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4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도 The Truth of the Reversal of Perpetrator and Victim: Huh Kyung-young’s Lecture on the Paradox of human nature and divine providence – May 9, 2015

가해자와 피해자의 전도된 진리

가해자와 피해자가 전도되는 것이 요즘 현실입니다. 여러분들은 진리를 배우지 않은 사람은 전부 자기가 가해자인데 피해자인 줄 알고, 피해자인데 가해자인 줄 압니다.

종교적 관점에서의 가해자와 피해자: 불교와 기독교

종교적으로 볼 때, 피해자는 불교, 가해자는 기독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모든 인간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긍정하지만, 기독교는 모든 인간을 죄인으로 보고 하나님이 될 수 없다고 부정합니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이 죄를 짓고 선악과를 따먹어 가해자가 된다고 말하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불교는 모든 사람이 본래 선근을 가지고 있어 부처이며, 단지 자신이 부처인 것을 모를 뿐이라고 가르칩니다. 팔만대장경은 바로 그 사실을 알려주는 경전입니다.

기독교는 모든 사람이 죄인이며 예수님의 구원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전제하에, 죄는 가해자가 더 많이 짓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미워하는 마음이 더 커서, 하늘에서 볼 때 진정한 죄인은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부(寡婦)의 비유: 인상으로 가해자와 피해자를 가리다

이 세상은 전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30년 된 가부와 남편이 있는 여자를 비교해 봅시다. 30년 된 가부는 얼굴이 밝고 명랑한 반면, 남편이 있는 여자는 남편과의 갈등으로 인해 얼굴에 어두운 기색이 있습니다. 가부는 자유롭고 마음이 너그러워 보이지만, 유부녀는 집에 빨리 가야 한다는 초조함이 있습니다. 남편과 싸울 대상이 없으니 가부의 얼굴은 펴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부를 좋아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가부는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살아 있을 때는 나쁜 기억만 떠오르지만, 남편이 죽으면 불쌍해지고 좋은 기억만 남게 됩니다. 자식이 살아 있을 때 속 썩여도 죽으면 좋은 것만 생각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여자가 30년 동안 남편이 없으면 얼굴이 밝아지고 자유인이 됩니다.

기독교와 불교의 근본적 차이: 대부정과 대긍정

기독교의 죄인관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며 선악과를 따먹은 가해자라고 봅니다. 반면 불교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부처이며, 모든 인간이 불성을 가지고 부처가 될 수 있다고 긍정합니다. 불교에서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을 강조합니다.

폭력을 행사한 사람보다 맞은 사람이 더 미워하는 마음이 높습니다. 때린 사람은 후회하지만, 맞은 사람은 앙심을 품게 됩니다. 이 감정이 3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암에 걸려 불쌍해지면 피해자의 앙심이 풀리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마음속에 포로로 잡고 있다가 풀어주면, 피해자 자신의 몸이 좋아지고 해방감을 느끼게 됩니다. 가해자는 오히려 죄가 적고, 피해자가 미워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지구의 순환과 인간의 어리석음

지구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의 사이클을 반복합니다. 만들어지고, 머무르고, 없어지고, 공으로 돌아가는 순환입니다. 이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반복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늘은 누구에게도 특별한 예외를 두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부모가 자식에게 특별히 잘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하기 나름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기가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아들이 재산을 탕진하고 도망갔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가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자세이며, 이런 사람은 성공하고 존경받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가해자가 되어 인간의 죄를 긍휼히 여겨 봐주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가해자가 무조건 나쁘고 피해자가 무조건 좋다고 잘못 판단하고 있습니다.

종교와 문화의 충돌: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기독교와 불교는 지난 200년간 우리나라에서 부딪혀 왔습니다. 기독교는 대부정을, 불교는 대긍정을 기반으로 합니다. 현재 전 세계 종교는 이슬람으로 개편되어 가는 추세입니다. 이슬람은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어, 전쟁으로 인한 가부와 고아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합니다.

헬레니즘 문화와 헤브라이즘 문화의 싸움은 인문학의 핵심 주제입니다. 헬레니즘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헤브라이즘은 하나님의 섭리와 영성을 강조합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이후, 유일신 시대가 끝나고 인간이 신격화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히틀러, 나폴레옹, 일본 천황과 같은 영웅들이 등장하여 세계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영웅 호걸의 시대를 마감하기 위해 제가 왔습니다.

믿음의 4단계와 영적인 믿음

사람의 믿음에는 4단계가 있습니다.

  1. 강제적 믿음: 강제적으로 믿게 하는 단계입니다.
  2. 반복 학습: 학습을 통해 계속 믿게 하는 단계입니다.
  3. 스스로 믿음: 스스로 따라가며 믿게 되는 단계입니다.
  4. 이유 없는 믿음 (영적인 믿음): 이유도 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이들이 저를 좋아하는 것처럼, 학습이나 귀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좋다고 느끼는 영적인 단계입니다.

제 이름만 불러도 사람들이 달라지는 것은 하늘에서 작업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의학 박사들도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현상입니다. 저는 새로운 시대를 통일하려는 정치인으로 왔지, 종교를 만들러 온 것이 아닙니다.

다윗과 아브라함의 사례를 통해 본 하나님의 섭리

다윗은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려 했고, 아버지는 자식을 죽였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로 나뉘어 끊임없이 싸우고 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막내를 팔아먹으려 했습니다. 기독교는 이들에게 하나님의 지혜와 축복이 있었다고 말하지만, 이는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아브라함에게 특혜를 준 사실이 없습니다. 그들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을 보았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특별히 선택하지 않습니다. 모든 인간에게 평등합니다. 다윗이 바람을 피우고 장군의 아내를 취하자,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죽이고 집안에 천벌을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동에 대응하는 존재이지, 먼저 개입하여 처리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이 어리석어 부처라는 것을 모를 뿐, 모두 천사입니다.

기독교 전도의 문제점과 이슬람의 부상

기독교는 전도할 때 “하나님이 자신을 택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는 거짓입니다. 하나님은 누구를 특별히 택하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만 택함 받았다고 생각하여 망한 것처럼, 이러한 선민사상은 위험합니다.

북한이 종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종교가 자신들의 전법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김일성 일가가 목사 집안이었던 것처럼, 기독교적인 학습 방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누구는 선택받았다”고 말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이슬람은 전 세계 종교를 섭렵하여 장점만 모아 만든 종교입니다. 마호메트는 고아와 가부가 많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자가 여러 명의 아내를 둘 수 있도록 계율을 만들었습니다. 이슬람은 간음, 살인, 도둑질, 탐욕 등을 금하는 기독교의 십계명과 달리, 기도, 자비, 성지 방문, 금식 등을 강조합니다. 이슬람은 계율이 유연하여 재혼이 자유롭고, 여성은 남편에게 복종해야 하는 상품으로 여겨집니다.

프랑스처럼 이슬람 인구가 3%만 넘으면 그 나라는 이슬람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닙니다.

인류의 정신사적 위기와 허경영의 역할

지금 21세기는 인류의 정신사적 위기입니다. 신앙, 철학, 인문학 등 모든 분야에서 위기가 도래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제가 한반도에 착륙하여 여러분에게 진리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과거 우리 민족은 종교라는 이름 없이 삼신을 믿고 하늘에 빌었습니다. 이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고, 인내천(人乃天) 사상과 연결됩니다. 서양 종교들이 전 세계를 초토화할 때 제가 나타나 세계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자녀 교육에 실패한 사람이 없습니다. 여성은 터번을 쓰고 외출하며, 완벽한 가족 제도를 유지합니다. 이것이 이슬람이 확산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백천만급 난조우(百千萬劫難遭遇)의 진리

인공위성이 수천만 개의 별을 뒤져도 물방울 하나 있는 별을 찾기 어렵습니다. 지구와 같은 별은 수천억 개의 별 중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지구별에 착륙한 천사들입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만나는 것은 백천만급(百千萬劫)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 속에서 만나기 어려운 일입니다. 제가 하늘에서 온 사람을 만나는 것은 보통 문명이 아닙니다. 이를 섭리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무상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라고 합니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깊고 미묘한 법입니다.

제 강의는 짧든 길든, 한마디 한마디가 엄청난 진리입니다. 여러분은 이 진리를 명심해야 합니다.