡’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곡은 알면서도 진실을 뒤집는 행위입니다. 예를 들어, 어른에게 인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인사하지 않거나, 부모님 말씀에 시비를 거는 행위가 그렇습니다. 바른 것이 아닌 것을 바르다고 고집하는 것이 바로 왜곡입니다.

성장통을 겪지 않은 사람은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학생들이 희생되었을 때, 많은 부모가 비로소 자식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자식이 공부 못한다고 고민하고 싸우던 부모들이 다른 자식들의 죽음을 보며 “네가 공부 못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네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는 것만으로 고맙다”고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그때서야 전도와 몽상에 빠졌던 사람들이 제자리로 돌아와, 건강한 자식의 가치를 깨닫게 됩니다. 성장통을 겪지 않고 고생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인간의 가치를 전혀 모릅니다.

세대 간 성장통의 차이와 노인 공경의 의미

오늘날 젊은 세대는 성장통이 부족합니다. 반면 6.25 전쟁 이후 세대, 즉 지금의 어른들은 엄청난 성장통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존경심이 생깁니다. 그 사람이 살인범이든 사기꾼이든 도둑놈이든, 심지어 실업자라도 그 앞에서는 고개가 숙여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유교 사변의 폐허 속에서 우리나라를 이만큼 일으켜 세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노인들에게 잘해드려야 합니다. 노인들만이 자신들이 겪었던 고생을 알기 때문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그때 라면 먹으면 되지 않았느냐”고 말하지만, 그때는 라면조차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인간의 주관적 가치와 객관적 가치

인간의 가치에는 주관적인 가치와 객관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주관적인 가치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것, 자신의 형편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은 오직 객관적인 가치만을 인정합니다. 객관적인 가치는 신의 입장에서, 즉 부모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모님이 있습니다. 내가 스스로를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자살하고 싶을 때도, 부모님을 생각하면 나의 가치는 무궁무진해집니다. 기독교의 탕자 이야기를 예로 들어봅시다.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가 되어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그를 따뜻하게 맞아주고 잔치를 열어주었습니다. 맏아들이 볼 때 동생의 가치는 0점이었지만, 아버지가 볼 때 동생의 가치는 자신의 목숨과 바꿀 수 있을 만큼 소중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백점짜리로 보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타인을 형이 동생을 보듯 라이벌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세상에 절대적인 라이벌은 없습니다. 탕자처럼 죄를 짓고 고난을 겪어본 사람은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이 넓어집니다. 남들이 볼 때는 보잘것없는 존재일지라도, 그를 낳아준 부모의 입장에서는 한없이 소중한 존재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치는 무지무지하게 소중합니다.

타인 비판의 위험성과 인간 존중의 자세

우리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스스로의 가치를 폄하해서는 안 됩니다. 사업에 실패하고 돈 한 푼 없어도,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다시 일어서야 합니다. 부모님에게 나는 수천억 원보다 더 소중한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신이나 부모가 부여한 객관적인 가치는 무궁무진합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소중합니다.

남에게 반말하거나 정면으로 비판하는 행위는 절대 나쁜 것입니다. 아무리 그 사람이 살인범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비난하는 것은 그 사람의 부모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입니다. 교도소 목사님이 살인범을 찾아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신의 관점에서 그 사람의 죄를 묻지 않고 인간 자체의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하늘에서 천금 같은 존재입니다. 부모나 신의 입장은 같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구원받은 존재를 넘어 하늘에서 볼 때는 보물 덩어리입니다. 어떤 종교가 여러분을 죄인이라고 말할 때, 저는 여러분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하늘에서는 여러분을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알려주기 위해 온 것입니다. 아버지가 열 명의 아들 중 어떤 아들을 구원하고 어떤 아들을 구원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짓을 해도 아버지는 자식을 용서하려 합니다. 이미 용서는 끝난 것입니다.

종교의 잘못된 가르침과 선악과의 의미

일부 종교는 인간의 고귀한 가치를 왜곡합니다. 술을 마시고 나쁜 짓을 했다고 해서 그 인간이 나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가치가 100이라면, 살인이나 탈선은 0.1% 정도의 가치만을 깎아내릴 뿐입니다. 인간의 가치는 99.9%가 대단합니다. 살인범도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보면 가서 건져냅니다. 강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한 시골의 할아버지가 의병을 일으켜 아들과 손자까지 3대가 모두 왜적과 싸우다 죽었습니다. 임금은 이 집안에 ‘불천위’를 내렸습니다. 불천위는 나라에서 대대로 제사를 지내주는 것으로, 최고의 영예입니다. 이는 그 집안의 가치가 천하에 유일무이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석가모니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세상에 오직 나만이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모든 사람이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존귀하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이 남이 아니며, 모두가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이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석가모니가 깨달은 것입니다.

성장통의 중요성과 사랑의 네 가지 기법

성장통을 겪으며 고생한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깊어집니다. 반면 부유한 환경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사람은 타인을 하찮게 여기기 쉽습니다.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수많은 전쟁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통을 많이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을 보는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반야심경에는 ‘전도몽상’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인간은 모든 생각이 뒤바뀌어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70억 인구가 각자 자기 생각대로 착각하며 타인을 평가합니다. 성경에서는 인간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라고 말합니다. “저놈은 나쁜 놈이고, 저놈은 망한 놈이고, 저건 성공한 놈이다”라고 인간을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식의 가치는 부모만이 알듯이, 여러분의 가치는 여러분을 이 땅에 보낸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타인을 못났다고, 잘났다고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모든 사람은 대단히 존경스러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볼 때는 완벽한 자식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효자보다 탕자를, 맏아들보다 동생을 더 좋아하십니다.

선악과를 따먹는 사람은 성장통이 없는 사람이며, 항상 반대로 행동합니다. 그래서 세상이 사악해지는 것입니다. 교회나 절에서 선악과의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합니다. 우리는 판사나 검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살인한 사람을 잡지 않아도 하늘이 그 죄를 묻기 때문에, 인간이 이중삼중으로 죄를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욕을 해도 되갚아줄 필요가 없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그 사람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하늘에서 그 사람에게 벌을 내립니다.

상대방을 선악과를 가지고 바라보면 사랑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랑은 네 가지 기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성경에서는 사랑을 가지면 성령이 온다고 말합니다. 아홉 가지 성령 중 첫 번째가 사랑입니다.

  1. 얼굴로 기쁨을 주는 것: 항상 미소 짓고 밝은 표정을 유지해야 합니다. 전철에서 노인을 보면 자리를 양보하고,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눈인사라도 건네야 합니다.
  2. 말씨로 기쁨을 주는 것: 말을 할 때 상대방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실수로 발을 밟았을 때 “괜찮습니다”라고 기분 좋게 말해야 합니다.
  3. 물질로 기쁨을 주는 것: 작은 물질로도 남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용돈을 받아 점심을 굶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사다 드리는 아들처럼 말입니다.
  4. 몸으로 기쁨을 주는 것 (봉사): 휠체어 탄 사람을 도와주거나, 교회나 절에서 봉사하는 등 몸으로 남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기법을 실천하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함께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 곁에 오게 되는 것입니다.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성, 온유, 충성, 절제 등 아홉 가지 성령이 따릅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따먹는 사람은 이런 성령을 가질 수 없습니다. 언제나 모든 것을 반대로 보고, 불만투성이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스트레스를 받아 몸과 건강을 망칩니다.

가난한 집에서 고생하며 성장통을 겪은 사람이 크게 성공하면 국민들의 민심을 잘 파악합니다. 그러나 좋은 집안에서 조용히 자란 사람은 국민 민심을 파악하는 데 서툽니다. 국민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은 다른 말만 하다가 국민에게 외면당합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다면, 즉 하나님이나 부처님처럼 모든 인간을 존중한다면, 우리는 사랑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밥상머리에서 자식을 꾸짖는 것은 아이에게 소화불량과 노이로제를 안겨줄 뿐입니다. 자녀 교육에 있어서도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는 문제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