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와 실패의 진리: 인생은 끊임없는 실험이다
돈이 들어가는 이야기는 기분 나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운이 올 때, 마치 장님이 동경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건물을 짓다가 잘못된 부분이 생겨도 그것을 실수라고 부르지 실패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고치고 나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인생 또한 죽기 전까지는 그것이 실패인지 실수인지 알 수 없습니다.
히틀러는 54세에 죽을 때까지 운대가 아주 좋았습니다. 그가 50대에 죽었지만, 54세까지 그의 팔자는 매우 잘 나갔습니다. 자유 진영에서는 그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돈 때문에 대학을 중퇴했을 때, 사람들은 그가 박사 학위를 받아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돈이 어려워 대학을 중퇴하자 비웃었습니다. 친구들은 그를 흉보고 실패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경험을 했을 뿐이며, 실험을 했을 뿐입니다.
에디슨은 2만 번의 실험 끝에 전구를 개발했습니다. 그는 에너지를 빛으로 바꾼 것입니다. 에너지를 무엇으로 빛을 만들려고 했을까요? 번개를 보고 연구한 것입니다. 물을 가지고 어떻게 하면 전기가 오고, 불이 번쩍하며 전구가 환해지는지, 그 엄청난 빛이 나오는 것을 연구하여 만들어낸 것입니다. 전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실수한 횟수가 2만 번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지만, 이 말은 틀린 것입니다. 에디슨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단지 실험을 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계속 시도하다가 안 되면 다시 하고, 이 사업이 안 되면 저 사업을 해보는 것이 실험입니다. 인생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실패가 어디 있겠습니까?
한국의 불교는 2,500년 이상, 기독교는 150년 동안 한국에서 실험을 해왔습니다. 계속 시스템을 바꿔가며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기우제를 지내면 항상 비가 옵니다. 그 이유는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실수나 실패가 없습니다. 한 달이 걸리든 두 달이 걸리든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멈추지 않기 때문에 100% 비가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그런 것을 참지 못하고, 금방 이익이 없으면 그만둡니다. 인디언의 기우제와 같은 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마무리가 중요하다
인생은 끝나는 날까지 알 수 없습니다. 내일 죽는데 오늘 국회의장이 골프장에서 추태를 부리면 그 사람은 인생의 실패자가 됩니다. 남들이 볼 때는 부러운 인생이었을지라도, 죽기 하루 전에 여자 문제가 생기면 실패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자를 볼 때는 항상 그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부모가 어떤 마음으로 딸을 키웠을지,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내가 나쁜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도록 양보해야 합니다. 자기 부인이 있는데도 남의 사람을 뺏어가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모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남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기 예쁜 여자가 있다면, 그 여자가 시집갈 때가 되었다면 어떤 남자를 만나야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 자기 딸처럼 생각해야 합니다. 그녀를 세컨드로 만들 생각을 한다면 나쁜 사람입니다. 부모가 그 딸을 키우며 겪었던 고통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으로 살면 물 한 그릇이라도 없는 사람과 나눠 먹고, 항상 손님을 대접하듯이 해야 합니다. 목말라 하는 사람 속에는 천사가 들어 있습니다. 내가 물을 주는 거지, 밥을 주는 거지 속에 반드시 하늘의 천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완전히 거지처럼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어느 날 밤 10시쯤 식당에 갔는데, 문을 닫은 작은 식당에 어떤 남녀가 나무 궤짝 두 개씩을 짊어지고 들어왔습니다. 들어보니 엄청나게 무거웠는데, 찹쌀 모찌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낮에 떡을 만들고 밤 12시부터 새벽 2, 3시까지 떡을 팔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여자도 몸이 약해 보였고, 남자도 약간 장애가 있는 듯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무거운 것을 어떻게 들고 다니냐고 물으니,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떡을 많이 사서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나누어 먹었습니다. 제가 제일 먼저 개시를 해 주며 많이 팔라고 응원했습니다. 그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들을 낳은 부모의 마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여자가 허리도 안 좋은데 무거운 것을 지고 다니며 파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들은 남을 속이는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보니 마음이 아팠고, 밥을 먹고 영하했습니다. 이처럼 남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떡을 팔러 다니다가 저녁에 나에게 개시를 하니 힘이 생겨 많이 팔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용기를 넣어 준 것입니다. “고생한다”는 말을 하면 자존심 상할까 봐 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지, 내 마음을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 하고, 다른 부모님 마음도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저 노인들을 어떻게 보살필까 생각해야 합니다. 여당에서 노인들에게 한 달에 70만 원을 주던 것을 20만 원씩 깎아 생색만 낸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나님 마음이 되면 쓰레기를 가득 싣고 지정된 곳까지 가야 하는데, 중간에 남의 밭에 몰래 버리려고 망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 마음으로 돌아가서 보면 내비게이션에 몰래 카메라가 있습니다. 쓰레기를 버리고 가면 나중에 그만큼 차 사고로 피해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쳐다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라면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일체유심조와 사무량심: 마음의 바른 자세
오도정적(吾道正寂)이면서 내 마음이 바르면 모든 사람이 바르게 보이고 바르게 됩니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비슷합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드는 것이지, 저 사람이 인상이 안 좋다거나 뭐가 안 좋다고 판단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 하는데, 왜 남을 좋다 안 좋다 판단하냐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키운 부모는 어떻겠습니까? 내 마음이 바르면 모든 사람이 바르게 보이기도 하고 바르게 됩니다. 굳이 세상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왜 강의를 할까요? 내 마음이 바르면 모든 세상 사람 마음이 바르게 되는데, 왜 굳이 강의를 해야 할까요? 그것은 사람들이 모르기 때문에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즉, 마음이 바른 자가 없기 때문에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런 자가 나와야 세상 사람들을 다 좋게 보는 사람이 늘어날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가 별로 없습니다. 마음이 바른 자가 드물기 때문에 이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나 예수님이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처음에 주장하는 자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마음을 가지면 세상 만사에 고통이 없고, 석가모니 마음으로 바꾸면 남과 부딪칠 일이 없습니다. 흔들리지 않고 얼마나 좋습니까? 모든 원인은 마음에 있습니다. 내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저 아내를 내가 만드는 것이지, 그 아내가 좋다 나쁘다 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원래 타고날 때부터 나쁜 사람으로 태어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무량심(四無量心)이 있습니다. 첫째는 청정심입니다. 두 번째는 분별심을 없애는 무량심입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인데, 내가 남에게 베푼다는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느끼지 못하게 도와야 합니다. 높은 사람이 돈 많다고 아이에게 장학금을 현찰로 주면 자존심 상하는 것입니다. 어떤 재단에서 주는 것은 받지만, 재벌이 와서 “야, 너 장학금 합격!” 하고 주는 것은 죄입니다. 보시하는 것도 죄입니다. 청정하게 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세 번째는 자비심입니다. 남을 불쌍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만심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을 처분하게 생각하는 것이므로 보시와는 다릅니다. 네 번째는 지혜입니다. 인간의 마음은 항상 이 사무량심을 벗어나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무량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 사무량심을 행할 때, 저 어려운 사람의 마음이 내가 되어 버리면 내가 누구를 도와준 것이 아닙니다. 저 거지를 도와주는데 내가 저 거지 마음이 되어 버리면 내가 누구를 도운 것이 아닙니다. 내가 나를 도와준 것입니다. 저 사람이 나라는 마음으로 도와야 내가 누구를 도운 일이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아기에게 밥을 먹일 때, 엄마는 배가 부릅니다. 이상하게 아기보다 배가 더 부른 것입니다. 엄마는 먹고 싶지 않고, 애 입에 들어가는 것이 더 좋습니다. 상상 임신과 같습니다. 애 입에 들어가면 그것이 내 입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을 도울 때, 배고픈 자를 도와줄 때, 저건 남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누구에게 좋은 일을 했어”, “나는 기부를 했어”와 같은 생각은 문제가 있습니다. 기부한다는 단어 자체도 사실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기부하는 것은 마음속으로 기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에게 준 것입니다. 부모는 자기 자식에게 뭘 하는 것을 남에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남이 아닌 ‘내 지체’
여러분은 남이 아닙니다. 모두 올라가면 한 핏줄의 형제들입니다. 남이 아니라 나입니다. 내가 집에 가서 당근 하나를 먹고 싶어도, 밭에서 씨를 뿌리는 자와 거두어 오는 운전수, 시장에서 그것을 지키고 있다가 나에게 판 사람까지, 그 사람들이 전부 나를 대행한 사람들입니다. 당근 하나만 있으면 밥을 먹을 수 있습니까? 수백만 명이 동원되어 밥을 길러 먹는데, 내가 하루 사는 데 500만 명이 동원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남입니까? 내 지체입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벌면서 “아, 내 몸이 이렇게 고달프구나”, “저 사람들이 나를 먹여 살리려고 장사를 하는데 적자가 나서 빚을 지고 가게세를 못 내고 저렇게 고생하는구나”, “야, 내가 어떻게 저 사람들을 잘 살게 해 줘야 되겠다”, “저 사람들이 잘 되어야 나도 잘 되는데”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저 사람을 죽여야 내가 잘 된다는 마음을 먹으면 그 집안은 망합니다.
건물의 회전문은 복이 들어오는 것은 좋지만, 들어온 만큼 나갑니다. 박 회장님은 건축가지만 건축을 잘하는 사람인데, 건물을 잘 짓더라도 공사 과정에서 실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인생은 죽을 때까지 실험하다가 돌아갈 때, 그때 실패다 아니다는 가족이나 남이 결정해 주는 것입니다. 본인 입에서는 “내가 실패했다”는 말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고 신에 대한 배신입니다. 내 자식이 “우리 엄마는 실패했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이웃들이 “저 사람 나빠”라고 할 수 있습니까?
어떤 분이 시골에서 올라온 뻥튀기 장사에게 밥을 만들어 주고, 뻥튀기를 한 가마 갖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스카이 테이프에 글을 써서 붙여 놓았습니다. “집필하시다 춤추실 때 우유에 타서 드셔 보세요. 건강에는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훌륭하신 분을 이웃으로 만나게 되어서 항상 행복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행실을 잘못했다면 이런 대접을 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동네 여자들을 쳐다보거나 하면 사진을 찍어 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집에 들어가면 나올 때까지 나오지 않고, 아무런 불편을 주지 않습니다. 제 차를 세울 곳이 없었는데, 이제는 사람들이 제 차를 세우라고 자리를 비워 놓습니다. 제일 좋은 자리에 아무도 차를 대지 않고 “저기는 허경영 씨 자리”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저를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 글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정성은 다 좋았지만, 글씨를 잘 썼는데 한문이 다 틀렸습니다. ‘건강’의 ‘강’자가 틀렸고, ‘행복’의 ‘복’자도 틀렸습니다. ‘복(福)’자는 ‘볼 시(示)’ 변에 ‘먹는 입(口)’과 ‘밭(田)’이 합쳐진 글자로, 자기 눈앞에 먹고 살 수 있는 문전옥답이 보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복이 있는 것입니다.
복을 덕으로 바꾸는 삶: 진정한 성공
복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 덕(德)입니다. 덕은 자기 자신이 입으로 먹을 전답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心)이 들어갑니다. 복을 덕으로 바꾸지 못하면 인생의 실패자입니다. 어떤 부자가 죽을 때까지 편안하게 살다 죽었지만, 남에게 기부나 좋은 일을 못 하고 죽으면 실패입니다. 남들이 볼 때는 망하지 않았지만, 하늘에서 볼 때는 실패자입니다. 환전하지 못한 것입니다. 눈 감으면 짐승으로 태어난다고 합니다.
태극(太極)은 두 사람을 의미합니다. 남을 위해서, 한 사람 이상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남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중인(衆人)을 의미합니다. 두 사람이 십자가를 지는 것과 같습니다. 시방세계(十方世界), 이 세상에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복은 먹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덕은 남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고, 내 복을 남의 복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래서 덕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패자는 사업이 망한 자가 아닙니다. 복을 덕으로 바꾸지 못하고 죽는 사람입니다. 죽을 때까지 타워팰리스에 살면서 잘 사는 것은 좋지만, 그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못 했다면 실패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귀족의 의무를 뜻합니다. 귀족이 기부를 많이 했다고 해서 좋은 일을 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당연히 하지 않으면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귀족이 없는 사람을 도와준 것을 좋은 일을 했다고 하면, 이것은 기부가 나쁜 뜻이 되고 시기심이 됩니다. 좋은 일을 해도 무심(無心)이 되어야 합니다. 네 가지 마음(사무량심)은 눈에 보이는 물질을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음에 넣으면 죄가 됩니다. 청정한 것을 얼마 했다거나, 교회에 헌금을 많이 내고 열심히 교회에 나간 것을 마음에 넣으면 안 됩니다. 자기는 청정한 계율을 지켰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절대 무량심이어야 합니다. 어머니에게 설거지를 해줬다거나, 남편이 아내에게 설거지를 해준 것을 머리에 넣고 있으면 안 됩니다. 나중에 아내가 조금 잘못했을 때 “당신 내가 설거지 해줬잖아”라고 말하면 시기심을 한 것입니다. 이런 것을 머릿속에 넣으면 안 됩니다. 그것이 불심(佛心)입니다. 이런 것을 머릿속에 넣은 사람은 실패한 사람입니다. 아무리 기부를 많이 해도 “내가 얼마를 내고 좋은 일을 많이 했다”고 자랑하고 다니면 실패한 인생입니다.
사업하다가 부도나서 교도소에 가는 것은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실수한 것이고 경험한 것입니다. 다음에 교도소에 가면 그런 짓을 다시는 안 할 것입니다. 실수와 실패는 엄청나게 다릅니다. 사람들은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라고 말하며, 실수한 사람을 매도합니다. 사업하다 부도나서 교도소에 있는 사람을 무조건 ‘꾼’이라고 매도합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도 나중에 국회의장이 골프장에서 추태를 부리는 것을 보면 그 인생은 실수한 것입니다. 보는 눈을 바꿔야 합니다.
남의 마음으로 세상을 사는 지혜
내 마음이 바르면 모든 세상이 바르게 됩니다. 내가 남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입니다. 동네 사람들이 저를 보면 90도로 인사합니다. 저만 나타나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저도 동네 사람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공인은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집이라고 해서 소주나 마시고 소리나 지르고 “내 인생이 뭐 이래” 같은 소리를 하면 그날로 마지막입니다. 그것이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들 마음을 제가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그 사람들을 괴롭게 할 일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어떻게 밥을 먹는가, 그것이 걱정입니다. 제 밥벌이는 걱정하지 않고 그래야 합니다.
어느 날 송추의 파칼국수집에 갔는데, 70대 후반의 사장님이 제가 들어가자 맨발로 문 앞까지 쫓아 나와 큰절을 했습니다. 제가 앉으니 저를 향해 큰절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러시냐고 물으니, 머리가 땅에 닿도록 공손하게 큰절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저를 위해 매화 그림을 그렸습니다. ‘춘설매(春雪梅)’라고, 눈 속에 있는 매화는 봄이 올 때를 기다리고 있는 매화인데, 때를 만나면 꽃이 피어 그 향기가 천리를 갈 것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것이 저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겨울이지만, 때가 되면 매화가 활짝 필 것이라고 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설중매, 인동초와 비슷한 이야기입니다. 그 양반이 어느 곳에 갔더니 역대 대통령 사진을 벽에 다 붙여 놓으라고 했습니다. 방마다 붙여 놓고, 손님들이 밥 먹는 방에도 붙여 놓았는데, 제 사진이 제일 컸습니다. 참 별일입니다. 제 지지자가 은근히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식당에 가서 제 책을 읽었다는 여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몇 년 전에 저를 보러 왔었다고 했습니다. 식당 같은 데 가면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원래 술 담배를 안 해서 실수를 하지 않지만, 혹시 제가 그 동네에 가서 그런지 그 사람들도 싸우는 집이 없습니다. 조용합니다. 그 사람들은 사회를 위해, 국민을 위해 보시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한 것이 없습니다. 청정심이나 자비심, 지혜는 절대적으로 자기 마음에 두면 안 되고, 남을 위해 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자유는 의무를 다한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입니다. 방종은 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에서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할머니나 만삭인 여자가 탔는데, 나는 교회 장로다, 절에 있는 보살이다 하면서 자리에 앉아 있으면 하나님이 좋게 보시겠습니까? 그 여자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내 다리가 아프다”, “차가 정지하면 이 여자가 버스 안에서 넘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누가 말을 안 해도 먼저 일어나서 먼저 본 사람이 빨리 자리에 앉혀야 합니다. 그것이 젊은이가 해야 할 일인데, “다른 사람이 양보하겠지, 나는 좀 앉아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방종입니다. 그것은 자유의 반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자유를 줄 때는 의무를 다하라고 주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가족의 의무를 비롯한 의무가 있습니다.
진정한 성공과 실패의 기준: 마음의 태도
우리는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기부를 하고 남을 위해 뭔가 한다는 사람들의 마음이 대부분 인생을 보면 실패하고 부도내고 죄를 지은 사람들은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늘에서 오케이입니다.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나는 기부를 많이 하고 사회에 공헌을 많이 해서 이렇게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늘에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죄수들이 살인을 하고 10년, 15년을 도망 다녔다고 해도 공소시효가 있습니다. 공소시효는 바깥에서 형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15년 형을 바깥에서 살든, 안에 가서 살든, 피해 다닐 자신이 있으면 얼마든지 피해 다녀도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깥에서 죄인처럼 살면 그만큼 죄를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에서는 죄를 짓지 않을 수도 있지만, 바깥에서는 경찰만 보면 뜨끔합니다. 그러니 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소시효입니다.
오히려 이런 사람들은 죄를 지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교회나 절에 헌금을 잘 내고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다른 교회나 이단으로 가기도 하고 목사와 싸우기도 합니다. “나는 공헌을 많이 했는데 당신은 왜 따로 목회를 하냐”고 합니다. 하늘이 이런 자들을 벌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실패한 자들입니다.
하늘은 지구인 중에 유대인들을 실패자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교만하여 자신들이 택한 민족이라는 선민 의식을 가지고 모든 민족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교회도 뺏기고 땅도 뺏겼습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건국되었는데, 우리나라도 1948년에 건국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영국이, 우리는 미국이 만들어 주었습니다. 원자탄이 아니었으면 영국이나 미국이 이런 나라를 만들지 못했을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을 뺏어 이스라엘을 만들어 주고, 미국이 남한에 건국하게 해 준 것입니다. 둘 다 특수한 민족이지만, 미래에는 하늘이 한 민족을 세계 인류를 개종할 민족으로 뽑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와 있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이스라엘 민족을 개종할 민족으로 뽑았지만, 이 사람들이 실패했습니다. 율법을 제대로 지킨답시고 율법에 율법을 계속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지러운지 모릅니다. 물을 앉아 마시는 데도 율법이 있고, 아침에 일어나 기도하는 데도 율법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율법에 갇혀 버린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른 민족은 이런 율법도 안 지키는 놈들이라고 무시했습니다. 교만하기가 이를 데 없으니 하늘이 히틀러를 시켜 다 죽여 버린 것입니다. 600만 명을 다 죽였습니다. 그것이 히틀러가 한 것 같지만, 하늘이 한 것입니다. 저 민족이 살아남았다면 전 세계 인구를 독점했을 것입니다.
저는 진리의 민주주의를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저 혼자 가지고 있으면 독재입니다. 메시아가 진리를 혼자 가지고 있으면 독재입니다. 저는 진리를 여러분에게 나눠 주는 것입니다. 진리로 여러분을 민주화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무량심을 다른 말로 바꾸면 평정심(平靜心)입니다. 모든 인간을 같이 봐야 하는데, 이스라엘 민족은 인류를 차별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차별 심식이 너무 심합니다. 하나님은 평정심을 주장하는데,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을 나무나 동물처럼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평정심은 평등심(平等心)이고, 종교에서는 보리심(菩提心)이라고도 합니다. 불교에서는 보살(菩薩)이라고도 합니다.
평정심의 반대는 자만심도 되지만, 봉사심입니다. 내가 남에게 봉사를 했다는 생각을 하면 그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남에게 봉사하는 것은 남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봉사심은 무량심, 즉 평정심으로 바꿔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한 것이지, 누구에게 봉사를 한 것이 아닙니다. 고아원에 가서 봉사를 했다면 그것은 내가 나에게 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남이 아닙니다. 배고픈 내 아들에게 밥을 먹인 것이고, 내 아들을 목욕시킨 것입니다. 그것은 남이 아닙니다. 봉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봉사’라는 언어를 쓰면 그 자는 실패한 자입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을 성공했다고 말합니다. 자기가 봉사를 많이 했다는 사람을 성공했다고 하지만, 이런 것이 쌓이면 그 나라나 개인은 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저 사람을 많이 도왔다”는 말을 상당히 조심합니다. 저는 저를 도왔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차라리 죄를 짓고 도망 다니는 막내아들 탕자를 맞이합니다. 탕자를 가능성 있게 보고, 자기 말을 잘 들은 유대인을 마다(맏아들)로 보는 것입니다. 마다는 나중에 아버지 잔치에 참여하지 않고 삐져 나갑니다. 마다는 아버지에게 대들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막내아들은 “나는 아버지 돈을 가지고 도망갔다가 슬퍼 마시고 땅을 탕진한 사람이니 나는 죄인이야”라고 자기가 자기 마음을 낮춥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미국에 가면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은 속도가 느립니다. 우리나라에서 배웠기 때문에 한국 발음이 나옵니다. 하지만 다섯 살짜리 아이는 금방 미국 아이들과 어울리며 영어의 달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영어를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습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의해야 할 것은, 여러분이 알게 된 것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천부경의 지혜: 인간의 본성과 우주의 순환
일시무시일석삼극무진본(一始無始一析三極無盡本)이라는 천부경 구절이 있습니다. 여기서 삼극(三極)은 사람, 심기(心氣), 신(身)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처음에 세상을 만들었지만, 만든 것은 없다고 나옵니다. 왜 하나님이 만드는데 만든 것이 없다고 할까요? 하나님이 창조를 했지만, 시작이 곧 끝과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붙어 있는 것입니다. 우주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처럼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생존하고 돌고 돌면서 여러분은 계속 살다가 362만 개나 되는 인간이 사는 별을 계속 순환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나중에 공(空)으로 올라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면 됩니다. 362만 개라는 것은 엄청나게 많은 지구 별입니다.
마음은 성품에서 옵니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은 성품이 좀 다릅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바닷가 출신이라는 성품이 오는 것입니다. 한국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이 좀 다릅니다. 이것이 성품에서 오는 것입니다. 벌써 그 사람들의 특색이 딱 나옵니다. “저 사람은 어디 사람이다”라고 알 수 있습니다. 충청도 사람은 느려서 기회를 많이 놓칩니다. 순발력이 적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나무를 하다가 “아버지, 돌 내려가요” 하면 “알았다”고 하는데, 밑에서 “아버지 돌아가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늦다는 것입니다. 기회를 놓치는 것입니다.
성품은 정(精)에서 옵니다. 그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느낀 감정, 바람이 많다든지, 땅이 척박하다든지 하는 기운이 성품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 땅에서 느낀 감정, 도둑이 많다든지 하면 그 사람들의 성격이 달라집니다. 남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정신이 약간 공포증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날마다 파도치고 태풍 불고 하는 데서 살아서 공포증이 있기도 하지만, 일본 사람들이 밤에 와서 사람을 죽이고 여자를 납치했기 때문입니다. 바닷가에는 예쁜 여자가 드뭅니다. 일본 놈들이 데려가 버리니 예쁜 여자는 내륙으로 도망가는 것입니다. 딸 가진 사람은 내륙으로 도망옵니다. 일본이나 해적이 많아서 남의 여자만 잡아가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돈이 없으니 여자가 돈이었습니다. 여자는 재물에 속하니 여자만 도둑질해 가는 것입니다. 바닷가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마음에서 성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거기서 마음이 나옵니다.
기는 명(命)을 만듭니다. 명은 호흡에서 옵니다. 숨 쉬는 것이 우리의 목숨입니다. 목숨에서 오는 것입니다. 몸은 정자에서 옵니다. 정자는 남녀의 촉에서 오는 것입니다. 천부경은 인간의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고 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세세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어떤 세계적인 경전보다도 우리 민족이 가지고 있던 천부경은 아주 과학적입니다.
방종은 법을 어기지 않는 한도에서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전부 방종을 하고 있습니다. 방종을 자유로 보는 것입니다. 이런 젊은이들은 봉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무슨 일을 많이 했다”는 우월한 마음이 바닥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고쳐야 합니다. 인생에 있어서 실수는 있을 수 있고, 실험도 있을 수 있고, 경험도 있을 수 있고, 탐험도 있을 수 있지만, 인생의 실패는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함께하는 분들은 실패하는 분이 없습니다.
21세기 인명은 ‘제처’: 아내의 중요성
21세기 사람의 목숨은 누가 가지고 있습니까? 옛날에는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고 하여 사람 목숨을 하나님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명재처(人命在妻)입니다. 아내가 가지고 있습니다. 마누라 없는 사람이 일찍 죽습니다. 마누라가 없는 이는 제쳐야 합니다. 21세기에는 이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마누라가 바로 하나님입니다. 마누라와 불화가 있는 집안은 자기 자식 목숨, 자기 목숨 다 버리는 것입니다. 자식들도 엄마 아빠가 헤어지면 버림받습니다. 그러므로 마누라를 잘 받들어야 집안이 화목합니다. 옛날에는 여자를 재물로 알았지만, 이제는 무서운 줄 알아야 합니다. 여자에게 잘해야 합니다. 인명재천이 제처로 바뀐 것입니다. 그것이 마누라입니다.
마누라가 없을 때는 누가 사람 목숨을 가지고 있습니까? 식당 아줌마들이 밥을 해 가지고 오는데, 내 하나 없애 버리려면 얼마든지 없앨 수 있습니다. 밥에다가 수은을 붓거나 나쁜 것을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여자가 다 쥐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처가 아니면 제식(制食)입니다. 이것이 현실적인 것입니다. 현실 드라마에서도 남편을 독약으로 죽이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자들이 남자 둘을 죽여 드럼통에 넣어 놓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여자에게 고난을 사면 곤란합니다.
복을 덕으로 바꾸는 지혜: 자손을 위한 음덕
여러분은 절대 죽기 전에는 실패하지 않습니다. 이 인생에 와서 마음대로 실험하고, 그러다가 나중에 다시 못한 것은 다시 리바이브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뭘 많이 해야 합니까? 복을 많이 지어야 합니다. 그 복이 돌아올 때 그것을 덕으로 바꿔야 합니다. 야구 선수가 공이 날아오면 그것을 쳐서 남을 위해 관중을 기쁘게 해줘야 합니다. 공 욕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선을 행한 자는 반드시 복을 받습니다. 선을 행하지 않는 자는 하늘이 벌을 줍니다.
은혜를 널리 펴야 합니다. 은혜를 베풀 때는 늘 게을리 하지 않고 일해야 합니다. 좋은 일을 했든, 궂은일을 했든 집에 와서 마누라 앞에는 너그럽게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은혜와 의리를 넓게 펴야 합니다. 인생은 반드시 서로 만납니다. 죄를 지으면 복을 짓고 나면 꼭 만납니다. 원수를 맺지 마십시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납니다.
행복의 조건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선(善), 의(義), 미(美)입니다. 선과 의를 행하면 아름답게 세상을 사는 사람입니다. 앞으로 초등학생들에게 이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한문을 가르치면 아이들이 잘합니다. 성경과 같은 말이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것을 들으면 머릿속에서 잘 안 지워집니다. 앞으로 아이들은 중국어, 일본어를 잘해야 합니다. 정년 퇴직한 사람들도 중국어, 일본어를 배우러 다닙니다. 늙어서 취직을 하는데 중국어,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을 뽑기 때문입니다. 관광객이 많이 오기 때문입니다. 경비도 중국어를 못하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화장실이 어디냐고 묻는데 불친절하게 하면 안 됩니다. 아이들에게 이런 것을 가르쳐 줘야 합니다.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면 자기가 가진 복을 자식에게 주어 실패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자식이 단칸방에서부터 자기가 만들어 볼 때 보람을 느끼는데, 자식의 기쁨을 다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사업 자금을 줄 때도 100% 다 주지 말고 70% 정도만 주라고 합니다. 그래서 네가 사업을 한번 해 보라고, 망하면 그 고통을 좀 겪게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있는 동안은 네가 망해도 괜찮으니 고생을 한번 해 보라고 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숨 넘어가기 전까지는 고생을 시켜야 합니다. 복을 그냥 줄 경우에는 실패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식에게 돈을 상속하면 그것을 지킬 자손은 없습니다.
자식을 공부를 너무 많이 시키면 자식이 교만 방자해져서 공부 안 한 사람을 깔아뭉갭니다. 사람만 만나면 “무슨 대학 나왔나?” 하고 묻는 것이 버릇이 됩니다. 앞으로 절대 남에게 학벌을 묻지 마십시오. 나이도 묻지 마십시오. 나이가 정해진 시대가 아닙니다. 40살도 40살처럼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식을 공부를 많이 시키면 그 공부한 대가를 못 지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것을 가지고 교만해져서 사고를 칩니다. 서울대 교수가 대부분 다른 대학교수는 안 그러는데 서울대 교수만 성추행에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대학교수는 학생들이 교수로 잘 안 보기 때문에 목에 힘을 줄 수가 없습니다. 여자들이 말을 안 듣습니다. 서울대 교수는 대통령만큼 대단한 자리이니 권세를 누리는 것입니다. “이리 와, 저리 와” 하는 것입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말년에 가서 성추행으로 서울대 교수를 그만두면 뭘로 먹고 삽니까? 이런 사람은 결국 집안이 망하니 자식이 이렇게 안 되라는 법이 없으니 뭘로 이것을 막을 것입니까? 24시간 눈을 뜨고 따라다닐 수 없습니다.
불적음덕(不積陰德)은 명명지중(冥冥之中)입니다. 남이 안 보는 데서 덕을 쌓는 것입니다. 복이 아닙니다. 덕을 남이 안 보는 그늘, 명명지중, 아무도 모르게 누군가를 몰래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의 도움이 어둡고 어두운 가운데 자식의 그것을 도와줬을 때, 이렇게 음덕을 베풀면 그것이 자식을 지켜 줍니다. 그것이 진정한 계산입니다. 이것이 아름답게 사는 것입니다.
선과 미와 의가 행복의 조건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복을 많이 지은 자도 남 앞에 갔을 때 얼굴을 침묵을 지키고 얼굴에 무게를 강요하거나 입술을 꾹 다물고 남 앞에 미소를 안 하면 그 자는 죄짓고 있는 중입니다. 아무리 잘난 자도 언제나 남 앞에는 밝아야 합니다. 자기 아버지를 보듯이, 자기 형제, 자기 자식 앞에 있듯이 그렇게 항상 밝은 모습을 보이면 그 사람이 행복의 조건을 가집니다.
한국 왕과 로마 왕의 차이: 충(忠)의 정신
로마 왕과 한국 왕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 왕은 신하들을 존대합니다. 로마 왕이나 다른 나라 왕들은 신하들에게 명령하고 반말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중요한 것은 로마 왕들은 한 번도 정상적으로 죽은 왕이 없습니다. 전부 약물로 암살당했습니다. 우리나라 왕은 제대로 늙어서 죽은 왕이 있습니다. 로마의 왕들은 100% 다 암살당하거나 약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명에 죽은 왕이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선하다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충(忠)이 있습니다. 충은 마음(心)이 중심(中)에 있는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서양의 왕들은 옛날에 영국 왕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불안 속에서 생활했습니다. 그 대신 우리나라 왕들은 이런 것을 굉장히 중요시했습니다. 서양 사람들은 이런 것 대신 칼이 있습니다. 칼이 말을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무엇일까요? 꼭 알아 두십시오. 지구 은하계에 인간이 사는 별이 몇 개 있습니까? 362만 개가 있습니다. 우리 은하수 안에 있는 별, 우리 인간이 사는 별이 그렇게 많습니다. 비행기가 왔다 갔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아직 유치원생들이라 그것을 알면 기절할 것입니다. 엄청난 비밀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와 있는 것은 여러분들에게 이런 것을 어느 정도 알려주어 변화되게 하기 위해서 이 인터넷 시대에 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제일 먼저, 제일 이 지구상에서 어려운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앞으로 한평생 사는 것은 어려운 것도 귀한 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머니, 아버지 몸에서 몇 대 일로 태어났습니까? 3억 대 1, 5억 대 1로 태어납니다. 5억 명이나 3억 명을 제치고 한 사람이 잉태된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태어났으니 인간의 존재는 고귀한 것입니다. 사람을 무시하면 하늘에서 벌을 받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태어난 것만 해도 이미 성공한 것입니다. 그다음은 사람들이 있으니 다 먹고 삽니다. 한 사람이 평생 밥 먹어 봐야 뻔합니다. 성공과 실패는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먹기에 달려 있습니다.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망해도 그 사람은 망한 것이 아닙니다. 실패가 아닙니다. 실패를 했어도 여러분이 “나는 갈 곳이 있어. 하늘이 있어. 나는 다 하면 좋은 데 갈 거야”라는 좋은 마음을 가지면 여러분은 피해자가 아닙니다. 사람의 소중함을 우리가 좀 더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